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Paul Taylor
2008-03-04

또 다시 선전되고 있는 가지나방

(Peppered moths -back on the agenda?)


      영국의 좌경적 신문인 The Independent 지 (최근 장문의 기사로 창조박물관을 크게 다룬 바 있는)는 2007년 8월 25일자 기사에서, 케틀웰(Kettlewell)의 유명한 가지나방(peppered moth, 후추나방) 실험이 자연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증거로 입증되었다는 한 이야기를 게재하고 있었다. 그 기사는 케틀웰의 실험이 옳았고, 가지나방 개체수의 분포는 ‘작동되고 있는 진화(evolution in action)’의 좋은 사례였고, 무례한 창조론자들이 늘 하던 대로 그것을 잘못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기사의 필자인 Independent 지의 과학부 편집인 스티브 코너(Steve Connor)와 연구원 겸 캠브리지 대학 교수인 마이클 마제루스(Michael Majerus)는 둘 다 창조론자들에 대한 그들의 비판과, 그 연구에 관한 그들의 주장에서 정직하지 않았다.

코너는 ”창조론자들이 피 냄새를 맡았다. 가지나방 이야기는 꾸며낸 데이터에 기초한 사례로서, 다윈주의가 어떻게 결함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선전되고 있다.” 라고 쓰고 있었다. 그는 마제루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 ”가지나방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각, 포식, 조류, 나방, 오염, 위장, 점심, 죽음 등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진화론 단체들이 가지나방 이야기를 공격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AiG 웹사이트는 이전에 가지나방 전설에 대한 정보를 특집으로 실은 바 있다.[1] 이 나방 종(Biston betularia)은 밝은 색의 종(typica)과 검은 색의 종(carbonaria) 등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사실 Biston betularia 형의 나방은 상대적으로 연한 색의 것에서부터 어두운 색의 것까지 연속적인 색소형성의 범위를 보이고 있다. 더 어두운 것들은 임의로 다른 타입으로 분류되고 있다.) 설명하자면 밝은 색의 나방은 오염이 심한 지역의 검게 변색된 나무껍질들 위에서 더 쉽게 눈에 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지역에서 새들은 밝은 색의 나방들을 더 쉽게 잡아먹을 수가 있었고, 어두운 색 나방의 개체 수 비율을 높게 증가시켰다. 마찬가지로 오염이 안 된 지역에서는, 밝은 색의 나방들의 수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와 같은 개체 수의 분포가 발생했었던 몇몇 증거들이 있다.

Independent 지의 기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가지나방 실험들에 대한 비판이 개체 수들에 대한 관찰이 정확했는지 아닌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판되었던 것은 실험 방법과 결론이었던 것이다. 개체 수의 분포 증거가 맞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창조론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나방이 진화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방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유전정보가 재배열(rearrangement)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무기물에서 사람으로” 진화되기 위해 요구되는 그런 종류의 유전정보의 증가(increase in genetic information)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틀웰이 행했던 실험은 처음에 창조론자들에 의해가 아니라, 동료 진화론자들에 의해서 비판되었다. 그것은 주디스 후퍼(Judith Hooper)의 책 '나방과 인간들(Of Moths and Men)‘ 에서, 어떤 유명한 사진들은 죽은 나방을 나무에 접착제로 붙여서 얻어진 사진이라고 주장되었다. 이것은 나방들은 나무 껍질(bark)에 앉지 않고, 덮개(canopies)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방법론에 대한 비판은 개체수의 관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제루스가 오늘날에도 새들이 상당한 양의 나방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창조론자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Independent 지의 기사가 케틀웰의 방법론에 결점(flaws)들이 있었음을 시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기사는 그 결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마땅히 언급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실험에 참가했던 과학자들은 한 이야기를 증명하기 위해서 관련 없는 증거를 제시했다” 는 비난을 여전히 받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 연구에서,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방법이 부정직한 것이라면, 설령 결론이 맞는다 해도, 그 실험은 유효하지 않는 것이다.

그 기사는 가지나방들이 ”작동되고 있는 진화의 전형적인 사례”였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정확하지 않는 말이다. 설사 그것이 맞는다 하더라도, 가지나방 실험은 진화의 예가 아니라, 자연선택(이것은 창조론자들도 받아들임)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다윈주의자들이 쓰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자연선택은 (예컨대 환경에 의해서) 단순히 유전학적 특성이 선택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선택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관찰될 수 있다. 그러나 다윈주의적 자연선택(무기물에서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자들의 추정)은 새로운 유전정보의 획득을 필요로 한다.

마제루스의 말 중에 하나는 옳다. 그것은 가지나방 이야기는 진정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방법론과 지나치게 과장된 주장이 증명할 수 없는 것들(무기물에서 사람으로의 진화)을 증명하기 위한 헛된 시도로서 또 한번 사용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무기물에서 사람으로의 진화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참조 1 : 나무껍질에 교묘히 숨어드는 나방 의태의 비밀 밝혀져 (2012. 8. 3. 한겨레)
http://ecotopia.hani.co.kr/56308

가지나방의 비밀 (애니메이션)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860


*참조 2 : .The Pepper Moth Theory Falsified
 http://www.bible.ca/tracks/textbook-fraud-pepper-moth-biston-betularia.htm

.The Moth Files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5/i1/moth.asp

.More about moth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559/

.An Examination of ErrorTrends in science teaching and textbook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1/examination-of-erro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7/09/03/peppered-moths-back 

출처 - AiG, September 3, 200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99

참고 : 2853|3224|117|2349|860|4274|4151|3593|3394|3313|2363|1099|2988|2393|1939|5442

Jerry Bergman
2008-01-19

다윈주의 : 목적 없는 생존

(Darwinism : Survival without Purpose)


”인류는 생명체의 의미에 대해서 항상 궁금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생명체는 DNA의 생존을 영속시키려는 것보다 더 높은 목적이 없다. 생명체는 단지 맹목적이고 냉혹한 무관심만 있을 뿐, 설계와 목적, 선과 악이 없다.”[1] -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진화는 ”기만적인 단순한 것이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 크다.”[2] 첫째로 생물체들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variations)는 계획이나 목적 없이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3] 진화는 계획이나 목적이 없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핵심 원리가 돌연변이(mutations)라고 불리는 무작위적인 복제오류에 의해 만들어진 개체들 중에서 적자의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of the fittest)이기 때문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무엇이든지 목적성을 가진다는 것은 자연선택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4] 퓰리처상의 수상자인 작가 에드워드 흄즈(Edward Humes)는 진화라는 사실은 명백하나 ”그것을 거의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설계와 의미를 찾으려고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

”다윈의 탁월성은 설계의 모습 너머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무목적성의 이해, 자연선택의 무자비한 과정, 야생에서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생물계통수로부터 가장 성공적인 유기체만을 추려냈으며, 그로 말미암아 뛰어난 지성이 세상을 설계했다는 것이 망상(illusion)이었음을 이해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시계와 같은 ‘완벽성’을 보이는 벌집이나 개미행렬(ant trails)과 같은 것들에 대해 정밀한 조사 결과 … 그것들은 의식적인 설계가 아니라, 무작위적이고, 반복적인, 무의식적 행동들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5]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영속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음을 진화론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어떤 교사는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쳤다”고 증언했다.[6] 왜냐하면 그것은 교사들로 하여금 ”그들의 태도와 신념에 완전히 반대되는 어떤 것, 즉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진화를 수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연구에서,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블룸(Bloom)과 와이즈버그(Weisberg)는, 저자들이 ‘무차별적 목적론(promiscuous teleology)’이라고 부르는 세상을 바라보는 진화론적 방식이 그들로 하여금 진화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설계와 목적이라는 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7] 진화의 궁극적인 무목적성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생명체의 무목적성은 크로스(Lawrence Krauss) 교수에 의해 다음과 같이 역력히 표현되었다. ”우리는 단지 자연에 약간의 오염(pollution)을 일으킬 뿐이다…. 만약 우리가 제거되더라도…, 우주는 거의 동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히 무의미한 존재이다.”[8]


교과서들

삶의 목적(purpose of life)과 같은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현재의 과학교과서들을 조사하여 보았다. 그리고 진화론이 허무주의와 무신론적 관점을 가르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교과서 중의 하나에는 ”진화는 계획이나 목적 없이 진행된다 …진화는 무작위적이고 방향성이 없다.”라고 적혀있다.[9] 같은 저자들에 의한 다른 교과서에서,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철학적 유물론(philosophical materialism), 즉 물질이 모든 존재의 구성성분이고, 모든 정신적, 영적 현상들은 그것의 부산물이라는 신념을 믿는 것이 요구됨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그 저자들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윈주의적 진화는 … 자연이 무자비하게 부적합한 생물체들을 제거하는 과정으로서, 무목적적일 뿐만 아니라, 냉혹한 것이다. 갑자기 인류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자가 아무도 없는 단지 동물들 중의 한 종(species)으로 전락되었다. 위대한 인간의 정신(mind)은 단지 진화하는 신경세포들의 덩어리(mass of evolving neurons)일 뿐이다. 가장 곤란해진 것은 우리를 안내할 신적 계획(divine plan)이 없어졌다는 것이다.”[10]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인간은 단지 생명체들의 거대한 수풀 속에 난 작고, 매우 늦게 우연히 생겨난 잔가지”일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점진적이고, 지시된 힘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진화”는 현재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가르쳐지고 있다.[11] 많은 교과서들은 진화는 맹목적인 생존을 제외하곤 목적이 없고(purposeless), 목표가 없다(no goal)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가 최종 목표나 상태를 향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화 과정 그 자체보다 더 수용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12] 어떤 주요 교과서는 인간은 눈멀고, 귀머거리고, 벙어리인 시계공(즉 미래에 대해 완전히 장님인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공공연히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 다른 모든 생물 종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진화적 근원으로부터 왔다. 우리에게 몸과 뇌를 준 것은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s)들의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은 … 생명체의 통합성, 생명체의 다양성, 생명체의 복잡성, 그리고 생명체 내의 명백한 설계를 … 설명한다.”[13]


암시들

많은 교과서들은 유신론에 대한 다윈주의의 의미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한 교과서에는 다윈이 과학에 미친 중요한 수많은 공헌들은 생명체의 명백한 설계와 목적의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물학적 현상들을 기계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 교과서는 ”지시되지 않은, 무목적적인 변이를 눈멀고 제멋대로인 자연선택의 과정과 결부시켜 생각함으로써, 다윈은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에 대한 신학적 또는 영적인 설명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이고 있다.[14] 저자는 ”가장 서구적 사고의 단계였던 … 기계주의(mechanisms)와 물질주의(materialism)라는 기반에 중요한 지지물을 제공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었다.”라고 언급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15] 또 다른 교과서에서는 심지어 인간은 사랑의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인 과정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실제적 어려움은 항상 우리의 중요성을 손상시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진화는 다른 모든 유기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또한, 과학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어떤 우주적 설계의 부분으로 창조된 것이 아닌, 무작위적 과정의 산물(products of a random process)이라는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했다.”[16]

이러한 교과서들은 모두 다 분명히 과학이 아니라 종교적 사고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한 교과서는 공공연히 유신론적 진화론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하나님의 어떠한 역할도 배제하고 있으며, 인간과 모든 생물체들은 ”어떤 신의 개입(intervention) 없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다윈주의가 유신론을 위태롭게 하였음을 입증하였다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적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은 의식적이고 목적적이며 인간과 같은 특성을 지닌 신적 존재(deity)를 대체했다.”

