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다윈의 진화론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다윈의 진화론과 나치의 인종 대학살 

(Darwinism and Nazi race Holocaust)


     나치당 간부들과 1900년 초의 유력한 독일 생물학자들은 그들의 저서에서, 다윈의 이론이 나치의 인종차별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공언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인간의 유전인자 풀(pool)은 선택적 생식을 통하여 개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농부가 우량종 가축을 생식하는 방법과 유사하다는 생각에서 연유된 발상이었다. 히틀러 정부는 인종차별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윈의 진화론에, 특히 스펜서(Spencer)와 헥켈(Haeckel)의 고심하여 쓴 책들에 크게 의존했다. 결과적으로, 히틀러 정부정책의 핵심은 '우등인종'의 보호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실행하는데 있었다. 이 정책이념은 가능한 한 우등인종이 '열등인종'과 섞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열등인종'의 유전자 풀에 의한 오염을 최소화 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른바 '우등인종'에 대한 그들의 신념이 근거하고 있던 이론은 모든 종이 각기 그 내부에 집단적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이 학설은 다윈의 진화론의 근본인 '적자생존(適者生存)' 이론에 대전제가 되며, 동시에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이 철학적 신념은 결국 '종국적 해결'이란 정책으로 현실화되어, 무려 6백만 명의 유태인과 독일 과학자들이 '열등인종'으로 판단한 인종에 속하는 무고한 사람들 4백만 명을 말살하기에 이르렀다.


서론

나치가 유태인을 대대적으로 학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이론에 의하면 진화의 진행은 주로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약자의 제거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비록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의 모순되는 동기들을 평가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한층 고무된 우생학(eugenics)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다윈의 사상은 나치의 인종관념과 전쟁관념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고무하였다. 만약에 나치가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대로 모든 인류는 아담(Adam)과 하와(Eve)의 후손들이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전폭적으로 포용하고 그 믿음의 바탕에서 일관되게 행동을 하였다면,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의 주류(자유주의적) 신학과 이에 속한 여러 분파의 학파가 전개하던 운동(인류의 신성한 기원에 대한 유태교적-기독교적 이론을 삭제하고, 그 대신 다윈의 진화론적 인류기원론으로 대체하자는 운동)은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발전에 적용하자는 공공연한 주장에 크게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학의 진화론적 해석은 급기야 Holocaust1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헥켈[2,3,4,5,6]과 챔버레인(Chamberlain)[7] 그리고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수정된 다윈의 학설은 9백만 명이 넘는 생명을 강제수용소에서 살해하고, 6조 달러의 전비를 소요케 하였던 전쟁에서 사천만의 생명을 희생시켰다. 더군다나, 나치 사상을 극악무도한 Holocaust에 까지 이르게 한 주요 이유는 사회발전의 진화론적 해석을 자연과학계에서는 물론 인문학계에서까지 광범하게 수용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했다.[1,8,9,10]

진화는 적자의 선택적 생존, 혹은 우등한 개인의 선택적 생존에 의해서 진전된다는 것이 다윈 이론의 핵심이었다. 이 이론이 성립하려면 하나의 종 안에 다양한 개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체간에 존재하는 차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벌어져, 마침내 보다 유리한 특성을 지닌 개체들(최적자들)이 더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록 인종의 차별화가 애초에는 근소한 차이에서 출발하지만, 차별적 생존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종분화(speciation)의 과정(새로운 종의 개발 과정)을 거쳐 뚜렷하게 벌어져, 마침내 차별화 된 종족이 태어나게 된다는 이론이다.

오늘날 서구의 이념을 지배하는 사상,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평등주의 이념은 모든 국가와 문화들 사이에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다.11 이 이념을 반대한 주요 세력은 사회 진화론적 우생학 운동, 특히 그들의 생경한 '적자생존'의 세계관이었다.10,12 루드머러(Ludmerer)가 일찍이 지적한 바도 있지만, 인종의 유전적 특성은 선택적 생식에 의해서 개량될 수 있다는 이념은 플라톤(Plato)의 공화국(Republic)에서 이미 엿볼 수 있을 만큼 오래된 사상이다. 그러나 :

”... 현대의 우생학은 19세기에 들어와서 생겼다. 이 신생 이념인 우생학의 뿌리는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뿌리는 진화론이다. 프랜시스 갤튼(Francis Galton, 우생학 이라는 학술 용어를 만든 사람)은 그의 사촌,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과학적 이론(진화론)에서 파생한 직접적이며 논리적 부산물이다.”[13]

나치는 독일의 정부정책은 다윈사상으로 대표되던 당시의 과학자와 유식 계층 간에 존재하던 시대정신(Zeitgeist)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홍보하였다.[10] 당시의 독일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에 대한 평가는 20세기 나치 운동과 이를 지지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작성한 현존하는 문서들, 저작물들, 그리고 문화유물들에 대한 조사로 기약될 수 있을 것이다. 케이스(Keith)는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즉, 유태인을 비롯해 '열등'한 '인종'으로 단정해버린 인종들에 대한 나치의 독단적 차별정책은 다윈 이론이 인류를 개량하는데 결정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그들 나름의 신념에서 연유된 결과가 크다,[14] 테네바움(Tenebaum)은 독일의 정치철학의 기초가 된 신념은 진화론적 발달 개념이 결정적인 요소들이었다 라고 했다.

”... 투쟁, 선택, 그리고 적자생존과 같은 개념과 관찰들은 모두 다윈한테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런 개념들은 이미 19세기 독일의 사회철학 속에 널리 싹트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그런 밑바탕이 있었기에 독일제국(Reich)과 약소국과의 관계에서 '망치와 모루'의 그것처럼 ... 비교 우위에 있는 독일은 세계를 통치할 고유권리가 있다, 라는 이론이 개발될 수 있었다.” 14


다윈 이론에서의 인종 개념의 중요성

진화론은 개체가 독특한 특성을 습득하여 그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현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새로운 특성을 제 것으로 만든 개체들은 그런 특성을 갖지 못한 개체들과 비하여 더 잘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우수한 개체는 보다 더 잘 살아남아서 이러한 특성들을 후손들에게 전수함으로써 그런 특성의 수가 점점 많이 축적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보다 약한' 개체들이 결국 도태되어 사라질 것이다. 만약 하나의 종 안에서 모든 개체들이 전적으로 평등하다면, 자연은 선택의 대상을 찾지 못할 것이며, 결국에는 그 종의 진화는 중단되고 말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는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궁극에는 전혀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들 중 얼마는 살아남는 데 있어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게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집단은 우수한 집단, 다시 말해서 보다 진화된 종족이 될 것이다. 그런 특성을 습득하여 제 것으로 만든 종족이 차지한 유리한 생존경쟁 조건 때문에, 그 특성은 궁극적으로 전체 종족에 고루 확산될 것이다. 그리 되어 결과적으로 더 높고 더 진화된 형태의 동물이 출현할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들은 자기네들의 주요 목표들 중 하나가 이 용인된 ”과학적인 이론을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다윈 이론의 핵심은 진화가 아니고 선택이었다. 진화는 ... 선택의 결과를 기술한다.”[16] 히틀러는 보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나치]는 반듯이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에 협조하여야 한다” 라고 강조하였다.

