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미디어위원회
2020-02-20

가이아 이론과 자연숭배

(Gaia and Selectionism's Nature Worship)

by Randy J. Guliuzza, P.E., M.D.


      생명체에는 목적을 갖고 함께 작동되는 많은 시스템들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심장과 혈관으로 구성된 순환기계는 생명유지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의도적인 결과는 항상 의지를 가진 주체의 행동을 나타내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연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심장과 혈관 같은 것들이 무작위적 과정으로 우연히 생겨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진화론적(반-설계적) 세계관을 갖고서, 자연(nature)이 주체가 되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적합한" 특성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창조론자들이 목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선택론자들은 자연선택 과정에 의한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고 인식한다.

선택론자(selectionists)들은 이 복잡한 복잡성 뒤에 있는, 의지적이고 창조적인 행위자(agent)로서 하나님을 자연(nature)으로 대체했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러한 일이 있을 것임을 정확하게 말씀해 놓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생물들 사이의 밀접한 상호의존성의 기원에 대한 선택론자들의 가설을 검토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자연숭배로 바꾸어버렸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종교적 관습을 설명하고 있다. 25절에서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하던 일을 보여준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롬 1:22~25) [2]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창조되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 논문에는, 자연에 신과 같은 능력을 투사하는 일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자연을 "가이아(Gaia)"로 의인화하고 있다. 영국 엑서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의 진화생태학자인 팀 렌톤(Tim Lenton)과, 프랑스의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가 Science 지에 게재한 글 "가이아 2.0(Gaia 2.0)"에서 자연의 인식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3] 이 논문은 현대의 진화론자들이 어떻게 종교적으로 하나님보다 자연숭배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학 저널들은 가이아처럼 자연을 숭배한다.

자연에 대한 특별한 명칭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배했던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1970년대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과 린 마르굴리스(Lynn Margulis)가 처음으로 제안했던, 가이아 이론(Gaia hypothesis)은 지구의 물리적 생물학적 과정들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자기-조절적이고, 본질적으로 지각 있는(sentient)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

호주의 철학자 피터 고드프리-스미스(Peter Godfrey-Smith)는 가이아가 의미하는 바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

지구는 살아있는 생물체가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 조절을 하고, 변화에 반응한다고 그(러브록)는 주장했다. 지구는 스스로 살기 위해 행동한다... 가이아는 생물체에서 들어있는 종류의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통해서, 살아있는 지구가 스스로 유리한 상태가 되도록, 온도와 산소 같은 요소들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설에서 가장 강력한 진술은 지구가 실제로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5]

요컨대, 가이아는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유리한 조건에 도달하기 위해서, 탐지 활동을 할 수 있는, 본질적으로 지각이 있는, 살아있는 행성이라는 것이다. 팀 렌톤(Tim Lenton)은 가이아를 하나의 이론적 틀로 쓰지 않았다. 가이아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며, 지구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작동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가이아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사람은 가이아와 하나라고 느끼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가이아는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이아 내에서 이러한 의식적 선택을 하는 것은, 가이아 2.0이라 불리는, 근본적으로 가이아의 새로운 상태“라고 믿고 있었다.[3]

렌톤은 사람이 만든 기계와 가이아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을 서로 대조함으로서, 자연에게 의지와 지혜를 부여하고 있었다 :

가이아에 의해서 이루어진 철저한 조사는 많은 인간적 혁신들의 품질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이아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혁신은 매우 열악하게 결합되어있고, 지속 불가능한 발명의 집합체이다. 이는 인간이 발명을 중단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학자들이 가이아만큼 똑똑해지도록 관심을 기울여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

진화론자인 포드 두리틀(W. Ford Doolittle)의 최신 글 "가이아의 만들어지는 진화적 감각"은 동일한 수준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었다.[6] 그는 선택론과 가이아 사이의 두 관련성을 전개시키고 있었다. 첫째, 진화론자들은 네 발 가진 육상동물이 고래로 변하는 것과 같은 생생한 상상력을 활용하여,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이 하나의 개별 생물체를 구성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고드프리-스미스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때 한 생물체라는 개념이 완화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5] 그 "개체"는 서로 다른 다중의 생물 개체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생태계 수준의 개체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리틀은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들은 가이아(Gia)라는 집단적 "생명체의 특성"에 흡수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둘째, 두리틀은 이 혼합에 진화를 추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이해”를 더욱 “잡아 늘려야”만 했다.[6] 생물체와 자연선택에 대한 그의 변경된 견해는 모든 "함께 살아있는 것들[가이아]이 단일 선택 단위를 구성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6]  그래서 하나의 외부 행위자(agent)로 기능을 하는 자연선택이 지구 역사 전체에 걸쳐 가이아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는 가나안의 신 바알보다 더 효과적이었을까? 가이아가 의지력을 갖고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은 진화론자들의 마음에만 있는 것이다. 가이아는 과학으로 위장된, 자연을 의인화한 미신인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의도적인 설계처럼 보이는 생물학적 기능의 기원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고, 자연에게 돌리기 위한 궁여지책의 왜곡된 이론이다. 다윈이 하나님이라는 선택적 행위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선포했을 때, 그의 주장은 위대한 공로로 여겨지게 되었다. 다윈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고 불리는, 완전히 물질주의적인 메커니즘을 불러냄으로써, 그러한 일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유사-행위자 주변에 있던 비밀통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불법적 비유를 통해, 그 유사-행위자를 영리하게 은폐했다. 그러나 다윈의 이중성에 괴로워하던 두 명의 저명한 무신론자들이 커튼을 젖혀버렸다 :

친숙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진화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지적 원인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는 육종에 의한 (인공)선택과 자연선택 사이의 검증되지 않은 비유로 그것을 숨겼다.[7]

간단히 말해서, 사람 육종가들은 실제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음(minds)을 갖고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자연을 사람처럼 의인화한다.

다윈은 자연선택을 통해서 과학 내로 자연숭배를 재도입했다.[8] 무신론적 선택론자와 유신론적 선택론자 모두 환경이 생명체의 다양성을 형성하는 행위자(agency)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 이 본질적으로 미스터리한 유사-행위자(pseudo-agency)는 모든 진화론적 설명에 생기를 주었고, 우리가 보았듯이, 미신적인 가이아라는 개념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선택론(selectionism)은 자연(nature)에 생물을 "선호" 또는 "제거"할 수 있는 선택적 능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불완전한 것임을 발견해야만 한다. 일부 종교적 실천가(진화론자)들은 무생물인 것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어떻게 생각이 없는 물체가 선택과 같은 정신적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가? 지적설계론자인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다윈 이전에는 선택하는 능력은 대게 지성(intelligences)에 의한 것으로, 즉 선택의 결과를 심사숙고하여 반영할 수 있는 의식이 있는 행위자에 의한 것으로 국한됐었다.[9] 

마찬가지로, 영국의 진화론자인 호지(M. Hodge)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었다 :

어느 누구도 선택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주체로서, 자연을 쉽게 또는 무심코라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다윈의 시대 이전에 그러한 발상을 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10]

다윈의 동료들도 이 미스터리한 의지력을 과학에 도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호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문제의 한 원인은 다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명사가 동사를 지배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F. Darwin, 1887, vol. 3, p. 46). 그러한 사용은 자연선택을 하나의 행위자로서 구체화하고, 심지어 신성시하고 있었다.[10]

동사를 지배하는 명사”로서 사용되었다는 이 간결한 말은 크리스천과 과학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크리스천들은 사람들이 물체나 상상의 추론을 어떻게 신격화할 수 있는지를 인식해야한다. 즉 물체가 의지력을 갖고 있다고 상상한다. (예 : "바알 행전").

또한 이러한 행동은 과학을 위협한다. 가이아 이론을 믿고 있는 선택론자들은 가이아가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다윈과 마찬가지로, 가이아(명사)가 행동을 한다(동사)고 말한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은 대부분 돌연변이를 볼 수 없다"거나, "자연선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이라고 말할 때, 동일한 방식을 사용한다. 진화론자인 스티븐 탈보트(Stephen Talbott)는 선택론이라는 신비주의로부터 그 이론을 구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연선택은 과학 이전 시대의 마술과 같은 힘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11]

최근에 탈보트는 왜 다윈의 자연선택이 생물학을 구속하고, 이제는 종교적 미신이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선택”을 대체할 단어가 없다는 것이, 선택론자들로 하여금 자연선택을 신비스러운 감독자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

자연선택은 항상 일을 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생물의 몸체와 행동을 만들고, 특별한 모습, 특정 유전체 영역에 대한 작용, 선호 또는 비선호 특성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명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생물학자들의 자연선택에 대한 참고문헌이 비교적 적다는 것은, 선택적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사람처럼 잘 설계된 활동을 하는 메커니즘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선택론자들이 육종가의 "인공선택"을 연상케 하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진화적 적응이 육종가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신비주의적 신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선택을 하는 행위자로서 "자연선택"을 명백하게 제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지 "비유"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이다. 매우 명확한 의도를 가진 "선택"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선택능력을 가진다는 개념은 현대 생물학자들의 사고에 깊게 뿌리내려있는 진화론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12]


오늘날의 자연숭배는 선택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학계의 선도적 저널들이 왜 가이아(의인화된 자연)에게 신뢰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탈보트가 관측한 바와 같이, 그것은 진화론자들이 선택론자의 세계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가이아 가설을 교체한다면, 또 다른 미신적 가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서 1:25절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자연이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것으로 섬길 것이라고 말한다. 두리틀과 같은 일부 진화론자들은 지구, 달, 별, 은하 등도 거대한 생물체처럼, "우주적 자연선택"에 의해서 작동되고 있다고 상상한다.[13] 그들은 “우주는 법칙, 의미, 복잡성 등을 부여하는, 바깥에 있는 어떤 지성의 필요 없이, 자기-응집적이고, 자기-창조적인 전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14]

성경은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완벽하게 말씀해놓고 있다. 칼 세이건과 같은 무신론자들은 자연을 "숭배와 경외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 과학에 의해 밝혀진 것처럼, 우주의 웅장함을 강조하는 오래된 종교나 새로운 종교들은 기존의 믿음을 수선하여 숭배와 경외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만간 그러한 종교가 나타날 것이다.[15]

그러한 종교가 등장한 것 같다. 로마서 1장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그 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꾸어, 자연이라는 피조물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2] 성경 말씀은 언제나 옳았다. 



References

  1. Bauer, W., W. F. Arndt, and F. W. Gingrich. 1979.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2n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61, 511, 891.
  2. For a full translation of Romans 1:18-25, see Guliuzza, R. J. 2017. Engineered Adaptability: Engineering Principles Point to God’s Workmanship. Acts & Facts. 46 (6): 16-19.
  3. Lenton, T. M. and B. Latour. 2018. Gaia 2.0. Science. 361 (6407): 1066-1068.
  4. University of Maryland. Sulfur finding may hold key to Gaia theory of Earth as living organism. ScienceDaily. Posted on sciencedaily.com May 15, 2012, accessed November 21, 2019.
  5. Godfrey-Smith, P. 2015. The Ant and the Steam Engine. London Review of Books. 37 (4): 18-20.
  6. Doolittle, W. F. 2019. Making Evolutionary Sense of Gaia. Trends in Ecology & Evolution. 34 (10): 889-894.
  7. Fodor, J. and M. Piattelli-Palmarini. 2010. What Darwin Got Wrong.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162.
  8. Guliuzza, R. 2011. Darwin’s Sacred Imposter: Natural Selection’s Idolatrous Trap. Acts & Facts. 40 (11): 12-15.
  9. Dembski, W. A. 2004. The Design Revolution.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63.
  10. Hodge, M. J. S. 1992. Natural Selection: Historical Perspectives. Keywords in Evolutionary Biolog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13.
  11. Talbott, S. L. Can Darwinian Evolutionary Theory Be Taken Seriously? The Nature Institute. Posted on natureinstitute.org May 17, 2016, accessed September 14, 2018.
  12. Talbott, S. L. Let’s Not Begin With Natural Selection. The Nature Institute. Posted on natureinstitute.org July 19, 2019, accessed November 7, 2019. Emphasis in original.
  13. Smolin, L. 2004. Cosmological natural selection as the explanation for the complexity of the universe. Physica A: Statistical Mechanics and its Applications. 340 (4): 705-713.
  14. Rifkin, L. The Logic and Beauty of Cosmological Natural Selection. Scientific American. Posted on blogs.scientificamerican.com June 10, 2014, accessed December 1, 2019.
  15. Sagan, C. and A. Druyan. 1994. Pale Blue Dot: A Vision of the Human Future in Space. New York: Ballantine Books, 50.


