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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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신앙

이재만
2004-07-27

리스터 : 방부처리 외과수술의 개척자


      기독교인 과학자들 가운데 의학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이 있다. 광견병, 디프테리아, 탄저병에 관한 백신을 발달케 했던 루이스 파스퇴르(1822-95)와 마취학의 기초를 세운 Chloroform을 발견한 제임스 심슨 (1811-70) 이다. 이번에 소개할 죠셉 리스터(Joseph Lister, 1827-1912)도 이들과 같이 의학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의 공헌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화학적 살균의 사용을 사용하여 방부처리 외과수술을 가능케 한 것이다. 제임스 심슨에 의한 마취학의 발견으로 환자가 통증을 줄이고 수술을 받도록 하는 데는 진전이 있었으나, 수술 후 세균이 상처를 통해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거나 이로 인해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패혈증을 앓게 되는 것이 또 다른 문제였다. 리스터는 석탄산이 세균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를 외과 수술에 적용하여 성공한 것이다. 이는 인간 수명을 연장한다는 개념에서 파스퇴르의 기여도 다음으로 취급될 수 있을 만한 것이다. 


실제로 이 발견은 기독교인 과학자 파스퇴르의 생물속생설(생물은 그 생물을 통해서 나오지 스스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발견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세균이 몸에서 자생한다는 그릇된 생각들 가졌다면 방부처리는 도저히 접근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터는 파스퇴르가 생물의 자연발생이 과학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증명에 힘입어, 세균이 몸 안에서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서 들어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더 나아가 이를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염증을 방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동안 소개했던 기독교인 과학자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의 원리를 발견하였는데, 한결같이 진화론적인 사고에 벗어나 있었을 뿐 아니라,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론 속(진화론이 맞다는 사고)에서는 진화를 증명할 수도 없고 진화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진화론적인 자세를 갖고는 진화의 방법을 사용하지도 않았던 하나님 피조물 속에 넣어둔 원리도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리스터는 그밖에 외과 수술에 관하여도 여러 기념비적인 기여를 했으며, 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런던에 리스터 예방의학 연구원이 설립되었다. 그는 왕실학회와 영국연합에 대표였으며 후에 귀족이 되었다. 그가 생전에 많은 영예를 받았다 할지라도 다른 기독교인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늘 겸손과 품위의 사람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였는데, “나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를 신뢰한다”라는 고백을 기록하곤 하였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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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재만
2004-07-26

제임스 심슨


      제임스 심슨 (James Simpson, 1811-70)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성경으로 양육 받았다.  의학에서 부인과를 설립한 사람 중에 하나로서 알려진 그는 에딘버그 대학의 조산과 교수였다.  그렇지만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47년 클로로폼(Chloroform)을 발견 하면서이다.  클로로폼은 현대 마취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심슨이 클로로폼을 발견하게 된 동기를 말할 때면, 창세기에 하와를 창조하시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2:21)” 성경구절을 언급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게 구원자가 있다!”는 고백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간증하였다.  그에 의해 쓰여진 복음에 관한 소책자의 결론에서 그는 마무리 하기를, “…그러나 나는 다시, 나를 위하여 채찍질 당하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자 예수를 바라봅니다.  내가 그를 바라보았을 때, 울었고, 나는 사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아직도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면, 나의 임무는 그 대속자를 당신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구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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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7-23

