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김준
2012-08-14

생명의 피와 예수님의 보혈


요약

무엇이 생명인가? 또한 과학적으로 생명의 속성은 무엇인가? 생명체와 무생물의 차이는 무엇이며, 다른 생명체와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본 논문에서는 이들에 대한 과학적인 현상을 논의할 것이다. 기독교와 피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힘드셨던 일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신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준다는 말을 아마도 생명을 잉태하고 분만하는 산모들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본 논문에서는 피의 과학적인 기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신앙적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I. 본문

생명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생명과학 과목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기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생명체는 다음과 같은 과학적인 특징이 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는 동물, 식물, 미생물에게 모두 해당되는 사실이다.

  첫째, 생명체는 세포로 구성된 조직이 있고,
둘째, 에너지를 사용하여 물질대사를 하며,
셋째, 생체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으며,
넷째,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다섯째, 가장 중요한 생명체의 특징은 생식에 있다. 즉 자손을 증식시키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특징이며, DNA와 같은 유전정보가 대대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 그 답은 생명체를 창조하신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땅에 속한 생명의 속성은 땅으로 돌아가고, 하늘에 속한 생명의 속성은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땅에 속한 생명의 속성으로는 육체, 혼 등을 말하며, 하늘에 속한 생명의 속성은 영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생명의 창조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물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그러나 창세기1장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창조(bara; 영어로는 create)라는 동사를 3번 쓰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 그럴까? 창조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를 만들 때에 이를 창조라고 한다. 예술가가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창조활동이지만, 목수가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것을 창조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하나님의 창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을 쓰신 것 같다. 첫 번째로는 제1일에 천지 및 물질을 창조하실 때 사용되었으며(창세기 1:1), 두 번째로는 제5일에 물고기와 새와 같은 동물 혹은 짐승을 창조하실 때 사용되었으며(창세기 1:21), 세 번째로는 제6일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창세기 1:27). 신기하게도 제3일에 식물은 만들다(assa; 영어로는 make)라는 동사를 쓰셨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물론 식물이나 미생물이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 (명색이 생명과학자인 제가 이러한 주장을 펼 이유가 있는가?) 또한 이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창조속성이 무엇인가를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1일에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공백의 상태에서 이루어진 ‘물질의 창조’이었으며, 제5일은 ‘혼(혹은 의식)의 창조’이고, 제6일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영의 창조’를 뜻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생명체와 짐승의 차이는 무엇인가? 생명의 성경적 정의는 '피”의 유무에 달려 있다. 혼 즉 의식, 느낌, 인지 및 지각능력이 있는 동물은 대체로 이들을 조절하는 뇌의 기능과 피(혹은 이의 유사체)가 흘러 몸을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혼을 가진 존재이다. 식물이나, 미생물 혹은 소위 이야기하는 하등동물이 생명체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며, 물론 이 생명체들도 하나님의 창조물임은 이미 이야기 한바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짐승을 만드실 때에 혼을 창조하심으로 다른 생명체와 차이가 나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은 인간은 영, 혼, 육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데살로니가전서 5:23, 욥기12:10). 본인은 이 세 가지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짐승과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는가? 하나님을 주권자로 알아볼 수 있는 ‘영의 유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의 기능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고 그와 교감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이 친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생명으로 오셨으며,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보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순간 우리의 영은 거듭나게 되며,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의 영”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와 피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힘드셨던 일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신의 육체와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체와 피를 나누어준다는 말을 생명을 잉태하고 분만하는 산모들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육체와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위기 17:11).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모든 생명은 피에 있기에 죄로 죽은 생명을 살리려면 누군가 그 죄인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 것이 곧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면 정결한 짐승을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며 죄를 고백하고, 제사장은 그 죄를 짐승에게 전가 시키고 그 짐승을 죽여 그 피를 뿌려서 죄를 정결케 하였다. 즉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어야하나 그 사람의 죄 대신 짐승이 피 흘려 죽어 죄로 죽을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며,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과학에서 피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동물의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혈장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적혈구는 O2를 허파에서 받아 말초세포까지 나르는 역할을 한다. 그 뿐 아니라 세포에서 생긴 노폐물인 CO2와 H+ 이온을 나르는 역할을 한다. 백혈구는 침입한 병균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면역작용을 하는 것이다. 혈소판은 피부 등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게 되면 즉시 피를 응고시켜 우리 몸을 병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보호하고 아까운 피가 흘러 없어지는 것을 막아주며 상처가 치유되도록 도와 준다. 혈장에는 항체가 있어서 침입한 병균을 물리치며, 각종 영양분을 세포로 나르고, 세포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게 해 주며, 몸의 완충용액으로 pH, 무기염류농도, 체온 등을 적정하게 유지해 준다. 복잡한 과학이야기를 쉽게 정리해 보자.

첫째, 생명의 양식인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
둘째, 노폐물을 씻어냄
셋째, 몸 보호 및 항상성 유지
넷째, 병균의 대적 및 상처의 치유

본인이 십 수년 동안 피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다.

