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David Demick
2004-07-28

창조주 그리스도의 흔적들

(Glimpses of Christ The Creator)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고, 아버지와 성령과는 하나이며 동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기독교 교회의 제1위적 교의(敎義)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창조의 동역자였으며, 전체 창조과정을 통한 주요 참여자였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창세기 1장의 처음 절들 속에 담겨있는 이 이념들을 이렇게 풀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사도 바울도 또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로새서 1:16).


하지만 이 진리가 복음서들의 서술 부분에는 두드러지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사명과 가르침을 받드는 자들에게  죄의 회개에 대한 당부의 말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가 스스로를 하나님과 하나임을(요한복음 10:30), 창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었음을 (요한복음 17:5), 그리고 피조물에 대한 당신의 권능을 증명하는 기적들을 행하신 (요한복음 20:30-31)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한편, 우주창조에서의 그의 직접적인 역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언급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에 기록된 그의 말씀 중에 창조자 그리스도의 통찰의 면모가 번득이는 곳이 몇 곳 보인다.


예컨대 산상수훈 중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 말라는 권면의 말씀 속에 담긴 그의 면모에서 그런 통찰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자연에서 예를 들면서 당신의 요점을 설명하셨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6:28, 29).

이 진술은 고대 희랍인과 로마인들이 알고 있던 진화론적 철학과는 정반대의 대조를 이루는 빛나는 말씀이다. 저들과 맥을 같이하는 오늘날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철학자들은 생명이 우연히 자연발생적으로 땅 속에서 솟아난 것이라는 '보다 더 단순한' 철학을 견지하고 있었다. 예컨대, 그리스도의 강림보다 3 세기 앞서서,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는 현대 진화론 철학과 현저하게 유사한 우연적이며, 맹목적적인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제창하였다.

”원자는 자체의 영구운동 속에서 수없이 많은 결합과 분리의 과정을 지난 후에 마침내 소위 '세계' 라는 것에 융합되었다. 태초에 지구는 생명체가 없는 흙덩어리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동물과 새들이 갈기와 깃털을 내듯이 지구에 풀과 수풀과 꽃이 솟아났다. 그런 다음에 생명체들이 생겼다. 새들은 공중을 날고 … 짐승들은 어슬렁대기 시작하였다 … 몇몇 종들은 환경에 적응하여 마침내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종들은 … 자연의 기형들은, 다시 말해서 맹목적인 세계의 맹목적인 실험의 희생자는 멸종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런 플롯도 없는 이 흥미로운 연극의 주인공인 인간은 이 무대장면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등장인물이다.” 1

이 철학은 오늘날의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경이롭게 디자인된 세계의 특징을 과소평가하는 세계관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사역을 지나치게 찬양하고, 창조주의 사역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것은 죄 많은 인간의 본성이다. 예컨대, 옷감을 마련함에 있어서 섬유질 식물의 수확, 직조, 염색 등과 같은 관련된 인간의 작업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편협한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그와 같이 복잡하고 중요한 인간의 작업행위에 비해 한 송이 꽃을 피우든가, 한 톨의 작은 씨앗이 자라는 것은 단순하고 흔한 일로 보일 것이다. 다른 한편, 하나님을 깊이 존경하는 마음에서 마틴 루터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때 진리에 더욱 가까이 가 있었다.

”만약에 그대가 한 톨의 밀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대는 그 경이로운 사역을 알게될 것이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현대과학보다 오래 오래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안목으로 한 송이 꽃을 피우고 꽃잎에 모양을 다듬고 색상을 입히는 것 같은 일견 하찮은 일에도 믿을 수 없을 만치 경이로운 미세공학 원리가 내포되어 있음을 소상히 알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해서 그는 꽃에 관한 진리를 자신감을 가지고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말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산상수훈 중 다른 구절에서는 심오한 과학적 함축을 담은 또 한 번의 예수님의 빛나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몸에 관련된 말씀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태복음 6:22-23).3

"The light (Greek, luchnos, lamp) of the body is the eye: if therefore thine eye be single (Greek, haplous, free from defect, unspotted), thy whole body shall be full of light (Greek, photeinos, full of light, shining, bright). But if thine eye be evil, thy whole body shall be full of darkness. If therefore the light (Greek, phos, radiance) that is in thee is darkness, how great is that darkness!" (Matthew 6:22-23).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이 구절의 주된 목적은 도덕적 교훈이지, 결코 과학적 교육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된 구절들과 예수 시대의 교양 속에는 이기심과 탐욕에 대한 경고가 담겨져 있다.4 그 구절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 현상들을 이용하여 예를 들고 있는 또 다른 사례이다. 그런데 영적 진리도 자연 진리와 서로 공명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 특별히 눈의 예를 들어 온 몸을 '가득 채우는(filling)' 등불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눈을 통하여 감지되는 빛이 갖는 체계적인 생리학적 효과를 암시하고 있었다. 이 같은 나의 생각은 공상일까? 최근까지 만해도 그렇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경생리학의 발전으로 눈의 감광(感光) 지각은 온 몸의 건강한 기능에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부단한 의학기술의 발달로 이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이 더욱 밝혀져서,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의 천재성도 경이롭게 드러나고 있다.


이 과학적 진리를 풀어내는 길고 긴 이야기는 인간의 두뇌에 근접해 있는 비강(鼻腔) 바로 상단에 위치한 뇌하수체를 발견하였던 고대의 해부학적 업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세기를 걸쳐 뇌하수체(腦下垂體, pituitary)는 비강 분비물에 관련이 있는 중요하지 않은 조그만 내분비선(腺; 샘)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밖에 뇌하수체의 용도는 모호하였다. 1880년대 후반에 들어 생리학자들은 뇌하수체가 내분비 체계의 실질적 '주 내분비 샘'으로서 신장, 부신장, 그리고 생식선(生殖腺) 등 다른 중요한 내분비 샘들을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19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뇌하수체 바로 상단에 뉴런(신경단위 세포)들의 복합체인 시상하부(視床下部, hypothalamus)가 있어서 대부분의 뇌하수체를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시상하부의 중요성을 현행 생리학 교재에 실려있는 내용을 요약해 보았다 :

”이렇게 해서, 뇌 전체의 1%도 되지 못하는 시상하부는 대뇌변연계통(大腦邊緣系統)의 중요한 운동신경 출력경로들 중의 하나로 있다. 시상하부는 신체의 발육기능과 내분비기능은 물론 정서행동의 많은 측면들을 조정한다.” 5