모든 다른 인종들 위에 자리하고 있는 유일한 인종으로서, 아리안족(Aryans)은 자기네의 진화론적 우수성으로 인해서 모든 타 인종을 지배할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또한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인종문제야말로 나치 철학의 주요 강령의 하나였다; 그래서 테네바움(Tenebaum)은 나치주의는 다윈이념과 합병하였다, 라고 잘라 말했다 :

” ... 나치의 정치 체계 속에는 아무 것도 빠뜨린 것이 없었다.  ... 그들의 정치 철학의 사전은 공간, 투쟁, 선택 그리고 멸종(Ausmerzen), 이런 類의 어휘로 가득 차있었다. 나치들은 연역법적 논리를 사용하여, 세계는 하나의 정글과 같아서 그 속에서는 서로 종족을 달리하는 인종들 간에 제각기 공간을 차지하기 위하여 쉬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강자는 승리하며, 약자는 죽든지 죽임을 당한다, 라고 분명히 결론짓고 있었다. ...”[17]

1933년, 뉘름베르크에서 개최된 나치당 대회에서, 히틀러는 ”보다 고등한 인종은 보다 하등한 인종을 복종시킨다. ... 자연 속에서 관찰되는 이 권리야말로 우리의 사유(思惟)가 미치는 유일한 권리로 간주되어야 한다” 라고 선언하고, 그것은 과학을 통해서 발견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15]

히틀러는 인류도 동물이기 때문에, 가축의 생식(生殖) 과정에서 습득한, 유전인자의 유전법칙의 적용이 가능한 상대(相對)라고 믿었다. 나치들은 자연의 힘에게 진화를 주관하도록 허락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인종의 진화를 일일이 조종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의 첫 단계는 '열등 인종들'을 격리시켜서 '아리안족'의 유전인자 풀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었다. 사실상 이 정책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그들은 열성인자가 열등 인종을 생식한다는 다윈 이론이 과학적으로 '입증' 되었다는 학설을 순수하게 믿었다. 이 신념은 독일의 지식계층 간에서는 상식으로 통했다. 나치들은 자신들의 정책은 보다 살기 좋은 세계의 수립을 위한 실천계획의 일환으로 과학이 입증한 학설들을 우등 인종 생식에 적용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믿었다 : ”법인 국가(corporate state)의 사업은 우생학 다시 말해서 인위적 선택이라는 응용 생물학을 정책 기조로 한다.”[18,19]

일찍이 1925년에 벌써, 히틀러는 '나의 투쟁 (Mein Kampf)' 제 4장에서 다윈 이념이 독일의 성공에 이바지한 유일한 근거이라고 기술하고, 그 취지를 유명한 자신의 저서의 제목인 나의 투쟁 이 적절하게 암시하고 있다고 기술하였다. 클라크(Clark)가 결론적으로 지적한 바와 같이, 아돌프 히틀러는:

” ... 진화론의 이론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진화론적인 관념들은 노골적으로 Mein Kampf와 그의 대중 연설문 안에 드러나 있는 조잡스러운 내용들의 근거가 되어 있었다. ... 히틀러는 ... 보다 고등한 인종이 언제나 보다 열등한 인종을 정복했다고 하면서 자기 이론의 합리화를 시도했다.”[20]

한편 히크만은 이에 부언하여, 히틀러는:

” ... 진화론의 돈독한 신자였으며 또 설교자였다. 그의 정신병적 복잡한 증세가 얼마나 깊고 심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투쟁의 개념이 중요하였던 이유로] ... 그는 Mein Kamfp에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수많은 진화론적 관념들, 특히 투쟁, 적자생존과 같은 관념들과 약자의 멸종과 같은 제안을 강조하는 관념들을 표현하고 있었다.'21 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라고 했다.

더욱이,  '우등인종'을 생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진화의 과정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야말로 나치주의의 핵심적인 라이트모티브(Leitmotif: 중심사상)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밖에 여러 출처들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나치 사상은:

” ... 이념적 화주(火酒:독한 술)를 내놓았다. 이러한 관념들은 몽마(夢魔)와 연계하여 나치의 국가적 사회정책을 군사정책과 외교정책에 꽁꽁 묶어 크게 반영하고 있다. 그 사실들은 나치의 거대한 인종 프로그램에 비추어보아 명백하게 이해될 수 있다.”[22]

다윈의 진화론과 인종문제에 대한 나치 세계관의 운명적인 합병은 결과적으로 유태인 대학살(Holocaust)과 2차 세계대전을 야기한 주요한 이유로 불거져 나왔다.

”나치 사상과 이론의 중심 강령 중 하나는 ... 진화론이었다, [그리고] ...나치는 모든 생물학적 주체들이 상향(上向) 진화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보다 더디게 진화한 유형(type)들은 ... 실질적으로 멸종되어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 나치는 자연의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주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치들은] 유태인을, 그리고 ... 나치가 '후진'으로 간주한 흑인을 멸종시킬 정치적 대책을 제도화하였다.”[23]

'우등인종', '열등인종 유형', '인종의 오염', 그리고 진화론 이란 단어 그 자체 (Entwicklung), 이런 것들은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이 빈번하게 사용하였던 용어들이다. 히틀러의 인종관은, 자주 주장되는 바처럼, 주변 과학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었다. 그 보다는 그의 인종관은:

”노골적인 다윈주의적 사회주의 유형이었다. 이런 이념은 전체 독일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고 또 용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독일 국민이 그의 인종차별관을 과학적이라고 간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가사회주의와 히틀러에 관한 최근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나치즘의 독특한 특징은 사회정책에 진화론을 실질적으로 적용하였다는 점이다. 국가사회주의 독일정부의 '생물학적-정치철학적 사회정책,'은 ... 인종 정책에 대한 도덕적 해석을 일원론적, 초자연주의적, 극단적 허무주의에 근거하고, 이를 인종 불평등에 대한 정책에 반영하고, 자연 법칙에 따르는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을 위한 영원한 투쟁의 이념을 공공정책 수립에 국가 권력을 동원하였다 ...”[24]

나치들은 보다 '고등한 인간'의 번식을 위한다면, 다윈의 이념도 조정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네 정책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철학을 내세워, 유력한 당원들의 저서와 연설을 통하여 거듭거듭 주창하게 하였다.[25] 그들은 진보된 세계건설을 위해 다윈의 이념에 따라서 당당하게 모든 방법을 다해서 부적자(不適者)를 무자비하게 제거하라고 요구하였다:

”독일의 사회주의적 다윈 이념의 기본 개념은 ... 인간이란 어떤 특별한 초월성도 또는 특별한 인간다움(humanness)도 없고 다만 자연의 한 부분일 따름이라고 했다. 다른 한편, 게르만족은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군서(群棲) 집단의 구성 분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정책은 생물학적 법칙의 솔직한 적용이라고 했다. 그들의 이념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헥켈과 그의 동료 사회주의적 다윈주의자들이 국가사회주의 사상의 핵심 이념을 진전시켰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법인 국가의 사업은 우생학, 즉 인위적 선택 과업이다, 라고 주장했던 장본인들이다....”[18]

언젠가 한 번은 히틀러가 이렇게 진술한 적이 있었다, 우리 나치 당원들은: ... ”야만인들이다! 우리는 야만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명예로운 명칭이다. [왜냐하면, 그 명칭으로 해서,] 우리는 세계를 도로 젊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26] 한 사람의 진화론 신봉자로서의 히틀러는 ”의식적으로 독일의 실질적 정책 집행을 진화론의 이론에 합치하게 하려고 하였던 것이다.”[27]  케이스(Keith)는:

”만약에 전쟁이 진화의 아들이라면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아들인) 전쟁이 발발했을 때엔, (아버지인) 진화는 '미쳐버릴 테고,' 급기야는 극도로 광포해져서, 생명의 세계에서 하여야 할 제 나름의 고유 역할을 수행 못하고 끝내 좌절하고 말 것이다   진화의 고유 역할이라면, 상호 경쟁하는 개체들, 말하자면, 부족들, 국가들, 또는 인종들 사이에 경쟁을 촉진시키는 역할이다. 단 한 가지 길 말고는 전쟁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것은 진화의 법칙을 인간 본성에 그 법칙이 지워놓은 강제력을 인간 본성에서 제거하는 길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진화의 법칙을 무효화할 수 있을까? ... 나로서는 당장에 그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며 실천할 수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 ”인간이 본성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독일이 진화의 술통에서 진화주(進化酒)를 마지막 남은 앙금까지 몽땅 마셔버리고 진화론에 만취된 상태에서 유럽을 물과 피로 목욕을 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진화의 법칙이 악(惡)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인간을 정글로부터 끄집어내어 야수들의 왕으로 만들어 준 법칙이라면 그런 법칙 (진화의 법칙)을 마냥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을 것이다.”[28]


독일의 유태인과 다윈 사상
독일의 우생학 지도자들은 영국의 그들에 비교하여 원래가 그다지 심하게 반-셈족(anti-Semitic) 경향이 아니었다. 독일의 초기 우생학자들 대부분은 독일에 사는 유태인들을 아리안족(Ariyans)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독일의 우생학 운동이 독일 국내는 물론 국외에 사는 많은 유태인 교수들과 의사들에 의해 지지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유태인들은 완만하게나마 처음에는 독일의 우생학 이론에, 나중에는 우생학의 법 적용에 협조하였던 게 사실이다.

