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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Russell M. Grigg
2일전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던 악마의 전략 

: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의심하게 한다.

(Strategy of the Devil)


      창세기 3장에는 사탄(Satan)이 아담과 하와를 처음으로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1] 사탄의 전략은 성공했고, 우리의 첫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었다. 오늘날도 사탄은 계속하여 같은 전술을 사용하여 같은 결과, 즉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거역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전술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한다.

성경에 기록된 첫 유혹은 하와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의 진실성을 의심한 것이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를, 그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KJV: every, NIV: any)[2]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창세기 3:1) 라고 묻고 있다. 

이것에 대한 하와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었어야 한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기 2:16-17)  

그러나 이 말씀 대신에 하와는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2–3) 라고 대답하고 있다.

먼저 사탄은 질문에서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라고 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왜곡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분명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사탄은 적당하게 모호하게 했다 (‘모든 나무‘).

그리고 하와는 최소한 세 번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인용하여,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을 희석하고 의미를 추가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

1. 하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잘못 인용함으로서 그녀의 특권을 과소평가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이 모든 나무의 (하나만 제외하고) 실과를 임의로 먹을 수 있다고 하셨지만, 하와는 이것을 축소시켜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했다.  

2.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을 잘못 인용함으로서 제한사항을 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만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었지만, 그녀는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에 포함시켰다.

3. 하와는 하나님의 벌을 잘못 인용함으로서 그녀의 의무를 과소평가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녀는 이것을 바꾸어 ”죽을까 하노라” 라고 했다.[4]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박사는 여기에 관하여 해설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추가하거나 (현대의 이단들이 하듯이), 삭제하여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이 하듯이) 변조하는 것은 항상 위험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항상 정확하게 의도하시는 바를 말씀하실 수 있다 (신명기 4:2; 잠언 30:5; 요한계시록 22:18–19). 그리고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거나 (잠언 30:6), 영생에 참여함을 잃을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 22:19). [5]

 

2.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도록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하와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뿌린 후, 사탄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곧 바로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4). 이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고, 그 결과로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했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도록 한다.

죄를 범하면 결과가 따른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경험에서만 배우는 것인데, 하와는 이 분야에서 아무런 경험이 없었다. 그녀가 분명히 알았던 것은 하나님의 심판(불순종의 결과는 죽음이라는)에 대한 엄중한 사전경고였다. 사탄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5) 라고 유혹하자, 심판에 관한 어떤 생각도 그녀의 마음에서 금방 사라졌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은 사탄 자신의 추락을(이사야 14:13–14) 초래했던 것과 같은 욕망이었고[6], 이제 사탄은 하와를 저항할 수 없는 동일한 욕망에 감염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사탄이 제안한 이득은 거짓이었다. 앞으로 그녀(그리고 아담)는 선을 잃어버림으로서 선을 알게 되고,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악을 알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선을 일관되게 행할 능력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고, 또한 그들은 악을 삼갈 능력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처럼 되기는커녕, 지금부터 그들은 사탄의 노예가 될 것이었다. 그들의 눈은 뛰어난 지혜로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수치와 두려움으로 표현되는 죄책감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4. 하나님의 성품을 비방하도록 한다.

하와가 과일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사탄의 제언은 하나님께서 하와가 얻게 될 유익을 하나님이 알고 계셨다는 문장과 함께 제시되고 있다.(창세기 3:5). 따라서 사탄의 말은 하나님께서 불공평하신 것처럼, 그리고 하와가 소유해야 하고 하와에게 크게 유익이 되는 무엇인가를 제한하시는 것처럼,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치사하게도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그녀가 하나님을 의존하도록 한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은근히 비방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의 마음에 일단 하나님을 원망하는 생각이 들어오자, 이제 하나님을 완전히 거역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

1. 그녀가 보기에 나무는 ‘먹음직도 하고’ (즉, 그녀의 육체적 식욕을 자극), ‘보암직도 하고’ (즉, 그녀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 ‘지혜롭게도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즉, 그녀의 지성을 자극) 나무가 되었다. [6]  

2. 그녀는 과일을 따먹었는데, 그것은 그녀 자신이 취한 행동과 행위였다. 

3. 그녀는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었다 (창세기 3:6). 그녀 자신이 죄를 범하고서는, 그녀의 남편도 동일한 죄를 범하기를 바랐고, 아담은 자기의 뜻으로 자진해서 그렇게 했다. 

이렇게 금단의 과일을 바라보았고, 탐하게 되었고, 따먹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주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절되었고, 하나님의 뜻은 막혔으며, 하나님의 방법은 거부되어졌다.

모든 죄의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보려는 마음의 욕망이다. 이 결과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 최종적인 행동은 그들의 본심과 마음에서 이미 범하고 있었던 죄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결론

지난 150여년 동안 다윈주의(Darwinism)의 유행과 그에 따라 많은 교회지도자들에 의한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과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의 수용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부정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영향으로 인해 서양 사회는 하나님의 심판(judgment)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존재조차 믿지 않게 되었다. 하와에게 그렇게도 잘 통했던 사탄의 전략은 현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효과적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and footnotes

1. Satan appropriated and used the body of a specific serpent on this occasion to carry out his subtle purpose of tempting Eve to sin. See the author’s article ‘Who was the Serpent?’, Creation magazine, Vol. 13 No. 4, 1991, pp. 36–38.
2. Hebrew ‘any’. The question is a little ambiguous and could mean either, ‘Has God indeed enjoined that you should not dare to touch any tree, or, ‘Have you not then the liberty granted you of eating promiscuously from whatever tree you please?’—John Calvin, Genesis, Banner of Truth Trust, 1965, p. 148.
3. Compare the modern theistic-evolutionary jibe, ‘Did God really say, 'Six days”?’
4. Adapted from WH. Griffith Thomas, Genesis, Eerdmans, Michigan, 1946, p. 48.
5. Dr Henry M. Morris, The Genesis Record, Master Books, El Cajon, California, 1976, p. 111,
6. For a discussion of the meaning of these verses see Ref. 1, p. 38, note 5.
7. It is possible also that Eve thought that if they ate and became like God, they would be beyond the reach of His vengeance. See Ref 2, p. 150, editor’s note.
8. Many commentators have noted that this account of Eve’s coveting the forbidden fruit is perfectly described in 1 John 2:16: ‘For all that is in the world, the lust of the flesh, and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 is not of the Father, but is of the world.’ The (unsuccessful) three temptations of Christ by Satan, described in Luke 4:1–12, followed a similar pattern.
9. The Apostle Paul wrote, concerning the strategy of Satan in the world, that ‘… we are not ignorant of his devices’ (2 Corinthians 2:11b). However, he also wrote to the same church at Corinth, ‘There hath no temptation taken you but such as is common to man: but God is faithful, who will with the temptation also make a way to escape, that ye may be able to bear it’ (1 Corinthians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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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6/i3/devil.asp ,

출처 - Creation 16(3):48–49, June 1994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628

참고 : 3242|3241|3244|3164|2330|3055|2378|2638|2710

미디어위원회
2021-06-29

고대근동의 세계관으로 창세기를 썼을까?

한윤봉, 전북대학교 석좌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한국창조과학회 전 회장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역사서다. 1장에서 11장까지는 인류초기 역사, 즉 창조, 죄로 인한 타락, 노아홍수 심판, 바벨탑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2장부터 50장까지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장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고대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가가 역사를 쓸 때, 역사적 사실들을 비유나 상징으로 쓰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다. 그런데 유신진화론(또는 진화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서인 창세기를 기록된 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사람인 모세가 ‘고대 근동지방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세기를 썼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고대 근동지방(오늘날의 중동지역)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경에 수메르 문명의 등장으로 시작되어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고대 근동을 정복한 기원전 6세기까지로 본다. 신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고대근동의 우주관은 ‘하늘, 땅, 지하세계’로 특징된다. 고대근동 사람들은 신들이 존재하는 상층 하늘(upper heaven)과 그 밑에 해와 달과 별들(즉 천체)이 있는 하층 하늘(lower heaven)로 구분하였다. 그들은 다신론적 우주관을 갖고 있었다. 땅은 지면이 편평하고 반구형 천장을 가진 모양이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 우주의 중심(지구중심설)이라고 믿었다. 땅은 바다 위에 기둥들로 받쳐져있으며, 땅 밑에는 죽은 자들이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지옥과 같은 지하세계(스올, sheol)가 있다고 믿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태양을 비롯한 천체들이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는 천동설(즉, 지구중심설)은 고대근동의 우주관으로서 기원전 300년에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 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이어졌으며,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천동설이 체계화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로마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천문학자들이 가졌던 우주관이었으며,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었다.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세기를 기록했다면, 창세기에는 ‘땅이 편평하고 반구형 천장을 가진 지구와 천동설’을 묘사하는 내용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반면에,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축자영감’되어 창세기를 썼다면, 창세기 1장의 내용들은 현대 천문학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들과 모순되면 안 된다. 

고대근동의 우주관에 의한 기록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창조 둘째 날에 만들어진 ‘궁창(라키아)’을 하늘의 물을 떠받치고 있는 ‘단단한 반구형의 천장’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궁창(firmament)은 ‘넓게 펼쳐진 공간’을 의미할 뿐, 단단한 반구형 천장을 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늘(궁창)은 ‘넓게 펼쳐진 휘장이나 차일 또는 돔 형태의 천막’으로 종종 비교되는데(시 104:2, 사 40:22), 이는 고대 근동지방의 우주관과 다른 이해를 성경저자들이 가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맛소라 사본을 번역한 『쉬운 성경』에는 궁창이 ‘둥근 공간’으로 번역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둥근 공간’을 만드시고, 그 공간 아래의 물과 공간 위의 물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공간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이 날이 둘째 날이었습니다”(창 1:7-8)

또한 이사야 40장 22절에서 개역개정 성경에는 “땅 위 궁창”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NIV, NASB, KJV)에는 ‘원형의 땅 위에(above the circle of the earth)’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창조된 지구가 원형의 둘레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반구형이 아니라 둥근 구형체임을 말한다.

또한 욥기 26장 7절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에서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놀랍게도 성경은 ‘지구는 둥근 둘레를 가진 구형체로서 우주 공간에 떠 있도록 창조’되었음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외에 편평한 지구를 뜻한다고 잘못 인용되는 요한계시록 7장 1절의 ‘땅 네 모퉁이’는 동서남북을, ‘사방의 바람’은 네 방향(즉, 동서남북)에서 부는 바람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으로서, 결코 지구가 편평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한편, 모세가 고대근동의 세계관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축자영감’되어 창세기를 썼다면, 창세기 1장의 내용들은 현대 과학이 밝혀낸 과학적 사실들과 일치해야 한다. 현대 천문학 지식은 ‘둥근 지구가 우주공간에 떠있으며, 자전하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낮과 밤이 바뀌고, 달(月)이 가고, 사계절이 생기며, 해(年)가 바뀐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이런 물리적 현상들을 고대근동의 세속적 우주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자전운동’을 하는 둥근모양의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면서 공전하도록 창조되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창조 넷째 날에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창조된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 공간에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는데(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천체를 창조하신 목적이 창세기 1장 14절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천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천체 운행에 질서가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물리적 현상들로서,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질서를 가지고 운행하도록 창조 넷째 날에 우주법칙들을 정하셨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는 것은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즉, 지동설)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천동설을 지지하거나 암시하는 말씀이 없다.

창세기 1장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에 따라,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으로 피조세계가  창조되었음이 6하 원칙에 따라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놀랍게도 현대 천문학 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과학적으로 틀린 고대근동의 우주관과는 전혀 다른 내용, 즉 현대 천문학에서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과 일치하는 내용을 간결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기록하였다. 이는 성령님의 감동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과학책은 아니지만, 진화론을 믿는 주류과학계의 주장으로 진리가 부정되는 책이 아니다. 나아가 고대근동의 우주관을 지지하는 책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는 고대근동의 세속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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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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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파워, 2021. 6. 18


미디어위원회
2021-06-23

하나님의 시간으로 창조했을까?

