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관리자
2019-04-26

예수님의 부활과 성경 기록의 정확성에 대한 영상들
(Answers for Skeptics of Jesus)

David F. Coppedge

    2019년 부활절이 지나갔다. 여기에 예수님과 그의 부활(resurrection)에 대한 증거들을 검토한 몇몇 자료(영상)들이 있다.

UCLA에 있는 Ratio Christi의 리더인 윌리엄 헤라스(William James Herath)는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존재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성경 기록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아래의 세 개의 짧은 영상을 제시했다.


예수님은 이교도 신화들 중 하나가 아니다.(Jesus Is Not A Copy Of Pagan). 

             스티븐 반카츠(Steven Bancarz)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많은 이교도 신화들 중에서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을 조사하였다.

부활의 증거는 무엇인가?(What is the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헤라스는 마이크 리코나(Mike Licona)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예수님이 정말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지 않았다고 주장에 

             대한 가능한 옵션들을 조사했다.

성경은 정말로 신뢰할 수 있을까?(Can we trust the authenticity of the Bible?). 

             헤라스는 성경 밖의 출처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임을 보여준다.


윌리엄 헤라스의 웹 사이트 ReadySetQuestion.com을 방문하여, 성경적 신앙을 지지하는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라. 크리스천들이 갖고 있던 질문들이 조사되었을 때, 성경 기록의 정확성과 사실성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음을 그의 사역은 보여준다.


일러스트라 미디어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일러스트라 미디어(llustra Media)의 'John 10:10 Project'는 신앙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 수많은 단편 영상들을 제공한다.(evidence for faith). 다음의 것들은 특히 부활절에 적합하다.


복음서는 신뢰할 수 있는가? (Can the Gospels Be Trusted?)

복음서는 얼마나 정확한가? (How Accurate Are the Gospels?)

다른 복음서들? (Other Gospels?)

예수님은 누구신가? (Who Was Jesus?)

예수님의 기적들 (The Miracles of Jesus)

메시아에 대한 예언 (Messianic Prophecies)

죽음과 부활 (Death &Resurrection)

빈 무덤 (The Empty Tomb)

변형 (Transformation)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신뢰하고, 경배하며, 축하하라!


출처 : CEH, 2019. 4. 20.

URL : https://crev.info/2019/04/answers-for-skeptics-of-jesus/

번역자 : 미디어위원회

   

Jake Hebert
2019-04-25

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출애굽의 증거들”이 개봉되었다. 

(Encore Presentation of ‘Patterns of Evidence: Exodus’)


   출애굽(Exodus)은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이다. 성경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 세기 동안의 노예생활, 모세의 인도, 이집트에 파괴적인 재앙들, 기적의 홍해 횡단 등을 겪은 후에 이집트(애굽)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해 놓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성경적 출애굽이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논란 주제가 ‘출애굽의 증거들(Patterns of Evidence: Exodus)’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5년 1월 29일 드디어 개봉되었다.[1] 

그러나 '증거의 부재'는 반드시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에 대한 성경 밖의 외부적 증거를 아직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이 오류를 가진다는 과거의 역사가들의 주장은 그들이 틀렸음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실제로 사실이었음을 가리키는 증거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헷 족속(Hittites, 히타이트)에 관한 많은 기록이 하나의 전형적인 예이다. 성경 비판가들은 헷 족속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헷 족속이 결국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그들이 틀렸음이 입증됐던 것이다.[2]

비판가들은 말한다.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과 같은 기념비적인 사건들이 사실이라면, 수천 년이 지났다하더라도 관련 증거들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따라서, 성경 비판가들은 출애굽에 대한 '증거의 부재'가 출애굽이 사실상 일어나지 않았다는 ‘부재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성경 비판가들이 맞는다면, 기독교 신앙의 상당 부분이 파괴될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했으며, 가나안을 정복했다는 성경의 출애굽기와 여호수아 같은 책들이 지어낸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세의 존재와 출애굽 사건을 실제 역사로 간주하셨던 예수님도(막 12:26, 눅 20:37, 요 6:32) 틀리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다른 말씀도 틀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에 대한 풍부한 역사적 증거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회의적인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증거들은 표준 이집트 연대기에서 그들이 예상하는 시대보다 훨씬 이전 시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표준' 이집트 연대기는 상당한 수정이 가해져야할 것으로 보인다.[3]

영화 ‘출애굽의 증거들(Patterns of Evidence: Exodus)’을 제작한 디모데 마호니(Timothy Mahoney)는 수상 경력이 있는 영화감독으로, 폭 넓은 관객들에게 출애굽의 많은 증거들을 제시해주는 훌륭한 일을 수행했다. 마호니는 영화 시청자들이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하고 있었지만, 그가 제시하는 증거들은 너무도 강력해서, 이제 성경 비판가들은 여기에서 제시된 객관적인 역사적 데이터들을 그냥 무시해버릴 수 없게 되었다. 마호니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역사적 요셉, 출애굽 여정, 노예 생활, 이집트의 재앙, 파괴된 여리고성의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와 같이 창조과학 사역을 하고 있는 두 단체(AiG, CMI)는 이미 그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해 놓고 있다.[4, 5] (아래에 링크해 놓았음).


.표준 이집트 연대기를 따르지 않고, 성경적 연대기를 따른 출애굽 다큐멘터리 영화 'Patterns of Evidence: Exodus”가 제작 완료되어 미국 일부 상영관에서 개봉되었다. 기존에 주장되던 세속적 출애굽 연대(BC 1250년 근처)가 아닌, 200여 년 앞당겨진 이집트 중왕국 시대에서(BC 1450년 근처) 성경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와 일치하는 놀라운 고고학적 증거들이 무더기로 발굴되었고, 그 사실들을 다큐멘터리로 보고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skx69TxLXk
http://www.patternsofevidence.com/en/

(미국 내 상영:

http://www.fandango.com/patternsofevidence:theexodus_172109/movietimes)

이 영화가 널리 상영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몇몇 개봉관들은 2015년 1월 29일에 상영을 시작했고, DVD와 책에 대한 예약도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다.[6] ICR은 무조건적으로 그 책을 추천할 수는 없지만(아직 검토하지 못했음), 영화와 같은 내용이라면, 성경을 변증하는 자료로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결점투성이의  세속적 연대기가 성경의 진실성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됐던 유일한 사례가 아님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세속적 역사가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출애굽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왔다.(성경에 기록된 출애굽 사건과 일치하는 많은 증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세속적 지질학자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역적 스케일로는 엄청난 홍수의 증거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광대한 퇴적지층 속에 수십억의 동물과 식물 잔해들이 격변적으로 파묻혀있다는 사실은 전 지구적 홍수와 더 잘 어울린다.[7, 8] 그러나 이러한 증거들은 그들 지층에 부여되어 있는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진화론적 연대 때문에 부인되고 있는 것이다.          

마호니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크리스천들에게 성경 비판가들의 주장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믿는다. 심지어 창세기의 첫 부분까지도 말이다.



References

1. Fathom Events Encore Presentation of 'Patterns of Evidence: The Exodus' Confirmed for Thursday, January 29. CNBC. Posted on www.cnbc.com January 22, 2015, accessed January 23, 2015.
2. Wilson, C.A. 1977. Rocks, Relics and Biblical Reliability. Grand Rapids, MI: Zondervan, 41.
3. Bates, G. 2014. Egyptian Chronology and the Bible – framing the issues. Posted on www.creation.com September 2, 2014, accessed January 15, 2015.
4. Bates, G. 2015. Patterns of evidence: Exodus. A review. Posted on www.creation.comon January 15, 2015,accessed January 20, 2015.
5. Mitchell, E. 2015. Movie Review: Patterns of Evidence: The ExodusPosted on www.answersingenesis.org January 17, 2015, accessed January 20, 2015.
6. The film's website: www.patternsofevidence.com/en/, accessed January 20, 2015.
7. Thomas, B. 2012. Flood Explains 'Worldwide Pattern' in Ancient Rock.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April 11, 2012, accessed January 20, 2015.
8. Morris, J. D. 1989. When Did the Fossils Die? Acts & Facts. 18 (10).

*Dr.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receiv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추천 : 출애굽의 역사성을 밝혀주고 있는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
‘The Exodus Revealed: Search for the Red Sea Crossing’
https://www.youtube.com/watch?v=yTnqRpXKcaQ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558 ,

출처 - ICR News, 2015. 1. 2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89

참고 : 1412|1413|5985|3872|2525|2643|3945|4841|4742|4391|4258|4385|4148|4071|3974|5094|5627|5514|5463|6066|6017|3249|4723|4819|4394|4381|4376|4405|4409|4329|6205|6235|6360|6401|6432|6179|6283|6351|6353|6387

관리자
2019-04-2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의 어둠 : 은유인가, 사실인가?
(Darkness at the crucifixion: metaphor or real history?)

Daniel Anderson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보고됐던 초자연적 어둠(darkness)은 은유가 아니었다. 그것은 목격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었고, 고도의 자격을 갖춘 고대 역사가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확증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복음서에 기록된 어둠이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것처럼,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창세기에 기록된 진정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님의 죽음 (creationism.org).

