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현대 진화론의 역사 - 2 : 20세기의 진화론자들

현대 진화론의 역사 - 2 

: 20세기의 진화론자들


5. 20세기의 진화론자들

20세기에 접어들어 가장 주목할 만한 진화론자들은 리키 집안사람들이다. 부모인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 그리고 아들인 리처드 리키가 그들이다. 루이스는 1926년에 화석 탐사와 연구를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경에 루이스와 메리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의 화석, 즉 그들이 호미니드(hominid)라 부르는 화석을 발견했다. 과학적 증거는 없었지만, 그러한 화석의 연령이 2백만 년 정도라고 루이스는 믿었다. 그는 영국 여행을 끝낸 직후에 사망했다.

메리와 리처드 리키가 쓴 진화의 이야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리더스 다이제스트』, 『패밀리 위클리』, 신문과 텔레비전 그리고 라디오에서 지금도 다뤄지고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 근처에 있는 퇴적암을 지금도 뒤지고 있다. 화산에서 터져 나온 잔해들과 노아 시대에 홍수로 인한 퇴적물에서 많은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리더스 다이제스트(1978년 2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로 그 곳에서 발견된 화석에 관한 진화론 편을 발행했다. 

”제목 : 인류의 뿌리 찾기. 거의 4백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단서들이 인간의 가계도(家系圖)가 될 만한 놀라운 증거를 드러내고 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p.71을 보면 다음과 같다. 즉,

”2백만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부서진 두개골 조각들이 케냐의 투르카나 호수의 퇴적층에서 발굴되었다. 그것은 케냐의 국립박물관에서 분류된 후에 ‘1470’의 번호 꼬리표를 달았다. 두개골 1470이 정리되었을 때 놀라울 정도의 현대적 머리모양이 나타났다.”

사실 그 두개골의 모양은 오늘날의 지성인의 두개골과 흡사하다. 그러나 두개골에 대한 예술가의 해설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은 절반 정도 원숭이를 닮았다는 것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p.72를 보면

”1975년에 메리 리키는 탄자니아의 레톨릴에서 375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턱뼈와 이빨 화석들을 발굴했다.”

여기서 수백만 년의 세월이 얼마나 가볍게 다루어졌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미니애폴리스 트리뷴』(1976년 3월 9일)에서 행해진 다음과 같은 설명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학자인 도날드 요한슨과 리처드 리키는 인간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새로 발굴된 두개골에 관하여 월요일 워싱턴에서 회의를 했다. 이러한 일련의 발굴로 인해서 진화론자들은 375만 년 전의 인간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해부학적으로 현대인과 더 흡사했다고 믿게 되었다.”

그들의 주장에 반대되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수백만 년의 세월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는 추정에 근거한 연대측정방식에서 나온 계산이다. 왜냐하면 창조되었을 때 성숙한 채였다는 이유와 표면적인 연령만을 보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만약 인간이 구조적으로나 해부학적으로 375만 년 전에 존재하였다면, 왜 인간은 1만년 전에 와서야 농업을 이용하고 집과 도시를 건설하는가? 낙뢰 등으로 수천 번의 자연적 화재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불의 사용을 배우기까지 수백만 년의 세월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 그들은 퇴적암을 잘못 분석했다. 퇴적암은 매우 진한 흙탕물이 급격히 가라앉아 된 것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1978년 2월)의 p.73을 보면 1800년에서 1829 년까지 라마르크의 옛 이론(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데에 있는 나뭇잎을 먹으려고 자꾸 목을 위로 뻗쳐 올렸기 때문이라는 옛 우화)을 다시 고쳐 말하고 있다. 즉,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원숭이 같은 인류의 허구적인 선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라마피데쿠스의 후손들은 숲을 떠나 평야와 개간지를 찾아갔다. 그들은 평지에서도 멀리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네 다리 보다는 두 다리로 서게 되었고, 그에 따라 그들은 양손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었다.”

1978 년에도 진화론자들은 의심을 받았던 150년 전의 옛 이론에 매달리고 있었다. 진화론 우화를 만들기 위한 짓이 그럴 듯하다.

맨카토 자유언론(1984. 10. 19)에서는 리처드 리키가 제공한 케냐 나이로비의 이야기를 다시 실었다. 즉,

”과학자들은 160만 년 전에 죽은, 덩치 큰 12살 소년으로 보이는 화석을 보고 초기의 인간은 과학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몸집이 크다고 말한다.... 그 소년은 아마도 180cm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리키는 말했다. 과학자들은 초기의 인간은 오늘날 우리보다 작다고 생각했다. 이 소년의 화석은 직립 원인이 현대인만큼 키가 크다는 이전의 추측을 확인해 준다.... 리키는 그 소년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늪 근처에 있었다. 그의 몸이 빨리 묻혀져서 상대적으로 본래의 몸을 그대로 보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그는 노아 시대에 홍수로 인해 진흙더미에 신속히 매장되었을 것이다. 또한 키 큰 소년은 대홍수 이전에 커다란 인간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메리 리키는 진화론의 시각에서 360만 년 전에 생존했던 현대인과 같은 인간의 발자국의 이야기를 실었다. 패밀리 위클리(1981. 9. 13)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즉,

”발자국의 흔적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으로부터 25마일 남부에 있는 화산근처 숲이 우거진 라에톨리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화산재가 비와 섞이고 태양에 의해 건조해졌을 때 발자국을 시멘트처럼 굳게 하는 화학성분이 생겼다. 비 온 후에 여러 동물들이 화산재에 발자국을 남기었다. 수많은 발자국들이 오늘날에도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한 발자국들 중에는 세 원시인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우리들처럼 직립보행을 했다.”