한윤봉, 전북대학교 석좌연구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한국창조과학회 전 회장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시간이 시작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초차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간’은 분명 ‘사람의 시간’과 다를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보기에는 천년 이상의 긴 시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창조주간의 하루를 하나님의 시간으로 해석해야 할까?

모세 시대에 히브리 사람들은 ‘욤(YOM)’을 ‘24시간 하루’로 해석하여 안식일 계명을 지켰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을 믿는 신학자들과 지성인들은 ‘긴 시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고, 주류과학계가 주장하는 46억 년 지구 나이와 138억 년 우주 나이에 대한 믿음과 아래 인용한 성경말씀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8). 


그런데, 이 말씀은 ‘천년이 곧 하루다“란 뜻이 아니다. 말씀의 앞(3-7절)과 뒤(9-10절)의 문맥을 살펴보면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말세에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서 늦어지고 있는 마지막 심판의 날과 예수님의 강림을 조롱하고 복음을 왜곡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으로써, 주의 날(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므로 깨어 있어야 함을 베드로가 권면하면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유신진화론자들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24시간 하루는 천년 이상의 긴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표현은 모세의 기도문인 시편 90편에도 나온다. “주의 목전(目前)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편 90:4). 모세는 천년이 어제 같을 뿐만 아니라, ‘밤의 한 순간’ 같다고 표현했다. NIV 영어성경에서도 ‘막 지나간 하루와 같다(like a day that has just gone by)’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문자적으로 ‘천년=하루’라는 뜻이 아니라 비유적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으로 ‘천년이 곧 하루’라는 뜻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셨고, 시공을 초월한 초차원적인 존재로서 시간에 대하여 자유롭고 시간의 제약을 받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의 시간 길이가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기 때문에 욤을 ‘24시간 하루’가 아닌 비유적 하루로 해석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즉, “욤이 하나님의 시간이라면, 히브리 사람들은 안식일 계명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점이다. 이런 질문은 사람은 하나님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시간으로 또는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창조하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욤‘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해석하여 ‘천년 이상의 긴 시간’이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사람들은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6천 년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일만 해야 하고, 다음 천년 동안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안식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심각한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6천 년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 주간의 하루는 ‘24시간 하루‘여야 함이 논리적으로 명확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도록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하나님은 6시간 만에라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생활 패턴으로 살 때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건강한 생활 패턴은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날은 쉬면서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 때 인간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즉, 하나님은 7일 주기의 생체리듬을 갖도록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 후에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써 건강한 삶의 패턴을 직접 보여주셨다. 이는 창조의 하루는 하나님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임을 확증시켜 준다.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목적은 ‘인간 창조’이며, 피조세계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다. 따라서 창조주간의 하루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게 맞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하루 시간 길이에 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란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지구자전을 기준으로 하는 ‘24시간 하루’를 명확하게 정하셨다. 하루에 대한 성경적 정의는 과학적 정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창조의 하루를 하나님의 시간이 아닌, 일상의 ‘24시간 하루’로 해석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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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파워, 2021. 6. 4 

Jonathan Sarfati
2021-02-10

창세기는 역사다! (Genesis is history!)


      우리의 사역은 성경의 첫 절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적 창조론(‘6일 창조, 젊은 지구’)에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도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창세기 1~11장을 시, 혹은 비유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우리를 비난한다. 우리는 성경을 과학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참조: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과학책이라고 주장하는가?)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과학교과서는 수년만 지나도 수정해야 되지만,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수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경이 실제로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를 기록했던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1]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창세기가 어떤 종류의 책인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2] 이를 위해 우리는 성경을 성경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성경의 다른 저자들은 창세기를 역사로 취급하고 있다.

이미 여러 기사에서 밝혔듯이, 성경의 나머지 책들은 창세기를 실제 역사로 취급하고 있다.[3]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성경의 다른 저자들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시간 틀[4], 심지어 사건의 순서까지도 단순히 문학적 혹은 신학적 장치가 아닌, 실제적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다.[5] 그리고 역사적 실제성은 믿음과 도덕성에 대한 엄격한 가르침의 기본이 된다.[6] 더욱이 신약의 저자들은 자기의 독자들인 초대교회의 새로운 회심자들이 창세기에 관한 상세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7]
 

성경적 역사는 어떤 식으로 보일 것인가?

창세기가 역사(history)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토론을 목적으로, 창세기가 역사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식일 것이 예상되겠는가? 논쟁의 여지없이 역사적인 책이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출애굽기, 여호수아, 사사기 등과 같은 스타일로부터 답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히브리어 문법의 전문가들은 구약에 있어서 역사를 다루는 이야기는 매우 독특한 양식의 동사를 갖고 있다고 입증한 바 있다. 그것들은 qatal(완료시제)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동사로 시작하고, 결과를 나타내는 waw(vav, ו), 혹은 wayyiqtols 라고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동사가 이어진다.[8, 9] 이런 동사 형태는 구약의 역사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을 창세기 1장에 적용해 보라. 첫 번째 동사 bara(create, 창조하다, ברא)는 qatal인데, 뒤이어 나오며, 그 설명을 앞으로 전달해 가는 동사는 wayyiqtols이다. 즉, ‘and ... said(ויאמר, 그리고 말씀하셨다)’, ‘and there was( ויהי, 그래서 있었다)’, ‘and saw(וירא, 그리고 보았다)’ 등. 이와 같이 이런 것들은 역사적인 설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상이다.

더욱이, 창세기 1~11장은 아무런 형식의 변화 없이 창세기 12~50장으로 매끄럽게 넘어간다. 후자(창세기 12~50장)가 역사로 읽히도록 의도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원전 자체의 문법과 형식을 볼 때 전자(창세기 1~11장)도 의심의 여지없이 역사인 것이다.


시는 어떤 식으로 보일 것인가?

이제, 창세기가 시(poetry)라면 그것은 어떤 식이어야 하는가? 시편과 같은 히브리 시는 다른 형식을 갖는다.[10] 히브리 시의 결정적인 특성은 리듬이나 운율이 아니라, 대구법(parallelism)이다. 즉, 둘 혹은 그 이상의 연속적인 행에 들어있는 서술들이 어떤 식으론가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동의어 대구법(synonymous parallelism)에서는 하나의 서술이 있으면, 즉시로 그와 동일한 뜻의 다른 단어로 말해지는 다른 서술이 뒤따른다. 시편 19:1~2절이 이것을 잘 설명해 준다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반의어 대구법(antithetical parallelism)에서는, 첫 번째 서술에 뒤이어 그와 반대되는 서술이 뒤따라온다. 예를 들면, 잠언 28:1과 7절을 보면 :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통합적 혹은 구조적 대구법((synthetic or constructive parallelism)에서는 첫 번째 서술이 그 다음의 서술에 의해 확장된다. 예를 들면, 시편 24:3~4절을 보면 :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러나 창세기에는 사람(라멕)의 말을 인용한 창세기 4:23~24절 외에는 대구법이 없다. 이 부분은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과는 두드러진다. 창세기가 정말로 시라면, 전반적으로 대구법을 사용했을 것이다.[11] 사실상, 성경에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시로 찬양하는 부분이 있는데, 시편 104편이다. 그러므로 창조를 시적으로 표현한 기사가 어떤 식으로 보여질지를 보기 원한다면, 그곳을 보면 된다. 예를 들면, 시편 104:7,11절은 대구법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또한 히브리어 학자인 스티븐 보이드(Steven Boyd) 박사는 여러 가지 형태의 동사(완료시제 혹은 미완료시제)가 히브리 시에서는 빈번히 사용되었는데, 역사책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따라서 그가 동사들을 분석한 결과, 창세기 1:1~2:3절이 (시가 아니라) 이야기일 확률이 99.997%라고 발표했다.[12]
 

창세기와 다른 구절들과의 구조적(structural) 유사성

구조에 있어서 창세기 1장과 가장 유사한 구절 중의 하나가 민수기 7장이다. 둘 다 구조화된 기사이며, 둘 다 날(day)에 대한 히브리 단어(욤,  יוֹם , yôm)를 숫자로 포함하고 있다. 사실상 둘 다 숫자화 된 날들의 연속이다. 민수기 7장에는 12개의 연속적인 숫자화 된 날들이 있는데, 거기서 이스라엘의 12지파 각각의 대표들이 제단에 희생제물을 가지고 온다 :

첫째 날에 헌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
둘째 날에는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헌물을 드렸으니 ...
셋째 날에는 스불론 자손의 지휘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헌물을 드렸으니 ...
열두째 날에는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헌물을 드렸으니 ...

날-숫자의 대비는 오히려 민수기 7장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각 날을 셀 뿐 아니라, ”...던 날에(in the day that)”라는 문구로 그 장을 열고 닫음으로써, 전체 순서를 집합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것을 놓고 보통 길이의 날들임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으로부터, 창조주간을 요약하고 있는, 창세기 2:4절의 ”...던 날에(in the day that, כיום, bəyôm)”는[13] ”...할 때에(when)”에 대한 히브리 관용구인 것으로(많은 영어 번역본에서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날들이 보통 길이의 하루가 아니라는, 잘못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14]

더욱이, 민수기 7장이 신학적인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시적 구조일 뿐,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창세기 1장의 날들에 대해서도 그것을 부정할 문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둘 다 직설적인(straightforward) 역사인 것이다.
 

첫째, 둘째... 날들은 보통 길이의 날들이다.

창세기의 창조주간 기사에서 둘째 날에서부터 여섯째 날에 대한 숫자들은, 민수기의 구절들에서 숫자화 된 모든 날들처럼, 서수(ordinal number)의 히브리어 형태로 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15] 즉, 각 날들이 둘째(second, שני, shenî), 셋째(third, שלשי, shlishî), 넷째(fourth, רביעי, rveî‘yî), 다섯째(fifth, חמישי, chamîshî), 여섯째(sixth, ששי, shîshî) 등의 서수로 수식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주간의 첫째 날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창세기 1:5절에서 ”첫째 날”은 서수인 ”first day”(즉, יום ראשון, yôm ri’shon’이 아니고)라고 기록되어있지 않고, 대신에 기수(cardinal number)인 ”one day”(한 날, יום אחד, yôm echad)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16] 이것은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날(day)’이라는 단어를 숫자로 수식하는 처음 순간이다. 그래서 기수가 적절한 것이다. 다른 날들이 있었다면, 한 날이 아니라 ”첫째” 날일 수 있지만, 창조주간의 시작에 있어서는 오직 그 한 날 뿐이었다. 또한 하나님 자신도 창세기 1:5절에서 어두움(밤)과 빛(낮 시간)의 주기를 ”한 날”이라고 정의하고 계신다. 즉,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한 날이니라” 지구가 한번 회전하는 시간이 그 하루와 동일했다. 전체의 창조는 지구가 단지 여섯 번 회전하는 데 걸린 시간 안에 완성되었다. 지구가 회전한 여섯 번의 보통 길이의 날들이었다.[17]

위대한 신학자 바실(Basil, AD 329-379)은 오래 전에 창조주간에 관한 설교에서 이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

”성경은 왜 ‘첫째 날(the first day)’ 대신에 ‘한 날(one day)’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우리에게 둘째, 셋째, 넷째 날이라고 일련의 날들을 말하기 전에, 그 첫 번째 날을 ‘한 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따라서 그 날을 ‘한 날’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낮과 밤의 길이를 결정하고, 그 한 날이 포함하는 시간을 결합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것은 한 날의 시간은 낮과 밤으로 이루어진 24시간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와 동지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지 않다 하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한 날의 시간 길이는 경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 날의 기간은 24시간 이거나, 또는 천체가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18]


