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누룩 : 찰스 라이엘, 토마스 찰머스, 헨리 드러먼드, 필립 헨리 고스

미디어위원회
2015-12-09

19세기의 누룩 : 찰스 라이엘, 토마스 찰머스, 헨리 드러먼드, 필립 헨리 고스 

(The 19th Century ferment

- Charles Lyell, Thomas Chalmers, Henry Drummond, Philip Henry Gosse)

John Rendle-Short 


      19세기에 기독교계를 뒤흔들었던 (특히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래로) 사활이 걸렸던 투쟁을 150여 년 후에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진화론이라는 과학 이론만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은 아니었다. 니체(Nietzshe)의 신은 죽었다는 철학, 마르크스와 엥겔스(Mark and Engels)의 정치적 견해, 프로이드(Freud)의 정신분석 이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適者生存)을 경제에 적용한 극단적인 자본주의, 현대주의(modernism)와 자유주의(liberalism)로 인도한 일부 신학자들의 고등비평(higher criticism dogma, 高等批評) 등도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창세기 1장이 시(詩), 신화, 전설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지구의 창조주(創造主; Creator)가 아니시며, 인간은 동물에 불과하며, 모든 기적들도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포함한) 역시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죄 값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구세주가 아니라, 우리를 진화의 여정 꼭대기로 안내해주는 뛰어난 지도자일 뿐이다. 찬송가에 이런 구절이 있지 않은가. ”오! 사람의 아들이시여. 강하고 온유한 나의 영웅이시여.”[1] 19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모든 격동적 상황에 대한 실상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증거가 진화론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진화론(다윈의 방대한 연구 성과의 출판과 더불어 시작된)만이 기독교 신앙에 문제를 일으킨 유일한 과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걸쳐 시작된 지질학, 동물학, 식물학에 대한 급격한 관심의 증가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운동’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이미 발하고 있었다.

     동일과정설의 원리는 지질학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생물학으로 확장되었다.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은 자신이 ‘모세 체계’(the Mosaic system)라고 이름 붙인 ‘창조와 노아 홍수’의 토대를 용의주도하게 허물었다. 1830년에 출판된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Principles of Geology)’는 반세기 동안이나 유행했다. ‘지질학 원리’의 부제(副題)는 ”지구 표면에서 이미 일어난 변화를 현재 작동 중인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였는데, 이것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의 사상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동일과정설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는 주장으로서, 지층암석은 현재 알려진 자연의 힘인 물, 서리, 바람과 열의 풍화작용 등에 의해서 장구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었다는 이론이다.  


찰스 라이엘(1797-1875)은 ‘현재는 과거의 열쇠이다’라고 주장했다

동일과정설에 대한 대안적 이론이 격변설(catastrophism)이다. 이 이론은 지층암석은 격렬한 변화, 예를 들면, 대홍수나 화산폭발과 같은 격변적인 상황 하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격변설은 지구가 겪었던 전 지구적 노아 홍수에 의해서, ‘어마 어마하게 많은 동물 화석과 식물 화석들(예를 들면, 석탄)’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다윈은 비글호(HMS Beagle)를 타고 오랜 여행 시간 동안에, 찰스 라이엘의 첫 번째 책 ‘지질학 원리’를 늘 읽었다. 두 번째 책은 몬테비데오에서 구했다. (역자 주 : 찰스 라이엘은 3년 여에 걸쳐(1830-1833), ‘지질학의 원리’ 3권을 출간했다.)  

다윈의 주요 여행 목적 중의 하나는 그가 방문할 나라의 자연사(natural history)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다윈의 전기(傳記)를 쓴 작가 중 어떤 사람들은 ”다윈은 출항할 때는 창세기를 믿었지만, 여행하면서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성경과 진화론, 어느 것이 사실일까? 지구는 대략 6,000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노아 시대의 전 지구적 홍수는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자연 재해였는가? 아니면, 지구는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느리고 점진적인 작용에 의해서 수억 수천만 년에 걸쳐 형성되었는가?  

진화와 성경을 조화시키려는 초기의 시도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의 설립자였던 경건한 사람이었던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점차적으로 동일과정설은 지질학으로부터 생물학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다윈은 기발하게도 수 백만 년이라면 하나님의 개입 없이도, 점점 더 복잡한 생명체, 그리고 사람까지도 출현하게 했을 간단한 방법을 제안했다.  

