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연대문제

David F. Coppedge
2018-06-25

농업의 기원은 진화론적 장구한 연대를 부정한다. 

: 30만 년 전에 출현한 현대 인류가 1만 년 전에 농업을 시작? 

(Origin of Agriculture Defies Evolutionary Long Ages)


        진화론자들은 왜 최근에 많은 지역들에서 갑자기 농업(agriculture)이 시작됐는지를 설명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콜로라도 대학의 패트릭 카바노(Patrick Kavanaugh)는 오래된 한 진화론적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 현생인류가 수십만 년 전부터 주변에 있었다면, 왜 농업은 단지 수천 년 전에 시작되었던 것인가? 콜로라도 대학의 보도 자료는 새로운 단서를 말하고 있었지만, 신뢰할만한 설명이 아니었다. 그들의 제안에 대해 살펴보자.


고대 라기스(Lachish) 아래의 포도밭

농업의 발명은 인류의 삶과 환경을 영원히 바꿔 놓았으며, 수천 년 동안에 적어도 12 개의 다른 장소들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농업은 왜 인류 역사의 특정 시기에 그 장소들에서 시작되었던 것일까?

콜로라도 주립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연구자들은 새로운 방법론적 접근 방법을 사용하여, 오래 논란되던 이론을 기각시키는 증거를 발견했는데, 농업은 환경 여건이 개선되고 인구 밀도가 높아졌을 때와 관계없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자연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ur, 2018. 6. 4) 지에 발표된 ”세계 인구 밀도에 대한 역추산은 농업의 기원을 가능하게 했던 동력을 밝혀낸다”라는 제목의 논문은 이러한 종류의 최초 연구로서, 인간의 농업 기원에 대한 기존 아이디어를 지지하기 위해서 시도됐으나, 오히려 연구자들은 오래 견지되어왔던 두 이론을 거의 지지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두 이론 중 하나는 절망적인 시기 동안, 환경적 상황이 악화되고 개체군의 밀도가 낮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음식을 얻기 위한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을 때, 농업은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났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론은 일반적인 패턴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농업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각 지역의 고유한 사회적 환경적 조건들과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CSU 자연 자원부의 부교수인 마이클 가빈(Michael Gavin)은 이 발견과 일반적인 방법론적 접근은 인류 역사의 중대한 사건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농업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우리와 똑같았던 현대 인간은 315,000년 전에 '고대 인류'로부터 출현하여, 다양한 기후와 서식지에서 살았었다는 것이다. 식물의 씨앗을 심으면 삶이 더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30만 년 동안 아무도 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가? 이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수 있을까?


보도 자료들과 논문은 이러한 질문을 회피하고 있었다. 저자들이 진화론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은 논문에서 자연선택과 인공선택을 언급하고 있다. (인공선택은 사실 지적설계의 한 형태이다).

농업은 하나의 중요한 혁신으로부터 시작됐다 : 식량 생산을 위한 식물과 동물의 가축화, 특히 농업은 야생 종의 경작을 포함하여, 낮은 수준의 식량 생산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경작은 수 세대에 걸쳐서, 몇몇 경우에서는 가축화된 종들에 자연선택과 인공선택을 식량 생산에 사용되기 전인, 수천 년 동안 계속되었다. 

진화론자들은 습관적으로 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을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있다. 기후가 좋아졌고, 인구 밀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뿅 하고, 순식간에 농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아무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고 말이다.



모든 언론 매체들은 장구한 진화론적 연대와 철저히 결합되어있는 진화 이야기만을 보도하고 있고, 독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그러한 이야기만을 들어야만 한다. 그것은 마치 메뉴판에서 생선튀김, 생선조림, 생선구이의 세 가지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샐러드, 불고기, 닭백숙은 먹을 수 없는 것인가? 왜 우리는 항상 진화 이야기만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성경적 연대기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증오 때문이다. 당신이 성경적 시간 틀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문제들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수십만 년 또는 수백만 년 동안 지구 행성에 살아온 것이 아니라, 단지 수천 년에 불과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똑똑했다. 그들은 도구를 만들고, 씨앗을 심는 것에 수백만 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농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에덴에서 쫓겨 난 후에,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지만,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후에는, 더 힘들게 일을 해야만 했다. 단지 한 두 세대 만에 그들은 도시를 건설했고, 금속을 사용했으며, 음악을 만들었다. 농업은 처음부터 낮 시간에 하던 일이었다. 노아의 가족은 방주에서 나온 후, 다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고, 포도를 경작했다.


진화론자들은 창세기 기록을 조롱한다. 조롱하도록 놔두라.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진화론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고대 인류의 지능이 매우 형편없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사냥을 하고, 이주를 하고, 도구를 제작하고, 불을 사용하고, 배를 만들었던 인간이, 30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씨앗을 심으면 식물이 자라난다는 것을 왜 알지 못했는가? 분명히 그들은 식물을 먹었고, 선호하던 과일과 채소에서 씨앗을 보았을 것이다. 분명히 그들은 땅에서 새싹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멍청해서 30만 년 동안 씨앗을 뿌리면 식물이 자라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주장이 합리적인 생각인가? 이러한 이야기를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흙을 조금 파서 씨앗을 파묻고, 물을 주면, 식물이 자라난다는 것을 아는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는가? 말의 등에 올라타면, 더 먼 거리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왜 아무도 못했는가? 농업은 한 사람의 일생 동안에도 생겨날 수 있었다.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후가 대략 1만 년 전까지 끔찍했었다고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풍이나 가뭄의 암울한 환경 속에서 작은 격리된 군집들로 모여 사냥을 하며 채집 생활을 했다고 믿어야만 한다. 대략 1만 년 전까지는 기후는 열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십만 년이 지난 후에, 기후가 좋아지면서, 인간 사회가 성장했고, 누군가가 농업을 생각해냈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우리의 조상을 절대적으로 멍청한 사람들로 만든다. 성경은 태초부터 인간은 완전히 인간이며, 영리하며, 창의적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유일한 장점은 세대를 계속해서 이어지는, 집단 학습과 그것을 기록으로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간은 단지 6,000년 만에, 오두막을 짓던 기술을 발전시켜, 우주선을 만들어 명왕성으로 날려 보냈다. 씨앗을 심으면 식물이 자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 이것보다 50배의 기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주장은 절대적으로 불합리하다!


인간 진화 이야기는 그들의 소위 고인류(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들이 본질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와 동일한 능력을, 예를 들어 도구를 만들고, 조절된 불을 사용하고, 장거리 이동을 하고, 배를 만들고, 장식품을 만들고, 장애아를 돌보고...등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더욱 악화된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의 신화적인 시간인 수십만 년 전에도 발견된다. 그러나 농업은 1만 년 전에 와서야 폭발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겠는가? 수십만 년 동안 어떠한 발전도 없었는가? 수십만 년 동안 동일한 식단이었는가? 매일 매일? 그들의 식사는 지겹지 않았을까? 매머드들을 사냥하고, 수십만 년 동안  그들의 잠자리는 동굴이었는가? 이러한 수십만 년의 수렵생활을 이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순간적으로 농업이 생겨났는가? 어떤 멍청했던 고대인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농부가 되었던 것일까? 와우, 이제 그들의 식단은 다양해졌고, 매일 매일이 잔치였는가?


왜 우리는 콜로라도 대학 과학자들의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진화 이야기를 과학 이야기로 들어야하는 것인가?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전 세계의 기자들에 의해서 보도되고, 인터넷으로 모든 곳으로 퍼져나간다. 우우, 와아! 모든 진화론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고 있다. 이러한 박수 치기를 멈추고,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근본주의적 창조론자로 낙인찍히고 조롱과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친애하는 지도자 다윈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개념을 믿는 유일한 동기는 다윈과 라이엘,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수십억 년이라는 장구한 연대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농업이 최근에 생겨났다는 증거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장구한 연대도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고인류가 수십만 년을 살아오다가, 갑자기 1만 년 전에 농사를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매우 불합리하다. 그들의 냄새나고, 상식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인,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보다 성경의 기록이 훨씬 더 신뢰할만한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06/origin-agriculture-defies-evolutionary-long-ages/

출처 - CEH, 2018. 6. 8.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56

참고 : 5701|6623|3867|3848|3834|3656|3431|3419|4000|4007|4053|4176|4266|4315|4372|4410|4432|4498|4499|4563|4593|4626|4650|4660|4682|4709|4720|4751|4763|4785|4812|4820|4824|4833|4842|4847|4880|5025|5051|5129|5157|5155|5180|5218|5334|5349|5375|5406|5455|5492|5496|5507|5525|5528|5730|5768|5792|5796|5802|5818|5819|5884|5918|5948|6052|6058|6190|6243|6250|6251|6253|6271|6292|6423|6425|6476|6521|6605|6606|6621|6691|6759|6792|6819|6820|6822


Ken Ham
2018-02-15

오래된 지구의 신 :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The god of an old Earth)


     성경은 질병, 피흘림, 폭력, 고통 등이 항상 삶의 한 부분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칼 세이건(Carl Sagan)은 늦게 쓴 책 ‘접촉(Contact)’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전지 전능 하시다면, 왜 그는 우주가 처음 시작될 때,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시작하지 않았는가? 왜 그는 지속적으로 수선하고, 한탄하는가? 아니,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성경의 하나님은 너절한 제작자(sloppy manufacturer) 라는 것이다. 그는 형편없는 디자이너이다. 그는 능력도 없어 보인다. 만약 어떠한 경쟁이 있었다면, 그는 파산하였을 것이다.” [1]

칼 세이건이 왜 성경의 하나님을 이같이 생각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는 쉽다. 세이건은 화석 기록이 보여주는 죽음, 돌연변이, 질병, 고통, 피흘림, 폭력 등이 수억 수천만 년의 지구 역사를 통해 일어났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한 오늘날에도 전 세계는 죽음, 돌연변이, 질병, 고통, 피흘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엉망진창인 삶과 죽음에 책임이 있는 신(god)이라면 누구라도 전능하고 전지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세이건의 이같은 견해는 오래된 지구를 믿는 그의 믿음과 일치한다. 수십억 년의 오래된 지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암석과 화석들이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서 생성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또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이 정확하게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였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2], 화석기록은 사람이 존재하기 이전에 (그래서 인간의 죄 이전에) 수억 년의 시간을 보여준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석기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일들[3], 뼈에 남아있는 암과 같은 질병, 폭력[4], 가시를 가진 식물[5] 등등의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세이건의 글은 그가 창세기와 어느 정도 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창세기를 읽고 생각했어야만 했던 것은, 6일 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하신 말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31) 라는 말씀이었다. 어떻게 암과 같은 질병이 있는 지구가 보시기에 심히 좋을 수 있었을까? 성경은 아담의 죄(창세기 3:18)로 인한 저주로 가시덤불이 생겨났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오래된 지구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속성을 확인한 사람은 세이건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자인 이반 드보르(Irven DeVor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온화한 우주가 존재했다는 조각난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무관심과 변덕만을 보게 된다. 어떤 종류의 신이 99.9%의 멸종률로 일을 하는가?” [6]

