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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지적설계 운동

지적설계 운동 

(The Intelligent Design Movement)

William Dembski 


     다윈주의(Darwinism)에서는 생명의 기원과 발달을 오직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만을 가지고 설명한다. 특히 다윈주의는 하나님이나 또는 어떠한 인도하는 지성이 생명의 기원과 발달에 어떤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서양문화에서 다윈주의의 대두는 실로 잠시 빛났다가 사라지는 유성과 같았다. 그것이 대두되고 있을 때조차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이 생명의 모든 다양성과 복잡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다윈주의의 시각을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반대자들이 항상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반대는 산발적이고 대중 중심이었으며, 법정을 통하여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지만) 여론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였다. 지적 설계 운동과 함께 이러한 반대는 집중되었고, 동유럽에서의 자유운동이 198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지배를 뒤집었던 것처럼 다윈주의의 문화적 지배를 뒤집을 것으로 기대되게 되었다. 

지적 설계 운동은 Charles Thaxton, Walter Bradley, Michael Denton, Dean Kenyon, Phillip Johnson 같은 사람들의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성경을 과학책으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이 학자들은 다윈주의를 과학적, 철학적 측면에서 비판하였다. 과학적 측면에서 그들은 다윈주의가 생물학의 골격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철학적 측면에서 그들은 다윈주의가 자연이 스스로 충분하며 따라서 하나님이나 또는 어떠한 인도하는 지성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는 자연주의와 절망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을 밝혔다. 좀 더 최근에 Michael Behe, Stephen Meyer, Paul Nelson, Jonathan Wells 그리고 필자와 같은 학자들은 그 다음 단계를 취하고 있는데, 즉, 지적 설계가 생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건설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다윈주의를 비판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설적인 대안을 제공하는 두 갈래의 접근법을 통해, 지적 설계 운동은 학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명석한 이들 중에서 빠른 속도로 동조자를 얻고 있다. 이미 그것은 지식 시장에서 다윈주의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완전히 성공하게 되면 지적 설계는 다윈주의 뿐만 아니라 다윈주의의 문화적 유산의 자리도 빼앗게 될 것이다. 서양문화의 어떠한 측면도 다윈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었으므로 서양문화의 어떠한 측면도 지적 설계의 빛 안에서 재평가되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지적 설계란 무엇인가? 지적 설계는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지적 원인들은 할 수 있다는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인 원인들은 글자조각들을 흩어놓을 수 있으나 그 조각들을 의미있는 단어나 문장으로 배열시킬 수는 없다. 의미있는 배열은 지적 원인을 필요로 한다.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과 지적 원인들 사이에 근본적인 구별이 있다는 이러한 직관은 지난 세기들의 설계 논증에 깔려 있었다.

수 세기 동안 신학자들은 자연은 자연 자체로는 설명할 수 없고 자연을 넘어선 지성을 필요로 하는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증해왔다. Minucius Felix와 Basil the Great (3-4세기) 같은 교부들로부터 Moses Maimonides와 Thomas Aquinas (12-13세기) 같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 Thomas Reid와 Charles Hodge (18-19 세기) 같은 개신교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은 설계 논증, 즉 자연의 자료로부터 자연을 넘어선 지성이 작용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증을 해왔다.

설계 논증은 낡은 것이다. 과연 그렇기는 하지만 설계 논증은 철학이나 종교 시간에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설계 논증은 William Paley의 (1802년 출판된 Paley의 Natural Theology에 있는 것과 같은) 시계공 논증이다. Paley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들판에서 시계를 보았다면, 목적에 대한 적합성은 (즉, 그 각 부분들이 시간을 말해주는 데에 대한 적합성은) 그것이 지성의 산물이며 단순히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과정의 결과가 아님을 보증한다. 따라서 유기체에서의 목적에 대한 놀라운 적합성은, 전체 유기체의 수준에서든 여러 기관의 수준에서든 (Paley는 특히 포유류의 눈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기체가 지성의 산물임을 보증한다. 

