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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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연대문제

John C. Whitcomb
2005-05-02

점진론적 창조론

 (Progressive Creationism)


        하나님이 우주와 세계를 현재의 상태로 만들 때까지 시간적으로 광대한 시대, 말하자면 수백억 년 수십억 년을 사용하셨을까?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이 최근 2세기 동안 현대 과학계에서 주장하는 일치된 견해와 성경을 조화시켜 해석하기 위하여 이 관념을 수용하고 있다.1

Dr. Hugh Ross와 Robert Newman의 '점진론적(점진적) 창조론'은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성에 대한 믿음을 공언하면서, 유신론적 진화론 (Dr. Howeard Van Till의 이론)이 표방하는 보다 급진적인 관념들을 부인한다. 그러면서도 점진론적 창조론은 빅뱅 우주론의 시간표를 믿는다. 그들은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다양한 생물 종류들의 기적적인 출현을 분류시켰다고 믿고 있다.2


그러나 순전히 자연주의적 시각에서 궁극적 우주기원을 설명하려는 가장 세속적인 과학자들의 노력은 늘 심각한 한계를 경험하곤 했다. 우주가 시작될 때 하나님 말고는 거기에 있었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우주가 만들어지는 본질(nature), 순서(sequence), 또는 기간(duration)을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과학자들 간에 서로 심각한 의견 차이를 나타내게 되는 이유이다.3


4,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기38:3-4). 입이 딱 벌어지게 충격적인 이 질문은 현재 이 시간에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성경에서 진정으로 놀라운 것들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성경이 그 자체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2,000년 넘게 40여명의 저자들을 사용하셨지만, 그리고 비록 고도로 복잡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모순되는 점은 어디에도 없다! 욥과 모세와 같은 성경의 초기 저자들의 기록은 최종 저자인 요한에 의해서 보완 되었으면 되었지 부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을 '감동시켜서' 그들 본래의 유한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내용의 글들을 기록하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1:21, cf 베드로전서 1:11).


창세기 1-2장의 세세하게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는 말씀들은 그 자체로서 점진론적 창조론을 부정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토론은 언젠가 다시 거론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이 목적하는 바는, 창조이론을 세속 이론에 맞추려고 창조의 날들을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으로 늘려 잡는 일은, 빛이 만들어졌다는 성경 창세기의 맨 첫째 장에서부터 더욱 불합리해진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예컨대, '만물의 창조'는 육화 이전의 그리스도의 말씀만으로, 즉 '말씀' (요한복음 1:1,3; 1:14)으로 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어떻게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을 통해서 천지가 창조되었을까? 그는 무슨 방법을 사용하셨을까? 그의 창조사역은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그에 대한 놀라운 해답이 여기에 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편 33:6, 9).


하나님은 어떤 미세한 에너지 알맹이를 창조하셨던 것이 아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그 어떤 미세한 에너지 알맹이에서 별들과 행성들이 수십억 년이란 시간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하늘이 … [심지어] 그 만상까지도” (창세기 2:1) 순식간에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점진론적 창조론은 이 뜻으로 천지창조를 해석할 수 없다. 구약성경의 두 번째 책은 첫 번째 책에서 기술된 창조사역의 기간(duration) 을 확인하고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 (출애굽기 20:11; cf 31:17).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이 창세기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시간적으로 오랜 기간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엿새를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이해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엿새 가운데 있는 날마다 각각 수(數) 형용사(첫째 날[one day]… 둘째 날[second day]…)로 꾸며지고 있으며, 또 각각의 날은 ”저녁 … 아침… ” 이라는 24 시간을 뜻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장은 일곱째 날인 안식일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날은 유태인이라면 어김없는 문자 그대로의 하루로 이해한다.


'점진론적 창조론(날-시대 이론, 다중격변설 등)'이 내포하는 문제점은, 동물들(심지어 아담 이전의 사람들)이 아담이 죄를 범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죽었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해서 그 이론은 죄와 죽음과의 엄연한 연관관계를 끊어버리게 된다. ”모든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고통하는 것”(로마서 8:22)과 ”썩어짐의 종노릇”(로마서 8:21)하는 이유는 ”[피조물의]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아담의 반역 때에 피조물에게 내리신 저주로 말미암아, 즉 어떤 의도된 설계로 말미암아] 굴복케 하시는 이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8:20). 다시 말해서 아담의 타락과 저주가 있기 전에는 동물계에 죽음은 존재할 수 없었다. 로마서 8장 말씀의 무게는 점진론적 창조론을 붕괴시킨다.


이와 연관하여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당신의 재림 시에 세우겠노라고 하신 나라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중요하다. 여러 측면에서 그것은 타락 이전의 지구에로의 복원을 뜻한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로 임하기를 소망하는 나라(마태복음 6:10)에 주께서 계시는 동안에 ”거기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 [그리고] 그들은 나의 거룩한 산[kingdom; cf. 이사야 2:2]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6-9). 동물계에 팽배하던 모든 위협은 끝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잘 지라”(에스겔 34:25; cf. 호세아 2:18; 이사야 35:9). 바로 그 나라 (kingdom)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창조할 때부터 당신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였던 (사도행전 3:21) 바대로 만물이 '복원 (restitution) [apotatastasis-'회복(restoration)' cf., 마태복음 17:11; 사도행전 1:6) 되는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 올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 (cf. 요한계시록 20:2-7)의 이와 같은 특징들은 우리들에게 타락이전 세상의 동물계의 실상이 어떠했던가를 소상하게 알려준다. 과연, 창세기 1:30 이 단언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가 시작될 때에는 모든 동물 (땅의 모든 짐승…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 … 그리고 땅에 기는 모든 것)은 아담과 하와처럼 푸른 풀만을 식물로 먹었다. (v. 29). 이 말씀은 타락 이전의 동물계에 수백만 년 동안 죽음이 있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린다. 그와 같이 해서 결국 '점진론적 창조론'의 가능성은 배제되는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시로부터' 만드셨다고 (마가복음 10:6)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크리스천들이 '오래된 지구'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우리 창조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자기 형에 의해서 살해된 아벨을 포함하여 ”많은 선지자들의 피가 창세 이후로 흘렸다”(누가복음 11:50)고 단언하셨다. 사실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때에, 그들에게서 시작되었던 인간의 환난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초로부터(마가복음 13:19) 있었던 것이지, 결코 지구가 형성된 수억 년 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모든 천사들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골로새서 1:16) 바리새교인들에게, 가장 큰 천사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자” (요한복음 8:44, cf. 요한일서 3:12, 15는 사탄이 가인을 부추겨 아벨을 살해하였다고 설명한다) 였다고 말하셨다. 사도 요한은 이 중요한 내용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요한일서 3:8)를 반복하여 말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후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 하신 것으로 보아 사탄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담보다 수백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 아니었음이 아주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사탄이 하나님에게 대대적인 천사의 반란을 주도하였던 사건(에스겔 28:5; 이사야 14:12-15)과 지구의 왕 아담을 그의 여왕을 부추겨 천사의 반란에 동참시켰던 사건은 창조의 일곱째 날이 끝난 시점에서 하와의 유혹 (창세기 3:1; 고린도후서 11:3; 요한계시록 12:9)이 있었던 시점과의 사이에 어느 때일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면 이것이 더욱 명백해진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고린도전서 2:16) 사도바울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 하는 것들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로마서 1:20) 하였다. 여기서 창세 때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위대한 속성들을 보았던 주체는 짐승이 아니고, 인간이었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점이 창세기의 기록에서 수백만 년을 배제하는 결정적인 말이다.


계속적인 계시들을(성경에서 인용된 각 구절들은 이전 구절들의 무오성을 말하고 있음) 살펴볼 때,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이 성경 66권 안에서 계시하신 당신의 진리의 말씀에 오류가 없었음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오래된 지구를 표방하는 점진론적 창조론을 반드시 포기하여야만 한다.

 


참고 (Notes)

1. 나도 여러 해 동안 '간격이론(The Gap Theory)'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다. 그 이론은 창세기 1:1과 1:2 사이에 광대한 시대적 간극을 설정한다. 왜 그랬나 하면 나는 한 사람의 젊은 크리스천으로서 프린스턴 대학에 있는 동안 불신자들이 강의한 역사지리학과 고생물학 과정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타협적인 입장을 최종적으로 거부하게 된 이유는 Whitcomb의 책 'The Early Earth'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6), pp.141-58 에서 참조하라.  

2. Hugh Ross의 견해를 믿을만하게 잘 분석한 비평을 원하면, John MacArthur의 'The Battle for the Beginning' (Thomas Nelson, Inc., 2001), pp. 57-71을 참조하시오. Three Views on Creation and Evolution (Grand Rapids: Zondervan Bub. House, 1999).

3. See, for example, Henry M. Morris, That Their Words May Be Used Against Them; Quotes From Evolutionist Useful for Creationist (El. Cajon: I.CR., 1997)


*Dr. Whitcomb is co-author of The Genesis Flood with Dr. Henry Morris

http://www.icr.org/cgi-bin/pfp.cgi?doc&bottom=self

 

*참조 : Progressive creationist anthropology: many reasons NOT to believ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31-38.pdf

A pathetic case for an old earth : A review of A Biblical Case for an Old Earth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52-54.pdf

Western culture and the age of the eart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21/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Impact No. 360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121

출처 - ICR, Impact No. 360, 200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88

참고 : 3689|3640|4345|3589|2638|2016|3931|4375|4380|3812|4440|3612|4516|3901|4351|4487|4869|5628|5627|5969|5870|6044|5084|5542|5923|6107|6135|6283|5381|6360|6414|6110|6152|6153|6285

성기문
2004-07-26

창세기 제1장의 YOWM에 대한 고찰


I. 서론 

건전한 기독교인들은 구태여 West-Minster 신앙고백서1)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고백한다. 그러나 성경의 신적 권위를 기꺼이 고백하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그들의 관점들이 소위 제한영감과 완전(혹은 축자)영감론2)으로 나뉘는 것은 의외의 일일 것이다. 제한영감론자들의 말처럼 과연 성경이 소위 ‘신앙과 행위’ 부분에서만 무오하고, 역사적이며 과학적 측면을 기술한 부분에서는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3)


우리는 ”성경이 무오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4) 고 말한 E. J. Young의 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그의 말처럼 만약에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도 당연히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기독교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이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우리의 신앙과 행위에서 그러하듯이) 오류가 없음을 전제해야만 하고, 또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러나 성경의 절대성이 정통기독교에 유익이 되고 신앙적 기초가 된다고 해서 성경의 무오성을 주관적이거나 독단적으로 변증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과 실제에 근거하지 않았다면, 바로 그것이 성경의 오류를 입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기초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이 확고한 기반이 흔들리고 의심된다면 기독교는 허물어지고 만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까지 단 한 부분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배제하고서는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 질서의 주관자도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편견 섞인 혹은 불충분한 과학지식으로서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거나 성경의 진리를 왜곡할 수는 없다.


우리는 먼저 과학은 과연 중립적인가에 대하여 질문하여야 한다. 즉 과학은 편견이 없는가의 물음이다. 또한 세상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과학에서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과학이란 반복적이어서 관찰 가능한 것에만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그 한계를 벗어나서 기원(origin)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나 종교의 영역이 되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설(즉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에 근거한 진화론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우리는 새롭게 성경에 근거하여 창조론 model을 세워야 하며 그래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과학적 창조론자들의 입장이며 필자의 견해이기도 하다.


”창세기가 과학서적으로서 의도되어 집필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주제를 다룰 때 창세기는 정확하다” 5) 고 말한 E. J. Young의 말처럼 창세기 1장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한 자연계의 창조에 관한 기록이며 정확하다. 그러므로 단순히 철학적 사색이나 진화론적 관찰에 의거해서는 해결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창세기 1장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날이라” 라는 문구의 의미를 역사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 그리고 문법적인 접근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론 

창세기 1장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창세기가 역사적 사건임을 완전히 부인한다. 예를 들어서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Karl Barth는 성경저자가 창세기 1장에서 태양과 달을 언급하기 전에 빛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당시의 모든 태양숭배에 대한 공개적 항의라고 말했다.6) 혹자는 Akitu 바빌론의식과 유사한 이스라엘의 신년제(New year festival)를 위한 노래라고 주장한다.7)


반면에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견해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포괄적으로는 두 가지 견해 즉 문자적 해석(a day)과 비문자적 해석(a period)으로 나뉜다.8) Yowm (히브리어로 날(day)을 의미함)은 구약에서 1,154회 사용되었다.9) Barabas에 따르면 구약에서의 용례는 1)문자적 하루(a day)(창1:5,2), 법적 공공적 하루 즉 밤과 반대되는 의미(legal, civil day)(창1:14,3), 시간에 대한 불확정적인 기간(창2:4), 4)특별하게 성별된 날(holy day)(창2:3, 출20:8~11), 5)주의 날(종말론적 의미에서)로 쓰였다.10)


E. J. Young은 Yowm의 문제에 관하여 ”우리가 Yowm에 관해서 매우 많은 이야기를 하기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충분하게 계시하지 않으셨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해서 Yowm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11) 고 했지만, 이 논문에서 우리는 성경적인 가설이 허락되는 한 심도 있게 토론하여 보기로 한다. 


먼저 창세기 1장의 Yowm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모세에 의해 쓰여진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문자적인 Yowm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다.

”엿새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니라.”12)

예수님과 동시대의 유대인인 요세푸스(Josephus)는 전 문자적인 날(Yowm)을 지지하였으나,13) 그 후 성경의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동안 오리겐(Origen)은 상징적 의미로 각기 피조물의 등급으로서 이해하였고, Basillus the Great는 여기 기록된 날들의 길이가 다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14)


또한 위대한 신학자인 어거스틴(Augustine)은 그의 고백론15)에서 시간에 대하여 장황하게 논의하면서 이 날들이 무한한 길이의 기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이 퇴조하였고, 문자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개혁자들은 문자적인 육일로서의 창조의 날들로서 보았다.16)


즉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그의 창세기 강론에서 어거스틴의 상징적 해석을 비난하면서, 문자적 의미를 다시 강조하였다.17) 존 칼빈(John Calvin)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육일간의 공정을 취하셨다. 그것은 그분의 일을 인간의 역량과 조화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18) 라고 말했다.


그 후 현대의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Abraham Kuyper와 Herman Bavink는 반문자적 날 이론(즉 전 3일간은 길고 후 3일은 통상일)으로 보았고19), 19세기의 독일의 유명한 보수주의 신학자 Keil과 Delitzsch는 그들의 모세 오경 주석20)에서, 그리고 Geerhardusvos는 그의 책 ‘개혁주의 교리(Gereformeerde Dogmatiek)’에서, Bavink의 후계자인 Hepp는 그의 책 ‘칼빈주의와 자연철학(Calvinism and the Philosophy of Nature)에서, Arie Noortzij는 그의 책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의 증언(Godswoord en der Eeuwen Getuigenis: 1924)’ 에서 전문자적 날을 주장하였다.21)  그 외에 일순창조설22)(Calvin과 E. J. Young에 의해서 비판되었다), 간격설, 조화일치설(성경의 창조의 날들과 지질학적 연대와의 일치를 모색), 유신론적 진화론 등이 있다.23) 


결국 성경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축자영감되었다고 믿는 자들로부터 성경의 고매한 신적 유래와 권위를 인정치는 않으나 성경에 근거하려는 자들에게까지 그들을 사분 오열케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미 전술한 것처럼 ”창세기 제1장을 겉핥기식으로 읽을 때 모든 창조의 과정이 24시간을 하루로 하는 6일만에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24) 고 말하면서 문자적 날 이론을 비판한 Gleason Archer의 견해처럼 문제는 현대과학과 성경과의 불일치로 인한 난점이다 (특별히 이 논문에서는 태양보다 빛이 먼저 존재할 수 있느냐 에 대한 질문25)과 창세기 제2장 4절에서의 기간(period)으로써의 Yowm의 문제를 다루어 볼 것이다).


이미 이 글의 서두에서도 제기한 바와 같이 자연과학, 즉 진화론 중심의 체계에서는 아무런 해답도 찾을 수 없다. 진화론은 무신론적 전제 하에서 하나의 불신앙적 편견을 발견시키고 있을 뿐이다. Louis Berkhof는 그의 책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에서 ”그것[비문자적 해결]은 석의적 연구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과학이론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19세기 이전에는 창세기의 날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문자적인 날들로 간주되었다.” 26)고 말한 것처럼 정확여부와는 관계없이 J. Ussher 감독(1581-1656)의 지구연대 4004년 이론27)을 꺼내지 않더라도, 성경적 연대계산은 쉽사리 진화론(소위 현대과학)과는 일치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날-시대 이론을 주장하더라도 태양보다 지구가 먼저 창조되었다는 것은 성경에 의해 부인될 수 없는 것이다. (우주진화론은 반대순서를 주장한다.)


우리는 생명체의 진화는 쉽사리 배척하면서도 진화론의 근거인 수백억년의 기간을 배격치 못한다. ”진화론의 주장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오랜 시간이 요구되나 창조론은 시간의 장단과는 무관하다..... 지구의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주장에 반하여 매우 젊다는 과학적 증거도 많이 있다.” 28)


다시 말해서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자면 당연히 지구의 나이가 길어야 하지만, 지구가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면, 지구의 나이가 꼭 길고 오래되어야 할 필요 없는 것이다. 또한 지층의 연대 기준을 잡아주는 화석층도 진화론적 균일설보다는 성경적 격변설을29) 더 옹호해준다.


우리는 진화론에 의한 ‘우연’과 성경에 의한 '필연’ 둘 중에 하나를 확실히 택하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성경전체의 논리적 연속성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 각각의 구석구석들이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성경적 우주발생론이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성경의 계명들을 현대 도덕에 적용할 수 있다거나, 성경적 종말론이 미래를 위한 계획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30)

결국 과학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중립적이거나 적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원의 문제에서는 양자병존이 불가능하고 더구나 많은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부인 혹은 창조론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의 선재성에 관하여 O. T. Allis는 그의 책에서 ”만약에 그것(즉 빛)이 우리가 그 굉장한 잠재력에 대하여 단지 배우기 시작한 우주광선이나 복사에너지 혹은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다면, 그 누가 태양 없이 혹은 그 이전에 빛이 식물을 자라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위치에 있겠는가?” 31) 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빛의 선재성에 대한 반대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는 것이요, 둘째는 비록 태양이 없이 식물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태양이 빛의 근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32)  


또한 저들이 예로 드는 태양이 없으면 하루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는 질문에 답하기로 한다. 첫째로 빛이 선재 했기 때문에 태양의 역할이 잠시동안 필요 없이 진행될 수 있었으며, 둘째 하루의 개념은 태양의 유무가 아니라 지구의 자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빛의 근원이 아직 지금의 형태의 태양은 아니었지만 저녁과 아침이 계속된 것으로 보아 땅의 축의 회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


마지막으로 Yowm의 용례에 관한 것인데, 이 문제는 문맥상의 해석의 상태로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창세기 2:4의 Yowm을 단어적 의미만 고집한다면 민수기 3:1의 Yowm도 단어적 의미로 해석해야 하겠고 당연히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문맥에 따라서 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가 반복된 문맥에선 하루(a day)로 해석하며, 창조의 전 과정을 언급할 때는 그때(at the time)로 해석함이 합당하다.”34)

 

III. 요 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물론 성경은 역사책이나, 과학책이나, 법률책이나, 문학서적이나, 철학책으로 계획되어 기록된 책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참 진리를 포함하며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유신론적 혹은 무신론적 진화론을 버리고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한 성경적 과학적 방법론을 취한다면, 모든 분야에서 일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구세주로서 뿐만 아니라 만유의 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연구는 신학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이 잠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학(즉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배우는 학문으로서)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창세기 일장에서의 Yowm의 적절한 해석에 관하여 역사적인 접근과 과학적인 접근을 통하여 문맥에 따른 해석(즉 문자적 24시간)이 적합한 것이라는 결론을 맺는다.

