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주의 : 목적 없는 생존

다윈주의 : 목적 없는 생존

(Darwinism : Survival without Purpose)


”인류는 생명체의 의미에 대해서 항상 궁금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생명체는 DNA의 생존을 영속시키려는 것보다 더 높은 목적이 없다. 생명체는 단지 맹목적이고 냉혹한 무관심만 있을 뿐, 설계와 목적, 선과 악이 없다.”[1] -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진화는 ”기만적인 단순한 것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크다.”[2] 첫째로 생물체들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variations)는 계획이나 목적 없이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3] 진화는 계획이나 목적이 없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핵심 원리가 돌연변이(mutations)라고 불리는 무작위적인 복제오류에 의해 만들어진 개체들 중에서 적자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of the fittest)이기 때문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무엇이든지 목적성을 가진다는 것은 자연선택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4] 퓰리처상의 수상자인 작가 에드워드 흄즈(Edward Humes)는 진화라는 사실은 명백하나 ”그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설계와 의미를 찾으려고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

”다윈의 탁월성은 설계의 모습 너머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무목적성의 이해, 자연선택의 무자비한 과정, 야생에서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생물계통수로부터 가장 성공적인 유기체만을 추려냈으며, 그로 말미암아 뛰어난 지성이 세상을 설계했다는 것이 망상(illusion)이었음을 이해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시계와 같은 ‘완벽성’을 보이는 벌집이나 개미행렬(ant trails)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정밀한 조사 결과 … 그것들은 의식적인 설계가 아니라, 무작위적이고, 반복적인, 무의식적 행동들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5]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영속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음을 진화론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어떤 교사는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쳤다”고 증언했다.[6] 왜냐하면 그것은 교사들로 하여금 ”그들의 태도와 신념에 완전히 반대되는 어떤 것, 즉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진화를 수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연구에서,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블룸(Bloom)과 와이즈버그(Weisberg)는, 저자들이 ‘무차별적 목적론(promiscuous teleology)’이라고 부르는 세상을 바라보는 진화론적 방식이 그들로 하여금 진화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설계와 목적이라는 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7] 진화의 궁극적인 무목적성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생명체의 무목적성은 크로스(Lawrence Krauss) 교수에 의해 다음과 같이 역력히 표현되었다. ”우리는 단지 자연에 약간의 오염(pollution)을 일으킬 뿐이다…. 만약 우리가 제거되더라도…, 우주는 거의 동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이다.”[8]


교과서들

삶의 목적(purpose of life)과 같은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현재의 과학교과서들을 조사하여 보았다. 그리고 진화론이 허무주의와 무신론적 관점을 가르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교과서 중의 하나에는 ”진화는 계획이나 목적 없이 진행된다 …진화는 무작위적이고 방향성이 없다.”라고 적혀있다.[9] 같은 저자들에 의한 다른 교과서에서,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철학적 유물론(philosophical materialism), 즉 물질이 모든 존재의 구성성분이고, 모든 정신적, 영적 현상들은 그것의 부산물이라는 신념을 믿는 것이 요구됨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그 저자들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윈주의적 진화는 … 자연이 무자비하게 부적합한 생물체들을 제거하는 과정으로서, 무목적적일 뿐만 아니라, 냉혹한 것이다. 갑자기 인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자가 아무도 없는 단지 동물들 중의 한 종(species)으로 전락되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mind)은 단지 진화하는 신경세포들의 덩어리(mass of evolving neurons)일 뿐이다. 가장 곤란해진 것은 우리를 안내할 신적 계획(divine plan)이 없어졌다는 것이다.”[10]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인간은 단지 생명체들의 거대한 수풀 속에 난 작고, 매우 늦게 우연히 생겨난 잔가지”일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점진적이고, 지시된 힘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진화”는 현재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가르쳐지고 있다.[11] 많은 교과서들은 진화는 맹목적인 생존을 제외하곤 목적이 없고(purposeless), 목표가 없다(no goal)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가 최종 목표나 상태를 향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화 과정 그 자체보다 더 수용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12] 어떤 주요 교과서는 인간은 눈멀고, 귀머거리고, 벙어리인 시계공(즉 미래에 대해 완전히 장님인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공공연히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 다른 모든 생물 종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진화적 근원으로부터 왔다. 우리에게 몸과 뇌를 준 것은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s)들의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은 … 생명체의 통합성, 생명체의 다양성, 생명체의 복잡성, 그리고 생명체 내의 명백한 설계를 … 설명한다.”[13]