직관적인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Paley의 논증은 최근까지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고 있다. 지난 5년간 설계는 폭발적으로 소생하였다. 과학자들은 설계가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엄밀하게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설계가 130년간 과학의 주류로부터 떨어져 있었던 것은 지적인 원인에 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정밀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계가 많은 열매를 맺는 과학적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무언가가 설계되었는지를 확실히 결정할 수 있다고 확신해야만 한다.

Johannes Kepler는 달의 분화구가 달 주민에 의해 지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분화구가 자연적으로 생성되었음을 지금은 안다. 설계가 과학에 타당하게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설계의 결과로 잘못 돌리고 후에 그것이 뒤집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정밀한 방법을 가지게 되어 과학자들은 Kepler의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나타난 것이 '지적 설계'로 알려진 과학 연구의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생물학에서 지적 설계는 생물학적 기원과 발달에 관한 이론이다. 그 기본적인 주장은 생물학의 복잡하고 정보가 많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원인이 필요하며 그러한 원인들은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적 원인이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하다는 것은 세상의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 기반하여 지적 원인과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을 믿을 만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잘 정의된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러 특정 과학에서 이미 이런 구분을 끌어내기 위한 그러한 방법들이 발전되어왔는데 특히 법의학, 암호학, 고고학, 그리고 외계지성탐사(영화 Contact에서와 같은) 같은 것들에서 그렇다. 

이러한 방법들이 지적인 원인작용을 탐지할 때마다 그것들이 찾아내는 밑바닥에 있는 본체는 정보다. 지적 설계는 정보이론으로 적절하게 정식화할 수 있다. 그러한 이론에서는 정보는 과학적 탐구의 적절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지적 원인작용의 믿을만한 지표가 된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는 정보를 탐지하고 측정하며 그 기원을 설명하고 그 흐름을 추적하는 이론이 된다. 지적 설계는 따라서 지적 원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지적 원인에 의해 유도된 정보의 경로에 대한 연구이다.

그 결과, 지적 설계는 창조자나 기적을 전제하지 않는다. 지적 설계는 신학적으로는 최소한의 요구로 만족한다. 그것은 지성을 탐지하되 그 지성의 본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화학자 Michael Behe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물리학자 David Bohm의 '활동적인 정보(active information)', 수학자 Marcel Schutzenberger의 '기능적 복잡성(functional complexity)', 그리고 필자의 '복잡 특수 정보(complex specified information)'는 같은 실재에 대한 여러 표현이다.

지적 원인의 경험적 탐지가능성은 지적 설계를 전적으로 과학 이론이 되게 하고, 그것을 철학자들의 설계논증이나 전통적으로 '자연신학'이라고 불리워진 것과 구별한다. 세상에는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로는 설명할 수 없고 오직 지적인 원인에 의지하여야만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건들, 사물들 그리고 구조들이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 이것을 엄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오랬동안 있어왔던 철학적 직관이 이제는 과학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형성되고 있다. 

지적 설계는 필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자연주의에 대한 거부를 수반한다.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이 전적으로 세계를 움직인다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는 그것이 틀렸기 때문에 거부된다. 과학을 위해서 과학적 설명은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들을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방법론적 자연주의(methodological naturalism)는 그것이 조사를 질식시키기 때문에 거부된다. 과학이 지적인 원인 없이도 잘 될 수 있는 척 하는 것은 아무 이득이 없다. 그보다, 지적인 원인이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은 그 활동에 대한 증거에 대해 열려있어야만 한다.

특수 창조와 유신론적 진화는 어떻게 되는가? 논리적으로 말하면, 지적 설계는 엄격한 창조론(하나님께서 새로운 종을 창조하실 때마다 개입)으로부터 미묘하고 광범위한 진화(하나님께서 계통수 안에 모든 유기체를 빈틈없이 함께 혼합)에 이르기 까지 모두와 양립한다. 지적 설계에서는 첫 번째 질문이 어떻게 유기체들이 존재하게 되었냐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 역시 연구를 위하여 제기되어져야 하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지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았음을 나타내는 분명하고 경험적으로 탐지가능한 표시를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원리적으로는, 진화론적인 과정도 어떠한 특수 창조의 행위만큼 그러한 지성의 표시를 보여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지적 설계의 신학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지적 설계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끌기 위한 변증적인 도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적 설계는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이다.

