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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성경은 우주 비밀 푸는 '보고'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성경은 과학적인 사실을 설명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그 의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표현된 내용들이 과학과 상관없다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사실 성경에는 현재의 과학에 의해 밝혀진 정말 놀라운 사실들이 많이 기술되어 있다. 성경에 존재하는 이러한 표현들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들은 성경이 기록된 그 당시의 과학적 수준에서 이해한다면 정말 ‘말도 안되는 표현’ 내지는 ‘상징적 표현’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1. 허공에 떠있는 지구 :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기 26:7)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라는 이 기록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지구가 공간에 떠있음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한 이후에야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만유인력에 의해 태양 주위의 공간에 지구가 떠있음이 밝혀진 이후에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2. 무수히 많은 별 :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예레미아 33:22), 하늘의 허다한 별과 (히브리서 11:12)

육안으로는 약 6000개 정도의 별을 볼 수 있다.이 때문에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발명하여 하늘을 관측(17세기초)하기 전까지만 해도 별의 수는 기껏해야 6000개 정도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재 여러 종류의 망원경을 사용하면 ‘하늘에 허다한 별’이 있음을 보게 된다.

 

3. 묘성(昴星)과 삼성(三星) :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욥기 38:31)

처녀자리에 있는 묘성은 육안으로는 7개의 별밖에는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고성능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200개 이상의 별들이 개방(떨기)성단을 이루며 함께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또한 오리온자리에 있는 삼성은 서로 가까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임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다시 말하면 삼성은 묶여 있지 않고 풀려 있다는 것이다.즉 수천년 전에 쓰여진 삼성과 묘성에 대한 욥기의 말씀은 고성능 망원경을 통하여서야 알 수 있었던 사실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4. 물질의 구조 :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3)

현재 밝혀진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궁극적인 입자들은 쿼크(quark)라고 불리는 것들이다.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일상 상태하에서는 쿼크들을 하나씩 개별적으로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쿼크들은 일상에서는 개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양성자는 업(up) 다운(down) 등 3개의 쿼크로 구성되는데 양성자는 일상에서 관측되지만(보이지만) 업 다운 등 쿼크는 개별적으로 분리돼 하나씩 관측되지 않는다.


5. 노아 방주의 안정성 :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창세기 6:15)

많은 사람들이 노아 방주의 실재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그 의구심중 대표적인 하나는 노아 방주가 과연 실재했다면 대홍수에 이 방주가 과연 안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안정성에 대한 문제이다.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방주의 길이,너비,높이의 비율은 풍랑 가운데 있는 배가 엔진을 끈 채 바다에 그냥 떠 있을 때 가장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비율임이 밝혀졌다.그뿐만 아니라 노아 방주는 30m 이상의 파도에 견딜 수 있는 배의 구조를 지니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6. 엔트로피 :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히브리서1:10,11)

여기서 옷의 낡아짐은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상태,즉 무질서가 증가하는 상태를 말한다.현재 우리 우주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상태로 다르게 말하면 질서를 잃어가는 상태이다.이러한 이해,즉 우리 우주가 질서를 잃어가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은 17∼18세기 이후에나 알려진 것들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성경은 과학책은 아니다.그러나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은 성경이 쓰여진 시기의 과학적 수준을 생각하여 보면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이다.하지만 다음의 질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위와 같은 과학적 사실들이 알려지기 이전의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성경 구절로부터 성경 내용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 용어해설

△만유인력: 질량을 지닌 물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아이작 뉴턴에 의해 17세기 후반에 체계화됨.

△쿼크(quark):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fundamental particle).업(up) 다운(down) 참(charm) 스트렌지(strange) 톱(top) 보톰(bottom) 등 6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짐..

△양성자(proton): 원자를 이루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물질.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됨.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disorder)의 정도를 의미하는 물리적인 척도.엔트로피가 낮을수록 질서가 있음을 의미하고 엔트로피가 높을수록 질서가 없음을 의미함.

 

*참조 : Does the Bible say anything about astronom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wow/does-the-bible-say-anything-about-astronomy

The Splendor of God’s Creation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tba/splendor-of-creation

Black Holes :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1/black-holes-evidence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성경과 기독교/성경과 과학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B01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1/2001_127_3.htm 

출처 - 창조지, 제 127호 [2001. 9~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0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07-26

모유에 숨겨진 창조의 비밀

장해동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뒤 이곳에 온갖 식물과 동물을 만드셨고, 이들을 다스릴 인간을 만드신 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종류대로 생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땅에 번성하라고 하셨고, 생물의 번성을 위해 여러 가지 특별한 배려를 해 놓으셨다는 사실이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하나씩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동물 가운데 유즙(젖)을 영양 공급 수단으로 삼는 동물을 포유류라고 분류한다. 포유류는 임신중에는 태반을 통하여 모체로부터 태아에게 모든 영양 공급을 하지만, 출생후 일정 기간 동안은 모체의 유선에서 만들어진 유즙을 통하여 영양소를 공급하게 된다. 따라서 유즙은 포유동물의 어린 새끼를 먹이기 위해 모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린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 영양학적으로 완전한 천연식품이라 할 수 있다.

 

우유는 소의 영양 공급 수단이다

유즙에는 3대 영양소인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무기질, 비타민 효소 등도 적당량 함유되어 있다. 유즙에 존재하는 단백질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매우 우수한 단백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칼슘, 인과 함께 독특한 콜로이드를 형성하고 있어 백탁현상으로 흰색을 띠게 한다. 유즙은 동물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는데, 소에서 나온 유즙을 우유라 하고 말에서 나온 것은 마유, 사람의 경우에는 모유라고 한다.

특히 소에서 착유한 우유는 그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의 식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유즙의 농도는 동물의 종류와 새끼의 성장속도에 따라 다르며 유즙의 조성도 개체의 여러 가지 상태에 따라 변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언제부터 사람이 우유를 식품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야생소를 집 또는 들에서 사육하면서 우유를 사용하게 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믿고 있다. 낙농기술의 발달과 문화의 변천에 따라 근래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모유가 우유로 대체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유와 모유에 대한 자세한 과학적 지식이 없이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해보아도 소의 영양 공급 수단인 우유가 모유의 대체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과 소는 같은 포유류에 속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각기 독특한 종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소는 소대로, 사람은 사람대로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유 먹는 아기 질병에 더 잘 걸려

우선 우유와 모유의 성분 구성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우유에서는 카제인이라는 단백질이 우유 단백질 함량의 80%인 반면 모유는 40% 정도밖에 없고 나머지는 각각의 유청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모유로 대체될 어린이용 분유를 제조할 때에는 분유의 유청단백질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높여 모유에 해당되는 60%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유청단백질의 함량을 모유와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분유가 모유를 대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유의 유청단백질에는 모유에는 없는 베타-락토글로블린 이라는 단백질이 다량 들어있어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식품 알러지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나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분유를 먹는 아이들의 약 0.1~8%가 습진, 천식, 설사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식품 알러지로 고생을 하고 있으나, 이러한 식품 알러지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에서는 분유 알러지가 있는 어린이를 위해 콩을 이용한 분유를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지만 우유로 만든 분유에 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모유가 갖는 우유와 다른 조성상의 특성은 면역글로블린이라 할 수 있다. 면역글로블린이란 출산 이후에 각종 질병으로부터 어린아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우유에 들어 있는 면역글로블린은 어린 송아지를 소의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있지만, 어린 아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분유를 먹는 아이들보다 모유를 먹는 아이들이 질병에 걸린 확률이 적을 뿐만 아니라 유아들이 원인 모르게 갑자기 죽는 유아 급사증후군의 발병률도 적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분유 회사들이 모유와 같은 분유를 제조하기 위해 모유에 존재하는 면역글로블린을 연구하여 인위적으로 분유에 첨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엄마를 통해 하나님의 세밀하신 창조섭리에 따라 제조되는 것을 흉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태초에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식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온갖 종류의 생물을 보존하시기 위해 행하신 배려가 얼마나 세밀하고 정확한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모유는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킨다.