암시들

많은 교과서들은 유신론에 대한 다윈주의의 의미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한 교과서에는 다윈이 과학에 미친 중요한 수많은 공헌들은 생명체의 명백한 설계와 목적의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물학적 현상들을 기계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 교과서는 ”지시되지 않은, 무목적적인 변이를 눈멀고 제멋대로인 자연선택의 과정과 결부시켜 생각함으로써, 다윈은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에 대한 신학적 또는 영적인 설명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이고 있다.[14] 저자는 ”가장 서구적 사고의 단계였던 … 기계주의(mechanisms)와 물질주의(materialism)라는 기반에 중요한 지지물을 제공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었다.”라고 언급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15]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심지어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실제적 어려움은 항상 우리의 중요성을 손상시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진화는 다른 모든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또한, 과학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어떤 우주적 설계의 부분으로 창조된 것이 아닌, 무작위적 과정의 산물(products of a random process)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했다.”[16]

이러한 교과서들은 모두 다 분명히 과학이 아니라 종교적 사고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한 교과서는 공공연히 유신론적 진화론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하나님의 어떠한 역할도 배제하고 있으며, 인간과 모든 생물체들은 ”어떤 신의 개입(intervention) 없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다윈주의가 유신론을 위태롭게 하였음을 입증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적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은 의식적이고 목적적이며 인간과 같은 특성을 지닌 신적 존재(deity)를 대체했다.”

”현재의 종류와 같은 생물체들이 동시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일어난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들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다윈주의적 관점은 생물들이나 지구 및 우주 등이 어떤 지적설계자의 설계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종교적 관점과 모순 된다. 이 체제에서 설계를 하고 목적을 가진 신은 필요하지 않다…. 종교는 세상을 통치하는 신의 형상으로 인류가 창조되었다는 위안적 생각에 의해서 지지되어왔다. 종교는 정서적 안위와 일련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교리(dogma)에 대한 믿음은 그것의 미스터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에 의해 손상되었다…. 창조론자들과 과학계의 입장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17]

다윈 자신은 기원에 대해 전적으로 무신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관점을 가르쳤다. 그는 심지어 한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연선택이 어떤 후손의 단계에서 기적적인 추가를 요구한다면 나는 그 이론을 버릴 것이다.”[18] 그래서 진화론 생물학자인 앨콕(John Alcock)은 ”우리는 단지 우리 안의 유전자들을 전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라고 결론지었다.[19]

선도적 진화론자인 브라운(Janet Browne)은 다윈의 목표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던 방식을 뜯어 고치는 힘들고 끈질긴 일이었다.”고 매우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윈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비롭고, 거의 완벽한 자연세계에 대한 생각”과 ”사물의 아름다움이 어떤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즉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존재하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지어낸 하나의 우화(a fable)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시켜야만 했다.

”인류로 하여금 고귀한 삶을 추구하도록 하는 도덕적 의미로 넘쳐나는 세상은 다윈의 세계가 아니었다. 자연에 대한 다윈의 관점은 어둡고, 암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연 속의 어떤 종류의 설계, 어떤 종류의 계획과 질서가 있으며, 자신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믿음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 다윈은 그들이 모든 생물체들을 어떤 신성한 목적이 없는 것으로 보기를 원했다.”[20]

다윈은 그러한 관점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았으나, 진화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궁극적으로 ”완전히 우연에 의해 지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

”자연의 아름다운 외형은 말 그대로 단지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그 아래에는 종과 종 사이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 있다. 생명은 죽음에 의해서 지배되고, 파괴는 번식적 성공의 열쇠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적 의미들은 다윈에 의해 해체되었고, 경쟁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완벽한 적응이라는 자연주의 신학자들의 사상에 기초가 되었던 모든 목적인(telos, purpose)은 맬서스주의적-다윈주의적 투쟁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설계로 본 것을 그는 환경에 대한 단순한 적응, 즉 동물이나 식물이 생존하도록 도운 방식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적응으로 보았다.”[21]

신다윈주의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러한 체계의 무목적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

”맹목적인 물리적 힘과 유전적 복제의 우주에서, 어떤 사람들은 상처를 입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을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떠한 분별이나 이유, 혹은 어떠한 정의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는 사실상 설계도, 목적도, 선도, 악도 없으며, 단지 무목적과, 무자비와, 무관심만 있을 때 기대되어지는 특성만을 정확히 가지고 있을 뿐이다.”[22]

이러한 견해가 과학자들 사이에 얼마나 널리 퍼져있을까? 선도적 생물학자들 149명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89.9%가 진화는 궁극적으로 생존을 제외하고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과 우연의 변덕 속에서 단지 하나의 우주적 사고(a cosmic accident)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6%의 생물학자들만이 진화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23] 진화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들이었다. 이것은 솜머(Sommers)와 로젠버그(Rosenberg)가 ”진화론의 파괴적인 힘(destructive power of Darwinian theory)”이라고 불렀던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24]
 

목적과 기독교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한 거주할 곳(home)으로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고 가르친다. 만약 우주가 순전히 자연적 방법에 의해서 진화되었다면, 우주는 단지 존재할 뿐이며, 존재에 대한 어떠한 ‘목적’은 인간 스스로가 생각해낸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경험과 지적 재능들은 이것에 반대됨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복잡한 기계들과 우주의 질서정연한 기능들의 유사성은 설계논증의 근거가 되고 있다. 기계에 설계자와 제조자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는 우주만물도 설계자와 제조자가 필요하다.

