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이재만
2005-01-24

노아홍수 (10) - 통풍장치와 규모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 층으로 할지니라'(창 6:16)

하나님께서 친절히 통풍을 위한 창을 어떻게 만들 것을 말씀하신다.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창을 내라고 하셨다.  이 창은 노아가족과 방주에 탔던 동물들에게 공기를 공급하는 통로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방주에는 많은 동물들의 호흡과 체온을 통해 실내 공기와 온도가 적절히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텐데 이 창은 이들을 위한 효과적으로 설치되었을 것이다.  창의 크기와 개수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많은 동물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열로부터 이 창들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을 것인가 과학적 계산은 쉽지 않다. 


또한 노아홍수 기간에 바람의 세기도 실내 공기와 온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홍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다루겠지만 물이 감할 때 바람으로 감하셨다(8:1)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람이 홍수 당시에 매우 거셌음을 짐작하게 하며 이는 이 창들을 통한 적절한 공기의 유입을 가늠케 한다.  또한 이 창은 방주 안이 깜깜하지 않도록 실내를 밝게 만들어주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물론 홍수 동안에 날씨가 쾌청하지는 않았겠지만 내부의 밝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은 짐직할 수 있다.


방주는 농구장처럼 단층이 아니라 삼 층으로 지으라고 하셨다.  이는 경제적으로 실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셨음을 보여준다.  방주에 성경에서 말하는 동물들이 모두 탑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많은 과학자들이 그 가능성에 대하여 이미 여러 번 계산을 해왔으나 언제나 타당한 답을 주어왔다.  방주에는 창조주간의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던 모든 동물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특별히 '육지의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창 7:23)'만이 들어가도록 하셨다.  그렇다면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와 양서류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살고 있는 포유류는 3,500종, 조류는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는 5,500종 정도 이다.  이들의 수는 총 17,600 마리이며 한 쌍씩 들어갔을 경우 35,200 마리이다.  그 짐승이 정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두 쌍씩 들어간 것을 고려하면 방주에 탔던 동물들이 총 5만 마리를 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계산이다.  한편 방주의 크기는 기차의 520 화물 칸 정도의 크기인데, 모든 동물들의 평균 크기가 양(羊) 만 하다고 가정할 경우(실제로 양보다 작다) 방주에는 125,280 마리의 양이 들어갈 수 있는 계산이 나온다.  계산상으로도 방주의 크기는 성경에서 언급된 동물들을 태우고 남는다는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실제로 '종류대로'라고 하는 것이 생물을 분류하는 최소의 단위인 '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배가 가능한 기준이라고 한다면 생물 분류의 '속'과 '과'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 그렇다면 그 숫자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수치적으로도 방주는 넉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더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당연히 하나님은 충분한 크기로 방주를 제도하셨을 것이며 ”홍수 동안 먹을 식물을 저장하라고”(6:22)말씀을 보더라도 그 내면에 방주가 동물들을 모두 채우고도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노아홍수에 대한 내용은 실제로 일어났던 내용을 기록한 것이므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더 타당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방주는 아주 정확하고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만약에 모세가 노아홍수를 자신이 지어서 하나의 상징으로 또는 신화로 수록하였다면 방주에 대하여 크기, 내부구조, 창, 재료, 방수처리 등 그렇게 자세히 적을 필요가 있었을까?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예수님) 말을 믿겠느냐?”(요 5:46-7)  창세기를 사실로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실임을 믿는 초석이 된다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20

참고 :

이재만
2005-01-19

노아홍수 (8) - 역청은 어디서?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창 6:14)

앞선 13절에 사람들을 땅과 함께 멸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은 곧바로 노아가족을 구원할 도구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바로 방주이다.  재료는 잣나무이며 내부구조는 농구장처럼 텅 빈 공간이 아니라 간(rooms)들로 막는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방주였다.  그런데 여기서 간혹 질문을 받는 부분이 하나님께서 방주의 안쪽과 바깥쪽을 칠하라고 한 재료, 바로 '역청(pitch)'에 관한 것이다.


역청은 홍수 동안에 방주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방수처리를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질문자들의 의도는 역청은 석유나 석탄에서 추출되는데, 만약에 노아홍수 동안에 석탄과 석유가 형성되었다면 홍수 이전인 노아 때는 방주를 칠할 만큼의 역청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오늘날 역청은 석탄 타르(tar)가 열을 받고 증류된 뒤 남은 검은색의 아교 같은 물질인 아스팔트나 암갈색의 물질로 생각한다.  이들은 열이 가해진 석탄으로부터 대규모로 생산된다.  그러나 석탄 타르가 역청을 위한 유일한 근원물질이 아니다.  지질학 사전을 참고하더라도 거기에는 역청은 '증류되고 열을 받은 나무에서 추출될 수 있다'고 요약되어있다.  실제로 원유나 석탄이 실 생활에 사용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역청이 만드는 지 이미 알고 있었다.


1천년 전에 유럽에서 역청을 만드는 산업이 부흥한 적이 있는데 커다란 선박을 건설하는 산업이 번창할 때였다.  역청을 만드는 것은 숙련이 필요했는데 유럽사람 이름의 성을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직업에 속했었다는 내용을 알 수 있다.  폴란드에서 역청이나 타르란 내용을 뜻하는 단어는 스몰라(smolar)이다.  그런데 폴란드의 전화번호부를 펼쳐보면 Smola, Smolander, Smolen, Smolenski, Smolarz 등과 같은 내용을 쉽게 볼 수 있으며, 그 의미가 바로 '역청을 만드는 사람'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역청이란 단어가 ‘teer’인데 Teer와 Teerman 등의 이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에도 Pitcher, Tarrier 또는 Tarmen 등 역청을 의미하는 이름들이 있다.  이들 모두는 역청을 대량으로 만들어 팔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전 유럽을 통하여 아주 일반적 이름이다.


그러면 석유와 석탄산업이 번창되기 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역청을 만들었는가?  먼저 당시에 울창했던 소나무에서 송진을 추출한다.  그 다음 나무줄기를 끌로 파서 빼쭉한 가시모양을 만들어 송진이 그 홈으로 내려오게 하여 나무 밑에 항아리에 모은다.  송진이 더 이상 흐르지 않으면 그 나무들을 베어 흙이나 재로 덮어 공기를 차단한 채로 천천히 태워져서 가볍고 검은 순수한 탄소의 형태인 숯(charcoal)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미 얻어진 송진에 분말의 숯을 추가하면 커다란 선박의 방수처리를 위한 역청이 만드는 것이다.  이 숯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성질의 역청을 생산할 수 있다.


노아가 이와 똑 같은 방법으로 역청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의 내용은 홍수의 대격변 동안에 만들어진 석탄과 석유 없이 역청을 만들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청(pitch)은 히브리어로 kopher인데 '덮는다'란 뜻을 갖고 있다.  또한 그 의미는 '속죄(atonement)'로 사용되기도 한다.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atonement)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atonement)'(레 17:11).  속죄 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생명을 얻음 같이, 방주를 덮었던 역청이 심판의 홍수가 들어오지 못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01

참고 : 4198|4275|4235|4473|4490|4607|4610|6547|6545|6543|6535|6531|6508|6507|6558|6551|6559|6549|6462|6417|6431|6524|6415|6413|6330|6254|6255|6240|6228|6225|6223|6222|6136|6170|6104|6076|6030|5556|5973|5468|5958|5957|5951|5898|5527|5841|5737|5721|5675|5429|5419|5400|5399|5286|5260|4805|4211|4217|4214|4132|3968|3948|3111|4363|3044|3278|2912|2050|1493|1464|1192|557|2104|512|3032

이재만
2005-01-19

노아홍수 (9) - 엄청난 규모의 방주를 어떻게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창 6:15)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방주의 크기는 1규빗을 45cm로 가정했을 때 길이가 135m, 폭이 22.5m, 높이가 13.5m에 해당한다.  이 크기는 축구경기장의 길이보다는 넓고 폭이 1/3정도가 넘는 크기이다.  물론 규빗이라는 길이가 다소 유동적이라 할지라도 그 규모는 가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 큰 규모를 보아 여덟 명의 가족이 방주를 짓는 일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노아는 방주를 지을 수 있었을까?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에 관하여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한 가정들을 해보고 이것이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가 보자.


하나님은 노아의 때에 죄악 된 문명을 향한 그의 심판이 120년 내에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창 6:3).  방주에 대한 규모를 정확히 언제 알려주셨는지 모르지만(창 6:14-16), 노아가 120년의 충분한 경고기간을 가졌다고 생각하자.  노아의 아들들은 노아가 오백세 때 태어나기 시작했으며(창 5:32) 홍수는 6백세 때 홍수가 일어났으므로(7:6) 아들들은 홍수 백 년 전에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를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도울 수 있었던 사람들도 염두에 둘 수 있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는 방주를 완전히 지었을 때가지 살아있었으며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다.  또한 족보를 기초할 때 노아 아버지 라멕을 비롯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던 경건한 다른 사람들도 남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두는 노아와 그의 아내, 세 아들과 그들의 아내들 여덟 명뿐이므로 가장 최소의 조건만을 고려해 보자.  단지 노아와 그의 세 아들들 만이 돕는 것이 가능했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위의 방주규모를 고려하면 전체 방주의 부피는 약 41,000 입방 미터이다.  방주의 구조는 거의 빈 공간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집들은 95%가 빈 공간이다.  커다란 선박일 경우 공간이 더 적은데 가장 빽빽한 배의 구조를 적용해 방주 부피의 20% 가 목재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목재의 부피는 약 8200 입방 미터가 된다.