첫째, 예수님이 보혈을 흘리시면서 돌아가셨기에 우리에게 새 생명을 공급하셨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내신다.
셋째, 예수님이 보혈이 우리의 육체와 혼과 영을 덮어주시기에 우리 몸이 보호되고 유지된다.
넷째,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병이 들었을 때 치유 혹은 사탄의 공격을 받았을 때 대적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를 깨끗이 사해주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 하와가 범죄 했을 때 그들은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지만 하나님은 동물을 잡아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혀 몸과 죄를 가리워 덮어 주셨는데 동물이 아담 하와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생명이 최초로 희생된 것이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다고~~~~


기독교는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의 종교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했다. 예수님의 보혈로써 어두움의 세력을 무찌르고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의 피는 사탄이 우리의 죄를 근거로 하여 우리 양심에 송사할 때 물리치고 대적하는 능력의 방패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죄에 대하여는 사함을 받은 자요 또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산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말씀과 같이 허다한 예수님의 증인들도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고 죄인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렸다. 그들의 피 흘림은 복음들고 산을 넘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어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보혈과 믿음의 증인들의 피의 역사 위에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상기할 때 복음의 귀중함과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며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주) 이 내용의 일부는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생명의 말씀사 간, 2010)과 '창세기의 과학적이해”(한국창조과학회/생명의 말씀사 간, 2010)에서 발췌됨.


출처 - 2012 국제학술대회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440

참고 :

Bodie Hodge
2012-01-16

용의 전설 속에 감춰진 진실 

(Dragon Legends : Truths Behind the Tales)


       성경 욥기에는 베헤못(behemoth)과 불을 내뿜는 리워야단(leviathan)이 묘사되어 있다(욥기 40:15~24; 41:1~34). 이 생물들은 현존하는 생물과는 판이하게 다른 동물이다. 이들 용(dragons)들은 공룡(dinosaurs)이나, 공중과 바다를 넘나드는 여타 파충류는 아닐까?

용은 그림이나 도자기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의 문화 관련 기록물에 자주 등장한다. 등장하는 용들 간의 유사성은 하나님이 창조 5일과 6일(창 1:20~25)에 창조하셨고, 노아의 방주에 승선하여 대홍수(창 6:19)를 피해 살아남았던 이들 공룡들과 다른 파충류들을 실제 목격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많은 기록들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오늘날 용들은 환경 변화, 먹이 고갈, 인간의 사냥 등 다른 동물들이 멸종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우리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 남아있다.

호주
호주 퀸즈랜드의 북쪽 끝 지역에 쿠쿠 얄란지(Kuku Yalanji) 부족 출신의 원주민들은 바다와 호수에 서식하는 괴수를 묘사하거나 그렸는데, 그 모습이 플레시오사우르스(plesiosaur, 사경룡)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다.


바빌론
바빌론(Babylon)은 대홍수 이후 초기 문명의 중심부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기 동안 강력한 통치자였던 느부갓네살 2세는 유명한 이슈타르 문(Ishtar Gate)을 건축했다. 이 문에는 공룡처럼 4개의 발이 있으며 직립 보행을 하는 파충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중국
전 세계에 많이 알려진 중국의 용은 중국의 12 간지에도 등장한다. 12 동물들 중 열하나(쥐, 소 호랑이, 개, 쥐, 원숭이... 등)는 오늘날에도 흔한데, 12번째 동물(용)만이 신화 속의 존재라고 믿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짧은 다리와 발톱을 지니고 있는, 용처럼 길고 호리호리한 '큰 뱀들(serpents)'이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 이 용을 죽였던 것으로 보인다. 용의 몸체 중 일부는 약재로, 나머지는 미식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집트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Herodotus)는 그의 저서 역사(The Histories)에서, '아라비아(오늘날의 이집트)의 부토(Buto) 시 인근 지역을 갔을 때, 날개 달린 거대한 뱀(winged serpents)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거기에서 그 뱀들의 뼈들과 척추들을 보았으며 그 양이 엄청나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 뱀의 형상은 물뱀과 유사하지만, 날개에는 깃털이 없고 마치 박쥐의 날개와 유사한 모습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영국
1496년에 사망한 벨 주교(Bishop Bell)는 유명한 칼라일 대성당(Carlisle Cathedral) 내에 묻혔다. 그 무덤을 에워싼 정교한 놋쇠 조각판에는 몇 마리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긴 목의 용각류(sauropod)나 뿔 달린 케라톱시안과 같은 공룡처럼 보인다.


북아프리카
로마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Cassius Dio)는 한 로마의 군대가 용을 죽인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다마스커스의 요한(John of Damascus, AD ~676–749)은 그의 저서 ‘용과 귀신(On Dragons and Ghosts)’에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카시우스의 저서 로마사(Roman History) 11권의 원문 일부를 반복적으로 인용하였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로마 집정관 레굴루스(Regulus)가 카르타고와의 전투 중에, 갑자기 용 한 마리가 기어 올라와 그 군대 진영의 벽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로마 병사들이 레굴루스의 명에 따라 용을 죽여 가죽을 벗긴 후 그 가죽을 로마 원로원에 보냈다. 디오의 말에 따르면 원로원의 지시에 따라 그 가죽의 길이를 재보니 무려 36m에 달하고 길이에 걸맞게 두터웠다.'


스웨덴
앵글로 색슨의 서사 시인인 베오울프(Beowulf)는 기트족(Geats, 오늘날의 스웨덴 예테보리)의 왕 베오울프가 3 마리 용과 마주쳤던 것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 중 스웨덴에서 있었던 마지막 조우는 지하에 살면서 특정한 때만 나타난 불을 뿜는 나는 뱀(fiery flying serpent)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이 대결에서 입은 부상으로 베오울프는 죽게 되었다.  