어떤 것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관찰자의 세계관에 의존한다. 무신론자들에게 ”생물체 구조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이 구조가 생존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력과 다리는 삶의 즐거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진화의 계획되지 않은 부산물일 뿐이다. 생물학자들은 끊임없이 보호색에서부터 생식습성까지 모든 것들을 단지 생존을 기초로 해서 설명할 뿐이다. 전통적인 신다윈주의는 모든 것들을 무작위적이고 자연선택 된 돌연변이의 결과와 자연법칙으로 인한 운 나쁜 또는 운 좋은 우연한 사건들로 보고 있다. 대조적으로, 창조론자들은 모든 존재들을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진화론자들은 심지어 모순적인 행동까지도 설명하려고 하나, 창조론자들은 그 너머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고 노력한다.


결론

전통적인 진화론은 생물계는 생존 외에는 어떠한 계획이나 목적이 없으며, 무작위적이며, 방향성도 없을뿐더러, 냉혹하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무도 없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minds)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일 뿐이며, 우리를 인도하는 어떠한 신성한 계획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공공연하게 무신론(atheism)과 허무주의(nihilism)라는 종교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법정은 끊임없이 공립학교에서 이러한 반기독교적 종교를 가르치는 것을 승인해왔고, 이처럼 분명히 종교적인 생각을 무효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방해해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디모데후서 4:3-4).

               
References

1. Scheff, Liam. 2007. The Dawkins Delusion. Salvo, 2:94.
2. Humes, Edward. 2007. Monkey Girl: Evolution, Education, Religion, and the Battle for America's Soul. New York: Ecco, 119.
3. Ibid, 119.
4. Turner, J. Scott. 2007. The Tinkerer's Accomplice: How Design Emerges from Life Itself.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6.
5. Humes, Monkey Girl, 119.
6. Ibid, 172.
7. Bloom, Paul and Deena Skolnick Weisberg. 2007. Childhood Origins to Adult Resistance to Science. Science, 316:996.
8. Panek, Richard. 2007. Out There. New York Times Magazine, 56.
9. Miller, Kenneth R. and Joseph S. Levine. Biology. 1998. Fourth Editio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658, emphasis in original.
10. Levine, Joseph S. and Kenneth R. Miller 1994. Biology: Discovering Life. Second Edition, Lexington, MA: D.C. Heath, 161, emphasis in original.
11. Raven, Peter H. and George B. Johnson. 2002. Biology. Sixth Edition, Boston, MA: McGraw Hill, 16, 443.
12. Purves, William K., David Sadava, Gordon H. Orians, and H. Craig Keller. 2001. Life: The Science of Biology. Sixth Edition,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W.H. Freeman, 3.
13. Interview with Richard Dawkins in Campbell, Neil A., Jane B. Reece, and Lawrence G. Mitchell. 1999. Biology. Fifth Edition, Menlo Park, CA: Addison Wesley Longman, 412-413.
14. Futuyma, Douglas J. 1998. Evolutionary Biology. Third Edition,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5.
15. Ibid, 5.
16. Curtis, Helena and N. Sue Barnes. 1981. Invitation to Biology. Third Edition, New York, NY: Worth, 475.
17. Strickberger, Monroe. 2000. Evolution. Third Edition, Sudbury, MA: Jones & Bartlett, 70-71.
18. Darwin, Francis (editor). 1888. The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London: John Murray, 210.
19. Alcock, John. 1998. Animal Behavior: An Evolutionary Approach.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16, 609.
20. Browne, Janet. 1995. Charles Darwin: Voyaging, A Biography.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42.
21. Ibid, 542.
22. Dawkins, Richard. 1995. River Out of Eden. New York: Basic Books, 133.
23. Graffin, Gregory W. 2004. Evolution, Monism, Atheism, and the Naturalist World-View. Ithaca, NY: Polypterus Press, 42.
24. Sommers, Tamler and Alex Rosenberg. 2003. Darwin's Nihilistic Idea: Evolution and the Meaningless of Life. Biology and Philosophy, 18:653.

* Dr. Bergman is Professor of Biology at Northwest State College in Ohio.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513/

출처 - ICR, Impact No. 413, 200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46

참고 : 3800|3856|3841|3808|3744|3736|3729|3679|3677|3606|3598|3586|3593|3591|3426|3391|3360|3341|3293|3262|3109|3107|3059|3051|3012|2859|2748|2763|2752|2579|2504|2334|2125|2153|2114|2067|2061|1912|1914|1907|736|730|729|657|658|659|696|653|654|551|328|201|202|45|4039|3919|3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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