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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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과정신론 : 성경과 조화될 수 있는가?

미디어위원회
2021-01-06

과정신론 : 성경과 조화될 수 있는가?

(Process theism : Compatible with the Bible?)

Shaun Doyle


       과정신론(process theism) 또는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은 하나님과 이 세계가 상호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과정 중에(in the process)’ 있다는 생각으로, 둘 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고, 성장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독립성과 더불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당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하셨다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거부한다. 미국에 거주 중인 에밀리아(Emilia W.)는 이러한 관점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해왔다.


안녕하세요.

CMI(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의 웹사이트에서 과정신학에 관련된 정보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과정신론자인 친구와 하나님과 창조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는 성경은 하나님이 무로부터 창조하셨다고 결코 말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된 모든 성경 구절들은 원래 존재하던 물질로부터 모든 것을 “형성”하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CMI의 많은 글들처럼 열역학 제2법칙을 사용하여 우주가 시작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려고 합니다(그렇기에 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창조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주장으로 인해 우리의 믿음이 과학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으로 보일까 두렵습니다. 만약 열역학 제2법칙이 반증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과정적 관점(Process view)을 받아드려야 할까요?

그 친구가 하나님에 대해 믿는다고 하는 말의 대부분은 나에게 무의미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친구는 고등교육을 받았기에, 제가 그것을 이해할 만큼 똑똑하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저는 CMI로부터 과정신론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주어야 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CMI의 숀 도일(Shaun Doyle)의 답변이다.


우리 웹사이트에는 과정신론에 대한 몇 가지 간단한 글들이 있다. (검색 창에 "과정신학"을 입력하면 볼 수 있다. 과정신론과 범신론 사이에 많은 중복이 있기 때문에 "범신론"을 검색하는 것도 유용할 수 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정신론을 직접적으로 다룬 글은 없다. 나는 이 관점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할 것이지만, 과정신론은 상당히 광범위한 흐름의 신학적 관점이기 때문에, 이것들 중 일부는 당신의 친구에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과정신론은 하나님과 창조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창조물과 함께 진화하는 '과정 중의' 하나님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점점 더 좋아진다고 본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온갖 종류의 불완전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대부분의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다고 보기에,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확립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내에서도 주장하는 범위는 다양하다.


과정신론과 하나님의 독립성

그렇다면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biblical theism)과 과정신론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홀로 존재하실 수 있는가? 전통적인 유신론자는 ‘예’라고 말하지만, 과정신론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과정신론자에게 하나님은 하나님 외의 어떤 대상과 진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

과정 형이상학(process metaphysics)에서, 현실세계의 구조는 사회적이며 필연적이다. 따라서 그것은 사회적 하나님이라는 견해를 추구한다. 즉 하나님은 비신적인 실체(non-divine actualities)와 반드시 관계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2]

이것은 하나님 외의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비신적인 실체도 원인이 되는 존재(causal being)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존재는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창조하도록 영향을 주는 존재여야 한다. 이것은 과정신론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독립적이라는 생각을, 즉 하나님은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림 설명 : 과정신론은 많은 면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동등하게 여기고, 둘 다 성장하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필요로 하시지도 않고, 성장하실 필요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이미 완벽하시다. 오히려 그 분은 세상을 무에서부터 창조하셨고, 그의 권능으로 세상을 붙들고 계시므로, 우리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신성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만이 필연적이고 독립적이라면, 모든 것에는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며,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그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3]

과정신론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완전한 의존성을 강압적인(coercive) 것으로 보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손상시킨다. 그들은 살아있지 않은 대상(물체)일지라도 절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하나님은 그러한 근본적인 특성(절대적인 자율성)을 파괴할 수 없을뿐더러, 무에서부터 그러한 특성이 존재하도록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과정신론의 하나님의 독립성에 대한 거부는 거의 항상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순서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거부는 과정신론이 하나님의 독립성을 거부하는 근본적인 증상(symptom)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명백하고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독립성을 확언한다. 예로 사도행전 17:24-25절을 들 수 있다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이 구절은 두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과정신론을 부정한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라는 구절은 하나님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하나님 이외의 존재들로부터 절대로 받으시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는 분(self-sufficient)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구분한 것에 주목하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셨음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도 지으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에 의구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이 구절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하나님 이외의 존재를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과정신론과 치명적으로 모순된다.

또 다른 중요한 구절은 로마서 11:34~36절이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서정적 표현의 이사야 40:13절과 욥기 41:11절을 인용하면서,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구약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로마서 11장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과 상호관계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시다. 오히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정신론이 아니다.

역대상 29:14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신약의 구절들과 동일한 생각을 반영한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동일한 관점이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분이시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세 구절 모두에서, 무로부터의 창조 문제는 정도가 다르지만 명백하게 나타나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 외에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신론은 하나님이 자신 외의 어떤 것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말하므로, 과정신론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한 묘사와 모순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나?(Did God create time?)”와 “하나님은 존재하기 위해 논리에 의존하시는가?(Does God depend on logic to exist?)”을 참조하기 바란다.)