* Dr. Guliuzza is ICR’s National Representative. He earned his M.D. from the University of Minnesota, his Master of Public Health from Harvard University, and served in the U.S. Air Force as 28th Bomb Wing Flight Surgeon and Chief of Aerospace Medicine. Dr. Guliuzza is also a registered Professional Engineer.

Cite this article: Randy J. Guliuzza, P.E., M.D. 2020. Gaia and Selectionism's Nature Worship. Acts & Facts. 49 (2).


출처 : ICR, 2020. 1. 31.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gaia-and-selectionisms-nature-worship/

번역 : 미디어위원회




Russel Grigg
2020-01-29

중국 복음 선교에 진화론이 미친 영향 

(The Impact of Evolutionism on the Missionary Evangelization of China)


     중국에 상주한 첫 번째 기독교 선교사는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이었다. 그는 그 임무를 위해 준비하는 데 있어서 영국에서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조직신학 및 의학을 공부했으며, 중국어를 배우고, 런던 선교사 협회에 참석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네가 나와 같이 가도록 권유하고 싶다. 중국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 길이 없는 3억 5천만 명의 영혼을 생각해 보라...”[1]

그는 중국에서 중국어 문법을 썼으며(1812), 성경 전체를 중국어로 번역했고(1807-1819), 세 권짜리 중국어-영어 사전을 편찬했는데(1815~1823), 이들 모두는 이후의 선교사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가치의 도움이 되었다.

그 다음 25년 기간에는 정치적 활동의 결과로 선교사들의 기회가 대단히 증가되었다. 첫 번째 아편전쟁이 끝남에 따라[2], 1842년 난징조약으로 홍콩 섬이 영국에게 영원히 양도되었으며[3], 상하이, 광동, 닝보(寧波, Ningpo), 진주(晉州, Fuchow), 아모이(Amoy, 샤먼(Xiamen)의 구칭) 등 5개의 ‘조약’ 항구가 설치됐는데, 이는 서방 국가들로 하여금 거주와 무역의 권리를 주는 것이었다. 1858년과 1860년에는 추가의 ‘조약항(treaty ports)’과 ‘개방’ 도시들이 설치되었다. 이는 선교사들의 지위를 혁신시켜서, 이제는 ”제국 내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으며, 각 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자기들의 믿음을 전파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소유하게 되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의 활동이 이들 ‘개방’된 항구로 제한되었다.


허드슨 테일러 – 다음 세대 개척자

다음 50년 내에 중국으로 갔던 영국, 미국 및 유럽의 많은 선교사들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아마도 영국 요크셔 출신의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1832~1905)일 것이다.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중국인들에 대한 깊은 사색의 결과, 그는 중국 내지의 지방으로 선교사들을 보낼 목적으로 1865년에 중국내지선교회(CIM, China Inland Mission)를 창설했다.

허드슨 테일러의 믿음의 원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공급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선교사들에게 ”기도만으로 하나님을 통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법을 배울 것”을 촉구했다. 테일러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및 라틴어를 배웠으며, 나중에는 몇 가지 중국 방언으로 설교할 수 있었다. 초기의 CIM 멤버로 24명의 선교사가 있었는데, 중국 내지의 선교사가 없는 11개 지방에 각각 2명씩의 선교사와 몽골을 위한 2명의 선교사였다. 허드슨 테일러가 죽은 1905년까지 그 숫자는 828명에 이르렀다. 루스 터커(Ruth Tucker)는 그녀가 쓴 기독교 선교의 역사에서 이렇게 썼다:

”사도 바울 이래로 19세기의 허드슨 테일러보다 더 넓은 비전을 가지고 보다 더 체계적인 복음전도 계획을 지리적으로 멀리까지 수행한 사람은 없었다.”[5]


.제임스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1832–1905)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에 방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899~1901의 의화단 사건(Boxer Rebellion) 때[6], 거의 2,000여 명의 중국 기독교인들과 186명의 선교사(아내와 아이들을 포함하여)들이 학살당했다.[7] 그러나 여태까지의 박해 중에서 다른 어떤 나라에서 겪었던 것보다 가장 극심했던 중국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의 수난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중국으로 모으도록 했다. 복음주의자들은 학살의 희생에 고무되어, ‘위대한 사명에 복종’하며, 전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가리라는 데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도전받았다.



복음 선교의 10년

의화단 사건이 진압됨에 따라, 중국의 선교 사역에 예외적인 기회가 동텄다. 여기에는 여러 나라의 여러 교파에서 많은 선교사와 선교단체들이 동참했으며, 선교사들이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복음전파에 더 많이 활약했다.[8] 또한 자라나는 중국 교회를 교육, 의학 및 기독교 문학 프로그램으로 양육할 뿐만 아니라, 아편 및 여인들의 전족 등과 싸우며, 고아원을 열기도 하고, 맹인, 귀머거리, 벙어리 등을 위한 학교를 열기도 했다.

교회 역사가 라토렛(K. S. Latourette) 교수에 따르면, 중국 선교사의 숫자는 1889년 1,296명에서 1905년에는 3,445명, 1915년에는 5,462명으로 증가했다.[9] 그리고 ”1914년까지 모든 주요 도시 및 보다 작은 많은 도시에서 실질적으로 기독교 선교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10]


진화론의 충격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은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여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세계 경제와 서구인들의 지위에 미친 해로운 영향, 중국 민족주의의 등장뿐만 아니라, 노상강도, 회의론 및 불가지론의 확산, 존 듀이(John Dewey)와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11] 등과 같은 인본주의자들이 방문함으로써 진화론 철학이 번지고,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없다는 배경 하에” 1922년에 중국 반기독교 연맹(Chinese Anti-Christian Federation)이 설립되었으며, 기독교는 숨겨진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2]

1920년대 중반에는 본국에서도 처음으로 선교 지원자와 선교 자금이 줄어들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이 되지 않아서, ”기독교 선교는 본국 차원에서 가장 혼란스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거대한 운동이 시작된 이래 125년 만에 그들에게 닥친 것이었고, 중국에서는 그들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13]

비록 선교사의 수는 1918년에 6,395명에서 1925년에 8,158명으로 증가했지만, 이 증가율은 1904년에서 1914년의 증가율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라토렛 교수에 따르면, 여기에 기여한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본국에서 진화론적 자연주의(evolutionary naturalism) 및 그와 같은 부류와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이 일어난 때문이었다.

라토렛 교수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것은 복음의 타당성 및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우수성을 확증할 수 없도록 만든 하나의 커다란 손실이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에게 쏟아 부어지는 홍수처럼 많은 새로운 지식들과 그들의 믿음을 조화시켜야만 했다.... 기독교는 진리인가? 지질학, 진화론, 사회학, 심리학 등은 우주 밖으로 하나님을 몰아냈는가? 종교는 단지 원시적인 ‘귀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전한 것인가? 영원한 생명은 망상인가? 성경은 초기 시대에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지어낸 오류투성이의 책인가? 기독교 윤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몇몇 사람은 솔직히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었으며, 초기에 가졌던 확신을 고수하려고 하면서도 열정이 없어져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믿음에 대한 고백을 다시 짜면서, 새로운 (진화론적) 발견들과 일치하도록 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의 역사적 교리(creeds)와 자주 멀리 벗어났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라고 불리던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시도를 파괴적인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낙인찍고, 성경은 오류가 없으며, 오래된 교리들은 최종적인 것이며,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과학적 ‘발견들’은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했다.”[14]

그 위기는 심각했다. 진화론은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구속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필요성을 훼손시켰다. 복음의 한 중요한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혈족 구속자(kinsman-redeemer)라는 것이다.(사 59:20). 혈족 구속자는 그가 구속할 사람과 친척 관계이어야만 한다.(레 25:47–49, 룻기 3~4장).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 사람으로부터 후손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행 17:26). 최초의 사람은 아담이고(고전 15:45), 그는 마지막 아담이신(고전 15:45) 그리스도의 조상인 것이다.(눅 3:38). 진화론은 역사적 아담을 부인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혈족임을 부인한다. 그래서 이것은 모든 선교적 활동을 떠받치고 있는 혈족 구속자 개념을 부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 전망

1920년대는 진화론적 믿음에 대항하여, 그리고 자멸적인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불타  올랐던, 현대의 반진화론 운동이나, 풍부한 증거들을 가지고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비판을 가하며, 창조를 확증하는 창조론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훗날 (그 당시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침례교 교회에서 추방당했던 조셉 톤(Josef Ton) 목사의 증언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서구 유럽의 기독교를 파괴시킨 결정적인 두 가지 요인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는 진화론이며,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진화론을 성경과 우리의 믿음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15]

1920년대에 진화론이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후에 ‘종교’를 ‘독’이라고 말했던, 철저한 진화론적 유물론자였던 모택동의 지휘 하에 있었던 ‘문화혁명’(1966~1976) 때에 극심한 박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교회는 살아남았다. 현재 중국의 기독교인 숫자는 다소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약 7천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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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Hallihan, C.P., Robert Morrison Bible Translator of China, 1782–1834, Trinitarian Bible Society Quarterly Record, Oct. to Dec, 2008, Issue 585, p. 17; www.trinitarianbiblesociety.org/site/articles/morrison.pdf.
2. The First Anglo-Chinese War (1839–42), known popularly as the First Opium War, was fought between the British and the Qing Dynasty of China. To control the spread of opium, Chinese officials confiscated supplies from British traders. The British government used its military power to enforce violent redress.
3. China resumed sovereignty over Hong Kong on 1 July 1997, as per the Sino-British Joint Declaration signed in 1984.
4. Latourette, K.S.,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in China, Russell and Russell, New York, 1929, pp. 277, 360–61.
5. Tucker, R., From Jerusalem to Irian Jaya A Biographical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p. 73, Zondervan, Grand Rapids, MI, 1983.
6. The ‘Boxers’ was the Western nickname for a secret society of Chinese peasants known as I-ho ch’üan 义和拳 (‘Righteous and Harmonious Fists’, or alternatively, ‘Righteous and Harmonious Society’ 义和团). From 1899 to 1901, their ‘Rebellion’ was against foreigners and foreign influence in religion, politics, and trade. They attacked the foreign communities in the capital Peking (now Beijing), in a 55-day siege, until subdued by a force of 20,000 Japanese, American, European, and some Australian troops.
7. Ref. 4, p. 517. And the number of Chinese Catholics who died 'was probably in excess of thirty thousand” (p. 513). Missionaries were more widely scattered outside the ports than were traders and diplomats, and so formed the majority of the foreigners who were killed. The China Inland Mission, with its policy of reaching the interior provinces, suffered nearly one-third of the missionary martyrdoms.
8. Ref. 4, p. 618.
9. Ref. 4, p. 606.
10. Ref. 4, p. 662.
11. Ref. 4, p. 692.
12. Ref. 4, p. 695.
13. Ref. 4, p. 771.
14. Ref. 4, p. 770.
15. Ton, J., New Life, April 15, 1982.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s://creation.com/the-impact-of-evolution-on-the-missionary-evangelization-of-china

출처 - Creation 34(3):44–46, July 2012. 대구지부/전시관 월간전자소식지 131호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809

참고 : 3077|3057|330|467|496|5621|5470|5397|5270|4636|3746|3717|2864|5272|4579|4411|3887|3744|3241|3244|5257|3164|4635|3262|2415|3242|4766|4765

Russell Grigg
2019-10-18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 다윈은 진화론을 할아버지 에라스므스로부터 배웠다.

