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Brian Thomas
2018-04-02

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 왕의 인장에 이은 놀라운 발견! 

(Archaeological Evidence for Prophet Isaiah)


      최근에 이스라엘 고고학자인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와 그녀의 발굴팀은 예루살렘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것은 이사야의 실존과 구약성경의 사실성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성전 산(Temple Mount) 남쪽 벽 아래를 파내던 발굴팀은 이사야(Isaiah)의 이름이 새겨진 진흙 인장(clay seal, bulla)을 발견했다.(사진은 아래 관련기사 클릭). Biblical Archaeology Review 지에서 마자르는 이 이사야의 공문서용 인장(bulla)의 음역을 ”Yesha‘yah[u] Nvy[?]”라고 표현했는데, 점토의 손상으로 인해 알 수 없는 글자의 부분은 [?]로 표시하였다.[1] ”Yesha'yahu”는 ”이사야(Isaiah)”이다. 잃어버린 철자를 히브리어의 앞부분 철자(Nvy)를 통해 추정하면, 이사야 뒤에 나오는 단어는 ”예언자(prophet)”이다. 아마도 이사야는 자신이 이 도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2015년에 발굴팀은 단지 3m 떨어진 곳에서 히스기야 왕(King Hezekiah)의 것으로 보이는, 공문서용 인장(bulla)으로 불리는 점토 인장을 발견했었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성경에 따르면,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봉사하면서, 왕과 직접 대화를 했었다.

히스기야 인장과 이사야의 인장이 들어있던 고고학적 지층은 비잔틴과 초기 로마시대의 부스러기 아래에 놓여있던 지층이다. 이것은 BC 729~687년까지 지속됐던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과 일치한다.[3] 따라서 이 두 유물은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실제로 성경이 말했던 시점에 살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함께 발견된 이 두 유물은 구약성경의 인물이 실제로 성경이 말했던 시점에 살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 두 개의 인장은 수십 년 동안 성경을 의심해온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파산시킨다. 예를 들어, 회의론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삶과 통치 시기 이후 수세기가 지나서, 바빌론 포로기의 어떤 시기에, 알려지지 않은 저자들에 의해서 이사야서가 집필됐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었다. 그들은 창세기로부터 열왕들의 시대까지, 성경은 바빌로니아 신화나 여러 문서들을 수집하여 지어낸 날조라고 주장해왔었다. 그러나 이제 이들 가련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추정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이사야가 실존하지 않았다는 비성경적이고, 이제는 고고학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밝혀진 주장은,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방해하고자하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언의 성취를 지우는 시도 중 한 가지 방법은, 예언된 사건들 훨씬 이전에 예언의 말씀이 성경이 쓰여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의 기록처럼, 그들은 창조, 노아 홍수, 출애굽과 같은 성경의 기록들을 부인하려고 한다.[4] 신약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고 많은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이사야의 한 예언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세부 사항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록해놓고 있다.

이러한 두 인장의 발견 이전부터, 이사야를 진정한 선지자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이사야의 예언이 신약에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발견되고 있는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또 다시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azar, E. 2018.Is This the Prophet Isaiah’s Signature?Biblical Archaeology Review. 44 (2): 64-73, 92.
2. Impression of King Hezekiah’s Royal Seal Discovered in Ophel Excavations South of Temple Mount in Jerusalem.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News. Posted on new.huji.ac.il February 12, 2015, accessed February 23, 2018.
3. Steimann, A. E. 2011. From Abraham to Paul.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4. 2 Peter 2:1-2; 3:1-7.

*Brian Thomas is Science Writ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관련기사 : 이사야 선지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장 발견 (2018. 3. 7.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0164

'선지자 이사야 인장 발견… 이름 직함 선명” (2018. 3. 23. 교회와 신앙)
http://m.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249

2700년 된, 성서 속 히스기야왕 인장 발견 (2015. 12. 3.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19187237

2700년 된, 성서 속 히스기야왕 인장 발견 (2015. 12. 3. 뉴시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51203_0010456203

히스기야 왕 인장 발견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q1LbBwIqCI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archaeological-evidence-for-prophet-isaiah

출처 - ICR, 2018. 3. 22.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08

참고 : 1412|1413|1536|1756|1790|2245|2515|2525|2530|2688|2746|2797|2996|3020|3022|3055|3148|3162|3166|3208|3218|3233|3249|3633|3641|3872|3945|4043|4071|4100|4148|4237|4480|4329|4376|4383|4385|4387|4390|4391|4394|4399|4413|4414|4416|4450|4451|4452|4463|4488|4492|4599|4578|4514|4868|4726|4725|4723|4718|4714|4713|4819|4878|4872|5018|5034|5094|5275|5395|5415|5402|5463|5514|5638|5741|5852|5861|5969|5985|6017|6066|6071|6089|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6657|6679|6697

Bodie Hodge
2017-12-25

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할 메시지! 

(Christmas Sermons—Are Churches Preaching an Irrelevant Message?)


     일상적인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불신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목회자와 교회에 유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절기에 나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몇몇 크리스마스 설교들을 들어왔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관을 잃어버린 서구 문화에서, 크리스천들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 신앙에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친구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고, 함께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격했었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나에게 본인이 생각해왔던 질문을 했다. 그는 내게 예수님, 말구유, 동방박사,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목동들, 천사들에 관해서 묻지 않았고, 대신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땅에 악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왜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잔인하게 잡아먹고 살아가도록 만드셨는가?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생물들을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창조하셨다가, 왜 멸종시키셨는가?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거슬러,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길게 연장하려고 노력하는가?” 그는 계속해서 ”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천국에 가면 되지 않겠는가? 왜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으려고 애쓰는가?” 였다.

그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오늘날 공교육과 교육시스템, 그리고 언론 매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 진리로서 성경을 거부하도록 계속 유도하며, 세속적 문화로 인해 점점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믿는 믿음은 공격받고, 조롱당하며, 비난받고 있다. 왜냐하면, 소위 과학(진화론)이 그것이 사실일 수 없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경 '창세기'는 실제 역사가 아닌, 신화들과 비유들을 모아 놓은 '이야기 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내 친구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질문은 수년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슬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죽음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창세기에 기록된 이 세계의 참된 역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야하는 크리스마스 설교는 성경의 창세기를 신화로 여기지 않는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한 목회자는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를 상기시켜줄 수 있다. 내 친구는 대답이 필요했다. 나의 대답을 통해, 그는 설교를 듣기 전에 성경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을, 그의 기독교 신앙을 방해했던 것을 나에게 물어주어서 기뻤다.

내 친구는 죽음과 고통과 죽어감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죽음이 원수(enemy)이며, 죄로 인해 들어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린도전서 15:26). 하나님이 죽음을 만드시고 창세기 1:31절에서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였다.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고 설명했고, 아담이 처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로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해주었다.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지구는 수십억 년이 되지 않았고, 사람 이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죽음, 질병, 고통, 육식 등이 있지 않았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계속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의롭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죽음으로 죄를 심판하셔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 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사람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분의 권능을 일부 거두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질병과 고통과 같은 일들을 허락하시지만, 이것에 대해 비난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비난받아야할 대상은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내 친구의 머리에 전등이 켜지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자, 성경은 그에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창세기에 기록된 진리 대신에, 수십억 년의 장구한 시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 친구와 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대신 그들의 질문과 벗어난, 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관계없는 메시지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The 'god” of an Old Earth'을 참조하라. 아래 관련자료 링크 94번)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친구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진정한 설명으로 성경을 거부하도록 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는 데에 주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에 교회로 올 수 있다. 나는 목회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크리스마스 설교로 이 이슈를 들려줄 것을 기도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이 진리임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줄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초

내가 전에 들었던 한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목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기초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하면서 누가복음 2장으로 갔다. 나는 즉시 ”거기는 크리스마스의 기초가 아닌데, 거기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일 뿐인데”라고 속삭였다.

크리스마스의 기초는 훨씬 더 후퇴한다. 그것은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초기 언급은 창세기 3:15절에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여자의 후손)의 예언이 있었다. 그들은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처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많은 언급은 예수님이 이삭의 후손이라는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창 28:13~14).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설교가 시작되어야하는 곳이다. 특히 성경의 이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고 세뇌된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람들이 베들레헴, 목동들, 동방박사에 관한 설교를 들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성경은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창세기는 죽음이 창조된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한, 아담의 죄에 관한 나쁜 소식에 대해 우리가 먼저 배워야하는 곳이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창세기에 있는 나쁜 소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복음)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의 나쁜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받아들여야할 필요성을 이해시키기 전에, 그들이 왜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적절한 기초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현대 과학은 이 역사적인 문서를 반증하지 못했으며, 과학은 창세기의 기록이 실제로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창세기의 기본 진리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동정녀의 몸에서 오셔야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크리스마스와 그 기초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What Is Christmas?)”을 읽어 보라.


왜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는가?

창세기로 돌아가서, 나쁜 소식은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음이 이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창 2:17). 로마서 6:23절은 죄의 대가가 죽음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죄를 갚기 위해 무엇인가가 죽어야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을 죽이신 이유이다(창 3:21). 어떤 동물이 희생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 복음을 예표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한 마지막 희생 제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순종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이 패턴을 따랐다. 그러나 동물은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누군가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형벌을 받아야할 때, 그 형벌을 스스로 당신이 감당하시는 것은 은혜와 자비이다. 이것이 우리의 창조주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이다. 그는 인간으로 오셔서(그러나 신성을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사망을 선고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이 그 형벌을 대신 지심으로, 우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해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갖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갚기 위한 마지막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완전한 삶을 사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유이며,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새 아담', '완벽한 아담'이 되셔서, 아담의 자손을 위해 죽으실 수 있었고,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성경은 사랑의 가장 위대한 행동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요 15:13). 성경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정말로 동정녀에서 태어나셨는가?

