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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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박형진
2019-07-18

창조신앙의 역사, 그 교회사적 고찰 

: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Trajectory of the Faith in Creationism in Church History : Early Church Period)


요약

오늘날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는 결국 창조신앙의 중요성 및 그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00년간 기독교역사에 나타난 창조신앙은 어떠하였는가를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본다. 본 논문은 그중 초대교회 기간에 초점을 맞추어 교부들의 성경해석 및 설교강론 가운데 나타나는 창조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 맥락에서 쓰였고 무엇을 강조하였는지를 살펴본다. 기독교초기부터 창조신앙의 본질을 끊임없이 위협해온 주변 세계관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오늘날 창조신앙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중요한 안목을 열어 주리라 본다.

Today's issues in creationism against evolutionism demonstrates the significance and restoration of Christian faith in God's creation. What is the shape of the trajectory of faith in creationism in church history? This study examines the early church period, especially with early church fathers' understandings of the creation account in their biblical interpretations and sermons. In what contexts did they defend, explicate, and emphasize creationism? This study will throw light on understanding the essence of faith in creationism and the nature of worldviews that has threatened the faith in God's creation.


I. 들어가면서

성경의 초두에 나타나는 창조기사는 기독교신앙의 근본이다. 오늘날 창조신앙은 과학주의적 세계관과 진화론이라는 양상으로 위협받고 있다. 기독교초기에는 창조기사에 관하여 어떠한 이해를 가졌으며 또 당시 창조신앙을 위협하였던 도전은 어떠한 성격을 지녔는가?

창조신앙의 역사를 기독교 2000년간의 교회사적 측면에서 고찰해 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고 유익한 일이라 생각된다. 본 논문은 그중 초대교회기간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위에 제기된 중심 질문의 좀 더 세부적이고 단계적인 질문으로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하위질문을 갖는다. 첫째, 창조기사에 관한 초대교회의 성경해석은 어떠하였는가? 둘째, 초대교회당시 창조신앙을 위협하던 이단사상과 이들의 세계관은 무엇이었는가? 셋째, 초대교회의 창조신앙에 대한 변증이 오늘날 창조과학운동에 던져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아마도 위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두고 던져지며 또한 답변을 시도할 것이다. 첫째, 초대교부들의 성경해석의 입장과 방법론을 살펴보는 것은 창조신앙의 이해를 도와주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둘째, 창조신앙을 위협하는 이단사상은 오늘날 진화론과 같이 나름대로 총체적 세계관적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셋째, 초대교회든 현대교회든 창조론을 위협하는 불신앙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공통적인 요소를 반드시 공유할 것이다.

연구방법은 역사문헌을 중심으로 하되, 특히 자료에 있어서 이 논문은 초대교부들의 주석 및 설교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1) 그리고 성경본문으로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창조기사에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하려고 한다. 교부들은 사도시대가 끝나고 등장하는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으로부터 초대시대가 끝나고 중세로 넘어가는 중요한 길목에 있었던 어거스틴(Augustine)까지 A.D.100-430에 이르는 초대교회시대의 교부들을 중심으로 하였다. 방대한 기독교역사가운데 이 논문은 초기시대에 국한되어지긴 하지만 이 기간에 나타난 해석학적, 철학적, 신학적 논쟁은 그 이후 교회사에서 계속 이어질 창조신앙에 대한 논쟁에 큰 틀을 제공해 준 것이라 본다. 그리고 현 창조론에 대한 입장과 이해에 더 한층 역사적인 의의로 조명해 주는 기여가 되리라 본다.

 

II. 초대교부들의 성경 창조기사 해석

창조와 타락을 서술하고 있는 창세기 1-3장은 교부들의 글들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된 곳으로 양적인 측면에서 이후 전개되는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비교해 볼 때 그 양이 상당히 많다는 면에서 창조에 관한 인식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2) 본 절에서는 교부들의 창조기사(창세기 1장)에 관한 이해들을 창조기사의 순서를 따라 살펴보기로 하고 그 분석된 내용을 종합하여 전반적인 양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태초의 천지 창조

초대교부가운데 탁월한 설교로 인해 '황금의 입”이라 불렸던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왜 하나님이 천지 즉, 하늘을 먼저, 그리고 땅을 뒤이어 언급하셨을까에 대해 배열된 단어의 순서대로 실제 하늘을 먼저 내시고 그 다음에 땅을 내셨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는 인간적인 상식의 집짓기와는 순서가 다름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기초(땅)를 먼저 내고 그 위에 지붕(하늘)을 덮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과는 반대로 지붕을 먼저 내시고 기초를 놓았다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이러한 해석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뛰어넘는 창조주시라는 면을 보여주시려 했다고 강조했다.3) 이토록 교부들 가운데 성경해석을 문자적(literal)이고 역사적(historical)인 방법을 따랐던 이들이 있다. 바실(Basil)과 같은 교부도 은유적, 상징적인 해석을 피하고 가능한 문자적인 의미에 충실하여 창조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4) 그들은 단어의 순서배열과 그 함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반면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는 궁창위의 물과 궁창아래의 물은 영계와 물질계라는 두 세계를 나누는 상징적 구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5)

 

2. 창조사역에 있어서의 성부, 성자, 성령

에프렘(Ephrem)과 같은 시리아계열의 교부는 수면위에 운행하시는 성령을 어미 새에 비교하였다.6) 그는 여기서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모두 창조사역에 참여함을 강조하였다. 성부는 말씀하시고, 성자는 창조하시고, 성령은 베푸셨다는 것이다.7) 제롬(Jerome)과 같은 라틴계열의 교부는 창1:2의 장면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는 마치 앞으로 임할 세례에 대한 전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질 세례의 한 모습으로 본 것이다.8) 에프렘도 이 장면에 세례의 의미를 부여하여 마치 어미닭이 알을 품음으로 인해 생명을 부화시키는 것과 같이 물세례도 그 위에 임하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시키는 구속적 의미 이상의 창조적 의미를 바로 이 구절이 전조적으로 예시해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9)

 

3. 빛의 창조: 첫째 날의 빛, 셋째 날의 식물, 넷째 날의 광명의 상호관계에 관한 문제

에프렘은 첫째 날 창조된 빛은 태양으로부터 비롯된 빛이 아님을 말하면서 빛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다.10) 암브로우스(Ambrose)는 첫째 날의 빛은 태양보다 선재하고 태양을 태양되게 한 원초적 빛이요 태양의 전조라고 소개하였다.11) 한때 마니교에 심취하였던 어거스틴의 경우도 창세기 1:3에 언급된 첫째 날의 빛에 대해 이 빛은 자연의 가시적인 빛이 아닌 보다 근원적이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빛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2) 이러한 어거스틴의 답변은 사실상 성경을 문자적으로 볼 때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고 비꼬았던 마니교도들에 관한 변증이었다. 즉, 이들은 궁창위의 빛인 태양이 넷째 날 창조되었다면 그 첫째 날 나온 빛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어떻게 태양과 지구의 상호주기작용으로 인한 '날”(하루 24시간 개념)이라는 부조리한 말을 쓸 수 있느냐는 식으로 구약의 말씀을 도전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던 것이다.

셋째 날 창조된 식물에 관해 에프렘은 설명하기를 풀은 즉시 창조되었지만 이미 성년에 이른 완숙한 풀이요, 나무도 하루 만에 단숨에 창조되었지만 벌써 과실을 맺을 만한 완숙한 형태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13) 바실은 셋째 날 창조에 있어 풀과 채소와 과목과 같은 식물이 이미 넷째 날 태양의 창조이전에 선재한 것을 통해서 이미 지구와 식물계가 사실상 태양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마치 태양을 생명의 기원을 야기한 존재로 보아 이를 예배하거나 숭배하는 행위는 무지하고 악한 우상숭배임을 통렬히 지적하였다.14) 크리소스톰도 이미 셋째 날 식물계의 창조는 가시적 태양광선이전에 이미 성년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하고 이렇게 된 이유는 주님께서 생명의 근원을 태양이 아닌 하나님 자신에게 돌리려하게 함이었던 의도라고 밝히고 있다.15) 암브로우스 또한 태양은 사실상 식물보다도 더 어린 존재임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태양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생명력을 주는 근원임을 알게 하려함이라 하였다.16)

 

4. 새와 물고기의 창조에 관한 이해

바실은 넷째 날과 다섯째 날에 창조된 궁창의 빛들(해, 달, 별)과 새와 어류와 같은 생물들을 창조된 공간과 무대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장식물(ornamentation)로 보았다.17) 그는 문자의 나열과 단어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다섯째 날의 경우 물고기와 새의 출현에 있어서 물에게(만) 명령을 내린 구절(창1:20)을 설명하면서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새의 날개가 공통적으로 유체 속에서 유영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볼 때 이러한 유영을 위한 공통적 구조가 곧 공통의 출처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18) 이토록 바실의 경우 이러한 세심한 차이도 빠뜨리지 않고 설명을 부과하려 한 면밀함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초대교회 교부 중 영지주의(Gnosticism)에 대해 가장 맞선 사람이 이레니우스(Irenaeus)였다면, 마니교(Manichaenism)에 대해 가장 맞선 사람은 한때 그것을 추종하고 따랐던 어거스틴이었다. 어거스틴의 경우 창세기 주해는 대부분 마니교도의 성경비판에 대한 변증이었음을 보게 된다. 마니교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파생될 수 있는 비과학적, 비논리적인 면을 끄집어내어 성경의 권위를 비판하려고 하였다. 특히, 다섯째 날의 새의 창조를 물고기가 창조된 물이라는 배경에서 같이 창조된 것으로 이야기하면서 어찌 조류와 어류를 한 통속으로 보느냐는 것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설명하기를 여기서 이야기하는 물은 바다나 강과 같은 물이 아닌 많은 수분을 내포하는 공기라고 설명한다. 물이 물고기의 지느러미로 유영할 수 있는 매질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공중의 새들도 축축한 수분이 내포된 공기가 그들의 날개로 날 수 있도록 매질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그 공기 중의 수분은 밤새 이슬이 되어 응축된 자연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19) 반면 알레고리적(allegorical) 해석으로 유명한 오리겐(Origen)과 같은 교부는 궁창을 마치 우리의 마음에 비유하면서 궁창을 나는 새는 마침 우리 마음속에 어지럽게 날고 있는 악한 생각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으로 설명하였다.20)

 

5. 여섯째 날 동물의 창조에 관한 이해

바실의 경우 여러 동물들의 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러 생물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이렇게 종류대로 된 것들이 아무리 수십 세대 간을 거치는 동안에라도 변함이 없이 보존된다는 자연현상에서 더욱 입증되고 있다고 설명한다.21) 그러므로 종자의 순종(purebred)은 창조질서에 따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이나, 잡종(hybrid)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잡종은 창조질서의 역행으로 인해 사실상 고통을 당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있다고 해석함으로 상당히 생물학적인 언어로 종에 관한 이해를 설명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22)

마니교도들은 여섯 째날 하나님이 땅을 향하여 명하시되 동물들을 종류대로 내라(창1:24)고 한 구절을 인용하여 마치 광물질인 땅 자체에 유기물인 생명을 낼 수 있는 창조적 장치가 있느냐는 식으로 기독교를 힐난하였다. 이에 대하여 바실은 땅이나 물이 자체로 부터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창조의 궁극적 근원을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의해 비롯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23) 바실은 이러한 창조행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았다.24)

 

6. 여섯째 날 인간의 창조에 관한 이해

인간의 창조에 관해서는 교부들이 좀 더 세심한 이해와 해석을 덧붙였다. 특히,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은 다른 피조물과 두가지면에서 특이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인간의 창조에 있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간의 논의(Triune consultation)가 있었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위대한 갑바도기아 교부가운데 한 사람인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의 주장이다. 다른 피조물들이 단순한 한 명령어에 의해 존재케 된 반면 인간은 삼위의 하나님의 신중한 논의에 의한 결정체였다는 것이다.25) 크리소스톰 역시 인간은 논의와 협력과 토의를 거쳐 나온 존재라는 면에서 타 피조물과 구별될 수 있다고 하였다.26) 그레고리는 인간의 창조가 순서상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면에서도 그 완성도가 다른 피조물과 다르다(이는 진화를 의미하진 않음)고 주장한다.27)

둘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면에서 더욱 구별된다. 헬라의 교부들은 형상과 모양을 별개의 요소로 보고 애써 이를 구별하여 보려고 하였다. 그래서 오리겐은 형상(image)은 선천적 요소로, 모양(likeness)은 후천적 요소로 보아 후자를 인간자신이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노력으로 획득되어 질 수 있는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28) 창1:26절에서 언급된 형상과 모양 중 형상에 관한 것만 한 번 더 그 다음절에 언급되어 있고 모양에 관해서는 침묵하신 이유도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 한다고 보고 있다.29) 또한 헬라교부들의 치밀하고도 정밀한 해석적 시도는 우리의 형상과 모양에서 '우리”라는 말은 복수로 쓰인 반면, '형상”이나 '모양”이라는 말엔 복수가 아닌 단수로 지칭한 점에서 우리 하나님의 특성 즉, 세 인격(복수)으로 있으나 본질상 하나(단수)인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지칭한다고 설명하였다.30)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이야기할 때 이를 단순한 내면적 인격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외적인 신체의 모습까지도 이야기하는 지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 모두가 있었다. 내면적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고 이야기한 자는 오리겐으로 그는 우리의 영적인 특성, 즉 내면적 사람, 보이지 않고 비육체적이며 부패될 수 없고 죽지 않는 영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것으로 보았다.31)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내면적 성정은 반드시 삼위일체적 특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하여 삼위일체에 기반한 인간이해를 도모하였다. 포타미우스(Potamius)같은 교부는 인간의 외적인 신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체적 발현이라고까지 보았다.32)

 

7. 초대교부들의 성경해석관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하면 대체로 초대교부들은 창세기1장의 창조기사에 관한 해석에 있어 두 갈래로 나눠짐을 보게 된다. 하나는 문자적(literal) 해석이요, 다른 하나는 알레고리적(allegorical) 해석이다. ‘알레고리(allegory)’라 함은 우의적, 은유적, 풍유적 해석이라 하여 문자가 의도하는 것 이상의 뜻(주로 영적인 의미)이 있다고 믿고 숨겨진 진의를 해석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동방 헬라 교부의 대표적 인물인 오리겐을 들 수 있다. 서방 라틴 교부를 대표하는 어거스틴의 경우 성경해석에 있어 그 나름대로 합리성과 조화를 시도하기 위해 문자적 해석에만 머물지는 않았음을 보게 된다.33)

일례로, 창조기사의 ‘날’(Day)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그 입장이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지게 됨을 본다. 첫째는 ‘하루 24시간’으로 보는 입장이며, 둘째는 ‘긴 연대’적 입장이며, 셋째는 ‘순간적 창조’의 입장이다. 먼저, 첫 번째 부류로 문자적 접근을 시도했던 크리소스톰의 예를 들어보자. 창조기사에 있어서 ‘날'이라는 말을 태양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첫날부터 쓴 것은 그 시간의 정해짐이 넷째 날 창조된 태양에 대한 지구자전주기의 결과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러한 시간대(24시간)로 날을 지정하였다는 것을 강조함으로 하루를 지구의 자전에 의한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하신 말씀의 권위에 의한 의도적 결과로 해석하였다.34) 바실의 경우도 문자적 해석에서 벗어나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가는 것은 계시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더 과시하는 태도라고 보고 성경은 문자적으로 의미하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했다.35) 에프렘도 6일간의 창조를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즉, 문자적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36)

두 번째 견해로 알레고리적 해석을 시도한 오리겐은 물론이고, 순교자 저스틴이나 이레니우스, 카르타고의 키프리안(Cyprian of Carthage)은 하루를 천년 혹은 그에 상응하는 긴 시간으로 보았다. 그것은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벧후3:8) 같다는 비유를 그대로 적용한 것이고 아담도 과실을 따서 ”먹는 날” 바로 죽지 않고(창2:17) 930세에 죽은 것(창5:5)으로 보아 ‘날’의 의미를 하루 24시간으로 만 볼 필요는 없다고 유추한 결론들이었다.