”이는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이 글은 기독교학문학회 발표 논문집(89.8. 10~12)에 게재된 논문임을 알려드립니다.〉

 

END NOTES 

1)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 i-x를 보라

2) 여기서 영감이란 성령께서 성경기자가 성경을 기록함에 있어서 기자를 감동시키셔서 성경기록에 오류가 없게 지켜주시는 작용을 말함.

3) James M. Boice(ed.), THE FOUNDATION OF BIBLICAL AUTHORITY (Michigan : Zondervan, 1978) :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신적 영감과 무오성(INERRANCY)을 분리한다. 즉 신앙고백에서의 '신앙과 행위' 란 문맥만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고 함. 그러나 이런 편중된 문자적 고집은 WESTMINSTER 신앙고백을 곡해함. 이 신앙고백은 완전무오와 완전영감을 고백함. cf. G. E. Ladd, THE NEW TESTAMENT AND CRITICISM (Michigan : Eerdmans, 1982), pp.16-17이 제한영감의 예이다 ; Harold Lindsell, BATTLE FOR THE BIBLE (Michigan : Zondervan, 1977), P.115를 참조하라.

4) Edward J. Young, THY WORD IS TRUTH (Michigan : Eerdmans, 1982), p.5.

5) Edward J. Young,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Eerdmans,²1983), p.49

6) Karl BARTH, CHURCH DOGMATICS(Ⅲ,i),trans., J. E. Edwards, O. Bussey, & H. Knight (edinbugh : T&T Clark, 1982), pp.120f

7) Derek Kidner, GENESIS (Leiceste : IVP, 1985), p.54

8) 정규남, 구약개론 (경기도 :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 pp87-88

9) Robert Young,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TO THE BIBLE (Michigan : Eerdmans, 1973) 여기서는 단독적인 형태의 빈도수만 계수한 것임.

10) S. Barabas, 'DAY', deit, Merrill C. Tenny,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Michigan : Zondervan, 1977), pp.45-46

11) Edward J. Young, IN THE BEGINNING (Edinburgh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4), p.43

12) 출애굽기 20:11a, 한글개역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82

13) Josephus, (Ant.,I.1:1,2)

14) 박윤선, 성서주석(창, 출), VOL.1 (서울:영음사, 1975), p.78

15) St. Augustinus, THE CONFESSION, Vol. 21 trans. V. J. Bourke, the fathers of the church (Washington :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53), XI, XII, XIII: R. S. Harris, INSPIRATION AND CANONICITY OF THE BIBLE, 박종칠 역(경기도 : 개혁주의신행협회 1978) p.25 : O. T. Allis, GOD SPAKE BY MOSES, Presbyterian & Reformed Co, 1951), p.10

16)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Michigan : Wm. B. Eerdmans, 1977), p.127

17) Martin Luther, LECTURES ON GENESIS: chapter 1-5 edit. J. Pelikan (St. Louis :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8), p.4-5

18) John Calvin, GENESIS, trans. & edit. John King (Edinburgh :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5), p.78

19) Louis Berkhof, p.154

20) C. F. Keil & F. Delitzsch, PENTATEUCH vol.1 (Michigan : Wm. B. Eerdmans, 1973), p.52

21) L, Berkhof, p.154

22) P. J. Wiseman, CREATION REVEALED IN SIX DAYS (Marshall, Morgan & Scott, 1948), pp.33f

23) L. Berkhof, p.158-163

24) Gleason Arche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 (Chicago : Moody Press, 1980), p.181

25) G. Ch. Aalders, GENESIS I. trans. W. Heyne (Michigan : Zondervan, 1981), p.58 에서도 문자적 하루이론을 태양이 창조되기 이전임을 들어서 '부정적'인 입장을 하고 있다.

26) L. Berkhof, p.152

27) 한국창조과학회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서울 : 창조과학회, 1981), p.189 ; 창조과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여러 곳에 있다. 이들은 모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Creationalist 들이다.

28) James Ussher, Annales Veterius et Novi Testamenti (1650-54)

29) J. Whitcomb & H. Morris, GENESIS FLOOD, 이기섭 역(서울 : 성광문화사, 1985) 여기서 격변설은 복구설(GEN.1:1-2)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의 결과라고 하는 증거를 더 확고히 변증하고 있다 ; H. M. Morris, 진화론과 현대기독교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73)

30) H. M. Morris, 창세기의 대사건들 (THE BEGINNING OF THE WORLD), 이희숙 역, 생명의 말씀사, 1984 (p.5-6)

31) Oswald T. Allis, GOD SPAKE BY MOSES, (PRESBYTERIAN & Reformed Co., 1951), p.11

32) 창조과학회편,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서울 : 창조과학회, pp9-10)에서 '태양이 먼저 존재했다고 믿는 것은 지구가 먼저 존재했다고 했을 때 제기되는 문제만큼 이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33) H. M. Morris, 창세기의 대사건들 (THE BEGINNING OF THE WORLD), P.24. 창조과학회편,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p.11에서 '태양이 존재하기 전의 하루는 (즉 길이는) 태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축을 중심으로 한 지구의 회전에 의해서 결정된다.' ;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Michigan ; Baker Book House , 1981), p.55.

34) U. Cassuto, DOCUMENTARY HYPOTHESIS, trans. Israel Abrahams (Jerusalem, Central Press, 1972), p.73; E. J. Young, IN THE BEGINNING, (Edinburgh : Banner of Truth Trust, 1983), pp.42-43을 참조하라

 

*참조 :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제 66호 [1989. 12]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7

참고 : 1922|2016|2936|303|777|416|930|2638|2378|902|4440|3932|4297|2982|888|1571|2302|1940|2704|87|2134|766|2942|891|2336|3020|1790|1756|3302|3901|3898|3735|3709|3640|3589|3331|769|3707|3689|3628|3731|3641|2797|3186|4375|4380|4140|4374|4204

Encyclopedia
2004-07-26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How Far Back Do The Records Go?)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인류가 지구에 일백 만년 이상 전부터 존재했다면, 왜 인류의 활동에 대한 기록들은 겨우 수천년 전의 것들밖에 없는가? 발견되는 증거들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아닌 성경의 설명과 잘 들어맞는다. 진화론은 신화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수많은 증거들은 이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어떤 것도 산처럼 많은 증거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과학대 진화이다. Creation-Evolution Encyclopedia는 당신에게 창조과학이 사실임을 알려줄 것이다. 

내용 :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1. 역사 기록들 : 모든 것들은 B.C. 2000~3000 년경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시작되었다.

2. 초기의 이집트 기록들 : 마네토(Manetho)의 왕들의 목록은 B.C.3200~3600 년경 아래로 수정되어야 한다.

3.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들 : B.C 1600년 이전 것에 대한 탄소14 연대측정은 정확하지 않다.

4. 성경의 기록들 :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모세가 B.C. 1510~1450 년경에 쓴 창세기이다.

5. 천문학적 기록들 : 가장 오래된 일식(solar eclipse) 기록은 B.C 2250 년경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6. 문자 : 가장 오래 전에 기록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것이며, B.C. 3500년 경으로 추정된다.

7. 문명 : 모든 초기의 문명들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하고 있다.

8. 언어 : 고대의 언어는 B.C. 3000년 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펴져 나왔다.

9. 고대의 역사 기록 : 가장 오래된 연대는 약 B.C. 300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 가장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 : 그들은 B.C. 3000년경 이전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다.

11. 결론 : 인간은 수백만년전부터 살기 시작하여 계속 진화하다가 십만년전에 진화를 멈추었다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는 적어도 십만년전의 문명, 도시, 그리고 살았던 인류가 남아 있지 않는가? 


이 자료는 '지구의 나이'라는 책에서 발췌되었다. 이름 앞의 별표(*)는 창조론자들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Of over 4000 quotations in the set of books this Encyclopedia is based on (see Order Sheet), only 164 statements are by creationists.

'지구의 나이'의 웹 페이지를 읽어보면, 다음에 제시되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역사 기록들 (Historical Records) 

모든 것은 B.C 2000~3000년 경에 거의 완전히 발전된 형태로 출발하였다. 만일 인류가 지구에 수백만년 전부터 일하며 살았다면, 왜 인류의 기록은 오직 B.C 2000~3500년 된 것들에서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발견되면, 왜 그것들은 매우 발전된 문명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일까?  

우리의 책 '고대인'에서 자세하게 보여준 것처럼, 고대 인류의 문자, 언어, 그리고 문화들은 전부 발전된 형태로 시작했다. 그리고 약 B.C 2000~3000년 이전에 시작된 것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2. 초기 이집트의 기록들 (Early Egyptian Records) 

마네토의 왕의 목록(Manetho's king lists) 는 B.C 3200-3600년 아래로 수정되어야 한다.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이집트인과 히브리인의 것이다. 이집트인과 수메르인의 역사가 시작된 연대는 주로 왕들의 목록(list)에 근거한다. 가장 초기의 기록은 이집트 왕들의 명단(list)으로서 B.C. 3200~3600경에 첫 번째 왕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적 외적 증거들은 그 연대가 더 낮춰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 이집트 학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이집트의) 첫 번째 왕조가 적어도 B.C. 3400년 이후에 시작되었고, B.C. 3200년보다 더 많은 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A. Scharff는 그 연대를 B.C. 3000 년경으로 낮추었다. 그의 주장은 매우 타당성이 높았다. 어쨌든 첫번째 왕조가 B.C. 3400년 보다 이전이 아니라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 * H.R. Hall, 'Egypt: Archaeology,' in Encyclopedia Britannica, 1956 edition, Vol. 8, p. 37. 

첫번째 왕조의 연대에 관한 문제는 그것들이 수십세기 후인 B.C.250년 경에 살았던 이집트 제사장(priest)인 마네토(Manetho)가 기록한 왕들의 목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네토의 글은 다른 고대 글들중에서 부정확한 인용문으로 보존되었던 것이다. 펜실베니아대학의 Barton은 그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각각의 이집트 왕들이 통치했던 기간과 그 왕조들이 존재했던 기간의 길이를 비교해보면, 두 개가 다릅니다. 그래서 Manetho의 작업이 연대학의 근간(backbone)을 형성했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믿을만한 절대적인 연대를 제공해 주지는 않습니다.” George A. Barton, Archaeology and the Bible, p. 11. 

이것에 더 많은 이해를 위해서는 The Truth about Archaeological Dating을 읽어 보라.

 

3. 방사성 탄소 연대 (Radiocarbon Dates) 

Carbon-14 연대측정은 보통 B.C. 1600년 이후의 경우에만 정확하다. 

”Libby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연구하고 발전시킨 사람) 박사의 협력자인, Frederick Johnson 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무덤, 사원, 그리고 궁전 등에서 가져온, 그 나이가 알려진 다양한 샘플들을 가지고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해본 결과 그 둘이 비교적 잘 맞는다고 하였다.

John G. Read (J.G. Read,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29, No. 1, 1970)에 의하면 잘 입증된 연대는, 이집트 역사에서 최대한 B.C. 1600년 정도까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B.C 1600년 이전의 것에 대한 탄소14 연대측정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 H.M. Morris, W.W. Boardman, and R.F. Koontz, Science and Creation (1971) p. 85. 

분명히, 탄소-14 생성의 비율에 영향을 주었던 현저한 대기의 변화가 그 시기 이전에 있었다. 

이집트인의 연대는 우주학자, 연대학자, 사학자, 그리고 고고학자들의 이론에 강하게 의존되므로, 이집트인의 연대는 고대 시대의 연대에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매우 영향력이 있다. 이는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역사 연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연대측정(Archeological Dating) 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훨씬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고고학적 연대를 낮추어 성경의 연대기와 같을 수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들이 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은 B.C.1500년 이전 과거에서는 신뢰성이 심각하게 감소한다.

 

4. 초기 성경의 기록들 (Bibl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역사책은 창세기로서, 이는 모세가 B.C. 1510~1450 경에 집필했다. 

성경은 매우 가치있는 역사책이고, 고대 사건들의 연대를 결정하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들 가운데 성경이 제외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은 권위있고 믿을만한 역사적, 고고학적 연구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명되어왔다. (고고학적인 연대와 성경적인 연대의 불일치에 대한 주요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하기를 원한다면, Archeological Dating을 보라) 

성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는 B.C. 1510~1450년 경에 모세가 썼다고 전통적으로 생각되어 왔다. (출애굽은 약 B.C. 1492년 정도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의 연대기적 자료에 의하면 창조 주간은 약 B.C. 400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노아의 홍수는 B.C. 2348년 경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 홍수의 연대에 대하여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고대의 연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홍수는 다소 더 일찍 발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장 오래된 세속의 연대가 다소 더 오래된 것일 수도 있으며, 지금의 경우가 아마도 이에 해당된다. 고대의 연대를 확증하기 위하여, 이집트나 수메르에서 발견한 것처럼 과거에 대한 세속의 기록에 전적으로 확신을 둘 수는 없다.

 

5. 천문학적 기록 (Astronom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일식의 기록은 B.C 2250년 경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고대의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보면, 학자들은 때때로 천문학적 사건, 특히 개기 또는 부분일식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것들은 더욱 정확한 연대 결정의 요소가 된다. 어떤 알려진 장소에서 자주 있지 않는 그 일식들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모든 일식이 일어난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 어떤 한 사건이 고대의 기록에 의하여 확실시되었을 때, 일식은 그 사건의 연대 결정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건은 단지 B.C. 1~2 천년 전의 것이었다. 

우리는 왜 고대인들이 매우 드믄 사건인 일식을 언급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본영 (일식때 태양 빛이 전혀 닿지 않는 지구, 달의 그림자 부분) 지역안에 짧은 시간동안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B.C 2250년 이전에는 사람들에 의해 관측된 일식에 관한 단 한 개의 기록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젊은 지구의 중요한 증거가 된다. 

”확률적으로 가장 초기의 중국인의 연대는 'Book of History' 의 천문학적 참고자료에 근거하여 B.C. 2250년 경으로 추정된다.” - *Ralph Linton, The Tree of Culture (1955), p. 520.

 

6. 문자 (Writing) 

가장 오래된 문자 서판(tablets)은 B.C 3500년 경으로 평가되는 수메르어였다. 

가장 오래된 문자는 근동지역에서 서판에 새겨진 상형문자인 수메르어(pictographic Sumerian)이다. 이러한 가장 오래된 서판들은 약 B.C. 3500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Inanna의 수메르인 사원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초기의 서구형태(Western type)의 문자는 최초의 시나이 문자(the proto-Sinaitic) 였다. 이는 B.C. 1550 년경에 시나이 반도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오늘날 알파벳이 유래한 인도-아리안 (Indo- Aryan) 문자의 기원이었다. 

수메르인은 넓은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문자 기록을 가진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초기 연대는 우리들이 이집트의 연대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근동문명의 전문가인 *Kramer 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메르의 초기 역사의 연대는 대부분 불확실하다.” - *S.N. Kramer, 'The Sumerians,' in Scientific American, October 1957, p. 72

 

7. 문명 (Civilization) 

최초의 것들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하는데, 그곳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산에서 조금 남동쪽에 위치한다

B.C.3000년경 이전의 역사들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 오래된 연대가 주장될 때, 그것은 사람에 의해 쓰여진 기록에 의해서가 아니라, 방사성 탄소연대 또는 다른 방법들을 통해서 주장되는 것이다. 

창세기8:4) 에는, 대홍수의 거의 말기에 방주가 아라랏산의 한 지역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지 지역은 오늘날 이란, 이라크 (고대의 페르시아와 바벨로니아)와 가까이 있는 터키의 극동지역에 위치해 있다. 창세기 10장에서 우리는 가계(races)의 목록과 대홍수 이후 후손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민족들의 표'(the Table of Nations)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고고학계의 거두로 알려져 있는 William F. Allbright는 그 표를 '놀랄만큼 정확한 기록(an astonishingly accurate document)' 으로 간주했다. (See W.F. Allbright, 'Discoveries in Bible Lands,' in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p. 30). 

이외에 더 많은 정보를 위해서는 우리의 책, 고대인(Ancient Man)을 보라. 그러나 농업재배, 가축이용, 금속가공, 마을과 도시 건축.. 등등 이런 모든 초기의 시작에 관한 기록들은 모든 예에서 모두 근동지역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것에 대한 예외는 부정확하고 악명높은 탄소-14 연대측정에 의해 결정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것들 뿐이다. 

”문명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사람에 의하여 세워진 가장 큰 구조물이고, 오늘날 미국의 Grand Coulee Dam을 능가한다. 그러나 그 웅장한 피라미드가 세워지기 1세기 전에는 전세계에 어디에도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없다. 이것이 진화처럼 보이는가?” - H. Enoch, Evolution or Creation (1967) p. 131. 

 

8. 언어 (Languages) 

고대의 언어는 B.C 3000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있으며,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발생하여 퍼져 나갔다. 

인류는 매우 지적이어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문자 기록으로 표현하여 지구의 표면에 남겨놓았다. 대홍수 직후에 언어와 방언들이 갑작스럽게 발달하였는데,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사방으로 흩어질때에 바로 그렇게 발달되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창세기 11:1-9) 

고대의 언어에 대한 기록은 B.C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문헌상의 그리고 언어학상의 연구를 통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그 무리의 대부분은 '언어 가계(language families)' 이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바벨로니아 지역으로부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예를 들어, 창세기 10장에 나열된, 야벳 후손들은 유럽과 인도로 흩어져 나갔는데, 거기서 그들은 소위 아리안 민족(Aryan peoples)으로 불리어졌다. 오늘날 그들은 인도-유럽어계(Indo-European Language Family) 라고 불리운다. 현대 언어학적 연구를 통하여 그들의 언어는 발트해에 대해 남동쪽 유럽의 중앙에서 근원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노아의 방주가 상륙한 아라랏산 지역과 가깝다.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의 전문가인 예일 대학의 Thieme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였다.

”추측컨대, 인도-유럽어는 B.C 3000년 말경 독일의 발트해 연안에서 사용되었다고 생각된다.” - *Paul Thieme, 'The Indo-European Language,' in Scientific American, October 1958, p. 74. 

언어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보길 원한다면 우리의 책, Ancient Man를 보라. 

 

9. 고대의 역사적 기록 (Ancient Historical Records) 

가장 오래된 연대는 B.C 3000년 정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적 기록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연대측정의 정보가 된다. 단지 수천년에 불과한 역사가 시작되기전에 우리는 단지 암석, 물, 하늘, 그리고 추측만 가지고 있다. 기록된 역사에 관한 연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초기의 실제적인 정보들에 대한 추가적인 여러 진술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오직 B.C 3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의 인류에 대한 기록은 단지 5,0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다.” - *World Book Encyclopedia, 1966 edition, Vol. 6, p. 12. 

또 다른 과학자들은 역사적 기록은 B.C 20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록된 역사에 의하여 사람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은 흔한 실수이다. 역사적 기록은 B.C.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며, 이것은 사람이 지구에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매우 작은 비율이다.” - *A.M. Winchester, Biology and Its Relation to Mankind (1964), p. 600. 

*Montague 는 가능한 역사적 기록의 절대적인 한계를 B.C. 4000년 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약 100만년전에 존재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기록된 역사는 6,000년 이상 되지 않는다.”- *Ashley Montagu, Man: His First Million Years (1957), p. 21. 

