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방울 속에서 살아가기 : 교회가 창조과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미디어위원회
2014-11-20

비누방울 속에서 살아가기 

: 교회가 창조과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

(Living in a bubble)

Ken Ham

 

      기독교 라디오나 TV, 또는 교회에 나가보면, 당신은 틀림없이 목사님들이 이 사회의 기독교적 가치관의 쇠락을 한탄하는 설교를 듣게 될 것이다.

이들 목사님들은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도 또한 낙태, 동성애, 많은 사회적 범죄들, 반기독교적 법률의 증가, 사회에서 기독교의 제거 등을 한탄하고 있다.

많은 미국의 목사님들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안할 것이다. ”성경과 기도가 학교에서 제거되었을 때, 십계명이 학교와 법정에서 제거 되었을 때, 낙태가 합법화 되었을 때..., 그러한 것들은 발생했다.” 

주목해야할 것은 위의 모든 것들은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이슈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안에 진정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제안한다. 모든 이러한 이슈들은 정말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사악한 어떤 것의 증상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이제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는 이 세상의 영적, 도덕적 파괴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교회는 기독교 정신과 도덕성을 유지하고 다시 세우기 위해 절망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가 더 이상 ”현실적 실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교회가 깨닫지 못하는한, 정말로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교회는 진정한 역사로서 성경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역사는 세상이 받아들였으면 하는 영적, 도덕적 일들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일찍이 에덴 동산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에 대한 권위에 대해서 하나의 전쟁이 있어왔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3절에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바꾸어 말하면, 마귀가 하와에게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을 의심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을 의심하도록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본질적으로 이렇게 묻고 있다. ”하나님이 참으로... (먹지 말라) 하시더냐 (Did God really say that?)” (창 3:1).

여러 시대를 통하여, 마귀들은 여러 방법을 사용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해왔다.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대 시대에 사용하는 사탄의 특별한 전술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오히려,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깎아 내리려는 사탄의 계략을 도와주기도 한다.

1700년대 말과 1800년대 초에, 화석을 함유하고 있는 퇴적지층들의 형성에 장구한 오래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는 개념을 발달시켰고, 이것은 오늘날 사탄의 전략을 이해하는 핵심인 것이다. 슬프게도,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억 년이라는 개념에 굴복하였고, 성경 본문을 수억 년의 장구한 연대와 조화시키기 위해 성경을 재해석하게 되었다.

따라서 창조주간의 날들은 오랜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해석되었고, 노아의 홍수는 단지 그 지역에 있었던 국소적 홍수였으며, 성경적 지질학은 세속적 지사학으로 교체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자,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적 생물학(분명한 ‘종류(kinds)’대로의 창조)을 세속적인 진화론적 생물학으로 교체해 버렸다. 그 다음 성경적 인류학(흙으로 첫 번째 남자의 창조와 그의 갈빗대로 첫 번째 여성의 창조)을 세속적인 인류학(사람은 원숭이처럼 생긴 조상의 후손)으로 교체해 버렸다. 그리고 성경적 천문학은 ‘빅뱅(Big Bang)’과 같은 세속적 우주론으로 교체해버렸다. (이하 등등).

교회들은 점차적으로 창세기의 문자 그대로의 역사를 포기했고, 세속적 역사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교회의 지도자들은 기독교의 영적, 도덕적 측면들은 고수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대부분 교회들은 이것들(즉,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메시지, 기독교적 도덕성 등)을 지켰다. 반면에 회중들(그리고 세상)에게 우주에 대한 세속적인 역사가 하나님이 어느 정도 포함되는 한에서 포용될 수 있음을 또한 가르쳤다. 잠시 동안, 이것은 괜찮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성경적 역사(성경적 지질학, 성경적 생물학을 포함하는)로부터 교회의 기독교적인 영적, 도덕적 측면의 단절은 두 가지의 주요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1. 교회와 세상에 대해 창세기에 기록된 성경의 역사는 중요하지 않으며, 세속적 역사에 기초하여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빗장을 열어 놓게 되었다. 세대가 지나가면서 점진적으로 그 ‘문(door)’은 조금씩 더 열려졌고,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자라나기 시작했다.  

2. 기독교의 도덕성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왔던 이 세상은, 만약 성경이 그 역사에서부터 믿을 수 없는 것이라면, 영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에 관한 절대적인 권위로서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세상은 기독교적 도덕성을 포기하기 시작했고, 세속적 역사와 일치하는 다른 세계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래의 그림들은 일련의 이러한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다.

A. 성경은 단지 구원과 도덕성만을 다룬 책이 아니다. 성경은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역사는 생물학, 지질학, 인류학, 천문학 등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과학 교과서(이것은 자주 바뀐다!)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주의 진실된 역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생물학, 지질학 등에 관한 역사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현재의 증거들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성경 둘레의 구조 틀로서 표현된 이 역사는 사실 기독교의 영적, 도덕적 면에서의 기초가 되며, 이것 모두가 함께 결합하여 골격이 된다.

