독일의 30만 년(?) 전 인류의 거주 장소에서 창, 불의 사용, 난로, 말뼈, 신선한 나무...등이 발견되었다.

독일의 30만 년(?) 전 인류의 거주 장소에서 

창, 불의 사용, 난로, 말뼈, 신선한 나무...등이 발견되었다. 

(German Early-Man Site Shocks Archaeologists with Improbable Dates)

David F. Coppedge 


     연구자들은 말한다. ”고인류학이 잘못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리 조상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진화론적 시간 틀로 30만 년 전에, 인류의 조상은 너무도 짐승 같아서, 조직화되고, 계획을 세우고, 정교한 도구로 사냥할 수 없었다고 추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이 독일 하노버 동쪽 쇠닝겐(Schöningen) 근처의 갈탄 광산에서 유물들을 발견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아래 관련자료 링크 1번 참조). 그곳에서 40만 년 전으로 연대가 평가된 정교한 창촉(spear points)들을 발견했을 때, 한 고고학자는 ”나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 연대는 후에 30만 년 전으로 하향 수정되었지만, 초기 인류가 정교한 기술을 가지기에는 30만 년 전도 너무 이른 연대라고 마이클 발터(Michael Balter)는 Science(2014. 6. 6) 지에서 보고했다. 인류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었다 :

티엠(Hartmut Thieme)이 1997년 Nature 지에 40만 년 전이라는 연대와 함께 그 발견을 최초로 보고했을 때, 고고학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그 논문은 한 번의 빠른 찌름으로, 오늘날 지배적 패러다임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진화론 패러다임에 의하면, 현대인이 출현하기 이전의 초기 인류(hominins)는 정교한 무기를 만들거나 조직적인 사냥을 할 수 없는, 인지 능력이 부족한, 사냥꾼이라기보다 썩은 고기들을 줍는 청소부(scavengers)였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티엠은 네 개의 난로(hearths)로 보이는 것들을 발견했다. 이것은 조절된 불의 사용에 대한 가장 초기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쇠닝겐은 이전 인류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고 있는 장소 중 하나이다”라고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의 고고학자인 존 시어(John Shea)는 말했다. ”고인류학이 잘못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리 조상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던지는 창(spear)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창들은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창들은 계획 및 깊은 사고를 통해 솜씨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09년에 발표된 ”한 단순한 창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튀빙겐의 고고학자인 미리암(Miriam Haidle)은 창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는 일련의 단계들을 설명했다. 먼저 그룹에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음으로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다듬고, 다음으로 돌을 깨트려 창촉을 준비하고, 가공해놓은 나무 끝에 창촉을 붙들어 매어 완성된 창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 능숙하게 창을 사용한다. 

연속된 발굴들, 특별히 2008년 튀빙겐 대학의 고고학자 크리스토퍼(Christopher Miller)와 조르디(Jordi Serangeli)가 수행한 발굴들은 인류의 조상은 누구인지, 그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그곳에 얼마나 오래 거주했는 지와 같은 질문들에 대답하려고 노력해왔다. 이곳이 네안데르탈인과 현대 인류의 공통조상으로 널리 여겨지고 있는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Homo heidelbergensis)가 살던 거주지였는가? ”많은 사람들이 호모 헤이델베르겐시스가 이러한 종류의 수준 높은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의 고인류학자들은 오직 현대인만이 이러한 종류의 무기를 만들 수 있도록 현명했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말했다, 따라서 새로운 해석은 인지 능력의 출현을 훨씬 더 초기로 끌어내렸으며, 쇠닝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지에 대한 평가를 축소시켰고, 거주 기간을 수 세기 또는 천 년까지 확장하고 있었다.

진화론적 시간 틀로 이제는 30만 년 전으로 평가된 그 장소는 수많은 말뼈(horse bones)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 장소에 한 그룹이 상당 기간 동안 거주했음을 가리킨다. ”말뼈와 창들은 야생동물들과 인간의 주요 이동 교차로였던 그 장소에서, 몇 년 이상, 수십 년, 또는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여러 작은 사건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그 장소에는 과일, 견과류, 침구 재료가 풍부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한 고고학자는 기록했다 : ”일상의 삶을 위하여 음식, 침구 등에 사용할 식물이 필요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투창의 제조에 필요한 나무와 재료를 얻기 위하여 먼 거리를 걸어야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30만 년 된 신선한 나무?

쇠닝겐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신선한 나무의 발견이다 :

오늘날 그 장소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있다. 흑니토(muck) 안에 묻혀있는 목재 나무들은 저산소 상태로 인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부패되지 않고, 젖은 퇴적층을 뚫고 들어있는 참나무(oak), 오리나무(alder), 자작나무(birch)의 굵은 가지들과 물에 잠겨있는 나무들은 30만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신선한 상태였다. 고고학적으로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코나드(Conard)는 말한다 : ”홍적세 중기(Middle Pleistocene, 약 78만~12만5천 년)로부터 목재 유물(wooden artifacts)의 90% 이상이 쇠닝겐에 있다”

발터는 이러한 연대를 말하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나무가 30만 년(= 3,000세기)이 지나도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30만 년이라는 시간은 신선한 나무가 산소와 차단되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처럼 보인다. 그 장소에서는 그러한 장구한 시간 동안 어떠한 지질학적 변화도 없었단 말인가?



진화론자들의 모든 '수수께끼‘들은 그들의 장구한 연대를 갖다 버린다면 사라진다. 쇠닝겐은 바벨탑 사건 이후 서쪽으로 이주해가던, 지성을 가진 사냥-채집인에 의해서 사용되던 캠프 장소에 불과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다윈의 이야기에 꿰어맞추기 위해 장구한 연대를 추정하고 있지만, 젊은 연대라면 그 데이터들은 완벽하게 이치에 맞는 것이다. 신선한 나무, 발달된 기술의 창, 조직화된 사냥 등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그러한 해석을 고려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장구한 시간이 사라진다면, 진화할 시간이 없는 진화론은 완전히 붕괴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협조적인 데이터라도, 아무리 놀라운 데이터라도, 그리고 진화론적 시간 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데이터라도, 모든 데이터들은 장구한 시간에 적합하도록 해석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다윈의 안경을 쓰지 않고 있는 우리들은 분명히 볼 수 있다. 창조론자들은 조상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4/06/german-early-man-site-shocks-archaeologists-with-improbable-dates/

출처 - CEH. 201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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