뇌하수체와 시상하부에 관한 이와 같은 일련의 발견에 뒤이어, 1972년에 포유동물의 시신경섬유조직이 뇌의 시각피질(皮質)과는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망막에서부터 시상하부까지 직접적으로 감각신경을 연결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뇌에 보내지는 감광 자극의 부차적 통로는 '망막시상하부 경로(retinohypothalamic track)'6 라는 학술명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서 드디어 눈이 갖는 감광기관과 신체의 다른 부위의 전반적인 기능 사이를 연결하는 생리학적 연결고리를 설정하는 바탕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뇌의 송과선(pineal gland)이라고 알려진, 뇌의 또 다른 조그만 한 부분이 '영상-신경계뇌분비선 체계(photo-neuroendocrine system)' 라고 불리는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사실이 생리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뇌하수체나 송과선의 존재는 고대부터 주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능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뇌의 송과선의 기능을 이해하려면 다윈의 지혜가 그것은 대부분 무용한 '퇴화기관'7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던 1859년에서 한 세기가 지난 시대(1959년)까지 소급하여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1958년 송과선이 몇 가지 중요한 긍정적인 생리학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멜라토닌(melatonin) 이라고 불리는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것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현대적 안목이 생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빛-뇌-몸의 상호작용의 효과에 관한 한, 멜라토닌 호르몬은 일일 수면-기침(起寢) 사이클에 영향을 미치는 24 시간(一日) 리듬의 내분비물의 분비작용에 영향을 받는다. 계속되어온 연구는 송과선과 suprachiasmatic nucleus, 즉 시상하부의 '시계 (clock)' 중심과의 사이에 있는 연결기능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일일 행동 리듬은 서로 밀접하게 묶여있다는 것도 발견되었다. 시상하부, 뇌하수체, 그리고 송과선을 통하여 눈의 망막을 거쳐 진행된 빛의 자극이 시각(視覺)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온 몸에 광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과학적인 성과는 지난 수세대 동안 의학적 용도에 크게 이용되었다. 그것은 겨울철에서 경험하는, 특히 지리학적으로 높은 위도에서는 점진적으로 상실되어져 엷어지는 주간 햇볕 때문에 경험하는 정신적 위축감의 증가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근거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또한 일일 낮-밤의 사이클과 공시성(共時性)이 맞춰지지 않은 수면-기침 리듬을 유지하여야만 하는 교대근무자들이 흔하게 경험하는 의학적인 여러 문제들에 대한 생리학적 설명근거가 되기도 한다.8 이 현상은 우리가 온 몸의 건강을 위한다면 정상적 일일 사이클 중 눈을 통해 감지되는 강력한 빛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낸다고 하겠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에도, 영상-신경계내분비선 계통이 가지는 더 많은 유익한 측면들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에게는 인체에 미치는 바로 이 유익한 빛의 효력에 관한 새로운 과학은 남다른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그 과학적 발견은 우리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할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경이로운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조명하여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와의 동행을 알리는 끊이지 않는 그의 영광의 빛 속에서 주신 영생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을 기쁘게 받아든 크리스천을 위해, 그는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은 그의 성(城)을 마련해 두셨다. (요한계시록 21:10-27).


결론적으로, 현대과학에 비추어 산상수훈에 기록된 성경 구절들을 세밀히 검토하여보면,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의 본성에 드러난 위대한 지식과 통찰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의 말씀이 도덕적인 가르침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경우도 이 점에서는 한결같다. 이와 같이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경의 다른 부분과 한 가지로 '흙 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이 순결한 의미와 진리가 겹겹이 쌓여있음을 알 수 있다.


*Dr. Chaney Bergdall of Huntington College 와 Dr. Jerry Bergman of Northwest State College of Ohio 가 보내주신 충고와 조언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References

1. Thomas, H. and Thomas, D.L. Living Biographies of Great Philosophers, Blue Ribbon Books, 1941, p. 44.

2. Bainto, Roland, Here I Stand: A Life of Martin Luther, Mentor Books, 1955, p. 168.

3. Scripture quotations from the King James Version with amplified word meanings from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to the Bible, Eerdmans, 1970.

4. France, R.,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inter-Varsity Press, 1985.

5. Guyton, A., A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W.B. Saunders, 8th ed., 1991,  p.

6. Klein, Moore, and Reppert. Suprachiasmatic Nucleus: The Mind's Clock,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7. Bergman and Howe. Vestigial Organs Are Fully Functional, Creation Research Society Monograph #4, 1990, pp. 49-55.

8. Moore-Ede, Sulzman, and Fuller, The Clocks That Time Us: Physiology of the Circadian Timing System, Harvard University Press, 19882, pp. 330-341.

9. Sack, Brandes, et al., 'Entrainment of Free-Running Circadian Rhythms by melatonin in Blind Peopl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ol. 343, no. 15, Oct. 2000, p.1070.

*Dr. Demick is a practicing physician in Hastings, Nebrask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55.htm

출처 - ICR, Impact No. 355, 200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9

참고 :

이웅상
2004-07-28

성경과 과학(1) 너무나 과학적인 '성경'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윤리, 도덕적으로는 위대한 책일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무엇인가 문제가 많은 책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성경이 과학과 상충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은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이다. 이 결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학문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뒤진 책이 아니라 초과학적인 계시의 말씀이어서 그 당시의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한 부분을 연구하는 학문인 과학이 발달하면서 성경이 과학과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밝히게 된 일부 성경의 기록들을 살펴보며 성경의 권위와 무오함을 설명하고자 한다.


지구가 둥글게 생겼으며 허공에 떠서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과학적 상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이 생겨난 것은 수 천년의 역사 속에서 불과 수 백년도 안되었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지구는 평평하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며,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이후에 뉴튼이 17-8세기에 두 물체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훌륭히 설명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지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혹시 천동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 중세 유럽교회의 천동설 주장을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과학사적인 해석을 통해서 그와 같은 반대는 성경에 입각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요소와 그 시대의 세계관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었다고 평가가 되었다. 과연 그러면 성경에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이사야 40:21-22)." 여기서 '땅 위 궁창' 할 때의 궁창은 원형의 모양을 의미한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은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한 욥기 26:10에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계라는 말의 의미가 역시 원이라는 뜻이다.  욥기 26:7-8에 기록된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18세기에 와서야 정확히 이해한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공간에 다시며"라는 말은 허공에 띄워 놓으셨다는 말로 NIV 영어성경은 이 의미를 "suspends the earth over nothing"으로 표현하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과학적 용어나 공식은 성경에 없지만, 지구에 대한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과학자들이 공기는 혼합물로 된 무게가 있는 물질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일까?  공기의 무게는 16세기에 갈릴레오가 처음으로 인식한 것을 그의 수제자인 토리첼리가 1640년에 그 무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토리첼리가 공기의 무게(압력)를 재는 기계인 압력계를 최초로 만들어 재어 보았더니 1기압이 수은으로 760mmHg로 나타났다. 그래서 토리첼리 박사가 이 단위를 자기 이름을 붙여 torr(토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이보다 3100여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1장 7절에 하나님이 궁창 (공기층)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욥기 28:25절에 "바람(공기)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분량을 정하시며"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그 공기와 물의 무게를 정하사 모든 물질의 기준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17세기에 알게 된 사실을 성경은 이미 수 천년 전에 밝히고 있다는 사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니며, 이런 관계는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을 따름이다.

 


출처 - 기독공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89

참고 :

김광훈
2004-07-28

특종! 믿음 사건 (The Case for Faith)


 도서명 : 특종! 믿음 사건 (The Case for Faith)  
◆ 저 자 : 리 스트로벨 (Lee Strobel)
◆ 출판사 : 두란노
 

◆ 목  차 :
믿음을 향한 도전
답을 찾아 떠나는 길
반론 1 : 사랑의 하나님이 악과 고난을 허용할 수 있는가?
반론 2 : 비과학적 기적, 믿을 수 있는가?
반론 3 : 생명 기원, 진화론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반론 4 : 살인을 명하는 하나님, 예배 받을 자격이 있는가?
반론 5 :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
반론 6 : 영원한 지옥이 무슨 필요인가?
반론 7 : 교회야말로 압제와 폭력의 역사가 아닌가?
반론 8 : 여전히 회의가 드는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결론 : 믿음은 살아있다!

