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진화론이 학문에 끼친 영향

진화론이 학문에 끼친 영향

 

       다윈의 진화론은 초창기부터 경제학(Economics)의 막스, 사회학(sociology)의 창시자인 흄(David Hume)과 스펜서(Spencer), 지질학의 라이엘, 식물학의 아서 그레이 등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 후, 인류학(anthropology), 심리학(psychology), 교육학(pedagogy), 철학(philosophy), 신학(theology), 문학(literature) 등의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회학의 창시자중 한 사람인 스펜서는 9명의 형제자매 중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으로서(사진 3)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중 앞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큰 소리로 주장하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Spencer 1904). 그는 <생물의 원리>(Principles of Biology 1864)에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ist)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알렸다. 다윈은 그의 이러한 용어를 피하다가 <종의 기원> 제5판(1869)부터 이 용어를 채택하였다. 스펜서는 일체의 초월적 존재를 부인하고 모든 이론을 진화론적 기계론 위에 세웠다(Spencer 1890). 그는 1860년부터 1896년까지 인간지식에 관한 논문들을 거의 망라한 방대한 <합성철학>(Synthetic Philosophy, 10 vol.)을 저술했으나, 자기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억지로 논문들을 끼워 맞추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Irving 1955). 그는 애매한 원칙들을 세운 후 연역적으로 추상적인 묘한 법칙들을 이끌어 내곤 했는데,  이러한 방식에 대해 다윈은 강하게 비판하였다 한다(Barlow 1958).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면서도 자기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자주 인용하였다. 그는 <심리학 원리>(Principle of Psychology 1870-1872)에서 인간은 육체뿐 아니라, 감정도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윤리학 원리>(Principle of Ethics 1893)에서는 사회가 복잡화되면서 인간의 윤리도 진화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사회진화학의 원조라 부른다.


인류 관련학과와 심리학에서는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방안으로서 인류의 조상이라는 영장류의 거동을 연구하거나 생명현상을 기계론적으로 해석한다. 심리학의 프로이드와 교육학의 듀이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는 라마르크의 후천획득형질의 유전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양식은 성장과정중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환경영향론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오드리(Robert Audrey), 로렌츠(Konrad Lolenz), 모리스(Desmund Morris), 스키너(Burrhus F. Skinner)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곤충행동학자인 윌슨(Edward Wilson)은 <새로운 합성>(The New Sythesis 1975)에서 모든 동물들에게는 행동을 결정하는 특수유전자가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 책의 26장을 곤충에 대해 기술하다가 27장부터 그러한 곤충의 행동을 사람에게 적용하였다. 이러한 진화론적 주장은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On Human Nature 1978)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도 인간의 동성애, 외국인기피증, 공격성, 원한, 남녀간의 성격차이등을 포함한 인간의 성격과 변화의 특성은 특별유전자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추리하였다.  그는 이기심뿐 아니라 이타심을 조정하는 유전자도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그는 동물의 모든 행동을 유전자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는 인종우생학이나 엘리뜨주의를 내세우진 않았지만 그의 이론은 인종주의자들에게 이용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교육학 분야에서도 진화론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갤튼의 환경중시적인 교육이론은 1930년대에 영국의 심리학자인 버트(Cyril Burt)가 53쌍의 쌍둥이들이 어떻게 환경의 영향을 받는지 실험하고 런던에 생물결정주의 학교(Biological Determination School)을 개설하였다. 그는 자연(출생)보다는 환경(양육)의 효과가 더 크다는 사실을 쌍둥이를 분리하여 양육한 실험으로 입증하고자 했으며, 그의 환경론은 영국의 교육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1971) 그의 추종자인 헌쇼(Hearnshaw)는 시릴 자서전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시릴 버트가 자신이 주필로 있었던 영국심리학회지(British Journal of Psychology)에 투고한 논문내용들이 실험결과를 조작했거나 거짓 내용을 발표했다고 폭로하였다. 그리고, 시릴이 투고자의 이름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등장시키거나 남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러한 지적은 통계학자인 스피어맨( C.E. Spearman)의 이름을 도용하여 명예를 실추케 하였다고 진화학자인 굴드가 지적한 사례에서도 확인되었다. [S.J. Gould; The measure of man, p 234, W.W. Norton, New York, 1981]. 더구나, 이러한 거짓 행각으로 시릴은 오랫동안 편집증(偏執症)으로 고생했었다는 사실도 밝혀지게 되었다(Hearnshaw 1979).


