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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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기독교

Kerby Rials
2017-05-30

애매모호주의 : 애매모호함을 추구하는 하나의 종교 

: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의 사고 (The Religion of Vague)


       41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때때로 애매모호한 것을 매우 높은 가치로 추구하는 종교의 추종자를 만나곤 한다. 이 종교는 불가지론(agnosticism, 신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알지 못한다는)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들은 진리(truth)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왜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 종교를 'Griswoldism(애매모호주의)' 라고 부르겠다. (이 명칭은 내가 알고 있는 이와 같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애매모호주의는 일종의 운명론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커다란 질문에 대해 '될 대로 되라(que será será)” 란 식의 접근이다. 만약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시험 문제를 받았다면, 그들은 답안지를 백지 상태로 제출할 것이다.

애매모호주의자들은 다른 분별력 있는 사람들처럼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다. 그들은 교육을 받고,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고, 집을 사고, 은퇴를 준비하고... 항상 미래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이며,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세를 위한 준비에 대해서는, 즉 하나님이 계신지,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에 관한 문제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들의 길을 좋아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애매모호함을 즐긴다. 만일 당신이 그들에게 왜 그러한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 그 증거들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머쓱한 미소와 함께 '나는 어떠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혹은 '몰라요”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애매모호주의자들은 누군가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그들은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한 소수의 계몽적인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종교의 핵심이다.

미끄러운 국수 같은 도피적 세계관을 가진 그들에게 놀라운 설계에 관한 증거들을 제시했을 때, 그들은 그것에 대해 무관심 하거나, 많은 종교들에 대한 논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종교가 옳은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등과 같이 말한다. 애매모호주의자들은 그들의 신념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켜 생각을 바꾸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현재 살아 있다는 것과 그냥 살아가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이 보기에 당신은 종교적 사기에 빠져있지만, 그들은 정말로 그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당신을 이러한 '착오”로부터 구해낼 그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복음주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은 애매모호주의자에게는 절대적으로 공포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며 반응한다.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건강한 사람(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종교적 비평을 비껴가는 데에 이 말은 자주 사용되어진다)  

만일 당신이 잠시 동안 도피적임 태도를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주의자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신념이 진정한 신앙이며, 모든 다른 사람들은 종교적 편견, 무지, 미신의 캄캄한 밤을 비틀거리고 걸어가고 있는 얼간이들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애매모호주의자들은 자주 종교전쟁, 종교인들의 위선과 사기, 협잡꾼과 같은 태도 등을 거론하며 그들의 생각을 옹호하곤 한다. 그들은 이러한 진부한 논쟁들을 꺼내들고, 그들을 전향시켜보려는 사람들을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애매모호주의는 그것을 충실히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점을 주고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도덕적 기준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을 위반할 수 없다. 죄가 없고, 나쁜 행위가 없고, 고통이 없다. 그것의 추종자들은 지속적으로 구도자인 것처럼 가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은 이슬람교인, 기독교인, 유대인, 불교인, 또는 쾌락주의자가 되도록 하여, 어떠한 정황 속에서도 흘러갈 수 있게 해준다. 애매모호주의는 정치적으로 결점이 없다. 그것은 명백히 비공격적이고, 세속적인 인본주의자들의 견해와도 잘 조화되어진다.

애매모호주의는 어떠한 주장도 거의 하지 않음으로, 논박될 수 없다. 그것은 양심의 가책 없이, 또는 전도자들로 인한 귀찮음 없이, 그냥 즐겁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이상적인 종교이다. 애매모호주의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그것의 추종자들은 그것이 지적이고, 현명한, 진정 지성적인 유일한 종교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그것을 지지하는 어떠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를 얻는 것을 원하지도 않고 있다.  

아무튼, 그들은 영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무지(ignorance)가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애매모호주의는 굉장한 종교이다. 그것은 당신이 바보처럼 여기는 생각들도 받아들이고, 일찍이 살았던 위인들의 모든 사상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기적들을, 하나님의 창조하심까지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가 내리면서 미소를 머금은 채,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하는 영원의 저편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rae.org/vague.html

출처 - Revolution against Evolution, 1998. 4. 2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53

참고 :

임번삼
2017-05-30

기독교적 시각으로 본 학문의 역사 1


서론

기독교는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할 위기에 서 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교양단체와 별다른 차이가 없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기본교리는 서서히 사라지고, 누구를 믿어도 구원을 받게 돼 있다는 만인구원설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신진화론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이 진화론적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이론이다. 우주의 삼대 요소인 시간, 공간, 물질과 자연법칙을 만드신 후, 창조주 하나님은 이 세상일에 일체 관여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신론(理神論)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사상에서 출발하여 근세 유럽의 인식론과 경험론 및 계몽주의에서 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발표되면서 진화론과 인본주의가 손잡고 지금은 대부분의 교육기관에서 오로지 진화론만 가르치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기독교계에서는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뿌리를 둔 유니테리언이 17C 초에 설립되어 구미제국을 중심으로 성경의 편집설과 기적의 부인을 포함한 이성에 기초한 소위 과학적 교리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자유주의신학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단기간에 구미의 학계와 종교계를 휩쓸었다. 그 결과 청교도적인 미국의 교계와 대학들이 유신진화론을 수용하면서 복음주의와 결별하게 되었다. 그 후, 듀이가 주도한 인본주의선언(1933)과 케네디의 인간자유선언(1961)으로 강단에서 진화론이 창조론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제 구미 기독교계에서는 전통적인 복음이 사라지고 유신진화론이 활개를 친다. 가톨릭은 1999년에 이미 진화론을 수용한 터이다. 아담이 선재하는 존재(원숭이, 침팬지)로부터 현대인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대홍수 때 살았다는 “사람의 딸들”이 원숭이사람이라는 것이다. 국내 신학교들도 대부분 이러한 사상으로 물들어 있다. 신학연구의 한 방편이라는 미명하에 유신진화론이 교계에 깊숙이 침투한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 물량주의,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교회 안 밖에서 밀려오는 이러한 복음을 혼잡케 하는 세력들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진화론이나 유신진화론의 실체와 침투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시기에 극동방송에서 본인이 방송한 2,500년 학문의 역사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조명한 23회에 걸친 내용이 책자로 출간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짧은 내용이지만, 한국교계가 학문세계에서의 진리탐구를 위한 논쟁과정과 유신진화론의 심각성을 인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