페루
페루의 도자기나 공예품들이 유명한 것은 용과 공룡류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페루 국립 박물관에 가면 모체 문명(Moche culture, AD 400~1100)의 특성이 잘 반영된 도자기 한 점이 있는데, 용의 모습과 비슷한 공룡이 새겨져 있다.


미국 유타
몇 개의 암각화(petroglyphs)들은 익룡이나 육상공룡의 모습과 흡사하다. 산 라파엘 스웰(San Rafael Swell)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익수룡(Pteranodon)이나 익룡(Pterodactyl)을 닮았다. 내츄럴브릿지 국립공원에 보이는 형상은 용각류(sauropod)와 매우 유사하다.


*Bodie Hodge has earned both his undergraduate and masters degrees from Southern Illinois at Carbondale in mechanical engineering. Since joining Answers in Genesis, Bodie has contributed to several books, including Dragons: Legends and Lore of Dinosaurs.



번역 - 김형중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6/n4/dragon-legends

출처 - Answers, 2011. 9. 1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271

참고 : 740|738|905|741|4669|4362|4437|4655|4615|4624|1875|2058|474|2722|2529|462|460|2049|472|762|461|1145|2017|2680|2320|1433|2206|4299|4038|4007|2648|2650|2775|2690|1447|1448|1977|2856|2980|3583|3655|3658|3676|3694|3720|3811|3852|3865|3868|3871|3888|3889|3891|3957|3958|3995|4054|4098|4106|4136|4170|4175|4194|4230|4240|4284|4288|4314|4320|4629|4667|4702|4783|4882|5214|5237

Brian Thomas
2011-02-09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에 관해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 

(More Mysteries for the Science of Long Life)


      창세기 기록에 의하면,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오늘날에 비해 매우 긴 수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긴 수명을 가능케 한 메커니즘으로는 해로운 우주선의 차단과 같은 대기 환경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왔었다. 하지만 노화에 관해 밝혀지고 있는 새로운 생물학적 사실들은 다른 원인을 가리키고 있다.


예를 들어, 노아에서 모세까지 수명 감소 그래프를 그려보면, 하나의 곡선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근친교배(inbreeding)의 결과로 생겨나는 수명 감소 곡선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연관성은 내부적 원인, 아마도 유전적 원인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것은 인구 집단이 노아 홍수 이후 단지 8명으로 급격히 감소하는 병목현상 후에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 인류학자인 아더 커스탄스(Arthur Custance)는 이렇게 썼다 :

”이 도표는 하나의 역사적인 수명 감소 과정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명 감소의 대부분은 홍수 이후에 태어났던 열 번째 세대 까지에서 일어났다.”[1]

한 새로운 연구는 수명 조절에 관한 또 다른 가능성 있는 내부적 측면을 밝혀냈다. 스탠포드 의대의 연구자들은 회충에서 어떤 유전자들을 인위적으로 불활성화시켰더니, 그 벌레의 수명이 30%나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긴 수명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은 세포의 분자기계들에 더 접근하기 쉽도록 DNA 표면에 작은 화학적 꼬리표(tags)들을 부착하는, 그래서 세포에서 사용되는 생성물들이 잘 전사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들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화학적 꼬리표가 없을 때(꼬리표 부착 단백질의 고장 시), 어떤 ‘숨겨진’ 유전자들이 벌레의 번식 시스템에 사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더 긴 수명을 허락했다.


Nature 지에 게재된 논문의 저자인 브루넷(Anne Brunet)은 스탠포드 대학의 보도 자료에서 말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후생유전적 변화(epigenetic change)가 생물체의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번식 시스템의 구성 조건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2]


따라서 인간의 유전자들은 노아 홍수 이후 극적인 개체 수 감소로 유전적 결손 가능성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근친결혼으로 인해 후생유전적 요인들이 손상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화 과정은 복잡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광범위한 세포 메커니즘의 장해이며,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고 있다.”[3] 따라서, 긴 수명의 생화학과 노아 홍수 이후에 발생했을 세포 메커니즘의 장해에 대해서 아직도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기록된 홍수 이전 사람들의 긴 수명을 비판할 생화학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1980년에 커스탄스의 관측은 여전히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근친교배 시에 특징적으로 수명 감소가 일어남을 지속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1년 늑대들에 관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스칸디나비아 동물원에서 사육된 포획된 늑대들의 가계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 근친 교배된 늑대들은 새끼 무게, 번식력, 수명 등에서 쇠퇴를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발견했다”라고 보고했다.[4]


이것은 유전학과 후생유전학과 같은 세포 과정들이 홍수 이후 근친결혼에 의해서 손상 받았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아 홍수 이전 사람들의 수명에 관한 창세기 기록이 기록된 그대로 신뢰할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Custance, A. C. 1980. The Seed of the Woman. Brockville, Ontario: Doorway, 73. Also available online at custance.org.
[2] Conger, K. Study identifies proteins that extend life span in worms. Stanford School of Medicine press release, June 16, 2010, reporting on research published in Greer, E. L. et al. Members of the H3K4 trimethylation complex regulate lifespan in a germline-dependent manner in C. elegans. Nature. Published online June 16, 2010.
[3] Fuzzy Logic Predicts Cell Aging. Children's Hospital Boston press release, June 18, 2010, reporting on research published in Kriete, A., W. J. Bosl and G. Booker. 2010. Rule-Based Cell Systems Model of Aging using Feedback Loop Motifs Mediated by Stress Responses. PLoS Computational Biology. 6 (6): e1000820.
[4] Laikre, L. and N. Ryman. 1991. Inbreeding Depression in a Captive Wolf (Canis lupus) Population. Conservation Biology. 5 (1): 3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more-mysteries-for-science-long-life/