방주는 멋이나 속도를 낼 필요도 없었으며 단지 튼튼하게 떠있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마치 단순한 헛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아주 느린 속도를 고려해서 네 명의 경험 있는 사람이 하루에 평균 0.42 입방 미터(길이, 폭, 높이가 각각 75cm인 정육면체 크기)를 만들어 나간다면, 일년에 131 입방 미터씩 지을 수 있다(주일은 쉰다고 가정).  그렇다면 전체 목재 부피인 8200입방 미터를 일년 동안 가능한 양인 131 입방 미터로 나누면 약 63년이 채 안 걸려 방주를 완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장 최소한의 조건을 고려해도 63년이면 충분한 것이다!


의롭고 흠 없는 노아는 성실히 임무를 완수했을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악조건만을 고려했을 경우에도 노아가족만으로 방주를 짓는 기간은 충분하였을 뿐 아니라, 이 단순한 계산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강화될 수 있다.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14

참고 : 720|721|6255|6254|6320|5906|5930|5468|5065|5062|2851|1458|1455|3032


John Woodmorappe
2005-01-18

노아 방주의 비판에 대답하고 있는 책 

(A Resource for Answering the Critics of Noah's Ark)


       노아의 방주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운반했을까? 그리고, 노아는 어떻게 모든 동물들을 방주 안에 모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8명의 사람이 수천 마리의 동물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적은 승무원들이 매일 발생했을 수 톤의 배설물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신선한 유칼립투스(eucalyptus) 잎만 먹는 코알라(koala)가 방주 안에서 1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와 유사한 수많은 질문들이 노아의 방주에 대해 있어왔다. 수세기 동안 회의론자(skeptics)들은 노아의 방주와 전 지구적인 홍수의 진실성에 반대하는 주장들을 해왔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고소해 하고 흡족해 왔다. 최근에 이와 같은 논쟁들은 잦아졌고, 노아 방주에 대한 초기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현대의 반창조론자들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타협해버린 복음주의자들은 이들 반성경적인 주장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구원”을 말하고 있는 홍수를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지역적인 평범한 홍수로 간주해버렸다. 성서의 가르침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려는(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를 포함하여) 많은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이러한 지식인들의 소리와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주장들에 의해 불필요하게 위협을 받았다. 그 결과, 많은 신앙인들은 노아의 방주에 관한 불가능할 것 같은 여러 질문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것에 대한 기적적인 해결책(miraculous solutions)만을 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주를 비판하는 모든 주장들을 살펴볼 때, 그들 주장들에 대한 적어도 어떤 종류의 긴밀한 방법으로의 학술적인 반박들이 확실히 부족했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에 관해 주장되는 어려움 등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를 오늘날에 해 본적이 없다. 최근에 출판되어진 본인의 저서인 '노아의 방주, 그 가능성 연구 (Noah's Ark: A Feasibility Study)” 라는 책은 동물 관리에 대한 수많은 책들과 논문들을 읽고 조사한 7 년 동안의 고통스러운 연구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그 책은 ICR의 명예 회장인 헨리 모리스 박사(Dr. Henry M. Morris)가 서문을 썼고, ICR의 25번째 창립 기념일에 봉헌되었다.


그 책에는 약 1200 여개의 참고문헌들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노아의 방주를 반대하는 모든 주장들은 체계적으로 검토하였고, 그러한 주장들은 모두 지식의 부족에 기인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대부분의 주장들은 처음에는 표면상 그럴 듯해 보였으나, 쉽게 잘못된 것으로 바뀌어졌다.


시작하기에 앞서, 노아의 방주에는 약 5천만 종(species)의 생물체들을 실어야 했을 것이라는 회의론자들의 반복되는 비난을 추방해버리기 위해, 나는 어떤 종류의 생물체들이 방주에 들어갔는지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재검토하였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가야 했는지를 계산해보니, 대략 16,000 마리에 달하였다. 동물들의 크기는 매우 다양함으로, 숫자만으로는 이들의 계산은 별로 유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16,000 마리의 동물들을 몸무게에 의해 나누었다. 그 결과 가장 작은 벌새(hummingbird, 몇 그램 정도)를 포함하는 그룹에서부터 가장 큰 공룡(dinosaur, 성체인 경우 거의 100톤)을 포함하는 그룹까지 8 개의 지수함수적 카테고리(logarithmic categories)로 동물들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작았기 때문에, 방주 안에 있던 중간 크기의 동물은 쥐(rat) 정도의 크기였다. 단지 15% 정도의 동물들만이 양(sheep)의 크기 또는 그보다 더 큰 동물들이었는데, 이들이 많은 먹이를 섭취하고 대부분의 배설물을 만드는 동물들이었다.


동물들에게 필요한 주거 공간을 측정하기 위해서, 해당되는 동물 집단을 위한 실험동물 거주 기준을 적용했다. 또한 몸무게에 의한 분류와 동물의 먹이 섭취량에 대한 정확한 측정을 통해, 동물들이 371일 동안 방주에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먹이(food)와 물(water)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특별히 강조될 것은 대형 포유류 초식동물과 그들이 요구하는 거대한 양의 건초(bulky hay)가 방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방주는 동물들과 그들이 먹을 물과 먹이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지는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의 배설물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대략 12톤의 배설물이 방주 안의 모든 동물에 의해 매일 만들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축산관련 문헌들과 동물들의 대량적인 배설물에 관한 여러 다양한 처리 방법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나는 8명의 사람이 이 많은 배설물들을 쉽게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매일 동물 배설물들을 제거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여러 다양한 폐기물 관리 방법의 가능성들을 평가하였고, 폐기하지 않고 방주 내에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평가하였다. 이 방법들은 모두 실용적이었고, 실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었으며, 오늘날에 축산 폐기물의 처리 방법에 의해서 실증되고 있었다.


8명의 사람이 그렇게 많은 동물들을 돌보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는 많은 주장들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상황 하에서 주어진 수의 동물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시간과 이에 근거한 실제적인 사람의 노동력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였다. 노동력을 절약할 수 있는 간단한 도구(농촌에서 사용하는 연장들)들을 사용해서, 일주일에 6일, 하루 10시간을 일할 때 8명의 사람이 16,000 마리의 동물들을 보살피는 것이 가능함을 밝혀내었다.


포획된 야생 동물들을 키우는데 가장 어려운 면 중의 하나는 각종 동물들이 요구하는 먹이를 제공하는 것이다. 놀랍지 않게도, 방주를 비판하는 주장들의 중심에는 노아가 이런 먹이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었다. 이러한 동물들에는 육식동물들을 포함하여, 살아있는 것을 먹는 동물, 부패하기 쉬운 먹이를 먹는 동물 등과 같은 특별한 식사를 하는 동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먼저 커다란 육식동물(예를 들면 사자)들에 대해 조사하였는데, 사료(말린 고기들을 섞은)를 공급함으로서 그들에게 고기(meat)를 공급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실증하였다. 그리고 곤충을 먹는 박쥐와 (부드러운 부리를 가진) 새와 같이 오직 살아있는 음식만을 먹는 동물들에 대해 조사하였는데, 그들은 방주 안에서 먹이가 될 곤충들을 배양함 없이도 유지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매우 특별한 먹이만을 먹는 동물들을 연구했다. 노아는 방주에서 코알라를 위해 유칼립투스(Eucalyptus) 나뭇잎을 경작할 필요가 없었으며, 팬더를 위해 대나무를 키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나는 또한 흡혈 박쥐(vampire bats), 코브라 뱀(king cobras), 특수한 잎만 먹는 영장류들, 세 발가락 나무늘보(three-toed sloths)가 어떻게 방주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방주 안에서 동물들의 동면(hibernation)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다른 동물들이 다양한 상황 하에서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이 요소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을 표로 만들어 놓은 포괄적인 자료는 없었다. 동물들은 어떤 형태의 휴면 상태(dormancy)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전통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실제로 많은 동물들이 방주의 환경 속에서도 휴면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실증하였다. 그러나 동물들의 장기간에 걸친 휴면상태는 사실 필요하지 않았다.


동물들을 돌보는 데에 필요한 다른 많은 측면들이 조사되었다. 거기에는 방주에 산소를 공급하는(환기) 문제, 야생동물을 다루는 행동적 문제, 밀집(군집)으로 인한 문제, 운동의 필요성, 목욕 시설의 설비, 우리 안에서의 동물들의 생존, 그리고 다른 많은 주장된 문제들이 조사되었다. 각각의 경우에서, 합리적이고 일반적으로 간단한 해결책들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충분함을 발견하였다.


