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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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Creation Moments
2010-10-08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사자 

(David Livingstone’s Lion)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여기에 의료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 박사가 1872년에 썼던 일기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이빨과 발톱이 붉은” 사자의 표적이 되었던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의 자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고함 소리를 들었다. 내가 돌아보려고 반쯤 몸을 돌렸을 때 나를 덮치려고 달려드는 사자를 보았다. 내가 약간 높은 곳에 있어서 사자가 내 어깨를 물었고 우리 둘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내 귀 가까이에서 무시무시하게 으르렁거리면서 이 사자는 사냥개가 쥐를 흔들듯이 나를 흔들어 댔다. 이 흔듦이 고양이가 쥐를 처음 흔들었을 때, 쥐가 느낄 것 같은 것과 유사한 멍청한 상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식은 하고 있으나, 고통이나 공포를 느낄 수 없는 일종의 몽롱한 상태였다. 마치 부분적으로 클로로포름 마취 하에서 모든 수술을 보고 있지만, 칼을 느낄 수 없는 환자가 설명하는 것 같은 것이었다. 이 순간의 상태는 어떠한 정신적으로 진행된 일련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 흔듦이 공포를 제거했으며, 그 맹수를 바라보는 동안에 어떠한 공포에 대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 특이한 순간은 아마도 육식동물에 의해 잡아먹히는 모든 동물에서 만들어질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죽음의 고통을 줄여 주시려는 은혜로우신 창조주의 자비이다.” 

 

 References: Livingstone, David, 1872. Adventures and Discoveries in the Interior of Africa (Philadelphia: Hubbard Brothers. pp. 96, 102, 103)

Copyright 2010 Creation Moments. All Rights Reserved.


번역 - 김계환

링크 - http://www.creationmoments.com/content/david-livingstones-lion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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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3368|3002|2997|2710|2399|2132|904|624

정병갑
2010-06-28

창조론 시대를 향하여


     과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발표 당시에 인정받지 못하다가, 수 년내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인정받는 경우를 보게 된다. 멘델의 법칙도 이러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1866년 멘델이 완두의 유전현상에 관한 결과를 The Brunn Societyfor Study of Natural Science의 회의에 발표하였을 때, 모든 참석자가 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에 멘델이 사용했던 정량적이고 실험적인 방법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멘델의 연구보다 7년 전인 1859년에 다윈이 진화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여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즉 멘델의 결과는 다윈의 내용과 상반되는 창조론을 지지하는 결과였던 것이다.


자신의 연구업적이 인정받지 못한 채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던 멘델은 결국 1884년 죽으면서 ”나의시대는 올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하였는데 1902년 네델란드의 De Vries, 독일의 Correns, 오스트리아의 Tschermak 등 세 사람은 각각 독립적인 연구를 하다가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30여년 전에 멘델에 의해 이미 밝혀진 내용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자신들의 연구결과인 유전의 기본 법칙에 멘델의 이름을 붙여서 ”멘델의 유전법칙”이라고 함으로써 드디어 멘델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02년을 ”멘델의 법칙 재발견의 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멘델의 유전법칙이 1902년 이후에 인정되었다고 해도 진화론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미 지난 40여년에 걸쳐 다윈의 진화론이 너무나 많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유전 법칙의 핵심인 창조가 받아들여지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우리로서는 통한의 7년인 셈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멘델의연구결과가 다윈의 진화론보다 7년 앞서 발표되었더라면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도 진화론이 발표되었을 때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하였을 것이고 현재는 창조론이 창조법칙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헌신할 명분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든다. 창조섭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각자의 전공분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우리가 진화론과 싸우기 위해서 힘들여 노력하지만 우리의시대(창조의 시대)는 올 것이다. 우리를 이렇게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창조과학회를 위해서 헌신할 것을 다짐해 본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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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정병갑
2010-06-24

과학적 성경과 성경적 과학


      성경에 기록 된 많은 사건 중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을 뿐 아니라 과학 법칙에 위배되 는 사건도 많이 기록되어있다. 나뭇가지를 물 에 던지니 도끼가 떠오른 사건, 해 그림자가 10°뒤로 물러간 사건, 상온에서 H2O가 변하여 C2H5OH가 된 사건,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이미 부패한 사람이 다시 살아난 사건.....등등 자연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우주 만물과 모든 생명체를 창 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위에서 열거한 사건들은 그야말로 하나님께는 식은 죽 먹기(?)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과 진화론에 세뇌되어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고 있다. 그들은 성경이 신앙과 도덕의 관점에서는 정확하지만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성경은 자연현상에 대하여 과학 교과서처럼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 만약 성경이 과학 교과서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쓸모없는 교과서일 뿐이다. 왜냐하면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수 천년 동안 성경은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성경은 개정의 필요가 없을 만큼 정확하 게 기록된 과학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과학의 근본원리와 자연현상의 법칙을 설 명할 수 있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경속의 사건을 과학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려고 한다면 그 사건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학으로 증명되는 분이 아니라 믿음으로 만날 수 있는 영적인 존재인 동시에 모든 과학법칙을 초월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과학 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학을 성경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면 어떨까? 이것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잘못을 범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현재의 과학 지식 중에서 많은 부분이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밝혀진 사실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타당한 방법이라 여겨진다.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설명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원칙과 법칙에 맞도록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지만, 과학을 성경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창조주의 원리와 법칙에 있어서 어긋나지 않은 것이다. 즉 성경은 과학적이 아니지만 과학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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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일
2010-04-21

과학의 날에 하나님 묵상하기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에 각 나라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도 전체 예산중에 연구투자 예산 비율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이처럼 과학기술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여러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져야만 치열한 세계 경쟁구도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수준을 갖고 있는 미국은 왜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들도 많은 유익을 누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기술의 발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것은 바로 과학기술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언 1:7)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으면 지식이 많더라도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도 보면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와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 때, 순교자도 많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뜨거웠었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기술능력을 갖게 된 지금은 도리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너무나 약화된 상황이다.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경외할 때는 나라가 부강해지지만, 부해지면 신속하게 우상숭배로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  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경외하지 못하고, 우상 숭배의 타락된 삶으로 그렇게 빠르게 변화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이스라엘만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과학기술의 역사 가운데서도 잘 나타난다.