그러나 초대교부들 가운데에는 특이하게도 또 다른 세 번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있었다. 암브로우스 같은 교부는 다섯째 날의 창조기사에서 아예 모든 생물의 창조는 순식간이며 동시적이었다고 보았고, 단지 창조기사는 이를 우리의 인식에 맞게 설명하도록 순서적으로 배열된 묘사에 불과하다고 믿었다.37) 그의 회심에 있어 암브로우스의 영향을 받고 세례까지 받은 어거스틴의 경우에도 근본적으로 창조를 24시간 길이의 하루가 여섯 날에 걸쳐 창조된 것이라 보지 않고 오히려 일순간에 창조된 것으로 보았다.38) 그도 역시 창조기사의 서술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논리적 순서(이때 논리는 과학적 시간의 순서 논리가 아닌 영적인 의미에서의 논리)에 의해 기술되었을 뿐 실제 창조는 일순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반해서 닛사의 그레고리는 창조는 순서적으로 이행된 하나님의 행동으로 보아야 된다고 주장했다.39) 이에 관해 크리소스톰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절차 없이 다 창조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나 우리의 이해와 교훈을 위해서 순서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40)

초대교부들의 창조기사 해석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다른 성향이 있음에 관해 통찰력 있게 연구한 샌드웰(Isabella Sandwell)은 두 인물로 위에서 언급되어온 크리소스톰과 바실을 대비시키고 있다.41) 양자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모두가 니케아 공의회의 신앙고백을 충실히 따르는 정통 교부들이라는 점과 문자적 의미의 해석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42)그리고 두 사람 다 알레고리적 해석에 찬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43) 그러나 상이점이라면 크리소스톰의 경우 좀 더 목회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바실의 경우 좀 더 과학적이고 변증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이다.44)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말씀으로 '선포‘하는 쪽에 섰다면, 후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납득해야 할‘ 말씀으로 ‘설명‘하는 쪽에 있었다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궁창을 설명하면서, 바실은 마치 오늘날 노아홍수의 캐노피 이론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공기가 찬 하늘의 물[즉, 궁창위의 물]이 있어서 위로 올라 온 수증기, 즉 강과 못과 늪과 그리고 바다에서 오른 그 증기가 위로부터 오는 엄청난 열기로부터 [궁창 아래의 땅을] 타는 것을 방지해 주는 것이다.45)

바실은 처음 3일간의 빛도 태양과 상관없이 아침과 저녁을 구분 짖게 하셨으나 오직 넷째 날 광명을 만드신 이유는 이 원초적 빛을 담을 하나의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하였다고 설명한다.46) 마치 이것은 빛과 램프를 비교해 봄으로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빛 자체가 램프와 분명 구별되는 것처럼 등(광명)은 빛을 담기위해 준비된 그릇에 불과하다는 것이다.47) 반면 크리소스톰은 설명하기를 하나님께서 태양을 처음부터가 아니라 셋째 날 식물이 창조되고 넷째 날 만드신 이유는 헬라인들로 하여금 식물을 자라게 하는 근원이 태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만 근거한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이시기 위한 것임을 말하여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48) 바실은 가능한 기존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비유적 방법(analogy)을 사용하여 이해를 돕고자 하였지만 크리소스톰은 오히려 청중을 납득시키려고 하는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비약적이고 탈 논리적 방법으로 믿음의 중요성을 더욱 부곽 시키려고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49) 한마디로 바실이 그 예리한 지성으로 우리의 이성에 호소하였다면 크리소스톰은 그 황금의 입으로 우리의 믿음에 호소하였던 것이리라 여겨진다.

 

III. 초대교회시대의 창조신앙을 위협하던 사상들과 이들의 세계관

1. 헬라주의적 세계관: 플라톤주의와 영지주의

오늘날 창조신앙을 위협하는 것이 과학사조 가운데 하나인 진화론 사상이라면 초대교회당시 창조신앙을 위협하였던 것은 헬라(Greek)의 철학사조 가운데 하나인 플라톤주의(Platonism)였으며 이후 발전된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와 이것이 기독교내에 영입되어 혼합주의적 양상을 띤 영지주의(Gnosticism)라 할 수 있겠다.

초대교부들의 창조론은 대체로 당시 그들을 위협했던 플라톤주의적, 영지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대응이었고 변증이라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주의는 상위 및 하위 개념의 이원화된(dualistic)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상위 개념이 완전하고 선하며 불변하는 원형(Form 혹은 Idea)의 진리의 세계인 형이상학적 세계라면 하위 개념은 불완전하고 선하지 않으며 가변적인 형이하학적 세계로 대비된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관에선 당연히 물질적인 것은 정신적이며 이성적이며 영적인 것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었으며 기독교의 창조론에 심각한 위협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플라톤주의 세계관에선 물질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50) 창조는 기껏해야 조물주(Demiurge)가 이토록 선재하는 물질을 창조사역을 위한 필연적 재료로 의존하고 사용한 ‘유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materia)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전능성에 근거한 ‘무로부터의 창조’를 위협하는 세계관이었다.51) 헬라권에서 플라톤철학에 깊이 젖어들었던 순교자 저스틴이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같은 이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유로부터의 창조로 본 반면에, 시리아권의 타티안(Tatian)이나 라틴권의 터툴리안(Tertullian)과 같은 교부들이 창조를 무로부터의 창조로 본 것은 이러한 교부들의 사상 속에 배어 있는 정신문화적 배경을 엿보게 해준다.52)

더 나아가 영지주의적 세계관의 위협은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구약의 창조를 악신의 창조로 보며 구약을 폐기하려는 위협이었다. 이러한 부류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르시온주의(Marcionism)라 하겠다. 그 창시자 마르시온(Marcion)의 이름을 딴 이 이단사상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지은 조물주(Demiurge)로서 신약의 예수의 아버지가 되시는 사랑의 하나님과는 다른 신이라고 본 것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의 하나님과 달리 보복적이며 열등한 유대인의 부족 신 정도로 보았다. 교부 이레니우스는 그의 저서 Against Heresies(이단에 대항하여)에서 이러한 이원론적이고 위험한 사상을 견제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말씀이며 로고스를 통해서 이룬 무로부터의 창조를 강조하였다.53)

 

2.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의 세계관: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를 위협할 만큼 팽배했던 종교 사상가운데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와 마니교(Manichaeism)가 있었다. 이 둘은 고대로부터 헬라에 맞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던 페르시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두 가지 모두 그 세계관을 살펴 볼 때 헬라적 사상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 이원론적 특성을 지녔다는 면에서 영지주의와 사촌관계라 할 수 있겠다. 형이상학적 이원론(metaphysical dualism)은 곧 도덕적 이원론(moral dualism)과 연결되어 불가분의 관계가 형성되는데 플라톤주의에서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완전한 것 vs. 불완전한 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면,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도덕적 이원론(선한 것 vs. 악한 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에 시작된 조로아스터교는 우주와 역사의 이해를 선신과 악신의 대결양상으로 믿었는데 이는 훗날 마니교 사상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쳐 선과 악, 빛과 어둠이라는 대립구도로 나타나게 된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조론은 이토록 대결구도로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선신과 악신이 각각 선한 것의 창조, 악한 것의 창조를 하였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성경적 창조신앙에 위배됨을 볼 수 있다.

마니교는 기독교 초기시대에 조로아스터교보다 더 급진적이고 널리 퍼진 고대종교가운데 하나로 북아프리카의 젊은 어거스틴에게까지 파급력을 미친 것을 볼 수 있다. 3세기 페르시아의 예언자 마니(Mani)의 사상은 어거스틴을 매료시켰고 그의 주장은 이후 어거스틴이 기독교인이 되고 난 후 그의 신학사상을 고뇌하는 가운데 정련케 시킨 대표적 이단사상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들이 기독교신앙을 위협하였던 부분은 두 서로 다른 신과 실체의 대립구도로 인해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앙인이 된 어거스틴은 이러한 이원론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악은 실체가 아닌 선의 부재로 보았으며 같은 맥락에서 창세기 1:2에 언급된 흑암에 관해 이는 존재로서의 어두움이 아니라 빛이 없는 부재로서의 어두움, 즉 어두움이 실체가 아닌 빛이 없는 상태임을 가리키고 있음을 주장하였다.54)

마니교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도들이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곡해 한다는 것이었다. 어거스틴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였으나 그는 기독교인으로 새로운 변증을 제시해야만 했다. 한때 마니교에 심취하였던 어거스틴의 경우 마니교에 대항하여 무로부터의 창조를 옹호하기위해 마니교가 유로부터의 창조를 근거로 삼는 창1:2을 변증하기위해 창1:1과 창1:2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설명을 시도하였다. 즉, 창1:1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였으며 이후 언급된 창1:2은 이 상간 어느 때인가 무로부터 만들어진 물질을 언급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납득될 수 있는 해석과 조화를 시도하며 마니교도의 공격에 일축을 가했다.55) 그러나 이 결과 어거스틴은 창세기의 첫 두절 상간에 불가분 갭(gap)을 초청하는 틈을 주고 말았다.

시리아의 교부 에프렘과 페르시아의 현자(sage)라 불리는 교부 아프라하트(Aphrahat)는 이 지역에 팽배하며 이원론적인 세계관으로 창조신앙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핵심교리들을 위협하였던 조로아스터교 및 마니교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며 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고 페르시아권에 만연하던 점성술등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해서는 안 될 여러 일들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견지해 줄 신앙고백을 서술하고 있다.56)
 


Ⅳ. 초대교회의 창조신앙에 대한 변증이 오늘날 창조과학운동에 주는 함의

1.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nihilo): from Demiurge to Creator

이상과 같은 세계관들이 위협하였던 것은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이 만유의 주재시요 창조자가 되심을 제한하는 도전들이었다. 결국 초대교회 창조논쟁의 열매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교리의 확립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이는 이후 전개될 창조신학과 창조과학의 토대를 놓아 줄 출발점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며, 온전한 ‘창조신앙’의 정의를 의미한다. 당시 창조에 관한 수많은 논의가운데서도 가장 핵심과 사활이 걸린 것은 결국 ‘무로부터의 창조’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자유의지라는 속성에서 필연적으로 귀추 될 수밖에 없는 결론이었다.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닌 유로부터의 창조는 하나님을 창조주가 아닌 조물주(이미 있던 물질로 질서지우는 자)로 제한하는 영지주의적 요소를 인정하는 바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교자 저스틴이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후 2세기 말부터는 무로부터의 창조는 점차 교회의 정통적 창조신앙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57)

초기 아리우스(Arius) 이단에 대한 대항이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 관하여 공헌하였다면, 영지주의에 대한 대항은 무로부터의 창조교리를 잉태한 셈이다. 이로 보건데 무로부터의 창조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초대 기독교역사의 두드러진 신학적 산물(theological landmark)로서 정통신앙의 표지(signpost)가 되었으며, 창조론의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이정표(milestone)가 되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창조신앙의 핵심교리로 당시 창조론을 위협했던 많은 이단적 사상들에 대해 더 무게 있게 강조되어지고 변증되어졌다.58) 무로부터의 창조는 특히, 영지주의와 기독교를 구별 지어주는 가늠자가 된 것이다. 초기교부가운데 위에서 언급된 순교자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그리고 오리겐과 같이 헬라 철학적 특성이 강한 교부들을 제외하곤, 무로부터의 창조는 바실, 에프렘, 어거스틴과 같은 대부분의 주요 교부들에 의해 옹호되었다.59)

성경은 분명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히11:3),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롬4:17), ”만물은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다”(계4:11)고 하시며,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33:6)라고 선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충실히 따를 때 성경자체가 ‘무로부터의 창조’를 이끌어 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무로부터의 창조’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에게 자연은 언제나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직 스스로 있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다(출3:14). 그러한 관점에서 자연(自然)은 오직 타연(他然)일 뿐이다.

 

2. ”정녕 죽으리라” vs.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오늘날 과학주의적 사고, 진화론적 사고가 성경의 창조신앙에 대한 위협이 되었다면 초대교회 때 창조론에 지극히 위협을 미친 것은 이원화된 구조의 철학 및 종교사상, 특히 영지주의적 사고가 성경의 창조신앙에 대한 위협이라고 대응시켜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과학주의와 진화론이 영적인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고 오히려 유물론적 사고, 진화(evolution)란  이념에 사로잡혔다면,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적 세계관에선 오히려 영적인 세계에  대해 지나치고 신비적일 정도로 사로잡혀 있고 창조세계는 오히려 퇴화(devolution)되었다고 여기는 잘못된 이념을 보게 된다. 오늘날 과학주의와 진화론이 자연세계를 절대화하여 하나님을 배제시킨 것이라면 초대교회당시 플라톤주의, 영지주의는 오히려 자연세계를 경시함으로 이를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을 경시하고 한갓 열등한 신인 조물주로 격하시켜 버린 것이다. 이러한 조물주 사상은 플라톤주의, 마르시온주의와 같은 영지주의, 그리고 마니교등에선 'Demiurge'라는 이름의 조물주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한 신에 대항하는 악신인 'Ahriman'이란 이름의 조물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로써 보건데, 초대교회당시 이토록 격하된 창조세계에 대한 인식에서는 기독교의 핵심진리라 할 수 있는 창조, 성육신, 몸의 부활과 같은 것들이 오히려 그들에겐 부합될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모든 핵심적 진리가 시간과 공간과 인간, 즉 구체적인 역사 속으로 계시되었다는 기독교 진리의 역사성(historicity)마저도 경멸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십자가의 도’가 결국 지혜(philosophy)를 찾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unsophisticated, foolish) 것으로 거치는 반석밖에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고전1:18; 1:22-24).

초두에 가정한 바처럼 초대교회 시대이든 오늘날의 시대이든 창조신앙을 위협하는 사상들과 세계관속에는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어떠한 공통적인 요소가 있음을 보게 된다. 과연 무엇이 공통적인 요소였는가? 한마디로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대한 불신앙이라고 하겠다. 이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하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다. 이것은 인류의 첫 조상에게 처음으로 부닥뜨려진 바로 그 테스트였다. 그 본초적인 현장으로 다시 찾아가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3:1,4)

”정녕 죽으리라”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사이에는 어떠한 중립의 여지도 없다.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선택의 문제이고 그 결과 사실여부에 의해 진정한 권위가 누구에게 속하는가를 판가름 짓는 문제이다. 그리고 지구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은 모든 육체가 ”죽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아니 모든 사람은―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에 대해서는 높은 견해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성경을 대할 때, 계속되는 자연의 관찰과 과학의 발견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더욱 드러나고 그 말씀의 권위가 더욱 견고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그것이 '주의(-ism)' 곧, 이데올로기화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우리는 과학과 과학주의, 철학과 철학주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과학행위도, 철학행위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위협하는 ‘과학주의’와 ‘철학주의’의 모습에 대해선 대처할 줄 알아야 하겠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수정당할(to be corrective) 마음의 각오를 할 줄 알아야 될 것이다.

 

V. 나가면서

지금까지 창조신앙의 역사(歷史)를 더듬어 보고자하는 마음에서, 창세기1장의 창조기사에 관한 초대교부들의 성경해석, 초대교회당시 창조신앙을 위협하였던 사상과 세계관들, 그리고 초대교회의 창조신앙에 대한 변증이 오늘날 창조과학운동에 던져주는 함의가 무엇인가 살펴보았다.

초대교부들의 창조기사에 대한 이해와 입장은 통일된 것이 아니었고 다양하였음을 보여준다. 문자적 해석, 알레고리적인 비유적 해석, 그리고 절충적인 입장등 차이가 있었고 이러한 차이는 개인적 성향 뿐 아니라 그들이 살던 시대와 지역의 정신문화적 특성도 반영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졌을 뿐 아니라 초대시대를 마감하고 중세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이후에 도래할 중세 천 년,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개혁자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던 어거스틴의 경우만 하더라도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이 다 동의할 수 없는 해석과 입장을 전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상, 그의 방대한 저술과 사상의 폭에서 일관되고 체계적인 창조론의 논지를 관찰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는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초대시대의 교부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신앙적 유산과 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나 그 누구도 창조에 있어 완벽한 이해를 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당시의 다양한 형태의 철학, 종교, 이단적 사상들에게서 총체적인 세계관적 구조를 갖고 나타나는 ‘이원론’이라고 하는 공통분모적인 특색 에 대해서 창조신앙을 변증하기 위해 ‘무로부터의 창조’가 그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창조론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오직 시작점에 불과할 뿐이다. 초두에 물었던 가정대로, 창조신앙에 대한 초기의 도전들이나 오늘날의 도전들이나 그 공통적인 요소는 ‘말씀의 권위’에 대한 태도로 압축되어 진다.