출처 - ICR News, 2010. 6. 3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982

참고 : 3101|2936|4067|3783|491|489|2746|5969

Creation Moments
2010-05-20

금쪽같은 시간 분

(The Golden Minute)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다니엘 3:1상)

어째서 60초가 1분이 되는가? 왜 한 시간이 60분을 가지고 있는가? 결국 이에 대한 자연적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일 년이라는 시간단위는 하늘에서의 태양의 위치에 근거한 자연적인 시간 측정이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 한 시간의 길이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숭배하기를 거절했던 느부갓네살왕의 금신상의 크기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느부갓네살왕의 금신상은 60큐빗의 높이와 6큐빗의 넓이를 가졌다. 이것은 아마도 그 당시의 바벨로니아가 60진법의 계산법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의 많은 구조물들이 60단위나 60진법의 하위단위로 측정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1,300년 쯤에 이집트인들은 하루를 낮 12시간과 밤 12시간으로 나누었다. 이 계산법 하에서 여름의 낮 12시간은 겨울의 낮 12시간보다 더 길었다. 그렇지만 이 계산법은 꽤 잘 맞아떨어졌다. 왜냐하면 이집트인들이 해시계로 시간을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계산법은 60진법의 계산법과 함께 바빌로니아로부터 차용된 것이라고 믿어진다. 12시간의 지정은 바빌로니아로부터 왔다고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60이 12로 나누어지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산법은 헬라인에게로 전해졌고, 다시 로마인들에게 전해졌다. 주후 13세기에 와서 정확한 기계적 시계가 발명되었고, 시간은 마침내 60분으로 나누어졌다.

현재의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은 고대의 인류가 결코 현대인보다 뒤떨어진 인간들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3,000년 전에 이미 인류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함에 부족함이 없는 그러한 시간 계산법을 발명할 정도로 충분히 똑똑했음을 알 수 있다.

 

References: Odyssey, Fall 1998, Inventing Time, How on earth did we get a 60-minute hour?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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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radio/transcript.php?t=2615 

구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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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 Moments
2010-04-13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한다.

(The Heavens Declare the Glory of God)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세기 1:16)

진화론을 믿는 천문학자들은 성운(nebula)안에 있는 가스가 중력에 기인하여 모이기 시작하면서 별들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결국 이 중력이 점점 강해져서 가스들이 하나의 별로 고착된다는 것이다. 창조론을 믿는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진행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압축된 가스는 압력이 낮은 곳으로 이동함으로써 팽창되는 성질을 갖는다. 가스 구름이 아주 커져서 중력 하에 눌려지기 시작하면 이 구름은 점점 더 빠르게 회전하게 된다. 자장력 또한 증가할 것이다. 압력과 자장력, 원심력의 증가는 중력의 증가를 웃돌게 되고 결국 별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우리가 볼 수 있는 은하의 팔(the arms of the galaxies)에서 파란색 별들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이 별들은 자신들의 연료를 매우 빠르게 태움으로 단지 수백만 년의 연대만을 생존하기 때문에 아주 젊은 별들이라고 여겨진다. 진화론적 스케일에 따르면, 이 별들은 대폭발(the Big Bang)의 시점으로 부터 아주 나중에 형성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파란색 별들의 숫자는 진화론자들에게 별의 형성이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을 말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관측하듯이 이러한 방식으로 별을 형성시키는 힘은 매우 비현실적이거나 수백만 년보다도 훨씬 짧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과학자들에게 당신께서 별들을 아주 최근에 만드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이 파란색 별들을 만들어 놓으신 것 같다.

 

References: Answers Magazine, 10-12/07, pp. 78-80, Jason Lisle, 'The Stars of Heaven Confirm Biblical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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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radio/transcript.php?t=2341

출처 -

구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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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UpChurch
2010-03-29

달은 빛을 만들어내지 못함으로, 창 1:15절은 성경의 오류인가? 

(Contradictions : By the Light of the Moon, 

Does Genesis 1:15 say that the moon emits its own light?)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15)

오랫동안 회의론자들은 이 구절을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해왔다. 성경이 정말로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달이 빛을 비추라(방출하라)고 말씀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았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달은 어떤 종류의 빛도 방출하지 않는다. 대신에 암석질의 달은 단순히 태양빛을 반사할 뿐이다. 


달이 열발광(thermoluminescence)을 통해서 자신의 빛을 생성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지만, 이 구절에 대한 그러한 색다른 설명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 사실, 우리의 현대적 어휘를 살펴봐도 이 주장되는 모순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지구 중심적으로 말하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며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태양이 뜨고, 태양이 진다 라고 말한다. (기상예보 시에도 일출 시각과 일몰 시각으로 표현한다). 또한 우리는 별들이 항상 그곳에 있음을(태양빛 때문에 안 보이는 것임을) 알면서도 밤에 별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주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말할 때가 있다. 