 

  여러분 중 대부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궁금하거나 의심이 나는 부분을 만났던 때가 있었을 것 같다. 때로는 누군가가 기독교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해오면 말문이 막혀 답답해했던 경험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창조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노아의 홍수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기적들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창조과학을 접하게 된 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런 문제들에 대해 성경이나, 다른 유능한 기독 지성인들과 신학자들이 설명한 여러 가지 변증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성경에서 여러 이해되지 않던 점들에 대해 창조과학자들의 도움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소개할 <특종! 믿음 사건>은 아마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해소시켜줄 것으로 보이는 책이다. 또한 신앙적인 면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지면을 빌어 이 책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생각하기로는 지금까지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었던 책들과 비교해 볼 때 이번에 소개할 책이 나름대로 가장 재미있는 책일 것 같다.

필자는 최근에 '기적(Miracle)과 법칙(Law)'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책을 보던 중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예전에 인터넷을 통해 원서로 구입할 계획이 있었던 리 스트로벨의 <특종! 믿음 사건>이 최근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책 내용 중에 기적과 관련된 부분이 있기에 빨리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ECPA(미국복음주의출판협회)가 선정한 2001년 최고의 도서로 리 스트로벨이 3번째로 ECPA의 'The Gold Medallion Book Award'를 받도록 해준 책이다. 책 제목도 다소 가볍고, 내용 면에서도 다른 전문적인 변증학 관련 책들에 비해 그렇게 깊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 특유의 표현이나 전개 방식이 매우 흥미로워 독자들을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책을 어렵게 쓰는 것은 매우 쉽다. 그냥 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는 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도 재미있게 쓰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고 재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재능을 소유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런 기독교 변증과 관련된 서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책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좋은 지식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 사랑의 하나님이 악과 고난을 허용할 수 있는가? 2) 비과학적 기적, 믿을 수 있는가? 3) 생명 기원, 진화론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4) 살인을 명하는 하나님, 예배 받을 자격이 있는가? 5)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 6) 영원한 지옥이 무슨 필요인가? 7) 교회야말로 압제와 폭력의 역사가 아닌가? 8) 여전히 회의가 드는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라는 8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위주로 책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한때 기자 출신의 회의론자였던 저자 자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핵심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혜로운 답변들을 잘 정리했다.

기독교인으로서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의 두 번째와 세 번째 주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두 번째 주제인 기적에 대한 부분은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윌리엄 크레그 박사의 인터뷰 내용이 주된 내용으로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크레그의 논증에 대해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 같다.

세 번째 주제인 생명의 기원에 대한 부분 즉, 창조론과 설계 논증에 대한 부분은 당연히 창조과학회 회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내용일 것이다. 약 30쪽에 걸쳐 나름대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유명한 월터 브래들리 박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그 외에도 네 번째 주제인 살인을 명하는 하나님 부분에서는 다양한 학문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 노먼 가이슬러 박사의 견해가 실려있고, 지옥과 관련된 여섯 번째 부분에는 지적설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J.P 모어랜드 박사의 견해가 실려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변증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더욱 정확히 이해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비기독교인 또는 반기독교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기독교적인 입장을 지혜롭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번에 소개한 책 <특종! 믿음 사건>에 나온 여러 가지 전문가들의 변증을 모두 받아들이는 데는 다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타당성을 줄 수 있는 논증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과연 어떤 사실에 대해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실을 타당성 있게 설명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출퇴근길에 아침저녁으로 1장씩 읽었는데 일주일만에 쉽게 다 읽을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이 기회에 편한 마음으로 책을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 창조지, 제 131호 [2002. 5~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04

참고 :

이은일
2004-07-28

[창조의 신비] 레위기는 위생―보건 가르친 첫 의서


      인류는 질병과의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질병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의 오래된 꿈이었다. 인체 해부학이 연구되고 항생제나 수술 기법이 발전되기 전까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약초 등의 식물을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환경보건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었다. 나쁜 환경으로부터 질병이 옮겨진다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다. 이때의 개념은 ‘장기설(miasma theory)’이라고 하여 나쁜 공기에 의해 질병이 걸린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습지가 있으면 말라리아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 질병의 원인균, 매개동물들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이 없었던 시대에 이런 장기설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고, 이런 장기설에 입각해 공기가 잘 통하는 곳, 해가 잘 드는 곳이 좋은 곳이라고 인식하였다. 이런 장기설은 17세기까지도 지배적인 이론으로 작용하였다.


인류 역사상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환경 위생과 보건을 강조하는 최초의 체계적이고 대규모적인 저서는 성경의 ‘레위기’이다. 모세의 저작으로 알려진 이 책은 집단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생적으로 살 수 있도록 자세하게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상한 음식을 먹지 않도록 상하기 쉬운 돼지고기나 오징어 등의 연체류, 죽은 동물 등의 섭취를 금하고 물로 씻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전염병이 우려될 때는 집단과 격리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배설물을 처리하고, 물로 씻는 등의 위생처리에 대한 성경의 체계적인 기록은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무시하고 인간의 전통과 주장이 강조됨으로써 인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전염병의 창궐이 계속되었다. 위생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14세기는 페스트가 대유행하여 유럽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25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한센병(나병)도 13세기까지 정점으로 치달았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목욕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었고, 따라서 냄새가 나는 것을 가리기 위해 향수가 발전되기도 했다. 16세기에는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매독이 대유행하였다. 이런 전염병이 유행하고 나서야 레위기에 기록된 격리의 개념을 사람들이 받아들여 검역제도가 실시되기 시작하였다.


전염병에 대한 검역 조치 등 여러 조치는 전염병을 줄이는데 많이 기여했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전염병을 감소시킨 것은 영양상태의 개선이다. 이것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영양결핍 상태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병은 치명적이 되지만 영양상태가 개선된 후에는 전염병에 걸려도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특히 고아와 과부를 그 지역사회가 부양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질병에 걸려 다른 사람에게 질병을 옮길 사람들의 수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위생, 격리, 사회적 보장은 전염병의 창궐을 예방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질병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을 활용하지 못해 엄청난 전염병의 피해를 본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들어서면서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은 질병으로부터 인류가 곧 해방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백신과 항생제 등에 힘입어 전염병은 이제 더 이상 문제딜 것이 없으며 암 등의 성인병을 정복하는 것이 인류의 다음 과제라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지난 81년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 발견된 이후 99년 한해에만 해도 전세계적으로 5400만명의 AIDS 환자가 발생하였다. AIDS의 창궐 이후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중요한 전염병으로 대두되었을 뿐 아니라, 과거의 전염병으로 생각했던 결핵 등이 다시 재발하고 있으며 말라리아 등 열대성 전염병은 그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은 상태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런 질병의 창궐은 성경이 말하는 삶의 방향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AIDS 창궐 원인은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가 방치되고 있는 아프리카 제국은 AIDS로 나라가 멸망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근본적인 죽음과 질병의 원인은 인간의 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동시에 성경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날이 의학이 발전하기 때문에 암과 같은 불치병도 곧 정복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은 질병의 예방이 의학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위생, 단체위생, 공동체가 함께 건강해지도록 노력하는 건강한 삶의 태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진리임에도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용어해설

△장기설 : 나쁜 공기에 의해 질병이 옮겨진다는 학설. 세균이나 매개동물에 대한 지식이 발달되기 전에 유행하던 설로서 콜레라가 오염된 물에 의한 것인지, 나쁜 공기에 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19세기에 논쟁이 붙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매개동물 : 뇌염 모기와 같이 질병을 옮기는 동물. 주로 모기 벼룩 등의 곤충이 많다.