다윈주의 인종관은 순수했던 독일 사회의 많은 분야들 속으로 천천히 침투해 들어갔다.[9] 독일의 인종적 순결을 수호한다는 목적에 헌신하였던 범독일연맹 (Pan German League)은 애초부터 공공연한 반-셈족 경향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사실, 독일에 동화된 유태인들도 연맹의 정회원이 될 수 있었다. 독일의 인종 이론이, 비록 흑인종과 집시인종(Gypsies)을 열등 인종으로 분류하였지만, 독일 안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유태인들이 많았던 이유로 해서, 유태인종은 열등인종에 부합하지 않다고 믿었던 독일 사람들이 많았다. 슈로이네스(Schleunes)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1903부터 범독일연맹(Pan German League)의 제반 사업계획 속으로 고루 퍼지기 시작하던 인종 이념의 영향은 그 정도를 높이다가, 1912년까지 연맹은 마침내 ”인종 원리'에 근거하여 인종차별과업을 추진할 것이며, 그 이후 머지않아 유태인을 맹원의 자격요건에서 제외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29]

독일 사람들의 인종관이 품고 있는 첨예한 과학적 배타성에도 불구하고, 1930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독일 유태인들한테 미친 영향이 그런대로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독일 유태인들은 독일국민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1차적으로는 독일인으로, 2차적으로는 유태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유태인들은 독일 지식계급이 가지고 있던 인종관념을 적절히 수정하여 자신들을 독일인 범주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나날이 높아가던 그들의 독일인으로의 동화 경향이 마침내 그 정도를 높여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독일은 당시 유태인의 안전한 피난처라고 믿게까지 되었다.30 당시로서는 아직은 창세기의 창조설을 굳건히 고수하면서 인종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는 진화론을 포함한 인종 차별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 이후 독일에서 전개되던 사태를 유태인 유전학자들은 물론 심지어 유태인 우생학자들과 몇몇 다른 유태인 사회집단들도 고분고분하게 수용하지 않았던 것만은 명백하였다:

”우생학 운동가들은 독일에서 전개되고 있던 우생학 계획의 진전을 우려와 감탄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집권한 후 표면으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던 우생학 계획의 실제적 세부 내용들을 그들은 어정쩡하게나마 환영하였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생학자들은 미국의 예를 들어, 그 곳에서는 결혼을 엄격히 통제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으면서도, 강력한 정치적 자유의 전통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자고 말하고 있었다.”[31]


히틀러의 우생학적 목표

나치의 정책들은 유태인이나 다른 인종들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결과보다는 우등인종을 열등인종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일견 이상주의적인 목표에서 오는 결과가 더 컸다. 히틀러는 자신의 다윈주의적 세계관을 생쥐를 포식하는 고양이에 비추어 설명하면서, 궁극적으로 유태인종을 멸종시켜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 유태인종은 사람을 타락시킨다. ... 궁극적으로 자연은 유해요인들을 제거하기 마련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연 법칙에 따라서 상호간에 먹고 먹힌다. 사람도 이 법칙에 의해 누군가를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파리는 잠자리한테, 잠자리는 새한테 잡아먹히고, 새는 새 나름으로 더 큰 새에게 희생된다. ... 자연 법칙을 알고 나면 ... 그 법칙에 순종하게 된다.”[32]

그리고 히틀러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그래서 정부는 반드시 '자연의 법칙' 특히 '원천적으로 인류를 출산하고, 그 진화의 근본인 적자생존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정부 정책에 적용하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십계명 중에서 인정하는 계명이 있다면, 그것은, '너는 네 종족을 보존하라.' 이다. 개인의 생명을 지나치게 값을 매기지 말아야 한다. 만약 개인이 자연의 평가의 눈에 중요하게 평가되면, 자연은 그를 보전하려고 애쓸 것이다. 한 마리 파리가 한 번에 수백만 개의 알을 낳지만 부화되는 알의 수는 몇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종족은 번창하고 있다.”[33]

히틀러는 아리안 족이 비(非)아리안 족과 섞여서 생식하는 것을 방지하려고 특단의 결심을 세웠다. 그의 결심은 결국 '종국적 해결책'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일단 열등한 인종들이 멸종하고 나면, 앞으로 오는 세대들은 그가 시행했던 계획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진보(improvement)를 두고두고 고마워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게르만족은 보다 고등한 인종으로서 영광된 진화의 미래가 약속되어 있다. 이 이유만으로도 유태인종은 게르만족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그걸 못했을 때엔 혼합 결혼이 발생할 것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보다 고등한 진화 단계의 존재로 태어나기 위한 자연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Mein Kampf, 나의 투쟁)[20] 라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은 종족에 비해 훨씬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인종들은 인간이 아니고 차라리 동물이다, 라고 나치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하의 인간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유태 인종은 실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집산주의자(集産主義者: collectivist)와 진화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을 멸종시키는 것은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다. 독일 정부의 시각으로는 그들을 사람(persons)으로 보지 않았다.”[34]

결과적으로, 다윈주의 운동세력은 '19세기-20세기 독일 지성사(知性史)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리고] 국가사회주의 [나치즘] 이론을 여는 서막으로 이해되었다.[35] 진화론이 세계 어느 지역에서 보다 독일에서 급속히 적용되어 공고하게 뿌리를 내렸던 이유는 왜일까?


독일의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된 진화론

슈로이네스(Schleunes)는, 1895년에 출판된 다윈의 저서가 독일의 유태인 정책에 끼친 영향은 즉각적이고도 충격적이었다, 라고 하고, 그는 비교적 신랄하게 그 이유를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에 와서 과학적으로 적법성이 인정된 생존경쟁에 대한 다윈의 철학은 우등한 사람이나 국가가 열등한 사람이나 국가에 대해 인종차별주의적 개념을 표방하는 것을 정당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투쟁을 당연시했다,”[36]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다윈을 대변하던 독일의 탁월한 과학자, 헥켈(Haeckel) 교수의 저서들이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자신들이 표방하는 인종차별관이 정당함을 강력히 간증해준다고 확신했다.[37] 헥켈의 지지에서 얻는 효과의 경우에서처럼, 기성 과학계의 지지는 인종차별주의 사상이 보다 광범하게 파급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그런 결과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인종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실질적으로는 과학적 진리의 표현이다”[36] 라는 데 크게 만족했다.

그런데, 그들의 인종관념에 대한 지지는 과학의 권위말고 어디서 그 이상의 권위를 구할 수 있겠는가? 가장 탁월한 동물-행동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고, 또 그의 연구 분야의 창시자로 간주되던 콘라드 로렌즈(Konrad Lorenz)는:

”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종문제에 대한 최선의 치료 방법은 기생체(寄生體)의 성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근절시키는 방법이다. 사회 내에서 감염된 부차집단(副次集團:subpopulation)의 열생학(劣生學: dysgenic)적 영향에 대항하는 우생학적 사회집단의 방어수단은 기생체 제거를 위한 과감한 조치야말로 최소한의 필요한계다. ... [건강한] 사회집단이 이 열등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했을 때에는 악성종양 세포가 인체 전부위로 확산하도록 내버려두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열등 요소들은 자체뿐만 아니라 숙주체(宿主體)까지 파괴해 버린다.”[38]라고 진술했다.