창세기 3:15절 외에 이사야서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것이 징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이 예언은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God with us)”이라는 의미였다. 동정녀 출생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Is the Perpetual Virginity of Mary a Biblical View?를 보라.

특히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마태복음 1:1~16절에 있는 요셉의 족보는 여호야긴(여고냐)이 요셉의 직계 조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예레미야서에서 여호야긴에게 주어진 저주를 읽어 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22:30)

다윗의 왕좌에 영원히 앉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여호야긴의 후손이 될 수는 없었다. 여호야긴의 후손은, 따라서 요셉의 후손은 다윗의 보좌를 상속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처녀가 되어야 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리실 것임을 확인해준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7)


동방박사의 중요성

몇 명의 동방박사들이 왔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단지 두 명 이상이고, 그들이 세 가지 선물을 가져왔다는 것만 안다.(더 자세한 정보는 ”We Three Kings”을 참조하라.) 마태복음 2:1~11절은 이 동방박사가 이스라엘로 인도한 별을 따라 동방에서부터 여행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What Was the Christmas Star?” 참조)

이 박사들은 약속된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다. 박사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동쪽에서 왔다. 아마도 페르시아일 가능성이 있지만, 동양일 가능성도 있다. 아기 예수님께 선물과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먼 거리를 왔다는 사실은, 이 사람들이 창세기 역사와 관련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먼 타국에서도 약속된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바벨탑에서 흩어지면서, 지구의 모든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6대륙에 흩어져 살 때까지 계속 이주해 나갔다 ('Flood Legends” 참조). 또한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세상의 많은 곳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동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창세기 기록과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들의 문자(한자) 속에 상징으로 들어있다. 심지어 그들은 거대한 홍수 동안 창조주이시며 사람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상제)께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을 참조. 아래 관련자료 링크 93번).

이것은 바벨탑 이후 어떤 시점까지 동쪽으로 이주해갔던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실제로 알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귀중한 정보들을 잃어버렸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박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현명한 사람들이었다.(아마도 페르시아에서는 다니엘이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 이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를 잃어버린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성경적 역사와 성경의 신뢰성과 대한 확증은 바벨탑에 대한 성경적 기록이 정확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진실한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수십억 년'의 역사를 받아들였고, 동방박사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중요성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와서 예물을 드리고(시편 72:10), 지역 목동들이 그 앞에 굽히고(시편 72:9)와 같은 성취된 예언, 헤롯 왕이 두 살 아래 아기들을 죽인 사건(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6~18), 한밤중에 애굽으로 피하라는 현몽(마태복음 2:13~15) 등은 이 아기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몇 가지 징조였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권좌에서 내려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 분은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사셨지만, 하늘의 완전함을 이 땅에 남겨놓으셨다. 이 아기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러 오셨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예수님께서는 지구 역사상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 땅에 오셨다. 과거를 숙고해보고, 이 중요성에 대한 큰 그림을 얻자. 아래 다이어그램을 참조하라.

아담과 하와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을 때, 100%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노아 시대에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유일한 지상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인구가 계속 증가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비율은 매우 낮아진다.

하나님이 홍수를 보내신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사람들은 다시 거의 100% 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인구가 재번성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비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세계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위의 그림은 이러한 일반적인 원칙을 설명한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조차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따랐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았다. 믿었다면 메시야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동방박사들, 마리아, 요셉, 안나, 시므온, 세례 요한의 가족들과 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렸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매우 낮은 비율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것은 역사상 가장 낮은 비율의 시점이었기 때문에, 오신 시기는 매우 중요했다. 그 사명을 완벽하게 완수하셨으며,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값없는 구원의 선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크리스마스 날에 축하해야 하는가?

어셔 대주교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경에 태어났다. 예수님은 어느 날에 태어났을까? 우리는 알지 못하며, 성경은 그 날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크리스마스(12월 25일 그레고리력)로 선택된 날짜는 예수님이 태어난 날짜가 아닐 것이다 ('The Origin of Christmas” 참조). 회의론자와 비판론자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efense of Christmas’를 읽어 보기 바란다. 문제는 실제 날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악하고, 그것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다음은 내 개인적 견해이며, AiG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우리가 크리스마스 날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면(롬 14:5-6), 그 날이 어떻게 악한 것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은 로마 이교도의 축일에서 왔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매일 날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드려야한다고 말했다.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날에 하나님을 경축하는 것을 거절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사실 성경은 이것을 장려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시 86:12)

'영원토록'은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아 10:1~6절에서 장식된 나무를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죄가 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마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장식된 나무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면(거짓 신과 반대로),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탄생일을 휴일로 기념하도록 사람들에게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이 그 반대도 금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제 내가 틀렸다고 하지 말라. 나는 이 글에서 크리스마스 날을 축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금지시킬 이유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전할 메시지에 대한 결론

목사님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이 특별한 연휴 기간 동안,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 :

▶ 크리스마스는 아담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태어나시고, 살다가, 고통당하시고, 죽으셨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상생활의 안락함을 떠나야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이번 휴가철에 교회에 올 때, 그들이 묻는 질문들에 우리가 답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Answers의 글들을 참조하라.

크리스마스 설교나 일상 대화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토론은, 복음서에 나오는 좋은 소식(복음)과 함께, 창세기의 나쁜 소식도 같이 설명해 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에 불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불신자들에게 요청하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holidays/christmas/making-the-christmas-sermon-relevant-for-todays-culture/

출처 - AiG, 2017. 12. 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49

참고 : 3967|2942|6652|6414|6401|638|4140|5578|5440|5163|4804|4726|4725|4713|4514|4387|6152|6153|6433|6657|6135|6070|5889|5886|5723|5638|5306|5090|4685|4663|4635|4463|4414|6283|5870|6642|5725|5628|3589|3689|6376|3168|1756|2797|2936|2982|3020|3024|3331|3628|3640|3641|3654|3932|4204|4297|4375|4380|4440|4487|4492|4540|4869|5033|5035|5094|5265|5275|5381|5394|5542|5627|5923|5969|6044|6064|6066|6071|6107|6110|6146|6189|6351|6360|6477|6480|6491|6512|6581|6639|6353|3945|1536|2016

Shaun Doyle
2017-09-05

가나안 인의 DNA 분석은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했다. 

(Canaanite DNA disproves the Bible? 

Or, Canaanite DNA disproves media’s ability to read the Bible)


     최근 언론 매체들은 '가짜 뉴스'가 성경을 공격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연구자들은 3,750년 전 가나안 인(Canaanites)들이 살았던 고대 도시 시돈(Sidon)에서 발굴된 사람의 두개골에서 DNA를 추출하였다. 이 지역은 성경에 언급된 가나안(Canaanites) 인들에서 유래됐던 고대 페니키아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이다. 민수기 13:29절은 가나안 인들이 거주했던 구체적인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DNA 염기서열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그 DNA를 현대 레바논 사람들의 DNA와 비교하여, 현대 레바논 인들은 그들 조상의 약 93%가 이들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를 의심할만한 이유는 거의 없어보였다. 그리고 역사적 기록이 부족할 때, 어떻게 유전학이 역사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성경을 비판하는 과학부 기자들은 재빠르게, 그 결과는 성경이 틀렸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 몇 가지 사례들이 있다 :

”청동기 시대의 DNA는 가나안 사람들이 멸망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을 반증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들의 유전자는 현대의 레바논 사람들 속에서 살아있었다.” (Daily Mail. 2017. 7. 27)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쓸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레바논에 살고 있는 그들의 후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The Independent. 2017. 7. 27.)

”과학자들은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오늘날에 살아남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 성경은 틀렸는가?” (Tech Times. 2017. 7. 28)

”새로운 DNA 연구는 성경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Mother Nature Network. 2017. 7. 27)

”성경은 틀렸다 : 하나님이 죽이라고 명령했던 문명이 아직 살아있었다.” (Express. 기사 삭제)

”유전적 증거는 결국 가나안 인들이 멸절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Ars Technica. 2017. 7. 28)

”가나안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 소멸되지 않았다.” (Newser. 2017. 7. 29)

”연구는 고대 가나안 사람들이 멸절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었다.” (Telegraph. 2017. 7. 28)

”DNA 대 성경 :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멸절시키지 않았는가?” (Cosmos. 2017. 7. 28)

”성경은 틀렸다. 고대 가나안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의 DNA는 현대 레바논 인에 살아있었다.” (Pulse Headlines. 2017. 7. 27) [1,2]

그러나 성경은 이들 언론 매체들의 주장과는 정확히 반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가짜 뉴스 제목들의 목록은 더 길었지만, 초기 보도 이후에 몇몇 기사들은 그들의 제목을 변경하고, 내용을 다소 수정하고 있었다. 댓글 작성자들은 대체적으로 아래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이유들로 그 기사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 나열된 기사들은 여전히 수정을 하지 않은 채로, 문제를 가진 기사를 그대로 남겨놓고 있었다.

유명한 잡지조차도 그 내용을 수정하고 있었다. Science 지(2017. 7. 27)는 그들의 기사에 대한  '업데이트'를 추가하고 있었다 :

 7월 28일 업데이트 : 이 기사와 제목은 성경에 있는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서 업데이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의 멸절을 명하셨지만, 일부 성읍에서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 같다.

일부 가나안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 같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그들은 살아남았고, 그 땅에서 거주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DNA 증거가 가리키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업데이트 전의 Science 지의 원래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고대의 DNA는 미스터리한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성경적 설명과 모순된다” 였다.[3] 즉, 위에서 나열한 오류 기사들 목록에 포함되는 수치스러운 기사를 게재했던 것이다.