모유에 있지만 우유에 거의 없는 단백질에는 락토페린과 라이조자임이 있다. 락토페린은 모유의 유청단백질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존재하는 단백질로 철분의 흡수, 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철분은 인체 내의 여러 가지 성분의 구성 요소로 작용하면서 빈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모유에 철분의 흡수 ·이용을 증진시키는 락토페린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는 것은 어린이들이 빈혈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효소 기운데 하나인 라이조자임은 세균의 세포벽을 분해시킴으로써 면역글로블린과 함께 어린이를 각종 질병으로부터 지켜주는 기능을 한다. 여러 가지 여건으로 모유를 먹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모유를 먹이지 않고 인위적으로 조제된 분유를 어린 아이에게 먹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거스림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아이에게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엄마의 모유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어 잘 알 수는 없지만 모유를 먹고 자란 사람과 조제분유를 먹고 자란 사람 사이에 인격 형성의 차이점이 생길 수 있을 것이란 사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유를 먹이는 동안 육신을 위한 영양소의 공급도 되지만 어린이와 엄마 사이에 다정한 정감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유 기피는 창조섭리를 무시하는 것

최근에 와서 모유 먹이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피치 못할 경우도 있지만 엄마들이 미용을 핑계로 모유 먹이기를 싫어한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어린 아기가 사모하는 것은 소에서 온 우유가 아니라 엄마로부터 온 모유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유는 사람에게 필요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어린 아이에게는 일정 기간 모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수유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유의 성분도 변하게 되고 아이도 자라나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기 때문에 우유를 포함한 여러 가지 식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우유에 존재하는 단백질과 더불어 칼슘은 뼈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우유 단백질인 카제인과 함께 미셀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칼슘은 장내에서 다른 식품에 있는 칼슘보다 잘 흡수, 이용되는 것으로 연구 결과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힘입어 최근에는 우유 단백질로부터 칼슘의 장내 흡수를 도울 수 있는 CPP 라는 기능성 펩타이드를 만들어서 각종 건강 보조식품의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 우유의 칼슘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골다공증의 예방과 치료에도 매우 긴요하게 쓰이고 있는 유용한 물질이다.

하나님께서 동식물의 생육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흔적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욱 자세히 밝혀질 것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로 볼 때 모유는 어린 아이를 위해, 우유는 어린 송아지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놓으신 최상의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모유에 나타난 놀라운 사실들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 :21)란 성경 말씀을 확실하게 증거해준다.

미디어위원회
2004-07-26

땅을 공간에 다신 하나님

이웅상 


     「종교와 과학」이란 과목을 강의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따라와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교황이 성서의 오류를 시인하면서 갈릴레오를 복권조치 했다는 기사를 읽어보셨습니까?" 이에 나는 "아직 못 봤습니다. 복권조치 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성서의 오류를 인정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라고 대답하며 그 학생이 들고 있는 신문을 건네 받아 관련기사를 읽어보았다.

11월 3일자 동아일보의 '횡설수설' 난에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면서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파문 당한 갈릴레오를 천주교에서 성서의 오류까지 시인하면서 진실을 옹호한 데에는 커다란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또한 이에 대해 11월 7일자 기독신보에서는 갈릴레오뿐만 아니라, 1518년 이단으로 규정하고 1520년 파문시켰던 마틴 루터도 복권시켜야 할 것이 아닌가 논박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러나 따지자면 중세 암흑시대에 종교재판에 의해 희생된 유명 무명의 진정한 신앙인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지금에 와서 이들에게 교황이 절을 하며 사죄하고 복권조치를 한다고 해서 감사하며 카톨릭에 복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들이 그렇지 않아도 물질주의와 과학만능주의에 세뇌되어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현대인의 마음을 더욱 닫게 하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데 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의 타락과 갈릴레오가 주장한 지동설이 옳다는 것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갈릴레오의 희생은 성서의 오류 때문이 아니다. 천동설은 이집트의 천문학자 프톨레미(Clandius Ptolemaeus)가 제안한 이론으로 16세기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즉  이 당시까지만 해도 지구가 태양계의 고정된 중심으로 태양과 그 외의 혹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의해 최초로 지동설이 제안되었으나 천동설의 견해가 당시 로마 카톨릭의 지도자들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었기 때문에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뒤를 이어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지지하며 나오자 교황이 그를 파문시킨 것이지 성서가 천동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천동설을 주장하고 지동설을 부인하는 구절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과학자들이 16세기까지 믿어오던, 지구가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있다. 욥기 26장 7절에 보면 욥은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에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지구가 어떤 것에 고정되어 태양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떠있는 것임을 정확히 묘사하고있는 말씀인 것이다. 뉴톤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기까지 어찌 인간의 지혜로 이 놀라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욥기 26장 10절에는 "수면에 경계(원)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고 기록함으로써 지구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둥근 모양임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잠언 8장 27절에도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원)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바다의 수평선이 원으로 되어 있다는 말씀은 지구가 둥근 모양으로 되어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지구의 모양뿐만 아니라 지구가 공중에 떠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나, 당시의 천동설로 인해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당시 지구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또 하나의 오류는 지구의 기둥에 대한 성경의 언급에 관한 것이다. 욥기 9장 6절은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을 흔들리며" 라고 말씀하고 있고, 사무엘상 2장 8절에는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인용하며 일부학자들은 성경이 지구가 기둥이나 지주 위에 놓여 있다는 히브리인들의 전설을 근거로 해서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성경 본문의 '기둥' 이란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암무드(ammud)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단어는 '기둥' 이란 뜻으로 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초' 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욥기 9장 6절은 '기둥'이 흔들린다는 표현이 아니라, 땅속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될 때 이 말씀은 이미 언급한 욥기 26장 7절의 "허공에 지구가 떠 있으며", 욥기 38장 7절의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는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지구의 기둥'에 관한 말씀들은 지구의 중심부에 대한 놀라운 정보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들이다. 현대 과학자들은 지표면 속에는 맨틀이 있고 그 속에는 외핵과 내핵이 있지만 정확히 어떤 물질로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지구 자장으로 미루어보아 자장을 만드는 니켈과 철로 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예레미야 31장 37절에는 이에 대해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모순들이 성서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과학의 영향을 받은 인간의 잘못된 해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과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로, 과학의 모든 이론은 가정에서 출발한 것으로 끊임없이 변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길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말씀)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 이처럼 자주 변해왔고 또 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겸손히 과학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기다리는 태도를 가져한다.

둘째로, 성경 자체를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올바른 성경관에 기초한 신앙서적 등을 참조하여 한 개인의 잘못된 경험과 편견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는지 않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때로는 지나간, 수정된 과학적 이론과 자료들에 의존함으로 인해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은 성령이시며 성도들의 교사되신 분 역시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성경과 과학 2 : 진화론의 영향과 성경의 과학적 증거들

이웅상 


1. 서론

성경과 과학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윤리, 도덕적으로는 위대한 책일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무엇인가 문제가 많은 책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세 때 카톨릭교회의 과학에 관한 부정적 태도가 큰 원인을 제공하였고, 오늘날에 와서는 학문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고 서로 건드리지 말자 하는 이원론적인 사고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즉 성경과 과학의 영역을 따로 구분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니며,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너무나 초과학적이어서 그 당시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과학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인들의 고집만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진화론의 영향 (1)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뒤진 책일까요? 아니면 과학이 성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요? 위의 두 이유보다도,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이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이런 기원관으로 보면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지성인들에게 창조자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전설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로 세뇌된 이들에게 영적인 세계란 하나의 허황된 꿈과 같은 얘기일 뿐이며, 이러한 영원한 세계를 갈망할 필요도 없게 된다. 하나님의 독생자도 예수 그리스도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진화론의 영향 (2)

또한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에 근거한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의 도덕관념을 흐리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존재에 불과하며, 결국 동물과 같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의 상태라고까지 미화하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옷 입기를 거부하는 나체주의자와 현재의 가정제도를 부인하는 동성연애자들이 바로 이러한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화론의 영향 (3)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이겨 교회를 나가고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교육을 통해선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너무 많은 자유 속에 부모님과 교회에 의해 강요되어 온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온 창조론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본적인 것에 확신이 생기면 그 후에 새로운 이론과 반론이 엄습해 올 때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성경의 과학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과학이 밝히기 수 백년 내지 수 천년 전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과학적 진리들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 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세기 17:10-14)” 창세기 17:10-14에는 하나님께 서 모든 남자아이는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아브라함도 이삭을 난지 팔일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창 21:4). 과연 할례의 과학적 이점은 무엇이며, 왜 팔일 만에 행하도록 하셨을까요? 

 

2. 성경의 과학적 증거들

혈액응고 과정

처음으로 혈액의 응고에 관한 지식은 1935년에 Dam박사에의해 Prothrombin이란 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상처를 입으면 혈소판에서 분비된 물질에 의해 응고효소인 트롬빈이란 물질이 Prothrombin의 활성화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물질은 섬유질의 전구물질인 피브리노겐을 피브린으로 활성화하여 함께 응고하여 상처나 부위의 출혈을 중지시키며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입니다. 이후에 Scanzillo박사는 생후 3일된 아이의 Prothrombin농도는 성인의 30%에 불과하나 생후 팔일에는 성인의 110%로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이후 바로 성인과 같은 수준을 평생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게 하셨는지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번잡한 할례를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셨을까요? 영적으로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영적뿐 만 아니라 할례는 신체에도 청결한 육체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의학적 이점이 밝혀졌습니다. 유대인 여성에게는 자궁경부암이 다른 민족에 비교해 8.5%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자궁경부암이 남성의 성기에 살고 있는 Mycobacterium smegmatis 라는 균이 전염되어 유발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즉 유대인 남성은 어려서 할례를 받기 때문에 성기에 이 균이 많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멘델의 법칙

멘델은 1866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성의 법칙, 분리의 법칙이란 유전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놀라운 유전에 관한 창조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50년 가까이 사장해 놓았었습니다. 보라색의 꽂을 피는 완두와 흰색의 완두를 교배하면 제 1대에선 보라색만 나오는데 그 이유는 보라색이 우성이요 흰색이 열성이기 때문입니다.