로렌즈의 저서는 열등인종들의 ”기생적 성장”을 근절시키기 위해 설계된 나치의 계획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게르만 종족(German Volk)'의 종족적 우수성 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정부계획들은 인종차별주의를 거의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비록 왕(King)은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은 과학적 유전학적 근거에 준한 것처럼 위장한다....” 라고 말하였지만[39], 정부와 대학교의 엘리트들의 입장은 이미 단단히 확립되어 있어서 동시대의 과학자들은 정부의 인종정책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할 입장에 있지 못했던 것이다.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에 대한 일부의 책임이 독일 국민의 반-셈족적인 태도에 돌릴 수는 있다 그것도, 다윈 사상이 기존의 독일 국민의 태도에 보태어졌을 때에 가서야, 그들의 반-셈족적인 태도가 그 효력을 치사량까지 높아지는 시너지 효과를 들어내는 결과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우생학은 더욱 더 극단으로 흘렀다.

우생학 계획의 제 1단계는 어느 집단이 유전적으로 우등한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크게 보아 종족별 문화수준을 판단척도로 삼는 기준이었다. 우등 선별평가에 필요한 이상적인 특징들은 이러했다: 즉,

” ... 인종 이론가 한스 귄터(Hans F.K. G nther)가 묘사한 우등한 인간의 외양적 특징들을 살펴보면; '금발, 장신, 긴 두개골, 좁은 안면, 강조된 턱, 좁고 높은 콧날, 부드러운 모발, 엷은 파란색 눈, 큰 눈망울, 희고 분홍빛 피부색깔 이런 것들이다.”[40]

피상적인 관찰만으로 인종을 광의의 차등으로 분류하는 일은 아무한테나 가능한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심도있는 탐구를 하고 보면, 인종별 등급을 매기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실제로 나치가 그것을 인식하기까지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열등하다고 치부해버렸던 집단들 가운데 많은 소집단들, 예컨대 슬로바키아인(Slovaks), 집시인(Gypsies), 그리고 몇몇 다른 인종들은 순수 아리안(Aryan) 인종과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나치가 분류 대상자들을 '최고등' 인종으로 구분할 때, 대상자의 두개골의 크기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육체적 특징들을 측정했다. 나치들은 제나(Jena) 대학교의 인종과학 교수 한스 귄터(Hans F.K. G nther)의 이론에 크게 의존했다. 당시 비록 귄터는 ”나치당과 개인적으로는 격렬하게 논쟁하는 관계에 있었지만, 그의 인종 개념들은 나치당에 의해 수용되고 있었다. ...” 사실, 그의 인종 개념들은 독일 정부안에서 광범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독일의 인종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41] 귄터는 ”하나의 인종이 비록 순수하지 못하다고 하여도, 그 구성원들은 해당 인종의 어떤 주도적인 특징들을 골고루 가질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주도적 특징들에 준하여 그 인종의 특징을 정형화(stereotyping)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41]

귄터는, 모든 아리안족(Aryans)의 특징을 북유럽인(Nordic)의 유형이라 하고, 이 유형은 자기 자신이 혼합 인종으로 분류한 유태인의 유형과 대조된다고 결론 내렸다. 귄터는 한 인간의 족보, 두개골의 동물학적 치수 측정, 그리고 육체의 외형의 치수 평가 따위를 종합적으로 사용하여 그 사람의 소속 인종을 결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인체는 영혼의 쇼 윈도우이며, 영혼은 제 1원리다.”[42] 우등인종에 필요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극상급(極上級) 여성들을 특별 구역의 주거에 거주하면서 임신하도록 하여 정부 계획이 끝날 때까지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으로 태어난 후손들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그 후손들의 IQ는 열등인종 쪽으로 후퇴하고 있었으며, 대개가 부모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쁜 혈통 이론

나치즘에 미친 다윈의 영향은 비단 유태인에 대한 그들의 차별적인 태도에서 뿐만아니고 여타의 문화와 인종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골고루 드러나고 있다. 나중에는 심지어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나치의 태도에서도 다윈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는 데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다름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즉 정신질환은 유전의 영향이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정신병 환자들의 혈관 속에는 유태인의 피나 비-아리안족의 피가 섞여 있을 것이란 믿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치는 궁극적으로 그들을 말살하여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폴리아코브(Poliakov)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즉, 1900년대 초기 수년 동안에는 감응유전(感應遺傳: telegony) 이론을 수용한 지식인이 많았다. 이 이론은 '나쁜 피'가 한 인종의 혈통을 영원히 오염한다. 그것은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쁜 피가 좋은 피를 몰아낸다”[43] 라는 이론이다. 그것은 오직 멸종만이 열성(劣性) 유전인자의 혈통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며, 그리 되면 진화도 한층 더 진전 될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다윈은 열성 혈통 사례들을 담은 긴 목록을 작성하였다. 그 사례 목록에서 그는 나쁜 피가 전체 유전인자의 혈통을 오염시켜서 영원히 불순한 피를 가진 후손을 출산하게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뮨헨(Munich)대학교의 언스트 류딘(Ernst Ruedin)을 포함하여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프랜시스 갤튼(Francis Galton), 그리고 나중에 예일(Yale) 대학교에서 정신병학 교수가 된 유진 칸(Eugene Kahn)과 같은 존경받던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이 유전학적 주장에 찬성하였다. 이 과학자들이야말로 독일의 강제적 거세법의 주된 입안자들이었다. 이 법안은 아리안의 유전자 풀(pool)을 결함이 있는 '열성' 인자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 '열성인자'는 또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대량학살을 정당화했다. 열등집단으로 판단하는 기준의 범위가 점차로 확대되어, 마침내 보다 다양한 인종들과 민족 집단들한테까지 적용되었다. 나중에는 그 기준은 건강이 좋지 못한 노인, 간질병 환자, 증세의 경중의 구별없이 정신지체자, 청각 또는 시각의 결손 환자, 그리고 심지어 어떤 정기적으로 병중에 있는 자, 이런 부류들한테까지 적용되었다.[1,44]

'열등'에 대한 판단기준이 나중에는 흑인계나 몽고계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나, 집시들, 그리고 솜씨 있게 설계된 뻔뻔스러운 인종학적 골상학 실험 기준(지금은 쓸데없는 것으로 알려짐)[45]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한테까지 적용되었다.[44] 제스 오웬(Jesse Owen)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경기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자, 히틀러는 흑인을 올림픽 경기에 참가시킨 것을 트집 잡아 미국을 혼내준 적도 있었다.[46]

어떤 진화론 학자들은 심지어 여성들이 남성들과 비교하여 진화론적으로 열등하다는 견해를 옹호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나중에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유명한 신경학(neurology) 교수가 된 로버트 바르텐버그 (Robert Wartenberg) 박사는 여성들은 '남성의 보호'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열등을 증명하려 노력하였다. 이어서 그는, 남성의 보호가 원인이 되어 약한 여성들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화의 속도가 훨씬 더디게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로 여성에 대한 자연 선택이 남성에 대한 그것보다 덜 작용하였다고 주장했다. 약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택' 하는가 하는 측면에 대해서 그는 명확한 해설이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약자'를 결정하는 기준 또한 없었다. 나치 독일에서 여성들은 일부 업종에의 취업이 공공연히 제지받았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만 맞춰서 취업하여야한다는 것이 법으로 요구되었던 것이다.[47]