루이스 파스퇴르


       루이스 파스퇴르(Luis Pasteur, 1822-95)는 훈련된 물리학도요 화학자였으며, 그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유기체와 발효의 조절을 설명한 첫번째 사람이었으며, 더 나아가 박테리아를 연구함으로써 수많은 병원체가 더 이상 퍼지지 않게 하였고, 광견병, 디프테리아, 탄저병 등과 싸우는 백신을 발달하게 하였다. 또한 저온살균법, 살균소독의 발달도 그의 연구로부터 온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는 인간수명을 연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연구가 되었으며, 과학자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라고 불리게 하였다. 아울러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반론은 그를 과학과 의학 역사에서 더욱 빛나게 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 그리고 생물로 진화된다는 화학진화론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수 천년 간에 걸쳐 절대 다수의 지식인과 과학자들에게 신봉되었었다. 특히 당시 프랑스 과학자 푸셰(Felix Pchet, 1800-72)의 엉성한 실험 때문에, 유기물질이 산소와 접촉을 하게 되면 물질에 내재했던 특수한 원리에 의해 현미경적 생물이 자연발생 한다는 진화론적 생각을 갖고 있던 시대였다. 한편 파스퇴르는 물리학과 화학 방법론을 생물학에 도입하여 자연발생에 대한 정밀한 반증실험을 함으로써 기존의 학설이 생물발생과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였다. 이는 푸셰의 그릇된 실험을 바르게 지적함과 동시에 자연발생론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즉 그의 실험결과로 생명은 생명에서만 유래된다는 생물속생설이 증명된 것이다.


1864년 파스퇴르는 생물의 자연발생론을 반증하는 유명한 S(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은 미생물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한 배양액에 공기가 통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배양액 안에는 미생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단순하고 분명한 실험은 생물이 자연적으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 첫 과학적 실험이었다. 이는 더 나아가 소독이나 식품의 장기 보존방법을 이론적으로 가능케 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생물의 자연발생과 진화론을 반격한다는 이유로 당시에 모든 생물학계로부터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내와 꾸준한 분석실험으로서 대부분의 생물학자와 의학자들이 갖고있는 자연주의적 생명기원에 관한 생각을 버리게 하였다. 아울러 병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도 포기토록 하였다.


파스퇴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그의 신앙은 더 깊어졌다. 신앙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많은 것들을 알면 알수록, 나는 브레타뉴 농부의 신앙으로 다가 갑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 집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모든 것을 알았다면, 나는 한 브레타뉴 농부 아내의 신앙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었다는 것을 훨씬 단순히 믿었을 것입니다).”


1865년 멘델을 통해 '종간의 진화”는 불가능하며, 종 안에서 변이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뿐만 아니라 1864년 유기물질이 자연적으로 생물로 진화한다는 '화학진화”도 불가능 하다는 것이 파스퇴르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이 모두가 1859년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직후에 일어난 일들이었으며, 이때 진화론의 근본적 문제는 이미 정확히 지적되었다. 단지 하나님 없이 이론을 펴보고자 하는 당시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택했을 뿐이다.

 

 

*참조 : Louis Pasteur’s Views on Creation, Evolution, and the Genesis of Germ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rj/v1/n1/louis-pasteurs-views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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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7-22

요하네스 케플러


     천체물리학의 기초자로 일컬어지는 요한 케플러 (1571-1630)는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와 티코 브라헤의 기존 연구를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는 천체역학의 질서와 행성운동의 법칙을 발견했으며, 이는 태양계의 태양중심체계와 별의 운동을 추적하는 천체위치추산 도표를 발표하는데 까지 이르게 하였다.


케플러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 때 정말 원운동을 하는지에 의심을 갖고 화성의 궤도를 면밀히 조사하였으며, 결국에 행성은 원운동이 아닌 타원운동을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행성들은 태양뿐 아니라, 다른 하나의 중심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중심으로 타원운동을 한다는 내용은 정말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행성운동의 가장 정확한 모습을 제공하였다. 바로 케플러 제 1법칙이라는 것이다.


또한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 때 ,“동경(태양과 행성의 거리)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면적을 스쳐 지나간다”는 제 2법칙과, “어떤 두 개의 행성에서 그것들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그것들과 태양 사이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제 3법칙도 발견하였다.