”현재의 종류와 같은 생물체들이 동시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일어난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들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다윈주의적 관점은 생물들이나 지구 및 우주 등이 어떤 지적설계자의 설계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종교적 관점과 모순 된다. 이 체제에서 설계를 하고 목적을 가진 신은 필요하지 않다…. 종교는 세상을 통치하는 신의 형상으로 인류가 창조되었다는 위안적 생각에 의해서 지지되어왔다. 종교는 정서적 안위와 일련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교리(dogma)에 대한 믿음은 그것의 미스터리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에 의해 손상되었다…. 창조론자들과 과학계의 입장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17]

다윈 자신은 기원에 대해 전적으로 무신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관점을 가르쳤다. 그는 심지어 한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연선택이 어떤 후손의 단계에서 기적적인 추가를 요구한다면 나는 그 이론을 버릴 것이다.”[18] 그래서 진화론 생물학자인 앨콕(John Alcock)은 ”우리는 단지 우리 안의 유전자들을 전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라고 결론지었다.[19]

선도적 진화론자인 브라운(Janet Browne)은 다윈의 목표는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던 방식을 뜯어 고치는 힘들고 끈질긴 일이었다.”고 매우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윈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비롭고, 거의 완벽한 자연세계에 대한 생각”과 ”사물의 아름다움이 어떤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즉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존재하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지어낸 하나의 우화(a fable)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시켜야만 했다.

”인류로 하여금 고귀한 삶을 추구하도록 하는 도덕적 의미로 넘쳐나는 세상은 다윈의 세계가 아니었다. 자연에 대한 다윈의 관점은 어둡고, 암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연 속의 어떤 종류의 설계, 어떤 종류의 계획과 질서가 있으며, 자신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믿음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곳에서, 다윈은 그들이 모든 생물체들을 어떤 신성한 목적이 없는 것으로 보기를 원했다.”[20]

다윈은 그러한 관점을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았으나, 진화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궁극적으로 ”완전히 우연에 의해 지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

”자연의 아름다운 외형은 말 그대로 단지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그 아래에는 종과 종 사이의, 개인과 개인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 있다. 생명은 죽음에 의해서 지배되고, 파괴는 번식적 성공의 열쇠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적 의미들은 다윈에 의해 해체되었고, 경쟁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완벽한 적응이라는 자연주의 신학자들의 사상에 기초가 되었던 모든 목적인(telos, purpose)은 맬서스주의적-다윈주의적 투쟁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설계로 본 것을 그는 환경에 대한 단순한 적응, 즉 동물이나 식물이 생존하도록 도운 방식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적응으로 보았다.”[21]

신다윈주의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러한 체계의 무목적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

”맹목적인 물리적 힘과 유전적 복제의 우주에서, 어떤 사람들은 상처를 입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운이 좋을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떠한 분별이나 이유, 혹은 어떠한 정의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는 사실상 설계도, 목적도, 선도, 악도 없으며, 단지 무목적과, 무자비와, 무관심만 있을 때 기대되어지는 특성만을 정확히 가지고 있을 뿐이다.”[22]

이러한 견해가 과학자들 사이에 얼마나 널리 퍼져있을까? 선도적 생물학자들 149명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89.9%가 진화는 궁극적으로 생존을 제외하고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과 우연의 변덕 속에서 단지 하나의 우주적 사고(a cosmic accident)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6%의 생물학자들만이 진화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23] 진화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들이었다. 이것은 솜머(Sommers)와 로젠버그(Rosenberg)가 ”진화론의 파괴적인 힘(destructive power of Darwinian theory)”이라고 불렀던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24]
 

목적과 기독교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한 거주할 곳(home)으로서 우주만물을 만드셨다고 가르친다. 만약 우주가 순전히 자연적 방법에 의해서 진화되었다면, 우주는 단지 존재할 뿐이며, 존재에 대한 어떠한 ‘목적’은 인간 스스로가 생각해낸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경험과 지적 재능들은 이것에 반대됨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복잡한 기계들과 우주의 질서정연한 기능들의 유사성은 설계논증의 근거가 되고 있다. 기계에 설계자와 제조자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는 우주만물도 설계자와 제조자가 필요하다.

어떤 것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관찰자의 세계관에 의존한다. 무신론자들에게 ”생물체 구조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이 구조가 생존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시력과 다리는 삶의 즐거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진화의 계획되지 않은 부산물일 뿐이다. 생물학자들은 끊임없이 보호색에서부터 생식습성까지 모든 것들을 단지 생존을 기초로 해서 설명할 뿐이다. 전통적인 신다윈주의는 모든 것들을 무작위적이고 자연선택 된 돌연변이의 결과와 자연법칙으로 인한 운 나쁜 또는 운 좋은 우연한 사건들로 보고 있다. 대조적으로, 창조론자들은 모든 존재들을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진화론자들은 심지어 모순적인 행동까지도 설명하려고 하나, 창조론자들은 그 너머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고 노력한다.


결론

전통적인 진화론은 생물계는 생존 외에는 어떠한 계획이나 목적이 없으며, 무작위적이며, 방향성도 없을뿐더러, 냉혹하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무도 없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minds)은 단순한 고기 덩어리일 뿐이며, 우리를 인도하는 어떠한 신성한 계획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공공연하게 무신론(atheism)과 허무주의(nihilism)라는 종교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법정은 끊임없이 공립학교에서 이러한 반기독교적 종교를 가르치는 것을 승인해왔고, 이처럼 분명히 종교적인 생각을 무효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방해해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기록하고 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디모데후서 4:3-4).

               
References

1. Scheff, Liam. 2007. The Dawkins Delusion. Salvo, 2:94.
2. Humes, Edward. 2007. Monkey Girl: Evolution, Education, Religion, and the Battle for America's Soul. New York: Ecco, 119.
3. Ibid, 119.
4. Turner, J. Scott. 2007. The Tinkerer's Accomplice: How Design Emerges from Life Itself.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6.
5. Humes, Monkey Girl, 119.
6. Ibid, 172.
7. Bloom, Paul and Deena Skolnick Weisberg. 2007. Childhood Origins to Adult Resistance to Science. Science, 316:996.
8. Panek, Richard. 2007. Out There. New York Times Magazine, 56.
9. Miller, Kenneth R. and Joseph S. Levine. Biology. 1998. Fourth Editio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 Hall, 658, emphasis in original.
10. Levine, Joseph S. and Kenneth R. Miller 1994. Biology: Discovering Life. Second Edition, Lexington, MA: D.C. Heath, 161, emphasis in original.
11. Raven, Peter H. and George B. Johnson. 2002. Biology. Sixth Edition, Boston, MA: McGraw Hill, 16, 443.
12. Purves, William K., David Sadava, Gordon H. Orians, and H. Craig Keller. 2001. Life: The Science of Biology. Sixth Edition,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W.H. Freeman, 3.
13. Interview with Richard Dawkins in Campbell, Neil A., Jane B. Reece, and Lawrence G. Mitchell. 1999. Biology. Fifth Edition, Menlo Park, CA: Addison Wesley Longman, 412-413.
14. Futuyma, Douglas J. 1998. Evolutionary Biology. Third Edition,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5.
15. Ibid, 5.
16. Curtis, Helena and N. Sue Barnes. 1981. Invitation to Biology. Third Edition, New York, NY: Worth, 475.
17. Strickberger, Monroe. 2000. Evolution. Third Edition, Sudbury, MA: Jones & Bartlett, 70-71.
18. Darwin, Francis (editor). 1888. The Life and Letters of Charles Darwin. London: John Murray, 210.
19. Alcock, John. 1998. Animal Behavior: An Evolutionary Approach. Sunderland, MA: Sinauer Associates, 16, 609.
20. Browne, Janet. 1995. Charles Darwin: Voyaging, A Biography.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42.
21. Ibid, 542.
22. Dawkins, Richard. 1995. River Out of Eden. New York: Basic Books, 133.
23. Graffin, Gregory W. 2004. Evolution, Monism, Atheism, and the Naturalist World-View. Ithaca, NY: Polypterus Press, 42.
24. Sommers, Tamler and Alex Rosenberg. 2003. Darwin's Nihilistic Idea: Evolution and the Meaningless of Life. Biology and Philosophy, 18:653.