(Darwinism: it was all in the family)

      많은 사람들은 (신학 학위를 취득한) 찰스 다윈이 1835 년에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자연의 사실들'을 관찰하면서 그 어떤 편견도 없는 자연주의자로 진화론 사상에 눈뜨기 전까지, 기원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였던 사람으로 알고 있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심각하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진화의 개념은 그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므스 다윈이 1770년에 처음으로 제시했을 때부터1, 꾸준히 그의 가족들 마음 속에 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우리가 한결 같이 지적하는바 이지만, 창조론자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증거를 진화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단 한 건도 없다! 중요한 것은 증거들을 해석하는 관점이 어떤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사상이 그 해석의 관점을 결정한다. 찰스 다윈도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즉, ”관찰이 뜻있는 관찰이 되려면 뭔가를 지지하든가 반대해야 하는 건데,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가!” 2

그래서 우리는 찰스 다윈이 1831년 비글 호를 타고 탐사항해를 출발하려 할 때의 그의 사고방식은 어떤 영향에 물들어 있었는가에 관해서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해서 그는 관찰된 사실을 진화론적 시각으로 해석하기를 원했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그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므스의 믿음, 저술, 그리고 역할까지 돌이켜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 발명가, 그리고 의사

에라스므스 다윈 (Erasmus Darwin, 1731~1802)은 당시 아주 박학다식하고, 열정적인 과학자요 발명가들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현대 식물학의 기본이 되는 식물도감을 설계한 칼 랭노(Carl Linnaeu, 1707~1778)의 라틴어 판 저작물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대대적인 사역을 완결했다. 수많은 그의 발명품들 가운데에는 발성기, 복사기, 그리고 후대에 자동차에서 이용하는 마차의 방향조정 장치들이 포함되어있다. 사실상, ”현대의 발명품들 치고 에라스므스 다윈이 시작하지 않았던 게 없었다. 진화론에서부터 우생학까지, 비행기에서부터 잠수함, 방부제에서 정신분석, 발성기에서 전화기까지 어느 하나 그가 예견하지 않았던 개념은 없었다.” 3

그는 1756년부터 리치필드(Lichfield)에서 좋아서 선택한 의사 직업을 시작했다. 다른 의사들이 포기했던 그 지방 어느 유지의 젊은 아들의 생명을 구했을 때부터 한 사람의 의사로서 그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치료방법이 유행하는 방법과는 다르게 빈번하게 쓰였던 때문에, 그의 진료 범위가 영국 미드랜드(Midland) 지방 전역으로 점점 확대되어갔다. 영국 왕 조지 3세가 그를 런던으로 초빙하여 왕의 주치의로 부임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에라스므스는 거절했다.

1776년 경에 그는 동료들과 함께 ‘루나 소사이어티(Lunar Society)’를 발기했다. 이것은 당대의 위대한 과학자, 산업주의자, 그리고 자연주의 철학자들의 사교 클럽이었다. 그것은 '산업혁명의 싱크 탱크' 라고 불렸다. 그것은 ‘로얄 소사어티(Royal Society)‘를 뒤쫓을 만큼 유명한 18세기 영국 과학자들의 모임이었다. 회원으로서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왓트(James Watt), 산소를 발견한 조셉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 기체 등불을 발명한 읠리암 머독(William Murdock), 위대한 도예가 조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 그리고 부유한 기업가 사무엘 갈톤(Samuel Galton) 등이 있었다. 이 협회에 연결된 미국 사람으로서는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과 벤자민 플랭크린(Benjamin Franklin) 등이 포함된다.


식도락가, 자유 사고 예찬자, 그리고 시인

음식 (특히 과일, 설탕, 크림, 그리고 버터) 에 대한 그의 사랑은4 운동에 대한 그의 혐오감과  잘 대조된다. 그의 나이 46세에 그의 비만증은 극에 달해서, 식탁을 마주했을 때에는 그의 배 둘레에 맞게 식탁을 반달 모양으로 도려내어야 했다. 두 번 결혼한 그는 12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리고 이혼과 재혼 사이에 그는 그냥 미스 파커(Miss Parker)로만 알려진 어느 여성과의 사이에 낳은 두 딸이 있었다. 이 소녀들도 그의 자녀들과 함께 그의 집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이들은 나중에 여성교육에 관한 에라스므스의 오랜 행로의 영감(inspiration)이 되기도 했다.5

에라스므스는 반기독교인이고, 반노예주의자였으며, 동시에 미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  지지자였다. 특출한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자주 자신의 의견이나 과학적인 관념들을 음문으로 기록하곤 했다. 그런 그의 글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만한 것은 식물 정원 (The Botanic Garden, 1789년과 1791년에 출판한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으로서 압운(押韻)이 완벽한 4,384 행에 달하는 2 행 연구(聯句)시다. 그리고 1803년에 출판된 그의 유고 작품 자연의 사원(The Temple of Nature) 이 있다.

       ”차가운 물속 아가미가 숨쉬는 폐를 만들고, 끈적거리는 혓바닥에서 공기의 소리가 흐른다” 6, 7

.진화론과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는 처음으로 진화에 관한 관념을 피력했을 때가 1770년이다. 그의 가족 문양은 세 개의 조가비를 특징으로 그려 넣었는데, 이에 그는 라틴어 단어 'E Conchis omnia' 를 기입해 두었다. 모든 것은 조가비(shells)로부터 왔다는 뜻이다. 그는 자기 이론을 '아무도 모르게' 공포하기 위해서 자기 마차에 이 모토를 그려 넣어 두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목격했다. 리치필드(Lichfield) 사원의 평의원 소워드(Seward)는 그 나름의 풍자 시구를 쓰고 불평하기를, 다윈은....

”자기를 지은이를 절연하고는 무의미한 물질로 모든 의미를 만들고 있네.

 과시 대마술사가 아닌가! 주술을 읊어, 조가비에서 만물이 태어날 수 있게 할 수 있다든가.” 8

부자 고객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에라스므스는 자기 마차에 각인된 그 모토를 페인트로 색칠하였다. 그 대신에 그는 그 모토를 자기 책 표지 위에 새겨 넣었다 (1771).

그 이후 20년간 더욱 대담해진 에라스므스는 자기가 믿는 진화 사상을 한층 더 빈번하게 개진했다.  식물의 경제(The Economy of Vegetation, 1792)에서 그는 지구가 우주의 폭발에서 형성되었다고 선언했다.

”무서운 폭발이 높고 높은 저 에텔 천공, 불의 왕국의 깊고 깊은 별자리에서 있던 날.

 회오리 치며 태양이 이 무거운 행성을 내던져  또 다른 세계에 경이로운 빈터를 내주었던가!” 9

The Botanic Garden 에서 그는 생명이 바다로부터 시작되어 거기서부터 점점 발전하였다고 말했다.

”파도 밑 기슭도 없는 저 바닥에서 태어난 유기체 생명이 바다의 진주 동굴에서 자랐던가.

 처음엔 미세하여 둥근 유리구슬로도 못 보던 게, 진흙 위를 꿈틀거리다가, 물기 머금은 물질 속을 파고들던

 그것들, 세대를 이어주고 이어받아 꽃피웠던가! 새 힘을 얻어 큼직큼직 외지(外肢)를  뻗어냈네.

 어디서부터 인고, 수많은 초목들은 저마다 솟아나고, 지느러미 달린 놈, 사지를 가진 놈, 날개도 펄럭이며 숨을 쉰다.” 10

그의 주요 저작물, '주노미아(Zoonomia or the Laws of Organic Life, 2권, 1794년과 1796년에 출판됨)'는 의료에 관한 대작으로서 산문체로 쓰였다. 이 책에는 질병과 치료에 대한 종합적인 분류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출판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서 영국에서 4판, 미국에서 2판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이태리어로 번역됐다. 이 책은 1859년에 출판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보다 65년 전에 출판된 ”최초의 일관된 포괄적 진화 가설” 이라고 불려진다.

에라스므스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기 광대한 시간 전에 (다시 말해서, 수 억 년 전에)  모든 온혈 동물들이 단세포 동물들로부터 생겼다. 그리고 그 단세포 동물들은 그 위대한 최초 원인이 부여해 준 동물성을 몸 속에 지니고, 새로운 지체들을 몸에 생기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제 스스로의 내재적인 활동으로 진화를 계속하는 기능을 소유하고 그 진화를 후손들에게 또 세상 끝없이 면면히 이어주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I:505)11  나중에, 에라스므스는 The Temple of Nature 에서 그 말을 이렇게 이었다. 즉, ”지금 존재하는 모든 식물과 동물들은 원시의 바다에서 자연적인 생명력에 의해 발생한 극도로 미세한 현미경적인 존재들로부터 기원했다” 11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사람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따뜻한 눈으로 봐라 보아야 하느니. 형제가 되는 개미와 자매가 되는 벌레를.” 12

에라스므스는 당시 교회 문화에 유화의 제스처를 보내기 위해서 '위대한 최초의 원인'을 대문자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체 없이, 일단 시작된 진화는 그 어떤 신성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내재적인 능력으로 진행되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맹렬하게 반기독교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자신의 병명 색인에 ”고지식, 미신, 희망, 그리고 지옥공포증”13 과 같은 병명들을 포함시켰다.

