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유종호
2005-12-24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은 정교 분리에 반(反)한다. - 1


1. '교회와 국가의 분리”, 또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용어의 사용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용어의 사용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근거로 한 잘못된 명칭이다. 미시간 법률학교의 폴 카우퍼는 이러한 용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토론의 출발점으로 매우 자주 사용되는 상징적인 언어이다. 사실 이러한 정밀한 언어는 미국의 환경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유럽의 역사와 전통에서 차용된 것이다. 유럽에서 그 문제는 교회와 국가,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라고 불리는 두 교파의 관점에서 동일시될 수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의회는 종교를 확립하는 것에 관한 법안이나, 그것에 관한 자유로운 운동을 금하는 일체의 법안을 만들지 않는다.”

이러한 수정조항을 근거로 '종교와 국가의 분리” 혹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종교라는 단어는 광범위한 영역을 의미하고, 비종교적이고 반종교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영역까지 포함한다.

웹스터의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종교를 정의한다.

 1. 우주의 창조자이며 주관자로서 존경받고 숭배하는 신성하고 초월적인 힘에 대한 신앙.
2. 행동과 의식에 있어서 신앙의 표현
3. a)기독교 혹은 불교 등등의 윤리와 철학을 포함하는 신앙, 숭배, 행위를 구축하는 특정한 체계
    b)인본주의가 종교가 되듯이 그러한 시스템과 유사하고 비슷한 윤리적 가치 실제와 이론이라는 어떤 시스템.

1947년 미국의 대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우리는 국가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가 국가적인 측면에서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최선이다 라는 믿음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존재의 경계를 표시했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로 통합된 미국인들은 1987년 앨러바머 학교의 재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미국은 서로 다른 많은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이 섞여 있는 국가를 이루고 있다. 종교에 대한 정부의 중립성은 종교생활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수정헌법의 조항은 이러한 중립성을 보장하고 정부가 특정한 종교를 편애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해 준다.”

더 한층 정확을 기하기 위하여 그들은 반종교를 언급했어야 했다.

종교의 설립과 권장은 모든 시민들과 단체의 종교적인 확신을 교란시킬지도 모르는 어떤 요소를 보호한다. 그래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용어가 유럽국가에 적합한 반면에 미국의 수정법안에서 언급된 내용과는 맞지 않는다. 우리의 정부는 무신론적인 신앙이나 반종교적인 신앙을 옹호하거나 조장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것들은 종교적인 신앙과는 반대로 시민들을 교란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킨다.


2. 진화론은 학교의 비판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오늘날 종교에 관하여 우리 학교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혼란스러운 요소는 진화론의 교육과 육성이다. 진화는 사실로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비판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진화는 의문을 품을 수 없는 것으로 교육된다. 아메리칸 레버로터리라는 잡지에 나타난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하여 어떤 박사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진화는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사실로서 제시된다. 교육이 갖고 있는 권위적인 체계는 이러한 믿음을 강요한다. 학생은 개인적인 믿음이나 생각을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학생이 그렇게 한다면 그는 선생님으로부터 비판을 받거나 조롱을 당하게 된다. 학생은 자신의 시각이 맞지 않기 때문에 학업의 손실을 초래하게 되고 그 결과 성적이 저조하게 된다.”

1987년 6월 의견이 달랐던 부장 판사인 레퀴스트와 판사인 스캘리아는 다수 의견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있어서 나에게 법정의 자리는 참으로 억압적인 자리인 것 같다. 기독교인 근본주의자들을 포함하는 루이지애나의 시민들은 하나의 세속적인 문제로서 학교에서 제시되는 진화론에 반하는 과학적인 증거에 해당하는 무엇이든지를 가질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진화는 과학적인 증거도 없고, 또한 종교적인 성질과 반종교적인 본질, 그리고 대부분의 학부모와 자녀의 종교적인 신념과는 대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교육되어서는 안 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43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유종호
2005-12-23

진화론 교육의 영향력 - 3 

: 학위를 거부당한 창조론을 믿었던 학생들


4. 학위를 거부당한 창조론을 믿었던 학생들

『진화론 : 가시적인 진화론의 몰락』 p.138에서 헨리 히버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 밖에도 많은 과학자들은 기원에 대한 진화론을 거부했으나, 자신들 각자의 이유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창조론자라는 이유 때문에 대학원생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사례들도 있다. 교수들은 창조론자라는 견해 때문에 해직당하고 정년보장을 받지 못했다.”

『행위와 진실, 1982. 8』 p.2에는 진화론자였던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존 패터슨 박사의 글을 보도하고 있었다. 패터슨 박사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창조론자들이 보유했던 교수직 계약은 취소되어져야 하고, 그들의 학위는 박탈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권장하는 연설을 했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창조론을 위한 전투』 p.83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학위과정 중 탈락하였거나, 대학원에 입학이 불허되었거나, 학위를 받지 못한 학생들을 알고 있다. 내가 버지니아 대학의 교수로 근무할 때 대학원 생물학과에 근무한 어느 교수가 나에게, 아주 똑똑한 학생이 모두 A학점을 받았고 훌륭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고 진화론에 익숙했지만 자기 과에서 창조론자로 알려져서 그 학생에게 박사학위를 승인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다윈의 오류』 p.213-14에서 I. L 코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당히 많은 과학자들이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유 때문에 진화론을 거부한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사교클럽을 유지하고 있다. 겉으로는 진화론을 지지하면서 내적으로는 고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개념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직장과 학술적인 시각이 같은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용감한 과학자와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고위의 과학자들만이 일반적인 추세에 반대할 여력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자에 관하여 슬픈 일은 자신의 신조에 있어서 성급할 뿐만 아니라,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그들은 만물의 최초의 기원을 발견할 수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신조에 매달린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1980. 7』 p.53에서 로버트 재스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은 어떤 순간에 우주가 폭발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과학은 질문한다. 어떤 원인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는가? 누가 혹은 무엇이 물질과 에너지를 우주에 가져다주었는가? 우주는 무에서 창조되었는가? 우주는 존재 이전의 물질에서 결합되었는가? 그러나 과학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5. 그러나 공립학교 졸업생들의 높은 비율이 창조론을 믿고 있다.

비록 진화론자들이 공립학교를 반종교적이고 무신론적인 학교로 전환시켜 놓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실시한 1986년의 갤럽조사의 연구에 따르면,

“95%가 하나님 또는 절대자를 믿고 있고, 66%가 하나님이 자신들을 개인적으로 관찰하시며 심판하시며 응답하시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87%는 그들이 매일 기도를 드린다고 답했다.”

1982년에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4%는 1만년 이내에 지금의 인간 모습으로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진술에 동의했다. 단지 9%만이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지금보다 훨씬 원시적인 모습으로부터 진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공립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이르는 수십 년간의 진화론 교육과 주입이 있은 후에도 44%가 여전히 창조를 믿고 있다는 사실은 인본주의자들이나 진화론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한층 그들에게 놀라운 일은 인류의 창조를 믿는 44% 가운데 1/4이 대학 교육을 받은 지식층이었다.

