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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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연대문제

광주지부
2004-05-14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4장. 연대 측정 방법

우리는 이 장에서 3 백만년, 7 억년, 혹은 20 억년 된 암석이나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신문이나 잡지 기사, 텔레비전의 특별 프로그램, 교실에서의 강의 등에 대해 반박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암석의 나이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신뢰할 만한 방법인가?  


앞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가정에 따른 진화의 연대 순서에 맞추어 화석을 배열한다. 그리고는 이 화석을 이용하여 다른 대상물의 연대를 결정한다. 이 연대가 어떻게 결정되었는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실상 모든 연대측정 방법은 그 과정이 기본적으로 같으며 그 원리도 어렵지 않다. 암석이나 화석이나 지층들에는 연대를 나타내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해석에 의해 그 연대가 구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고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이상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연대측정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된다. 


첫째, 과학자는 연대를 측정할 암석이나 계(系; system)의 현재 상태를 관찰한다. (이 과정은 과학이며, 현재를 다룬다) 

둘째, 과학자는 그 계 안에서 현재 진행중인 변화 과정의 속도를 측정한다. (이것도 역시 과학이다.) 

셋째, 그리고 나서 과학자는 이 암석이나 계의 과거 역사에 대해 몇 가지 것들을 가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모델 설정으로 관찰할 수 없는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가정을 세우는 것이다.) 

넷째, 과학자는 그 계에서 지금의 상태가 만들어지기 위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작용하였는지를 계산한다. (이것은 관찰할 수 없는 과거에 관한 가정을 기초로 한 관찰 자료를 해석하는 것이다.) 

 

비유 

비유를 이용하여 이 절차를 설명해 보자. 비유는 복잡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연대 측정의 개념이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이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럼 내가 ‘감자 바구니의 비유’ 라고 이름 붙인 비유를 이용하여 연대측정 개념을 설명해 보겠다. 


당신이 과학자로서 과학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강연장에 들어섰다고 하자. 당신이 도착했을 때, 당신은 책상 위에 놓인 감자 바구니와 함께 강단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당신은 자리에  앉으면서 벽시계의 초침이 12 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나는 바구니에서 감자 한 개를 꺼내어 껍질을 깎기 시작했다. 그리고 깎은 감자를 다시 바구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정확히 1분이 지나서 다시 초침이 숫자 12를 가리킬 때 나는 다른 감자를 꺼내어 껍질을 깎는 일을 계속하였다. 당신은 10분동안 내가 10개의 감자를 깎는 것을 관찰하였고, 나중에 ‘저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감자 껍질을 깎았을까?’ 하고 스스로 질문해 본다. 당신이 방금 한 질문은 다른 과학자가 암석이나 계의 나이를 조사할 때 품었던 질문과 똑같은 종류의 것이다. ‘이 암석이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이 나무는 얼마나 오랫동안 자랐을까?’ ‘이 삼각주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당신은 내가 감자를 얼마나 오랫동안 깎고 있었는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분명히 당신은 앞으로 나와서 깎은 감자의 수를 셀 것이다. 당신이 35 개의 깎은 감자를 세었다고 가정하자. 이와 같이 당신은 지금까지 계의 현재 상태를 관찰했다 (깎은 감자의 수는 35 개이고 감자 1 개의 껍질을 깎는데 1 분이 걸린다). 위 두 가지 관찰은 모두 과학적인 관찰들이며, 현재를 다루고 있다. 당신은 모두 35 분 동안 진행되어 왔다고 결론을 내릴지 모른다. 과연 이 계의 시간은 정확한 것인가? 글쎄, 맞을지도 모른다. 


자, 한 걸음 물러서서 잠시 생각해 보자.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당신은 관찰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확실한 가정을 내어놓아야만 한다. 이 가정들은 당신의 결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관해 당신이 첫 번째로 가정해야하는 것은, 내가 감자를 깎는 동안 깎는 속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당신이 실제 알고 있는 것은 단지 내가 마지막 10분 동안 감자를 1분당 한 개씩 깎았다는 것뿐이다. 당신은 당신이 들어오기 전에 내가 감자 깎는 속도를 전혀 알지 못한다. 아마 감자 깎는 기술이 점점 익숙해져서 지금은 한 개를 깎는데 1분이 걸리지만, 그 전에는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쳐서 점점 느려졌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현재의 속도를 관찰했다고 해서 반드시 과거의 속도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감자 깎는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고 가정할 만한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감자 깎는 속도가 일정하다는 당신의 가정이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럴까? (참고 : 시간이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는 것이 첫 번째 가정이 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당신이 세워야 할 두 번째 가정 혹은 대답해야 할 질문은 ‘감자를 깎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깎은 감자를 바구니 안에 더 집어넣거나 꺼내가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의 계산 결과는 틀릴 수밖에 없다. 아마 누군가 당신의 실험을 방해하기 위해 몇 개의 깎은 감자를 바구니 안에 집어넣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구니 안의 깎은 감자 중 몇 개는 당신이 관찰한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림2).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내가 힘들여서 깎아놓은 감자를 바구니 안에서 가져가지 않았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당신이 대답해야 할 질문이 또 있다. 그것은 ‘처음에 바구니 안에 깎아 놓은 감자가 하나도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바구니를 가지고 들어 왔을 때, 몇 개의 깎아놓은 감자가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의 계산은 또 잘못된 것이다. 당신은 내가 감자를 깎기 시작한 때부터 관찰했던 목격자나 나에게 묻지 않고서는 그 과정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당신이 정확한 정보를 획득했는지 아닌지를 실제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가정, 즉 (1) 일정한 진행 속도, (2) 계가 주위 환경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정도, (3) 계의 초기상태는, 어떤 연대측정 방법에서나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해 정확하고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한, 옳은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각 가정이 정확해야 한다. 