천문학의 지식과 함께 케플러는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연대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라틴 달력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예수께서 실제로 BC 4년에 탄생하였음을 계산하여, 누가의 기록의 신빙성을 변호하는 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케플러는 진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며, 신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도 하였다. 더군다나 종교개혁이 얼마 안 지난 때에, 개신교를 지키려고 애쓰던 신앙인이었다. 천문학자로서 처음으로 “하나님 뒤에서 그(하나님)의 생각을 생각한다”고 했는데, 실재로 그의 고백은 후대의 많은 과학자들의 모토가 되기도 했다. 그는 천문학뿐 아니라 성경적 연대기를 계산하였으며, 우주의 나이는 성경 그대로라는 데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케플러는 그의 책에 “우리 천문학자는 자연이라는 책을 연구하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이러한 사고를 갖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도록 한다”라고 기록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함으로써, 나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만약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것이 참이라면 내가 성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했기 때문이다”

천체물리학의 기초를 다진 이 사람의 뒤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깊은 마음이 있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잠1:7)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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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7-21

레오나도로 다빈치


        "나는 누구인가” "내 주위에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기본질문에 대한 이해는 세계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나머지 것들은 내가 다스려야 할 존재들이라는 시각은 삶의 영역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는 자신의 연구분야의 열정과 방향설정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이를 이해했던 서양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 연구의 원동력을 엿볼 수 있다.


중세에서 근세 또는 현대로의 길을 열었던 르네상스시대에 현대과학의 기초를 설립한 사람을 들라고 한다면 단연 레오나드로 다빈치(1452-1519)를 꼽는다.  그는 밀란(Milan)의 많은 구조를 디자인한 공학도이며 건축가였다.  그의 노트는 역학, 해부학, 물리학, 광학, 생물학, 수리학, 조선학에 관한 분석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시 의사들이 아직도 주문(呪文) 수준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때에 그의 인체해부학의 시도는 현대의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과학적 방법이 정의 되지 않았던 시기였을 지라도 '실험”을 중요시 하는 진정한 과학자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었다.  또한 과학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도덕적이고 친절한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글들이 예술과 과학에 관한 것들이었을 지라도 그의 사고의 기초는 교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경을 신실하게 믿는 신앙인 이었다는 것을 의심치 않게 한다.  최고의 걸작품인 "최후의 만찬” 속에는 그의 간증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 속에서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마음을 깊이 감찰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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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2004-07-20

가장 위대한 과학자 : 아이삭 뉴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1642-1727)을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광학분야에서 흰 빛이 여러 색들로 분해된다는 스팩트럼을 발견하였으며, 반사망원경을 발명하였다. 빛의 입자론도 발전시켰다. 수학분야에서는 이항 정리를 발견하였는데, 이 하나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수학자의 대열에 낄 수 있을 정도이다. 쌍곡선의 면적을 소수점 이하 50자리까지 계산하여 미분법의 기초를 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근대 수학의 초석이 되었다. 천문학분야에서 케플러의 제 2법칙과 제 3법칙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였으며,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들의 궤도, 태양과 달의 인력에 의한 조수 방식을 설명하였으며, 달의 운동을 수식으로 정확히 계산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만유인력 법칙의 발견으로 유명하다. 달로 하여금 27과 1/8일 동안 규칙적으로 지구 주위를 돌게 하는 힘에 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계산을 통하여 지구가 지표면에 있는 물체를 잡아 당기는 힘의 1/3600의 힘으로 당겨지면서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수학적 계산으로 이끈 것이었다. 그의 세가지 운동법칙은 역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의 기초이며, 수학까지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엄청난 발견은 18세기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발달하는 단단한 골격을 제공했다.


뉴턴은 "과학”과 "가설”을 구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과학은 관찰로부터 입증될 수 있는, 즉 수학적 설명이 가능한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라 하였다.  반면에 실험적 증명이 없는 가설은 거부하였다. "과학은 두 물체 사이에 어떻게(how) 인력이 작용하는지를 설명할 뿐이지, 그 이유(why)는 설명하지 않는다” 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태도는 과학자의 위치가 관찰과 실험에서 얻어진 결론만 취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 준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 그는 "왜” 만유인력이 생기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창조주께 돌렸다. 이러한 과학의 한계에 대한 기준은 나중에 진화론이나 빅뱅과 같이 실험이 뒤따르지 않은 이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자세임에 틀림없다.