이와 같은 그의 사상은 위대한 시인 Samuel Taylor Coleridge와 같은 문인들에 의해서 광범위하게 비난 받았다.14 Coleridge는 '다윈화 (darwinizing) ' 라는 단어를 만들어 ‘멋대로 사색한다’ 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에라스므스의 진화론 사상을 빗댔다.14 The Temple of Nature는 ”신성의 개입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때문에 대대적으로 매도되었다. 그리고 ”성경의 종교를 자연의 종교로 대체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는 한층 더 공격을 받았다.15

      

찰스에게 끼친 에라스므스의 영향

비록 찰스는 에라스므스가 죽은 지 7년 후에 태어났지만, 그는 아버지 로버트가 '자유분방한 (물질주의적) 사고'와 반기독교적인 에라스므스의 사상을 집안 구석구석에 물들여 놓은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불신앙은 다윈 집안 식구들한테 용납될 수 있는 기질이었다. 다시 말해서 불신앙은 '도덕적 위기 또는 도덕적 반란'이나, 심지어 '불효'의 발로로 취급되지 않았던 것 같다.16

찰스는 18살 때에 주노미아를 읽고 '크게 감탄' 했다. 수년 후 에라스므스가 당했던 비난과 꼭 같은 비난을 받았을 때에, ”10년이나 15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니 나는 그 내용에 크게 실망했다. 저자의 추측은 사실과 너무도 크게 차이가 있었다” 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자기 할아버지의 책17과 인연을 끊으려 노력했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 1837년 찰스가 어느 노트에 자기 생각들을 기록할 때, 그는 그 노트의 표제에 주노미아라는 단어를 기입하고 자기가 ”할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밝히려” 했다.19

찰스의 진화에 대한 주장들 중에서 중요한 대목은 그가 1835년 갈라파고스 군도에 사는 핀치 새의 부리의 모양이 그 곳에 있는 먹이의 형태에 따라서 변했다는 사실이 관찰됐다는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이 이런데 찰스가 이 주제에 대한 에라스므스의 글의 내용에서 영향 받은 바가 없다는 게 믿음이 가는 생각이란 말인가? 다시 말해서, ”일부의 새는 호두를 까기 위해서 딱딱한 부리를 가진다. 또 다른 부류의 새는 참새처럼 씨앗을 깔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딱딱한 부리를 가진다. 그리고 핀치새처럼 보드라운 꽃씨나 나무의 눈과 같은 먹이를 쪼아 먹기에 적절한 부리를 한 새도 있었다. 긴 부리의 새, 넓적한 부리의 새,  그 모든 새들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 오면서 끝없이 먹이를 구하려는 노력 끝에 점점 오늘날과 같은 부리로 진화했다”는 주장이었다.20(I:504)

주노미아에서 검토되었던 주제나 예들 대부분이 찰스의 종의 기원 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사실상, 찰스의 책들 중에서 하나를 빼고 거의 모든 책은 주노미아가 아니면 에라스무스의 시들 중의 어느 한 편의 시에 대한 서평 안에 그 대조 내용이 발견된다.21 그리고 찰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노미아와 The Botanic Garden의 사본에는 광범한 찰스의 기표나 주석이 가득 적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에라스므스는 자신의 손자를 통해서 긴긴 그림자를 드리워 온 무신론을 지식인들 사이에서 존경 받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 사람들의 세계관에 자리 잡고 있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 대신에, ‘세상의 심판자 (창18:25)’ 이신 하나님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관념을 피력하는 인간적 쾌락주의를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다.


오늘 이 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에게 무엇을 물려줄까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진실된 성경적 세계관을 가르칠 책임이 있다. 진실된 성경적 세계관은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각성과 그 구원으로 가는 길의 근본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라는 사상이다.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 함은,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하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 가르침은 우리 자녀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사람이 만든 반하나님적 이론이라는 불확실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반하나님적 이론은 21 세기의 ”최대의 거짓” 사상인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Much of this article is based on King-Hele, D.,Erasmus Darwin, Charles Scribner's  Sons, New York, 1963

2. Barlw,N.,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Collins, London, p.161, 1958, which quotes Charles's letter to Henry Fawcett(1861)

3. Colliers Encylopedia 7:724, 1994.

4. Ref. 1, p. 34.

5. A Plan for the Conduct of Female Education in Boarding Schools, 1797.

6. Ref. 1, p. 73, which quotes The Temple of Nature (I:295-302).

7. This is Erasmus's version of embryonic recapitulation, a concept which Haeckel fraudulently developed as 'the biogenetic law', now known to be totally false. See Grigg, R., Ernst Haeckel: Evangelist for evolution and apostle of deceit, Creation 18(2):33-36, 1996.

8. Ding-Hele, D., The furtive evolutionist, New Scientist 2390:48-49, 12 April 2003.

9. <www.rochester.edu/College/ENG/eng529/aeza/darwin.htm>, 28 August 2003.

10. Ref. 1, p. 73.

11. Ref. 1, p. 71. Numbers in brackets refer to volume and page numbers in brackets refer to volume and page number in the first edition of Zoonomaia. (Ref. 1, p. 46).

12. Ref. 1, p. 90, which quotes The Temple of Nature Ⅳ:427-28.

13. Ref. 1, pp. 55, 171.

14. Nichols, A., Erasmus Darwin(1731-1802), <www.dickinson,edu/~nicholsa/Romnat/erasdar.htm>, 25 September 2003.

15. Ref. 1, p. 137.

16. Brentnall,J. and Grigg, R., Darwin's slippery slide into unbelief, Creation 18(1):34-37, 1995, who quote Himmelfarb, G., Darwin and the Darwinian Revolution, Chatto and Windus, London, p. 10, 1959.

17. Towards the end of his life, Charles relented and wrote a biography of Erasmus, The Life of Erasmus Darwin(1880); he allowed his daughter Henrietta to edit this, and she removed 16%, which she thought too salacious for Victorian readers.

18. Charls Darwin's Autobiography (edited by Sir Francis Darwin), Henry Schuman, New York, p.21, 1950.

19. Desmond, A. and Moore, J., Darwin, Penguin Book, London, p. 229, 1992.

20. Ref. 1, p.70.

21. Ref . 1, pp. 88, 94.


RUSSELL GRIGG, M.Sc(Hons.) was an industrial chemist before serving 20 years with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He is a staff member of Answers in Genesis in Australi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6/i1/darwinism.asp

출처 - Creation 26(1):16–18, December 200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97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19-08-23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원숭이처럼 먹었다.

(Australopithecus Ate Like an Ape)

Tim Clarey, Ph.D., and Jeffrey P. Tomkins, Ph.D.


   세속적 과학자들은 사람과 유인원 사이의 넓은 간격을 그들의 세계관(진화론)에 맞추기 위해서, 원숭이 화석의 인간화를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는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한 연구는 원숭이는 항상 원숭이였음을 재확인해주고 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는 많은 진화론자들에 의해 약 2~3백만 년 전에 남아프리카의 열린 초원과 숲에서 살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1]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인간 진화의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 해부학적으로 침팬지(chimpanzees)와 유사한 여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들 중 하나이다.  

세속적 과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은 단지 원숭이에 불과함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왔고, 이 새로운 연구도 다르지 않았다.[2, 3] 최근에 Nature(2019. 7. 15) 지에 발표된 논문에서,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에 있는 서던 크로스 대학의 지질고고학(Geoarchaeology)과 고고측정학(Archaeometry) 연구그룹의 르노(Renaud Joannes-Boyau)와 연구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가 현대 원숭이들과 유사한 계절적 식사 패턴(seasonal eating patterns)을 보여주었다고 보고했다.[1]

열대 초원(종종 사바나 생물군)에서는 계절적 온도 변화 및 강우에 의한 건기와 우기의 변동으로, 생태계가 계절적으로 변화된다. 이것은 식량 가용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먹이의 풍부함과 부족함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발생한다.[1]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계절적 먹이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표본(StS 28)에서 두 개의 제1대구치(first molars)에 대하여, 그리고 두 번째 표본에서 한 개의 송곳니(StS 51)에 대하여 원소 분포도 조사(elemental mapping)을 수행했다. 그들은 바륨, 칼슘, 리튬, 스트론튬 비율에 대해 상세한 측정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치아발달 과정에서 먹이 섭취량의 변화에 대한 포괄적 기록을 만들 수 있었다.[1] 예를 들어 바륨 농도는 원숭이가 자라는 동안 모유 섭취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의 결과는 Ba/Ca, Sr/Ca, Li/Ca 비율에 있어서 중복되는 고도의 주기적 패턴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시간에 따른 반복적인 먹이 행동을 가리킨다.[1] 그들은 “현대의 야생 오랑우탄(Pongo abelii 및 Pongo pygmaeus)에서 Li/Ca, Ba/Ca, Sr/Ca 비율의 유사한 순환적 패턴은 이전에 관찰됐었다”라고 쓰고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패턴을 목초지 환경에서 계절적(습기와 건기) 먹이 적응과 식품 가용성의 변동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저자들은 가장 중요한 점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과 다르게 매우 원숭이 같은 특성을 갖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확인해주고 있었다 :

마찬가지로, 현대 오랑우탄(orangutans)과 (보다 적은) 개코원숭이(baboons)에서 발견되는 Li/Ca 띠모양 패턴(banding pattern)은 현대 호모(사람) 표본이나 분석된 비영장류 포유류에서는 거의 보여지지 않는다. 복잡한 생리적 적응은 먹이의 풍요와 기근의 주기적인 기간에 대한 적응을 가리킨다.[1]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원숭이였기 때문에, 원숭이처럼 먹었다. 다시 한 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가 어떤 식으로든 사람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사실 최근 2016년 왕립학회 연구 논문에서, 일부 정직한 진화론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사람)로, 전환은 없었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4]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로의 전환은 일반적으로 순간적인 전환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호모의 기원과 초기 진화에 대한 화석기록은 사실상 보고되지 않고 있다”라고 썼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원숭이를 원숭이로 만드셨고, 아담과 하와를 사람으로 완전하게 만드셨다.


References

1. Joannes-Boyau, R. et al. 2019. Elemental signatures of Australopithecus africanus teeth reveal seasonal dietary stress. Nature. 572: 112-115.

2. Tomkins, J. P. 2012. Australopithecus Was a Well-Adapted Tree Climber.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on November 12, 2012, accessed August 7, 2019.

3. Tomkins, J. P. 2014. Australopith Child Gets an Academic Spanking. Creation Science Update. Posted on ICR.org on September 24, 2014, accessed August 7, 2019.

4. Kimbel, W. H. and B. Villmoare. 2016. From Australopithecus to Homo: the transition that wasn’t.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 371 (1698): 20150248.


*Dr. Clarey is Research Associate is at ICR and earned his doctorate in geology from Western Michigan University. Dr. Tomkins is Life Sciences Director at ICR and earned his doctorate in genetics from Clemson University.


*참조 :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일명 루시)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도록 적응되어 있었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5519

루시가 원숭이였다는 추가적 증거 

http://www.creation.or.kr/library/print.asp?no=6873

라에톨리 발자국은 진화론과 조화되지 않는다 : 366만 년(?) 전의 발자국은 현대인의 것과 유사했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5180

그리스 트라칠로스에서 발견된 570만 년 전의 완전한 사람발자국으로 붕괴되고 있는 인류 진화론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6759

진화론적 유인원 개념이 붕괴되고 있다 :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가 1만4천 년 전에도 살았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6292

드마니시 두개골은 인류 진화 계통도를 뒤집어 버렸다 : 호모 에렉투스, 루돌펜시스, 하빌리스는 함께 살았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5796


출처 : ICR, 2019. 8.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australopithecus-ate-like-an-ape/

번역 : 미디어위원회

Jerry Bergman
2019-06-18

사냥과 살생에 대한 다윈의 열정 

(Darwin's Passion for Hunting and Killing)


       대중 잡지와 과학 문헌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다윈(Darwin)의 한 면은 그의 강한 가학적(sadistic) 취향이었다. 이것을 반영하고 있던 그의 열정 중의 하나는 사격(shooting), 사냥(hunting), 그리고 총에 대한 그의 애정이었다. 사격과 사냥에 대한 다윈의 관심이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었으나,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그의 열정은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나 스포츠를 위해서 사냥을 했지만, 단지 사냥만을 위한 악의적인 살생은 정당화될 수 없다. 다윈의 경우, 그것은 적어도 사디즘(sadism)에 해당하는 행동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강박 현상(obsession)이었다.

어릴 적 성장 과정에서의 이런 어두운 면에 대한 암시로, 다윈은 흥분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남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물건을 훔친다거나 거짓말을 자주 했었던 성향을 들 수 있다. 다윈 자신의 말에 의하면, "꼬마였을 적에 나는 필사적으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기질이 많았는데, 그것은 항상 흥분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1958, p. 23). 다윈은 또한 재미로 훔치는 일들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p. 24). 가학적인 감정에 대한 명백한 예는 다윈이 소년이었을 적에 "단지 힘의 감각을 즐기기 위해...강아지를 때렸을” 때였다. 그는 심지어 나중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고 인정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나빴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p. 27). 이 당시, 그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그의 죄책감을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p. 25).