* Dr. Bergman is Professor of Biology at Northwest State College in Ohio.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대구지부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513/

출처 - ICR, Impact No. 413, 200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46

참고 : 3800|3856|3841|3808|3744|3736|3729|3679|3677|3606|3598|3586|3593|3591|3426|3391|3360|3341|3293|3262|3109|3107|3059|3051|3012|2859|2748|2763|2752|2579|2504|2334|2125|2153|2114|2067|2061|1912|1914|1907|736|730|729|657|658|659|696|653|654|551|328|201|202|45|4039|3919|3887

John Hinton
2007-11-30

미골(꼬리뼈), 진화론자들을 어리석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Tailbones, Things That Make Evolutionists Look Stupid)


     진화론자들이 만들어낸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주장 중의 하나는 사람의 미골(coccyx, 꼬리뼈)은 먼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꼬리(tail)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유머 같은 우스운 개념이지만, 아직도 과학으로서 공공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은 꼬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지금도 꼬리를 가지고 있다면 여러 모로 편리할 것이다. 예를 들면, 두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치면서 꼬리로 커피를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한 피아노를 칠 때 음악이 중단됨 없이 악보를 넘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쓸모 있을 어떤 부분을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우리가 꼬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했었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했기에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까 나는 궁금하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반갑다는 표시로 그것을 흔들다가, 후에 악수를 하는 것이 더 근엄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는가? 그래서 꼬리가 없어지기 시작했는가? 아니면 꼬리로 물체를 잡았었는데, 우리가 너무 많이 먹어 몸무게가 나가면서 나무에 매달릴 때 끊어져 나갔는가? 이들 괴상한 과학자들은 실제로 '흔적 꼬리(vestigial tail)”가 오늘날 전혀 사용하지 않아 떨어져 나갔거나 퇴화되어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미골은 척주(spinal column)의 끝 이상의 기능이 있다. 사람 미골은 다수의 운동에 관여하는 9개 근육의 부착 지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변(defecation) 활동과관련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미골이 불필요하다는 그들의 결론에 동의하는지를 델라웨어 윌밍톤(Wilmington)의 아슐리 머리(Ashley Murry)에게 물어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 소녀는 미골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일생동안 기저귀를 차야만 한다. 그녀의 사례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1] 미골의 또 하나의 중요한 사용은 그 뼈는 우리들이 앉아있는 행동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미골 없이도 앉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더군다나 미골은 어떤 내부 장기들을 지지하는 것을 돕고 있다.[2]    

우리가 미골의 정확한 기능들을 모두 나열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등뼈의 끝부분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등뼈는 어느 곳에선가 끝나야만 한다. 그런데 왜 미골이 쓸모없다는 것인가? 열려진 상태로 보호되지 않은 채 끝나있는 척수(spinal cord)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척수액이 다리 쪽으로 계속 흘러나와 고통스럽고 귀찮아질 것이다. 잘못된 과학자들에 의한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결코 무해한 것이 아니다. 나의 양아버지는 척추 통증으로 고생할 때, 한 무능한 의사에 의해서 그의 미골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그는 또 다른 의사에 의해서 그가 필요한 것은 일련의 척추운동이고, 미골 제거 수술은 의사들에 의해서 더 이상 실시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까지 미골 절제 수술은 실시되고 있었다. 미골에 관한 진화론자들의 허튼소리에 넘어간 의사들은 첫 수술 후 24시간 안에 그 실수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양아버지는 두 번째 의사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에, 지난 30년 동안 어떠한 척추 문제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그는 성인용 기저귀와 멜빵, 후속 수술비 등으로 들어가는 상당한 비용의 지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골이 퇴화된 쓸모없는 기관이라는 터무니없고 엉터리 같은 주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과학 전문가이며 진화론 지지자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미골을 흔적기관(vestigial organ)의 예로서 사용했던 현대 과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3] 왜 그들은 그러한 엉터리 같은 말을 하면서도 신뢰를 얻고 있을까? 왜 그들은 이러한 잘못된 개념을 전파했음에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며,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가?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진화론이라는 종교를 선전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Additional Information:
1. Referenced by Steve Grohman in his creation seminar.
2. Covey, Jon A. Edited by Anita K. Millen. Vestigial Organs. s.l.: s.n., n.d.
3. Bergman, Jerry. Do Any Vestigial Structures Exist in Humans. CEN Technical Journal. 14(2) 2000. 

 

*참조 : Human tails and fairy tale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299/

Is the human male nipple vestigial?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5_2/j15_2_38-41.pdf

The plantaris and the question of vestigial muscles in ma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4_2/j14_2_50-53.pdf

Do any vestigial organs exist in human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6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drdino.com/articles.php?spec=74

출처 - CSE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97

참고 : 3360|3357|3349|3339|3336|3278|3782|4046|3980|3103|2413|443|2060

Headlines
2007-10-17

흔적기관으로 주장되던 맹장의 기능이 발견되었다. 

(Appendix to the Vestigial Organ Story : Whoops Function Found)


     새로운 연구 보고에 의하면, 맹장(appendix, 충수)은 우리의 진화론적 과거로부터 남겨진 단지 하나의 쓸모없는 기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Associate Press의 기사에 따르면(Oct. 5, 2007. MSNBC News을 보라), 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관이 당신의 소화관을 위해 유익한 세균들을 만들어내고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듀크 의대(Duke University Medical School)의 과학자들은 맹장이 소화를 도와주는 정상세균총(normal bacterial flora)을 재생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새 이론에 따르면, ”벌레 같은 모양의 이 기관은 질병과 다이어트 등으로 결장(colon)에서 세균의 개체수가 감소했을 때, 우리의 소화기관이 의존하는 이로운 세균(good germs)들을 배양하는 세균공장(a bacteria factory)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Science Daily 지는 그 기능을 발견한 듀크 대학의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윌리암 파커(William Parker)의 경력을 소개하고 있었다.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은 확실히 맹장염(appendicitis, 충수염)의 발병률이 낮다. 선진국 주민들에서 맹장염의 발병률이 높은 것은 과도한 위생(excessive hygiene)에 의한 면역계의 과잉반응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그 기사는 제안하였다. 맹장의 염증은 치명적일 수 있고, 신속히 제거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맹장이 소용없는 장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오랫동안 맹장을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남겨진 쓸모없는 흔적기관(vestigial organ)의 전형적인 예로서 간주해왔다. 사람이 맹장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견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사람의 맹장은 다른 포유류와 비교하여 더 작고, 더 오그라들어 보인다.  
 
1895년에 비더스하임(Weidersheim)은 사람 몸에서 180가지의 기관 목록을 만들어서, 그것들을 진화로 남겨진 흔적기관들이라고 말했다. 창조론자들은 어떤 신체 기관의 기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의 기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해왔었다. 주장되던 180가지의 흔적기관 목록은 점점 줄어들어서 오늘날 단지 소수의 몇 가지 밖에 남지 않았다. (Jerry BergmanJonathan Sarfati and Don Batten의 글들을 보라)  

맹장이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의 새로운 뉴스가 되지는 않지만(08/30/2001, Creation Magazine을 보라), 이 새로운 논문은 이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맹장의 새로운 역할, 즉 소화관의 정상세균총(군)을 ”재부팅(reboot)” 시키는 신체의 기관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시간 대학의 한 과학자는 비더스하임의 목록에 올라있는 또 다른 소용없는 기관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 ”나는 편도선(tonsils)에서도 같은 종류의 기능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의 한 과학자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말을 하고 있었다 : ”듀크 의대의 설명은 진화론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찰스 다윈을 위하여 더 이상 영광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하라. 다윈의 이론이 이들 주장되던 흔적기관들에 대한 의학적 연구를 100여년 동안 방해해 왔었다는 것을 숙고하라. 편도선은 진화 과정에 남겨진 쓸모없는 기관이라는 가정 때문에, 지속적으로 어린이들의 목에서 편도선은 제거되었다. 그 희생자들은 목 감염(throat infections)에 더 민감하게 되었다. 만약 당신이 맹장염에 걸렸다면, 맹장을 제거하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만 하다면 당신의 모든 장기들을 최대한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현명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 장기들은 거기 있어야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흔적기관이라고 주장되던 한 기관이 확실하게 아니었음이 밝혀진 또 하나의 사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맹장이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발견이 진화론적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물어보아야만 한다. ”진화론적 의미(evolutionary sense)”는 하나의 모순어법(oxymoron)이다. 맹장이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진화론적 의미를 가지는 것과 똑같이, 이제 맹장이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진화론적 의미를 가지는가? 만약 그것이 진화론적 의미라면, 그것은 일 원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불성실하고 부정한 정치인들을 투표로 낙선시키는 것처럼, 다윈당의 의원들도 그 신뢰도를 평가하여(08/24/2007) 불량한 사람들은 쫒아내자.


 

*참조 : 맹장은 이로운 박테리아 생산공장 (2007. 10. 6. 연합뉴스)

http://news.empas.com/issue/show.tsp/cp_yt/3116/20071006n02679/

Appendix: a bacterial ‘safe hous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382/

Your appendix … it’s there for a reas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70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10.htm 

출처 - CEH, 2007.10. 6.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46

참고 : 3782|2060|443|895|3360|3349|3336|3103|2413|3980|5602

Headlines
2007-10-02

벨로시랩터는 용이었는가? 

: 팔뚝 부분에 깃털이 있었다고? 

(Was Velociraptor a Dragon?)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에서 공포의 대명사이던 벨로시랩터(Velociraptor)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제 일부 과학자들은 벨로시랩터가 깃털(feather)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벨로시랩터가 영화에서의 용처럼 날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Science (21 September, 2007) 지에 게재된 최근의 주장은 몽고에서 발견된 벨로시랩터 표본의 요골(radius bone)에 분명하게 나있다는 ‘깃혹(quill knobs)’들에 기초한 것이었다. 저자들은 그들의 짧은 연구 논문에서, 그것이 공룡들이 깃대가 있는 깃털(quill feather, 장깃털)을 가졌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Science Daily(뼈사진을 볼 수 있음), BBC News, National Geographic News 등의 다른 과학부 기자들도 이것이 황당했던 아케오랩터(Archaeoraptor) 사건 이후에 (11/21/2002, 09/27/2000을 보라) 약간의 보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당혹스러워함 없이 그 주장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었다.
 
[1] Alan H. Turner, Peter J. Makovicky, Mark A. Norell, 'Feather Quill Knobs in the Dinosaur Velociraptor,” Science, 21 September 2007: Vol. 317. no. 5845, p. 1721, DOI: 10.1126/science.1145076.



아무도 그들의 주장에 질문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논문과 사진들은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벨로시랩터가 확실한 깃털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의 점들을 숙고해 보라 :

1. 그 증거는 주변적인 것이며, 확실한 것이 아니다.

2. 그 주장은 벨로시랩터의 여러 표본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한 뼈(one bone)에 근거하여 제기된 것이다. 그들이 먼저 해야만 하는 것은 다른 표본들도 조사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3. 어떠한 깃털(feathers)이나, 깃털 인상(feather imprints)도 발견되지 않았다. (09/06/2007의 footnote 2를 보라). 단지 깃혹(quill knobs)들로 추정되는 부분들만 발견되었을 뿐이다. 