△한센병 : 나병의 공식명칭. 나병 환자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심각한 환자로 생각하지만 실제 치료받고 있는 나병환자는 사람들에게 전염시키지 않는다. 나균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감염시킬 능력이 매우 약하다. 나병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에 지금은 한센병이라고 공식 명칭을 바꾸었다.

△현대의학 : 해부학 등의 발전 이후 서양의학의 근간이 된 의학.생의학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현대의학이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은 무시하고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면에만 치우친다는 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의학의 장점은 수술(마취) 응급처치 항생제 등의 약물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 AIDS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론되며 미국의 동성연애자 사이에서 급격히 퍼짐으로써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AIDS의 발생지로 여겨지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임신 기간에 어머니로부터 감염돼 태어나는 어린이들이 매우 많아 미국과 달리 모든 연령층의 남녀 모두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



출처 - 국민일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56

참고 :

남병곤
2004-07-28

운동과 창조섭리


      보편적 진리와 은혜 가운데 있는 인간은 성서의 말씀에서 벗어나 초연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운동을 선택한 이들이라면 이 말씀을 아예 마음의 판에 새겨야 할 만큼(잠 6:21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스포츠의 키워드다.    

보통 운동 시작 후 6개월쯤이면 체력의 지수(근력 • 근지구력 • 심폐지구력 • 평형감각 • 유연성 • 순발력 • 민첩성)가 점차 높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근력이나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평형감각, 유연성 등은 굳이 전문적인 시각이 아닌 상식으로 접근해도 이해가 가능하지만 순발력과 민첩성은 그렇지 않다. 순발력은 보통 0.8-1초 이내에 어떤 동작을 시작해서 완료하는 것이고 민첩성은 순발력이 요구하는 시간을 단위로 같은 동작을 7-8회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첩성은  순발력에 기초하고 있으며 순발력은 민첩성에 의해 강해진다. 

이런 체력의 요소 즉 지수가 높아지면 많은 이들은 자신의 체력을 시험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런 유혹은 스포츠심리학에 따르면 내면의 욕구에 뿌리를 박고 있다.    보통 이 욕구는 1년 후쯤에 강하게 분출하는데 이 욕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체력의 지수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많은 이들은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운동의 강도를 과감하게 높이곤 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체력의 한계상황에 도전하면서 야릇한 만족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그렇다면 체력의 한계상황에 도전하는 고강도 운동이 왜 '체력의 실수'로 평가받는 것일까.고강도 운동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 그에 대한 해답은 명쾌해진다. 고강도 운동은 세포내 DNA를 심각하게 손상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한양대학교 임인수박사(운동생리학)가 최근 운동과학회지에 발표한 ‘운동 강도별 산소레디칼(활성산소)에 의한 DNA손상정도와 항산화제의 방어효과’ 란 제목의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임 박사는 하루 평균 1시간씩 주당 4일 정도 7개월이상 규칙적으로 유산소성 운동을 한 H대학교 체육학과 16명을 대상으로 고강도(6명), 중강도(5명), 저강도(5명) 등 세 그룹으로 나눠 운동 상황(안정시, 운동 직후, 운동 후 60분, 운동 후 120분)에 따른 DNA손상 정도를 파악키 위해 실험에 들어갔다. 고강도 운동은 최대운동능력의 90%상태에서 하루 평균 20분, 중강도는 70%에서 35분, 저강도는 45%에서 50분씩 운동을 실시토록 했다.

최대운동능력은 가장 강한 운동부하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최대산소섭취량과 최대심박수 및 운동자각도 등이 고려돼 운동부하가 결정된다. 이 같은 운동 강도와 시간은 미국 대학스포츠의학회(American Collage of Sport Medicine ; ACSM)가 제시한 유산소성 운동프로그램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임 박사는 실험운동이 끝난 후 이들 세 그룹에서 각각 안정 시, 운동 직전, 운동 후 60분, 운동 후 120분 등 4개 시점으로 나눠 채혈, DNA손상 정도를 분석했다. 채혈분석결과 중 • 저강도 운동 그룹은 DNA손상에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고강도 운동 그룹은 현저한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운동전 안정시(공복시) DNA손상 정도가 2.86에서 운동후 120분이 지나면서 4.09로 껑충 뛴 것으로 조사됐다.

DNA가 파괴되면 노화가 촉진되고 각종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학계의 해석은 이제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의 또래보다 훨씬 나이가 많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고강도 운동 시 DNA가 손상을 입는 것은 몸속에서 발생한 활성산소 때문이라는 것이 생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대운동능력의 90% 상태에서 20분 동안 운동을 지속시켰을 경우 섭취된 산소는 완전히 처리되지 못한 채 평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남게 된다. 통상 운동을 하지 않거나 저강도 운동을 했을 때는 25%정도 쌓이게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렇게 잔류된 산소는 정상적인 산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불완전한 산화 등에 의해 활성산소로 변종된다. 이것이 바로 세포막을 파괴하고 DNA를 손상시키는 산소독이다. 체내에서 발생한 활성산소는 다행히 내부 항산화효소에 의해 무력화되지만 그래도 평상시에는 5%,고강도 운동 시에는 10%이상 남게 된다. 이렇게 남은 활성산소를 처리하기위해 강력한 항산제인 비타민-C • E, 베타카로틴, 세레늄 등을 다량 섭취할 것을 전문가들은 권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강도 운동 시 이런 엄청난 활성산소가 왜 생성 될까.  격렬한 운동을 하면 몸속의 혈류가 재분배된다. 예컨대 간, 신장, 위, 장과 같이 직접적으로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기관들은 혈액을 활동근이나 심장과 하체에 보낸다. 이 때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기관들은 저산소증인 심각한 산소 부족현상을 겪게 되는데 이를 국소빈혈재관류라 한다. 이런 산소부족 현상은 운동이 종료되면 서서히 정상을 되찾는데 바로 이때 혈류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폭발적으로 활성산소가 생성된다. 임 박사의 연구논문에서 보듯 운동종료 후 120분의 시점에서 DNA손상정도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것은 고강도 운동을 했을 경우 그 여파 즉 피로도나 혈류의 재분배 등이 운동종료 후 120분까지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강도 운동의 위험성은 스포츠심리학이나 한의학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양쪽 영역에 따르면 운동 시 에너지는 두 종류인데 바로 의식과 무의식 에너지가 바로 그것이다. 의식에너지는 수의근(맘대로 움직이는 근육)에서, 무의식 에너지는 불수의근(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근육. 주로 오장 육부의 내장 근육이 여기에 속한다)에서 분출된다. 그런데 고강도 운동을 하면 수의근의 의식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에 불수의근에 내재된 무의식에너지를 끌어다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장 등에 저장된 에너지를 끌어다 사용하게 되면 자연히 그 영역의 기운이 빠져 허(虛)하게 된다. 결국 고강도 운동에 의해 내장 영역이 허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이론의 출발은 프로이드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이는 현대과학에 의해 최근 그 실체가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고강도 운동이 세포를 갉아 먹는 해당행위임에 불구하고 계속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지나친 자기 정당화 가설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적 보상이 충분하게 다가오면 내적 판단보다 외적 보상에 훨씬 더 깊게 빠져든다는 이론이다. 체력의 지수가 눈에 띄게 높아져 외적 보상이 확인되면 고강도 운동이 DNA를 손상시킨다는 내적 판단보다 보이는 외적 보상에 더욱 집착한다는 해석이다. 자기 정당화 이론은 욕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국 욕심이 고강도 운동을 불러오고 그것은 건강의 지수를 떨어뜨려 인체의 창조섭리를 깨뜨리게 되므로 성서는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출처 - 창조지, 제 136호 [2003. 4~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122