이제 부족한 능력과 여러 가지 한계 속에 내놓은 소견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으로 소고를 마쳐야겠다. 앞으로 기회가 허락되는 대로 초대교회시대를 이어 중세, 종교개혁과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창조신앙이 어떠한 도전을 받아왔고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그 신앙의 여정을 계속 추적해 보기를 기약해 본다.

 


Footnotes

1) 이를 위해서 주로 사용한 자료는 The Ante-Nicene Fathers (hereafter, ANF). Thomas Oden, general ed.,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hereafter, ACCS), Old Testament, I, Genesis 1-11, edited by Andrew Louth in collaboration with Marco Conti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2001). R. R. Reno, Genesis, Brazos Theological Commentary on the Bible (Grand Rapids, Michigan: BrazosPress, 2010). 그리고 관련학회지로서 북미주교부학회(The North American Patristic Society)에서 발간되는 Journal of Early Christian Studies를 참조했다.
2) CCS I, li.
3) Chrysostom, Sermon 1:3, ACCS I, 4.
4) Basil, Hexaemeron 3:9, ACCS I, 10.
5) Augustine, Two Books on Genesis Against the Manichaeans I 11:17, ACCS I, 10.
6) Ephrem, Commentary on Genesis I, ACCS I, 6.
7) Ephrem, Commentary on Genesis I, ACCS I, 6.
8) Jerome, Homilies 10, ACCS I, 6.
9) Ephrem, Commentary on Genesis I, ACCS I, 6.
10) Ephrem, Commentary on Genesis I 8:3; 9:2, ACCS I, 7.
11) Ambrose, Hexaemeron 4:1, ACCS I, 17.
12) Augustine, Two Books on Genesis Against the Manichaeans, I 3:6, ACCS I, 5.
13) Ephrem, Commentary on Genesis I 22:1-2, ACCS I, 15.
14) Basil, Hexaemeron 5:1, ACCS I, 15.
15) Chrysostom, Homilies on Genesis 6:12.
16) Ambrose, Hexaemeron 3:6, ACCS I, 15.
17) Basil, Hexaemeron 7:1, ACCS I, 20.
18) Basil, Hexaemeron 8:2, ACCS I, 21.
19) Augustine, Two Books on Genesis Against the Manichaeans, I 15:24, ACCS I, 21.
20) Origen, Homilies on Genesis 1:8, ACCS I, 21.
21) Basil, Hexaemeron 9:2, ACCS I, 22.
22) Ambrose, Hexaemeron V 3:9, ACCS I, 23.
23) Basil, Hexaemeron 8:1, ACCS I, 25.
24) Basil, Hexaemeron 9:2, ACCS I, 25.
25) Gregory of Nyssa, On the Origin of Man, ACCS I, 28.
26) Chrysostom, Sermons on Genesis 2:1, ACCS I, 28.
27) Gregory of Nyssa, On Creation of Man 8:7, ACCS I, 28.
28) 이와 비슷한 견해로 디아도쿠스(Diadochus of Photice)도 하나님의 모양(likeness)은 자발적 사랑과 헌신에 의해 이를 수 있는 요소로 간주하였다. 참조) Diadochus of Photice, On Spiritual Perfection 4, ACCS I, 30.
29) Origen, On First Principles III 6:1, ACCS I, 30.
30) Fulgentius of Ruspe, To Peter on the Faith 5, ACCS I, 31.
31) Origen, Homilies on Genesis 1:13, ACCS I, 31.
32) Potamius of Lisborn, Letter on the Substance 356-64, ACCS I, 33.
33)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The City of God(신의 도성)에서 창조기사에 나오는‘날’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정의하기 극히 어려운 사안이라고만 언급하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진 않았다. 참조) Augustine, 'The beginning of the world and the beginning of time are the same,' The City of God, Book 11: Chapt. 6; 'Of the nature of the days when there was 'morning and evening' before the creation of the sun,' The City of God, Book 11: Chapt. 7. 어거스틴은 문자적 해석을 따르는 교부들과는 달리 24시간에 기초한 6일 창조론을 따르진 않았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인류역사의 연도에 관해선 비교적 짧은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아담 이후 인류의 역사는 600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참조) Augustine, 'Of the Falseness of the History Which Allots Many Thousand Years to the World’s Past,' The City of God, Book 12: Chapt. 10.
34) Chrysostom, Homilies on Genesis 6:14, ACCS I, 16.
35) Basil, Hexaemeron 9:1, ACCS I, 16.
36) Ephrem, Commentary on Genesis I 1, ACCS I, 9.
37) Ambrose, Hexaemeron 5:2-3, ACCS I, 21.
38) 어거스틴의 이러한 입장은 그의 저서 On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1.14.28-29; 6.6.9)에 언급되어 있다. 이는 성경을 주해적으로 접근(exegetical approach)해서 얻은 결론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적인 추론(philosophical inference)을 통해서 내린 결론이다. 어거스틴에게서 창조는 '시간 안에서'(in time) 이루어지는 것(즉, 시간의 과정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될 수 없고 '시간과 함께' (with time) 이루어진 것(즉, 시간이 시작되는 그 찰나적 시점)이어야만 한다는 사상에서 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에게 창조이전의 시간이란 개념은 적용할 수 없다. 창조는 곧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의 시작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9) Gregory of Nyssa, Homilies on Genesis 44, ACCS I, 45.
40) Chrysostom, Homilies on Genesis 3:12, ACCS I, 45.
41) Isabella Sandwell, 'How to Teach Genesis 1.1-19: John Chrysostom and Basil of Caesarea on the Creation of the World,' Journal of Early Christian Studies 19 no. 4 (Winter 2011), 539-64.
42) Sandwell, 539.
43) Sandwell, 543.
44) Sandwell, 539.
45) Basil, Hexaemeron 3:7, Sandwell, 555.
46) 이와 비슷한 견해로 훗날 다마스커스의 요한(John of Damascus)도 넷째 날의 광명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 광명은 그 자체가 빛의 근원이라기 보단 첫째 날 창조된 빛의 수용체(receptacle)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참조) John of Damascus, Orthodox Faith 2:7, ACCS I, 17.
47) Basil, Hexaemeron 6:2, Sandwell, 556.
48) Chrysostom, Homilies on Genesis 6:14, Sandwell, 557.
49) Sandwell, 561.
50)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중 하나인 Timaeus에서 우주는 선재하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그의 사상에 근거한다. 참조) 알리스터 맥그래스 저, 박세혁 역, 『과학신학』 (서울: IVP, 2004), 71.
51) Paul M. Blowers, 'Creation,' in Encyclopedia of Early Christianity, ed. Everett Ferguson (New York & London: Garland Publishing, 1990).
52) 아무리 교부들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시대적 산물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당시의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의 교부 에프렘의 경우는 하늘, 땅, 불, 바람, 물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는 창세기 1:1에서 언급된 최초의 창조, 즉, 무로부터의 창조로 보고, 이후에 나오는 창조들, 즉, 창세기1:3에서 언급된 빛의 창조로 부터는 이미 있었던 이들 요소를 이용해서 창조된 유로부터의 창조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Ephrem, Commentary on Genesis I 1:14; 15:1, ACCS I, 9 참조). 이처럼 교부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의 기본적인 요소들, 즉, 물, 불, 흙, 공기들에 대한 언급은 당시 헬라적 세계관에서 너무도 강력히 나타나는 자연철학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써 바실과 같은 초대교부들의 성경해석에서도 나타남을 볼 수 있다 (Reno, 548 참조).
53) Blowers, 'Creation.'
54) Augustine, Two Books on Genesis Against the Manichaeans, I 9:15, ACCS I, 8.
55) Reno, 39.
56) 이러한 예는 아프라하트의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 Demonstrations 1:19을 참고하기 바람.
57) 이후 1215년의 제4차 라테란 회의 때는 교리로서 공식화 되었고, 1870년 제1차 바티칸 회의 때 재확정 되었다.
58) Basil, Hexaemeron 2:2-3, ACCS I, 2.
59) 예) Augustine, On the Literal Interpretation of Genesis 4:13, ACCS I, 6.

 

참고문헌

(1) The Ante-Nicene Fathers.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1989.
(2) The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First & Second Series. Grand Rapids, Michigan: Eerdmans, 1989.
(3) Ferguson, Everett, ed. Encyclopedia of Early Christianity. New York & London: Garland Publishing, 1990.
(4) Oden, Thomas, general ed.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Old Testament, I, Genesis 1-11, edited by Andrew Louth in collaboration with Marco Conti. 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2001.
(5) Reno, R. R. Genesis. Brazos Theological Commentary on the Bible. Grand Rapids, Michigan: BrazosPress, 2010.
(6) Sandwell, Isabella. 'How to Teach Genesis 1.1-19: John Chrysostom and Basil of Caesarea on the Creation of the World.' Journal of Early Christian Studies 19 no. 4 (Winter 2011): 539-64.
(7) 알리스터 맥그래스 저, 박세혁 역. 『과학신학』 서울: IVP, 2004.


출처 - 2012 국제학술대회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466

참고 :

김영길
2019-06-30

21세기의 선교교육 창조과학, 이것을 선교한다.

김영길


 *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힘껏 외치셨던, 김영길 초대 한국창조과학회 회장이시자 전 한동대 총장님께서 2019년 6월 30일 새벽 3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창조의 진리를 전파하고, 젊은이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셨던, 그리고 언제나 밝은 얼굴로 저희들을 맞아주시던 총장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총장님! 사명 감당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품에서 편안히 안식하십시요! 총장님이 그리울 것입니다!  

                                                             - 2019년 6월 30일 한국창조과학회 회원 일동


1. 서론

얼마 전 러시아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3년 전 독립국가연합(C.I.S.) 우즈벡 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에 선교사로 파송된 부모를 따라 그곳에 간 한 국민학교 학생의 상담 편지였다. 그 내용을 그대로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저는 지금 러시아 학교 6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곳 학교 교과서에는 무신론에 따른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과학회에서 나온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 등을 읽어보고 무신론에 따른 생각을 물리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몇 가지 창조론과 관련된 문제에 관하여 상담을 하는 편지였다.

신학자 반틸(C. Van Til)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신다는 전제가 기독교 선교의 핵심임을 역설한다. 반틸의 강조가 아니더라도 우주를 지으신 분이 계시며, 그분이 치밀한 계획과 섭리로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셨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과학적인 것들을 신뢰하는 정도가 심해지면서, 믿음 안에서도 과학적 논리로 따져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증가하여 왔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과 창조의 사실 자체에 대하여 과학으로 검증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사실, 더 명확히 알고 싶어 하는 탐구의 정신은 죄악이 아니다. 성경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시19편)고 하였으며,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며 각각의 이름을 부르시는(사40:26) 치밀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알아보라고 직접 명령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롬1:20)고 하였지만, 오늘날 과학은 오히려 하나님을 부정하는 도구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이에 선교의 수단으로서의 창조과학이 절실히 필요해진다.

<창조과학>은 창조를 증명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과학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증거하면서 과학의 전제인 우주에 놀라운 질서를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 세계의 오묘한 창조 질서와 계시로서의 성경의 역사적 기록(창세기 대홍수 사건 등)에 대한 확실성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창조론을 전파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1차적 문제가 과연 우주와 생명의 진화에 대한 가설이 성경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 하는 점이다.


2. 진화론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론

성경은 신구약 66권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진화의 방법으로 창조하셨다는 조그마한 실마리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이 증거하는 것은 모든 천지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주간에 창조하셨으며(창1, 출20:11), 생물은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특별히 이 종류대로 라는 말은 창세기 1장의 여러 곳(11, 12, 21, 22, 24, 25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것으로 보아, 각별한 메시지임이 분명하다.

현대 생물학은 생물들 간에 유연관계가 있는 것끼리 일정한 분류 체계를 정하여 놓고 진화의 계통도를 만들어 종류를 구별한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말하는 종류(Kind)대로라는 말은 교배가 가능한 범위를 말하는 것 같고, 이 말은 현대 생물학이 말하는 ‘종(種, Species)’이라고 부르는 것에 속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속(屬, Genus)’ 또는 ‘과(科, Family)’에 해당될 것이다.

종(種)은 기본이 되는 단위인데, 대체로 같은 형질을 나타내므로 같은 종 사이에는 교배가 가능하다. 그러나 집고양이와 들고양이의 경우에는 같은 속에 속하지만 다른 종이면서도 교배가 가능하다. 그리고 가끔 다른 속(屬)사이에서도 교배가 가능할 수도 있다. 즉, 어떤 종류의 곡물류는 목초류와 교배시킬 수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성경에서 말하는 종류가 과(科)에 해당되는 것이다.

같은 속에 속하면서 다른 종류인 말과 당나귀는 서로 인위적으로 교배시켜 노새를 생산할 수 있는데 생식력은 없다. 따라서 이 두 종은 <종류>라는 말의 한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이 종(種)의 근본적 변천을 주장하는 진화론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종류대로>라는 개념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대 생물학의 분류체계에는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다. 즉 하나님은 일정한 종류의 기본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그 종류 범위 내에서만 환경에 따라 적용하여 변천할 수 있는 기본 형식을 정하셨지만, 그 한계는 엄격히 유지하고 계시며, 우리 인류가 그 한계를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레19:19, 고전15:38-40).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를 깨달은 유대의 랍비들은 말과 나귀를 다른 종류로 간주하고 교배를 금지하였다. 물론, 레위기 19장 19절의 서로 다른 육축의 종류에 대한 교접을 금지시킨 하나님의 규례는 성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분리된 삶을 요구하는 영적인 교훈도 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유전공학의 방법이 하나님이 설정하신 <종류의 범위>를 인위적으로 벗어나는 일들과 무관하지만은 않으므로, 앞으로 이 문제는 신학자들과 크리스천 과학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성경 창세기 6~9장에 걸쳐 서술된 대홍수 사건은 우리들에게 진화론을 결정적으로 거부하게 만든다. 진화론을 신봉하면서 창세기 대홍수 사건을 성경대로 믿는 것을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 진화론은 과학의 기본법칙에도 위배

진화론은 아무런 과학적 증거를 갖지 못한 ‘이론(Theory)'이면서도 마치 과학적 ’사실(Fact)'인 것처럼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교육되어 왔다. 미국 창조연구소(ICR)의 소장인 헨리 모리스 박사는 진화론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다음 세 가지 과학적 기본 사실로부터 증거 된다고 하였다.

(1) 모든 지구역사를 통하여 진화(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의 보기로서 관찰된 결정적 생물이 하나도 없으며, 단지 그대로 멸종해 버린 생물들만이 확인된다.

(2) 진화되어 가는 것을 증거할 수 있는 완전히 과도기적인(반쯤 발달한 머리나 눈, 날개, 귀, 반쯤 발달한 생식기관 등) 구조를 갖는 생물이 과거로부터 관찰된 적이 전혀 없고, 현재 또는 진화론자들이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지층 등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경우가 전혀 없다.

(3) 우주의 질서는 끊임없이 붕괴하고 감소되어 간다고 하는 과학의 기본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이 있다. 그런데 진화론의 논리는 그와 반대로 우주가 점점 더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변화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화론과 과학의 기본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이 정면으로 위배됨을 나타낸다. 열역학 제2법칙은 어느 땐가 과거에 우주는 완벽한 질서를 유지한 적이 있음을 알려 주며, 현재는 계속해서 그 질서가 일정하게 붕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과거 언젠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벽한 질서를 갖춘 아름다운 태초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지금은 인간의 범죄 이후로 끊임없이 우주가 붕괴(롬8:22)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사실,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이 우연히 저절로 점차적으로 복잡한 구조로 변화되어 왔다는 것을 믿는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래서 진화론은 고대로부터 다양한 생각들과 혼합되어 수많은 진화의 가설들을 만들어 내었다.

진화를 믿는 믿음은 동일해도, 진화에 대한 메커니즘이나 그 경로는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진화론은 일치된 견해가 아닌 더욱 혼잡스럽고 다양한 이론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이 일치하지 않고 제각기 고집과 주장을 꺾지 않는 완고한 모습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또는 20년 뒤에는 또 다른 진화론의 모습으로 완강히 남아있을 것이다.