성경은 가나안 사람들의 운명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분명히 이들 '보도'들은 DNA 증거가 성경의 기록과 ”모순되는” 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성경이 틀렸다고 조롱하는듯하게 보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민수기 33:55절은 보자 :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민수기 33:5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은 남아있게 됐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DNA 분석 결과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명령을 내리셨는가?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if you do not drive out the inhabitants of the land)...”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의 멸절, 학살, 전멸, 파괴를 명령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몰아내길(drive out) 원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냈는가? 여호수아 16: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분명히, 가나안 사람들은 쫓겨나지 않았고, 거주하며 노역하는 일을 했으며, 멸절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도살하라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쫓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에 다시  한번 주목하라. 진멸하는 일은 가증한 일들을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 빠트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가나안 사람들을 예속시켜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사사기 1:27~36절에서 더욱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행하지 않았음을 대한 긴 목록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쫒아내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마침내, 이 모든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평결은 사사기 2:1~3절에 나온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는 대신에, 그들에게 노역을 시키면서 예속시켜버렸다. 민수기 33:55절에서 경고하셨던 것과 정확하게 동일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하라.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그리고 보라.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는가? 성경 전체를 통해, 심지어 신약성경(마태복음 15:22, 마가복음 7:26)에서도, 가나안 사람들은 원래 이스라엘 지파들에 배정된 땅에 살아왔던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을 죽여야 했는가, 쫓아내야 했는가?

그러나 신명기 20:16 절과 같은 구절은 무엇인가?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이것은 신명기 20:10~15절의 성읍들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일반적인 규칙에 있어서 하나의 예외적인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은 그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성읍들을 복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명기 20:18절은 그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다 :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다른 말로 해서,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세기 후에 심판을 받게 되는(창 15:16), 도덕적으로 가증한 일들을 행하던 타락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16절은 일반적인 땅이 아니라, 요새화된 성읍들을 특별히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그 성읍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요새화된 성읍에서 그들은 보호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말로하면, 성읍에 남은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한 사람들이었고, 그 땅에서 나가기를 거절했던, 가장 완고하며 반항적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그들을 쫓아내라”와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는 상호 주의깊은 해석이 필요한 구절이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행할 수 있는 선택은 추방 또는 죽임이었다. 추방은 이스라엘이 한 성읍에 들어왔을 때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제공되는 첫 번째 옵션이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 전에,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하셨던 일들을 들었기 때문에, 심히 두려워했고 간담이 녹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여호수아 2:9~11) (상세한 정보는 Does the Bible condone slavery, abuse of women or mass murder?을 보라).[4]


고고학은 이스라엘의 정복을 부정하는가?

일부 기사들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은 여호수아의 정복(Conquest) 사건이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랜 시간 후에 의도적으로 쓰여진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실제로 사실이라는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있다. 핵심은 표준 이집트 연대기는 축소되어야만 하고, 고고학자들이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시기를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여리고 성벽(The walls of Jericho)’, ‘여리고 이야기(The story of Jericho)’,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Egyptian chronology and the Bible)’을 읽어 보라. (아래 관련자료 링크 1~8번 참조)


과학부 기자들은 성경의 정확성이 입증됐다는 보도를 왜 그렇게 싫어할까?

우리는 기원(창조-진화)에 관한 토론에서 그 사람의 세계관 또는 편견이 증거들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를 항상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서 '가짜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이 정말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사들에 대한 인터넷 댓글을 보고서 그것을 수정했다(그것도 일부 언론 뉴스만).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자극적인 제목만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많이 읽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사례는 언론 매체들이 매우  반-성경적(반-기독교적) 입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창조-진화 논쟁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쓴 뉴스가 아니다. (창조-진화 논쟁에서도 진화론의 문제점에 대해서, 장구한 연대를 부정하는 과학적 증거들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무조건 창조과학자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이) 이 사례는 진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과학은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번에는 고대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새로운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다음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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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ls of Jericho
The story of Jericho
Archaeology supports the Bible
Genocide, evolution and the Bible
Is God a ‘moral monster’?
Is the Bible an immoral book?
What about bad things done by the Church?


Further Reading
Answering Bible skeptics
Countering the Critics Questions and Answers
Archaeology Questions and Answers


Related Media
Does the Bible condone slavery, abuse or mass murder? (Creation Magazine LIVE! 6-08)


References and notes
1. Adapted from Klinghoffer, D., For Culturally Illiterate Science Reporters, Canaanite DNA Yields Occasion to Slap Bible Around, evolutionnews.org, 29 July 2017.
2. There were some exceptions to this trend, like Fox News, but they seemed to be in the minority.
3. This original title is still reflected in the url for the Science article: sciencemag.org/news/2017/07/ancient-dna-counters-biblical-account-mysterious-canaanites.
4. A useful in-depth defense of the morality of the Israelite conquest is Copan, P. and Flanagan, M., Did God Really Command Genocide? Baker Books, Grand Rapids, Michigan, 201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canaanite-dna-confirms-bible , http://www.icr.org/article/10173

출처 - CMI, 2017. 8. 4. (GMT+1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79

참고 : 3872|3148|1412|1413|4463|5985|6089|1536|1756|1790|2245|2515|2525|2530|2688|2746|2797|2996|3020|3022|3055|3162|3166|3208|3218|3233|3249|3633|3641|3945|4043|4071|4100|4148|4237|4480|4329|4376|4383|4385|4387|4390|4391|4394|4399|4413|4414|4416|4450|4451|4452|4488|4492|4599|4578|4514|4868|4726|4725|4723|4718|4714|4713|4819|4878|4872|5018|5034|5094|5275|5395|5415|5402|5463|5514|5638|5741|5852|5861|5969|6017|6066|6071|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

Ken Ham
2017-03-01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기인가? 

(Is It Time for a New Reformation?)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라. 우리의 문화나 교회나 새로운 개혁(reformation)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의 절대적인 권위로서 성경(the Bible)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자유주의, 진화론, 영지주의, 모르몬교, 이슬람, 뉴에이지, 도덕적 이슈들(예를 들어, 낙태나 동성애), 지구의 나이 등과 같은 것들은 궁극적으로 모두 같은 이슈들에 대한 전투이다.

고린도후서 1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의 영감하에서 우리에게 일찍부터 있어왔던 위험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바울은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방법을 우리들에게 계속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크리스천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즉, 사탄은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순전히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창세기 3:1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태초부터 전투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authority)에 관한 것이었다. 최초의 여성 하와와 그녀의 말을 따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말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대신에 그는 진실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인간적인 이성(human reason)에 의존하였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었기 때문에, 그의 반란은 전체 인류를 죄로 몰아넣었다. 모든 그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를 본질적으로 상속받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 대신에 인간의 이성을 그들의 절대 권위로 만들어놓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는 이러한 전투는 인류 역사의 모든 시대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채로 지속되어져 왔다.

바울은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했었던 회의론자(skeptics)들에 언제나 직면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사람 자신이 신이라고 가르쳤던 영지주의(Gnosticism)를 포함하여 성경의 권위에 대한 여러 도전들과 싸웠었다. 공룡들의 나이, 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carbon dating)과 같은 현대의 이슈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래된 공격들의 새로운 형태들일 뿐이다.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였다. 그리고 타협이 교회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로 돌아가는 교회의 개혁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16세기에 죄가 용서되고 연옥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인간의 생각을 올려놓는 최절정의 사건이었다. 수도사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면죄부 판매에 도전하면서, 비텐베르크 교회(Wittenberg Church)의 정문에 그의 95개 조항을 게시하였다. 이 행동은 궁극적으로 교회 위에 성경의 권위를 두어야한다는 것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 개혁 운동에 연합하였다. 성경과 책자들이 새로운 인쇄기들로 인쇄되었고, 성경적 진리가 널리 퍼져나감으로서, 서구 세계는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사실 최근 수십년 전까지도 서구 세계의 많은 부분들은 아직도 종교개혁에 의한 영향을 받아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일련의 사람들과 사건들은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결과들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으려 시도하였다. 그러한 공격 뒤에는 인간의 이성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들려는, 그리고 사람들을 하나님 말씀의 권위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것은 창세기 3:1절에 대한 또 다른 발현이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성경에 대한 공격은 강렬해졌다. 지구의 나이에 관한 새로운 추정과 진화론은 성경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핵심적인 이슈들은 예수님의 빌라도 법정 이후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재판으로, 그리고 문화 형태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재판이었다고 말해지는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에서 드러났다.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은 사실 흔히 믿어지고 있는 것처럼 진화론 교육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재판은 기독교 전체를 법정에 세우려는 미국 자유시민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치밀하게 계산된 책략이었다. 비록 기소자 측의 윌리암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훌륭했던 기독교인 정치가였지만, 그의 기독교 신앙은 창세기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서있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는 가인(Cain)의 아내에 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그 재판은 기독교계와 미국 사회에 하나의 커다란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다. 전 세계의 언론매체들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창세기)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적절히 방어할 수도 없어 보인다고 보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에 대한 교회의 실패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황폐함을 가져다주었다. 한 예로 한때 유명한 복음전도자였던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이 있다. 그는 신학교에 있을 동안에, 수억 년의 지구 나이를 포함하여 진화론적 시간 틀을 믿도록 교육받았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창세기 1-11 장의 성경적 권위에 대한 타협(Compromise)은 교회를 너무도 약하게 만들어서, 성경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충격을 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대게 인간의 이성(human reason)이 교회 내로 침입하여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을 옆으로 밀어놓기 때문에 발생해왔다.

오늘날 새로운 개혁이 요구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위에 견고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세대의 개혁자들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되었다. 가령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과 같은 성경적 창조과학 사역들은 오류 많은 인간들의 이론들을 쫒아내고 전적으로 성경 위에 확고히 설 수 있도록 하는 많은 일들을 이미 해오고 있다. 

이제 믿는 자들이 창세기 1-11장을 교회들의 문 앞에, 그리고 대학과 박물관들과 같은 이 세상의 세속적 건물들의 문 앞에 게시하고 목소리를 내야할 시기이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잡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세상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Ken Ham is the founder and president of Answers in Genesis-USA. He has authored or co-authored many books concerning the authority and accuracy of God’s Word and the effects of evolutionary thinking, including Genesis of a Legacy and The Lie: Evolution.