성경 창세기에 쓰여지고 의도된, 기록된 그대로의 직접적인 해석에 따르면, 진정한 아담과 진정한 하와, 진정한 에덴동산, 진정한 죄로 인한 타락, 창조주에 대한 고의적 반란, 그리고 그에 대한 진정한 결과들이 있었다. 죽음, 고통, 질병, 자연재해, 죄악 등은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역사적 타락에 의한 진정한 결과였다.(The Fall: a cosmic catastrophe을 보라). 우리는 매일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창세기의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인류의 비참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적인 해독제(historical antidote)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God-man, the Lord Jesus Christ)는 십자가 위에서, 잔인하고 굴욕적인 죽음으로 죽으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아담과 하와의 죄와,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것이었다.(요한일서 2:2).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 양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값없이 얻게 되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엡 2:8-9).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희생적으로 죽으신 마지막 세 시간 동안, 온 땅에 기괴한 어둠(darkness)이 임했다. 이 어둠은 복음서 기자인 마태, 마가, 누가가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 사건은 성경 외에 세 명의 탁월한 역사가들인 탈루스(Thallus), 플레곤(Phlegon), 아프리카누스(Africanus)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면밀한 조사는 이 미증유의 사건에 대한 강력한 역사적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기록

이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실 때 임했던 3시간 동안의 어둠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마 27:45, 막 15:33, 눅 23:44-45). 마태(Matthew)는 예수님의 사도이자, 사건의 목격자 중 한 사람이었다. 마가(Mark)는 예수님의 세 명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의 가까운 동반자였다. 또한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바울, 누가, 그리고 초기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여행을 했던 사람이다. 누가(Luke)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건들을 신중하게 조사했던 그리스의 의사이자, 역사가였다. 누가의 역사적인 조사는 바울, 베드로, 야고보, 마가, 마리아(예수의 어머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여인들의 직적접이고 간접적인 목격에 기초하고 있었다.[1] 누가는 가장 신뢰할만한 역사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1]

자유주의 신약학자인 로빈슨(J.A.T. Robinson)은 심도 있는 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AD 40~65년 사이의 복음서 모두에서 강한 역사적, 원문적, 논리적 증거들을 발견했다.[2] 로빈슨은 보수적인 성경적 크리스천들을 친구로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연대에 기초하면, 마태, 마가, 누가는 흑암이 임했던 실제적 사건 이후 7~32년이 지난 후에 이에 대한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3] 다른 고대 역사 기록들과 비교했을 때, 이것은 뉴스의 플래시와 같이, 매우 짧은 기간 내에 쓰여진 것이었다. 로마의 역사학자였던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카이사르(Caesar)가 루비콘(Rubicon) 강을 건넌 사건을, 적어도 1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은 일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여겨진다.[4]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biographies)들 중에서 가장 빠른 것은 아리안(Arrian)과 플루타크(Plutarch)에 의해서 쓰여진 것인데, 그것은 대왕의 사후 400년 뒤에 기록됐지만, 이것 또한 신뢰할 수 있는 기록으로 간주되고 있다.[1] (Who was Luke and what did he write?를 보라.)

더욱 강력한 것으로, 독일의 신약학자인 루돌프 페쉬(Rudolph Pesch)는 마가복음의 언어, 형식, 문법, 개인적 참조 등을 바탕으로, 마가복음은 AD 37년 보다 더 늦지 않게 쓰여졌다고 주장했다.[5] 이것은 실제 사건이 일어난 후, 최대로 잡아도 불과 4년 후이다! 결론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임했던 어둠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들은 매우 일찍, 신뢰할만한, 목격에 기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탈루스, 플레곤, 아프리카누스의 기록

탈루스(Thallus)는 트로이 전쟁 이후 지중해 동부의 세계 역사를 기록했다. 탈루스는 AD 52년에 그 지역에 관한 역사를 썼다.[6] 그의 원래 저술은 분실되었지만, 유명한 3세기의 역사학자였던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에 의해서 특별히 인용되고 있었다. 아프리카누스는 말했다. ”탈루스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3번째 책에서, 그 어둠을 태양의 일식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게 부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탈루스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임했던 어둠에 대해 자연주의적 방법으로 설명하려 했다.

플레곤(Phlegon)은 AD 137년 경에 광범위한 연대기를 썼던 그리스의 역사가였다 :

제 202번째 올림피아드(AD 33년)의 4번째 해에, ”태양의 가장 큰 일식(eclipse)”이 있었고, ”그 날의 육시(즉, 정오)에 밤이 되었고, 하늘에 별들이 나타났다. 비티니아(Bithynia)에는 거대한 지진이 있었고, 니케아(Nicaea)에서는 많은 것들이 넘어졌다.”[7]

플레곤은 복음서의 기록을 강력히 확증해주고 있었다. 그는 그 해와 그 날의 정확한 시간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덧붙여서, 그는 어둠과 함께 수반됐던 지진(earthquake)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 지진은 마태복음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마태복음 27:51) 그러나 탈루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어둠을 일식에 의한 직접적인 효과로 잘못된 해석을 시도하고 있었다.

금환일식(Annular eclipse, ring eclipse). 보통 보름달일 경우에 일식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계시는 동안에 임했던 어둠의 원인으로 일식은 될 수 없어 보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계시는 동안 온 땅에 임했던 어둠에 대한 기록은, 그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존경받고 있는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서도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누스는 AD 221년 경에 세계사에 관한 5권의 책인 연대기(Chronographiai)를 저술했다. 그는 또한 기독교로 개종한 이교도였다. 그의 역사에 대한 학식은 로마의 황제였던 알렉산더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에게 영향을 주었고, 아프리카누스는 로마 판테온에 있었던 황제의 도서관을 건축하는 데에 공식적인 책임자가 된다. 아프리카누스는 이렇게 썼다 :

온 세상에 가장 무서운 어둠이 임했다. 지진으로 바위들이 갈라졌고, 유대의 많은 곳들과 다른 지역들에도 임했다. 탈루스는 그의 역사서 세 번째 책에서, 이 어둠은 태양의 일식과 같은, 어떤 이유도 없이 임했다고 말한다. 히브리 사람들은 달에 의해 14번째 날을 유월절로 축하하며, 유월절 전날에 구원의 감격을 기념한다. 그러나 태양의 일식은 달이 태양 앞에 올 때에만 일어난다. 그리고 일식은 단지 초승달의 첫날과 그믐달의 마지막 날 사이에서 일어나고, 다른 어떤 시간에 일어날 수 없다. 달이 태양과 거의 반대 방향일 때, 어떻게 일식이 일어났다고 추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태양의 일식으로 간주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놓아두라. 플레곤(Plegon)은 티베리우스(Tiberius Caesar) 시대에 보름달에서, 제 육시에서 구시까지 완전한 개기일식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말했던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들이 갈라지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우주에 걸친 커다란 혼란을 동반하는 일식이 흔히 있을 수 있는가? 확실히 이러한 사건은 오랜 기간 동안 기록되지 않았다.[8]

아프리카누스는 이 그림(this diagram)이 보여주듯이, 일식이 유월절의 달 주기 동안에는 일어날 수 없었다고 올바르게 주장한다. 그는 또한 일식과 지진, 마태복음에 기록된 기적적인 사건들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있었다. 일식은 지진과 육체의 부활(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는 사건)을 일으키지 못한다. 또한 일식은 3시간이 아니라(”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마 27:45), 단지 몇 분(7분 30초 정도) 동안만 지속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누스는 실제 과학을 적용함으로써,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실 때에 온 땅에 임했던 어둠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은 매우 불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역적 현상, 또는 전 지구적 현상?

많은 사람들이 어둠이 지역적 현상인지, 또는 전 지구적 현상인지에 대해 생각해왔다. 대다수의 성경 번역본들은 ”온 땅에”(”over the land”, ”over all the land”, or ”over the whole land”) 어둠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어떤 번역본에는, 어둠이 전 지구적으로(”over all the earth” or ”over the whole earth”)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땅(earth)을 지칭하는 gē 라는 평범한 단어를 갖고 있는데[9], 여기에서 ‘geology(지질학)’이라는 단어가 기원하였다. 대부분의 번역본에서 사용된 단어들과 일부 문맥의 해석에 의하면, 그 어둠은 국소적 또는 지역적 현상이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지역적 현상이었다면, 그것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일어났다. 웨스턴 미시건 대학의 고대사 교수인 폴 마이어(Paul Maier) 교수는 ”이 현상은 분명히 로마, 아테네 및 다른 지중해의 도시들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썼다.[7]

반면에, 아프리카누스는 그 어둠을 전 지구적인 사건으로 쓰고 있었다. 2세기의 유명한 변증가였던 터툴리안(Tertullian)도 그 어둠을 ”우주적(cosmic)” 또는 ”세계적 사건(world event)”으로 말하고 있었다. 회의론자들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순간에, 빛은 태양으로부터 떠났고, 땅은 정오임에도 어두워졌다. 이러한 경이(wonder)는 사람들 자신의 기록 속에 남아있으며,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기록보관소에 보존되어 있다.[10]

명백하게, 터툴리안은 그 어둠에 대한 기록이 합법적인 역사 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미래의 고고학적 발견이 그 어둠이 전 세계에서 실제로 목격되었다는 개념을 강력하게 뒷받침 해줄 것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왜 더 많은 문헌들이 없는가?