4.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진화론

진화론은 우리 인류의 양심에 반하여 윤리, 도덕적 기준을 허물어뜨리며 선악의 기준을 제거할 뿐 아니라, 결국은 인류 스스로의 타락과 파멸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오늘날 이와 같은 경향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그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준다.

교조주의적 진화론자였던 도브잔스키는 "진화론의 적자생존은 자기 본위, 쾌락주의, 비겁함, 속임수와 약탈 등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윤리학은 인간의 윤리학이어야 한다. 그것들은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다”라고 하였다.

소련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은 신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독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1000만 명이 넘는 유태인과 러시아인을 학살하고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었던 매우 잔인한 사람으로 갑자기 변한 데에는 진화론에 관한 한 권의 책이 그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서두에 소개된 편지를 보낸 우즈벡 공화국의 타슈켄트나 카자흐 공화국과 같은 중앙아시아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이유도 스탈린의 우리 동포에 대한 무자비한 강제 이주정책에 기인한다.

스탈린의 어릴 적 주일학교 친구였던 야로슬라브스키라는 사람이 쓴 <스탈린의 생애에 있어서의 라마르크>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아주 어린 시절, 교회학교 학생 시절에 스탈린 동지는 비판적인 생각과 혁명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그 후 그는 다윈의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무신론자가 되었다.”

진화론의 해악성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이론의 과학적 토대로 삼았던 것도 진화론이었다. 인간을 고도로 진화된 고등동물로 취급하는 심리학과 사회학의 다양한 현대적 기초도 진화론에서 왔다. 심지어 미국 에모리 대학의 머디 교수는 '미래의 다른 세대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행하여지는 한 세대의 무분별한 방종도 생물학적 진화 과정의 하나이며, 이성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하였다.


5. 결론 : 창조론을 통한 21세기 선교교육

한국창조과학회는 앞으로 국내 선교뿐 아니라, 공산권 선교와 일본 선교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들 지역이 어느 곳보다도 철저한 진화론에 근거한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시즘은 인간이 완전한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 낙관론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사회 진화의 최고 형태는 공산주의이고, 이 공산주의로 가는데 방해가 되는 진화의 장애물들은 ‘적자생존’이나 ‘자연도태’라는 근거에 의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는 달리 그 자체의 이념이 매우 종교적임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공산권 선교가 어려웠던 점은 바로 이와 같이 그 이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종교에 대한 배타성과 공산권 지도자들의 종교에 대한 억압, 그에 따르는 일반 대중들의 잘못된 세뇌가 종교적 편견을 불러 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공산권이나 오랫동안 공산권에 남아있던 러시아 등의 북방 선교에 있어서는 진화론의 모순에 대한 올바른 지적과 과학적 창조론의 전파가 매우 긴요하고도 시급하다.

얼마 전 북경의 한 캠퍼스에서 은밀히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한 선교사가 중국 대학생 선교의 어려움에 관하여 모 선교지에 언급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무신론적, 진화론적 유물사관에 세뇌되어 있는 그들에게 과학적으로 신앙을 변증해 줄 수 있는 중국어로 된 서적이 거의 없어 매우 안타깝다는 말씀이 있었다.

만일 이들에게 진화론적 유물사관의 모순을 지적하고 창조론을 변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한 다음 복음을 전한다면, 그들의 잘못된 편견을 쉽게 깨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범신론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일본의 선교에 있어서도 ‘과학적 창조론’의 필요성은 이미 여러 부분에서 확인되고 있다. 우리의 북한 동포를 위해서도 이와 같은 준비는 매우 필요할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모리스 박사는 진화론적 사고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온통 유해하고 부패한 것뿐이라고 하였다. 주님께서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7:18)고 하셨다. 하나님의 원칙과 어긋난 진화론이 만연된 곳에서 결코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과연 하나님께서 진화의 방법을 창조 사역에 사용하셨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창조과학 사역을 지난 10년 가까이 감당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도마와 같이 의심 많은 사람들을 그래도 사랑하셔서 과학이라는 초등학문의 이름을 통해서라도 선교의 사역을 감당케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마는 12사도 중 가장 의심이 많았으나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유일한 사도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도마는 가장 먼 곳까지 자청하여 선교를 떠난 사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는 한반도에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다고 일부 주장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보지 않고 믿을 수 있다면 더욱 값진 믿음일 것이다. 그러나 도마처럼 과학을 통해서라도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크신 은혜요 사랑이 아닌가! 창조과학은 바로 다만 이런 것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번역 -

링크 - ,

출처 - 창조 제148호, 2007년 1-3월호.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78

참고 : 2501|2197|2864|548|3024|3682|3423|2313|2346|2412|2332|540|2059|2566|653|192|2942|2797|6107|4487|6480|6639|3782|4241|6211|6356|6169|6473|6096|5083|5274|6461|6075|6634|5796|6292|6476|2647|6174|5718|6180|905|6165|6618|6631|6633|6636|6566|6638|6468|6449|6582|6553

김준곤, 김영길, 송만석
2019-06-30

새 천년을 열며 - 회고 및 한국창조과학회의 나아갈 길

김준곤, 김영길, 송만석


      한국창조과학회에서는 새 천 년을 맞아 본 학회의 창립과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신 세 분을 모시고, 그동안 학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회고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전망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오랫동안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재를 역임하시면서 대학생 사역에 헌신해 오셨고, 김영길 총장님은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이자 초대 창조과학회 회장으로서 창조과학 사역을 담당해 오시다가 몇 년 전부터는 한동대학교의 총장으로 교육에 헌신하고 계시며, 송만석 회장님은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서 현재 창조과학회 회장으로 수고하고 계십니다. 


대담 및 정리 : 김성현 <창조>지 편집장, 김경 사무총장, 조혜진 간사. 

사회 : 대망의 2000년이 밝았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시며 계획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이뤄지시길 바랍니다. 올해는 창조과학회가 설립된 지 19년이 되는 해이고 내년이면 2O주년을 맞게 됩니다. 그동안 질적,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하였는데 창조과학회가 설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말씀해 주시지요. 


김준곤 : 지난 80년에 세계복음화대성회를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 전문 분야별로 대학생, 10대, 교사 등 여러 분과가 있었는데 제가 동아시아 C.C.C. 전체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기쉬 박사와 모리스 박사를 잘 알고 있던 비서 셜리가 창조과학회 발족을 제안해 왔고, 이를 미국 쪽에서도 기쁘게 받아들여 강사를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장로님 중 대학교 생물학 교수로 재직 중인 분들을 만나 발기인이 되어 주실 것을 신청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널리 광고하여 관심 있는 기독교 학자들을 모으고 '창조론 대 진화론'에 대한 토론도 열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한국은 안 된다"라고 하시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창조를 믿으면서도 학교에서는 학문이니까 당연히 진화론을 가르치신다고 하시면서 "모순 아니냐?"는 질문에는 "생각하기도 싫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C.C.C. 출신의 다른 교수님들, 그리고 김영길 박사 등과 접촉이 되면서 일이 진행되었고, 결국 대성회 기간을 거쳐 한국창조과학회가 발족되었습니다. 

김영길 : 저는 당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재직중이었는데, 하루는 C.C.C. 간사였던 심영기 박사(현 본회 대전지부장)께서 찾아오시더니 "창조냐 진화냐"라는 세미나의 통역자 4명을 구해 달라고 하시면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강사로도 서 달라고 부탁하시는 거예요. 저는 전공이 금속재료공학이어서 부적합하다고 거절했는데, 생명공학전공자들은 세미나에 아예 오지도 않을 것이고, 할 사람도 없다고 하시면서, 막무가내로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고 해서 맡았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제일 처음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실 때 세상적으로 준비되어 있고 자격 있는 사람을 쓰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느헤미야도 무너진 성벽을 쌓는 역사를 일으킨 사람인데, 하나님께 부름 받을 당시에는 바사 왕국의 술 관원이었잖아요? 성벽을 쌓으려면 토목공학이나 건축공학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할 텐데, 하나님은 그 일을 술 관원을 부르셔서 하신 겁니다. 결국 3주를 앞두고도 할 사람이 없어 제가 하기로 하고는, 그 때부터 헨리 모리스 박사, 기쉬 박사의 책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지요.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니, 그 때까지 막연히만 알고 있던 진화론이 너무나 허구적이고, 보면 볼수록 창조론이 맞더군요. 

8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정동 C.C.C. 회관에서 세미나가 열렸을 때 참 놀랍게도 연인원 4,000명이 참석했었습니다. 강사로는 미국에서 온 헨리 모리스 박사와, 기쉬 박사, 통역자로 김해리 교수, 류한영 박사 등이 나섰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과학자가 창조론을 선포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어떻게 과학자가 진화론을 부정하는가?" 하며 의견이 분분했지요. 특히 다른 사람들은 통역이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진화론이 틀렸다고 직접적으로 주장했으니까요. 며칠 뒤에는 신문에서도 "한국 과학의 본산지 홍릉과학단지에 비과학적인 창조과학자가 나와서 자기 전공은 하지 않고 타전공의 정설을 부정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고… 사실 그러면서부터 창조과학회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송만석 : 대성회가 끝나고 나서도 창조과학 강연은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계속적인 지원 의사를 밝혀 오셨고, 그래서 C.C.C. 정동회관에 자리를 빌려 일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김영길 총장님 댁에 모여 기도회를 하며 대성회 기간중에 있었던 강연 내용들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에 창조과학 자료들이 너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바로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였습니다. 재정도 과기원의 교수 한 분을 통해 연결된 기독교 실업인의 후원으로 꼭 필요했던 만큼이 채워졌습니다.

정식 발기 대회는 81년 1월 31일에 전경련 회관에서 있었습니다. 장소 사용료는 C.C.C.에서 후원했습니다. 재정이 부족하여 홍보도 못했는데, 주요 일간지 사회면에 학회 창립 소식이 주요 기사로 나와 자연적으로 홍보가 되었습니다. 이후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많은 교회에서 후원해 주셔서 오늘처럼 창조과학회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 개인적으로 창조과학 사역을 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김준곤 : 기독교의 인간관, 우주관을 보면 창세기에 있는 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고 보게 되죠.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고요. 삶을 보면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서 나온 것이 아니지요.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 우리의 지·정·의, 몸의 구조, 다른 많은 조건들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즉 우리는 피조된 것이지요. 또한 생존에 필요한 공기, 햇빛, 대지, 물 등도 다 창조된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이 나와 과학의 이름으로 창조를 부인하며 생물이 우연히 저절로 태어났다고 주장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생물학의 분야를 넘어 하나의 철학이 되고 또 종교화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연이냐 신이냐,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를 야기시킨 것이지요. 다신론이나 범신론 등 많은 논(論)'들이 있지만, 우주관이나 인간관에서는 창조론, 진화론, 이 둘 중의 하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진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이지요. 또한 과학 법칙, 자연 법칙이라는 것도 하나님이 만드셔서 주신 것입니다. 진화론자들도 생명, 자연의 신비에 대해 감탄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눈을 만든 자가 보지 않겠느냐, 귀를 만든 자가 듣지 않겠느냐" 라고 분명히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편견을 버리고 이 자연을 바라보고 양심에 따라 판단하면 창조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김영길 : 저는 개인적으로 1975년에 미국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78년 12월에 한국과학기술원에 교수로 오게 되었는데, 창조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히 믿고만 있었습니다. 특별히 창조가 과학적으로 더 맞고 진화는 이러이러해서 틀렸고 이런 것은 모르고 있었고요. 그러니 사실상 그 때 심영기 박사께서 찾아오신 것이 창조과학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거예요. 만약 저도 생명과학을 전공했었다면 어느 정도 자제를 했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웅상 교수님(본회 부회장) 등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그 때만 해도 생명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진화론을 부정하게 되면 아예 학계에서 인정을 못 받는 때였으니까요. 비전공자로서 막연한 믿음만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이 심 박사를 보내주신 것이 제가 창조과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송만석 : 저는 그 때(세계복음화대성회) 다른 분과에서 통역을 맡았었는데, 창조과학세미나에 참석해서 강연을 들었지요. 그 전까지는 특별히 창조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강연을 들으면서 이 진화론이 도대체 근거가 없고, 밝혀진 사실로 봐도 창조론이 더 타당성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사회 : 지금까지 창조과학 사역을 해 오시면서 힘들었던 일, 기억에 남는 일, 감사한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지요. 

김영길 : 힘들었다기보다는 낙심될 때가 있었습니다. 이양림 교수를 통해 창조론을 언급하는 과학 교과서를 펴내려 했던 것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1차, 2차에 다 합격했기 때문에 3차도 될 줄 알았었는데, 그만 거절당했지요. 그 때 거절 통지가 오고 나서 두 달 내에 제소를 했어야 했는데, 그만 그 기간을 넘겼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 있으면서 연결이 잘 안 되기도 했고, 또 사람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믿음으로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참 아쉬웠습니다. 또 하나는 박동원 교수의 소천이었습니다. 생명과학을 하시는 분은 많아도 지구과학을 하시는 분은 별로 없었는데, 박 교수님은 그 중 한 분이셨지요. 또 최근에는 이영훈 교수님도 그렇게 되셨지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데 그 보내 주신 사람이 아직 그의 학문적 재능과 잠재력을 충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 발휘하지 못했는데 데려가셨다는 것이, 물론 하나님께는 더 큰 뜻이 있으시겠지만, 저로서는 정말 아쉽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창조과학 세미나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창조에 대한 말씀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것보다는 "선포(proclaim)"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외치는 자의 소리" 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81년에 시작한 이후 이제까지 수천 회에 이르는 창조과학 강연이 있었고, 또 우리 회원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들어온 강연 요청을 거절하는 일이 거의 없이 다 나가서 자원 봉사를 하는데, 멀리서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당시 자동차와 기사가 있었던 제가 많이 갔었지요. 그 중에 한 번, 파주에 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 보니까 우리 집도 안동에서 산골인데 그건 아무 것도 아니더라고요. 큰 길로 가다가 옆길로 또 가다가… 거기가 오성대감 이항복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는데 정말 산골 중에 산골이었습니다. 갔더니 그 전도사님이 정말이지 이렇게 시골까지 오실 줄은 몰랐다고 그러시더군요. 교회는 조그마한 초가집 비슷해요. 들어가 보니까 할머니 대여섯 분이 앉아 계시고 초등학생 너댓 명이 앉아 있어요. 거기에 뭐 창조과학 강연이 맞지도 않더라고요. 슬라이드도 다 가져갔었는데, 다 관두고 간증을 좀 하고 나오는데, 할머니 한 분이 따라 나오셔서는 속바지에서 돈 이천 원을 꺼내 주시더라고요. 제가 그것을 받을 수가 없어 극구 사양했는데도 절대 안 된다고 그러시는지라 결국은 받았지요. 