또한 반창조론자들에 의해서 오늘도 반복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진부한 주장이 있다. 그것은 다른 기후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방주 안에서 모두 성공적으로 생존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아직도 추운 극지방의 동물이 방주로 가는 도중에 뜨거운 열기로 고통을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하거나, 따뜻한 홍수 이전의 세계에서 그들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들의 기후 적응성에 대한 실제적인 연구를 통해, 나는 극지방에서 사는 동물들과 열대 지역에서 사는 동물들이 홍수 이전의 온난한 기후에서도 쉽게 공존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비록 이 연구가 노아의 방주 안에 있던 동물들에 관한 것이었지만, 나는 또한 방주에 있지 않았던 생물체들의 운명에 관해서도 조사했다. 예를 들어 해변이 없는 바다에서 담수물과 소금물의 안정적인 층이 없었다 하더라도,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양서류도 마찬가지로) 홍수 동안에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노아 방주의 신빙성에 대한 공격은 노아 홍수 기간에서만 국한 되지 않고, 홍수 직후의 기간에 대해서도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판가들은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를 잡아먹었을 것이라는 등과 같은 근거가 없는 여러 주장들을 한다. 그러한 주장들의 불합리성은 홍수 이후 표면상으로 황폐한 세계 속에서도 먹이가 될 수 있는 많은 통상적이지 않은 근원(sources)들이 있었음을 확인함을 통해서 드러난다. 평소에 먹던 먹이의 획득이 불가능해질 때, 동물들은 통상적이던 먹이의 근원을 바꾸는 것을 오늘날의 몇몇 동물들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책 속의 식물들에 관한 단원에서는, 홍수 동안 식물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반창조론자들의 비논리적인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토양에 소금기가 많았기 때문에 어떠한 씨앗도 싹트지 못했으며, 씨앗들은 홍수 물 속에서 조숙하게 발아되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을 반박한 후에, 나는 씨앗의 발아에 집중하였고, 식물들이 홍수 동안 씨앗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몇 가지 방법들과 물에 흠뻑 젖은 씨앗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기술하여 놓은 많은 문헌들을 검토하였다. 


또한 전 지구적인 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방주로부터 나온 단 한 쌍의 동물들은 그들의 개체집단을 번성시켰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오늘날 관찰되는 많은 다양한 종들로 분화되어지고 생존하기 위한 충분한 유전적 다양성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최근 보존생물학(conservation biology)의 연구들은 작은 수의 시조(founders)들이 모집단의 잠재적 유전인자들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최초의 소수 집단에서의 근친교배(inbreeding)는 어떠한 문제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지 소수의 동물들로부터 유래되어 많은 개체수로 늘어난 몇몇 동물들의 예들이 인용되었으며, 이것은 어떻게 소수의 개체들에서 분화가 일어나 심지어 놀랍도록 짧은 기간 안에 새로운 종들이 나타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창조론자들은 이전부터, 홍수 이후 많은 새로운 종(species)들이 쉽게 나타날 수 있었음으로 육상에 있었던 모든 종들이 방주에 탈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왔다. 반창조론자들은 새로운 종들이 단지 5,000년 동안에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여 왔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제안은 진화론자들 보다 더 진화론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여 왔다. 종의 분화(speciation)는 생물체의 진화를 지지한다는 유언비어를 내쫓은 뒤에, 나는 새로운 종들은 단지 몇 세기만에, 심지어 몇 십년 만에도 발생되었음을 보여주는 예들을 제시하였다.


사람의 면역시스템(human immune system, the MHC complex)는 많은 유전적 변형체(genetic variants)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반창조론자들은 8 명의 인류 기원자들로부터 오늘날 관측되는 여러 인간 종들의 충분한 다양성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증거로서 이것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변형체들이 단지 몇 천년 전에 시작된 최근의 인류 집단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할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에 관한 연구는 (이것은 ‘아프리카 이브’ 가설을 낳았다) 어떻게 ‘분자의 시계(molecular clock)‘가 매우 가속화될 수 있었는 지와, 따라서 성경적 시간 틀과 그것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었다.


총체적으로, 새로운 책 '노아의 방주, 그 가능성 연구 (Noah's Ark : A Feasibility Study)”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과학자들이나 평신도들의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전 지구적인 홍수와 노아의 방주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이 완전히 합리적(reasonable)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신앙인들은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에 전적인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 Mr. Woodmorappe holds M.S. degrees in biology and geology and maintains active research in these fields.



* 참조 :  한국창조과학회/게시판/자주하는 질문(FAQ)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bbs/faq.asp


(FAQ 중에서 노아의 홍수와 방주 부분에 대한 많은 대답들은 '노아의 방주, 그 가능성 연구 (Noah's Ark : A Feasibility Study)”를 참조 하였으며, '궁금해? 궁금해!”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동영상. 익스트림미스터리. 24:34)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ateid=24&clipid=23924419


Were Insects on the Ark? (Answers, 2016. 5. 6)
https://answersingenesis.org/noahs-ark/were-insects-on-the-ark/



번역 - 한동대학교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273.htm ,

출처 - ICR, Impact No. 273, March 199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09

참고 : 1458|1455|5062|5065|5468|5906|5930|6254|6255

Renton Maclachlan
2004-10-19

하나님을 신뢰했던 사람 노아

(Noah - the man who trusted God)


     근거 있는 상상력을 가지고 재구성한 노아 홍수 이야기는 그 날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매일 겁을 먹고 있었다. 매일의 날들은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어제는 늙은 노인이 길에서 강도를 당하여 죽었다. 지난 달에는 마을 전체가 폭력 조직에 의해 파괴되었다. 만약 사태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하나님이 오래 전 노아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행동으로 옮기시게 될 것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안전했다. 그의 세 아들은 착한 아가씨들과 결혼했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가족 사업을 하는 것이 좋았다. 해를 거듭하면서 가족 공동체의 안전은 '강화' 되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급속도로 그들의 생각에서 하나님을 지워버렸는가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나님에 의해 최초의 인간이 완벽한 상태로 창조된 지 겨우 1,600여년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거역했고, 그의 자식들과 자손들 또한 정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지금 주변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고, 모두들 끔찍한 여러 방법들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러한 죄악을 영원히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지 벌써 한참이 지났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말씀하시지 않으신 채, 그 한계를 120년으로 정하셨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무언가 큰 일을 마음먹고 계셨지만, 이제 그것이 무엇이든 훨씬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노아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과, 그를 경배하고 신뢰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아는 정확히 그렇게 행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모든 사업을 정직하고 믿음직스럽게 행했으며, 그의 사업은 번창하여 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다 주었다. 그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그의 아내에게 성실했다. 또한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악함을 억제해왔다. 이 모든 것들은 그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더 적어졌고, 사실 지금 노아의 가족 이외에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정말로 그의 뜻을 드러내실 시간이 왔다고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1] 하나님은 노아에게 실제로 여러 개의 갑판으로 된 운반선과 같은 아주 거대한 배를 지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때까지 건조된 그 어떤 배보다도 훨씬 큰 것이었다. 하나님은 전 지구적인 홍수를 일으켜 모든 인간들과 땅에서 사는 모든 동물들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노아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하나님이 모든 종류의 육축들을 노아에게 보내실 것이며[2], 이들은 홍수 이후의 신세계에 재분포될 것이었다. 


노아의 건축 회사는 그 기간에 몇몇 큰 건축물들을 만들었지만, 이러한 것은 만든 적은 없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치수들에 의해 계획이 세워졌고, 재료들이 구매되었다. 이웃 전체가, 사실 온 나라가 이것에 대해 듣게 되었다. ”노아의 어리석음”, 그들은 이렇게 불렀다. 하지만 이것은 그 지역에 실업자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행복했다. 노아는 좋은 상사였고, 그들은 그들의 삶에 무엇인가 주어지는 한, 늙은 노아가 그의 재산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나고, 다시 몇 년이 지나 그 배가 건조되었다. 노아가 주장했던 나무 송진을 사용한 방수시스템과 같은 신기술이 개발되었다.[3] 하지만 노아는 제정신이 아니어야 했다! 그는 그 배를 강 근처나 바다 근처에서 만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배를 진수시킬 승강대도 없었고 물도 없었다. 이것은 그냥 시골에 처박혀 있는, 그리고 주변에 비계 구조들, 작업장들이 산재해 있는, 그리고 기중기들을 가진 몇 천톤 무게의 거대한 구조물일 뿐이었다.  


노아는 물이 다가오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배가 물 가에 놓여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겠는가? 사람들에 의해서 말해보라고 강요당했을 때, 그는 언제, 어디서부터 그 물이 오게 될 것인지 말하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이제 마무리될 시점이 거의 가까워졌다. 몇 천 개의 동물 우리와 케이지들이 배 안으로 이동되었다. 하청업체들과 목재소들은 초과로 일했고, 설비 공급업자들은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미친 늙은이 노아”는 연구원들을 고용하여 사료의 저장, 식품요구량, 식량생산기술 등에 대해 연구하도록 하였다. 농부들 역시 곡물과 다른 농산물들의 비축량을 생산하기 위해 매우 분주했다. 식량을 건조하고 저장하는 방식이 연구되고 개선되었다. 그 거대한 배의 건축이 완성되어갈 때, 운송업체들은 산더미 같은 식량들을 배 안으로 운반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배 위로 들어올려져 특수한 음식 저장고에 저장되었다. 사료 운반대, 음수 배관 및 통로, 분뇨처리 시설 등이 함께 설치되었다.