사람은 갈대처럼 약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다. 생각하는 내용은 자연의 모든 것ㅡ우주만물, 인생의 고통과 죽음, 내세와 심판, 하나님ㅡ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러한 자연계를 관통하는 본질(en arche)이 있으리라 상상하고 그것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찾던 원질이란 다름 아닌 진리를 지칭하는 말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해답을 찾지 못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깨달음을 진리로 착각하고 파멸의 길을 걸었다. 진리의 탐구는 세 방향으로 추구되어 왔다. 동양에서는 감성적이며 직관적인 사상(thought)과 종교(religion)로, 서양에서는 이성을 통해 객관적이며 논리적인 철학(philosophy)으로 접근했다. 특히 그리스에서는 자연계를 관통하는 통일된 원리를 규명하려는 자연철학이 탄생했는데, 이것이 오늘의 학문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처럼 학문은 그리스의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에서 출발했으나, 중세 말에는 자연철학이 자연사(natural history)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자연사란 그리스에서 중세 말기에 이르는 자연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과정과 자연의 역사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다. 이것을 일본학자들이 박물학(博物學)으로 번역했는데, 여기에서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이라는 말이 나왔다. 근세에 학문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박물학은 다시 과학(science)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과학이란 그리스어 시엔티카 (scientica: 체계화 된 지식)에서 유래한 말이다. 학문이 발전하면서 분야별로 분류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인문-사회-자연으로 “분과된 학문”에서 “과학”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렇게 하여 과거의 종합적인 학문이 세 분야로 분과되었다. 자연과학(natural science)은 눈에 보이는 자연에 대해 연구하는 물리, 생물, 화학, 지질학 등을 포함하며, 실험성과 재현성을 필요, 충분조건으로 요구한다. 인문과학(human science or cultural science)은 사람에 대한 학문으로 철학, 신학, 언어학, 심리학 등이 이에 속한다. 사회과학(social science)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는 법학-경제학-경영학-사회학 등을 포함한다.

이처럼 학문은 자연의 본질(진리)을 탐구하려는 데서 출발했는데, 그러한 진리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지어낸 단순한 추상명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리는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실체를 찾으려고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그러면, 그 진리의 실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진리는 흡사 땅 속을 흐르는 물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학문은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결국은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진리의 샘(spring of truth)과 만나게 된다. 화학분야의 질량불변의 법칙, 물리학의 파스칼 정리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수학의 정리와 공리들, 경제학의 한계효용법칙, 인문과학이 추구하는 자유, 정의, 평등주의, 법학의 일사부재리의 원리 등이 그러한 개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진리의 단편은 될지언정 진리 자체라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 경우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시, 진리의 샘을 더 깊이 파고 내려가면 이들은 결국 도도히 흐르는 하나의 강(江)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러면, 이 진리의 강(river of truth)이란 무엇일까? 진리의 샘에서 열거했던 모든 법칙이나 보편적인 개념들은 결국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법칙이요 원리일 뿐이다. 우주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들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법칙(natural law)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자연계의 내면을 관통하는 자연법칙이 곧 진리의 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법칙을 신격화한 것이 범신론(pantheism)이다. 비기독교적인 모든 종교나 철학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범신론을 학문화한 것이 진화론(evolutionism)이다. 진화론의 실체가 범신론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물은 눈과 귀가 없을지라도 계속 흐르기를 좋아한다. 산을 넘고 땅을 가로질러 낮은 데로 흐르려 한다. 그 흐름은 바다에 닿아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바다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는 물들의 종착역이면서 그들이 그토록 찾아 가려 했던 목적지이다. 이 진리의 바다(ocean of truth)가 모든 학문이 그토록 오랫동안 추구하던 진리의 실체라 할 수 있다. 그 곳에는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리의 실체가 마침내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그래서 진리와의 감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그러면, 그 진리의 바다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곧 자연과 자연법칙을 만드신 창조주를 말한다. 창조주가 우주만물과 자연법칙을 만드셨고, 우주를 운행하시는 진리의 실체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주의 주인은 바로 창조주이시며,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탐구목표는 창조주를 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격적인 존재를 진리의 실체로 믿는 종교가 기독교이며, 이것이 학문으로 나타난 것이 창조론(creationism)이다.

학문의 역사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사라 할 수 있다. 진화론은 모든 것이 물질에서 출발하여 저절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믿는 자연주의(naturalism)이다. 유물론적 결정론이며, 범신론적인 해석체계이다. 이에 반해, 창조론은 초월적인 창조주가 설계해 우주만물을 단기간에 완벽한 형태로 만드셨다고 믿는 유신론적이며 목적론적인 해석체계이다. 어느 쪽이든 과거 일을 다루는 것이므로, 그렇게 되었으리라는 해석체계이며, 보지 않고 믿기 때문에 신념이요 신앙이라 할 수도 있다. 자연계에 대한 학문의 해석은 두 이론 뿐이므로, 우리는 어느 한 편이든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러한 선택은 학문적 선택이면서 동시에 인생관의 선택이므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진화론을 선택한다면 신을 믿지 않고 현실적 삶에 초점을 맞추어 살려 할 것이며, 창조론을 선택한다면 창조주를 믿으면서 경건하게 내세를 대비하며 살아가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진화론 일변도의 교육체계에서 벗어나 두 이론을 모두 소개하고, 최종선택은 학생들에게 맡기는 것이 학문의 시야를 넓혀 줄 뿐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도: 모든 학문이 추구하는 진리의 실체이신 창조주 하나님,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하면서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자연법칙이나 피조물을 신으로 믿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그리스에서 출발한 학문

기원전 6-700년경, 학문을 출발시킨 밀레토스의 3인은 우주가 어떤 단일물질로 구성되었으리라 추리했다. 철학의 아버지라는 탈레스(BC 580)는 “세계와 만물의 원질은 무엇인가”라는 최초의 철학적 질문을 던졌으며, 그것이 물이라고 자답했다.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는 무한자(apeion)가 분해되면서 발생한 뜨거움과 차가움에서 네 원소가 생겼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아낙시메네스(BC 585-528)는 공기가 만물의 원질이며, 공기를 압축하면 물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일원론적인 네 원소설(물-불-공기-흙)이 확립되었다. 이러한 생명=물질사상은 역사적으로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5세기 후반에는 네 원소가 이합집산하면서 만물이 탄생한다는 “변화”에 대한 논쟁과, 원자가 만물의 최소 단위라는 원자론이 등장했다. 파르메니데스(BC 515-?)는 우주에서는 어떠한 생성-소멸-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을 뿐이라 했다. 이 개념은 후일 플라톤의 이데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엠페도클래스(BC 490-430)는 불변의 네 원소가 미움과 사랑의 작용으로 결합-분리하면서 만물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했다.

인과율을 처음 주장한 레우키포스(BC 500)는 우주의 최소단위가 원자(atoma)인데, 원자는 질이 같고 양만 다르며,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작용인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데모크리토스(BC 460-370)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영혼은 구형이며, 신은 원자의 복합체라는 유물론적이며 기계론적인 생명관을 제시했다.

한편, 소크라테스(BC 469-399)는 학문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꿈으로써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존재론(ontology)을 수립했다. 그는 무지는 악이며, 이성으로 진리를 발견하여 덕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행복이라 했다. 또한 대화로 결론을 도출하는 연역적 삼단논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그 후 이 기법은 데카르트와 갈릴레오를 거쳐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으로 이어졌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과,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거대한 두 물줄기로서, 과학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세계 학계를 주도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스콜라철학과 결합하면서 중세로마를 지배했지만,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플라톤주의가 개신교와 손잡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대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그리스학문은 세계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화링톤이라는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학도 자연과학적으로 사고했으나, 플라톤은 자연과학도 신학적으로 사고했다”고 평했다. 이후, 서양철학은 대륙의 관념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대립하다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의해 통합적 완성을 보게 된다.