나치 독일 내에서의 진화론, 그리고 전쟁
다윈 사상은 독일 사람들로 하여금 최근세에 들어 독일이 치렀던 군사행동에서 얻었던 경험에서 나름으로 뜻 있는 해석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장차 독일의 공격적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필요한 빌미를 제공하였다: ”비스마르크(Bismakian)의 전쟁들에서 거두었던 독일의 군사적 성공은 다윈 이론이 표방하는 생존경쟁의 범주들 속에 깨끗이 합치되어 ..." 독일이 적자임을 [천명하고 있다].[48] 전쟁은 '약한' 인종들을 제거한다는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우등' 인종 내에 있는 약한 구성분자들도 제거한다는 이유 때문에 긍정적인 힘으로 인정되었다. 히틀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하게 우등인종을 출산하려고 기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공공연하게 인종의 멸종정책과 전쟁정책을 수립할 때 크게 다윈의 사상에 의지하였다.[25] 부분적으로나마 이래서 나치 독일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이야말로 고등한 인종으로부터 부적합한 인종을 제거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전쟁은 '인종의 등급을 한층 높이는' 데 필요한 단계라고 하였다. 클라크는 Mein Kampf 를 집중적으로 인용하면서 히틀러의 말을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에 대한 히틀러의 태도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그의 태도는 동일한 원칙에 근거하고 있었다. ”세계 법정은 ... 하나의 농담에 불과할 것이다 ... 자연의 세계 전체가 강자와 약자간에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투쟁의 격투장이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영원한 승리만이 지배하는 세계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전체 자연 안에는 부패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 살고자하는 사람은 싸워야만 한다. 끝없는 투쟁이 삶의 법칙인 이 세상에서 싸우기를 원치 않는 자는 생존할 권리가 없다.” 이와 다른 생각은 자연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런 모욕에 대해서 자연은 고통, 비참, 그리고 질병이라는 응분의 보복으로 대답할 것이다.”[49]

히틀러는, 독일 사람의 위대성은 주로 그들이 주전론자였기 때문에 여러 세기에 걸쳐 약한 구성원들을 제거해 버린 결과로 생겼다, 라고 주장하였다.[50] 독일 사람들한테 전쟁이 생소한 것이 아니었지만, 히틀러의 전쟁 정당론은 그들의 전쟁정책에 강력한 지지를 보태주었다. 약한 인종들을 멸종시키는 과업이야말로 진화의 주된 동력이라는 관념은 위감(Wiggam)에 의해 잘 표현되고 있다:

” ... 한 때에는 인간이 동물학적으로 사촌간인 유인원보다 양적으로 더 큰 뇌장(腦漿)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러나 발길질과 물어뜯기, 그리고 싸움으로 ... 그리고 적의 의표 찌르기로 사람은 적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이런 감각과 힘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적들은 도태되어버렸다. 더욱이, 인간의 뇌장은 커졌다. 그리고 신체 구조는 아닐지언정 인간의 지혜와 민첩성만은 증대했다. ...”[51]

다시 말해서, 오직 목숨을 담보한 투쟁을 통해서만 인간은 진화하기 때문에, 전쟁은 결국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끝없는 전쟁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화두가 모순된 것 같지만 사실은 진리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대의 많은 과학자들은 공공연히 그의 전쟁관념을 옹호하고 나섰다 : 헥켈은 특히 고대의 스파르타 인을 즐겨 칭송하였다. 그는 스파르타 인이 성공적인 우등인종이 된 데는 생물학적 선택을 사회발전에 승인 적용하였던 결과라고 했다. '완벽하게 건강하고 강인한 아이들'을 제외하고 여타의 아이들을 도태시킴으로써 스파르타 인들은 '지속적으로 뛰어난 힘과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52] 기형아와 병약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는 물론 살해된 아이들한테도 고루 유익한 정책이었던” 만큼 독일도 스파르타 인들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 모든 인생의 가치는 평등하며, 또한 모든 생명은 보전되어야한다는 명제는 도저히 과학적으로 진실임을 증명할 수 없는 '전통적 교의'에 불과할 뿐이다.[18,53]

그러나 유럽의 문명이 여타의 문명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진화한 데는 다른 민족들과 두드러지게 대조되게 끝없이 계속되던 전쟁도발이 주된 원인이라는 가정은 거짓이다. 풍족한 식량이 보장되는 조그만 도서의 집합인 군도(群島) 내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또는 혹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전쟁은 실질적으로 모든 인류한테 전통적으로 수행되어 왔던 것이다.[54] 아시아 대륙에서나 북미 대륙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수많은 부족들은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전쟁에 휘말려 왔다.


나치즘과 종교
독일 내에서 우생학 운동에 반대한 사람들 대다수는 기독교도들이었다. 히틀러는 비록 세례 받은 카톨릭 교도였지만, 그는 결코 파문을 당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젊은 시절 한 때에는 자신을 '독실한 로마 카톨릭 신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확실하다. 실제로 그는 때로는 종교적인 언사를 구사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 그는 공공연히 강력한 반-기독교적 감정을 목청껏 외쳐댔다. 아마도 대부분의 나치 당 지도자들도 반-기독교적 감정에 있어서는 그와 같았던 것 같다. 일견 한 사람의 완숙한 정치인이 된 후부터 히틀러는 공공연하게 교회를 악용하려 하였다.[55] 히틀러는 기독교에 대한 자기 태도를 드러내면서, 노골적으로 이렇게 진술한 적이 있다:

”(종교는) ... 조직적인 거짓말이야, [그것을] 반듯이 박살내야 한다. 국가(the State)야말로 절대적 주인이 되어있어야 한다. 젊었을 때, 나는 종교를 파괴하기 위해 떨쳐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그 때 이후로, 나는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고 조금은 야릇한 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성 베드로의 의자(St. Perter's Chair)에 앉아있는 마지막 고위직 성직자는 어느 노쇠한 사제(司祭)인 게 틀림이 없다. 몇 명의 늙은 독부(毒婦)들이 그 사제와 마주보고 있다. ... 젊고 건강한 여자들은 우리 편에 있다. ... 인간성을 속박과 거짓말로 영원히 묶어둘 수는 없는 것이다. ... 기독교가 우리 국민들 위에 군림하였던 것은 오직 6세기에서 7세기에 걸치는 기간이었을 뿐이다. ... 우리 국민들은 예전에는 종교 없이도 온전히 살아오는데 성공했었다. 나는 지금 6개 사단의 SS (Schutzstaffel: 나치 친위대) 병력을 소유한다. 그들은 종교 문제 따위엔 절대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들이 죽으러 떠날 때 종교 없이도 영혼의 평안함을 느끼고 있다.”[56]

여기 인용된 그의 말속에는 넘치도록 많은 그의 신념들이 그 진면목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독일의 희망인 청년들은 ”종교 문제에는 절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케이스(Keith)도 지적한바 있듯이, 나치당의 이념은 기독교 교리와 한 축의 양극과 같다고 생각했다. 밀너(Milner)는 독일 진화론의 아버지인 언스트 헥켈(Ernst Haeckel)에 대해서 말할 때, 헥켈이 자기 저서 창조론에 대한 자연사(Natural History of Creation)에서 ”사랑과 자비의 교회는 하나의 쇠잔한 사기꾼이 되어, 자연 질서를 왜곡한다.”[57] 라는 말을 지목했다. 헥켈이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주된 이유 중 한 가지를 보자. 그가 말하기를, 기독교는:

” ... 인종간의 차이나 피부색에 대해서는 전혀 차별을 두지 않는다. 즉, 기독교는 모든 인종간에 존재하는 장벽들을 허물어 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손은 자연의 여신의 손에 반대 입장에 있다. 그것은 인종들이란 바로 자연의 여신의 손이 긴 긴 세월 애써 만들어낸 진화의 수확물이란 걸 망각한데서 오는 태도다..., 안 그런가? 그럴진댄, 기독교는 그 목적하는 바가 반-진화론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58]

독일 과학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종교에 반대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독일 정치계의 이론도 애초부터 종교에 반대하게 되었다. 스타인(Stein)은 진화론에 대하여: 다윈의 이론,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실시한 어느 강의에서 헥켈(Haeckel)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 ... [헥켈]은, 다윈이 옳았다. ... 인류가 동물의 왕국에서 진화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그리고 여기서부터 헥켈은 독일에서 풍미(風靡)하던 다윈 이념에 대한 대대적인 해설을 버리려고 운명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그에 의하면, 인류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생존은 진화의 법칙, 자연의 선택, 그리고 생물학적 현상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다윈도 이를 명백히 예시한 바 있다. 이 해설을 반박하는 이론은 낙후한 자들의 미신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미신이란 것은 당연히 조직적인 종교를 지목하는 말이다, 그래서 종교는 과학과 사회의 발달에 걸림돌이 된다.”[59] 라고 하였다.