근대과학이 발전하게 된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1543년), 갈릴레오에 의한 지동설 확립(1616년), 케플러의 행성 타원궤도 발견, 뉴턴의 만유인력 발표(1687년) 등에 이른 과학혁명 덕분이다.  과학혁명의 주역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과학자들이었다.  혁명의 주역들이 왜 기독교인들이었나?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새로운 근대 세계를 만드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바로 성경말씀이었고, 성경말씀에 순종한 기독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르네상스가 근대 세계를 낳은 것으로 생각한지만, 르네상스는 귀족들의 예술활동이 중심이었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삶은 중세보다 더 어려웠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근대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을 비롯한 많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는가? 


중세 시대 로마 카톨릭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당시 성경은 사람들이 읽을 수 없는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었고, 사제들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가 등장하였고, 모두가 제사장(만인 제사장)이므로 각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직접 회개하고, 말씀에 따라 사는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사제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시대에서,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내가 직접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육은 당시의 카톨릭교육처럼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지 않고, 각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다.  또한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신성하다고 믿었고, 자신의 직업과 일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담당하였다.  과거에는 높은 산이나 큰 바위를 두려워하였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처음 제안한 것도 하나님께서 우주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천동설을 믿던 시대에 별자리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원들이 존재해야 했고, 별들을 더 많이 관찰할수록 이론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중심이라고 가정했을 때 별자리 움직임을 훨씬 단순하고, 더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태양이 중심이기 때문에 지구도 태양처럼 둥글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 주장은 너무 충격적이었고, 지구가 둥글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고 지구에 붙어있을 수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프로테스탄트, 특히 루터파 과학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코페르니쿠스는 원치 않았지만 루터파 목사인 오지안더에 의해 출판이 되었다. 


갈릴레오는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을 발견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내려오던 천동설을 굳건히 믿고 있던 과학자들과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갈릴레오가 교수로 있던 피사 대학의 동료들과 날카로운 대립을 하게 되었다.  당시 갈릴레오는 교황청과 대립관계에 있던 토스카나 대공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이런 정치적 관계와 과학자들 간의 갈등이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과학적 주장인 지동설을 억제하려고 했다.  과학자들간의 대립이 종교권력을 이용한 재판으로 확대된 것이다. 종교재판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적 주장을 힘으로 억압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과학이론이 순순히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  기득권을 갖고 있던 과학자들에 의해 억압당해왔고, 지금은 진화론 과학자들에 의해 진화론이 아닌 이론들은 철저하게 억압당하고 있다.  갈릴레오 당시 카톨릭의 문제는 성경말씀보다 과학자들의 주장을 더 신뢰하였다는 점이다.  지동설이 성경 말씀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부합될 수 있다는 것을 외면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권력을 이용하여 과학적 이론을 탄압한 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지만, 지동설을 지지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비판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천동설과 지동설을 주장하는 주된 근거는 별자리 운동을 어느 이론이 더 잘 설명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고, 이런 복잡한 과학적 관찰을 이해하고 지동설을 지지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근본적으로 지구가 둥굴고 돌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과학혁명을 있게 한 또 다른 과학자인 케플러도 독실한 루터파 신교도였다.  케플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수학적 계산을 통해, 천체 관측을 통해 밝혔지만, 왜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 수 있는지, 왜 지구가 둥글다면 지구상의 물체들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하여는 역시 답을 할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여, 둥근 지구 위에 어떻게 사람들이 살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독실한 영국의 청교도인이었으며, 영국 국교의 성직자였다.  뉴턴은 하나님이 우주를 작동하는 규칙을 수립했고, 그 규칙을 알아내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뉴턴은 공간이라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믿었고, 하나님의 존재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공간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바로 이 개념이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결코 기하학적인 분석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탄생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뉴턴 등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과거 어떤 전통, 권위에 예속되지 않고, 도리어 수학적, 합리적, 경험적, 실험적 방법만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과학혁명을 통해 근대 과학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그 당시 연구비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과학자를 우대하는 풍토가 있었던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과학자들을 통해 과학혁명이 이뤄진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연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육기관을 통해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교육을 하였고,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이런 과학자들이 프로테스탄트 교육기관을 통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받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사회가 변화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근대 이전의 과학기술은 중국 등이 더 발전되어 있었지만, 근대 이후 역사의 중심이 유럽이 된 것은 바로 영국을 중심으로 이뤄진 프로테스탄트 교육과 프로테스탄트 혁명 때문이다.  영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다른 유럽국가들도 영국의 민주주의제도, 교육제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우대하는 것들을 모방하며 쫓아오게 된다. 


위대한 기독교 과학자들에 의해 이뤄진 과학혁명은 안타깝게도 18세기 계몽주의를 강화시키는 큰 역할을 하였다.  중세 이후 대두된 인본주의 운동은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뉴턴을 통해 완성된 과학혁명은 인본주의자들에게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이런 방식을 풀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 대신 과학과 이성이 하나님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였다.  계몽주의 교육은 자연 상태 그대로를 ‘자유의 실존’이라고 생각하여 초월적인 신, 전제 정치 및 교회의 영향력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본주의자들은 자신 만만하게 모든 것을 과학과 이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기원의 문제만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진화론이 등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은 나오자마자 인본주의자들을 통해 엄청나게 환영받았고, 과학의 이름으로 창조를 거부하고, 하나님 없이 시작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진화론은 생물학 뿐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서 시작을 설명하는 유일한 과학적 이론으로 자리잡게 된다. 