플라톤(BC 427-347)은 창조주(Demiurgos)가 목적을 가지고 네 원소로 우주만물과 생명을 창조했으며,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진리란 망각의 레떼강 건너 저편 이데아계에 있는 것이며, 이 세상은 이데아계의 그림자라고 하여 관념론(ideology)의 개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플라톤 사상은 후일 기독교와 이슬람권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여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인재를 배출했다. 오늘날 대학을 아카데미라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 말이다.

아카데메이아의 공부벌레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모든 실체에는 형상(이데아)이 있다는 플라톤의 목적론적 견해를 유지했지만, 말년에는 모든 존재란 변하며, 진리는 이성을 통한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실험을 강조했다. 그는 우주를 네 요소(4因說)로 설명했다. 예컨데, 집을 지으려면 먼저 집을 지으려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目的因), 다음으로 어떤 모양으로 지을지 설계도(形相因)와 집을 짓는 재료(材料因) 및 노동력(動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중에서 그는 형상인을 가장 중시했고, 신이란 형상인과 목적인의 결합체라고 했다. 생물은 육체와 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식물은 영양영혼이며, 동물은 여기에 감각기능이, 사람은 동물영혼에 이성이 추가된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인간만이 가진 이성을 가장 중시했다. 그는 저명한 동-식물학자였으며, 행성운동은 신의 의지라고 하여 그의 천문학은 후일 ”성스러운 천문학“으로 불리우기도 했다.

그리스의 의학계는 두 학파가 충돌했다. 관찰과 경험을 중시한 코스학파(Kos)는 질병이 몸속의 네 액체(혈액-점액-황담액-흑담즙)의 과부족으로 생긴다는 체액설을 주장했다. 대표 학자인 히포크라테스의 위대성은 <히포크라테스선서>(1929)에 잘 반영돼 있다. 그러나 크니도스학파(Knidos)는 질병의 원인이 체액 아닌 장기에 있다는 고체병리설을 주장하여 해부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13세부터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셨던 알렉산더대왕(BC 356-323)은 33세에 요절한 학구적인 영웅이다. 그는 자신이 점령한 주요 도시들을 알렉산드리아라 명명했고, 그곳에 학자들을 데려다가 그리스 학문을 가르치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와 동양문화가 융합한 헬레네문화(Hellenism)가 300여 년간 꽃피우게 된다. 이 시대에는 이성으로 욕망을 억제하면서 자연 질서에 따르라고 주장한 유물론적 감각주의인 스토아철학(Stoicism)과, 최고의 선은 정신적 쾌락이라고 주창한 유물론적인 에피쿠로스주의(Epicurianism)가 풍미했다.

알렉산더가 죽으면서 그리스제국은 결국 세 지역으로 분할됐는데, 이집트지역을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드리아에 뮤제이온이라는 교육기관을 세우고, 이후 800여 년간 세계학문의 중심지가 되게 했다. 이곳에는 40여만 권의 장서를 갖추고, 100여명의 석학들이 학문의 발전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배출된 대표적 인물은 대수학을 집대성한 유클리드,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 천동설을 집대성한 프톨레미, 목적론적 생기론을 주장한 갈레노스, 세계 최초의 신학교 학장으로 이성적 신앙을 강조했던 오리게네스(185-254) 등이다. 이때부터 학문은 그리스사상과 기독교문화가 두 축을 이루게 된다.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와 더불어 중세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기도: 하나님, 오늘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의 물질사상을 살펴보았습니다. 학문의 발생지인 그리스에서는 이성으로만 하나님을 찾으려 했습니다. 학자들이 더 이상 진리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이성으로만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3. 교부신학이 지배한 로마학문

고대는 자연에 대한 로고스와 이성이 지배하던 철학의 시대였으나, 중세기는 신의 섭리와 신앙이 지배한 신학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고대철학의 주제가 인식과 윤리였다면, 중세는 진리와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가 지혜를 탐구하여 문화를 창출했다면, 로마는 현실적 지식으로 문명을 건설했다고 할 수 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 이러한 처세적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플로티노스(204-270)는 기독교와 그리스철학을 접목시킨 이상주의 철학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플라톤주의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며, 어거스틴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초기로마의 대표적 학문은 프톨레미의 천동설, 갈레노스의 목적론적 생기론 및 교부신학이라 할 수 있다. 프톨레미(90-168)는 히파르코스의 천동설을 더욱 발전시킨 <천문학 집대성>에서 지구는 딱딱한 지지체에 메여 있으며, 천체가 그 주위를 돈다고 했다. 그리고 천동설에 의한 천체회전 이론을 수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기술하여,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기까지 1,500여 년간 세계 천문학계를 지배했다. 천체와 지구는 공처럼 생겼으며, 지구가 하늘의 중심이라는 그의 원(圓)사상은 근세의 케플러에 이르러 비로소 부정된다. 그의 저서는 크레모나(13C)가 아랍어로 번역한 <알마게스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편, 로마황제의 시의였던 갈레노스(130-200)는 그리스의 코스학파와 크니도스학파의 이론에 해부학을 가미한 종합의학체계를 확립하여, 중세기 말 하베이(1578-1657)가 혈액순환 현상을 발견할 때까지 서양 의학계를 지배했다. 그는 모든 생명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며,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영혼은 공중의 생기(pneuma)가 허파와 혈관을 통과하면서 정화된다고 했다. 이러한 목적론적 생기론은 창세기의 기술과 매우 유사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권의 환영을 받았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1세가 기독교를 허용하면서 기독교는 핍박받던 입장에서 누구나 믿어야 하는 국교로 변신하게 된다. 이에 따라 중세는 초기의 기독교에 플라톤을 가미한 어거스틴의 교부철학과 후기의 기독교에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미한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으로 대변된다. 어거스틴의 이론은 신구교가 모두 인정하지만, 아퀴나스는 카톨릭 철학자로 국한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교부신학자를 살펴보면, 순교자 유스티누스(166)는 기독교의 계시적 요소가 인류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신의 로고스는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고, 영혼은 이성-불사-자유의지를 갖는다고 했다. 터툴리언(160-240)은 기독교사상이 계시적이므로 초이성적이거나 반이성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하면서,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철학은 이단”이라고 했다. 저스틴(160-?)과 클레멘트(150-215)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하면서 철학을 비판했다. 이때부터 학문의 주역은 철학에서 신학으로 바뀌게 된다.
어거스틴(354-430)은 사도 바울 이래 가장 저명한 기독교 신학자로, 철학의 핵심은 사랑에 의한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참회록>과 <하나님의 도성>에서는  천국을 향하는 교회중심의 역사와, 타락한 천사로부터 시작되는 임금들의 역사로 나누는 이원적 신정사관(二元的 神政史觀)과 직선적 시간관을 피력했다. 창조주는 무에서 시간-공간-물질(원소)을 창조했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으로부터 오늘의 상대적인 시간이 나왔다고 했다. 시간은 창조역(創造驛)을 출발하여 역사의 종말역(終末驛)을 향해 직선적으로 달리는 마차와 같다고 했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이러한 직선적이며 종말론적인 시간관은 비기독교적인 순환론과 확연히 구분되는 개념으로,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심을 갖게 하여 문화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의심은 생존과 자기표상의 내면적 긍정이며, 인간의 본성은 지성이나 이성이 아닌 의지라 했다. 믿으면 인식하게 되며, 믿기 위해서는 인식하라고 했다. 구원은 신의 은총뿐이므로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참 자유이며, 만물의 제일생성원인(Prima Causa)은 창조주라 했는데, 이러한 사상은 아퀴나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한편, 유럽에서는 프랑크왕국의 제2대 샤를대제가 재위 46년간(768-814) 고대 로마의 영토를 거의 회복했을 뿐 아니라, 정치와 종교를 통일했고, 기독교-그리스와 로마철학-게르만 정신 등을 기초로 하는 오늘의 유럽문화의 기틀을 확립했다. 레오 3세를 롬바르드족에게서 구출한 대가로 황제로 추대되면서(800), 비쟌틴으로부터 서로마를 부활시켰고, 유럽 각지에 스콜라(Scola)라는 신학원을 세워 학문을 발전시켰다. 이곳에서 가르친 학문을 스콜라학이라 했는데, 성경과 교부의 저서 및 그리스-로마의 문헌을 연구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데 궁극적인 목표를 두었다고 한다.

