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현대 진화론의 역사 - 1 : 초기의 진화론과 찰스 다윈

현대 진화론의 역사 - 1 

: 초기의 진화론과 찰스 다윈


1. 초기의 진화론

진화론 사상은 다음의 성경 말씀에서 보는바와 같이 사람의 아들들이 창조주를 거부하고 반역한 이래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1-5)

그 후 수세기에 걸쳐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화론을 발전시킨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낙시만더(Anaximanders)는 BC 600 년경에 인간은 원래 물고기와 유사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BC 400 년경 중국의 츄안체(Chuantze)는 생물 종들은 변이의 과정을 통해서 발전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AD 1589년경에 프랑스인인 버나드 팔어시(Bernard Palissy)는 이교도들 사이에서 진화론 사상을 펼치다가 바스티유 감옥에서 죽었다.

비록 스웨덴의 카를로스 린네(Carolus Linnaeus: 1707-1778)는 진화론자가 아니고 진화론을 반대했지만, 그는 생물학자들이 종에 따라 동·식물을 분류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여 진화론자들에게 이론적 바탕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동식물을 분류하여 라틴 명칭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그러한 명칭은 종, 속,  과, 목, 강, 문 계 등으로 부여되었다.

대략 1750년 이후에 진화론을 끌어낸 근대의 인물은 프랑스 자연주의학자인 콩트 부퐁(1707-1788)과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이고 영국의 의사인 에라스무스 다윈이다. 그들은 1700년 후반부에 글을 써서 짐을 실을 때 무릎을 꿇음으로써 후천적으로 무릎이 두꺼워진 낙타의 경우처럼 후천적 특성을 다루었다. 부퐁은 그 당시에 계속해서 진화론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두 사람을 추종한 인물은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동시에 식물학자인 장 라마르크(Jean Lamarck: 1744-1788)이다. 그는 동식물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양을 변형시키고 이것이 후대에도 이어진다고 추론했다. 그는 빗나간 진화론을 마음에 품었다. 예를 들어 기린의 목은 나무의 잎사귀를 먹으려고 위쪽으로 목을 늘리다가 길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린의 목이 될 때까지 후천적으로 점점 길어졌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과학자들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독일의 생물학자인 아우구스트 바이스만(1834-1914)은 꼬리 없는 쥐를 만들기 위하여 수십 세대에 걸쳐 쥐의 꼬리를 자르고 교배를 시켜 봤다. 그는 라마르크의 이론에 근거가 없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찰스 다윈을 라마르크의 사상에 관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그의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던 것이다.

라마르크 직후, 영국의 지질학자인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현대지질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3권으로 된 『지질학의 원리』라는 책을 썼다. 그 책에서 그는 기존의 지질학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오늘날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지질작용들에 의해서 시대에 따라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지구가 변해가고 있음을 나타내려고 노력했다.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이라는 말은 진화론자들의 핵심 단어다). 이런 일로 라이엘은 찰스 다윈과 진화론에 또 하나의 빗나간 기반을 제공했다. 찰스 다윈은 ”나의 사상과 저술의 절반정도는 라이엘 경의 두뇌에서 비롯되었다”라고 고백하였다. 라이엘의 작업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진화가 가능함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로 했던 엄청난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발생해온 지질학에서의 변화란 갑작스럽고 전 지구적인 격변과 융기작용에 기인한다고 믿고 있었다.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ace, 1823-1913)는 찰스 다윈보다 14살 정도 젊었지만, 월리스는 다윈이 진화론을 설명함에 있어 취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발전시켰다.


2. 찰스 다윈

어떤 사람보다도 진화론을 신봉했던 영국의 자연주의 학자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우리가 주목해 볼 만한 인물이다. 진화론이 다윈의 시대에 그토록 쉽게 파고든 이유는 당시의 영국에서 과학이 유행했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산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진정한 과학으로부터의 도움을 점점 더 많이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50년대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그 시대는 칼 마르크스의 시대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유럽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자유주의와 합리주의가 많은 기독교의 여러 교파에 파고들던 시기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움직임은 진화론이 번성하기에 알맞은 토양이었다.

합리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자연과 과학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일체를 거부하는 시대적 풍조로 인해서, 당시의 많은 지성인들은 성경과 초자연적인 것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고대의 이교도 철학자들처럼 그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이성에 호소하는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당시의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분위기는 다윈과 같은 진화론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1859년에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오늘날 다윈론으로 알려진 진화론의 지도자가 되었다. 1832년에 다윈은 세계여행 중에 종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남미 해안 밖 갈라파고스군도 무인도에 갔을 때 흙과 기후가 비슷해도 섬마다 독특한 동물과 식물이 있음을 알았다. 이것을 보고 그가 내린 2가지 결론은 1) 동물이나 식물에 있어서 정확히 동일할 수 없을 만큼 변이가 존재한다는 점 2) 생물체는 지구의 공간과 식량이 부족할 정도로 번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다른 종뿐만 아니라 같은 종끼리도 먹이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우수한 종자가 약한 종자를 밀어내는 가운데 자연에는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으로 인해 약한 동·식물은 결국 사라지고 우월한 존재가 살아남게 된다.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면서 사소한 차이가 점차적으로 거대한 차이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차 자연선택에 의해 지구상의 존재는 고차원적인 단계로 진화하고 단순한 존재(단세포)에서 복잡한 존재로 진화한다. 결국 상위의 동물은 가장 하위의 동물로부터 진화했고 모든 인간이 그런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적자생존의 개념은 자연선택의 개념에서 발전되었다.