진화론의 이론대로 인류의 기원이 있다고 믿고 화석을 경쟁적으로 찾던 과학자들은 결정적인 중간단계 화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자바인 등 조작적으로 만들어진 증거들은 있었으나 정작 진화론이 출현한 영국에서는 아무런 화석도 나오지 않았다.  이때 가짜로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형태인 필트다운인이 만들어졌다.  영국에서 진화의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으로 1912년 발표하였다.  이 뼈들은 1953년 연대측정결과 수십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 밝혀졌고, 1962년 공식적으로 가짜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지금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진화론의 증거라는 것이 거짓이거나, 잘못된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솔직한 진화론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필트다운인이라는 완벽한 진화의 중간단계 화석의 증거가 있던 50년 동안 진화론은 완벽한 이론이었다. 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말씀과 다른 진화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많은 신학자들은 진화론과 성경을 조화시키는 노력을 하였고, 진화론을 사실로 인정하는 신학이 자리잡게 된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신학적 이론은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론은 마치 이성과 신앙이 조화를 이룬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진화론은 증거가 없어서 몰락하고 있는데, 도리어 진화론을 믿는 것이 이성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은 확대되고 있다.  대부분의 세계적인 신학교들, 우리나라의 신학교들 중 다수의 신학교에서 이런 유신론적 진화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생물학적 진화론은 증거가 없으니까, 이제는 물질과 우주의 진화를 기정사실로 하면서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이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과학혁명의 풍요함이 인본주의자들을 통해 계몽주의와 진화론을 만드는데 이용된 것이 역사의 비극이다.  과학혁명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근현대의 풍요로움은 프로테스탄트 혁명이 가져온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자본주의를 낳았지만, 그 정신을 잃어버리자 탐욕적인 자본주의가 되었다.  막스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의해 시작된 투명한 경영, 양질의 노동 등이 자본의 재투자로 연결되고, 사회 구성원의 신뢰가 구축되어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문화가 탄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자본주의는 제도와 문화로 정착되면서 더 이상 정신적 지주인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과학적 탐구가 가져온 과학혁명은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인본주의자들에 의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과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다는 대한민국은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가?  과학의 날은 하나님 없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부를 이룩하고자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과학과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 정신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보다 진화론을 더 신뢰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선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가 이제는 세상에서 누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하늘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안주함으로써 서서히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지 않는 로마카톨릭교회를 향해 생명을 걸고 이의를 제기하였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지금은 세상의 향해 이의를 제기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믿음과 용기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과학의 날에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주인 되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그 일을 이미 시작하셨음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에 우리 한국창조과학회를 부르셨다.  하나님,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고,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옵소서. 


구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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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4226|3875|3013|2585|1931|1030|464|959|2787|81

조진호
2009-11-24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과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Ⅰ. 진화는 과학, 창조는 신앙?

   먼저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관점이다. 진화론은 과학의 영역이고, 과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은 진화론을 확립된 과학적 사실로 큰 비판 없이 받아드리는 입장이다. 동시에 창조론은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고, 이는 종교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서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공존할 일이지 대립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논쟁의 핵심은 진화론이 과학영역만의 문제이고, 객관적으로 입증된 과학적 사실인가 하는 점이다. 진화론자들 주장이 처음에는 가설수준에서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과학지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많은 오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지금도 진화론의 핵심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진화론은 아직도 입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가설수준이다. 결코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잘 확립된 과학 이론처럼 인식되고 있다. 진화론은 생물의 영역을 넘어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심지어 종교계에서 조차 통용되는 등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조차 진화론을 확립된 과학적 사실로 본다. 창조주 하나님도 인정하고 진화론도 받아드린다. 진화론은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중심사상이 되었다. 모든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Ⅱ.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은 과학적 문제다!

과학은 통상적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과학은 자연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과학에서 연구란 자연현상에 대하여 하나의 가정을 세운 뒤, 실험과 측정을 통하여 가정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맞으면 그 한계 내에서 가정은 진리로 받아 드려진다. 틀리면 가정을 수정하여 실험과 측정을 반복하면서 자연현상에 대한 하나의 규칙을 확립하여 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기원 문제를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은 분명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최초의 생명체가 진화되었는지 혹은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관찰한 사람도 없고, 실험을 반복할 수도, 관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진화되었건 창조되었건 최초의 생명체가 만들어진 후에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규칙대로 생명체는 종족번식을 한다. 결코 처음 생명체가 나온 방법대로 진화나 창조에 의하여 생명체가 다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즉 과학적 문제로 국한하면, 생명의 기원을 다루는 일은 분명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느 모델이 보다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느냐를 추론하는 정도일 것이다. 과학적 잣대만을 진화론 창조론 논쟁의 심판자로 삼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 문제라고 한다면 비교적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에서의 진리와 주장은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연발생설, 대진화, 중간생물체 존재가 과학적 객관적 타당성을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궤변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이는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 문제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논쟁의 본질은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생각의 틀, 신념, 믿음이다. 세계관은 개인의 가치, 행동, 결정, 사상에 영향을 준다. 진화, 창조 논쟁의 본질은 생명체들이 진화되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의 믿음(세계관)과,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의 차이라는 인식이다. 본인의 세계관에 객관적 과학적 증거들이 있으면 더욱 공고하여 지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각자 생각하는 틀, 신념은 주관적 성격도 많기 때문이다. 다윈은 인생 말년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진화론은 어린 시절의 추측과 공상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하나의 종교로 여길 줄은 미처 몰랐다.

다윈이 처음부터 세계관적 관점에서 종의 기원을 작성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하나의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진화, 창조가 단순히 과학적 논쟁이 아니라 세계관적 논쟁임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캐톨릭 교황인 베네디톡스 16세도 진화론의 본질이 세계관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반면 17-8세기 만유인력, 중력 법칙을 발견한 영국 물리학자인 뉴턴은 정교한 자연, 우주의 질서에 감탄을 하면서 다음과 말했다.

자연, 우주의 아름다운 질서는 우주만물의 설계자, 창조주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것은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 때문이다. 이런 아름다운 질서는 우연히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설계자, 창조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진화, 창조 논쟁의 뿌리에는 각각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세계관이 있다.


Ⅳ. 진화론은 기원 문제를 결코 밝힐 수 없다.

세계관적 관점에서 볼 때 진화론의 뿌리는 인간 중심적 사고인 인본주의, 과학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 스스로 우주, 생명의 기원 문제를 밝혀보려는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진화론은 결코 생명의 기원을 밝힐 수 없다. 자연발생설은 물질, 중간생물체, 대진화는 각각 하나의 특정 물질 또는 생명체를 그 출발로 하고 있다. 즉 진화론은 있는데서 있는 것을 설명하고 있을 뿐 결코 출발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하여는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발생설에서 제기하는 생명체의 근본이 되는 물질은 어디서 왔는가? 에 대하여 진화론은 답을 줄 수 없다.