 

분리의 법칙

그러나 열성인 흰색도 같은 열성인자와 만나면 발현이 되는데 제 2대에선 우성과 열성이 3:1로 분리되어 나온다는 원리입니다. 20세기에 와서야 겨우 이해되기 시작한 이 이론이 345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에 언급되어있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31:12] ”가라사대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 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창세기 31:12) 야곱은 외삼촌이요 장인인 라반이 자기에게 주기로 약속한 아롱진 양, 점있는 자, 검은 양을 열 번이나 약속을 변역하면서 지키지 않지만 하 나님께서 해치 못하게 하시고 빼앗아 주신 것을 꿈에 천사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창 30:32; 31:7-12). 위의 열성 형질을 갖고 있는 양을 따로 분리했지만 교배하 는 수양은 모두 얼룩 무늬있는 것, 점있는 것, 아롱진 것이 되도록 하여 이런 열성 형질의 양이 많이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하얀 양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열성인자를 하나님이 보시고 주로 교배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 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편 139:16) 생명을 창 조하시고 그 모든 형질을 기록하신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보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 입니다.

 

Preformed Theory

부모에게 있는 쌍가풀과 귀의 모양이 어떻게 자녀에게 유전될까요? 사람은 사람만 낳고 돼지는 돼지만 낳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로 16세기까지 과학자들은 정자 속에 이미 다 형성된 작은 아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해왔습니다. 이를 Preforemed theory 라고 합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범유전자설이 제기되면서 온 몸에 있는 세포가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에 특별한 정보를 주어 부모를 닮은 후손을 생산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DNA 구조

그러나 1953년에 DNA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모든 정보는 ATCG 라는 네 종류의 염기의 배열순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아미노산이 결정되고 이들의 순서에 따라 만들어진 단백질에 의해 여러 형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단백질 생성순서

이 과정을 종합해 보면 DNA에 기록된 유전정보는 핵에서 정보RNA에 모든 정보를 전달하여 세포질에서 리보솜에 의해 단백질을 합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부모에게 있던 정보가 후손에게 DNA로 전달된 후 형질로 나타나게 되어 닮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39:1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이 말씀에서 장부 (원어로 케라요츠)는 신장을 의미하며 모태에서 나의 모든 장기를 조직하셨다는 이 말씀에서 16세기까지믿고 있던 Preformed theory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 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 말씀에 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모태에서 조직하시되 이미 기록된 정보대로 지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생물학이 밝힌대로 모든 정보는 DNA에 기록되어 있습 니다.

 

지구

이제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구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듯이 지구는 둥글게 생겼으며 허공에 떠서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 과학이 이러한 사실을 언제부터 이해하기 시작했을까요?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지구는 평평하며, 태양이 지구주위를 도는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둥글며,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었지요. 이 진리를 뉴튼이 17-8세기에 두 물체는 질량의 곱에 비례하며,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작용한다는 중력의 법칙으로 훌륭히 설명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과연 지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혹시 천동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사야 40:21-22]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 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여기서 '땅 위 궁창' 할 때의 궁창은 원형의 모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은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궁창은 (잠언 9:27)에도 말 씀하고 있다. 또한 (욥기 26:10)에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계라는 말의 의미가 역시 원이라는 뜻입니다.

[욥기 26:7-8]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물을 빽빽 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18세기에 와서야 정확히 이해한 지구가 허공에 떠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공간에 다시며'하는 말은 허공에 띄워 놓으셨다는 말로 NIV영어 성경은 이 의미를 'suspends the earth over nothing'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공식은 성경에 없지만, 지구에 대한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이것을 히브리서 1:3은 만물을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다고 표현해 주고 있을 뿐입니다.

 

공기의 무게 발견

욥기 28:25절에 보시면 ”바람(공기)의 경중을 정하시며, 물을 되어 분량을 정하시며” 등등 많은 놀라운 기록이 있습니다. 물리, 화학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중에 공기도 무게가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공기에 무슨 무게가 있겠나?”하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수 천년이 지나 1640년에 이탈리아 과학자 토리첼리 박사가 공기의 무게(압력)을 재는 기계를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압력계라고 하지요. 그래서 재어 보았더니 1기압이 수은으로 치면 760mmHg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토리첼리 박사가 이 단위를 자기 이름을 붙여 torr(토르)라고 하였습니다. 1600년대에 알게 된 사실을 성경은 이미 수 천년 전에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그 당시의 과학보다 성경이 훨씬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기의 순환

17세기에 하틀리는 대기가 적도에서 상승한 기단이 양극으로 이동한다는 설을 주장하여 대기가 순환한다는 학설을 처음 주장했습니다. 이어 19세기에 코리올리와 페렐을 통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의 반대 방향으로 휘어지는 대기의 움직임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전도서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이 말씀은 이러한 대기의 순환을 이미 말씀하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공기만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물도 순환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이 말씀에서 언급하고 있는 물이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로의 발견

시편 8편 8절에 보면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바다에는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해양학의 아버지 마태 마우리 박사라는 신앙이 좋은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병에 걸려 장기간 누워있을 때, 그의 아들이 성경을 읽어 드리곤 했는데, 마우리 박사는 이 시편 구절을 듣다가 큰 충격을 받고 영감을 받아서 '내가 해양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해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런데 성경이 그렇게 말을 하니, 병이 나으면 한 번 조사해 보아야 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이 낫자 바다에 가서 연구를 한 끝에 세계 최초로 해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해양지도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마우리 박사의 고향인 미국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 시에는 마우리 박사의 묘가 있는데, 거기에는 기념비문이 있습니다. 그 비문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해양학의 아버지 마태 마우리는 시편 8편 8절을 읽고 해로가 있음을 깨달아 최초의 해양지도를 만들었다.' 성경이 비과학적이고 무식한 책이 아닙니다. 앞서가는 과학자를 더 앞서가게 하는, 그 시대로 보아서는 초과학적인 책임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되는 것입니다.

 

바다밑 샘의 발견

욥기 38장 16절에 보시면 ”네가 바다근원에 들어갔었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바다근원'이란 영어성경으로 보시면 'springs of the see' 즉, 바다 밑에 있는 샘 이라는 뜻입니다. 바다 밑에 샘이 있다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바다가 통째로 물인데 그 밑에 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했는데요, 1960년에 sound navigation ranging(SON) 연구에 의해 바다 속에 샘물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조금 세월이 지나 1973년에 심해 잠수함을 만듦으로서 바다 속에 샘이 있음을 촬영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불과 20여년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몇 천년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 명의 하와

성경은 인류의 기원, 유전학에 대해서도 놀라운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흔히 인류는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등 여러 가지 문명으로 각각 시작하였고, 모든 것이 따로따로 시작하였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미국 와싱턴 대학에 과학자들이 인류의 조상이 과연 각각 발생하고 문명이 각각 시작하였을까 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유전공학적인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바로 미토콘드리아 때문입니다. 이 그림은 사람의 세포입니다. 세포 속에는 핵이 있고, 핵 안에는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유전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DNA 라는 형태로 들어 있는데, 핵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핵 바깥에 그러니까 세포질 내에 에너지 만드는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안에도 독자적인 DNA 가 따로 있습니다. mitocondrial DNA 라고 하는데요, 그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해서 인류의 조상을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처음 만들어질 때 모든 것이 엄마 아빠가 반반씩 기여를 하는데 미토콘드리아만은 엄마에게서만 받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 만드는데는 엄마의 역할이 더 크다 할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이 미토콘드리아의 특징을 조사해 올라가면 모계혈통을 조사해 올라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어디서 왔을까? 하는 것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여기 보시면 여러 사람의 DNA를 받아 가지고, 특수한 제한 효소들을 이용해 잘라 가지고 각 DNA의 특징들을 비교해 보고 있는 광경입니다. 염색된 DNA가 300nm 정도 되는 자외선을 받아서 분홍색의 형광을 발하게 되어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흑인이건, 동양인이건, 백인이건 관계없이 모든 인류의 여자 조상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하는 것을 미토콘드리아 DNA 조사를 통해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대단한 발견이라 하여 연구자들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와싱턴 주립대학에 많은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시상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그곳에 모인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농담 겸 칭찬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만 보았으면 될 걸…' DNA를 뽑아 많은 고생 끝에 발견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모든 여자의 조상은 한 사람이다.'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성경에 그대로 쓰여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0절에 보시면 '아담이 그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으니 하와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되었음이더라' 모든 사람들은 하와의 자손입니다. 그러다가 인류는 노아의 홍수 때 다 죽고 노아의 아내와 그 세 며느리로부터 오게 된 것인데, 이들도 결국은 하와의 자손이지요. 이렇게 성경은 예전부터 하와는 한명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끼의 되새김질