그 때만 해도 저희 집에서 임원회를 하면서 임원들이 강연을 하고 오면 보고서를 썼었습니다. 어디서 했고 몇 명이 참석했고 질문이 뭐고…. 거기서 제가 제안을 하기를, "우리는 다 외치는 자의 소리인데 많이 모인다고 마이크를 더 크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3명 모이나 3천 명 모이나 하나님께는 다 똑같은 것이니, 이제는 어디 갔다 오면 몇 명 참석했냐는 것은 묻지 말자"고 했죠. 사람이 많으면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고, 사람이 적으면 안 쓰시는 것이고 그것은 아니니까요. 그게 제가 창조과학을 하면서 참 기억에 남는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감사할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지금 이 자리이지요. 처음에 심영숙 간사가 C.C.C. 건물에서 일하다가 일이 커지고 하면서 그 장소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사무실을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계몽사의 김춘식 부회장이, 소망교회 안수집사님이시고, 제 먼 친척뻘쯤 됐는데, 우리가 앞으로 교과서를 발행할 때도 그렇고 출판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만나서는 창조과학회의 사무실 자리를 요청했더니, 서초동에 있는 영빌딩의 방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빌딩이 팔리게 됐을 때, 놀랍게도 그 분이 그 대금 중에서 십일조를 저희한테 헌금하시면서 그것으로 사무실을 구해 보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적당한 가격, 적당히 여유 있는 공간에, 교통 편리해서 사람들 오기 쉬운 곳으로 기도하며 여러 군데를 알아보다가 지금 이 건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김춘식 부회장님께 감사 드립니다. 제가 늘 바빠서 인사드리러 제대로 다니지를 못하는데요. 언젠가도 한 번 갔었지만, 차후에도 또 한 번 찾아 뵙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계몽사에서는 이것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창조론, 진화론에 대한 책들이나 과학 교과서를 쓸 때에도 집필료니 착수금이니 해서 모든 재정을 부담해 주셨습니다. 저희 창조과학회에서는 돈 한 푼 안 쓰고요. 또 영빌딩에 있을 때부터 그 관리비에 간사 월급, 경상비 등으로 지출되는 금액의 상당 부분을 온누리 교회와 횃불 재단에서 지속적으로 헌금해 주셔서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또 그 당시에는 고(故) 유상근 박사님이 명지대 총장님으로 계셨는데요. 이 분이 창조과학회 초창기 때부터 관심이 많으셔서, "대학에서 가르치고 싶은데 왜 창조과학회에서 그런 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책을 안 쓰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유 총장님이 재촉하셔서 나온 책이 「자연과학」입니다. 그리고 그 책이 나오자마자 명지대에서 교과서로 다 썼지요. 결국 창조과학회의 많은 결과들이 우리가 스스로 했다기보다는 주변의 강한 권유들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도 고려대학교의 김준 박사님께서, 왜 이것은 책으로 안 내느냐고 하시면서, 미국 유학 가기 전에 번역을 다 해놓겠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그 분이 그 일을 다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책으로 나왔지요. 

송만석 : 이 시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사무총장님이 새로 오시고 간사들과 연구원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 기도만 해 오던 일들을 실제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과학관 같은 경우도 컴퓨터로 구현하는 일들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진행이 되어 가고 있지요. 또 교회 회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교회들이 더 구체적으로 창조과학 사역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해하고 참여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지난 99년에는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의 연합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 분들이 현재 생물 교과서에 있는 진화론적 기술을 바로잡고 창조론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새 교과서를 펴내기 위한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더 많은 교육과 활동들이 일어나서 학교 현장이라는 영적 전쟁의 최일선에서 싸우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기를 바라며, 초중고의 모든 믿는 선생님들과 대학 교수님들께서 전부 동참하시는 가운데, 그동안 기도로 많이 준비해 온 교과서 개정 작업을 꼭 구체적으로 추진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회원의 날 행사를 개최했지요. 많은 회원들이 모두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1년에 한 차례라도 모임의 장을 마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두 차례 실시했었는데, 참여자도 늘어나고 있고 반응도 좋아서 기뻤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조주 찬양 축제가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고, 또 찬양받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영적, 신앙적으로 성장해서 찬양에 임하게 되면 진화론의 허구적 세력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잃고 문제도 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찬양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우러나와서 해야 하기도 하고 깨우쳐서 하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고, 이제 2년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더 잘되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사회 : 창조과학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과학적인 면과 신학적인 면에서 말씀해 주시지요. 

김영길 : 창조과학의 중요성은 20세기 물질주의와 과학주의 시대를 맞으면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이 발달하면 성경이 더 신화화되어 가고 믿음도 불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성경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그 기초가 됩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아무리 높은 건축물이라 해도 다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사단이 기독교 신앙을 희석하고 방해하기 위해서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부정한 것이 아니고 진화론이라는 학설을 도입해서 기독교의 기초를 흔들어 놓은 것이지요. 이것을 누가 바로잡아야 하는가. 물론 목사님을 비롯해서 신학을 하신 분들이 모두 다함께 기도하시면서 해야 하겠지만,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과학을 통해서도 해야 하는 거예요. 사실 "진화론은 과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사실이 아니다." 라는 것은 과학 전공자가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결국 창조과학의 중요성은 과학 기술 시대에 신앙의 보루를 지키고 진화론의 공격을 차단하여 기독교 신앙을 보다 확실히 할 수 있는 대전제, 기초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준곤 : 그렇습니다. 창조과학은 신학적으로 제1장 1조나 같아요. "어리석은 자는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자" 라고 했고 잠언에도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라고 되어 있지요. 이것이 인간의 절대 조건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지요. 하나님을 중심에서 제해 버리면 죄와 사망, 고통, 혼란, 불안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기본 조건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인간에게서 출발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성경에는 2000번 이상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라고 되어 있지요.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창조하시고 말씀도 하시고 심판도 하시는 주권자이시지요. 하나님이 없으면 인류에게 기원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송만석 : 과학적으로도 창조과학과 진화론 중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살펴보면, 가령 유전공학에서 밝혀낸 DNA를 보십시오. 컴퓨터를 보면 거기에는 모든 정보가 1과 0으로 암호화되어 저장이 되어 있는데, 유전정보들이 그 작은 세포에, 또 그보다도 더 작은 핵 속에 다 들어 있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다 풀어서 쓰면 80만에서 200만 페이지에 이르는 암호 코드들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페이지밖에 안 되는 정보들로도 몇 년에 걸쳐 똑같은 것을 계속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데, 수천 년이 지나도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팔을 심으면 팔이 나고… 또 사람도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데, 다른 이상한 것이 나올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 짜여 있는 지식의 오묘함은 보면 볼수록 두렵고 경이롭고, 단순히 만드신 분이 계시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위대하시면 이렇게 하실 수가 있을까 싶어서 그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게 되지요.

또 이렇게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우주의 공간의 크기며, 별의 운행 등에 대해 생각해 보고 구체적으로 계산된 것을 접하게 되면, 하나님의 생각하시는 스케일이 얼마나 크신지 보게 되고, 그 수많은 별들을 하나하나 헤아리신다는 것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지요. 성경을 읽을 때 그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읽게 되면서 받는 감동도 더 크게 밀려오고, 전능하신 분이 주시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깨닫고 이해하게 될까 늘 생각하게 됩니다. 가끔 하나님을 제약한다든지 자기 자신을 제한하고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생명력 있게 전달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이런 면에서 창조과학이 귀하게 쓰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사회 : 최근 캔자스 주의 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수 금지 결정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진화론 교수금지 결정뿐만 아니라 창조론을 가르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교육, 특히 공교육에서 창조론 교육이 어떤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송만석 : 저는 가르치는 자라면 마땅히 학생들에게 바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화론이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도 없고, 사실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실인 것처럼 가르치는 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오늘날 과학을 통해 밝혀진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른 일이고 중요한 일이지요. 또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은 멸망에 이르는 길을 터놓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적극적으로 지양하고 창조의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의 진리가 바로 되어 있으면 세상의 모든 학문이나 사람 삶의 기본 방향, 모든 철학들이 바로 잡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일 중요하게 가르쳐져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창조과학이고 창조 진리라고 봅니다. 

김준곤 : 우주, 생명의 기원을 물질에서 찾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절대자를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절대 표준을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의 주권자, 인간을 다스리는 주인, 도덕적 심판자가 없으면 어디에서 윤리의 권위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존엄성도 그렇고요, 휴머니즘만 가지고는 히틀러가 나오든지 스탈린이 나오든지 김일성이 나오든지 그들을 정죄할 기준이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신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자기가 만들겠다고까지 하지요, 신이 없으면 인간이 살 수가 없으니까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입니다. 창조자가 있고 역사의 심판자가 있다고 할 때 비로소 행동에 대한 영원한 책임도 지게 됩니다. 그래서 도덕적 권위자가 없으면 인간에 대한 교육도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권위, 절대 표준, "~하지 말아라" 하는 당위성 등은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왜 그래야 하는가의 문제에 봉착하는 데 단지 유익해 보이면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타산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니까 안되지요. 윤리는 절대 명령입니다. 죽이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등은 하나님의 십계명으로부터 나온 지상 명령인 것입니다. 문화적 차이에 의해 모계 사회라든지 일부 다처제 등의 상대적인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아무나 겁탈한다든지 남의 아내를 빼앗는다든지, 살인, 거짓말 등은 어떤 문화권에서도 용납이 안 되지요. 이런 면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는 창조과학적 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길 : 그래서 저희 한동대학교에도 신입생이 입학하게 되면 '창조와 진화' 혹은 '기독교 세계관' 중 하나를 필수로 듣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이라든가 아니면 다른 성경 과목들에서 많이 다루고, '창조와 진화'라는 과목에서는 주로 과학적 입장에서 본 창조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많은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많은 학생들이 진화론을 막연히 알고 있다가 한동대에 와서 이 과목을 통해 많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고 애초에는 불신자였던 학생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경우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회 : 그렇다면 이 창조 신앙이 기독교인들의 삶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영길 : 창조론에는 일반적으로 과학적 창조론과 성서적 창조론이 있습니다. 과학적 창조론은 "진화론은 잘못됐다. 창조가 맞다. 창조자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면 안 됩니다. 창조자가 있다는 것은 절반은 되지만, 정말로 우리 신앙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창조자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적 창조론입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도 나와 있는데요. 우리의 창조주이고 구세주이시며 다시 오실 예수님, 그 분께 우리 창조과학의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하나의 과학적 논쟁이나 지식 차원에 머무른다면 흥미를 유발시키고 진화론이 잘못됐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초점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 신앙의 본질이 되시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 때, 그렇게 할 때 성령님이 역사를 일으키실 것이고, 비로소 창조과학도 올바른 신앙 생활과 영적 성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창조론이 바로 서야만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진리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죄인이 죄인을 구원하지 못하지요. 다른 일반 종교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 것도 바로 이 성서적 창조론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김준곤 : 이 창조 신앙은 기독교 윤리의 핵심입니다. 로마서 1장 18절 이하에 나오는 바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릴 때 결국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의 양식을 살펴봐도 이 세계는 기독교 윤리를 받아들인 나라들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이 기독교 윤리관을 기준으로 해서 인권 문제니 자유니 노동 문제니 하는 것들, 또 모든 문화나 법률이 나오게 되었지요. 결국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보편 타당한, 인류 전체가 공감하는 윤리가 바로 기독교 윤리입니다. 

송만석 : 저 개인적으로는 창조과학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알아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창조과학이 신앙 생활에 큰 유익을 끼쳤습니다. 무심코 밟고 다니는 땅이며, 돌이며, 나무 잎사귀, 기어다니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사실 우리는 그 말씀을 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나무인지는 알아볼 수 있어도 탄소동화작용을 비롯해서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참으로 다 알지도 못하고 눈으로 보지도 못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그 배경에 있는 생명력과 표현되어 있지 않는 것들을 모두 다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표현된 것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지식이 더해지게 되면 제한적이나마 알아 가는 깊이에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접하게 되면 늘 묵상하게 되고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훈련도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용하게 된다는 큰 축복이 있습니다. 


사회 : 이제 새 천 년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 창조과학회가 지향하고 있는 목표나 전략은 무엇입니까? 또 창조과학회에 바라고 계시는 내용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지요. 

송만석 : 2000년도에 특별히 추진하려고 하는 첫 번째는 과학 교과서를 개정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진화론이 도무지 맞지 않는 이론이라는 것을 지적해서 진화론은 과학적 진리가 아닌 것을 사람들이 알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생명이나 우주의 기원이 어떤 설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까지는 교과서에 실을 수 없을지라도, 디자인된 세계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정부에 대해서는 건의안을 제출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교사들을 통해 현장에서도 교육하고 학생들도 지도해서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TV나 라디오를 통해 계속 국민여론도 환기시키면서요. 이 교과서 개편 문제가 올해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두 번째로는 교육 부문에 많은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교육원을 통해 창조과학 교육만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교재 개발 등을 통해 전 성도에게 창조를 바탕으로 한 바른 신앙교육을 제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가 잘못되어서라기보다는 조금 더 개선되고 이해의 폭도 넓어져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과학관 건립 추진에 매진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들을 배우고 즐겁게 공부하면서 창조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과학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는 후대가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높이고 바른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것인데, 1차로 소프트웨어로 구현해내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가 올해의 대표적인 추진 목표사업입니다. 

김준곤 : 저는 창조과학이 선교에도 귀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선교를 한다고 하면 남의 문화권에 가게 되잖아요? 그런데 어느 문화권이든 대학이나 지성인들은 진리에 열려 있게 마련입니다. 과학이라는 '학문'과 '진리'는 다 받아들이려고 해요. 그러니 창조과학회의 회원이 천 명도 넘는데, 그 분들이 세계 각국의 대학에 가서 영어 등으로 자기 분야의 학문에서 봉사를 하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학을 손에 넣으면 그 나라의 미래의 지도자들을 다 전도하는 것이 되니까요. 저희도 지금 중국에 학생들을 보내고 있는데, 이런 사역에서 창조과학회와 협력할 의사도 있습니다. 

김영길 : 저는 한국창조과학회가 더 전문화되어 명실상부한 한국 창조과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기독교 대학에서 인재 양성을 맡고, 이런 대학들과 한국창조과학회가 연계해서 본격적인 연구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창조과학회는 학회이기 때문에 기초 연구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으므로, 현재 창조과학연구소가 설립된 명지대나 한동대와 연계하여 생명과학 등의 연구를 하면 좋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창조과학 활동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 논쟁도 아니고 근본적으로 엄밀히 말한다면 연구도 아닙니다. 창조과학회의 사명은 '창조'라는 사실을 'Proclaim',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이것을 받쳐 주는 역할일 뿐이지요. 학문적인 것만 한다면 그저 또 하나의 학회만 되어 버리는 거에요. 본질적으로는 어떤 학문적인 것보다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 증거에 필요한 사역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21세기를 맞아 창조과학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비전은 역시 비기독권에 대한 선교 사명입니다. 회교권이나 공산권, 일본 등에 창조과학을 가지고 가는 것이지요. 거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반 선교사들이 가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선교하는 것인데 말하자면 전문인 선교입니다. 이렇게 할 때 창조과학이 21세기 선교 시대의 중요한 한 분야를 열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제는 실제 창조과학관도 만들고 사이버 전시관도 만들고 해서, 지금까지가 자리를 잡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는 한 단계 도약해서 한국만이 아닌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그런 꿈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사회 : 모두 하나님이 주신 비전들이니 함께 기도하고 열심히 하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송만석 회장님께서 창조지 독자들, 창조과학회 회원님들께 한 말씀해 주시지요. 

송만석 : 창조과학회의 회원으로 참여해 후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지면으로나마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뒤에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어디서 무슨 말을 하든지 힘이 생기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마음도 기쁘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아뢰고 구하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물질적인 후원은 그 일을 더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일이 되고요. 회원님들께서도 자부심을 가지시고, 21세기 창조과학 사역을 통해 큰 복음화 운동을 일으키는 이 일,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충만해져 가는 사회를 만들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이 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주변에 많이 알려져서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시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에도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창조지,  118호 [2000. 1~2]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12

참고 :

관리자
2019-04-30

세상을 향한 新프로테스탄트 운동

이경호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부회장


     4월은 과학의 달이다. 지난 30년을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연구단지와 대학에 몸 담아 오면서 과학기술인으로 보람을 느끼며 인생을 열심히 달려온 것 같다. 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 통지표를 발견하였다. 거기에 쓰여진 나의 장래희망이 ‘공학박사’였다. 왜 그때 장래희망을 공학박사라고 썼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공학박사로, 대학교 교수로, 또한 순수한 과학기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과학기술은 하나님을 부인하는가? 창조를 부인하는가? 과학기술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주신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진 과학기술로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나는 '프로테스탄트(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 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중세 종교개혁을 통해 이 세상의 많은 패러다임을 바꾼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천동설이 지배해 오던 시대에 지동설을 주장해 우주에 대한 관점을 바꾼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등은 불변의 진리로 알고 있던 과거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과학자들이다. 이렇듯 패러다임의 변화는 세상을 바꾼다. 진정한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이 시대의 진화론적 패러다임, 타협이론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러면 21세기 젊은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주역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다음세대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다음세대를 키워야 한다. 이것이 新프로테스탄트 운동이다.