많은 회의론자들은 왜 요한복음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어둠이 언급되어 있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하버드 법대의 시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는 그것에 대해 잘 대답하고 있었다 :

거기에는 복음서의 저자들 사이에서 사전에 협의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불일치들이 충분하게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사실상 일치되는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그들이 모두 독립적으로 동일한 위대한 사건들을 서술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11]

다른 말로하면, 독립적인 기록자들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때로는 다른 2차적인 세부 사항까지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회의론자들은 요세푸스(Josephus), 타키투스(Tacitus), 수에토니우스(Suetonius), 소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 등과 같은 다른 초기 역사가들이 왜 그 어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지를 제기한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침묵으로부터 주장하는 오류(the fallacy of arguing from silence)’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동시대의 역사가들이 일어났던 사건들을 모두 기록해 놓았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리고 이들 역사가들이 어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 좋은 이유들이 있다.(Thallus : Darkness Rules 참조).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고, 존경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시는 동안 임했던 어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둠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 탈루스, 플레곤, 아프리카누스, 터툴리안의 목록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결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실 때에 임했던 어둠의 역사성에 관한 강력한 증거들이 있다.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진정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고, 그것의 존재는 바로 실제로 있었던 창세기의 역사적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으로서, 이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조롱당하며,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References
1. Craig, William Lane, The Evidence for Jesus, 2005; see also Luke: A consideration of Gospel authorship and publication date.
2. Robinson, John A.T., Redating the New Testament, Wipf & Stock Publishers, 2000.
3. Cf. Wenham, John, Redating Matthew, Mark and Luke, IVP, 1992; see review.
4. Gaius Suetonius Tranquillus, The Lives of the Twelve Caesars 1:31–33, AD 121.
5. Strobel, L. The Case for Christ, p. 220, Zondervan, Grand Rapids, MI, 1998.
6. Habermas, Gary. The Historical Jesus, pp.196-7, College Press Publishing Company, 1996.
7. Maier, Paul. Pontius Pilate (Wheaton, Ill. Tyndale House, 1968), p. 366. Phlegon’s citation is a fragment from Olympiadeshe Chronika 13, ed. Otto Keller, Rerum Naturalium Scriptores Graeci Minores,1 (Leipzig Teurber, 1877), p. 101.
8. http://www.christian-thinktank.com/jrthal.html
9. The Greek phrase in Luke 23:44 is καίσκότος εγένετοέφ ‘όλην τήν γήν (kaiskotos egeneto eph holēn tēn gēn), ‘and darkness cameupon the whole earth’.
10. Sanders, Oswald. The Incomparable Christ, p. 203, Moody Publishers, 1982.
11. Greenleaf, Simon. The Testimony of the Evangelists,vii, Baker, Grand Rapids, MI, 1984.


출처 : CMI, 2007. 4. 6.(GMT+10)
URL https://creation.com/darkness-at-the-crucifixion-metaphor-or-real-history
번역자 : 미디어위원회

James J. S. Johnson
2019-03-12

거짓 가설의 미끼를 조심하라 

: 성경의 오류가 있다는 주장에 숨겨져 있는 가정. 

(Beware the Bait of False Hypotheticals)

James J. S. Johnson


       최근 매사추세츠 주에서 있었던 ICR 강연에서, 한 참석자는 함정이 들어있는 질문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주된 메시지를 해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사소한 오류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당신들은 성경의 오류를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조롱 섞인 어조로 그 비판가는 덧붙였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성경에 대한 당신들의 문자적 신념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때, 어떻게 당신들의 신학을 수정합니까?”

비판가의 질문에 어떤 가정들이 숨겨져 있는 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 가정은 이것이다 : ”성경에는 오류가 있다. 당신의 신학은 망가졌다. 과학(진화론)은 성경이 틀렸음을 입증했다. 성경에 대한 문자적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그 질문은 다음의 불공정한 질문과 유사하다 : ”예, 아니오로 대답하세요. 요즘 당신은 당신의 아내 때리기를 멈추었습니까?”

조심하라! 비판가의 질문에 대해 당신의 믿음을 판단하기 전에, 질문 자체가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즉 그 질문이 합법적인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질문은 사기성의 불합리한 것일 수 있다. 앞의 질문은 그 사람이 늘 아내를 때려왔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실제 법정에서 증인에게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로 한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거부된다. 비가 왔다고 가정을 하고 어떤 질문을 했는데, 그 당시 비가 내린 적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는 어떤 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질문에서, 사람에 대한 임상실험을 한 적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법정에서 거짓 가정에 기초한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기각합니다. 그 질문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사실을 가정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의학적 증거 채택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므로, 근거 없는 가정(주장)들이 종종 진짜 증거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2]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러한 질문은 입증되지 않은 주장과 거짓 가설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 질문은 결함이 있으며,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매사추세츠의 비판가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성경에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나는 그 가정을 거부합니다. 당신은 소위 성경의 오류에 대한 몇 가지(단지 하나라도) 예를 제시하고, 그것이 정말로 오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현실 세계에서 그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당신의 질문에 논의할 수 있겠습니다.” 놀랍게도, 비판가는 성경에 많은 오류들이 있다는 대담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예를 제시하지 못했다.[3] 그와 같이 다른 많은 회의론자들도 토론에서 거짓 가설의 미끼를 사용하여, 유사한 질문이나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말할 때, 그들은 사람들의 잘못된 가설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와서 후사가 없이 죽은 일곱 형제의 아내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대답하셨다.[4] 모든 것이 무작위적인 자연적 과정으로 생겨났을 것이라는 진화론적 가정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상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계에 충만하고, 모든 사실들과 일치된다.

요약하면 실제적인 증거들이 있을 때까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설적 시나리오를 자동적으로 가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우주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계에 충만하고, 모든 사실들과 일치된다. 그러므로 거짓 가설의 미끼에 넘어가지 말라!



References

1. Missouri, Kansas & Texas Railway Company of Texas v. Williams, 133 S.W. 499, 502 (Tex. Civ. App. 1910). 'The question assumes that the [train station] depot room was wet. The evidence does not show that the depot was wet, and therefore the question was error. Hypothetical questions must be based on facts proved…[otherwise] the answers to such questions are merely speculative and not pertinent to the investigation.” See also McDowell v. Eli Lilly & Company, 2015 WL 845720, *6 (S.D.N.Y. 2015). 'False hypotheticals are not accepted as reliance evidence.” Dallas I.S.D. v. Simms, TEA Dkt. 130-LH-705 (CIHE 9-10-AD2005), page 10 (allegations alone, unsupported by reliable proof, are inadequate, because this would require assuming critical 'facts” not provided as evidence), applying Peaster I.S.D. v. Glotfelty, 63 S.W.3d 1 (Tex. App.—F.W. 2001, n.w.h.).
2. To illustrate name-calling devoid of supporting proof, read Wikipedia’s entry on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to see how it unjustifiably labels ICR as 'pseudoscientific” because ICR rejects deep time, natural selection theory, and Big Bang cosmogony.
3. Nevertheless, the skeptic argued that his question deserved an answer, because maybe 'modern science” would/could/might somehow disprove some Scripture details. Obviously, Christ Himself disagreed with that attitude—and Christ’s knowledge outranks any skeptic’s speculations—so accommodating and endorsing skeptics’ speculations are both needless and unwise (Matthew 5:18; John 5:44-47; Luke 16:31). Also, notice in 1 Timothy 6:20-21 that careless attention to so-called science causes many to err from the biblical faith.
4. Not all imaginable hypotheticals are possible in a real world because God ultimately selects which scenarios He is willing to allow. Consider the discussion in Matthew 22:23-29 about serial marriages.

* Dr. Johnson is Associate Professor of Apologetics and Chief Academic Offic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www.icr.org/article/11124/ 

출처 - ICR, 2019. 1. 3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009

참고 : 4878|4872|4870|4868|4726|4725|4723|4718|4714|4713|4663|4599|4514|4492|4488|4480|4463|4452|4451|4450|4416|4414|4413|4399|4387|4685|3249|3233|3218|3208|3166|3162|3148|3020|3022|2530|2321|2805|2688|2525|1756|1793|1790|720|721|4819|2330|5861|5852|638|5753|5741|5723|5638|5628|5625|5578|5555|5514|5094|5463|5415|5402|5395|5275|5271|5035|5034|5033|5018|5969|5985|6017|6066|6071|6089|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6679|6697|6808|6823

Brian Thomas
2018-04-02

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 왕의 인장에 이은 놀라운 발견! 

(Archaeological Evidence for Prophet Isaiah)


      최근에 이스라엘 고고학자인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와 그녀의 발굴팀은 예루살렘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것은 이사야의 실존과 구약성경의 사실성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성전 산(Temple Mount) 남쪽 벽 아래를 파내던 발굴팀은 이사야(Isaiah)의 이름이 새겨진 진흙 인장(clay seal, bulla)을 발견했다.(사진은 아래 관련기사 클릭). Biblical Archaeology Review 지에서 마자르는 이 이사야의 공문서용 인장(bulla)의 음역을 ”Yesha‘yah[u] Nvy[?]”라고 표현했는데, 점토의 손상으로 인해 알 수 없는 글자의 부분은 [?]로 표시하였다.[1] ”Yesha'yahu”는 ”이사야(Isaiah)”이다. 잃어버린 철자를 히브리어의 앞부분 철자(Nvy)를 통해 추정하면, 이사야 뒤에 나오는 단어는 ”예언자(prophet)”이다. 아마도 이사야는 자신이 이 도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2015년에 발굴팀은 단지 3m 떨어진 곳에서 히스기야 왕(King Hezekiah)의 것으로 보이는, 공문서용 인장(bulla)으로 불리는 점토 인장을 발견했었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성경에 따르면,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봉사하면서, 왕과 직접 대화를 했었다.

히스기야 인장과 이사야의 인장이 들어있던 고고학적 지층은 비잔틴과 초기 로마시대의 부스러기 아래에 놓여있던 지층이다. 이것은 BC 729~687년까지 지속됐던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과 일치한다.[3] 따라서 이 두 유물은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실제로 성경이 말했던 시점에 살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함께 발견된 이 두 유물은 구약성경의 인물이 실제로 성경이 말했던 시점에 살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 두 개의 인장은 수십 년 동안 성경을 의심해온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파산시킨다. 예를 들어, 회의론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삶과 통치 시기 이후 수세기가 지나서, 바빌론 포로기의 어떤 시기에, 알려지지 않은 저자들에 의해서 이사야서가 집필됐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었다. 그들은 창세기로부터 열왕들의 시대까지, 성경은 바빌로니아 신화나 여러 문서들을 수집하여 지어낸 날조라고 주장해왔었다. 그러나 이제 이들 가련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추정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이사야가 실존하지 않았다는 비성경적이고, 이제는 고고학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밝혀진 주장은,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방해하고자하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언의 성취를 지우는 시도 중 한 가지 방법은, 예언된 사건들 훨씬 이전에 예언의 말씀이 성경이 쓰여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의 기록처럼, 그들은 창조, 노아 홍수, 출애굽과 같은 성경의 기록들을 부인하려고 한다.[4] 신약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고 많은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이사야의 한 예언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세부 사항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록해놓고 있다.