4. 그 구조(깃혹)들은 단지 6개만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은 혹(knobs)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압흔(dimples, 옴폭 들어간 곳)처럼 보인다.

5. 비교를 위해 보여준 대머리수리의 뼈(vulture bone)에 있는 것처럼 압흔들은 직선 라인(a straight line)이 아니라, 하나의 곡선(a curve)으로 이어져 있었다.

6. 추정되는 깃혹들은 뼈의 중간 1/3 지점에 있었는데,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계속되지 않고 있었다. 왜 벨로시랩터는 팔 중간에 단지 6개의 깃털만을 가지고 있었을까? 이에 비해 대머리수리의 뼈에서는 깃혹들이 뼈를 따라 계속되고 있었다.

7. 그들은 다른 쪽 팔이나, 골격의 다른 어떠한 부분에서도 유사한 깃혹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한쪽 팔 중간에만 깃털이?) 

8. 모든 새들이 깃혹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독수리(eagles)는 깃혹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들도 깃혹의 결여가 깃털의 결여를 증거하지 않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깃혹의 존재가 깃털에 대한 직접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깃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깃털이 없는 동물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들의 마지막 말은 지지될 수 없는 것이다 : ”이 모습이 그들의 조상이 가지고 있던 기능적 잔재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던지 간에, 중간 크기의 팔 후면에 장깃털(quill feathers)들의 존재는 명백히 날지 못하는 드로메오사우르스(dromaeosaur)가 이제 깃털을 가졌던 것으로 확립될 수 있게 한다.”    

9. 이들 구조들은 깃털을 지지하는 것보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10. 벨로시랩터는 깃털을 사용하지 않았다. 저자들도 그 생물체의 골격이 비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팔들은 너무 짧아서 날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11. 저자들은 깃털들의 사용 용도에 대해서 성적 과시용(sexual display) 또는 주행 중 하향 양력(downward lift)을 위해서 사용되었을 것으로만 추정하였다. 이것에 대해 그들은 비행의 기원(origin of flight)에 관한 켄 다이얼(Ken Dial)의 우스꽝스러운 가설을 언급하고 있었다. (05/01/2006, 12/22/2003, 01/16/2003을 보라).

12. 그 논문은 벨로시랩터가 비행할 수도 있었을 조류 같은 깃털달린 공룡들로부터 후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것에 대한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evolution)가 아니라, 퇴화(devolution)이다.
 
13. 깃털은 비늘(scales)과 너무도 다르다. 팔 뼈를 따라 나있는 움푹 파여진(pits) 부분들의 존재는 어떻게 복잡한 깃털들이 진화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너무도 부족하다. 그러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커다란 몸체를 가진 비조류 수각아목(nonavian theropod) 분기군의 비행하지 못하는 생물들이 보조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깃털의 진화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상당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그 증거에 비해 너무도 앞서가는 주장이다.     

14. 서론은 ”일부 비조류 수각아목 공룡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깃털 또는 실 모양의 원시깃털(protofeathers)로 덮여있었다”라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논문의 참고문헌은 공동저자 중 한 명에 의한 논문으로, 독립적인 출처를 가진 논문이 아니었다. 그 논문을 하나의 반대 증언(hostile witness)으로서 공룡-조류로의 진화를 비판하는 데에 인용하는 것은 독선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15. 그들은 ”깃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direct evidence)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깃털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증거는 간접적인 것이다.

16. 대게 깃혹들은 비행에 사용되는 우판과 깃가지(vanes and barbs)를 가지는 생물체들이 가지고 있는 이차적 깃털(secondary feathers) 이다. 다른 ‘깃털 공룡’ 후보들 중 어느 것도 진정한 조류로 주장될 수 없다면, 이와 같이 발달된 깃털을 가졌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17. 그 뼈는 분리(isolation)되어서 발견되었고, 벨로시랩터의 ”여러 특성들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이 뼈가 잘못 분류되었을(misclassified)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18. 이 주장은 공룡-조류로의 진화에 대한 다른 논쟁들로부터 분리되어 취해질 수 없다. (09/06/2007와 이전 링크 글들을 클릭하여 보라. 또한 Oct. 2005의 글과 링크들도 보라).       

 

경험 많은 고생물학자들이 이 뼈에 대해서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정적인 증거가 깃털 달린 벨로시랩터를 확립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창조론자들에게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멸종된 생물체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좀더 다양했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조류와 파충류들은 이빨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것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조류와 파충류들은 날 수 있지만, 어떤 것들은 날지 못한다. 어떤 조류와 파충류들은 다른 수의 발가락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조류 강(class Aves)과 파충류 강(class Reptilia) 내에서의 형태학적 차이들은 거대하다. (타조와 벌새, 악어와 거북을 비교해 보라). 다양성은 과거에 훨씬 더 컸을 수도 있다.

창조론자들에게 다양성은 필요한 생물체들에게 설계된 구조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자가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비슷한 공통 구조들이 서로 다른 그룹의 생물체들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에 대해서 진화론자들은 기적(miracle)을 가리키는 그들의 단어인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우연한 돌연변이가 각기 다른 그룹들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 우연히 비슷한 구조들이 생겨났다)로 설명한다. 깃털을 가진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추가되는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벨로시랩터가 깃털을 가졌다면, 그동안 과학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쥐라기 공원의 제작자가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공룡과 조류 사이의 하나의 연결고리로 확립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생물체는 조류로의 진화계통 라인에 있는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자들도 벨로시랩터의 가계가 깃털을 잃어버리는 과정에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깃털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그 어떠한 조상들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 생물체의 조상들은 (그 이야기에 의하면) 기능을 하는 깃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을 선전하기 위한 광란의 켐페인을 벌리고 있다. 이것이 그러한 주변적 증거가 그렇게 많은 언론들에 앞다투어 보도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해야 단지 또 하나의 상동성(homology)에 관한 주장이다. 조나단 웰즈는 그의 책 ”진화론의 상징물들(Icons of Evolution)”에서 상동성은 진화를 입증하지 못함을 너무도 잘 지적하고 있었다. 또한 상동성은 공통설계자(common design)를 가리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데로 그 공룡이 깃털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 종류의 동물이 다른 종류의 동물로 진화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하나의 뼈말고 더 많은 증거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과학 논문들에 주의하라. 저자들은 어린 공룡들이 언덕을 달리는 동안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의 팔을 내뻗었을 때, 비행이 진화되었다고 제안한 켄 다이얼(Ken Dial)의 불합리한 동화같은 이야기를 참고문헌으로 인용하고 있다. 이들 연구자들은 다이얼의 논문을 보고 크게 웃는 것 대신에, 그것을 자신들의 논문을 지지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03/17/2006을 클릭하여 이러한 현상을 다루고 있는 글을 다시 읽어 보라. 한 연구팀의 사회과학자들은 과학 논문들이 실제로 지식을 쌓아나가기 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개념을 영구화 시킬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히스토리 채널(History Channel)의 한 다큐멘터리는 같은 증거로부터 어떻게 완전히 다른 해석들이 생겨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용(dragons)들에 관한 2005년도 프로그램이 재방영 되었다. 거기에서는 용들에 대한 전설이 마야, 중국, 미국 인디언,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들 전설들은 매우 놀랄만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각 문화는 이들 생물체들이 실제로 존재했었음을 믿고 있었고, 일부 문화들은 최근 시기까지도 용들을 목격했다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설명될 수 있을까?  (참조 : 사람과 공룡이 함께 살았다는 증거들 3; 세계 도처에서 전해져 오고 있는 공룡에 관한 이야기들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40).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사람과 공룡이 최근까지 함께 살아왔었다는 증거로 사용해왔다. 그리고 공포스런 짐승들에 대한 기억은 용들에 대한 전설로 남아있게 되었다고 말해왔다. 세속적 TV 프로그램도 용들이 공룡들과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공룡은 절대로 동시대에 존재할 수 없음을 가정하고서, 해설자들은 난데없이 엉뚱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그들의 진화된 뇌에 용들에 대한 상상을 본래 가지고 있었는데, 포식자들(독수리, 뱀, 사자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상상의 생물체인 용과 결합되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그 프로그램은 원시 사람들이 땅 속에서 거대한 공룡의 뼈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의 신화에 거대하고 두려운 괴물로서 삽입시켰다는 것이다. ”우리의 진화론적 조상들에게 있었던 잡아먹힘을 피하게 했던 본능이 생생한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능력과 결합되어서, 전 세계 도처에 용들에 대한 신화들을 독립적으로 각각 만들었고, 우연히도 그것들은 상세한 부분들까지 매우 비슷한 내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 프로그램은 어떠한 다른 대안적 설명들 보다 과학적(진화론적) 주장을 우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진화론적 주장은 진정한 과학이 아닌, 또 다른 세계관과 논쟁 중에 있는 세계관에 관한 과학인 것이다.      
           
다이크스트라의 법칙(Dykstra’s Law)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사람(weirdo)인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창조론자들의 대안적 설명에 웃어버리는 것처럼,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자들의 우스꽝스러운 설명에 대해 웃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상하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이상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모든 이상한 개념들이 동일하게 유효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는 모든 세계관들이 임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증거들은 스스로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들은 배제될 수 없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진리에 대한 사랑과 정직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관리될 필요가 있다. 벨로시랩터의 깃털에 관한 주장은 더 많은 관리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관련기사 : '포악한 공룡' 대명사 벨로시랩터, 팔뚝부분에 깃털 있었다 (2007. 9. 21. 세계일보)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9211421000092

벨로시랩터는 깃털 공룡 (2007. 9. 21. 동아일보)
http://www.donga.com/fbin/output?f=total&n=200709210299&top20=1


*참조 : Evidence for feathered dinosaur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1/j21_1_58-61.pdf

Feather Evolution Proved? (Headlines, 2009. 1. 21)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901.htm#20090121a

Feathery flight of fancy: alleged ‘protofeathers’ fail under close scrutin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11-12.pdf

Big birdosaur blues: new fossil creates problems for dino-to-bird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5-6.pdf

Flying dinosaurs, flightless dinosaurs and other evolutionary fantasi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42-47.pdf

Bird evolution: discontinuities and reversal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599/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09.htm

출처 - CEH, 2007. 9. 2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33

참고 : 3940|3915|3678|3649|3400|3030|2841|2700|2162|324|1105|331|2357|4447|4597|5418|5237|5358|5154|4735|5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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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2

남성의 젖꼭지에 대한 두 가지 견해 (Male Nipples : Two Views)


      남자들이 왜 젖꼭지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했던 적은 없는가? Live Science가 그 문제를 제기하였음으로, 진화론자와 창조론자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하나의 사례 연구로 사용해 보자.