드보르는 화석기록은 하나의 거대한 멸종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수억 수천만 년에 걸쳐서 일어났다면, 인간의 죄에 대한 홍수 심판과 같은 이유도 없이 거대한 수의 생물체들이 파멸되어온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신이 그러한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겠는가? 오래된 지구의 신은 사랑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이 논쟁은 또한 찰스 다윈의 주요한 논쟁거리 중의 하나였다.[7]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질병, 고통, 죽음과 같은 끔찍한 과정들을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허락하실 수 있었겠는가? (수십억 년의) 오래된 지구를 믿는 크리스챤들은 오래된 지구의 신(god)에 대한 진정한 본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신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  


많은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크리스천 지도자들까지도, 지층 암석의 나이가 수억 수천만 년 되었다는 믿음을 받아들이고, 활발하게 전파하고 있기도 하다 (아래 관련자료 링크 43번의 ”창조과학자와 기독교과학자 : 양승훈 교수의 '두 근본주의의 충돌'을 읽고”를 보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t movement)[8]에 영향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대변자가 휴 로스(Hugh Ross)이다. 그는 그의 책 '창조와 시간(Creation and Tim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바와같이 그가 창조하신 자연계의 '무작위, 낭비, 비효율”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어느 정도 완성될 수 있었는가?” [9]

흥미롭게도 자유주의 신학 진영은 오래된 지구 개념을 지지하면서도 복음주의적 기독교에 남아 있으려는 모순성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최고 총감독(Episcopal Bishop)인 죤 셀비 스퐁(John Shelby Spong)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완벽하고 완성된 세계를 창조했었다는 가정으로 시작했다. 그곳에서 인간은 우주적 반란을 일으킴으로 추방되었다. 원죄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갈 때에 실재하는 것이었다. 다윈은 대신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창조를 가정했다. 교회가 수세기 동안 가르쳐온 것처럼 인간은 죄로 인해 완벽한 곳에서 추방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원죄로 인해 타락한 희생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신성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는 기독교의 기본 신화는 효력이 없게 되었다.” [10] 

”완벽하고 완성된 창조가 인간의 죄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다는 성경적 이야기는 신-다윈주의자들의 신화학이며, 후-다윈주의자들의 난센스이다.” [10]

진화론자인 스퐁은 분명히 수십억 년의 지구 역사를 믿고 있었다. 점진론적 창조론자와 같이, 그는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는 지층 암석들이 매우 오래된 연대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스퐁이나 점진론적 창조론자들은 죄(sin) 이전에 완벽한 세계를 가질 수 없다. 스퐁은 창세기에 기록된 타락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된 지구의 신은 소위 타락(Fall)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11]      


종교의 발전에 대한 템플턴 상의 수상자이며, 카렌톤 대학의 명예교수인 이안 바보르(Ian Barbour)는 최근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통적인 크리스챤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사망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더 이상 말해질 수 없다. 사망은 인간이 존재하기 오래 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12]


이것은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이 화석기록과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지구의 신은 창조의 한 부분으로서 사망을 사용했던 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망은 죄에 대한 벌이, 또는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가 (고전15:26) 될 수 없는 것이다.    


1994년, 영국 성공회 신부(Anglican Priest)인 톰 앰브로즈(Tom Ambrose)는 The Church of England Newspaper 에 개제한 한 글에서 오래된 지구의 신에 대한 진정한 본질을 간명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화석들은 인간(Homo sapiens)이 진화로 태어나기 이전 수십억 년 동안 살다가 죽어간 생물체들의 잔해이다. 죽음은 생물체들의 삶만큼 오래되었고, 이들은 잠시도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죽음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 될 수 있는가?” 

”화석 기록은 악(evil)의 여러 형태들이 전 시대를 통해 존재해왔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거대한 스케일로 자연적 재앙들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있다. 홍수, 빙하기, 사막, 지진 등에 의한 생물체들의 파괴는 전 시대를 통해 무수히 일어났다. 작은 개체적 스케일로는 고통스러운 질병들, 불구, 기생충 등의 풍부한 증거들이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어감, 관절염, 종양, 다른 생물체를 잡아먹음 등으로 고통당해 왔던 것이다.” 

 

”시대의 여명에서부터, 삶과 죽음, 악과 선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해 왔다. 거기에는 어떠한 불연속도 없다. 죽음이 나타났던 시기나, 악이 우주의 본질을 바꾸었던 순간은 결코 없었다. 하나님은 변화와 다양성의 도구로서 진화를 사용하시며 세상을 이처럼 만드셨다.” 

 

”아담은 범죄하기 이전까지 하나님과 완벽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라고, 사람들은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완벽함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세계는 결코 없었다. 실제이든, 영적이든, 그러한 곳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하나의 착각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아직도 많은 복음주의적 설교의 중심이 되고 있다.”  [13]

성경은 명백히 완벽한 창조가 있었으나 지금은 죄에 의해서 훼손되었음을 가르치고 있었음에도, 스퐁은 그것을 단순화했다 (그리고 앰브로즈에 의해서 함축되었다). 그들은 화석기록에 대한 수억 년의 역사를 받아들임으로써, 일관성을 위하여 원죄와 인간의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사망을 집어 던져버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지구의 신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성경의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화석기록에 부여된 수억 수천만 년의 연대와 타협하는 크리스천들은 다른 신을, 즉 오래된 지구의 잔인한 신을 경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이건과 다윈과 같은 사람들이 가지는 문제점은 이 세상이 완벽하게 시작되었다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것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또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반역함으로(로마서 5장)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왔으며, 심히 좋았던 세상은 변하여 탄식하며 고통하는 것으로 바뀌어졌던 것이다. (로마서 8:22) 


이 현재의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본성을 보지 못했고, 다만 죄의 결과만을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차이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당신의 독생자를 인간의 죄를 위해 보내셨던 분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얻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죄가 없으셨던 분이고, 우리를 위하여 죄인이 되셨고, 그래서 그로인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후 5:21).  


의심할 여지없이, 오래된 지구(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등)의 하나님은 복음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으로 교회가 돌아가는 데에, 이 글이 도전이 되기를 바란다.



References and notes

1. Sagan, C., Contact, Pocket Books (Simon & Schuster, Inc.), New York, 1985.

2. All dating methods are based on assumptions and numerous results conflict with the evolutionary timescale. E.g. see:

● Austin, S., Grand Canyon: Monument to Catastrop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Santee, California, 1994.

● Morris, J.D., The Young Earth, Master Books, Green Forest, Arkansas, 1994.

● Snelling, A.A.Radioactive 'Dating' in ConflictCreation 20(1):24-27, 1997.

3. E.g. ground up dinosaur bones were found in the fossil dung of another dinosaur: Nature 393(6686):680-682, 1998.

4. Tanke, D.H. & Rothschild, B.M., Paleopathology, Currie P.J. & Padian K., Ed., Encyclopedia of Dinosaurs, Academic Press, San Diego, California, pp. 525-530, 1997.

5. Banks, H.P., Evolution and Plants of the Past, Wadsworth Publishing Company, Inc., Belmont, California, pp. 9-10, 1970.

6. DeVore, I., Astronomy might be refashioning images of God, Times-News Weekender, May 1, 1999. This commonly cited figure is exaggerated - it is based on the evolutionary assumption concerning the many transitional forms that 'must have existed'(!). There are only about 250,000 known fossil species.

7. Desmond, A. & Moore, J., Darwin, Warner Books, New York, p. 479, 1991. See also Brentnall, J.M. and Grigg, R.M.Darwin's slippery slide into unbelief, Creation18(1):34--37, 1995.

8. Typical of this movement would be their adherence to the following beliefs: Big Bang; billions of years for the age of the Earth and universe; days of creation are long periods of time; Noah's Flood a local event; race of soulless 'humanoids' before Adam and Eve; death and disease existed before sin.

9. Ross H., Creation and Time, Nav Press Publishing Group, Colorado Springs, Colorado, p. 88, 1994.

10. Bishop John Shelby Spong, Episcopal Bishop of Newark, A Call for a New Reformation, from home page for the Episcopal Diocese of Newark, September 4, 1999.

● For a thorough refutation of Spong's many errors and outright heresies, see Bott M.R., and Sarfati J.D.What's wrong with Bishop Spong? Apologia 4(1):3-27, 1995.

11. Consistently, Spong also denies virtually every other Christian doctrine—including the bodily Resurrection and the Virginal Conception of Christ etc., and says that homosexual acts are acceptable.

12. Cited in Lieblich, J., Searching for answers: Templeton Prize winner bridges science and faith, Dayton Daily News, Religion Section, Saturday March 13, 1999.

13. Ambrose, T., Just a pile of old bones, The Church of England Newspaper, A Current Affair Section, Friday October 21, 1994.

 

 

*참조 : Progressive creationist anthropology: many reasons NOT to believ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31-38.pdf

 

A pathetic case for an old earth : A review of A Biblical Case for an Old Earth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52-54.pdf

 

Western culture and the age of the eart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21/

 

Exposé of The Genesis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54

 

The dubious apologetics of Hugh Ros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65

 

Creation Compromises : Framework Hypothesis, Gap Theory, Progressive Creation, Theistic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055


Gap theory revisited
http://creation.com/gap-theory-revisited

 

Creation compromises—Gap Theory 
http://creation.com/creation-compromises#gap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4126.asp

출처 - Creation 21(4):42-4, September 1999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16

참고 : 2982|2942|2936|87|2638|2797|891|2336|2310|930|2378|3020|1790|1756|2996|2998|2245|2200|2202|3302|3640|3589|3932|3901|3707|3898|3689|4423|4414|4394|4237|4043|3974|3945|3935|1922|888|416|766|4664|4665|4666|4516|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869|5084|5381|5674|5627|5542|5879|5923|5870|5969|6017|6044|6066|6071|6089|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6679|6107|6110|6135|6146|6152|6153|6189|6283|6360|6414|6477|6480|6491|6512|6581|6642

Terry Mortenson
2018-01-31

부끄러웠습니다. 

: 수십억 년의 연대 개념에 침묵했던 한 목회자의 고백 

(I am ashamed... )


       창조과학 강연을 하면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는 여러 종류의 편지들을 받게 되었다. 그 중에 한 전임 목사님으로 받은 이메일이 있다. 그는 말했다 :

”저는 이제 막 ”수억 수천만 년의 연대 : 그것은 어디에서 생겨난 개념일까?” 라는 제목의 영상물을 두 번 보았습니다. 모텐슨(Mortenson) 박사의 강의는 나와 내 아내의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기독교대학과 신학대학을 졸업했지만, 그곳의 교수들은 모두 점진적 창조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교수들뿐이었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을 신뢰하며 성경에 근거한 당신의 해석은 매우 논리적이었으며, 설득력이 있었고, 약간의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그 탁월한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외쳤던 그 진리로 인해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어진 메일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의 창세기를 믿는 믿음으로 입학했지만, 기독교 대학의 선도적인 교수들과 학문적으로 유명한 분들이 가르치는 신학대학에서의 교육은 나로 하여금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의 교회에서 문자 그대로의 아담의 창조를 주장하고 다윈주의적 진화론을 거부하는 설교는 하였지만, 지구의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말했었던 것에 대해서 부끄러웠다고 메일에서 쓰고 있었다. 