이러한 두 인장의 발견 이전부터, 이사야를 진정한 선지자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이사야의 예언이 신약에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발견되고 있는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또 다시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azar, E. 2018.Is This the Prophet Isaiah’s Signature?Biblical Archaeology Review. 44 (2): 64-73, 92.
2. Impression of King Hezekiah’s Royal Seal Discovered in Ophel Excavations South of Temple Mount in Jerusalem.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News. Posted on new.huji.ac.il February 12, 2015, accessed February 23, 2018.
3. Steimann, A. E. 2011. From Abraham to Paul.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4. 2 Peter 2:1-2; 3:1-7.

*Brian Thomas is Science Writ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관련기사 : 이사야 선지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장 발견 (2018. 3. 7.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0164

'선지자 이사야 인장 발견… 이름 직함 선명” (2018. 3. 23. 교회와 신앙)
http://m.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249

2700년 된, 성서 속 히스기야왕 인장 발견 (2015. 12. 3.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9187237

2700년 된, 성서 속 히스기야왕 인장 발견 (2015. 12. 3. 뉴시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51203_0010456203

히스기야 왕 인장 발견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q1LbBwIqCI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archaeological-evidence-for-prophet-isaiah

출처 - ICR, 2018. 3. 22.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08

참고 : 1412|1413|1536|1756|1790|2245|2515|2525|2530|2688|2746|2797|2996|3020|3022|3055|3148|3162|3166|3208|3218|3233|3249|3633|3641|3872|3945|4043|4071|4100|4148|4237|4480|4329|4376|4383|4385|4387|4390|4391|4394|4399|4413|4414|4416|4450|4451|4452|4463|4488|4492|4599|4578|4514|4868|4726|4725|4723|4718|4714|4713|4819|4878|4872|5018|5034|5094|5275|5395|5415|5402|5463|5514|5638|5741|5852|5861|5969|5985|6017|6066|6071|6089|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6657|6679|6697

Bodie Hodge
2017-12-25

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할 메시지! 

(Christmas Sermons—Are Churches Preaching an Irrelevant Message?)


     일상적인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불신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목회자와 교회에 유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절기에 나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몇몇 크리스마스 설교들을 들어왔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관을 잃어버린 서구 문화에서, 크리스천들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 신앙에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친구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고, 함께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격했었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나에게 본인이 생각해왔던 질문을 했다. 그는 내게 예수님, 말구유, 동방박사,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목동들, 천사들에 관해서 묻지 않았고, 대신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땅에 악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왜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잔인하게 잡아먹고 살아가도록 만드셨는가?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생물들을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창조하셨다가, 왜 멸종시키셨는가?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거슬러,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길게 연장하려고 노력하는가?” 그는 계속해서 ”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천국에 가면 되지 않겠는가? 왜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으려고 애쓰는가?” 였다.

그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오늘날 공교육과 교육시스템, 그리고 언론 매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 진리로서 성경을 거부하도록 계속 유도하며, 세속적 문화로 인해 점점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믿는 믿음은 공격받고, 조롱당하며, 비난받고 있다. 왜냐하면, 소위 과학(진화론)이 그것이 사실일 수 없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경 '창세기'는 실제 역사가 아닌, 신화들과 비유들을 모아 놓은 '이야기 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내 친구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질문은 수년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슬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죽음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창세기에 기록된 이 세계의 참된 역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야하는 크리스마스 설교는 성경의 창세기를 신화로 여기지 않는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한 목회자는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를 상기시켜줄 수 있다. 내 친구는 대답이 필요했다. 나의 대답을 통해, 그는 설교를 듣기 전에 성경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을, 그의 기독교 신앙을 방해했던 것을 나에게 물어주어서 기뻤다.

내 친구는 죽음과 고통과 죽어감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죽음이 원수(enemy)이며, 죄로 인해 들어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린도전서 15:26). 하나님이 죽음을 만드시고 창세기 1:31절에서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였다.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고 설명했고, 아담이 처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로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해주었다.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지구는 수십억 년이 되지 않았고, 사람 이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죽음, 질병, 고통, 육식 등이 있지 않았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계속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의롭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죽음으로 죄를 심판하셔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 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사람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분의 권능을 일부 거두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질병과 고통과 같은 일들을 허락하시지만, 이것에 대해 비난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비난받아야할 대상은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내 친구의 머리에 전등이 켜지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자, 성경은 그에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창세기에 기록된 진리 대신에, 수십억 년의 장구한 시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 친구와 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대신 그들의 질문과 벗어난, 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관계없는 메시지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The 'god” of an Old Earth'을 참조하라. 아래 관련자료 링크 94번)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친구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진정한 설명으로 성경을 거부하도록 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는 데에 주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에 교회로 올 수 있다. 나는 목회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크리스마스 설교로 이 이슈를 들려줄 것을 기도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이 진리임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줄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초

내가 전에 들었던 한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목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기초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하면서 누가복음 2장으로 갔다. 나는 즉시 ”거기는 크리스마스의 기초가 아닌데, 거기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일 뿐인데”라고 속삭였다.

크리스마스의 기초는 훨씬 더 후퇴한다. 그것은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초기 언급은 창세기 3:15절에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여자의 후손)의 예언이 있었다. 그들은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처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많은 언급은 예수님이 이삭의 후손이라는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창 28:13~14).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설교가 시작되어야하는 곳이다. 특히 성경의 이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고 세뇌된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람들이 베들레헴, 목동들, 동방박사에 관한 설교를 들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성경은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창세기는 죽음이 창조된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한, 아담의 죄에 관한 나쁜 소식에 대해 우리가 먼저 배워야하는 곳이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창세기에 있는 나쁜 소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복음)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의 나쁜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받아들여야할 필요성을 이해시키기 전에, 그들이 왜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적절한 기초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현대 과학은 이 역사적인 문서를 반증하지 못했으며, 과학은 창세기의 기록이 실제로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창세기의 기본 진리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동정녀의 몸에서 오셔야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크리스마스와 그 기초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What Is Christmas?)”을 읽어 보라.


왜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는가?

창세기로 돌아가서, 나쁜 소식은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음이 이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창 2:17). 로마서 6:23절은 죄의 대가가 죽음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죄를 갚기 위해 무엇인가가 죽어야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을 죽이신 이유이다(창 3:21). 어떤 동물이 희생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 복음을 예표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한 마지막 희생 제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순종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이 패턴을 따랐다. 그러나 동물은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누군가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형벌을 받아야할 때, 그 형벌을 스스로 당신이 감당하시는 것은 은혜와 자비이다. 이것이 우리의 창조주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이다. 그는 인간으로 오셔서(그러나 신성을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사망을 선고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이 그 형벌을 대신 지심으로, 우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해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갖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갚기 위한 마지막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완전한 삶을 사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유이며,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새 아담', '완벽한 아담'이 되셔서, 아담의 자손을 위해 죽으실 수 있었고,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성경은 사랑의 가장 위대한 행동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요 15:13). 성경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정말로 동정녀에서 태어나셨는가?

창세기 3:15절 외에 이사야서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것이 징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이 예언은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God with us)”이라는 의미였다. 동정녀 출생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Is the Perpetual Virginity of Mary a Biblical View?를 보라.

특히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마태복음 1:1~16절에 있는 요셉의 족보는 여호야긴(여고냐)이 요셉의 직계 조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예레미야서에서 여호야긴에게 주어진 저주를 읽어 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22:30)

다윗의 왕좌에 영원히 앉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여호야긴의 후손이 될 수는 없었다. 여호야긴의 후손은, 따라서 요셉의 후손은 다윗의 보좌를 상속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처녀가 되어야 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리실 것임을 확인해준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7)


동방박사의 중요성

몇 명의 동방박사들이 왔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단지 두 명 이상이고, 그들이 세 가지 선물을 가져왔다는 것만 안다.(더 자세한 정보는 ”We Three Kings”을 참조하라.) 마태복음 2:1~11절은 이 동방박사가 이스라엘로 인도한 별을 따라 동방에서부터 여행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What Was the Christmas Star?” 참조)

이 박사들은 약속된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다. 박사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동쪽에서 왔다. 아마도 페르시아일 가능성이 있지만, 동양일 가능성도 있다. 아기 예수님께 선물과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먼 거리를 왔다는 사실은, 이 사람들이 창세기 역사와 관련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먼 타국에서도 약속된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바벨탑에서 흩어지면서, 지구의 모든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6대륙에 흩어져 살 때까지 계속 이주해 나갔다 ('Flood Legends” 참조). 또한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세상의 많은 곳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동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창세기 기록과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들의 문자(한자) 속에 상징으로 들어있다. 심지어 그들은 거대한 홍수 동안 창조주이시며 사람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상제)께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을 참조. 아래 관련자료 링크 93번).