참고 :

최무용
2004-07-28

성경 속의 신기한 과학이야기 ② : 해로의 발견자 매튜 머리


    오늘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여러분 혹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바로 해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바닷물은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갖고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해류라고 하지요. 배들이 바로 이 해류를 따라 이동하면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다의 길을 최초로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해양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은 바로 매튜 머리 박사(1806~1873)입니다. 매튜 머리 박사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바다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선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항해 중 불의의 부상을 입게되었고 사고 후부터 해양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842년 그는 워싱턴에 있는 해양관측소의 소장이 되었습니다.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매튜 머리 박사가 바다의 길을 발견하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성경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27년 찰스 루이스라는 사람이 쓴 「해류의 발견자 매튜 머리」라는 책에 보면 그가 아파서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밤마다 그에게 성경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그러던 어느날 아들은 시편 8편을 읽게 되었는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는 8절의 말씀을 듣는 순간 영감을 받고 “내가 해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러나 성경에 해로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병이 나으면 한번 그것을 찾아야보아야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윽고 그는 대서양 바닷물의 온도와 해류 그리고 바람의 흐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시행하여 바람과 해류의 순환 사이에는 상호 관련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습니다.또한 1855년 그는 항해일지를 참고하고 바람과 해류에 관한 보다 자세한 연구 끝에 북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항로와 기상도를 작성하였습니다.그가 작성한 항로는 후에 국제협정의 기초가 되었고 이것이 최초의 해도와 해상 기상도였던 것입니다.

미국의 남동부에 있는 바다인 멕시코만에는 적도의 북쪽을 흐르던 해류가 쿠바의 남쪽에 위치한 카리브해를 거쳐 흘러 들어와서는 플로리다해협을 지나 대서양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 해류는 적도 부근의 따뜻한 바닷물을 몰고 와서 대서양을 거쳐 멀리 서유럽에까지 이르게 되는데,서부유럽의 온화한 기후가 바로 이 해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해류를 멕시코만류라고 부르는데 바로 매튜 머리 박사가 발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양학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친 매튜 머리박사는 1873년 2월 1일 그의 고향인 버지니아주 렉싱턴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3 그가 태어난 버지니아주의 리치먼드와 고쉔 지방에서는 그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고쉔 지방에 있는 그의 기념동상의 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 있습니다.

"해로의 발견자인 그는 대양과 바다로부터 처음으로 그 법칙을 찾아낸 천재였다. 오가며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세대의 항해자들은 해도를 볼 때마다 당신을 생각하리라. 특히 성경의 시편 8편8절과 107편 23.24절,전도서 1장7절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음을 밝힌다."

이것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성경말씀에 대한 신뢰가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이루어 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경이 과학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한 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성경을 교회 안에 묻어버린다면, 과학의 근본 목적인 자연세계 탐구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출처 - 목회자사모신문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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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최무용
2004-07-28

성경 속의 신기한 과학이야기 ⑥ : 성경과 과학은 잘 조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시대에 뒤떨어진 책일까요? 아니면 과학과 성경은 다른 결코 연결될 수 없는 책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이 너무나 초과학적이어서 그 당시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과학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인들의 고집만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과학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은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이런 기원관으로 보면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그냥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에 근거한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의 도덕관념을 흐리게 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존재에 불과하며, 결국 동물과 같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교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교회를 나가고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 교육을 통해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너무 많은 자유 속에서 부모님과 교회에 의해 강요되어 온 비과학적인 창조론을 포기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이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전설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로 세뇌된 이들에게 영적인 세계란 하나의 허황된 꿈과 같은 얘기일 뿐이며, 이러한 영원한 세계를 갈망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독생자도 예수 그리스도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 주일학교에서도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본적인 것에 확신이 생기면 그 후에 새로운 이론과 반론이 엄습해 올 때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서로 공격하는 장면 . 진화론은 기독교의 창조(근원)를 공격하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진화론의 열매만 공격하고 있다.



출처 - 목회자사모신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15

참고 :

Henry M. Morris
2004-07-26

성경과 생물학 

(The Bible and/or Biology)


      생물학(biology)이라는 용어는 bios(생명)와 logos(말씀)의 두 그리이스 단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명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며, 성경(Bible)은 많은 증거와 그 자체의 주장에 의해 확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성경은 생물학을 비롯하여 사실에 근거한 과학(factual science)을 연구할 것을 격려-실제로는 명령-하고 있다.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신성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땅을 정복하고 생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의 본성과 기능을 알아야만 했으므로, 소위 이 '지배명령(dominion mandate)'은 실제로는 '과학을 하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명백히 생물학의 확립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의 동물과 식물 자원을 보호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과 생물학 사이에는 어떠한 충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 입장은 특별창조가 관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순전히 자연주의적인 입장으로 모든 형태의 생명의 기원과 발달 역사를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으로 본다면 성경은 진화론적 입장의 생물학에는 반대한다.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10번씩이나 오직 '종류대로' 여러 형태의 생명이 생겨났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창세기 1:11,12,21,24,25). 물론 같은 종류일지라도 정확히 똑같은 두 개의 개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변이(variation)'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된 종 내에서의 그러한 '수평적(horizontal)' 재조합은 과학연구의 적절한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성경과 충돌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많은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성경 말씀을 큰 어려움 없이 인정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창조과학연구소(ICR)에는 적어도 30명의 생명과학 전문가들이 있으며, 창조연구회(CRS)와 다른 창조론 모임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나 다른 생명과학자들은 철저하게 진화론에 헌신되어 있다. 이것은 특히 생물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실이다. 최근의 미국 학술원 회원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과학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주도적인 과학자들이 무신론을 신봉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물학자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하나님과 불멸을 믿는 비율이 각각 7.5%인데 반해 생물학자들은 그 비율이 가장 낮아 겨우 5.5%만이 하나님을, 7.1%만이 불멸을 믿고 있었다.1 

또한 사실상 하나님을 믿는 적은 수의 사람들 중 대부분도 유신론적 진화론자이지 창조론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진화론에 헌신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과학적 증거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것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다윈조차 성경의 신적 형벌교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진화론자와 회의론자가 되었다.2 

실제적으로 볼 때에는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기껏해야 매우 빈약할 뿐이다. 역사상 진짜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간단한 생명체에서까지 발견되는 엄청난 복잡성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모든 피조물의 생식과정을 관할하는 유전학적 코드도 너무나 복잡하여 지적인 설계가 있었음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그들은 이것을 자연선택으로 돌리고 있다. 다음의 진술에 주목해 보자. 

유전학적 코드는 단순히 무작위적인 결과가 아니라 초기의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영국의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 코드는 수 십억의 수 십억 배에 달하는 가능한 코드 중 최선의 것이라는 것이다. 대략 1020개의 코드가 가능한데 자연에서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35억년 이전에 표준으로 채택된 것이다.3 

지적인 존재가 관여했다는 명백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일어났다고 가정한다. 