연대를 늘리는 어떠한 방안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문자의 발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가능성도 단지 B.C. 4,000년 정도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약 6000년전 문자의 발명은 사람의 역사상의 기간(period)을 알게 해 준다. 6000년 이전의 과거는 유사이전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 *Mark A. Hall and *Milton S. Lesser, Review Text in Biology (1966) p. 354. 

가장 초기의 문자는 B.C. 4000년 경으로 말하여진다 하더라도, 가장 초기에 기록된 언어(written language)는 B.C. 3,500년 정도이다.

”가장 초기에 쓰여진 언어인, 수메리안 상형문자는 B.C. 3,500년 정도이다.” - *Ashley Montagu, Man: His First Million Years (1957), p. 116. 

우리는 B.C 4,000년 이전에 그 어떤 인류 문명에 관한 자료도 가지고 있지 않다.

”B.C. 4000년 이전의 인류 문명의 역사적 기록은 전무하다.” - H. Enoch, Evolution or Creation (1967)? p. 137. 

이상한 일이지만, 사람은 지난 100만년간 했던 일보다 지난 6000년 동안에 더 많은 일을 해냈다. 지난 100만년동안 인류가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어떠한 작은 증거도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더 명확하게 해준다.

”지난 6천년동안, 사람은 유사이전의 백만년 또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발전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발전했다.” - *Louise Eisman and *Charles Tanzer, Biology and Human Progress (1958), p. 509.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B.C.3000년 이전에는 인류에 관한 어떤 기록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그들의 선생님들은 그것을 대학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 연구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었다. 그것은 각각 역사시대 그리고 역사이전 시대의 중요한 사건들로부터의 표본(sample)에 대한 연대측정이었다. 역사가 오직 5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었을 때, 그것은 동료인 Arnold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신은 사회적 또는 고고학적 유적이 20,000년이 되었다는 글을 읽게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 가장 초기의 역사적 연대는 이집트의 첫번째 왕조 시대인 것이다.” - *Willard Libby, Science, March 3, 1961, p. 624. 

수천년전 특정 시점 이전에, 사람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없다. 특정 시점 이후에 문명, 문자, 언어, 농업, 가축이용,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발굴에 있어서, 문명이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온 것보다 더 놀랄만한 발견은 없었다. 이 발견은 기대했던 것과는 매우 반대의 결과이다. 문명의 자취가 거의 없고, 토착민이 나타날 때까지는, 더 오래전 고대의 시기일수록, 발굴자들은 더 원시적인 것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람의 거주지역으로 알려진 바벨로니아나 이집트에서도 그렇지 않았다.” - P.J. Wiseman, New Discoveries, in Babylonia, about Genesis (1949 ), p. 28. 

B.C. 3000년 또는 4000년 정도의 연대는 가장 많이 거슬러 올라가는 연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역사의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고 말하는, 이집트로부터 증명된 믿을 만한 연대는 단지 B.C. 1,600년 정도까지만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증명된 믿을 만한 연대는 이집트의 역사로부터 오직 B.C. 1600년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John G. Read,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1970), Vol. 1, p. 29.


10. 가장 오래된 사람들 (The Oldest People) 

그들은 B.C. 3,000년 전으로 올라가지 않으며,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었다. 

다양한 방사성 연대측정의 기술들은 너무 부정확하며, 인류는 지구상에 오직 수천년 동안 살아 내려왔다.

”방사성 붕괴에 의하여 측정된 연대는 단지 몇 년정도가 아니라, 자리수가 틀릴 정도로 실제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은 36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던 것이 아니고, 단지 수천년동안 인 것 같다.”- *Robert Gannon, 'How Old Is It?' Popular Science, November 1979, p. 81. 

우리는 인류의 문명이 수천년 이상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6000년 또는 7000년 전에... 문명은 출현하였고, 인간들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 *Jonathan Schell, The Fate of the Earth (1982), p. 181 

B.C. 3000년 이전에는 기록된 어떠한 자료도 없다.

”고대 세계에서 농업 혁명의 결정적 단계의 대부분은 B.C. 1000~5000년 사이에 발생했다....단지 마지막 5,000년 동안 인류는 문자로된 기록을 남겨두었다.” - *Readers's Digest, the Last Two Million Years (1984), pp. 9, 29. 

문명이 발생하자마자, 마을과 도시가 존재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

”대부분의 문명발생 지역에서, 도시화가 일찍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오래된 문명과 가장 최초의 도시(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도시)였다는 것에는 거의 의심이 없다.” - *Robert M. Adam, 'The Origin of Cities,' Scientific American, Vol. 203, September 1960, p. 154. 

가장 최초의 왕의 목록은 단지 B.C. 3,000년 정도까지만 추적된다.

”이집트 왕의 목록은 첫번째 이집트 왕조까지 추적되고, 그것은 약 B.C. 3,000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어느 곳에서도 기록된 자료가 없다.” - *Colin Renfrew, Before Civilization (1983), p. 25.

 

11. 결론 (Conclusion) 

인간은 100만 년이 넘는 이전에 출현하여 10만년전에 진화를 멈췄다고('stopped evolving') 진화론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왜 적어도 10만년된 문명, 도시, 그리고 사람의 유물들은 없는 것일까? 

지구의 나이에 대한 진화론적 추정은 끊임없이 변하고, 날이 갈수록 길어졌다. (그것은 현재 50억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들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고, 새로운 믿을만한 증거가 나타남으로서, 지구의 나이는 견고할 정도로 확정되고 있다. 그것들 모두는 우리 행성의 시작이 6000년 전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어떤 사람은 7,000년에서 10,000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증거들은 지구의 기원이 약 B.C. 4000년 경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젊은 지구에 대한 증거들은 과학적으로 견고하다. 

진화론자들은 말하길, 최초의 인간은 1~2백만년 전에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강조하여 인간은 10만년전에 진화를 멈추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 왜 우리는 적어도 10만년 된 문명, 도시, 그리고 모든 종류의 잔재들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우린 그걸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은 옳고, 진화론은 틀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이 세상을 6000년 전에 창조하셨다. 그리고 약 B.C. 2348년에 거대한 홍수가 지구를 덮었다. 우리는 매우 고대의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명심하라. 모든 증거들은 이러한 그림과 조화롭게 일치하는 것이다.

 

*참조 : 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pathlights.com/ce_encyclopedia/Encyclopedia/05agee4.htm ,

출처 - Encyclopedia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

참고 : 1922|2016|2936|87|777|416|930|2638|2378|902|3898|3707|2754|303|3148|3640|3589|4329|4258|4237|4148|4071|4100|4043|3974|3945|3935|3932|3872|3812|3783|3731|3730|3739|3689|3654|3641|3628|3633|3623|3372|3311|3302|3289|3249|3242|3233|3220|3218|3208|3206|3204|3186|3170|3168|3166|3162|3155|3101|3097|3065|3036|3022|3020|2996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창세기 6일 창조에 대하여


      보통 우리들이 성경을 들고 창세기 제1장을 읽을 때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주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들을 6일 동안 (하루가 24시간)에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교회 내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날들(days)” 이라는 뜻이 수천년 혹은 수백만년 더 나아가서는 수십억년에 걸친 기간일 수도 있다는 견해들이 나돌고 있다. 이 날수들이 실제로 얼마만한 기간이었는가가 정말로 문제가 되는가? 이 날수들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ordinary) 날들인지, 혹은 더 긴 기간이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날(day)’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날(day)’ 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yom' 이다. 그 의미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24시간인 하루, 혹은 24시간 중 낮부분(밤과 구별되는 낮), 혹은 정해지지 않은(indefinite) 어떤 기간의 의미로(예를 들면 사사시대, 혹은 주님의 날) 사용될 수 있다. 모든 히브리어 성경에서의 단어 ‘yom’은 ‘기간 (period)’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확실한 오랜 기간을 지칭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주목해야할 것은 ‘yom’ 이라는 단어가 정해지지 않은 어떤 기간의 의미로 사용될 때 ‘day’ 라는 단어의 의미가 문자적 의미로 의도되지 않는다는 것을 문맥 내용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창세기에 나타난 'day’ 라는 단어가 상징적으로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중요한 점은 맨 처음 그 단어가 사용될 때는 상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신약에서 우리들은 예수께서 '문(door)” 이라고 하신 말을 듣는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우선 단어 'door(문)'가 들어가는 입구(entrance)를 의미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즉 그 말의 문자적 의미를 우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상징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door)’ 이라는 단어는 우선 우리가 그것의 문자적 뜻을 이해한 후에 이런 식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즉 단어의 문자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러므로 'day”라는 말은 처음으로 창세기에서 사용되는데, 이것이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 참으로 이것이 바로 창세기 기자가 처음에 나오는 'day”를 자세하게 심사숙고하여 정의하려 노력하는 이유이다. 창세기 1장4절을 보면 하나님은 빛을 어두움으로부터 나누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l장 15절에서는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는 것을 읽게 된다. 바꿔말하면 이와 같은 용어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day”이란 용어가 어두움이 ‘밤’과 구분되어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빛”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5절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것이 첫째 날이라”로 끝맺는다. 이것은 바로 나머지 5일들에 사용된 귀절들과 동일한 것으로 명확하게 확립될 낮과 밤의 주기 즉 빛과 어두움의 주기를 보여준다. 6일간의 각 날에서의 빛의 주기는 마침내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하셨을 때이고, 어두움의 주기는 창조사역을 하지 않으셨을 때를 의미한다. 

 

하루와 태양

그런데 만일 태양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낮과 밤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창세기 1장에 명백하게 나타나듯이 태양은 4일에 가서야 창조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는데, 이 문구 '저녁과 아침”을 보면 빛과 어두움의 주기가 교대로 나타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 빛은 존재하고 있었고, 자전하는 지구에 어떤 고정된 빛의 원천으로부터 직접 얻어져서 낮과 밤의 주기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히 이 빛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창세기 1장3절에서 ‘빛’이라는 단어는 빛이 창조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4절 19절에서 우리는 4일째에 태양이 창조되어서, 그 이후로 계속 빛의 원천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태양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낮’을 주관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낮은 전과 같이 유지되었으며, 단지 빛의 원천이 새로워졌을 뿐이다. 태양이 창조되기 전의 처음 3일간은 태양이 창조된 이후의 3일간과 같은 형태의 날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태양을 제 4일째 창조한 가능한 이유 중에 하나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인류가 태양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여 태양을 숭배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진화론적인 우주기원에 대한 이론으로는 태양이 지구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태양보다도 지구와 빛을 먼저 창조했다고 하였다. 태양은 제 4일째에 창조되어 태양이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되었다.


세기의 창조일을 보통의 24시간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지구가 수십억년 되었다는 연대를 과학자가 증명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절대적 연대측정 방법은 없다. (그 예로서 방사선동위원소 방법에서 초기 조건이 불명확하며, 붕괴속도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지만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엿새인가?

하나님은 무한하신 존재이다. 이것은 하나님은 무한한 힘과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지혜 등을 가지신 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하고자 원하시는 일은 시간을 끌지 않으시고 즉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순식간에 즉시 온 우주와 땅과 그 속의 모든 것을 창조해온 창조사역이 가능한 분이시다. 아마도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의문은 왜 하나님은 어떻든지 간에 엿새동안의 기간을 택하셨을까? 하는 점이다. 결국 엿새란 기간은 무한하신 존재인 하나님께는 어떤 것이든 창조하시는데 너무 긴 시간이란 점이다.


그 해답은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20장은 10계명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계명은,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읽는 바대로 바로 그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 표시된(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에 기록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애굽기 31:18).”

20장 9절에 기록된 네번째 계명은 우리에게 엿새동안은 힘써 일하고, 하루는 쉬도록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11절에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창세기 1장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된다.

이 점에 일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우리는 반드시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창세기 1장에서 ‘날(day)’ 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은 무엇이든지 여기서도 그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만약 ‘날’ 이란 말을 창세기의 긴 시간의 한 기간의 뜻으로 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가능한 유익한 방법은 ‘하루’란 정해지지 않는 시간, 또는 측정하기 힘든 기간 (정의되는 시간은 아니)이란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0장 9절-11절의 인식은, 일해야 하는 여섯 정해지지 않는 기간과 휴식하는 일곱번째의 정해지지 않는 것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넌센스이다. 하루(날)들을 통상의 날들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가 통상의 6일 동안 일하시고, 통상의 하루동안 쉬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 통상의 하루(24시간)는 우리가 지금도 살고 있는 7일 한 주일의 생활양식 그 양식을 인간에게 정해 주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여기 출애굽기 20장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에 엿새의 기간을 택하셨는지 ?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날-시대 이론의 모순 (문제점)

창세기의 '날”들을 하나의 긴 기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일관성이 없음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창세기 1:26-28절에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아담)을 제 6일에 만드셨다. 아담은 남은 부분과 제 7일을 살았는데, 창세기 5:5절에 보면 930세에 죽었다(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다고 한 창세기 2:2절을 '아직도 안식하고 계신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이 오늘 우리는 아직도 제 7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약하루가 백만년 이었다고 하면 참으로 문제가 생긴다. 실인즉 하루가 천년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담이 죽었을 때 나이가 이치에 맞지 않게 된다. 

 

하루가 천 년같이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후서 3:8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 귀절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루를 천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시편 90:4에서 이와 매우 유사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벧후 3장과 시편 90편의 전체 문맥은 하나님이 자연적인 현상이나 시간에 의해서도 전혀 제약받지 않는 분임을 의미한다. 이와 반면에 시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 시간에 매여 있지 않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두 성경귀절 모두 창세기에 나오는 날들과 같은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을 지적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을 베드로후서 3장에서 설명하는 문맥 내용은 시간이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창세기의 창조의 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베드로후서 3:8에서 하루라는 단어가 천년과 대조되고 있다. '하루” 가 '천년” 이라는 귀절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대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의 메시지 핵심은 사람이나 자연이 완성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라는 자연의 무작위 현상에 의해서 사람으로 진화하려면 수백 만년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을 주목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수백만년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성경 말씀을 덧붙여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데 수백만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오랜 기간이 요구되지만, 하나님은 시간에 제약받지 않는다는 것이 벧후 3:8의 요점이다.


베드로후서의 '하루가 천년 같다' 라는 귀절 앞부분에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며 기롱하여 말하기를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3:3-4)' 라는 설명이 있음을 주목하는 것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마치 수백만년동안 만물이 계속되어왔다고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말세에는 사람들이 만물이 여전히 계속되어왔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간섭하심을 믿지 않는다.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라는 말은 바로 현대의 '동일과정설” 개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지질학에서 '현재는 과거에 대한 열쇠”라는 관점으로(즉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처럼 수백만년동안 이 세상이 계속 진행되어가고 있다) 현대 지질학에서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다. 참으로 이 개념이 현대 진화론적 지질학의 기초가 되었다. 대부분 현대 지질학자들은 하나님이 수천년 전에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믿지 않고,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6일동안 만물을 창조했고, 또한 출애굽기 20장에서 설명한 특정 목적 때문에 6일이라는 기간에 걸쳐 창조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자와 연한

창세기 1장 14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만약 여기서 일자라는 말이 글자 그대로 하루가 아니고 긴 연한을 의미한다면 연한이란 말을 바로 다음에 또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자와 언약

예레미야 33:25-26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 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진대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게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이 주야가 있도록 하신 그 언약은 깰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다윗과 그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실 것에 대한 언약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야가 있도록 하신 그 약정은 창세기 1장에서 하신 것인데, 만약 주야가 보통 우리가 말하는 24시간 하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이 언약도 헛것일 것이다. 

 

날짜가 문제가 되는가?

결론적으로 그러면 우리가 날들을 보통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날로 받아들이든지 또는 그렇지 않든지 정말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이것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참 원칙이 되기 때문이다. 예로써 우리가 이것을 하루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러면 그 날들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가서는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날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들도 창세기의 다른 기사들을 그대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분명해진다. 즉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예로써,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흙을 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창세기를 문자가 표현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문자적 해석은 용어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거나, 그것을 해석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어떤 사건이 분명히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있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때에는 앞뒤 문맥으로 보아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갈 것이며, 또는 그 본문에서 우리에게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줄 것이다.


창세기에서 가르치는 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날들을 보통의 하루로 받아들일 때,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아무런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참조 : Did Jesus Say He Created in Six Literal Day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nab/did-jesus-say-he-created-in-six-days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제 74호 [1991. 4~6]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dating/d4/d4/d4c1.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42

참고 : 4375|4380|4440|2982|2797|2942

John D. Morris
2004-07-26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1장. 암석이 말하는 지구의 연대


    신문에서 새로운 화석이나 고고학적 발견 또는 지하 단층에 대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는 으레 과학자들이 그것을 발견함으로 말미암아 진화론이 또 다시 입증될 수 있게 되어 매우 흥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수백 만년, 수억 년 혹은 수십억 년 전으로 연대가 제시된다. 아무도 그 연대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되지 않으며, 독자들 또한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느낀다. 과학자들이 그 연대를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게 여긴 적이 있었는가? 어떻게 그들은 그렇게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일까? 마치 암석과 화석들이 말을 하거나 자기들의 나이와 지금까지 되어온 과정을 설명하는 표라도 달고 나온 것처럼 말이다. 내가 비밀을 말하건대 사실 암석들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어떤 표를 달고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아끼고 돌보는 암석들이 몇 개 있다. 그들에게 '바위야, 너 몇 살이니? 화석아, 너는 어떻게 화석이 되었지?' 라고 물어봤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진화론 과학자들도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연대와 역사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그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그러나 그 개념이 이 책의 중요 공격 목표이다. 이 책에서 나는 암석과 화석의 연구방법과 그것들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결론이 내려지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그런 연구 방법이 보통 어떻게 진행되는지 왜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진화론자들도 대부분 훌륭한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이론들은 정교하고 섬세하다. 혼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다만 진화론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마음의 덫을 보여 주고, 보다 나은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이제 어떻게 암석이나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는지에 대해 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이것은 꾸며낸 것이지만 실제 전형적인 방법이다.

  

연대 측정은 보통 어떻게 수행되는가? 자, 당신이 아주 잘 보존된 화석을 담고 있는 석회암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 암석의 나이를 알고 싶어서 근처 대학의 지질학과의 한 교수에게로 가지고 갔다. 다행히 그 교수는 당신이 가진 암석에 흥미를 갖고 있어서 나이를 측정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교수는 '탄소 연대 측정은 오직 유기물질에 사용될 수 있지 암석에는 사용될 수 없다'며, C-14 연대 측정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화석도 암석이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탄소 연대 측정은 이론적으로 과거 수천 년의 역사에만 유효한데, 당신의 화석은 수백 만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전문가는 화석을 담고 있는 암석의 종류는 퇴적암인데 이런 암석은 방사성 연대 측정법에 의해 정확하게 연대를 측정할 수 없다며, 방사성 동위원소의 농도를 측정하지도 않는다. 방사성 연대측정법은 오직 용암과 화강암 같은 화성암에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 대신 그 교수는 화석의 모양과 특징만을 연구할 뿐이며, 화석의 나이를 앎으로써 그 암석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편의상 당신의 화석이 조개라고 해보자. 물론 지금도 많은 종의 조개들이 산다. 그런데 이 조개는 당신이 이제껏 보아온 것들과 약간 다르게 생겼다. 그 교수는 과거에 많은 종류의 조개들이 살았으며, 그것들은 지금 조개들의 조상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멸종되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는 무척추 고생물학이라는 책을 꺼내 조개에 대한 페이지를 편다. 조개 그림이 많이 있다. 언뜻 보면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르다. 교수는 책에 있는 그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더니 마침내 당신의 조개와 아주 비슷한 것을 찾아낸다. 그림 아래에 있는 설명을 보니 시준화석으로 약 3억2천 만년 전의 것이라고 되어 있다. 교수는 만족한 표정과 확신 있는 어투로 '당신의 암석은 약 3억2천만년 되었군요'라고 설명한다.