어떤 연대측정 방법을 선택하든 그 측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엄밀한 과학적인 관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변화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물의 생성연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가정을 세워야 하는데, 이는 경험적 과학에서는 거의 다루기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것들을 추측하는 것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과학자들은 좀더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역사적 추측의 결과는 대체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제시되며, 학생들이나 국립공원을 찾는 관람객들, 혹은 관심을 가지고 TV의 특별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옳은 것을 과학적으로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할 때가 많다.  

 

나무와 나이테 

좀 더 현실적인 예로 나무의 나이를 결정하는 과정을 알아보자.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무의 나이테는 일년에 하나씩 생긴다. 몇 년간 면밀히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나이테로부터 많은 정보를 추론해낼 수 있다. 이를테면 비가 많이 온 해는 건조한 해보다 나무가 더 빨리 자라게 되고 그 결과 폭이 큰 나이테를 남긴다. 질병이나 곤충의 피해를 받았던 해에는 비정상적인 나이테가 생긴다. 결빙(結氷)에 의한 영향이 발견되기도 하며, 정상적인 생장기간이 되었는데도 추위가 계속된 경우, 일년에 두 개의 나이테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나이테들은 정상적인 나이테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과학자들은 날씨와 여러 가지의 조건들을 문서화하고, 나무의 이러한 환경에 대한 반응들을 목록화함으로써, 나무의 과거 해독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어떤 나무를 조사했더니 나이테가 250 개 였다고 하자. 문헌 조사를 통하여 지난 250 년 동안 나무의 정상적인 성장에 영향을 미칠만한 기후나 지질학적 사건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나무의 전 생애 동안 나이테가 일년에 하나씩 일정하게 만들어졌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무가 그 생애 동안 겪은 다양한 사건들에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조사해서 알아냈다. 더욱이 나이테가 없어지지도 않았고, 또한 처음에 나무 씨앗이 나무가 되었을 때에 나이테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아주 적절한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은 거의 정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의 나이가 250 년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나무의 나이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우리에게 나무가 심긴 연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그 기록의 정확성이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250 년으로 결정된 나이는 상당히 정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과거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연대 측정 

위의 예보다는 조금 덜 분명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를 예로 들어보자. 이리호 (역자주: 미국 오대호 중의 하나)의 물은 나이아가라 절벽으로 넘쳐 흘러 현란한 폭포를 이루며 온타리오호로 흘러간다. 관찰 결과 일년에 120~150 cm씩 절벽이 침식되어 폭포가 상류 쪽으로 이동하면서 긴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침식 현상은 최근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어느 정도 방지되고 있지만, 이 값은 자연적인 침식 속도로서 기술자들이 침식 속도를 느리게 하기 전에 측정한 값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이 폭포가 온타리오호에서부터 단지 11.5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이 폭포는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의해 절벽이 강 상류 방향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침식되어 왔을까?’  간단한 나누기 셈을 해보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이루는 절벽과 호수가 9,000 년 정도 되었다고 결론이 난다. 그것이 과연 정확한 결론일까? 우리가 이제까지 봐 왔듯이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가정들이 필요하다. 침식 속도가 일정하고 침식 메커니즘의 큰 변화가 없었으며, 땅의 경사가 생기면서 물이 더 빠르게 흘러 침식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계곡의 끝에서 침식이 시작되었다는 가정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물이 더 많이 있었다면, 그리고 암석들이 더 쉽게 침식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노아의 홍수 이후 수세기 동안 더 많은 물이 있었으며, 그 당시는 지층이 퇴적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드러워서 보다 쉽게 침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후 빙하기가 찾아왔고, 그 결과 십중팔구 물의 산성도는 물론이고 강우량과 흐르는 물의 양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폭포의 최초 위치를 알 수 있을까? 폭포의 진짜 나이는 위에서의 간단한 계산보다 훨씬 더 젊을 것이 분명하지만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다. 매우 흥미있는 것은 1841년에 찰스 라이엘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방문했을 때는 그가 지질학적인 과정의 균일론에 대한 개념을 전 지질 역사에 대해 확장해가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지질학자가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성경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지질학적인 지형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폭포가 매년 1m 정도씩 상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주변 지역 주민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깐 동안의 관찰만으로 폭포의 이동 속도를 연간에 30 cm 정도로 추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성경에 오류가 있으며, 현재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되기까지 3만5천년이 걸렸다고 주장한다. 관찰할 수 없는 과거에 관한 가정이 연대측정 과정을 좌우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다음 장에서는 젊은 지구에 관한 수많은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증거는 오래된 지구보다 젊은 지구 모델이 훨씬 더 모순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그러한 예이다. 정확한 관찰에 근거하여 계산된 나이는 특히 최근 홍수(역자주: 노아의 홍수를 말함)에 의한 영향과 홍수에 뒤이어 닥친 빙하기를 고려하면, 성경적인 시간의 척도와 상당히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폭포가 오래 되었다는 믿고 있는 자들의 간절한 바램과 진실성이 결여된 계산에도 불구하고 젊은 폭포와 협곡은 폭포의 나이가 많다는 주장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라이엘의 조작된 계산을 믿게 되었으며, 그 당시 보편적이었던 어셔 주교의 연대표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런 식의 잘못된 주장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로 하여금 성경을 ―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 믿지 못하게 한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dating/d2/d2/d2c6.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47