 

*참조 : The Reformation of the 16th Centur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reformation-sixteenth-centur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new-reformation

출처 - Answers, 2007. 10. 1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95

참고 : 3024|2346|2313|2864|548|2942|2797|2016|3640|3654|4375|4380|2067|3677|4010|2061|2530|2321|4868|4870|4872|4878|4982|4985|5094|5271|5275|5332|5394|5395|5402|5415|5440|5463|5514|5578|5625|5627|5628|5711|5723|5741|5753|5852|5861|5870|5882|5886|5889|5910|5985|5986|6044|6017

Brian Thomas
2017-01-30

성경은 누가 썼는가? 

: 사해사본과 엔게디의 불에 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Who Wrote the Bible?)


      최근에 나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젊은이의 고등학교 교사는 그에게 성경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나, 사도들이 선교를 위해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과 같은 사건들은, 그것들이 기록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일단의 가톨릭 성직자들이 이것저것을 함께 모아 만든 것이 성경이라는 것이었다. 그 교사의 말은 맞는 것인가?


시대가 흘러도,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한 것이라고 성경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시편 12:6,7)[1] 반면에, 내가 만난 젊은이와 그의 교사는 성경을 기록하고 필사했던 사람들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경에는 오류와 실수가 들어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러한 생각을 거부할 수 있는 새로운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 사해사본)는 성경의 기록을 확증하는 고고학적 발견의 긴 목록에서 상단에 위치한다.[2] 유대 필경사는 이스라엘의 사해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절벽 동굴에 이 성경 두루마리를 숨기고, AD 68년 로마 제10군단이 그들을 점령하기 전에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다. 1946년에 우연히 발견된 이 두루마리 성경에는 많은 성경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항아리들은 타임캡슐과 같이 고대 문서들을 보존했다. 현대의 성경과 비교해보았을 때, 사해문서는 성경이 전래된 후 2,000년이 지났지만 사실상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약간의 철자법 변경 등이 있었지만, 모든 절의 기본 내용은 변경되지 않았다. 이것은 성경이 필사되거나 전달될 때, 손상되고 오류가 생겨났다는 주장들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또 다른 고고학적 발견도 성경의 완전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1970년 이스라엘의 엔게디(Ein Gedi)에서 3세기의 두루마리 성경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그것은 불에 타있었다. 부서짐 없이 그것들을 펴서 읽어볼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문가들은 잉크 잔해를 읽어낼 수 있는, 정교한 소프트웨어와 X-레이 스캔을 사용하여, 3D 이미지로 사실상 '열어볼' 수 있게 되었다.[3] 이제 전문가들은 처음으로 겹쳐서 구부러진 두루마리 내부에서 히브리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4]


히브리어 대학의 엠마누엘 토브(Ammanuel Tov)는 두루마리 스캔에 관한 기술 보고서를 공동 저술했다.[5] 그는 AP 통신(Associated Press)에서 오늘날 성경 번역에 사용됐던 히브리어 레위기와 '100% 일치'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단히 놀랐습니다. 2000년 동안 이 텍스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4]


이 발견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1]

성경의 말씀도 사람이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별개가 아니었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6] 그리고 그 이후로 하나님의 신실했던 종들이 정확한 단어들을 꼼꼼하게 필사해 왔던 것이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편 119:160)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8)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References

1.Psalm 12:6-7.
2.Price, R. 1997. The Stones Cry Out. Eugene, OR: Harvest House Publishers.
3.The process resembles the computed tomography (CT) scanning technology used in hospitals.
4.Estrin, D. Scanning software deciphers ancient biblical scroll. Associated Press. Posted on bigstory.ap.org September 21, 2016, accessed September 22, 2016.
5.Seales, W. B., et al. 2016. From damage to discovery via virtual unwrapping: Reading the scroll from En-Gedi. Science Advances. 2 (9): e1601247.
6.2 Peter 1:21.


*관련기사 : 새까맣게 타버린 1천500년 전 성서 첨단기술로 해독 (2015. 7. 2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21/0200000000AKR20150721107100009.HTML

1,500년 전 불탄 성경, 첨단 기술로 해독 성공 / YTN 사이언스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4_FNm9rEis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유대 광야 (사해 사본) (2013. 12. 6.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819112&code=23111617&sid1=se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700

출처 - ICR, Acts & Facts. 45 (12). 201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33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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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ell Grigg
2016-12-15

모세는 창세기를 정말로 썼는가? 

: 성경을 훼손하고 있는 사기적인 문서가설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위조된 학문에 의거하여, 모세의 창세기 관련성을 부정하는 치명적인 가설이 미래에 기독교 지도자가 될 사람들에게 아직도 널리 가르쳐지고 있다.

거의 모든 자유주의 성경대학, 신학교. 그리고 또한 보수적인 복음주의적 교리신앙을 고백하는 일부 학교들조차 안타깝게도 ‘JEDP 가설’로서 알려져 있는 ‘문서가설(documentary hypothesis, 문서설)’에 동조하여 이를 가르치고 있다.


문서가설이란 무엇인가?

이 가설은 모세(Moses)가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모세오경) 기록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적/비판적(liberal/critical) 견해이다. 모세 생존 이후(이 견해에서 그가 생존했다면), 최고 900년에 이르기까지 몇 세기 동안 구전으로 내려온 것들 중에서, 여러 익명의 저자들이 이 다섯 권의 책들을(다른 구약 성경 부분들도) 편집했다고 가르친다. 이 가설에 의하면 그들 편찬자(narrators)들은 다음과 같이 지명된다 :

(문서가설을 세운 사람들이 이 편찬자를 Jahwist 라고 명명한 것을 상징)는 아마 대략 BC 900~850 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그녀/그들은 바빌론과 다른 국가들의 신화와 전설들을 모으고, 그것들에 히브리 사람들이 ‘모닥불 가에서 들려주던 이야기(camp-fire stories)’를 추가하여, 옛 히브리어 문자인 YHWH(‘여호와’, ‘Jehovah’)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성서 구절들을 만들었다.

(Elohist 를 상징)는 아마도 북왕국(이스라엘)에서 대략 BC 750~700년 경에 살았고, ‘엘로힘(Elohim)’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된 성서 구절들을 썼다.

D 는 아마 BC 621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견된 신명기(Deuteronomy)의 대부분을 썼다. (열왕기하 22:8).

 P 는 바빌론 포로시절에 살았던 한 제사장 (a Priest/ 혹은 제사장들)을 나타내며, 백성들을 위한 신성한 법전(a code of holiness)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된다.

◇ 여러 편집자들 R (독일어 문필가(Redakteur)로부터 따옴)이 아마도 그것들을 모두 집대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들의 원저자들이 다수라는 생각은 최초로 1753년에 파리의 (의사였던) 쟌 아스트룩(Jean Astruc)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 인물은 ‘그 당시 철학연구 모임들에서 만연되어 있던, 역사를 진화론적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 문서가설을 재차 말했던’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이었다.[1, 2] 그는 정교한 교리 (유일신 하나님, 십계명, 성막 등)를 다루었던 구약성경의 일부를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진리가 아니고, 다신교(polytheism), 정령설(animism), 조상숭배 등 낮은 상태의 사고 수준으로부터 발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3]. 따라서 모세 이후의 저자들을 찾거나, 이들을 날조할 ‘필요’가 있었다. 주요 주장들 중 하나는 모세시절에 아마도 이 성경구절들은 아직 창작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문서가설은 창세기의 창조/타락/홍수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족장들 전체의 역사적 확실성을 침해하고 있다. 그것은 구약성경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학적 사기(literary fraud)임을 전제로 하고, 모세의 온전함(integrity)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신뢰성/신성을 의심케 한다. 성경 비판가들이 이 가설을 그토록 따뜻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세는 J, E, D, P, 혹은 R 이었는가?

답변 : 모세는 위의 어느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모세 자신이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이자, 편집자였다. 이 다섯 권의 책들은 바빌론 포로기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BC 1400년 경에 모세에 의해서 저술된 것이다. 이 말은 모세가 입수 가능한 문서들을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이 글의 뒷부분을 보라), 그의 죽음을 기록한 신명기 34절의 마지막 몇 구절들을 그가 썼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구절들을 신의 영감에 의해 여호수아가 추가했다고 탈무드(Talmudic, Rabbinic Jewish) 전승에 전해오고 있다.

J, E, D, P, 또는 R 가설을 지지하는 어떠한 외부적 증거도 없다.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그밖에 이 의심스러운 문학자들이 쓴 기록이 무엇이 있었는가? 세속적인 역사나 이스라엘 역사 모두에서 그들에 대한 어떠한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단지 문서가설의 발명자들만이 품고 있었던 풍부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모세가 오경(Pentateuch)의 원작자라는 증거

성경에서 ‘율법’ (‘the Law’, Hebrew torah)으로 자주 언급되어있는 오경을 모세가 썼다는 증거들은 압도적이다 :

1. 벨하우젠과 기타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는 반대로, 고고학적 연구는 모세 시대에도 기술된 문서(writing)들이 정말로 잘 알려져 있었음을 입증했다. JEDP 가설은 인근 국가들이 모세 시대 이전부터 그들의 역사와 종교를 문서 기록으로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스라엘 민족만이 국가 수립 후 몇 세기가 지날 때까지도 그들의 역사와 법률을 문서화하지 못했다는 근거 없는 추정을 하게 한다. [4].

2. 저자는 분명히 그 지역의 지리학과[5] 동, 식물상에 익숙했으며[6], 분명히 이집트로부터의 출애굽을 한 목격자였다. 그는 여러 이집트 단어들을 사용하였고[7], BC 2천년 전의 풍습들을 언급하고 있다 [8].