1990년대 초, 그가 담임하던 교회의 평신도 한 명이 그를 설득하여 AiG 켄 햄(Ken Ham) 회장의 강연이 그의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켄 햄의 성경적 창조론이 매우 설득력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수십억 년이라는 연대 개념은 너무도 깊이 박혀있어서, 자신이 더 깊은 조사를 해보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구의 나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그의 타협적 견해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기원(origins) 문제에 대한 공개적 토론이 점점 더 많이 이루어지면서, 그는 그 이슈를 무시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좋아하던 신학자, 모흘러(Albert Mohler) 박사와 스프로울(R. C. Sproul) 박사가 젊은 지구 견해를 지지하는 것을 들은 후, 그는 수년 전에 켄 햄의 인상적이었던 강연을 기억했다. 그는 AiG 웹사이트를 발견하고, 공부하기 위해서 많은 책과 자료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견해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는 새롭게 진리를 깨닫게 된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된 것이다. 할렐루야!    

몇 주 전 내가 일리노이 주에 있는 한 교회에서 강연하고 난 후, 70대의 한 할머니가 목사님에게 말하였다. ”정말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말입니다.” 나의 강연 바로 전에도, 그녀는 목사님 부인에게 ”당신은 정말로 성경의 내용을 모두 믿을 수 있나요?” 라고 말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철저히 믿고 있었던 수십억 년의 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충격이었다. 과학적 증거들이 성경이 진실이었음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들음으로서, 그녀는 자유롭게 되었다.

지구의 연대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교리일 수 있다.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 :

수십억 년의 연대는 지구의 나이에 대한 창세기의 분명한 가르침과 모순된다. (창조의 날(days)들은 문자적 하루(literal days)였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의 5절과 14절 같은 곳에서 그 날에 대한 정의를 내려놓고 있고, 창세기 1장에서 그 날들을 세고(numbers) 있으며, 그것들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evening and morning)”라는 단어와 결부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5장과 11장은 그 날들이 BC 2000년 경에 살았던 아브라함의 시대보다 단지 약 2000년 전 임을 가르치고 있다.)

▶ 수십억 년의 연대는 아담의 범죄 함으로 인해 전체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있게 되었고, 죽음이 인류(그리고 동물들)에게 들어왔다는 성경적 가르침을 훼손한다. 즉,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일 경우, 아담 이전에 죽음이 있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 수십억 년의 연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저주로부터 전체 피조물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복음적 메시지를 훼손한다.

수십억 년의 연대는 하나님의 성품을 훼손한다. (성경에 기술된 하나님은 어떠한 도덕적 이유도 없이 수억 년 동안 동물들의 죽음, 질병, 멸종 등을 포함하는 창조 과정을 사용하시고, 그것들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very good)” 라고 말씀하실 분이 아니시다.)

▶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뿌리에 있는 반성경적 철학적/종교적 가정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곧 출간될 New Answers Book 은 중요한 주제인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과, 왜 크리스천들이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였다는 사실들을 여러 챕터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우리의 창조주는 수십억 년의 잘못된 믿음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문화적 압력에 우리들이 숨어서 지내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그의 거룩한 말씀을 맨 첫 구절부터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리고 담대함과 권위를 가지고, 그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자.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us/newsletters/1206lead.asp ,

출처 - AiG Answers, December 200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01

참고 : 1922|3898|3707|2754|930|303|3148|3233|1412|1413|3372|2936|512|2016|3640|3589|3249|3020|2797|2982|3900|2302|2304|144|322|3365|2704|2647|905|2912|3702|3868|3387|749|404|3689|3731|3901|3932|4204|4297|4351|4375|4380|4440|4487|4492|4540|4869|5033|5035|5084|5094|5265|5275|5381|5394|5542|5628|5627|5870|5923|5969|6044|6064|6066|6071|6107|6110|6135|6146|6152|6153|6189|6283|6351|6360|6414|6477|6480|6491|6512|6581|6639|6642

Brian Thomas
2017-12-15

나무의 나이테는 창세기의 연대기를 반증하는가? 

: 나이테는 매년 하나씩 생기는 것이 아니다.

 (Do Tree Rings Disprove the Genesis Chronology?)


       나무의 연대측정은 단순해 보인다. 단지 나무줄기(trunk)의 바깥 쪽 가장자리에서 중앙까지 나이테(rings, 연륜)의 수를 세어보면, 나무가 살아있던 기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세속적 연구자들은 몇몇 진귀한 나무가 노아의 홍수 이후의 나이보다 더 많은 나이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창조/진화 토론자였던 빌 나이(Bill Nye)는 최근 이 나이테 연구를 사용하여, 성경적 연대기에 도전하고 있었다.[1] 그들은 창세기의 연대기를 정말로 반증할 수 있을까? 이 도전에 답을 하기 위해서, 나무 나이테에 관한 세속주의자들의 기술 보고서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보이지 않는 누락된 나이테(missing rings)나 가짜 나이테(false rings)가 없는 나무에서, 단순히 나이테를 세어보면, 나무의 특정 나이를 결정할 수 있고, 바깥쪽 나이테의 연대를 알 수 있다.”[2] 따라서, 나무의 나이테는 어떤 해에는 안생기거나, 여분의 ”가짜 나이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 연구자는 나이테의 수가 진정한 나이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종종 더 나은 연대측정, 또는 역사를 알아 보기 위해서, 나무의 나이를 비교 측정한다. ”나무 간 나이테의 변이 패턴을 일치시키기 위한 비교연대측정(crossdating)은 나무 나이테(tree-ring) 과학의 한 불변의 법칙이다. 엄격하고 반복 가능한 비교연대측정을 하지 않은 어떠한 분석은 연륜연대학(dendrochronological, 나무 나이테 기반의 연대측정)의 본질이 아니다. 단순히 나이테만을 계수하는 것은 일련의 절대적인 연대를 만드는데 필요한 비교검증을 제공하지 못한다”.[3] 따라서 단순히 나이테를 계수하는 것만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나이를 구할 수 없다.

그러나 비교연대측정(crossdating) 조차도 항상 맞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저위도에서 자라는 휴온 소나무(Huon pine)는 불행하게도 비교연대측정이 쉽지 않다. 그리고 개발된 나이테-폭(ring-width) 연대 결정도 복잡하고, 온도 징후(signal)도 약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2] 바꾸어 말하면, 산림 과학자들은 나이테의 특성이 어떤 온도범위와 일치하는지, 혹은 달력의 해(calendar year)와 일치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나무의 나이테는 아주 희미하다 : ”변화가 표시된 나이테는 각각 중심부(core)에 직접적으로 연대평가가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어떤 나이테는 나무줄기(trunk)의 바깥 부분에 인접해 있어서 불분명하기 때문이다.”[4]

불분명한 나이테와 누락된 나이테는 두 문제점이 되고 있으며, 잉여 나이테는 세 번째의 문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한 해에 하나 이상의 생장 나이테(growth ring)가 나타난다.”[5] 그리고 나이테의 생장은 일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때때로 열대 수종은 형성층 생장(cambial increment, 목질부 생장)을 하는데, 연중으로 매달 여러 개의 나이테를 만든다. 이것은 탄수화물의 이용이 일정치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6] 그러나 온화한 기후에서는 매년 생장 나이테가 하나씩 만들어질까? ”어떤 온대성 나무는 한 번에 여러 개의 나이테들이 생기는데, 이것은 휴면기의 짧은 간격과는 별개로, 생장이 두 세 기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형의 휴면은 며칠 또는 몇 주간 지속되므로, 일시적인 것으로 분류된다.”[7] 즉, 어떤 나무는 몇 주 만에도 셀 수 있는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새로운 나이테가 생겨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이테의 생성 원인은 겨울이거나, 가뭄이 원인일 수 있다. ”독일가문비나무(Picea abies)의 고해상도 목재 특성 변화에 대한 연구에서, 가뭄 스트레스의 증가와 관련하여 목재 치밀도의 증가(가짜 나이테의 형성)가 나타났다.”[8] 그것은 태즈메이니아(Tasmania, 호주의 섬)에서 관찰된 것이다. 그러나 그 현상은 노르웨이에서도 관찰되었는데, ”목재 치밀도가 가뭄에 대해 강하게 반응했으며, 1996년 6월의 건조기에 가짜 나이테(false-ring)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9]

그것을 ”가짜 나이테”라고 부르는 대신에, 아마도 ”가짜 해(false year)”로 불러야만 할 것 같다. 기후와 다른 변화들로 인해, 나무가 생장한 기간보다 더 많은 나이테를 만든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나무의 나이테가 성경의 역사를 반증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의 역사와 조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빙하기 이후에 야생의 기후변화를 감안할 때, 노아 홍수 이후 곧 생장하기 시작한 나무들에서 여분의 나이테들이 생겨났을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References

1. Thomas, B. Nye vs. Ham Debate: No True Scotsman.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February 7, 2014.
2. Drew, D. M. et al. 2013. Wood properties in a long-lived conifer reveal strong climate signals where ring-width series do not. Tree Physiology. 33 (1): 37-47.
3. Taylor, R. E. and M. J. Aitken, eds. 1997. Chronometric Dating in Archaeology. New York: Plenum Press, 34.
4. Sigafoos, R. S. 1964. Botanical Evidence of Floods and Flood-Plain Deposition.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Professional Paper 485-A. Washington: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A20.
5. Kramer, P. J. and T. T. Kozlowski. 1979. Physiology of Woody Plants. New York: Academic Press, 91.
6. Ibid, 384.
7. Fritts, H. C. 1976. Tree Rings and Climate. New York: Academic Press, 195.
8. Drew, D. M. et al. 2009. High resolution temporal variation in wood properties in irrigated and non-irrigated Eucalyptus globulus. Annals of Forest Science. 66 (4): 406.
9. Bouriaud, O. et al. 2005. Intra-annual variations in climate influence growth and wood density of Norway spruce. Tree Physiology. 25 (6): 651-660.

* Mr. Thomas is Science Writ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Cite this article: Brian Thomas, M.S. 2014. Do Tree Rings Disprove the Genesis Chronology?. Acts & Facts. 43 (5).



번역 - 문흥규

링크 - https://www.icr.org/article/8050

출처 - ICR, Acts & Facts. 43(5), 201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43

참고 : 5879|2118|2189|6534|4271|6444|5541|6734|6729|6650|6733|2093|6550|6588|5823|2719|6407|5774|6050|5992|3883|5790|5750|5697|5490|5345|5475|5145|4797|4796|3008|4457|3371|3183|2727|2605|2402


김홍석
2016-11-22

과학사와 신학 해석사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과학, 특히 자연과학의 연구결과들과 주장들은 성경의 해석에 영향을 미쳐왔고, 성경의 해석에 의해 다양한 신학들이 형성되어왔다.    

 

I. 서론

     

 

유신진화창조론적 관점에서 창조와 관련된 성경본문을 해석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성경)

  - 생물들은 진화해왔다고 믿는다.(진화론 과학)

  - 하나님께서 생물들이 진화해 가도록 창조하셨다고 믿게 된다.(유신진화론)

  - 생물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지구는 오래 되었고, 따라서 우주도 오래 되었다.