  

정작 암석은 조사되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암석의 연대는 그 안에 있는 화석들에 의해 측정되고, 그 화석의 연령은 시간에 따른 진화론적 연대표에 의해 측정된다. 석회암 자체는 시대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암석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 암석을 사용할 수는 없다. 화석들이 암석의 연대를 결정하고 진화론적 연대표가 화석의 나이를 결정한다. 석회암은 흔히 화석을 포함하고 있지만, 어떤 석회암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화석들이 아닌 매우 미세한 입자 층으로 되어있다. 많은 석회암의 경우 화석들은 분쇄되어 파편들로 되어 있고 사암과 셰일(혹은 혈암)같은 퇴적암들은 전혀 화석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라고 당신이 물어 보았다고 하자. 그러면 교수는 층서, 즉 지층들이 어떻게 발견되는지에 대한 정보, 제일 오래된 것(즉 제일 오래된 화석을 담고 있는 것) 위에 보다 최근의 것이 쌓이는 식으로 지층이 발견되는 방식에 대해 짤막한 강의를 해준다. 이해가 간다. 분명 밑의 지층은 위층이 생기기 전에 퇴적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당신이 '그 연대는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라고 물으면, '그 지층이 담고 있는 화석에 의해서'라고 대답한다.

  

많은 퇴적암들은 그 암석만 가지고는 전혀 연대를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퇴적암이 진화체계 내에서 연대를 나타내는 화석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위층과 아래층에서 화석을 담고 있는 다른 층을 찾아서 그 암석의 연대를 그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한다'고 교수는 말하였다. 그와 같은 층이 동일 지역에 없을 수도 있지만 옆으로 층을 추적해 가다 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운 좋게 당신의 암석은 그 안에 좋은 화석, 진화 역사에서 오직 한 기간에만 살았던 생물로 정의되는 시준 화석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다른 조개와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다른 조개에는 없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종류의 조개를 볼 때 우리는 그 조개 화석을 담고 있는 암석은 3억2천만년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조개는 3억2천만년 전에 살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화석은 시준 화석이 아니다. 많은 조개, 달팽이, 곤충, 심지어 단세포 생물조차도 수억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고 여러 지층에서 발견된다. 그 생물들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만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암석의 연대를 알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다. 오직 시준화석만이 유용한데, 이것들은 한 암석층에서만 발견되어 지질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화석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 암석의 연대를 그것에 따라 추정한다.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이 사고 과정이 순환논리임을 깨닫도록 하자. 이 논리는 결코 과학에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관찰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대신, 결론이 관찰을 해석하고, 관찰은 결론을 '증명'한다. 화석들은 진화를 지지하는 중요 증거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암석의 나이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시준화석의 진화 단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시준화석은 암석의 나이에 의해 자동적으로 연대가 결정되고 배열된다. 그래서 암석은 화석의 나이를 결정하고, 화석은 암석의 나이를 결정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굳어진 용암을 발견했다고 하자. 분명히 그것은 화석을 담고 있지 않지만, 당신은 이 암석의 나이도 알고 싶어한다. 지질학과에 근무하는 교수는 지구 물리학과에 가보라고 추천한다. '거기 가면 이 암석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을 거요' 라고 말한다. 당신의 암석을 보자 지구 물리학 교수는 매우 기뻐한다. 그는 이 암석이 그 속에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들의 함량 비의 정확한 측정에 기초하는 방사성 연대측정 기법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일단 그 비가 알려지면 수학 공식에 대입하여 그 암석의 절대 연령을 얻을 수 있다. 불행히도 그 검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암석을 가루로 빻아서 특정 광물을 분리해야 하고, 그 광물을 비율을 결정하는 연구소로 보내 결과 보고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 다음 컴퓨터로 방정식을 풀어 연대를 결정한다.


  지구 물리학자는 이 검사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들지만, 당신의 암석이 매우 흥미있고, 자신이 연구비가 많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비용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알려준다. 게다가 그는 당신의 암석에 대해 여러 개의 다른 검사를 수행할 것이다. 우라늄-납(U-Pb) 방법, 포타슘-아르곤(K-Ar) 방법, 루비디움-스트론티움(Rb-Sr) 방법, 그 외 여러 방법들이 있다. 이것들은 전체 암석 혹은 암석 내의 개별 광물에 대해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들은 모델 혹은 isochron(등시성) 기법에 의해 분석될 수 있고, 이상의 여러 방법들은 동일 암석에 적용된다. 그리고 바위의 절대 연대를 알려주는 것이다. 여러 주 후에 그 교수는 전화를 걸어 당신에게 결과를 알려준다. 마침내 당신은 암석의 실제 연령을 알게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른 검사들의 결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각 방법마다 나이가 다르게 나온 것이다. '같은 암석에 대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라고 당신은 의아해한다.

     우라늄-납 방법으로는 5억 ± 2천만 년의 나이였다.

     포타슘-아르곤 방법으로는 1억 ± 2백만 년의 나이였다.

     루비디움-스트론티움 모델 검사로는 3억2천5백만 ± 2천5백만 년의 나이였다.

     루비디움-스트론티움 등시성 검사는 3억7천5백만 ± 3천5백만 년의 나이였다.


  그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뒤따른다. '당신은 이 암석을 어디에서 발견했습니까? 이 용암을 담고 있는 노두(露頭)근처, 위 혹은 아래에 어떤 화석들이 있었나요?'  당신이 그 용암이 3억2천만년된 화석을 담고 있는 석회암층 바로 아래 있었다고 보고할 때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루비디움-스트론티움 연대가 정확합니다. 당신의 암석이 3억2천5백만년과 3억7천5백만년 사이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검사들은 부정확한데 아마 약간의 침출이나 오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화석들이 암석의 연대를 결정하고, 화석은 진화론적 연대표에 의해 그 연대가 결정된다. 이 이야기는 결코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보통 이런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해석의 도식이 이미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각 연대 측정 결과는 진화의 가정에 의해 평가-수용 혹은 거부-되어야 한다. 연대 측정의 전과정이 오래된 지구 각본 안에서 진행된다. 오래된 지구 관점에 어긋나는 어떤 증거도 남아있지 못한다. 참된 증거가 무엇을 보여주든지 간에 진화는 견고하고 오래된 지구 사상들은 견고하다. 별개 사실은 그것이 진화의 일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타당한 증거로 채택되든지 거부된다.

 

 이 딜레마에 대해 몇몇 진화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첫 번째 사람은 고생물학자 데이비드 키츠 박사인데, 우리는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함께 재직했다. 열렬한 진화론자인 키츠 박사는 정직하고 우수한 과학자이며 훌륭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자들의 전형적인 사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진화의 기록은 다른 역사적 기록과 같이 특별한 선개념과 일반적인 선개념의 복합체 내에서 구성되었고, 그 가정은 진화는 일어났다는 것이다." -  David Kitts, Paleobiology, 1979, pp.353,354

 "'이것은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 만약 우리가 화석에 의해 암석들의 연대를 측정한다면 어떻게 돌아서서 화석 기록에서 시간에 따른 진화적 변화 유형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Niles Eldridge, Time Frames, 1985, p.52

  "순환 논리가 발생한다 : 진화론에 의해 화석 기록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조사해보고 그래서 그것이 진화론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자,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 Tom Kemp, 'A Fresh Look at the Fossil Record', New Scientist, Vol. 108, Dec. 5, 1985, p.67


하나님의 형상대로

순환적 사고가 과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인가? 보다 나은 결정은 없는가? 과학자들은 영원히 이 원 안에서 달려야 할 운명인가? 인간의 사고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성경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0). 피조물을 연구함으로써 확실한 사실, 특히 만물이 어떤 것 혹은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피조물들의 특성은 그 조물주의 특성을 드러낸다. 확실히 이것은 자연인이 그의 감각과 사고력을 통해 아마도 어떤 한계 내에서 정확한 관찰과 해석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관찰자가 어떤 핑계를 하지 않는 한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거나, 조물주가 있지만 그 또한 만물의 일부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피조물을 연구함으로써 적어도 창조주의 본질에 대한 이해,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 구절은 사람들이 우리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분명한 진실, 즉 바른 결론에 항상 이르지는 못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창 1:27).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사람은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무소부재하지도 않다. 반면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능력과 특성을 부여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것을 부여하는가?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하나님의 육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하나님은 그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7), 구약 시대에도 때때로 그러하셨다 (창 18장, 24장 등). 다른 예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 혹은 활동을 말씀하면서 그의 손, 얼굴, 혹은 팔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지 하나님이 육체를 가졌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 그보다는 '하나님의 형상'은 주로 사람이 인격적, 합리적 그리고 도덕적 자질을 가졌고 神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이 점에서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전적으로 구별된다. 사람의 물리적 그리고 감정적 구성의 많은 부분이 동물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동물들은 종류대로 창조되었으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어느 정도 적절하게 그 분의 영광과 속성들을 반영하고 있다. 이 형상은 태초에는 '심히 좋았다' (창 1:31).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며 단지 그의 형상을 나타낼 뿐임을 인식하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위대한 잠재적 능력을 수반한다. 아담과 이브가 수행하도록 명령받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창 1:26,28).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더라면 그들과 그 후손들이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대신 창조주에게 반역하는 길을 택했고,그 분의 진노를 촉발하였다 (창 3). 그들은 죽음의 벌을 받게 되었고,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쇠퇴하기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도 손상되어 사람의 영적, 정신적 능력도 줄어들었다. 이브로부터 시작한 인간의 자연적 본성은 죄의 결과를 피하고 권력의 자리로 자신을 높이려는 것이어서 하나님을 창조주로 시인하기를 거부한다. 오늘날 아담의 후손들이 자주 거짓 결론에 이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버렸다 (롬 1:21, 22).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시 14:1).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였다 (고후 4:4).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의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엡 4:18). 이 불완전한 사고 능력과 진리를 향한 열망의 부족은 불완전한 논리와 의미 있는 자료들을 발견하고 분간하고자 하는 마음의 부재와 맞물려서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으로 이끈다 (딤전 6:20). 이론적으로는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도 진리를 발견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궁극적 의미에서 사람은 이것을 거의 성취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창조는 일어났으나 과연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대개 희미한 근사치를 성취하는 것이 최선일 따름이다. 아마도 타당한 관찰과 이 관찰에 대한 해석을 분리하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 해석 과정이 무신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타당한 관찰을 수행할 수 있다. 과학자는 한 암석 내의 원소들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고, 다른 암석층에서의 층서학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화석을 기술하고 분류할 수 있으며, 그것을 다른 화석들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암석과 화석의 퇴적과 그 시기는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와 기원을 해석하기란 훨씬 어렵고 매번 순환논리에 의지해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대안은 있는가?

창조론자는 순환 논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설득력 있는 과학자는 순환 논리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하는가? 앞에서 인용했던 3 명의 진화론자들처럼 신중한 태도로 거부해야 할 것이다. 순환 논리는 과학에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보다 잘 할 수 있다. 그 열쇠는 처음부터 가정을 갖고 출발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있다. 진화에 대한 가정이 과학에 꼭 필요한가? 현대 진화론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하지만 분명히 그렇지 않다. 다른 가정들은 가능한가? 그렇다! 좋은 과학이 자연주의에의 배타적 헌신 없이도 가능한가? 확실히 그렇다. 그렇다면 어떤 가정의 집합이 옳은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이것을 논의하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극소수의 사람만 인식하며 진화론자들은 거의 인정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말이다. 과학은 현재를 다루며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에 국한된다. 과학적 이론들은 다른 것들도 포함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존재하는 자료와 과정의 관찰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먼 과거를 본 적이 있는가? 암석과 화석들은 지금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연구하며 실험한다. 이 모든 것이 현재 일어난다. 과학적 방법은 현재를 다룬다 (물론 인류 역사 이내의 관찰과 기록은 관찰자를 신뢰할 수 있는 정도 내에서 사용 가능하다).

  

과학적 이론은 또한 검증될 수 있어야 하고 잠정적으로 반증 가능해야 한다. 즉 그것들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는 어떤 가능한 방법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누가 과거에 대한 사상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는가? 진화(혹은 창조)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기 위해 어떤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과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재현 가능성이다. 이것은 오늘 어떤 사건이나 물체를 관찰했을 때 내일 관찰해도 똑같을 것임을 의미한다. 유사한 사건들은 유사한 결과와 유사한 관찰을 만든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오직 한번 일어났다면 그것을 관찰하고 결과를 연구할 수는 있지만, 그 사건이 반복될 수는 없다. 오직 한 번 일어나는 사건들 중 지구의 기원과 같은 사건들은 전혀 관찰조차 할 수 없었다. 과학자들이 어떤 사건의 결과 혹은 그 이후의 결과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일회적 사건의 충분한 재구성은 가능하지 않다. 이 개념이 어렵지만 좀 더 설명해 보겠다. 내가 과학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학의 한계를 보이고자 한다. 예를 들어 지질학은 존재하는 암석과 화석의 성질, 그리고 그것들의 형성과 변형 과정을 연구하는 과학이다. 암석의 미래에 대한 예견은 다른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역사 지질학(암석과 화석의 관찰되지 않은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런 어려움이 생물학, 생태학, 천문학, 고고학 등에도 존재한다.

  

진화가 정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관찰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고,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진화의 각 단계도 단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라. 어느 누구도 생명이 없는 무기 화합물로부터 생명이 시작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는 누구도 어떤 종류의 생명체로부터도 완전히 다른 종의 생명체 (대진화)가 발생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느 누구도 의미있는 진화론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조차 한 적이 없다. 동식물 집단 내에서 현재도 일어나는 작은 변이(소진화) (예, 곤충의 DDT 저항성, 후추나방의 지배적인 색의 변화 등)는 진화적 변화가 아니다. 실제로 창조는 창조된 종류 내에서의 적응과 변이를 허용하기 때문에 작은 변이는 완전히 창조론과 양립할 수 있으며, 그것 자체가 진화의 증거는 결코 아니다. 주요 변화(대진화)는 결코 과학적으로 관찰되지 않았으며, 공통조상으로부터의 진화 이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증명될 수도 없다. 그것이 과거에 일어났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것이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진화는 과거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신념) 체계이며, 그들은 이 역사관을 현재의 증거를 해석하기 위해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창조가 정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관찰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며 현재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창조가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창조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증명될 수도 없다. 그것 역시 과학자들이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이다.

<참고> 증명을 위해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가능하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관찰과 반복성을 요구하는 과학적 증명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신뢰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어떻게 성경이 권위적이며, 그것의 저자는 신뢰할만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로 책을 썼고 저자들마다 약간씩 다르게 접근하며 나도 나의 견해가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신뢰가 아무 것도 없는 데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믿음의 맹목적인 도약이 아니라는 점만 말해두자. 우리 모두는 현실 세계에 살고 있고, 이 현실 세계는 항상 세련된 철학적 틀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가설이 현실에 잘 적용되는지 관찰할 수 있으며 실제로 관찰하고 있다. 어떤 가설이 반복적으로 적용되지 않거나 우리가 알고있는 지식에 위배된다면 우리는 그 가설을 버린다. 성경의 많은 내용은 시험과 반증이 가능하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해보면 그것이 진실이거나 최소한 사실일 가능성 (충분한 자료와 완전한 사고 능력이 동원되는 전제하에서)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비평가들이 성경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지만, 객관적이고 엄격한 연구에 의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의학, 경제학, 과학, 그리고 역사학에서의 타당한 원리 내지 발견과 부합됨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성경의 예언들이 기록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성취되는 것을 본다. 사회와 가정이 성경적 원리를 따른다면 사법, 행정, 그리고 교육 제도와 마찬가지로 사회와 가정도 번영할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 정직, 그리고 진실과 같은 성경적 가치들이 옳다는 것을 안다.

  

단적으로 말하면 성경은 역사(役事)한다. 우리는 성경이 모든 영역에서 유익한 결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안다. 다른 제도들과 가르침들은 그렇게 잘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믿음으로 그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그 지식에 대한 우리의 해석 또한 기꺼이 다듬어가야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참되고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인정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과학적으로 성경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경이 옳고 모든 영역에서 적용 가능하다는 믿음을 견지하는 것은 타당하다. 성경은 최근의 창조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연구와 지식을 이끌 수 있는 기본적인 과학적 모델, 즉 이 세상의 과학이론 시장에서도 고려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모델을 제공한다. 그러나 창조는 인간이 관찰할 수 없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래서 진화와 창조는 모두 경험과학 영역밖에 있고 과학적 방법에 의해 접근할 수 없다. 관찰할 수 없고 되풀이할 수도 없다.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의 범주에 속한다. 현시점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우리 눈에 보이는 현재를 있게 한 과거, 하지만 관찰할 수는 없는 과거의 일을 알고 싶어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가능한 한 가장 논리적인 방법으로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으나, 그 어떤 역사적 재구성도 증명할 수는 (혹은 부정될 수는) 없다. 기원에 관한 어떤 관점도 궁극적으로는 믿음에 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과학적으로 역사에 대한 창조의 관점이 옳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이며, 조금의 의심 없이 이것을 사실로 알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나는 창조주를 개인적으로 알며, 과거 사건들에 대한 그 분의 설명을 믿는다. 그는 그 곳에 계셨으며 그 모든 일을 하셨다. 그 분의 기록인 성경은  과학적 세부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의 과학적 연구를 지도할 일반적 체계를 제공한다. 나는 그것이 실제 사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임을 확신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원

여건이 같다면 그리스도인은 성경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사고하기 때문에 비성경적(즉 잘못된) 세계관을 가진 비그리스도인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 이것은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없는 자원, 즉 성령께서 각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저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 라고 가르치셨다 (요 16:13).  하지만 성령의 임재가 바른 결론을 보장하지는 않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현실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도 죄가 관영한 세상에 살고 있고 손상된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세속적인 관점으로 사람들을 세뇌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우리 마음속에 새겨진 오류를 없애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다. 개인적인 죄는 어떠한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잘못된 습관에 대해 승리할 수 있지만, 죄는 아직도 우리의 사고 과정을 흐트러뜨리고 온전한 성령의 주관을 억제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바른 관점에서 시작할 수 있고 매번 정도는 다를지라도 성령의 조명을 받는다. 성령의 사역, 곧 내적 확신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운데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성숙이 깊어질 때 우리는 기꺼이 생각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비그리스도인들보다 진리에 도달할 잠재적 능력을 훨씬 많이 갖고 있다. 성경에 주어진 고대 역사에 대한 관점을 채택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창조의 결과인 동물과 식물의 유형을 연구할 수 있다. 또한 노아 시대 홍수의 결과인 화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구 퇴적암을 연구할 수 있다. 창조와 홍수를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이 실제 일어났었음을 확신하고 바른 역사적 사고 체계 내에서 현재의 증거와 과거의 결과를 해석하고자 시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 지식의 빠진 부분을 채울 수 있고, 보다 만족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성경이 옳고 창조, 저주, 홍수, 바벨탑 사건이 실제 일어났었다면, 진화론적 역사를 인정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만일 누가 참 역사를 부정하고 잘못된 가정을 수용한다면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모든 시도는 분명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잘못되었을 테고, 실제 사건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에 비해 질이 떨어질 것이고, 내적 일관성도 없을 것이고, 과학적으로 만족할만하지도 못할 것이다. 자료들이 이론에 들어맞지 않아도 그 이론이 틀리다고 절대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언제든지 그 증거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사실이고 증거는 증거라는 것을 유념하자. 오직 믿음으로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사실에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의 믿음에 반하는 어떤 것이 발견될까 겁낸다. 그래서 차라리 대면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사실들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가정들과 양립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염려해서는 안 된다. 사실들은 암석 같은 것들이고, 그것들은 말을 하지 못하며, 한 사람의 가정에 의해 해석되어야만 한다. 내가 대학원에 있을 때 교수들은 자주 시인했다. '가치 판단이 배제된 사실같은 것은 없다'. 특히 관찰되지 않은 역사를 다룰 때는 더욱 그렇다. 사실들은 해석되어야 한다. 어떤 의미를 갖기 전에 존재하는 세계관 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실들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또한 과학과 성경에 대한 이해가 자라갈 때 우리의 전제들을 기꺼이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는 분명 존재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꾸준히 연구하여 그것을 밝혀 내도록 해야 한다.