닐 엘드리지는 다시금 『사기 사건』 p.147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래머 잡지가 주도한 최근의 조사 결과가 여기에 있다. 즉, 당신은 진화론을 믿으십니까? 라는 질문에, 53%는 아니다, 47%는 그렇다 라고 응답했다.... 이제 응답자들은 주로 그러한 주제에 대하여 강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진화론에 헌신적인 사람보다는 창조론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창조론자들이 크게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저지될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공립학교를 통제하고, 그곳을 반종교적인 그들 자신의 종교학교로 전환시키고, 그리고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교육하고, 새로운 언론 매체를 통해서 진화론을 확산시킨 결과, 진화론자들은 지금까지 진화론을 믿는 많은 사람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진화론은 과학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확보한 사람들을 계속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론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비웃게 될 것이다. 진화론이 인간에게 끼친 6가지 해악에 대해서는 p.413을 참조하라.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41

참고 :

Headlines
2005-12-22

다윈의 후손이 영화 나니아에 등장한다. 

(Darwin Descendent Enters Narnia)


       당신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증손의 증손의 증손이 새로운 영화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Chronicles of Narnia :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에서 악동 에드먼드(Edmund)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 역을 담당할 적절한 사람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앤드류 아담슨(Andrew Adamson) 감독은 스칸다 케인즈(Skandar Keynes)의 사진을 보았고 '바로 이 아이가 에드몬드야”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계약했다. 케인즈는 그의 삶에 관한 단편들을 USA Today에서 소개하였다. 그의 아버지 랜달 케인즈(Randal Keynes)는 이 특별한 영화의 수익금 일부가 이 십대 배우의 조상(다윈)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갈라파고스 섬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인, 런던에 있는 갈라파고스 보호기금(Galapagos Conservation Trust)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스칸다 케인즈와 다른 유명 인사들이 그 행사에 참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한 번 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케인즈에 관한 일화는 그 영화의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를 흥미롭게 하고 있다. 다윈은 유물론(materialism)의 상징이다. 그리고 루이스(C. S. Lewis)는 성서적 기독교의 상징이다. 영화에서 다윈의 후손이 맡은 배역이 불순종하며,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에드몬드 역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떻게 에드몬드가 그의 죄에 대한 쓴 열매를 경험한 후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습인 고귀한 사자 아슬란(Aslan)이 그에게 주어져야할 벌을 대신 받게 되는 것을 본 후에 돌아오는지를 보라. 이 일화는 유물론자들의 회개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참조 : ‘해리포터와 불의 잔’ 에 ‘나니아 연대기’ 도전장
http://www.kmib.co.kr/html/kmview/2005/1213/092002602223111111.html
놀랍다! C. S. 루이스의 작품세계
http://www.newsnjoy.co.kr/news/read.php?idxno=1429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512.htm 

출처 - CEH, 2005.12. 15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8

참고 :

유종호
2005-12-22

진화론 교육의 영향력 - 2 

: 사회적인 도덕규범은 진화론의 교육과 선전으로 무너졌다.


3. 사회적인 도덕규범은 진화론의 교육과 선전으로 무너졌다.

리처드 컬프는 『당신의 창조주를 기억하라』p.161에서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성경이 직·간접적으로 공격을 당할 때, 사회조직의 여러 부분에서 그것이 감지되었다. 성경에 대한 믿음이 빗나간 교육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할 때, 과거에 우리 청소년들을 이끌었던 사회적 규범과 도덕이 무너진다는 점을 진화론자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의 규범으로서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개인은 배의 키와 나침반 없이 자신의 판단에 기반을 두는 불신의 바다에 내몰리게 된다. 만약 그가 옳고 그름의 원칙을 결정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디로 갈 것인가?”

1977. 11. 14일자 『크리스천 뉴스』에 게재된 ”인간의 기원과 운명”이라는 글에서 스티븐 브리엘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운명이 궁극적인 소멸이라면, 우리가 죽을 내일을 위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면 안 되는가? 만약 신이 없고, 인생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도덕을 지켜야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확실히 우리는 오늘날 우리 세계에서 흉악한 범죄가 증가하듯이 진화론의 악한 결실을 보고 있다. 동성애가 삶의 대안의 한 방식으로 되고 있고, 이혼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무방비 상태의 아기들이 잔인하게 살해되고 있다.”

1932년에 하버드의 멕도걸 교수가 이미 ”이러한 정신이 미국을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1932년에 아우구스트 지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유물론과 무신론 교육이 공립학교에서 시작되어, 고등학교로 이어지고, 대학에서 논리적으로 최고의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신의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고, 미래의 시민인 이 땅의 모든 청년들이 도덕적으로 붕괴되는 위험 속에 당신은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히 교수에 의한 미래의 진단과 분석은 얼마나 진실한가! 오늘날 도덕적 문제들에 관하여 80%가 소돔과 고모라와 미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처럼 동성애를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51%가 간음이 잘못이 아니라고 답한다. 대다수가 임신중절의 합법화를 지지한다. 만약 인간이 또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다면, 왜 그런 동물들처럼 살지 않는가?

1970년 1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데이비드 클라인이 ”현재 혼돈 상태의 신앙에 대한 도발적인 연구”라는 글을 실었다. 그 논문의 제목은 ”하나님의 대안이 있는가?”였다. 다음 인용문은 놀랄 만한 일이다.

”만약에 그가 정의(옳음)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 어떻게 어린이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겠는가? 만약 부모가 어린이에게 인생에 의미가 없다고 말해야 한다면, 자살해서는 안 된다고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 유물론으로 무섭게 도약하는 것에 따르는 결론들이 있다. 지옥의 공포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면서, 그는 천국의 희망을 포기하게 할 것이다. 당신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것이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공산주의자, 파시스트, 사회주의자, 그리고 그 사이의 사회 체제라는 새로운 사회의 등장 이면에 파묻히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과거의 사회는 흔들리고, 비록 옛 이름과 형태를 보전하더라도 본질에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 사상이 부도덕성을 증가시켰다는 비난에 대하여 자신들을 옹호하려고 노력한다. 닐 엘드리지는 『사기사건, 1982』 p.14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도 수천년 전 구약성경에 유대사회를 괴롭혔던 것과 비슷한 사회적 병폐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 자녀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어떤 기록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엘드리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러 차례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거부했으며, 우상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병을 경험했으며, 자손들에게 진화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선 엘드리지가 깨닫지 못한 점은 진화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인본주의적 우상을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이 빗나간 길로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신념과 실천에 대한 위험성과 처벌은 롬1:18-32절에 인간들을 위해 잘 나와 있다. 즉,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리라”

(그러나 한 레스비언인 여성 사역자가 1988년 10월에 TV에서 여기자에게 말하기를 성경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어떤 표현도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녀는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로마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부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로마인들과 다른 고대인들, 특히 노아의 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고발하고 있는 것인가!