만약 그가 미쳤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노아에 대해서 말해야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그는 정말로 엄청난 일을 했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난 후, 어떤 일을 해야할 지를 걱정했다. 노아는 줄곧 만약 물이 다가 왔을 때 배에 타고 있지 않는다면 당신은 죽을 것이므로, 실직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모든 식량을 다 싣고 나자, 노아는 모든 기중기들, 비계들, 헛간과 저장고들을 모두 내리고 치워버렸다. 그는 물이 다가와 배가 그 놓인 장소로부터 나아갈 때, 어떤 구조물도 그 배를 상하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 여정의 처음 몇 분 만에 배에 구멍이 난다면 앞날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노아는 이제 칠 일이 남았다고 공포했다. 만약 어느 누구라도 다가올 대 참사에서 살아나기 위해 노아의 가족들과 동행하기를 원했다면, 그들은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노아의 친구들 중 몇몇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완전히 설득되지 않았고, 노아와 같이 바보처럼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는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고 좋은 친구였다. 하나님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 하긴 했지만, 그는 정직하고, 사려 깊고, 그를 필요로 할 때면 언제나 도와주었다. 일주일이 남았고 배에 있는 어떤 우리에도 동물들은 없었다! 그는 바보임에 틀림없었다.


동물들이 도착하기 시작했을 때 몇몇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그 시골지역은 움직이는 동물원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지금까지 결코 볼 수 없었던 많은 종류들의 동물들과 새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그것은 마치 그들 모두가 노아의 배에 나침반을 맞추어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매일 매일 쏟아져 들어왔다. 이것은 약간 겁이 나기까지 했다. 무리 지은 동물은 없었다. 종종 각 종류의 일곱 마리씩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단지 암수 두 마리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젊어서  한 두 살 정도였고, 그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공룡 브라키오사우르스도 말 정도의 크기였다. 


삼일 후, 사육제 분위기는 무르익어갔고, 도로에는 즉석 음식 노점들과 거리의 악사들이 몇 천명의 구경꾼들에게 음식을 공급하고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날이 되자, 늙은이 노아를 정말로 비웃어주기 위해 온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지난 주는 모든 동물들의 도착으로 인해 분주했던 것에 비하여, 이 날은 확실히 이상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단 하나의 동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노아는 마치 연설을 하려는 것처럼 그 거대한 문 옆에 나타났다. ”내일 봐요 노아” 누군가가 소리쳤다. 모든 이들이 깔깔대고 웃으며 조롱했다. 이것이 잠잠해졌을 때, 노아가 말했다.


”저의 이 과업을 수행하도록 도와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여러분들께 왜 이 배가 지어져야만 하는 지에 대해 말씀 드렸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시고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시지만, 이제 그 분의 참을성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것과 당신들의 이기적인 방법들에서 돌아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날이 올 때 나와 함께 하기를 촉구했었습니다.”


”친지분들,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이여, 이제 그날이 왔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다면, 이제라도 나와 내 가족들에게로 오셔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유감스럽지만 저는 여러분들과 작별인사를 해야만 합니다. 당신들은 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군중들한테로 걸어와서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그는 그의 형제  자매들과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했다. 그들은 역시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조부인 므두셀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는 노아가 배를 건조하는 것을 크게 격려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나이 969세 였던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므두셀라)의 이름은 ”그가 죽을 때 그 날이 올 것이다” 라는 의미였는데, 그 이름의 뜻이 이제 이루어지게 되었다. 


노아가 그 열려진 문을 통하여 들어갈 때, 배의 설계 기술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어떻게 그 문을 들어서 닫을 것이요? 당신에게 그 문이 들려졌을 때 사용할 빗장과 자물쇠가 있소만, 어떻게 당신이 그것을 닫겠소?”  ”맞아요, 어떻게 그 문을 닫을 거죠, 노아? 어떻게 그 문을 닫을 거냐구요?”  군중들은 의기양양한 가운데 한 목소리로 더욱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때 군중들 위로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을 때 군중들은 잠잠해졌다. 바닥에 놓였던 그 거대한 문의 끝이 소리를 내며 그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매달린 채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죽음같이 적막함이 뒤따른 채, 그들은 멀리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빗장과 손잡이를 조절하는 소리를 들었다.


”휴, 저건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군” 누군가 말했다. ”겁나는데”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생기지 않자, 축제 분위기와 야유하는 분위기로 돌아왔다. ”아침에 보자구요, 노아!”


이게 뭐지? 땅이 움직였나? 다시 그것이 있었다. 온화하지만 틀림없는 움직임이 발아래에서 있었다.  갑자기 대혼란이 야기되었다! 땅이 흔들리고 기울어졌고, 사람들이 그들의 발 아래로 던져졌다. 거대한 갈라짐이 그 지역을 타고 건너갔다. 물이 땅으로부터 마치 거대한 분수들처럼 솟아올랐고, 멀리 언덕들에서는 불과 수증기가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땅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군중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기술자들 중 한 사람은 그 배가 필요한 것보다 몇 십 배는 더 튼튼하게 지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노아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거대한 물 벽이 덮쳐와 그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쓸어버렸을 때 함께 잠겨버렸다. 이제 하늘은 어두컴컴해졌고, 엄청난 폭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밀려드는 물에 의해 점점 깊어지면서 노아의 배는 떠올랐다. 


거의 6주가 지나서야, 끝없이 이어지던 비의 소음이 그쳤다. 4개월 후, 그들은 운행하던 배가 바닥에 부딪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육지를 보지 못한 채 다섯 달 동안 세상을 표류했던 것의 끝이 결국 오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마치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처럼 보이는 지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일곱 달을 기다린 후에야 물 밑에서 대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4, 그 흔들림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사악한 세상을 파괴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났다.


그 문이 닫힌지 일 년이 더 지나, 삼백 칠십 일 후, 그들은 그것을 열고 동물들과 함께 배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에 있었다. 곤충들의 날개소리가 공기 중에 가득했다. 이따금씩 진흙 속의 죽은 동물의 뼈 주변을 따라 여기저기 식물들이 싹을 내고 있었다. 많은 언덕들이 이미 식물들로 덮여져 있었다. 몇몇 급성장하는 식물 종들은 벌써 상당히 커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체들이 이미 굳어져서 그들 발밑, 모래와 진흙의 수 킬로미터 깊이에 걸쳐 매몰되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그 방주를 타고 있던 사람들 외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2] 


비록 아무도 그러한 홍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노아는 홍수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다. 노아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방주를 건조했고, 그렇게 함으로서 그와 그의 가족은 멸망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우리 후손들 모두는 여기에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회의론자들까지도)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그리고 야벳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대홍수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생각하시는 바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같이 우리도 피난처가 필요하다. 노아가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처럼, 당신도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다면, 당신은 그 분께 순종치 않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 Renton Maclachlan은 이십 년 동안 창조과학을 위해 힘써왔다. 그는 Merilyn 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그들의 세 딸들을 집(home school)에서 교육시켰다. 그는 오랫동안 Inter-School Christian Fellowship 여름캠프를 지휘했고, 비신앙인들의 생각에 공개적으로 도전을 주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창세기 6:7 과 7:13-21 에서 하나님은 홍수에 대해 언급하셨다. 와이즈맨(P. J. Wiseman)이 처음으로 제안한 창세기의 구조와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와 다른 이들이 언급한 것에 따르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두 예시는 두 개의 다른 문서에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문서는 노아의 것이라고 여겨지며 창세기 5:1b-6:8에 기록되어있다. 두 번째는 (6:9-10:1a) '노아의 아들들' 의 것으로 추정된다. 첫 번째 것은 홍수나 방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120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내심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과 연결 된다. 나는 이것이 인간의 수명에 대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심판까지 남은 시간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셈이나 함, 야벳 중 누구도 하나님과 이 대화를 했던 시기에는 태어나지 않았었으며, 그들은 창세기 5:32에 기록되었듯이 노아가 500살이었을 때 태어났다. 홍수와 방주에 대한 자세한 사항들은 다음 문서에 잘 나와 있으며, 이는 분명히 그 아들들이 결혼한 이후였다 (6:18). (참조 :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2. 성경은 오로지 코로 숨쉬는 육상동물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 7:22). 그래서 이것은 분명 척추동물 만을 포함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방주 밖의 떠다니는 매트를 이룬 식물들, 나무들, 부유석 등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곤충이나 벌레 같은 것들은 방주에 타지 않았다.

3. 창세기 6:14 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역청(pitch, 히브리어로 Kaphar)' 이라고 번역된 것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스팔트 역청(bituminous pitch)은 홍수에 의해 매장된 유기물들(주로 식물들)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몇 세기 동안 사람들은 숯과 함께 나무의 송진(resin)을 끓여 선박용 방수 재료인 '역청'을 만들어왔었다. (참조 : Walker, T., The Pitch for Noah's Ark, Creation 7(1):20, 1984).