  

관찰되지 않은 과거에 관한 사실 혹은 자료들이 보통 하나 이상의 세계관 내에서 하나 이상의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다. 하지만 두 가지 해석이 다 옳을 수는 없다. 이 장의 시작에서 언급한 화석이 바로 그 예이다. 그 조개 화석은 진화론적 역사 재구성에 의하면 다른 동물, 궁극적으로는 단세포 생물로부터 진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견해에서 그 조개는 3억2천만년 전에 살았고, 그 후대 생물들은 멸종되었던지 지금의 조개로 그 계통을 유지해 왔다고 본다. 혹은 창조론적 역사 재구성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 기간 동안 퇴적물 속에 묻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창조 5 일째 창조된 '조개' '종류' 안에서 처음부터 조개로 그때까지 번식해 왔다. 다른 조개들은 홍수 기간 동안 살아 남았고, 그 종들이 오늘까지 살아있다.


  이 경우 그리스도인 창조론자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기록을 수용한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창조론의 관점에 근거한 과학적 연구는 결코 사소하지도 비생산적이지도 않다. 그 견해의 세부 사항들은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고, 알아야 할 내용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성경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특정 화석 퇴적물의 구체적인 것들을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역사를 부인하는 자들은 결코 그럴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의 논리를 반박하고 현재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열등한 재구성을 영원히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영역, 과학과 과거의 재구성 영역에서도 성경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거기에 주어진 사고 체계 내에서 과학적 자료를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가?

  역사에 대한 견해가 결국 과학적으로 증명 혹은 부정될 수 없다면 무슨 희망이 있는가? 창조/진화 논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가?  가정 혹은 전제 수준에서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 논쟁에 진전이란 거의 있을 수 없다. 사실들은 역사에 대한 두 가지 모델에 어느 정도 일치한다. 양쪽 진영에서 모두 좋은 과학이 수행될 수 있고, 해석들은 각 모델 내에서 일관적일 수 있으나, 서로 매우 다르다. 이 도식 묘사는 그 점을 잘 나타내 준다. 그것은 현재의 여러 상황에서도 사실인데 한 예로 정치에 진보와 보수가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당신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가정(假定)은 성령의 인도와 그 가르침에 복종하는 자세로 성경의 신중하고 정직한 해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진화론자의 가정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일차적 위치에 있는 과학자들의 능력을 불필요하게 높게 평가하는데서 온다. 그들은 전체 중 일부 자료에 의지하고 잘못될 수 있는 논리적 도구를 사용하며 필요할 때 관찰을 위해 그 곳에 있지도 않았던 유한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충분히 과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으나 한계를 갖고 있다. 나는 거의 모든 진화론자들이 단순히 진화론이 그들이 이제껏 배운 유일한 개념이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부터 그들을 지도했던 사람들은 오직 무식한 근본주의자들 (편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만이 창조를 믿는다는 잘못된 개념을 주입시켜 왔다. 그래서 그들은 연구를 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거부한다. 결코 창조에 대한 신뢰할만한 변호를 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진화가 유일하게 적법한 관점이라는 거짓말을 계속한다. 이 오류는 과학을 창조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자연주의(naturalism)로 재정의함으로써 심화된다.


혜성들 : 가정과 해석

두 모델을 흥미로운 사례에 적용해 보자. 우리는 태양을 타원 궤도로 도는 태양계 내의 혜성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혜성이 태양을 한 번 돌 때마다 질량의 얼마를 잃는다는 것을 관찰한다. 혜성의 질량과 시간에 따른 잃는 양을 측정함으로써 많은 혜성들, 특히 회전 주기가 짧은 것들은 그렇게 오래된 것들이 아니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젊은 지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태양계가 젊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태양계가 수백 만년 되었다면 짧은 회전 주기를 가진 혜성들은 모두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혜성들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태양계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 논리인가?

  

그러나 '오래된 태양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혜성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그들은 현재의 혜성이 오래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시인한다. 그러나 태양계는 오래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태양계 바깥에 가상의 혜성 창고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너무 멀어서 망원경으로 볼 수 없고 어떤 감각 도구로 측정할 수도 없는 곳이다. 그들은 이 가상의(실제로는 상상의) 혜성 구름을 이것을 처음 주장했던 사람의 이름을 따라 오르트 구름(Oort Cloud)이라고 부른다. 오르트는 '성간(星間)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간혹 안정한 구름으로부터 물질의 일부를 흐트러뜨려 가까운 태양계로 진입하게 함으로 우리 태양계 내에 계속 혜성들을 공급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그 논리를 제대로 이해했는가?

            가정 : 태양계는 오래 되었다.

            관찰 : 혜성의 수명은 매우 짧다.

            결론 : 젊은 혜성들이 계속해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양계로 들어오고 있다.

'젊은 태양계' 지지자들이 혜성의 나이를 가지고 나오면 오래된 태양계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됐어. 혜성들은 오르트 구름으로부터 계속 나오고 있거든'. 이렇게 관찰을 가정보다 덜 중요하게 취급한다. 그 가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하지 않고는 그로 하여금 상상의 오르트 구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하기는 쉽지 않다. 과학적 관찰 영역 바깥의 사건들, 즉 매우 오래된 일회성의 가정적 사건들을 다룰 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참고: 뉴튼과 파스퇴르와 같은 과거의 신중한 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관찰들은 적법하다. 우리는 항상 과학적 데이터와 자료의 해석, 관찰된 과거와 관찰되지 않은 추론의 과거, 이 차이를 분간해야만 한다. 한편 과학의 많은 선구자들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며 창조론자들이었고 성격적 세계관을 갖고 연구를 수행했다. 그 과학자들의 짧은 전기를 보려면 'Man of science: Man of God' (Henry M. Morris)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불행하게도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전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거의 시인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관찰된 사실인양 역사에 대한 그들의 관점과 해석을 제시한다. 학생들이나 일반 사람들은 소위 '전문가들'에 의해 회유되거나 겁을 먹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한 세계관을 수용해 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를 믿는 진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를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배워왔던 모든 것이다. 만약 창조를 언급하면 조롱 당하거나 불공평하게 평가된다. 그래서 진화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옳다고 증명되지도 않고, 창조는 거부되면서 틀렸다고 증명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에서 그들의 가정과 해석 과정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비교, 평가, 합리적 토론이 가능하다. 자신이 전제를 갖고 있음을 시인조차 하지 않는 사람과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증거를 예측하기

각 모델의 형식적 진술이 완료되면 '예측'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자료에 대한 예측이다. 각 모델의 지지자들은 '만약 나의 가정이 옳다면 우리가 자료를 검토할 때 이런 특징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 증거를 보다 잘 예측하는 모델이 더 옳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어느 것도 궁극적으로 증명되거나 부정될 수는 없다. 우리는 내적 비일관성을 조사해 봄으로써 예측들을 평가한다. 예측부터 검증까지 일관적인가? 일관되기 위해 이차 조정을 필요로 하는가? 모든 자료에 다 들어맞는가? 전혀 부합하지 않게 보이는 사실이 있는가? 보다 근본적이며 직관적인 수준인데 삶의 실제 현장에서 잘 작동하는가? 상식과 일치하는가 아니면 상상적인 요소를 요구하는가? 나는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가지고 살 수 있는가? 목적과 희망을 위한 나의 개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가?  적적하고 실용적인 삶의 철학으로 인도하는가? 이러한 평가 과정을 거쳐 우리는 적절한 모델, 즉 과학과 삶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창조 모델에 대해 3 가지 주장을 한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1)그것은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자료들을 다룬다. (2)그것은 진화 모델보다 분명히 우수한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3)그것은 만족스럽고 잘 적용되는 삶의 기초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가정들

1990년 나는 모스크바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강의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번은 모스크바 대학에서 수백 명의 생물학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강의한 적이 있다. 그 때 모스크바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흥미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학생들은 교수가 가르친 것을 암기하여 시험에서 기억해 내도록 요구받는 반면 러시아 학생들은 전제를 기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당시 러시아인들은 공개적으로 무신론과 자연주의적 과학관을 시인하는 반면 많은 미국 학생들과 교수들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 암묵적으로 자연주의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은 미국인보다도 더 한층 전제를 기초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고, 다른 모델에 직면할 때 겁을 덜 먹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러시아인들은 전적으로 진화론적 사고로 기울어 있었다. 공산주의는 변함없이 무신론에 기초하고 있고 공산주의가 붕괴할 때까지 현 세대는 계속해서 무신론에 대해서만 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진화론은 공산주의 세계관에 과학적 신뢰성을 제공하였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이란의 샤(Shah) 정권 아래 자라면서 공산주의자가 되어 공산주의를 더 알기 위해 1년 동안 모스크바에 유학생활을 했던 한 학생을 기억한다. 그가 오클라호마 대학의 대학원 과정에 있을 때 알게 되었다. 모스크바에서 그가 무엇을 배웠을 것 같은가? 마르크스? 아니다. 레닌? 아니다. 일년 내내 그는 진화론을 배웠다. 진화는 막시즘에 꼭 필요한 기초이다. 진화가 사실이면 나머지 모든 것들이 다 자연적 과정들로부터 나온다. 시간에 따른 진화는 필연적이고, 막시즘은 가장 진화된 사회적·정치적 체계라고 주장된다.


  러시아인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들은 과묵하며 강의 장소에서 거의 금욕적인 경향이 있다. 70년 동안 초청교수 같은 권위 있는 사람들을 매우 존경하여 감정을 보이지 않도록 요구되어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강의동안 나는 어떤 청중의 반응도 관찰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과학의 전제적(presuppositional) 성격과 창조론적 전제의 적법성, 그리고 그에 따른 해석들의 과학적 논리에 초점을 맞춰 말했다. 나는 도식을 사용하여 가정 A와 B는 각각 해석 A와 B를 낳는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오직 하나의 가정과 하나의 해석만 가지고 있는 도식을 그들에게 보여 주면서 이것이 러시아에서 수행되는 방식이고, 그들이 교육받았던 방식이라는 것을 부각하였다. 놀랍게도 방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그 점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 반응에 고무되어 나는 통역자를 통해 '이것은 교육이 아니고 세뇌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의미있는 웃음이 방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 분위기를 더 띄우기 위해 '이것은 당 노선을 따르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들은 웃음을 머금고 자기들끼리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그 도식 속에서 그들의 교육과 자기 자신들을 인식했고 그들이 보았던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시점으로부터 학생들과 교수들은 집중해서 그 자체적으로 그리고 실제 세계와 일관성을 가진 창조론적 세계관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강의를 마치자마자 기자들이 몰려와서 취재를 하더니 나에 대한 기사와 여행 일정까지 프라우다 지에 게재하였다. 이런 일은 이제껏 없었다. 나의 여행은 기드온 모스크바 지부의 일부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그들은 방금 성경을 배로 가득 받았다. 성경은 학생들에게 있어 이제껏 본 적도 없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내 강의가 끝났을 때 창조를 가리키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정보가 제시되었고 학생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창조의 증거가 이렇게 많다면 하나님은 계셔야만 한다. 이 하나님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학생들이 그런 질문들을 갖고 강단에 올라올 때 기드온 협회의 사람들이 상자 속에 든 성경을 배포하였다. 창조가 가진 자유케 하는 힘은 어둠 속에서조차 큰 능력을 갖는다. 반대로 진화론적 사상은 많은 비애를 가져왔다. 막시즘은 진화론과 자연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다윈의 책, 「종의 기원」이 사회 영역에서의 진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과학적 신뢰성을 부여하였다고 생각했고 그의 책 「자본론」을 다윈에게 헌정하였다. 진화의 이름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악들이 특히 막시스트와 전체주의 국가에서 고착화 되어왔다. 오늘날 서구의 많은 사회적 병폐들 또한 그들의 삶과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진화론을 채택한 결과들이다. '생각이 행동을 낳는다' 이것은 과거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도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1993년 중국 베이징에서 2,700명의 중국 관료, 대학생, 공산당 간부들로 가득 찬 군중들에게 연설했을 때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정부는 그리스도인 전문가들을 초청해 기독교가 중국에 주는 가능한 유익들에 대해 연설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집회를 조직하고 강의 제목을 정하고 강사들을 선정하는 일에 참여하였고, 창조의 세계관이 과학에 주는 유익을 토론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몇 달의 준비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정부는 내 강의를 포함해서 많은 발표들을 여러 번 취소하였다. 그러나 매번 내가 그 강연회 준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 때문에 다시 번복되었다. 그들은 내가 말할 것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 했으나, 그것을 취소함으로써 체면을 잃을까봐 꺼려하였다. 마침내 강연회 전날 밤 그것은 다시 취소되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내가 강의할 주제는 그들 세계관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 그렇지만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협상에서 내 이름과 강의 주제가 이미 프로그램 순서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창조, 진화, 기독교 혹은 성경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전공인 지질학 연구에 대해 말할 것을 동의한다면 강연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제의했다. 다른 중요한 주제 강연들이 모두 취소되었고 이것만이 그래도 무언가 말할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나는 1980년 헬렌산의 화산 폭발에 대해 슬라이드로 강의하고 과거의 관찰되지 못한 지질학 사건들에 대한 해석의 함축들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발표에서 과거에 대한 단순한 해석 이상의 것을 포함시켰다. 나는 미국 교육이 초기부터 이학 박사 학위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불완전한지를 보여 주었다. '헬렌산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많은 정보가 나의 교육이나 모든 지질학 교육에서 빠져 버렸다. 이런 새로운 '격변적' 사상들은 지질학에서 매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정보와 학생들의 사고 방법을 규제하는 것은 학생에게나 그 같은 세뇌에 참여하는 나라에게도 해로운 영향을 준다.' 앞줄에 앉아 있었던 공산당 간부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고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들은 매우 화난 것처럼 보였다. 반면 학생들은 기뻐하였다. 그들은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과학자들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그 중에 과학원장도 있었다. 그들이 결코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들에 대해 장시간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비공식적으로 나를 여러 대학들에 초청하였고, 심지어 격변설이 석유와 광물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티벳 지역 야외 탐사에 합류하도록 초청받았다. 검열과 세뇌를 시인한 사람들은 바로 보호해야할 세계관, 이 경우는 진화에 기초한 무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다.

  

우리는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탈피해야 한다. 그것은 종교적 함축을 지닌 과거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이며,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조주 하나님 없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미친 시도이다. 그것은 결국 나쁜 과학, 참 역사의 부정, 그리고 그것을 채택한 백성들과 나라들에게 큰 불행을 가져온다. 하나님이여, 너무 늦기 전에 이 나라가 빛과 논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소서.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젊은 우주와 지구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4



제 125호 [2001. 5~8]

번역 - 조정일

출처 - 창조지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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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D. Morris
2004-07-26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2장. 성경이 말하는 지구의 연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대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데 기꺼이 동의하며, 특히 인류의 기원과 동식물의 기본 유형에 관련된 대진화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편견을 가지지 않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 화석에 의해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왔다는 주장이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생명체는 변이를 통해서 개량되거나 정교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화하거나 소멸한다. 우주만물에 보이는 놀라운 질서와 설계-특히 동식물에서 볼 수 있는―가 지적이지도 않고 방향성도 없는 자연적 과정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린다.

     더욱이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무신론적 설명이며 하나님을 배제하고 있다. 다윈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이용해서 우리가 어떻게 창조주 없이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삶을 정당화하고 있다. 무신론적 세계관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배제한 지구의 역사는 비논리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연주의적 진화론을 그대로 수용하기를 꺼린다. 또한 당연히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믿으며(물론 그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인격적인 하나님과 장래에 있을 상벌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좋아 보이는 충동이나 본능을 삶의 행동지침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 다윈의 자서전(1887년) 94쪽(노톤 도서관에서 재출판)

    그러나 지구의 연대 문제에 대해서는 좀 다르다. 어찌된 일인지 성경을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구의 나이가 50억 년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다. 많은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특별창조 과정'을 이용하여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자연적인 과정이나 하나님이 아주 작은 간섭을 하셨을 뿐이라고 하는 유신론적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암석이나 화석으로부터 연대를 추정하여 수십 억 년에 걸쳐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완수하셨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 결과를 믿을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연대 문제를 언급하는 성경의 족보나 관련 구절들을 아예 무시해버리거나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진정한 인간의 기원을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진정한 인간은 아담 이전의 원시 인류나 유인원과는 달리 영혼을 가진 최초의 생령인 아담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여러 가지 신학적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 중 몇 가지를 논의해보려 한다. 예를 들어 '오래된 지구'를 확신하는 창조론자에게 네안데르탈인- 진화론과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 방법에 따라 오래 전에 살았다고 주장된다-은 말을 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리고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을 닮은 동물일 뿐, 영혼이 없으며 현대 인류와는 관계가 없는 존재이다. 대부분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견해나 기타 비정통적인 결론을 수용하여 지구의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는데, 그것이 그들이 배운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은 이 생령(창 2:7)은 과학자들이 입증하는 현대인류와 일치한다. 다시 말해, 현대 인류는 원시 인류를 포함한 모든 다른 동물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데 그것은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최초의 생령인 아담은 약 15,000년에 10,000년을 가감한 연대에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도 현대 인류의 출현 연대를 비슷하게 보고 있다.' - 휴 로스(Hugh Ross), '창세기 1장 : 과학적 관점', 13쪽.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 아니라 성경에 쓰여진 대로 수천 년이며, 암석과 화석이 성경의 증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성경의 모든 부분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지구의 나이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우리는 그것을 살펴볼 것이다.
 

상반된 두 가지 견해

    지구의 나이가 많다는 견해와 적다는 견해의 차이는 극단적으로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단순히 같지 않은 것이 아니다. 둘을 절충하여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과학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성경은 창조기간이 태양일 6일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에 전 우주가 훌륭하게 창조되었다.

(참조: 태양일이라는 용어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태양일은 지구가 그 축을 중심으로 1회 자전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며, 오늘날 대략 24시간이 걸리고 지구의 자전의 결과로 낮과 밤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창세기 1장에 따르면 빛과 낮과 밤이 첫째 날 창조되었고 태양은 넷째 날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첫 3일 동안에는 태양이 없었다. 성경에 따르면 첫 3일의 길이와 후 3일의 길이에 차이가 없으며, 일주일은 6일과 안식일로 구성된다. 편의상 태양일은 현재의 하루를 지칭하는 것으로 하겠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아담의 불복종으로 인해 곧 사망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후에, 지구 표면은 노아의 홍수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된다. 성경에서 정확한 창조의 날짜를 알 수는 없지만, 수천 년 정도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성경의 족보와 그 외의 곳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모든 기간을 추가한다고 해도(그 타당성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담의 창조는 12,000년을 넘지는 않는다(6.000년이 그래도 가장 그럴듯하다). 그 이상이 되면 성경의 연대가 너무 확장되어 별 의미가 없다.