우리는 물질이 분자 또는 분자들의 혼합으로 되어 있고, 분자는 원자들의 집합체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104개의 서로 다른 원소들은 각각 전자와 핵으로 되어 있고, 핵은 양성자, 중성자로 되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 원소는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면 대답이 힘들어 진다. 이렇게 근원을 캐면 결국 한계상황에 도달한다. 인간의 이성, 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다. 진화론은 그 출발이 있는 상태에서의 변화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기원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 진화론은 인간적인 이성, 지성의 노력으로 생명의 근원을 밝히려 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과학의 한계, 인간 이성, 지성의 한계로 결코 기원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Ⅴ. 진화론은 무신론이다.

진화론을 받아드리면 성경과 대치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된다. 첫째로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천지창조(공간, 우주, 생물, 인간창조)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연이 된다. <생명체는 무생물에서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 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창조의 주체가 됨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혹자는 자연발생설과 최초 생명체가 다양한 생물들로 진화된 것이 하나님의 창조역사라고 주장을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체들을 창조하셨다고 한다. 창조주 하나님도 인정하고 진화론도 받아드린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다. 그런데 막상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다. 한마디로 유신진화론은 하나의 억지타협, 궤변에 불과하다. 진화론은 결코 창조주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다.

둘째로 진화론은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인간만이 많은 생명체들 중 유일하게 영적존재이다. 영적으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생명체들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에 대하여 반응하는 영적 존재라는 점이다. 진화론에서는 인간도 단지 하나의 진화 산물일 뿐이다. 진화론 주장대로 사람과 원숭이가 공통조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면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하나님 형상을 가진 인간 정체성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셋째로 진화론 창조론 논쟁은 치열한 영적 싸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하나의 종교로 여겼다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랐다는 다윈의 고백은 진화론이 영적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이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2절은 거짓 것을 믿고 불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진화론을 종교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도 된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하나의 탈출구, 대안으로 삼아서 진화론을 하나의 종교로 믿게 된 사람들의 영적 심판에 관한 경고이다. 결국 진화론의 본질은 무신론이다.


Ⅵ.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된 1980년부터 지금까지 창조과학 사역의 중심은 교회였다. 신앙인을 상대로 진화론의 허구에 대한 세미나 활동을 주로 하였다. 미국의 관련기관들로부터 자료를 입수하고, 책을 번역하는 일들을 하였다. 창조과학 사역자는 대부분 신앙을 갖고 있는 대학 교수들이었다. 창조과학 세미나는 진화론의 허구를 폭로해왔다. 창조과학 세미나는 온누리 교회, 지구촌 교회, 대학생 선교회 등에서 필수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회가 창조과학 세미나 한 두 번 한 것으로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도 사실이다. 창조과학 사역의 전략적 가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극히 인색하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창조과학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창조과학 전문가들이 각 전공 영역에서 진화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근거를 심도 있게 마련해야 한다. 자연발생설이 불가능함을 화학적 논리로 반박하는 일, 소진화와 종의 다양성에 대한 명쾌한 설명, 자연선택이 대진화로 이어질 수 없다는 생물학적 논리, 방사성 원소 붕괴에 의한 연대측정의 명백한 한계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하여 각 영역에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 진화론의 허구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일반 대중을 향한 창조과학 전달 매체수단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창조과학의 핵심내용은 대부분 전문적 과학영역에 속한다. 과학 용어자체가 일반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많다. 일반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심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확, 간결,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 소통기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디자인 전문가들이 창조과학 contents를 애니메이션, 만화, 동영상, PPT자료로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동시에 창조과학 강사들도 과학의 어려운 기술적 내용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technical communication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창조과학 사역자는 일반대중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창조과학 운동은 확고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진화/창조론 논쟁은 성격상 끝이 없는 싸움이다. 논쟁의 본질이 증명할 수 없는 세계관 싸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선교를 위해서도, 신앙의 근본을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도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필요하며, 그 중심에 창조과학이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온누리 교회가 일본 선교전략에 창조과학을 활용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바 있다. 유럽교회가 진화론과 타협한 유신진화론 입장을 취한 것이 유럽교회 쇠락의 주요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는 세계관 운동의 전략적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과학으로 포장된 진화론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 과학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연합하여 핵심 선교, 교육 전략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창조과학 운동은 인간정체성을 회복하는 신앙훈련 운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진화론의 본질은 하나님 형상을 상실한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은 교육, 연구, 철학, 예술 등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하나님 하신 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도 없음을 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성경을 진리로 받아 드리며 하나님을 인정하기로 결단하는 일이다. 최근 교회를 중심으로 회복사역, 정체성 회복 운동, 아버지 학교 등 영성 훈련 프로그램이 효과적인 신앙훈련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죄가 왔고, 결과로 거절감, 상처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형상을 회복케 하는 창조신앙 운동은 21세기에 사는 창조과학 신앙인들의 소명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오늘도 창조역사를 지속하신다.



출처 - 2009. 10. 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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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2009-10-28

교회는 왜 창조과학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올해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 된지 150 주년 되는 해이다.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은 본질상 동시에 진리일 수 없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은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오늘날 교회에게 있어 창조과학 사역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받아 적은 것으로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두가 성경이지 어느 부분만 성경인 것은 아니다.

창조과학 사역은 바로 말씀을 창세기 1장 1절부터 바로 믿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창세기는 전체 성경의 토대가 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서 이 부분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게 되면, 그 뒤에 나오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또한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게 된다.

창세기 중에서도 특히 1장에서 11장의 내용은 우주의 창조와 인류의 기원, 그리고 노아의 홍수를 비롯한 지극히 중요한 인류의 초기 역사를 기록하고 있어, 이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후에 이어지는 성경의 다른 기록과의 연속성을 제공함으로써 아주 중요한 성경적 교리의 기초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인본주의 교육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세기 내용을 한갓 신화나 전설로 생각하게끔 공헌하였고, 그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갔으며,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자들 또한 세상에서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나약한 신앙인들로 바뀌어 버렸다.

과거 유럽의 찬란했던 교회들을 생각해 보라. 지금은 텅 비어 버린 그 교회당을 한 때 가득 채웠던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없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다윈의 진화론을 선두로 한 인본주의 사상이 휩쓸고 간 결과들이 아니겠는가?