세상에는 운동에너지(E=1/2mv2)와 위치에너지(E=mgh)가 있다. 운동에너지는 움직이는 속도(v)의 제곱에 비례한다. 젊은이들은 화려한 움직임이 있고 활동적인 운동에너지를 좋아한다. 그러나 위치에너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너무나 정적이다. 물체의 높이(h)에 따라 위치에너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위치에너지는 영어로 포텐셜(Potential, 잠재적인) 에너지라고 말한다. 물체가 어느 위치에 올라가느냐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위치 에너지를 좋아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 ”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정확한 위치에 서 있기를 바란다. 정확한 위치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新프로테스탄트 운동은 화려한 운동에너지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우리의 정체성이 회복되고,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충격(Holy Impact)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성경의 열 처녀 비유를 생각해 본다. 열 처녀 모두 등불을 준비했지만,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이했다. 등불과 기름에 대해 묵상한 적이 있다. 등불은 조금씩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환경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기름은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 것들에 대한 기대가 新프로테스탄트 운동의 핵심 가치이다.

나는 가슴이 뛴다. 내가 창조주 하나님을 선포하는 과학기술의 최일선에 서 있다는 것 때문이다.또한 17년차 교수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무한 가능성을 가진 젊은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과학의 달을 맞아 우리 젊은이들의 新프로테스탄트 운동을 기대해 본다. 젊은이들이 변화시킬 세상과 더 든든히 세워져 갈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한다.

한윤봉
2019-01-01

“너는 일어나, 가서, 외치라“ 

: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며

한윤봉
전북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2019년, 새해 새날을 허락하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올 한 해도 성경적 창조신앙 회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교회와 다음세대들을 강건하게 세우고 부흥하게 하는 ‘불씨’가 되기 위해 다짐하고 동역하시는 회원들과 후원하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더욱 충만하게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7대 회장을 맡은 후의 지난 2년 동안을 돌아보니,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와 진화론적 과학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창조과학자로서 살아가는 길은 참으로 힘들고 외로운 길임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함께 동역해주신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 덕분이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2018년은 성경의 권위를 수호하고 성경적 창조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진 해였습니다.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님들이 ‘성경적 창조론 선언문’을 발표하여 유신진화론의 신학적 성경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으며, 합신대학원에 2019년 1학기부터 2년 과정의 ”성경적 창조론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며, 합신대학원 총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께 무한 존경을 드립니다.

2019년에는 우리 학회가 어떤 도전과 공격을 받을지 모릅니다. 앞으로 2년 동안을 더 섬겨야 하는 저의 마음은 여전히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약 2800년 전에 요나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믿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요나 1:2)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오직 성령님의 능력과 지혜로서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들보다 많은 하나님의 천군 천사가 우리를 지켜주시고(왕하 6:14-16), 결국에는 승리하게 하실 겁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일어나, 가서, 외칩시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넓고 편한 길이 아니라, 좁고 외로운 길입니다. 외로움은 좁은 길을 가는 자들이 입어야 하는 겉옷입니다. 어두움을 인내하며 잘 견딘 자만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넓고 편한 길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2019년에도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19년 1월 1일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한윤봉 드림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67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18-12-31

2018년 창조과학 10대 뉴스

미디어위원회


       2018년에도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진화론적 연대가 허구임을 가리키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증거들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다. 진화론은 거짓의 속임수 이론이다. 올 한 해 창조과학 10대 뉴스를 선정해 보았다.


1. 5억5800만 년(?) 전으로 주장되는 동물 화석에 지방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화석에서 발견되고 있는 원래 생물의 생체분자들은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장구한 연대가 허구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동안 발견됐던 모든 연부조직 화석들보다 더 충격적인 한 화석이 호주 국립대학의 고생물학자들에 의해서 보고되었다. 연구자들은 5억5800만 년 전의 생물로 주장되는 디킨소니아(Dickinsonia) 화석에서 아직도 원래의 지방 분자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Science Magazine, 2018. 9. 21). 어떻게 558,000,000년 전 원래의 생체분자가 아직도 분해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것인가? 분명히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사랑하는 수억 수천만 년의 연대가 허구임을 가리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어떤 화석에서 원래의 생체 유기물질이 5억 년 이상 남아있을 가능성은 완전히 제로이다. 특히 물이 침투될 수 있는 해양 퇴적물에 파묻혀 있던 화석에서는 절대적으로 제로이다. 최근까지 진화론자들도 생물학적 유기물질이 수억 년 전 화석에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생물학적 유기물질은 마른 암석에 묻혀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해되고 파괴된다. 진화론자들은 5억5800만 년 동안 대륙들의 융기와 침강, 지판들의 섭입, 암석들의 동결과 해동, 생물들의 지층교란 등과 같은 지질학적 변화는 계속 일어났다고 말해왔다. 역동적인 지구 행성에서의 이러한 파괴적인 과정들로 인해서, 원래 생체물질은 5억5800만 년은 말할 것도 없고, 1백만 년도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공룡의 연부조직 발견이 진화론이라는 배에 충격을 준 암초가 되었다면, 이제 에디아카라의 동물성 지방은 그 배를 완전히 침몰시키고 있었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16)


2. 2억8천만 년(?) 전으로 주장되는 식물 화석에 전분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화석에서 생체분자들은 수억 수천만 년이 지난다면, 쇠퇴되어 완전히 분해되어 있어야만 한다. 독일과 중국의 과학자들은 2억8천만 년 전으로 주장되는 식물 조직에서 완전한 전분 과립(starch granules)을 발견했다.(Geology. 46(5): 423-426. 2018). 발견된 전분은 고생대 페름기 동안에 살았다고 주장되는, 석송(lycopsid)이라 불리는 멸종된 식물의, 씨앗과 같은 메가스포어(megaspores)에 부착된 과립 캡의 형태 안에 남아있었다. 연구의 초점은 석송의 커다란 포자를 분산시키는 메커니즘의 발견에 맞추고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2억8000만 년 전으로 주장되는 페름기 늪지 숲의 퇴적층에 내에서, 이들 전분 구조가 너무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은 연대가 알려진 것들 중 가장 오래된 화석 전분이다... 분석 결과, 과립들은 주목할만한 양의 질소, 인, 칼슘이 없는, 본질적으로 유기물질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발견은 수억 수천 년이라는 진화론적 시간 틀이 허구임을 가리키는, 산처럼 쌓여져 가고 있는 화석 발견 목록에 추가되는 것이다. 장구한 연대를 거부하는 화석 생체 분자들로는 공룡 연부조직에서 발견된 DNA, 단백질, 적혈구, 혈관구조, 피부와 깃털에서 발견된 케라틴, 조류 화석에서 발견된 지질, 오징어와 전갈 화석에 남아있는 키틴, 심지어는 화석화된 오징어 먹물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진화론의 예측과는 전혀 다르게,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화석들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생체분자들은, 수억 수천만 년이 지났다면, 완전히 분해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발견들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은 이들 식물과 동물 화석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약 4,500년 전에 일어났던 전 지구적 홍수로 인해 빠르게 격변적으로 퇴적된 잔해라는 것이다. 화석들은 진화론이 아니라, 성경을 가리킨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50)


3. 화석이 실험실에서 하루 만에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은 화석화(fossilization) 과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예외적으로 잘 보존된 화석이 만들어지는 데에 수백만 년을 필요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화석화 과정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놀라지 말라. 하루였다. 탄소 필름 형태로 남아있는 연부조직을 갖고 있는 공룡 뼈나 조류 뼈들처럼, 잘 보존된 화석은 지난 20~30년 동안 뉴스에서 화제가 되어왔다. 특히 메리 슈바이처가 공룡 뼈에서 완전한 혈관과 적혈구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한 것은 과학계에 큰 충격을 줬었다. 그 이후 연부조직이나 원래 생체물질이 남아있는 화석들에 대한 많은 보고들이 이어졌고, 원래의 장기와 조직의 것으로 보이는 완전한 콜라겐 단백질, 조류 깃털에서 멜라노좀, 탄소 필름 등도 보고됐었다. 세속 과학자들은 이러한 발견에 대해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어떠한 세속적 과학 잡지나 언론매체도 이 화석들이 정말로 수억 수천만 년 전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뛰어난 화석을 만들었던 조건이 실험실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관측되는 이러한 화석을 재현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합성(인공) 화석’을 만들었다. 그들은 열과 압력을 가해서, 화석화 과정을 빠르게 일어나도록 시도해보았다. 브리스톨 대학의 연구자들은 닭, 살아있는 조류, 도마뱀 등을 수집한 후 CO2 가스를 주입하여 ”인도적인 안락사”를 수행했다. 표본들에 표준 성숙 과정을 적용했을 때, 그들이 얻은 것은 ”악취 나는 액체”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표본들이 벤토나이트 점토에 의해 압력을 받도록 방법을 변경했다. 이것은 압축단계 동안에 액체의 배출을 이끌었다. 한 연구자는 설명했다. ”퇴적물은 시료에서 불안정한 분자들이 빠져나가도록 하는 일종의 필터로서 작용을 하면서, 한때 연부조직이 있었던 곳에 어두운 유기 필름으로 둘러싸인 갈색의 납작한 뼈들을 남겨놓았다.” 고생물학(Palaeontology, 2018. 7. 25) 지에 게재된 논문에서, 기술된 방법에 의한 실험으로 12시간에서 23시간(하루보다도 적은 기간) 만에 그러한 화석화 과정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82)


4. 1주일 만에 일어나는 도마뱀의 색깔 변화는 진화론을 기각시킨다.

용암 위에 놓여진 도마뱀은 1주일 만에 몸체 색깔을 바꿀 수 있었다.(Current Biology, 2018. 9. 6) 이러한 관측은 진화론과 모순되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살고 있는 옆줄무늬 도마뱀(side-blotched lizards)들은 갈색의 몸 색깔을 갖고 있지만, 검은 용암류로 덮여진 화산에 사는 그들의 친척 도마뱀들은 거의 검정색을 갖고 있다. 그러한 검은 색깔의 도마뱀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이것은 실제로 진화가 작동되고 있는 것인가?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자들이 옆줄무늬 도마뱀을 한 배경에서 다른 배경으로 옮겼을 때(예를 들어 모래에서 용암으로), 채색의 변화가 1주일 이내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차적으로 몸 색깔의 변화가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자연선택으로 설명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진화론에 의하면, 돌연변이로 어두운 색의 몸체 색깔을 갖는 개체들이 우연히 생겨났고, 그것들이 자연선택 되어 검은 색으로 변해야 한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동물의 많은 형질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일생 동안에 변화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이 '표현형의 유연성(phenotypic plasticity)'은 각 동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외모나 행동을 바꿀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것은 다윈주의식 진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도마뱀은 1주일 내에 색깔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가 단일 개체의 수명 내에서 표현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연성은 후성유전학적으로 조절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것은 우연한 돌연변이 때문이 아니다. 만약 사전에 프로그램 되어있던 유연성이 도마뱀의 색깔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면, 진화론의 고전적인 상징물들(예로, 후추나방, 갈라파고스 핀치새 등)의 많은 것들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기각되는 것이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10)


5. DNA 바코드 분석 결과, 현존하는 생물 종의 90%는 같은 시기에 등장했고, 종들 사이에 중간 형태는 없었다!

새로운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Human Evolution , 2018. 5. 21), 살아있는 생물 종의 90%는지난 20만 년 이내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미국 록펠러 대학의 마크 스토클 박사와 연구자들은 지난 십 수 년간 모아온 10만 종의 생물들에 대한 500만 개체의 미토콘드리아 COI DNA 바코드를 분석했다. 그리고 곧 종내 평균변이차이(APD)와 종간 APD를 구하고,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다르지 않으며, 종 내의 일반적인 차이는 0.1% 정도 된다.
▶ 같은 종 내의 미토콘드리아 DNA 차이는 개체 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 새, 나방, 물고기,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물 종은 최근 출현해, 커다란 유전적 다양성을 발전시킬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최근 10만~20만 년 사이에 인간이 출현했으며, 이는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는 90%의 다른 생물 종에도 적용된다.
▶ 각각의 종내 미토콘드리아 서열은 동일하거나 거의 비슷하지만, 다른 종과는 분명한 구분이 되어 있고, 중간 단계를 찾기 힘들다.

진화론자들은 애써 태연해하지만, 이는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의아한 일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따르면, 약 40억 년 전에 등장한 최초 생명체에서 점진적으로 조금씩 발전된 형태로 생명체가 등장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멸종된 개체까지 포함해 지구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동물문은 캄브리아기인 약 5억 년 전에 출현했다고 지금까지 주장해왔는데, 어떻게 지금 지구에 사는 동물 90%의 공통조상이 10~20만 년 전에 존재했을 수 있었다는 것인가?

연구자들은 ”거의 모든 동물들이 사람과 거의 같은 시기에 출현했음을 가리키는 지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는 그것뿐만 아니라, 진화론자에게는 예기치 않게 ”생물 종들은 매우 명확한 유전적 경계를 갖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있는 중간 형태는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많은 생물 종들은 장구한 시간에 걸쳐 진화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이러한 연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실 연구자들 중 한 명은 ”이 결론은 매우 놀랍다... 나는 이 결과를 믿을 수 없어 열심히 싸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창조론자들이 예상하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생물을 각 종류(kind)대로 창조하셨고, 그 종류대로 번식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창 1:11, 12, 21, 24, 25).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51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87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49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55
)


6. 종유석은 초고속 자기 역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구물리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주장해 왔던 것과는 반대로, 자기 역전(magnetic reversals)은 ”우습게도 빨리”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암석에 남아있는 서명처럼, 기록되어있는 지구 자기의 역전은 수천 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져왔었다. 그러나 최근 PNAS 지(2018. 8. 20)에 게재된 한 새로운 논문에 따르면, 지구 자기극의 부분적 또는 일시적 변화는 이전에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빠르게, 심지어 사람의 일생 동안에도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는가? 연구자들은 중국의 고대 석순(stalagmite)의 원자들 내에 기록되어 있는 16,000년의 지자기 역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구 행성의 자기장은 100년 만에 극성이 갑자기 바뀌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속도는 일반적으로 예상됐던 속도보다 대략 30배 빠른 것이고, 가능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생각했던 것보다도 10배나 더 빠른 속도이다. 이 논문의 의미는 지구물리학자들의 여러 주장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의 발견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완전히 잘못됐음을 가리킨다. 1~2세기 범위의 그러한 극도로 빠른 섭동은 지구 역사를 통해 생물들에게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100년은 먼 거리를 이주하는 철새들의 100세대를 나타내고, 멕시코로 날아가는 제왕나비의 100세대를 가리킨다. 이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어들과 바다거북들이 자기장의 혼란으로 인하여 그들의 먹이나, 번식 장소를 찾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다. 또한 저자들은 또한 자기장 세기의 감소를 언급하고 있었는데, '지구 자기장의 강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지난 세기에 ~10% 정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지구물리학자인 헨리 리히터는 그의 책 ‘지구라는 우주선(Spacecraft Earth)’에서, '자기 역전은 시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역전은 극성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자기장의 강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구 자기장의 지속적인 붕괴는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 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이 논문의 결과는 노아 홍수 후에 빠른 자기장의 역전을 주장했던 창조물리학자 러셀 험프리의 이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빠른 자기 역전의 유리한 측면은 동물들의 항해를 교란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을 멸종 위협으로 내몰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02)


7.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심해에서도, 육지에서도 발견되었다!