이 거대한 지식의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으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신앙인이었다. 그는 성경적 주제로 많은 책을 썼는데, 특히 예언서에 관한 것이 많았다. 이러한 책들은 나이가 든 다음 시간이 남아서 쓴 책들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헌신 된 신앙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는 창조시기를 성경의 족보를 그대로 계산했던 어셔(Ussher)의 연대기를 지지하는 책도 썼다. 대부분의 지질학적 현상을 고려하며 성경의 전세계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것과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기록도 확실히 믿었다. 무신론을 비판하고 창조와 성경을 옹호하는 글도 썼다.


"나 자신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태고 아득히 놓여 있는 진리 바다의 바닷가에서 뛰놀며, 좀더 둥그스름한 조약돌을 찾았거나, 보통 것보다 더 예쁜 조개를 주웠다고 좋아하는 작은 소년에 불과합니다” 라고 고백했다. 그는 자연 자체에 결코 경탄하지 않았으며, 그 원대한 것을 창조하신 창조자 앞에서 겸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다. "가장 극치의 철학(과학)이 되려면 하나님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속 역사의 어디에서도 성경만큼 믿을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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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한국창조과학회
2004-07-08

조지 워싱턴 카버

: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은 미국의 과학자 

(George Washington Carver, 1864–1943)


     과학자들이나 발명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이 들은 것을 실행으로 옮겼다. 그 결과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이와 같이 새로운 발견은 하나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중에 미국의 위대한 과학자 죠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가 있다. 강한 믿음과 결단이 없이는 정복할 수 없었던 많은 난관이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 모든 문제들을 극복하였다. 그 결과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감은 미국과 전 세계를 변화시켰다.

남북전쟁말경 미조리에서 흑인 노예로 태어나 아기때 고아가 된 카버는 그의 어머니의 주인이었던 모세와 수잔 카버부부에 의하여 키워졌다. 그는 워낙 병약하여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던 터라, 수잔의 집안일과 정원손질을 도왔는데, 그는 그러한 환경에서 늘 탐구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줄곧 그는 숲속에 가서 공부를 하며 꽃과 풀들에게 이야기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물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믿었으며, 모든 사물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가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화초들은 잘 자랐으며, 곧 그는 '화초 의사'라고 불리워졌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숲과 들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예배당과 같다.”


그의 꿈,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는 것

그는 만족할 줄 모르고 지식 탐구에 열중하였다. 이웃마을의 흑인 학교에 들어가기에 나이가 너무 어렸을 때에는 카버씨 집에서 웹스터의 철자법을 공부하였다. 그 이후에 어느 흑인 부부의 집에서 일을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주인부부에게서 성경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그는 그 성경을 평생토록 매일 읽었다. 카버부인은 그가 교육을 받아서 그것을 그의 민족을 위하여 사용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는 그의 인생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문을 끊임없이 탐구한 결과 켄자스로 인도하심을 받기까지 그는 많은 시험과 막힘과 인종차별들을 이겨내야만 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는 과학 학사학위와 농업 및 미생물식물학 석사학위를 얻었다.

부커 워싱턴은 카버에게 그가 세운 알라바마의 터스키 흑인 교육 기관에서 근대 농업을 가르쳐줄 것을 제안하였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진정한 소명이었으며, 그는 그 소명을 위하여 지금까지 땀흘려 일해온 것이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하고 터스키로 온 그는 벽에 부딪혔다. 경제적으로는 궁핍하였으며, 학교의 시설이라고는 작은 방 하나에 실험실이나 실험도구는 전무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목적이 분명하였으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성취해먀만 했다.

그는 학생들을 동원하여 먼저 온 마을의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서 쓸만한 병, 깡통, 혹은 무엇이든 실험실에서 쓸만한 것들을 수집하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싼 기자제가 아니라, 오직 근면, 결단,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40여년간 카버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연구와 가르침에 몰두한 결과 남부의 흑인 사회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공헌하였다. 몇백년간 목화 농사만 지어왔던 남부의 토지는 황폐하여 생산성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과 농부들은 작물을 돌아가며 골고루 심음으로써 토지의 생산성을 회복시켰다.