결론

창세기는 실제로 역사(history)이다. 성경의 다른 저자들도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성경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다른 역사적인 책들과 비교할 때, 그 형태와 동사의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더욱이, 그것은 시편과 같은 시적인 책과 전혀 유사하지 않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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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Sarfati, J., 'But Genesis is not a science textbook, Creation 26(4):6, 2004; creation.com/textbook.
2. A classic explanation is Grigg, R., Should Genesis be taken literally? Creation 16(1):38–41, 1993; creation.com/literal. See also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ch. 2, Creation Book Publishers, Atlanta, 2004, 2011; as well as the articles under creation.com/genesis.
3. A new resource documenting this is Genesis Verse-by-Verse, creation.com/genverse.
4. Wieland, C., Jesus on the age of the earth, Creation 34(2):51–54, 2012; creation.com/jesus_age.
5. Sarfati, J., Genesis: Bible authors believed it to be history, Creation 28(2):21–23, 2006; creation.com/gen-hist. See also Batten, D., and Sarfati, J., 15 Reasons to Take Genesis as History, Creation Book Publishers, 2006.
6. Sarfati, J., Why Bible history matters, Creation 33(4):18–21, 2011; creation.com/bible-history-fall-ark.
7. Cosner, L., What the New Testament doesn’t say, creation.com/nt-doesnt-say, 11 September 2012.
8. In modern Hebrew, the letter ו, when functioning as a consonant, is pronounced like our v, but in biblical times, it was pronounced like our w. The same sound shift occurred in Latin: when Julius Caesar said 'Veni, vidi, vici” (I came, I saw, I conquered), he pronounced it 'Weni, widi, wiki.” Much later Ecclesiatical (Church) Latin pronounces it 'Veni, vidi, vichi.”
9. Joüon, P. and Muraoka, T., A Grammar of Biblical Hebrew: Part Three: Syntax, p. 390,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Rome, 1991.
10. See also: Is Genesis poetry/figurative, a theological argument (polemic) and thus not history? creation.com/fh.
11. Kaiser, W.C., Jr., ‘The literary form of Genesis 1–11’ in Payne, J.B., New Perspectives on the Old Testament, Word Inc., Waco, Texas, USA, pp. 59–60, 1970.
12. Probabilities range from 0 (impossible) to 1 (certainty). Boyd, S.W., The biblical Hebrew creation account: New numbers tell the story, icr.org, November 2004. See also Boyd, S.W., A proper reading of Genesis 1:1–2:3; in: De Young, D. (Ed.), Thousands … Not Billions, Master Books, Green Forest, AR, pp. 157–170, 2005.
13. Actually, in Numbers 7, the phrase is bayyôm, where the ‘a’ in bayyôm represents the definite article, ‘the’, meaning ‘on the day [xth]’, unlike bəyôm, which lacks the article.
14. McCabe, R.V., interview in Creation 32(3):16–19, 2010; creation.com/mccabe; Graves, D.G., '… when Yahweh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a proposal for the right translation of כיום [bəyôm] in Genesis 2:4, J. Creation 23(3):119–122, 2009.
15. Ordinal numbers are used to refer, for example, to the order of runners finishing a race—first, second, third, etc., as opposed to cardinal numbers: one, two, three, etc.
16. An English Bible version which reflects this distinction is the NASB.
17. And this numbering pattern, including the deliberate use of the definite article for Day 6 (and Day 7 in Genesis 2:2–3, as well as for all the days in the Numbers passage) further emphasizes this. Sarfati, J., The numbering pattern of Genesis, J. Creation 17(2):60–61, 2003; creation.com/numbering—after Steinmann, A., אחד as an ordinal number and the meaning of Genesis 1:5,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JETS) 45(4):577–584, 2002.
18. Basil, Hexaëmeron 2:8, AD 370, newadvent.org/fathers/32012.htm; see also Genesis means what it says: Basil (AD 329–379), Creation 16(4):23–53 September 1994; creation.com/basil.
19. For a detailed critique of some of the compromising attempts to deny the history of Genesis based on literary style, see Kay, M., On literary theorists’ approach to Genesis 1 (two parts), J. Creation 21(2):71–76; 21(3):93–101, 2007; creation.com/literary-theory-1 and creation.com/literary-theory-2. 


*참조 : 역사와 거짓 역사 : 창세기 1~11장의 기록은 진정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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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역사성에 관하여 제기되어 왔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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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실제 역사라고 히브리어 교수는 확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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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 순서에 모순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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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창조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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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은 바벨론의 신화를 재편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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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는 창조의 순서와 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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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있기 전의 햇빛 : 태양이 창조된 넷째 날 이전의 하루는 하루가 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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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4일째까지 창조되지 않았다면, 창세기 1장의 날들은 문자 그대로의 하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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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날들은 얼마의 시간이었는가? : 하나님은 그 단어들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의도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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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수 패턴 : 날(day, 욤)의 길이에 대한 결정적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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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구절은 '날(day)'을 정의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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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1장의 YOWM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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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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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의 빛의 존재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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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담은 단 하루 만에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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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일 창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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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들려주는 기원의 연대 : 한국창조과학회가 젊은 지구 연대를 주장하는 성경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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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창세기를 정말로 썼는가? : 성경을 훼손하고 있는 사기적인 문서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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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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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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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범죄 이전에 사망이 있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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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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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나이는 지엽적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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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시간 틀로 지질주상도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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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것은 진화론을 수용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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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조 기록의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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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성경을 지지하는가?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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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홍수를 가리키는 성경적, 과학적 증거들과 전 세계의 홍수 설화, 그리고 에누마 엘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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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홍수와 길가메쉬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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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가 평온할 수 있었을까? : 창세기 1~11장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과학적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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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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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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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유신진화론 :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아담이 없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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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창조론을 믿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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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앙의 역사, 그 교회사적 고찰 :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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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죽기까지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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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creation.com/genesis-is-history 

출처 - Creation 37(2):50–52, April 201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639

참고 : 5275|5035|5033|4869|4540|4492|4487|4440|4297|3731|3689|3589|3331|3024|3020|2982|2936|2797|2638|2138|2016|3901|4351|5628|5627|5969|5870|6581|6044|5084|5542|5923|6107|6135|6283|5381|6360|6414|6110|6152|6153|6285|6146|5394|5265|6064|6066|6133|2942|6351|6533|6564|1922|3640|6491|6480|6477

미디어위원회
2021-01-27

에녹 :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
(Enoch : The man who walked with God)

by Lita Cosner


      창세기 5장의 계보는 “그는 ~ 세를 살고 죽었더라”라는 침울한 반복구를 반복하고 있다. 기록된 수명은 오늘날 경험하는 어떤 사람보다도 훨씬 길지만,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목록 중에 아무도 죽음의 저주에 굴복하기 전에 1천 살이 넘은 사람은 없는데, 여기에 놀라운 예외적인 한 사람 있다.

노아의 증조부인 에녹(Enoch)은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세대에 태어났다(창세기 5:21~24). 에녹은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했다고(walked with God) 한다(창세기 6:9). 칠십인역은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pleased God)”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다윗이 했던 것처럼(열왕기상 3:6), 주 앞에서 행하였다고 한다.(창세기 48:15).

에녹은 죄를 지었고 약속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을 통한 구원이 필요했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의로운 삶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모세의 율법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일종의 희생 제사(창세기 4:2~5을 보라)와 기본적인 도덕규범이 있었을 것이다. 성경은 에녹이 자신이 받은 계시에 따라 살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는 또한 그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히브리서 11:6) 하기 때문이다.

에녹은 족장들의 계보에 죽어서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말씀한다. 외경에는 에녹이 데려감에 합당하도록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정확히 하나님이 어떻게 데려가셨는지 추측되어 있지만,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죽음에 대한 주권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에녹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에녹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살고 죽었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후손이었다. 그는 죄를 지었고 약속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을 통한 구원이 필요했다(창세기 3:15, 마태복음 1:18~23). 그는 스스로 거룩해져서, 하나님과 동행할 가치가 있도록 자신을 만들 수 없었다. 어떠한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생애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을 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 이야기에서 그 이유는 전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성경의 더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아마도 하나님은 미래에 죽음의 패배를 예고하시기 위해 에녹을 택하셨을 것이다. 즉, “그리고 그는 ~ 죽었더라”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마지막 운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나님은 죽음에 대한 주권을 갖고 계시며, 우리는 에녹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일을 엿볼 수 있다.

신약에는 에녹이 세 번 언급되어 있다. 그는 누가복음 3장에서 예수의 족보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현재의 논점에 있어서 그의 역사성을 확증해 준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11:5) 

유다는 이렇게 말한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서 1:14~15). 이것은 성경이 성경 이외의 출처에서 정보를 인용한 매우 드문 곳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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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에녹은 우리에게, 심지어 모세의 언약 이전에도 구원이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했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자신에 대한 그분의 계시를 믿는 것이 항상 중심이었다. 에녹은 또한 죽음이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끝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활을 약속으로 받는다.

성경에서 성경 이외의 어떤 출처에서 인용한 구절이 성경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유다가 에녹서를 인용한 것이 성경으로써 인증이 되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러나 이곳이 성경에서 성경 이외의 글을 인용한 유일한 곳이 아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아레오바고 연설에서 두 명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분명히 그것을 성경 안으로 정경화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신약의 저자들이 성경을 인용할 때, 특히 마소라 본문과는 다른, 칠십인역 번역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 경우 인용문은 한 책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성경의 일부가 되지만, 그것의 출처는 성경이 아닌 것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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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1(4):24–25, October 2019
주소 : https://creation.com/enoch

번역 : 이종헌

미디어위원회
2021-01-06

과정신론 : 성경과 조화될 수 있는가?

(Process theism : Compatible with the Bible?)

Shaun Doyle


       과정신론(process theism) 또는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은 하나님과 이 세계가 상호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 중에(in the process)’ 있다는 생각으로, 둘 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고, 성장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독립성과 더불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당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하셨다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거부한다. 미국에 거주 중인 에밀리아(Emilia W.)는 이러한 관점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해왔다.


안녕하세요.

CMI(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의 웹사이트에서 과정신학에 관련된 정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과정신론자인 친구와 하나님과 창조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성경은 하나님이 무로부터 창조하셨다고 결코 말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된 모든 성경 구절들은 원래 존재하던 물질로부터 모든 것을 “형성”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CMI의 많은 글들처럼 열역학 제2법칙을 사용하여 우주가 시작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려고 합니다(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주장으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과학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으로 보일까 두렵습니다. 만약 열역학 제2법칙이 반증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과정적 관점(Process view)을 받아드려야 할까요?

그 친구가 하나님에 대해 믿는다고 하는 말의 대부분은 나에게 무의미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친구는 고등교육을 받았기에, 제가 그것을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저는 CMI로부터 과정신론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CMI의 숀 도일(Shaun Doyle)의 답변이다.


우리 웹사이트에는 과정신론에 대한 몇 가지 간단한 글들이 있다. (검색 창에 "과정신학"을 입력하면 볼 수 있다. 과정신론과 범신론 사이에 많은 중복이 있기 때문에 "범신론"을 검색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정신론을 직접적으로 다룬 글은 없다. 나는 이 관점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할 것이지만, 과정신론은 상당히 광범위한 흐름의 신학적 관점이기 때문에, 이것들 중 일부는 당신의 친구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과정신론은 하나님과 창조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창조물과 함께 진화하는 '과정 중의' 하나님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점점 더 좋아진다고 본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온갖 종류의 불완전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대부분의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고 보기에,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확립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내에서도 주장하는 범위는 다양하다.


과정신론과 하나님의 독립성

그렇다면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biblical theism)과 과정신론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홀로 존재하실 수 있는가? 전통적인 유신론자는 ‘예’라고 말하지만, 과정신론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과정신론자에게 하나님은 하나님 외의 어떤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

과정 형이상학(process metaphysics)에서, 현실세계의 구조는 사회적이며 필연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적 하나님이라는 견해를 추구한다. 즉 하나님은 비신적인 실체(non-divine actualities)와 반드시 관계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2]

이것은 하나님 외의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비신적인 실체도 원인이 되는 존재(causal being)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존재는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창조하도록 영향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 이것은 과정신론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독립적이라는 생각을, 즉 하나님은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설명 : 과정신론은 많은 면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여기고, 둘 다 성장하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필요로 하시지도 않고, 성장하실 필요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이미 완벽하시다. 오히려 그 분은 세상을 무에서부터 창조하셨고, 그의 권능으로 세상을 붙들고 계시므로, 우리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신성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만이 필연적이고 독립적이라면, 모든 것에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그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3]

과정신론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완전한 의존성을 강압적인(coercive) 것으로 보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손상시킨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은 대상(물체)일지라도 절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그러한 근본적인 특성(절대적인 자율성)을 파괴할 수 없을뿐더러, 무에서부터 그러한 특성이 존재하도록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과정신론의 하나님의 독립성에 대한 거부는 거의 항상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순서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거부는 과정신론이 하나님의 독립성을 거부하는 근본적인 증상(symptom)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고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독립성을 확언한다. 예로 사도행전 17:24-25절을 들 수 있다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이 구절은 두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과정신론을 부정한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라는 구절은 하나님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님 이외의 존재들로부터 절대로 받으시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는 분(self-sufficient)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구분한 것에 주목하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셨음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도 지으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의구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이 구절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하나님 이외의 존재를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과정신론과 치명적으로 모순된다.