성경은 식생활에 대해서도 놀라운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 11장에 식생활과 건강에 대해서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동물에 대해서도 놀라운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6절에 보시면 광야생활을 하던 유대백성들이 토끼를 보더니 먹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겠지요. 모세는 하나님의 응답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먹지 마라, 왜냐하면 되새김질을 해야 하고, 발굽이 갈라진 동물 즉 유재류 동물이라야 먹기에 좋은 동물이다. 그런데 토끼는 되새김질은 하기 때문에 합격이지만, 발굽은 안 갈라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하다. 그래서 먹지 마라'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토끼는 동물학계에서 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토끼가 새김질을 한다고 하셨거든요. 먹느냐 마느냐 하는 적나라한 순간에 이 부분을 다르게 영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큰일 난 겁니다. 모든 과학자들과 모든 농부들이 토끼는 새김질 안 해요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토끼가 새김질을 한다고 하였으니까요. 어떡하지요? 그래서 톰슨 성경에서는 주석을 달 때, "토끼는 새김질을 안 하는데, 평소에 입을 오물오물하니까, 모세가 오해하였을 것이다." 한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가 헷갈릴 사람이 아닙니다. 독일의 프랑크프르트의 유명한 동물학자인 그리지맥 박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프랑크프르트 동물원 원장도 하시고요, 유명한 동물학자인데, 이 분이 신앙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토끼 때문에 큰 일 났네, 하다가 성경에서 말씀하셨으니까, 말씀을 신뢰하고, 내가 직접 연구해 보고, 결론을 내리자 한 것입니다.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연구하고 관찰을 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먹이를 주고 옆에 앉았을 때는 절대 되새김질을 안 하던 토끼들이, 모든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 잠이 든 시간인 밤 12시에서 새벽 3시 사이에 캄캄한 토끼굴에서 혼자 몰래 되새김질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되새김질에는 특수한 물질이 필요한데, 그것이 토끼똥입니다. 토끼는 두 가지 똥을 누는데, 하나는 진짜 똥이고요, 다른 하나는 되새김질에 필요한 특수 약품입니다. 그래서 토끼 깨끗하게 키운다고 똥을 다 치워버리면 영양결핍으로 토끼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소화불량으로 죽지요. 만일 성경이 말하지 않았다면, 모두들 토끼가 되새김질을 하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토끼는 얼마나 억울했겠습니까?

*참조 :  <사이언스> 토끼는 되새김질 반추동물인가? (2019. 8. 2. 모닝선데이)

http://www.morningsunday.com/sub_read.html?uid=18024


3. 결론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과 과학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갈등의 관계가 아니며, 이런 관계는 잘못된 과학관으로 인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성경은 과학에 비교해 뒤진 책일까요? 아니면 과학이 성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요? 성경이 너무나 초과학적이어서 그 당시 과학이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과학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부분으로서 성경과 과학은 자연스럽게 잘 화합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섭리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인들의 고집만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과학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 것은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마치 성경이 비과학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말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진화론적 생명의 기원관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그 원인인 것입니다. 이런 기원관으로 보면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지성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전설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됩니다.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로 세뇌된 이들에게 영적인 세계란 하나의 허황된 꿈과 같은 얘기일 뿐이며, 이러한 영원한 세계를 갈망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도 예수 그리스도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또한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사고에 근거한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의 도덕관념을 흐리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진화된 존재에 불과하며, 결국 동물과 같은 모든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까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교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는지 모릅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교회를 나가고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 교육을 통해선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너무 많은 자유 속에 부모님과 교회에 의해 강요되어 온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온 창조론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본적인 것에 확신이 생기면 그 후에 새로운 이론과 반론이 엄습해 올 때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이 이와 같은 시작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는 지금까지 성경과 과학에 대해 함께 다루어 보있습니다. 기존의 고정관념들이 많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오늘 성경과 과학에 대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교육원교재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현대 과학이 밝힌 지구의 공기

심영기 


      성경의 저자는 자연과 자연 속의 현상들에 대해 귀중한 정보를 매우 많이 제공해주고 있다. 물론 그 당시 그들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현대 과학 용어와 정확하게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을 넘어선 과학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바로 이 성경의 저자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한 여러 과학적 표현 가운데 현대 과학이 밝힌 지구의 공기, 산, 물의 신비에 대해 초점을 맞춰 보고자 한다. 

 

천둥 번개가 비료를 만든다 

지금껏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의 어느 천체에도 지구와 같이 다양한 공기 성분이 풍부하게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지구와 가장 유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화성에는 탄산가스가 95%를 차지하고, 질소는 2.3%, 아르곤이 1.6%이고, 산소는 불과 0.2%밖에 없다. 더욱이 기압은 지구의 0.6% 밖에 안되는 4.6토르(torrs)에 머물러(지구는 760 torrs),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구에는 질소가 78%, 산소가 21%, 아르곤이 0.9%, 그리고 탄산가스는 0.03%를 차지하고 있어, 우주 내에 알려진 어떠한 천체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공기의 조성을 갖고 있다. 만일 이 지구가 다른 천체와 같은 공기 조성을 갖추고 있다면 어떠한 생명체도 지구상에서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 신비한 것은 풍부한 질소라도 공기 중에 있을 때에는 생물에게 아무 쓸모가 없으나, 토양 속의 뿌리혹 박테리아나 천둥 번개에 의해 유용한 질소 성분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공기로부터 직접 취할 수 없는 이 질소를 이 작은 박테리아가 도와줌으로 풍성하게 생물이 번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질소는 한 여름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 벼락으로 산소와 결합하여 식물에 유용한 산화 질소를 일년에 약 1억 톤씩 토양에 공급하고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여름에 천둥이 자주 치면 그 해에 풍년이 들것이라고 말했던 것은 상당히 과학적인 말이다. 그리고 지형상 질소나 비료 성분이 전혀 없는 산꼭대기 같은 곳에서도 식물이 자라는 이유도 바로 이 천둥 번개의 역할 때문이다. 성경의 욥기에는 '그가 번개 빛으로 자기의 사면에 두르시며 바다 밑도 가리우시며 이런 것들로 만민을 징벌하시며 이런 것들로 식물을 풍비히 주시느니라”(욥 36:30-31)는 말씀이 기록되어있다. 

만일 질소가 현재 공기중에 있는 것처럼 불활성인 기체가 아니었다면, 지구는 이미 오래 전에 천재지변을 만나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로 공기중의 분자상태의 질소는 그 열역학적 관계를 살펴보면 훨씬 더 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단 하나의 기체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만일 극히 작은 실수가 있었다면, 이 지구는 삭막한 사막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화학자시다. 그분이 하신 일은 하나도 불완전한 것이 없다. 하나님의 설계에 의해 온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증거는 도처에 가득 쌓여 있다.

 

운석들을 태워 부숴버리는 공기 

공기는 끊임없이 이 지구로 떨어지는 수많은 운석으로부터 지상의 생명체들을 보호해준다. 운석은 대기층을 통과해 내려오는 동안 거의 대부분 이 땅에 도달하기 전에 다 타버리기 때문이다. 적당한 분량만큼의 산소가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이 땅 껍질은 쏟아지는 돌덩어리의 세례를 받아 달 표면 같이 그 심한 충격으로 온통 흉측하게 패여 버렸을 것이다. 