1982년 12월 15일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은 ”성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뒷자리에 앉게 한다.”라는 제목의 긴 글을 실었다. 그것은 피임약과 해이하고 거친 생활로 분노를 야기했던 1960년대와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은총과 자비의 하나님은 전에 로마인들에게 그러했듯이 경고와 가혹한 처벌을 준비해 준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음부)포진과 에이즈는 성적 혁명(개방)을 멈추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루 밤 사이에 갑자기 출현한 포진은 경구 피임약으로 인해 재고해 볼 여지도 없었던 세대를 진지하게 만들었고, 에이즈는 동성연애자들에게 마음의 충격을 주었다.... 그의 가장 탁월한 효과 중에서 포진은 이전의 부패와 죄의 그늘을 성으로 되돌아왔고, 바이러스는 대형 범죄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것은 성적혁명이라는 죄의 대가로 사람들을 벌주는 하나님의 분노의 표시로 간주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이 바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20-30대의 지식층과 중상류층의 사람들이었다. 에이즈에 관한 농담은 없다. 죽은 친구들과 몸에 숨길 수 없는 자줏빛 반점들에 대한 슬픈 이야기들뿐이다. 아무도 에이즈가 어떻게 걸리는지를 알지 못하지만 에이즈의 희생자들을 살펴보면 난잡한 성생활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진화론과 인본주의적 교육은 인류의 도덕과 사회규범을 무너뜨리는데 일조를 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순진한 사람들은 성병의 공포에 떨며 살아간다.

게다가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은 과학에 해를 입혔다.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는 빗나간 전제를 연속적으로 수용함에 따라, 진화론은 진정한 과학을 비틀거리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진화론은 고생물학, 분류학, 천문학, 생물학, 고고학, 지질학, 그리고 다른 학문에 악영향을 미쳤다. 만약 그러한 학문이 진화론에 의해 악영향을 입지 않았다면, 이러한 학문들은 정확하고도 선명하게 발전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참조 : The Evolution of Morality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1.htm#20080120a

Kinsey, Darwin and the sexual r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111-117.pdf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9

참고 :

유종호
2005-12-21

진화론 교육의 영향력 - 1 

: 공립학교에서 급속히 확산된 진화론 교육


1. 진화론 교육이 공립학교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신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1975』p.13에서 리챠드 컬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나는 비록 한 때 진화론자였으나,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진화론 교육이 어린 학생들을 흔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에서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진화론을 검증할 필요성은 명백하다. 진화론은 대중잡지, 과학저널지, 그리고 신문 등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공립학교에서 수백만의 어린이들에게 저학년 때부터 확산되고 있다. 많은 지역에서는 이 과목을 필수로 하고 있다. 진화는 그렇게 너무나도 대중화되어 대학원 수준의 지질학자들, 생물학자들, 인류학자들까지도 진화의 미숙한 출발과 역사를 알지도 못한 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은 철저히 설득당하여, “과학자들은 위대하다”라는 말을 철저히 믿고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시각이 어떻게 기반을 잡을 수 있었을까? 당신 자신을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라고 가정해보자. 그 날의 순서는 변화이다. 즉 새로운 기숙사, 새로운 학급 친구, 새로운 룸메이트, 새로운 과목이라는 변화를 경험한다. 우선 학생은 자기 스스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만약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진화론자들의 가르침을 믿도록 강요받지 않았더라도 그는 단과대학에 다닐 것이다. 진화론은 연속적으로 때로는 상세하게 때로는 개략적으로 접하게 되지만, 항상 과학적인 탐구에 의해 철저히 증명되어 왔다는 내용으로 포장되어 다가온다. 그는 진화론에 반대되는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러한 일상적인 주입이 구멍을 만들기 시작한다. 학생의 머리는 혼동 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다.“

진화론에 의문을 품은 학생들은 조소를 당하거나, 성경을 믿는 학생들은 의문의 대상이 된다. 로버트 겐트리는 『창조의 조그만 신비, 1986. 10』 p.1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보수적인 종교적 환경에서 양육된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에서 배운 진화론으로 마음의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신념은 창세기와 진화론 간에 불일치에 대하여 의문점을 야기할 만큼 그리 강하지 못하다. 의문을 제기한 학생들이 항상 존경스럽게 대접을 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나에게 선생님들이 보여준 한결같은 서글픈 태도에 대하여 상의해 왔다.


2. 많은 학생들에게서 성경에 대한 믿음이 파괴되었다.

진화를 만물의 기원에 대한 해답으로 부추기는 선생님들을 통해서 어린이의 신앙심은 심각하게 공격을 당하는 셈이다. 어린이는 성경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 그러한 공격을 감당할 과학적 기반이 취약하다.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은 어린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흔든다. 이러한 어린이들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배운 성경지식과 반대되는 진화론의 교육에 대처하는 방법을 결정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사탄의 공격과 도전은 여러 시대에 걸쳐 거대하고도 성공적인 전략과 행동이 담겨 있다. 그러한 공격은 에덴동산에서 아주 효과를 보았고, 그 후에도 그러한 공격방법을 최대한 활용했다. 진화론의 교육을 통해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고 요한계시록 12장 9절의 “사탄은 온 세계를 속이는 자이다”라는 말씀처럼 수천만의 사람들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고후4:4을 보면 “사탄은 믿지 않는 자들의 눈을 멀게 한다.” 진화론은 전 세계가 속고 오도당하는 전 세계적인 시각이다. 사탄은 창세기 1장이 의심받는다면 성경 전체가 몰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아담과 이브도 원죄도 구원자의 필요성도 존재하지 않고, 사탄만이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반 성경적인 공립학교에서 진화 교육의 영향이 어떤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리처드 컬프는 『당신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1975』p.16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1914년에 A 대학의 80%의 신입생들은 하나님과 영생을 믿었다.... 그런데 진화론 교육이 고등학교에서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후인, 1933년에 42%로 비율이 떨어졌다.”

의심할 여지없이 1925년 스코프스(Scopes) 재판에서 발생했던 서투른 실수는 진화론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코프스 재판은 계속해서 다루겠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7

참고 :

유종호
2005-12-20

진화론은 반(反)종교적 신념이고, 종교 그 자체이다 - 5. 