3. 오경은 모세가 저자임을 많은 곳에서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17:14, 24:4-7, 34:27, 민수기 33:2, 신명기 31:9,22,24절 등이다.

4. 구약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모세가 저자였음이 자주 언급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 1:7–8, 8:32–34, 사사기 3:4, 열왕기상 2:3, 열왕기하 14:6, 21:8, 역대하 25:4, 에스라 6:18, 느헤미야 8:1, 13:1, 다니엘 9:11–13절 등의 기록이 그것이다.

5.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모세의 집필 혹은 모세의 법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8:4, 19:7–8, 마가복음 7:10, 12:26, 누가복음 24:27,44, 요한복음 5:46–47, 7:19절 등이다. 예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즉, 거부하는 사람들은)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6:31). 따라서 모세가 집필했다는 역사적 확실성을 부인하는 교회와 신학교들은 역시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문자 그대로의 몸의 부활도 부인하는 것을 보게 된다.

6. 신약성경의 다른 연설자/저자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17, 사도행전 6:14, 13:39, 15:5, 고린도전서 9:9, 고린도후서 3:15, 히브리서 10:28 등이다.


이집트의 폐허. 모세오경의 본문에 나오는 내부 증거들은 오경의 저자가 모세처럼 이집트의 풍습에 익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모세가 이전의 어떠한 정보도 참조하지 않고 창세기를 썼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창세기는 모세 출생 이전에 발생했던 역사적 사건들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모세는 아마도 족장들의 기록과 또는 이 사건들의 신뢰할 만한 구전들을 매우 잘 입수 했었을 지도 모른다. 그 경우에 이런 기록들은 이미 문자화되어 (아마도 점토판(clay tablets)에) 확실히 보존되었을 것이고, 아담-셋-노아-셈-아브라함-이삭-야곱 등을 경유하여 부자간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다.

창세기에는 ‘대략이(계보가, 후예는) 이러하니라’ (These are (or ‘This is the book of’) the generations of...) 라는 구절이 11번이나 등장한다. (KJV 참조 : 창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6:9, 37:2). ‘대략(generations, 계보, 후예, 사적, 약전)’ 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톨레돗(toledoth)’은 또한 ‘근원 (origins)’, ‘역사’ 또는 심지어 ‘가족 역사(family history)’를 의미할 수 있고, 그리고 각 구절은 호명되는 사람이 연루된 역사적 사건들의 앞이나 뒤에 따라 나온다 [9].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은 아담, 노아, 셈 등 각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 동안 또는 이전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기록했고, 모세는 성령의 확실한 영감으로 이 기록들을 선택하고, 모으고, 편집하여 현재 일맥상통한 상태의 창세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10]. 

창세기는 벨하우젠의 진화론이 요구하는 것처럼, 우상숭배로부터 유일신으로의 진행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시로 시작하고,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거부하고, 결국 하나님에 의해 바빌론에게 포로로 넘겨지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다른 단어들이 사용된 것은 무엇인가?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단어 ‘엘로힘(Elohim)’은 창세기 1:1절에서 2:4a 까지 하나님에 대한 호칭으로 25번 사용되었다 [11]. 이 호칭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권능과 주권을 가지신, 창조했던 물질 세계보다 상위에 계시는 전능하시고 경외스럽고 신실하신 존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높은 호칭 (=‘하나님, God’)이며,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에 대한 최초의 실제적 기록을 위해 모세가 사용했던 적절한 단어였다 [12].

창세기 2:4절부터, 하나님을 언급할 때는 히브리어로 문자 YHWH를 사용한다. 때때로 이것은 ‘여호와(Jehovah)’로 번역되며, 더 자주 ‘주’ (‘Lord’, 첫자만 대문자로)로 번역되는데, 이것이 구약성경(6,823 번)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 단어는 ‘항상 계셨고, 현재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분’을 뜻하며, 하나님의 매우 개인적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과의 개인적이고 계약적인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창세기 2:4b 이후에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던 방법과 그가 그들을 위해 준비했던 배경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13]. 여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14], 그리고 서로 간에 사랑의 계약적 교제 가운데 살아가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세가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호칭으로 YHWH를 사용해야만 했던 것은 매우 적절했다. 창세기 2장에서, YHWH는 Elohim에 연결되어 합성 이름인 YHWH-Elohim (= 여호와 하나님, the Lord God)을 형성한다. 이 이름은 유일신으로서 약속의 하나님 YHWH가 전능하신 창조자인 Elohim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를 서로 다른 저자들의 것이라고 주장할 어떠한 논리적인 이유(하나님의 호칭으로 사용된 단어에 의거하여)도 없는 것이다.

같은 원리가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과 구약성경 전체에 적용된다. JEDP 가설 체계는 자기 모순적이다. 그 가설의 옹호자들은 (하나 이상의 하나님 호칭을 사용하는) 구절(verses)들을 항(sections)들로 분할하고, 심지어 한 문장 안에 있는 호칭이 다른 부분들을 다른 저자들의 것이라고 인정해야하게 되었다. 이런 뒤죽박죽은 고대 중동의 문헌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일한 것이다.

만일 이 문서가설이 다른 어느 고대 책에 적용되었다면, 이 가설을 장려하기 위한 ‘학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결론

결국,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를 사용하신 하나님이었다. 이 말은 하나님이 ‘타자수’로서 모세를 사용했던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세가 출생하던 날부터 하나님은 그의 작업을 위해 모세를 준비시켰던 것이다. 때가 되었을 때, 모세는 모든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고, 창세기에 포함시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하여 실수없이 성령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은 알려진 역사와 일치하며, 더불어 성경의 주장과 원리 (디모데후서 3:15–17, 베드로후서 1:20–21)에도 일맥상통한다.

반면에 사기적인 JEDP 가설에는 어떠한 역사적 증거도 없으며, 영적, 신학적 기반도 없다. 이 가설의 내용은 완전히 틀렸으며, 그것을 장려하는 ‘학문’은 전적으로 가짜이다. 진화론에 기대어, 이 가설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침해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Josh McDowell, More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 Here’s Life Publishers, 1981, p. 45.
2. Notable exponents of Wellhausenism were Samuel R. Driver in England (1891), and Charles A. Briggs in the USA (1893). Since Wellhausen’s time, other liberal critics have ‘found’ up to 40 alleged contributors to the Pentateuch, including an Edomite source S and a Canaanite source K — there are almost as many subdivisions as there have been ‘experts’ finding sources!
3. Adapted from Dave Breese, Seven Men Who Rule the World from the Grave, Moody Press, Chicago, 1990, pp. 89 ff.
4. Adapted from Gleason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 Zondervan, Michigan, 1982, pp. 51–52.
5. In Genesis 13:10 the Jordan valley is compared with ‘the land of Egypt, as thou comest unto Zoar’ — appropriate only for readers unfamiliar with the Jordan Valley in Palestine but acquainted with Egypt. Hence written near the time of the Exodus from Egypt, not many centuries later.
6. The crop sequence in Exodus 9:31–32 is Egyptian, not Palestinian. The trees and animals referred to are mostly indigenous to Egypt or the Sinai Peninsula, not Palestine, e.g. the acacia tree, used for the tabernacle furniture, is native to Egypt and Sinai, but is hardly found in Canaan, except around the Dead Sea. The skins prescribed for the outer covering of the tabernacle in Exodus 26:14 (Hebrew tachash), were most likely those of the dugong or sea cow (Zool. Sirenia)—found in the sea adjacent to Egypt and Sinai but foreign to Palestine. See ref. 4, p. 46 ff.
7. More Egyptian loan words are found in the Pentateuch than anywhere else in the Bible, as would be expected if the author was Moses ‘learned in all the wisdom of the Egyptians’ (Acts 7:22). The very name ‘Moses’ is Egyptian not Hebrew (Exodus 2:10).
8. There is no mention in the Pentateuch of the temple, or that Jerusalem would be its future location — the only centre of worship mentioned was the tabernacle, a tent.
9. Genesis 2:4; 5:1; 6:9; 10:1; 11:10; 11:27; 25:12; 25:19; 36:1; 36:9; 37:2. The first of these,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Genesis 2:4), does not mention a human name, as no man was present during Creation Week until day six. The information was probably revealed by God to Adam, who then recorded it (ref. 10).
10. Henry Morris, The Genesis Record,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Michigan, 1976, pp. 22–30; also Prof. Dr. F.N. Lee, personal communication, April 1998.
11. ’Elohim is a Hebrew plural form meaning ‘more than two’. In Genesis 1:1 it occurs with the verb ‘created’ (Hebrew bara’) in the singular form. It is thus a plural noun with a singular meaning, suggesting the uni-plurality of the Godhead. The Christian doctrine of the Trinity is thus foreshadowed in the Bible right from the very first verse. See also the use of the word ‘us’ in Genesis 1:26 and 11:7.
12. Note that the power of God associated with the use of this word is seen much more clearly in His having created the vast contents of space, as well as the astounding complexities and minutiae of life on Earth, in the short timespan of Creation Week, rather than in any long-drawn-out evolutionary timetable. See C.V. Taylor, The First 100 Words, The Good Book Co., Gosford, NSW, Australia, p. 3, 1996.
13. There is no contradiction between Genesis 1 and 2. In Matthew 19:3–6, Jesus quoted from both accounts together, 1:27 and 2:24, showing them to be equally authoritative and fully supplementary. See also D. Batten, ‘Genesis Contradictions?’ Creation 18(4):44–45, 1996 (go to online version); R.M. Grigg, ‘Should Genesis be taken literally?’ Creation 16(1):38–41, 1993 (go to online version).
14. Cf. Hosea 6:7: ‘But they like men [Hebrew: literally ‘like Adam’ or ‘in Adam’] have transgressed the covenant …’


창세기에는 단지 1명의 저자만이 있었다는 것에 컴퓨터는 동의한다.


