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그 많은 동물들을 돌볼 수 있었을까?

미디어위원회
2005-09-02

어떻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그 많은 동물들을 돌볼 수 있었을까? 

(How Could Noah and His Family Care for the Many Animals on Board the Ark?)

John D. Morris 


      홍수에 대한 성경 이야기를 헐뜯는 사람들은 1년여 동안 단지 소수의 사람들이 방주에서 동물들을 돌보았다는 생각을 조롱해 왔다. 동물의 수와 공포스런 환경을 고려해 볼 때, 그것은 확실히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가?

초기의 연구들은 방주에 탄 동물들의 총 수가 성경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수백만 마리 보다 훨씬 적었음을 보여주었다. 노아의 방주에는 각 동물들을 ‘종류(kind)’대로 두 마리씩을 태우도록 지시를 받았다. 아마도 그 종류라는 개념은 오늘날에 동물 ‘종(species)’보다는 ‘과(families)’ 또는 ‘속(genera)’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개 종류(dog kind)는 늑대, 애완용 개, 딩고, 코요테 등과 같은 많은 종(species)들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동물들은 작고, 단지 몇 십종들만 크다. 평균적인 크기는 고양이 목(order)의 동물 정도가 될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우드모라페(John Woodmorappe)가 쓴 뛰어난 책 ‘노아의 방주 : 가능성 연구 (Noah's Ark: A Feasibility Study)’를 읽어보라). 그리고 오늘날 동물들의 대다수는 바다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방주에 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어떻게 그 방주 안에서 지낼 수 있었을까? 수개월 동안 우리에 갇혀있어야만 하고, 방주의 흔들림과 동요, 폭풍의 요란한 소리와 다른 동물들의 존재 속에 둘러싸인 채 말이다 (창세기 7:21-22). 어떻게 그들은 견딜 수 있었을까? 어떻게 육식동물들은 살아갈 수 있었을까?

모든 동물들이 육식을 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의 영양학적 필요에 주의를 기울여 채워주기만 하면 된다. 일부 육식동물들은 심지어 채식주의 생활 양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다른 동물들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가령 곰은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동면(hibernate)을 한다. 많은 다른 동물(아마도 거의 모든 동물)들은 그들이 극복할 수 없는,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하였을 때, 상대적인 동면(relative dormancy) 또는 하면(estivation) 상태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들은 최소한의 먹이와 운동을 필요로 하며, 배설물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공통적이고 압도적인 곤경(predicament) 상황의 존재는 약탈자/먹이(predator/prey) 관계를 제거해 버린다.

성경은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다. 노아는 동물들을 위해 ‘안에 간들을 막을(make rooms in it))’ 것을 지시받았다(창세기 6:14).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다른 모든 곳에서 새들에게 적용되어졌던(신명기 32:11) '보금자리(nests)” 라는 단어로 기술되어 있다. 또한 그 단어는 사람들에게도 안전과 휴식을 주는 장소를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욥 29:18). 이것은 동물들이 단순히 쉬면서 위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노아의 홍수와 방주 사건은 반복 가능하지도 않고, 오늘날 시험해볼 수도 없는, 독특한 사건이었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 상세히 전말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노아를 사랑하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노아의 일을 줄여주시지 않으셨을까?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한 신비로운 동면 능력의 기원(origin of hibernation ability)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어떠한 설명도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 풍성하신 창조주께서 노아의 방주에 있던 동물들에게 이러한 생존 메커니즘을 부여하면서 기원하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홍수 이전에는 그러한 동면 능력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동물들은 방주에 있었던 동물들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 능력을 물려받았다. 과학은 동면의 기원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실과 들어맞는 이러한 가설은 고려되어야만 한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noah-and-animals

출처 - ICR, 2005. 8. 1.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