이것은 바벨탑 이후 어떤 시점까지 동쪽으로 이주해갔던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실제로 알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귀중한 정보들을 잃어버렸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박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현명한 사람들이었다.(아마도 페르시아에서는 다니엘이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 이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를 잃어버린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성경적 역사와 성경의 신뢰성과 대한 확증은 바벨탑에 대한 성경적 기록이 정확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진실한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수십억 년'의 역사를 받아들였고, 동방박사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중요성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와서 예물을 드리고(시편 72:10), 지역 목동들이 그 앞에 굽히고(시편 72:9)와 같은 성취된 예언, 헤롯 왕이 두 살 아래 아기들을 죽인 사건(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6~18), 한밤중에 애굽으로 피하라는 현몽(마태복음 2:13~15) 등은 이 아기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몇 가지 징조였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권좌에서 내려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 분은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사셨지만, 하늘의 완전함을 이 땅에 남겨놓으셨다. 이 아기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러 오셨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예수님께서는 지구 역사상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 땅에 오셨다. 과거를 숙고해보고, 이 중요성에 대한 큰 그림을 얻자. 아래 다이어그램을 참조하라.

아담과 하와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을 때, 100%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노아 시대에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유일한 지상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인구가 계속 증가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비율은 매우 낮아진다.

하나님이 홍수를 보내신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사람들은 다시 거의 100% 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인구가 재번성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비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세계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위의 그림은 이러한 일반적인 원칙을 설명한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조차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따랐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았다. 믿었다면 메시야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동방박사들, 마리아, 요셉, 안나, 시므온, 세례 요한의 가족들과 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렸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매우 낮은 비율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것은 역사상 가장 낮은 비율의 시점이었기 때문에, 오신 시기는 매우 중요했다. 그 사명을 완벽하게 완수하셨으며,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값없는 구원의 선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크리스마스 날에 축하해야 하는가?

어셔 대주교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경에 태어났다. 예수님은 어느 날에 태어났을까? 우리는 알지 못하며, 성경은 그 날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크리스마스(12월 25일 그레고리력)로 선택된 날짜는 예수님이 태어난 날짜가 아닐 것이다 ('The Origin of Christmas” 참조). 회의론자와 비판론자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efense of Christmas’를 읽어 보기 바란다. 문제는 실제 날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악하고, 그것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다음은 내 개인적 견해이며, AiG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우리가 크리스마스 날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면(롬 14:5-6), 그 날이 어떻게 악한 것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은 로마 이교도의 축일에서 왔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매일 날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드려야한다고 말했다.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날에 하나님을 경축하는 것을 거절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사실 성경은 이것을 장려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시 86:12)

'영원토록'은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아 10:1~6절에서 장식된 나무를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죄가 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마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장식된 나무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면(거짓 신과 반대로),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탄생일을 휴일로 기념하도록 사람들에게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이 그 반대도 금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제 내가 틀렸다고 하지 말라. 나는 이 글에서 크리스마스 날을 축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금지시킬 이유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전할 메시지에 대한 결론

목사님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이 특별한 연휴 기간 동안,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 :

▶ 크리스마스는 아담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태어나시고, 살다가, 고통당하시고, 죽으셨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상생활의 안락함을 떠나야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이번 휴가철에 교회에 올 때, 그들이 묻는 질문들에 우리가 답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Answers의 글들을 참조하라.

크리스마스 설교나 일상 대화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토론은, 복음서에 나오는 좋은 소식(복음)과 함께, 창세기의 나쁜 소식도 같이 설명해 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에 불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불신자들에게 요청하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holidays/christmas/making-the-christmas-sermon-relevant-for-todays-culture/

출처 - AiG, 2017. 12. 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49

참고 : 3967|2942|6652|6414|6401|638|4140|5578|5440|5163|4804|4726|4725|4713|4514|4387|6152|6153|6433|6657|6135|6070|5889|5886|5723|5638|5306|5090|4685|4663|4635|4463|4414|6283|5870|6642|5725|5628|3589|3689|6376|3168|1756|2797|2936|2982|3020|3024|3331|3628|3640|3641|3654|3932|4204|4297|4375|4380|4440|4487|4492|4540|4869|5033|5035|5094|5265|5275|5381|5394|5542|5627|5923|5969|6044|6064|6066|6071|6107|6110|6146|6189|6351|6360|6477|6480|6491|6512|6581|6639|6353|3945|1536|2016

Ken Ham
2017-10-06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기인가? 

(Is It Time for a New Reformation?)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라. 우리의 문화나 교회나 새로운 개혁(reformation)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의 절대적인 권위로서 성경(the Bible)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자유주의, 진화론, 영지주의, 모르몬교, 이슬람, 뉴에이지, 도덕적 이슈들(예를 들어, 낙태나 동성애), 지구의 나이 등과 같은 것들은 궁극적으로 모두 같은 이슈들에 대한 전투이다.

고린도후서 1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영감하에서 우리에게 일찍부터 있어왔던 위험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바울은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방법을 우리들에게 계속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크리스천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즉, 사탄은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순전히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창세기 3:1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태초부터 전투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authority)에 관한 것이었다. 최초의 여성 하와와 그녀의 말을 따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말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대신에 그는 진실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인간적인 이성(human reason)에 의존하였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반란은 전체 인류를 죄로 몰아넣었다. 모든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를 본질적으로 상속받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 대신에 인간의 이성을 그들의 절대 권위로 만들어놓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는 이러한 전투는 인류 역사의 모든 시대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채로 지속되어져 왔다.

바울은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었던 회의론자(skeptics)들에 언제나 직면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사람 자신이 신이라고 가르쳤던 영지주의(Gnosticism)를 포함하여 성경의 권위에 대한 여러 도전들과 싸웠었다. 공룡들의 나이, 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carbon dating)과 같은 현대의 이슈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래된 공격들의 새로운 형태들일 뿐이다.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였다. 그리고 타협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로 돌아가는 교회의 개혁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16세기에 죄가 용서되고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인간의 생각을 올려놓는 최절정의 사건이었다. 수도사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면죄부 판매에 도전하면서, 비텐베르크 교회(Wittenberg Church)의 정문에 그의 95개 조항을 게시하였다. 이 행동은 궁극적으로 교회 위에 성경의 권위를 두어야한다는 것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개혁 운동에 연합하였다. 성경과 책자들이 새로운 인쇄기들로 인쇄되었고, 성경적 진리가 널리 퍼져나감으로서, 서구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사실 최근 수십년 전까지도 서구 세계의 많은 부분들은 아직도 종교개혁에 의한 영향을 받아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일련의 사람들과 사건들은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결과들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으려 시도하였다. 그러한 공격 뒤에는 인간의 이성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들려는, 그리고 사람들을 하나님 말씀의 권위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것은 창세기 3:1절에 대한 또 다른 발현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성경에 대한 공격은 강렬해졌다. 지구의 나이에 관한 새로운 추정과 진화론은 성경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핵심적인 이슈들은 예수님의 빌라도 법정 이후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재판으로, 그리고 문화 형태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재판이었다고 말해지는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에서 드러났다.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은 사실 흔히 믿어지고 있는 것처럼 진화론 교육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재판은 기독교 전체를 법정에 세우려는 미국 자유시민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치밀하게 계산된 책략이었다. 비록 기소자 측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훌륭했던 기독교인 정치가였지만, 그의 기독교 신앙은 창세기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서있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는 가인(Cain)의 아내에 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그 재판은 기독교계와 미국 사회에 하나의 커다란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다. 전 세계의 언론매체들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창세기)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적절히 방어할 수도 없어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에 대한 교회의 실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황폐함을 가져다주었다. 한 예로 한때 유명한 복음전도자였던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이 있다. 그는 신학교에 있을 동안에, 수억 년의 지구 나이를 포함하여 진화론적 시간 틀을 믿도록 교육받았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창세기 1-11 장의 성경적 권위에 대한 타협(Compromise)은 교회를 너무도 약하게 만들어서, 성경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충격을 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대게 인간의 이성(human reason)이 교회 내로 침입하여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을 옆으로 밀어놓기 때문에 발생해왔다.

오늘날 새로운 개혁이 요구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위에 견고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세대의 개혁자들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되었다. 가령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과 같은 성경적 창조과학 사역들은 오류 많은 인간들의 이론들을 쫒아내고 전적으로 성경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도록 하는 많은 일들을 이미 해오고 있다. 

이제 믿는 자들이 창세기 1-11장을 교회들의 문 앞에, 그리고 대학과 박물관들과 같은 이 세상의 세속적 건물들의 문 앞에 게시하고 목소리를 내야할 시기이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잡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세상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Ken Ham is the founder and president of Answers in Genesis-USA. He has authored or co-authored many books concerning the authority and accuracy of God’s Word and the effects of evolutionary thinking, including Genesis of a Legacy and The Lie: Evolution.

 

*참조 : The Reformation of the 16th Centur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reformation-sixteenth-centu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new-reformation

출처 - Answers, 2007. 10. 1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95

참고 : 3024|2346|2313|2864|548|2942|2797|2016|3640|3654|4375|4380|2067|3677|4010|2061|2530|2321|4868|4870|4872|4878|4982|4985|5094|5271|5275|5332|5394|5395|5402|5415|5440|5463|5514|5578|5625|5627|5628|5711|5723|5741|5753|5852|5861|5870|5882|5886|5889|5910|5985|5986|6044|6017

Shaun Doyle
2017-09-05

가나안 인의 DNA 분석은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했다. 

(Canaanite DNA disproves the Bible? 

Or, Canaanite DNA disproves media’s ability to read the Bible)


     최근 언론 매체들은 '가짜 뉴스'가 성경을 공격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연구자들은 3,750년 전 가나안 인(Canaanites)들이 살았던 고대 도시 시돈(Sidon)에서 발굴된 사람의 두개골에서 DNA를 추출하였다. 이 지역은 성경에 언급된 가나안(Canaanites) 인들에서 유래됐던 고대 페니키아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이다. 민수기 13:29절은 가나안 인들이 거주했던 구체적인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DNA 염기서열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그 DNA를 현대 레바논 사람들의 DNA와 비교하여, 현대 레바논 인들은 그들 조상의 약 93%가 이들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를 의심할만한 이유는 거의 없어보였다. 그리고 역사적 기록이 부족할 때, 어떻게 유전학이 역사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성경을 비판하는 과학부 기자들은 재빠르게, 그 결과는 성경이 틀렸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

”청동기 시대의 DNA는 가나안 사람들이 멸망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을 반증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유전자는 현대의 레바논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었다.” (Daily Mail. 2017. 7. 27)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쓸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레바논에 살고 있는 그들의 후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The Independent. 2017. 7. 27.)