  - 창세기 1장의 기록에 따르면, 땅에 기는 것보다 조류가 먼저 출현하고, 땅에 기는 것과 짐승들과 사람이 같은 날 출현한다. 최초의 사람은 유인원을 거치지 않고 흙으로 직접 창조되었다. 최초의 여성은 유인원을 거치지 않고 아담 갈비뼈로 직접 창조되었다.

  - 진화론에 따르면, 하루 사이에 생물들이 이렇게 갑자기 진화할 수 없으며, 아담과 하와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존재이다.

  - 따라서 창세기 1장의 하루는 실제 24시간일 수 없으며, 생물의 출현 순서도, 지구와 우주천체들의 출현 순서도 맞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을 골격가설로 해석하게 된다.

이 시대의 과학과 성경 해석 간의 갈등의 주제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각각을 지지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들과 성경의 본문 해석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이해가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에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예를 들어본다.

에드워드 영(E. J. Young)은 ”땅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인간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 거의 보편적으로 가르쳐지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연대는 수백만 년이고, 땅의 연대도 수백만 년이다. 성경은 솔직히 인간의 태고성의 주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연대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E. J.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서세일 역(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8), 48.).


고든 웬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날이니라”에서 '날”(םוי)은 24시간의 기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는 언급이 있고,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열거되고 있으며,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내용은, 한 주간 동안의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다른 데서 '날'은 '때'를 나타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창조 톨레도트의 ”~째 날이니라”에서 '날'은 문맥상으로 하루를 의미한다. 여기서 고든 웬함은 창세기 1장의 '날'이나, 시편 90편 4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등의 본문들을 들어서, 과학적 이론과 성경적 계시를 관련시키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창세기 기록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6.).


베스트만은 이것을 두고 창세기 기록자가 창조활동의 시간을 날의 개념에 입각하여 구분 지으려고 한 것이라고 여기며, 고든 웬함은 여기에 동의한다(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9.). 창세기 기록자는 하루가 빛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둠으로 끝나든, 어둠으로 시작하여 빛으로 이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날'의 해석에는 문자적인 24시간의 하루로 보는 견해(L.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 Wm. B. Eerdman Pub. Co., 1958), 155.), 긴 시대로 보는 견해(F. Davidson, The New Bible Commentary Vol. I (London : The Inter Varsity Fellowship, 1954), 77.), 창조과정의 지질학적 시대로 보는 견해(2세기경의 요세푸스, 이레니우스, 3세기경의 오리겐 등도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최종진, 「구약성서개론」(서울: 도서출판 소망사, 1998), 119.),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Wheaton : Scripture Press, 1962), 21을 참조할 것. 그는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를 루시퍼의 타락의 결과로 본다. Herman Bavink는 이 혼돈의 기간이 얼마든지 오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Herman Bavink, Our Reasonable Faith (Grand Papids : Wm. B. Eerdman Pub. Co., 1956), 172.), 문학적 표현기법으로 보는 견해(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71, 최종진, 「구약성서개론」, 120.), 하루를 환상(vision)으로 보는 견해(J. D. Douglas는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여섯 가지 환상들로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보여주신 것을 하루하루로 기록한 것이라고 제안한다. Douglas, New Bible Dictionary I (Grand Rapids : Eerdmans, 1965), 270-72.) 등이 있다.


특히 지구와 우주의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은 다음과 같이 아주 다양하다.

결국 성경해석의 문제로 귀결되며,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에 대하여 성경해석을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또는 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 세계는 무에서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 창세기 1장의 하루의 길이.

    - 므두셀라는 실제로 969년을 사셨는가?

    - 창세기 5, 11장과 마태복음의 족보 생략 여부.


다음의 내용들은 2015년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원고의 내용을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한국창조과학회는 공식적으로 우주와 지구의 연대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긴 연대가 아니라 매우 짧은 연대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짧은 연대가 과학적으로 몇 년인지는 현재의 과학수준에서는 알 수 없다. 빅뱅이 아닌,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에 의해 우주가 탄생한 후, 우주의 연대가 얼마나 지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국창조과학회회는 우주의 연대 자체에 대하여 과학적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지만, 빅뱅에 의한 우주탄생은 과학적 허구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주장에 대하여, 100억 광년 이상 크기의 우주를 보고 있는 지금 그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빅뱅에 의해 100억 광년 크기의 우주가 되었다는 주장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여러 가정들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관찰되는 우주는 빅뱅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질서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은하도 이미 성숙한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우주의 빅뱅이론도 계속 변해서, 최근에는 가속 팽창하는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모르는 물질(dark matter)과 모르는 에너지(dark energy)로 96%를 설명해야 한다. 

우주에 대한 연구가 증대되면서, 우주는 기존의 우주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물 등이 발견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찰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우주가 팽창한다고 해서 과거 한 번의 대폭발로 시간, 공간, 물질, 생명, 질서가 나왔다는 주장은 참으로 수긍이 가지 않는 단지 가설에 불가하다. 우주는 신비하다. 우주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아직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신비 앞에서 다만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우신 능력과 지혜를 만나게 될 뿐이다. 

사실,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다. 그리고 과학적인 발견들 가운데서도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많은 연구결과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들 역시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가정(assumptions)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구와 우주의 기원연대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들은 실제 나이를 알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세계의 시작상태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과학적 연구는 이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는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동일과정설에 입각한 가정들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연구결과들은 가정 하에 겉보기 나이(apparent age)를 측정해낼 수 있는데, 이는 사용하는 시계와 가정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여, 수십억 년~수천 년까지 매우 다양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이 세계의 시작은 자연과학연구가 설정하는 가정들과는 매우 다르다. 창1:14-19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광명체(마오르, lights)들을 ‘하늘’에 두셨다고 하시지 않고, ‘하늘의 궁창’에 두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늘’보다 더 구체적인 공간적 위치를 알려주시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심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늘의 궁창’은 땅과 인접하고 있는 공간으로서, 공기가 있어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대기권에 해당하는 특별한 공간이며(창1:7,8,), 이는 하늘에 속해 있으면서 땅과 인접하여 있기 때문에 ‘땅위 하늘의 궁창’(창1:20)이라고 부르는 공간이다.[1]

창1:14-19에서 ‘광명체들’을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으며,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를 의미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창조된 천체의 빛들이 모두 하늘의 궁창에 위치하여, 창조된 넷째 날 그 즉시로 그 빛들은 땅을 비추었다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의 시간해석 차원에서 보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별빛이라 하더라도, 그 빛은 창조된 그 날 즉시 땅을 비추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만약 실제로 수억 광년 멀리 떨어져서 창조된 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별로부터 나오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 위하여 수억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 우주의 천체들이 존재하기 시작한 처음부터 그 빛은 지구의 땅을 비추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수억 광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별빛이 관찰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수억 년 전부터 그 별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아담에게 태아기, 유아기, 소년기가 없이, 청년 또는 성년으로 시작되었던 것처럼, 태양계와 우주의 모든 천체들도 성숙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갑자기 생겨나서, 완벽하게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2]

세계의 시작은 과학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 창세기 1장의 내용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창조신학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초과학적으로 시작된 세계의 기원에 대한 연대는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3]

또한 연대측정을 위하여 다양한 시계(방사성동위원소,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등)를 사용하는데, 시간측정을 위해서는 이 시계들이 일정한 속도로 가야한다. 그런데 이 시계들이 일정하게 가기 위해서는 대기 중의 방사성탄소의 비율 등 대기의 조성 비율이나, 온도, 지구자기장의 세기 등의 변인들이 안정된 상태로 지속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잘 알 수 없으며, 오히려 지층과 화석, 그리고 지구자기장의 세기에 대한 관찰들에 의하면, 과거 지구의 환경조건들이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학이라는 도구는 지구와 우주의 실제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다만 일정한 가정 하에 값을 구하는 것이며, 그것이 과학적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실제 세계(real world)는 그러한 가정들과는 달리 선악과사건, 노아홍수, 바벨탑사건을 거치면서, 환경은 범지구적인 범위를 넘어 우주적으로 격변이 있어왔음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지구와 우주의 실제나이에 대하여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며, 자연과학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으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성경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일한 성경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주석, 해석, 주장들을 할 수 있으며, 특히 성경에 기록된 시간에 대하여는 다양한 주석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성경연대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일까? 성경은 기원의 연대를 충분히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의도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성경기록에 의한 기원의 연대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오직 성경을 통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II. 성경은 기원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의도하고 있을까?

2.1.성경기록상의 시간의 연속성

 창세기 시작 절(창 1:1)에도, 창세기의 마지막 절(창 50:26)에도 공히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특히, 창세기 1장은 시간기록으로 편만해 있다. 첫 단어는 '태초에'(베레쉬트)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다. 이 단어는 동시에 성경의 첫 단어이기도 하며, 창세기의 히브리어 제목이기도 하다.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에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태초’, ‘낮’, ‘밤’, ‘저녁’, ‘아침’, ‘첫째 날’(또는 하루), ‘둘째 날’, ‘셋째 날’, ‘사계절’, ‘1년’,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이라는 ‘시간 단위’들로 구성된 자세한 시간의 얼개 위에 순서대로 기록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기록자는 극소수의 특정한 사람들과 관련하여서만 시간을 명시한다. 예를 들면,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고 기록한다(창 5:3). 하지만 셋을 낳은 후 800년 동안이나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면서도, 셋 이후에 태어난 수많은 자녀들에 대하여는 단 한 사람도 이름이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창 5:4). 셋도 105세에 에노스를 낳은 후에 807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지만, 에노스 이외에는 이름이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창 5:6-8).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에는 한 세대에 한 사람씩을 선택하여 해당 아들의 이름과 그를 낳은 나이를 통해 시간들을 빠짐없이 연속적으로 기록함으로써, ‘태초’로부터(창 1:1) 요셉이 죽은 시간까지(창 50:26) 이어지도록 기록한다. 그렇다면 기록자는 시간 기록을 통하여 그 사건이 발생했던 시간을 후대의 독자들, 즉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의도했던 것일까? 웬함은 ”그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역사적인 문제들에 빠지게 된다. 많은 고대인들은 태고에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장수했다고 생각했다. 창세기 5장은 그러한 개념들을 반영하며, 인류 역사가 아주 먼 과거 속으로 소급하고 있음을 반영한다.”라고 한다.[4]

영(E. J. Young)은 ”땅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인간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 거의 보편적으로 가르쳐지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연대는 수백만 년이고, 땅의 연대도 수백만 년이다. 성경은 솔직히 인간의 태고성의 주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연대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5] 

그렇다면 창세기 기록자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일어났던 순서만을 알려주려고 의도했던 것일까? 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순서만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지나치게 자세하게 시간을 기록한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사건을 말할 때, 시간을 말하는 것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다. 만약 단지 족보만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만 있었다면, 창세기 10장이나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과 같이 이름만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 계보, 셈 계보에는 특별하게도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들을 낳은 나이를 통해 자세하고 정확한 시간을 기록하며, 이삭과 야곱의 출생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간 시간과 애굽에 체류한 시간,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 시간을 출애굽기를 거쳐 열왕기의 솔로몬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시간을 전한다. 이러한 실제로부터 성경은 창1:1의 ‘태초’로부터 끊임없이 연속적인 시간을 전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2.2.연대에 관련된 기록들에 위치한 문학적 장치들