우리가 볼 때, 달은 지구로 빛을 비춘다. 태양빛이 달 표면에 부딪쳐서 지구로 반사됨으로서 말이다. 창세기 본문은 달이 자체적으로 빛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하거나 제시하지 않고 있다. 사실 말하고자 하는 점은 빛의 근원(출처)이 아니라, 지구에 빛을 비추고 있는 상태이다. 하나는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것은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만약 달이 빛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근원이었다면, 달이 주관하는 시간은 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거울을 가지고 우리 눈에 빛을 반사시켰을 때를 상상해보면 이 개념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거울은 빛의 근원이 아니다. 그러나 거울은 순간적으로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빛을 비춘다. 이것은 성경 비판론자도 인정할 것이다. 그 빛이 어떤 사람의 눈을 일시적으로 멀도록 했을 때, 그 빛이 어떻게 사람의 눈에 도달했는지는 빛의 근원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문맥 밖으로 떼어내어 그 구절만을 본다면 회의론자들의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문맥 안에서(창 1:14-18) 읽으면 그 구절의 목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태양과 달을 창조하실 때, 빛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징조와 계절(seasons)과 날(days)과 해(years)를 나타내도록 하셨다. 태양과 달은 이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작동되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측 과학을 통해서 이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의 목적은 세부사항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그리고 원시적 인간을 위한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들을 창조하신 개관과 그 이유를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빛을 비춘다는 묘사는 상세한 설명은 아니지만, 정확한 것이다.  


이 구절이 전하고 있는 진정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두 놀라운 천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권능을 기억하게 한다. 이 구절은 우리(지구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태양과 달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그것들을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정확히 알도록 해주고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9/07/20/contradictions-by-the-light-of-the-moon

출처 - AiG, July 20, 200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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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Thomas
2008-12-02

창세기와 축축했던 사하라 

(Genesis and a 'Wet' Sahara)


       한 팀의 연구원들은 위성사진들에 대한 지화학적 분석을 통해서 지금은 모래에 파묻혀있지만 한때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Sahara desert) 가운데에 있었던 한 호수와 하천에 대한 존재를 입증하였다.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된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사하라 호수로부터 지중해까지 이르러있는 담수가 흘렀던 통로(freshwater corridor)를 발견했다는 것이다.[1]   

중동(Middle East)은 항상 그렇게 건조하지 않았다. 그곳의 기후는 과거에 훨씬 습윤했다. 이것에 대한 많은 지질학적, 고고학적, 역사적 증거들이 존재한다. 북아프리카의 암석 노두들에 새겨진 암각화들에는 푸른 초원에 한 떼의 큰 포유동물들과 악어들이 살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뜨겁고 건조해져서 그러한 환경은 존재하지 않는다.[2] 담수 통로의 발견은 중앙아프리카에서 진화되어졌다고 추정되어지는 초기 인류의 가능성 있는 이주 경로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한때 중동지역이 물들이 풍부했던 축축한 지역이었다는 위성사진들과 지화학적 발견들은 또한 창세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이다.


다음 구절을 숙고해 보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 13:10) 또한 출애굽기 33:3절에는 푸르른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표현하고 있다. 만약 성경의 이러한 기록이 정확한 것이라면, 오늘날 대부분이 건조한 어떤 지역들은 과거에 식물들이 무성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사하라에서 발견된 증거가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만약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인류의 기원과 같은 성경 기록들도 신뢰할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역사 기록들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든 진실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단지 화석들만 가지고 과거를 정확하게 복원할 수 없다[3]. 그러나 기원에 관한 질문들이 생겨날 때, 성경은 과거를 재구성하기 위한 신뢰할만한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류의 기원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목적과 운명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주고 계시는 것이다.



References

1. Osborne, A. H. et al. 2008. A humid corridor across the Sahara for the migration of early modern humans out of Africa 120,000 years ago.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5 (43): 16444-16447.
2. Vardiman, L. 2008. A Dark and Stormy World. Answers. 3 (4): 80.
3. Morris, J. 2008. Creation Evangelism. Acts & Facts. 37 (11): 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4174/

출처 - ICR, 2008. 11. 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70

참고 : 2275|2760|4357|2459|2249|3658|4369|2179|4378

Henry Morris
2008-11-22

삼위일체 우주 

(The Tri-Universe)


       이전의 ‘창세기로 돌아가자(Back to Genesis)’ 컬럼 란의 '삼위일체의 놀라운 진리(The Wonderful Truth of the Trinity, Acts & Facts, November 2005)”라는 제목의 글에서, 삼위일체 하나님(Trinity)에 대한 성경적 교리와 그것에 대한 성경의 핵심 구절들을 함께 간략히 기술했었다.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한다는 것은 3 페이지의 글로는 분명히 불가능하다(이 주제에 관한 한 권의 책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본질적 진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한 분의 하나님(one God)으로서, 성부(Father), 성자(Son), 성령(Holy Spirit)의 세 위격(three Persons)을 가지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로서, 확실히 가장 독특한 것이다. 이것은 세 명의 하나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안에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성경 속에 사용된 '하나님(God)”이란 단어는 가장 일반적으로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성자와 성령 역시 하나님으로서 인식된다. 이 개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 분의 분명한 개체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실 수 있는 세 가지 모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틀린 발상이다. 예를 들자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서로 대화하시는 기록이 있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우리들의 생각으로 완전히 이해되기는 어렵다(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의 심장으로부터 그것을 믿어야 한다. 회의론자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비웃을 수 있다. 왜냐하면 1+1+1은 1이 아니라 3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은 삼위일체(세 위격의 한 하나님) 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순전하게 잘 믿고 있는가?