또 다른 중요한 구절은 로마서 11:34~36절이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서정적 표현의 이사야 40:13절과 욥기 41:11절을 인용하면서,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구약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로마서 11장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과 상호관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시다. 오히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정신론이 아니다.

역대상 29:14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신약의 구절들과 동일한 생각을 반영한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동일한 관점이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분이시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세 구절 모두에서, 무로부터의 창조 문제는 정도가 다르지만 명백하게 나타나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 외에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신론은 하나님이 자신 외의 어떤 것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말하므로, 과정신론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묘사와 모순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나?(Did God create time?)”와 “하나님은 존재하기 위해 논리에 의존하시는가?(Does God depend on logic to exist?)”을 참조하기 바란다.)


과정신론과 무로부터의 창조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는 어떤가? 만약 당신이 무로부터의 창조를 의미하는 우주의 시작을 주장하고 싶다면, 당신이 직면하게 될 여러 반박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은 시작이 없는 우주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열역학 제2법칙이 그러한 주제에 관련될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과 창조물 모두 경우에 따라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만약 시간이 ‘어떤 것의 이전/이후’ 관계라면, 무변화성은 무시간성이다. 또한 만약 하나님과 세상의 근본적인 물질들이 모두 변화 없이 공존했고, 하나님께서 그 물질들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켜 만드신 것이라면, 그것은 과정신론자들에게 무로부터의 창조 없이 절대적인 시작을 확립해주는 길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를 정적인 것에서 시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은 완전히 정적인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다.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위반할 수 없다고 말하므로, 이 생각은 과정신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만약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것을 한번 바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다시 바꾸지 않는 것일까? 과정신론자들은 기적을 상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성경적 이슈에 관해서는, 먼저 성경의 '창조(creation)'라는 단어가 항상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부터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 이는 그 단어가 무로부터의 창조와 항상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단어가 갖는 의미의 범위는 일반화하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묘사된 창조 활동의 종류는 문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단어 ‘바라(bara)’(히브리어로 ‘창조하다’를 뜻하는 동사)를 보자. 창세기 1:27절에서, 이 단어는 인간을 창조하는데 세 번 사용되었지만,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존재했던 물질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창세기 2:7절을 봤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래 있던 물질을 사용하여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시편 51: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에게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bara)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윗이 물리적 상태의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질은 이 구절과 관련이 없다. 또한 창세기 1:1절에서 사용된 바라(bara)라는 단어는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하늘과 땅을 형성하셨는지 우리에게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이 만들어진 질서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메리즘(merism, 양단법)으로 봤을 때,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그것이 형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라(bara)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피조물들이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나왔는지 아닌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된 정보는 다른 고려사항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또한 창세기 1:1절은 메리즘과는 다르게, 무로부터의 창조를 보여준다는 견고한 주장들이 있다. 예를 들어, 2절은 하나님이 창조 활동을 시작하신 환경이 아니라, 1절에서 묘사되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환경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다른 고대 근동지역의 창조 이야기들은 창세기 1:2절에서 보여주는 창조의 초기 상태를 (구분되지 않은 물 덩어리로서) 공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과 다르게, 다른 고대 근동지역의 창조 이야기들은 "x, y, z가 존재하기 전에"와 같은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유래된,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물 덩어리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의 창세기 1:1절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 시작되며, 2절의 나눠지지 않은 물 덩어리의 문자적 소개에 앞서, 하나님께서 세계의 완전성을 창조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근동우주론과 창세기1장(Ancient Near Eastern cosmogonies and Genesis 1)”을 참조하기 바란다.)

게다가 창세기1:1과 명백한 평행구절을 이루고 있는 요한복음 1:1~3절은(요한복음 1:1의 첫 번째 절의 형태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의 창세기 1:1과 일치한다) 요한복음 1:3절에서 등장하는 "만물(all things)"이 말씀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선포와 함께, 무로부터의 창조를 내포하고 있는 창세기 1:1절을 요한이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조나단 사파티(Jonathan Sarfati) 박사의 저서 “The Genesis Account”을 참고하기 바란다.

골로새서 1:16절은 요한복음 1장의 "만물"이라는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여,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강조한다. 이는 천사의 계급을 포함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셨음을 말한다. 만약 "보이지 않는" 것들도 창조되었다면, 어떻게 이미 존재했던 물질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히브리서 11:3절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부터 세상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첫째,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는 구절은 보이는 세계는 보이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따라서 보이는 세계는 어떤 것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것은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졌다거나, 혹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구절은 이러한 부정(보이는 세계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어떻게 대조될 수 있을까? 앞의 절은 그 대답을 제공한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이 세계가 이전에 존재하던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이 부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능력에 의해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것과 대조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옵션은 언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대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명백한 확언으로 간주된다.


결론

하나님이 관계를 갖고 계심에 틀림없다는 과정신론자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신적 존재가 아닌 것과 관계를 갖고 계신다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삼위일체가 그 해답을 제공한다. 신적 관계의 필요성은 신적 존재들, 즉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창조는 '강압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신적 연합(삼위일체)과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주권적인 은혜의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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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Panentheism is the idea that the world is in some sense located within God, such that it is a part of God. Process theism is usually panentheistic, but it formally need not be. In fact, it could be argued that panentheism doesn’t preserve God’s necessity for external relations so crucial to process theism, since everything is actually internally located in God in panentheism. 

2. Viney, D., Process theism, plato.stanford.edu, 28 June 2014. This necessity is limited to the (mutable) matter of the cosmos, not the current form of the cosmos. Process theists like Alfred North Whitehead imagined the universe having different epochs with different laws of nature. 

3. Creatio ex nihilo arises from this and the belief that all contingent things came into being (i.e. they had a beginning). Since nothing comes from nothing, if everything came into being, it had to come into being purely by God’s will apart from any pre-existing matter—i.e. creatio ex nihilo. 


*참조 : 유신진화론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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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16. 6. 11. (GMT+10)

주소 : https://creation.com/process-theism

번역 : 조항윤

Gary Bates, Russell Grigg
2020-12-24

창세기로부터 큰 그림을 가르치셨던 예수님

(Jesus teaching the ‘big picture’ from Genesis)


      복음을 설명하고 선포하는 것을 돕기 위해 창세기(Genesis)를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창조론적 복음주의(creation evangelism)는 새로운 것인가? AiG(Answers in Genesis)와 같은 창조론 단체들이 쓰고 있는 방법은 오늘날 해로운 문화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진화론 교육에 단순히 대항하기만을 위함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부터 기초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오늘날 복음주의와 교회 교육이 자주 놓치고 있는, 성경과 구원의 큰 그림을 확실하게 하는 작업인 것이다.

진화론(과학으로서 과시되고 있는 인본주의적 믿음의 정당화)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면역시켜 놓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과학(science)이 성경이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이와 같지는 않았다.


듣기를 갈망했던 군중들

1950 년대에 빌리 그레함(Billy Graham)과 같은 복음전도자들이 공개적인 집회를 열었을 때, 그가 말하는 것을 듣기를 열망하는 군중들로 대형 체육관들은 가득 채워졌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 기도, 찬송 등을 가르쳤던 학교 교육과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환경 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개념은 이해하고 있었다. 기독교적 교리와 복음의 기초는 삶에 있어서 확립된 사실이었다. 이들 군중들에게 나타났던 많은 반응들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하나님께로 단순히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에는 잘 통용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대부분이 비기독교인 사람들에게 ”성경은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쨌다는 거야?”


진화론으로 가득한 문화 속에서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으며, 주일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새로운 개념을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사도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Areopagus)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 [1].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17장에 기록되어 있다.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바울은 진화론과 같은 형태를[2] 믿고 있었던 당시의 시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철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라고 표현하고 있다.(행 17:18).

바울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an unknown god)” 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그들의 제단을 가리켰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경배하는 알지 못하는 신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 (24절)” 이시며,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한 사람으로부터) 만드신 (26절)” 분임을 말했다. 바울이 말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 세계의 진실된 역사로서, 창세기에서 발견되는 복음의 기원을 펼쳐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믿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중의 한 명은 아레오바고 관원이었던 디오누시오(Dionysius)였다(34절). 오래지 않아 교회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디오누시오는 그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3] 아덴에서의 교회는 크고 영향력이 있게 되었다. 그들은 출발할 때부터 바른 기초를 가졌던 것이다.


교회 세대들에게 설교하기

이것과 대조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을 설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짓는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36절). 그 날에 삼천 명의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41절).[4] 

베드로는 신앙이 있었던 세대들, 즉, 이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율법을 주신 분이시요, 창조주시요, 심판주이심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설교했던 것이다. 그들은 창조와 타락, 죄가 들어옴, 이어진 형벌에 대한 창세기 기록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도움 받을 곳이 없는 그들의 상태에서, 예수님은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불행하게도, 구원에 관한 이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에 대한 감정적인 생각이나, 기초적인 가르침의 부족, 그리고 진화론적 교육에 의한 창세기의 불신과 같은 많은 것들에 기인할 수 있다.


예수님과 ‘큰 그림(big picture)’

‘큰 그림(big picture)’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일부 신앙인(유대인)들과 예수님도 또한 대면했었다. 누가복음 24장 13-35절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두 명의 제자가 몇 일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엠마오(Emmaus)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며,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슬퍼하는 지를 물어보셨다. 그들은 예수님인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중 한 사람인 글로바(Cleopas)가 예수님께 묻고 있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예수님이 이르시되 ”무슨 일이뇨?” 그들이 대답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글로바는 성경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그리스도)이 왜 죽으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그의 친구는 그들의 현재 상황과 국가적 상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던 것이다.

똑같은 일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다락방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도 발생했다(눅 24:44-46). 예수님은 모세가 자신에 관해서 기록했던 것으로 시작하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그러면 모세가 기록했던, 분명한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이 설명해야했던 것은 무엇인가?[6].

그것은 창조(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을 창조주로 기술하고 있다. 요1:1-3, 골1:16, 히1:2), 아담의 범죄, 죄가 들어옴, 인류에 내려진 죽음 등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었다. 이것은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그가 죽으셔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셨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구세주(Saviour)가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왜, 도대체 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그 이유에 대한 기본 개념은 창세기(Genesis)에서 확립되는 것이다.[7]

오늘날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이것은 ”큰 그림(big picture)” 이다.


*Gary Bates heads Ministry Development for Answers in Genesis in Brisbane, Australia. He was previously a business proprietor, and volunteer state coordinator/speaker for Answers in Genesis in Western Australia.

*Russell Grigg, M.Sc.(Hons.), was an industrial chemist before serving 20 years with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He is a staff member of Answers in Genesis in Australia.


References and notes

1. Areopagus (Greek: Areios pagos), the hill of Ares, the Greek god of war, corresponding to the Roman god Mars. The Council of the Areopagus was the Supreme Court of the City of Athens.
2. For example, Aristotle taught that ‘the lowest stage [in nature] is the inorganic, and this passes into the organic by direct metamorphosis, matter being transformed into life’. (Osborn, H.F., From the Greeks to Darwin, Charles Scribner’s Sons, New York, 2nd ed., p. 78, 1929.) But Aristotle criticized the transformism of Empedocles, so seemed anti-evolutionary.
3. Eusebius, Bishop of Caesarea, refers to Dionysius as ‘the first Bishop of the Church of Athens’. (Eusebius, Historia Ecclesiastica, iii.4; iv.23, as quoted in New Bible Dictionary, Inter-Varsity press, London, p. 312, 1974.)
4. In any comparison of numbers, it should be noted that Paul’s audience at Athens was very much fewer than ‘the multitude—out of every nation under heaven’ (Acts 2:5–6) that was Peter’s at Jerusalem.
5. For a study of Old Testament prophecy concerning the First Coming of the Messiah see: Fruchtenbaum, A., Messianic Christology, Ariel Ministries, Tustin, California, 1998.
6. Jesus, John and Paul clearly confirmed the book of Genesis (written by Moses) as literal history. See also Luke 16:29–31; John 1:45; John 5:46–47; Acts 26:22, 28:23.
7. Many people relate how they could not understand Christianity until taught fundamental principles from Genesis. E.g. ‘Because you took me back to the beginning, now I understand the plot. For the first time I am understanding what Christianity is all about. No-one ever suggested I start reading the Bible at the beginning.’ See Ham, K., Why won’t they listen? Master Books, Inc., Green Forest, Arizona, p. 105, 1999.