”과학자들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오늘날에 살아남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 성경은 틀렸는가?” (Tech Times. 2017. 7. 28)

”새로운 DNA 연구는 성경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Mother Nature Network. 2017. 7. 27)

”성경은 틀렸다 : 하나님이 죽이라고 명령했던 문명이 아직 살아있었다.” (Express. 기사 삭제)

”유전적 증거는 결국 가나안 인들이 멸절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Ars Technica. 2017. 7. 28)

”가나안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 소멸되지 않았다.” (Newser. 2017. 7. 29)

”연구는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멸절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었다.” (Telegraph. 2017. 7. 28)

”DNA 대 성경 :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멸절시키지 않았는가?” (Cosmos. 2017. 7. 28)

”성경은 틀렸다. 고대 가나안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의 DNA는 현대 레바논 인에 살아있었다.” (Pulse Headlines. 2017. 7. 27) [1,2]

그러나 성경은 이들 언론 매체들의 주장과는 정확히 반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가짜 뉴스 제목들의 목록은 더 길었지만, 초기 보도 이후에 몇몇 기사들은 그들의 제목을 변경하고, 내용을 다소 수정하고 있었다. 댓글 작성자들은 대체적으로 아래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이유들로 그 기사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 나열된 기사들은 여전히 수정을 하지 않은 채로, 문제를 가진 기사를 그대로 남겨놓고 있었다.

유명한 잡지조차도 그 내용을 수정하고 있었다. Science 지(2017. 7. 27)는 그들의 기사에 대한  '업데이트'를 추가하고 있었다 :

 7월 28일 업데이트 : 이 기사와 제목은 성경에 있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서 업데이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의 멸절을 명하셨지만, 일부 성읍에서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 같다.

일부 가나안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 같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 땅에서 거주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DNA 증거가 가리키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업데이트 전의 Science 지의 원래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고대의 DNA는 미스터리한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성경적 설명과 모순된다” 였다.[3] 즉, 위에서 나열한 오류 기사들 목록에 포함되는 수치스러운 기사를 게재했던 것이다.


성경은 가나안 사람들의 운명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분명히 이들 '보도'들은 DNA 증거가 성경의 기록과 ”모순되는” 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성경이 틀렸다고 조롱하는듯하게 보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민수기 33:55절은 보자 :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민수기 33:5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은 남아있게 됐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DNA 분석 결과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가?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if you do not drive out the inhabitants of the land)...”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의 멸절, 학살, 전멸, 파괴를 명령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몰아내길(drive out) 원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냈는가? 여호수아 16: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분명히,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나지 않았고, 거주하며 노역하는 일을 했으며, 멸절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도살하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쫓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에 다시  한번 주목하라. 진멸하는 일은 가증한 일들을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트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가나안 사람들을 예속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사사기 1:27~36절에서 더욱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행하지 않았음을 대한 긴 목록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쫒아내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마침내, 이 모든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평결은 사사기 2:1~3절에 나온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는 대신에,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면서 예속시켜버렸다. 민수기 33:55절에서 경고하셨던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하라.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그리고 보라.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는가? 성경 전체를 통해, 심지어 신약성경(마태복음 15:22, 마가복음 7:26)에서도, 가나안 사람들은 원래 이스라엘 지파들에 배정된 땅에 살아왔던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을 죽여야 했는가, 쫓아내야 했는가?

그러나 신명기 20:16 절과 같은 구절은 무엇인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이것은 신명기 20:10~15절의 성읍들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일반적인 규칙에 있어서 하나의 예외적인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은 그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성읍들을 복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명기 20:18절은 그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다 :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다른 말로 해서,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세기 후에 심판을 받게 되는(창 15:16), 도덕적으로 가증한 일들을 행하던 타락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16절은 일반적인 땅이 아니라, 요새화된 성읍들을 특별히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그 성읍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요새화된 성읍에서 그들은 보호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말로하면, 성읍에 남은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한 사람들이었고, 그 땅에서 나가기를 거절했던, 가장 완고하며 반항적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그들을 쫓아내라”와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는 상호 주의깊은 해석이 필요한 구절이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행할 수 있는 선택은 추방 또는 죽임이었다. 추방은 이스라엘이 한 성읍에 들어왔을 때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제공되는 첫 번째 옵션이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 전에,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하셨던 일들을 들었기 때문에, 심히 두려워했고 간담이 녹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여호수아 2:9~11) (상세한 정보는 Does the Bible condone slavery, abuse of women or mass murder?을 보라).[4]


고고학은 이스라엘의 정복을 부정하는가?

일부 기사들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은 여호수아의 정복(Conquest)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랜 시간 후에 의도적으로 쓰여진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실제로 사실이라는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있다. 핵심은 표준 이집트 연대기는 축소되어야만 하고, 고고학자들이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시기를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여리고 성벽(The walls of Jericho)’, ‘여리고 이야기(The story of Jericho)’,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Egyptian chronology and the Bible)’을 읽어 보라. (아래 관련자료 링크 1~8번 참조)


과학부 기자들은 성경의 정확성이 입증됐다는 보도를 왜 그렇게 싫어할까?

우리는 기원(창조-진화)에 관한 토론에서 그 사람의 세계관 또는 편견이 증거들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를 항상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 '가짜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이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사들에 대한 인터넷 댓글을 보고서 그것을 수정했다(그것도 일부 언론 뉴스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자극적인 제목만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많이 읽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사례는 언론 매체들이 매우  반-성경적(반-기독교적) 입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창조-진화 논쟁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쓴 뉴스가 아니다. (창조-진화 논쟁에서도 진화론의 문제점에 대해서, 장구한 연대를 부정하는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무조건 창조과학자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이) 이 사례는 진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과학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번에는 고대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새로운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다음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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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Answering Bible skeptics
Countering the Critics Questions and Answers
Archaeology Questions and Answers


Related Media
Does the Bible condone slavery, abuse or mass murder? (Creation Magazine LIVE! 6-08)


References and notes
1. Adapted from Klinghoffer, D., For Culturally Illiterate Science Reporters, Canaanite DNA Yields Occasion to Slap Bible Around, evolutionnews.org, 29 July 2017.
2. There were some exceptions to this trend, like Fox News, but they seemed to be in the minority.
3. This original title is still reflected in the url for the Science article: sciencemag.org/news/2017/07/ancient-dna-counters-biblical-account-mysterious-canaanites.
4. A useful in-depth defense of the morality of the Israelite conquest is Copan, P. and Flanagan, M., Did God Really Command Genocide? Baker Books, Grand Rapids, Michigan, 201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canaanite-dna-confirms-bible , http://www.icr.org/article/10173

출처 - CMI, 2017. 8. 4. (GMT+1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79

참고 : 3872|3148|1412|1413|4463|5985|6089|1536|1756|1790|2245|2515|2525|2530|2688|2746|2797|2996|3020|3022|3055|3162|3166|3208|3218|3233|3249|3633|3641|3945|4043|4071|4100|4148|4237|4480|4329|4376|4383|4385|4387|4390|4391|4394|4399|4413|4414|4416|4450|4451|4452|4488|4492|4599|4578|4514|4868|4726|4725|4723|4718|4714|4713|4819|4878|4872|5018|5034|5094|5275|5395|5415|5402|5463|5514|5638|5741|5852|5861|5969|6017|6066|6071|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

Brian Thomas
2017-01-30

성경은 누가 썼는가? 

: 사해사본과 엔게디의 불에 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Who Wrote the Bible?)


      최근에 나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젊은이의 고등학교 교사는 그에게 성경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나, 사도들이 선교를 위해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과 같은 사건들은, 그것들이 기록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일단의 가톨릭 성직자들이 이것저것을 함께 모아 만든 것이 성경이라는 것이었다. 그 교사의 말은 맞는 것인가?


시대가 흘러도,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한 것이라고 성경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시편 12:6,7)[1] 반면에, 내가 만난 젊은이와 그의 교사는 성경을 기록하고 필사했던 사람들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경에는 오류와 실수가 들어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러한 생각을 거부할 수 있는 새로운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 사해사본)는 성경의 기록을 확증하는 고고학적 발견의 긴 목록에서 상단에 위치한다.[2] 유대 필경사는 이스라엘의 사해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절벽 동굴에 이 성경 두루마리를 숨기고, AD 68년 로마 제10군단이 그들을 점령하기 전에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1946년에 우연히 발견된 이 두루마리 성경에는 많은 성경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항아리들은 타임캡슐과 같이 고대 문서들을 보존했다. 현대의 성경과 비교해보았을 때, 사해문서는 성경이 전래된 후 2,000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약간의 철자법 변경 등이 있었지만, 모든 절의 기본 내용은 변경되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이 필사되거나 전달될 때, 손상되고 오류가 생겨났다는 주장들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또 다른 고고학적 발견도 성경의 완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1970년 이스라엘의 엔게디(Ein Gedi)에서 3세기의 두루마리 성경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그것은 불에 타있었다. 부서짐 없이 그것들을 펴서 읽어볼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문가들은 잉크 잔해를 읽어낼 수 있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X-레이 스캔을 사용하여, 3D 이미지로 사실상 '열어볼' 수 있게 되었다.[3] 이제 전문가들은 처음으로 겹쳐서 구부러진 두루마리 내부에서 히브리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4]


히브리어 대학의 엠마누엘 토브(Ammanuel Tov)는 두루마리 스캔에 관한 기술 보고서를 공동 저술했다.[5] 그는 AP 통신(Associated Press)에서 오늘날 성경 번역에 사용됐던 히브리어 레위기와 '100% 일치'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단히 놀랐습니다. 2000년 동안 이 텍스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4]


이 발견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1]

성경의 말씀도 사람이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별개가 아니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6] 그리고 그 이후로 하나님의 신실했던 종들이 정확한 단어들을 꼼꼼하게 필사해 왔던 것이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편 119:160)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References

1.Psalm 12:6-7.
2.Price, R. 1997. The Stones Cry Out. Eugene, OR: Harvest House Publishers.
3.The process resembles the computed tomography (CT) scanning technology used in hospitals.
4.Estrin, D. Scanning software deciphers ancient biblical scroll. Associated Press. Posted on bigstory.ap.org September 21, 2016, accessed September 22, 2016.
5.Seales, W. B., et al. 2016. From damage to discovery via virtual unwrapping: Reading the scroll from En-Gedi. Science Advances. 2 (9): e1601247.
6.2 Peter 1:21.