참고 : 2719|2882|2961|2946|3273|3351|3702|3775|3781|4074|4190|4435|4693|4838|4992|5053|5240|5243|5377|5367

한국창조과학회
2004-05-04

지구의 나이 측정 

(Age Dating The Earth)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1:5)

 

서론

세속적인 과학자와 젊은 지구를 믿는 창조과학자는 화석기록의 해석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지구의 나이도 서로 다르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세계가 6일 만에 기능적인 생태계를 가지고 함께 만들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연대기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는 거의 정확하게 6000 년이다. 성경은 또한 4500년 전에 전 지구를 파괴한 대격변적인 홍수가 있었고, 하나님에 의한 간섭없이 사람들은 그 사건에서 살아날 수 없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지질학계에서는 성숙한 창조도 노아 홍수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구의 나이에 관해서 생각할 때 이러한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래된 지구를 전제함

 

화석 기록에 대한 오래된 지구 개념은 격변설에 반대하는 동일과정설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전 세계는 지질주상도(geological column)로 알려져 있는 퇴적물의 방대한 지층으로 덮여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격변의 결과인 것으로 지질학자들에 의해 원래 해석되어 왔었다. 그러나 1800년대 초기에 Charles Lyell과 같은 사람들은 알려진 원인 또는 과정들은 오랜 시간동안 한결 같았다는 개념을 지질학에 도입함으로서 혁명을 일으켰다.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은 지구의 상태가 본질적으로 늘 일정한 상태로 있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가정한다.

비록 지구가 수천 피트의 홍수 퇴적물로 완전히 덮여져 있음에도, 오늘날의 지질학자들은 이 지층들은 수백만 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쌓여졌다고 믿고 있다. 지질주상도에서의 여러 지층들의 연대는 그들 퇴적지층의 양을 오늘날의 느린 퇴적율과 비교함으로서 상대적인 연령을 추정한다. 그러나, 지질주상도의 퇴적지층들은 격변적인 홍수 상황 하에서는 매우 빠르게 퇴적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사실 이 지층들 대부분은 반복된 대격변의 결과였다 라고 지금은 믿어지고 있다. 비록 대격변이 지구의 역사에서 일어났다고 확인된다 할지라도, 지구상에 생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은 대격변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파멸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 지구를 덮고있는 엄청난 양의 퇴적지층의 양을 볼 때, 전 세계는 홍수에 의해서 파괴되었던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엄청난 두께의 퇴적암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하다. 그러나 세속적인 과학자들은 그것들은 한 번의 대대적인 홍수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성경에서 기록된 것처럼 홍수가 발생했다면, 지질주상도 내의 화석들은 잘못 해석되었고, 연대측정도 잘못된 것이다. 서로 서로 관계하는 화석들의 위치는 그들이 살았던 지구 역사의 상대적인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남 퇴적물 속에 그들을 영원히 묻어버린 인정되지 않고 있는 전 지구적인 대격변적 사건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불가능한 해석

 만약 홍수가 성경에서 기록된 것처럼 발생했다면, 한 번의 전지구적인 격변에 의해서 형성된 지질학적 증거들을 자연주의자가 해석해 낸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동물들은 방주를 통한 초자연적인 간섭의 결과로 여기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적지층 내에 묻혀있는 상당수의 동물들은 오늘날에도 아직까지 살아있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는 현대 과학자들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설명되어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질주상도는 생물들이 자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율로 축적되어야한다는 철학적 필요성이 현대 과학자들 사이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지질주상도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을 주고있다. 만약 성경에 기록된대로 홍수가 발생했다면, 지질주상도의 퇴적물들은 자연주의자들이 이론적으로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퇴적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화석을 함유한 퇴적물의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술은 점진적으로 퇴적되었다는 이론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이론에 따라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당하여질 것이다. 지질주상도로 알려진 지층에 대한 어떠한 자연적 해석도 오류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생물들의 초자연적인 간섭을 포함한 전 지구적인 대격변을 허락하지 않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무능은 지층들에 대한 방사성 연대측정이 진화론자들이 견지하던 가정과 일치하는 광대한 연대를 결정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결론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창조를 특별한 시간의 길이를 가진 구절들로 기록하셨다. 이 구절에 의하면, 지구는 6 일 동안에 성숙한 상태로 창조되었다. 한 순간에 완벽하게 창조된 세계는 창조된 직후 얼마나 오래된 모습으로 보여졌을까? 우리가 성경적 관점을 벗어나 지구의 나이를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과학 사회가 성경에 기록된 홍수의 발생을 확인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이러한 지층들의 연대 계산은 매우 큰 오류를 보일 것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층의 연대를 화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조 : Philosophical naturalism and the age of the earth: are they related?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771/86/

101 evidences for a young age of the earth and the universe (2009. 6. 4. Creation)
http://creation.com/age-of-the-eart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nwcreation.net/agedating.html

출처 - 기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3

참고 : 2719|2882|2961|2946|3273|3351|3702|3775|3781|4074|4190|4435|4693|4838|4992|5053|5240|5243|5377|5367

Walt Brown
2004-04-29

성경에 의하면, 아담은 언제 창조되었습니까? 