2.2.1. 창세기 1장 1절과 5절 사이의 시간

첫째, 본문의 내부적 관계를 살펴보면,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 최종편집자가 보여주는 본문의 구조에서 분명하고 질서정연한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BHS)에 따르면, ”~째 날이니라” 뒤에는 항상 문단나누기 표기(페투하)가 배치되어 있다(창1:5,8,13,19,23,31). 그러므로 맛소라 텍스트의 최종편집자의 의도는 하루 단위로 문단을 나눈 것으로 보이고, 이는 곧 창세기 기자의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분명하고 통일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통일된 형식은 기록자의 의도적인 구성으로 보인다. 문단구분 표식 페투하의 배치에 의하면, 창세기 1장 1-5절이 하나의 문단을 이루는 구조로서 하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2절은 창세기 1장 1-5절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문단 내에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고, 맛소라 본문 창세기 최종편집자의 의도적인 구문론적 구상이라면, 그리고 그것은 최초 창세기 기록자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잘 전달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면[6],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주간의 맨 첫날에 대한 서술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7]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긴 시간 간격이 존재하지 않는다.[8] 창세기 1장 1절이 창조 주간의 처음 하루에 포함되는 활동이며, 동시에 이는 태초에 있었던 창조 사역의 시작이므로, 태초의 창조사역에 대한 선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전체 서술에 있어서,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라는 서술이 의미하는 위치적인 기능과 범주는 창세기 1장 1절에 창조된 '천지' 가운데 '지'(그 땅)의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서[9], 창세기 1장 1절에 언급한 그 땅에 대하여 묘사에 해당한다.[10] ‘그 땅’ 즉 첫 날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던 것은[11] 이틀 후에 물 밖으로 나와야 할 땅이 아직도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혼돈'했다고 묘사한 것이며, 앞으로 식물들과 생명체들로 가득 채워져야 할 땅이 아직은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공허'했다고 묘사한 것이다.[12]

둘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2-3장을 통하여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며, 그 이전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기록한다.[13] 아울러 이 기록은 창세기 2장 17절과 로마서 5장 17절과 6장 23절을 상호 대조함으로써 죽음이 죄의 대가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즉 죽음과 고통은 선악과 사건 이후에 생겨난 ‘죄의 대가’이다.[14] 그런데 간격이론은 아담이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생물들의 죽음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셋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에 창조의 과정을 낮, 밤, 저녁, 아침, 날 등 시간과 함께 세세하게 기록하였고, 아담 계보와 셈 계보에서는 아들을 낳은 나이와 수명까지 시간에 대하여 면밀하게 기록하였다. 창세기 전반에 걸쳐 창세기 기록자는 이렇게 상세하게 시간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세기 기록자가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심판과 재창조 사이의 장구한 시간을 감추어 놓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창세기 전체적으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시간의 상세도에 비추어 볼 때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2.2.2.창세기 1장의 하루

창세기 1장의 ‘엿새’는 은유적 의미의 시간인지, 아니면 문자적 의미의 24시간 하루의 연속으로서의 엿새를 의미하는 것인지와 관련하여, 본문의 내부적 관계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창세기 1장의 모든 ”~째 날이니라” 앞에 배치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고”는 창세기 기록자가 창세기 1장의 하루가 24시간 하루임을 전달하기 위해 채택한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둘째, 창세기 기록자는 ‘첫째 날’을 수식하면서 의미를 한정해 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의 바로 앞에 저녁과 아침을 설명하고 정의하는 낮과 밤의 정의(definition)를 배치하였다. 이로써 낮과 밤은 일몰과 일출에 의한 문자적 의미의 저녁과 아침임을 한정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셋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 5절의 ‘첫째 날’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원어 단어를 서수 ‘첫째’(리숀)가 아닌 기수 ‘하나’(에하드) 즉 ‘하루’(one day)라고 기록함으로써 여기서 ‘하루’라는 시간단위가 창조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창조되고 정의된 하루가 이후부터 계속되고 있음을 보도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구조 속에 나타나 있는 기록자의 의도를 반영한 장치들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 창세기 1장 '~째 날”에 대한 문학적 장치들>

넷째, 창세기 1장 14-19절의 하나의 문단 내에는 낮, 밤, 저녁, 아침, 넷째 날, 계절, 날, 해, 넷째 날 등 여러 시간단위들을 공존하도록 배치함으로써, 기록자는 ‘넷째 날’이 24시간 하루임을 분명히 한다.

다섯째, 창세기 기록자는 천체들이 창조된 바로 그 날부터 천체의 빛들은 지구의 이 땅을 비추면서 우주의 천체들과 지구의 공존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수억 년 이상 멀리 떨어져 보이는 별빛 문제에 대하여 창조신학에 따른 시공간적 이해를 제공한다.

여섯째, 창세기 기록자는 태양이 만들어진 넷째 날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하루를 여전히 동일하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로 묘사함으로써, 창세기 1장의 엿새가 모두 각각 동일한 24시간 하루임을 강조한다.

일곱째, 기록자는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BHS)의 문단 구분을 통해서도 창세기 1장의 엿새가 모두 각각 동일한 하루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여덟째, 하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출 20:8~11에서 7일째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 날이 ‘우리의 하루’ 이므로, 동일 문단 내 서술된 6일 또한 ‘문자적 24시간이 하루인 6일’이다.[15] 만약 이스라엘사람들이 24시간 하루 동안으로 지킨 이 안식일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안식일을 범한데 대한 엄중한 벌을 내리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벌은 엄중해서 죽이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31:15). 그러므로 안식일인 일곱째 날은 24시간 하루임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동일한 문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엿새 또한 24시간 하루의 연속된 엿새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아울러, 출애굽기 31장 15-17절에서도 동일하게 안식일 규례를 주시면서, 31장 17절에서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안식일을 지켰으며, 그것은 24시간 하루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엿새 동안이란 24시간 하루의 연속된 엿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6]

아홉째, 창세기 1장의 그 날들은 헤아려졌으며, 성경에서 이렇게 헤아려진 경우에는 24시간 하루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는 150회에 걸쳐 이러한 경우가 기록되어 있다.[17]

열째, 만일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어떤 다른 긴 시간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의미하는 분명한 단어들로 다른 문장을 만들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여섯 단계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엿새라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기록자가 창조주간의 엿새를 긴 시간에 걸친 여섯 단계로 이해하고서도 엿새라고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세오경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그는 창세기 1장에서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20장 11절과 31장 17절에서도 엿새 동안 이라고 기록하였다. 모세는 창세기 1장에서만 하루라는 단어를 다른 곳과 달리 어떤 긴 기간의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째 날'은 문자적인 의미의 24시간 하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2.3.창세기 5장과 11장의 긴 수명들

창세기 5장의 아담계보 기록 구조는  ”A가 x세에 B를 낳았고, A가 B를 낳은 후 y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가 x+y세를 살고 죽었다.”라는 일정한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에노스는 게난을 90세에 낳았다(창 5:9). 게난을 낳은 나이를 10의 1로 줄이면 9세가 되고, 1개월을 1살로 계산하면 만 7.5세에 낳은 것이 된다. 게난은 마할랄렐을 70세에 낳았다(창 5:12). 이것은 7세가 되어서도 안 되고 5.8세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마할랄렐은 65세에 야렛을 낳았다(창 5:15). 짧은 한 문단 내에 65세에 자식을 낳은 사실과 895세를 살았다는 사실을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창세기 기록자의 전략이다. 즉 95세가 믿기지 않아서, 10분의 1로 줄이거나, 1개월을 한 살로 해석을 시도해보면, 65세에 자식을 낳은 것과 조화될 수 없어 다른 어떤 해석도 불가하도록 장치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18]

야렛은 에녹을 162세에 낳았다(창 5:18). 에녹은 므두셀라를 65세에 낳았다(창 5:21). 므두셀라는 라멕을 187세에 낳았다(창 5:25). 라멕은 노아를 182세에 낳았다(창 5:28). 그리고 노아는 500세가 되어서야 야벳과 셈과 함을 낳았다(창 5:32). 아들을 낳은 나이를 모두 나열해 놓아도 아무런 수열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야 말로 들쭉날쭉 할 뿐이다. 그것은 실제로 아들을 낳은 나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구조는 나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도록 배치한 엄격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창세기 기록자가 아담 계보의 모든 족보를 이러한 구조로 족보를 기록한 것은 의도적인 문학적 장치로서, 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의도에 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담 계보의 시간, 나이와 수명은 구문론적 관점에서 본문의 내부적인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울러, 노아홍수 사건에 대한 기록은 사건 발생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연월일을 세심하게 기록하였다. 그것은 노아 600세 되는 해 2월 17일이었다고 기록했다(창7:11). 방주에 타기 시작(2월 10일)한지 일주일이 지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2월 17일), 40일 동안 줄곧 비가 내렸고(3월 27일까지), 150일 동안 물이 땅에 넘쳤으며, 150일 후에 물이 줄어들었고(2월 17일에 시작하여 5개월 동안),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10월 1일에 산봉우리가 보였고, 40일 후에(11월 11일) 까마귀를 내보냈고 비둘기도 내보냈으나 있을 곳이 없어서 다시 돌아왔으며, 7일 후에(11월 18일) 비둘기를 보냈더니 감람나무 잎을 물고 왔고, 또 7일 후에(11월 25일) 비둘기를 보냈더니 돌아오지 않았고, 노아 601세 1월 1일에 땅에 물이 걷힌 것을 확인하였고, 2월 27일에 땅이 말랐다. 이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서 내렸다. 

기록자는 이 사건의 시간에 대하여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만약 실제로 그 시간들이 아니라고 가정해본다면, 시간들을 기록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록해서도 안 된다. 만약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면, 시간적인 모호성을 그대로 남겨둔 채로 얼마든지 충분히 사건을 보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세하게 시간을 기록한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시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기록된 그대로의 사실성, 즉 실제로 그대로 일어났다는 문자적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한 노아 계보의 이 숫자들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라는 시간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나이는 아담 계보에서 노아가 500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과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노아 계보의 자세한 시간기록이 보도의 사실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은 아담 계보의 나이 역시 문자적으로 해석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셈 계보에서도 본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자식을 낳은 나이와 함께 이후 몇 년을 더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는지를 일정한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그것은 수명이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되도록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즉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430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창 11:16-17)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464세를 산 수명을 다른 의미로 줄여서 해석해보려 한다면 34세에 아들을 낳을 나이를 함께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문자적인 의미의 나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형식을 문학적 장치로 볼 때, 이는 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기록자의 의도에 의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노아홍수를 기점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의 수명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900대의 나이로부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대 아담부터 10대 노아까지는 900수를 누렸고, 노아(10대)의 아들 셈은 600세를 살았다(창 5:3-31, 11:10-11). 이후 438, 433, 464세를 살았으며, 바벨탑사건이 있었던 때인 벨렉(15대)은 239세, 이후 239, 230, 148세, 19대 데라는 205세를 살았다(창 11:12-32). 이렇게 나이의 점진적인 축소가 이어지면서, 기록되어 있는 구조는 아담 계보와 셈 계보에 기록된 수명을 어떤 비율로도 축소할 수 없으며, 다만 문자적인 해석만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19]
 


III. 결론

과학사와 신학 해석사라는 제목으로 출발하여, 방대한 주제 가운데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며, 이는 결국 성경 해석의 문제이므로 연대문제에 대한 성경 본문 해석을 제시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해석의 성경적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으며, 그 결과, 성경은 많은 문학적 장치들을 사용하여 자세하고 끊임없는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창1:1의 ‘태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끝으로 창조과학회 회원들 가운데도 연대문제에 대하여 이와는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임을 밝힌다.