......그러한 효율적인 코드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은 극히 희박하다. 자연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이 틀림없다.4 

따라서 자연선택은 종의 기원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는 놀라운 코드의 기원에서조차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러한 놀라운 특질을 성취하는데 있어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두 명의 매우 뛰어난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동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주된 의문들은 신다윈주의를 통해서는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한 질문들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어떻게 새로운 구조가 진화를 통해 일어나는가?' '수많은 환경의 변화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석기록으로 보건대 진화에 있어 왜 균형상태(stasis)가 그토록 우세한가?' '어떻게 한 그룹의 기관이나 한 분자세트가 서로로부터 진화되었는가?'5 

이러한 질문들은 창조론자들이 수년간 진화론자들에게 제기해 온 질문과 동일한 것인데, 명백하면서도 진실된 해답은 성경적 창조에 있다.

물론 이러한 해답을 진화론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그렇다라고만 설명하거나 또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라는 불가사의한 시나리오를 고안해 낸다. 

이런 가상적인 개념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고안되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공학자나 물리학자, 수학자로 출발한 과학자들로서 생물학이 '쉽다'는 것을 알았다.6 

위에서 언급한 공저자들(coauthors)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라는 신다윈주의자들의 개념에 완강히 반대하며, 또한 굴드(Gould)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주장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해답이 가이아(Gaia)라는, 지구자체-소위 어머니로서의 지구(Mother Earth)-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고대 이교도들의 생각에 있다고 믿는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며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역시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다. 윌슨(사회생물학의 주요 주창자로 잘 알려져 있다)의 최근 책을 리뷰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했다. 

.....책의 몇 군데 구절에서, 복잡성의 문제가 모든 과학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임을 암시하고 있다.7 

그의 동료 다윈주의자인 도킨스는 그러한 문제는 모두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그의 '눈먼 시계공' 이론에 의해 여하튼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선택을 통해 인간의 두뇌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던 윌슨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두뇌의 진화는 300만년 이상에 걸쳐 우리의 유인원 조상과 호모 사피엔스(약 100만년 전에 나타난)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이상한 특징은 인간의 두뇌의 용적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크기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더욱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은, 조금이라도 진화론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모든 문명의 최초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에 반해, 일단 두뇌가 형성되고 난 이후에는 단지 수천년 안에 엄청난 문화의 분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두뇌와 문명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위의 어떠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초기의 신적 창조라는 단순한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대신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을 설명하는데 있어 신다윈주의, 단속평형설, 가이아 이론의 상대적 우위성을 강조하느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바드 대학의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ay Gould, 단속평형설의 주창자)는 비록 듀안 기쉬(Duane Gish)와 같은 창조과학자와의 토론은 거절했지만 이러한 주제에 대해 도킨스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토론에는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인간심리학이 다윈적인 선택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속평형의 결과인지에 대한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진화론적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와의 논쟁을 널리 공표하기도 했다. 과학 저술가인 브룩스의 다음 논평은 매혹적이며 적절하다. 

굴드는, 이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단순하면서도 쓸모없는 오래된 논쟁의 필연적인 부산물과도 같다. 그것은 지적으로 우월해지려는 것 외에 어떠한 명백한 기능도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많은 상상과 논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양측 모두의 견해에 대한 증거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9 

이 특별한 논쟁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것이지만 동일한 비평이 진화생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어느 쪽도 관찰에 의한 증거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신다윈주의에 대해 진화학자 도버(G. A. Dover)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화론 연구는 목적론적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그리고 잘못 기획된 확률놀음에서 제거되어 실험실과 현장으로 되돌려보내져야 한다...... 아직 배워야 할 여지가 많이 있으므로 신다윈주의자의 통합(neo-Darwinist synthesis)은 눈먼 시계공이론에 의해 끝까지 방어되어서는 안된다.10 

현장 연구를 통해 단속평형론자들은 화석기록에 보편적인 진화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간격에도 불구하고, 또 현재 현장이나 실험실에서 결코 목도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의 기록은 진화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일반적인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화석은 점진주의(gradualism)나 단속주의(punctuationism) 모두에 대해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화석의 발견은 단순한 진화계통수를 만들려는 우리의 시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요 시대의 화석은 대개 중간화석이 아닌 많은 다른 그룹의 특징들로 뒤범벅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주 화석그룹은 단순히 선형적(linear)이거나 진행적(progressive)인 방식으로 조합되지 않는다. 새로운 특징들은 종종 다른 시대의 다른 그룹으로부터 '취해서 붙여 놓은(cut and paste)' 것에 지나지 않는다.11 

바위에 남겨진 수십억 개의 화석 중 전이 형태의 화석은 없을 뿐더러 명백한 진화론적인 순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고학에 '닭이냐 달걀이냐(chicken and egg)'라는 문제를 제 기한다. 만일 주요 특징들에 대한 독립적인 진화가 일반적이라면, 계 통발생학은 어떻게 인식될 것인가?12 

생물학적 기원의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출발선은 바로 성경의 기록이 모든 실제적인 과학적 현실과 일치하며 진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참고문헌

1. Edward J. Larson and Larry Witham, 'Leading Scientists Still Reject God,' Nature (vol. 394, July 23, 1998), p. 313.

2. Charles Darwin, Autobiography, reprinted in The Voyage of Charles Darwin, edited by Christopher Rawlings (BBS, 1978). See 'A Scientist's Thought on Religio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3. Jonathan Knight, 'Top Translator,'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4. Ibid.

5. Lynn Margulis and Dorion Sagan, Slanted Truths: Essays on Gaia, Symbiosis, and Evolution(New York: Springer-Verlag, 1997), p. 100.

6. Op. cit., p. 270.

7. Charles C. Gillispie, 'E. O. Wilson's Consilience: A Noble Unifying Vision, Grandly Expressed,' Review of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by Edward O. Wilson (New York: Alfred Knoph, 1998), 322pp. In American Scientist (vol. 86, May/June 1998), p. 282.

8. Op. cit., p. 281.

9. Martin Brookes, 'May the Best Man Wi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1, 1998), p. 51.

10. G. A. Dover (1998), cited in Margulis and Sagan, op. cit., p. 271.

11. Neil Shubin, 'Evolutionary Cut and Paste,' Nature (vol. 394, July 2, 1998), p. 12.

12. Op. cit., p. 1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12.htm

출처 - ICR, Impact No. 312, June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

참고 :

심영기
2004-07-26

고서 검증법(Bibliographical Test)으로 본 성경의 신뢰도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사본이 얼마나 원본에 가까운지를 검증하는 방법으로 고서검증법(Bibliographical Test)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원본이 없는 경우 현재 갖고 있는 사본들끼리 서로 비교하여 보아, 원본과의 정확성 정도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사본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본이 원본으로부터 만들어진 시간적인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또 사본과 사본 사이에 오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사본은 원본과 가까운 사본이 된다. 이는 고고학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방법으로, 원본이 없는 대부분의 모든 사본에 대하여 응용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구약은 물론 신약 성경도 최초의 원본이 만들어진 시간이 지금부터 무려 4,000년 또는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원본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성경의 신뢰도를 알아보는 객관적인 방법으로는 고고학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고서검증법을 이용하여 그 정확성 정도를 가늠할 수가 있다. 위의 방법에 따라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신뢰도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신약성경 사본의 정확성 

신약은 원래 헬라어로 쓰여졌다. 신약성경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포함한 현존하는 사본은 약 5,500여 개, 번역 사본이 약 18,000여 개로 모두 25,00O여 개의 사본이 남아있다. 신약 성경과 비교하는데 가장 좋은 대조 서적으로는 호머(Homer)의 일리어드(Illiad)가 이용되고 있다. 신약성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암기되고 또 비문에 적히기도 하며 후세 사람들에게 베껴져 전해졌듯이, 호머의 일리어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 두 책을 고서 검증법에 따라서로 비교하여 표를 만들어 보면 위와 같다. 