이에 따라, 갤튼의 환경론적 우생학은 신뢰를 잃게 되었으며, 그와 경쟁관계에 있었던 문화결정론 학교(Cultural or Behavioral Determinist School)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한다(Mahoney 1976). 이 학교를 세우고 이끈 사람은 유태계 미국인인 보아스(Franz Boas 1852-1942)와 그의 제자인 미이드(Margaret Mead 1901-1978)였다. 보아스는 버효(Rudorph Virchow)에게 사사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들의 가계에 대하여 방대한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빈곤층의 자녀들이 부유층 자녀들보다 발전이 더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우생론자들과 논쟁하였다(Boas 1892). 1912년에는 인간의 다양한 두뇌형태(18721건)에 대해 검토하고 우생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두뇌의 형태가 인종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 이민자들과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비교하여 입증하였다. 미국에 이민을 온 자녀들이 미국에 오래 살수록 앵글로 색슨형의 두골형으로 바뀌어간다는 사실을 밝혀 낸 것이다. 그리고, '먼 세대까지 더 오랜 영향을 끼치는 환경요인일수록 더 쉽게 유전현상인 양 잘못된 인상을 받게 될 수 있다”고 하였다(Boas 1916). 하나의 콩깍지 속에 여러 개의 콩이 들어 있을 경우 같이 태어난 콩들이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키우면 나중에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 보아스 이론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전요인과 환경요인이 어우러져 형질을 형성해 나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의 대표적 사학의 명문인 하버드대학은 유신진화론자인 그레이(Asa Grey 1810-1888))에 의하여, 예일대학은 유신진화론자인 다나(James Dana 1813-1895)에 의해 유신진화론으로 바뀌었다(Went 1968). 미국의 교육체계에서 전통적인 성경교육을 제거하도록 제안한 사람은 진화학자인 호레이스 만(Horace Mann)이었다.


이러한 호레이스 만의 기치를 들고 휴메니스트의 이상에 맞도록 교육체계를 개혁한 사람이 듀이(John Dewey 1859-1952)였다. 그는 실용주의(pragmatism, unitarianism)를 주창함으로써 미국의 기존 가치관인 청교도주의(puritanism)의 기초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국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을 축출하고 진화론을 소개함으로써 인본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일에 주력하였다(Clark 1960). 그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진화의 산물이며, 교육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다고 역설하였다. 그 결과, 청교도적이며 창조론적 신앙에 근거하여 세워졌던 수 많은 미국의 교육기관들이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급속히 탈바꿈하여 갔다. 그의 노력은 뒤에 설명하는 인본주의자선언의 채택(1933), 좌익잡지인 <새로운 공화국>(New Republic)에의 정규적인 기고 및 모스코바 재판(1936-1937)에서 트로츠키를 도운 공로로 사회주위 훈장을 받음으로써 꽃을 피우게 되었다.


<제1차 인본주의자 선언>(Humanist MenifestoⅠ)에는 교육자, 심리학자, 과학자들이 모여 ‘신으로부터 해방하여 인간의 힘으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15개항의 결의문이 포함되어 있다. 이 선언의 기본사상은 과학주의, 진화론 및 유물론적 생명관에 기초한 무신론이다. [이양림; 인본주의 운동의 실상, 창조, 72호(11, 12월호), p 5-6, 1990]. 이들은 17개 항의 <제2차 인본주의자 선언>(Humanist manifesto Ⅱ)을 통하여 일차의 내용을 재확인하였다. 이렇게 성장해 가던 진화론 교육이 마침내 기독교와 논쟁일 일으킨 사건이 스코프스 원숭이재판(1926)이었다. 창조론을 대표한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수천명에 불과한 인본주의자들이 '4천만 기독교도들을 통치하려는 과도기구를 세우고”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데 분개하였다(Coletta 1969). 그는 이러한 과도기구를 <과학적 노동평의회>(scientific soviet)라고 불렀다 (Levine 1965).