다음은 1982년 8월의 옴니(Omni) 잡지에서 인용된 것이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대학 (Technion University)의 연구진들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20,000개의 히브리 단어들을 컴퓨터에 입력한 후에, 6개 문자 이상으로 구성된 동사들과 많은 단어들로 끝나는 많은 문장들을 발견했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예후다 라다이(Yehuda Radday)는 이러한 특유한 패턴들이 몇 번이고 거듭 나타나기 때문에, 창세기의 저자는 단일저자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그들의 철저한 컴퓨터 분석을 통해서 창세기는 82%의 확률로 단일저자가 쓴 것으로 제안되었다.”


이와 같은 점토판(clay tablets)들은 장기적으로 문서를 기록하는 데에 있어서 이상적인 수단이었다. ‘딱딱한 큰 돌(Flintstones)’과는 달리, 이 점토판들은 한 손으로도 잡을 수 있었다. 족장의 기록들이 노아의 방주에 실렸고, 그후에 모세가 창세기를 (영감에 의해) 편집할 때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참조 1 : Debunking the Documentary Hypothesi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249

How was Moses able to read pre-Tower of Babel text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eedback/2006/1027.asp

Who Wrote Genesis? Are the Toledoth Colophon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797


참조 2 : 성경 관련 글들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 홈페이지/자료실/성경과 기독교

http://www.creation.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B0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0/i4/moses.asp

출처 - Creation 20(4):43–46, September 1998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49

참고 : 2797|3020|2936|1412|1413|2323|2525|512|3148|2330|2982|4329|4258|4237|4148|4071|4100|4043|3974|3945|3935|3932|3898|3872|3812|3783|3731|3730|3707|3739|3689|3654|3641|3628|3633|3623|3589|3372|3311|3302|3289|3242|3233|3220|3218|3208|3206|3204|3186|3170|3168|3166|3162|3155|3101|3097|3065|3036|3022|2996|2970|2960|2942|2805|2746|2737|2688|2643|2549|2545|2534|2530|2515|2458|2425|2321|2362|2030|1805|1793|1790|1756|1430|921|721|720|666|629|630|568|522|521|528|3931|3055|3024

여호수아서의 하솔에 관한 기록은 정확했다. 

(Joshua Was Right about Hazor)


       텔 하솔(Tel Hazor)에서 발견된 깨진 동상 조각(statue pieces)은 이스라엘에서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옳았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Science Daily(2016. 7. 25) 지가 성경이 정확했다고 보도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당신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 글을 옮겨본다 :

이것은 당시 남부 가나안에서 가장 중요한 왕이었던 하솔 왕의 특별한 위상을 고려해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BC 15~13 세기에 하솔의 특별한 중요성은 '모든 나라의 머리(the head of all those kingdoms)'(여호수아 11:10)라고 표현했던 하솔에 대한 성경 기록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BC 두 번째 천 년 전에 하솔의 인구는 약 20,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지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였다. 도시의 크기와 애굽(이집트)과 바빌론을 연결하고 있는 전략적 위치는 성경 여호수아서(수 11:10)의 기록처럼 '모든 나라의 머리'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스라엘 인들은 하솔을 점령함으로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정복과 정착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 도시는 재건되어, 솔로몬 왕에 의해서 요새화되었고, 아합 왕과 여로보암 2세 시대까지 번성했다가, BC 732년 앗수르에 의해서 최종 파괴되었다.

기사는 하솔에서 발견된 이집트의 신, 아마도 프타(Ptah)의 깨진 조각들에 대한 것이었다. 고고학자들은 그것은 강력한 왕에게 선물되었던 골동품이나, 공식 선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지역에서는 3년 전에 스핑크스 발의 조각이 발견됐었다. Science Daily(2013. 7. 9) 지는 그것을 그 시대에 '놀라운 등장'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은 레반트에서 발견됐던 유일한 다른 로얄 스핑크스 조각품(royal sphinx sculpture)이었기 때문이었다. 조각 난 상태의 동상 모습은 가나안의 신상들을 파괴해버렸다는 성경 기록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절단된 명확한 흔적들은 아마도 BC 13세기 경에 있었던 도시의 마지막 정복과 파괴 시에, 그것들 대부분이 의도적으로 격렬하게 부서졌음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11장은 하솔과 북부 연합 왕들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에게 성경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창조로부터 노아 홍수, 홍수 이후 족장들, 모세, 여호수아, 그 이후 사건들에 대한 끊김이 없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세속적 고고학자들은 때때로 그들이 신뢰성이 있다고 간주하는 성경의 부분만을 선택하고 참고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의 모든 다른 부분들도 신뢰할 수 있음이 독립적으로 확증되고 있다. 다른 고고학적 설명과는 다르게, 성경 기록은 왕들의 업적만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반대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들의 죄에 대헤서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항상 역사(History, His story)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이 고고학적 장소에 대한 크기와 인구는 여호수아의 정복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왔던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했다. 하솔의 왕 야빈(Jabin)뿐만이 아니라, 그가 조직했던 다른 왕들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7/joshua-hazor/

출처 - CEH, 2016. 7. 2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32

참고 : 5985|4422|4409|4405|4395|4390|4381|4376|4148|3872|4071|3233|6401|6205|6179|6089|6066|6017|5969|5741|5627|5463|5395|5275|4852|4819|4742|4385|4383|4391

사해의 후퇴하는 해안선이 드러낸 놀라운 지질학 

(Dead Sea Receding Shoreline Reveals Amazing Geology)


    사해(Dead Sea)의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흥미로운 지질학적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사해는 죽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수면(해수면 아래로 400m)으로 유명한 이 호수는 역사적 랜드마크이며, 지질학적 경이가 되고 있다. 또한 그곳은 유명한 광물자원의 창고이고, 성지순례의 인기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해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아마도 금세기 내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해에서 밝혀지고 있는 과학뉴스들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콜롬비아대학 지구연구소의 레나 그레고리안(Lena Gregorian)은 연구소의 블로그인 ‘행성의 상태’에서 사해에 관한 심도 있는 글을(Dead Pool: the Depletion of a Shared Natural Resource) 썼다. 그녀의 글은 후퇴하는 해안선에 따라 노출된 거대한 ‘싱크홀(sinkholes, 땅꺼짐)’들에 대한 사진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해수면은 1년에 1m 정도씩 낮아지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후퇴는 호수의 광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서, 특히 수분 제거에 기초한 추출방법으로는 얻어지기 어려운, 비료로 사용되는 가성칼리(potash)는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녀는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사해 바다를 보존하기 위한 실행 방법들을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BBC News(2016. 6. 17) 지에서 케빈 콘놀리(Kevin Connolly)는 사해에 관한 더 심도 있는 글을 게재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사해는 물에서 뜬 상태로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해는 독특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고, 세계의 환경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특히 건조기후의 지역에서 관개수로로 인해 지속적인 물 부족이 발생되는 장소들에 대한 민감한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그 글은 지난 44년 동안에 후퇴하는 해안선에 대한 위성사진들을 비교하며 보여주고 있었다. 물이 줄어드는 원인은 주로 유일한 물의 공급처인 요르단 강물의 수량 감소에 기인한다. 1차 세계대전 동안에 만들어졌던 해수면을 표시해 놓았던 한 표식은 이제 마른 암석의 높은 곳에 남겨져 있다.

사해는 오늘날의 여행가들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뛰어난 장소였다. 사해의 풍경은 정말로 뛰어나다. 그곳은 달 표면과 같은 모습으로, 그랜드 캐니언의 깊은 곳에 있는 코머 호수(Lake Como)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고 콘놀리는 썼다. ”고대의 사람들은 그곳에는 어떤 독특한 것이 있다고 이해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경이가 우리 세대에서 영구적으로 황폐화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다.

해안선의 후퇴는, 특히 지질학적 작용에 의한 싱크홀들의 발생은 해안에 있는 산업과 도시에 피해를 주고, 관광객들의 방문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한 일은 40년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지금은 5,500여개의 싱크홀들이 존재한다. 콘놀리는 이전 해안가에 있던, 씽크홀에 의해서 심각하게 파괴된 한 리조트 건물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싱크홀의 형성은 가속화되고 있는 중이다. 싱크홀은 올해에만 700여개가 생겨났다고 그는 말했다.

싱크홀은 바다가 물러가면서, 뒤에 남겨진 지하의 소금 퇴적층이 거대한 틈 안으로 붕괴되거나, 지하에서 담수가 새어나와 표면을 흐르면서, 소금들을 녹여 사라지게 할 때 형성된다.

일부 싱크홀은 직경 100m, 깊이 50m나 되는 거대한 크기인데,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걸쳐 강력한 지진들이 발생했던 지역으로 보여지게 한다.

지질학자들은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지역을 주목하고 있는 중이다.(cf 5/03/2004). 미국 지질협회의 GSA Bulletin 지에서 이스라엘과 영국의 지질학자들은 후퇴하는 해안선 때문에, 리산 반도(Lisan Peninsula)의 명백한 지진 사건들로 인해 발생했던 수평전단(horizontal shear) 지역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중대한 변위(displacements)가 단 한 차례의 지진 동안에 동시에 발생했었다고 결론지었다.

지진발생 동안 지표 근처에는 파괴적인 수평변위(horizontal displacements)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수평 불연속선을 따라 지진파에 의한 미끄러짐(coseismic slip)이 일어나 있는 현장 증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지진 활동이 활발했던, 사해 분지 내에 있는 홍적세 말기의 리산 지층(Lisan Formation)에는 측면이 잘려진 최대 15m 깊이의 수직적 쇄설성 암맥(clastic dikes)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것은 그러한 수평적 변위에 대한 고유의 옆모습(profiles)을 제공하고 있다... 뛰어난 노출면과 표지자의 질은 우리에게 최초로 상세한 지표근처의 수평전단(horizontal shearing)을 기록할 수 있게 해주며, 수평지층면을 따라 발생한 변위는 지표 근처의 층리가 발달된 지층에서 지진파에 의한 변형을 흡수하는 하나의 가능한 메커니즘임을 나타낸다.