또한 대기는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유해한 자외선도 막아 이 땅 위의 생명체들을 보호해주고 있다.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치명적인 여덟 가지의 살인적인 광선을 받고 있는데 신비스럽게도 지상 약 60km 상공에 얇게 펼쳐져 있는 오존이라는 물질층을 통해 보호를 받고 있다. 압축시키면 0.3㎝ 밖에 안 되는 이 오존층이 없다면, 지상의 생물은 이 살인 광선들에 의해 멸절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오존의 존재는 매우 특이한 것으로 신비에 가깝다. 사실 자외선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생체에 매우 유해한 긴 파장의 자외선은 거의 대부분 오존에 의해 흡수되어 버린다. 만일 이 자외선이 지상에 쏟아지면 모두가 장님이 되고 생명체는 멸망되고 만다. 한편 짧은 파장의 자외선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 오존층이 너무 두꺼워 단파장의 자외선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면 인류는 모두 곱사병에 걸려 죽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단파장의 자외선은 우리 몸의 생리 활동에 필수적인 비타민 D 등 유용한 생리활성 물질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기는 지구를 추위와 더위로부터 적당하게 보호해주는 완벽한 열 차단물질 역할을 수행해준다. 이 때문에 찌는 듯한 더위와 얼음장같은 추위가 지구를 번갈아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햇빛이 지상에 닿으면 그 빛은 복사열이라는 형태로 일부 바뀌어 열로 바뀌게 되는데, 이 열은 공기에 의해 지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적당히 갇혀 있게 된다. 그로 말미암아 대기권 내에서 열이 분산되어, 지구 전체의 연평균 기온은 27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대기는 매우 훌륭한 열저장 장치이면서도 열분산 장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기가 없는 달에서는 햇빛을 받는 낮에는 400여도 까지 올라가고, 반대로 밤이 되면 영하 100여도 이하까지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산의 경사가 강물을 흐르게 한다.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 도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 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 즉 물이 흐르는 도다” (시147:15~18)

웅장한 자연의 신비스런 경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산과 강이다. 이 강산에 맑은 물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미 적막하기 그지없이 진정한 산과 강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흰색 뭉게구름이 걸쳐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와 같다. 따로따로 보면 그저 보기 좋다는 느낌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의 신비한 순환적 상호관계를 들여다보고 나면 우리는 그 신비한 상호 보완 작용에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깨끗한 물의 근원은 대부분이 높은 산에서 시작된다. 산이 없다면 강이 있을 수 없다. 이 강의 적당한 경사 때문에 물은 흘러가며 공기중의 산소를 흠뻑 머금게 하여 바다로 바다로 향하게 된다. 충분한 양의 산소 덕분에 물 속에서는 물고기들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습기를 가득 포함한 구름이 높은 산의 차가운 면을 대하게 되면 여지없이 그 수분은 응축되어 눈이나 비로 그 물을 다시 토해(?)내면서 구름으로서의 운명을 마치게 된다. 그런데 이 구름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과 그 양이 적당하게 지구를 덮고 있어 지구 표면의 온도를 조절해주는 것이다. 같은 태양계에 있더라도 금성에는 구름이 빽빽하고 깊게 드리워져 있어, 어떠한 생명체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 지구는 하늘의 반 정도를 구름이 덮고 있어 태양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조절해 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높은 산에 내리는 수분은 대부분 눈이나 얼음으로 일단 보관되어 있다가 여름이 되면서 서서히 조금씩 녹아 내린다. 그래서 일년 내내 작물이 적당히 살아 갈 수 있는 물을 제공해주게 된다. 그렇게 않다면 내리는 비는 그때마다 홍수가 될 것이다, 

이들 강, 산, 구름, 그리고 물의 신비한 상호 순환적 관계는 놀라운 설계자가 그 배후에서 이들을 신비스럽게 조정하여 지상의 아름다운 생물들이 완벽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알프스 산맥, 히말라야 산맥, 안데스 산맥 등 대자연의 거대한 모습 속에서 깨끗한 물을 저장해놓았다가 적절하게 자연을 생기있게 해주는 그 갸륵한 정성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부족하면서도 잘못된 인간의 지혜가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한 결과로 최근 이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는 각종 자연 재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는 무언의 교훈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놀라운 솜씨를 다음과 같이 찬양하였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보았으랴” (사40:12)

 

출처 - 창조지

미디어위원회
2004-07-26

DNA와 할례에 관한 성경의 조명

이웅상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통해 볼 때에도 성경은 여전히 정확한 과학적 사실의 바탕 위에 기록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진화론 일색의 교육에 의해 이미 세뇌되어버렸고, 또한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 진화론 편에 서있게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도, 여전히 진화론을 옹호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창조를 부르짖고 있으며, 대학교재에 이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창조론을 삽입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세계 최대의 창조과학교육관 및 연구소를 건립하게 위한 준비도 진행중이라니, 한국이 마지막 선교의 중심 기지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딤후3:16, 벧후1:20). 비록 현대과학이 주장하는 이론과 달라 보일지라도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만일 성경 내용 중 과학의 사실과 모순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있다면, 성경의 본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 내용을 성령의 새로운 조명으로 거듭 연구해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도 모순점을 해결하지 못할 때는 과학의 이론이 어떤 가설을 가지고 시작했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 가설을 증명하고 있는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에서 의해 진화론의 진상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유물론적 가설로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 이와 관련한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문제 해결이 어려울 때에는 진리가 밝혀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후대에 때가 되면 우리가 말씀을 잘못 이해했던가, 아니면 과학이 잘못되었든가 하는 것이 공정하게 밝혀질 것이다.

이제 현재까지의 생물학의 발달에 의해 겨우 이해하고 밝혀내게 된 성경속의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몇 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시편 139편에 보면 사람의 태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139:13~16).

이 말씀의 깊은 과학적 진리는 당시의 과학으로는 제대로 이해하거나 밝혀낼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18세기까지 생물학자들은 정자 속에 이미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한 작은 아이가 들어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즉 크기만 현미경을 통해야 보일 정도로 작을 뿐 처음부터 이미 분화된 기관들을 가진 아이가 정자 속에 들어있어 난자와 결합하는 순간 양분을 공급받아 외형적으로만 성장해 가는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시편 139편 13절에 "하나님께서 내 장부를 지으셨다"고 했는데, 여기서 '장부'란 말은 히브리어로 '캘라요쓰' 즉 신장을 뜻한다. 이 말씀은 이미 만들어진 신장이 모태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조직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더욱 세밀한 표현이 16절에 기록되어 있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란 말씀에서 '형질'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고렘' 즉 태아 또는 배에 해당되는 말로 원래 "형체를 갖기 전의 것(unformed mass)" 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16절의 말씀 전체를 히브리어 성경에서 직역을 하면 다음과 같다. "주의 눈이 내 형체가 생기기 전에 보셨으며, 아직 그중 하나도 형성되지 않았을 때에 정한 날에 형성될 나의 모든 부분들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최신의 분자생물학적인 관찰인가. 1880년대에 와서야 겨우 정자와 난자에 있는 물질이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한 모든 것이며, 이 물질이 바로 염색체임을 밝혀내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부터 70 여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 물질의 근원이 DNA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형체를 갖기 전의 모든 유전정보를 가지고, 이미 정해진 부분들이 정해진 시간에 형성됨으로 인해 마침내 한 생명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성례의 하나로만 알았던 할례(남아의 생식기 껍질의 끝을 조금 베어내는 풍습으로 지금도 유대교에서는 종교적 의식으로 엄격히 지켜짐)에 관해 현대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에 살펴보기로 한다.

창세기 17장 12절에는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창세기의 말씀을 기록한 때인 BC 1450년경에 어찌 난 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확한 과학적 근거 위에 비롯된 것임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193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혈액을 응고시켜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K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비타민 K가 결핍되면 혈액응고에 꼭 필요한 프로트롬빈이 부족하게 되어, 결국 혈액이 응고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혈액응고에 관한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오늘날에 와서야 8일만에 할례를 주도록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혈액응고에 필수요소인 프로트롬빈의 양은 생후 3일이 되면 성인의 30%에 달하고, 그 이후 계속 증가해서 생후 8일째에는 성인의 110%를 유지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비타민 K도 생후 8일이 될 때 최고의 농도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기에 가장 좋은 때는 난 지 8일째 되는 날인 것이다. 만일 고통이 덜할 것으로 생각해 아이를 낳자마자 할례를 행한다면 혈액응고가 어려워 참으로 위험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또한 할례가 건강에도 좋다는 것은 현대의학에 의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기도 하다. 할례를 받음으로 남자의 생식기에 기생하는 박테리아의 서식을 막을 수 있고, 나아가선 이 균이 여자에게 옮겨가 발병되는 여자의 자궁경부암을 방지할 수도 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지혜로 인간의 모든 기관을 설계하시고 호흡 하나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과학이 이를 밝히기 전에 이미 말씀을 통해 명령하고 계신 것이다.

인간의 과학이 결코 하나님을 위협할 수 없다. 잠깐 동안은 모순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명하게 되는 날은 오고야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거룩한 진리 앞에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이 바탕 위에서 성경에 약속된 모든 사실들을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고 주장함으로, 능력 있는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출처 - 창조지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홍수 이후 단축된 인간의 수명

김명현 


       한 학생이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아담이 930살이나 살았다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리고 이 세상이 6일만에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 맞지가 않는대요. 지구과학 시간에는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으로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 차이가 나잖아요. 그리고 또, 아담은 원시인이었나요? 아니면 우주인인가요?" 이럴 때에 무어라고 대답해주어야 할까? 