셋이 하나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자체가 삼위일체인 거대한 우주(universe)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우주는 놀랍게도 각각이 또한 많은 삼위일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설명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본질을 우리 인간들이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하나의 모델로서(또는 유형이나, 유사하게) 우주를 창조하셨던 것은 아닐까?


숙고해 보라. 창조된 우주는 공간(Space), 물질(Matter), 시간(Time)이 서로 조화되면서 전체를 나타내고 있는 삼위일체 우주로 되어있다. 우주는 부분적으로 공간만으로, 부분적으로 물질만으로, 부분적으로 시간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삼위일체는 3인조 또는 3화음이 아니라, 삼위가 하나를 의미하며, 각 부분이 전체를 구성한다. 그래서 3개 모두가 전체를 만드는 데에 요구된다. 그래서 우주는 공간 모두, 시간 모두, 그리고 물질(물질의 한 형태인 에너지를 포함하여) 모두로서 이루어진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를 공간-물질-시간의 연속체로서 말하고 있다.


더군다나 세 구성 요소의 논리적 순서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삼위일체 우주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공간은 우주 모든 곳의 배경으로서 어느 곳에나 편재한다. 그러나 물질(그리고 에너지)은 우주의 실체로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공간, 물질, 시간 대신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대체해서 집어넣고 위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라. 정확히 그 뜻이 통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은 삼차원으로 되어있고 각 차원은 모든 우주에 충만하기 때문에 공간은 그 자체가 삼위일체이다. 공간의 어떤 부분의 크기는 삼차원(가로, 세로, 높이)을 함께 곱함으로서 얻어질 수 있다. (삼위일체 수학은 1+1+1=1 이 아니라, 1×1×1=1 이다). 더 나아가, 공간은 일차원에서 확인되며, 이차원에서 보여지고, 삼차원에서 체험된다. 같은 문장에서 일차원, 이차원, 삼차원 대신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대체해 보라.


마찬가지로, 시간은 미래, 현재, 과거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는 시간의 보이지 않는 근원이며, 현재는 순간순간 명확히 볼 수 있고, 과거는 이해될 수 있다. 다시 한번 미래, 현재, 과거의 단어들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대체해서 읽어 보라.


마지막으로, 물질은 보이지 않으나 모든 곳에 편재하는 에너지이며, 여러 형태의 측정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관측되며, 관련 현상들을 통해 체험된다. 예를 들어, 빛 에너지는 빛의 파동을 만들어내며 빛을 봄으로서 체험된다. 소리 에너지는 음파를 발생시키며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음으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우주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관계를 모델화하여 각 요소들의 내부적 관계들을 맺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삼위일체들의 삼위일체(trinity of trinities)’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다”라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앞에서 주의를 준 것처럼).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놀랄만한 사실이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리고 그분 자신을 반향하여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일부분이라도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놀라운 영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른 어떤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앞에서의 몇 개 단락은 ‘방어자의 스터디 성경(The Defender's study Bible, 헨리 모리스 저)’에서 로마서 1:20절을 지지하는 각주로부터 주로 인용되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이 놀라운 유사성은 고든 대학(Gordon College)의 전 총장이었던 나단 우드(Nathan H. Wood) 박사가 쓴 책 ‘우주의 비밀(Secret of the Universe)’에서 처음 확인되어진다. 그 책은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영국의 성경주석가 중 한 명인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 박사가 매우 칭송하는 서문을 썼던 책이다. 또한 그 책은 1978년 크레겔(Kregel)에 의해서 ‘우주의 삼위일체(The Trinity of the Universe)’라는 제목으로 재인쇄 되었다.


그러므로 물리적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삼위일체들의 삼위일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우주인 생명체는 어떠한가? 많은 주석가들이 사람은 몸(body), 혼(soul), 영(spirit) 삼위일체라는 사실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들 각 실체들은 실재하며 구분된다. 그러나 각각이 완전한 사람 안에 포함된다. 기도의 사람 바울은 최초에 쓴 서신서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었다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3-24)


‘혼(soul)’은 사람의 한 부분으로 몸을 활동하도록 하는 실제적 생명(life)이다. 그리고 ‘몸(body)’은 물질들의 구성체로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이 둘과 관련된 구약성경의 구절은 레위기 17:11절이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the life of the flesh is in the blood)”. 이 구절에서 ‘생명(life)’이라는 단어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혼’과 같은 단어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몸을 통한 피의 순환이 몸에 생명을 유지시켜준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편 몸의 영(spirit)은 몸의 ‘호흡(breath, 생기)’ 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호흡’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헬라어의 신약에서 ‘영’이라는 단어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끔 혼과 영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혼과 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히브리서 4:12절에서 확인되고 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 4:12).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던 것이다(창 1:27). 하나님의 호흡(생기) 때문에 흙으로 된 사람의 몸과 살아있는 혼에 하나님의 형상이 불어 넣어진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사람의 이러한 유사성은 꽤 명백해 보인다. 혼은 몸의 생명이 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질 수 없으나, 사람의 존재와 행동들에 기초가 된다. 이에 반해 몸은 혼의 보여지는 만져질 수 있는 현시(manifestation)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의 영은 (혼처럼) 보이지 않고 만져질 수도 없지만, 도덕적 및 심미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하나님과 이성적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으로 실재하는 것이다. 