13세기에는 일반학문과 신학이 충돌한 사건(Aristoteles Condemnation 1210)이 발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능한 신이라도 두 개의 우주를 만들 수 없다”고 한 표현이 창조주의 전능성을 부인한 것이라 하여, 교황청이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금서(禁書)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야기된 철학과 신학의 불편한 관계는 “중세철학의 완성자”라는 토마스 아퀴나스(1125-1174)가 성경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조화한 <신학대전>을 발간함으로써 해소되었다. 어거스틴과 안셀무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신 중심이면서도 인간자율을 중시했고, 신앙과 이성을 보완관계로 보았으며, 창조론에 입각한 형이상학을 추구했다.

<신학대전>(1273)의 제1부는 신론(유일신의 존재와 본질-창조-천사-인간 신의 통치), 제2부는 인간론(인생의 목적-행위-죄-도덕)과 도덕(신앙-희망-용기-정의-사랑-절제), 제3부는 기독론과 신학 문제를 다루고 있다. 스콜라철학으로 카톨릭은 그리스의 자연관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이후 카톨릭의 자연관은 성경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하게 된다. 천동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중세 천년은 비록 어두운 시기였으나, 근세학문이 발아한 과도기이기도 하다. 이 기간에 중동에서 출현한 마호멧의 이슬람(6C)은 지중해 동남부에 찬란한 사라센문화(8-11C)를 꽃피우게 했다. 아바스왕조의 7대 칼리프 마문(786-833)은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Bayt al Hikkma 9C)를 세우고, 알렉산드리아 뮤제이온의 그리스 서적을 아라비아어로 번역-비치케 하여 세계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10진법과 아라비아숫자가 탄생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톨레도가 십자군에게 점령되면서(1085) 세라센은 쇠퇴하게 되었지만, 아랍서적은 라틴어로 재번역되어 이태리의 피렌체에서 문예부흥을 일으키는 냉장고적 기능을 하게 된다.

한편, 4세기에 고대 로마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몰락하자 콘스탄티누스1세는 소아시아의 비잔틴(->후일의 콘스탄티노플로)에 수도를 둔 동로마제국(330-1453)을 건설하고, 로마의 정치이념과 제도 아래 기독교를 국교화한다. 이곳에서 그리스와 기독교문화가 결합한 비쟌틴문화가 천 년간 꽂을 피우게 된다. 그리스 정교적인 비잔틴문화는 서유럽에 큰 영향을 주었고, 러시아의 이반 3세에 의해 제3의 로마-모스크바 이념으로 계승이 된다. 비잔틴제국의 그리스 서적들은 르네상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과학혁명의 초석이 된다. 이즈음, 서유럽에서는 프랑크왕국의 뒤를 이은 작센왕조의 오토1세(10C)때부터 800여 년간 독일 중심의 신성로마제국이 지속되다가, 1800년경에 결국 오늘의 독일-프랑스-이태리로 분리된다.

[기도: 하나님, 중세시대에 기독교의 이름으로 카톨릭이 범한 역사적인 죄악을 용서하시고, 교부들이 가졌던 초대교회의 참된 신앙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바른 신학이 세상 학문을 이끌 수 있도록 신학교들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


4. 르네상스 -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혁명

중세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억압되었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옛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두 분야에서 일어났는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그것이다. 전자가 인간중심적이라면, 후자는 신중심적 복고운동으로, 동로마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하면서(1453) 더욱 촉진된다.

14세기부터 인간성 회복과 문예부흥에 의한 사회개혁을 목표로 이태리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는 문학과 예술에서 출발하여 전 분야로 확산되었다. “그리스로 돌아가자”는 이 복고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자연이나 신보다는 인간에게 관심이 더 많았기에 인문주의자(Humanist)라 불리우게 된다. 문학 분야의 단테와 보카치오를 비롯하여, 예술분야의 다빈치-라파엘-미켈란젤로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이 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다룬 주제는 대부분 기독교적 소재였다.

총 3부로 구성된 단테(1265-1321)의 신곡(神曲 1307-1320)은 주인공이 연옥-지옥-천국을 여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중세사회를 신랄히 비판한다. 이에 반해 “인곡”(人曲)이라 불리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351)은 페스트병을 피해 피렌체에 도착한 10인이 나무그늘에 앉아 매일 한가지씩 이야기하는 “10일 방담집”으로, 사랑과 지혜를 강조한 서민문학의 전형이다.

다빈치(1452-1519)는 예술가-철학자-과학자로서, <회화론>을 비롯한 23권의 저서와 <최후의 만찬>-<모나리자>-<성 안나> 등의 불후의 명화를 남겼다. 그는 “자연은 큰 인간이고, 인간은 작은 우주”라 하여, 인간과 자연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자연주의적 견해를 나타냈다. 그의 최종 관심분야는 우주였으며, 예술가로서 자연을 탐구했고, 과학자로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미켈란젤로(1475-1564)는 <시스티나성당 천정화>, <최후의 심판>과 <다비드>조각상(像)을 통하여 중세사회를 비판하고, 자유와 정의를 추구한 예술가이다. 라파엘(1483-1520)도 화가이면서 조각가로서 르네상스 3대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르네상스는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17-18세기의 “이성적 인간상”을 추구했던 계몽주의에서 그 정신이 꽃을 피우게 된다.