: 유신론적 진화론과 점진적 창조론


5. 유신론적 진화론과 점진적 창조론

본질적으로 유신론적 진화론과 무신론적 진화론 사이에는 거의 혹은 전혀 차이점이 없다.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유신론적 진화론에서는 만물이 신에 의해 시작되었고, 수십억, 수백만년 동안 진화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두 이론 모두 세상에서 진행하는 현재의 과정을 통해서 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유신론적 진화론과 무신론적 진화론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은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J. M. 스탠필드는 『모더니즘』 p.96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기독교적인 진화론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무리 진화를 변형시킨다하더라도 자연적인 상승과 발전이라는 진화의 기본 원칙은 항상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학자들은 유신론적 진화론에 매료된다. 신학박사를 포함하는 소심한 신학자들은 과학이 진화가 사실이고 증명된 과학법칙임을 입증해낼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믿으면서 진화론을 받아 들였다. 이러한 사람들은 진화가 입증된 사실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사실들을 연구해 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진화와 기독교 신학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부름으로써 사자를 양으로 둔갑시키려 했다.

보수적인 루터교회 학파에 일원인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자신을 아주 박식하고 지식층이라 칭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독교인도 진화론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의 진화를 포함하는 진화론은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진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전기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진화는 증명되지 않은 생각에 불과하다. 전기는 증명된 사실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인 신학자들은 양다리를 벌리고 진화론의 울타리에 걸터앉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신학자로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과학적 진화론자로서 행세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과학과 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참석한 여러 차례의 세미나와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태도였다. 헨리 모리스는 『현대 창조론의 역사』 p.328-29에서 이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동료 압박이라는 요인은 다른 부류에서보다는 기독인 교수들 사이에 가장 위협적인 것 같다. 세속적인 대학에서 그들의 동료들이 간절히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 그런 세속의 대학에서 상위 학위를 얻을 필요성.... 세속의 인정 기관에서 제도상의 인가를 얻어야하는 절차 등이 상당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효과적인 절충 방안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기독교적인 진화론의 개념을 크리스천 학회에서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어떤 교수는 그러한 개념에 새로운 명칭을 덧붙였다. 즉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이라고 불렀다. 『지구의 놀라운 탄생』 p.75에서 헨리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 대학과 교회의 문헌에서 진화론적인 가르침을 보고할 때 깜짝 놀라는 이사진(理事陣)과 평의원, 그리고 동창들에게 듣기 좋게 표현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점진적 창조론이라는 표현을 좋아했다."

유신론적 진화론과 점진적 창조론은 표면적으로 성경상의 지지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들은 창세기 1장을 재해석했다. 그래서 오랜 기간의 시간(수백만 년과 수십억 년)을 조작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날들(days)은 본래 성경의 본문에서는 '저녁과 아침이 첫날이다”로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의 시간으로 확대시켰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새로운 신을 꾸며 만들었다.

1993. 4. 19자 크리스천 뉴스 p.19에서 하베이 A. 웨그너는 그것을 정확히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기독교의 목사들과 신학자들 사이에 만연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은 최소한의 논리와 응집력이 기원의 문제로 접근하는 합리적인 의심의 차원을 능가한다. 그것은 무신론적 유물론자와 기독교적 창조론자의 비난을 받을 만하다. 비록 부조화한 요소들의 뒤범벅으로 가득 차있고, 논리적으로 상식을 벗어났을 지라도, 계락자들은 스스로 만족한다. 그들은 두 세계의 최선을 다 갖고 싶어 한다. 그들은 기독교인이기를 열망하며, 동시에 무신론자이기를 갈망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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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2005-12-19

진화론은 반(反)종교적 신념이고, 종교 그 자체이다 - 4 

: 인본주의


4. 인본주의

인본주의는 진화론과 아주 밀접하게 동맹관계를 이루고 있다. 인본주의자들은 우주와 지구 그리고 인간이 진화론적 기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연 위에 존재하는 창조자와 지적설계자를 믿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영국의 인본주의자 협회의 진술을 보면 인본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사상과 신조를 엿볼 수 있다:

“나는 신의 존재와 내세를 믿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 그런 것을 심어주는 것은 부도덕하다. 학교는 그렇게 할 권리가 없으며, 부모들도 그럴 권리가 없다. 나는 종교적인 교육이 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이들이 역사적 관심으로서 종교를 배워야하고, 인본주의, 마르크스주의, 모택동주의, 공산주의와 그 밖의 다른 사상들을 포함한 모든 종교들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종교의 배척을 배워야한다. 나는 비종교적 사회도덕을 믿는다....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나는 장애인들이 실제적 의미에서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영원한 죽음을 제외하고는 용서받아야 할 죄와 무덤을 넘어선 삶을 믿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인본주의의 교훈은 진화론자들의 경우처럼 명백하게 반종교적이며, 동시에 자신들에 대한 종교이다. 그러나 진화론도 인본주의도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뉴욕주 이다카 소재 코넬대 학장인 프랭크 로데스 교수는 1983. 4. 30자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진화 그 자체는 중립적이다. 그것은 유신론적도 무신론적도 아니다.”

그러나 진화론과 인본주의는 창조과학이 창조주의자들의 보조인 것처럼 무신론자들의 보조인 것이다.

1986. 2. 20자 유니버설 프레스(Universal Press)의 사설에서 제임스 킬패트릭은 “학교에서의 인본주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다. 즉;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헌법을 기초로 국가는 종교의 설립을 결코 조장하지 않는다. 학교 교실에서 공식적인 기도도 없고, 성경을 읽지도 않으며,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고, 십계명을 벽에 붙이지 않는다. 이 점은 잘 이해된다. 신의 존재와 태양계를 창조한 신의 능력을 학생들에게 납득시키려는 교사는 심한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공립학교의 교육이 반대 방향-신의 부재와 우연한 우주의 등장-으로 움직이면 어쩌나? 신이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종교이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종교가 아닌가?.... 인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무신론자들로 진술한다. 그들은 인간에게는 영혼이 없으며, 단지 복합적인 동물일 뿐이고 신은 신화라고 주장한다.... 인본주의자들에게는 과학과 이성이 모든 것이자 궁극적인 것이고, 죽음 이후에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정통 종교의 가르침은 “속임수(sham)”이다.... 절대적 도덕도 없고, 윤리적 가치도 없다. 이러한 것들은 “상황적”이다. 헌법의 입장에서 문제점은 이러한 확신은 믿음의 조항이 된다는 것이다.“

자연히 그들은 죽음 이후의 생명을 믿지 않는다. 제럴드 라루(Gerald Larue)는 1948. 9/10호『인본주의 자』 pp20-23에서 “윤리적인 인본주의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우리는 내세-부활과 영원, 재림과 천국, 지옥과 연옥-를 믿지 않는다.... 우리는 이생에서의 삶이 우리가 갖고 있는 전부라고 믿는다.”

자연히 인본주의가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성경을 반대하고 신에 대한 믿음에서 사람의 눈길은 돌려, 오로지 지상에서의 삶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다.

성경에 관하여 1983. 1/2호『인본주의자』 p.25에서 존 던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고풍적이고 구식적인 책, 혹은 아주 영향력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책이었고, 계속 그렇다.”