이 경우 학생들에게 "성경은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니까 무조건 믿어야한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학생들은 성경에 대한 신뢰와 흥미를 잃어버리고 창세기의 기록에 대해 무관심해져버리며 청년의 때를 지나기까지 창조에 대한 믿음의 확증을 갖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 성경을 창세기부터 읽어나가다 보면 믿어지지 않는 기록들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아담의 장수(長壽)이다. 아담으로부터 그 10대 후손인 노아까지의 수명이 대략 900세 이상으로서, 아담은 930세이며, 최장수를 기록한 므두셀라는 969세, 노아는 950세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기껏해야 130년 정도가 최고 수명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과거에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은 창세기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록을 믿을 수 없어서 창세기의 기록을 실제적인 역사의 기록이 아닌 설화나 전설 정도로 여기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설명 중의 하나가 노아 홍수 이전의 나이 계산법이 오늘날과 달랐다는 주장이다.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1년에 10살 정도씩 나이를 먹었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예를 들어 아담의 나이 930세가 실제로는 93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그럴듯한 풀이로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이 오늘날과 다른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여서 그것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억지로 해석하는 것은 더 큰 혼란과 문제를 일으킨다. 아담이 93세 살았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일어나는 문제는 가인과 아벨 이후에 출생한 셋(Seth)이다. 창세기 5장3절에 "아담이 130세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라고 기록되어있다. 나이 계산법의 차이로 해석한다면 아담이 셋을 낳은 나이는 13세밖에 안 된다.


오늘날 13세에 아이를 낳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혹시 아담이 조숙하여서 13세에도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고 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아담의 4대 후손인 마할랄렐이다. 마할랄렐은 야렛을 65세에 낳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나이 계산법의 차이로 설명하려면 6살 반에 아들을 낳았었다고 믿어야 한다. 결국, 900세 이상의 수명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여 그럴듯한 이론으로 성경을 이해하려 하였지만, 그 결과는 더욱 비현실적인 상황을 믿어야 하게 된 것이다·


창세기에 나타난 인간의 수명변화를 기록된 그대로 살펴보면 아담의 10대 후손인 노아 때부터 수명이 급격히 감소된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지구상에 대홍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홍수 직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약 450세 정도로 홍수 전에 비해 반으로 줄어들었고, 벨렉의 때에 또 반으로(200여세) 줄어들었다. 그 후에도 수명은 점차 줄어들었고, 아브라함(175), 이삭(180), 야곱(147), 요셉(110) 그리고 출애굽 당시의 평균 수명(70~80)은 모세의 기도(시90:10)에 나타나 있으며, 오늘날의 수명과 비슷하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창조 후 1656년,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는 수명감소의 원인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며,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세상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구분 짓는 역사인 사건이었다. 대홍수로 인한 큰 변화 중의 하나가 창세기 1장 6~8절에 기록되어 있는 궁창(하늘)위의 물이다. 이것은 오늘날 하늘의 구름이나 안개라기 보다는 눈에 뵈지 않으면서 빛을 투과시키는 수증기였을 것이다.


하늘 위의 물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고안하신 매우 특별한 옷이었다. 그 첫 번째 역할은 빛을 선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지구에 들어오는 빛의 대부분은 태양으로부터 오는데 인간의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외에도 그보다 강한 자외선, 엑스선(X-ray), 감마선(우주선) 등이 있다. 이러한 빛들은 생명체 내의 세포들을 파괴시키는 빛으로서 그중 자외선은 피부노화의 원인이 되며, 결국 사람의 수명을 감소시킨다. 이와 반대로 약한 빛인 적외선, 원적외선,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등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원적외선은 생명체의 활성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채소나 고기 등의 음식물에 원적외선을 쏘이게 되면 싱싱하게 보존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 위의 물(수증기)층이 지구를 감싸고 있었을 때에는 강한 빛들은 이 물분자들에 의해 차단되므로, 지구 표면에는 수증기를 통과하는 약한 빛들 곧 가시광선, 원적외선 등만이 가득하게 된다. 즉, 생명체에 해로운 빛들은 걸러지고, 생명체의 활성을 높여주는 빛들이 충만하였던 환경이 바로 노아 홍수 이전의 지구환경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노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으므로, 모든 생명체가 오랜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아 때까지의 평균 수명이 900세 이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의 장수에 대하여 "아마도 그때 사람들은 꽤 지겨웠을 것이다. 100살도 되기 전부터 늙었을 텐데 주름살 투성이의 얼굴에 머리는 다 빠지고 이빨도 다 빠지고 허리는 구부러져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900년 동안을 살아야 했다니..."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해이다.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늙지 않으면서 젊음을 유지한 채로 천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던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신비하고 정교한 설계로 되어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25세 정도까지 성장을 해 놓고서 그 젊음을 단 몇 년도 유지하지 못하고 곧바로 늙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이 원래부터 젊음을 누리지도 못하고 곧바로 늙어죽도록 설계되어 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인간이 이토록 빨리 늙고 병들어서 죽게된 것은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인간의 원래 모습은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누리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죄악 가운데 태어난 우리들은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타락되고 피폐해진 상태에서 살게되었기 때문에 원래 하나님께서 누리게 하고자 하셨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채로 짧은 인생을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과는 너무나 달라진 세상이다. 하나님이 지으셨던 처음 세상은 바로 노아의 홍수 때에 철저하게 파괴되어 사라져버렸으며, 그 후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한 두 번째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홍수 이전의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좋았던 세상은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피조세계는 탄식 가운데에서 하루 속히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참조 : Did People Like Adam and Noah Really Live over 900 Years of Age?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06/04/did-people-live-over-900-years


출처 - 창조지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창세기에 기록된 멘델의 법칙

이웅상 


       오늘날 볼 수 있는 200만 종의 생물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물론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였으니(롬 1:28),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롬 1:22),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롬 1:25), 하나님의 창조물을 자연발생설로 설명하려고 노력해왔다. 즉 창조자 없이 저절로 생명이 발생될 수 있다는 학설을 주장해왔다.

마침내 19세기에 와서 파스퇴르에 의해 자연발생은 일어날 수 없으며, 생물이 존재해야만 생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물속생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파린이 제안한, 초기의 원시 지구에서 한번의 자연발생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가설로 인해 현재까지 자연발생에 의한 생명의 기원을 믿고 있다. 이렇게 해서 원시 지구에서 자연 발생된 최초의 생물은 진화에 의해 오늘날 200만 종이나 되는 생물로 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진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19세기까지의 생물학자들은 환경으로부터 얻은 획득형질을 사용했다. 환경에 의해 생물의 각 세포에 생긴 변이가 범유전자(pangenes)를 만들고, 이것이 혈액에 의해 생식세포로 운반되어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설명이다 (범생설, pangenesis). 이런 이론은 진화론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다윈에 의해 주장되었다. 즉 현대의 유전학이 밝혀낸 유전법칙과 유전인자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당시에는, 환경에 의해 생긴 변화가 후손에게 전달되어 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856년 멘델에 의해 현대 유전학의 기초가 되는 유전법칙들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유전현상은 환경에서 얻은 획득형질에 의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인자에 의해 이미 세포 속에 고정되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자주색 꽃을 가진 완두를 같은 자주색 꽃을 가진 완두와 교배할 때 흰색 꽃을 피우는 완두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자주색 꽃을 가진 완두에 흰색 꽃을 피우는 유전인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전인자는 열성으로 부모에게서는 우성인 자주색에 눌려 형질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이 놀라운 발견은 다윈의 진화론과 범생론에 의해 생물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190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드브리스, 베이트슨, 모르간 등의 학자들에 의해 인정을 받게 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수천 년이 걸려서 마침내 유전의 바른 원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보다 약 4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 과학적 진리를 꿈을 통해 보여주신 사실이 나타나 있다. (창세기 30~31장). 변화받기 전의 야곱이 가지고 있던 생각(멘델 이전의 모든 과학들이 믿고 있었던 획득형질의 유전)이 하나님에 의해 수정되는 과정을 보면 너무나 흥미롭고 신기하다.

외삼촌인 라반의 속임수로 14년 이상을 무료로 봉사해온 야곱은 처자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창 30:25). 그러나 라반이 야곱을 계속 붙들어놓기 위해 품삯을 야곱 스스로 정하도록 제의하자, 야곱은 야심에 가득찬 요청을 하게 된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떼로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내며, 염소 중에 점 있는 자와 아롱진 자를 가리어 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나면 나의 삯이 되리이다” (창 30:32).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탈취하고, 아버지를 속여 형 몰래 축복까지 가로챈 간교한 야곱이 이렇게 어리석은 제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개의 양은 흰색이며, 염소는 검거나 짙은 갈색이라는 사실을 야곱이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야곱은 오랫동안 라반의 양과 염소를 돌보아오면서 비록 흰 양과 검거나 갈색인 염소가 주류를 이룬다 하더라도 그들로부터 얼룩지고 아롱진 후손들이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양이 흰색이고 염소가 검은 색이지만, 특별한 환경 조성을 통해 변이를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더 간교한 라반은 야곱의 삯을 정한 후, 그 날로 야곱이 말한 무늬 있는 양과 염소는 모두 가려 자기의 아들들이 돌보게 하고 이들을 야곱이 돌보게 될 자신의 것과는 사흘 길이나 멀리 떼어놓았다.(창 30:35~36). 그냥 내버려두어도 무늬를 가진 변종이 생겨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젠 아예 변종을 모두 따로 분리시켜 제거해 놓았으니, 라반이 계속 야곱을 거저 부리게 될 것은 시간 문제일 것처럼 보였다.