한편, 교황청의 면제부 발급에 반발한 루터(1486-1546)는 비텐베르크성당 정문에 <95개 논제>를 부착하여 종교개혁의 불길을 집혔다. 그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여 카톨릭의 선행(善行)에 의한 구원론을 비판했다. 양측의 분규는 아우크스부르크회의(1555)에서 카톨릭이 루터교를 기독교파로 인정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예정설”과 “직업윤리”를 강조하면서 제네바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에 가담했던 칼빈은 기독교사상 최대 저술로 평가되는 <기독교강요>(1536)에서 인간은 “오직 믿음, 말씀, 은혜로만 구원”받는다고 했다. 개신교를 변호하려고 쓴 이 책은 신론-기독론-성령론-교회론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연은 숭배 아닌 조작의 대상이라고 하여, 자연의 개간을 저해하던 정신적 족쇄를 제거케 함으로써 과학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16세기 중반은 천동설에 따른 율리우스교회력의 부정확성과 항해력의 오류보완이 사회적 관심사였는데,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자신이 시무하던 프라우엔부르크성당 옥상에 올라가 매일 밤 천체를 관측했다고 한다. 그리고 과학혁명의 출발을 알린 역사적인 거작인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지동설과 지구의 자전 및 공전설을 주장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천체의 원운동 사상은 견지했다. 천문학에서 점화된 이러한 과학혁명은, 영국의 사회학자 버터플라이(1949)가 지적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플라톤주의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코페루니쿠스의 영향을 받은 갈릴레오(1564-1612)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하고 지동설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역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는데,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라고 했다. 지동설을 취소하라는 교황청의 위협에 굴복하고 나오면서(1616), “그래도 지구는 도는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카톨릭으로부터 심문을 받은 것은 천동설 자체보다는 성경에서 지동설을 유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학설은 독일 비텐버르크의 루터란대학에서 처음으로 수용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최근, 교황 바오로 6세(1965)와 요한바오로 2세(1999)는 이러한 카톨릭의 역사적 과오에 공식 사과한 바 있다.

해와 달이 지구를 돌고,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신(新) 우주설을 발표했던 브라헤(1546-1601)의 화성관측자료를 물러받은 케플러(1517-1630)는 20여년의 연구 끝에 행성의 3법칙(1605-1619)을 발견함으로써, 그리스 이래의 원 사상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독실한 루터교도였던 그는 “이러한 발견으로 창조주의 이름이 높임 받는다면 내 이름은 영원히 없어져도 좋겠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신(新)천문학>(1604)과 <우주의 조화>(1619)에 잘 정리되어 있다.

케플러의 천문학과 갈릴레오의 역학은 뉴턴(1642-1727)의 <프린키피아>라는 저서에 종합됨으로써 과학혁명은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된다. 이 책의 원제는 <자연철학에 관한 수학적 원리>(1687)인데, 1-2권은 역학의 3법칙을, 3권은 천체의 구조와 만유인력법칙을 다루고 있다. 뉴턴역학은 맥스월의 <전자기학>과 더불어 고전물리학의 축을 이루게 된다. 뉴턴은 고백하기를 자신의 모든 발견은 기도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했다. 종교와 이성은 친구이며, 하나님의 솜씨를 자연에서 읽는다고 했다. 이처럼 과학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부분 창조과학자들로서, 자연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하려 했던 성실한 자연법칙의 탐구자들임을 알 수 있다.

[기도: 창조주 하나님, 우리도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개혁신앙으로 무장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 말씀으로만 구원받는 줄 알게 하옵소서. 과학혁명을 주도했던 창조과학자들처럼, 오늘도 냉철한 이성으로 자연 속에 숨어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80

참고 :

박영철
2017-05-30

기독교 세계관 입장에서 본 진화론


요약 : 진화론은 주요 옹호론자들에 의해 전 우주를 통해 종과 복잡성이 계속 증가한다는 기본 원리로 주장되어진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세계관인 것이다. 본 본문에서는 17세기 이후의 과학, 다윈의 종의기원과 진화론의 한계를 설명하고,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본 진화론을 기술한다.


I. 서론

   
창조주를 과학의 분야에서 제거하려는 진화론자들의 시도가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적인 세계관과 결합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빠르게 전파되어 왔다. 진화론의 자연주의적, 인본주의적 세계관은 이 시대를 풍류 하는 시대적 정신이 되었으며, 어떠한 세계관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 그러나 최근 들어 영국의 자연주의를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설계는 과학적 연구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고 믿는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 이론의 활발한 활동은 진화론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계몽주의적 이성주의와 자연주의 세계관을 지적하고 그것의 한계, 즉 자충족적이라는 가정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진화론을 반박하고 있다 [2].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지난 수 세기동안 계속 되고 있다. 최근의 동향들을 살펴 볼 때 진화론의 입장이 반박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많은 영역에서 시대정신의 역할을 여전히 감당하고 있다. 진화론의 기반을 통해 생성되는 많은 문화현상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도 진화론이 인류 역사를 어떻게 오염시켜 왔는지를 지적할 수 있는데, 진화론은 약육강식을 새로운 세계 질서로 만들었고, 두 차례의 엄청난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하였고, 민족과 민족을 적대시하게 만들었고, 식민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3].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화론과 창조론의 문제에서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존재한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한 것이며 비과학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위에서 언급한 진화론의 위험성과 한계, 그리고 최근의 불리한 동향을 알면서도 진화론을 믿으라면 아무런 검증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진화론의 문제는 세계관의 문제이며, 신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진화론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이데올로기로서 신봉되고 있으며, 수많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삶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주관적 철학이며, 많은 과학자들이 믿는 일종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과학을 절대시하는 이른바 과학주의를 살펴보고, 특히 과학주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진화론을 살펴보며, 기독교 세계관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조명하고자 한다.


II.  18-19 세기 과학과 다윈의 진화론

18세기 프랑스의 라부아지에 (A. L. Lavoisier)는 신연소 이론과 원소개념을 확립하여 근대화학사상에서 가장 빛나는 화학혁명을 성취하였으며, 뒤이어 돌턴에 의한 원자론의 확립과, 유기화학의 아버지 리비히 (J. Liebig)에 의한 유기화합물의 분석법 확립과 농업화학의 시작은 봉건적 농업경영의 파괴에 실질적인 기초를 제공하였고, 비료공업의 창성을 촉진시켰다. 1796년에 라플라스는 태양계의 진화론을 발표하였고, 최후의 계몽사상가로 불리 우는 라마르크 (J. Larmarck ; 1744-1829)는 1809년에 스스로 「동물철학」이라 이름붙인 체계를 수립했는데, 이것은 근대적인 최초의 생물진화론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18C말 유럽대륙의 시대상황은 기존역사에 대한 편견과 진보에 대한 심리학적 신조, 경제적, 사회적 진보에 대한 자유방임주의가 태동되는 과정에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로버트 맬더스라는 학자는 1798년 그의 저서 「인구론」에서 “생물에 대한 식량공급의 한정과 그에 따른 경쟁으로 인해 유리한 변이만이 살아남아 그 자손을 번식시킨다”는 개념을 제시하여, 다윈(C. Darwin)으로 하여금 「생물진화 메카니즘」에 대한 착상을 가능하게 하였다.

다윈은 1831년 12월부터 1836년 10월까지 약 5년간에 걸쳐 “비글호”라는 배를 타고 남태평양 항해 시 지참했던 지질학자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라는 책에 언급된 견해의 채택과 광범위한 지질학적, 동식물학적 자료 수집으로부터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진화설” 체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그 후 1859년에 드디어 「자연선택 또는 생존 경쟁에서의 적자생존에 의한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에 관하여」라는 책자를 출간하게 되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종의 기원의 학설의 발달에 대한 역사적인 개관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이론이 가져올 충격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이론이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종의 기원」에 표현된 생각은 다윈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전제하는 것이어야 했다. 「종의 기원」은 기존의 시간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간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이론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의 기원」은 일종의 시간 개념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진보적 기대의 산물이었다.