아담 이전의 시간 경과

    성경을 믿는 많은 학자들이 창조주간의 길이는 태양일 6일이라고 결론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앞에서 밝힌바와 같이, '날'로 번역된 히브리어 '욤'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으며 불특정한 기간을 뜻할 수도 있다. 이 말은 구약에 2000번 이상 나오는데 대부분 태양일을 뜻한다. 애매한 경우에는 성경은 단어의 전후관계, 단어의 다른 용법,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구절 등을 이용, 성경 자체로 해석해야 한다. 다음의 몇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날'이 문자적으로 태양일을 가리킨다고 확신한다.

     히브리어 '욤'이 '6일', '셋째 날' 등과 같이 숫자와 같이 사용될 때는(창세기 1장을 제외한 구약에 약 359번 나옴), 항상 문자적인 하루를 뜻한다. 더욱이 진정한 하루의 저녁과 아침을 뜻하는 '저녁과 아침'이라는 말은 창세기 1장을 제외한 구약에 38번 정도 나오는데 항상 '욤'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히브리어에 성경 기자가 사용할 수 있는 세월이나 불특정한 기간을 뜻하는 단어들이 많이 있는데도 태양일을 의미하기 위하여 유일하게 '욤'이라는 단어가 선택되었다. 이처럼 모든 경우에서 '욤'이 문자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왜 창세기 1장만 예외이겠는가? 이러한 사실에 더해 그 구절의 일반적인 취지와 창세기 2장 1-4절의 요약은 어떤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창세기 1:1에서 2:4절까지는 기록된 바와 같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의 연대기로 의도된 것이다.

    아마도 가장 명확한 구절을 하나님이 손수 자신의 손가락으로 돌판 위에 새기신 것은 사람들이 잘못 해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은 안식일에 지켜야할 안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개역한글판 출애굽기 20:8-11)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일하시고―하나님은 그 기간 동안 온 우주와 지구, 바다,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하루를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엿새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히브리어로 '기억하다'라는 동사는 8절과 같이 명령으로 사용되면 항상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 11절의 '때문이다'는 실제로 발생한 역사적 사건에 적용되는 표현이다 (역자주;개역 한글판에는 '쉬었음이라'로.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에는  '때문이다'로 번역되어 있다. 영어 성경은 주로 for로 시작되는데 이는 because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기간에 있어서 우리의 일주일과 창조의 일주일은 같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같은 수식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장을 사용하고, 돌판에도 똑같이 기록하고, 같은 손으로 기록했다. 단어가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글로 쓰실 수 있다면, 창조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날과 같은 태양일 6일 동안에 완료된 것이다.

    더욱이 '욤'의 복수형인 '야밈'은 항상 문자적인 태양일을 뜻하는데, 창세기 20장 11절을 비롯하여 구약에서 700번 이상 사용되었다. 하나님과 성경 기자가 어떻게 이보다 더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엿새동안에 창조 사역을 마치셨다!

    또한 출애굽기 20:8-11은 다음과 같은 의문, 즉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온 우주를 단번에 창조하실 수 있을 텐데 왜 엿새나 걸렸는가?'에 대해 분명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그 대답은 '우리의 일주일에 대한 원형을 제공하고 하나님이 하신 것과 같이 엿새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고, 제 칠 일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사역을 기념하고 안식하게 하기 위하여'라는 것이다. ]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창조론자들

    성경의 역사에 오랜 세월을 적용하려는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욤'의 분명한 의미를 문자적인 날로 인식하면서도 '과학에 의해 지구의 연대가 오래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성경을 이에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래된 지구'의 주창자인 칼빈 대학의 그리스도인 지질학자 데이비스 영 박사의 주장을 살펴보겠다.

    사람들이 문자적 해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창세기 1장의 해석을 자주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까지의 기독교계의 전반적인 견해는 지구의 나이가 단지 수천 년이라는 것이었다. 지구 자체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 탐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교회 내에서 이런 견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다.3

     데이비스 영 박사는 교회의 역사적 견해가 '젊은 지구 창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는 '젊은 지구 창조론자'로 시작했으나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 유신 진화론자로 '진화'했으며, 현재는 '오래된 지구'와 진화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으니 성경은 과학성과 역사성이 거의 없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진화론을 성경에 맞추어 넣으려고 하지 말고, 과거에 대한 사실을 제시하는 성경의 구절을 우화화하는, '골격 가설(Framework Hypothesis)'을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제 창세기로부터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의미가 아닌 영적 의미만을 주워 모으라고 주장하고 있다.

    데이비스 영 박사는 그의 주장에 대한 요약문에서 '미래에 대한 결론과 제안' 일곱 개를 밝히고 있는데, 그 중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문자주의와  콘고디즘 (concordism, 과학적 개념과 구약이 서로 평행하다는 구약 해석학)은 복음주의자가 버려야 할 실패한 유산이다(291쪽).... 앞으로 창세기 1-11장과 같은 지질학이 관련되는 구절을 다룰 때 복음주의적 학자들은 지구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사실, 사람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 전지구적인 홍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풍부한 지질학적 자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95쪽).    

고대 이스라엘의 문화적, 역사적, 신학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어 창세기 1장에 접근한다면 유익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302 쪽).

우리가 올바른 궤도에 있기 위해서는 창세기 1장과 홍수 이야기를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기록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 창세기는 잘 정의된 사고형식(思考型式)·문학형태(文學形態)·상징(象徵)·표상(表象)을 남기게 되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기록된 고대 근동지방의 문서이다.(303쪽)

     다음으로 휘튼 대학의 생물학자인 패틀 피 티 푼 박사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자. 푼 박사는 창조를 믿지만 하나님이 수십 억 년에 걸쳐서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데, 휘튼 대학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수진 중의 한 사람이다. 성경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보기로 하자.

    과학에 의해서 제시되는 성서해석학적 고려사항 없이 (굵은 글씨로 강조), 창세기 기록을 가장 솔직하게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온 우주와 지구를 태양일 6일 동안에 창조하셨고, 사람은 여섯 번째 날에 창조하셨으며,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사망과 혼돈이 세상에 들어 왔고, 모든 화석은 노아의 가족과 함께 있던 동물만이 살아 남은 전 지구적 대홍수의 재앙의 결과인 것이다.5        

     푼 박사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위의 인용을 보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확실하다. 성경 기자가 문자적 해석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이 확실하고 그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할지라도 성경은 세속 과학에 의한 성경해석학의 범주 내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성경해석학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론을 말한다. 나는 성경 기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분별을 추구하는, 역사적 문법적 성경해석학을 고수한다. 푼 박사는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세속 과학에 기초한 성경해석학을 주창한다.)

    '오래된 지구'의 지지자인 브래들리와 올슨의 주장을 들어보자. 문맥으로 볼 때 성경이 '젊은 지구'를 암시하는 것 같다는 데, 그들이 동의하고 있음에 주의하라. 그들은 '오래된 지구' 사상을 선택했다. 그들은 과학이 '오래된 지구'를 증명했고, 창세기 1장과 출애굽기 20:11이 최근의 지구의 창조에 대해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성경 구절들은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구약에 히브리어 단어 '욤(yom)'과 복수형인 '야밈(yamim)'이 1900번 이상 사용되었다.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을 보면 이중 65개만이 '날'이 아닌 '시대'로 번역되었다. 논쟁의 대상인 창세기 1장을 제외하고 서수와 같이 사용된 '욤'이 200번 이상 나오는데, 모두 통상적인 24시간을 가리키며, 700번 이상 나오는 '야밈'도 모두 정상적인 하루를 가리킨다. 그래서 창조의 6일을 언급하고 있는 출애굽기 20:11이 통상적인 6일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젊은 지구'를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에 의해) 입증되었다. 하여튼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러한 주장들은 공통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불특정한 기간의 중첩이나 연속 또는 중첩과 연속을 겸하는 어떠한 사건을 묘사하려는 의도는 구약 성경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6

     해석의 모든 원칙이 날의 문자적 의미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과학자들(독실한 그리스도인이고 반 진화론자)은 창세기 1장과 창조에 관련된 구절들은 '문맥이 단어의 의미를 결정해준다'는 원칙에 대한 유일한 예외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어떻게 창세기 1장이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시대들의 연속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알았을까? 그러한 견해를 성경에서 찾아내지 않는다. 과학적 데이터에 대한 세속 과학자들의 해석을 보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성경에 긴 세월을 짜맞추기 위해 애쓰며 그들에게도 분명한 의미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과학자들의 견해를 우선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아니고 '말하는 그대로를 의미하는가?'와 '내가 그것을 믿어야 하는가?'이다.

     대부분의 세속 과학자들은 지구가 젊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성경을 하찮게 여기고 합리적인 성경 해석 방법이나 '젊은 지구'를 증거하는 훌륭한 과학적 자료를 접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오래된 지구'가 옳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잘못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 사실을 포용하기 위해 성경과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왜곡하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히브리 학자로서 제임스 바르 박사(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아는 한 세계 유명 대학의 히브리 학자나 구약 학자들은 모두 (1)창세기 1-11장의 기록자는 창조가 우리가 아는 하루, 즉 24시간을 하루로 하는 6일 동안에 완료되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고 있으며, (2)창세기 족보에 포함된 인물들이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성경 이야기상의 후대까지의 연대기를 구성하는 것과, (3)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적이었으며, 방주에 타고 있던 사람이나 동물 외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은 멸절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다른 말로  내가 아는 한, 창조의 하루가 긴 시대를 말하는 것이며, 연도를 나타내는 숫자들이 연대순이 아니고, 노아의 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국지적인 홍수였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교수들은 하나도 없다." 7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구약 학자로 인정받는 바르(Barr) 박사는 성경을 역사적인 의미로 믿는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훌륭한 학자들은 창세기는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창조는 최근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다고 솔직하게 주장한다. 믿지 않는 학자가 그렇게 창세기를 높이 평가한다면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를 얼마나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오랜 연대는 해결책이 아니다

    이야기를 마무리 해보자. 창세기의 날이 긴 시대를 뜻한다고 해도 창세기가 어떤 의미에서든 창조의 역사적 기록이라고 인정한다면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는데 그것은 성경에서의 창조의 순서와 진화론의 진화 순서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 둘은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이다. 창세기와 진화론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지 성경의 심한 왜곡으로 귀결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영 박사는 성경의 창세기에 실질적으로 역사적 정보가 들어있지 않다고 보다 일관성 있게 주장한다.


날(시대)들의 중첩

     그래서 성경을 재해석하여 세속 과학자들의 주장에 맞추려는 '오래된 지구' 주창자인 그리스도인 천문학자 휴즈 로스 박사의 필사적인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그는 창세기의 '날'은 오랜 기간-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수십 억 년이라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을 정도-을 뜻할 뿐만 아니라 중복되었다고 주장한다. 중첩이라고 하는 것은 날이 그 날의 전후의 날과 겹쳐있다는 것이며, 이를 적용하여 성경의 창조의 순서와 진화 및 지질 시대의 연대에 따른 생물의 출현순서의 명백한 불일치를 해결한다.

     예를 들면 성경은 과실을 맺는 나무가 제 3일에 일찍 창조되었으며, 바다 생물과 무척추 동물은 제 5일이 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순서는 해양 무척추 동물이 진화된 훨씬 후에 과실 맺는 나무가 나타났기 때문에 진화론과는 반대이다. 그러나 제 5일은 제 2일부터 제 6일까지, 제 3일은 제 2일부터 제 5일까지 확장되어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순서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조작이 가능하다면 과거를 어떤 식으로라도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아래 그림을 볼 때 그것이 성경을 믿는 사람에게 적대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영 박사도 비슷한 설을 제안했는데, 그의 중첩이론은 모순이 좀 적다는 것 외에 더 큰 의미는 없다. 그는 창세기의 역사성을 포기함으로써 더 이상 이 이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을 진화론 및 '오래된 지구'와 조화시키기 위해 여러 극단적인 노력을 예시한다. 로스 박사는 성경이 틀림없이 '오래된 지구'를 말하고 있으며 성경이 빅뱅 및 '오래된 지구'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확신했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단했다고 말한다. (현재  많은 세속 천문학자들이 관찰결과에 더 잘 부합되는 다른 이론을 찾기 위해  빅뱅이론을 폐기하려고 하는데도, 현재 그는 적극적으로 빅뱅을 하나님의 창조의 수단으로 변론하고 있다.)


     세속 과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견해가 무엇이든 간에 일부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과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그 견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과학이 어떻게 틀릴 수 있는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동료들에게 환영과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과거를 재구성하는 과학자들의 능력을 과대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행하고 있는 과학의 견해를 따르기를 주장한다.


     불행하게도 그 정도로 그치지 않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 둘을 결합한다. 진화론과 '오래된 지구'와 관련해서는 유신론적 진화, 점진적 창조, 간격 이론, 날-시대 이론, 골격 가설 등의 모양을 띠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성경 쪽이 상처를 입고 과학자들의 견해에 굴복하도록 요구받는다. 과학자들이 그들의 견해를 바꾸면 성경이 재해석되는 것은 물론이다.

     성경은 진리이며, 불완전한 과학적 데이터가 성경의 뼈대 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경을 전제로 하여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증거에 의한 인도를 받음으로써 더 좋은 과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과 과학적 관찰이 난해한 구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성경과 과학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켜 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완전한 이해에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변화하는 과학의 견해에 의해 인질이 되는 것을 막아줄 수는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견해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과학이 성경을 입증해줄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성경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적 견해가 성경을 해석해줄 것으로 기대해서도 안 된다- 성경은 성경 자체로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잘 작용하고, 증거에도 잘 들어 맞아야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이다. 성경과 과거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이용하여 과학적 데이터를 해석하자.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자. 그렇게 할 때 그 증거가 성경과 부합될 뿐만 아니라 그 증거가 성경을 지지하고 우리의 신앙을 격려할 것이다.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젊은 우주와 지구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4



127호 [2001. 9~10]

번역 - 홍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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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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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D. Morris
2004-07-26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3장. 대조되는 2가지 견해


 휴 로스(Hugh Ross), 푼(Pun), 데이비스(Davis Young)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지구’와 ‘오래된 우주’의 견해는 성경에 기록된 창조의 개념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 대폭발 개념(이 개념은 요즈음 점점 더 비난을 받고 있는데)에 의하면, 우주는 약 100억에서 200억 년 전에 폭발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전 우주 속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대략 전자 크기의 초밀도의 “우주 알(cosmic egg)”로 응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몇몇 우주론자들은 그 “알” 조차도 “진공 속의 양자역학적 변동(fluctuation)”으로서 기원한다고 주장한다. 즉 ‘무에서의 진화’ 라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불안정 상태가 되어 알이 폭발하였다. 처음에는 매우 순간적인 “차갑고 큰 쉿소리(cold big whoosh)' 그리고 후에는 ”뜨거운 대폭발(hot big bang)', 처음에는 소립자들을 만들어내고 뒤에는 몇몇 입자들이 수소(그 때에 몇몇은 헬륨으로) 가스 원자들로 융합되었다. 수소 가스는 폭발에 의하여 급속하게 외부로 팽창하는 대신에 별들과 은하, 그리고 고요하게 움직이는 물질들을 거대한 “덩어리들'로 농축한 초대형의 은하의 덩어리에 합병되기 시작하여 우주 공간 대부분을 완전히 텅비게 하였다.


  별의 내부에서 수소와 헬륨이 더 무거운 원자들로 융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별 가운데 몇 개는 신성(nova)과 초신성 폭발을 겪으면서 원소들을 우주 공간으로 방출하였다. 결과적으로 폭발된 별들의 찌꺼기들은 더 무거운 원소들의 소규모 농축물(concentrations)을 포함하는 “2 세대' 별들이 되었다. 그런 과정은 적절한 시기에 반복되었다. 우리의 태양은 ”3 세대“ 별로 간주되고, 행성과 사람들은 남겨진 행성 사이의 우주진(star dust)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우주진은 태양의 중력에서 빠져 나와 궤도 안에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우리의 태양계는 약 50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생명체는 대략 30억 년 내지 40억 년 전에 비생명체인 화학물질에서 우연히 발생하였고, 다세포 생명체는 약 10억 년 전에 발생하였다. 생명체는 계속 복잡해져서, 100만년에서 300만년 전 무렵에는 인간이 진화하기에 이른다. 현대인이 나타나고 문명 시대가 된 것은 불과 몇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이것이 우주에 대한 대략적인 시간표이다.

 

성경과 연대기


  성경은 단지 몇천 년 전에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과 세상이 문자적인 의미의 6 일 만에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날짜는 성경 연대기에 주어진 시간 간격들을 합산함으로써 얻어진다.

  마소렛본(Massoretic text)에 기초한 모든 영어 성경들에서 알 수 있듯이, 창세기 5 장에 주어진 연대기의 숫자들을 합산하면 창조에서 홍수 때까지는 불과 1656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연대기는 아들의 탄생을 통해서 족장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아들이 탄생하던 때의 각 족장의 나이, 아들이 탄생한 후 아버지가 살았던 년 수, 그리고 그 둘의 합산으로 아버지의 죽었을 때의 나이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보수적인 성경학자들은 특정한 해의 숫자와 생일들의 가능한 반올림까지 고려하여 합계 1656년이 정확하게 창조에서 홍수 사이의 시간 간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성경 내의 어느 곳에도 세대가 실종되었다는 암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주어진 숫자를 정확히 덧셈하여 나온 결과이다.


  예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사용된 히브리 성경의 희랍 번역서인 70인역(Septuagint Text)은 창조에서 홍수 사이의 시간 간격이 대략 2300 년이라고 인정했다. 두 견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오래된 지구/젊은 지구 논쟁에서는 그 차이는 사소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참고 : 지금의 영어 구약성경이 번역되어 나온 마소렛본은 여러 다양한 사본이 있는데, 여기에서 창세기 5 장의 연대기와 똑같은 숫자를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70 인역은 여러 가지의 사본이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70 인역에 나오는 연대기의 세대를 최대로 늘려 잡으면 창조에서 홍수까지 최대 2402 년이 되고, 각 세대를 최소로 줄여 잡으면 1307 년의 시간 간격을 갖게 된다. 가장 믿을만한 70 인역 사본들은 2262 년을 제시한다. 그리스도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 역사학자인 요세푸스는 가장 믿을만한 70 인역 사본의 수치를 따랐다. 다른 고대 필사본인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은 1307 년의 간격을 제시한다. 어떤 사본을 선택하든 창세기 5 장의 연대를 더 늘려 잡아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주 1: Paul J. Ray. '창세기 5장과 11장의 연대기에서의 다양한 사본들의 진화“, 기원

*주 2: 앞에 든 저서


노아에서 아브라함


  다음의 두 시간 간격은 훨씬 덜 분명하다. 창세기 10 장에는 노아의 세 아들, 야벳(2-5절), 함(6-20절), 셈(21-32절)의 초기의 후손들의 계보가 나와 있다. 이 계보는 역대상 1:8-23 에서 똑같이 반복된다. 창세기 11 장에는 셈의 계보가 자세히 기록되었으며,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시간 간격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나온 이름들은 역대상 1:24-28 에서 정확하게 반복된다. 창세기 11 장의 숫자들을 더하면 홍수에서 아브라함의 탄생까지 292 년이 된다. 창세기 11장의 합계는 창세기 5 장의 합계처럼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참고 : 창세기 5 장과 마찬가지로 창세기 11 장에 관한 70 인역의 연대표는 가지각색이다. 홍수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시간 간격은 최소 292 년(마소렛본과 일치한다), 최대 1513 년이 된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본의 연대는 942 년이다. 이 수치는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Pentateuch)에 의한 연대와 일치하고 요세푸스가 제시한 연대 952 년과 비슷하다.)