* 참조 : 예수님은 최근 창조를 가르치셨다.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88&bmode=view

창조와 십자가

http://creation.kr/Genesis/?idx=1289019&bmode=view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48&bmode=view

스스로 있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성경에서 반복되고 있는 ”I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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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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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할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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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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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 : 확증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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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이 만연한 이 시대에도 필요한 외침, ‘오직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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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죽기까지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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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진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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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조 기록의 독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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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성경을 지지하는가?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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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여러 종교 경전들 가운데서, 성경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입증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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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밖의 기록에서 성경 사건들에 대한 어떤 확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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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의 성경적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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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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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복음주의자였던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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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창조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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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홍수가 평온할 수 있었을까? : 창세기 1~11장에 대한 신학적, 역사적, 과학적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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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검증법으로 본 성경의 신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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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권위로 다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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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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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왜 66권인가? : 어느 책이 성경에 속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61&bmode=view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인 성경

http://creation.kr/Series/?idx=1842641&bmod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5/i3/teaching.asp ,

출처 - Creation 25(3):24–26, June 200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42

참고 : 5686|5376|5275|4540|4440|3945|3641|3249|2970|3020|2982|2797|2864|2412|4140|638|5466|5462|4596|3654|5969|5870|6581|6044|5084|5542|5923|6107|6135|6283|5381|6360|6414|6110|6152|6153|6285|6146|5394|5265|6639|6642

미디어위원회
2020-05-19

창세기 1장은 바벨론의 신화를 재편집했는가?

(Is Genesis 1 Just Reworked Babylonian Myth?)

by Murray Adamthwaite


       1902년 1월 13일, 독일의 앗수르학자 프리드리히 델리취(Friedrich Delitzsch, 1850-1922)는 베를린에서 개최된 독일동양학회(German Oriental Society)에서 “바벨과 비벨(Babel und Bibel)”이라는 제목으로 획기적인 강의를 했다. 그는 “창세기의 많은 자료들은 히브리인의 바빌론 유배(流配)기간 동안에, 무명의 히브리 저자들이 바벨론의 신화에서 빌린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학자들의 전통적 주장은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일례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시(Enuma Elish)’에서 기원했다고 주장되고 있다.[1]

그림 1. 에누마 엘리쉬 서판 III.

종종 ‘바빌론 창조 이야기’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불려지는 서사시(敍事詩) 에누마 엘리쉬는 니느웨에 있는 아슈르바니팔 도서관(Great Library of Assurbanipal)에 7개의 서판(書板, tablets, 그림 1~3에서 3개를 보여줌)으로 존재한다. 서판 V(그림 3)는 부분적으로 남아있지만, 다른 서판들은 수년에 걸쳐 여러 곳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서사시의 많은 부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서판 해석에 어려움이 남아있으므로, 우리의 이해는 불완전하다.


이야기의 개요

남신인 민물(지하수)의 신 압수(Apsu)는 여신인 바닷물의 신 티아맛(Ti'amat, 티아마트)과 짝을 이루어, 자연의 다양한 것들을 주관하는 작은 신들(자손들)을 낳았다. 그러나 압수는 자녀들의 소음에 짜증을 내고, 그들을 죽이기로 결심했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지혜의 신 에아(Ea)에 의해 죽는다.(l. 68-69). 그 후 에아는 신 마르둑(Marduk)을 낳았다.(그림 4). 티아맛은 분노에 빠지고, 마르둑과 싸우기 위해 수많은 용들을 낳는다. 그러나 티아맛의 위협에 겁먹지 않은 마르둑은 다른 신들을 큰 연회로 모아, 마르둑을 대표로 티아맛과 전쟁을 한다. 그래서 큰 전쟁이 벌어지고, 마르둑은 티아맛을 죽임으로써 승리를 거둔다. 그는 먼저 티아맛의 두개골을 철퇴로 빠개고, 몸 전체를 쪼개었다. 그는 티아맛 상반신으로 하늘로 만들고, 하반신으로 땅을 만들었다. 이 혼란에서 질서가 나오게 되었으며, 태양, 달, 별이 나타나고, 달력(calendar)이 만들어진다.

그림 2. 에누마 에리쉬 서판 IV.

마지막으로 티아맛의 장군인 킹구(Qingu)가 있다. 마르둑은 에아(Ea)에게 신들을 시중들고 자기들은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대하여 말한다. 마르둑은 이기기(Igigi, 하늘 신)와 아누나키(Anunnaki, 지하 신)에게 말하였고, 이기기는 킹구가 전쟁을 시작하였으므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마르둑은 킹구를 죽이고, 피와 흙을 취해 사람을 만든다. 그런 다음 아누나키는 바빌론(Babylon)과 에사길라(Esagila, 바빌론의 주요 사원 중 하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석판 VII에서는 바빌론의 수호신을 높이기 위해 마르둑의 50개의 이름을 관련시키고 있다 :

오십 개의 별칭을 갖고 있는 위대한 신 

그를 50개의 이름을 부르며, 최고의 신으로 만들었다.[3]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러한 조잡하고 피에 굶주린 이야기에서, 창세기와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신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는 창세기 1장에는 전혀 없고, 이는 다신론(polytheism)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몇몇 성경 비판가들은 이사야서를 언급한다. 이사야 51:9~10절의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와 시편 74:14절의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구절이 이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아마도 신화적 단어를 사용하여 출애굽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것이다. (역자 주 : 그러나 용(dragon)과 리워야단(Leviathan)이 익룡이나 공룡이라면 신화적 단어도 아니다.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8 : 유럽의 역사와 예술품에 등장하는 용은 공룡이었다!,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9 :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역사, 그림, 예술품에 등장하는 공룡!을 참조하라).  우리 자신의 문화에서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다. 달력의 달(month) 이름 중 몇 가지는 로마 신에서 유래한 반면, 대부분의 요일 이름은 북유럽 신에서 유래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서양인들이 그 신들이나 각각의 신화를 믿는다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에누마 엘리쉬에 대한 관찰

첫째로, 에누마 엘리쉬는 정치적 문서이며, 바빌론이 아누(Anu)나 에아(Ea) 또는 다른 신과 달리, 저명한 신 마르둑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것은 다가오는 새해에도 왕권을 재확인하는 신년 축제인 아키투 축제(Akitu Festival)의 일부 의식(ritual)으로 제정됐다. 창세기 1장에는 그러한 기능이 없으며, 일반적으로 성경 비판가들 또는 세속적 학자들이 주장하는 반대의 주장은 단순한 순환논법일 뿐이다.

신들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는 창세기 1장에는 전혀 없고, 이는 다신론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둘째로, 그것은 우주의 생성론이기 보다는, 신들의 계보에 관한 문서이다. 즉, 기본 의도는 우주의 기원보다는 신들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판 I ~ V의 주요 부분은 신들의 계보와 그들의 치열한 전투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서판 IV(그림 2)의 끝부분에서 일부분만 우주의 창조를 언급하고 있다. “창조” 이야기의 주요 부분은 서판 VI에 있는데, 사람의 기원과 다양한 사원의 설립과 관계되어 있다. 실제로 옥스퍼드 대학의 스테파니 달레이(Stephanie Dalley)는 원본 이야기는 전혀 창조 이야기가 아니고, 나중에 그 부분이 혼합되었다고 주장한다.[4] 이러한 이론은 에누마 엘리쉬의 기본적 불일치를 전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고대 세계의 창조 이야기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로, 에누마 엘리쉬에서 이 세계와 인간(world and man)은 신성한 물질로부터 나온 것이다. 즉 둘 다 신이 “재료(stuff)”가 되어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는 창조자 및 피조물의 구별은 없다. 더욱이 마르둑(Marduk)은 진정한 창조자가 아닌 재봉사(fashioner)인 것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무에서의 창조(Creation ex nihilo)는 바빌론 사람들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3. 에누마 엘리쉬 서판 V.

넷째로, 에누마 엘리쉬는 6일 + 1일의 형식이 없다. 7개의 서판들은 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 서판들은 날들(또는 그 문제와 관련하여 오랜 기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런 점에서 다른 많은 자료들과 비교해도, 창세기 1장은 고대 세계에서 매우 독특하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요점은 고대 근동에서 “원래 문헌(origins literature)”이라고 부르는 것의 연대에 관한 것이다. 키친(K.A. Kitchen)은 이것이 근동 역사의 후기와는 반대되게, BC 2천 년 초가 명확하다고 주장한다.[6] 그런 다음, 그는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간단히 말해, 느부갓네살 시대(BC 6세기)의 바빌론에서 포로 상태인 히브리인들이 창세기 초반부의 내용을 바빌론 신화들에서 '차용(borrowed)'했다는 생각은 애초에 재고할 가치도 없는 생각이다.”

전통적인 BC 2천 년 전이라는 주장되는 연대를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의 요점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데, BC 2천 년 초(혹은, 그 이전)의 시기는 창세기가 바빌론 포로 시절인 후대에 쓰여졌다는 주장을 기각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 : 헤시오도스(Hesiod)의 신들의 계보[7] :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화와 다른 신화를 알고 있었고, 이를 강하게 공격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들의 기원과 계보, 그리고 다른 모든 신들과 우주에 대한 제우스(Zeus)의 왕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에서 우라노스(Ouranos)와 그의 배우자인 가이아(Gaia)는 신을 낳으려고 시도하지만, 크로노스(Kronos)는 그의 아버지를 공격하고, 그의 피가 땅으로 쏟아져 신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생식기를 바다에 던지면서, 더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런 다음 10년 동안 크로노스와 타이탄(Titans)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마침내 제우스는 우주를 지배한다. 우라노스는 가이아와의 사이에서 일련의 자손들을 낳았고, 마침내 탁월한 신 제우스를 낳았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화와 다른 신화를 알고 있었고 이를 강하게 공격했다.[8] 그러나 신들 사이의 서로 죽이고 충돌이 있었다는 주제는 이 신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전쟁 주제와는 별개로,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와 헤시오도스(Hesiod) 사이에는 여러 유사한 점들이 나타난다 :

1. 마르둑과 제우스는 공통점이 많으며, 특히 제우스는 우주의 지배자로 등장한다.

2. 크로노스는 킹구와 매우 비슷한 인물로서, 특히 우라노스와의 전투에서, 그리고 우주의 군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그렇다. 

3. 마찬가지로 에누마 엘리쉬의 티아맛과 가이아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는데, 가이아는 그녀의 자녀들을 격분시켜 아버지 타이탄에 대항하게 한다.


