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라오디게아교인 없습니까?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나는 유치원 때부터 누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초·중·고등학교까지 거의 무결근 교인으로 부지런히 교회에 나갔다. 하지만 주님은 내 마음에 계신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그런 분으로 여겼다.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하여 남들의 칭찬도 들으며 그것으로 종교적 만족도 심취했다.


하지만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즉 내 스스로 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여느 때의 삶은 세상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고등학교까지 엄격한 부모님 밑에 지내다가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에 왔을 땐 묘한 자유감마저 느꼈다.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새장을 뛰쳐나온 것처럼 마음껏 자유의 창공을 날고 싶었다.


공부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해 밤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때는 문학과 철학 속에 푹 빠졌는데, 특별히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은 그 어느 책보다 큰 감명을 안겨 주었다. 최고의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아프락삭시스라는 존재는 이 세상의 선과 악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로 비어있는 내 마음을 차지하게 되었고,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해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떠한 악의 문제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넓어진 포용력에 스스로 만족해하였다.


하지만 이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자신의 정착지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보헤미안이 아니라, 방황을 위해 방황하는 집시인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학졸업 후 꿈꾸어 오던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위스콘신대와 MIT 대학 두 군데서 오라고 했다, 꼭 MIT를 가고 싶은데 MIT에서는 여름 동안에 영어수강을 하는 조건으로 입학을 허락해 신원조회 후 3일밖에 수속할 시간이 없어 조급하게 되자 간절히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정말 기적같이 모든 것이 3일 만에 해결되어 보스톤으로 떠날 수 있었다.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주님께서 그곳으로 유학을 허락해 주실 때 당신의 선하신 뜻이 있었다.


그곳에서 다니기 시작한 교회는 자유신학을 공부한 목사님이 담임하게 되었다. 대학 때 법학을 전공한 탓인지 정치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겟세마네의 사건 이야기를 할 때는 새로운 면의 예수님을 볼 수 있어 그의 진취적인 사고방식에 끊임없는 찬사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차차 하나님의 세계가 인간의 상식적 세계로 추락할 때 인간구원의 종교에서 도덕이나 철학으로 변질해 버리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부활의 사건을 부정할 때, 그렇다면 기독교는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분명히 그가 죄인을 위해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점점 영적인 갈등을 느끼다가 한인교회에 다닌 지 2년 만에 친구 부부의 권유로 아내와 함께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이나 걸리는 그레이스 채플 (Grace Chapel)을 찾았다.


그곳에서의 첫 예배에서 난생 처음으로 포근한 그 무엇 속에 내가 쌓여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주일마다 목사님은 당시 내가 갖고 있던 의심들을 하나씩 하나씩 꼬집어서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벗겨내기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화운데이션 I (Foundation I )」이란 성경공부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실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믿는 자에게 성령님이 계신다는 말은 나에게 아주 쇼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늘이나 교회에서나 계시지 내 마음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 왔고, 게다가 성령님에 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흥미 가운데 열심히 성경을 보며 그분의 역사가 무엇인가를 공부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실패한 이유를 곧 깨달았다. 주님이 내 속에 계시지 않고 내 스스로 내 삶의 주인이었으니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목사님의 인도에 따라 아내와 함께 죄사함 주시기를 기도하며 주님을 영접했다. 할렐루야 !


내가 단상에 나가 꿇어 엎드려 기도할 적에 나의 영적성장을 지도하며 기도해 줄 카운셀러도 내 옆에서 조용히 꿇어 기도해 주었다.  그는 「이제 주님을 영접해 아기 기독교인으로 태어났는데 주님과 교제하며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일 교제를 위해 너의 시간 중에 가장 귀중한 시간을 그분께 드리라」고 하면서 특별히 「세븐-업 (Seven-up)」을 강조했는데 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7분간을 주님께 드리라는 것이다. 「칠분정도야」하는 자신감은 일주일에 한번의 교제에서 벗어나 매일매일 주님과 교제하게 했으며, 조금씩 신령한 젖을 공급받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정말 주님을 영접하고 주인으로 모신 후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났으며, 주님께서는 나에게 용서와 평안과 삶의 목적과 더불어 새로운 삶을 살아갈 능력도 주셨다.


한때 주님께서 책망하신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인이었던 내가 「나는 부자라 부유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또 다른 라오디게아 교인에게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감히 묻는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혹시 라오디게아 교인은 없는가?


 


분류:창조신앙-중요성
출처:'열리는 영의 세계'(1991년 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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