과정신론과 무로부터의 창조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는 어떤가? 만약 당신이 무로부터의 창조를 의미하는 우주의 시작을 주장하고 싶다면, 당신이 직면하게 될 여러 반박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은 시작이 없는 우주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열역학 제2법칙이 그러한 주제에 관련될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과 창조물 모두 경우에 따라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만약 시간이 ‘어떤 것의 이전/이후’ 관계라면, 무변화성은 무시간성이다. 또한 만약 하나님과 세상의 근본적인 물질들이 모두 변화 없이 공존했고, 하나님께서 그 물질들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켜 만드신 것이라면, 그것은 과정신론자들에게 무로부터의 창조 없이 절대적인 시작을 확립해주는 길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를 정적인 것에서 시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은 완전히 정적인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다.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위반할 수 없다고 말하므로, 이 생각은 과정신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만약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것을 한번 바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다시 바꾸지 않는 것일까? 과정신론자들은 기적을 상정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 

성경적 이슈에 관해서는, 먼저 성경의 '창조(creation)'라는 단어가 항상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부터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 이는 그 단어가 무로부터의 창조와 항상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단어가 갖는 의미의 범위는 일반화하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하다. 묘사된 창조 활동의 종류는 문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단어 ‘바라(bara)’(히브리어로 ‘창조하다’를 뜻하는 동사)를 보자. 창세기 1:27절에서, 이 단어는 인간을 창조하는데 세 번 사용되었지만,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존재했던 물질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창세기 2:7절을 봤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래 있던 물질을 사용하여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시편 51: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에게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bara)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윗이 물리적 상태의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질은 이 구절과 관련이 없다. 또한 창세기 1:1절에서 사용된 바라(bara)라는 단어는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하늘과 땅을 형성하셨는지 우리에게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과 땅(the heavens and the earth)’이 만들어진 질서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메리즘(merism, 양단법)으로 봤을 때,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그것이 형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라(bara)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피조물들이 이미 존재하는 물질에서 나왔는지 아닌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된 정보는 다른 고려사항들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또한 창세기 1:1절은 메리즘과는 다르게, 무로부터의 창조를 보여준다는 견고한 주장들이 있다. 예를 들어, 2절은 하나님이 창조 활동을 시작하신 환경이 아니라, 1절에서 묘사되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결과로 생겨난 환경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다른 고대 근동지역의 창조 이야기들은 창세기 1:2절에서 보여주는 창조의 초기 상태를 (구분되지 않은 물 덩어리로서) 공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창세기 1장과 다르게, 다른 고대 근동지역의 창조 이야기들은 "x, y, z가 존재하기 전에"와 같은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유래된,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물 덩어리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의 창세기 1:1절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고 시작되며, 2절의 나눠지지 않은 물 덩어리의 문자적 소개에 앞서, 하나님께서 세계의 완전성을 창조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고대 근동우주론과 창세기1장(Ancient Near Eastern cosmogonies and Genesis 1)”을 참조하기 바란다.)

게다가 창세기1:1과 명백한 평행구절을 이루고 있는 요한복음 1:1~3절은(요한복음 1:1의 첫 번째 절의 형태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의 창세기 1:1과 일치한다) 요한복음 1:3절에서 등장하는 "만물(all things)"이 말씀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선포와 함께, 무로부터의 창조를 내포하고 있는 창세기 1:1절을 요한이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조나단 사파티(Jonathan Sarfati) 박사의 저서 “The Genesis Account”을 참고하기 바란다.

골로새서 1:16절은 요한복음 1장의 "만물"이라는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여,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강조한다. 이는 천사의 계급을 포함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하셨음을 말한다. 만약 "보이지 않는" 것들도 창조되었다면, 어떻게 이미 존재했던 물질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히브리서 11:3절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부터 세상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첫째,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는 구절은 보이는 세계는 보이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따라서 보이는 세계는 어떤 것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것은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졌다거나, 혹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구절은 이러한 부정(보이는 세계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어떻게 대조될 수 있을까? 앞의 절은 그 대답을 제공한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이 세계가 이전에 존재하던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이 부정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전한 능력에 의해서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것과 대조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졌다는 옵션은 언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대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명백한 확언으로 간주된다.


결론

하나님이 관계를 갖고 계심에 틀림없다는 과정신론자들의 말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신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신적 존재가 아닌 것과 관계를 갖고 계신다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삼위일체가 그 해답을 제공한다. 신적 관계의 필요성은 신적 존재들, 즉 성부, 성자, 성령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창조는 '강압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신적 연합(삼위일체)과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주권적인 은혜의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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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Panentheism is the idea that the world is in some sense located within God, such that it is a part of God. Process theism is usually panentheistic, but it formally need not be. In fact, it could be argued that panentheism doesn’t preserve God’s necessity for external relations so crucial to process theism, since everything is actually internally located in God in panentheism. 

2. Viney, D., Process theism, plato.stanford.edu, 28 June 2014. This necessity is limited to the (mutable) matter of the cosmos, not the current form of the cosmos. Process theists like Alfred North Whitehead imagined the universe having different epochs with different laws of nature. 

3. Creatio ex nihilo arises from this and the belief that all contingent things came into being (i.e. they had a beginning). Since nothing comes from nothing, if everything came into being, it had to come into being purely by God’s will apart from any pre-existing matter—i.e. creatio ex nih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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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16. 6. 11. (GMT+10)

주소 : https://creation.com/process-theism

번역 : 조항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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