인본주의의 가르침과 신앙에서는 인간은 자신을 숭배한다. 인간은 진화했을 뿐만 아니라, 진화의 산물로서 인간은 자신의 미래의 진화를 조절한다. 미국의 인본주의자 협회에서 나온 선전용 책자를 보면;

“인본주의는 인간이 스스로의 운명을 형성하는 신념이다. 그것은 건설적인 철학이며 무신론적 종교이자 삶의 방식이다.”

선전용 책자에서 인본주의자 협회의 설립자 가운데 하나인 진화론자 줄리안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나는 인본주의자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인간이 동식물처럼 자연스런 상태에 속해 있으며,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다기보다는 진화의 산물이고, 초자연적인 존재의 보호와 통제 아래 있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힘에 의존한다고 믿는 사람을 뜻한다.”

1974년에 인본주의자 협회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즉;

“어떠한 신도 우리를 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해야한다.”

실질적으로 인본주의와 진화론은 서로 손잡고 신을 폐위시키고, 인간에게 왕관을 씌우기를 원한다. 그것은 인간의 신격화에 버금가는 것이다. 인간의 업적을 숭배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자신과 통치자와 선조를 숭배하던 고대인들과 다르지 않다. 사실 최초의 인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아들과는 반대로 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신격화한 창세기 6장 1절에 나오는 인간의 아들들이었다.

인본주의는 자신의 가르침을 토대로 명백히 반종교적인 신앙이며, 동시에 종교 그 자체이다. 미국의 대법원에서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무신론적 종교에 속한다고 선포했다. 1961년에 토카소와 메릴랜드 주 간의 소송에서 저스티스 블랙(Justice Black)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일반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는 신앙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미국의 종교들 중에는 불교, 도교, 윤리적 문화, 세속적 인본주의와 그 밖의 다른 것들이 있다.”

대법원의 이 판결을 토대로 제임스 킬패트릭은 “학교에서의 인본주의”의 1986. 2. 20자 사설에서 말하기를;

“법적으로 세속적 인본주의는 기독교나 유대교만큼이나 뚜렷하게 종교이다.”

사실 캘리포니아 산 조세에서 발행하는 인본주의자들의 회지인 『인본주의란 무엇인가』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미국의 인본주의자 협회는 교육과 종교적인 목적으로 1940년대 초에 세워진 비영리와 면세 조직이다.”

종교적인 목적이라는 말에 유의해라.

그러나 진화론처럼 인본주의에 관한 위험한 요소는 그들이 공립학교를 이용해서 반종교적이고 종교적인 교육을 자행한다는 점이다. 존 던피는 『인본주의자, 1983. 1/2호』 p26 “새로운 시대를 위한 종교”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새로운 믿음에의 전향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교사들이 공립학교의 교실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싸움을 감당하고 승리해야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즉 신학자들이 모든 인간 내면의 신성이라고 부르는 스파크를 인식하고 존경하는 인성의 종교 말이다. 이러한 교사들은 가장 고집스런 설교자들과 같은 헌신적인 태도를 가져야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육적인 수준과는 상관없이 무슨 과목을 지도하든지 간에 인본주의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하여 설교강단이 아닌 교실을 이용하고 있는 다른 종류의 설교자들이기 때문이다. 교실은 옛 것(기독교라는 썩은 시체)과 새 것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격전장이다....”

또 하나의 인본주의의 신봉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우리가 16년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모든 종류의 종교적인 미신을 뽑아낼 수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3

참고 :

유종호
2005-12-17

진화론은 반(反)종교적 신념이고, 종교 그 자체이다 - 3. 

: 진화론은 동시에 종교 그 자체이다.


3. 그러나 진화론은 동시에 종교 그 자체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해 본다면, 우리는 창조론은 그 핵심에 있어서, 그리고 논리와 이성의 기초 위에서, 진정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바로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진화론은 창조론보다 훨씬 큰 믿음을 요구하기 때문에, 창조론보다도 더욱 더 종교적이다. 과학은 관찰, 반복적인 실험으로 입증되는 유한의 지식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과학은 사실이라고 단지 신뢰해 버리는 어떤 것이 아니다. 과거에 발생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진화는 입증될 수도, 실험될 수도 없다. 그냥 그것은 신뢰할 수만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믿음의 문제, 즉 창조론자들이 정반대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믿음이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으로 창조의 사실을 믿는다. 진화론자들은 신앙으로 진화론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수시로 변하는 인간들의 견해에 기초하지 않고, 영원하고 불변하신 창조자의 말씀의 진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과 종교가 최상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숭배와 관련지어서만 생각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 자신의 지식과 지혜, 자신의 기술과 능력에 신뢰와 믿음을 둔다. 그래서 자신과 타인을 숭배한다. 마치 그들이 신(神)이기라도 한 것처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음악가, 운동선수,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숭배하는가? 고대인들이 자신, 선조와 생명 없는 우상들을 숭배함으로써 우상적 종교를 열렬히 실천하지 않았는가! 진화론자들의 믿음과 종교도 그와 다르지 않다. 종교에 관하여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과 다르고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다. 교회와 국가에 보내는 편지라는 잡지에서 조지 허셔가 1987년 9월에 다음과 같이 썼다.

“창조론이 종교라고 여겨진다면, 진화론은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종교이다.”

진화에 대한 모든 사상은 가설에 대한 믿음과 신뢰이다. 『진화의 교리』p.160에서 L. T. 무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즉;

“고생물학을 점점 더 연구하면 할수록, 진화론은 믿음에만 기초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명백해진다. 종교의 거대한 신비에 직면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요가 있는 비슷한 종류의 믿음이다.”

진화가 실험될 수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진화론자들의 견해와 주장만을 기초로 해서 믿음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스웨덴 룬드 대학의 식물학연구소장인 N. 헤리버트-닐슨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40년 이상동안 수행되어온 실험으로 진화를 증명하려는 나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진화론은 순전히 믿음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폴 에르리히와 L. C. 버치는 『진화론 역사와 인구생물학, 1967』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진화론은.... 경험적 학문 밖에 존재한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시험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진화론은 우리 대부분이 연습해야 할 일부분으로서 받아들여야할 진화적 교리가 되었다.”

그렇다. 교회의 교리문답식 수업에서 아이들이 성경을 배우듯이, 공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진화론을 배운다. 진화론은 관찰과 실험으로 증명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우주의 기원은 믿음과 신앙의 문제이고, 기원에 관한 다른 진화론적 사상들도 믿음과 신앙의 문제이다. 진화론자들의 수중에서 이러한 사상들은 교리가 되었고 과학적 법칙으로는 증명되지 않았다.

진화론은 과학적 기반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어떤 진화론자들은 계속해서 “나는 여전히 진화를 믿는다”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은 과학이 아닌 믿음의 문제이다. 그래서 많은 진화론적 사상들과 소위 “이론”들은 지난 일백 수십 년 동안에 중도에 낙오하게 되어, 전체 사상은 지금까지 의심받게 되었고 거부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특히 지식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그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기독교보다 더 강한 종교적인 열정으로 거기에 매달린다. 그렇다. 그들은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여러 번 믿음과 신앙에 매달린다.