동물들도 또한 혼(즉 생명)과 몸과 영(단지 호흡의 의미에서)을 소유한다. 동물들도 본능의 수준을 넘어서서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서 다른 동물들과 심지어 사람들과도 교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들이 알고 있는 한, 동물들은 도덕적이거나 정신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태초에 동물 삼위일체가 사람 삼위일체와 비록 관련이 있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죄와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오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거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죽음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서 발생하고,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고, 인생의 혼(영, spirit)은 위로 올라가서.... 신(영, 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전도서 3:20-21, 12:7).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울의 기록과 일치된다. 


어쨌든 우리는 사람 생명체와 동물 생명체가 사실상 삼위일체(논리적으로 삼위일체의 순서를 가진 3개의 구성요소가 각각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로 구성되어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될 것이나, 동물(몸, 생명, 호흡)은 그렇지 않다. 오직 남자와 여자만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우주에서 삼위일체의 모습들은 현저하게 퍼져있고, 창조된 생물체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물론 어떤 것도 완벽한 것은 없다. 어떠한 삼위일체 모델도 삼위일체이신 하나님만큼 완벽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주는 실제로 각각의 삼위일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각 단위는 각기 자신의 기능을 가지고 구별된다. 그러면서 이들 세 개의 요소들은 모두 전체의 구성을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각각은 전체에 퍼져 있다.     


피조물들에 나타나 있는 이들 삼위일체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완벽하게 반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멋진 그리고 현실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놀라운 사실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됨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나의 설득력 있는 설명은 우주 만물이 삼위일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신중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2590/

출처 - ICR, BTG 204, 2005. 12. 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62

참고 : 4439|2970

Headlines
2007-11-07

강력한 생쥐가 태어났다.

 (Mighty Mouse Has Arrived)


       BBC News의 한 보도(2007. 11. 2)에 따르면,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의 유전학자들은 쳇바퀴(treadmill)에서 멈추지 않고 6시간 동안이나 분당 20m의 속도로 5-6km를 달릴 수 있는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생쥐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리처드 한슨(Richard Hanson) 교수는 설명했다 : “그들은 물질대사 측면에서 피레네 산맥을 자전거로 넘었던 란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주로 지방산(fatty acids)을 이용하고, 매우 소량의 젖산(lactic acid)을 만듭니다.” 또한 그 쥐들은 더 긴 수명을 가지며, 평범한 생쥐들보다 더 늦게 짝을 짓습니다. 그 비밀은 어떤 한 유전자의 과도 발현에 의해서 증가되어 만들어진 세포 안의 발전소(powerhouses)들에 있다는 것이다 : 

“이들 생쥐들의 근육에는 훨씬 많은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세포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작은 ‘엔진’들이다. 몇몇 이유로, 미토콘드리아의 수는 친척들의 근육에 있는 것보다 대략 10배 정도 더 많다.”  

만약 이 기술이 사람에게까지 적용되어진다면, 올림픽 경기는 결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올림픽은 최고의 유전공학적 처치를 받은 사람들이 수상하게 될 것인가? 이러한 종류의 성취가 가능하다면, 이것은 고대인(ancient people)들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에는 수백 년을 살았으며, 80대에 첫 아이를 얻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는 60kg의 허약한 인류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이 유전공학적 재료를 콜라나 사이다에 넣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보자.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11.htm 

출처 - CEH, 2007.11. 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67

참고 : 3101|3783|2936|77|491|489|2746|528

Paul Taylor
2007-10-13

성경은 오류로 가득한가?

 (I'snt the Bible Full of Errors?)


       아마도 당신은 나와 같은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나는 성경이 모순된 것들로 가득하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인터넷에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내가 그에게 성경의 모순(contradiction)을 3가지라도 지적해보라고 했을 때, 그는 40여 가지 이상을 제시했다. 나는 성경의 오류(errors)라고 지적한 각 항목들에 대해서 하나씩 답변을 게시하였다. 그러나 그는 30초도 안 되어 나의 대답이 난센스라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그의 목록이 한 웹 사이트로부터 가져온 것임을 발견하였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은 자주 성경을 믿지 않기 위한 하나의 구실이 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성경을 읽지 않았거나, 실제로 그것이 모순인지 아닌지를 세밀하게 분석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명백한 모순으로 보이는 구절을 읽게 될 때, 기독교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이 글에서 나는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되어지는 3 가지의 사례를 사용해서, 이 주제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그 3가지 부류는 모순이 아니거나(false contradictions), 잘못된 번역(mistranslations)이거나, 세속적 과학에 근거한 소위 과학적 오류(scientific errors)라는 것들이다.


비모순의 법칙

성경은 비록 오랜 기간에 걸쳐서, 다양한 그룹의 저자들에 의해서, 다양한 형식으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이라는 진정한 한 분의 저자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순되어 보인다 하더라도, 그 분의 말씀은 진실로 모순되는 점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만 한다.