노르드(북유럽) 신화[9]

또 다른 신화는 추운 북부지방의 기후를 이해할 수 있는 특징을 제외하고는, 에누마 엘리쉬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태초에 흐베르겔미르(Hvelgelmer)라 불리는 거대한 샘(fountain)이 있었다. 이 원천에서 나온 물은 결국 얼음으로 얼어붙었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했을 때 물방울이 떨어져 위미르(Ymer)가 태어났다. 깊은 잠이 그에게 왔고, 그의 땀방울에서 아들과 딸들이 나왔다. 이들 신들 사이에서 더 많은 신들이 나왔고, 그 중 하나가 오딘(Odin)이었고, 아사 신들(Asa-gods)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이제 위미르와 그의 사악한 아들들은 나머지 가족 신들과 전쟁을 벌였지만, 쓰라린 갈등 끝에 결국 아사 신들 중 첫째인 부레(Bure)가 승리했다. 위미르가 죽었을 때, 다른 신들은 그의 시체를 찢었고 갈았다. 돌에는 피가 묻었고, 빻아진 살점은 땅을 만들었다. 그의 뼈에서 바위와 산들이 만들어졌으며, 얼음처럼 차가운 피는 바닷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신들은 땅의 형성을 마치고, 위미르의 두개골을 가져와서 하늘을 만들었다. 태양과 별은 텅빈 하늘에 불을 뿜었던, 남쪽의 신 무스펠 하임(Muspel-Heim)에게서 나왔다. 그는  그런 다음 신들은 그들에게 시간과 계절을 표시하도록 명령했고, 이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신화에서 에누마 엘리쉬와 많은 유사점을 볼 수 있다. 나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

1. (에누마 엘리쉬에서) 바닷물의 여신 티아맛은 (노르드 신화에서) 물의 샘으로 한 단계 낮은 신인 흐베르겔미르(Hvelgelmer)가 되어있었는데, 이 신은 일련의 다양한 신들의 근원이자 기원이 되고 있다. 

2. 위미르 시체로부터의 창조 이야기는 에누마 엘리쉬의 킹구의 운명과 매우 흡사하며, 이론적으로 바빌론 신화에서 북유럽 신화로 “문학적 차용(literary borrowing)”을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재고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내 지식으로는 아무도 그러한 의존성을 진지하게 수긍하지 않는다. 모두가 북유럽 신화의 전승은 독자적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이 북유럽 신화에 의존했다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매우 적다.

그림 4. 마르둑(Marduk)


결론

고대 신화들에 대한 이 조사는 단지 문화 인류학적 연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조사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바빌로니아의 ‘에누마 엘리시’에서 기원했는지를 단순한 비교로 알아보기 위함이다.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증거들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문화이든지 관행적으로 동일하게 이교적이며, 다신론적 신화가 등장한다 - 성적 결합에 의한 출산, 신들 사이의 충돌, 신들의 군집, 땅이 된 물질, 많은 신들 사이에서 한 신의 우월성... 이것은 매우 분명해 보이는 패턴이다.  

대조적으로 창세기 1장의 이야기는 태초부터 그곳에 계셨던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는 명백한 창조자와 피조물의 구별이 있다. 창세기 1장은 신화들로 오염되지 않은, 초월적인 하나님을 드러내는 순전하고 고귀한 어조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이교적 신화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장르이지만, 창세기는 매우 다른 부류인 것이다.

이 조사로 내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론은 간단하지만 흔히 범할 수 있는 오류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즉, B가 A를 닮았다면, B가 A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창세기와 에누마 엘리시는 전혀 유사하지 않다. 따라서… (창세기는 에누마 엘리시에서 빌려온)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유사성에 대한 몇 가지 그럴듯한 설명이 있을 수 있는데, 문학적 의존성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종교학과 비교신화학 연구에 만연해 있다. 특히 창세기(일반적인 기독교)와 이교도 문헌과의 문학적 유사점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볼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비과학적인 “논리(logic)”를 끝내야 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달레이가 주장했던 것처럼, 신화들에서 볼 수 있는 창조 이야기는 세대에 걸친 신들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에 상당히 "고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을 진실된 실제의 창조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게 고대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점점 더 왜곡된 창조 이야기들이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으며, 서로 다른 형태로 독립적으로 순환하며, 결국 대홍수 이후 초기에 타락한 다신론적 신화로 연결되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한편, 성경 창세기는 본래의 순수한 형태의 창조 이야기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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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In recent years, this view has been popularised in evangelical circles in Australia through such as John Dickson, The Genesis of Everything, ISCAST Journal for Christians in Science and Technology v.4, pp.1–18, 2008, and John Dickson, Greg Clark and Simon Smart, God Science: Creation, Darwin And The End Of Faith, (DVD), Centre for Public Christianity, 2010. 

2. For a good contemporary English translation see Stephanie Dalley, Myths from Mesopotamia, Oxford, pp.233–77, 1988. 

3. Dalley, ref. 2, p.273. 

4. S. Dalley, ref. 2, p.230. She further remarks that some Amorite deity, rather than Marduk, may have been the original hero of the epic. 

5. Some may object that in Genesis 2:7 Yahweh is a fashioner also, but two important points need to be made here: (i) the “dust of the earth” does not come from a dead god, as in Enuma Elish; (ii) there is no hint in Enuma Elish that Marduk “breathes into man the breath of life”, as in Genesis 2:7. 

6. K.A. Kitchen, The Bible in its World, Paternoster, pp.34–35, 1977. 

7. See Hugh G. Evelyn-White (tr.), The Theogony of Hesiod, http:// www.sacred-texts.com/cla/hesiod/theogony.htm, accessed 14.3.2013. Return to text.

8. For example, Justin Martyr, Discourse to the Greeks, III; in Ante-Nicene Fathers, Eerdmans, p.272, 1967. 

9. See, e.g. D.L. Ashliman, The Norse Creation Myth, http:// www.pitt.edu/~dash/creation.html, accessed 14.3.2013. A search on the Internet will reveal several versions of the Norse myths. 


*참조 : 역사와 거짓 역사 : 창세기 1~11장의 기록은 진정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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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구약의 창조 기사는 바벨론의 창조 신화를 베꼈는가? (2020. 4. 24. 크리스천투데이)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0908

창세기 1-3장은 진화론자들의 말처럼 신화일 뿐인가? (2020. 4. 15. 크리스천투데이)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0711


출처 : CMI, 2013. 6. 4. (GMT+10)

주소 : https://creation.com/is-genesis-1-just-reworked-babylonian-myt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05-03

 타락 이전에 동물들의 죽음

: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상반된다.

(Animal death before the Fall,

Cruelty to animals is contrary to God’s nature)

by Paul Price


       성경적 창조론자(biblical creationists)들은 모든 종류의 죽음, 부패, 쇠퇴 등은(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전통적인 기독교 견해를 지지한다. 아담의 타락과 저주 이전에, 창조물은 하나님의 원래 뜻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상태에 있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낙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목가적인 상태는 창조물의 모든 영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부패나 죽음이 인류에게 없었던 것처럼, 동물계에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창세기 1:29~30절을 통해서 타락과 저주 이전에, 모든 동물과 사람에게는 식물만이 먹을거리로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동물계에 육식이나 포식(捕食)은 없었을 것이다. 이사야 11:6~7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만드실 새 땅에서는 육식이 없는 지상 낙원을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성경 주석가들은 이사야가 타락 이전의 세상을 암시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장차 올 미래 상태를, 동물들이 서로 물고 찢는 이 세상과는 달리...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로 요약하고 있다. 


수정주의 기독교

만약 화석기록에 대한 세속적(오래된 지구)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죽음, 고통, 질병이 인류 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 된다. 

안타깝게도 교회 내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타협 이론의 영향으로, 이러한 기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여러 단체나 신학자들이 이러한 세속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생각과 성경적 관점을 혼합하여 타협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논쟁에서 한 주요한 쟁점은 동물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과연 성경은 인간의 타락 이전에 동물에게 죽음과 고통이 없었다고 가르치는가? 또는 타락의 결과가 단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임을 가르치는가? 라는 것이다.

만약 화석기록에 대한 진화론적(오래된 지구)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죽음, 고통, 질병이 인류 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 된다. 화석기록에 나타나있는 고생대 중생대의 생물 화석들은 이러한 결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아담 이전의 동물들의 죽음은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나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오래된 지구론자들에게는 하나의 주요한 골칫거리이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진화론적 연대(지구 나이 46억 년)와 성경 역사를 조화시키려고 시도한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하지만 성경은 사망은 우리의 원수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고전 15:26).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예를 들어 점진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휴 로스(Hugh Ross)와 같은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원래의 창조물을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완전하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대로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인간의 타락에 의한 저주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동물계에서 의도적으로 죽음, 고통, 질병을 만드신 후,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을 의미한다. 어떤 종류의 신이 그런 일을 하겠는가?

초기 기독교인들의 죽음과 고통에 대한 역사적 이해(동물 영역을 포함하여)는 인류의 타락에 대한 형벌, 즉 저주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견해를 수정하여, 동물들은 항상 고통을 겪어왔고, 하나님께서 동물들이 처음부터 고통을 겪도록 하셨다면(점진론적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하신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악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은 왜 불필요하게 동물에게 고난과 고통을 받도록 만드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고통에 대해 선한(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계셨을까?

이에 대해 점진적 창조론자들의 일반적인 대답 중 하나는, 동물이 겪는 고통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며, 단순히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다. 자유의지(이것이 하나님이 죄를 허락하시고, 이어서 죄가 들어오게 된 이유이다)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만드실 수 있었을까? 동물들은 자신들의 나쁜 행동을 도덕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범죄 이전에 존재했던 동물들의 생존경쟁과 죽음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이 고통과 죽음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진화론적 시간 틀로 수억 수천만 년 동안) 계속되었을 것이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도덕적 존재인 인간이 있기 이전의 수억 수천만 년 동안, 동물들에게 고통을 겪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에, 주변에 이미 질병, 죽음, 고통, 육식 등이 만연해 있었다면, 그들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자연스럽게 죽음과 질병은 늘 있던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론짓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세상에서 어떻게 저주는 나쁜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은 혼란을 초래하시는 분이신가?


에덴동산은 '안전지대'였는가?

이것에 대한 진정한 성경적 가르침은 모든 죽음과 고통은 인류의 타락에 대한 형벌로 인한 저주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몇몇 점진적 창조론자들은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동물들의 고통에 노출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고통과 죽음은 에덴동산 밖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에덴동산은 위험하고 약육강식의 피 흘리는 바깥 세계와는 구별된 천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4]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만물을 만드셨다는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든 외부 세계와 접촉하지 않았다면,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지속된 고통과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사람에게는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에덴동산의 경계 내에서 인구가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견해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을 때까지, 지구 행성의 대부분은 쓸모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실제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에덴동산은 무섭고 위험한 지구 행성의 한가운데에 있는, 안전하게 보호되는 특정 구역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고 무한하신 능력을 갖고 계시는 분이, 육체적, 감정적 고통과 불행을 경험할 수 있는 온갖 동물들을 지구상에 창조하셔서, 수억 수천만 년 동안 많은 고통과 죽음들을 경험하게 하면서, 정작 그것들을 돕기 위한 아무 일도 안 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해보라. 과연 그러한 분이 어떤 신의 속성을 갖고 계시는 것일까? 이러한 신이 성경의 하나님과 매우 닮은 분일까? 우리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유추하자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닐 것이다.


동물학대법의 성경적 근거

서구의 동물학대법(animal cruelty laws, 동물보호법)의 역사는 개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 법은 기독교계에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시도하던 시기에 제정되었다.[5] 미국의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최초의 법률 문서 중 하나인 매사추세츠 자유법령(Massachusetts Body of Liberties, 1641)에는 성경이 많이 언급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

92. 어떤 사람도 사육하기 위해 기르는 일반적인 모든 가축에 대해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6]

이 문서는 이 법령을 정당화하기 위한 성경 본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원칙을 찾을 수 있는 성경의 구절들이 있다 :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잠언 12:10)

잠언 말씀은 “의인은(의인은 누구나, Whoever is righteous)”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하나님은 의로우신가? 물론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가축의 생명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과는 독립적으로, 요나 4장에서 니느웨 성의 고통을 원하는 요나가 성내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가축도 긍휼히 여기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11)

사실 여기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에서, 심지어 가축도 자비로 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수억 수천만 년 동안 동물들의 죽음, 질병 및 고통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 점이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신학에서 중요한 논제였다. 성경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편 145:9)

이런 것들은 오래된 지구론자들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생물들에 죽음과 고통을 고의적으로 만드시고, 수억 수천만 년 동안 아무 일도 하시지 않고 방관하셨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짓고, 이로 인한 저주로 모든 죽음과 고통의 원인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아담이 모든 창조물의 대표자였기 때문에, 동물 세계도 함께 영향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의 제 2위격이신 자신의 아들을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분은 또한 창조세계를 회복하시고, 목가적인 원래 모습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실 것을 약속하셨다. 