내 용

신약성경

일리어드

사본의 수

원본기록연대

최초사본연대

시간적 차이

오류의 정도

24,643

A.D. 40~100

A.D. 125

25년

0.5%

643

B.C. 900

B.C. 400

500년

5%

 

신약성경의 사본들은 고대의 어떤 사본들보다도 단연 오래된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가 카툴루스(Catullus)의 책은 3개의 사본만 현존하는데, 원본 이후 100년 후에 만들어진 것이며, 헤로도투스(Herodotus)도 8개의 사본만 현존하는데 원본 이후 1,300년이나 지나서 기록된 것이다.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신약성경은 대조 고서인 일리어드에 비해 사본의 수에서는 40여 배, 시간적인 차이에서 20 배, 그리고 오류의 정도는 10 배 정도 더 신뢰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준보다 무려 약 8,000 여배 이상이나 신뢰도가 높은 것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성경은 인류가 갖고 있는 어떠한 책보다도 원본에 가까운 책임을 알 수가 있다.

브루스(F. F. Bruce)는 ”신약성경의 증거는 고전 작품에 대한 증거보다 훨씬 많으므로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 없다” 고 말했다. 

 

2. 구약성경의 정확성 

구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번역 사본은 오랫동안 A.D. 900년 경의 맛소라사본(Masoretic Text)이었으므로, 구약성경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해왔다. 왜냐하면 구약이 마지막 기록된 B.C. 400년경과 A.D. 900년과는 무려 1300년이라는 긴 시간적인 차이가 나는 셈이므로, 사본의 정확도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의심을 가졌던 것이다. 더욱이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사본은 구약이 완성된 이후 1,400년이나 지난 A.D. 1008년의 바빌로니쿠스 서판(Codex Babylonicus Petropalitanus) 뿐이었다. 그 때까지 성경학자들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이나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유일한 자료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1954년 베두인(Bedouin) 목동이 우연히 B.C.125년경 쯤에 만든 사해사본(Dead Sea Scroll)을 발견함으로써, 원본과의 차이를 275년으로 좁혀 놓았다. 40,000여개의 사본 조각들로부터 500 여권의 책이 구성되었는데, 이중 1/3이 구약성경이었다. 사해사본에서는 놀랍게도 에스더서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약성경 전체가 발견되었다. 더군다나 사해사본과 1,0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맛소라사본과 서로 비교해 보았더니, 이 둘이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고고학자인 알브라이트(WilliamF. Albright) 박사는 사해 사본의 발견에 지대한 공을 세운 존 트래버(John Traver)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가장 위대한 사본을 발견하신 일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번 사본들이 나쉬(Nash) 파피루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약 성경의 일부분) 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시기는 B.C. 100년경으로 짐작됩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발견입니다. 더욱이 사본의 순수성에 관하여는 추호도 의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견해 

성경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구약성경을 어떻게 보셨는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하신 그분 자신의 견해는 구약성경의 권위에 대한 최종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이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었다. 예수님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라고 말씀하셨다 (요 10:35). 그는 구약을 ”하나님의 명령”(마 15:33),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마 15:6)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경은 없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5:18). 일점 일획이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사람들을 대할때, 그들이 제자이건 종교지도자이건 간에 예수님은 계속적으로 구약에 대해 언급하셨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마 22:32) 

 

4. 필사(筆寫) 작업 

사실 유태인들은 탈무디스트(Talmudist)라는 특수한 집단에 의해 원본과 똑같은 성경을 17개의 엄격한 규칙아래 베껴 왔다. 그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우리는 원본과 같은 사본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복사 작업의 결과로 성경은 의심할 것 없이 수천 년을 거쳐 내려오면서도 내용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지금까지 전수되어 온 것이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책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금 우리가 성경에서 과학적인 설명들을 찾아 현대 과학과 비교해 보는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내용과 비교해 보는 것이 아니다. 수 천년 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현상들이 정리되기 훨씬 이전, 그들이 직접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보는 것으로 인위적인 조작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5. 성경 속의 과학적 내용 분류 Code 

성경 속에 나와 있는 과학적 기술을 다음 다섯 개의 code 분류하여 개괄적인 표를 만들어 이해를 도우려고 한다. 

1) Code의 설명

2) Code의 적용

예를 들어 욥기 26:7에 그가 땅을 공간에 다시며…(He…hangs the earth on nothing) 라는 기사는 위 분류 code에 따라 만들어 보면 그 code가 AAAAB가 된다.

① 첫번째 글자 'A' … 번역은 정확하다. 전치사 'on'은 히브리어 '알(AL)'에서 온 말로 '위에', '…에 대하여' 라고 번역되는 것으로 지구가 아무런 지지(支持)없이 (unsupported) 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② 두번째 글자 'A'… 욥기 26:7은 그 내용이 정확히 지구의 지지 system을 기술하고 있다.

③ 세번째 글자 'A'… 현대 과학으로 알려진 것이다. 지구를 무엇인가 떠받치고 있지 않음을 우주선에서 찍은 지구 사진으로 확인하였다.

④ 네번째 글자 'A'… 이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 측지학이나 우주 비행으로 확인할 수 있다.

⑤ 다섯번째 글자 'B'… A.D. 1600년 이후 과학적으로 인정되었다. 1543년 이전까지 세계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하늘의 모든 별이 지구를 포함해 모두 굳은 것으로 지지되어있다는 톨레미 시스템(Ptolemy System)을 믿어 왔다. 지구를 포함한 하늘의 별들이 아무런 지지를 받지 않고 운행한다는 것은 폴랜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 1473~1543)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참조 : What is the importance of the Dead Sea Scrolls?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23.html


출처 - 창조지, 제 111호 [1998. 11~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

참고 : 2793|2796|2799|2552|2534|910|2245|1798|1812|2135|939|370|655|77|617|665|2432

서민호
2004-07-26

성경과 과학 1 (Bible and Science)


     많은 사람들은 성경책을 윤리-도덕적으로는 훌륭한 책이지만 과학적으로는 신뢰성이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경은 물론 과학책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초자연적인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피조세계중의 하나인 과학과 성경은 당연히 일치하게 되어있다. 현대의 과학수준이 성경의 사실들을 이해할 만큼 충분히 발달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보기에는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오해되어왔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결국 성경이 옳았다는 사실이 꾸준히 증명되어왔으며, 첨단과학의 시대라고 하는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도 성경의 기록들이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밝혀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성경은 비과학적인 책이 아니라 초과학적인 책이라는 몇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1. 지금부터 약 3400년전에 기록된 창세기 22장 17절과 예레미야 33장 22절에 보면 하늘의 별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의 별은 수천개 정도에 불과하며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천체망원경이 발달하면서 하늘의 별은 엄청나게 많으며, 우리가 살고있는 은하계(Galaxy)만 해도 별이 1000억개나 되며, 우주에는 이러한 은하계가 1000억개 이상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성경말씀 그대로 하늘의 별은 1000억 곱하기 1000억개나 되는, 셀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2. 욥기 38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네가 묘성(황소자리의 별)을 매어 떨기(성단) 되게 하겠느냐 삼성(오리온자리 별)의 띠를 풀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인간능력의 제한성을 지적하시고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근래까지만 해도 묘성은 아무관계 없이 흩어져 있는 별이며, 삼성의 별자리는 요지부동의 띠모양이라고 생각하여서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대천문학의 발달로 인하여 묘성은 떨기별(성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오리온자리 별의 허리띠인 삼성은 지구에서 볼때만 허리띠 모양이었고, 실제로는 우주공간에 뚝뚝 떨어져있는(풀려있는) 아무 관계없는 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창세기 만큼이나 오래전에 기록된 성경이 20세기에 와서야 밝혀진 것이다.