(According to the Bible, When Was Adam Created?)



그림 150 : 족장들의 계보 (Genealogy Chart). 창세기의 연대기에서 자주 만나는 질문은 아브람이 태어났을 때 데라의 나이이다. 설명은 297페이지의 Endnote 1을 보라.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족장들의 나이와 가계들에 대한 도표는 위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다. 이것에 의하면 아담의 창조 시점은 대략 6,000 여년 전으로 보여진다. 여기에 어떤 불확실성(오차가)이 있을 수 있는가?


a. 이 연대는 Hebrew (Masoretic, 마소라 사본) text 에 기초한 것이다. Samaritan texts 와 Greek (Septuagint, 70인역) texts 에 의하면 아담의 창조는 각각 6,200 년과 7,300 년 전이 된다. 어느 성경이 더 원본에 가까운지는 공개된 질문이다. 논쟁이 되는 한 예로, Greek texts에 의하면 므두셀라(Methuselah)는 홍수 후 14 년에 죽었다. 이것은 므두셀라가 방주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몇몇 기원에 따르면 므두셀라 라는 이름은 '그가 죽을 때, 그것이(홍수가) 보내질 것이다'를 뜻한다고 한다. 위의 도표에 따르면, 홍수는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시작되었다.)

b. 너무 많은 수들이 0 또는 5 로 끝나기 때문에, 세 성경 모두에서 몇몇 연대는 끝자리 수가 조정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이러한 오차가 있다하더라도 이것은 20년 이상의 오차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Masoretic texts와  Samaritan texts가 가질 수 있는 문제는 이러한 끝자리 수의 처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므두셀라는 홍수가 일어나던 해에 죽었다는 것이다.

c. 불일치는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 데라의 나이와 관련해서 이다. 몇은 위의 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130살이 아니고, 데라의 나이가 70살 이었다 라고 주장한다.1   

(참조 :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훌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11:26)')

d. 누가복음 3:36 절에는 아(르)박삿의 아들이며 셈의 손자인 가이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에서 가이난의 이름은 오래된 사본에는 없고, 새로운  Greek texts 에서만 등장한다. 알려진 누가복음의 가장 오래된 사본에서도 가이난의 이름은 없다. 그러므로 아마도 필사가가 실수로 누가복음 3:37절의 가이난의 이름을 첨가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e. 많은 학생들의 연구는 요셉의 죽음을 BC 1606 년에서 BC 1690년 경으로 보고 있다. 이 부분에서의 연대 오차가 아담의 창조시점에 관한 연대 오차에 더해지게 될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창세기의 연대에 대해 자주 두 가지의 반대를 하곤 한다.

f. 그들은 가이난(Cainan)을 지적하며, 연대기에 간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간격의 가능성은 아담의 창조 시점과는 관련이 없다. 위의 도표에서 두 연속적인 족장들 사이에 많은 세대가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많은 세대들을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그들의 출생 사이의 시간은 창세기에 의해서 고정되어졌다. 예를 들어 셋의 나이 105 세에 에노스가 태어났다. 이것을 기술한 저자는 성경의 다른 족보와 비교할 때, 한 연속적인 가계의 기록에 대한 연대기를 주의 깊고, 체계적이며, 수학적인 방법으로 기록하였다.

g. 일부는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오랜 나이들은 월력을 사용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에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마할랄렐과 에녹은 아이를 낳을 때의 나이가 5살이 된다.

 

이 도표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들을 나타내고 있다.

h. 노아는 거의 아브라함 때까지 살았다. 노아의 아들 셈은 홍수 이전에 태어나 아브라함이 죽을 때까지 살았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은 노아와 셈을 오래된 조상(또는 상상의 조상)으로 생각하면서도, 아브라함은 최근의 사람으로 역사적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

i. 아담, 므두셀라, 셈, 아브라함, 이삭의 생애가 계속 겹쳐져 있는 것에 주목하라.

j. 에녹은 지구상에서의 시간이 갑자기 끝났는데, 그것은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히브리서 11:5 참조).

k. 홍수 이후에 사람의 수명이 체계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주목하라. 이것은 302 페이지에서 언급하였다.

창세기 5장에는 첫번째 9명의 족장들은 성경에 기록된 가계 혈통 이외에 다른 아들들과 딸들을 가졌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각 가정은 적어도 5명의 자녀들(3 아들과 2 딸)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학적으로, 9명의 족장들이 각 가정 당 적어도 10 명이나 그 이상의 아이들을 가졌다면, 각 가정은 적어도 3명의 아들과 2명의 딸들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9명의 족장들이 각 가정 당 9명 이내의 아이들을 가졌다면, 각 가정은 3명의 아들과 2명의 딸들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홍수 이전에는 각 가정 당 10명 정도의 자녀를 갖는 것이 보통이라면, 그리고 지난 몇 천년 동안 유행했던 역병, 기근, 전쟁 등이 그 당시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면, 홍수 시점의 세계 인구는 오늘날의 인구인 60억 명을 넘었을 수도 있다.       