 

다윈의 가학적 충동

다윈은 약 15살이 되기 전에 총을 다루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었지만, 처음으로 동물을 죽이고 나서야 명백하게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사격에 대한 열정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리고 졸업한 후에도 남아있었다” (Gale, 1982, p. 9). 다윈은 살생을 너무나 많이 좋아해서 그가 처음으로 새를 죽였을 때, 그는 말 그대로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그가 자서전에서 기록한 대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에 대해 그 자신의 말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학교생활 후반부에, 나는 열정적으로 사격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새를 쏘기 위해서 가졌던 가장 거룩한 명분에 대한 열정을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도요새(snipe)를 죽였을 때를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흥분은 너무나 커서 손이 떨려 총을 다시 장전하는데 무척 어려웠다. 이러한 취향은 오래도록 지속되었고 나는 매우 뛰어난 사격수가 되었다 ” (1958, p. 44).

그는 또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사격을 얼마나 즐겼던가!” (p. 55), 그리고 "만약 지구상에 더없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격이다” (Browne의 말에서 인용, p. 109). 그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표명하기도 했다. "나의 열정은 너무나 커서 나는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부츠를 신는 데에 일 초도 허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 침대 옆에 사격 부츠를 벌려둔 채 놔두곤 했다”(p. 54).

1828년 무렵, 동물 사냥에 대한 그의 야망은 그의 장비를 통해 나타났다. 그는 좀 더 성능이 좋은 강력한 총(double-barrelled gun)을 원했고, 그래서 새로운 총을 사기 위해서 그의 부친과 누이들에게 돈을 부탁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만약 구식 총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당장이라도 그 총이 "찰스 다윈의 다리, 팔, 몸과 머리를 파괴할” 수도 있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그들을 위협했다 (Browne, p. 110). 그는 곧 새 총을 샀고, 나중에 캠브리지 대학의 학생이 되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연습하곤 했다. 그가 밖에 나갈 수 없었을 땐, 자신의 방에서 총 쏘는 것을 연습했다! 캠브리지에 있는 동안, 스포츠 동아리에 가입해서 "음주, 사냥, 승마를 엄청나게 즐겼다." (Gale, p. 13).

브라운(Browne)은, 1826년 이후 다윈은 젊은 시절의 매년 여름과 가을 동안을 새와 다른 동물들을 죽이는데 전념했었다고 주장했다. 사격을 하지 않는 달에는 다른 동물을 죽이는 데 필요한 "총에 대한 안내서를 공부하거나 탄환의 직경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적으면서” 보냈다 (Browne, p. 110). 다윈은 이미 동물을 죽이는데 있어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서 ‘젊은 사냥꾼을 위한 노련한 사냥꾼의 지침서(Instructions for Young Sportsmen by an Old Sportsman)’와 같은 많은 책들을 모으고 탐독하였다 (Gale, p. 144).

심지어 사냥에 대한 다윈의 열정은 수렵기까지 기다리는 것을 너무나 어렵게 하여, 사냥감에 몰래 접근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는 ‘금렵기에 사냥감을 죽인 것에 대한 금전적 벌금’을 물기도 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일반인이나 사냥터 관리인은 자신의 허가증을 취득함 없이 상대방의 허가증을 요구할 수 없다"는 법률 이후 그 법을 무시할 것을 고려하기조차 했다 (Browne, p. 110). 그는 또한 자신이 사격과 동물 사냥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때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열정에 대해 반의식적으로 수치스러워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사냥은 지적인 활동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p. 55).

비록 삶의 후반부에 과학(science)에 대한 그의 애정도 또한 매우 중요하게 되었지만, 사냥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잘 알려져 있었고, 청년이었을 적에 다른 어떤 활동보다 열정적이었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그 당시 다윈의 애정에서 현미경에 비교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물건은 총이었다. 그리고 그는 총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사냥은 딱정벌레에 대한 생각 이외의 모든 생각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p. 109).

다윈은 사격이 오랫동안 과학보다 훨씬 더 중요했었다고 인정했다.

"나는 캠브리지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몇몇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바머쓰(Barmouth)를 방문했고, 거기서 쉬루즈베리(Shrewsbury)와 매르(Maer)로 사격을 하러 되돌아왔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지질학이나 다른 어떤 과학 때문에 새 사냥(partridge-shooting)의 중요한 날을 포기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나 자신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p. 71).

다윈은 심지어 그의 수많은 사냥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정교한 분류법으로 집계했다. 그의 목록은 "수렵기동안 내내 그가 죽인 모든 것"의 현재 총계를 기록하기 위해서 엽조, 산토끼, 그리고 꿩으로 세분하였다 (Browne, p. 110). 동물 사냥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도 또한 다음 경험담에서 나타난다 :

"전 수렵기간 동안 나는 내가 쏜 모든 새들에 대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격을 할 때... 나는 내 자신이 수치스럽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발사한 후 내가 새를 죽였다고 생각할 때마다 다른 친구 하나가 마치 그가 총을 쏘고 나서 장전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소리쳤다. "넌 저 새를 헤아려서는 안 돼. 왜냐하면 내가 동시에 발사했으니깐” 그리고 그 농담을 사냥터 관리인은 지지했다. 몇 시간 후에 그들은 내게 그것이 농담이었음을 말했으나, 수많은 새를 쏴왔었기 때문에 내게는 전혀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사냥 목록에 그것들을 추가할 수 없었다.... 이것을 나의 못된 친구들이 알아채었다." (Darwin, p. 54).

다윈의 사냥 도구는 정서적으로 그에게 사격 그 자체만큼 중요했었는데, 그것은 매번 살인을 한 후에 자신의 총에 새김 줄을 그려 넣는 살인자와 유사한 강박증을 나타낸다고, 브라운은 결론 내리고 있다. 다윈의 부친은 그의 강박증을 문제점으로 보았다. 한번은 찰스 다윈이 ‘사격, 개, 그리고 쥐잡기’에만 신경을 쓰고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고, 부친은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과 그의 전 가족에게 다윈은 "수치가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Darwin, p. 28). 심지어 다윈 자신도 젊었을 적에 사냥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서 후회했으나, 그는 결코 그의 가학적인 행동, 즉 사냥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강박증에 대해서는 어떠한 후회감도 표현하지 않았다.

보울러(Bowler, p. 39)에 따르면, "결국엔 쓸모없는 도살자(useless slaughter)로서 거절당하지 않고 그의 대학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서, 다윈은 사냥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행동은 단지 쓸모없는 도살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혹자는 이러한 사냥과 죽임에 대한 그의 ‘열정(passion)’이 그의 무자비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자연선택의 이빨과 발톱 이론(tooth-and-claw theory)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역할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찰스 다윈의 태도는 그의 여러 가족 구성원들과는 무척 대조를 이룬다. 그의 누이는 채집을 위해 곤충을 죽이는 것조차 꺼려하여, ‘죽은 곤충을 수집해야만 했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Desmond & Moore, p. 16). 처음에 다윈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를 하면서 "수집을 위해서 곤충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Darwin, p. 45). 그러나 나중에 그는 이러한 생각을 무시하고 거리낌 없이 수집을 했다 (p. 62). 수집용 살생에 대한 다윈의 태도는 어떤 유명한 생물학자들의 태도와도 또한 대조를 이룬다. 아우구스트 포렐(August Forel) 교수는 자신은 아이였을 적에 단지 죽은 곤충만 수집하도록 허락되었다고 말했다. 1859 년도에, 포렐은 곤충학자였던 그의 삼촌에게 생물체를 고통 없이 죽이는 법을 배운 후에 살아있는 표본을 채집하도록 허락되었다 (1937, p. 33).

다윈은 그의 아버지(비록 그는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버지는 생애 마지막까지 수술에 대한 생각은 그를 병이 나도록 만들었으며, 아버지는 피 흘린 사람을 보는 것을 거의 참을 수 없어했다” (1958, p. 30). 다윈이 두 번의 ‘조악한 수술’ 때 참석했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한 번은 아이였을 적인데, 수술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떴다. "이때는 클로로폼이 사용되기 오래 전이었다."(p. 48). 그는 자신의 박제사(taxidermist)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 배웠던 ‘새의 박제(stuffing birds)’ 시에 전혀 괴로움(qualms)을 가지지 않았다 (p. 51).

하나님은 가학적이라고 불평했던 그의 관점으로 볼 때, 다윈의 행동은 아이러니하다. 그의 친구인 후커(Hooker) 교수에게 보낸 1856년 7월 13일자 편지에서, 다윈은 꽃가루(pollen)에 대해 말하면서, "자연은 우리에게 너무나 서툴고 낭비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서툴고, 낭비적이고, 어쭙잖게 저속하고,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자연의 일들에 대해서 악마의 사제가 책을 쓸지도 모르겠구나!” 라고 하였다 (Darwin, p. 1990, p. 178).

1860년 5월 22일에 아사 그레이(Asa Gray)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다윈은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비참함(misery)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적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다고 쓰고 있다. 그가 쓴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자비롭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살아있는 애벌레의 체내에서 그것들을 먹고사는 맵시벌과(Ichneumonidae, 기생곤충)를 설계하여 창조하셨다는 것이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 등의 사실들이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없네” (Darwin, 1993, p. 224).

어떤 사람들은 다윈이 젊었을 적에 자신이 즐겼던 것과 똑같은 것을 하나님이 즐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독교적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

다윈은 명백히 그의 대부분의 생애동안, 특히 삶의 황금기인 청년이었을 때, 동물을 죽이고자 하는 과도한 욕구로 고통을 받았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작가들은 단지 다윈이 사냥을 좋아했었다고만(그의 행동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평가로) 이야기하면서, 다윈의 이러한 취향에 대해 표현하기를 피해왔었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주제를 피한 이유는 다윈이 지금 많은 과학자들과 일반 사람들에 의해 우상화되어 있지만, 무자비한 동물 사냥은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기존의 모든 과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는 아닐지라도, 종종 19세기의 위대한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리스트에 올라있는 다윈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소수의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다윈과 그의 연구 동기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거의 병적인 수준의 살생 충동을 평가하고, 그것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대한 그의 결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 것인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References

Bowler, Peter J. 1990. Charles Darwin; The Man and His Influence. Cambridge, MA: Basil Blackwell.
Browne, Janet. 1995. Charles Darwin: Voyaging.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Darwin, Charles. 1958.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1882. New York: Norton. Autobiography. New York: W. W. Norton. Edited by Nora Barlow.
_____ 1990. The Correspondence of Charles Darwin. Volume 6 1856-1857.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Edited by Frederick H. Burkhardt
and Sydney Smith.
_____ 1993. The Correspondence of Charles Darwin. Volume 8.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Edited by Frederick Burkhardt.
Desmond, Adrian and James Moore. 1991. Darwin: The life of a Tormented Evolutionist. NY. Warner Books.
Forel, August. 1937. Out of My Life and Work. New York: W. W. Norton.
Gale, Barry G. 1982. Evolution Without Evidence: Charles Darwin and The Origin of Species. Albuquerque, NM: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 Dr. Bergman is on the Biology faculty at Northwest State College in Ohio.