  누가복음에 나온 것과 비교할 때,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계보에서 한 번의 불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3:36 에서 “가이난(Cainan)' 이란 이름이 셈의 손자로서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그 차이점에 대하여 좋은 설명을 했다. 가장 그럴듯한 것은 누가복음을 필사할 때 생긴 최근의 실수로 한 서기관이 누가복음 3:37 에서 발견된 ”가이난“이란 이름을 실수로 누가복음 3:36에 반복하여 기록하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우리는 시간 간격이 확실하게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의 계보 사이에 아무리 큰 시간의 간격을 부여한다 할지라도 (예를 들어 아버지에서 아들까지 대신에 증조할아버지에서 증손자까지) 그 합계를 수천 년 이상으로 늘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견해와 성경적 견해 사이의 불일치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아브라함에서 다윗


  아브라함부터 성경과 고고학에 잘 나타나 있는 연대, 즉 다윗의 시기까지의 시간 간격의 결정은 약간 주관적이다. 대부분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기원전 2000 년경에 살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출애굽기의 연대와 사사기의 시기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훨씬 짧거나 혹은 훨씬 오랜 시간도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늘어난 연대기가 성경의 기록과는 달리 세속적 고고학의 척도에 더 맞는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더 긴 시간의 간격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수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세속적인 연대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확한 연대에 대해서 불확실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성경의 “젊은 지구”의 원칙이 이곳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모든 가능한 긴 시간을 수용하기 위하여 늘리고 늘린다 할지라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는 무시할 정도인 몇천 년만큼 증가할 뿐이다.

  다음과 같이 “가장 가능성 있는” 연대의 범위를 도출해 봐도 이 모든 것은 “젊은 지구”의 위치에 해당한다.

        창조에서 홍수까지 -               최소 1656년에서 최대 2400년

        홍수에서 아브라함까지 -        최소 300년에서 최대 4000년

        아브라함에서 그리스도까지 -  최소 2000년에서 최대 4000년

        그리스도에서 현재까지 -        최소 2000년에서 최대 2000년

        전체 연대의 범위 -                 최소 6000년에서 최대 12000년

 

  나는 개인적으로 지구의 진짜 나이는 대략 6000 년 정도라고 확신하다. 그러나 정확한 진술을 위하여 우리는 대략의 연대 범위로서 지구의 나이를 제시해야 한다. 창조/진화, 젊은 지구/오래된 지구에 대한 우리의 논의에 관한 한, 심지어 12000 년의 지구도 젊은 지구임을 명심하라.

  그러나 진화에서 요구되는 수십억 년의 역사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만약 성경이 옳다면 오래된 지구의 개념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역 또한 성립한다. 만약 지구가 오래되었다면 성경이 틀린 것이다. 문서와 기록된 역사를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만이 사실이다) 통해서 볼 때 오래된 지구와 젊은 지구의 두 견해 사이에서 일치하는 부분은 현대 문명이 겨우 몇천 년 전에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두 견해의 비교


  젊은 지구와 오래된 지구에 대한 두 견해는 예측에 있어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자료를 통해 그 견해들을 검증할 수 있고,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양 진영은 진짜 역사 즉 기록되어 있는 인간 역사의 연대에 관하여 의견일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전 시대는 지질학의 영역에 속해있고, 우리가 보았듯이 암석들은 시간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지 못한다. 암석들은 그들의 나이가 얼마인지를 말해주는 꼬리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암석들은 일정한 밀도, 화석 내용물, 미네랄 동위원소 비율 등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지구 옹호자와 젊은 지구 옹호자 모두 바위를 관찰하여 그것의 현재의 성질에 대해서는 똑같이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관찰할 수 없는 과거를 토론할 때, 이런 사실들은 역사에 대한 각자의 견해 속에서 해석되는 것이 틀림없다. 암석의 나이나 기원의 방법에 대해 제안하려고 할 때, 과학자들은 다음의 질문에 답하려고 애를 쓴다. “관찰된 것이 현재의 방식으로 관찰되기 위하여 관찰되지 않은 과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이러한 노력을 ”역사적 재구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자료수집과 분석은 경험과학이다. 그러나 아무리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재구성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암석과 화석을 오래된 지구의 견해로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암석과 화석들의 연대는 필요에 따라 다르게 할 수 있다. 사실상 암석은 오래된 지구 시나리오의 어느 수치로도 맞아 떨어지게 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이 1900 년에는 지구의 나이가 고작 1억년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그것의 50 배 만큼이나 오래된 연대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암석의 나이에 대한 증거가 무엇이든지 “정치적으로 결정된” 해석이 무엇이든지 간에 암석은 연대에 맞추어 해석될 수 있다.


(참고 : 나에게 구체적인 사항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대폭발 이론을 대체하기 위하여 천문학에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사상들은 필연적으로 무한하게 오래된 우주를 제안할 것이며, 지구의 “나이”도 몇 번의 주요한 수정을 거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암석이란 어떤 새로운 나이도 수용할 만큼 충분히 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석들은 또한 젊은 지구의 견해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암석들은 어느 것과도 부합된다. (내가 믿기로는 오래된 지구 견해에 덜 맞아 떨어지지만 말이다). 오래된 지구의 생각과 젊은 지구의 생각이 지질학적 관찰에 의하여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두 가지 모두 반증될 수도 없다.

  내 자신을 포함하여 성경을 믿는 많은 창조론자들은 젊은 지구의 견해를 지지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창조가 오직 수천 년 전에 이루어졌으며, 지구의 표면이 전세계적인 노아 홍수의 결과로 재구성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역사와 일치한다면, 이런 진리를 부인하는 역사의 재구성은 분명히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것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없을 때, 어떤 것이 자료에 더 잘 부합하고 더 정확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견해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두 가지 견해를 비교할 때 창조/홍수/젊은 지구의 모델이 자료에 매우 잘 맞을 뿐 아니라, 오래된 지구/진화론적 모델보다는 자료에 더 적합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역사에 대하여 완전히 자연주의적인 견해를 추종하는 자들은 아마도 오래된 지구 모델을 채택할 것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런 자연주의적이고 비성경적이며 매우 열등한 사고방식을 채택해야 할 강박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그 대신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주 옛날, 매우 먼 곳으로 추방시키고, 그분을 소모적이고 선혈이 낭자한 그야말로 전혀 하나님답지 않은 진화과정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매우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성경과 더불어 추론을 시작하고 성경적 관점으로 과학적 자료를 해석한다면, 우리의 해석이 과학적으로 지지를 받을 뿐 아니라, 진실된 역사를 부인하는 관점에서 파생된 것들보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고 직관적으로 옳고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문제의 중요성


  매우 흥미롭게도 진화에 반대되는 창조에 대한 과학적 견해는 젊은 지구 이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약간씩 변형된 후손을 통하여 왔다고 확실하게 믿는 것은 아니지만 창조주 하나님이 각각의 식물과 동물의 기본적인 범주를 특별하게 창조했다고는 분명하게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래된 지구의 입장을 수용하여 왔다. 그들은 “창조론자들”이지만, 오래된 지구 옹호론자들이다. 불행히도 이런 견해는 성경적으로 볼 때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관점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죄 이전에 사망과 피흘림이 있었겠는가? 공룡과 지금은 존재하지 않은 다른 동물 유형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더 나아가 이런 문제에 대한 타협은 세상의 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엄격한 자연주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협해서 그리스도인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없다.

 

  한편으로 오래된 지구의 개념은 진화에 있어서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진화가 헤아릴 수 없는 돌연변이들과 우연한 환경적 변화 등을 포함하여 거의 불가능한 과정이라는 점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 진화란 아주 오랜 시간이라는 안개에 싸일 때만 가치를 갖게 된다. 만약에 지구가 수십억 년의 나이라면 있을 법하지도 않은 사건이 발생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된다. 혹은 그렇다고 생각된다.

  잘 알려진 진화론의 대변인인 죠지 왈드(George Wald)의 믿기 어려운 인용문을 보자:


  '시간은 사실상 구성(플롯)의 영웅이다. 아주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고, 가능이 개연성으로, 개연성이 확실성으로 된다. 사람이 단지 기다리기만 한다면 시간 자체는 기적을 일으킨다.' - George Wald: '생명의 기원“ [생명의 물리학과 화학]에서, 1955, 12쪽


  시간은 모든 진화의 문제들을 그 밑으로 쓸어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양탄자의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그 증거를 사실적으로 바라본다면 시간은 기적을 일으키지도 못하며, 진화는 실제적으로 전혀 일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화석 기록은 동물의 어떤 기본적인 범주가 다른 어떤 기본적인 범주로부터 진화되었다거나 어떤 범주로 진화되어 갔다는 증거를 보여 주지 못한다. 통계의 법칙에 의하면 바람직한 돌연변이란 거의 불가능하여 그런 일은 수백만년, 아니 심지어는 200 억 년 동안에도 일어날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 과학의 법칙은 진화적 통합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물체계의 저하(degradation)를 지지하기 때문에 진화를 절대적으로 배제한다. 더 많은 시간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멸종과 더 많은 해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할 것이다. 즉 진화가 아니라 퇴화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진화의 영웅이라기보다는 진화의 적이다.

 

  물론 지구의 나이가 단지 수천 년이라고 하더라도 진화는 더욱 더 어리석은 것이 된다. 이처럼 오래된 지구의 개념은 진화론적 관점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젊은 지구에 대한 믿음이 식물과 동물이 특별히 창조되었다고 믿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한다면 젊은 지구를 믿는 것은 진정한 성경적 관점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오래된 지구를 지지하는 ”창조론자들”의 영적 구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성경 그리고 과거에 대해 일관성 없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기능적으로 성숙한 창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그 분은 적어도 만물의 형성에 관여된 역사 또는 과정의 외적 모습(superficial appearance)을 갖도록 만물을 창조하셨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과일 나무를 창조하셨을 때 과일 나무들은 이미 나무에 과일을 가지고 있는 성숙한 과실수였다 (창 1:11). 하나님이 동물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헤엄치고, 날고, 걸을 수 있었다 (창 1:14-25).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아담은 아기나 태아가 아니라 완전히 자란 성숙한 남자였다. 실제로 이전의 역사에 대한 외적 모습을 갖지 않은 기능적인 유기체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태아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서 “외적”이란 단어를 강조하는데, 왜냐하면 만약 현대 과학자들이 아담이 창조되었을 직후에 아담을 조사할 수 있었다면, 그들이 과연 아담이 방금 창조되었으며 아담의 나이를 25살 정도로 분간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들은 그의 치아의 부식, 뼈의 석회화, 동맥의 콜레스테롤 그리고 결함이 있는 어떤 유전인자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의 깊게 조사해 본다면, 아담이 그 상태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금 창조되었어야 하는 것이고, 아담은 나이로 인한 퇴화의 어떤 객관적인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외적으로 아담은 성인처럼 보인다. 그는 기능적으로 성숙하지만 단지 몇 분의 나이를 먹었다. 아마도 식물과 동물의 경우에도 이와 동일하게 적용되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별들도 시간을 측정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구에서 볼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창 1:14-19).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지구로 오고 있는 빛으로 창조되어 즉시 도착하였거나, 빛의 속도가 처음에는 거의 무한하였거나, 별들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거나, 우주의 구조가 변하였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빛이 여기에 어떻게 왔든지 간에, 태양과 별들로부터 온 빛은 창조 때에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지구에 있어야 했다.


(참고 : 휴 로스(Hugh Ross)와 같은 오래된 지구/우주 옹호론자들은 비록 성경이 별들은 창조 4일째에 창조되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별들이 지구보다 수십억 년을 앞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맥과 히브리 문장 구성(construction)은 창세기 1장의 문자 그대로의 이해가 더 바람직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점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별 형성과 창세기 1장”  ICR에서 나온 ‘Impact No. 251’(May 1994, by Jim Stambaugh)를 참조하라).


  만약 하나님이 별을 창조하실 수 있다면 빛도 창조하실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방금 창조된 과실수에 익은 과일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과일 맺는 과실수의 창조는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이미 여기에 있는 빛을 가진 별들의 창조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의 창조능력을 이해한다면 이런 것이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몇몇 사람들이 비판하듯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성숙한 피조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더 나아가서 그분은 우리가 판단의 실수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는 것에 대비하여 창조하신 때를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사실상 그분이 최근에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실제로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 오래 전이라면 그분이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속이는 것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을 보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실수를 감히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창조 주간은 모든 면에서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창조주께서 더 이상은 사용하지 않을, 그리고 분명히 그 자체로는 발생하지 않을 창조의 과정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심지어 그분의 창조의 작업이 “끝났다”고 더 이상은 진행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중력과 같은 몇몇 인식할만한 과정들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현재의 경험으로 그 과정들을 제한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이야기가 우리가 현재 경험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그것에 관하여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주가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창조의 결과들을 연구할 수는 있으나 실제의 창조 사건과 거기에 이용된 과정들을 연구할 수는 없다.

 

  창세기 1장 끝에서 하나님은 그의 모든 창조가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였다.(창 1:31) 하나님께서 그렇게 좋다고 선언하기 위해서는 모든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목적들을 성취할 준비를 갖추고 기능적으로 성숙한 것이었어야 한다. 오늘날 창조의 결과들을 연구하면서 증거가 성경의 기록들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들이 창세기를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창세기를 지지하고 확인해 주고는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의 사실들은 성경이 정확할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에 매우 잘 부합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의 표면적 외모가 처음부터 창조된 상태에 접근하지 못한 사람들 또는 그것을 연구할 인내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의하여 잘못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이 일이 완성되었을 때 그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말하셨다. 오늘날 몇몇 과학자들은 사물의 연대를 밝혀보려고 시도하는 중에 창조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진리를 부인하면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 만약 사람이 기능적으로 성숙한 창조의 가능성을 부인한다면, 그 또는 그녀는 아마도 기능적 성숙과 나이를 혼동하게 될 것이다.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제 128호 [2001. 11~12]

번역 - 조정일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dating/d4/d4/2002_128_1.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66

참고 :

Michael J. Oard
2004-07-26

진화론적 긴 연대론의 가상적 일관성


진화론 중에서 가장 도전적인 면은 추론적 긴 지질연대에 대한 확고한 일치성이라 할 수 있다. 진화론자와 긴 연대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당신이 하나의 연대측정법은 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독립적인 방법들이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면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사성동위원소법과 화석연대는 대개 일치한다.”

”진화는 유기물이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왔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어떻게 그토록 정밀한 패턴을 믿지 않을 수 있는가?”

”모든 공룡들은 백악기 말기에 죽었다.”

이러한 설명들이 설득력 있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구도를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 일관된 일치성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일관성(일치성)이 있는 연대'는 오차나 변동범위가 매우 큰 거짓자료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거의 모든 진화론적 자료들이 발표 전에 내부적으로 조정된 것으로 확신한다.

'흔적화석(trace fossils)'에 대한 <사이언스 뉴스>지(159, 362-364, 2001)의 기사를 읽었을 때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되었다. 그 기사에서 필자인 퍼킨스(Sid Perkins)는 미지의 유기물체에 의해 구멍이 뚫린 연체동물화석의 껍질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였다.

”어떤 해양화석들은 5억 년 이상이 된 구멍을 가지고 있었지만, 많은 고생물학자들은 이들을 육상동물의 증거라고 말하지 않고 모두 함구했다고 캘리포니아 대학(UC Berkeley)의 고생물학자인 아로노스키(Aronowsky)는 증언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달팽이도 그와 비슷한 구멍을 뚫지만, 달팽이는 1억년까지 진화한 동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멍을 뚫는 연체동물들간의 연대적 차이는 동일과정적 연대로 약 4억 년이다. 이러한 수치는 진화론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생물이 구멍을 뚫었으리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에게는 그러한 자료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이 모두 대홍수 이전에 살았으며, 홍수기간에 매장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구멍은 대홍수의 전이나 후에도 나타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연대측정법은 믿을 만하지 못하며, 표준화석에 맞도록 조작될 수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루베나우(Marvin Lubenow)의 '유골 논쟁(Bones of Contentions 1992)' 이라는 글에 잘 소개되어 있다.

'연대측정 놀이' 라는 부제의 이 글은 4 가지 방사성동위원소법과 두 표준화석법(코끼리와 돼지)에 의한 실험수치들이 어떻게 리키의 상상적 유인원인 KNM-ER 1470 을 260만 년 전의 것으로 조작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고생물학자들은 그토록 현대인과 닮은 유골이 그렇게 오래되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진화론적 추리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들은 진화론을 지속시키려고 해골과 관련된 화산의 응회암(凝灰岩)을 갖다 붙이고 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이 유골이 160만 년 전의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들끼리 동의할 수 있는 연대치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들이 의견을 통일하지 못했던 10년간, 어떤 것은 2억3천만 년을 나타낸 것도 있었다.

이처럼, 여러 측정법들이 서로 다른 수치를 나타내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법에 대해 우드모레프(John Woodmorappe)는 <현대적 측정방법의 신화>(1999)에서 진화론자들이 방사성동위원소법에 의해 '일치된' 연대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수없는 조작을 하여 왔다고 지적한다. 내가 미국 북서 지역의 지질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을 때, 맥키((B. McKee)가 쓴 'Cascadia: The Geological Evolution of the Pacific Northwest'(1972) 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누구나 연대를 측정하는 방사성동위원소법이 종전의 측정법들을 진부하게 만들 것이라고 상상하겠지만, 이 새로운 방법은 재래의 측정법들(표준화석법)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완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지질학자들은 기계적 측정된 결과보다는 상층부로 갈수록 지층이 젊어진다는 원칙과 진화이론에 더 신뢰를 두고 있다. 만일 실측 결과가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나오면, 그들은 그 실험장치에 무언가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 추리한다. 그래서, 동의할 수 있는 자료들만 선별한다는 말이다.”

나는 다른 책(M.J. Oard, 1997)에서, 공룡이 어떻게 처음에는 트라이아스기 초기에 발견되었다고 하다가 백악기로 재조작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러한 조작으로 일반인들은 진화론자들처럼 공룡이 백악기 말기에 죽었으리라고 상상적으로 믿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는 순환논리적 형태의 많은 사례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다음, 여기에 새로운 선택된 자료를 덧붙여 그러한 가설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특히 저명한 진화론자의 가설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이러한 편견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과학자들로 하여금 자료 속에 나타난 불연속성에 대한 증거를 무시하도록 오도하게 만든다. 반면에 연대의 동일성과 기존의 학설들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이러한 지속성이 진실처럼 보이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진화론적 동일과정설에 근거한 긴 연대론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화석수로부터 탄소-14법에 의한 과장되게 부풀려진 연대 : 새로운 메카니즘(p43-44) 죤 우드모래프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탄소-14법에 의한 연대는 나무가 화산 등에서 대기 중에 방출한 ”아주 오래된 탄산가스”를 흡수할 때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주장은 나무의 오염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탄소는 나무섬유 속에 견고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효과가 탄산암의 '오래된 탄소'를 연체동물이 흡수할 때 만들어지는 상상적인 탄소-14 측정법에 의해서도 오랫동안 인정되어 왔다. 그밖에 창조론에서는 탄소-14가 창조 후에 만들어졌고 대홍수시에 인공적으로 오래된 탄소-14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대홍수 후에 탄소-14가 없는 화산 유래의 탄산가스의 방출 확산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체계적으로 나무 나이테의 탄소-14 연대를 더욱 증가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해석한다.