여러 해 동안 히틀러의 최측근으로서 나치 독일에서 가장 세력있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마르틴 보르만(Martin Bormann)은 히틀러 못지 않게 직설적이었다. 그는, 교회는 진화에 반대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이 이유만으로도 교회는 유죄선고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나치는 과학과 진화의 편에 섰다. 더욱이 나치와 기독교 이념은 양립할 수 없다. 그는 이렇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즉, 기독교는:

” ... 어리석은 사람들 위에 서 있으며, 대다수 국민을 무지몽매한 상태로 묶어두려 한다. ... 이에 반해서,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는 과학적인 기초 위에 근거하고 있다. 최근 2000년 전에 설정된 기독교의 불변의 원리라는 것은 점차로 경직되어 마침내 생명력을 잃은 도그마로 변했다. 그러나 국가사회주의는 소명된 과업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반듯이 과학적인 연구조사에서 비롯되는 최신 데이터에 따라 스스로의 진로를 결정한다.”[60]


보만(Bormann)은 이어서 주장하기를:

” 오래 전부터 기독교 교회는... 과학 지식이 교회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교회는 신학이라는 의장과학(擬裝科學)을 이용하여, 과학적인 연구조사를 억압하고 또 왜곡하려고 상당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우리 국가사회주의의 세계관은 기독교의 교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있다. 기독교 교리는 근본적으로 유태교 교리에서 온 것이다. 또한 이 이유 만으로서도, 우리는 기독교 없이 잘 해나갈 수 있다.”[60]

훔버(Humber)는 히틀러가 흑인종을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에 있는 기형동물(奇形動物: monstronsities)로 보았기 때문에 독일 기독교도들이 다음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교회가 '중앙아프리카'로 가서 '니그로 선교단'을 설립하겠다는데 난색을 보였다. 그는 그 선교활동이 결국에는 "건강한 사람을 허약한 호로(胡虜) 자식으로 변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강자는 반드시 지배자로 남아있어야지, 약자와 피를 나누어 자신의 위대성을 결단코 희생시키지 말아야한다. 오직 약자로 태어난 자만이 내 말을 잔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한계에 묶인 약자일 따름인 데야 어쩌겠는가! 그것은, 만약에 이 법칙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유기적 생명체의 괄목할만한 상향발전(Hoherntwicklung:上向發展)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쪽 뒤에, 그는 다시 이어서, "살기를 원하는 자는 싸워야만 한다. 이 영원한 투쟁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원치 않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61]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에 인종 해독(害毒)의 이론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창조론적 역사관이 광범하게 수용되었다면, 독일의 인종차별주의는 존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기술한 참고 문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성경적 이론들 중의 한 이론에 의하면, 창세기는 원래 '두 유형의 사람'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즉, 아담(Adam)과 하와(Eve), 우등 인종 혈통과 '지구의 야수들', 즉 열등 흑인 혈통이 그런 유형이라는 것이다.[62,63] 그러나, 이따위 성경 해석을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윈 사상과 나치 사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과학적 연구 재료는 상대적으로 근소(僅少)한 편이다   진화는 피할 수 없이 선택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진화론 학자들은 이 주제를 기피한다. 다윈 사상과 나치 사상을 다룬 최고의 해설들 중의 한 해설에 의하면, 나치는 열등인종에 대한 멸종계획이 진화론이라는 과학에 굳건히 근거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64] 최근에 수많은 대중 매체들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정직한 논조로 이 화두를 다루었다.[65] 극악한 나치 사상의 원천은 다윈 사상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극악한 나치즘의 재발을 막기 위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 이념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라고 하고 히틀러의 말을 알기 쉽게 바꿔 해설했다; 즉,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66] 진화론을 받아드리지 않는 비-진화론(non-evolution)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조차 인종차별주의(racism)를 수용하거나 심지어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또 그들이 개발한 이론이란 것도 주로 사회의 편견에 호응하든가 아니면 기존 사회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 우리들의 현대적 시각으로 조망하고, 많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그 결과는 한 사람의 사악한 광인과 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또한 사악한 그의 정부가 표방하던 이념이 계속적으로 야기하였던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그렇지만, 히틀러는 자신을 악인으로 보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신을 인간에 대한 시혜자로 생각했다. 그는, 미래의 세계는 많은 세월이 흘러간 후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인종 계획 열등 인종들과의 잡혼을 금지하여 인종오염을 중단시킨 결과로 인종의 유전인자를 고수준의 진화단계에 끌어올린 계획 을 더없이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그 어떤 이념보다도 19세기의 사회적 다윈주의 학파의 이론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인간을 생물학적 물질로 보았던 이 학파의 인간관은 결국 계획 사회를 지향하는 충동에 묶이게 하였던 것이다. 히틀러는, 분방한 자유주의에 물든 무차별 잡혼(雜婚)으로 비롯된 그릇된 생식(生殖)은 한 나라의 혈통을 더럽혀서 그 인종을 붕괴시키어 마침내 열등한 인종으로 타락시킨다고 확신하였다. 이 생각은 결국 '양성(positive)' 치유가능 기준을 표시하는 카탈로그를 작성하게 하였다: 즉, 결혼 상대를 인종적, 위생법적, 우생학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선택하게 함으로써, 한 편으로는 선택의 방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적출(摘出)의 방법으로 인간의 생식을 도모하게 하였던 것이다.”[67]  

그의 옹호자들은 거듭거듭 이렇게 변명하였다. 즉, 열등 인종들을 강제수용소 안에 가두려 하였던 히틀러의 노력은 그들을 징벌하려는 의도에서보다는 병자들이 집단사회에 끼칠 오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격리수용과 비슷한 안전보호 조치였다, 라고. 실제로 하아스(Haas)의 말에 의하면, 나치가 ”유태인종과 다른 인종을 죽였던 것은 객관적으로 보다 큰 선(善)을 위한 하나의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방법이었다”[68] 라는 것이다. 또한, 아우스비츠(Auschwitz)의 사령관 루돌프 헤쓰(Rudolf Hoess)는 이어서, ”최근의 과학적인 견해가 합법화하였던 투쟁은 우등한 국민과 국가 대 열등한 국민과 국가 간에 개재하는 인종학적 차별개념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또 그들 간의 투쟁을 비준하고 있다”[69] 라고 말했다. 그런데 독일 안에서도 다윈 사상의 해악을 인정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프러시아(Prussian)의 교육부 장관 노르덴스키욀드(Nordenski ld)는, 비록 한 때나마 1875년에, 다윈의 가르침을 학교에서 금지시켰던 적이 있었다.