 

*참조 :

1. 찰스 다윈은 정신이상자였는가? : 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29

2. 다윈의 이상한 질병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61

3. 다윈의 전 세계 항해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62

4. 다윈 사상, 모든 게 그 집안 내력이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897

5. 다윈의 불법적인 발명품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907

6. 비글호의 항해 - 창조주를 위한 봉사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70

7. 무덤에서도 악영향을 주는 자들(1) - 찰스 다윈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30

8. 다윈의 무덤과 교회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48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83.htm ,

출처 - ICR, Impact No. 383, May 200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633

참고 :

David F. Coppedge
2019-03-06

진화론에 대한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Darwin Debate Heats Up)

David F. Coppedge


        진화론 대 지적설계론에 대한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이번 달에 마이클 베히(Michael Behe)의 신간 서적 ”다윈의 퇴화((Darwin Devolves)”가 출간되었다. 진화론자인 렌스키(Lenski), 렌츠(Lents), 스와미다스(Swamidass) 등은 Science(2019. 2. 7) 지에서 이 책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었다. Science 지가 지적설계 진영인 디스커버리 연구소(Discovery Institute’s Center for Science and Culture)의 브라이언 밀러(Brian Miller), 존 웨스트(John West)의 글(2019. 2. 8)이나, 베히 자신의 리뷰 글을 게재했다면, 다윈도 기뻐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다윈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

공정한 결과는 각 질문에 대한 양측의 사실과 주장들을 모두 진술하고 균형을 맞추어야만 얻을 수 있다. - 찰스 다윈(Charles Darwin, The Origin of Species(1859), Introduction).

진화론자들은 베히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는 다른 진화론자들의 비판에 대해 베히가 응답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존 웨스트는 그의 글에서, 베히는 반복적으로 진화론자들의 비판에 응답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베히가 응답했다는 증거는 매우 명확하며, 진화론자인 렌스키 등의 주장은 너무도 뻔뻔한 거짓말로, 지적설계론자인 존 웨스트는 렌스키를 게으르고 부주의한 연구자이며,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다윈주의자들과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활동가들은 언론에 영향을 주어,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무시하도록 만들고 있다. 심지어 대중 매체를 통해 베히의 글이 쓰레기라는 기사를 다시 게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적설계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서 급진적인 다윈의 충견들을 깨우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베히의 책이 출판되기 2주 전에 선제공격을 함으로써, Science 지는 분명히 양측의 사실과 주장을 균형 있게 진술하지 않고 있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생화학자로 리하이 대학(Lehigh University)의 교수인 베히가 제출한 모든 반론들은 확실히 무시되고, 게재되지 않았다. 그러나 베히 박사는 과학계에 포진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의 학문적 사상 검열에 대한 또 하나의 경주를 진행해왔다. 그는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에 관한 41개 강좌 과정을(course on intelligent design and evolution) 발표했다. 이제 누구나 이 중요한 주제에 관련된 사실과 주장에 대한 완전히 균형 잡힌 진술을 들을 수 있다. 그 강좌에서 베히를 통해 독자들은 1859년부터 현재까지 모든 주요 진화론자들이 말해왔던 것을 공정하게 들을 수 있다. 온유하고, 사실적이며,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스타일의 베히 박사는 자신이 잘하는 것이 가르침(teaching)임을 보여주고 있다.

베히의 다윈주의와 신다윈주의(Darwinism and neo-Darwinism)에 관한 장은 사실상 무종파적이며, 사실 독자들은 그가 그것에 동의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음 장인 ”확산된 진화론과 그 이후”에서 그의 입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베히는 많은 진화론자들도 신다윈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베히가 지적설계론을 과학적으로 깊이 있게 논의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만약 신다윈주의가 견고한 체계라면, 왜 그렇게 많은 생물학자들이 그 이론의 심각한 문제점들을 인정하고, 대체 이론을 찾고 있는 것일까? 과학계와 언론계가 그 오랜 기간 일방적으로 선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디스커버리 연구소(Discovery Institute)는 그 논쟁을 가열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이정표와 같은 발표를 했다. 최근 ”다윈주의에 대한 과학적 반대(A Scientific Dissent from Darwinism)” 성명서에 동의한 1,000명이 넘는 과학자들의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우리는 생명체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주장되는,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능력에 대해 회의적이다. 진화의 증거라는 것들에 대한 주의 깊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데이비드 클링호퍼(David Klinghoffer)가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1,000명이라는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과학계의 많은 사람들이 베히의 말에 동의하거나, 지적설계를 지지했다가는 자신의 경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1천 명의 과학자들이 공개적으로 진화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Evolution News(2019. 2. 12)가 보도하고 있는 다윈의 날 영상물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공개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혀도 안전하다고 느낄 때,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선언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왔을 때, 다윈주의는 빠르게 붕괴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교리가 오랜 기간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선전됐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리 버그만(Jerry Bergman) 박사는 최근에 출간된 책에서, 진화론자들이 진화론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을 어떻게 핍박하고 조롱해왔는지, 그리고 과학계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어떻게 유지해왔는지에 대해 광범위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시리즈 책 ”반대자들에 대한 도살(Slaughter of the Dissidents)”의 3번째 책인 ”다윈 비판가들에 대한 검열(Censoring the Darwin Skeptics)” 17장에는, 진화론자들이 나에게 행했던 일도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 한 친척은 동생에게 ”정말로 화가 나서 미쳐버릴 수도 있으니, 그 책을 읽지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리 버그만(Jerry Bergman) 박사가 쓴 3권의 책에는 광신적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망가진 과학자들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세 권의 책 모두 독특하다. 그 책들 모두 진화론자들의 핍박에 대한 개인적 사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양 진영의 주장과 진실된 과학적 사실들을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진화론자들이 어떤 비밀스런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관련기사 : ‘다윈주의’ 반대 서명 과학자, 1천명 돌파 (2019. 2. 14.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004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9/02/darwin-debate-heats-up/

출처 - CEH, 2019. 2. 1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006

참고 : 6957|6959|6942|6934|6953|6933|6928|6910|6887|6851|6856|6825|6821|6799|6778|6777|6770|6759|6684|6636|6634|6627|6610|6604|6597|6585|6583|6582|6562|6556|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6118|6394|6168|6138|5996|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6285|6152|6153|6022|6286|5725|6586

David F. Coppedge
2019-01-16

2019년에 다윈의 제국은 붕괴될 것인가?

(Will Humpty Darwin Fall in 2019?)

David F. Coppedge


       진화론은 너무도 많은 실패를 하고 있다. 이 이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비논리적인 세계관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을 발표한 이후, 수많은 비판들이 있어왔다. 1859년에 사전 출판물을 봤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비판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우수한 과학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제국은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성 안에서 황제 다윈을 성공적으로 보호해왔다. 또한 다윈의 비밀경찰들은 비판가를 배척하고 추방하는 정치적 방법을 습득하여, 다윈에게 반기를 드는 과학자들을 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이비 과학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제국이 제공하는 물질적인 보상과 안락함에 취한 사람들은 다윈 당에 가입하여, 제국에서 추방되지 않고, 무식한 종교적 근본주의자라는 조롱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독재자가 된 황제 다윈은 군사열대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자칭 새 옷을 입고, 그들의 성이 얼마나 높고 견고한 지를 보여주고 있다.

황제 다윈에 반기를 든 창조론자들은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2006. 5. 9). 그들은 반복적으로 성을 공격하여(다윈의 병사들이 끓는 기름을 붓기 전에) 성벽을 조금씩 부수고 있다.  이제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성안의 시민들은 결코 이러한 소식을 듣지 못한다. 황제의 친위대가 되어버린 언론 매체들은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다윈의 군대가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소식만을 전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다윈 제국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승리만을 가르치고 있다. 한편, 다윈에게 충성을 맹세한 석공들은 다윈의 플러버(Flubber,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한 물질)를 끊임없이 공급받아, 그것으로 회반죽을 만들어 다윈의 성벽을 끊임없이 보수하고 있다.

*이것을 풍자한 브렛 밀러(Brett Miller)의 그림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

제국은 일어나고, 소멸한다. 이제 황제 다윈은 무너지려고 하는 성벽에 앉아있다. 왕의 군대와 백성들은 계속 탈영하고 있고, 다시 모집될 수 없어 보인다. 다윈의 제국은 빠르게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2019년이 그 해일까?


오직 진화론만 선전하는 언론 매체들

아래의 뉴스 기사들은 대중들에게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숨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뉴스 기사들은 혼란 유발과 자가 입증이라는 친-진화론적 언론 매체들의 전략을 보여준다. 이들 기사들이 전하고 있는 관측은 진화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것”을 단지 ”진화했다”는 말로 대신한다. 편견이 없는 관찰자라면, 증거들은 완벽하게 기능하며 적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진화론자들은 그것이 극도로 복잡하고 정교하다 할지라도, 진화되었다고 말하면 끝이다. 여기에 그러한 진화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  

 

다윈의 섬인 갈라파고스에서 ‘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잃어버린 섬들? (New Scientist, 2018. 12. 25). 다윈을 유명하게 만든 유명한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동물들은 본토와 너무 다르다. 그 동물들은 진화 도중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s)들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근처의 수중 섬에서 진화했음에 틀림없다는, 상상의 것들을 발명해내고 있었다. 추정과 추측, 상상력을 동원해서, 모이보이(moyboy) 석공인 콜린 바라스(Colin Barras)는 다윈을 방어하기 위한 공상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었다. ”갈라파고스 섬이 존재하기 오랜 시간 전에, 남아메리카의 서해안에서 떨어진 곳에 또 다른 군도(archipelago)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길게 사라진 섬들은 나중에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불어 넣은, 갈라파고스의 특이한 야생동물들을 형성했던 것 같다.”


첫 번째 걸음 : 과학자들은 보행했던 물고기의 기원을 탐사하기 위한 진화 연구를 시작했다 (Phys.org2018. 12. 19). 이 기사는 다윈의 추종자들이 아직도 찾지 못한 진화론의 증거를 찾기 위해 얼마나 바쁘게 일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느러미로부터 발달한 부속지를 갖고, 육지를 걸었던 최초의 사족동물에서 골반(pelvis)이 어떻게 진화하고 형성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모델이나 보존된 화석기록은 없다.” 한 연구자는 말했다. 그러나 장님 물고기의 한 종은 그것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을까? 다윈의 극장에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공상적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진화 속도의 차이를 설명하기.(Science Daily, 2018. 12. 18). 자기 배꼽만 쳐다보고 있다면, 결코 패러다임에 의문을 가질 수 없다. 응급 성분이 추가되어 특별히 제조된 다윈의 플러버로 성벽은 수리되고 있었다.


유전체(genome)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연선택은 과학의 최고 비판가이다.(Science Daily,2018. 12. 18). 유전자를 분석하기 위해 다윈의 이론을 사용한다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물론 다윈의 이론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보고 망치를 내리치는 사람과 같다는 속담 같은 것이다. 이들 과학자들은 진화의 결여도 진화의 증거라고 보고 있었다! ”자연선택이  유전체의 한 부위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면, 이 부분은 무수한 세대에 걸친 돌연변이와 진화에서도 보존될 수 있었으며, 유전체에서 이 부분은 생존에 중요했을 것이다.” 변화하는 것도 진화된 것이고, 변화하지 않은 것도 진화된 것이라면, 다윈의 이론은 실패할 수 없다.


자궁에서 자연선택은 성인기의 건강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Medical Xpress, 2018. 12. 4). 아기는 수정되어 자궁에서 성장하고 태어난다. 이것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이들 과학자들은 미세한 수정란에서부터 성체로 놀랍도록 정확하게 발달되는, 설명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다윈의 구호인 ”자연선택”(즉, 우연발생 법칙)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혁명?