4. 다시는 물이 이 세상을 덮게 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해서, 시편 104:8은 홍수 이후에 산들이 융기하고 물들이 빠지면서 해양 분지들이 깊어지는 거대한 지각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참조 : Taylor, C.V., Did mountains really rise according to Psalm 104:8? CEN Technical Journal 12(3):312-313, 1998)



* 참조 : 한국창조과학회/자료실/노아의 홍수/노아의 방주에 있는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C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1/i2/noah.asp 

출처 - Creation 21(2):44–47, March 199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67

참고 : 5675|5717|5721|5737|5841|5897|5958|5957|5973|6030|6076|6097|6104|6123|6130|6170|6175|6215|6222|6223|6225|6228|6255|6254|6311|6316|6330|6422|6413|6415|6417|6431|6453|6462|6469|6507|6508|6523|4198|4275|4235|4473|4490|4607|4610|6049|6006|4195|2141|5955|5951|5834|5556|5517|5468|5429|5419|5400|5399|5286|5307|5264|5260|5185|4786|4722|4471|4468

Headlines
2004-10-07

내쇼날 지오그래피 지의 노아 방주 탐사에 대한 보도 

(National Geographic Call Noah's Ark Search a Stun)


       내쇼날 지오그래피 뉴스(National Geographic News)는 맥기번(McGivern) 팀이 노아 홍수의 사실성과 방주에 대한 모든 의문들을 풀기 위해 아라랏 산을 탐사하려던 계획(04/26/2004 을 보라)이 터키 정부로부터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그들은 탐사팀과 안내인의 특성과 동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노아 방주의 탐사를 ‘변두리 고고학(fringe archaeology)’ 이라고 불렀던 한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기사에서는 거짓인 것으로 밝혀진 이전의 주장들을 반복하면서, 우주에서 인공구조물의 감지 능력을 의심하고 있었으며, 성경에 기록된 전 세계적인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폄하하였다 (목적에 맞는 흑해 홍수만 제외하고, 08/22/2003 and 04/21/2001 headlines을 보라).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4,570m 고도의 산에 배(ship)가 착륙되어 있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라고 기사의 저자인 스테판(Stefan Lovgren)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구체적인 사실들이 확보되기 이전에 어떤 발견이 미리 발표되었을 때, 입게 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한 예이다. 맥기번이 가지고 있던 위성 사진은 분명치 않았다. 그의 가이드가 성실한 사람인지 아닌지, 산 위의 배로 그들을 정말로 인도할 수 있는지 확실한 상태가 아니었다. 증거의 부족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가설이고 제안이다. 언론에 팡파르를 울린 후, 약속된 증거가 도착하지 않았을 때, 반대자들은 기고만장해질 수 있다. 이러한 실패는 미래에 다시 산을 탐사하는 데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터키 정부가 그의 탐사 요구를 허락하지 않고 거절한 것은 맥기번 만의 과오가 아니다. 앞으로의 모든 탐사자들은 이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늙고 사악한 왕 아합이 그의 적들에게 경고한 말 속에서 지혜를 찾아볼 수 있다.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라 하라” (열왕기상 20:11). 다음 번에는, 손에 확실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발표를 멀리하라. 그것이 당신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내쇼날 지오그래피 지도 마찬가지이다. 노아 방주의 탐사에 대한 뉴스, 사진, 자료들은 NoahsArkSearch.com 을 보라.



*참조 : 1. 노아의 방주 탐사 계획 (2004년)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76

2. 관련 소식 자료

      http://www.lepauo.org/bible/index.php?mode=f2&mode2=A13&id=1318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1004.htm 

출처 - CEH, 2004. 9. 2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42

참고 :

Henry M. Morris
2004-07-26

노아(NOAH)의 방주


방주의 목적 

대홍수에 대한 성서적 기록은 전세계적인 대격변으로서 그것을 묘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대홍수의 목적과 결과는 다음과 같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6:7)

육상 동물에 관한한 홍수에 의한 파괴는 전세계적이었다.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세기7 :22)

그러나 홍수 이후 지상에 재 거주할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각종 동물 두 쌍을 보존하도록 하나님께서 방주 짓기를 명령하셨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세기 6:14~16)

방주의 크기 

방주는 본래 수면에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홍수의 물 가운데서 안정하도록 설계된 매우 커다란 상자였다. (히브리어 자체가 이것을 의미한다). 대략 한 규빗은 1.5 ft (피이트) 이므로 방주의 규모는 45 ft × 75 ft × 450 ft 이었다. 그림 1은 150 대 1의 비율로 축소한 방주의 그림을 나타낸다. 방주는 보통의 3 층 빌딩보다도 높고 축구 경기장의 1.5 배 가량 되는 매우 큰 규모였다. 그 총 부피는 450 × 45 × 75 ft = 1,518,750 입방피트, 즉 56,250 입방야드였다. 가축운반 표준화차의 용량은 2,670 입방피이트이므로 방주는 가축운반 표준화차 569 개와 맞먹는 용량을 지녔다. 이것은 엄청난 수의 동물들을 운반할 수 있었으며, 전 세계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음이 명백하다.

 

방주의 안정성 

대홍수로 인하여 야기된 수력학적, 기체역학적 힘안에서 방주는 온 일년동안을 물위에 떠다닐 수 있어야만 하였다. 방주 건조에 사용된 잣나무는 의심의 여지없이 매우 강하며 내구성이 있었다.

중간 갑판의 선상(船床)뿐 아니라 뱃전과 배밑바닥을 이루는 재질(材質)도 아마 세상에서 1600 년 이상 자라온 나무들로 깎아 만들었을 것이다. 역청(櫪靑; 히브리어 'Kaphar' 는 단순히 '덮는다' 는 뜻으로 영적으로는 ”죄를 용서한다”는 뜻. 즉 ”하나님 앞에서 죄가 덮여진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편집자 주)은 과거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나, 확실히 아주 우수한 방수(防水) 재료였다.

떠다닐 뿐만 아니라, 방주는 방주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큰 파도와 비바람의 충격에도 전복되지 않아야만 한다. 성경은 홍수시 물이 불어 적어도 가장 높은 산들의 위로 15 규빗에 이르렀다고 기록하여 (창세기7:20), 방주가 물의 흐름에 따라 어느 곳으로든지 자유로이 떠다녔음을 지적한다. 방주의 높이는 30 규빗이었으므로, 아마도 이것은 짐을 실은 방주의 흘수(吃水 : 물에 잠긴 배의 아래 부분의 깊이 -편집자 주)가 15 규빗 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방주가 이러한 깊이로 떠다녔을 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라 방주의 무게는 배제(排除)된 물의 무게와 동일한 부력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방주의 중량 W는 W = 450 × 75 × 45/2 (W) 이다.

여기서 (W)는 물의 입방피이트 당의 무게를 나타낸다 

순수한 물은 입방피이트 당 62.4파운드의 무게를 지니며 바닷물은 64파운드이다. 물 속에 존재하는 무기물과 침전물들에 의하여 그 당시의 물의 밀도는 적어도 바닷물의 그것과 흡사했을 것이므로, 이 경우에 방주의 무게는 48,600,000 파운드로 계산될 것이다. 이 수치는 실제의 목적에 거의 가까운 숫자이다.

이때 방주의 평균 단위중량은 입방피이트 당 물의 절반 즉 32파운드이다. 방주와 방주 내의 사람과 동물 등을 포함한 전체 방주의 무게 중심은 아마도 동물들과 다른 방주 내의 포함 성분들이 그 구조 안에서 다소 균일하고도 대칭적으로 분산된 구조였을 것이므로, 방주의 기하학적 중심과 거의 근사하였을 것이다.

 

안정성에 대한 2 가지 실험 

설계된 방주는 특별히 안정한 구조였을 것이다. 폭 50규빗에 15규빗의 흘수(吃水)를 갖는 30규빗의 방주 높이를 지닌 단면도의 경우 전복이 거의 불가능하며, 심지어 큰 파도와 격심한 비바람의 중심에서도 안정할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림2 에서처럼 물의 표면과 방주의 지붕이 실제로 닿게 되는 각을 이루도록 기울어졌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는 대략 31도의 각을 이루는데, 즉 각의 탄젠트(tangent)는 30/50이다. 방주의 무게는 불변하므로, 방주의 단면도의 절반에 해당하는 물의 양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따라서 물의 표면은 대각선과 일치한다. 부력 B는 방주의 무게 W와 동일하다.

그러나 두 힘은 동일한 선상에서 작용하지를 않는다. 무게 W는 방주의 단면 중앙에서 아래로 수직방향으로 작용한다. 

힘 B는 삼각형 LQN의 도심(圖心; centroid)을 따라 수직방향으로 작용하므로, 이 힘이 물 속에 잠긴 체적의 무게 중심에 위치하여 방주를 제자리로 돌려놓게 되는 것이다. 방향은 반대이나 힘의 크기가 동일한 힘 W와 B가 두 힘 사이의 간격에 의하여 짝힘(couple)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작용선 B는 방주의 잠수면에 대해서 W의 위쪽에 위치하는 한, 방주를 올바른 위치로 복원하도록 작용할 것이며, 이 짝힘을 복원'우력'(復元 '偶力': righting couple)이라고 한다. 짝힘의 크기는 별로 특별한 흥미를 주지 않으나, 경심(傾心: metacenter) M의 위치는 중요하다. M이 배의 대칭축에 있는 G점보다 위에 위치하는 한 배는 안정하다.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계산할 때 점 M은 대칭축 상의 점 G보다 8.9규빗 위에 있다.

(그림상의 치수로부터 계산할 때 : 25/3 /tan31 - 5 = 125/9 - 5 = 80/9 Cu).