미국교육계에 충격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은 케네디 대통령이 인간은 모든 빈곤, 공포, 인종,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인간의 자유선언>(Declaration for  Human Freedom 1961)을 한 것이다. 그는 특히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토록 함으로써, 미국 전래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제도적으로 제거시켰다. 그의 결정으로 대법원은 공교육에서 기도와 성경을 보는 일을 중단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유입되면서 진화사상이 모든 분야에 물밀듯이 스며들었다. 인본주의자들이 미국교육계에 끼친 영향은 라 하이에(La Haye 1980)에 의해 잘 정리되어 있다. [Tim LaHaye; The Battle for the Mind, Fleming H. Revell, New Jersey, 1980]


인본주의의 가장 강한 영향을 받은 교육분야는 <유네스코 교육지침>(1949)의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어린이들이 국수주의에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한 세계지향적인 교육은 불확실성만 더 해 갈 뿐이다. 우리가 지적했듯이 어린이들에게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감염시키는 것은 가정이다. 따라서, 학교는 그러한 가정과 싸우는 수단들을 동원해야 한다.” (UNESCO; In the classroom with children under 30 years of age, Brooklet 5 in the series Towards World Understanding, p 58, Paris, 1949)

경제학분야를 살펴보면, 전술한 공산주의외에도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영국의 웹(Sideny Beatrice Webb)이 이끌었던 점진적 파비안사회주의(Fabian Socialism)와 케인즈(John Maynard Kaynes, 1883-1946)의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에서도 진화론의 영향으로 양육강식의 논리가 정당성을 갖게 함으로써 브르조아 계급과 프로레타리아 계급 간의 대립을 심화시켰다.


철학에서는 19세기의 헤겔과 니이체, 20세기 중반을 풍미했던 허무주의적 실존주의(nihilistic existentialism)에도 영향을 끼쳤다. 막스의 사상형성에 영향을 준 헤겔(George Hegel 1770-1831)은 무신론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자연계에는 세계정신(Weltgeist) 또는 절대정신(Absolute geist)이라는 것이 들어 있으며,  모든 자연계의 현상은 이러한 절대정신의 발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종교는 이러한 철학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한 상상적이고 도식적인 방편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연계의 절대정신이 곧 신이라고 해석하여 범신론적인 입장을 나타내었다. 그는 자연계가 진화적 과정으로 긍정적인 정(正 these)과 부정적인 반(反 antithese)이 변증적인 투쟁을 하다가 균형잡힌 합(合 synthese)으로 통합되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완성된 경지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후일, 샤르뎅은 이러한 궁극적 경지를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라 불렀다. 헤겔의 사상은 라이엘의 <지질학원리>보다 먼저 제시되었으나, 자연계에 발전적인 과정(진화론)이 있다는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면서 독일사회에 더욱 확산되었다. 이러한 헤겔의 사상을 헤겔적 진화론(Hegelian evolutionism)이라고 부른다. 헤겔의 사상은 제자인 포이엘 바하(Ludwig Feuerbach)를 거쳐 인류학으로 바뀌게 되었다. 포이엘 바하는 신이란 인간의 투영이라 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니체(Friedrich Nitsche 1844-1900)로 연결되었다. 그는 이성대신 야성을 앞세웠다. 의회제도, 선거제도, 사회개혁을 비판하고 과학에 의한 진보와 기독교적 윤리관을 비판하였다. 기독교가 주장하는 절제, 순종, 희생정신이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여 자유로운 활동을 저해한다고 비난하였다. 고대세계에서 기독교의 승리는 강자로부터 용기를 빼앗은 약자의 혁명이라고 조롱하였다. 계몽주의자들이 기독교는 비판하되 기독교윤리는 받아 들인 반면 니체는 기독교가 굴종의 정신을 전파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초인의 철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의 저서를 통하여 초인이 우매한 민중을 다스려야 한다는 초인주의를 역설하였다. 이는 헤켈이나 갤튼이 주장한 소수엘리뜨에 의한 지배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다윈이 죽던 1882년,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였다. [Friedrich Nitzsche; Die Froehliche Wissenschaft, 3 vol, p 108, Chemnitz, 1882].