만약 홍수 이후 아브라함의 출생시점 까지의 351년 동안, 사람들이 30살에 결혼해서 한 가정당 평균 8명의 아이들을 낳았다면, 당시 세계인구는 8천만 명에 도달할 수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Genesis 11:26 says that “Terah lived 70 years, and became the father of Abram [Abraham], Nahor and Haran.” This does not mean that Terah was 70 years old when Abram was born. Children are not always listed in birth order. Noah’s three sons were not. (See Genesis 5:32, 9:24, and 10:21.) The son mentioned first may simply be the most prominent, as was Abraham.  So we must look deeper.

Genesis 11:32, Genesis 12:4, and Acts 7:4 tell us that Terah lived 205 years, and when Abram was 75 years old, Terah died. So Terah was 130 years old when Abram was bor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cience.com/onlinebook/FAQ312.html#wp1305038

출처 - CSC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30

참고 :

Henry M. Morris
2004-04-27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The Bible and Jesus Christ)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누가복음 6:46)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고 그를 구주로, 그리고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가 위임한 위대한 사역에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태복음 28:19, 20).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가 분부하신 '모든 것'을 그가 가르쳐 주신대로 모든 족속들에게 가르쳐야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의 권위자이신 까닭은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6).


그가 가르쳐주신 모든 진리 중에서 두 가지 근본적인 교의(doctrines)가 있어서, 나머지 모든 교의들이 이에 의존합니다. 그 하나는 성경의 말씀이 갖는 글자 그대로의 무오성 (verbal inerrancy of Scripture) 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이루신 특별한 창조(special creation)입니다.


문제는 이 무오설의 진리를 믿는 많은 크리스천들도 그 창조 교의의 뜻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 창조교의의 뜻에 대한 그 권위를 수용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관해서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그런 다음 창조에 관해서는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가 이 땅(지구)에 계시는 동안, 그에게는 구약성경만 있었을 것임은 물론입니다.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그가 성경의 말씀들을 하나님에게서 오는 오류 없는 말씀으로서 수용하셨다는 것을 명백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주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고 또 참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말씀들이 참이고, 또 권위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컨대, 결혼과 이혼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최초의 남편과 아내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을 인용하는 것만으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마태복음 19:4-6).

여기서 주님은 창세기 1:27과 2:24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최초의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해 상호보완적인 설명으로서, 주님은 그 설명들을 진리로 그리고 서로 양립하는 것으로 수용하시고, 모든 미래의 결혼에 대한 신성한 모범으로 설정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실 때, 그는 성경 말씀들 가운데서 적절한 구절을 인용하시는 것만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마태복음 4: 4,7,10, 사탄의 질문에 각각 신명기 8:3, 6:16; 10:20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는 ”기록되었으되…” 하고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만사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성령의 감동에 의한 말씀으로 글자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그냥 생각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유대인들이 그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자칭한다고 하여 그를 돌로 치려고 하였을 때, 그는 시편 82장 6절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변호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늘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요한복음 10:34-36).


그의 주장은 전적으로 시편 82:6에 있는 한 단어, 즉 '신들'(gods) 이라는 단어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 5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라고 기록된 말씀입니다. '일점(one jot)' 이란 것은 히브리어 알파벳 중에서 가장 작은 글자이고, '일획(one tittle)' 이란 것은 두 개의 유사한 모양을 한 글자들 사이를 변별하는데 흔히 사용되었던 작은 표시였습니다. 구약성경 안에 있는 성령 감동의 말씀들 가운데서도 이보다 더 강렬한 표현방법을 쓴 진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진술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모든 진실한 크리스천들은 그의 본을 따라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안목을 견지하여야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 관한 한, 그는 당신의 말씀들이 정확하게 보전될 것임을 우리들에게 확실히 하였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가복음 13:31).

사실상 신약의 모든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복음 16:13).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신약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은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 19).

그냥 관념만이 아니고 '이 책의 말씀'이 강조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혹시라도 어느 누가 이 경고의 말씀이 그리스도한테서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길까 저어함인지, 그 다음 절이 이렇게 밝혀줍니다.

 ”이것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절대무오의 말씀이란 것을 믿고, 또 그렇게 가르치셨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따라서 그를 믿고 또 좇기를 소망하는 우리는 마땅히 그가 행하시던 바와 같이 성경의 절대무오성을 믿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던 그의 선지자들은 물론 그의 모든 사도들이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inspiration)으로 쓰였다는 점과 성경의 무오성(infallibility)과 권위(authority)를 믿어야 하는 데는, 이것 말고도 물론 다른 이유들이 많습니다. 성경의 저자들 (모세, 이사야, 바울 등등)은 모두 한결 같이 그런 권위를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성경 안에는 이루어진 예언의 말씀들이라면 수백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랄만한 과학적 통찰도 또한 수없이 많습니다. 성경의 역사기록들은 알려진 세속사의 모든 사실들과 일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성경에 담긴 독특하고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는 최소한 1500 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하여 40 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쓰여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모든 부분이 빠짐없이 일치되고 일관된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에 의해 쓰여진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넓고 넓은 온 세계에서 이와 같은 책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증거보다도 더 위대한 증거는 그리스도(삼위일체 신격에서 두 번째 인격)께서 성경 속의 모든 말씀에 담긴 오류 없는 권위를 인정하고 그렇게 가르쳤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창세기의 역사성을, 특히 창조를 설명하면서 가르치셨다는 것을 앞에서 이미 살펴본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19:3-8 참조). 예수님은 또한 의인 아벨의 살해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마태복음 23:35) 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역시 노아 시대의 세계적 규모의 대홍수가 있었다는 역사적 진실성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누가복음 17:26, 27).