*관련기사 : 새까맣게 타버린 1천500년 전 성서 첨단기술로 해독 (2015. 7. 2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21/0200000000AKR20150721107100009.HTML

1,500년 전 불탄 성경, 첨단 기술로 해독 성공 / YTN 사이언스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4_FNm9rEis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유대 광야 (사해 사본) (2013. 12. 6.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819112&code=23111617&sid1=se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700

출처 - ICR, Acts & Facts. 45 (12). 201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33

참고 : 

4663|4878|4872|4870|4868|4726|4725|4723|4718|4714|4713|4599|4578|4540|4514|4492|4488|4480|4463|4452|4451|4450|4416|4414|4413|4400|4399|4394|4391|4390|4385|4383|4387|4376|4375|4329|4685|4237|4148|4100|4071|4043|3945|3932|3872|3707|3689|3641|3633|3628|3311|3302|3249|3233|3218|3208|3166|3162|3148|3020|3022|2530|2321|2688|2525|1756|1793|1790|4819|2330|5861|5753|5723|5638|5628|5578|5555|5514|5094|5395|5275|5271|5035|5034|5033|5886|5986|6071|6205|6235|6179|6283|6351|6353|6387|6360|6401|6432|5561|67

Russell Grigg
2016-12-15

모세는 창세기를 정말로 썼는가? 

: 성경을 훼손하고 있는 사기적인 문서가설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위조된 학문에 의거하여, 모세의 창세기 관련성을 부정하는 치명적인 가설이 미래에 기독교 지도자가 될 사람들에게 아직도 널리 가르쳐지고 있다.

거의 모든 자유주의 성경대학, 신학교. 그리고 또한 보수적인 복음주의적 교리신앙을 고백하는 일부 학교들조차 안타깝게도 ‘JEDP 가설’로서 알려져 있는 ‘문서가설(documentary hypothesis, 문서설)’에 동조하여 이를 가르치고 있다.


문서가설이란 무엇인가?

이 가설은 모세(Moses)가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모세오경) 기록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적/비판적(liberal/critical) 견해이다. 모세 생존 이후(이 견해에서 그가 생존했다면), 최고 900년에 이르기까지 몇 세기 동안 구전으로 내려온 것들 중에서, 여러 익명의 저자들이 이 다섯 권의 책들을(다른 구약 성경 부분들도) 편집했다고 가르친다. 이 가설에 의하면 그들 편찬자(narrators)들은 다음과 같이 지명된다 :

(문서가설을 세운 사람들이 이 편찬자를 Jahwist 라고 명명한 것을 상징)는 아마 대략 BC 900~850 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그녀/그들은 바빌론과 다른 국가들의 신화와 전설들을 모으고, 그것들에 히브리 사람들이 ‘모닥불 가에서 들려주던 이야기(camp-fire stories)’를 추가하여, 옛 히브리어 문자인 YHWH(‘여호와’, ‘Jehovah’)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성서 구절들을 만들었다.

(Elohist 를 상징)는 아마도 북왕국(이스라엘)에서 대략 BC 750~700년 경에 살았고, ‘엘로힘(Elohim)’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된 성서 구절들을 썼다.

D 는 아마 BC 621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된 신명기(Deuteronomy)의 대부분을 썼다. (열왕기하 22:8).

 P 는 바빌론 포로시절에 살았던 한 제사장 (a Priest/ 혹은 제사장들)을 나타내며, 백성들을 위한 신성한 법전(a code of holiness)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된다.

◇ 여러 편집자들 R (독일어 문필가(Redakteur)로부터 따옴)이 아마도 그것들을 모두 집대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들의 원저자들이 다수라는 생각은 최초로 1753년에 파리의 (의사였던) 쟌 아스트룩(Jean Astruc)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 인물은 ‘그 당시 철학연구 모임들에서 만연되어 있던, 역사를 진화론적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 문서가설을 재차 말했던’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이었다.[1, 2] 그는 정교한 교리 (유일신 하나님, 십계명, 성막 등)를 다루었던 구약성경의 일부를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진리가 아니고, 다신교(polytheism), 정령설(animism), 조상숭배 등 낮은 상태의 사고 수준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3]. 따라서 모세 이후의 저자들을 찾거나, 이들을 날조할 ‘필요’가 있었다. 주요 주장들 중 하나는 모세시절에 아마도 이 성경구절들은 아직 창작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문서가설은 창세기의 창조/타락/홍수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족장들 전체의 역사적 확실성을 침해하고 있다. 그것은 구약성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학적 사기(literary fraud)임을 전제로 하고, 모세의 온전함(integrity)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신뢰성/신성을 의심케 한다. 성경 비판가들이 이 가설을 그토록 따뜻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세는 J, E, D, P, 혹은 R 이었는가?

답변 : 모세는 위의 어느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모세 자신이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이자, 편집자였다. 이 다섯 권의 책들은 바빌론 포로기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BC 1400년 경에 모세에 의해서 저술된 것이다. 이 말은 모세가 입수 가능한 문서들을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이 글의 뒷부분을 보라), 그의 죽음을 기록한 신명기 34절의 마지막 몇 구절들을 그가 썼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구절들을 신의 영감에 의해 여호수아가 추가했다고 탈무드(Talmudic, Rabbinic Jewish) 전승에 전해오고 있다.

J, E, D, P, 또는 R 가설을 지지하는 어떠한 외부적 증거도 없다.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그밖에 이 의심스러운 문학자들이 쓴 기록이 무엇이 있었는가? 세속적인 역사나 이스라엘 역사 모두에서 그들에 대한 어떠한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단지 문서가설의 발명자들만이 품고 있었던 풍부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모세가 오경(Pentateuch)의 원작자라는 증거

성경에서 ‘율법’ (‘the Law’, Hebrew torah)으로 자주 언급되어있는 오경을 모세가 썼다는 증거들은 압도적이다 :

1. 벨하우젠과 기타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는 반대로, 고고학적 연구는 모세 시대에도 기술된 문서(writing)들이 정말로 잘 알려져 있었음을 입증했다. JEDP 가설은 인근 국가들이 모세 시대 이전부터 그들의 역사와 종교를 문서 기록으로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스라엘 민족만이 국가 수립 후 몇 세기가 지날 때까지도 그들의 역사와 법률을 문서화하지 못했다는 근거 없는 추정을 하게 한다. [4].

2. 저자는 분명히 그 지역의 지리학과[5] 동, 식물상에 익숙했으며[6], 분명히 이집트로부터의 출애굽을 한 목격자였다. 그는 여러 이집트 단어들을 사용하였고[7], BC 2천년 전의 풍습들을 언급하고 있다 [8].

3. 오경은 모세가 저자임을 많은 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17:14, 24:4-7, 34:27, 민수기 33:2, 신명기 31:9,22,24절 등이다.

4. 구약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모세가 저자였음이 자주 언급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 1:7–8, 8:32–34, 사사기 3:4, 열왕기상 2:3, 열왕기하 14:6, 21:8, 역대하 25:4, 에스라 6:18, 느헤미야 8:1, 13:1, 다니엘 9:11–13절 등의 기록이 그것이다.

5.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모세의 집필 혹은 모세의 법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8:4, 19:7–8, 마가복음 7:10, 12:26, 누가복음 24:27,44, 요한복음 5:46–47, 7:19절 등이다.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즉, 거부하는 사람들은)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6:31). 따라서 모세가 집필했다는 역사적 확실성을 부인하는 교회와 신학교들은 역시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문자 그대로의 몸의 부활도 부인하는 것을 보게 된다.

6. 신약성경의 다른 연설자/저자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17, 사도행전 6:14, 13:39, 15:5, 고린도전서 9:9, 고린도후서 3:15, 히브리서 10:28 등이다.


이집트의 폐허. 모세오경의 본문에 나오는 내부 증거들은 오경의 저자가 모세처럼 이집트의 풍습에 익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모세가 이전의 어떠한 정보도 참조하지 않고 창세기를 썼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창세기는 모세 출생 이전에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들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모세는 아마도 족장들의 기록과 또는 이 사건들의 신뢰할 만한 구전들을 매우 잘 입수 했었을 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 이런 기록들은 이미 문자화되어 (아마도 점토판(clay tablets)에) 확실히 보존되었을 것이고, 아담-셋-노아-셈-아브라함-이삭-야곱 등을 경유하여 부자간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창세기에는 ‘대략이(계보가, 후예는) 이러하니라’ (These are (or ‘This is the book of’) the generations of...) 라는 구절이 11번이나 등장한다. (KJV 참조 : 창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6:9, 37:2). ‘대략(generations, 계보, 후예, 사적, 약전)’ 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톨레돗(toledoth)’은 또한 ‘근원 (origins)’, ‘역사’ 또는 심지어 ‘가족 역사(family history)’를 의미할 수 있고, 그리고 각 구절은 호명되는 사람이 연루된 역사적 사건들의 앞이나 뒤에 따라 나온다 [9].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은 아담, 노아, 셈 등 각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 동안 또는 이전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기록했고, 모세는 성령의 확실한 영감으로 이 기록들을 선택하고, 모으고, 편집하여 현재 일맥상통한 상태의 창세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10]. 