3. 고대인들은 거대한 거북이 등이나 여신의 허리 위에 지구가 얹혀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욥기 2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땅(Earth=지구)을 공간(Space, Nothing=우주공간)에 다시며"라고 하여, 지구는 우주공간에 떠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근래에 와서야 밝혀진 사실을 성경은 지금부터 수천년전에 이미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4. 운석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1803년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여호수아서 10장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우박(Great Stone)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게 하시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덩이우박 (Great Stone)'은 운석을 뜻하는 것으로서, 성경은 과학적 기록보다 수천년 앞서서 운석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5. 시편 8편 8절에 보면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해양학의 아버지 매튜 머리(Matthew Maury) 박사는 이 성경귀절을 듣고 깨달아 세계 최초로 해로를 발견하였다.


6. 아인슈타인 박사에 의해 밝혀진, 현대과학의 대단히 중요한 발견중의 하나가 "질량과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사실이다. 즉 물질은 실제로는 에너지의 한 형태이며, 원자에너지로 알려져있는 에너지 형태의 표출이다. 우주의 물질은 궁극적으로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나타나지 않은" 그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부터 1900년전에 기록된 성경기록인 히브리서 11장 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world-time)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되어있다. 성경은 공간과 질량과 시간의 연속체로서의 우주를 설명하고 있으며, 우주의 물질적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무한한 에너지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에 의해 창조되고 지탱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 1900년 전에 이미 물질의 근본을 정확히 과학적으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7. 현대과학에 있어서 모든 물질과학의 절대적인 기초 법칙으로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란 "폐쇄된 계 안에서 에너지의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화할 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며, 질량불변의 법칙이란 "모든 물질은 그 크기와 상태와 형태에 있어서는 변할수 있어도, 그 총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이러한 법칙들이 의미하는 바는 한결같다. 즉, 물질 및 에너지의 창조나 파괴는 물질세계의 그 어느곳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성경은 수천년동안 창조가 더 이상 진행중에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체계는 단지 태초에 있은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결과일 뿐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가르쳐왔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때에 마치니" (창세기 2:1-2; 기록연대=기원전 1446년경). 성경기록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8. 역시 모든 물질과학의 절대적인 기초 법칙으로서 무질서 증가의 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있다. 무질서 증가의 법칙이란 '폐쇄된 체계 안에서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나, 그 에너지가 가지고 있던 효용성과 유용성의 양은 언제나 줄어들어서, 에너지의 질이 계속 저하된다.'는 법칙이다. 무질서 증가 법칙의 의미는 "지구의 거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오는데, 언젠가 태양은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 버릴 것이며, 지구상의 모든 활동도 끝나게 된다. 즉, 우주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으며, 낡아가고 퇴락해 가고 있으며, 궁극적인 물질적 죽음을 향해 냉혹하게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 시편 102편 25-27절을 보면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天地)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기록은 무질서 증가의 법칙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9. 미국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턴 장군은 왜 죽었을까? 늙어 죽었을까? 병들어 죽었을까? 아니면 암살당했을까? 미국 버지니아 의학월보에 죠지 워싱턴 장군의 사망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1799년 12월 12일, 눈-비 내리는 추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군은 습관대로 말을 타고 농장을 돌았다. 13일날 장군은 목이 아픔을 호소하며 집안에서 쉬었다. 14일 새벽 3시에 장군은 열이 심하게 났으며, 그날 낮에 농장관리인이 와서 많은 피를 뽑았다. 밤 11시에 제임스 크레 박사와 다른 두 명의 의사가 와서 두 번에 걸쳐 많은 피를 뽑아내었으며, 증세의 호전이 없어서 또다시 피를 뽑았다. 마지막으로 피가 천천히 나오며 피가 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장군은 사망하였다." 워싱턴 장군은 추운날 말을 타다가 심한 감기-몸살이 걸렸는데 그당시의 무지하던 의학지식에 의하여 몸속에 나쁜 피가 많아서 병이 난 것으로 간주하여 여러번에 걸쳐 많은 피를 뽑아낸 결과 나중에는 나올 피가 없어서 피가 나오다가 굳어질 정도가 되었고, 워싱톤 장군은 출혈에 의한 쇼크로 죽게된 것이다. 요즘에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워싱턴은 의학적 무지 때문에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죽어가는 워싱턴 장군의 머리맡에는 성경책 한권이 놓여있었다. 그 성경책 레위기 17장 11절과 1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성경은 인간의 생명은 피에 있으며 피를 뽑으면 죽는다는 분명한 의학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비록 워싱턴 시대의 의학수준이 저급했다 하더라도, 성경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만 있었어도 늙은 장군을 그토록 안타깝게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지와 불신앙, 이 두가지가 미국 독립의 영웅을 죽인 것이다.


10. 많은 과학자들은 인류는 지구상 여러곳에서 각각 발생하여 여러종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문명도 지구상 여러 곳에서 각각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 워싱톤 주립대학의 과학자들이 세포내 마이토콘드리아 DNA와 첨단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류의 조상을 조사한 결과 인류의 여자조상은 한명이었음을 증명하여 그당시 '올해의 과학자 상'을 받게 되었다. 그때 시상식장에서 기독교를 믿는 교수들이 "성경만 읽어봤으면 될걸 그랬네(All he had to do was read the Bible!)"라고 농담겸 칭찬을 하였다. 정말 그렇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 20절에 보면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이브)'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라고 기록되어있다. 현재의 모든 인류는 이브가 낳았거나 이브의 딸들이 낳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수천년 전부터 놀랍도록 정확하게 과학적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과학이 계속해서 발달함에 따라 성경의 초과학성이 계속해서 밝혀질 것으로 생각된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삭 뉴톤은 유명한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천체(우주)는 태양, 행성, 혜성 등으로 매우 아름답게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성을 갖춘 강력한 실재자의 의도와 통일적인 제어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지극한 하나님은 영원, 무궁, 완전하신 분이시다" 라고 말했으며, 또한 "과학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과학의 정의를 내렸다. 아인슈타인은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와 같다"라고 결론내렸다. 또한 20세기의 위대한 복음주의 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성경은 기록된 말씀 그대로 믿는것이 중요하며,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믿는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기록된 말씀대로 해석하지 않고 의미로만 해석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정통 기독교신앙을 벗어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5)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로마서 11:33)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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