진화론자의 견해 : Live Science는 우리 모두가 자궁에서 여성(females)으로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만일 남성이라면 대략 60일 후에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작동된다. 그때에 젖꼭지(nipples)는 이미 형성되었고, 제거되지 않는다. 거기에 신경, 혈관 등이 있는 이유에 대해, 그 글의 저자는 낡은 흔적기관(vestigial organ) 논쟁에 호소하고 있다. 남성의 젖꼭지에 대한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것은 자연선택이 아직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 초기에는 남성도 아기들에게 젖을 먹였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그 기사는 증거의 부족을 들어 부정하고 있다. 진화론적 대답은 남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을 암시하며, ”터프 가이여 급소를 가격하는 아래쪽 펀치를 조심하라.” 라고 그 기사는 시작하고 있다. 최소한으로 그 기사는 젖꼭지를 ‘해롭지 않은(harmless)’ 것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기사는 미저골(coccyx), 충수(appendix, 속칭 맹장), 사랑니(wisdom teeth), 체모(body hair)와 같은 주장되는 다른 흔적기관들의 목록을 링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창조론자의 견해 : 창조론자는 하나의 현상을 보고, 거기에서 디자인 또는 기능을 발견한다. Answers in Genesis와 같은 몇몇 창조론 웹 사이트들은 버그만(Bergman)과 하우(Howe)가 쓴 책 ”흔적기관은 완전히 기능하고 있다(Vestigial Organs Are Fully Functional)”를 참조하여 이 남성의 특별한 해부학적 모습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들 저자들은 젖꼭지가 감각적으로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감대(erogenous zones)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또한 인간 배아가 하나로 발달되다가 나중에 성이 나누어지는 것은 경제적 설계(design economy)의 예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모두 여성으로서 출발하지 않는다. 초기 배아를 유전학적 용어로 표현하여 무성(sexless)으로서 기술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이다. 남성은 결국 X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올바른 발달 단계에서 성분화 유전자(sexual differentiation genes)들이 발현된다. AiG는 또한 남성 젖꼭지에 관한 논쟁(Male nipples prove evolution?)을 게재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은 진화의 증거라는 흔적기관들이(수컷의 젖꼭지도 유명한 예 중의 하나) 불신된 것들임을 오랫동안 지적해왔다. (AIG, True Origin을 살펴보라). 또한 창조론자들은 흔적기관이 ‘과학의 명연기(science show-stopper)’였다고 말한다. 진화론자들은 그것들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밝히려는 연구를 권장하기 보다는 그것들을 소용없는 것이라고 가정해버림으로서, 의학을 발달시키고 생물학적 디자인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생리학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방해하고 지연시켜왔던 것이다. 1930년대까지 180여 개의 신체 장기들이 흔적기관으로 간주되었다. 그 목록에는 뇌하수체(pituitary gland), 흉선(thymus)과 같은 필수적인 기관들도 포함되어있었다. 이 사실은 Live Science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다.

또한 창조론자들은 충수처럼 한 장기가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이, 그 장기가 소용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살아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들의 편도선(tonsil)을 어렸을 적에 제거했던 사람들이 있다. 이제 면역계에서 편도선의 역할을 더 잘 이해되게 되었고, 심각하게 감염되지 않는 한 그것을 가지고 있을 것을 과학은 권한다. 또한 사람은 팔 없이도 살 수 있고, 눈 또는 귀가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것들이 모두 완전하다면 형편이 더 좋아진다. 게다가, 어떤 장기들은 다른 나이(different stages of life)에서만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 배아 시기에 기능을 수행했던 한 장기가 성인이 되어서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흔적기관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다윈의 틀을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보라. 젖꼭지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위한 목적으로만 있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들은 이 부분이 접촉 시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남녀 모두에게서 사실이다. 부부관계(sex)는 모든 신체 부위에서 반응한다. 이것은 출산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서로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또한 어떤 신체 특징이 장식(decoration)을 위해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것도 하나의 기능이다. 배꼽(navel)은 우리 모두가 조상들과 친밀하게 묶여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남성의 젖꼭지는 남자들에게 구별된 자신의 역할을 알게 할 뿐만이 아니라, 여자와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다. 남녀가 공유하고 있는 특성 가운데서도 남녀가 구별되어서 발현되는 것들이 있다. 남성과 여성은 둘 다 머리카락을 가진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렇게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삶에 다양성과 멋을 주고 있지 않은가? 왜 자연의 모든 것들은 생존(survival)과 관련해서 설명되어야만 하는가? 어떤 것들은 복장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멋져 보인다. 남자의 가슴은 그곳에 디자인된 단추가 없다면 단조로워 보일 것이다. 멋진 정장에서 장식으로 달려있는 단추들을 보라.
 
이 예는 창조론자와 진화론자가 같은 관측된 사실(same observational facts)을 다루면서, 그것을 서로 다른 안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최근에 출현한 인간들에게 남겨져 있는 수백만 년에 걸친 쓰레기와 투쟁으로 보고 있다. 모든 특징들은 생존과 번식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만 한다. 부부관계는 단지 무목적의, 무의미한, 탄소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과학에 대한 그리고 생명체에 대한 매우 냉소적이고 품위를 손상시키고 접근이다. 대조적으로 창조론자들은 창조주가 각 기관들이 자신의 목적과 기능을 가지도록 설계되었다고 생각한다. 창조과학자가 어떤 기관의 기능을 알지 못할 때, 그는 그것을 발견할 동기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을 자유롭고 기쁜 일로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많은 위대한 과학자(great scientists)들은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자연(nature)에 접근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 각각은 다윈이 우리 신체에 대해 주었던 나쁜 느낌을 극복하고, 새롭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그것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몸은 천재적 예술가이신 전능하신 분에 의해서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모든 부분은 좋고 유용하고 경탄할만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남성의 젖꼭지에 대해서 당황하고, 그것이 일종의 실수였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창조주를 멸시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과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은 정도를 넘어서서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남자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몸을 만드신 것에 대해 완전히 만족한 상태였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강한 남자의 가슴은 아기를 돌보는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에 못지않게 멋지고 존중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각 성에서 그리고 각 나이에서 자랑스럽고 소중하고 감사해야만할 것들이 있다. 남자와 여자, 또는 소년과 소녀에서건,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의 몸을 기뻐하고, 돌보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선을 위해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이제 다윈의 안경을 벗어버리라. 그리고 건설적이고, 긍정적이고, 기뻐하는 인생관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라. 디모데전서 4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할 말씀으로 생각된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디모데전서 4:4)

 

*참조 : Is the human male nipple vestigial?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5_2/j15_2_38-41.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611.htm 

출처 - CEH, 2006.11. 2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80

참고 : 3782|2060|443|895|3360|3349|3336|3103|2413|3980|4097|4046|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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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9

또 다시 선전되고 있는 상상의 공룡 깃털 

: T-렉스만한 깃털공룡? 초대형 공룡새? 초대형 시조새? 

(Imaginary Dinosaur Feathers Found - Again)


      우리는 작년에 공룡 화석에서 발견되었다는 상상의 깃털(imaginary feathers)을 보고했었다.(02/08/2006을 보라) 이제 또 다른 상상의 깃털들이 나타났다. 이 칠면조는 너무도 거대했다. 상상의 깃털로 장식된 공룡은 거의 3.6m 크기였다. Fox News,  MSNBC News,  Science News 등과 같은 모든 언론 매체들이 이것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참조 1의 국내 보도도 보라). National Geographic는 그것을 ‘새 같은(birdlike)’ 이라고 표현했고, 다른 기사들 대부분은 새와 연관하여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깃털(feathers)은 어디에 있는가?


미술가가 상상으로 복원하여 그린 생물체는 색깔 있는 팔 깃털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사들은 이 새로운 거대 생물 지간토랩터 얼리아넨시스(Gigantoraptor elrianensis)의 뼈들에서 어떠한 깃털도 발견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대신, 그들은 그 생물체가 아마도 깃털을 ”가졌을 지도(likely)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조류(birds)의 조상이 된다는 증거로서, 부리 같은 입(beak-like mouth)과 가느다란 다리(slender legs)에 주의를 돌리게 하고 있다. 내쇼날 지오그래픽스는 그것이 매머드 크기의 타조(ostrich)를 닮았다고 말했다. News&Nature는 그것이 깃털을 가졌었다고 생각될지라도, ”깃털을 가졌었다는 분명한 징후는 없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한 주장은 오로지 ”깃털을 가진 다른 공룡들이 알려져 있다”라는 추정적인 공감에 오로지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05/23/2007을 보라. 깃털이라 선전되던 것은 부패된 콜라겐이었다. )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에 버금가는 이 거대한 생물 종은, 깃털을 가졌다는 화석 카우디프테릭스(Caudipteryx) 보다 35 배 더 크고 300 배나 더 무거운 종인 것이다. ”지간토랩터의 존재는 공룡들이 조류로 진화함에 따라 크기가 더 작아졌으며, 몸집이 큰 공룡일수록 조류 특성을 더 적게 가지고 있다는 오늘날 유행하는 이론과 상충되는 것이다”라고 AP 보도는 말하고 있었다.