 


Footnotes
1. 이는 노아홍수를 겪으면서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의 지구환경과는 다르다. 따라서 궁창을 지금의 대기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
2. 참조, Wenham, Genesis 1-15, 6. 창세기 1장에는 승인 관용구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7회(4, 10, 12, 18, 21, 25, 31절) 사용되었다. 이는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3. Eugine H. Merril, 「구약의 역사적 개요」, 김인환 역(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97), 56을 참조할 것.
4. 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34.
5. E. J.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서세일 역(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8), 48. 영은 창세기 1장의 엿새는 사건이 발생한 연대기적 순서를 의미하고 있지만 그 시간의 길이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6. 창세기의 내용이 창세기라는 이름으로 최종적인 편집을 거치기 전에 기록한 최초의 창세기 기록자와 지금 우리에게 전달된 창세기의 최종편집자는 다르겠지만, 그 의도와 의미의 전달에 왜곡이 없으며 성경 전체를 공시적 관점에서 상호보완적으로 바라보고 최종편집자를 창세기 기록자와 동일시한다.
7. 김두석. ”창세기 1장 1절과 2, 3절과의 관계 연구”, 「칼빈논단」, (2002): 133-158, 136-137, 150-151, 153과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23-27, 31-33, 43을 참조할 것.
8. 왕대일은 창세기 2:3과 2:4의 구분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의 독법과 정경상의 형태를 따르는데, 이때 ‘페투하’의 단락 표기를 근거로 삼는다. 왕대일, 「구약신학」(서울: 도서출판 성경학연구소, 2003), 343.
9.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33.
10. 참조, Archer,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 역(서울 : 생명의말씀사, 1993), 87-89 및 Keil & Delitzsch, 「구약해석 창세기」, 고영민 역(서울; 기독교문화사, 1987), 48-50.
11. Rad, 「창세기」, 50-51.
12. Keil & Delitzsch, 「구약해석 창세기」, 48-50.
13. Boice, 「창세기강해I」, 문동학 역(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3), 78-79.
14.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로마서 5장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15. 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16. 참조, Schmidt, Die Schouml der Priesterschrift. 2d Ed.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67), 5, 68. 'Considerations Based on Pentateuchal Sabbath Passages.' 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17. 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Geisler, 「성경의 난해한 문제들」, 42.
18. Geisler, 「성경의 난해한 문제들」, 51-52.
19. Ibid. 아담 계보와 셈 계보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수명은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기록해놓았다. 따라서 아담의 나이를 93세로 10분의 1로 하게 되면 아브라함의 할아버지 나홀의 수명은 15세(14.8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줄여서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출처 - 제5회 선교사와 목회자를 위한 창조과학세미나 자료집 (2016. 10. 10)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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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Batten
2016-09-01

어느 믿음이 최근의 탈선인가? 

: 오래된 지구 창조론, 또는 젊은 지구 창조론? 

(Which is the recent aberration? Old-Earth or Young-Earth Belief?)


     창조과학자들은 창세기의 6일 창조와 전 지구적 노아 홍수를 성경 기록 그대로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몇몇 유신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젊은 지구 창조론'이 안식교에서 출발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공식 명칭은 1860년에, 교단 조직은 1863년에 출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일 창조(젊은 지구 연대)를 믿고, 노아의 홍수를 전 지구적 홍수로 믿는 믿음은, 이보다 훨씬 이전의 초기 크리스천들과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 칼뱅 등도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다.  아래의 글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없는 왜곡된 주장인지를 보여준다.

 

 AiG, ICR, CMI, CRS, CSR, CSE, CEH, KACR(한국창조과학회) 등과 같은 창조과학 단체들은 성경 창세기의 6일 창조와 전 지구적 노아 홍수를 기록된 그대로 사실로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는 1만 년 전 이내에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진화론자들, 유신진화론자들,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오늘날 유행하는 수십억 년의 진화론적 연대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와 같은 진화론적 지질시대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젊은 지구 창조론'은 개신교의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들이 개발해낸 최근의 발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이없게도 어떤 사람들은 젊은 지구 창조론이 19세기에 시작된 안식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여러 교부들과 다른 고대의 권위자들이 젊은 지구 창조론을 지지하지 않는 글을 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 초기의 교회 아버지(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베버(Mark Van Bebber)와 테일러(Paul Taylor)가 쓴 Hugh Ross(오래된 지구 신봉자)에 대한 반박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 글에서는 교부들이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를 잘 분석해 놓고 있다. (The Early Church on Creation을 보라).

 

문제는 창조 시의 날들과 시간들에 관한 평범한 문장들에 대해, 교부들이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을 펴면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침묵으로부터의 주장인 것이다. 수십억 년의 진화론적 연대와 적합시키기 위해서, 창조의 날들(Creation days)과 시간에 대해 표현한 명백한 문장들을 무시하는 것은 나쁜 해석이다. 올바른 해석은 평범한 구절들이 나타내고자 했던 의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어거스틴(Augustine)이 창조의 날들을(그리고 다른 여러 문장에서) 비유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오래된 지구 연대를 멀리서 지지했다고 말해질 수 없다. (그는 히브리어 학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날들(days)을 순간(instant)으로 압축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그가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되는 것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의 연대기들이 연구되면서, 많은 문화(성경에 직접 기초하지 않은)들에서도 창조의 연대는 수천 년에 불과함을 증언하고 있었음이 발견되었다. 진실된 학자들 중에는 누구도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고있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 연대에 대한 믿음은 현대적인 발명품임이 분명하다. 


아래의 표는 1879년에 출판됐던. 성경에 대한 '영(Young)의 분석 색인(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으로부터  발췌한 것이다.  영은 ‘창조(Creation)’ 아래에, 1830년 윌리암 헤일즈(William Hales) 박사가 여러 출처로부터 수집했던 창조의 시점들을 목록화해 놓았다. 헤일즈 박사는 연대학(chronology)의 전문가였다.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창조의 시점이 9,000년을 넘지 않았다. 비기독교 자료나, 비유대인 자료(인도, 중국, 기독교 전파 이전의 그리스, 바빌로니아....등)로부터의 여러 자료들 모두에서, 창조의 시점은 수천 년 전이었음을 선언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더군다나, 가톨릭 또는 개신교 학자들이 모두 이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진지한 연대학자는 누구도 오래된 지구 창조론을 믿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표에 올라와 있는 학자들 대부분은 고대의 기록들을 꼼꼼하게 서로 비교해보고 맞춰보며, 평생을 연구하여 세계(world)의 연대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것들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에는 이용되지 않는다). 이 학자들은 이들 연대들을 주사위를 던져서 만들어내지 않았다. 학문에 대한 주의 깊은 이러한 전통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오늘날의 현대인들, 특히 진화론자나 유신진화론자들의 오만인 것이다.

   

우리는 이 연대 문제의 중요성에 다시 한번 밑줄을 그어야만 한다. 오래된 지구 연대 옹호자들도 지구가 수십억 년 되었다는 것은 최근의 주장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오래된 연대는 오로지 동일과정설 지질학과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radioactive dating)에 기초하고 있다.


같은 방법으로 화석화된 죽은 동물의 연대를 사람이 출현하기 수억 년 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말해지는 지층들 속에 들어있는 화석들은 죽음, 질병, 고통, 약육강식, 기형, 독, 암, 기생충...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Genesis: the Curse을 보라). 그래서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죽음과 고통들이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전인 수억 수천만 년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질병과 고통으로 점철된 지층 위에서, 하나님이 신생대 말에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창1:31)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피조물의 고통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서 생겨났고, 죽음의 저주는 그 결과로 임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창 3:17–19, 롬 8:20–22 등).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진실된 역사 때문에,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첫 번째 아담의 죄많은 후손들을 위해 죽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롬 5:12, 고전 15:21~22, 45). 수억 수천만 년의 오래된 지질시대와 성경을 결합시키려는 모든 시도들은 사실상 기독교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의 시점 (Date of Creation)

(1879년에 쓰여진 성경에 대한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8판(1939년 발행) 중에서 ‘창조(Creation)' 아래의 항목)


헤일즈 박사는 그의 작업에서 ”연대기와 지리, 역사, 그리고 예언의 새로운 분석(A New Analysis of Chronology and Geography, History and Prophecy)” (1830년 발행, vol.1, p.210) 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모든 연대기들의 체계는 대부분 두 가지의 중요한 시점을, 즉 세계의 창조(Creation of the World)와 그리스도의 탄생(Nativity of Christ)을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종속적인 시대, 연대, 기간들이 조정되어 왔다.”

그는 BC 6984년부터 시작하여, BC 3616년까지 120개의 창조 시점들에 대한 연대들을 목록화하였는데, 이 결과는 다른 권위있는 문헌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들이었다. 그는 목록이 300여 개로 늘어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창조 시점을 BC 5411년으로 보았다. 흔히 채택된 창조 시점은 어셔(Ussher), 스팬하임(Spanheim), 칼멧(Calmet), 블레어(Blair) 등이 생각했던 BC 4004년 이었는데, 이 연대는 영어 성경인 킹제임스 번역본(KJV)에서 사용되었다.


다음의 연대들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편집, 출판 연도, 또는 다른 출처에 의한 정보 등의 표시는 AiG 에 의해서 추가되었다).       