"이동학교"의 창시자라고나 할까. 그는 마차를 타고 순회하며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지식을 전달해주었다. 그는 농사법과 대체작물에 대하여 가르쳤으며, 야채 요리법이나 야채 씨앗도 보급하였다. 마침내 남부의 농부들은 땅콩, 고구마, 대두 등을 심어 토지를 기름지게 하였다. 한편 고기와 삶은 곡류, 설탕 등으로 주식을 삼던 지역민들은 펠라그라병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카버는 그들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먹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가르쳐주었다. 남부에 새 날이 도래한 것이다.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

오랫동안 목화는 돈을 벌어들이는 작물이었으나, 황폐해진 남부에 마침내 목화를 대신하여 땅콩이 주작물이 되었다. 그러나 곧 땅콩이 과잉생산되어 엄청나게 많은 양이 팔리지 않고 남아돌게 되었다.

카버는 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해결책을 강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창조주 하나님, 왜 땅콩을 창조하셨는지 그 용도를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창조주께서는 그에게 ”땅콩을 분해한 후에 다시 합성해보아라” 고 가르쳐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땅콩, 고구마, 대두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수백가지 용도를 가르쳐주셨다. 카버는 남부의 농업뿐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주었다. 사실 오늘날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는 그의 업적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종류의 음식, 페인트, 화장품, 산업용품, 의학용품 등은 얼핏보기에 미미한 이와 같은 농작물에서 파생된 상품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소를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이라고 이름짓고는, 연구소 안에 성경책이외에는 아무책도 구비해놓지 않았다. 그는 실험을 어떻게 실행해야하는지를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커튼을 제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무능할 따름입니다.”

그의 업적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터득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것이니라(잠언 8: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숲속에 들어가 하나님께로부터 그날 해야 할 일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연구실에 돌아와서 지시받은 것을 실행한다.(*영어성경에는 일찍(early)이라고 되어있음, 역자 주)

죠지 워싱턴 카버는 명예나 돈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그가 발견한 수많은 항목 중에 오직 소수만을 특허를 받았다. 헨리 포드, 토마스 에디슨, 마하트마 간디 등과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나 과학자들에게 친구이자 조언을 해준 그는 훌류한 사업의 기회와 비싼 연봉을 마다하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한 가지 길에 충실하였다. 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성경에 나와있지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그의 삶은 미국의 흑인들이 많은 불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와 세계에 지속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강한 영적인 유산을 남겨주었다.



출처 - http://www.hislove.or.kr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88

참고 :

이재만
2004-06-29

세계 창조과학의 중심지


       미국창조과학 연구소(ICR,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에 대하여 물어 보시는 분들이 많기에 지면을 이용하여 알려주고자 한다. 단지 ICR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창조과학이라는 분야가 자리잡는 과정을 이해하는 의미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이래로 과학자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진화론적 사고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진화론이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인간과 역사를 진화론적으로만 몰아가는 세상에 대하여 과학자로써 양심을 갖고 시작한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바로 창조과학자들이다. 1900년도 초까지 양심을 가진 극소수의 기독교 과학자들에 의해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유지해왔던 창조과학은 1961년 헨리 모리스(Dr. Henry Morris) 박사의 유명한 책인 "창세기 대홍수(Genesis Flood)"가 출판됨에 따라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물에 관하여 연구하는 수리학에 정통한 과학자이며, 나중에는 ICR의 설립자가 되었다. 진화론이 대두된 이래로 전혀 과학과 함께 언급하지 못했던 성경이 이 책을 통하여 과학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음이 분명하고 자신 있게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판을 기점으로 곳곳에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창조과학 연구가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연구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이 바로 샌디에고에 위치한 ICR이다.