한편 야곱은 또 야곱대로 꾀를 내고 있었다. 그는 양들이 새끼를 밸 때에 나무의 껍질을 벗겨 얼룩무늬를 내고 그것을 보면서 교미를 하게 하면 무늬가 있는 새끼를 낳게 된다고 믿고 있었다. 열성형질인 얼룩무늬가 태어날 수 있다는 놀라운 유전법칙을 관찰하긴 했지만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근본 원인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실제로 실험에 성공하여 지신의 가설이 옳은 줄 오해하게 된다. 무늬가 있는 나뭇가지를 보고 그 영상력으로 새끼를 밸 때 실제로 새끼들의 무늬가 영상을 닮아 얼룩진 것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에(창 30:37~39) 자신을 얻은 야곱은, 실한 양과 약한 양을 구분하여 실한 양은 무늬가 있는 나뭇가지를 보며 새끼를 배게 해 실하고 무늬가 있는 자신의 양을 낳게 하고, 약한 양은 가지를 두지 아니하여 약한 흰 양을 낳게 해 라반의 것이 되게 하는 데까지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이루어진 것임을 두 단계를 거쳐 야곱에게 가르쳐주신다.

첫 단계에서는 라반이 약속을 어기고 야곱이 정한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게 한다. 그때마다 인간의 조작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리만큼 정확하게 라반이 야곱의 소유로 정하는 것들이 태어나게 된다.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의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창 31:8).

두 번째 단계에선 꿈으로 직접 보여주신다. 라반이 정한 색깔의 새끼들이 나게 되는 것은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라반이 야곱에게 행한 모든 악한 행위를 보시고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며, 생물학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무늬 있는 숫양만이 교미하도록 하셨기 때문이었다(창 31:10~12). 라반이 모든 무늬 있는 양을 다 격리시켰지만, 흰 양중에 무늬를 내는 유전인자를 가진 숫양만이 교미하도록 하신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양떼를 탄 숫양은 모두 무늬 있는 것들로 꿈에 보여주신 것이다.

수천 년간 생물학자들이 믿어왔던 획득형질의 유전이 자신의 이권을 위해 간교한 꾀를 부렸던 야곱에 의해 관찰되고 실험으로 입증되는 듯 하였으나, 하나님의 지혜로 그 허실이 밝혀지고, 멘델보다 약 4000년이나 앞서 정확한 유전의 원리를 깨닫게 하심을 대하게 될 때,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인 성경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조 : 야곱의 아롱진 양과 염소 : 응용 유전학의 성경적 사례

https://creation.kr/BiblenScience/?idx=15728061&bmode=view

Jacob’s livestock, a biblical example of applied genetics

https://creation.com/jacobs-sheep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하나님께서 지구를 아무 것에도 매달지 않으셨다.

차성도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자신을 스스로 나타내시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 계시인 성경과 일반 계시인 피조세계를 허락하셨다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창조주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피조세계와 이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일치해야 한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성경의 증거는 확실하기 때문에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여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20). 피조세계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표현되어 있으므로, 그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두 가지 계시를 통해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신앙)뿐만 아니라, 사고하고 연구할 수 있는 혼(이성)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뿐 아니라, 이성에 의한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셨다. 역사로 기록된 성경과 과학으로 읽을 수 있는 피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므로, 신앙과 과학을 별개의 것이 아니며, 신앙과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통하여 연결된다. 

피조세계를 과학적 방법을 통해 편견 없이 관찰하고 연구할 때, 피조세계에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을 과학이란 객관적 방법만으로는 모두 알 수 없으므로, 특수 계시로 주어진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과 피조세계를 바로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피조세계 가운데 우리가 거하고 있는 지구의 상태와 모습에 관한 성경은 어떤 기록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학의 설명과 일치하는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지구를 아무 것에도 매달지 않으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예로부터 의문의 대상이었다. 현대적 과학의 연구가 있게 전까지는 지구가 아틀라스 신의 어깨나 우주 코끼리의 등위에 올려져 무엇인가에 고정되어 있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으며, 별과 행성들이 고정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는 이 천동설은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지구의 회전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심한 반대를 받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뉴톤의 연구 결과와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 일치하여 지동설이 인정되기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유명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도 이런 싸움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태양과 지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인력이 지구를 붙잡고 있어 지구가 우주공간에 떠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늘의 별이나 태양에 비교하면 지구는 하나의 작은 행성에 불과하지만, 질량은 약 6×1024Kg이고, 평균 반경은 약 6×106 m나 된다. 이와 같이 무겁고 큰 지구가 공간에 떠 있다는 것을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20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도 만유인력이라는 물리학적 이해가 없이는 올바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코페르니쿠스가 뉴톤의 설명이 나오기 수천년 전에 기록된 욥기를 통해 이미 지구가 공간에 달려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26:7). ”He stretches out the north over empty space; He hangs the earth on nothing” (KJV). 개역성경에도 지구가 공간에 달려 있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흠정역(KJV, King James Version)에서는 ”하나님께서 지구를 아무 것에도 매달지 않으셨다” 라는 표현을 통해 지구가 공간에 그냥 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질량이 있는 물체간에는 각 물체의 질량 곱에 비례하는 힘이 작용하는지 힘에 대하여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을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으며, 모든 법칙을 성실히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물리법칙이 우주의 어떤 곳에서 단 1초라도 유지되지 않는다면, 온 우주의 질서는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둥근 지구 위에 앉으신 하나님”

로마인들은 지구를 주위가 바다로 둘려있는 평평한 판이라고 생각했기에 먼바다로 항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우리들은 이렇게 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구가 우리들의 일반적인 인지 범위보다 매우 크기 때문에 일상적인 경험에 의해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인공위성이나 달에서 촬영한 영롱한 구 모양의 지구 사진이 새삼스레 신선한 충격을 준다. 불과 수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기록된 성경을 본다면, 비상식적(만유인력에 대한 이해 없이는 지구 아래편의 사람들은 떨어져 버릴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에) 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지구가 공간에 달려 있다고 설명해 준 욥기는 우리에게 지구의 모습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욥26:10) ”He drew a circular horizon on the face of the water, at the boundary of light and darkness”(KJV). 개역성경에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다고 만 표현되어있고, 어떤 모양의 수면이 그어졌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흠정역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둥근 모양의 수평선을 그으셨다” 라는 표현을 통해 지구의 기하학적인 형태, 특히 해수면과 관련하여 지구가 둥근 원의 모양을 갖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지구의 둥근 모습에 관하여는 잠언과 이사야서에도 기록되어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잠 9:27). ”When He prepared the heavens, I was there, When He dew a circle on the face of the deep” (KJV).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사 40:22). ”It is He who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 (KJV). 흠정역의 표현에 의하면, 잠언에서 ”하나님께서 해면을 원으로 그으셨다” 로 되어있어 지구가 원모양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둥글다는 것이 이사야서에는 ”둥근 지구 위에 앉으신 하나님” 이라는 표현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여기서 'circle'로 표현된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khug'으로 구상(球狀)을 나타낸다.

 

성경 속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 

성경의 기록과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지구의 상태와 모습을 통하여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바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엿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특별계시인 셩경과 일반 계시인 피조세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드려내셨는데, 바로 우리에게 직접 찾아온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경의 기록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계시-광대한 우주 전체와 방대한 성경 기록-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려고 주어졌으며, 이것을 믿음으로 생명을 누리길 원하신다. 과학은 단지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일부분을 알 수 있게 하지만, 성경은 피조세계뿐 아니라 영적 세계의 비밀을 알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모든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

 

출처 - 창조지

장대식
2004-07-26

성경이 증거하는 우주의 구조


성경이 증거하는 우주의 구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 하나이다” (느 9:6). 

 

(1) '하늘들' (the heavens) 이란 말의 의미 

한글 개역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에 '천지'(天地)로 번역된 단어의 히브리어 성경 원래의 의미는 '하늘들과 땅' 입니다. 그래서 영문 번역에서는 대부분(NKJV, NIV, NRSV, NASB, GNB, LB 등) '하늘들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땅 은 지구(地球)라고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하늘들'(the heavens)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의 성경 주석에서는 이 단어에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혹 설명을 첨가한 주석에서도 하늘을 복수로 쓴 것은 히브리인들의 다층천(多層天) 사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쉽게 간과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과학이 수많은 하늘들로 이루어진 대우주를 발견하게 된 이상 우리는 '하늘들'(the heavens)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분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하늘들'의 의미가 오늘날 대우주(大宇宙)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소우주(小宇宙)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탐색해 보기로 합니다. 