19세기 초에 유행했던 진화와 돌연변이에 관한 책으로, 1844년에 익명으로 출판됐던 ‘창조 자연사의 흔적들(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이 있었는데, 40년 후에야 저자가 로버트 체임버스(Robert Chambers)로 밝혀졌다. 로버트 체임버스는 인기가 있었던 ‘체임버스 사전’의 최초 편집자였기 때문이었다. 비난과 악용당할 것을 염려한 로버트 체임버스는 ‘창조 자연사의 흔적들’의 저자가 자신인 것을 밝힐 용기가 없었다. 과학 작가라기보다는 문학가였던 체임버스는 자신의 다른 저서들에 미칠지도 모르는 손해를 우려했던 것이다. 

체임버스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불가사리 같은 생물들을 만드신 다음, 또 해양 무척추동물을 추가하시고, 또 갑각류를 출현하게 하시고, … 또 물고기를 만드시고...” 이러한 과정은 끝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이 그분의 영광을 훼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발전의 법칙”(후에 진화론으로 알려짐)을 통해서 자연이 작동되도록 하셨다는 것이었다. 

체임버스의 생각을 비롯한 이러한 비슷한 이론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심각한 혼란에 빠뜨렸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 ‘종의 기원’이 과학, 문화, 종교에 미친 강력한 영향은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다윈의 책을 수용할 토양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진화론이라는 꽃은 활짝 피어났던 것이다. 


창조론 대 진화론

당시의 창조론자들과 새로이 출현한 진화론자들 사이의 주요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1. 지구의 나이. 지구의 나이는 동일과정설자들의 주장처럼 수백만 년인가, 아니면 성경에 언급한 것처럼 6,000년 정도인가?

2. 종의 변화인가, 종의 고정인가. 어떤 생물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파충류가 조류로, 원숭이가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고양이 종류’ ‘개 종류’와 같은 각각의 종류들을 창조하셨는가? (종(species)이 무엇이며, ‘종류(kind)’와 같은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무시됨.)

3. 노아의 홍수. 노아의 홍수는 중동 지방에 발생했던 국지적 홍수였는가, 아니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전 지구적 대홍수였는가?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답이 수백만 년의 지구 나이, 종의 변화, 국지적 홍수라면, 창세기 기록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지구와 생명의 기원은 우연에 의해 발생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으며, 초자연적 영역이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기적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논리적이고,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새로이 출현한 과학이론들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이라는 책과 성경이라는 책은 둘 다 같은 하나님이 쓰신 것이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모순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둘을 조화시키는 것은 반드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불일치는 우리가 이쪽이나 저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 연구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토마스 찰머스

진화론과 성경을 조화시키려는 초기의 시도는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설립자였던 경건한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 1780~1847)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는 찰스 라이엘 및 찰스 다윈과 동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신앙에 대한 과학의 공격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고, 무신론의 무자비한 공격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성경을 과학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토마스 찰머스(1780-1847)는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키려고 ‘간격 이론’을 제안했다.

그래서 찰머스는 ‘간격’이론(gap theory) 또는 ‘파괴-재창조’ 이론(Ruin-Restoration theory)으로 알려진 이론을 제안했는데, 스코필드 성경은 이 이론을 받아들였다. 변형된 이론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창세기 1:1절에 기록된 완전한 창조가 있었고, 창세기 1:1절과 1:2절 사이의 연대기적 간격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큼) 동안 지구의 파괴가 있었으며, 창세기 1:3절에서 다시 시작하는 재창조가 있었다고 제안했다. (더 자세한 것은 스코필드 성경 1917년 판을 참고하기 바란다. 보다 최근 판에는 그 이론이 훨씬 더 축약되어있다. 헨리 모리스가 쓴 글 ‘간격이론: 허점투성이 이론?(The gap theory—an idea with holes?)’을 보라.)

‘간격’이론(gap theory)이란 무엇인가? 이 이론을 지지하는 성경적 근거도 과학적 근거도 없다. 그리고 이 이론은 급속히 그 기반을 잃고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목적을 이루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많은 그리스도인 한 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는 간격이론에 감사한다. 내가 몇 년 동안 의심하면서 창조/진화 문제로 혼란스러워 할 때, 간격이론은 내가 신앙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틀리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창세기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는 것을 안다.”