그 동안 다윈의 생각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은 과소평가될 수 없다. 그의 진화론은 오늘날 모든 분야로 확대되었다. 천문학자들은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의 기원과 지구의 진화를 설명하면서 우주의 진화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역사가들과 인류학자들은 선사시대의 인간에 대하여 사색하기 시작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고도로 발전된 동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물리적 환경을 변화시켜서 인간의 도덕적 질병을 치료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신학자들조차도 성경의 가르침과 소위 과학적 진화론을 합치할 수 없어 그것을 신뢰함으로써 진화론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경을 단지 고도로 발달된 종교적 이상을 표현한 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보수적인 교단에서 훈련받은 신학박사들이 성경을 신화에 불과하다느니 인간 타락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위스콘신 대학의 오토 박사는 정확히 40년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만약 누구든지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진화론과 믿음을 조화시키는 것은 투명한 논리적 사고에 어떤 결함을 보인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3. 다윈은 어디에서 잘못되었는가?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결코 종의 기원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종 안에 변이를 말했을 뿐이다. 그것은 창조를 신뢰하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선택은 적자생존을 설명할 수 있지만 적자의 출현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윈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지구상에는 관찰할 수 있는 2-3백만의 생물의 종들이 있다. 그러나 노련한 관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의 변화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오늘날 흔히들 말한다.”

진화란 새롭고 다른 종류의 생물뿐만 아니라, 눈, 뇌, 귀, 심장, 신경계, 폐, 위, 그리고 많은 다른 기관들을 생산함을 의미한다. 다윈이나 어떤 다른 진화론자들도 이러한 신체기관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기관들이 즉시로 기능을 하는 신체로 갑작스럽게 발달할 수 있었는지 지금까지 설명할 수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가정, 추측, 상상 및 사색에 근거한 것이다. 다윈의 책 Ⅳ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사용하였다. 즉,  ”만약....가령 가정한다면....인것 같다. 그러므로 아마도....우리가 가정해 본다면....만약 다음과 같이 가정된다면....였을지도 모른다....아마도....가령....가정할 수 있다....그럴 수도 있다... ” 등등

이러한 표현은 과학자가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다. 과학자는 입증되고 실험된 사실을 근거로 일한다.


4. 과학자들이 거부하는 다윈론

1890년경에 조지 미바트(George Mivart)는 다윈의 이론을 세밀히 검토한 『종의 내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그는 다윈의 이론을 모든 부분에서 입증된 바 없으며, 자연의 사실과는 위배되는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는 다윈의 가설을 ‘유치한 가설(puerile hypothesis)’이라 불렀다.

디오 그래브너(Theo Graebner) 박사는 자신의 책 『하나님과 우주-무신론의 비판적 분석, 1932』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880년대에는 다윈의 영향력은 절정에 이르렀고, 기술적 연구에 대한 철저한 통제를 실시했다. 90년대에 비로소 의심과 반대의 목소리가 소심한 표현으로 들려오더니 이러한 반응은 점차 부풀어 올라 다윈 이론의 타도를 겨냥하면서 거대한 합창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첫 10년 동안은 분명히 다윈론의 시대라고 표기될 정도가 되었다.”

프랑스의 『과학 대백과사전』(Dictionaire Encylopedique des sciences)을 보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다윈론은 증거도 없이 단지 개연성에 불과한 것을 시적으로 모아놓은 허구이다.”

다윈과 연관지어 우리는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 1825-1895)를 언급해야만 한다. 그는 다윈의 책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진화론자였다. 그러나 다윈의 책으로 인해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 해줄 근거를 찾게 되었다. 그는 열성적인 다윈 신봉자가 되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창조에 관한 성경의 설명, 기독교,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그밖의 성경의 다른 내용들을 거부하고 반대론을 강의했다.

다윈과 헉슬리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안에 오스트리아의 수도승이며 식물학자인 그레고르 멘델(1822-1884)은 다윈론에 관하여 심각한 의문을 일으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멘델은 수차례의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 창조자가 식물과 동물의 종에 설정해준 한계를 벗어나서는 변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개인이 받은 유전인자를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인자도 자손에게 전달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지금 생물학에서는 단순한 법칙에 불과하다. 생명체는 자신이 물려받지 않은 어떤 유전자도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없다” (『유전과 환경』 p.99)

이러한 사실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한다는 다윈의 이론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러나 멘델이 이룩한 업적의 중요성은 다윈의 이론이 발표된 지 50년 후에야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시대에 진화의 원인에 관하여 깊이 사색했던 또 다른 인물은 네덜란드 식물학자인 휴고 드 브리스(1848-1935)이다. 그는 달맞이꽃을 가지고 실험했다. 실험 도중에 그는 새로운 종의 식물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새로운 종은 갑자기 자발적으로 단계를 건너뛰며 발생했고 후손을 건너뛰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론은 돌연변이 이론(mutation theory)으로 불렸다. 이러한 이론은 짧은 기간 동안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큰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가정된 새 종이 동일한 종 안에 다른 변종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의 이론은 허망한 종국을 맞이하였다. 하버드 대학의 제프리 교수는 「과학」(Science, 1914. 4. 3) 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 브리스의 돌연변이 이론은 이제 폐기된 가설들이 머무는 망각의 구렁으로 추방되어야 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37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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