 

이처럼, 헤겔이 진화론을 지지함으로써 진화론이 철학자들의 무신론 선언을 받아내기까지 걸린 기간은 겨우 한 세대에 불과했다. 나치에 협력했던 실존철학자 하이덱커를 비롯하여 무신론적이며 물질주의적인 알베르 카뮤와 쟝 폴 사르트르도 진화론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키엘케골, 칼 야스퍼스 등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과 이론적으로 대립하였다.


신학(theology)에서는 20세기에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고등비평주의(Higher Criticism)는 유니테리언과 헤겔 및 진화론의 영향을 크게 받은 분야이다. 이들은 성경 자체가 진화하였다는 성경진화론(Biblical Evolutionism)을 주장하였다. 고등비평의 창시자인 독일 신학자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은 성경은 주변의 문화환경의 영향을 받아 다신론에서 유일신론으로 바뀌었으며, 기원전에 일부의 사제들이 편집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그라프-벨하우젠 개발(Graf-Wellhausen Development)로 알려진 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그는 진화론적인 헤겔의 영향을 받아 인간이 원시인으로부터 진화한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러한 영향으로 모세오경은 물론 구약성서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실추되었다. 문서가설(Documentary Hypothesis)로도 알려진 이러한 주장은 헤겔주의적 진화론(Hegelian evolutionism)에 기초한 것으로, 고문서의 발견에 의해 더욱 쟁점화되었다.


당시, 니느웨에서 발굴된 토판 계형문자들은 영국의 스미스(George Smith)의 노력으로 해독되었는데(1872), 그 속에는 노아의 홍수와 유사한 길가메쉬 서사시도 포함되어 있었다(Ceram 1971). 이러한 기록의 유사성에 대하여 전통적 견해는 이 서사시의 내용이 창세기의 내용을 담은 것으로 해석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반대로, 창세기의 기자가 길가메쉬 서사시와 같은 바벨론 문서에서 홍수설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이 아닌 외부의 자료를 참고하여 편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으로 19세기 중반 이후에 신학계는 소위 신신학(新神學) 논쟁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불행스럽게도, 19세기후반 신신학자들이 구미 신학교의 요직을 독점하면서 복음주의적 신학자들의 승진이 전반적으로 저지되었다 (Lidsell 1976). 이러한 상태로 한 세대가 지나면서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이 집필한 것으로 의심하는 풍조가 확산되었다. 특히, 브리타니카사전의 편집책임자로 부임한(1881) 고생물학자이며 신학자인 스미스(William Robert Smith)에 의해 자유주의적 해석이 메스콤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전통주의자에 의해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문서가설을 소개한 브리타니카사전(19판)을 14년간(1875-1889) 배포하며 문서가설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자유주의적 신학사상을 방송매체를 통하여 20년간(1926-1946) 퍼뜨린 또 한 사람이 포스딕(Harry Emerson Fosdick 1878-1969)이었다(사진 4). 성경 자체의 진화설을 주장한 그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것은 토템신앙에서 출발하여 강신술과 부족신에 대한 숭배를 거쳐 하나님신앙을 갖게 된 것이라 하였다. 모세오경은 신화이며, 신구약은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난지 수백년후에 사람들이 기록하거나 편집한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지금도 대부분의 미국 신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신과 자연과 인간을 일체화하려는 범신론은 힌두교나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 창조설을 믿지 않는 모든 사상이 범신론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카톨릭신부인 샤르뎅(Teilhard de Chardin)도 대표적인 진화론자이면서 범신론자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공산세계에서는 이러한 유신진화론을 이론교육으로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T. Taylor; ibid, p 376] 그러나, 자유주의적 해석은 고고학적인 지지물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에 반하여 많은 성서적 유물들(Mari, Nazu, Ugarit, Dead Sea Scroll, Tell Mardikh)은 전통적인 성경해석법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문학 분야에서는 19세기의 인기작가였던 갓윈(William Godwin 1756-1836), 갓윈의 딸이면서 <무신론의 필요성>, <후란켄슈타인>(1818) 등을 쓴 쉘리(Mary Shelly), 베르느(Jules Verne 1828-1905), 추리소설가인 포(Adgar Alan Poe 1809-1849) 등을 들 수 있다. 쉘리는 바이런과 초자연적인 토론을 자주 하였고, 다윈의 사상에 대해서도 토론하곤 하였다 한다. [B. Aldiss, Billion Year Spree, p 25, Doubleday & Company Inc, Garden City, New York, 1973]. 후란켄슈타인은 신을 대신하여 인조인간을 창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윈은 이러한 공상과학소설의 작가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D. Kyle; A Pictorial History of Science Fiction, p 28, Han-dyn Publishing, London, 1976].