오랫동안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s)는 호주의 상어 만(Shark 's Bay)과 같은 얕은 바다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되어왔었다. 이제 New Scientist(2018. 3. 8) 지의 논문은 아라비아 해의 깊고 어두운 해저 바닥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발견을 보고하고 있었다. 저자는 ”깊은 바다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발견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을 잘못 해석해왔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상의 생명체가 남긴 가장 오래된 화석 기록 중 하나로, 햇빛을 흡수하는 얕은 물에 사는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해왔었다. 그리고 작년 Scientific Reports(2017. 11. 13) 지에 게재됐던 또 다른 논문에 의하면, 이번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호주의 토탄 습지대라 불리는 육상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석회화 벽의 젖은 표면에서, 황록색의 구형 구조의 매끄러운 매트”로서 자라고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최초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스트로마톨라이트와는 다르게, 이들은 물속에 잠겨 있지 않았고, 칼슘이 풍부한, 온천과 같은 먹이 생태계의 지표면 위에서 자라나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들은 진화론자들이 그동안 말해왔던 이야기가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덧붙여서 현대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의 또 하나의 사례인 것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약 37억 년 전에 나타났다고 주장되고 있지만, 그 오랜 세월동안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다. 스트로마톨라이트에 관한 진화 이야기는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96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10
)


8. 방사성동위원소 아이소크론 연대측정 방법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최근 발표된 두 논문은 (Nature. 559 (7712): 94-97, 2018, Nuclear Technology, 197: 209-218. 2017) '장구한 연대'의 상징물인 아이소크론(Isochron, 등시선) 연대측정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카네기 과학연구소는 화강암체 시료에서 석영 결정(quartz crystals)이 오랫동안 지질연대학 분야에서 정설로 여겨오던 온도보다 아래의 낮은 온도에서도 결정화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고했다. 지질학자들은 화강암을 구성하고 있는 광물들은 용융된 암석이 650~700℃ 이하의 온도로 냉각될 때 결정화된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요세미티의 투올럼니 관입 스위트(Tuolumne Intrusive Suite)의 화강암류는 다른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 시료의 석영 결정들은 474~561℃의 온도에서 결정화되었음이 기록되었다. 이러한 낮은 온도는 500~600℃의 온도에 도달했으며 심지어 모암의 부분적 용융을 일으켰던, 장기간의 고도의 변성작용 동안, 동위원소들의 유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었다.(연대측정은 유출입이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이루어진다). 더 낮게 관측된 결정화 온도는 빠르게 냉각되던 화성암과 변성암에서 결정들이 더 천천히 냉각되도록 했다. 이것은 루비듐, 스트론튬, 우라늄, 납 등과 같은 미량원소들이 화성암과 변성암 광물들의 결정 구조 안으로, 차별적인 등방성 확산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의미한다. 광물 내부와 경계로의 이동 속도와 고체화 속도는 광물이 묻혀있는 암석으로부터 전달되는 온도에 따라 변한다. 낮아진 온도는 광물 내로 통과하는 미량원소의 느린 확산을 의미한다. 결정들을 싸고 있는 기질 암석은 결정 자체보다 더 빠르게 냉각될 것이 예상한다. 이것은 미량원소가 결정 전체로 확산되기 전에, 기질 암석으로부터 결정으로 미량원소들의 전달이 감소되거나, 심지어 종료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새로운 발견은 방사성동위원소 아이소크론 연대측정에서 사용되는 주요한 가정(assumptions)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제 이 모델에 의문이 제기된다면, 그 결과도 의문스러운 것이지 않겠는가?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93)


9. 초파리는 천문항법을 사용하여 장거리 이동을 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동물은 가장 작은 동물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 공대의 연구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는데, 초파리(fruit fly, 과일파리)는 천문항법(celestial navigation)을 사용하여 비행을 한다는 것이다.(Current Biology, 2018. 8. 30). 초파리는 직선적으로 항해하기 위해서, 고대의 선박 항해자들과 유사하게 태양과 같은 천문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40년 전에, 한 연구는 사막에 있는 초파리가 음식과 물을 찾아서 하룻밤 사이에 14.4km를 날아갈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작은 곤충들은 어떻게 그러한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독창적인 비행 시뮬레이터를 사용하여, 작은 초파리가 놀랍게도 태양을 표식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초파리는 시야의 한 지점에서 밝은 지점을 고정하고, 장거리를 날아가며 그것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자는 말했다. ”과일 박스와 포도 위를 날아다니는 귀찮은 작은 초파리들이 태양을 이용하여 수 마일을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놀랍다.” 초파리에는 이것을 수행하기 위한 '나침반 뉴런(compass neurons)'이 장착되어있었다. 연구자들은 비행 시뮬레이터를 작동시키는 동안, 강력한 현미경을 사용하여 초파리의 머리 안을 작은 구멍을 통해 관찰하였다. 그들은 활성 뉴런이 빛나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 유전적으로 변형된 뉴런을 사용했다. 초파리의 나침반 뉴런은 정보를 통합한 다음에, 날개 근육으로 신호를 보내 경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제왕나비(Monarch butterflies)는 특수 뉴런을 갖추고 수천 마일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초파리는 이들 보다 훨씬 작아서, 그들의 장비는 초소형 생체공학 기술임을 의미한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07)


10. 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최근에 이스라엘 고고학자인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와 그녀의 발굴팀은 예루살렘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 성전 산(Temple Mount) 남쪽 벽 아래를 파내던 발굴팀은 이사야(Isaiah)의 이름이 새겨진 진흙 인장(clay seal, bulla)을 발견했다.(Biblical Archaeology Review 44(2): 64-73, 2018). 마자르는 이 이사야의 공문서용 인장의 음역을 ”Yesha‘yah[u] Nvy[?]”라고 표현했는데, 점토의 손상으로 인해 알 수 없는 글자의 부분은 [?]로 표시하였다. ”Yesha'yahu”는 ”이사야(Isaiah)”이다. 잃어버린 철자를 히브리어의 앞부분 철자(Nvy)를 통해 추정하면, 이사야 뒤에 나오는 단어는 ”예언자(prophet)”이다. 발굴팀은 2015년에 단지 3m 떨어진 곳에서 히스기야 왕(King Hezekiah)의 것으로 보이는, 공문서용 인장으로 불리는 점토 인장을 발견했었다. 성경에 따르면,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봉사하면서, 왕과 직접 대화를 했었다. 히스기야 인장과 이사야의 인장이 들어있던 고고학적 지층은 비잔틴과 초기 로마시대의 파편들 아래에 놓여있던 지층이다. 이것은 BC 729~687년까지 지속됐던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과 일치한다. 따라서 이 두 유물은 구약성경의 인물들이 실제로 성경이 말했던 시점에 살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 두 개의 인장은 수십 년 동안 성경을 의심해온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파산시킨다. 예를 들어, 회의론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히스기야의 삶과 통치 시기 이후 수세기가 지나서, 바빌론 포로기의 어떤 시기에, 알려지지 않은 저자들에 의해서 이사야서가 집필됐다고 오랫동안 주장해왔었다. 그들은 창세기로부터 열왕들의 시대까지, 성경은 바빌로니아 신화나 여러 문서들을 수집하여 지어낸 날조라고 주장해왔었다. 그러나 이제 이들 가련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추정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원문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08)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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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F. Coppedge
2018-09-20

유신진화론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 

(Why Theistic Evolution Is Not a Good Option)

David F. Coppedge


       유신진화론자의 책에 대한 CMI(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의 리뷰 글은 왜 크리스천들이 진화론과 타협해서는 안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과학계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진화론을 두려워하면서, 진화론과 평화롭게 공존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전하고 있는, 유신진화론자들이 쓴 새로운 책 ”나는 진화론에 관한 나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나(How I Changed My Mind About Evolution)”를 키톤 핼리(Keaton Halley)가 리뷰를 했고, 그 내용을 Journal of Creation 지에 게재했다. 그 글은 CMI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나는 진화론에 관한 나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나”는 신학적 포기(theological abdication)에 관한 200페이지 분량의 유감스러운 책이다. 저자인 애플게이트(Applegate)와 스텀프(Stump)는 템플턴이 자금을 지원하는 조직인, 바이오로고스(BioLogos)에서 일하는 과학자들이며, 아메바로부터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이 사실이고, 기독교적 신앙이 진화론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16쪽). 이 책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도되었다. 그러나 창조-진화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사례들을 제시함 없이, 대신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이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25가지의 왜곡된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진화론에 관한 나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에게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선택임을 보여준다. 그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진화론과의 타협은 부적절하며, 책의 저자들이 무시하고 있는 유신진화론의 몇몇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

성경적 창조론을 반대하는 이유로 유신진화론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몇몇 주장들이 있다 :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그 방법을 기술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고대 근동 사람들의 과학 수준으로 말씀하셨다.”

”오늘날 확립된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지적 자살이다.”

”과학 사회는 개방적이고, 객관적이며, 자가 수정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나님은 천천히 일하셨다.”

”잘못된 젊은 지구 창조론(young-earth creationism)은 나를 떠나게 만들었다.”

”당신은 젊은 지구 창조론이 틀렸다면, 예수님을 포기할 것인가?”

”젊은 지구 창조론은 시대적으로 늦게 나타난 (또는 안식교에서 시작한) 신학적 개념이다.”

”모든 진리들이 하나님의 진리이다.”

.유신진화론자들의 대화 :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도록 쓰여진 거야”  ”물론이지, 당시에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려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의도적으로 쓰여진 것이지.”  ”그들의 종교적 메시지는 주로 문화적인 것이고”  ”와우, 그들의 생각도 우리와 비슷했는데”    


이것들은 BioLogos의 유신진화론자들이 흔히 내세우고 있는 주장들이다. 키톤 핼리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무시하고 있는 4가지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감정으로 설득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주장에 유혹되어 믿음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크리스천들에게 진화론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고 있는 이 책은 심히 우려스런 책이다. 그들의 주장은 그럴듯하고 흥미로울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연결되기 쉽다. 그러나 결국 이들 유신진화론자들의 생각은 진화론적 편견으로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그러므로 창조론-진화론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자료를 보게 된다면, 크리스천들은 유신진화론이 매우 불합리한 신학적 기조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책을 반박하고 있는 리뷰 글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 글은 짧아서(여기를 클릭) 쉽게 읽을 수 있다. 그 글은 예수님과 다윈이 동행할 수 있다고 말하며, 크리스천들에게 진화론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고 있는,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간결한 답을 주고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의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만 진실이며, 사실상 더 나쁜 것일 수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의 근거가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잘 알고 있다. 맛있게 보이는 팥죽 한 그릇에 당신의 장자권을 팔지 말라. 거기에는 치명적이 독이 들어있다. 


 

.유신진화론의 문제점을 밝히고 있는 책들(좌로부터) : ”당신이 몰랐던 유신진화론” (한국창조과학회, 세창미디어) – 진화론보다 더 큰 나쁜 영향을 교회에 주고 있는 유신진화론에 대한 비판. 성경의 고귀한 ‘사실’이 조롱당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타협의 거센 바람” (이재만. 두란노) – 교회 안에 들어온 진화론의 가면, 진리는 ‘거짓’이 아니라, ‘타협’으로 무너진다. ”창조 연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 (fingerofthomas, 세창미디어) – 성경 그대로를 믿는 사람이 설명하는 유신진화론자의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한 책.


유신진화론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은 위의 책들을 읽어보라. 유신진화론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매우 나쁜 선택이다. 진화론의 문제점들은 너무도 많다. 진화론은 과학적으로도 완전히 가능성 없는 이론이다. 그리고 진화론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생물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유물론적 자연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과 타협할 경우, 복음은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만들어낸 결점 투성이의 무신론적 이론에 억지로 꿰어 맞출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09/theistic-evolution-not-good-option/

출처 - CEH, 2018. 9. 9.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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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봉
2018-05-25

성경적 창조신앙과 교회교육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iblical Creation Faith and Church Education)


요 약

오늘날 우리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과학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성경의 권위와 정확무오성이 거세게 도전을 받고 있으며, 사람들은 "우주만물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결과"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없이 살려는 아담적인 죄성과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배우는 진화론 교육 때문이다. 진화론 교육 때문에 사람들은 ‘진화론은 곧 과학’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하나님에 의한 창조를 믿으려 하지 않으며, 나아가 창조의 사실들을 기록한 성경(창세기)의 내용을 기록된 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에 기록된 창조의 내용들을 진화론에 꿰어 맞추려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며, 그 결과 다양한 타협이론들이 등장했다. 본 강연을 통해서 성경적 창조신앙과 복음, 교회 교육의 중요성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we live in the flood of knowledge and information today. Unfortunately, as science and technology develop rapidly, the authority and inerrancy of the Bible are being challenged extensively. Furthermore, people do not want to believe that the universe is the result of creation by the omniscient Creator God. There are two main reasons for this: the sinful nature of living without God and the education of evolution in schools. Especially, because of the latter people have the belief that ‘evolution is science’. By contrast, we do not want to believe God’s omnipotence and His creation. In addition, we do not want to believe that the Bible is true as written, but make continuous efforts to fit the contents of creation in the Bible into evolution. As a result, various compromise theories have emerged. This lecture will discuss the importance of biblical creation faith, the gospel of Jesus Christ, and the church education.


1. 성경적 창조신앙 왜 중요한가?

지난 10년 동안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을 하면서 많은 중고등학생들,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만나고 상담할 수 있었다. 그들과 상담하면서 발견한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믿을 수 없으며,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예수님의 탄생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진화론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예수님의 부활과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신앙생활을 잘 했던 우리의 자녀들이 이런 고민과 의심을 갖고 있다.

반면에 비교될 정도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담 내용의 공통점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가?’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21세기는 정보와 지식이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시대이다,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게 도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과학시간에 진화론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무신론적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론으로써 창조주가 없다고 한다.

진화론 교육 때문에 사람들은 ‘진화론은 곧 과학’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반면에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란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은 공통적으로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기사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최근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학생 수의 3% 만이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했다.

진화론을 믿게 되면, ”아담도 없고, 죄도 없고, 예수님의 부활도 없다”고 주장하게 된다. 진화론을 믿게 되면, 아메바라는 공통조상에서부터 진화된 사람은 동물과 같고, 동물은 죽으면 살아 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창조신앙”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다. 즉, 성경적 창조신앙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신앙이 세워진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성경적 창조신앙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적 창조신앙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창조신앙의 회복과 확신이 없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키는 강한 주님의 군사가 될 수 없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지만, 많은 과학적 내용들을 담고 있다. 창세기의 내용을 성경대로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는 한, 우리의 자녀들은 계속하여 교회를 떠날 것이다. 첨단과학 시대에 우리 자녀들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적 창조신앙을 회복하는 것이다.

 

2. 성경은 사실이다 –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모든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직접 선지자들을 만나시고 말씀하셨지만, 신약시대인 현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은 모든 말씀을 성경에 다 기록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이 결코 우상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으로 끝나는 총 66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 창세기에는 지구와 우주, 그리고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간결하면서도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된 책이 바로 성경이다. 지금 글을 읽어 가면서 기록된 대로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성경의 기록은 여러 부분에서 현재 주류과학계에서 주장하는 진화론과 자연주의와 충돌하지만, ‘과학적 사실’과 모순되는 것은 없다. 창세기의 내용이 기록된 대로 사실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쟁의 본질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며, 믿음 간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에 오류가 없을 때 세워진다. 만일 성경 기록에 오류가 있다면,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신적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믿는 이유는 크게 3가지 이다.

첫 번째 이유는 성경의 신적 권위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라고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도(가르치심)은 완전하고(시 18:30),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이다(눅 1:37).

두 번째 이유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받아 쓴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단순한 인간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한 예수님은 ”천지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마5:18). 이 말씀은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 심지어 단어 하나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음을 뜻한다.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 때문이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욕심으로 인해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만일 성경에 오류가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도, 믿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구원의 목적도 실패하고 말 것이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할 때와 똑같은 전략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다. 따라서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미혹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통이 안 되므로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첨단과학 시대에 뿌리 깊은 인본주의와 진화론으로 인한 자연주의와 과학만능주의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의 권위와 변함없는 진리임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신다.

 

3. 창조과학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변증하는 종합과학

창조과학은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가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사실임을 증거함으로써 창조주의 존재와 그 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변증하는 학문으로서 과학을 통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의 능력을 드러내는 종합 학문이다.

과학의 정의는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찾아내어 밝히는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고유한 특성들, 즉 비밀들을 갖고 있다. 그 비밀들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밤을 세워가며 연구해도 밝혀내기 힘들 정도로 오묘한 것들이다. 그런 비밀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런 질문에 현대과학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해답이 성경을 펴자마자 바로 나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비밀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비밀은 누군가가 만들어서 숨겨놓을 때만 존재한다. 자연 속에 감춰진 수많은 비밀들을 만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이야 말로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지혜와 능력을 가지신 창조주임에 틀림없다. 로마서 1장 20절은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과학적 발견은 창조의 비밀들을 밝혀낸 것들이며,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한다.

 

4. 타협이론의 문제점

첨단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믿지 않는 불신앙‘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과학적 발견과 사실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에 안타까운 사실은 신학자와 크리스천 과학자들 중에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해석하거나 설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창세기의 내용이 주류 과학계가 주장하는 진화론과 맞지 않기 때문에 기록된 대로 해석하면 안 되고, 신화 또는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진화와 빅뱅을 이용하여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면서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기록된 내용들을 진화론에 꿰어 맞추어 해석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 결과 다중격변설, 진화창조론, 유신진화론,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등 다양한 타협이론들이 나왔다.