당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교인들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교회의 근간을 무너뜨린 다윈의 무덤을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 중앙에 안치할 정도로 당시의 교회는 영적인 눈이 멀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미국의 경우도 1925년 테네시 주에서 열렸던 소위 ‘원숭이 재판’ 이후 기독교인들은 지성과는 거리가 먼 맹신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일반 공립학교의 교과 과정은 물론이고, 박물관을 가도 TV를 켜도 온통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한갓 우연한 존재에 지나지 않게 설명되어지고 있음을 볼 때, 성경을 손에 갖고 있는 교회의 무관심과 침묵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이 창조냐 진화냐 하는 문제를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많은 것 중에서 말단 지엽적인 한 가지 이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정말 우주 진화의 부산물로서 우연 발생한 존재라면, 죄의 문제가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고, 도대체 복음을 사실로 받아드릴 논리적 이유가 없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면 복음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단코 누군가 생각하듯이 말단 지엽적인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오늘날 신학교에서조차도 인본주의 학문의 영향으로 진화론과 혼합한 창조 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타협하는 이론들은 그 근본이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적 과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재해석하여 내놓은 하나의 신학적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진화론이 어떤 절대적인 과학적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최신 과학 정보들을 볼 때 설계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걸 보면, 성경을 떠나 과학과 타협을 시도하려는 신학적 노력은 언젠가 또다시 그 이론의 수정을 요구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들에 대하여 성경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하여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우리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창조과학은 교회의 여러 지체 중에서 주일학교 및 성인 교육부와 연결 되어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거나, 선교 및 전도부와 협조하여 바울이 이방인 전도에 창조의 메시지를 들고 복음을 전하였던 것처럼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기초가 들어갈 마음의 밭을 준비케 하는데 사용되어 질 수 있다.

성경적 이면서도 동시에 과학적인 내용을 다루어야 함으로 다분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역이기는 하나, 교회 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본인이 갖고 있는 달란트에 따라 여러 가지 영역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오늘날 교회는 안팎으로 여러 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교회 내에 침투한 세속주의의 영향,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New Age의 물결, 세상문화에 대안으로 내놓을 기독교 문화의 부재, 그리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첨단 과학기술의 개발과 그에 따른 교회적 입장의 요구 등등.

신학교 3~4년 동안의 교육만으로 목회자들이 이 모든 문제에 답을 명쾌히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선교 사역에 전문인 평신도 사역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교회의 총체적 방향과 목표는 성경적인 시각에 입각해서 여전히 목회자 중심으로 세워져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역의 내용은 각 분야의 전문 사역자를 중심으로 상호간의 긴밀한 협력 아래에 진행되지 않으면,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 오히려 더욱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의 갈증을 채워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창조과학 사역은 그 한 부분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창조과학 사역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출처 - 인천기독교신문, 2009. 10. 18.(225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753

참고 : 6107|4487|6480|6639|3782|4241|6211|6356|6169|6473|6096|5083|5274|6461|6075|6634|5796|6292|6476|2647|6174|5718|6180|905|6165|6618|6631|6633|6636|6566|6638|6468|6449|6582|6553

Frank Sherwin
2009-04-16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없다. 

(The Dirty Little Secret Is Out 

: Religious Faith and Evolution Are Incompatible)


      최근 한 책의 리뷰 글에서, 시카고 대학의 생태학 및 진화론 교수인 제리 코인(Jerry Coyne)은, 단순한 생명체로부터 복잡한 생명체가 생겨났다는 세속적인 대진화(macroevolution)의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Christian faith)과 조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이것을 말해왔었다 : 진화론은 단지 과학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반대하기 위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믿음 체계이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이...”라는 성경 기록과, ”태초에 수소가...”라는 세속적 과학 사이에 뚜렷한 대조로부터 명백해 보인다.[1]

코인 박사는 합법적인 과학의 영역으로부터 신실한 신자들을 배제하는데 있어서 매우 포괄적이었다 :

나는 모든 신앙이 과학과 세속적 이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인(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와 다른 수많은 신앙들을 가지고 있는 90%의 미국인)들은 양립할 수 없는 범주에 빠져있다.[2]

신앙과 과학(그는 과학을 진화론과 관련시키고 있다) 사이의 부조화(disharmony)는 과학 사회에서 하나의 숨기고 싶은 비밀이다. 과학과 종교가 완벽하게 조화된다고 선언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전문가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일이라고 코인은 말했다. 왜 성경적 세계관에 그렇게도 반대하는 세속적 과학자들이 기독교 신앙과 진화론이 양립할 수 있는 척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었다 :

결국, 우리는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우리의 학생들에게 창조론 대신에 진정한 과학(진화론)이 가르쳐지고 있다. 창조론과의 전투에 있어서 자유주의적 종교인들은 우리의 중요한 동맹군이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 지를 선언함으로서 그들을 멀리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전략적 측면에서, 이것이 국립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와 같은 그룹들이 종교와 과학은 대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증거(진화론을 믿는 종교적 과학자들의 존재)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신앙심 부족을 큰소리로 떠들어댈 때 믿겨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2]

이처럼, 코인은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로서 믿지 않고 있는 종교인들을 동맹군으로서 간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사용하는 것이 창조론과의 전투에서 효과적인 전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성경을 쓰여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원시적인 유대-그리스도교 감각이라고 불렀다. 신앙 문제에 대한 그의 공격적인 적대감은 기원에 관한 주제(창조인가 진화인가)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확실히 과학계 내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부족한 신앙을 솔직히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창조과학자들 같은)들은 과학적 증거들을 따르며, 그 증거가 창조주를 가리키고 있을 때에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인다. 가령 한 노벨상 수상자는 ”우주의 법칙에는 어느 정도 지성(intelligence)이 개입되어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3]

정말로, 코인과 같은 진화생물학자였던 고 해리슨 매튜(L. Harrison Matthew)까지도 이렇게 말했었다 :