 창조 시점의 출처 (Source of Creation Date)  근거 (Authority) 연대 (BC)
  알폰소 10세 (Alfonso X, Spain, 1200s)  Muller  6984
  알폰소 10세 (Alfonso X, Spain, 1200s)  Strauchius, Gyles1 1632–1682  6484
  인도 (India)  Gentil (프랑스 천문학자,1760)  6204
  인도 (India)  Arab records  6174
  바빌로니아 (Babylonia)  Bailly, John Silvain (프랑스 천문학자, 1736–1793)  6158
  중국 (China)  Bailly  6157
  디오게네스 (Diogenes Laertius, 그리스, 3세기)  Playfair  6138
  이집트 (Egypt)  Bailly  6081
  70 인역 (Septuagint, LXX) 2  Albufaragi  5586
  요세프스 (Josephus, 1세기, 유대인)  Playfair  5555
  70인역, 알렉산드리아  (Septuagint, Alexandrine)  Scaliger, Joseph (프랑스, 고전학자, 1540–1609)  5508
  페르시아 (Persia)  Bailly  5507
  악숨의 연대기  (Chronicle of Axum, Abyssinian)  Bruce (1700s)  5500
  요세프스 (Josephus)  Jackson  5481
  잭슨 (Jackson)   5426
  헤일즈 (Hales)   5411
  요세프스 (Josephus)  Hales  5402
  인도 (India)  Megasthenes,3  (그리스 역사학자,  340–282 BC)  5369
  탈무디스트 (Talmudists)  Petrus Alliacens  5344
  70 인역, 바티칸 (Septuagint, Vatican)   5270
  베드 (Bede, 673–735)  Strauchius  5199
  요세프스 (Josephus)  Univ. Hist.  4698
  사마리아본 계산 (Samaritan Computation)  Scaliger  4427
  사마리아본 (Samaritan text)  Univ. Hist.  4305
  히브리(맛소라)본 (Hebrew (Masoretic) text)   4161
  플레이페어, 워커 (Playfair and Walker)   4008
  어셔, 스팬하임, 칼멧, 블레어 등
     (Ussher, Spanheim, Calmet, Blair, etc.)
   4004
  케플러 (Kepler, 천문학자, 1571–1630)  Playfair  3993
  페타비우스 (Petavius, 프랑스, 1583–1652)   3984
  멜란크톤 (Melanchthon, 종교개혁가, 1500s)  Playfair  3964
  루터 (Luther, 종교개혁가, 1500s)   3961
  라이트풋 (Lightfoot)   3960
  코넬리우스 (Cornelius a Lapide)  Univ. Hist.  3951
  스칼리져, 이삭슨 (Scaliger, Isaacson)   3950
  스트라우키우스 (Strauchius)   3949
  벌가 유대인 계산  (Vulgar Jewish computation)  Strauchius  3760
  랍비 립만 (Rabbi Lipman, 1579–1654)  Univ. Hist.  3616


 

Notes

1. Brevarium Chronologicum Book IV, 3rd edition, 1699 in English.

2. The Greek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originally published in Egypt BC.

3. A Greek historian from Iona, he was Ambassador to India for King Seleucus I. He published Indika in four book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faq/docs/date_of_creation.asp ,

출처 - Creation 24 (1):24–27, December 2001.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22

참고 : 3689|3640|4345|3589|2638|2016|3931|4375|4380|3812|4440|3612|4516|3901|4351|4487|4869|5628|5627|5969|5870|6044|5084|5542|5923|6107|6135|6283|5381|6360|6414|6110|6152|6153|6285

‘희미한 젊은 태양 역설’의 해결에 필요한 기적 

(Faint Young Sun Paradox Solved?)


     유물론적 행성과학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가 해결됐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기적이 일어나야만 한다.

수십 년 동안,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진화 이야기에서 주요한 장애물을 가지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35억 년 전에 우연히 자연발생 했다면, 그 당시에 태양(sun)은 지금보다 매우 희미했을 것이라는 것이 천문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햇빛은 너무도 약해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태양이 따뜻해질 때까지 지구는 두터운 얼음에 뒤덮여있었을 것이고, 생명체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잘 알려져 있는 ”희미한 젊은 태양 역설(faint young sun paradox)”이다. 이 수수께끼는 빅뱅(big bang)으로부터 사람으로의 매끄러운 진화 시나리오를 주장하고 있는 많은 무신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제 Astrobiology Magazine(2016. 6. 24) 지는 ”희미한 젊은 태양 역설”에 대한 한 해법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또한 Science Daily. 2016. 6. 23. 지에도 게재됨). 그것은 아래와 같은 인자들이 정확한 순서와 정확한 량으로 일어났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

1. 많은 소행성들이 지구에 충돌하여 지표면이 가열된다. 거기에 직경 100km 정도의 큰 것이 하나 필요하다.

2. 황(sulfur)을 많이 가지고 있던 소행성들이 있었다. 이것은 생명체를 위해 필요하다.

3. 소행성에서 온 황과 탄소가 많은 량으로 기체화 됐고, 대기 중으로 들어갔고, 이것은 전 지구적 온난화를 유발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일어나면 안 되고).

4. 충돌하는 소행성이 너무 크거나, 충돌이 자주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출현한 생명체가 파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태양이 따뜻하게 되면서, 소행성 충돌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금성에서는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see commentary from 6/23/2016).

이 이야기를 제안했던 사우스웨스트 연구소의 저자도 이러한 연속적인 사건들이 세밀하게 조정되어 일어날 가능성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

그 논문은 ‘희미한 젊은 태양 역설’이라는 태양계와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아직도 미해결된 주요한 미스터리 하나를 다루고 있었다.

지구 역사의 처음 10억년 동안, 지구는 원시 소행성들에 의해서 폭격당하고 있었다. 반면에 희미한 태양은 훨씬 적은 열을 제공하고 있었다...

초기의 충돌은 일시적이고, 국소적인 파괴와 생명체에 대한 적대적 조건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지구 역사의 첫 10억 년 동안, 대기 및 지표면 상황은 지질학적 및 지화학적 증거의 부족으로 인하여 잘 이해되지 않고 있다”고 시몬 마키(Simone Marchi) 박사는 말했다...

그 발견은 희미한 젊은 태양 역설과 충돌로 인한 대혼란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론적 모델링뿐만 아니라, 다른 별들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태양 같은 별은 그들이 시작할 때, 현재보다 가시적 파장에서 20~30% 더 희미하게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밝기가 증가했다...

태양이 훨씬 더 희미했을 때, 현재의 대기 조성을 가진 지구는 얼어붙어서 고체 상태였을 것이다. 만약 바다가 얼어붙었다면, 생명체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구가 오늘날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에 정확하게 위치해 있다는 것을 시몬 마키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지구가 수십억 년 전에는, 희미한 젊은 태양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는,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회전하던 가스 구름으로부터, 운 좋게 지구 행성, 생명체의 자연발생, 사람으로의 진화로 이어지는 진화 이야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델에서 기적과 같은 여러 요소들을 설정해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과학 분야에서, 어떤 모델을 오류로부터 구조하고 유지시키기 위해서, 임시방편의 매개변수들을 계속 추가시키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다. 그것은 특별한 상황들에 호소하는 것이다. 하나의 기적을 해결하기 위해서, 네다섯 가지의 기적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당신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때, 역설은 사라진다. 그 분은 지구를 거주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사 45:18~19). 역설은 해결될 수 있다. 증거들도 들어맞는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6/07/faint-young-sun-paradox-solved/

출처 - CEH, 2016. 7. 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18

참고 : 5329|5777|2327|5315|5304|6368|6261|6068|5982|4179|5937|5929|4341|4183|6287|5106|4703|2270|6418|6482|6473|6412|6398|2948|6362|6343|6356|4666

Henry M. Morris
2016-07-13

예수님은 최근 창조를 가르치셨다. 

(Did Jesus Teach Recent Creation?)


편집자 주 : 이 글은 최초 발행 이후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가 있다. 아마도 최근 창조를 믿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믿고 계셨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통하여 지구, 생명체, 동물, 사람은 장구한 세월 동안에 자연적 과정을 통하여 원시적인 상태로부터 진화되어 왔다고 배워왔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진화론적 개념에 오랫동안 세뇌당해 왔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과정으로서 진화를 사용하셨다는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또는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는 점진론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을 주장하기도 한다.

만연해있는 이러한 타협적 주장 때문에, 많은 복음주의적 크리스천들도 진화론적 세계관에, 특별히 진화론에 필수적인 장구한 시간 개념에 대해 불편해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적설계 운동의 한 존경받는 지도자가 최근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젊은 지구를 믿는 것을 선호하지만, 과학이 지구 나이는 매우 오래됐음을 입증했기 때문에, 그는 과학과 함께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적설계 운동의 두 지도자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젊은 지구에 대한 나의 주장에 대해 들으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장은 지적설계 이론을 대학생들과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시킬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고,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근 창조와 젊은 지구를 믿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짧은 글을 쓰게 되었다.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에 대한 신성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크리스천들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순간적으로 창조하시고 완성하셨다는 것을 믿고 계셨고, 가르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시편 33:9)


1. 장구한 연대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화와 장구한 연구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하지 않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기록에 대해서 마태복음 5:18절에서, ”...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 22:18절에서는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가 사람들의 추정이나 이론에 의해서 변경될 수 있는 길을 남겨놓지 않으셨다.


2. 성경은 창조가 어떻게 일어났으며,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날'(day)의 의미에 대해서 오랫동안 논란을 벌여 왔지만, 성경 기록의 문맥을 살펴볼 때, 임의적인 해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예수님 자신도 어떤 종류의 불확정한 기간으로 해석하지 않으셨다. 날(day, 히브리어로 욤, yom)은 그 문장 안에서 최초로 정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로 수식되고 있으며(첫째 날, 둘째 날...), 그 범위를 정하고(‘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있는 것으로 인해, 글자 그대로 하루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도록 제한해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을 가지고 쓰여진 ‘날’은 구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제나 문자적 의미의 24시간의 하루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신의 손으로 돌판에 친히 쓰셨다는 것에서 더욱 확증될 수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11).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 31:16~18).  

그러므로 우리의 일곱째 날의 안식은 창조주간에 있었던 날들에 기초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막 2:27)라고 말씀하시면서, 일곱째 날에 노동으로부터 휴식이 필요함을 말씀하셨다.  
 

3. 예수님은 남자와 여자가 창조 순간부터 존재했음을 확인해주고 계셨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우주는 138억 년 전에 지구는 46억 년 전에 생겨났다고 말한다. 원시 생명체는 약 30억 년 전에, 인류는 100만 년 전에, 진화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한편 (창조 때에 계셨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던, 요 1:1-3) 예수님은 남자와 여자는 우주가 만들어진 시기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But at the beginning of creation God ‘made them male and female.’)”(막 10:6). ‘창조 때로부터’는 분명 창세기 1:1절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창세기 1:27절을 인용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아담의 아들 아벨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창세 이후로(since the beginning of the world)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눅 11:50-51)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아벨이 창세 이후의 최초의 선지자였으며, 첫 세대의 순교자였음을 말씀하고 계셨다. 창세 이후 46억 년이 지난 후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예수님은 아벨을 죽인 가인을 사용하셔서 사탄에게 ”...그는 처음부터(from the beginning)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요 8:44) 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또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하여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since the world began, KJV)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눅 1:70)라고 예언하면서, 예수님을 ‘세상이 시작된 이후’ 오시는 구세주로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다시 오실 예수님과 죄에 대한 저주를 해방시킬 것을 말씀하면서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since the world began. KJV)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행 3:21)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영원 전부터(= 세상이 시작된 이후)’라고 말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증거들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져 알 수 있다고 말씀하면서, ”창세로부터(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라고 말씀하고 있다.(롬 1:20)    
 