진화론의 우화가 아무리 믿을 수 없다 해도, 진화론자들은 생명체가 단세포에서 고도로 진화된 인간으로 발전한 것처럼 믿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관한 진화론의 우화, 그 속에 담긴 모든 우화 - 무기물질에서 단세포가 발전했다든가, 세포들이 어류로 바뀌는 이야기, 어류가 바다동물로, 바다동물이 육지동물로, 파충류로, 다시 포유류로, 그리고 원숭이로, 결국 인간으로 변한 이야기 - 이 모든 이야기를 믿으려면 놀라운 신앙과 믿음을 필요로 한다. 모든 생명이 단세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보다 큰 믿음이 요구된다. 성경을 믿는 자의 믿음과 신앙은 진화론자의 믿음과 비교된다. 적어도 성경을 믿는 자는 생명의 기원이 비물질적인 어떤 원인임을 알고 있다. 과학은 모든 결과의 원인을 요구한다(인과율의 법칙).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한 원인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

진화론은 확립되고 증명된 과학적 법칙과는 상반되기 때문에 진화론자의 믿음은 더욱 강해야만 한다. 영국의 진화론적 생물학자인 L. 해리슨 교수는 다윈의 1971년 판 『종의 기원』의 서문 p.x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즉,

“진화의 사실은 생물학의 뼈대(척추)이고, 따라서 생물학은 증명되지 않은 이론 위에 세워진 학문이라는 특별한 입장에 놓여있다. 그것은 믿음인가 과학인가? 진화론의 믿음은 특별한 창조의 믿음과 평행하다. 둘 다 신자들이 사실이라고 서로 알고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둘 다 현재까지 증명될 수 없었다.”

진화론자들에게는 미래의 심판 날에 자신이 책임질 수 있고 결산해야할 절대자 하나님이 없다. 진화론자들에게 인간은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 우월한 존재이고, 스스로의 운명을 조절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진화와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에서 라이프 자연도서관(1964)은 p.172에서 진화론들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오늘날에 있어서만 인간은 세계를 재구성하고 가혹하지만 안정적인 물리적 선택의 행위를 새로운 문화적 진화와 유산으로 대신할 때 스스로 미래를 조절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영원과 시대와 연대의 절정이 놓여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기영광과 자기 신격화에 빠져 하나님 없이 미래를 조절하려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 어린이들이 공립학교 교과서에서 교사들에 의해 가르쳐지는 진화론 신조로 주입되고 있는 종교적 신앙이다.

1981년 『진화 : 화석은 No 라고 말한다.』p.26 에서 듀안 기쉬는 다음과 같이 매우 정확하게 요약하여 말했다. 즉,

“그들은 이러한 진화론을 인본주의 철학과 결합시켰고 전체를 “과학”이라는 용어로 옷을 입혔다. “과학”으로 변장한 그의 신조로서 진화론적 철학을 담고 있는 산물, 즉 무신론적 종교는 미국의 공립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그것은 비공식적으로 국가가 공인한 우리의 종교가 되었다.“

『다윈의 재시도』p.126-129에서 노만 맥베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윈니즘은 종교 그 자체가 되었다.... 나는 진화론자들 사이에 종교적 태도의 특성으로 보이는 5가지의 징후들을 모아 보았다 :

1) 나(진화론)와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나의 적
2) 겁쟁이(진화론에 확신이 없는)들에 대한 비난
3) 전도(진화론 전파)의 열정
4) 완전한 (진화론에 대한) 믿음
5) 천년왕국설 (과학만능설)

3번에서 그들은 모든 고등학교에서 전액 세금으로 진화를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고, 5번에서 그들은 인간이 미래를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지상천국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과학이라고 부르는 거짓된 자기들의 진화론 사상을 숭배한다. 이러한 과학만능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종교의 형태가 되었고, 그것은 곧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상에서 인류 복지를 위해 추진하는 물질적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창조자가 없고,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 없이 스스로 진화해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경지에 올랐다는 진화론자들의 신앙은 창조자를 믿는 기독교인들의 신앙만큼이나 종교적이다. 무신론의 반(反)종교적 행태는 유신론과 마찬가지로 종교적이다. 기원에 대해 설명할 때, 가정이나 교회학교에서 종교적으로 자녀를 교육시키는 기독교인 부모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진화론자들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반종교적인 종교적 믿음과 신앙과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진화론은 그 자체가 종교라고 볼 수 있는 우화이며, 동시에 기독교 및 다른 종교와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다. 에드윈 콘크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진화론이라는 종교는 다음 세상보다는 이 세상을 취급한다.”

여러 진화론자들도 진화론이 종교로 간주된다는 진술을 해왔다. 메이나드 메트카프(Maynard Metcalfe)는 1925년 원숭이 재판 기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인간의 영혼 속에서 자라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진화론적인 방식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자각될 수 없다.”

그에게 진화와 하나님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경우처럼 나란히 함께한다. 그래서 유신론적 진화론과 무신론적 진화론은 둘 다 종교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진화론으로 간주된다. 이 책의 말미 11번째에 있는 “진화론은 왜 과학이 아닌가?”를 참조하라.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31

참고 :

유종호
2005-12-16

진화론은 반(反)종교적 신념이고, 종교 그 자체이다 - 2

 : 진화론은 반종교적 철학이다.


2. 진화론은 반(反)종교적 철학이다.

만약 진화론의 우화가 단지 추측이고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아이들에게나 성인들에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종교적이고, 동시에 그 자체가 종교이다. 더욱이 상황을 기만적이고 위험하게 만드는 요소는, 진화론자들이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이라고 포장을 하고 변장을 시켜서 그것에 대한 믿음을 조장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진화론은 하나님을 불필요한 존재로,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알프레드 레윈켈은 『창조의 경이』p.140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썼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라고 불리는 막연하고 몰개성적이고 비존재적인 힘을 신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힘은 인과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우연의 원칙에 따라 작용한다. 그것은 지지할 만한 이성이나 경험과 같은 것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힘을 “무(nothing)”라는 “어떤 것으로부터 모든 경이로운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자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가장 어두운 이단들의 터무니없는 신화와 비교해서도 새로운 형태의 우상숭배는 더욱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하다.”

E. H. 앤드류는 『진화는 과학적인가?』p.3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화론을 있는 그대로 과학적 학문이 아닌, 철학이며, 때로는 종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 진화론은 하나님 신앙을 불필요하게 만든 당초의 목표를 달성했다. 만약 인간이 동물계와 함께 진화라는 맹목적인 과정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면, 하나님은 존재하시지 않거나, 가장 좋게 말해도 우리 자신의 사회의식에서 제작된 인위적 산물일 것이다.”