부패, 사망 및 질병 — 이 모든 것은 저주의 부분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적고 있다.(로마서 8:22). 사람이 출산 시에 고통이 증가한 것도 저주의 일부로서, 실제로 창세기 3:16절에서 하나님에 의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바울은 이 개념을 확장하여, 모든 피조물이 저주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죽음과 고통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자신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게 좋은 것만 주시고자 하시는 완전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로 온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I cannot say ‘all’, because technically there is a viewpoint called Young Life Creationism that essentially proposes a roughly biblical perspective of life (going back only around 6000 years), but then attempts to insert billions of years prior to the creation of first life. Handling this view is outside the scope of this article since these individuals would not believe in animal death prior to the Fall. But see ‘Soft’ gap sophistryfor problems with this view. 

2. See Ch. 6, Sarfati, J., Refuting Compromise, Creation Book Publishers, Powder Springs, 2014; also Was God’s finished creation perfect?

3. Zuiddam, B., 2nd Century Church Fathers: God will make lions vegetarian again, Creation 36(3):46–47, 2014; Early Church Fathers on creation, death and eschatology, J. Creation 28(1):77–83, 2014. 

4. This concept is alluded to by the old earth perspective given at Could thorns have existed outside of Eden, and what about the Framework Hypothesis? though specifically thorns are mentioned. 

5. Davis, J., The History of Animal Protection in the United States, oah.org, accessed 2 December 2019.

6. The Massachusetts Body of Liberties (1641), history.hanover.edu/ texts/ masslib. html, accessed 2 December 2019.


*참조 : 오래된 지구의 신 : 점진적 창조론, 간격이론, 날시대이론, 다중격변설...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58&bmode=view

위증인 타파하기 : 오래된 지구 창조론자인 휴 로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60&bmode=view

점진적 창조론에 대한 성경적 비판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70&bmode=view

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창조론을 믿고 있었는가?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91&bmode=view

창조과학자와 기독교과학자 : 양승훈 교수의 “두 근본주의의 충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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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적 진화론과 창조-진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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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의 위험성 1 :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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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의 위험성 2 : 하나님이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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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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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칼뱅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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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생물들은 언제 죽었는가? : 아담 이전의 죽음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http://creation.kr/BiblicalChronology/?idx=1289267&bmode=view

식물들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었는가?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67&bmode=view


*관련기사 : '공룡도 암에 시달렸다'…공룡 화석서 골육종 흔적 첫 확인 (2020. 8. 4.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00804111100009?input=1195m


출처 : CMI, 2020. 3. 17. (GMT+10)

주소 : https://creation.com/animal-cruelt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05-01

창세기 1장의 “궁창 위의 물”에 대한 수증기 캐노피 모델의 분석

(What Is the State of the Water Vapor Canopy Model?)

by Bodie Hodge 


       수증기 캐노피 모델(water vapor canopy model)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이 모델을 둘러싼 성경적 해석, 그리고 성경적 창조론에서 어떻게 접근해야하는 지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성경적 창조론자들도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한 주제에 대한 의견이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록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해 따르려고 하고, 성경의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다양한 면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모델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어떤 과학적 모델에 대해서 나뉨이 발생할 때, 우리는 보다 철저하게 그 이슈에 뛰어들어, 그 모델이 좋은지 나쁜지, 수정이 필요한지 등을 깊이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나뉘는 것을 뛰어넘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신학에 대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한 과학적 모델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주제에 대해 나뉠 수 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서로 함께 할 수 있으며, 그 모델을 다루면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잠언 27:17), 복음 안에서 그 이슈를 다루어야한다. 

수증기 캐노피(water vapor canopy) 모델에 대한 논쟁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고 자매이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과,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은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딤후 2:15). 이 주제에 대해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며,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분석은 항상 성경 본문에 대해 종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수증기 캐노피 모델이란 무엇인가?

캐노피(canopy, 덮개) 모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1] 그것들은 모두 창세기 1:7절의 궁창(expanse, firmament) “위의 물”을 창조 시부터 노아 홍수 때까지 지속됐던, 지구를 둘러싸고 있었던, 어떤 형태의 수성 캐노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6–7).

본질적으로 ‘위의 물(waters above)’은 지구 주위에 수증기나, 물(액체), 또는 얼음 캐노피를 형성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제안된 모든 모델들 중에서 선도적인 것은 수증기 캐노피(water vapor canopy) 모델이다.[2] 이 캐노피는 유해한 우주방사선이 지구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고, 지표면의 산소 대기압을 높여주었고, 지구의 기후와 온도를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었으며, 노아 홍수 시에 일부 물의 공급원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증기 캐노피 모델의 간략한 역사

현대의 캐노피 모델들은 1961년 발간된 획기적인 책인, 헨리 모리스 박사와 존 휘트콤 박사의 ‘창세기 홍수(The Genesis Flood)‘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3]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을 성경적 권위로 돌아가도록 촉발했다. 그것은 매우 훌륭한 책이며, 우리는 그들의 노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 책에서 휘트콤과 모리스는 ’위의 물‘에 대한 ’수증기 캐노피‘ 가능성을 소개하였다.

캐노피 모델은 조셉 딜로우(Joseph Dillow) 박사의 연구 덕분에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4], 이후 ICR의 래디 바디만(Larry Vardiman) 박사와 같은 많은 창조론자들은 이 과학적 모델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해왔다.

연구자들은 고형 캐노피, 물 캐노피, 수증기 캐노피, 두꺼운 캐노피, 얇은 캐노피 등의 가능성 등을 연구해왔다. 각 모델들에서 캐노피는 노아 홍수 때에 붕괴된 것으로 보았다. 연구자들은 그것이 홍수 시에 적어도 일부 물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으며, 노아 홍수가 시작될 때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windows of heaven)’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에서, ‘하늘의 창문들’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재 상태에서 캐노피 모델은 많이 쇠퇴되었고, 대부분의 연구자들과 변증학자들은 여러 캐노피 모델들을 포기했다. 그들이 포기하게 된 성경적, 과학적 이유를 살펴보자.


성경적 문제

두 가지 이유를 모두 논의하겠지만, 캐노피에 대한 토론에서 발생하는 모든 성경적 어려움은 과학적 고려 사항보다 우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가르침에서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해석은 성경이 아니다.

지구의 수성 캐노피의 필요성은 성경 본문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의 해석은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경의 본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위의 물’을 지구의 수성 캐노피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 해석했다. 많은 주석가들은 ‘위의 물’을 단순히 구름으로 있는, 대기 중에 있는 물방울(수증기가 아니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위에 있는 “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해석을 단순히 구름인 것으로 제한하지 않으며, 아마도 우주에 깊숙이 닿아, ‘셋째 하늘(Third Heaven)’이나 하늘들의 하늘(Heaven of Heavens)까지 뻗어 있던 무언가일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1700년대의 성경학자였던 존 길(John Gill)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것의 아랫부분은, 물이 가득한 구름이 있는 대기권의 윗부분이다. 이곳으로부터 비가 땅으로 내려온다. 그것들과 그 아래에 있는 것, 즉 땅에 떨어져 아직 하나로 모이지 않은 것 사이가 나뉘어지고, 그래서 이제 하늘 구름과 바다의 물 사이가 나뉘어진다. 미스터 그레고리(Mr. Gregory)의 의견이지만, 가장 최상의 구(supreme orb) 위에 물의 심연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사이의 깊은 곳에...[5]

길(Gill)은 구름이 이들 ‘위의 물’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물은 또한 우주의 바깥 가장자리에서 하늘들의 하늘(heaven of heavens)까지 확장되어있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1600년대 성경주석가였던 매튜 풀(Matthew Poole)의 해석에서도 이 가능성을 지적한다 :

... 확장 또는 연장되었던, 왜냐하면 그것은 멀리 그리고 넓게, 지구에서 셋째 하늘까지도 확장되어 있었다. 또한 궁창(firmament)이라고 불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절한 장소에 고정되어, 힘이 없다면, 움직일 수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6]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또한 이 궁창이 하늘들의 하늘(셋째 하늘)까지 확장되어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었다 :

그것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은 “궁창이 있어”...나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확장(expansion, 팽창)으로, 히브리어 단어는 종이가 펴지거나, 커튼이 펼쳐지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구 위로 보여지는 모든 것, 지구와 세 번째 하늘 사이의 대기를 포함하여, 그것의 낮고, 중간, 더 높은 지역 — 하늘의 천구(celestial globe), 그리고 위의 모든 천체와 빛의 구체들이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늘의 궁창(firmament of heaven)이라고 불려지고 있으며(창 1:14,15), 새들이 날고 있는 그곳의 낮은 곳도 또한 하늘의 궁창이라고 불려지고 있기 때문이다.(창 1:20).[7]

요점은 지구의 캐노피 모델이 단순히 ~ 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해석으로 평가되어야 하고, 성경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존경받는 성경 해석가들은 “위의 물”을 지구의 대기권 상층부에 있는 워터 캐노피(water canopy)라는 해석에 참여하지 않았다.


계절성 별과 별빛, 기타 의미

또 다른 성경적 문제는 창세기 1:14~15절을 읽을 때 발생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8] 

별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계절 지도(map seasons)로 사용되도록 의도되었다. 또한 별들은 땅을 비추도록 창조되었다. 별빛은 밝지는 않지만, 오염지역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경우, 초승달의 빛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물 : 캐노피가 액체 상태의 물이었다면, 그리고 안개나 연무와 같은 여러 형태로 있었다면, 이러한 별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계절을 나타내는 별들을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영원히 흐린 날과 같았을 것이다. 안개가 심한 날의 자동차 전조등과 비슷하게, 빛은 흡수되거나 우주로 다시 반사되었을 것이다. 적은 빛이 통과되더라도 계절을 알 수 있도록 별빛은 서로 충분히 구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증기 캐노피와 같지 않게, 구름은 움직이고 이동한다. 구름이 움직일 때, 그 사이로 계절을 나타내는 별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캐노피가 물이라면, 그것은 왜 떨어지지 않았는가?[9]

얼음 : 캐노피가 얼음이었다면, 별을 보는 것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별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계절을 나타내기에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얼음은 차갑게 유지될 때, 다른 물 분자가 얼어붙어있는 표면에 코팅되는 경향이 있다.(냉장고 벽에 붙어있는 얼음 덩어리를 생각하라). 대양 표면에서 증발된 물이 접촉면을 만들었을 것이고, 특히 죄로 인해 저주받고 쇠퇴된 세계에서, 이것은 가시성을 방해할 수 있다.

증기 : 우리의 대기권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 캐노피가 가장 적합하지만, 여전히 한 문제가 있다. 차가운 증기가 우주 공간에 가까워지면, 물은 응축되고 흐려지기 시작한다. 대기권 상층부에 있는 증기가 따뜻하게 이슬점 이상으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만약”의 상황들이 있을 수는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모델들에서 별들은 지구에 빛을 비추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만약 수증기 캐노피가 있었다면, 수증기와 대기권의 나머지 부분과 상호작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가스는 혼합되어 평형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붙들고 계시는 방식이다.[10] 그것이 증기였다면, 그것이 대기와 구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것이 증기인가?

성경은 ‘위의 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온도는 0℃와 100℃ 사이였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증기를 의미했다면, 왜 위의 “물”이라고 말했을까? 왜 구약에서 사용됐던 용어인 ‘증기(hebel, 히벨)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별들은 어디에 만들어졌는가?

캐노피가 실제로 지구 대기권의 일부였다면, 모든 별, 태양, 달 들은 지구 대기권 내에 창조되었을 것이다. 왜 이런가? 창세기 1:14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위의 물”은 훨씬 더 멀리 있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면 말이다.

태양(큰 광명체)과 달(작은 광명체)을 포함하여, 모든 별들은 “궁창에(in the expanse)”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것들은 분명히 우리의 대기권 내에 있지 않다. 7절의 물은 궁창 위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라. 만약 캐노피가 어린 지구의 대기권 바깥쪽에 있었다면, 14절에 의해서, 태양, 달, 별은 대기권 내에 있어야 한다는 모순이 생긴다.