「종의 기원」의 가장 큰 기여는 그것이 생물학에 가져온 변화보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가져온 혁명적인 새로운 관점의 도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실 종의 기원은 하나의 이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이어(Ernst Mayer)에 따르면 다윈의 진화론은 최소한 5가지 이상의 입증되어야 할 주장들, 다시 말해 ① 진화 자체, ② 공동 후손, ③ 종의 증가, ④ 점진주의, ⑤ 자연선택 등에 대한 각각의 이론 줄기들이 얽기고 설키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엄밀성에서 볼 때 각각의 이론들에 대해서 「종의 기원」이 입증하고 있는 사실은 지극히 적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종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어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것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한 가지라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침묵 한다 [4]. 단지 인공 사육 하에서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라든가, 지리적 분포에 의한 변종의 출현, 가령 갈라파고스 섬에서 보여 지는 핀치새의 다양한 변종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종의 출현을 암시하는 상황적 증거로 들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점진적 변이의 축적에 의한 변화는 수많은 중간적 단계를 가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중간 단계를 보여주는 사례를 충분히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종의 기원에 대한 그의 논의는 제목의 거창함을 떠받쳐 주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윈 자신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종의 기원」이 출판된 후 제기된 물음에 대해서도 해답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그의 압박감은 「종의 기원」의 두 번째 판이나 세 번째 판에서 그가 그토록 열심히 해답을 제공하려고 노력한 흔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지나친 노력이 진화론 이론 자체의 일관성을 약화시킬 정도였다 [5]. 이처럼 취약한 증거 위에 세워진 이론이 빅토리아 시기의 엄밀한 학문적인 풍토를 딛고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1859년 「종의 기원」이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왜 그토록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처음부터 많은 논란과 반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 20년이 지나지 않아 과학적 전통의 주류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었고, 신속하게 자신의 지지자를 확보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진화라는 도식은 지나치리만큼 단순하다. 이 이론을 처음 대했을 때 헉슬리는 “왜 내가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던가?” 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생물 개체는 수많은 변종을 낳게 되고 이러한 변종은 끊임없는 자연선택의 압력에 노출되게 됨으로써 점진적으로 보다 자연에 잘 적응하는 생물로 진화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가정으로 기존의 목적론적인 설명이 주는 번잡함을 넘어서는 생물학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으로 여겨졌다. 자연선택이라는 간단한 법칙,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화석을 둘러싸고 지질학자들 간의 논쟁에서 보여 졌던 격변이나 재난 같은 부자연스러운 가정들을 구태여 도입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연적인 원인만 가지고도 그 모든 것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종의 기원」에서 보여 지는 자연주의적 설명의 단순성은 기존 이론이 시간과 관련한 변칙들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수많은 임시방편적 가설들이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것은 단순히 보조가설의 불필요성을 지적할 뿐 아니라, 보조 가설을 필요로 하는 기존의 패러다임 자체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진화론이 새로운 생물학의 패러다임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이론의 입증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순성의 원리(principle of simplicity)를 제시함으로써 다른 이론들의 부족함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종의 기원」은 출판되자마자 상당한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1860년의 영국과학진흥협회(BAAS)의 연례 회의에서는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로 대변되는 종교적 반론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헉슬리(Thomas Huxley) 등의 노력에 의해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 열린 연례회의에서는 종교적인 반론이 아니라 과학 내부에서 제기된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당시 영국 과학계의 거두였던 윌리엄 톰슨 경(William Thomson, Sir Kelvin)에 의해 제시된 지구의 연대와 관련된 것이었다. 톰슨은 그의 열역학 제2법칙에 기반 해서 지구의 나이를 대략 1억년 정도로 추산해서 발표한 것이었다. 1억년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기는 하지만, 생물이 진화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기간으로 진화론의 성립을 막는 최후의, 그리고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다윈 자신은 이 이론이 주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고, 6판과 마지막 판에서 이것을 “지금까지 제시된 것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종을 가능하게 했던 시간이 이제는 오히려 종의 출현을 압박하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반론에 대해서 다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첫째, 종이 년 단위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지 알지 못하며, 둘째 많은 철학자들은 과거에 흐른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우주의 구성과 지구의 내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는 아직 인정하지 않는다.” 다윈은 이러한 물리학적 반론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 입장을 택했다.

헉슬리 역시 1870년 영국 과학진흥협회 회장으로 행한 인사말에서, 톰슨의 반론을 의식하면서, “우리가 유아기를 기억할 수 없듯이 그것을 다시 볼 수 없지만, 만약 내가 지질학적으로 기록된 시간을 넘어서 지구가 물리적 및 화학적 상태를 거쳐 지나간 것을 볼 수 있다면, 무생물 물질로부터 살아있는 원형질이 진화하는 것을 목격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6]. 이것은 종의 기원에 관한 다윈 이론이 이론적으로 입증되거나 반증되는 것보다는 일종의 종교적 선택을 전제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종의 기원을 수용한다는 것은 당시 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1874년 틴달(Tyndall)이 행한 벨파스트(Belfast)에서의 강연은 이러한 진화론 수용의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7].