이것은 도심보다 거의 13.5 ft 위에 해당하며, 이렇게 큰 경사각 아래서도 방주는 극히 안정하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이때 짝힘은 

8.9 (sin 31) (W) = (25/3 -5)/tan31 × 0.515 × (48,600,000) ≒ 222,000,000 ft-Ibs 이다.

실제로 G와 M사이의 거리 즉 경심고(傾心高 : metacentric height)는 훨씬 각이 큰 단면도에서도 안정하다. 예를 들어 그림 3 에서처럼 60도 기울어진 배를 가정해보자. 잠수면의 도심(圖心)이 분명 작용선 G의 오른편에 있으므로 복원우력(復元偶力)이 있으며, 경심고(傾心高) GM 은 안전하다. 

사실 방주는 M과 G가 일치하기 전에 완전히 수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즉 방주는 스스로 복원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방주의 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큰 길이(폭의 6 배)는 전 길이를 통하여 같은 크기로 부딪혀오는 파도의 힘으로부터 견디도록 유지해주는데, 이것은 파도면이 일련의 길게 형성된 물마루라기 보다는 부서지거나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특히 대홍수와 같이 혼란된 수력학적 현상을 수반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사실인 것이다. 어쩌면 생길지도 모르는 소용돌이에 대해서도 폭보다 상대적으로 긴 길이는 이것에 저항하며 소멸시킬 것이다. 

사실 방주는 그 긴 축으로 인하여 파도와 유수(流水)의 세력 방향과 평행을 유지하며, 이러한 방향에 의하여 수력학적 힘과 흐름에 따른 잔상에 의하여 정렬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방주는 반유선형 몸체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면에서 볼 때, 설계된 방주는 매우 안정하였으며, 일년에 걸친 대홍수의 폭우 속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그 목적에 알맞도록 제조되었던 것이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geology/g3/g3/g3c1.htm ,

출처 - 창조지 제 34호 [1986. 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6

참고 : 720|721|6255|6254|6320|5906|5930|5468|5065|5062|2851|1458|1455|3032

김희택, 박진호
2004-07-26

노아 대홍수의 증거물인 방주는 존재하는가?


답: 성경의 많은 기록이 역사적인 사실로 확인된 것과 마찬가지로 아라랏산에 방주가 안착되었다는 기록은 단순한 우화나 에피소드가 아니며, 방주는 지금까지도 실존(實存)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지면을 할애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대홍수』와 이 홍수 재난에도 불구하고 수천년 동안 계속 전승되었던 방주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인류의 전설 가운데서도 가장 끈질긴 것일 것이다. 비록 이것이 전설이라도 말이다. 성경 창세기에는 이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가 무려 5장을 차지하고 있다. 천지창조,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에덴의 동산, 가인과 아벨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전부 합해도 불과 4장 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방주」가 『아라랏산』의 산상에 표착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은 기독교 세계에서는 2천년 가깝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며, 그 보다 몇 세기 이전부터 헤브라이, 아르메니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등을 포함한 여타 상이한 문화지역에서조차도 인정되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경전인 『코란』에서「방주」에 관한 전설이 사실로 인정된 지도 이슬람교가 7세기 중엽에 창건된 이래로 거의 1400(AD 7C~20C)년이나 된다.

이럴 정도까지 깊이 믿을 수 있게 된다면, 현대의 탐험가가 지난 120년 동안 아라랏산에 거대한 배가 지금도 남아 있는가를 확인하려한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들에 있어서 힘이 되는 것은 그 산에 올라가 「방주」를 보고 만졌으며 내부에 들어가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체험담과, 또 아라랏 산정 부근을 비행 중에 그것을 보았다는 파이롯들의 보고들이다. 1972년 미국의 '지구자원 인공위성'(ERTS)이 포착한 사진이나, 정찰기인 U-2기에 촬영되었다고 하는 사진도 있어, 방주가 산상에 존재할 가능성을 가일층 높여주고 있다. 

아라랏산의 「방주」가 있다는 끈질긴 신앙은 비단 종교그룹 뿐만 아니라, 선사문화(先史文化) 연구자들이나 고고학자, 그리고 최근에는 지질학자 가운데에도 있기 때문에, 그 실존을 에워싼 문제는 기존의 고고학계(考古學界)에서도 문제시되었다.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의 레이니 관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라도 있을 수 있지만, 혹시 고고학상 있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것이 그것이다."


그러면 고대의 배가 썩거나 자연재해에 의해 파손되지 않고 수천 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보존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는, 방주의 재질(才質)이다. 방주의 건조에 사용했던 나무는 영어표기로 'Gopher'라는 나무였다. 오늘날 고퍼라는 나무가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단지 학자들은 '고퍼'를 삼목(杉木) 즉 참나무로 추측한다. 이 나무는 건축에서 가로 들보용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중국의 明, 淸나라에서는 정크선과 같은 목조선을 건조할 때 사용되었었다. 참나무는 방수성(防水性)이 아주 강하면서 자연적인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그리고 단단하고, 바탕이 치밀하며, 농도가 높은 목재이기 때문에 방주 건조용 재료로는 아주 안성 마춤인 것이다. 노아가 이처럼 바탕이 질기고 밀도가 높으며 내구성(耐久性)이 아주 강한 참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수천 년이 지나도 방주는 별다른 이상 없이 아라랏 산상에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배를 건조할 때 방수제로 사용했던 역청(또는 피치: pitch)에 있다. 역청은 역청암이라는 검거나 푸른빛의 광택이 나는 화산암(火山岩)에서 나오는 광물성 기름의 찌꺼기로, 고대에는 주로 물과 습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성벽 축조시 벽돌과 벽돌 또는 매듭의 틈바구니를 메우기 위해 사용했다. 이러한 역청은 사해(死海)에서 페르시아만옆 아랍지역의 원유 산유국까지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는데, 배의 방수용으로 가장 이상적인 역청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또 로마제국 시대에도 커다란 역청의 덩어리가 사해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이라크의 바그다드市에서 불과 15Km 떨어진 지점에서 많은 양의 역청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노아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그 어느 평원에서 방주를 건조했으리라 짐작된다.

中東지방에서 우리나라까지 유조선으로 원유를 운반하면, 연안에 위치한 정유공장의 증류탑에서 원유를 증류시키게 되는데, 비점 범위에 따라 제일 먼저 가솔린이 나오고, 다음에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 그리고 맨 아래에 찌끼유가 남는데, 보통 우리나라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깔 때 도로에 쏟아 붓는 피치라는 물질로 역청에 해당된다.

이렇게 오늘날에는 자동차 타이어 마찰의 완충제 역할을 하는 역청이 고대 성벽의 돌구조의 틈새를 메워주거나 목조선을 건조하는데 방수제 역할을 주로 담당했던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건조할 때, 방주의 내부, 외부에 골고루 발랐던 피치는 후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안착하고 나서부터는 썩는 것을 최대한 억제시켜주는 방부제(防腐劑) 기능도 발휘했을 것이다. 

셋째, 방주 보존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요소로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지점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방주를 보호한 아라랏산의 추운 기후와 만년설(萬年雪)이다. 이렇게 방주는 1년내내 거의 녹지 않는 만년설(萬年雪)에 덮여 있기 때문에, 사시사철 거의 완벽할 정도로 냉동되어, 이 목재 구조선이 썩거나 부패되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아라랏산이 거대한 대형 냉장고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냉장고 속에 담겨져 있는 식빵같이 장기간에 걸쳐 싱싱하게 저장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Ice Man에 관한 기사이다. 3000년도 더 오래된 인간의 육체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썩어 없어지거나 흙과 진흙에 묻혀 없어지지 않고, 시체보존 처리가 고대제국에서도 가장 우수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이집트 람세스 왕의 미이라보다 더 완벽하게 보존되었다는 사실에서 만년설(萬年雪)의 냉동보존 능력이 탁월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노아의 방주는 인체구조보다 더 견고한 참나무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보다 더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더 오랜 기간동안 부패에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니, 하물며 만년설 속에서는 얼마나 잘 보존되었겠는가? 이렇게 고대의 배가 냉동 저장된 덕분으로 설산(雪山) 정상 복판에 보존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일일까? 회의론자가 말하는 장소와 기후상의 문제는 오히려 그 보고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목조 배나 거대한 목조 구조물이 몇 천년이고 보존되는 유일한 방법들은 빙하의 내부, 동토(凍土)의 속, 심해(深海)의 모래언덕 혹은 사막의 구릉에 파묻혀 있는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수목(樹木)이 자랄 수 없는 4000미터가 넘는 산상에 방주가 어떻게 올려져서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냐고 한다면, 그것은 지구상에 대이변으로 해양의 물이 산더미 같은 홍수로 변하여 격동과 융기나 침강을 되풀이하여 지표를 돌진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산상에 배가 올라가는 것을 검토하려면 우선 인류 역사상에 있어 세계적 대홍수와 지진이 있었다고 하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이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고고학계(考古學界)의 대다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고대와 중세의 해설자들은 아라랏산의 방주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은 그 존재를 일반상식과 같이 당연하게 취급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엔 누구라도 산에 올라가 볼 수가 있었으며, 때로는 평지에서도 빙하의 눈과 얼음을 배경으로 방주가 새까맣게 보였기 때문이다. 