공룡들로부터 새의 조상을 추적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보인다고, Nature 지에서 그 발견을 보고한 논문의 공동저자인 슈 싱(Xu Xing)은 말했다.[1] ”그것은 기대하지 않던 발견이었습니다” 슈는 말했다. 왜냐하면, 고생물학자들은 오비랩터(oviraptors)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작아져서, 점점 더 새같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었기 때문이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관장인 마크 노렐(Mark Norell)은 말했다. ”그것은 그렇게 클 것으로 예상됐던 공룡들의 마지막 그룹 중 하나일 것입니다”


Nature 지의 원본 논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서 (두 작은 ‘깃털 공룡’이라는) 카우디프테릭스(Caudipteryx)와 프로트아케오프테릭스(Protarcheopteryx)는 자이언트 랩터(giant raptor)의 계통나무 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새롭게 발견된 화석은 조류의 진화 그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마지막 토의 부분에서 인정하고 있었다 :

비조류 수각아목(non-avian theropods) 공룡들의 거대화(gigantism) 동안에 보여지는 몇몇 일반적 패턴들 중에서 지간토랩터는 하나의 예외이다. 조류의 기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코엘류오사우리안(coelurosaurian) 진화에서, 크기가 감소되어 가는 진화 경향과는 반대로, 대부분의 비조류 코엘류오사우리안 서브그룹들은 크기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몸집의 공룡들은 원시 상태에서 여러 조류 같은 특성들을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나아간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지간토랩터의 발견은 이 패턴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비록 그들의 가까운 친척들보다 훨씬 크지만, 지간토랩터는 오비랩터사우르스 중에서 비례적으로 가장 긴 앞다리(forelimb), 유마니랩토란(eumaniraptorans)들을 닮은 앞발(manus), 조류 같은 뒷다리(hind limbs), 여러 다른 발달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특징들은 조류와 가까우나, 다른 작은 오비랩터사우르스 중에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비조류 코엘류오사우리안 서브그룹 중에서 오비랩터사우르스의 한 이례적인 형태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하간 지간토랩터의 깃털은 상상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말했다. ”만약 그것의 주요 기능이 개체의 단열을 위한 것이 아닌, 그리고 그 발달이 몸집 크기와 관계가 없이 주어진, 다른 타입의 깃털이 아니라면, 그 동물은 적어도 팔에 깃털을, 또는 그 조상으로부터 상동기관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참고문헌으로 인용한 두 깃털달린 생물은 1998년에 보고된 것이다. 2000년에, Science News는 그 해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과학뉴스 중 하나로, 카우디프테릭스가 공룡이 아니라(not a dinosaur) 날지 못하는 새(a flightless bird)였을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를 포함시켰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은 상상의 깃털 발견을 축하하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되지 못했다. Fox News MSNBC는 마이애미에서 시작하여 미국 박물관들을 순회하기 시작한 깃털달린 공룡의 전시에 관한 AP 통신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조류의 진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 진화론자가 떠들썩하게 말했다. 그러나 Answers in Genesis는 이러한 진화 개념에 대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발표했다. (또한 조류가 공룡들로부터 진화했다는 이야기에 대한 비판 글들인 10/10/2005, 10/24/2005, 10/12/2005을 읽어보라).


[1] Xing Xu et al, 'A gigantic bird-like dinosaur from the Late Cretaceous of China,” Nature 447, 844-847 (14 June 2007) | doi:10.1038/nature05849.


이것은 사상누각과 같은 다윈의 집이 완전히 붕괴될 날이 멀지 않았음에도, 그 위에 새로 쌓여지고 있는 임시변통의 가건물들이다. 진화론이라는 믿음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 믿음이기에 과학자들의 눈을 그토록 멀게 하여, 그러한 헛된 공상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지, 우리는 미래의 학생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01/17/2007의 논평을 보라)

한편 새들과 공룡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새로운 다른 뉴스들을 숙고해보라. Astrobiology Magazine시조새의 모든 표본들을 포함하여, 그렇게 많은 공룡 화석들이 머리를 뒤쪽으로 (아치 형태로) 젖힌 채 죽어있는지(후궁반장 형태) 그 이유에 대해서 숙고하였다. (참조 2의 국내 보도를 보라). (가장 간결한 설명 : 공룡은 물에 빠져 죽었다 : 공룡들이 머리를 젖힌 자세(후궁반장)로 죽어있는 까닭은?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5237)

파디안(Kevin Padian)과 폭스(Cynthia Fox)는 뼈들이 매몰되기 전에 물 속을 이러한 자세로 표류하다가 묻혔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설명에 만족할 수 없었다. 또한 파디안은 이들 표본들의 다수가 빠르게 매몰되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정교하게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파디안과 폭스가 약간의 유독물 또는 환경적 요인들이 동물들을 질식시켰을 것이라는 대안적인 생각에 찬성을 하였지만, 또 다른 가능성(another possibility)은 그 증거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1 : 중국에서 초대형 공룡새 화석 발견 (2007. 6. 14.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4/2007061400612.html

T렉스 만한 깃털공룡 화석 발견 (2007. 6. 14.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4/2007061400461.html

공룡→조류 진화, 잃어버린 고리 하나 찾았다  (2007. 6. 14.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4/2007061400978.html

역사 새로 써야? 티라노 크기의 초대형, 닭 닮은 ‘새 공룡’ 발견 (2007. 6. 13. 조선일보)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4/2007061400479.html

T-렉스만한 깃털 공룡 (2007. 6. 14.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0706/h2007061419284175170.htm

‘깃털 달린 공룡’ 내몽골서 화석 발견 (2007. 6. 14.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61401032932275007

새 모양의 거대 공룡화석 발견 (2007. 6. 14. SBS News)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270060

초대형 ‘시조새’ 화석 발견 (2007. 6. 14. KBS News)
http://news.kbs.co.kr/article/world/200706/20070614/1373135.html

中, 티라노만한 거대 공룡새 ‘기간랍토르’ 화석 발견 (2007. 6. 14. 노컷뉴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539676


관련기사 2 : 공룡 화석은 왜 둥글게 말린 모양이 많을까? (2007. 6. 16. 미주한국일보)
http://www.koreatimes.com/article/articleview.asp?id=388350

공룡들이 고통스럽게 죽은 까닭은 (2007. 6. 12.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12/2007061200491.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06.htm 

출처 - CEH, 2007. 6. 13.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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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1

의심되는 진화론의 가정들?

(Darwinian Assumptions Questioned?)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상식이 전혀 잘못된 지식인 경우가 간혹 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가 항상 친숙하게 들어왔던 일들이 진실이 아니라고 판명될 때 놀라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가 '샘, 다시 한번 해봐요(Play it again, Sam)”라고 말했다는 것이나, 인간은 단지 뇌의 10%만을 사용한다는 것, 방사성탄소(C-14)로 수백만년 전의 물체를 연대 측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재채기 할 때 ”당신을 축복합니다(Bless you)'라고 말하면 그 사람의 재채기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최근 들어 우리가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생각해왔던 다윈과 그의 진화론에 관한 사실들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제 한 가지씩 그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1. 다윈이 출판하기를 두려워했다? TV나 자서전을 통해 자주 언급되던 이야기가 있는데, 다윈 (Charles Darwin)은 자신의 저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특히 기독교인이나 종교인들의 반응을 두려워해서 책의 출판을 종종 연기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BBC News 보도(2007. 3. 28)에 의하면, 한 연구자가 이 이야기의 실체를 밝혔다는 것이다. 다윈이 쓴 편지를 보면, 그는 줄곧 책의 출판에 전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윈이 그의 저서인 ‘종의 기원’을 조롱거리가 될까봐 두려워서 20년 동안 출판하기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실제로는 허구라는 것이다. 출판이 지연된 이유는 한편으로 여러 차례에 걸친 자신의 질병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좀 더 많은 증거들을 모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2. 공룡들은 포유류들이 번창하기 전에 멸종했는가? 이러한 언급에 대해 Live Science와 Science Daily (2007. 3. 29)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이들 보도에 의하면, 포유류들은 공룡의 시대에 공룡들과 함께 잘 살고 있었고, 빠른 속도의 다양화 율은 공룡들이 멸종되고 난 후 오랜 시간 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BBC가 방영한 ‘공룡대탐험(Walking with Dinosaurs)’과 같은 TV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내용들과 모순된다. 거기에서 모든 포유류들은 소행성이 그 큰 괴물들을 폭파시켜 주기만을 기다리며, 거대한 공룡의 커다란 발들 사이를 잽싸게 피해 다니는 작은 뒤쥐 같은(shrew-like) 난쟁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BBC News도 이러한 사실을 보도하며, 그 낡은 개념을 하나의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이라고 불렀다.
 
3. 항생제 내성의 획득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다윈의 진화인가? 의사인 마이클 에그노르(Michael Egnor)는 진화를 설명하고자 이러한 증거를 내세우는 것은 동의어반복(tautology, 정의하는 말이 정의되는 것을 되풀이하는 것, 경험적 지식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필연적으로 참으로서 성립하는 명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Evolution News(2007. 3. 22)에서 볼 수 있다.


4. 동물들은 따뜻한 기후에서는 더 빨리 진화한다? 대답은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Science Daily(2007. 3. 17)가 보도한 새로운 연구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동물들은 온대지역에서, 그리고 열대지역보다는 극지역에서 더 빠르게 진화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일반적 가정으로 불려졌던 것의 정체를 폭로시켰다고 그 기사는 설명하고 있다.  
   
때때로 현미경으로 관찰된 정확한 사실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깔끔한 그림과 맞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한 예로, Science Daily(2007. 4. 2)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단세포로 구성된 유기체의 분류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네안데르탈인의 위상에 대해서도 몇 가지 중요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닷물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바이러스들의 발견은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또한 Science Daily(2007. 3. 30)에 따르면, 한때 촉망되던 진화발생학(evo-devo theory)은 진화론의 주요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148년간 수정되어온 다윈의 이론은 다윈 자신도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다윈도 자신의 생애 동안 구체적인 수정을 가했었다고 자서전의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자연선택의 힘(power of natural selection)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과, 그의 유전설(inheritance theory)이 갖는 문제점들이, 다윈으로 하여금 그가 일찍이 반대했었던 라마르크설(Lamarckian ideas)로 접근하게 했었다는 것을 일부 현대 진화론자들은 잊어버리고 있다. 진화론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진화론은 렌츠의 법칙(Lenz’s Law)과 유사하다. 물리학자들은 전자기장의 상대운동에 의해서 생긴 유도전류는 처음의 운동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배운다. 진화론은 진화론을 반대하는 자연의 대응책을 유도할 수 있을까? (당신이 이 생각을 이해했다면 단지 농담으로 제안하는 것임).