타협이론은 ”진화론은 과학이다”라는 믿음과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못하는 인본주의와 과학주의로 인한 지적교만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최근에 한국교회에서는 타협이론 때문에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도전과 공격을 받고 있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몰락한 유럽교회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 거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타협이론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에게 훌륭한 해방구이자 도피처를 제공해준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식과 신앙적 갈등에서 해방되어 창조신앙을 회복했다면, 교회마다 돌아온 젊은이들로 인해 부흥하고 구원받는 젊은이들의 수가 나날이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조셉 톤(Josef Ton) 목사는 유럽 교회들의 몰락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서유럽의 기독교가 파괴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진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과 우리 신앙에 진화론을 접목시킨 자유주의 신학이다.”

타협이론을 믿게 되면, 기독교 교리의 기초인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기록된 내용들을 믿지 못하게 된다. 6일 창조와 아담의 역사성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부정하게 되고,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과 재림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타협이론을 믿게 되면, 아담도 없고 원죄도 없게 된다. 원죄가 없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변질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타협이론은 성경을 진화론에 꿰어 맞추려하기 때문에 결코 성경적이지 않으며,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과도 결코 맞지 않다. 타협이론은 마치 조류독감 바이러스처럼 교회 안에 슬며시 들어와서 하나님을 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 한다.

하나님을 믿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한 창조를 기록된 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조심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로새서 2:8).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9-10).

 

5. 교회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 가르치는 자들이 먼저 지적 회개를 하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숭배와 지적교만이다. 오늘날 첨단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우상은 바로 ”진화론은 과학이다”라는 믿음이다. 이런 믿음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보다는 ‘진화론 과학이 해석하는 하나님’을 더 믿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지적 교만은 나의 이성과 학문적 지식을 성경말씀보다 더 믿음으로써 성경(특히, 창세기) 내용을 진화론에 꿰어 맞추려는 것이다. 성경을 진화론에 꿰어 맞추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가 다양한 타협이론들을 잉태했다. 타협이론은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못하는 인본주의와 과학주의로 인한 지적교만이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다. 타협이론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속성과도 맞지 않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나의 지식과 학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지적교만이 아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첨단 과학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지적회개‘와 ’지적겸손”이다.

성경말씀이 우리의 이성과 학문적 지식과 충돌할 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성경말씀이다. 우리의 이성과 학문은 언제든지 변하고 틀릴 수 있지만,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2) 오직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자.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기독교인들은 501년 전에 루터가 외쳤던 대로 ”오직 성경 (Sola Scriptura)”으로 돌아가야 한다. 만약 창세기에 기록된 성경말씀이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돌아 갈 성경이 없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듣고 이해하고 순종했다.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이성으로 학문적 지식으로 해석하거나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결코 세상과 주류사회가 주장하는 사상과 학문에 타협하지 않았다.


3) 창세기의 내용을 기록된 대로 가르치자.

첨단 과학시대에 학교에서는 과학시간에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친다. 우리 자녀들이 그런 교육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우리 자녀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으로 성경적 창조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교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 포로시절에 포로로 잡혀가서 하나님을 배척하는 학문으로 바벨론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받은 신앙교육 때문에 그들 마음속에는 늘 하나님이 있었고, 여호와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교회교육의 목표는 우리 자녀들을 성경적 창조신앙을 가진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성경적 창조신앙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성경적 창조신앙의 확신이 없다면, 우리의 심장은 예수님의 심장으로 온전히 바뀌지 않으며,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주님의 군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의 현장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이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셨던, "6일 창조와 전 지구적 노아홍수 사건을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믿는 성경적 창조신앙"을 가르치는 것을 조금이라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가르치는 교회 학생들 중에서 제2의 다윈이 나오지 않도록 기도하며 가르쳐야 한다.

 

결 론

우리가 알고 있는 학문적 지식으로 성경의 내용이 이해 안 되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이 틀린 게 아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지혜가 짧기 때문에 이해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지적 회개와 지적 겸손”이다. 우리는 모두, 너 나 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지적으로 겸손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을 믿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혼란스러울수록 우리가 삼아야 할 참된 판단의 기준은 세상의 사상과 학문과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임을 명심하자.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교육해서 ‘다니엘과 세 친구’ 같은 다음 세대들을 길러내고, 그들을 통해서 한국 교회가 다시 부흥하도록 하는 것이 한국창조과학회와 교회들과 지도자들이 함께 해야할 사명이다.



출처 - 2018년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37

참고 : 496|1174|2016|2039|2114|2307|2314|2330|2353|2359|2579|2710|2864|3024|3035|3037|3039|3041|3055|3077|3186|3242|3241|3244|3384|3423|3426|3642|3682|3717|3722|3728|3746|3780|3812|3887|4039|4069|4140|4516|4542|4635|4636|4765|4766|4782|5112|5179|5210|5211|5270|5272|5381|5397|5413|5461|5462|5466|5470|5621|5809|5859|6082|6110|6135|6146|6152|6153|6186|6285|6332|6452|6642|6553|6582|6614|6617|6620|6640|6652|6676|6680

Don Batten
2018-04-26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유 

(Voting with their feet)


      영국의 주요 종교들 중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급감하고 있다. 영국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의 교인들은 1980년과 2000년 사이에 27%나 감소하였다. 이러한 감소율에 대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 2003/2004 년에 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모두 14,000명의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들이 왜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에 응답하였다.[1] 사람들은 다항 선택식 질문에 답하기 보다는 오히려 글로서 응답을 해주었다.


놀랍게도 91%의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게 된 것에 대해서 매우 비슷한 이유를 제시하였다. 이것은 한 응답자의 말로 요약될 수 있다 : ”교회는 믿는 이유에 대해서 더 강력한 방어를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에 대한 비판자들의 공격에 대해서 교회들이 대답해주고, 믿음을 방어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많은 응답자들은 그들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가르침을 얻기 위해 가정 교회들와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가르침을 제공하는 여러 웹 사이트들이 자주 목록화 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Answers in Genesis (AiG) 웹 사이트 였다. 응답자들은 그들의 믿음과 성경의 권위를 지지하는 가르침에 대한 증거들을 원했다.


불행하게도, 전통 교회 안에 있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는 진화론적 역사관에 굴복하였고, 성경을 방어하기 위한 어떠한 갈망도 잃어버렸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앙으로 인해 핍박을 받았던 조셉 톤(Josef Ton) 루마니아 침례교회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서구 유럽에서 기독교를 파괴했던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는 진화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과 우리의 믿음에 진화론을 적용시킨 것이다.”


창세기에 대한 파괴 작업은 ‘고등비평(higher critic)’으로 열심이었던 독일의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성경에 진화론적 인류역사관을(원시적인 다신교로부터 성경을 믿는 일신교가 생겨난 것으로) 적용하였다. 벨하우젠과 그의 동료들은 모세오경은 모세에 의해서 기록되지 않았고, 후에 확인되지 않는 유대 랍비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결정하였다. 지금도 많은 보수적인 신학대학들까지도 이 이단사설인 파괴적인 ‘JEDP’ 문서가설을 가르치고 있다.[2]


교회를 떠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과 도덕적 생활의 거룩함을 가르치고 있지 않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좌절감이었다. 응답자의 많은 수가 영국 국교회에서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임명한 것에 대해서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조(creation)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이 거부된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도 거부될 수 있는 것이고,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창세기의 말씀이 거부된다면, 동성애를 금지한 분명한 다른 성경 말씀들도(창세기 19, 레위기 18:22, 로마서 1:26–27,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 거부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호주에서의 연구는, 진리와 도덕적 기준들은 교회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3] 심지어 세속적인 뉴스 해설가인 앤드류 볼트(Andrew Bolt)까지도 높은 낙태율에 대해서 말하면서[4], 교회지도자들이 생명의 고결함과 같은 도덕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바른 자세들을 가져주기를 한탄하고 있었다.


호주에 있는 한 자유주의 대주교(archbishop)는 그의 종파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근본주의자 교회(fundamentalist churches, 즉 성경 중심의 교회)들이 양떼를 훔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는 굶주린 양떼들이 목초지를 찾고 있는 것을(슬프게도 대부분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도 또한 자유주의 신학에 감염되어 왔던 주류 종파들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자유주의적 교회는 죽어가고 있고, 보수주의적 (성경을 믿는) 교회는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5]


분명히 성경의 권위를 세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창조 메시지는 교회의 성장과 쇠락의 문제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만약 교회 지도자들이 첫 구절부터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교회를 부적절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고, 그들은 교회를 떠나가게 될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Let the people speak, Church Survey UK. The 42-page report is available at <www.churchsurvey.co.uk/?home>.
2. For refutation, see Grigg, R., Did Moses really write Genesis? Creation 20(4):43–46, 1998.
3. Bellamy, J., et al., Why don’t people go to church? National Church Life Survey [Australia], 2002.
4. Bolt, A., We kill babies, Melbourne Herald-Sun, 10 November 2004, p. 23, <www.family.org.au/In_the_news/Abortion/We_kill_babies.htm>.
5. Shiflett, D., Exodus: Why Americans Are Fleeing Liberal Churches for Conservative Christianity, Sentinel, USA, 2005.

 

*참조 : Voting with their fee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0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8/i1/voting.asp

출처 - Creation 28(1):6, December 2005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82

참고 : 3249|2797|2330|3591|3426|540|3055|2039|5462|5461|5413|5272|5211|5210|511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12|3682|3423|3244|3241|3077|3041|3039|3037|3024|2864|2579|2359|2353|2307|2114|2016|1174|5686|4394|4399|4413|4414|4416|4450|4451|4452|4463|4480|4488|4492|4599|4578|4514|4868|4726|4725|4723|4718|4714|4713|4819|4878|4872|5018|5034|5094|5275|5395|5415|5402|5463|5514|5638|5741|5852|5861|5969|5985|6017|6066|6071|6089|6179|6205|6235|6351|6387|6401|6432|6446|6458|6529|6533|6639|6679|6697

Jonathan Sarfati
2018-02-23

단지 복음만 전하는 것! 

: 창세기 없는 복음은 무신론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Just preach the Gospel!)


       성경적인(‘젊은 지구’) 창조론을 믿지 않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무신론자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해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하기를, 창세기와 같이 불화를 일으키는 논제를 피하고 ”단지 복음만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에서 복음을 가장 잘 전했던 사람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바울의 복음 메시지에는 창세기가 들어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전했을까?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는 복음을 요약해서 말하면서, 고린도 사람들로 하여금 약 15년 전에 그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미 그들에게 가르쳤던 것임을 상기시킨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1-4).

그런데 마지막 구절인 ”성경대로”를 주목하라. 바울은 ‘좋은 소식’인 복음은 뿌리 없이 허공에 매달려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좋은 소식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먼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등의 나쁜 소식을 먼저 제시하며, 계속하여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21-22, 26, 45).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생략하라고 다그치는 바로 그 부분인 창세기 처음 몇 장에 기초를 굳게 두고 있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경 중에서 복음이 가장 잘 드러난 로마서도 썼다. 바울은 여기서도 역시 아담과 예수님, 두 사람을 대조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그리고 그 앞 장에서(롬 4:1-17), 바울은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인한 의에 대하여 중요한 진리를 가르친다. 바울의 논점은 창세기에서의 사건의 순서에 근거한다. 정확하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즉 믿음은 그가 할례를 행하는 행함(창 17장)보다 이전이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이방인 회심자들인 바울의 독자들이 창세기를 잘 알았으며,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바울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창세기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은 초기의 기독교인 회심자들이 제자훈련을 시작하기 바로 전에 창세기를 완전히 배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신론자들은 창세기가 복음의 기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신론자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는 그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명백한 미련함에 대한 한 가지 이유는 많은 복음전도자들이 창세기에 기초를 두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은 정확히 이것을 미련한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목소리가 큰 무신론자인 프랭크 진들러(Frank Zindler)는 이렇게 말한다:

”생물학이 기독교를 가장 당황하게 만든 것은 생물학적 진화의 발견이다. 이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실존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중심되는 신화는 못쓰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없었다고 한다면 원죄 같은 것도 없다. 원죄가 없다면 구원이 필요 없다. 구원이 필요 없다면 구세주가 필요 없다. 나는 그것이 역사적으로나 다른 면으로나 예수를 실업자의 대열에 넣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 진화론이 기독교에 대해 확실히 죽음의 종을 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들러와 마찬가지로, 무신론자의 사도인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진화론과 기독교를 결합시키려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물론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단지 상징일 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상징?! 그러니까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에 의한 상징적인 죄 때문에 고통당하고 처형당한 것이지요? 그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그것은 ”미쳐서 짖는 것”이라는 판단 밖에는 내릴 수가 없지요!”


죽음과 고통의 문제

위의 구절들에서 바울은 죽음과 고통을 분명하게 아담의 죄와 연관 짓는다.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은 ”마지막 원수”(고전 15:26)이며 ”죄의 삯”(롬 6:23)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이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말씀하신 그분의 원래의 창조의 일부분일 수 없다.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있었으므로(창 1:26-28),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의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 역시 저주를 받았다. 따라서 타락은 그 범위가 우주적이며, 전체의 피조물에 영향을 미친다. 로마서 8:22절에서 말하듯이,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할 때 피조물이 무익해지도록 하셨기 때문이다(20절).

그러나, 수십억 년이라는 세월과 성경을 혼합시킴으로써 창세기를 부정하는 것은 거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들 장구한 시대는 그 오랜 시간 틀에 걸쳐 지층암석들이 쌓였다는 사실을 수반한다. 그러나 이들 암석층은 화석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는 죽은 사람과 죽은 동물과 가시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수십억 년이라는 교의는 이들 죽음의 대부분을 아담의 죄 이전으로 둔다. 이는 성경이 일관성 있게 말하고 있는 죄와 죽음의 인과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고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우리가 오랜 연대를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했다고 주장하지 않는 큰 이유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더욱 더(훨씬 많이) 비논리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수단으로 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창조를 낳게 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다윈이 한 말을 들어보라:

”이와 같이, 자연의 전쟁으로부터,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 지위의 대상인 가장 높은 동물이 뒤따라 나왔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를 실감하고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또 다시, 빈틈없는 무신론자들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헐(David Hull)은 이렇게 썼다:

”진화론에서 하나님이 어떤 의미를 갖든, 자연사의 자료들이 어떻든, 그분은 낭비하지 않고 원함이 없는 개신교의 하나님은 아니다. 그분은 또한 그분의 작품을 돌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다. 심지어 그분은 욥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두려운 하나님도 아니다. 갈라파고스의 하나님은 부주의하며, 낭비하며, 냉담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분은 분명 우리가 기대어서 기도하고 싶어지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다.”

무신론적 유전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드(Jacques Monod, 1910-1976)는 진화론에 대해 더욱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것은 소멸 또는 파괴의 과정이기 때문에 보다 잔인하다. 생존을 위한 투쟁과 약자의 소멸은 끔찍한 과정이다. 현대의 우리의 모든 윤리는 그것에 반발한다. 이상적인 사회는 선택적이지 않은 사회,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이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자연법칙과 정확히 반대이다. 나는 진화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다소간 하나님이 이런 과정을 고안하셨다는 개념을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강조는 저자가 추가한 것이다).”


결론

첫 절에서 보았듯이,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그리고 그의 저술에서 창세기를 광범위하게 인용했다. 사실상, 바울 및 다른 사도들은 새로운 기독교인들에게 창세기의 진정한 역사에 관해 광범위하게 가르쳤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또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용인하는 것이 무신론자들을 이기는 것이라고 분별없는 상상을 하고 있다. 슬프게도, 많은 교회들이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이래 150년간 이것을 시도해 왔다. 심지어 영국 교회는 다윈에게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전혀 감명을 받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차라리 어느 창조론자 블로거처럼 유신론적 진화론자 단체인 BioLogos를 이렇게 꾸짖는 것이 더 낫다:

”당신이 타협함으로써, (1)당신은 그들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2)그들에게, 그들이 당신을 이기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저, 당신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세상이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다가 결국에는 당신이 모든 것을 버릴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당신이 올바른 장인 창세기 1장을 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애들 장난밖에 없다.”



번역 - 이종헌

링크 - 

출처 - Creation ex nihilo, Vol. 35(2013), No. 3, pp. 15-17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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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말씀 365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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