BC 3세기 바빌로니아의 신관(神官)이며 저술가인 베롯소스에 의하면, 방주까지 올라간 사람은 언제나 배의 측면에서 송진을 깍아내 가지고서 귀신을 몰아내는 부적(符籍)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송진이라는 것이 보통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송진이 아니고 방주의 이음새 부분의 피치로서 방주를 문질러서 피치를 수집해 부적으로 사용했음을 암시한다. 다른 저술가의 설명에 의하면 기념품을 목표로 하는 무리들은, 올라가는데 힘들고 방주는 곧장 눈속에 파묻히기 때문에 이런 기회는 좀처럼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송진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작은 나뭇조각을 절취하여 돌아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600년이 지난 AD 4세기 사라미스의 승정(僧正) 에피파뉴스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방주의 틀림없는 실존을 들고나와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도 노아방주의 잔해가 쿠르드족의 땅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당신은 정말로 우리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과거 쿠르드족(族)은 낯선 사람들을 보면 바로 발포해 온다고 알려져 있어 아라랏산의 탐험가들을 그 동안 꽁무니 빼게 하는 위험 요소 중에 하나였다. 또 다른 위험으로는 쿠르드인의 울프라하운드(거대한 늑대개), 곰, 독사, 그리고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들개의 집단들이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급작스런 눈사태, 푸석푸석한 암석의 낙하, 빙하의 눈과 얼음, 얼음 가운데에 돌발적으로 입을 벌리는 함정인 크레바스,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진, 변화불측한 악천후의 날씨 등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 몇 백 세대에 걸쳐 아라랏산을 지나가는 여행자들은 자신의 조상이 유래된 성지(聖地)임을 알았던지, '혹시나 거대한 배 같은 것이 빙하에서 튀어나오지 않는가, 그것보다 두개의 아라랏산 (원추형의 소(小)아라랏산과 중앙에 원개형인 대(大)아라랏산)에 끼어진 낮은 곳 부근에서 보이지 않을까하고 언제나 눈을 집중시켜 왔다. 고명한 아르메니아의 왕자로 나중에 프랑스의 수도승이 된 제한 하이슨은 13세기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라랏산의 정상에는 언제나 거대한 검은 물체가 보인다...「노아의 방주」라고 말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저명한 탐험가 마르코 폴로(AD 1234~1324)는 그의 여행 도중 아라랏산을 지나칠 무렵에 그의 저서『동방견문록』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 만년설로 뒤덮인 이곳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

1883년 5월에 지진으로 산의 일부가 빠금 입을 벌리고 목조의 배로 보여지는 것이 노출되어 있는 것을, 지진의 피해상황을 관찰하기 위해 온 터어키 관리들의 눈에 포착되었다. 관리들은 빙하에 돌출한 거대한 목조 구조물을 발견하였다고 보고하면서, 높이는 12m~15m라고 추정하였는데, 물체의 나머지 부분은 빙하깊이 묻혀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길이인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영국의 조사위원이 낀 동조사대는 내부로 들어가 보았다. 그 일부는 높이 4.6m 구획이 된 칸막이를 한 것 같이 보였다. 그 배와 같은 물체의 누워있는 모양으로 볼 때 산중턱으로 빙하와 같이 미끌어 온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산중에서 뜻밖에 얼어붙은 배에 조우했던 조사위원회는 「노아의 방주를 드디어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당시 미국의 각 신문들은 현재의 UFO 목격 사건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약간 장난조의 반응을 표시하였다. 『뉴욕 헤럴드』는 「방주」에 얼음이 가득 차 있으면 미국까지 수송하는 비용의 일부를 이번 여름에 얼음을 팔아서 처리하자고 제안하였다. 또 이 신문의 별도 사설 난에서 이렇게 첨가하고 있다. "해군성은 지금 바로 「방주」를 구입하여야 한다. 세계 최대의 공화국의 면모답게 해군 공창(工廠)을 나오는 순간에 부패하지 않는 배를 적어도 한 척쯤은 보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주」발견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메소포타미아의 누일리 왕자라고 하는 남자가 1894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우리나라 대전 EXPO '93의 전신)에 나타나 적절한 자금원조를 해준다면 터어키에 있는「방주」를 세계박람회장에 까지 실어와서 많은 나라에서 몰려오는 관람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게 하겠다고 어느 자본가 그룹에 제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라랏산에서 터키의 관리들에게 발견된 물체는 얼마 뒤에 다시 얼음 밑으로 자취를 감춰 버리고 20세기 과학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최초로 이 산의 상공을 비행한 파이롯에 의해 얼음의 위와 아래에 배 모양의 물체가 사진에 찍히게 될 때까지는 1, 2차 세계대전을 겪어야만 했다. 

최근에 와서도 여러 명의 사자(死者)나 행방불명자가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설 탐험대가 조직되어 아라랏산의 수색에 나서며, 또 개인적인 등반자들로 끊이지 않고 있다. 아라랏산 밑의 도그바야짓트 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방주를 찾아 나선 탐험대나 개인등산가들의 베이스 캠프로 되어있다. 

프랑스의 등산가 훼루난 나바라는 산상의 눈 밑에서 파낸 사람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흔적이 있는 대들보용 목재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후에 이것을 엄밀한 방사선 탄소측정법 (C14)에 의해 측정해 본 결과 BC 5000년이라고 하는 연대측정이 나왔다. 나바라 이후로 또 다른 탐험대들과 2차대전 후 비약적으로 신장된 첨단 항공기구에 의해 방주는 수차례나 목격되었다. 

수백년 동안 끊이지 않았던 방주에 관한 이야기나, 최근 20세기 비행기에 의한 방주 목격 사례가 수십 건이 넘는 것을 미루어 본다면, 방주는 오늘날까지 해발 5165m의 대(大)아라랏산 중턱의 만년설 속에 고이 묻혀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82호 [1992. 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2

참고 :

김희택, 박진호
2004-07-26

노아의 방주 그 과학성을 밝힌다


문 : 노아의 방주는 과연 우수한 선박이었는가? 


답 : 세계 조선공학사(造船工學史)상 뿐만 아니라, 세계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배를 손꼽는다면 뭐니뭐니해도 노아의 방주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아의 방주야말로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제 2기원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배는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산타마리아호 인데, 콜럼부스가 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향해하여, 결국 신대륙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산타마리아호를 전시한 박물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배에 대한 저술이나 연구가 활발한데 비해, 노아의 방주는 가장 기념비적인 선박이지만, 노아의 방주에 대해선 알려진 게 무척이나 미약한 실정이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면밀히 살펴보기로 한다.

 

방주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방주에 대한 고대의 기록으로는 비록 성서상의 방주와는 동떨어진 치수지만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점토판이 있다. 이 점토판에는 길이, 너비, 높이가 다 같이 140규빗(80m)으로 6층의 방주가, 그 위에 돛대가 있었고, 조타수(操舵手)도 있다고 쓰여져 있다. 이러한 방주의 조타수에 대해서는 성서에 일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단지 물위에 그냥 띄워두기 위한 개념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사각형의 배가 존재했을 것으로는 믿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성경의 기록은 단순하지만 월등한 것이다. 방주는 격심한 풍랑을 견디기 위해 그 형태와 규격이 완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방주의 형태에 대해 개략적으로 묘사해 본다면 방주는 밑바닥이 평평했고, 파도를 헤치고 속력을 낼 수 있도록 뱃머리가 날렵한 선박의 형태와는 달리, 적재용량을 최대한으로 하기 위한 거대한 장방형(長方形)의 평저선(平底船)으로서, 엄청난 홍수를 견디며 물위에 안정되게 떠 있을 수 있는 구조물이라고 여겨진다.

과거 노아의 방주보다 규모는 작으나 모양을 그대로 본뜬 방주를 네덜란드나 덴마크에서 여러 척 만들었는데, 속력을 위주로 하지 않고 적재량이 우선되는 선박으로서 뛰어난 성능이 발휘됨이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실험이 있기 전에 이미 입증되었다. 예를 들어 다른 선박보다도 적재량이 1/3이나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화물을 처리하는데 소요된 인력은 동일한 규모의 다른 선박과도 같았다.

게다가 물위에 축소된 모형방주를 띄워놓고, 6개월 동안 물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켰다가, 다음 6개월 동안 점차적으로 물을 감소시키고 모형방주를 물이 비교적 적은 내륙으로 이동시켜 본 결과, 그러한 구조물이 성서에 나타나는 환경의 변화를 견딜 수 있음이 증명되기도 하였다.