창세기는 벨하우젠의 진화론이 요구하는 것처럼, 우상숭배로부터 유일신으로의 진행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시로 시작하고,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거부하고, 결국 하나님에 의해 바빌론에게 포로로 넘겨지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다른 단어들이 사용된 것은 무엇인가?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단어 ‘엘로힘(Elohim)’은 창세기 1:1절에서 2:4a 까지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25번 사용되었다 [11]. 이 호칭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권능과 주권을 가지신, 창조했던 물질 세계보다 상위에 계시는 전능하시고 경외스럽고 신실하신 존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높은 호칭 (=‘하나님, God’)이며,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에 대한 최초의 실제적 기록을 위해 모세가 사용했던 적절한 단어였다 [12].

창세기 2:4절부터, 하나님을 언급할 때는 히브리어로 문자 YHWH를 사용한다. 때때로 이것은 ‘여호와(Jehovah)’로 번역되며, 더 자주 ‘주’ (‘Lord’, 첫자만 대문자로)로 번역되는데, 이것이 구약성경(6,823 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 단어는 ‘항상 계셨고, 현재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분’을 뜻하며, 하나님의 매우 개인적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개인적이고 계약적인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창세기 2:4b 이후에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던 방법과 그가 그들을 위해 준비했던 배경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13]. 여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14], 그리고 서로 간에 사랑의 계약적 교제 가운데 살아가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세가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호칭으로 YHWH를 사용해야만 했던 것은 매우 적절했다. 창세기 2장에서, YHWH는 Elohim에 연결되어 합성 이름인 YHWH-Elohim (= 여호와 하나님, the Lord God)을 형성한다. 이 이름은 유일신으로서 약속의 하나님 YHWH가 전능하신 창조자인 Elohim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를 서로 다른 저자들의 것이라고 주장할 어떠한 논리적인 이유(하나님의 호칭으로 사용된 단어에 의거하여)도 없는 것이다.

같은 원리가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과 구약성경 전체에 적용된다. JEDP 가설 체계는 자기 모순적이다. 그 가설의 옹호자들은 (하나 이상의 하나님 호칭을 사용하는) 구절(verses)들을 항(sections)들로 분할하고, 심지어 한 문장 안에 있는 호칭이 다른 부분들을 다른 저자들의 것이라고 인정해야하게 되었다. 이런 뒤죽박죽은 고대 중동의 문헌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일한 것이다.

만일 이 문서가설이 다른 어느 고대 책에 적용되었다면, 이 가설을 장려하기 위한 ‘학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결론

결국,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타자수’로서 모세를 사용했던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세가 출생하던 날부터 하나님은 그의 작업을 위해 모세를 준비시켰던 것이다. 때가 되었을 때, 모세는 모든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고, 창세기에 포함시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하여 실수없이 성령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은 알려진 역사와 일치하며, 더불어 성경의 주장과 원리 (디모데후서 3:15–17, 베드로후서 1:20–21)에도 일맥상통한다.

반면에 사기적인 JEDP 가설에는 어떠한 역사적 증거도 없으며, 영적, 신학적 기반도 없다. 이 가설의 내용은 완전히 틀렸으며, 그것을 장려하는 ‘학문’은 전적으로 가짜이다. 진화론에 기대어, 이 가설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침해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Josh McDowell, More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 Here’s Life Publishers, 1981, p. 45.
2. Notable exponents of Wellhausenism were Samuel R. Driver in England (1891), and Charles A. Briggs in the USA (1893). Since Wellhausen’s time, other liberal critics have ‘found’ up to 40 alleged contributors to the Pentateuch, including an Edomite source S and a Canaanite source K — there are almost as many subdivisions as there have been ‘experts’ finding sources!
3. Adapted from Dave Breese, Seven Men Who Rule the World from the Grave, Moody Press, Chicago, 1990, pp. 89 ff.
4. Adapted from Gleason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Zondervan, Michigan, 1982, pp. 51–52.
5. In Genesis 13:10 the Jordan valley is compared with ‘the land of Egypt, as thou comest unto Zoar’ — appropriate only for readers unfamiliar with the Jordan Valley in Palestine but acquainted with Egypt. Hence written near the time of the Exodus from Egypt, not many centuries later.
6. The crop sequence in Exodus 9:31–32 is Egyptian, not Palestinian. The trees and animals referred to are mostly indigenous to Egypt or the Sinai Peninsula, not Palestine, e.g. the acacia tree, used for the tabernacle furniture, is native to Egypt and Sinai, but is hardly found in Canaan, except around the Dead Sea. The skins prescribed for the outer covering of the tabernacle in Exodus 26:14 (Hebrew tachash), were most likely those of the dugong or sea cow (Zool. Sirenia)—found in the sea adjacent to Egypt and Sinai but foreign to Palestine. See ref. 4, p. 46 ff.
7. More Egyptian loan words are found in the Pentateuch than anywhere else in the Bible, as would be expected if the author was Moses ‘learned in all the wisdom of the Egyptians’ (Acts 7:22). The very name ‘Moses’ is Egyptian not Hebrew (Exodus 2:10).
8. There is no mention in the Pentateuch of the temple, or that Jerusalem would be its future location — the only centre of worship mentioned was the tabernacle, a tent.
9. Genesis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6:9; 37:2. The first of these,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Genesis 2:4), does not mention a human name, as no man was present during Creation Week until day six. The information was probably revealed by God to Adam, who then recorded it (ref. 10).
10. Henry Morris, The Genesis Record,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Michigan, 1976, pp. 22–30; also Prof. Dr. F.N. Lee, personal communication, April 1998.
11. ’Elohim is a Hebrew plural form meaning ‘more than two’. In Genesis 1:1 it occurs with the verb ‘created’ (Hebrew bara’) in the singular form. It is thus a plural noun with a singular meaning, suggesting the uni-plurality of the Godhead. The Christian doctrine of the Trinity is thus foreshadowed in the Bible right from the very first verse. See also the use of the word ‘us’ in Genesis 1:26 and 11:7.
12. Note that the power of God associated with the use of this word is seen much more clearly in His having created the vast contents of space, as well as the astounding complexities and minutiae of life on Earth, in the short timespan of Creation Week, rather than in any long-drawn-out evolutionary timetable. See C.V. Taylor, The First 100 Words, The Good Book Co., Gosford, NSW, Australia, p. 3, 1996.
13. There is no contradiction between Genesis 1 and 2. In Matthew 19:3–6, Jesus quoted from both accounts together, 1:27 and 2:24, showing them to be equally authoritative and fully supplementary. See also D. Batten, ‘Genesis Contradictions?’ Creation 18(4):44–45, 1996 (go to online version); R.M. Grigg, ‘Should Genesis be taken literally?’ Creation 16(1):38–41, 1993 (go to online version).
14. Cf. Hosea 6:7: ‘But they like men [Hebrew: literally ‘like Adam’ or ‘in Adam’] have transgressed the covenant …’


창세기에는 단지 1명의 저자만이 있었다는 것에 컴퓨터는 동의한다.


다음은 1982년 8월의 옴니(Omni) 잡지에서 인용된 것이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대학 (Technion University)의 연구진들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20,000개의 히브리 단어들을 컴퓨터에 입력한 후에, 6개 문자 이상으로 구성된 동사들과 많은 단어들로 끝나는 많은 문장들을 발견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예후다 라다이(Yehuda Radday)는 이러한 특유한 패턴들이 몇 번이고 거듭 나타나기 때문에, 창세기의 저자는 단일저자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그들의 철저한 컴퓨터 분석을 통해서 창세기는 82%의 확률로 단일저자가 쓴 것으로 제안되었다.”


이와 같은 점토판(clay tablets)들은 장기적으로 문서를 기록하는 데에 있어서 이상적인 수단이었다. ‘딱딱한 큰 돌(Flintstones)’과는 달리, 이 점토판들은 한 손으로도 잡을 수 있었다. 족장의 기록들이 노아의 방주에 실렸고, 그후에 모세가 창세기를 (영감에 의해) 편집할 때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참조 1 : Debunking the Documentary Hypothesi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249

How was Moses able to read pre-Tower of Babel text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eedback/2006/1027.asp

Who Wrote Genesis? Are the Toledoth Colophon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797


참조 2 : 성경 관련 글들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 홈페이지/자료실/성경과 기독교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B0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0/i4/moses.asp

출처 - Creation 20(4):43–46, September 1998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49

참고 : 2797|3020|2936|1412|1413|2323|2525|512|3148|2330|2982|4329|4258|4237|4148|4071|4100|4043|3974|3945|3935|3932|3898|3872|3812|3783|3731|3730|3707|3739|3689|3654|3641|3628|3633|3623|3589|3372|3311|3302|3289|3242|3233|3220|3218|3208|3206|3204|3186|3170|3168|3166|3162|3155|3101|3097|3065|3036|3022|2996|2970|2960|2942|2805|2746|2737|2688|2643|2549|2545|2534|2530|2515|2458|2425|2321|2362|2030|1805|1793|1790|1756|1430|921|721|720|666|629|630|568|522|521|528|3931|3055|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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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말씀 365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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