헨리 드러먼드

진화론의 공격을 반격하기 위한 또 다른 시도가 헨리 드러먼드(Henry Drummond, 1851~1897) 교수가 쓴 책 ‘영계의 자연법칙(Natural Law in the Spiritual World)’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 책은 널리 유행하여 1897년에는 33판이 출판되었다.

.헨리 드러먼드(1851-1897)는 진화론의 공격을 반격하려고 노력했다. 

서문에서 드러먼드는 전혀 다른 삶의 두 영역에 있는 두 부류의 청중에게 정기적으로 강연을 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주중에는 자연과학 분야의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일요일에는 다양한 영역의 노동자들로 구성된 청중에게 신앙과 도덕의 본질에 대하여 강연한다.”

드러먼드는 처음에는 어렵지 않았다고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두 영역을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본다. 두 영역은 사고의 대척점에 있으며, 내 마음속으로 과학과 신앙이 서로 담을 쌓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 ‘지식의 두 샘물이 넘치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 물들이 만나고 섞여, 신앙의 영역에 큰 변화가 있었다.’ ” 

책의 나머지는 두 영역의 물이 섞인 결과를 설명한다. 오늘날 그의 저서 ‘영계의 자연법칙’은 과학자도 신학자도 수용하지 않는, 만족스럽지 못한 형이상학일 뿐이다. 


필립 헨리 고스(Philip Henry Gosse)

과학과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또 하나의 시도가 필립 헨리 고스(Philip Henry Gosse, 1801~1888)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스는 상당한 명망을 갖춘 영국의 박물학자(naturalist) 였다. 그의 ‘해양 동물학 매뉴얼(Manual of Marine Zoology, 1855)’은 과학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고스는 ‘종의 기원’ 출판 2년 전에 조셉 후커와 찰스 다윈이 앞으로 나올 책의 내용을 알려 주려고 (책을 출판했을 때 분명히 일어날 '저주의 함성”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접근했던 여러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잘못 보았다. 고스는 플라이머스 형제단 열성 단원이었으며, 종의 불변을 확고하게 믿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에드먼드는 이렇게 썼다,

”그러면 진지하고 정확한 관찰자로서의 그(필립 헨리 고스)의 위치는 어디인가? 분명히 그는 다윈, 월러스, 후커와 함께 새로운 진리의 선구자들과 함께 있었다. 창세기 2장은 6일 동안에 천지가 완성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일을 마치셨는가?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지질학이 분명 사실인 것 같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이다. 성경이 천지에 있는 모든 것들이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말했다면, 6일 동안에 창조된 것이다. 하루 24시간씩 문자적인 6일 동안에 창조된 것이다.”


.필립 헨리 고스(1801~1888)는 과학과 신앙을 조화시키려 노력했다.  


고스는 라이엘이 인간의 지질학적 역사에 대한 책을 쓰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스는 라이엘을 다윈보다 더 싫어했으며, ‘옴팔로스: 지질학의 매듭을 풀기위한 시도(Omphalos: An Attempt to Unite the Geological Knot)’라는 책을 만들어 반격했다. 그 책은 창세기를 지질학과 조화시키려했던 이상하고 전적으로 실패했던 시도였다. 아담의 배꼽이 (옴팔로스(Omphalos)는 그리스어로 배꼽임) 자연적 출산을 흉내내기 위해 준비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화석들을 창조하셔서 암석 속에 넣어두셨다는 것이었다. 

그 책은 하나님이 ‘그렇게 엄청나고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고스(그리고 다윈)의 친구인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의 조롱과 함께 사라졌다. (Gosse and Omphalos를 보라).


결론

필자는 19세기에 새로운 과학이 신앙인들에게 미친 파괴적인 영향을 열거해보았다.

• 찰머스는 창세기 1:1~2 절을 해석하는 기발한 방법을 제안했으나, 불행하게도 찰머스의 성경 해석학이나 지질학적 지식 둘 다 부정확했다.

• 드러먼드는 과학과 성경의 핵심을 융합하려 했지만, 철학적 이야기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 고스는 지질학을 수용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고스의 시도는 실패했으며,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또 노아 홍수의 명백한 지질학적 의미를 간과했다.

만약 당신과 내가 그 당시에 살고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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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Written by Frank Fletcher in 1924. 

 

번역 - 홍기범

링크 - http://creation.com/19th-century-revolt-against-the-bible

출처 - Creation 10(1):46–48, December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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