이 사건이 어떤 특정 지역에 한정되었을는지 모른다는 관념을 그는 이 사건을 그의 재림과 비교하는 것으로써 부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9). 그리스도께서 전 지구적 대홍수(global flood)로 믿으셨던 것이 사실인 이상, 오늘날의 '점진적 창조주의자들(progressive creationists)'도 자신들이 옹호하는 '국지적 홍수(local flood)' 개념을 재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생존시에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의 파괴적 대재앙의 역사성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17:29).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권속들에게 기적같이 내리신 만나 (요한복음 6:32), 불타는 수풀 속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셨던 사건(누가복음 20:37),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사건 (요한복음 3:14), 독특한 솔로몬의 지혜 (마태복음 12:42),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의 경험 (마태복음 12:40), 다니엘의 놀라운 예언들 (마태복음 24:15), 그리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도저히 '믿기 어려운' 그 모든 말씀들을 낱낱이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는 (수백만 년 전이 아니고) 최근에 이루어진 창조 때부터 있었던 사실도 가르쳤습니다! ”창조 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마가복음 10:6).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그곳에 계셨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로부터 46 억년 후에 지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때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현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들에게 억지로 이 오래된 연대를 믿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최근 창조의 진실성을 이렇게 암시하셨습니다.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누가복음 11:50).

즉,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창세 그 순간부터 유혈의 수난을 받고 있다는 말씀은, 창세 이후 46 억년이 지난 후로부터 그랬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다가오는 ”..그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創初)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가복음 13:19) 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창조 이래로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권속들 위에 자질구레한 환난이 많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 중에서 단 한 자라도 그 진실성에 의문을 품는 크리스천들에게, 또는 몇몇 현행 과학적 주장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성경을 억지로 풀어보려는 (베드로후서 3:16) 크리스천들에게, 또한 성경의 어느 부분이라도 사사로이 풀어보려는 (베드로후서 1:20) 크리스천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즉, 그들은 과연 주님 앞에서 그러는 이유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라고 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하리라” (로마서 14:12)

라고 하신 로마서의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날이 왔을 때, 그리스도가 믿고 가르치셨던 것을 믿고 가르쳤다고 직고할 수 있는 입장이 최선이 아닐까요? 창세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에 관한 문제라면 우리는 그가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종교지도자들을 반박할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요한복음 5:47).

그는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요한복음 10: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성경을 폐하려 애쓸 것입니다. 새시대주의자들 (New Ager)과 신비주의자들도 성경을 폐하려 들는지 모릅니다. 세속주의자들이나 쾌락주의자들도 성경을 폐하려 할 것입니다. 온갖 형태의 회의론자들과 심지어 타협적인 크리스천들까지도 성경을 폐하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폐할 수 없습니다! (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 )

 

* Dr. Morris 는 ICR의 창시자이며 명예회장입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btg-a/btg-125a.htm

출처 - ICR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6

참고 : 2942|2797|2970|2425|2982|2549|1430|640|886|887|3967|5163|4870|5578|666|3376|3379|3381|3393|3395|3397|3425|3587|3592

한윤봉
2004-04-21

창조주와 날(日)의 개념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 또는 이해의 범위 내에서 억지로 해석하려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창세기 1장 1~3절은 하나님이 우주의 3대 기본 요소인 시간,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는데, 분명히 無에서(엑스니힐로, ex nihilo)부터 有를 創造(빠라)하셨으며, 열역학 제1법칙(질량 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의 원인제공자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또한 창1:1은 하나님이 만물이 생성되기 전부터 계신 분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Elohim)인데 이는 전능하신 자의 복수형 호칭이다. 즉 삼위의 하나님을 뜻한다.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모세는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 라고 기도 중에 고백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영원전부터 계셨고, 그분이 말씀하시므로 우주만물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 3) 