더 나아가, 날개 달린 새(winged creatures)는 궁창에 날고 있었으며(창 1:20. 히브리어를 정확하게 번역한 NKJV에 의거함), 이것은 궁창의 범위를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우주 공간뿐만 아니라, 대기권의 측면을 포함하는 것이다. 성경은 창세기 1:8절에서 궁창을 “하늘(heaven)”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된다. 아마도 “하늘(sky)”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이것과 비슷하거나, 아마도 최고의 번역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본문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별들이 넓게 펼쳐질 수 있게 하며, 이는 어떤 종류의 위의 물이 대기권에 국한되지 않고, 별들을 넘어서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고린도후서 12:2절은 셋째 하늘이 있음을, 즉 대기권(공기 하늘), 우주(별이 있는 하늘), 하늘들의 하늘(느헤미야 9:6)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히브리어에서 안, 위, 아래, 등의 전치사들은 본문이 아니라, 문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창세기 1장의 14절과 17절의 의미는 모호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전치사들이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사실이므로, 우리는 창세기 1:14절의 적절한 번역에 의존해야 한다. 사실상 모든 번역본에는 태양, 달, 별들은 캐노피 모델이 필요로 하는 궁창 위가 아니라, 궁창에 창조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창세기 1장에서 새들이 날고 있는 궁창(창 1:20)과 태양, 달, 별들이 놓인 궁창(창 1:7)을 구별하려고 시도해왔다. 태양, 달, 별들은 두 번째 궁창에서 만들어졌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본문으로부터 필요한 구별이 아니며, 단지 캐노피가 가정되는 경우에만 필요한 구별이다.

히브리어로부터 새들은 땅 위 하늘의 궁창을 가로질러 날으라고 말한다.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보면, 대기권과 그 너머의 공간, 즉 “하늘”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 캐노피 모델의 지지자들은 이 두 궁창을 구별해야 하지만, 이것은 그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성경의 다른 곳에 설명되어 있지 않은, 임의적인 해석이다.


궁창은 홍수 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성경으로부터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하늘 위의 물이 노아 홍수 이후에도(사라졌다고 추정되는 시기에도),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waters above the heavens)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편 148:4).

“...그 때에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는 자 곧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windows in heaven)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더라 엘리사가 이르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열왕기하 7:2, 또한 7: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windows of heaven)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성경의 저자들은 홍수 이후의 세계에서도 홍수 이후의 다른 측면들을 말하면서 이것을 썼다. 따라서 “위의 물(waters above)”과 “하늘의 창(windows of heaven)”은 홍수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의 물”은 홍수 시에 소실되어, 오래 전에 사라진 캐노피가 될 수 없어 보인다. 이것은 다음 구절에 의해 보완된다 :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창세기 8:2).

창세기 8:2절은 단지 두 근원이 중단되고 억제된 것이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위의 구절들은 하늘 창들이 노아 홍수 이후에도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심지어 “큰 깊음의 샘들”도 멈추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때 이후 남은 갇혀있던 물들이 천천히 새어 나올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터져 나오는 방식은 아니었다.[11]


워터 캐노피는 성경적으로 필요한가?

마지막으로 성경적으로 캐노피가 필요한가? 라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1900년대 중반에 개발된 성경적 창조론 모델의 여러 측면을 다루기 위해서, 창세기 1장의 해석에 기초한 가능성 있는 과학적 모델로 승격되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모델에 매력을 갖고 있는 주님의 형제자매들에게 이것을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지난 세기에, 나는 캐노피 모델을 소개받았고, 그것이 매력적인 것을 발견했다. 몇 년 동안, 나는 그것을 신봉했지만, 더 많은 연구를 마친 후에, 다른 많은 창조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오래 전의 성경 주석가들도 하늘의 창이나,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워터 캐노피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한 해석은 그들이 보기에 필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최근 100년 이내의 성경적 해석으로 추가된 것이다. 캐노피 모델은 성경적 지구 역사에 대해 회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본문의 특정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서 개발된 과학적 해석이었다. 그러나 세밀히 살펴볼 때, 그것은 필요하지 않으며, 그것과 관련된 심각한 성경적 문제를 갖고 있다.


과학적 문제

캐노피 모델들은 분명히 극복하기 어려운 성경적 문제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종종 캐노피 모델의 과학적 문제점도 지적해왔다. 아래에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이것은 어떻게든 연구자들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연구는 가치 있는 것이고, 그 모델이 변형 및 유형을 갖고 작동될 수 있는지, 작동될 수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유용하고 필요하다. 모델의 개발과 테스트는 과학적 탐구의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많은 모델들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을 고맙게 생각하고, 박수를 보내며, 연구자들은 다른 측면들을 연구하여, 어떤 것을 놓쳤는지를 알아볼 것을 권면한다.


온도

캐노피 없이 지구의 온도가 조절될 수 있었는가?에 답하기 위해, 지구의 기온은 대기와 바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에 기후가 조절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고려해야 한다. 홍수 이전의 지하에 많은 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양의 해양생물들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지표면 또는 근처에 물이 있었다. 화석기록의 거의 95%가 얕은 바다생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알 수 있다. 홍수 이전에는 지구 표면의 약 70%가 바다였는가? 그것은 창조론자들도 여전히 논쟁하고 있는 질문이다.

초월적 지혜의 하나님은 사람들이 옷을 입지 않고도, 땅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도록, 이상적 기후(창세기 3:8절과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의 완벽한 세상을 설계하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실 것이다.(창 2:25, 1:28). 홍수 이전의 저주받은 세계에서도, 지구는 온도와 기후가 조절될 수 있는 더 나은 것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수증기 캐노피는 지구의 온도 조절에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수증기 캐노피는 태양의 적외선을 모두 흡수하고, 뜨거워져서, 아래쪽으로 전도되어 지표면을 가열할 것이다. 따라서 여러 캐노피 모델들은 온실효과로 인한 열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타당한 모델이 작동하려면, 태양 복사선이 약 25% 감소해야한다.[12] 열 문제는 실제로 이 모델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홍수 이전의 환경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대신에, 문제를 발생시킨다.[13]


물의 근원

노아 홍수의 주요한 물의 근원은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짐으로 기인한 것이다.(창 7:11). 이 물은 아마도 간접적으로 "하늘의 창"에 물의 일부를 제공했을 것이다. 대홍수 동안 비로 떨어진 막대한 양의 물을 제공하기 위해서, 대기권 위의 수증기 바다가 필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딜로(Dillow)의 수증기 캐노피가 존재했고(강수 물로 12m), 홍수 시에 대부분 강우로 붕괴되었다면, 응축열(latent heat of condensation)은 대기권을 끓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디만(Vardiman)의 모델(강수 물로 0.6~1.8m)과 같이 별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캐노피는 40일 밤낮으로 막대한 량의 비를 내리게 한 충분한 수증기가 될 수 없어 보인다. 따라서 수증기 캐노피는 홍수 시의 강우를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긴 수명

일부 사람들은 홍수 이전에는 캐노피로 인해서 지표면 대기압을 높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더 나은 치유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긴 수명과, 더 큰 신체 크기를 갖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소의 증가(그리고 위험한 자유라디칼을 생성하는 산화)는 몇 가지 측면에서는 유익하지만, 대부분 생물학적 시스템에 해를 끼친다. 따라서 항산화제(카탈라제 및 비타민 E, A, C 등을 포함하여)가 생물체 내에서 이러한 자유라디칼(free radicals)을 감소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홍수 전후의 수명(그리고 많은 생물체의 거대한 크기)은 캐노피로 인한 홍수 이전의 산소 수준 보다는, 홍수 이후 인구가 8명으로 줄어들면서, 그리고 바벨탑에 의한 나뉘어짐으로 발생한 유전적 병목(bottlenecks) 현상으로 더 잘 설명된다. 이러한 점은 이미 다른 글들에서 논의했었다.[14]


홍수 이전의 기후

캐노피 모델과 관계없이, 창조론자들은 일반적으로 아담의 타락 이전에는 기후가 완벽했었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것은 공기가 정체되어, 매일 21℃ 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낮과 밤에 온도 변화가 있었다.(창 3:8). 이러한 온도 변동은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매우 타당하다.

아담과 하와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창 1:28). 완벽한 세상에서 죄를 가릴 옷이 필요 없었다. 아담은 옷을 입지 않고도, 땅에 충만해질 수 있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온도 변화는 오늘날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커다란 온도 변화가 있었다면, 아담과 하와는 매우 불행했을 것이다.

타락 이후에도, 이러한 날씨 변화는 최소한의 변화만을 보였을 것이 이치에 맞는다. 그러나 지구를 파괴하고, 대륙들을 재배치했던, 전 지구적 홍수로 인해서, 극단의 온도들은 뚜렷해졌다. 이제 빙상과 홍수로 밀려올라간 높은 산들을 갖게 되었다.(시 104:8). 우리는 이제 극심한 더위와 추위, 물이 없는 사막을 갖게 되었다.


성경적 모델과 격려

AiG(Answers in Genesis)는 과학적 그리고 신학적 모델의 연구와 개발을 장려한다. 그러나 주제와 관련된 모든 성경 구절을 잘 이해하는 것이, 과학적 연구와 모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며, 모든 결론에 대한 최종 판결자는 성경이야만 한다.

캐노피 모델은 여전히 희망의 빛이 남아있으며, 지지자들은 더 신중한 설명을 위해 연구들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한 모델이 수용되기 위해서는, 성경적, 과학적 난관들이 철저하고 확실하게 해결되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연구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한 과학적 모델이 성경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의 권위로서 방어해야만 하는 것은 성경이다. ‘위의 물’이 아래의 물과 분리되어 있음을 반드시 확인해야하지만, 제한적인 과학적 이해로 성경을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캐노피 모델을 느슨하게 유지해야할 것이다.


Footnotes

1. This is not to be confused with canopy ideas that have the edge of water at or near the end of the universe (e.g., white hole cosmology), but instead the models that have a water canopy in the atmosphere, e.g., like those mentioned in J.C. Whitcomb and H.M. Morris, The Genesis Flood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1961); J.C. Dillow, The Waters Above: Earth’s Pre-Flood Vapor Canopy, Revised Edition (Chicago, IL: Moody Press, 1981); or John C. Whitcomb, The World that Perished (Winona Lake, IN: BMH Books, 2009).

2. This is in large part due to the influence of Joseph Dillow, whose scientific treatise left only the vapor models with any potential. He writes on page 422 of his treatise: “We showed that only a vapor canopy model can satisfactorily meet the requirements of a the necessary support mechanism.” Dillow, The Waters Above: Earth’s Pre-Flood Vapor Canopy.

3. Whitcomb and Morris, The Genesis Flood.

4. Dillow, The Waters Above: Earth’s Pre-Flood Vapor Canopy.

5. John Gill, Exposition of the Bible, Genesis 1:7.

6.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Genesis 1:7.

7. Matthew Henry, A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Genesis 1:7.

8. See also Genesis 1:17.

9. Would one appeal to the supernatural? If so, it defeats the purpose of this scientific model that seeks to explain things in a naturalistic fashion.

10. Again, would one appeal to the supernatural? If so, it defeats the purpose of this scientific model that seeks to explain things in a naturalistic fashion.

11. I would leave open the option that this affected the ocean sea level to a small degree but the main reasons for changing sea level was via the Ice Age.

12. For more on this see “Temperature Profiles for an Optimized Water Vapor Canopy” by Dr. Larry Vardiman, a researcher on this subject for over 25 years at the time of writing that paper; https://icr.org/i/pdf/technical/Temperature-Profiles-for-an-Optimized-Water-Vapor-Canopy.pdf.

13. Another issue is the amount of water vapor in the canopy. Dillow’s 40 feet of precipitable water, the amount collected after all the water condenses, has major heat problems. But Vardiman’s view has modeled canopies with 2 to 6 feet of precipitable water with better temperature results and we look forward to seeing future research.

14. Ken Ham, ed., New Answers Book 2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2008), p. 159–168; Bodie Hodge, Tower of Babel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2013), p. 205–212.


출처 : AiG, December 18, 2019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environmental-science/state-of-canopy-model/

번역 : 미디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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