ICR은 설립 당시인 1970년에 샌디에고 동쪽에 위치한 크리스천 헤리티지 대학(Christian Heritage College)의 부속 기관으로 시작하였다. 이 대학도 설립 동기가 진화론 때문에 무너져가는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설립된 학교이다. 두 학교 모두 앞에 소개한 헨리 모리스 박사와 몇몇 뜻 있는 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81년에 현재의 ICR 독립건물로 이전하면서 차원 높은 창조과학 연구와 함께, 지질학, 천체물리학, 생물학, 과학교육학의 대학원과정이 시작하였다. 기념할만한 것은 미국의 모든 학교가 진화론에만 근거한 연구가 진행되는 가운데 처음으로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인정하는 성경에 근거한 과학분야의 대학원과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20여명의 박사와 교수들이 각 분야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이미 명성이 나있는 과학자들이 이곳에 모여든 동기는 철저하게 과학자의 양심을 가지고 오직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ICR의 시작과 성공은 기원과 역사의 분야에서 모두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던 대세에, 하나의 횃불처럼 바른 방향으로 돌이키는 커다란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 창조과학회를 설립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성경이라고 하면 과학과는 별개의 것으로 치부되었던 시대에,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은 과학과 별개의 관계가 아니라, 바른 과학은 성경을 완전히 지지한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만 해도 수백 개의 창조과학 단체가 있는데, ICR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결과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ICR에 상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 내 일반학교와 연구소에 종사하면서, ICR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대학원 과정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사실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전파'에도 노력하고 있다. 특히 ICR에는 훌륭한 창조과학 박물관이 있는데, 기회가 닿는 데로 설명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계에서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샌디에고이다. 그 이유는 ICR이 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www.icr.org 에 들어가면 자세한 사역을 접할 수 있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72

참고 : 6636|6634|6627|6610|6604|6597|6585|6583|6582|6562|6561|6556|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6399|5460|6489|5135|5000|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01|6096|5459|5274|5450

이재만
2004-06-11

스티브 오스틴 : 홍수지질학자


      지질학자 스티브 오스틴(Dr. Steve Austin, 1952-)은 일찌감치 대학시절부터 격변론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는데 석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존 동일과정설적 석탄이론인 습지이론(습지에서 나무가 쌓이고 쌓여서 시간이 지나 석탄이 되었다는 이론)에 반박하여 거대한 격변을 통하여 형성된다는 메트이론(격변에 의해 생성된 수 많은 나무들이 물에 떠다니는 도중 형성되었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이는 그의 박사학위도 메트이론 논문으로 받았는데, 발표할 당시 동일과정설자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학위를 받은 지 1년 후 워싱톤 주의 세인트 헬렌 산이 화산폭발을 하면서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 채 뽑히고 이들이 메트처럼 떠다니다가 나무껍질들이 물속에 가라앉으면서 부분적 탄화된 토탄이 바로 형성되었다. 그가 제안한 격변에 의해 나무들이 탄화가 된 것이다. 세인트 헬렌산의 화산폭발로 그의 석탄형성 이론이 확인되었을 때, 오히려 주위의 사람들이 놀랐는데 정작 자신은 ”We have the answer, 우리는 답을 가지고 있다”라고 담담하게 응수함으로 노아홍수를 사실로 믿고 석탄을 접근한 사람의 유리함을 표현하였다. 실제로 석탄은 시간을 중요시 하는 동일과정설적으로 절대 형성될 수 없다.


그밖에 그랜드 캐년에 대한 연구도 유명한데, ”그랜드 캐년 대격변의 기념비(Grand Canyon Monument to Catastrophe)” 책에서 그랜드캐년이 퇴적되는 것과 침식되는 모든 과정이 노아홍수의 격변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설명하였다. 그는 순수한 과학자로서 전공논문 이외에는 거의 글을 쓰지 않는 그가 처음으로 일반인과 과학자 모두를 위해 쓴 책인데, 그랜드 캐년에 대한 지금까지의 어떠한 책보다 잘 설명한 책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책은 격변론적 지질학들에게 그랜드캐년에 대한 교과서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밖에 지질학 부분에서 기존 헨리 모리스의 격변론적인 생각을 더 자세히 뒷받침하는 많은 연구를 하였다.