자주 인용되는 뻔한 소리라도,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좋은 훈련이다.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던 많은 사실들이 지지하는 증거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충격을 받을 것이다. 특히 다윈의 신화(myth)는 너무도 쉽게 수정되는 경향이 있다. 때때로 도시의 전설과 그것의 수정본들이 같이 틀렸을 수 있다. 왜냐하면 둘 다 결점이 있는 동일한 가정(assumptions)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예시 2번과 4번에 해당한다. 이 두 경우의 수정본들도 여전히 진화를 전제하고 있고, 또 수억 수천만 년의 연대를 가정하고 있다. 그들은 전체 진화론적 그림을 바꾸지 않은 채, 단지 부분적인 것들만 재배열하고 있다. 이것은 오류들을 혼합하고, 신화를 반대하는 새로운 신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신화에 근거한 확신을 조심하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04.htm 

출처 - CEH, 2007. 3. 3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19

참고 : 3800|3856|3841|3808|3744|3736|3729|3679|3677|3606|3598|3586|3593|3591|3426|3391|3360|3341|3293|3262|3109|3107|3059|3051|3012|2859|2748|2763|2752|2579|2504|2334|2125|2153|2114|2067|2061|1912|1914|1907|736|730|729|657|658|659|696|653|654|551|328|201|202|45

Headlines
2007-05-28

공룡의 깃털인가, 말의 깃털(허튼소리)인가? 

: 시노사우롭테릭스의 깃털은 콜라겐 섬유였다. 

(Dino Feathers or Horsefeathers?)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던 어떤 공룡들의 깃털(feathers)은 단지 콜라겐 섬유(collagen fibers)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ABC France의 한 기사는 ”공룡의 깃털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대신 그것은 상어와 파충류에서 발견되었던 것처럼 단지 피부 콜라겐(dermal collagen)이 부패된 것이라는 것이다. 한 남아프리카 연구팀은 시노사우롭테릭스(Sinosauropteryx, 중화용조)의 깃털로 주장되던 것을 분석한 후에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만약 그들의 분석이 정확하다면, 이것은 공룡-조류로의 진화 이론이 의심스러운 것임을 다시 한번 가리키는 것이다. 연구팀의 리더는 그러한 생각을 그 증거로부터 ”무모한 도약(reckless leap)”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 ”세밀한 관찰시 원시 깃털(proto-feather)로 주장되던 외피 구조(integumental structure)를 가리키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화석들의 분석에 더 많은 과학적 엄격함(scientific rigor)을 요구했다.    

또한 Nature Science Update도 이 발견을 보도하였다. ”대머리 공룡은 깃털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 기사는 쓰고 있었다 : ”만약 시노사우롭테릭스가 진정 깃털이 없었다면, 깃털들은 진화론적으로 고생물학자들이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뒤에 생겨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Nature 지는 그 의미를 경시하였다. 레체스터 대학(University of Leicester)의 고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언윈(David Unwin)은 이 발견의 의미에 대해서 ”공포상태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장했다. ”이것은 공룡들이 깃털을 가졌었고, 공룡들은 조류로 진화해 나갔다는 개념에 어떠한 도전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깃털 진화의 첫 번째 단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언윈은 진화 이론들의 공통적인 주제를 언급하고 있었다 : ”그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할 수도 있었습니다” 

PhysOrg은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의 발표는 ”주장되던 깃털을 조류 진화의 증거로 사용하던 과학자들에게는 청천벽력(thunderclap)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라고 말했다. ”고생물학자들은 조류가 공룡들로부터 후손되었다는 이론의 초석이 되는 증거(cornerstone evidence)에 대해 맹렬한 집중 포격을 가했다.” 라고 쓰고 있다.      



하나의 화석에 대한 한 연구팀의 분석에 기초하여 결론 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좀더 과학적 엄격함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Nature 지가 얼마나 빠르게 이러한 환멸적인 의미에 대해서 보호 울타리를 치고 있는지 주목하라. 미술가들이 복원한 깃털달린 공룡을 보도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머지 언론 매체들은 이상하리만치 너무도 조용하다. 결국 가짜였던 깃털달린 공룡 화석들을 팔고, 보도하고, 전시하고, 상품들로 판매하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심각하게 물어보아야만 한다. (10/10/2005, 05/06/2004). 우리는 가벼운 증거들에 기초하여 공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진화론자들의 성향을 너무도 자주 보고 있는 것이다. (cf. 02/08/2006, 09/27/2000).
 

*참조 : Living Dinosaurs or Just Bird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75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05.htm 

출처 - CEH, 2007. 5. 2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915

참고 : 3355|3321|3678|2650|2648|520|3014|324|2841|1105|2700|2791|3030|2357|331|519|3649|3940|4033|4447|4597|5418|5237|5358|5154|4735|5168

이은일
2007-04-05

진화론의 믿을 수 없는 세 가지 가정


서론

우리를 비롯한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생명체가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으로 향하던지, 아니면 거짓된 이론에 의해 스스로를 속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어떤 시도로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인간의 축적된 지혜와 지식으로 이룩된 과학은 과거에 비해 많은 현상들을 이해하고 설명하게 되었지만, 그런 현상들을 나타내는 생명체의 기원에 대하여는 과학적으로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한 이후, 진화론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학생들에게도 정규 수업을 통해 가르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당연한 과학적 사실로 믿고 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인 가정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과학 지식과는 반대됨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이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과학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으며, 진화론은 더욱 그렇다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이미 기원을 설명하는 유일한 과학적 사실 또는 가설도 믿어지고 있는 것이다. 솔직한 진화론자들은 가설로 인정하면서도, 언젠가는 증명될 것이라고 믿고, 많은 사람들은 이미 증명된 과학적 사실로 믿고 있다.

진화론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의 지식으로 기원을 설명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 마치 비과학적인 사람처럼 취급당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하나님의 창조도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계시된 것)은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자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은 우리가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라 (롬 1:20)”는 말씀이 이것을 잘 설명해준다.

피조세계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설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빈약하고, 과학적이지 못한 이론을 사람들이 믿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는 인간의 오만함 때문이다. 또한 이미 진화론은 교육, 문화, 과학을 통해 이미 강력하게 사람들의 마음과 지식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도 한 몫하고 있는데, 그것은 눈에 확실하고 보이는 생명체의 다양성을 진화된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도 여기서 나왔고,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의심 없이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다. 어떤 진화론자들은 다양성을 소진화라고 표현하고, 그 이상의 변화를 대진화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진화론자들은 소진화와 대진화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선은 ‘대진화’라고 불리는 진화론의 기본적인 3가지 가정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를 우선 다루고, 다양성 문제는 다음에서 다루고자 한다.


 

본론

생명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의 세 가지 가정은 첫째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합성되었다는 것이고(화학진화), 둘째는 유기물들이 모여 최초의 생명체를 탄생시켰다는 것이고, 셋째는 그 생명체가 진화하여 수많은 새로운 생명체들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가정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그 과학적 오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합성

진화론자들은 단순한 무기물들이 유기물로 합성되는 과정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진화론자들은 단순한 무기물이 어떻게 출현했는지에 대하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무기물이 유기물로 합성되는 일이 관찰된 적도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에 대하여도 과감히 무시하고 있다. 도리어 학생들 교과서에는 '밀러의 실험”이라고 해서 무기물이 전기 에너지에 의해 유기물로 합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즉, 태초의 뜨거운 지구에서 무기물들이 전기 에너지에 의해 유기물로 합성되었다는 가설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무기물이 유기물에서 합성되는 것은 실험조건을 주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즉,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개입되어, 실험장치를 만들어, 유기물이 무기물로 분해 되는 자연법칙과는 반대 방향인 무기물이 유기물로 합성되도록 한 것이다.  

밀러가 준 실험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물 중에 산소가 없는 것이다. 산소가 있으면 무기물이 유기물로 합성되는 방향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태초의 지구에는 산소가 없다는 가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지각의 가장 밑바닥에도 산화의 증거가 발견되기 때문에 태초의 지구에 산소가 없다는 가정은 단지 진화론적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밀러의 실험장치에는 냉각장치가 필수적이지만, 진화론적 가정에 의한 태초의 지구는 그와 반대 상황이다.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구는 냉각장치는커녕 도리어 뜨거운 열, 오존층도 없이 내리쬐는 태양광선으로 인해, 유기물이 있더라도 곧 분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대기 중의 무기물들이 전기 에너지 등에 의해 엄청난 양의 유기물로 변해, 유기물 바다를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상상하며, 이 유기물 바다에서 생명체가 출현했다고 믿는다. 무기물이 유기물로 합성되는 과정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유기물 바다가 생겼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의 믿음은 참으로 대단하다. 진화론자들은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다음 단계로 과감히 넘어간다.


2. 유기물이 생명체로

생명체의 기본 구조는 세포이다. 한 개의 세포는 구조적으로도 매우 다양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복잡한 신호 전달체계를 가지고 있고, 또한 유전정보를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한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어떤 생명체는 수많은 세포들이 모여서 한 생명체를 이루기도 하고, 아메바와 같은 생명체는 한 개의 세포로서 한 생명체를 이루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한 개의 세포로서 한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아메바와 같은 것이 생명체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단순한 생명체가 계속 진화되어 복잡한 생명체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메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단세포 생명체인 아메바는 다세포 생명체보다 더 복잡하다고 말한다. 다세포 생명체는 각 장기나 기관 등에 따라 그 기능이 분화되어 있지만, 단세포 생명체는 그 모든 기능을 한 세포에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세포의 기능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아메바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유기물이 모여서 한 세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세포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있어야하고, 이 물질들이 신호전달체계를 통해 조절되어야하고, 실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물질들이 움직이고, 작동하고 있어야한다. 세포는 호흡을 해야 하고, 유전정보를 똑같이 복제해야하고, 세포가 분열되어야하고, 자기가 많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물질을 만들고, 물질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려야하고, 너무 많이 만들면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세포가 손상을 받으면 복구하고,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을 받으면 스스로 죽도록 하는 등 너무나도 복잡한 일들이 세포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지만, 과학의 발전은 인간이 세포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도 동시에 알게 되었다.

유기물들이 우연히 모여서 한 개의 세포를 이룬다는 것은 진정 엄청난 믿음이 필요하다. 세포의 기능에 대하여 조금만 안다면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정교한 설계에 의해 세포가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법칙들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과학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반복되었을 때 같은 현상이 나타나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우연히 오랜 시간에 의해 세포가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은 그럴듯한 말로 우연히 물질들이 모여서 세포막이 만들어지고, 각각의 세포내 소기관들이 만들어진 것처럼 주장한다. 만약 세포막에 얼마나 많은 신호전달체계가 있고, 복잡한 기전들이 있는 줄 알았다면, 이런 주장을 아예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이후, 이런 과학적 발견들은 진화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처럼 취급되고 있다.