B. 창조(creation), 노아의 홍수(Noah's Flood), 다니엘의 이야기, 요나의 이야기, 복음 등과 같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들(우리에게 친근한 성경적 역사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이 역사(그리고 과학)와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면 노아의 홍수는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과 연결되어 있다.

C.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성경적 역사를 단지 진실된 역사와 단절된(즉 구조틀 외부에 있는) 일단의 성경 이야기로만 가르친다. 예를 들면,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주일학교에서는 지질학, 생물학 등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러한 과목들은 교회가 아니라 학교에서 가르쳐져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성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또한 성인)은 성경적 역사에서 지질학, 인류학 등은 배우지 못하며, 단지 영적, 도덕적 내용들만을 가르치는 것으로 성경을 받아들이게 된다.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면 성경적 역사와 완전히 틀린 세속적 역사(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천문학 등을 포함하여)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한 연구에 의하면, 교회 안의 젊은 십대들의 약 70%는 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1]

교회를 다녔던 학생들이 학교에서 지질학, 생물학 등에 관한 세속적 역사를 주입받은 후에는, 만약 성경의 역사가 신뢰받을 수 없다면, 결국 성경적 역사에 기초한 구원의 메시지나 도덕성에 관한 것들도 신뢰할 수 없다는 일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18세기 말과 19 세기 초에 세속적인 지질학을 채택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의 ‘비누방울(거품, bubble)‘이 교회 주위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비누방울은 성경과 그 역사 사이에 단절을 가져왔다. 역사는 모든 것을 함께 결합하는 것이었다.

만약 성경의 지질학(예를 들어 한 번의 전 세계적인 홍수,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음이 없었음, 따라서 아담의 범죄 이전에 동물과 사람의 화석화는 없었음.....등)이 사람 이전에 수억 년 동안 죽음이 있었다는 세속적 지질학으로 대체된다면, 이것은 그것에 기초한 실제적 역사로부터 성경의 ‘영적인 사건들’(복음의 메시지를 포함하여)을 분리시키게 된다. 만약 성경이 지질학에서 신뢰될 수 없다면, 이것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대한 의심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없고, 오류 많은 인간들이 성경 밖에서 자기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암적인 요소들은 교회와 사회 내로 침투했고, 그 결과 세상은 점차 기독교의 도덕성과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 증가되게 되었다. 

D. 점차적으로, 이와 같은 종류의 사태들은 인류학, 천문학, 생물학(사실 모든 분야에서) 등에서 발생했다. 오늘날, 교회는 이제 하나의 비누방울 안에 완전히 갇히게 되었다. 교회는 세속적인 역사를 받아들였고 허용했다. 그러나 아직도 기독교의 영적, 도덕적인 면을 고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구원의 메세지와 도덕성을 가지는 이 비누방울은 이 세속적 구조 틀 안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기초가 잘못된 것이다.

E. 따라서 비누방울 속의 교회는 진정한 역사와는 단절된 성경 이야기들을 가르치면서 세속적 역사의 구조 틀 밖에 존재하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 세속적 역사의 구조 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그리고 그것들의 어느 것도 실제 역사와 관계가 없는, 단지 그들의 의견이나 이야기임에 틀림없다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결론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F. 세속적 구조 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이 세속적 역사와 일치하는 세계관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만약 당신이 사람은 단지 동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당신의 낙태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창세기가 문자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면, 결혼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두 명의 남자 또는 두 명의 여자)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들에게서도, 사람들의 이론에 기초하여 성경의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다고 말해진다면, 그 다음은 확실히 도덕성에 관한 말씀도 재해석 하려할 것이다. 물질적 세계에 대해서 재해석을 할 수 있다면, 왜 도덕적 세계는 재해석할 수 없는가 라고 반문할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심지어 교회도)은 낙태, 동성애, 간음... 등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G. 오늘날 교회(특히 나이 많은 분들)는 악한 일들과 반기독교적 정서가 증가하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몸서리치고 있다. 비누방울 속에서 교회는 사회적 악에 반대하면서 이 세상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단지 예수를 믿으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교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문화는 점점 더 세속화 되고 있다. 왜냐하면 오래 전에 이 ‘전쟁(war)'은 패배해버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세계의 진정한 역사를 포기해 버렸고, 그것을 세상으로 넘겨주고 말았다. 교회는 애써 지키려고 노력하는 영적, 도덕적인 것들의 기초를 이미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에 앉아있거나 기독교 라디오나 TV를 켤 때, 대부분의 성경적 가르침이 비누방울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이다. 교회를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 설교 강단, 모든 곳에서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등의 교육(세부적인 사항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으로서)을 재확립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진실된 역사를 방어하고 다시 회복하는 것이, 그리고 이 진실된 역사에 성경의 영적, 도덕적인 것들을 재연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교회가 이해할 때까지,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빠르게 그 영향력을 잃어갈 것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충격을 가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3: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Reference

1. Pinckney, T.C., We are losing our children! <www.nehemiahinstitute.com/articles/index.php?action=show&id=8>, 19 March 2003.

 

*참조 : Voting with their fee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0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morality/living-in-a-bubble/

출처 - Creation 25(3):32~35, Jun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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