그의 책의 초입부에서 ”우리 주님은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쉽게 잊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잘 잊어버릴 뿐 아니라 그 행하신 일을 다음세대에게 잘 전달하지도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라고 하며 그랜드 캐년을 잘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남겨주신 기념비로 표현을 했다. 하나님의 심판을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 후손들이 그 심판의 현장을 그려볼 수 있도록 말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열 두 사람을 불러서… 지파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sign)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이 무슨 뜻이뇨 하거든…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memorial)이 되리라 하라 (수4:4-7)”의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랜드캐년을 노아홍수의 기념비로 표현하였다.

 

 

*참조 : Geological pioneer was a biblical creation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3722/8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48

참고 :

이재만
2004-06-10

헨리모리스 - 현대 창조과학의 아버지


      1800년대 말부터 성경적 지질학자를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않다. 지질학이 과학자들에게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의 패러다임을 주도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이 검증된 사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 버린다는 것 자체가 실재로 아주 어렵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일과정설은 1960년도부터 지질학계에서 일어난 실험적 방법에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즉 퇴적층, 지형, 화산, 화석, 석탄 등 지질학의 기본이 되는 부분에서 실험을 시도할 때마다 “시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건”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왔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헨리 모리스(Dr. Henry Morris, 1918-)는 창조과학의 아버지로 가장 잘 알려졌다. 학문분야는 수리학이지만 지질학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어떤 퇴적물질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얼마의 물의 양이 필요한지 실험을 통해 수학적으로 계산하였다. 즉 바위나 모래의 크기에 따라 운반될 때 필요한 물의 양을 계산한 것이었다. 이 계산 결과는 지형이나 바위들을 볼 때 오랜 시간이 지나며 지금의 자리에 왔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버리게 한다. 그의 계산으로 볼 때 지금의 계곡을 메우고 있는 바위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게 만든 최소한 물의 양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연히 이들이 움직였던 물의 양은 오늘날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물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 위에 펼쳐있는 모든 산과 계곡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들은 전지구를 덮었던 격변의 결과로 결론을 내렸다. 그의 계산은 실재 홍수에 의한 피해예측에 적용될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돌들이 이동한다는 식의 막연한 사고로는 이러한 단순한 생각도 시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진화론자들이 만든 지질계통표는 지구의 역사가 아니며 진화론적 허구의 결과로 단정 지었다. 그는 그밖에 화석, 석탄 등 다양한 부분에서도 노아홍수의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였으며, 창세기 1장의 셋째 날에 만들어진 땅과 홍수기간에 만들어진 땅의 구분을 통하여 지질학계의 고심하는 선캠브리아기와 고생대 경계 부분을 명쾌히 해결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1961년 출판된 그의 책 “창세기 대홍수(Genesis Flood)”를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기재하였는데,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벗어버리고 성경적 창조로 돌아오게 되는 전환기를 마련했다.


단지 과학분야 뿐 아니라 창세기, 욥기, 계시록, 시편 등에 관하여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주석을 썼으며,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교육학에 관한 책도 집필하였다. 그의 교육철학은 자신의 네 자녀에게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고등학교까지 홈스쿨로 창조교육을 기초하여 가르쳤다.  결과는 모두가 신학, 지질학, 생물학, 언어학의 각 분야의 손꼽히는 사람이 되었으며, 현재 자신들의 분야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외치고 있다. 그의 성경에 대한 변증은 일반 과학자들에게 큰 설득력이 있어 마침내 1970년도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ICR)를 설립하였고 많은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모여 성경에 기초한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창조과학, Creation Science”란 단어가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잡게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겸손함과 친절함에 놀란다. 진화론에 대한 직설적인 반박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삶에서는 인자함이 배어나온다.  늘 글을 쓰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84세의 고령에도 펜을 놓지 않는다. 지금까지 책이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숫자이다. ICR에서 발행되는 Newsletter에 그의 고정 칼럼인 Back To Genesis를 쉬지 않고 연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3개월에 한번 발행되는 Days of Praise 라고 하는 매일의 묵상집은  대부분이 그의 묵상내용이다. “기원에 관한 어떤 주장이든지 그것이 옳다면 성경말씀과 결코 대치되지 않는다”  그의 말이다.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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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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