“진화론은 실험적인 증명을 바탕으로 해서 제시된 이론이 아니다. 진화론은 실험에 의해서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인 과학적 사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 우리는 우주론의 모든 영역에서 신학적인 영향을 배제시킬 것을 주장한다. 어떤 사상이 과학의 영역에 침투될 때에는 그 영향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렇지 않았던 예전의 경우를 보면 항상 문제가 따랐었고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헉슬리는 윌버포스와의 논쟁에서, 자신은 이미 15년 전부터 이 이론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반대해 왔고, 단지 여러 가지 박물학적 증거를 확인하고 나서야 받아들이게 되었노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어가 주장하듯이 헉슬리 자신은 다윈이 주장한 점진적인 자연선택 이론을 믿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윈의 이론을 옹호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러한 시도를 통해 교회의 통제로부터 과학을 떼어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다윈의 이론은 그 자체의 이론적 가치보다 기존의 이론과는 달리 종교적인 요인을 배제한 채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명현상을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진화론의 수용이 이론적인 완결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교로부터 과학의 독립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진화론이 이론적 완결성과는 무관하게 과학적 헌신의 마지막 장애물인 종교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진화론이 이론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교조적 위치를 확보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제 진화론은 종교적 교리로부터 독립한 과학의 상징으로, 새로운 생물학을 지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기존의 고전주의의 목적론적 이론들을 효과적으로 배제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었다. 덴턴(Michael Denton)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20년이 자나지 않아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과학적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교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생물학적 이외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다윈의 진화 이론의 골격이 되는 생물의 연속성과 점진주의적 개념은 19세기 당시의 빅토리아 왕조 사회의 일반적인 풍조였고, 근세 유럽 사회 속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던 정치적, 사회적인 보수주의 경향과도 잘 부합되는 것이었다” 는 것이다 [8]. 당시의 점진주의가 변혁을 요구받던 유럽의 군주들에게 “질서, 조화 및 연속성들을 생물학적 측면에 도입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굴드(Stephen Gould)와 엘드리지(Niels Eldredge)의 언급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9].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진화 이론은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에게서보다 오히려 사회적 변화를 갈망하는 혁신적인 사람들에게 더 환영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빅토리아 왕조는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란 현실 질서의 재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진보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다분히 인식론적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회 운동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인식은 현상 유지와 다를 바가 없는 개념이었다. 「종의 기원」은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관점과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관점, 새로운 역사 의식을 제시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정태적인 이해에서 역동적인 이해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무한한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되었고, 이제 인간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역사의 조작을 향해 뛰어들 능동적 작인(active agent)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화론은 19세기 전반 동안 낭만적인 개념에 머물고 있던 진보 개념에 현실성(reality)이라는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스펜서(Herbert Spencer)는 사회 경제의 진보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으로서 자유 경쟁이 필요하다는 정신은 진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자연선택이 유효하다는 다윈의 개념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처음에 진화론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견지하던 막시스트들이 진화론을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그것의 열렬한 지지자로 돌변한 것은 진화론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다이내미즘이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혹자는 다윈의 글쓰기 방식 역시 그의 이론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다윈 자신은 이미 불가지론을 넘어 무신론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의 기원」에서는 여전히 자연신학적인 어법을 계속해서 사용함으로써 신학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책의 곳곳에서 빅토리아식의 도덕적 경구처럼 들릴 수 있는 내용을, 가령 “발이 느린 동물은 반드시 멸망한다” 든가, “부지런한 벌이 얼마나 시간을 절약하는지” 하는 식의 내용을 적어놓음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상식적 도덕 관념에 호소한다. 또한 자신을 철저한 과학자로 자처하지만, 자신의 이론을 주장함에 있어 모든 상황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결론 부분에 가서 단정적인 어법 대신 가정적인 어법을 사용함으로써, 과학자적인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는 식의 방식을 채택한다. 다윈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이러한 글쓰기 방식 자체가 가져다주는 효과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사실은 다윈의 진화론의 사회적 수용이 단지 이론 내적인 요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든 과학 이론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에딘버러 학파의 strong program[10]을 문자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과학 이론의 성립이 아니라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적 요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진화론처럼 이론의 성립 여부보다 이론의 수용이 강조되는 특이한 경우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종교적 교리보다는 과학의 중립성(neutrality)이라는 개념이 선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것은 과학이 제시한 낙관적인 전망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 시기에 일반화된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의 결과이기도 했다. 문화적 다원주의 하에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옹호하는 일은 배타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중립성을 표방한 과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더 수용되기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종의 기원」은 이론적 적합성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근대 과학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념비로써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III.  진화론의 한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후 그것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수용되었다. 우선 진화론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들의 입장이 일치하고 있지는 않았다. 마이어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혼합되어 있는 각각의 이론들에 대해서 당시 생물학 내부의 진화론자들 간에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공동의 전선에 서 있었다 할지라도 그 차이가 사소하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오늘날에 와서는 더 두드러져 보인다. 오늘날 가장 공격적인 진화론 옹호자로 꼽히는 도킨스와 굴드에 대해서도 종이 진화한다는 한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단 하나의 일치점도 찾기 어렵다는 평가는 진화론 진영 내에서의 이론적 분열이 의외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진화론 진영 내부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진화론이 전통적으로 종교가 해 오던 역할, 다시 말해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대한 해답의 역할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각각의 이론들은 서로에게 견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각각의 이론들이 과도한 형이상학적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제시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야기하게 된다. 진화론자들 간에 존재하는 이론적인 차이는 각각의 이론이 가진 임시성(tentativeness)과 가변성(changeability)을 나타내 주는 표징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모든 해답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진화론은 그 이론 자체가 무엇을 이야기하든지 간에 사회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해답으로서 자리매김 하는데 상당한 난점을 안고 있는 지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이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론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도 지적될 수 있다. 진화론은 가장 간단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의 진화를 가정하지만, 어떻게 그러한 발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못한다. 다윈의 해답은 시간과 우연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우연적인 변이의 축적만이 그에 대한 해답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우연의 반복에 의해 눈같이 정교한 기관으로 발전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다윈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많은 구조들이 어떤 단계를 거쳐 현재의 완벽한 단계에 이르렀는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 많은 경우의 기관들이 어떤 중간 단계를 거쳐 현재의 상태에 도달했는지 상상하기가 심히 어렵고…”

“눈과 같은 정교한 기관이 과연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난처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너무나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선택의 원리를 이처럼 놀라울 수밖에 없는 정도에까지 확장하여 적용하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다윈은 이처럼 자신이 확신하기 어려운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진화의 시간의 길이가 그 모든 것을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길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또 다른 한편 자연선택을 '보이지 않은 손(invisible hand)'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설명한다. 아담 스미스에 의해 사용된 이래 '보이지 않는 손'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과정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은유가 되었다. 페일리 역시 악의 현실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다윈과 페일리는 서로 만나고 있다 [11]. 

진화론이 이론의 사실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은 진화론이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읽혀질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출발했음을 의미한다. 진화론 자체는 무 목적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그것을 수용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화의 목적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이 진화 이론을 수용한 이유는 진화론 자체가 미래를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진보 이념이 계몽주의 장벽에 갇혀 현실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면, 진화에 대한 사상은 그러한 감금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때 진화의 관점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화 이론 자체의 사실적인 엄밀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수많은 19세기의 진보주의자들이 진화론의 사실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 이론을 그토록 열렬하게 수용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의 의도대로 일이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완벽성(목적성)에의 집착은 사회진화론으로, 우생학으로 대변되는 위험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분명 진화론 자체가 가진 논리적인 귀결은 아니다. 하지만 진화론이 적절하게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부수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은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그 해답을 제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V. 진화론에 대한 기독 세계관적 조명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주된 대응은 근본주의적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진화론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든가, 아니면 진화론이 가져온 시간 개념을 성경 연구의 방법으로 차용함으로써 자유주의적인 신학의 길로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12]. 이러한 대응의 부작용은 만만찮다. 전자가 학문의 위축과 기독교 내의 반지성적인 문화를 조장했다면, 후자는 기독교 신앙의 사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아직까지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이 만족할만한 상태에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역사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은 진화론적인 관점이 불러일으킨 예상치 못한 비윤리적인 혼란스러운 결과 때문에 조만간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발언할 기회가 올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이것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발생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 내에서 진화론의 공식적인 승인이 있고 난 후에 비눗물 미끄러짐(soapy slide) 현상으로 많은 도덕적 부작용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그것은 비단 20세기 미국의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다. 진화론이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수용되었던 영국에서도 마차가지였던 것이다. 당시의 정황에 대해 트리빌리언(Trevelyan)은 [영국사회사](Social History of England)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3].