”... 프러시아의 교육부 장관은 나라의 각급 교장들한테 공문을 회송하고 다윈 이념과 그에 관계되는 일체의 자료의 취급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 이 새로운 이론의 위해성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자는 생각에서 그랬다.”[70]  

여기서 하나의 흥미 있는 질문이 제기 된다. 즉, 만약 이 금지 조치가 계속 효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holocaust)이 과연 발생할 수 있었을까? 헤겔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찬반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에게 큰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은:

”자유사상가들이었다. ...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였던 학교 규정과 같은 조치가 각급 학교에서 채택되자,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친구들은 많고 많은 헤겔의 망상(妄想)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때 그들의 열기가 어떠했었는지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 더욱이 헤겔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열기 또한 이에 못지 않았다; 다윈 이념을 학교에서 금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의 사상과 그 방법론은 모든 분야에 침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에 한한 한 헤겔은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크게 기여하였던 사람이다; 그의 발언 중에서 가치 있는 개념들은 영원한 것이 되었으나, 한편 우리는 그가 저지른 서툰 짓들을 마땅히 그런 것이라고 제쳐놓고 말았다.”[70]

헤켈이 부덕하고 못된 협잡꾼으로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발생하였던 소름끼치는 사건들에서 결코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것이 인정된 이상, 오늘날 어느 생물학자가 위의 글을 써야할 입장이라면 이 글을 마땅히 그런 것이라고 하고 삭제하고 말 것이다.

대중매체들(mass media)은 Holocasut에 끼친 다윈 사상의 영향에 대한 훌륭한 문집을 그냥 경시해 버린다. 오늘날의 저술가들은 다윈 사상과 나치의 인종 이론과의 밀접한 연계관계, 그리고 그것이 자아내었던 나치의 여러 정책들에 관한 자신들의 포괄적 무지를 용케 둘러대던가, 아니면 심지어 왜곡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스타인(Stein)은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민족중심주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외국인 혐오증의 역사는 그들이 사용한 과학과 이런 이념들을 사회운동에 적용하는 운동의 역사였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과학은 단지 원료처럼 사용되든가, 아니면 이념 지향적인 정치 배우들이 지닌 선입관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이용되었던 것이 명백하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회생물학자들과 생물정치학 학도들은 이런 방법으로 과학을 이용하려하는 모든 기도(企圖)는 단지 의사과학(pseudoscience: 擬似科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71]

그는 이어서 말하기를, 이와 같은 오늘날의 자기방어적인 태도는:

”... 어쩐지 좀 고의적인 역사 왜곡에 근거하고 있다. 민족중심주의와 그 유사 이념들의 역사는 인종주의적이며 배타주의적인 정치사회학의 이론을 과학의 이름으로 진전시키고 또 지지하기 위하여 과학자의 권위를 이용하는데 열심히 참여하였던 당시의 수많은 존경받던 과학자들의 활동의 역사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당시의 과학자들이 다만 인종차별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당시의 과학을 이용하였다, 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쿠니안(Khunian)식 건망증의 한 행태에 지나지 않든가, 또는 과거의 과학오용(誤用)은 의사과학이라고 단순히 치부해버림으로써 오늘날에 있을 수 있는 과학오용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여 역사적 사건을 말소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71]

자주 주장된 바와 같이 다윈은 자신의 교양에 합당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훌(Hull)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당시 독일사회가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특징을 들어냈던 데는 다윈의 이론 속에 그런 특징들이 있었다는데 기인한다" 라는 설명을 거듭거듭 듣고 있다. 훌(Hull) 은 다윈이 "자기 사회의 특징을 자연의 소치로 돌릴 만큼 철없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72]

종교적 열성의 위험에 대한 경고성 본보기로 나치주의가 자주 거론되지만, 프란시스 갤튼의 우생학이 위험한 역할을 수행한데 대해서는 아주 드물게 거론된다. 그의 우생학은 그의 사촌, 찰스 다윈이 지지한 자연의 선택 이론에 근거하여 창출된 학문이다. 우생학은 아직도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건재하다. 1955년에 캐나다의 어느 동물학자가 지적하기를, ”아마도 우리가 감과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다윈]이 교회가 행사하던 공권박탈의 막중한 규준(規準)으로부터 인간을 최종적으로 해방시키고 여러 세기를 걸쳐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상의 자유를 인간에게 찾아주었다는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73 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주장하기를, 사회로부터 교회의 영향력을 줄였든 결과로 우리들은 진화의 원리를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화의 수단을 소유하게 되어 그것을 이용하여 진화 그 자체한테 지시도 하고, 진화 스스로가 진전되게 내버려 두기도 하며, 진화의 방향이 나쁠 때엔 진화의 추진을 역추진 시켜서 진화를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퇴화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

로완(Rowan)은 사람은 비극적으로 후자를 취했다고 하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선택은 인간의 진보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위대한 다윈 이론의 원리는 남는다....”. 그런 다음 그는 ”사람이 지능을 얻었을 때, 그는 동물의 세계에서 선례가 없었던 전적으로 새로운 길로 떠났다. 이제 그 행로는 더 이상의 육체적 변화가 아니고 지능적 변화와 그에 버금가는 지적 선택에 의존한다.”[74] 라고 부언하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불행히도 인간들은 지능적으로 열등한 자들을 '구제하고' 있다, 그리고 열등인종의 문제를 생물학적 법칙에 따라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라고 했다.[74] 제 아무리 재치를 부린다고 해도, 이 이론이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즉, 진화론자가 부적자로 판단한 자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최소한 우리가 그들을 구제코자 하는 노력은 제한적이어야 하고, 나머지는 자연이 제 소임을 다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우리는 인류의 궁극적 파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 그가 말한 요지이다.


결론

다윈의 진화론의 진실성을 확고부동하게 믿었던 히틀러는 스스로를 인류의 현대적 구원자로 인식했다. 또한 그는 사회가 때가 되면 자기를 위대한 '과학적 사회주의자'로, 그리고 모든 인류의 은인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란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자기야말로 우등한 인종을 생식, 그리고 번식케 함으로써, 인간을 보다 높은 수준의 진화론적 발전에 끌어올린 사람으로 온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다윈의 사상이 진리라면, 히틀러는 우리들의 구원자일 것이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셈이 될 것이다. 그 결과로 인류는 슬픔을 당할 것이다. 반면에, 만약 다윈의 사상이 진리가 아니라면, 히틀러가 시도하였던 모든 실험은 역사상 가장 잔인무도한 범죄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윈은 가장 파괴적인 철학의 아버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영슨(Youngson)의 평가에 의하면, 사회에 적용된 다윈의 이론, 즉 우생학은 고금동서를 통해서 가장 비극적인 과학의 실수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이 우생학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측면의 정점에는 순수한 '아리안 족'을 그들 사이에서만 짝을 짓게 하여 '주인되는 인종'을 번식시키려 했던 히틀러의 시도와, 열성인자(劣性因子)를 소유한 인종이라 매도되어 6백만의 생사람을 살해한 히틀러의 시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갤튼(Galton)이 Holocaust의 책임을 히틀러한테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이 그 계획을 변호한 결과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 못하였던 책임까지도 히틀러한테 돌리려하는 것은 전혀 온당치 못한 작태였다. 어쨌거나, 그는 우생학의 주요 창시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히틀러가 갤튼의 우생학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실은 부인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를 고려하면, 우생학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커다란 과학적 실수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75]