한편, 그리스의 역사가 베로수스(Berosus)는 방주의 길이가 5스타디온(1,000m), 너비 2스타디온(400m)이라고 했다. 또 오리게네스(Origenes)라는 학자는 방주의 치수가 길이 40km 너비 1.2km라는 과장된 수치를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창세기의 저자가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았더라면, 점토판의 기록이나 그리스 역사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길이 135m, 너비 22.5m, 높이 13.5m라는 합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치수를 내놓기란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창세기의 노아 방주를 현대과학으로 

그렇다면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는 구체적으로 과연 어느 정도의 과학적 설계에 의해 건조되었을까? 창세기가 쓰여진 이래 수천년 동안 사실이면서도 면밀한 고증과 소위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아 일반인들은 물론 성서를 믿는 기독교인들까지도 상징적인 교훈이나 문학적인 우화로 치부되어진 노아의 방주를 현대 선박공학적인 측면에서 조사해 본 결과, 매우 견고하고 안전한 선박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방주가 매우 현실성이 있는 배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국가공인기관에 의한 노아 방주 실험 

국가출연기관인 해사기술연구소(海事技術硏究所, 舊선박연구소)가 작년 6월부터 본 학회의 요청으로 노아의 방주를 조선공학적 입장으로 접근, 이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연구소는 선박의 선형시험 및 관련성능 평가업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으로서 세계 조선 2위국인 우리나라 수출선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능평가를 받고 있고, 그 결과는 외국의 선주(船主)들에게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480여 척의 선박을 성능 평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사기술연구소는 본 학회의 의뢰를 받아 선박의 안정성 연구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인 홍석원 박사를 팀장으로한 9명의 전문연구팀에게 맡겨 선박의 안전성능을 실험하게 되었다.

연구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었는데, 기초자료의 부족이 그것이었다. 특히 방주의 외부모습, 방주의 내부 구조에 대한 자료 등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주자료의 제약성에도 불구하고 성경 창세기에 나와있는 노아 방주의 규격(길이135m, 너비 22.5m, 높이 13.5m)과 아라랏산에서 목격된 방주의 형상을 토대로 제작한 노아 방주 복원도를 바탕으로 하여 실험용 방주를 건조할 수 있었다.

 

현대의 최첨단 선박보다 우수 

1950년대 미국에서도 일찍이 방주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선박공학의 수준이나 기타 제반 여건들은 90년대인 지금과 비교할 때 모든 면에 있어서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50년대 미국에 있었던 방주실험은 아주 기초적인 선박의 복원안정성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이때부터 40여년이 경과한 지금 현대적 수준에 걸맞은 실험을 하고자, 앞서 미국에서 있었던 복원안정성 뿐만 아니라 방주의 종합적인 안정성평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두드러진 점은 방주자체의 모형실험에 큰 의의를 두었고, 다른 형상을 갖는 배와의 상대평가도 수행하여 이 배의 진면목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홍박사 팀은 테스트에 쓰인 실험용 방주로 길이를 50분의 1로 축소(길이 2.7m) 제작하였고, 해사기술연구소의 대형수조(길이 200m, 폭16m, 수심 7m)에서 인공적으로 다양한 높이, 강도, 속도의 조류, 파도, 풍랑, 바람을 만들고 역시 축소된 내부 선체, 선원을 실은 상태, 내부 화물을 적재한 상태 등 다각적으로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가 현대의 최첨단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된 그 어느 선박보다 뛰어난 안정성을 갖고 있는 배였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또 상대평가에 의한 우수성을 알아보기 위해 노아 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 폭, 높이의 비율이 각기 다른 현대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한 12척의 다른 모형선박을 만들어 선박의 안정성(파랑안전성, ·구조안전성, 복원안전성)에 대해 수 차례의 비교 수치해석과정을 거쳤다.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 변환 가능한 12척의 모형 배들과의 비교 수치해석결과, 선형(船形)의 높이가 같은 경우에는 노아 방주가 가장 최적인 복원안정성을 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장창두 교수는 아직 방주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수준의 연구성과는 과거 외국의 실험보다 더 한층 앞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방주학의 태동 

방주의 안정성 실험은 방주연구에 있어서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로선 방주의 종합적인 연구가 불충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주내부구조에 대해선 아직 밝혀내지도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에 대한 깊이 있고 전반적인 연구 못지 않게 방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리라 본다.

어차피 창조과학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의 오묘한 이치를 밝혀나가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그 한 분야인 방주학(方舟學: Arkology)도 창조과학의 중요한 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큰 범주로써 창조과학이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세계들을 밝히는 여러 가지 과학적인 행위들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또 하나의 작은 범주로써 방주학은 노아의 방주 그 자체의 종합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방주로 인한 노아의 홍수 전, 후의 제반적 환경까지도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그래서 방주학을 접근할 때, 홍수를 지사학적 측면에서 과학적으로 다룰 지질학자, 지리학자, 그리고 홍수이전의 문명과 생활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 인류학자, 홍수이전(以前)과 이후(以後)를 구분 짓게 한 분기점인 노아의 방주, 그 자체를 현대의 선박공학적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조선공학자, 해양학자, 홍수이전 주민 수를 가늠하는 인구학자, 통계학자, 방주 건조에 쓰였던 여러 가지 구조의 재질(才質)을 알아낼 수 있을 재료공학자, 임학자, 화공학자, 홍수이전에 통용되었던 최초의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기호학자, 홍수로 인한 지구의 기온하강이나 천체의 변화를 연구하는 기후학자, 천문학자, 방주에 승선했던 생물과 홍수전후의 생물들의 사이를 연구하는 동물학자, 식물학자, 방주의 원형(原形)을 컴퓨터그래픽(Computer Graphics)에 의해 재현시킬 수 있는 그래픽디자이너 등 실로 다양한 관련분야의 전공이 필요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이렇게 다양한 전공분야의 연관성 때문에, 전 이화여대 교수였던 민희식 교수는 방주연구를 위해 각계 각층의 전공분야를 가진 학자들이 모여서 심포지엄을 해야 할 정도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방주학의 연구에 있어선 어느 특정한 한 분야의 전공으로만 파헤쳐 지기보다는, 총체적(holistic)이고, 다양한 측면에서의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방주의 영적 의미를 제시할 수 있는 신학(神學)까지도 포함될 수 있겠다.

아무튼 창조과학의 대부분의 분야가 그러하듯이, 아직 방주학은 미개척 학문분야로 남아있다. 조금이라도 자기가 하는 전공과 관련되어 질 수 있고, 방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성과가 진척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 창조지, 제 86호 [1993. 5~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4

참고 : 720|721|6255|6254|6320|5906|5930|5468|5065|5062|2851|1458|1455|3032

John D. Morris
2004-07-26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혼자 힘으로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를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 한 일이라면서 홍수 이야기를 비웃는다. 과연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제작했을까? 사실상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몇 가지 합리적인 가정을 한 후에 그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살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가 살던 당시의 죄악 된 문화를 120년 후에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셨다(창세기 6:3). 그러나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한 때는 명확하지 않다(창 6:14-16). 일단 우리는 노아가 120년 동안 이 일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노아의 세 아들들은 홍수가 일어나기 100년 전쯤부터 태어나기 시작했으므로(창 5:32, 7:6),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은 아들들이 방주 제작을 도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노아의 할아버지인 무드셀라는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으므로 방주를 제작하는 동안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은 단지 8명이다. 그 8명은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과 그들의 부인들을 의미한다. 이들 모두는 대홍수가 닥쳤을 때 살아남았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창세기 7:13; 베드로 후서 2:5). 어쩌면 노아는 도움을 받기 위해 일꾼들을 고용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노아가 방주를 제작하는 기간동안에는 생계를 꾸려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재산을 가졌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자 그럼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방주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노아와 세 아들들뿐이라고 가정해 보자. 과연 그들만의 힘으로도 방주를 제작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방주를 제작하는 일이 어느 정도의 일인지를 먼저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한 규빗을 18 인치로 가정해볼 때 길이가 450피트, 넓이가 75피트 높이가 45피트로(창세기 6:15), 성경은 우리에게 방주의 전체 크기를 알려주고 있다.(참고 : 1피트는 12인치, ⅓야드, 30.48 cm 와 같은 길이이다.) 우리는 또한 방주에 세 개의 갑판(deck)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방주의 전체 부피는  와 같다.

 

그러나 내부 구조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비록 큰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내부 구조물은 95% 이상이 비어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악의 시나리오 상황에서 방주의 부피의 20%가 목재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명의 사람들이 목재를 모으고, 방주 제작 장소로 이동하고, 필수적인 외형을 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유의할 점은 방주는 외형의 아름다움이나 배의 속력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강하고 물에 잘 뜰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모양 면에서는 난잡한 축사와 닮았을 것이고, 기술적으로 안정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창조 후에 오랜 수명을 가지고 이상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틀림없이 지적이며 유능했을 것이다. 만약 노아의 가족들이 일년 내에 방주 제조 일에 익숙해졌을 것이라고 가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모두가 이 분야의 전문가였을지도 모른다. 네 명의 경험 많은 일꾼들이 하루에 평균 체적 15 피트의 목재를 다루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가능할지라도 이것은 굉장히 느리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상황임을 기억하자.


이제 계산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이 결과로 볼 때, 최악의 시나리오 아래에서 계산해 보았을 때 65년이 걸린 것이다. 방주를 제작하는 일은 커다란 일이다. 그러나 노아는 신실한 사람이었으며 이 일을 성취했다. 우리가 보는 것처럼 단순한 계산을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확장시킬 수 있다.

 

* 편집자주 ; 본 글은 ICR에서 나오는 Back To Genesis 지 136호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출처 - 기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6

참고 : 720|721|6255|6254|6320|5906|5930|5468|5065|5062|2851|1458|1455|3032



서울특별시 중구 삼일대로 4길 9 라이온스 빌딩 401호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오경숙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18-서울중구-0764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삼일대로 4길 9, 라이온스빌딩 401호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