지적 설계는 신학적인 함축을 갖는다. 지난 200년간 신학에 대한 가장 맹렬한 도전은 자연주의였다. 서양문화에서 자연주의는 모든 진지한 조사에서 표준적인 자세가 되어왔다. 성경연구로부터 법, 교육, 예술, 과학, 매체에 이르기까지 조사는 오직 자연주의적인 가정 하에서만 진행되도록 기대되었다. 

C. S. Lewis는 이렇게 썼다. 

자연주의적인 가정들을...... 당신은 모든 측면에서 만난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유물(hangover)'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온다. 우리는 모두 우리 뼈 속에 자연주의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회심조차도 그 영향을 한 번에 우리 속으로부터 제거할 수 없다. 경계가 느슨해지는 순간 그 가정들은 다시 마음 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Miracles에서 인용)

자연에 있는 설계의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지적 설계는 서양문화에서 이러한 계몽주의의 불행한 유물을 치유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실로, 지적 설계는 자연주의에 대한 최신의 가장 명확한 논박을 제공한다. 자연주의는 과학이 목적론적 자연관에 대한 거부를 정당화시켜주기를 기대하였다. 지적 설계는 바로 그 점에서 자연주의가 실패하였음을 보여준다. 확실히 자연주의를 거부하는 데에 좋은 철학적인 이유들이 있다 -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과 세상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이 답할 수 없고 세상을 초월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지적 설계는 자연주의를 거부하는 데에는 좋은 과학적 이유들도 있음을 보여준다.


더 깊은 공부를 위해서 ;

지적 설계 운동은 Charles Thaxton, Walter Bradley, Roger Olson의 The Mystery of Life's Origin (Philosophical Library, 1984)와 Michael Denton의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Alder & Adler, 1986; 진화론과 과학-창조과학회 역간) 의 출판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두 책은 진화론에 대한 강력한 과학적인 비판을 보여준다. 게다가 설계의 과학적 증거와 창조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섞지 않음으로서 이후에 출판되는 책들의 어조를 형성하였다. 

다음에 중요한 책은 Phillip Johnson의 Darwin on Trial (InterVarsity, 1991; 심판대 위의 다윈-과학과예술사 역간) 이다. Johnson은 진화론에 반하는 과학적인 증거들을 논하였을 뿐 아니라 진화론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자연주의와 얽혀 있는지 보여주었다. Johnson은 그의 분석을 Reason in the Balance(InterVarsity, 1995) 와 Defeating Darwinism by Opening Minds (InterVarsity, 1997) 에서 계속하였다. 

Dean Kenyon과 Percival Davis의 Of Pandas and People (Haughton, 1993) 과 J. P. Moreland의 Creation Hypothesis (InterVarsity, 1994) 는 과도기적인 책들이었다. 앞선 책들이 긍정적인 대안 없이 진화론을 비판한데 비해 이 책들은 진화론에 대한 이론적 대안으로서 설계를 시험하기 시작하였다. 

Michael Behe의 Darwin's Black Box (Free Press, 1996)의 출판과 함께 댐이 무너졌다. 여기서 처음으로 설계를 통한 생물학의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제대로 갖춰진 윤곽이 나타났다. Behe의 책은 Science와 Nature에서부터 New York Times와 Wall Street Journal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비평되었다. 그것은 Christianity Today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책의 영향은 굉장했다. 

필자의 The Design Inference (Cambridge) 와 Mere Creation: Reclaiming the Book of Nature (InterVarsity) 가 1998년 가을에 나올 것이다. Stephen Meyer, Paul Nelson, Del Ratzsch, John Mark Reynolds, John Wells를 포함한 연구자들이 이 책들에 관여하였다. 운동은 Origins & Design 이라는 이름의 전문학술지를 가지고 있다. The Discovery Institute의 Center for the Renewal of Science and Culture 는 많은 노력을 조화시키고 있다. (www.discovery.org)


번역 - 김창환

주소 - https://www.discovery.org/a/121/

출처 - Discovery Institute, 1998.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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