창세기 1장에서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란 표현으로 날을 정의하고있다. 히브리어로 날은 욤(yom)으로 표현되며, 욤은 「날」 또는 「시대」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출 20:8-11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이는 엿새 동안에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른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니라.' 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이 말씀은 일주일 중 사람이 일하는 6일간의 기간이 하나님이 일하신 6일간에 기초하고 있음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이 하나님의 '날들'을 문자 그대로의 날(日)이라고 밖에는 달리 타당하게 해석할 수가 없다. 만약 그날들이 여섯 시대를 뜻하거나 여러 지질년대에 대한 생략적 표현이라고 한다면. 또한 그 날들이 하나님이 실제로 일하신 6일이 아니라 창조를 계시하는 상징적인 기간이라면, 하나님의 안식일에 대한 명령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지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는 밤과 낮의 순환을 의미하며 24시간을 나타냄이 틀림없다. 창조가 6일 동안에 이루어진 이유는 인간에게는 일주일 간격의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이를 하나님은 손수 모범을 보이시고 명령하신 것이다. 즉 인간이 일주일 간격으로 휴식하며 생활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나타낸다.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오랜 기간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창 1:1 이전에도 오랜 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연대(45억년)를 받아들여 진화론과 창조론을 조화시키려는 억지 이론이다. 1814년에 Thomas Charles에 의해 발표된 간격이론(The Gap Theory)에 의하면 창세기 1장 1절에 우주의 첫번째 창조가 있었고, 수십억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창 1:2절부터의 재창조가 있었다고 한다. 창 1:2절의 무질서한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은 창조의 결과가 아니고, 첫번째 창조에 대한 심판의 결과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땅은 원래 아담 이전의 인류를 위해 지어졌고, 이들은 천사장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으나 천사장(루시퍼)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사탄이 됨으로써 죄가 인류에게 들어왔고, 이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인류가 멸망하였으며, 그 후에 하나님이 다시 지구를 재창조하시고 아담을 지으셔서 재충만하게 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시편과 이사야서에서는 흑암을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창조의 결과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나이다. 젊은 사자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다가 해가 돋으면 물러 가서 그 굴혈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 도다.'(시 104:20~ 23)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사45:7)


또한 일부에서는 벧후 3:8을 인용하면서 창조의 날들은 24시간이 아니고 천년이상의 긴 시간 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종합적으로 보지않고 단편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생기는 명백한 잘못이다. 벧후 3장은 자연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주님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을 부인하는 거짓 선지자들(벧후 3:3~ 5)에 대한 경고와 그들에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믿음을 잘 지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 9)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 란 말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심판의 기간이 많이 지체되는 것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짧은 시간이라는 비유적 표현이다. 단지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것이지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벧후 3:7). 그 심판의 날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며 그분의 시간표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영어성경(The New International Version)에 의하면 창세기 1:1~2은 다음과 같다.

'1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1절과 2절 사이에 'Now'로 이어지고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Now 는 그 때, 그리고 나서 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이는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라 하겠다. 즉, 1절과 2절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gap)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저자들은 다르지만 신·구약 66권이 놀라울 정도로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으면서 인간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점은 비록 인간이 썼다 할지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이니라."(딤후3:15∼17)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 또는 이해의 범위 내에서 억지로 해석하려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나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전 8:6)



제 94호 [1995. 11~12]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bible/b1/b12/b12c2.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1

참고 :

Andrew Kulikovsky
2004-04-21

어떻게 아담은 단 하루 만에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How could Adam have named all the animals in a single day?)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해석하기를 부정하는 성경비평가들과 타협적 교인들은 몇몇 유언비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나는 만약 창조 주간의 6일이 일상적인 날(day)이었다면,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된 사건들이 모두 완료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으리라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짧은 시간에 아담이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말한다. 어떻게 아담은 12 시간보다도 적은 시간 내에 수백만 종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는가?


중요한 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실제의 종들의 수를 독단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메이(Ma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적 단계에서, 생물 분류상 하나의 목(order) 안에 오늘날 지구상에 분류된 2백만 종(species)의 동식물 중에서 (전체 생물종의 수는 5백만에서 5천만 종으로 평가) 얼마나 많은 수가 들어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1             

무심결에 읽는 독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밖으로 나가 찾아다니지 않았다. 창세기 2:19절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물들을 이끌어 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 많은 비평가들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생물 종들이 수백만이라 하더라도, 아담이 이름을 지어야하는 실제 수는 거의 확실히 이들의 단지 일부분인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모든 육축(livestock, 히브리어로 behemah)과 공중의 새(birds of the air, 히브리어로 op hassamayim)와 들의 모든 짐승(beasts of the field, 히브리어로 chayyah hassadeh)들에게 이름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이것은 아담이 바다 물고기, 다른 바다 생물들, 곤충들, 딱정벌레, 거미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알려진 2백만의 생물종들 중의 98%는 무척추동물이다. 여기에는 해면동물들, 벌레들, 연체동물, 곤충 등의 다양한 생물종들이 포함된다. 남은 2%가 척추동물이고, 이들의 수는 대략 4만 종이다.이 숫자에서도 25,000 종의 바다 척추동물들과3 4000 종의 양서류들은4 제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 2;20절에 기록된 동물의 범주에는 분명히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의 분화(speciation)가 창조 이후에 진행되어왔다고 가정한다면, 남은 11,000 종의 척추동물들은 훨씬 적은 수의 원래 생물종(proto-species)에서 분화된 후손들일 수 있는 것이다. 각각은 분류학자들이 속(genus)5 이라 부르는(더 위의 그룹인 과(family)6일수도 있다) 그룹의 조상되는 동물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에서 종류(kind)7 라고 불려지고 있다. 많은 속들(genera)은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종들(species)을 포함하고 있다. 아담은 단지 2천여 종의 이들 원래 종(proto-species)들에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고, 이 일은 수 시간이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담이 2500여의 원래 생물종(속)들에게 5초마다 하나씩 이름을 지었다면, 그 일을 끝마치는데 매시간 마다 5분씩의 휴식시간을 포함하여서 대략 3시간 45분이 걸렸을 것이다).    