위와 같은 사례들은 수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당신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빅 사이언스(Big Science)와 함께 황제 다윈에게 충성을 맹세한 빅 미디어(Big Media)는 어떠한 대안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윈주의의 검열관들이 그곳에 포진하여 색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성벽을 공격하고 있는 혁명군들에게는 절망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윈의 제국은 주장되고 있는 것처럼 견고하지 않다. Evolution News(2018. 12. 28) 지에서 브라이언 밀러(Brian Miller)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적 신호로서, ”지적설계 지하운동”에 대해 쓰고 있었다 :

나는 2년 전 디스커버리 연구소(Discovery Institute)에 합류했다. 1980년대 중반에 마이클 덴튼(Michael Denton)의 책 ”진화론: 위기의 이론(Evolution: A Theory in Crisis)” 이후 지적설계 과학자들의 글들을 읽어왔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나는 지적설계의 글들과, 그 글들에 대한 비판 글들과, 그 비판 글들에 대한 재반박 글들을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지적설계론자의 글들이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고, 지적설계론자의 비판은 일관되게 무시되고 있으며, 진화론자들은 증거들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과 비난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대중들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원했다.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연구 코디네이터인 밀러는 다윈의 반체제 인사들이 제국에 대항하여 벌이고 있는 ”지하운동”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한 그는 최근에 다윈의 진화계통나무와 모순되는 분류학의 패턴, 유전자의 염기서열에서 단백질 암호보다 훨씬 많은 조절 부위들, 유전자의 혁신이 아니라 쇠퇴를 나타내는 유전적 발견 등을 포함하여, 다윈의 여러 기둥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한 더글러스 액스(Douglas Axe)의 책 제목 ”부정할 수 없는(Undeniable)”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에서 설계를 직감하고, 그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또한 디스커버리 연구소는 2019년에 마이클 비히(Michael Behe)와 스티븐 마이어(Stephen Meyer)의 신간 서적을 출판할 예정이다. 전 세계의 창조 사역은 여전히 강력하고 영향력이 있다. 일러스트라 미디어(Illustra Media)는 많은 비디오들을 웹상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YouTube 채널 참조). 이 영상들은 많은 외국어로 번역될 것이다. 19세기의 다윈 비판가들은 결코 꿈꿀 수 없었던 방식으로, 창조론자들은 인터넷과 영상물들을 통해서 다윈의 제국을 약화시키는 과학적, 철학적 증거들을 전 세계의 대중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



밀러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CEH가 거의 19년 동안 진화론의 문제점들을 지적해왔지만, 다윈의 제국(Darwin Empire)은 아직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제리 버그만(Jerry Bergman)이 그의 책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던 것처럼, 다윈의 제국은 회의론과 비판 글들에 대한 검열과 차단에 성공적이었다. 아직도 언론매체, 교육계, 과학계 등에서는 오직 DODO(Darwin Only Darwin Only)만 외쳐지고 있고, 반대 목소리는 철권으로 억압당하고 있다. 학생들과 부모들은 DOPE(Darwin Only Public Education)의 독성 및 부작용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윈의 석공들이 수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윈의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벌거벗은 황제 땅딸보 다윈(Humpty Darwin)이 실각했을 때,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Censoring the Darwin Skeptics) 읽어보면, 독재자 다윈의 추종자들이 행해왔던 만행을 알 수 있다.


진화론과 싸우고 있는 다윈의 비판가들에게 전한다 : 이 일은 한 팀이 되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일해야 한다. 일부(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창조론자들은 그들의 에너지를 진화론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젊은 지구 연대를 믿는) 창조론자들을 공격하는 데에 소비하고 있다. 그들이 공격하는 데에 사용하는 시간과 노력을 진화론자들에게 사용했다면, 창조-진화 전투는 훨씬 빠르게 끝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국가의 군대가 육군, 해군, 공군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진화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통된 목적으로, 서로 다른 재능과 지식을 가진 많은 동료들을 필요로 한다. 동일한 전투에서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는 유혹을 피해야 한다. 이것은 타협을 해야 한다거나, 양심을 거스리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중함이 필요하다. 언제 말을 해야 할지, 언제 침묵을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잠언 10:19절은 이렇게 권고하고 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9/01/will-humpty-darwin-fall-2019/

출처 - CEH, 2019. 1. 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975

참고 : 6957|6959|6942|6934|6953|6933|6928|6910|6887|6851|6856|6825|6821|6799|6778|6777|6770|6759|6684|6636|6634|6627|6610|6604|6597|6585|6583|6582|6562|6556|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38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5|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501|6096|6461|6436|6393|6476|6292|6640|6652|6676|6680

조상영
2018-07-05

4차 산업혁명시대! 

: 대중문화에 침투한 진화론 

(The Age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Evolution that permeates popular culture)



요약

오늘날의 진화론은 대중매체를 통해 시각화되어 대중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해, 과거에 없었던 기술들인 AI, 빅데이터, Iot 등이 등장하면서, 이 기술들이 진화의 결과물로써 넥스트 휴먼(포스트 휴먼)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4차산업혁명시대 대중문화에 침투한 진화론 현상에 대해 알아보고, 진화의 사슬을 벗어나, 설계와 창조 문화로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서론

매체가 발전하지 않은 시절에는 전문가들의 강연을 직접 듣거나, 인쇄된 책, 또는 신문, 잡지를 통해 정보가 움직였다. 그러나 현대 시대는 TV, 라디오, 인터넷 등 온라인 매체를 타고 빠르게 정보가 퍼지고 있으며, 진화론적 문화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또한 파급의 속도만큼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4차 산업혁명시대(4IR)가 열려지고 있고, 이 기술들은 AI(인공지능),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등 인간의 지혜를 앞지르고 있는 듯 보인다.

대중들은 이러한 기술력을 볼 때마다, 오랜 과거부터 진화가 이루어져 오면서, 새로운 인류인 넥스트 휴먼이나, 포스트 휴먼의 출현이 가능하여,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본 연구는 매체에 의한 진화론의 왜곡된 파급력과 4차 산업혁명시대의 과학기술 발전이 진화론이 아닌 인간의 창의력에 의한 설계적 관점으로 풀어보면서, 진화론적 문화가 아닌 설계와 창조 문화로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본론 및 고찰

2.1. 진화론을 전파하는 매체의 힘

매체는 불특정 많은 사람들에게 대량 정보를 전달하는 물체나 수단으로서, TV, 영화, 신문, 라디오, 인터넷, 책 등을 말한다. 매체의 역할은 상품광고, 정치적 여론 형성과 중요한 정치적 이슈를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반 대중은 대중매체를 통해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 기회를 갖게 되어, 대중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도 매체는 중요한 전달수단이지만, 진화론이나 창조론 진영에서도 논문 및 책 출간, 신문기사, 사이트, 유튜브 영상,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영화 등 on-off line을 통해 다양한 이슈들을 전개하고 있다. 히틀러 역시 장애인과 유태인들을 자연선택과 인종주의를 활용해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자행시켜 나치독일의 세력 형성을 하였는데, 이때 사용되었던 것이 라디오 연설과 선전 영화 등 당시에는 최첨단 매체로 독일인들의 무의식을 세뇌했던 것이다.

.넥스트휴먼(포스트 휴먼)을 향해 가는 진화 흐름도

인간의 무의식을 세뇌하는 방식은 현재도 마찬가지이며, 더욱 다양화된 매체들을 이용해 진화론적 가치관을 만들고 있다. 진화를 다룬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이중  2015년 KBS에서 방영됐던 <넥스트 휴먼>은 1편에서는 ‘돌연변이의 탄생’, 2편은 ‘마지막 크로마뇽인-종의 위기’라는 주제로 방영됐다. 내용은 직립보행 할 수 있게 했던 큰 엉덩이 유전자,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게 된 이유, 척박한 환경에서 인류를 살린 돌연변이 이야기, 최종 진화의 산물인 퍼펙트 휴먼을 통해, 문명의 흥망성쇠, 진화 과정에서의 인류의 몸을 다루었다. 이와 더불어 과학의 주류로 왜곡되어 있는 진화론 파급도 대중매체와 융합하여, 넥스트 휴먼 또는 포스트 휴먼이라는 진화적 흐름으로 간주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2.2.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은 진화가 아닌, 인간의 설계적 능력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제시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디지털 혁명에 기반하여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융합의 시대”로 정의했다. 현재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진화를 이끌어 냈으며, 긴 진화의 과정을 통해 기술적 진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즉 도시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또 다시 정보혁명과 제2차 정보혁명을 진화시켜, 지금의 넥스트 휴먼(포스트 휴먼) 시대로 진입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진화론을 전파하는 대중매체의 주제와 과학기술이 하나로 일치되어, 진화론이 저변으로 확대되어 견고히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성은 ‘초연결성(Hyper-Connected)’, ‘초지능화(Hyper-Intelligent)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으로 보다 지능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성과 초지능화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연구와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로봇에 뇌를 이식하여 죽지 않은 인간을 만드는 러시아 아바타 계획(드미트리 이츠보프), 점점 소형화되고 고도화 되는 미래의 첨단무기(6kg 스마트 폭탄, 스펜스 탱크, 코너 샷, 전자칩을 단 곤충, 발리스틱 복서, 무인 정찰기 등), 무선주파수 식별장치인 RFID의 발전(집 밖 644㎞에서 찾은 고양이), 인간 사이보그 실험(케빈워릭, 닐 하비손, 엘론 머스크의 경우)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이보그와 인공지능 문화가 의료, 산업, 군사, 연예 등 다른 분야에 끼치는 영향들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특히 네덜란드의 광고 회사 월터 톰슨(J. Walter Thompson)과 ING,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협업한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를 예를 들어보자.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는 AI와 3D 프린터로 렘브란트 화풍의 그림을 재현한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AI 딥 러닝 알고리즘이 346점의 렘브란트 작품을 분석하여, AI만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알고리즘이 스스로 그림의 주제까지 선택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인데, 흰색 깃이 있는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수염이 난 30~40대 백인 남성의 초상화를 그려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림 속 남성이 얼굴을 오른쪽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고 결정한 것도 이 알고리즘이다. 출력은 3D 프린팅 기술이 담당했는데, 페인트 기반의 UV 잉크를 사용해 렘브란트가 사용했던 그림의 질감이나 붓 터치를 재현한 3D 인쇄였으며, 1억 4,800만 픽셀 이상의 13개의 레이어로 구성되어 출력되었다. 이와 같이 대중들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진화의 결정판이라고 판단할 테지만,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알고리즘 설계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AI 딥러닝 알고리즘이 새롭게 만들어낸 렘브란트 경향의 작품.

 

3. 결론

자동차, 스마트폰, TV, 비행기, 의자, 의복, 시계 등 우리 주변에는 과학기술로 발명된 다양한 전자기기와 사물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도구들은 아메바에서 동물로,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된 존재가 만든 것이 아닌, 모든 만물의 설계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혜를 부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화론적 가치관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컨텐츠를 기획하는 책임자들이며, 매체의 소유자들이 결정한다. 이제 우주, 자연, 인간의 몸과 정신, 문명을 바라보는 진화론의 사슬에서 벗어나, 설계와 창조의 문화로 거듭나야 할 때다.

 

4. 참고 문헌
1. 유튜브, 진화론에 세뇌된 히틀러의 장애인 및 유태인 학살
(https://www.youtube.com/watch?v=81sur7-x9Bk), 2016
2. KBS, 넥스트 휴먼 다큐멘터리, 2015
3. 유튜브,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IuygOYZ1Ngo)



출처 - 2018년도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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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ell Grigg
2018-07-03

진화론이 낳은 괴물, 아돌프 아이히만 

(The struggle for the soul of Adolf Eichmann)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유태인 600만 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대량 학살(Nazi Holocaust)의 주요 전범 중 한 명이다. 그의 임무는 유대인들을 체포 및 강제 이주시키고 지속적으로 학살 처리함으로서, 수용소의 살해 능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었다. 1960년 아르헨티나에 숨어있다가 체포되어,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전범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사형이 확정되었다.[1] 사형 선고 후에 이스라엘에서 기독교 선교사로 27년간 재임했던  윌리엄 헐(William L. Hull) 목사가 이스라엘 종교국에서 사형수에게 배정하는 영적 자문관으로 임명되었다.