한 전문가가 말한 것처럼,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시라면... 성경의 두 부분이 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여질 때, 이 두 부분 또는 한 부분에 대한 우리의 해석(our interpretation)에 오류가 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1]

많은 추정되는 불일치들은 두 구절을 서로 잘못된 반대(false opposition)로 위치시킬 때임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도서 7:29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시편 51:5절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전도서 7:29절의 말씀은 원래 정직하도록 창조되었던 아담과 이브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51편에서 다윗 왕은 아담의 타락한 후손들 중 하나로서 그의 개인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 모순은 없는 것이다.


잘못된 번역

성경을 공격하는 주장들은 자주 번역작업 동안에 생겨난 일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대부분은, 만약 당신이 성경 원문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직접 찾아보거나, 그 언어들을 다룰 수 있는 동료를 가지고 있다면, 매우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레위기는 박쥐(bats)를 ‘새(birds)’로서 기술하고 있다 : ”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찌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매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노자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니라” (레위기 11:13-19)

만약 당신이 좋은 번역본을 가지고 있다면, 의심스러운 단어를 간단히 다른 구절들과 비교해 봄으로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서 킹제임스 성경(the King James Version, KJV)은 ‘birds’ 대신에 ‘fowls’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fowls’ 이라는 단어는 다시 20절에서 ‘곤충(insects)’을 묘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명백히 ‘insects’라는 단어는 현대적 의미에서 ‘birds’가 아니다. 따라서 당신은 히브리어 성경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히브리어로 그 단어는 ‘owph’ (Strong’s reference number 05775) 이다. ‘owph’를 번역한 ‘새’ 라는 단어도 좋은 번역이지만, 원래 뜻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날개를 가진 생물(a winged creature)’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단어는 새, 날아다니는 곤충, 박쥐 등에 사용되어질 수 있는 단어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날아다니는 파충류(flying reptiles)에 대해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오류들?

성경 비판가들은 흔히 세속적 과학자들의 생각을 근거해서 성경을 공격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 구절들이 현대의 과학적 사고와 얼마나 모순되는 지를 찾고자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세는 곤충의 다리를 4개로 말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곤충의 다리가 6개인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레위기 11:20-23절에서 모세는 말했다 :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찌니, 곧 그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오직 날개가 있고 기어다니는 곤충은 다 너희에게 가증하니라” (레위기 11:20-23) 

사실 이 구절이 오류라고 생각하기 전에, ‘네 발로’ 라는 어구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전체 발의 수를 가리키는 것 보다는, 생물체의 걸어가는 행동과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성경은 메뚜기와 유사한 곤충들의 행동을 매우 정확히 기술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곤충들은 정말로 네 발을 가지고 기어(creep) 다닌다. 그리고 또 다른 두 발(뛰는 다리)로는 도약(leap)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부분의 경우들에서, 저자가 새가 무엇처럼 보이는지 잊어버렸다거나, 메뚜기의 다리 수를 잘못 세었을 것이라는 가정들은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세(Moses)는 바로의 궁전에서 그 당시에 가장 훌륭한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 이유 하나만 가지고도, 성경에 대한 편견이 없는 독자라면 모세가 어떤 단어들을 선택했을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저자들이 진실을 말했을 것이며,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려 했는지를 저자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론

오류로 보여지는 성경 구절들을 해결하는 데에 동일한 방법들이 적용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즉각적인 설명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라는 믿음 위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좀 더 배우고 살펴보아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무지(ignorance)와 교만을 청소해 내기만 한다면, 모든 경우에서 논리적인 설명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오류를 범하셨다는 생각은 가능성이 없는 생각이다.


*Paul F. Taylor graduated with his B.Sc. in chemistry from Nottingham University and his masters in science education from Cardiff University. Paul taught science for 17 years in a state school but is now a proficient writer and speaker for Answers in Genesis-UK.


Reference

1. Boice, J. M., Foundations of the Christian Faith (Downers Grove, Illinois: IVP, 1986), p. 91.

 

 *참조 : Get Answers: Countering the Critics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critics.asp#contradictions

What is the importance of the Dead Sea Scrolls?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23.html

Apologetics Press :: Alleged Discrepancies
http://www.apologeticspress.org/allegeddiscrepancies/
http://www.apologeticspress.org/allegeddiscrepancies/sort-2-26-25-title
http://www.apologeticspress.org/allegeddiscrepancies/sort-2-51-25-title
http://www.apologeticspress.org/allegeddiscrepancies/sort-2-76-25-title
http://www.apologeticspress.org/allegeddiscrepancies/sort-2-101-25-title
http://www.apologeticspress.org/allegeddiscrepancies/sort-2-126-25-titl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4/isnt-the-bible-full-of-errors

출처 - Answers Magazine, 2007. 9. 2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43

참고 : 3945|3935|3932|3898|3872|3812|3783|3731|3730|3707|3739|3689|3654|3641|3628|3633|3623|3589|3372|3311|3302|3289|3249|3242|3233|3220|3218|3208|3206|3204|3186|3170|3168|3166|3162|3155|3148|3101|3097|3065|3036|3022|3020|2996|2982|2970|2960|2942|2805|2797|2746|2737|2688|2549|2545|2534|2530|2525|2515|2458|2425|2323|2321|2362|2030|1805|1793|1790|1756|1430|1412|1413|921|721|720|666|629|630|568|522|521|528|3931|3055|3024|2330|3640|3646|3735|3709|3331|3363|3016|2936|2638|2378|2016|1922|3853|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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