아담 앞에 모든 동물들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위함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아담은 이들 창조된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래서 어떠한 동물도 그의 육체적, 정서적, 지적, 영적 동반자(companion)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References

1. May, R.M., How many species are there on Earth? Science 241:1441, 1988.

2. David Burnie, ‘Animal’,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3. James W. Orr, ‘Fish’,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4. David Burnie, ‘Vertebrate’,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5. Woodmorappe, J, Noah’s Ark: A Feasibility Study, ICR, El Cajon, CA, USA, 1996. This tabulates all the creatures on the Ark by assuming that the kind corresponded to today’s genera. But this is to be as generous to the sceptics as possible, and even then there would be only 16,000 animals on the Ark as obligate passengers.

6. Batten, D., Ligers and Wholphins? What next? Creation 22(3):28–33, 2000. This points out several examples of fertile hybrids between members of different genera with a family. This means that they are really a single polytypic species, and supports identification of the kind with today’s families.

7. Williams, P.J., What does min mean?, CEN Tech. J. 11(3): 344-352, 197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2/1112animals.asp

출처 - AIG, 12 November 2002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56

참고 :

Jonathan Sarfati
2004-04-21

태양이 4일째까지 창조되지 않았다면, 

창세기 1장의 날들은 문자 그대로의 하루인가?

 (How could the days of Genesis 1 be literal

 if the Sun wasn’t created until the fourth day?)


      오늘날 우리들이 낮-밤의 주기를 갖게 되는 것은, 지구가 회전을 하고 빛은 한 방향에서 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첫째 날 지구(Earth)와 마찬가지로 빛(light)을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지구는 이미 우주 공간에서 이 창조된 빛과 관계를 가지며 회전하고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이차적인 빛의 근원 없이도 빛을 만드실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태양과 달이 필요가 없을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1:23).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한 낮과 한 밤을 빛에 의하여 정하실 수도 있고, 빛에 의하지 않고서도 정하실 수 있다.

   

점진적 창조론자(Progressive creationists)들은 하나님이 실제로 의미하고자 했던 단어를 사용하셨다 하더라도, 창세기의 날들은 매우 긴 시대라고 주장한다. (see How long were the days of Genesis 1?). 지구가 창조된 후에 태양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성경을 수십억 년과 조화시키려는 시도하는 점진론적 창조론자들에게 장애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가르침을 잘 해명해야만 한다. 몇몇은 넷째 날에 실제로 발생한 것은 짙은 가스 구름층이 수백만 년 후에 흩어져 없어졌을 때, 태양과 다른 하늘의 천체들이 ‘나타났던(appeared)‘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공상과학일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에 대한 나쁜 해석이다. ’아사(asah)‘ 라는 단어는 창세기 1장을 통하여 ’만들다(make)‘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창조하다 (create, bara) 라는 뜻으로 교대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빅뱅과 같은 무신론적 진화이론에 맞추기 위하여, 같은 문장(same passage) 안에서, 같은 문법적 구조(same grammatical construction)를 가진, 같은 단어(same word)를, 다른 뜻(different meaning)으로 해석하는 것은 완전한 자포자기이다.     

     

만약 하나님이 ‘나타났다(appeared)’ 는 것을 의미하셨다면, 셋째 날 물들을 한 곳으로 모으시면서 뭍이 '드러날(appeared)' 때 사용되었던 것처럼 (창1:9), 하나님은 나타났다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 라아(ra’ah)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20 여개 이상의 주요 번역판들을 조사해왔다. 모두 태양, 달, 별들은 넷째 날에 ‘만들어졌다고(made)’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보통의 날들(days)로 말하고 있다는 증거들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히브리어 언어학자들까지도, 저자가 첫째 날부터 사용된 ‘저녁(evening)’과 ‘아침(morning)’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See The Answers Book Chapter 2, and Six Days? Honestly!)


넷째 날에 지구의 임시적인 빛의 운반체가 만들어짐으로서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었고, 첫째 날부터 발산되던 빛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글을 쓴 후, 칼빈(Calvin)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see Calvin says: Genesis means what it says). 이것은 다시 한번 회의론자들이 성경을 믿는 학자들에 의해서 반박된 오래 전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Notes

1. This would have been very significant to pagan world views which tended to worship the sun as the source of all life. God seems to be making it pointedly clear that the sun is secondary to His Creatorhood as the source of everything. He doesn’t ‘need’ the sun in order to create life (in contrast to theistic evolutionary beliefs.)

2. This unusual, counter-intuitive order of creation (light before sun) actually adds a hallmark of authenticity. If the Bible had been the product of later ‘editors’, as many critics allege (see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they would surely have modified this to fit with their own understanding. It is only recently that the astronomical fact has been realized that a day-night cycle needs only light plus rotation. Having ‘day’ without the sun would have been generally inconceivable to the ancients.

 

 

*참조 : Morning has broken … but whe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86

Light, life and the glory of God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61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Good approach misapplied to get ‘analogical days’ : A review of Genesi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35-39.pdf

On literary theorists’ approach to Genesis 1: Part 1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71-76.pdf

On literary theorists’ approach to Genesis 1: Part 2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93-101.pdf

The days of creation: A semantic approa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100/

The Genesis 5 and 11 fluidity ques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54

Who Begat Whom? : Closing the Gap in Genesis Genealogie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who-begat-who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1203.asp

출처 - AiG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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