 

.전혀 다른 알의 모습들(Eggceptionally different) (pp 76-78). 마크 아미테이지

공룡알과 현재의 파충류 및 조류의 알을 전자현미경으로 비교한 바 공룡알은 매우 독특함을 보여주었다. 공룡알은 매우 두텁고 결정형이며, 표면이 얽혀져 있다. 그러나 파충류나 조류의 알은 매우 얇고 부드러우며, 특히 날짐승의 알은 콜라겐이나 섬유소의 망상구조로 되어 있다. 만일 공룡이 도마뱀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 알은 공룡의 것과 비슷해야 하나 그런 경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조류가 공룡에서 진화했다면, 형태학상 조금이라도 공룡과 닮은 점이 있어야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서로 관련성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척추에 관한 문제들 ; 어떻게 다윈주의는 연구자들을 오도하였나?(p 79-84). 제리 버그맨

다윈주의자들은 척추의 조건에 대한 연구기술을 오도하도록 해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사람이 네 발로 기어다니다가 직립보행을 했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개발된 방법들은 진화론자들이 개발했던 옛 방법들과 매우 다름을 소개하고 있다.

 

.천왕성의 에너지균형: 특별창조에 대한 암시 (p85-91)  죠나단 헨리

천왕성의 열학적(熱學的) 거동은 토성, 해왕성, 명왕성 등과 다르다. 다른 행성들보다 매우 적은 고유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순수한 고유 에너지는 아마도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최신 자료에 의해 특별창조를 증거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Paleokarst 의 수수께기가 풀리다 (p 105-114).  에밀 실베스트루

Paleokarst 또는 묻혀진 옛 지형에 대한 개념은 선캄브리아기로부터 중생대에 이르는 모든 시대의 평형암석에 대한 해석방안으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은 신뢰성이 없다. 고대에 석회암층이 침식한 근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초창기에 가용성 암석 속에 갇히게 된 그 어떠한 초기의 지형들도 수백 수천만 년간이나 보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의 카르스트 활동에 의해 지금과 같은 형태가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최근의 카르스트형성 과정들은 지하 1,800m의 가용성 암반구조를 뚫고 들어가 파괴할 수도 있다.

 

.단백질은 우연적인가 설계된 것인가? (p 115-127). 로열 트루먼, 마이클 헤이시그

진화론적인 컴퓨터 모델들은 자연계가 연속적인 적자선택의 방식으로 마침내 정밀한 유전물질을 만들어냈다고 추리한다. 그러나 그러한 다윈주의적 과정이 성립하려면 새로운 유전물질은 반드시 그것의 합성에 저해적인 통계학적 장애과정을 해결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컴퓨터 실험결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제 129호 [2002. 1~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dating/d4/d4/2002_129_8.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69

참고 :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창조론 연구도표


      이 도표들은 그 동안 많은 분들께서 연대측정 및 진화와 창조 모델간의 기본적 입장에 대한 일부 혼동과 오해가 있었으며, 또한 창조론 연구에 대한 기본적 자료가 확립되어 있거나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 많은 불편을 겪은바, 많은 요청이 있어 자료를 수집 정리한 것입니다.

여러 제약으로 인하여 충분한 자료를 수집하지 못해 부족한 감이 많으나, 차후 더욱 보완하기로 하고 아무쪼록 이 도표들이 성서적 창조론을 확증해줄 수 있는 귀한 증거와 논문들이 속속히 발표될 수 있도록 하는 조그만 연구 자료가 되기를 빕니다.(참고문헌은 page 12) 

표Ⅰ. 진화모델과 창조모델의 기본입장 비교  

항 목

기 본 입 장

진 화 모 델

창 조 모 델

자연법칙의 구조끊임없이 변화함불변함
은하계변화함일정함
항성의 구조다른 형태로 변함불변함
타(他) 천체형성됨붕괴함
암석형성의 유형「시대」마다 다름모든「시대」에 걸쳐 유사함
생명의 출현무생명체로부터 진화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기인함
생물의 분류연속적불연속적
생물의 출현새로운 종류가 출현함새로운 종류는 출현하지 않음
생물의 돌연변이유익함해로움
자연도태창조적 과정종속유지 과정
지구연령아주 오래됨대체로 젊음
화석의 기록무한히 많은 변이를 보여줌일정한 간격 존재
인간의 출현원숭이와 인간의 중간형태중간형태가 아님
인간의 특징동물보다 우수본질적으로 동물과 구별
문명의 기원완만하고 점진적인류와 함께 시작
종교적 입장무신론(유물론)적, 범신론적하나님의 창조

 

표Ⅱ. 진화론적 균일설과 성서적 창조론 비교 

항 목

균 일 설

성 서 적 창 조

물질태초부터 존재태초에 하나님이 창조
지구과 태양·별태양과 별이 지구보다 먼저 있었음태양과 별 이전에 지구가 있었음
바다와 육지육지가 먼저 있었음바다가 먼저 있었음
대기권과 수권맞닿아 있었음두 수권 사이에 대기권 존재
최초의 생명체바닷속 유기물지상 식물
식물과 고기물고기가 먼저 있었음과실나무가 먼저 있었음
새와 곤충곤충이 먼저 있었음곤충(기는 것) 이전에 새들이 있었음
태양과 식물지상식물 이전에 태양이 있었음태양 이전에 지상식물이 있었음
조류와 파충류파충류가 먼저 있었음기는 것 이전에 새들이 있었음
남자와 여자여자가 먼저임(유전학적으로)남자가 먼저임(창조에 의함)
사람과 비빗물이 먼저임사람이 먼저임
창조과정계속중임끝났음
투쟁과 사망인간 이전부터 필연적임인간이 투쟁과 사망의 원인이 되었음
우주형성무한정한 기간동안 진화6일 동안에 창조됨
생물계진화하였음종류대로 창조

 

표Ⅲ. 균일론적인 관점에서 본 지구연령 

※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이 계산은 폐쇄계와 일정한 비율과 애초에 수반된 구성 물질이 없었던 것으로 가정한 계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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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과 정

지구의 측정나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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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중으로의 He₄의 방출
우주로부터의 운석진의 유입
지구상으로의 방사능 유입
지구 총인구수의 증가
강에서 대양으로의 우라늄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나트륨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니켈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마그네슘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실리콘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칼륨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구리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금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은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수은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납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주석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알루미늄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탄산염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황산염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염소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의 칼슘 유입
대륙에서의 나트륨 용해
대륙에서의 염소 용해
대륙에서의 칼슘 용해
강에서 대양으로의 침전물 유입
육지에서의 침전물의 침식
지구 자장의 붕괴
석유를 유출하는 유압 측정
중성자 포획에 의한 방사성 납 생성
중성자 포획에 의한 방사성 스트론튬 생성
천연적 잔유 고(古)자력의 붕괴
전캄브리아기 나무의 C14의 붕괴
최초에 납을 지닌 우라늄의 붕괴
아르곤을 지닌 칼륨의 붕괴
대양으로의 물의 유입

1750~175,000년

매우 적어 산정불가능

5,000~10,000년

4,000년 이하

10,000~100,000년

260,000,000년

9,000년

45,000,000년

8,000년

11,000,000년

50,000년

560,000년

2,100,000년

42,000년

2,000년

100,000년

100년

100,000년

10,000,000년

164,000,000년

1,000,000년

32,000,000년

1,000,000년

12,000,000년

30,000,000년

14,000,000년

10,000년

10,000~100,000년

매우 적음

매우 적음

100,000년

4,000년

매우 적음

매우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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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틀에서 지각으로의 마그마 유출

산호초의 성정

생물권 최고(古) 생명기관의 발달

인류문명의 기원

삼각주 형성

대양중의 해저석유

천연풀루토늄의 붕괴

은하수 모형의 붕괴

성장기체의 팽창

운석에서의 C14의 형성

단주기 혜성의 붕괴

장주기 혜성의 붕괴

태양으로 소립자의 유입

유성우의 최대 나이

달의 먼지층

조수마찰에 의한 지구회전 완화

열방출에 의한 지구냉각

해사의 석회질 축적

강에서 대양으로 리듐의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티타니움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크로미움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망간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철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코발트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아연의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리비듐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스트론튬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비스무트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토륨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안티몬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텅스텐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바륨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몰리브덴 유입

강에서 대양으로 중탄산염 유입

구형성단에서의 고속항성의 이탈

나선상 은하의 회전

토탄지(地) 토탄의 축적

퇴적암층의 퇴적

퇴적암층 형성을 위한 퇴적물의 석화

토성환의 불안정

타이탄(토성의 제6위성)의 메탄 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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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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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0,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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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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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Ⅳ. 진화론적 지질연대와 대홍수 예측도 비교

 

진화론적 지질연대

대 홍 수 예 측 도

제 4 기

충 적 세

현 세계로 전개되는 홍수후기

홍 적 세

화산활동과 지각구조가 줄어듬과 동시에 빙하와
강우에 홍수후기 여파 발생

제 3 기

선 신 세

중 신 세

점 신 세

시 신 세

효 신 세

홍수후기의 재조정의 첫 단계인 홍수의 마지막 시기

백 악 기

홍수중간 시기에 대륙과 바다의 침전물이 생성됨.
일부는 홍수후기에 생성

쥬 라 기

삼 첩 기

페 름 기

심해와 암초의 침전물들은 주로 대양에서 홍수의
초기단계에 형성됨

펜실바니아기

미시시피기

데 본 기

실루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캄브리아기

원 생 대

홍수초기의 침전물

시 생 대

지각이 지각변동시에 기온과 지각구조변화에 의하여
교란되며 변성된 시기라고 하나, 태초로 추정되는
지각의 기원시기

 

표Ⅴ. 홍수의 범위에 대한 기본 논의점  

항 목

지역적 홍수 또는 홍수 부정

전 세계적 홍수

예측 또는 사실

예측(기록) 또는 사실

역사적   사실

전설이 거의 없으며(이집트 등) 있더라도 세계적 홍수는 아님.전세계적으로 전설이 존재하며 전대륙에 걸쳐 거대한 홍수이야기가 남아있다.

방주의   규모

방주규모는 홍수범위와 무관하다.방주의 규모는 홍수가 전 세계적임을 증거함 (창 6:14~22)

홍수의   기간

성경에 기록된 기간은 지역적 홍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오히려 세계적 홍수는 훨씬 시간을 요할 것이다물이 감하는데 걸린 150일은 세계적 홍수의 합리적 증거이다. (창 7:11~8:4)

성경자체

서술자의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성경자체가 대홍수를 증거한다           (창 7: 18~24)

방주의   존재

상상할 수 없다과거 많은 목격자가 있으며 미래에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화석

고등동물일수록 윗지층에 나타남 (균일설 지지)기동성이 높거나 높은 곳에서 서식하는 생물이 윗지층에 나타남.  화석의 집산지, 다지층나무 화석 등은 균일설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격변설로만 가능)

노아와   자손

노아와 그의 자손으로는 현세계 모든 인종을 설명할 수 없다.성경의 기록과 인구통계학적으로 볼 때 매우 합리적이다 (창 9:19)

인류분산

불가능하다(램이 주장)세계적으로 홍수전설이 존재한다       (창 9:19)

바벨론   홍수설화

여러 곳에서 성경의 홍수설화와 대립된다.홍수전설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성경과 일반적 합치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항 목

지역적 홍수 또는 홍수 부정

전 세계적 홍수

예측 또는 사실

예측(기록) 또는 사실

방주의 동물방주에는 성경기록대로 지상의 동물을실을 수는 없다.방주의 크기는 온 지상동물을 3배 이상 수용할 크기이다. (창 7:2~9)
지상의 식물세계적 홍수라면 대부분의 식물이 멸절되었을 것이다.식물의 씨앗은 물에 뜰 수 있다.씨앗은 소금물에 일년동안 담갔다가 꺼낸후에도 발아(發芽)할 수 있다.
동물분산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진화만이 가능할 것이다.격리된 동물들이나 특정지역에 특정동물이 있음이 진화의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특정지역의 환경에 견디는 정도에 따라 동물의 분포가 결정될 수 있다.
멸종동물지상기후 변동으로 멸종하였을 것이 다.대홍수로 설명 가능하다.(공룡과 맘모스의 멸종 등)
방주내 동물사육배설물 수거와 음식물 운반이 방주안에서 불가능했을 것이다.성경에 세부사항은 없으나 파충류와 양서류는 모두 동면능력이 있으며 온혈동물도 잠재성이 있다.하나님의 특별인도가 있었을 것이다.

아라랏산방주의 아라랏산 도착이 불가능하다.성경을 통하여 바닷물의 육지 침범을 유추할 때 가능하다.
지구의 수량지구를 덮을 물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당시는 지각이 현재와 달랐을 것이고 성경은 큰 지각변동과 지하수의 융기를 지적한다.
퇴적암퇴적활동에 의한다.강우에 따르는 거대한 침식작용과 그에 따르는 퇴적활동 결과이다.

기상조건

당시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홍수이전의 대기(궁창위의 물존재)와 홍수이후의 대기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지층오랜 기간에 걸쳐 지형학적 변천과정 결과 지층이 생겼다.신속한 퇴적의 결과이다.
화석화화석은 진화를 보여줄 것이다.일반적 과정 하에서는 화석화가 극히 어렵다.
석탄석유 형성과거에 가능한 지구환경이 있었을 것이다.대홍수로서 매우 합리적으로 설명된다.

 

참고문헌 (표Ⅲ) 

1 . Henry M. Morris (Ed.), Scientific Creationism for Public Schools (San Diego,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74).

2. Dudley J. Whitney, The Face of the Deep (New York, Vantage Press, 1955).

3. Stuart E. Nevins, “Evolution : The Ocean Says No', Impact Series, ICR Acts and Facts, Vol.2 No.8., October 1973.

4. Thomas G. Barnes, Origin and Destiny of the Earth,s Magnetic Field (San Diego,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73).

5. Melvin A. Cook, Prehistory and Earth Models (London, Max, Parrish, 1966).

6. Harold S. Slusher, Critique of Radometric Dating (San Diego,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73).

7. John C. Whitcomb, Jr., and Henry M. Morris, The Genesis flood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1).

8. Benjamin F. Allen, “The Geologic Age of the Mississippi River'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9 (September 1972), pp.96-114.

9. R. D. Wilson et al., “Natural Marine Oil Seepage', Science (Vol. 184). May 24, 1974. pp. 857~865.

10. Natural Plutonium, Chemical and Engineering News, September 20, 1971.

11. Halton Arp, “Observational Paradoxes in Extragalactic Astronomy', Science Vol. 174, (December 17, 1971. pp.1189-1200).

12. V. A. Hughes and D. Routledge, “An Expanding Ring of Interstellar Gas with Center Close to the Sun', Astronomical Journal, Vol. 77, No. 3 (1972), pp. 210~214.

13. R. S. Boekl, “Search for Carbon 14 in Tektites',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Vol. 77. No.2 (1972). pp.367-368.

l4. Harold S. Slusher--“Some Astronomical Evidences for a Youthful Solar System'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8 (June 1971). pp.55-57.

l5. Harold S. Slusher,“Age of the Earth from some Astronomical Indicator', Unpublished manuscript.

16. Thomas G. Barnes,“Physics, A Challenge to Geologic Time', Impact Series 16, ICR Acts and Facts,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July l974.

17. Maurice Ewing. J. I. Ewing & M. Talwan, “Sediment Distribution in the Oceans-Mid- Atlantic Ridge', Bulletin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America, Vol. 75 (January 1964. pp. 17-36)

18. Chemical Oceanography, Ed. by J. P. Riley and G. Skirrow (New York, Academic Press. Vol.1. 1965). p.164. See also Harold Camping, “Let the Oceans Speak',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11. (June 1974). pp.39-45.

19. Stuart E. Nevins, “How Old is the Ocean ?', Unpublished manuscript.

20. George Mulfinger, “Critique of Stellar Evolution',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ol. 7 (June 1970), pp.7~24.

21. Henry M. Morris, Unpublished calculations.

22. Henry M. Morris (Ed), 'Scientific Creationism' for public school, CLP, San Diego, California. 1980. p. 129~130, p. 8~16.

23. Henry M. Morris/Duane T. Gish (Ed), The Battle for Creation CLP, San Diego, CA, 1976, p. 243~246

24. David D. Riegle, Creation or Evolution? 1971, Zon der van Publishing House Grand Rapids, Michigan

25. 「창조」지 85. 6/21호 p. 1~8

26. 「창조」지 85. 1/16호, 85. 3/18호, '창조를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들'

27. 죤 위트콤/헨리 모리스 공저, 이기섭 역, '창세기 대홍수' 성광문화사, 1985.

28. 한국창조과학회 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1981.

29. 한국창조과학회 편.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1983.

30. 어빙 젠센, 존 H. 왈톤 지음, 박명곤 역, 크리스챤 성경연구차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84, p.191~192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제 26호 [1985. 11]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dating/d4/d4/d4c2.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77

참고 :

한국창조과학회
2004-06-08

스퐁은 틀렸다 (Spong is wrong) 

: 진화론을 받아들인 신학자의 주장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하고 있다.

존 쉘비 스퐁 감독(Bishop, John Shelby Spong, 1931년 6월 16일 ~ , 미국 성공회 주교)은 거의 모든 기독교 교리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성직 임명시, 주권자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성육신, 동정녀에서의 탄생, 대속의 죽음, 부활과 같은 교리들을 타파하기로 맹세하였다.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에도, 지도자들이 그들 교회의 공식적인 믿음을 방어해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급여가 지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견해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역사에 대한 진화론적 개념을 그가 받아들임으로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되었다. 스퐁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나는 찰스 다윈의 다른 쪽 편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찰스 다윈은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문자 그대로의 창조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수 세기 동안 말해져 오던 예수에 대한 근본 신화를 파괴하였다. 그 신화는 완성된 창조가 있었고, 인류는 죄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구원하는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은 완벽한 창조(perfect creation)는 없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죄로 인해 타락하고 추방되었던 완벽한 인간이란 없었다. 오히려 45-50억 년 동안 천천히 출현하여, 복잡성이 증가하고, 의식이 증가되었던 하나의 단 세포(a single cell)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예수의 이야기는 어리석은 이야기인 것이다. 어떻게 타락하지도 않았고, 완성되지도 않은 인류의 배경과 반대되는 예수의 이야기가 완전성과 힘을 가지고 말해질 수 있었을까?” [1]

만약 성경의 역사가 진실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복음에 관한 이야기도 거부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진화론을 거부하는 많은 복음주의적 지도자들까지도,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을 열렬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하고 완성된 창조가 아담의 죄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다는 개념을 파괴하고 있다. 왜냐하면 점진적 창조론에서 화석들은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들을 나타내며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 의해 원인되었다기 보다는), 아담 이전에 죽음과 질병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점진적 창조론 안에는 스퐁이 가졌던 견해와 같은 종류의 생각들을 출현시킬 수 있는 씨앗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

[1]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TV Compass interview with Bishop John Shelby Spong, by Geraldine Doogue, in front of a live audience at the Eugene Groosen Hall, ABC Studios, Ultimo, Sydney, Australia, 8 July 2000. Copied from transcript at <www.abc.net.au/compass/intervs/spong2001.htm>, 6 August 20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4/i2/spong.asp

http://creation.com/spong-is-wrong

출처 - Creation 24(2):15, March 200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39

참고 : 888|891|3164|3202|3241|3244|3242|4636|4635|4579|3591|3426|4548|4542|4585|4238|4549|4039|4146|3077|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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