진화론은 생물학의 척추(backbone)이다. 따라서 생물학(biology)은 입증되지 않은 한 이론 위에 기초하는 과학이라는 매우 특이한 입장에 처해있다. 그러면 그것은 과학인가, 신앙인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창조론에 대한 믿음과 정확하게 같은 종류의 것이다. 이 둘 모두 오늘날까지도 자신이 진실이라고(또는 아니라고) 믿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고 믿는 개념이다.[4] 

비록 100%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또는 안 계신다는 경험적 증거들을 확보할 수는 없을지라도, 창조론을 찬성하는 증거들은 확실히 합리적인 선을 넘어 매우 우세하다.[5] 진정한 실용 과학에서의 발견들은 성경적 계시와 놀랍도록 일치한다. 하나님 말씀의 기초 위에 섰을 때 과학의 놀라운 발견들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 진화과학자에 의해서, 마침내 진화론은 기독교 신앙과 대립된다는 진실이 공개적으로 인정되었다는 뉴스를 널리 알리라. 대진화는 과학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신앙과는 정반대에 있는 믿음 체계인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H. 1995. In the Beginning, Hydrogen. Acts & Facts. 24 (3).
[2] Coyne, J. A. Seeing and BelievingThe New Republic. Posted on tnr.com February 4, 2009.
[3] Begley, S. Science Finds GodNewsweek, July 20, 1998, 48.
[4] Matthews, L. H. 1971. Introduction. In Darwin, C. Origin of Species. London: J.M. Dent & Sons, Ltd., ix.
[5] Gish, D. 1981. Summary of Scientific Evidence for Creation(Part I & II). Acts & Facts. 10 (5).

 

*참조 1 : 최근 언론에 보도된 유신진화론적 글들. 

모호해진 종교와 과학…기독교는 어디에 서야하나 (2009. 4. 2. 베리타스)

http://www.theveritas.co.kr/contents/article/sub.html?no=2237

박종화 목사 '창조-진화, 대립관계 아냐” (2009. 3. 19.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today.co.kr/view.htm?id=201398

템플턴재단, 유신론적 진화론 보급에 동참 (2009. 3. 18.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4933§ion=sc73§ion2=

하나님과 진화론 함께 믿습니다 : 진화론 주일 지키는 교회 늘어 (2009. 2. 11. 크리스찬투데이)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4683§ion=section2

성경의 천지창조, 진화론의 빅뱅은 공존할 수 있다 (2009. 2. 5.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3481648.html?ctg=1701

신은 어떤 존재인가 : '창조냐 진화냐' 넘어 '종교도 진화의 산물' 주장 (2009. 2. 2.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1/2009020100808.html


*참조 2 : Theistic evolution—a greater fairytale for mankin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24-27.pdf

10 dangers of theistic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749/

Biblical problems for theistic evolution and progressive crea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497/

'A child may see the folly of i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427/

Is it possible to be a Christian and an evolution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304/

Theistic evolution: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795/

Did the Creator use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306/



출처 : ICR, 2009. 3. 20.

URL: http://www.icr.org/article/4571/

번역 : 미디어위원회 



최우성
2009-01-23

창조과학자와 기독교과학자 

: 양승훈 교수의 “두 근본주의의 충돌”을 읽고


”... 너는 그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은 반항하는 족속이다. 듣든지 말든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것만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듣든지 말든지 오직 너는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겔 2:4-7) 

에스겔 2장 4-7절의 말씀은 마치 현재 기독교계에 있는 과학자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하라는 명령처럼 들려온다.

양승훈 교수의 블로그에 있는 최근 칼럼(번호 1380) ”두 근본주의의 충돌”에서(아래 참조) 양 교수는 창조과학자를 일컬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어, 지구는 약 6 천년 되었으며, 1년간의 노아홍수가 모든 지층을 만들었다고 믿을 뿐 아니라, 전문적 깊이가 없어 때로는 증명된 과학적 사실들도 부정하는 편협한 사람들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다시 서술되어야 한다. 창조과학자란 젊은 지구와 노아홍수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인 과학자들(Bible Believing Christian Scientists)”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지구와 노아홍수를 믿는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지구의 자전, 태양계, 은하계, 열역학법칙들, 기체의 행동 법칙들, 전기-자기의 법칙들, 유전 법칙들, 만유인력의 법칙, 상대성 이론 등을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이런 물리학, 생물학 등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수많은 과학법칙들의 거의 전부는 성경을 성경대로 믿었던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보일, 켈빈, 패러데이, 멘델, 파스퇴르, 맥스웰 같은, 양 교수가 소위 창조과학자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다시 말해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었던 사람들(Bible Believing Christians)”에 의해서 발견된 것들이었다.

양승훈 교수가 창조과학자들을 자연과학의 법칙들도 무시하는 비전문가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현재 살아있는 창조과학자들 중에도 현재 살아있는 창조과학자들 중에도 노벨상을 받았던 사람들과 공동 연구 과제들을 수행했던 듀안 기쉬 박사나, 판구조론 컴퓨터 모델링으로 ScienceNature 지에 최고의 논문을 실었던 지질학자인 바움가드너 박사 같은 사람들이 자타가 공인하는 창조과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자들 중에 전문가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외에도 멘델처럼 훌륭한 연구 업적을 냈지만 세상이 아직 알아주지 못해 묻혀 있는 진주와 같은 창조과학자들이 많이 있다. 양 교수는 이들을 그렇게 세상 기준으로 폄하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천동설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시에도 가장 유능하고 가장 명석한 사람들 모두 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가 돈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돌지 않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지나간 역사는 하나님도 바꿀 리 없다.