미니애폴리스 트리뷴(1979년 3월 22)에 따르면

”발자국 전문가인 북 루이지애나 대학의 인류학자 루이스 로빈스 박사는 발자국의 의미에 대한 브리핑에서 모양과 기능적인 측면에서 현대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왜 그들이 대홍수 이전에 생존했던 사람들이 아니어야 했는가? 메리 리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그들의 발자국은 현대인처럼 세련된 걸음을 걸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마도 과학자들은 직립보행의 시초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보다 수백만 년을 더 소급하여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자신들의 우화를 만들기 위해 수백만 년의 세월을 얼마나 쉽게 설정했는지를 보라! 나는 그들이 자기들의 가정과 가설을 세우기 위해 스스로 과학자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들은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수백만 년의 세월이 걸려야 하는 지 알 수 없다.

1978년 3월 22일자 LA 타임스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즉,

”그것은 마치 그녀가 왼쪽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들은 것 같았다. 아마도 위협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몸을 돌렸을 것이고 그리고 계속 움직였던 것 같다고 메리 리키는 말했다.”

비록 우화의 드라마가 설정되었다 할지라도 실제 사실은 더 감상적이고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대홍수 때에 발생했던 화산 폭발과 홍수가 그녀를 압도했기 때문에 그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몸을 돌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인류를 고도로 발달됐던 이집트인과 바빌론인과 그들의 선조들 그리고 리키와 그 일당들이 발굴하고 있는 홍수 때 익사해서 퇴적암으로 덮여있는 더 문명된 사람들에게로 추적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원숭이에게로 추적해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찾는 원숭이들(Australopithecus)은 다른 동물들과 함께 홍수로 죽은 원숭이들이고, 그들이 찾는 인간들은 대홍수에 익사하여 묻힌 인간들이다.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악하고 광범위하게 설명하는지를 보려면 1978년 2월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끝부분에

'인류의 뿌리를 찾아서”에 나와 있는 진화론자들의 전형적인 실수들이 다음과 같이 밝혀지게 되었다.

1. 150만년 전에서 20만년 전 사이에 인간 혹은 호모 에렉투스는 ”불의 사용을 배웠다.”  - 인간은 확실히 번개로 인한 화재에서 즉시로 무언가를 배웠을 것이다.

2. '25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에 네안데르탈인들이 무리들로부터 진화했다. 그들의 두뇌는 우리의 두뇌만큼 충분히 컸다. 어떤 경우에는 더 크기까지 했다.”  - 소위 이 네안데르탈인들은 창6:4에 나오는 거인일 수 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3. ”진화론적인 드라마에서 마지막 주인공은 우리 자신의 종, 즉 기원전 4만 년 전에 어디에선가 출현했던 호모 사피엔스였다.” - 여기서 다시 진화론자들은 이집트인들, 바빌로니아인들, 그리고 어디에선가 갑자기 튀어나온 다른 인종들과 리키의 집안사람들이 지금도 세계 전역에서 발굴하고 있는 진흙 속에 익사하여 매장된 사람들이 고도로 발달된 선조들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4. ”다른 전문가들은....을 믿는다.” - 나는 사람들이 마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 모든 해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처럼 언급되어질 때 몸서리가 처진다. 인간의 많은 분야에서 소위 전문가의 조언에 의해 오도된 수십억의 사람들이 있다. 주식의 조언자들, 그 밖의 많은 금융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월 스트리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십, 수백만 달러를 손해 보았던가? 시118:81)에 얼마나 진실하게 적혀있는가? ”인간 자신을 믿지 말고 주님을 믿는 것이 더 났다”고. 전문가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때는 걸러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진화론 전문가들의 충고를 들을 때는 걸러내야 할 채가 필요할 정도이다. 의학 논문과 다른 과학 분야의 논문 사이에는 엄격한 차이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경제 전문가와 진화론 전문가 사이에도 엄격한 차이가 있다. 소위 경제 전문가의 조언에 따른 손실은 금전만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소위 진화론 전문가의 조언에 따른 손실은 창조주와 구원자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영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 걸쳐, 특히 대학들을 보면 1967년에 콜롬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굴드와 같은 많은 현대 진화론자들이 있다. 칼 세이건과 아이삭 아시모프는 진화론으로 많은 소란을 일으켰다. 만약 현대의 다른 진화론자들을 언급하려면 이 책의 지면이 훨씬 많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939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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