창조 지질학자인 스티븐 오스틴(Steven Austin) 박사는 역사적 지진(see ICR article, 아래 관련자료 링크 1, 2 참조)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로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사해 해안 퇴적층을 따라 노출된 협곡에서, 아모스 서에 의해 기록되어 있는(아모스 1:1), 웃시야 왕 때에 이스라엘 땅의 대부분을 뒤흔들었던 지진을 포함하여,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여러 지진들의 표지자(earthquake markers)들을 확인해왔다. 그는 또 다른 글에서(see ICR article) 주요한 지진들의 발생과 영향을 기술해 놓았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그러나 바다보다 8~9배나 더 짠 소금 바다인 사해의 해안선이 점점 후퇴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은 이스라엘, 요르단, 그리고 사해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이웃 나라들의 정치적 입장 차이로 인해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이스라엘 내의 많은 것들이 성경 시대에 있었던 것들과 매우 다르다. 일부 관광객들은 성전산 꼭대기의 사원은 말할 것도 없고, 기브아에 있는 사울 왕의 궁전터 뒤에서 쇼핑몰과 햄버거 가게를 발견하고 당황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을 여행해볼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YouTube에 올라온 요르단 강에 있는 ‘두 바다 이야기(Tale of Two Seas)’, 갈릴리 바다와 사해 바다에 관한 1분짜리 동영상은 영적 교훈을 주고 있다.



*관련기사: 사해에 생긴 커다란 구멍..곳곳에 '거대 싱크홀'(2015. 7. 30. SBS News)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098604

사해 바닥이 녹고 있다.. ‘싱크홀’ 빈발해 유명 해변 2곳 폐쇄(2015. 7. 30.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703845

사해 수면 낮아져 주변에 '싱크홀' 급증…관광산업 큰 피해 (2015. 7. 30.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30/0200000000AKR20150730077900009.HTML

사해 살리고 이·팔 공존 물길 뚫고 … 홍해서 답을 찾다
: 요르단·이스라엘·팔레스타인 '홍해~사해 파이프라인' 협정 (2013. 12. 23. 중앙일보)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213163

'중동에 맑은 물을'..1조원대 ‘요르단 담수화 사업’ 잡아라 (2015. 9. 16. 환경 TV)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html?no=5224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6/dead-sea-drying/

출처 - CEH, 2016. 6. 27.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10

참고 : 5018|2739|5332|4881|5780|4696|5002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는 사기로 확인됐다. 

(Fake ‘Gospel’ Manuscript Exposed)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Gospel of Jesus’s Wife)'라는 고대 문서는 거의 확실한 사기(fraud)로 밝혀졌다. 당신이 이러한 사기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다면, 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1세기 크리스천들에게 신약성경의 4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후, 수세기 동안 수많은 가짜 문서들이 예수님과 관련하여 쓰여졌다고 주장됐었다. 2012년에 발표됐던 최근의 한 사례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었다. Live Science (2016. 6. 17) 지는 말한다 :

2012년에 발표된 이후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예수 그리스도가 결혼을 했다고 제안하는 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는 거의 확실하게 가짜임이 밝혀졌다.

소위 ‘예수 아내 복음서’를 발견했고, 그것이 진짜라고 주장했던, 하버드대학 교수인 카렌 킹(Karen King)은 이제 그 파피루스 문서가 위조(forgery)된 것 같다는 것과, 그 고대 문서의 소유자가 문서의 출처와 배경에 대해서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위조범은 월터 프리츠(Walter Fritz)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그럴듯하게 말하는 플로리다 거주자로, 포르노 사진작가이며, 이전 동독의 비밀경찰 스타시(East German Stasi)의 회원이었다. 그 파피루스 조각이 진품이라고 제일 먼저 주장했던,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이며, 페미니스트(Feminist)인 카렌 킹은 이제 그 사건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 하고 있다. The Atlantic 지에서 아리엘 사바르(Ariel Sabar)는 그것을 '터무니없는 현대적 사기'라고 부르면서, 그 사기 사건의 음모, 위조, 기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정상적인 생활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대대적으로 선전됐던 안티 기독교인의 한 '증거'는 또 다시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되었다.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일까? Live Science 지는 쓰고 있었다. ”2012년에 그 문서가 처음 공개된 이후, 많은 언론 매체들은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진화론이 만연해 있는 오늘날의 학문 세계에서 이러한 종류의 쓰레기 주장들은 너무나도 넘쳐나고 있다. 그 문서를 위조했던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라. 공산주의자, 포르노 사진가, 사기꾼... 정말로 슬픈 일이다. 정확한 보도를 해준 Live Science 지와 The Atlantic 지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처음에 보도됐던 것만큼 대대적으로 보도되지는 않고 있었다. 따라서 대중들은 그것이 사기로 밝혀진 사실을 잘 모를 수 있다.  

2017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성경 박물관(The Museum of the Bible)'이 개장될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경 박물관 중 하나로 여겨짐). 이미 소규모의 미니 전시관이 여러 도시들을 순회하며 개최되고 있다. 설형문자로 된 고대 문서에서부터, 원본 사해문서와 사본들, 종교개혁 시대의 성경, 희귀 사본들, 현대의 디지털 성경까지 4만 점 이상의 많은 전시물들이 특수 효과와 함께 전시될 계획으로 있다고 한다.



*이전 관련기사 : 예수 결혼?  '내 아내…' 문서 기독교 발칵 (2012. 9. 20.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9376586

예수의 아내 언급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 발견 (2012. 9. 20.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People/3/06/20120920/49538270/1

”예수의 부인 언급 파피루스, 고대문서 맞다” (2014. 4. 11.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632388.html

예수 '나의 아내…' 직접 언급한 고대 파피루스 문서, 위조 아닌 진짜'(2014.4.11.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1/2014041102328.html?Dep0=twitter&d=2014041102328


예수님 아내 등장하는 파피루스 가짜 (2015. 2. 28. 교회와 신앙)
CNN 다큐멘터리 '<예수 아내 복음서>는 위조된 것” 방송 예고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549

”'예수 아내 복음서'는 현대에 위조된 것” 전문가들 결론 (2015. 7. 19.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19/0200000000AKR20150719003800091.HTML


*관련기사 : '‘예수의 아내 파피루스’의 가치는 먼지 수준”
美 신학자들, 신빙성 혹평하며 위조 확실시  (2016. 6. 21. 기독일보)

''예수의 아내' 파피루스 날조였다'… 하버드대 교수 과거 주장 번복 (2016. 6. 21. 포커스뉴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6/fake-gospel-manuscript-exposed/ ,

출처 - CEH, 2016. 6. 1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01

참고 : 4663|4878|4872|4870|4868|4726|4725|4723|4718|4714|4713|4599|4578|4540|4514|4492|4488|4480|4463|4452|4451|4450|4416|4414|4413|4400|4399|4394|4391|4390|4385|4383|4387|4376|4375|4329|4685|4237|4148|4100|4071|4043|3945|3932|3872|3707|3689|3641|3633|3628|3311|3302|3249|3233|3218|3208|3166|3162|3148|3020|3022|2530|2321|2805|2688|2525|1756|1793|1790|720|721|4819|2330|5861|5852|638|5753|5741|5723|5638|5628|5625|5578|5555|5514|5094|5463|5415|5402|5395|5275|5271|5035|5034|5033|6205|6235|6353|6360

Russell Grigg
2015-09-08

갈릴레이에 대한 오해

 (The Galileo 'twist')

Russell Grigg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은 갈릴레이 시대에 로마 가톨릭 교회가 범했던 실수를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고 (창조과학자들의 입장을 반대하는,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장구한 지구 연대를 믿는 크리스천들로부터) 자주 비난 당한다. 그 당시 제도권 교회들은 천동설(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것으로)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 반대(지동설)가 사실임이 갈릴레이에 의해서 밝혀진 후, 신자들은 성경 내에서 그들의 믿음에 어떠한 문제 없이 이 새로운 사실이 편안하게 수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갈릴레이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의 창조를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에게가 아니라, 유신론적 진화론자들과 오래된 연대의 지구를 믿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어야만 한다. 


배경 

2천 년이 넘는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지구가 완벽한 우주의 중심이고, 별들은 끝없이 원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AD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Ptolemy)는 천동설(Ptolemaic system)로 알려지게 된 생각으로 이것을 확장하였다. (아래의 박스 글을  보라). 그리고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는 지구와 행성들이 태양 둘레는 돈다는 더 나은 설명을 가정했다.1,2 

 

17세기에, 갈릴레이(Galilei Galileo, 1564–1642)는 망원경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를 반박하고,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반복 가능한 관찰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태양의 흑점이 표면에서 움직이는 것을 관측하여, 태양이 완전하지 않으며 스스로 회전하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그는 금성의 상(phases)들을 관측하였고, 이것으로 금성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음이 틀림없음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그는 목성의 4개의 위성들이(지구가 아니라) 목성의 둘레를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지구가 모든 것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1618년에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투명 구체(crystalline spheres, 행성들과 별들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를 통해 쉽게 통과하는 3개의 혜성들을 관측함으로서, 이 구체가 상상임에 틀림없음을 보여주었다.   


태양중심설(heliocentric system, 그리스어 helios는 태양) 또는 코페르니쿠스설(지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 당시의 천문학자, 철학자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변화를 거부하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갈릴레이의 글들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파괴하며, 적의를 가지고 반대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성경은 천동설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갈릴레이의 주장은 성경과 모순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의 발견을 부인하기 위해서 갈릴레이를 죽음의 고통으로 밀어 넣을 만큼 맹렬히 반대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이것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세계관의 과학적 기저를 이루고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이교 철학자들의 믿음체계를 교리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의 지식을 평가하는데 성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데 그 당시의 지식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갈릴레이가 반복적이며 과학적인 관측을 근거로 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관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와 같은 ‘소수의 견해(minority view)’을 거부하고, ‘대다수의 의견(majority opinion)’에 매달렸다. 