미네소타 주의 성 베드로에서 있었던 노벨회담ⅩⅧ(1982.10.5-6)에서 진화론 연설가들이 취한 반종교적인 태도는 분명했다. 성경공회의 이사진인 버논 할리는 멘카토 『프리 프레스』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연사들은 최고위 과학자들로 분류되어 있는 종교적인 창조론자들에게 경멸적인 표현과 적개심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여러 수필가들은 창조론자들의 입장을 반지성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러한 논평들은 실로 비난적이었으나, 회의는 공격당한 사람들에 대한 답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종교적인 신앙 때문에, 그리고 진화론의 수십억 년의 시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얼마나 자주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들었는가?

헨리 모리스와 듀안 기쉬가 쓴 『창조를 위한 전쟁』p.9에서 진화론자들의 토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큐이트(Kuijt) 박사가 준비한 진술의 나머지 부분은 성경과 기독교, 그리고 기독교인들에 대항하는 정말 통렬한 비난이 아니었는가! 어떤 기독교인들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그는 자신의 무신론적인 간증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진화론을 지지해줄 과학적 논쟁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기쉬 박사가 제시한 과학적 증거를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발표는 진화론은 창조론 만큼이나 종교적이라는 기쉬 박사의 주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모리스와 기쉬 박사는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에 있는 진화론자들과의 수많은 토론에서, 똑같은 진화론자들의 태도와 그들의 과학적 증거의 부재를 만나게 되었다. 『행위와 사실, 1985. 12』p.4에 보면;

“패터슨 박사는 자신의 과학적 자료를 주로 미세한 변이에 대한 증거들만을 제시한 채, 성경과 기독교신학, 그리고 창조론자들에 대한 반복적인 공격으로 일관했다. 과학보다는 종교에 대해 계속 강조함으로서, 결국 중재자의 동정을 유발하였다.”

만일 하나님 신앙(유신론)이 종교적인 믿음, 교리, 그리고 가르침에 불과하다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부인하는 무신론도 그러하다. 진화론과 무신론은 나란히 손잡고 진행한다. 진화론이 공립학교에서 교육되고 있어 학생들이 그것에 세뇌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진화론과 무신론은 미국의 헌법과는 반대로 이러한 학교에서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매우 영리하다.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종교적이거나 반종교적 암시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나일스 엘드리지는 『사기사건, 1982』 p.145-6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진화론이 개인의 특별한 윤리 기반으로 작용한다면,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러한 특성이 진화론을 종교로 만드는가? 확실히 아니다. 이것은 1981년에 캘리포니아에서 넬 세그레이브가 “Scopes II' 에서 주장했던 것이지만, 세그레이브에게 진화론이 종교인 것만큼이나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종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세속적 인본주의”라는 일반적인 종교적 양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실험적인 과학자들도 그들의 연구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유도하지 않는다. 반면에 종교적 가치가 있는 모든 이름은 초자연적인 개념을 포용하고 있다. '

종교적인 것과 반종교적인 것은 단순히 사람이 “초자연적이라는 감을 불러 일으켜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믿음과 윤리와 행동의 체계를 의미하고 포괄한다. 웹스터 사전은 다음과 같이 종교를 정의한다.

“믿음, 실천, 그리고 윤리적 가치 등등의 어떤 시스템, ‘인본주의가 그의 종교다’에서와 같이 그런 시스템과 유사하고, 그것을 암시하며, 그것과 비슷한 시스템”

진화론자들은 창조를 거부하고 창조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믿음의 시스템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류가 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신이 없이도 스스로 돌볼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이기 위하여 초자연적인 요소를 언급할 필요는 없다. 비록 진화론이 초자연적 개념을 포용하지는 않을 지라도, 진화론자들은 신의 부존재라는 종교적인 개념을 가르치고 있고, 동시에 창조의 종교적인 믿음을 반대하는 종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를 반대하는 반종교적 사상을 발전시키고 있다.

엘드리지는 p.146에서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요즘 생물학자들이 우리가 지상에 출현한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서 진화론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진화론적 생물학에 “종교”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진화론적 생물학자들이 진화의 대안을 찾을 수 없지만, 성경에 나타난 대안은 반대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진화론적 생물학은 반종교적인 신앙이거나 신조이다. 그러한 사실이 진화를 반종교로 만드는 것이다.

나일스 엘드리지는 반종교적이고, 반(反)초월적인 가르침을 무시함으로써, 진화론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측면을 부인하려고 한다.

창조자, 또는 창조의 능력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간에 모든 물질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을 지라도, 진화론은 더 높고 비물질적이며 초자연적인 창조적 원인 또는 존재를 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엘드리지는 말하기를 “그러나 실천적인 과학자들은 자신의 저서에서 초월적인 요소를 기원하지 않는다.” 그렇다. 참 과학자들도 그러하지 않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기원과 관련하여 진화론적 우화를 통해 초자연적인 요소를 기원한다. 그들의 종교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요소는 물질이 갖고 있는 자연의 법칙을 역행하면서 자연을 초자연적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비록 진정한 과학이 생명은 오직 생명에서만 비롯된다고 언급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생명체는 결국 무생물에서 발전했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무생물에 대한 초월적인 요소를 주장했으며, 그것은 결국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용적인 과학자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진술은 진화론자들이 과학자라고 믿도록 유도함으로써, 사람들을 착각에 빠트리려는 영악하고 기만적인 시도이다.

진화론자들은 신의 부재와 창조의 불가능성을 통해, 반창조론적이고, 반종교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사상을 조장하고 있다. 그들은 우주가 무에서 나올 수 없거나, 열역학 제1 법칙에 따라 스스로 창조될 수 없음을 안다. 그런데 그들은 우주를 만들 수 있는 비물질적 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 그들은 신의 부재와 신에 대항하는 무신론자들이다. 나폴레옹은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이 성경에 들어 있지 않다면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 진화론자들은 어떻게 창세기 12장 이하의 역사와 조화를 이루고,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내용을 무시하며 대항하는 선사(先史)의 내용을 전할 수 있겠는가? 많은 책을 쓴 진화론 우화 작가인 아이작 애쉬모브는 이러한 진화론자들의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정서적으로 나는 무신론자이다.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입증할만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심각하게 의심하면서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29

참고 :

유종호
2005-12-15

진화론은 반(反)종교적 신념이고, 종교 그 자체이다 - 1

 : 진화론은 추측이고, 꾸며낸 이야기이며, 허구이다.


1. 진화론은 추측이고, 꾸며낸 이야기이며, 허구이다.