창조과학자들이 세상과학자들과 아주 다른 주장을 하는 부분이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자연과학의 범위를 벗어난 과거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 성경의 역사와 다른 설명은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창세기 1장 ~11장의 역사로서 특별히 세상과학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6일간의 창조와 전 지구적인 파괴를 야기한 노아홍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보지 않은 6일간의 우주 창조는 믿음의 결정판이고, 노아홍수는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행하신 전 지구적인 증거들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노아홍수의 바른 이해가 없으면 캄브리아기의 화석 대폭발, 넓은 고생대 지층에 비해 아주 협소한 중생대와 신생대 지층 규모, 지층과 지층 사이의 시간 간격 없음, 지층의 역전 현상, 화석 순서의 뒤바뀜, 빙하기나 공룡에 대한 설명, 인종, 언어, 현재 지형 등 이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증거들을 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이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그런 증거들이 훨씬 더 쉽게 이해된다. 또한 성경을 벗어나서는, 이들 증거들에 대한 해석에 더 많은 불확실한 가정들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성경은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성경의 주장을 사실로 믿고 보면, 어느 모로 보아도 타당한 설명을 주고 있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은 사실이든지, 거짓이든지 둘 중 하나이지, 명석한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될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창조과학자들은 처음부터 항상 계셨던 그 분의 증언을 믿는 것이고, 그 증언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증거적임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의 기록을 믿고 그 사실이 기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그렇다면 그 과정은 어떤 과정이었는지, 그 증거가 남아 있는지, 하나님의 디자인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등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대로 사실이며, 피조물에 보이는 창조자의 능력과 속성을 보여주어, 성경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인 것을 드러내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는 모든 이론을 파하고 그 분 앞에 무릎 꿇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는 과학자들의 믿음을 살펴보자. 최근 한국의 교계에서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있는 양승훈 교수나 시카고 코스타(KOSTA)에서 과학에 대한 강의를 했던 우종학 박사, 그리고 해외에서는 점진적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있는 천문학 박사인 휴 로스 등이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는 과학자들의 대표적 예이다.

(1) 이들은 성경이 암시조차도 하고 있지 않는 45억 년의 오랜 지구/ 150억 년의 오랜 우주(빅뱅)를 믿는다. 많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이들은 성경에서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화가 사실일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는 고생대-중생대-신생대로 이어지는 약 6억년의 지구 생물 역사를 믿는다. 역시 세상의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들은, 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의 확신할 수 없고 결점이 많은 결론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증언인 창세기 1장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다른 분야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가진 믿음이 일관성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3) 이들은 진화는 사실이 아니라고 믿기도 하고 (양승훈 교수: 진화론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고생대-중생대-신생대를 사실로 믿으면서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믿음이다), 상관없다고 믿기도 한다(우종학 박사, 휴 로스). 세상 대부분의 생물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이 진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4) 이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세상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5) 이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고 믿는다. 세속 생물학자들이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는다. 이 세상의 과학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7) 이들은 천국과 지옥도 믿는다. 이 세상 대부분의 전문가와 유명 인사들이 천국과 지옥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믿음의 행태를 분석해 보면 이 과학자들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을 믿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도, 천국의 존재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도, 부활도, 각종 기적들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상을 지식인들은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이라 부른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과학 즉 자연과학이 아닌 과학을 거부함으로써 세상에서 받게 될 비난을 피하면서, 과학자로서의 세상 영광도 취하고, 신앙인으로서도 대우 받기 위해, 그런 것들을 사실로 믿는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 그런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믿음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이 과학자들은 성경이 과학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매 년 바로잡아야 하는 과학책과는 달리 바로 잡을 필요가 전혀 없는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 기록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면에서도 전혀 하자가 있을 수 없다.

이들의 생각에 독자의 마음이 동조되었다면 잠잠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더욱이 단순히 안 믿어진다는 것과 성경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석해 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무능하시다고, 혹은 거짓말 하셨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150억 년, 46억 년, 혹은 6억 년이라고 표현할 방법을 몰라 6일이라고 얼버무리셨다고 혹은 거짓말하셨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창조과학자들도 성경의 모든 부분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역사도 있고, 시도 있고, 사실 기술도 있고, 비유도 있어, 문맥을 이해하고 읽어야 할 경우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과거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밖에 어떤 다른 해석이 있을까? 창세기 1장을 자기 지식에 맞추어 해석해서 읽는다면 나머지 49 장과 다른 65 권의 성경은 어떻게 읽게 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이들 개인의 믿음은 자신들에게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파급된 영향력 즉 성경에 대한 불신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서양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고, 성경 사상을 기반으로 건국 되었던 미국의 오늘날의 세태가 확실하게 그 불신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성경에서 벗어난 사상은 개인 구원을 어렵게 하고, 언제나 문화의 타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엄청난 죄의 물꼬를 그들이 터주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이 과학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가 아닌 다른 역사를 주장하려면 얼마든지 세상 학계에 나가서 자기가 연구한 과학 이론을 발표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세상 지식을 통해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 끝에 돌고 돌아 사실을 발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결국에 ‘사실’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이미 말해 놓은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또 십 수년 전에 쓴 책이나 최근에 쓴 양 교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소감은 그가 확신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좋게 말해서) 항상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다. 이것도 일리가 있고 저것도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진화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경적 창조도 아니다, 하나님 편도 아니고 세상편도 아니다. 그에게는 확실한 것이 없고 늘 애매모호하다. 그의 글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가 하나님도 판단하고 세상도 판단한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고자 했던 우리의 원죄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명령하고 있고 누구에게서 배웠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딤후 3:14).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세상 아비 두 선생이 있다고 말씀하셨다(요 8:38). 그러므로 확실한 것도 아닌 세상의 것을 교회에 들고 들어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의 권위를 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양 교수를 비롯한 이와 비슷한 자세를 취하는 과학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무서운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증명되지도 않고, 자기도 확신하지 못하는 생각을 가지고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암암리에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게 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무서운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란 무엇인가? 사실이란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상관이 없고, 좋아하든지 싫어하든 상관이 없고,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무서운 것이다. 창조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더하거나 빼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더해지고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듯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지는 편이 낫고, 죄인은 하나님 계신 곳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마 18:6).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6). 이것은 어떤 특정인을 향한 독설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결과는 무섭다. 이런 무서운 사실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참조 1 : [양승훈 칼럼] 두 근본주의의 충돌 (크리스천투데이 2009. 1. 20)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0409

‘창조와 격변’에 대한 한국창조과학회의 입장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3612
 

*참조 2 : '우리가 믿는 것은 창조과학 아닌 '하나님의 창조' 

양승훈 교수, <창조에서 홍수까지> 출간 기념 북 콘서트 (2014. 7. 28. 기독교포털뉴스)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31
'건강한 신학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지 않은 창조론 운동은 심각한 문제 야기' (2014. 7. 28. 기독일보)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건강한-신학적-기초-위에-세워져-있지-않은-창조론-운동은-심각한-문제-야기-43173.html