3. 그들은 성경이 지구 둘레를 태양이 돌고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한 몇몇 구절들을 성경에서 선택해 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기록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실패했다. 모세가 ”해가 돋았더라 (risen) (창19:23)” 그리고 ”해가 진지라 (set) (창28:11)” 라고 기록했을 때, 그의 목적은 천문학적 관점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세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표현으로 언어를 사용하였다.3 그리고 가장 편리한 기준 틀(reference frame, 이 경우에서는 지구)로 상대적 운동을 기술하는 것은 물리학에서 완벽하게 유효한 것이었다. (다음의 글 Sunspots, Galileo and heliocentrism 을 보라). 


명백한 의미는 태양 자체가 움직인다는 이차적인 추론을 요구하지 않고, 보여지는 현상을 언어로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이것은 오늘날의 기상학자들이 기상예보 시에 ‘해 뜨는(sunrise)’ 시각과 ‘해 지는(sunset)’ 시각을 알려줄 때 사용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그들은 기준점을 지구로 사용하여, 보여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말을 편리하게 사용하였다고 해서, 기상 예보관들을 과학을 모르는 비과학적인 사람들이라고 취급하지 않듯이, 성경에 그러한 표현이 있다고 성경을 비과학적으로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분명히 시적 표현을 의미하는 시편 19:6, 시편 93:1 과 같은 구절들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4,5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시19:6).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시93:1))  


오늘날 

오늘날 우리들은 대부분의 과학적 제도들이 자연주의(naturalism, 모든 것들이 자연적 원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와 오래된 연대(long ages)에 매우 편향되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과학적 제도들은 우주의 모든 것들은 한 번의 큰 폭발(빅뱅)로 기원 되었으며, 수십억 년 동안의 진화를 거쳐서 모든 것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서, 자연주의적 믿음 체계를 선전하고 있다. 오늘날 정말로 많은 천문학자, 과학자, 교사들이 이러한 이론을 가르침으로서 그들의 생계를 꾸려가며, 돈을 벌고 있고,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계 (The Ptolemaic System, 천동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하면, 태양, 달, 행성, 별들은 일련의 오목한, 수정구체(crystalline spheres)의 둥지 안쪽에 고정된 지구 둘레를 돌고 있었다. 이것은 지구중심설(geocentric or earth-centred system) 이라고 불리웠고, 천동설로서 알려져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이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던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다. 특히 지구에서 보여 지기에 하늘을 가로지르며 앞뒤로 움직이는 행성들의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창적인 그리고 처음에는 설득력이 있었던 몇 가지 메커니즘을 가정했다. 그러나 결국 불가능하도록 복잡하고, 과학적으로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각 행성들은 주전원(epicycle)이라 불리는 자신의 작은 곡선 내에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반면에 모든 주전원들은 지구 둘레를 더 큰 가상의 원(deferents) 내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천동설과 같은 이러한 생각은 비록 재치가 있고 무신론자들에게 아마도 설득력 있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복잡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서 짐이 되고 있으며, 간단히 말해 틀린 생각이다.6 


동시에, 우주와 생명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하나님에 의해서 직접 창조되었음) 성경은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과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자들 중에서 소수이다. 그들은 설계의 흔적들, 화석 기록, 세포 내의 엄청난 정보...등과 같은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면 기대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갈릴레이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모든 증거들은 무시당하고, 조롱

당하며, 감춰지고, 기존 과학계에 사람들에 의해서 악의적으로 반대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교회의 지도자들은 대학에서 가르쳐지는 과학에 의해 설득 당해서, 빅뱅, 수십억년, 진화론과 같은 것들이 모두 성경과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서, 무신론자들의 공격을 피하여 버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소수(창조론자들)의 견해를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 그러한 교회 지도자들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스테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등과 같은 비기독교인(즉 이교도)의 믿음 체계이며 철학을 교리로서 받아들였다. 그래서 17세기의 전임자들처럼 당시의 지식을 평가는데 성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데 당시의 지식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오래된 연대의 지구와 우주를 반대하고 있는 (젊은 연대를 나타내고 있는) 압도적인 관측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행해졌던 어떠한 (반복해 볼 수 있는 소수의) 실험 결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진화는 확립되지도 않았고, 관측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견해(minority view)’을 거부하고 ‘대다수의 의견(majority opinion)’에 매달렸다.7 

3. 그들은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을 신화로서, 또는 오래된 시대에 걸쳐 일어난 일로 설명하며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에서 저자가 전달하려고 했던 표현으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실패했다. 따라서 본문을 읽을 때에 모세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화들이나 옛날이야기들을 수집해서 늘어놓기 위함이 아니며, 창세기 1장의 날들은 오래된 시대와 같은 어떤 것의 은유적인 표현이나 원시문화의 사람들에게 수십억 년을 간단하게 설명하기위해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8 오히려 성경은 모세가 세계 역사를 태초의 창조 시점에서부터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도착까지를 문자 그대로 기록하면서 창세기를 썼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갈릴레이의 상황에 대한 흥미로운 오해이다. 그 이후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에서 시의 형태(poetic format)로 쓰여졌거나, 시가서의 구절들은 문학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에 그들은 산문으로 쓰여졌거나, 글자 그대로의 역사를 의미하는 성경의 구절들까지도 시(poetry)로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정한 교훈 

창조과학자들은 교회가 17세기에 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실수를 (즉 성경이 사실과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대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교회는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성경을 지지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아직도 권위적인 대중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갈릴레이 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이 실수로 성경이 지구중심설을 지지한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지구가 움직인다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무신론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방어하기 위한 다른 교리가 없었다. 


이에 비해, 진화론은 기원에 대한 무신론적 설명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이론이다. 또한 하나님을 죽음과 고통의 저자(원인 제공자)로 만들고 있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창세기의 날들을 지구의 일상적인 날들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다른 많은 성경 구절들과 교리들을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녹색 식물들(창1:30), 안식일의 계명(출20:9-11), 하나님이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마19:4), 최초의 남자와 여자에 기초한 결혼에 대한 가르침(마19:3-9), 아담이 글자 그대로 최초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설명(로마서 5장, 고린도전서 15장)...등등       


따라서, 갈릴레이로부터의 교훈은 교회가 진화론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론을 반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진화론을 입증하지 못했고, 오히려 진화론은 과학에 반대됨이 입증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도 명백히 반대되기 때문이다. 



*End notes :

Thomas Schirrmacher 박사의 글 'The Galileo Affair: history or heroic hagiography, CEN Technical Journal 14(1):91–100, 2000 (download PDF file)”은 전설과는 반대로,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교회 공직자들에 의해서 매우 존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오만, 동료들의 시기, 그리고 교황 어반 8세의 정책 등에 의한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는 성경을 비판한다고 고소당한 것이 아니라,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소당했다. 또한 Danny Faulkner 박사의 글 Geocentrism and Creation 과 Q&A의 다른 글들을 참고하라 Q&A: Galileo and Geocent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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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동영상] 태양도 공전한다! 태양계의 실제 움직임 화제(2012. 12. 31. NewDaily)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36482


References and notes

1. His book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On the Revolutions of the Celestial Spheres), published in 1543, challenged Aristotle’s (and thus also at that time the Church’s) teaching that the earth was the centre of all change and decay, and that

around it were the changeless heavens.

2. In the Copernican system the earth and planets circle the sun, with the earth taking one year to do so; in the Ptolemaic system the sun, planets, and stars are all required to circle the earth every 24 hours. A huge problem with the latter system is that the nearest star, Proximus Centauri (also known as Alpha Centauri C),is 4.3 light years away, so that if this star circled the earth every 24 hours, its speed would need to be nearly 10,000 times the speed of light (and much greater speeds would be needed for the more distant stars).

3. Similarly, Joshua was using the language of appearance in Joshua 10:12–13. For a discussion on this miracle, see my article Joshua’s long day: Did it really happen—and how? Creation magazine, 19(3):35–37, June–August, 1997.

4. Psalm 19:4–6 metaphorically describes the sun as coming forth from a tent in the heavens, and also personifies the sun both as a bridegroom and as a strong man running a race. One would have thought that even the inflexible literalists of Galileo’s day might have allowed the writer of this Psalm to have meant it to have had a poetical meaning.

5. In Psalm 93:1, the phrase ‘the world also is established, that it cannot be moved’needs to be read alongside v. 2, ‘[God’s] throne is established of old, where the same Hebrew word [kown = ‘established’] is used and has the meaning 'set up', 'stable', 'secure', 'enduring', ‘confirmed’, etc., not ‘immobile’ or 'stationary’. Likewise the Hebrew word for ‘moved’ (v.1) is used in Psalm 16:8, ‘I shall not be moved’, meaning that the writer would not stray from the path of the Lord, not that he was rooted to any one spot.

6. For example, the exponents of the big bang fail to say where the energy originally came from, where the laws of science came from, and what it was that ‘quantum fluctuated’ before there was anything there to fluctuate, and so on—see What about the big bang? and If God created the universe, then who created God?. Molecules-to-man evolution is contrary to the principles of thermodynamics, as well as to the law of biogenesis (life comes only from life), the fossil record, and much more.

7. See, for example, John Morris,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Arizona, 1994, and Evidence for a young world by Russell Humphreys.

8. Top-flight Hebrew academics, e.g. Professor James Barr of the University of Oxford, are unanimous that the plain meaning that the Hebrew text is intended to convey is that ‘creation took place in a series of six days which were the same as the days of 24 hours we now experience’. (See Six days? Honestly!)



출처 : Creation 19(4):30–32, September 1997

URL : https://creation.com/the-galileo-twist 

번역 : 미디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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