첫째로 우리는 진화가 단순한 추측이며, 우화이고, 허구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적어도 진화론자인 아이작 애쉬모브의 많은 저술들을 “과학의 허구”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신뢰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글은 “진화의 허구”라고 불려져야 한다. 진정한 과학은 결코 허구가 아니다. 사람들이 진화론자들에게 가설과 이론에 관하여 질문한다면, 그들은 “과학적 추측”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에 있어서 추측은 거짓일 지도 모른다. 과학자는 가설을 설정할 때 추측할 수 있지만, 그런 추측이 과학적 이론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단순한 추측의 좋은 예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달에 관한 생각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폴로 11호가 돌아오기 전에는 많은 종류의 추측들이 만연해 있었다. 어떤 이는 우주선원들이 달 표면의 먼지 속에 깊이 가라앉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또 다른 빗나간 추측은 달 먼지에 달 세균이 가득하여 독이 있거나, 위험요소나 역병(疫病) 등이 있다고 믿었다.

『붕괴하고 있는 우주, 1977』p90에서 아이작 애쉬모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27년에 벨기에의 천문학자인 조오지 르메트르(George Lemaitre: 1894-1966)가 시사하기를.... 수십억 년 전에 우주의 물질은 모두 한 곳에 원시 원자라고 부르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우주의 알(egg)이라고 불렀다. 얼마나 오랫동안 우주의 알이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 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하여 르메트르는 감히 추정하려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에 그것은 확실히 폭발되었다.”

르메트르는 원시 원자의 구조와 그것이 존재한 기간을 추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진화 이론들이 단순히 추측하는 것과 똑같이 그것이 존재했다고 단정적으로 추측했다. 이러한 사실은 루스 무어의『우리가 사는 지구, 1956』p.292에 잘 진술되어 있다.

“그러나 지구, 달, 그리고 태양과 행성들이 원시의 먼지구름에서 진화했다는 결론에 일치점이 모아진다. 그러나 이 지점을 넘어서는 불확실성과 불가해성과 모순점은 끝도 없다.”

p.400에서 루스 무어는 동료 진화론자들이 납에 관련하여 행한 추측과 지구의 연령에 관하여 내린 결론적인 추측을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더 홈스는 지구가 시작했을 때 Pb207을 포함하지 않았을 것으로 가정하였으며, 따라서 현재의 지각에 존재하는 Pb207은 모두 U235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납이 형성되기 위해 걸린 시간을 계산해서 그는 지구의 연령이 33억년이라는 계산을 해냈다.”

그러한 거짓 가정과 추측으로 지구 연령이 수십억 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다』p.17에서 야곱 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질과 우주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것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과학은 이러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믿거나 추측을 해야 하는데 추측도 믿음도 과학은 아니다. 우리가 그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우리는 과학의 범주에서 철학적 사변으로, 그리고 믿음의 범주로 넘어간다.... 진정한 과학자는 사실들을 취급해야한다.”

그렇다. 입증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고, 거짓임을 밝힐 수 있는 사실들 말이다.

진화론자들이 뉴스 매체를 통해서 과학으로 넘어가려고 노력한 모든 것들은 추측이었고, 단순한 우화일 뿐이다. 좋은 예는 <라이프의 자연 도서관, 1964> p.111에 나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만약 생명이 스스로 자기복제를 해서 경이로운 용량을 가진 분자들로서 시작을 해서, 나중에 단세포로 발전하고, 소수의 연질 세포집단으로 변했다면, 그것은 최소한의 흔적도 남길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20억 년 전에 지구 어디에선가 생명은 발원했다.... (p.112로 이어진다). 아래턱뼈는 어류 전체에 두루 퍼져있다.... 더구나 이러한 초기 턱뼈의 물고기들은 놀라우리만큼 성공적으로 다른 후손으로 대치되었다. 수영을 잘하기 위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더 좋은 지느러미가 생겼고, 급기야 물 밖으로 나오게 됐다. 하천이 여름 가뭄으로 메마른 후, 그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연못에서 살았다는 것은 그럴 듯한 추측이다. 물고기가 메마른 연못에서 더 물이 많은 다른 연못으로 뛰었겠는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오랜 시간동안 물 밖에 있을 수 있었던 그러한 물고기들은 생존했을 것이고, 대기에서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후손으로 남게 되었다.”

이 우화는 p.113으로 계속 이어진다.

“익티오스테가(ichtyostega,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생물로 주장됨)는 물고기 꼬리에 폐와 잘 발달된 다리, 그리고 발을 가지고 있었다. 허파와 걷는 발로 이러한 물 밖의 물고기는 그들에게 널려있던 아주 새로운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냇가를 따라 기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떼 지어 다니는 곤충들을 낚아 챌 수 있었다. 땅은 그들 앞에 무한대로 열려 있었다. 왜냐하면 어떤 다른 척추동물도 그것과 경쟁하기 위해 그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그렇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곤충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에 대한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충분한 시간 속에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 인하여 기적이 일어났다. 어떤 양서류들은 알을 발전시켰다.... 물에서와는 달리 새롭게 발견된 자유로움으로 파충류들은 지구를 차지하고 파충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계속 흐름에 따라.... 어떤 파충류는 완전한 조상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물로 돌아갔다. 되돌아간 파충류들은 허파로 호흡을 했고, 반면에 그들의 발은 물갈퀴와 지느러미로 바뀌었다. 어떤 파충류는 놀랍게도 마치 현대의 고래나 거북이처럼 보였다.”

얼마나 환상적인가. 이러한 이야기에서 진화론자들은 우리한테 역진화, 즉 육지동물이 다시 물에서 사는 고래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훨씬 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다른 파충류들은 대기 속으로 모험 여행을 했다.”

『우리 지구의 이야기, 1956』p.24에서 리처드 캐링턴은 다른 진화 이야기의 좋은 예를 제공한다.

“지구에 대기가 없었던 시기에.... 그러나 점차.... 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저절로 발생했다고 추정된다. 구름은 어디서 온 것인가? 비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수십억 년 동안 달에도 대기가 없었지만 구름과 비가 지금까지 내리지 않았다. p.73에서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합리적으로 가정할 수 있다. (p.75의) 이러한 추측은 (p.121의) 우리의 생각에 도움을 준다. 우리가 단지 추측할 수 있는 (p.198의) 이야기의 목적을 위하여 도움을 준다.”

p.203과 p.204에서 그는 진화론자들이 전적으로 감안이설로 판명된 필트다운인의 연령에 대하여 틀린 추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진화론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목이 길어진 기린의 이야기이다. 기린이 높은 나뭇가지의 잎사귀를 따먹기 위해 목을 뻗침에 따라서 목뼈가 점점 길어진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아주 영리한 우화이지만 원시인들조차도 이와 같은 우화를 개발했다. 그러나 발견된 모든 기린의 화석을 살펴보면, 기린이 진화했으리라고 추정된 모든 기간 중에 짧은 목을 가진 기린을 찾아 볼 수 없다.

이솝우화를 읽고 있는 어린이들과 진화론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읽고 있는 성인들 사이의 차이점은, 어린이들은 이솝우화가 사실이 아니고 우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성인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27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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