단순한 단백질 하나도 아미노산의 우연한 결합으로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은 간단한 확률 계산만으로도 가능하다. 수많은 아미노산이 있더라도 한 단백질을 구성하는 특정 순서로 연결될 가능성은 거의 무한대 중의 한번 있을 수 있는 확률이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계산을 할 수 있어도 실제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단백질 하나도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는데, 진화론자들은 수많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등의 유기물질들이 모두 저절로 만들어지고, 이런 것들이 또 저절로 모여서 생명체인 세포를 이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에게 이런 현상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어떤 진화론자들은 이런 확률 계산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화가 일어난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이 단순히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신념 체계, 즉 믿음이요, 종교라는 것을 이런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생명체를 이런 진화론적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생명을 단지 우연히 물질로부터 탄생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고 있다. 사고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은 자신이 우연히 물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믿음과 창조주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 없이 인간의 기원을 물질로부터 설명하려는 진화론은 결국 인간을 삶의 목적도, 기준도 없는 존재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우리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셨다. 따라서 인간은 목적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존귀한 자이다. 아담의 범죄이후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많이 잃어버리고, 존재의 목적까지도 잊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인간은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며, 하나님이 위임하신 이 땅에 다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다.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가진 창조에 대한 믿음과 인간을 의미 없는 존재로 전락시켜버리는 진화에 대한 믿음 중에서 진화 믿음을 선택한 것은 인류 역사의 비극이 되고 말았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는 인간이 국가나 이념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가르쳤고, 사상가나 소설가는 허무주의가 인간 존재의 기본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했고, 자본주의는 인간이 단지 이익의 도구로서 이용당하는 존재가 되도록 했다. 인간 사회에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의 근본이 바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진화론적인 답변에 있음을 볼 수 있어야한다.


3. 단세포 생명체에서 인간까지

진화의 세 번째 단계는 단세포 생명체가 진화되어 다세포 생명체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어류로부터 시작되어,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단계로 진화되었고, 포유류 내에서도 사람까지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사람과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는 단지 진화의 정도의 차이이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믿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이 인간도 진화되어 다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 ET에 나오는 외계인의 모습이 바로 인간이 상상하는 진화된 존재의 모습이다. 과학이 발전해서 운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약해진 팔, 다리, 머리가 더 좋아져서 머리의 크기는 커지고, 초능력도 생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떤 진화론자들은 사람이 운동을 하지 않아 다리가 퇴화되어 나무에 달려있는 원숭이와 같은 모습으로 진화될 것이라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엄청나게 발전한 지금도 이런 진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참으로 신기할 정도이다. 세포내의 유전자는 돌연변이 등에 의해 정보가 손상되는 경우는 있어도,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 진화될 수 있도록 유전정보가 변화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것은 생명체가 다양해지는 것과는 철저히 구분된다. 같은 사람이,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많은 인종이 있다. 왜 그렇게 다양할까? 이 문제는 다음 호에서 별도로 다루고자 한다. 진화라는 것은 다양성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원숭이(멸종한 원숭이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람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에 대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과거 과학이 발전되지 못하고, 유전자에 대한 것도 모르던 시절에 진화론은 그럴듯한 과학으로 보였다. 다윈은 진화론을 정립하고, 화석을 발견할수록 진화의 증거, 즉, 진화되는 과정의 중간단계 생명체들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화석은 중간단계를 보여주지 않고, 도리어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수백만년, 수억년에 살았던 생명체의 흔적이라는 화석에서 나타난 생명체가 지금도 동일한 형태로 살아 있는 것이다. 수많은 예들 중의 대표적인 것이 실라칸스라는 물고기다.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단계라고 주장하면서, 바다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물고기라고 주장했던 실라칸스는 그 후 살아 있는 상태로 바다에서 다른 물고기와 똑 같이 헤엄치고 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화론적 상상력은 실라칸스를 기어다니는 물고기로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완벽한 물고기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화석을 통해 진화를 증명하기는커녕 도리어 왜 그처럼 오랜 시간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화석이 진화를 지지하는 어떤 증거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진화론자들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진화론을 계속적으로 만들면서 진화는 일어났는데 왜 화석으로 남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학생들 교과서는 마치 화석이 진화의 증거인 것처럼 주장되고 있다. 시조새 화석이 그것인데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되는 중간단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인데 파충류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조새는 독특한 새에 불과하며, 파충류의 특성이라는 것도 호에친, 투레코와 같은 지금 발견되고 있는 새들에서도 있는 것이다. 이미 화석이 진화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할 뿐 아니라, 시조새의 화석이 발견된 지층보다 더 오래된 지층에서 완벽한 새의 화석이 이미 발견되었다. 이미 진화론자들도 시조새 화석을 새의 조상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교과서에는 그대로 진화론에 대한 화석의 증거로서 제시되고 있다.


4. 인간의 조상에 대한 거짓들

어떤 생명체도 중간단계의 화석이 발견된 적이 없는데, 인간만이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되는 중간단계인 '원인”과 인간의 조상이 있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학생들 교과서에도 나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자바인, 북경원인,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등이 그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런 것들은 원숭이 뼈나 완벽한 인간이거나 아니면 거짓말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멸종한 원숭이 뼈에 불과한 것이라고, 진화론자인 유명한 해부학자 쥬커만 경이 말했을 정도로 사람과 관련성이 전혀 없는 것에 불과하다. 북경원인,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등은 지금 우리와 함께 있다면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다.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자바인인데 이것은 허구에 불과한 거짓말이다. 자바인이라는 것은 원숭의 머리뼈 일부와 사람의 정강이 뼈 일부를 가지고 머리는 원숭이요, 다리는 사람인 진화의 중간단계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듀보아 주장한 자바인의 이 두 뼈는 15m 떨어져 있는 것이었고, 같은 곳에 사람의 두개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듀보아가 감추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미 진화론자들도 자바인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것에 대하여 주장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잘 알려진 진화의 거짓말로 '필트타운인”이 있다. 사람의 머리뼈에 원숭이의 턱뼈를 조합한 것으로, 오랜 세월 전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약품으로 처리하고 땅에 묻어 두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찾아내었다. 50여년 동안 완벽한 진화의 증거로 여겨졌었는데, 필트타운인의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 검사를 하다, 불과 수십 년밖에 안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사실이 발표된 후 필트타운인을 검사한 결과 인위적으로 조합하기 위해 손을 본 여러 흔적들을 발견하였다. 진화론자들은 필트타운인을 과학 연구를 하다보면 발생할 수 있는 오류라고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진화의 강력한 증거였던 필트타운인이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진화 자체는 여전히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진화론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진화론적 가정으로 열등한 존재와 진화된 발전된 존재로 나누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흑인들은 인간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는 열등한 존재로, 백인은 진화된 우월한 존재라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흑인들을 노예로 팔던 시대에 흑인들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어 인간이 된 것인지, 아직 진화가 덜 된 동물인지에 대하여 연구했던 기록들도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아리안 족의 우수성을 주장했던 것도 진화론적 상상력에 나온 것이다. 독일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진화가 일어나려면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발전한다는 생각이 인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믿었다. 유대인 600만 명과 지체장애자, 정신장애자 200만 명을 학살한 것은 진화론을 믿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진화론이 얼마나 큰 피해를 인류에게 끼쳤는지 말하고 있다. 인종차별, 민족주의, 제국주의 전쟁 등의 뿌리에 바로 진화론이 있는 것이다.

진화론에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은 진화가 과학적 사실로 믿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 진화의 흔적기관(퇴화기관)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맹장(충수돌기)이나, 편도선과 같은 것은 쓸데없이 염증만 생기기 때문에 수술해서 없애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기관들이 면역이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최근 밝혀지면서 이런 기관들이 흔적기관이라는 주장은 사라지고 말았다. 꼬리뼈와 같은 경우도 실제 몸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지, 꼬리는 퇴화되고 꼬리뼈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의학과 과학이 발전하면 사람 몸에 흔적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라지고 말았다. 과거에는 흔적기관이 350개가 된다고 주장된 적도 있다. 해부학이 발전되면서 사람의 뇌에 있는 뇌하수체는 뇌에 비해 너무나 작은 것이어서 당연히 흔적기관이라고 여겨졌지만, 의학이 발전하면서 호르몬이 분비되는 중요한 기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병도 생기고, 사랑니도 나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몸에 진화의 흔적기관은 없으며, 진화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결론

진화를 주장하는 3가지 단계는 모두 있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기물이 저절로 유기물로 합성될 수도 없고, 유기물들이 저절로 모여서 세포를 구성할 수도, 생명현상이 나타날 수도 없고, 세포내 유전자가 제멋대로 변해서 새로운 생명체들이 계속 출현할 수도 없다. 과학적인 이론이나 논리가 전혀 없는 진화론이 사람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이미 100년 이상 진화론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모든 사람들이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과학적인 증거가 전혀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솔직한 진화론자들은 인정하지만,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외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화론 이외의 다른 대안은 전능한 하나님에 의한 창조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한 창조는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류가 있어도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진화만이 유일한 과학적 설명이라는 주장이다. 재현할 수도, 실험할 수도 없는 기원에 대한 설명에서 절대로 하나님이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는 인간의 교만함 때문이다. 솔직한 진화론자라면, 하나님에 의한 창조는 과학적 가능성은 높지만, 나는 진화를 믿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56

참고 : 6553|6486|6550|6149|6132|5081|5130|4639|5740|5683|5420|5994|6449|4821|6263|6018|6468|6148|6474|5510|5947|5954|5591|6211|5589|5602|5966|4837|6090|485|3890|390|2349|3782|6438|4510|5474|6495|5458|6243|5863|2698|4828|6118|6394|6168|6138|5996|774|5497|5827|5158|5962|6358|6258|6119|4066|5544|5443|6556|6501|6096|5459|5274|5450|5909|6461|6436|5586|4542|5041|3391|6393|6476|6292|5796|5768|6271|5462|6146|6439|3591|6125|3426|6285|6152|6153|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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