살인자와의 면담

아이히만은 1962년 4월 11일부터 라믈레 감옥(Ramleh Prison)의 사형수 방에 구금되어 있으면서 5월 31일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50여일 동안 14번에 걸쳐(대개 1시간 정도 지속됨) 헐과 면담을 했다. 첫 번째 면담에서, 헐은 아이히만에게 독일어 성경을 건네주었고, 각 면담 시간마다 헐이 골라준 성경 구절들을 읽어온 후(아이히만도 동의함) 토론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구절들 중 많은 것이 누가복음 12:4-5, 시편 9:27, 로마서 1:16-32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과, 요한복음 3장과 요한복음 14:6절과 같은 복음에 관한 구절들이었다. 헐은 70여 구절 이상의 말씀들을 사용하였다.

‘한 영혼의 투쟁(The Struggle for a Soul)’은 이러한 면담으로 밝혀진 사실들에 대한 헐의 기록이다. 헐은 서문에서, 그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적고 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러한 흉악한 범죄의 도구로 파괴적인 인간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이 세상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바로 이 세상이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p. xii). 헐은 계속하여 ”...아이히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어떤 중재자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렇게 지적했다. ”아이히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거의 공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그와 그의 악한 행동은 기독교와는 완전히 분리된 것임을 보여주었다”(p. xiii).

또한 헐은 아이히만의 말에 어떠한 비밀적인 내용이나 자백은 없었고, 항시 네 명이 이상의 교도관들이 지키고 있어서 미세스 헐이 통역하며 들었던 것처럼, 그가 중얼거리는 말까지 모두 듣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이히만은 죄를 뉘우치는 어떠한 기색도 없었다는 것이다.

토론 시간 동안 아이히만은 그가 프로테스턴트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지만(p. 34), 예수가 죄인들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p. 37). 그는 자연 속에서 그리고 철학자들의 글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p. 83). 구약은 단지 유대인들의 이야기이며 우화이고(p. 23), 신약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했다(p. 30). 그는 지옥과(p. 24) 사탄을(p. 86) 믿지 않았고, 누구나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pp. 132–33, 140). 그는 ”나는 자백할 것이 없다”, ”난 죄가 없다” 그리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p. 83). 아이히만은 다른 주제들로는 불교, 칸트, 플랑크, 쇼펜하우어, 니체, 스피노자 등의 사상들을 언급했다.

아이히만은 ”나는 나의 자연주의적 개념과 일치하지 않은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히만의 진화론적 세계관

여섯 번 이상의 면담 시간마다 매번 아이히만이 헐에게 언급했던 주제는 진화론과 수십억 년의 연대에 관한 그의 믿음이었다.

1. 헐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아이히만은 물었다. ”만약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면, 왜 수백만 년 전에 일찍 보내시지 않고, 그 오랜 기간 동안 기다렸는가?”(p. 36).

2. 세 번째 면담 시간에, 헐은 그에게 창세기 2:7절을 읽어보도록 권했고, 아이히만은 큰 소리로 읽었다 :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리고 즉각적으로 말했다. ”나는 인간이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믿지 않으며, 원시세포로부터 진화되었음을 믿고 있다.”(pp. 46-47)

3. 헐의 네 번째 방문에서, 아이히만은 다시 물었다. ”하나님은 왜 창조 시로부터 구원을 베푸시지 않고, 수백만 년을 기다렸다가 단지 2000년 전에 예수를 보냈나?”(p. 53). 

4. 이 방문 후에, 아이히만은 헐에게 편지를 써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자연주의적 개념과 일치하지 않은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사람은 수백만 년 이상에 걸친 발달을 거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된 것이다”(p. 77).

5. 헐의 여섯 번째 방문에서, 아이히만은 ”하나님이 세상을 수십억 년에 걸쳐 창조하셨고, 이 세계를 준비하셨는가?”라고 재차 물어보았다.(p. 69).

6. 그리고 아이히만은 헐에게 긴 편지를 써서, 여덟 번째 방문에 전해주었다. 거기에서 그는  ”..시간의 시작은 대략 백억 년 전에 발생했다.”는 교황 비오 12세(Pope Pius XII)의 말을 인용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스피노자의 말도 인용했다. ”이 세상에는 그 자체가 악이라고 하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 ”이 세계가 창조주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완전한 인간상으로 나아가는 도중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전의 동물적 본능은 우리 안에 있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완전성을 향한 사람의 발달은 몇 세대에 걸쳐서가 아니라 장구한 시간을 걸쳐 측정되어야만 한다.”(pp. 146-49).

분명히 아이히만은 진화론적 세계관(evolutionary worldview)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말은 비교적 현대적 용어이지만, 이러한 믿음 체계의 영향은 1962년에도 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히틀러에 의해서 기초가 세워지고 아이히만에 의해서 실행된 다윈주의적 인종차별주의는 그의 모든 사고에 영향을 주었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나치의 대량학살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또한 그러한 아이히만의 사고는 헐이 전해준 성경 말씀의 진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했다.

진화론적 인종차별주의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나치의 대량학살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다. 

아이히만이 적어도 여섯 차례 이상의 면담에서 이러한 개인적 견해를 표명했지만, 헐은 아이히만의 영혼에서 이 핵심 부분을 놓쳤던 것으로 나타난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헐은 그의 서문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그렇게 만든 것이 ‘이 세계(the world)’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범죄를 실행케 하고 양심을 마비시켜 버린 것은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고 생각한 아이히만의 진화론적 믿음이었다. 그것은 그가 읽었던, 또는 헐이 들려주었던,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복음의 시작부터 막아버린 절대적 장벽이었던 것이다.

헐의 기록에서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 사실 하나는, 아이히만이 교황 비오 12세의 말을 인용하여 ”백억 년”이라는 쓴 글 옆에 헐은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에 따르면 50억 년 전이다)”라는 괄호글을 추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p.147). 이것은 헐 자신도 오래된 연대를 믿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그가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을 믿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사건에서, 헐은 아이히만의 진화론적 믿음 체계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 변증이나 성경적 변증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원하는 크리스천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복음 전도자는 의심 없이 성경적 세계관을 확고히 가지고 있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인정해야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계관(특히 진화론적 세계관)과의 논쟁에서 성경을 방어하고 지킬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상대방의 비성경적 세계관을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

헐이 서문에서 말했던 것처럼(p.xiii), ”구원은 논쟁에서 승리하여 얻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며, 지혜로운 사람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에 의해서 마음이 온유해져서 구원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더 말해져야 될 것이 있다 :

1.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는(엡 6:17) 성경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검을 무디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돌밭에 떨어진 말씀이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돌들이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4] 

아이히만이 가졌던 세계관의 문제점에 대해서 헐이 그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성경은 명백하게 이 우주와 지구는 최근에 창조되었고, 권능의 말씀으로 즉시 운행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세계에는 창세기의 기록이 사실이며,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풍부한 증거들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 만물에는 창조주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롬 1:20)

하나님이 베푸신 용서와 구원을 받아들이기 전에 (진화론의 허구성을 깨닫고) 진리를 확신할 필요가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18절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번역 - 김정화

링크 - http://creation.com/adolf-eichmann

출처 -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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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 Hebert
2018-04-24

진화론이라는 신비주의와 과학의 종말

(Evolutionary Mysticism and the End of Science)


      세속적 진화론자들은 매우 자주 '마술적' 추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종종 자신들을 경험주의적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물론적 자연주의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30년 전에 창조연구소(ICR)의 설립자인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박사가 지적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진화론이라는 신비주의적 개념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인다.[1]

진화론자들이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두 가지는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과, 생각 또는 정신의 기원(origin of consciousness)일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실험적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체가 비생명체인 화학물질들로부터 우연히 생겨났다고 주장한다.[2] 자연주의적 과정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어 보이는, 세포를 이루고 있는 극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수천의 유기물질들이 모두 동시에, 종류별로 우연히 만들어져서, 또한 우연히 조립되어, 생명체가 자연발생 했다는 것이다. 또한 다음 세대로 전해줄 유전 정보들과, 전달에 관여하는 모든 유기물질들이 모두 우연히 생겨나, 번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실험적 증거들은 완전히 제로이다.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과 생각의 기원(origin of consciousness)은 진화론자들이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두 가지일 것이다.

또 하나의 자연주의적 수수께끼는 사람이 무기물에서부터 진화한 물질적인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생각(consciousness, 정신)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단지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면, 왜 개인용 컴퓨터와 같은 기계들은 생각을 갖고 있지 못하는가? 슬프게도, 일부 진화론자들은 개인용 컴퓨터도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뿐만 아니라, 우주의 다른 모든 것들도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범신론(panpsychism)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신념은 생각은 단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의 근본적인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범신론에 따르면, 만물은 초보적 수준의 생각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개별적 입자로 되어있다고 말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가 인식 객체는 외부 영향과는 별개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것은 일부 과학자들이 실제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그레고리 매틀로프(Gregory Matloff)는 어떤 별(stars)들은 의식적으로 그들의 운동을 바꿀 수 있다고 이론화했다. 그가 제안한 두 가지 메커니즘은 한 별이 의도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물질 제트를 방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생각을 하는 것인가? 이것은 정신적 활동인 생각이 될 수 없다![3]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적 사람들이라고 우쭐대며 말하면서, 실제로 이런 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러한 것을 제안할 수 있는 과학계의 환경이 150여년 넘게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적 사람들이라고 우쭐대며 말하면서, 실제로 이런 것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성경은 사람과 동물 모두, 생명과 정신의 존재에 대해 합당한 설명을 제공한다.(창 1:20-31, 2:7).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하셨고, 사람은 불멸하는 영적인 구성 요소와, 물리적 구성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21절에 따르면, ‘고등한‘ 동물은 아마도 적은 형태의 네페쉬(nephesh) 의식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성경의 설명을 거부하기 때문에, 미래의 과학적 진보뿐만 아니라, 이미 달성된 과학 지식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체가 자체 움직임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면, 어떤 경로를 지나갈 때 뉴턴의 운동법칙(Newton‘s Laws of Motion)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균형을 깨뜨린 외부적 힘이 작용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기를 선택했기 때문인가? 세속적 물리학자들은 정말로 이러한 길을 걸어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과학에 대해서 특별히 물리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적 퇴보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현대과학은 초기의 창시자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4] 그러나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적 결과와 관계없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한 불합리한 행동을 지식이나 과학에 대한 사랑으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없다. 그들은 창조주를 거부하고 경멸하려는 자신들의 생각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과 동물 모두, 생명과 정신의 존재에 대해 합당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것은 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이 단지 부차적 논쟁이 아님을 가리킨다. 사람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는 정말로 엄청나게 중요하다. 모든 과학자들은 창조주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성경 창세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Morris, H. M. 1987. Evolution and the New AgeActs & Facts. 16 (3).
2. Tomkins, J. P. 2018. The Impossibility of Life’s Evolutionary Beginnings. Acts & Facts. (47) 3: 11-14.
3. Matloff, G. L. 2017. Stellar Consciousness: Can Panpsychism Emerge as an Observational Science? EdgeScience. (29): 9-14.
4. Hebert, J. 2016. How Theology Informs Science. Acts & Facts. 45 (5): 14.

* Dr. Jake Hebert is Research Associate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Cite this article: Jake Hebert, Ph.D. 2018. Evolutionary Mysticism and the End of Science. Acts & Facts. 47 (4).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10552/

출처 - ICR News, 2018. 3. 30.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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