 

막시즘을 이상형으로 추구하던 페비언주의자(Fabianist)이며 토마스 헉슬리의 제자였던  웰스(H.G. Wells 1866-1946)와 쇼(Bernard Shaw)와 런던(J. London), 인기작가인 테니슨(Alfred Tennyson)과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노리스(Frank Norris) 등이 잘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웰스와 런던 및 쇼는 파비안주의자들로서 생존경쟁의 개념을 작품속에 강하게 부각시켰다. 그들은 막스의 사상을 최상의 이념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다섯편의 공상소설로 유명한 웰스는 진화론에 입각한 그의 사고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만일, 사람이나 모든 동물이 같은 조상에서 진화한 것이라면,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이나 그의 타락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타락사건이 없었다면 그 죄 때문에 대속적인 죽음이 필요했다는 기독교의 교리는 역사적인 허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허구 위에 세워진 기독교적 도덕과 윤리관은 따라서 카드로 만든 집처럼 붕괴되고 말 것이다.” [H.G. Wells; The Outline of History-Being A Plain History of Life and Mankind, p 616, Cassell & Company Ltd, London,(4th revision), 1925]. 그의 소설중 하나인 <타임머신>은 주인공이 두 종류의 신종으로 변하여 802,701년으로 미리 여행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하나는 어린애와 같이 생긴 일롱(Elloi)이고, 다른 하나는 원숭이처럼 생긴 몰록스(Morlocks)이다. 그 곳에서 이들에 의해 막스주의적인 통치가 이루어지는 현상을 그리고 있다. [Rottensteiner; ibid, p 29] 한편, 쇼는 ‘신이란 인간의 형을 따라 만들어진 존재’라고 하였다.


낭만주의 문학은 범신론적인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분야이다. 독일의 괴테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요즈음 인기가 높은 대부분의 공상과학소설 속에는 진화론적 내용이 밑바닥에 짙게 깔리어 있다. 이처럼, 진화론은 공상과학소설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로텐슈타이너의 연대기(Rosensteiner's chronology)에 의하면 후란켄슈타인에서 종의 기원에 이르는 42년간에 주요한 과학소설이 5편이었으나,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 42년간(1859-1901)에는 26편으로 급증하였다고 한다. [E. Rottensteiner; The Science Fiction Book, p 153, Seabury Press, New York, 1975]. 이 밖에, 자연과학분야에서도 수 많은 진화학자들이 진화론의 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앞장에서 상세히 살펴본 바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영화계에서도 인간과 유인원 또는 가상적인 우주인과 싸우는 내용이 자주 주제로 등장한다. 이티(ET)와 쥬라기공원으로 히트한 스필버그감독의 영화속에도 진화론적 색체가 짙게 깔려 있다. 이티에서는 외계의 생명체를, 쥬라기공원에서는 진화론적인 오랜 지질학적 개념을 관중들에게 전파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셀록 홈즈>를 비롯하여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 괴물들과 싸우는 괴기영화를 제작하여 크게 인기를 끈 코난 도일(Connan Doyle)은 실제로 ‘잃어버린 진화의 고리’를 찾아 나섰던 사람중 하나로(사진 5), 필트다운인의 사기극에 깊이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번역 -

옛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174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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