*감사의 말. 이 문서의 조기 탈고를 위해 깊은 안식과 강평을 주신 Wayne Frair, John Woodmorappe, 그리고 Paul Humber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References
1. Chase, A., The Legacy of Malthus; The Social Costs of the New Scientific Racism, Alfred Knopf, New York, 1980.
2. Haeckel, E., The History of Creation: Or the Development of the Earth and Its Inhabitants by the Action of Natural Causes, Appleton, New York, 1876.
3. Haeckel, E., The Riddle of the Universe, Harper, New York, 1900.
4. Haeckel, E., The Wonder of Life; A Popular Study of Biological Philosophy, Harper, New York, 1905.
5. Haeckel, E., Eternity: World War Thoughts on Life and Death, Religion, and the Theory of Evolution, Truth Seeker, New York, 1916.
6. Haeckel, E., The Evolution of Man, Appleton, New York, 1920.
7. Chamberlain, H., The Foundation of the Nineteenth Century, 2nd Vol., (1st Vol. 1899), Lane, London, 1911.
8. Aycoberry, P., The Nazi Question: An Essay on the Interpretations of National Socialism, 1922 1975, Pantheon, New York. 1981.
9. Beyerchen, A.D., Scientists Under Hitler,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CT, 1977.
10. Stein, G., Biological science and the roots of Nazism, American Scientist 76(1):50-58, 1988.
11. Toback, E., Gianusos, J., Topoff, H. and Gross, C.G., The Four Horsemen; Racism, Sexism, Militarism, and Social Darwinism, Behavioral Publications, New York, 1974.
12. Clark, Robert, Darwin: Before and After, Grand Rapids International Press, Grand Rapids, MI, 1958.
13. Ludmerer, K., Eugenics, In: Encyclopedia of Bioethics, Edited by Mark Lappe, The Free Press, New York, p.457, 1978.
14. Keith, A., Evolution and Ethics, G.P. Putnam's Sons, New York, p.230, 1946.
15. Tenembaum, J., Race and Reich, Twayne Pub.,,, New York, p.211, 1956.
16. Stein, Ref. 10. p.53.
17. The Nuremberg Trials, Vol. 14,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Washington, D.C., p.279.
18. Stein, Ref. 10, p.56.
19. Poliakov, L., The Aryan Myth, Basic Books, New York, 1974.
20. Clark, Ref. 12, p.115.
21. Hickman, R., Biocreation, Science Press, Worthington, OH, pp.51-52, 1983.
22. Tenenbaum, Ref. 15., p. vii.
23. Wilder-Smith, B., The Day Nazi Germany Died, Master Books, San Diego, CA, p.27, 1982.
24. Stein, Ref. 10, p.51.
25. Jackel, E., Hitler's Weltanschauung, Wesleyan University Press, Middletown, CT, 1972.
26. Rauschning, H., The Revolution of Nihilism, Alliance Book Corp., New York, 1939.
27. Keith, Ref. 14, p.230.
28. Keith, Ref. 14, p.105.
29. Schleunes, K., The twisted Road to Auschwitz,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Urbana, IL, 1970.
30. Schleunes, Ref. 29, p.33.
31. Jones, G., Social Darwinism and English Thought; The Interaction Between Biological and Social Theory, The Humanities Press, Atlantic Highlands, NJ, p.168, 1980.
32. Hitler, A., Hitler's Secret Conversations 1941-1944, With an introductory essay on the Mind of Adolf Hitler by H.R. Trevor-Roper, Farrar, Straus and Young, New York, p.116, 1953.
33. Hitler, A., Ref. 32, p.116.
34. Whitehead, J, The Stealing of America, Crossway Books, Westchester, IL, p.15, 1983.
35. Gasman, D., The Scientific Origin of National Socialism, American Elsevier, New York, p.xiv, 1971.
36. Schluenes, Ref. 29, p.30-32.
37. Piliakov, L., The Aryan Myth (translated by E. Howard), Basic Books, New York, 1974.
38. Chase, Ref. 1, p.349.
39. King, J., The Biology of Rac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nd ed., Berkeley, CA, p.156, 1981.
40. Fest, J.C., The Face of the Third Reich, Pantheon, NY, pp.99-100, 1970.
41. Mosse, G.L., Nazi Culture; Intellectual, Cultural, and Social Life in the Third Reich, Schocken Books, New York, p.57, 1981.
42. Mosse, Ref. 41, p.58.
43. Paliakov, Ref. 37, p.282.
44. Wertham, F., A Sign for Cain, The Macmillan Co., New York, 1966.
45. Davies, J.D., Phrenology: Fad and Science,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CT, 1955.
46. Stanton, W., The Leopard's Spots; Scientific Attitudes Towards Race in America, 1815-1859,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IL, 1960.
47. Weindling, P., Health, Race and German Politics Between National Unification and Nazism 1870-1945,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MA, 1989.
48. Schleunes, Ref. 29, p.31.
49. Clark, Ref. 12, p.31.
50. Rich, N., Hitler's War Aim, Norton, New York, 1973.
51. Wiggam, A.E., The New Dialogue of Science, Garden Publishing Co., Garden City, NY, p.102, 1922.
52. Haeckel, Ref. 2, p.170.
53. Haeckel, Ref. 4, p.116.
54. Posner, G.L. and Ware, J., Mengele, McGraw Hill Book Company, New York, 1986.
55. Phillips, K., Post-Conservative America: People, Politics, and Ideology in a Time of Crisis, Random House, New York, p.164, 1981.
56. Hitler, A., Ref. 32, p. 117.
57. Milner, R., The Encyclopedia of Evolution, Facts on File, New York, p. 206, 1990.
58. Keith, Ref. 14, p. 72.
59. Stein, Ref. 10, p. 54.
60. Mosse, Ref. 41, p. 244.
61. Humber, P., The Ascent of Racism, Impact, February, p. 2, 1987.
62. Hawtin, G., The Living Creature; The Origin of the Negro, Geo. R. Hawtin, Battleford, Sask. 1980.
63. Magne, C.L., The Negro and the World Crisis, New Christian Crusade Church, Holywood, CA, 1972.
64. Meuller-Hill, B., Murderous Science: Elimination by Scientific Selection of Jews, Gypsies, and others, Germany 1933-1945,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p.23, 1988.
65. Gray, P., Cursed by Eugenics, Time, January 11, pp. 84-85, 1999.
66. Jones, E.M. (ed.), Darwin and the Vampire: Evolution's contribution to the Holocaust, Culture Wars 17:11, 1998.
67. Fest, Ref. 40, p. 99.
68. Haas, P.J., Nineteenth century science and the formation of Nazis policy, Journal of Theology, 1995.
69. Hoess, R., Commandment of Auschwitz, World Publishing Company, Cleveland, IL, p.110, 1960.
70. Nordenskiold, E., The History of Biology, Tudor Publishing Company, New York, p. 522, 1935.
71. Stein, Ref. 10, p. 50.
72. Hull, D., Uncle Sam Wants You; a review of the book Mystery of Mysteries: Is Evolution a Social Construction? by Michael Ruse. Science 284:1132, 1999.
73. Rowan, W., 'Charles Darwin', in Architects of Modern Thought, Canadian Broadcasting Corp., Toronto, p. 12, 1955.
74. Rowan, Ref. 73, p. 13.
75. Youngson, R., Scientific Blunders; A Brief History of How Wrong Scientists Can Sometimes Be, Carroll and Graf Pub., New York, 1998.


*참조 : Darwin and Hitler: A Trumped-Up Connection? (Headlines, 04/16/2008)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4.htm#20080416a
Nazi-Era Scientists Were Willing Colluders (Headlines, 02/17/2008)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2.htm#20080217a
The Darwinian foundation of commu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4
The church preaches eugenics: a history of church support for Darwinism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54-60.pdf
A Civic Biology and eugenic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038/
Darwinism and the teaching of racism and eugenics in biology textbook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1/j18_1_65-70.pdf
Adam’s brothers? Race, science and Genesis before Darwi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8-122.pdf
The history of the teaching of human female inferiority in Darwinism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12
Darwin Taught Male Superiority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2/n1/darwin-taught-male-superiority
Hitler’s ‘master race’ children haunted by their past
http://creation.com/hitlers-master-race-children-haunted-by-their-past
The trial and death of Adolf Eichmann
http://creation.com/the-trial-and-death-of-adolf-eichman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3/i2/nazi.asp

출처 - TJ 13(2):101-111, November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518

참고 : 5859|5809|5621|5470|5466|5462|5461|5413|5397|5381|5272|5270|5211|5210|5179|5112|4782|4766|4765|4636|4635|4542|4140|4039|3887|3812|3682|3426|3423|3244|3241|3077|3055|3041|3039|3037|3024|2864|2710|2579|2359|2353|2330|2307|2114|2039|2016|1174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오경숙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18-서울중구-0764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