따라서 오늘날의 진화론자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젊은 지구 창조론자(young-earth creationist)’이셨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모든 신실한 크리스천들에게 중요한 물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의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장구한 지질학적 연대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성경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성경 말씀이 오늘날에 유행하는 과학과 다를 때에 말이다. 불행하게도, 자신이 성경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 다수가 성경을 왜곡하는데 가담하고 있다. 심지어 예수님과 사도들이 한 말씀도 진화론과 다를 경우 그 이론에 꿰어 맞추려고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 베드로는 이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16-17).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경 어느 곳에서도 수십억 년, 수천만 년에 대한 개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우리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이 지구와 우주의 연대가 단지 1만 년 이내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성경이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불일치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사람의 이론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인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정규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최근 창조와 젊은 지구 및 우주를 확실하게 믿고 있다. 그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또한 대진화(macroevolution)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들뿐만 아니라, 소위 수억 수천만 년의 장구한 연대가 허구임을 가리키는 과학적 데이터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창조 지질학자들은 지질 역사에 있어서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대신에 전 지구적 대격변이 있었다는 과학적 증거들을 빠르게 축적시키고 있다. 따라서 지구 지각의 화석을 포함하여 두텁게 쌓여져 있는 퇴적지층에 대한 설명으로써,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장구한 지질시대 동안에 천천히 점진적으로 쌓여졌다는 해석 대신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전 지구적 대홍수로 퇴적되었다는 해석이 점점 더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동일과정설적 가정들을 사용하고서라도, 자연적 과정으로 이 세계의 것들을 설명하기에 너무도 연대가 젊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생겨나고 있다.(예로, 바다의 염분 축적). 그러한 짧은 연대로는 진화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성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창조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은 과학에 의해서 지구의 정확한 나이를 측정할 수 없다. 물론 여러 연대측정 방법들이 여러 다른 연대들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진화론이 성립하기에는 너무도 적은 연대임이 입증되고 있다.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radiometric dating)도 마찬가지이다. 우라늄에서 납으로의 붕괴, 루비듐에서 스트론튬으로의 붕괴, 다른 몇 가지 과정들도 극도로 오래된 연대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여지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방사성동위원소 붕괴 과정은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수십억 년을 나타내는 확고한 증거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다른 모든 것처럼 그러한 계산은 임의적인 동일과정설적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가정들은 입증될 수도 없고, 성경과도 반대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일부러 잊으려 함(willing ignorance)’이라고 불렀다.(벧후 3:3-6).  그러한 가정들은 태초에 만물들을 특별 창조하실 때의 전 우주적 변화의 영향을 무시하고 있고, 노아 시대에 전 지구적 파괴를 일으켰던 전 세계적인 지질학적 영향을 무시하고 있다.

또한, ICR/CRS에서 실시했던 RATE 프로젝트에 의하면, 방사성동위원소의 붕괴 과정까지도 정말로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 아니라, 수천 년에 불과함을 나타내는 강력한 과학적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1, 2]

그러므로 우리는 크리스천인 유신론적 진화론자, 점진론적 창조론자, 오래된 연대 창조론자, 지적설계론자들에게 그들의 세계관과 역사관에 있어서 성경으로 돌아올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확고하게 믿어야만 할 것이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믿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6:46).



References

1.Vardiman, L., A. A. Snelling, and E. F Chaffin, eds. 2005. Radioisotopes and the Age of the Earth: Results of a Young-Earth Creationist Research Initiative. El Cajon,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Chino Valley, AZ: Creation Research Society. See ICR.org/rate for more information on this eight-year study.
2.ICR Research Associate Dr. Vernon Cupps wrote an eight-part series on radioactive dating in Acts & Facts between October 2014 and June 2015. Visit ICR.org to read his conclusions.
Adapted from Dr. Morris’ article 'Did Jesus Teach Recent Creation?” in the June 2005 issue of Acts & Facts.

* Dr. Morris (1918-2006) was Founder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Cite this article: Henry M. Morris, Ph.D. 2016. Did Jesus Teach Recent Creation?. Acts & Facts. 45 (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396 

출처 - ICR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414

참고 : 6360|4540|4440|4297|4204|5381|6135|6107|2016|6285|6153|6152|6110|4487|5923|5542|4869|3901|3709|3640|2936|2638|1922|1790|6351|2942|6283|6189|6066|5275|5035|5033|5969|3783|3931|3334|4664|4665|4666

John D. Morris
2016-02-17

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When did the fossils ‘die’?)


       1800 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은 화석(fossils)으로 인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부터 유래하였다. (1)화석은 한때 살았던 동물과 식물의 잔존물인 것처럼 보인다. (2)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과 같은 일부 과학자들은 화석들은 오랜 기간 동안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서 쌓여졌음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3)성경을 직설적(straightforward)으로 읽을 때, 창조(creation)는 단지 수천 년 전에 일어났으며, 사망(death)은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 중 하나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은 화석은 노아 홍수에 의한 전 지구적인 파괴로 생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는 매우 오래된 연대 개념이 지지를 얻기 시작하면서, 어떤 무엇인가가 화석을 해석하는 데에 사용되어야만 했다. 신학자들은 그들이 두려워했던 반대 증거들에 직면하여 성경을 구하는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오래된 연대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였다.

성경을 손상시키고 왜곡하고 있는 이러한 타협적인 개념들 중 하나는 ‘다중격변론(multiple catastrophism)’으로서, 지구 상에는 여러 번의 격변이 있었는데, 노아의 홍수가 여러 번의 격변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격변이었다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 지층을 만들었던 홍수라고 주장함). 그래서 대부분의 화석들은 노아의 홍수와는 다른 수억 수천만 년 전에 일어났었던 여러 번의 홍수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타협적 개념으로, 노아의 홍수는 어떠한 화석이나 지질학적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산들을 덮었던 ‘평온한 홍수(tranquil flood)’ 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가설로는 노아의 홍수는 단지 메소포타미아 계곡에 일어났었던 ‘지역적 홍수(local flood)’였고, 그래서 지층 깊이 들어있는 전 지구적인 화석들은 노아 홍수와는 관계가 없는 노아 홍수 이전에 장구한 세월동안 형성된 것들이라는 것이다.


스코필드(C. I. Scofield)는 ‘간격이론(gap theory)’이라고 불리는 견해를 대중화시켰다. 이 이론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 광대한 시간의 간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의 주석성경에서 기록했던 것처럼, ”화석들을 태고의 창조 시기로 내쫒아 버리고, 창세기의 우주론과 과학이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page 4) 였다. 오늘날 더 인기가 있는 타협책은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이다. 이것은 창세기의 날(days)들은 화석들이 쌓였던 매우 오랜 기간이었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를 아예 무시해버리는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이 있다.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교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타협은 ‘골격가설(framework hypothesis)’이다. 이것은 창세기는 단지 영적인 진실만을 담고 있는 것이지, 과학적인 또는 역사적인 진실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들 각각은 화석 문제는 제거해버릴 수 있었지만, 그러나 사실 성경을 왜곡하는 것으로서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사람들의 추정(speculations)을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받아들이도록 이끌고 있는가? 그들은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모든 것을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들은 과거에 화석들이 만들어질 당시에 그곳에 없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부터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왜 크리스천들은 그러한 추정과 적합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왜곡하는가? 성경(Bible)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의 기록이 아닌가? 성경에서 저자는 분명하고 명백하게, 사망(death)은 사람(아담)의 범죄함으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7)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9)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로마서 5:1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22)


성경은 또한 우리들에게 사망이 들어온 이후에, 전 지구적인 엄청난 대홍수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물에 의해서 생성되는 엄청난 양의 퇴적지층들을 쌓아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수많은 생물체들을 파묻어버렸을 것이다. 퇴적물은 이제 퇴적암이 되었다. 그리고 죽은 생물들은 화석이 되었다. 우리는 엄밀한 과학적 조망으로 노아의 홍수를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석기록의 본질은 성경 기록에서 기대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우리는 화석이 쌓여질 당시에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추정보다, 그곳에 계셨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셨던 분의 증언을 더 신뢰해야 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4/i2/fossil.asp

출처 - Creation 14(2):12–13, March 1992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589

참고 : 2016|888|2982|2638|1571|1922|2302|1940|2704|2936|766|2005|2287|2992|2976|151|2508|744|746|152|3137|3285|745|4516|6582|6553|6642|6332|6285|6186|6152|6153|6146|6110|6082|5859|5809|5621|5470|5466|5462|5461|5413|5397|5381|5272|5270|5211|5210|5179|5112|478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87|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710|2579|2359|2353|2330|2307|2114|2039|1174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신뢰성을 손상시키는 일인가? 

(Does creation damage Christianity’s credibility?)


     창조과학 단체(CMI 등)들은 창조론에 대한 입장을 비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로부터 간혹 질문을 받는다. 심지어 어떤 기독교인들은 진화론(그리고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을 수용하지 않고, 창조론을 믿는 것이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 유해한 것이라고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한 독자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

당신들이 행하고 있는 기독교의 신뢰성에 대한 손상은 막대하다. 당신들은 지적인 사람들에게 찌라시 수준의 저급한 삼류 과학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당신들은 현대 생물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진화론과 현대 지질학에서 잘 확립된 사실들을 믿지 않고, 창세기 1장과 로마서 8:19-22절에 대해서 불합리하고 부정확한 해석을 하고 있다. 올바른 성경적 해석은 애매하거나 모호한 단어와 구절들을 명확한 단어와 구절들이 제공하는 빛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날(day)’이라는 단어는 명확하게 '시대(era)'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의 같은 단어에 대해서 다른 의미를 발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경 구절의 문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올바른 해석에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람들에 관하여 사람에게 말한 것이다. 어떤 종류의 하나님이 사람의 죄로 인해서 강아지와 화분에 있는 식물에 벌을 내리시는가?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파괴하고 심판하시는 기독교의 신을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경배하겠는가?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해악을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CMI의 리타 코스너(Lita Cosner)가 대답했다 :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당신은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에 손상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지를 묻고 싶다.


우리는 사람들의 여러 이론들보다, 성경이 더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어떤 주장이 잘 확립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를 때에는,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당신이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크리스천은 무엇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인가? 사람들의 이론인가?
   
창세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소설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에 기초한 것이다. 예수님의 시기부터 크리스천들은 성경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해석해왔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창세기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셨기 때문이다. (The use of Genesis in the New Testament을 보라). 수십억 년의 오래된 지구 연대는 동일과정설적 지질학(uniformitarian geology)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장구한 지구 연대를 가리키는 구절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이 틀렸다는 과학적 증거들은 산처럼 많이 쌓여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세속적 지질학에 꿰어 맞추기 위한 타협적인 시도들이 생겨났다. (Six Days? Really?을 보라).


창세기 2:4절에 나오는 ‘날(day)’이라는 히브리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사용된 날이라는 단어는 서수들로 수식되어 있고, ”저녁과 아침”이라는 단어와 같이 쓰여 있기 때문에, 정상적 길이의 하루라는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출애굽기 20:11절의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라는 말씀은 무엇이 되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의 죄 때문에 강아지를 벌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물들도 모든 피조물과 같이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적 창조론자만이 동물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에 대한 논리적인 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God create over billions of years?을 보라).


성경에 기록된 창조를 믿는 것이 사람들의 믿음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다.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기록이 첫 구절부터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들의 믿음에 대한 강한 용기와 담력을 얻는 것이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믿음 체계로서, 수많은 반대 증거들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장구한 지구 연대)에 타협해버린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크리스천이라면 믿음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어야하는 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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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Creation: Why it Matters

[토론유신 진화론 vs 창조론 하나님은 진화를 사용하셨는가? (youtube 동영상한글자막)

https://www.youtube.com/watch?v=0n3AwH-t6gE&feature=youtu.be

 

유신론적 진화론하나님이 진화를 통해 수십억 년을 걸쳐 창조하셨을까? (youtube 동영상한글자막)

https://www.youtube.com/watch?v=4OgmgpSNnS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com/creation-damage-credibility

출처 -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135

참고 : 2942|2797|3640|4375|4380|4440|5381|5275|5033|5035|4869|4540|4487|3024|5969|6110|6071|6066|6107|4664|4665|4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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