 

(2) 대우주(macrocosmos)의 구조 

우리는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구와 달과 태양을 포함한 우리가 밤하늘에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별들로 이루어진 우주는 은하계 우주(銀河系 宇宙 ; the Milky Way Galaxy)라 합니다. 이 은하계 우주에는 태양과 같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桓星)들이 약 1,000억 개 있다고 합니다. 우주 내에는 이 은하계 우주와 같은 우주가 다시 약 1,000억 개가 있는데 이러한 우주 하나 하나를 소우주(小宇宙 ; microcosmos)라 하고, 약 1,000억 개의 모든 소우주를 통틀어 대우주(大宇宙)라 합니다. 또, 대우주 내의 소우주들은 몇 십개 내지 몇 천개씩 모여서 집단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을 은하군 또는 은하단 이라 합니다.

소우주인 우리 은하계의 크기는 그 지름이 약 10만 광년(光年)이며, 대우주의 크기는 그 지름이 100억 광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자연과학적으로 알려진 하늘들의 구조는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작은 하늘들이 다시 수없이 많이 모여 큰 하늘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3) 대우주에 대한 성경의 증언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You alone are the Lord. You have made heaven, the heaven of heavens, with all their host, the earth and all thing on it, the sea and all that in them, and You preserve them all. The host of heavens worship You ; KJV)” (느 9:6).

우리는 이상의 말씀의 영문 중에서 밑줄친 부분의 의미를 유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 of heavens)”이란 말의 의미를 분석해 봅시다. 어떤 번역에서는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 of heavens)”을 ”가장 높은 하늘(the highest heaven; NIV)”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직 우주의 구조가 밝혀지지 않았을 때 의역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들의 하늘(the heaven of heavens)”을 만드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수많은 소우주로 이루어진 대우주를 만드셨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단순히 '하늘들'이 아니고 '하늘들의 하늘'이란 표현을 다층천(多層天)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뒷받침해주는 문맥은 개역 한글성경에 '일월 성신'으로 번역된 'with all their host'입니다. 여기서 'host' 는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주인이란 뜻이 아니고 무리, 즉 '별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늘들을 만드실 때 각각 그들의(their) '별 무리'도 함께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하늘들을 그들의 별 무리와 함께 만드셔서 하나의 큰 하늘을 이루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별 무리를 포함한 하늘들이라면 분명히 오늘날 소우주를 지칭하게 되는 것이며, 이들 소우주들로 이루어진 하늘이라면 분명히 대우주를 의미하게 됩니다. 


둘째로 개역 한글 성경에 ”모든 천군”으로 번역된 ”the host of heavens”는 ”하늘들의 무리”, 즉 ”하늘들의 별 무리”로 바로 잡아야만 합니다. 역시 'host'의 원 뜻은 '주인'이 아니고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대신 ”하늘의 별 무리들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까지 분석한 것을 정리해보면 느헤미야 9장 6절의 성경 말씀은 분명히 대우주의 구조를 증언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대우주의 구조를 시사해 주는 말씀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heaven and the heaven of heavens)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까” (왕상8:27, 대하 2:6). 이 말씀은 솔로몬왕이 건축하여 봉헌하는 성전이 대우주보다도 크신 하나님께 비하면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heaven and the heaven of heavens)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신 10:14)라고 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우주와 만물이 본래 하나님의 것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4) 결 론 

지금까지 성경 말씀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여 성경이 분명히 대우주의 구조를 증언하고 있는 이상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들(the heavens)도 대우주를 지칭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아니한 대우주가 따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우주의 구조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성경은 은하계 내에 있는 성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네가 밤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욥 38:31-33).

20세기에 들어와 전파 망원경이 발달됨으로써 많은 은하단이 발견되고 대우주의 구조가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에 비하면 성경에는 이미 2,400년(느헤미야)내지 3,400년(창세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기록해 두었으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로 떨어진 운석(隕石 : falling stone)의 기록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른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 여호와께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수 10:11). 

(1) 자연과학적 지식과 성경 번역 

신구약을 통털어 성경 원본은 거의 전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성경원본은 하나님(성령님)께서 주신 영감대로 기록이 되어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사본들 중에는 원본에 충실하지 않고 번역하는 사람들의 지식 수준에 따라 때로는 의역(意譯)으로 표현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성경 중 성경 전체적으로는 영문 번역의 'The Living Bible'이나 한글 번역의 '현대어 성경'이 그 대표적인 의역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글의 '공동번역 성서'도 의역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이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대부분의 성경에 의역된 부분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늘들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으로 번역 해야할 것을 한글 성경에서는 '천지' (한글 개역, 표준 새번역), '하늘과 땅' (공동 번역, 현대어 성경, 한글 킹 제임스), '우주' (현대인의 성경)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하늘들의 하늘' (the heaven of heavens:느 9:6)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하늘 위의 하늘 (공동 번역), '한없이 먼 하늘' (현대어 성경), '하늘' (현대인의 성경), '가장 높은 하늘' (the highest heaven; NIV)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원형의 지구 위에 앉으시나니 (He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 라고 번역해야 될 것을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한글개역), ”지구의 대기권에 앉아 계시는 이” (공동번역), ”땅 위 하늘 높이 앉아 계신 분이”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있는 보좌 위에 앉아 계셔서” (현대어 성경)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서로 번역이 다르게 된 것은 번역하는 시대의 지식 수준, 특별히 자연과학의 지식 수준과 번역하는 사람의 지식 수준에 따라 내용을 해석해서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잘못인 것입니다. 따라서 때로는 번역하는 사람이 그 내용을 알지 못하더라도 단어를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바람직한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자연과학적 진리에 대해서는 자연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일찍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던 난해한 내용이 하나씩 진리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에벤의 올바른 의미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른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 여호와께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The Lord cast down large hailstones from heaven on them as far as Azekah),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자(who died from the hailstone)가 더욱 많았더라”  (수 10:11).

이 이야기는 여호수와가 이끄는 이스라엘군이 기브온을 도우려고 아모리군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큰 덩이 우박들을 하늘로부터 던져내려 적군을 진멸하셨다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우박'(hailstone)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원문 '에벤'의 뜻은 돌, 바위, 추, 보석, 무게 등으로 우박이란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 번역에 보면 하나같이 '우박'으로 번역이 되었고, 다만 한글 킹 제임스 번역에만 앞에서는 '돌덩이', 뒤에서는 우박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문 번역에서도 모두 우박(hailstone)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당시에 아직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 (운석)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돌들은 당연히 우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늘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돌들(유성의 잔해)은 운석(隕石; meterite, falling stone)이라 하는데 이 운석의 정체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오늘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성경 원문에 기록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돌들(1arge stones )을 던져내리셨다” (수 10:11)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분석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에벤' 이란 단어에 대해 별 의심 없이 그대로 우박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박' 이라고 믿기 어려운 증거들이 있습니다.

1997년 10월 13일 밤 경기도 평택 지역에 굵은 호두알만한 우박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져서 채소 등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고 스레트 지붕에 구멍이 나며 강아지가 맞아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장한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맞아 죽을 만큼 위력이 큰 우박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에벤'이 우박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결정적인 증거는 그 용어 자체에 있습니다. 즉 '우박'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바라드' 입니다(출 9:18, 시18:12). 애굽왕 바로 앞에서의 우박 재앙(출 9:23) 및 욥기의 눈 곳간과 우박 창고(욥 38:22) 등 여러 곳에 '바라드'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아모리와의 전쟁 때 하나님께서 던져 내리신 것은 '바라드'(우박)가 아니고 '에벤'(돌)이었습니다. '에벤'에는 우박 (hail)이란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아모리군을 멸한 '큰덩이 우박들'(1arge hail stones)은 우박이 아니라, 돌로 되어 있는 운석(唱石; meterite, falling stone)의 무리임에 틀림이 없다 하겠습니다. 이 운석 무리의 최근 기록으로는 1908년에 퉁구스타 운석이 시베리아를 강타하였던 재앙이었는데 30Km내의 지역을 완전히 불태웠고, 8,000만 그루의 나무를 성냥개비처럼 쓰러뜨렸다고 합니다. 

 

(3) 결 론 

자연과학적 지식이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자연과학적인 지식으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숨겨진 많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남아있고 그 중 일부가 발견되어 인간들이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운석만 하더라도 성경은 벌써 약 3,200년 전에 그 존재를 기록해두고 있었지만, 자연과학은 19세기가 넘어서야 운석의 정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직도 성경에 있는 많은 자연과학적 비밀이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2/b12c5.htm

출처 - 창조지, 제 111호 [1998. 11~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4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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