*참조 3 : 성경 성(性)적 해석 ‘하나되는 기쁨’ 논란 재점화 : 저자 양승훈 교수와 추천자 정동섭 목사 등 기자회견 (2010. 1. 21.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362

하나되는 기쁨」 실저자는 양승훈씨 (2010. 1. 19. 기독교신문)
http://www.gidoknews.kr/news/sub011.html?mode=read&read_no=8205&now_page=1

교회연합신문 「하나되는 기쁨」 관련 입장 발표 : 강춘오'구원파 동조 등 근거 없는 거짓말”
목회자 '복음주의적 입장이 예배를 섹스로 보는 것인가” (2010. 1. 23. 기독일보)
http://cdntv.co.kr/s02_1.htm?mode=read&read_no=12847&now_page=2&menu=1

'성경을 性경 오도한 ‘하나되는 기쁨', 분명 이단서적” : 9개 평신도 단체들, 기자회견 열고 저자 등 강력 규탄 (2010. 2. 9.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657

한국교회개혁연대 출범, ‘하나되는 기쁨’ 규탄 나서 : 중진 목회자들 중심… '성경 색욕거리로 전락시킨 것 회개해야” (2010. 2. 25.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879

쾌락 통해 창조주를 만난다는 이교적 저서 : ‘하나되는 기쁨’ 실태 고발 세미나… '관계자 퇴출하라” (2010. 3. 13.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7451

한국교회, <하나 되는 기쁨>의 성(性)사역 중단시켜야 (2012. 8. 24.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article.html?no=62593

제2의 ‘하나되는 논란’ : 교계, ‘헌신과 광기’ 간담회 반발 (2012. 7. 27. 새한일보)
http://www.sh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907

<하나 되는 기쁨> 저자 양승훈교수, 신간 출간 기념회 논란 일어 :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하려다 교계 인사들 강력 반발 장소 변경 (2012. 8. 2.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article.html?no=6242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516

참고 : 3689|3640|4345|3589|2638|2016|4375|4380|3812|4440|4198|3931|2797|5923|5542|5381|4487|4869|4666|4665|4664|5419|5429|5468|5517|5527|5556|5675|5717|5721|5737|5834|5841|5897|5898|5951|5955|5958|5957|5973|6006|6030|6049|6076|6097|6104|6136|6170|6175|6215|6222|6223|6225|6228|6240|6254|6255|6311|6316|6330|6413|6415|6417|6422|6431|6453|6462|6469|6485|6507|6508|6523|6524|6531|6535|6542|6543|6545|6547|6551|6552|6558|6559|6563|6566|6638|6645|6688|6694|6723|905|738|740|741|6102|6762|6766|6769|6774


정계헌
2007-05-26

창조주 찬양 주일을 기념하며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5월 마지막 주는 창조주 찬양 주일입니다. 우리 한국창조과학회에서는 매년 이 기간을 창조주를 찬양하는 주일로 정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높이고 경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과 들이 엄청난 생명력으로 다시 푸르고, 그 사이 사이를 넘나들며 춤추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나비와 새들의 몸짓은 그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고 경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성경의 그 많은 말씀 중에 창조주를 기억하는 일과 그가 하신 일을 기억하는 일만큼 귀한 일이 없기에 모든 말씀 중 첫 번째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은 다른 어느 생명체보다 더 높이 창조주를 찬양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에 사로잡혀 창조주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에 의한 우주 만물과 인간의 창조 사실을 단지 기독교의 신화 또는 설화 정도로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척하고 있으며, 진화론자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화론적 신념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일, 그것은 먼저 깨달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성경에 수차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웠다는 뜻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으며, 모순이나 갈등이 없는 완벽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은 고등, 하등의 진화론적 개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름대로 완벽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생태계에서 더없이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진정 과학의 눈으로 생명현상을 본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 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은 채 진화의 산물로 자처하는 모습은 너무도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늦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전도서12:1,2).

창조주를 기억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할 우리의 본분과 세상 만물을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관리할 의무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매년 맞이하는 이 창조주 찬양주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더욱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고, 우리 인간 스스로는 정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는 귀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14

참고 :

이은일
2007-04-21

'과학의 날' 특별기고. 과학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이 지구상에 사람을 제외한 어떤 생명체도 과학 지식을 축적, 확대해 가고 있지 않다. 사람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지혜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질서를 연구함으로써, 그 질서를 규명하고, 그 질서를 이용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21세기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발전된 과학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발전된 과학지식과 기술로 인해 인류는 우주에 대하여, 생명에 대하여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지식이 늘어날수록 더 확실해지는 것은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 우주가 확장되고 있다는 발견을 하였을 때, 우주는 빅뱅이론에 의해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더 멀리 있는 우주를 관찰할수록 빅뱅이론과는 달리 ‘초기 은하’모습이 우리가 속한 은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우주의 구조가 너무나 균질하고, 우주 초기의 질서도가 매우 높으며, 우주와 태양계가 지구의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찰들은 우주가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주의 거대한 구조, 은하계를 붙들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중력의 힘 등은 발전된 과학이론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이 빅뱅이론에 의해 우주 생성의 비밀이 풀린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우주를 관찰할수록 우주는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 대한 연구와 비슷하게 생명에 대한 연구도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다. 생명과학자들은 생명정보의 전달물질인 인간의 전체 DNA를 분석하게 됨에 따라 생명의 신비를 모두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생명과학이 발전됨에 따라 DNA분석만으로는 알 수 없으며, DNA보다 3배 이상 많은 RNA, RNA보다 10배 이상 많은 단백질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있기 때문에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생명과학 연구에 의해 많은 진보가 이뤄지고 있고,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생명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신묘막측’한 존재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로마서 1장 20절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 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처럼 교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과학의 진보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가 없음을 밝히고 있지만,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 ‘물질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연주의’ 등의 세계관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고, 또한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과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야 하고, 또한 이웃을 섬기는 일도 잘 해야 할 의무와 특권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과학이 무엇인지 바로 알 때, 우리 모두는 과학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과학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과학으로 회복시키는 일군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기도와 헌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군들이 많이 나오게 하소서. 아멘.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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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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