“이 논쟁은 1860년대에 시작하여,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까지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것은 기적에 대한 모든 신념을 혼란스럽게 할 정도까지 되었고, 신약성서에 대한 신앙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지식 계층은 이 갈등의 긴장 아래 조금씩 반성직자적, 반종교적, 유물론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 변혁과 논쟁이 격렬하던 시대에 개인과 가족의 불행이 많이 발생했고, 정신에 관한 탐구가 성행했으며, 남․녀에 대한 가치관에도 모순이 드러났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들은 진화론 자체가 필연적으로 역사 속에 혼돈을 야기하는 어떤 요소를 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혼돈은 진화론 자체가 인간의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서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화론 자체 내의 이론의 다양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진화론 이론 자체가 주장하는 무 목적성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진화론은 미래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듦으로써 필연적으로 역사 내부에 카오스(caos)적인 상황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의 귀결로 나타나는 카오스는 역사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역사에 대한 기독교적인 대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이러한 기회를 맞이하면서 기독교는 다시 한번 카오스에서 코스모스(cosmos)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식물학자였던 아사 그레이(Asa Gray)는 창조론자였지만, 진화론이 악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진화론을 수용하였다 [14]. 이것은 진화론이 기독교적인 면에 있어서 자연신학이 놓친 중요한 또 하나의 차원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간이란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화론은 이 세계의 갱신 가능성에 대해서 발언하지 못함으로써 역사의 공포만을 가중시키게 되었다. 따라서 진화론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 되기 위해서 기독교 세계관은 혼란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 다시 말해 역사의 종말론적 차원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V. 결론

로이 클레멘츠(Roy Clements)가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 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이 세상에는 에덴의 동쪽으로 나아가려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경향과 그것과는 정반대로 서쪽을 지향하는,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볼터스(Albert Wolters)는 이것을 구조와 방향의 문제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구조의 방향을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방향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에 대한 종말론적 인식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시간은 이 세상의 악과 갱신 가능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진화론은 가장 간단한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으로의 진화를 가정하지만, 어떻게 그러한 발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못한다. 다윈의 해답은 시간과 우연에 의존하는 것이 고작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우연적인 변이의 축적만이 그에 대한 해답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우연의 반복에 의해 눈같이 정교한 기관으로 발전하는 일이 가능한지는 다윈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화론의 문제는 세계관의 문제이며 신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즉, 진화론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일종의 종교성을 가지고, 이데올로기로서 신봉되고 있으며, 수많은 현대인들의 생각과 삶을 사로잡아 왔다.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 관점에서 모든 학문을 조명할 필요가 있으며, 과학 역시 진화론의 한계 및 오류에서 벗어나 기독교 세계관에 의해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은 물질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청지기직을 수행하는 올바른 도구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1] 양승훈, “창조론 대강좌”, CUP, 대구, pp 34-45, 1997
[2] William A. Dembski, “Intelligent Design”, IVP, Downers Grove, pp 14-19, 1999
[3] 고건, “하나님을 믿는 과학자”, 창조, 108호, http://www.racs.org/kaist/articles/etc/scientist.html, 15 Jan. 2001.
[4] Myer, 신현철 옮김, '진화론 논쟁,' 사이언스 북스 , pp 43-49, 1998
[5] Eisley, L., 'Darwin's Century', Gollancz p 242, 1959
[6] Hellman Hal, 'Great Feuds in Science : Ten of the Liveliest Disputes Ever', John Wiley & Sons, Inc. 1999
[7] Tyndall, J. Presidential Address to British Association, George Robertson, Melbourne, pp 43-44, Denton, Michael,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Burnett Books Press 1985, 임번삼 외 역, 진화론과 과학, 한국창조과학회, p83, 1994
[8] Denton, Michael,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Burnett Books Press 1985, 임번삼 외 역, 진화론과 과학, 한국창조과학회, pp 80-81, 1994
[9] Gould, S. J. and Eldredge, N., 'Punctuated Equilibria: The Tempo and Mode of Evolution Reconsidered', Paleobiology 3, 1977
[10] David Bloor, 'Knowledge and Social Imaginary', London, Univ. of Chicago Press, p7, 1991
[11] Gould, Stephen, 'Darwin and Paley Meet the Invisible Hand', Natural History, November 1990
[12] Moore James, 'Geologists and Interpreters of Genesis in the 19th Century', Univ. of California Press, pp 322-350, 1986
[13] Trevelyan, G.M., Social History of England, Longmans, Green and Co., pp 565-566, 1944
[14] 성영곤, “서양의 과학 전통과 기독교 : 연구사적 개관”, 정진홍 외, 종교와 과학, 대우학술총서, 아카넷, p.40, 2000
[15] Clements, Roy, Masterplan, 황영철 역, “하나님의 마스터플랜: 에덴동산에서 새 예루살렘까지”, IVP.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88

참고 :

고건
2017-05-30

진정한 IT 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것은 이제 세계적으로 공인받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IT 기술의 첫 원조는 인쇄술이었다. 며칠 전 조선일보는 1면에 우리나라 금속활자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속활자가 발명된 것은 고려시대인 1377년이고, 구텐베르그 인쇄기가 나온 것은 1455년이니,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서양보다 적어도 78년이나 앞섰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였느냐에 있다.


성경 인쇄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그것이 복음의 통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517년에 마틴 루터는 '평신도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첫째 모든 평신도들의 손에 그 나라 말로 된 성경을 쥐어주는 일이요, 둘째 모든 국민들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교육시켜주는 일이었다.

루터는 곧 독일어 성경을 (인쇄하여) 전 국민에게 보급하기 시작한다. 그 파급효과는 즉각적이고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에 당황한 로마 교황청은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고, 이윽고 30년 전쟁이 유럽 전 대륙에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 독일에서만 30만 명의 신자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대륙에서는 이렇게 하여 개신교 운동이 한동안 주춤해진다.

그러던 차에 1525년에는 (William Tyndale에 의해) 영어성경이 영국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Tyndale은 영어성경을 보급한 죄로 화형에 처해진다). 영국은 섬나라여서 대륙의 침공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으므로 영국 왕에게는 상비군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또 마침 영국 왕은 교황이 불허하는 결혼을 하기 위해 교황청에 등을 돌리게 된다. 영어성경이 보급되자, 영국에서도 즉각적이고 전국적 변화가 일어난다. 즉 영국혁명이 일어난다. 여기서 개신교측이 승리하자, 영국은 유럽에서 개신교의 종주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평신도에게 성경을 읽게 하지 않았지만, 개신교는 적극적으로 평신도들에게 말씀을 읽도록 했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복음이 (인쇄술을 통해) 빠른 속도로 국민들에게 전파된다.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 윌버포스, 두란노”에 의하면, 이 시기에 “모든 농부들의 서재에 5억 부의 (복음을 인쇄한) 소책자가 보급되었고, 이 복음은 국민생활 구석구석에서 더러움을 몰아내었고... 말씀이 전파되자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 우리는 17세기 이후의 영국 역사를 자세히 조명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영국에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쥐어지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시기 영국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 국민들에게 보급되고 그 말씀이 국민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때 -- 어떠한 능력을 나타내는지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두란노 서적은 “...과거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잔인하고, 떠들썩하고, 난폭하고, 노골적이고, 살벌했던 국민들이었는데, 복음이 전파된 이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절제되고, 예의 바르고, 질서정연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얌전한 민족으로 바뀌었다....복음주의는 영국인의 인격의 토대가 된 반석이다.” 라고 적고 있다. 복음이 (인쇄술을 통해) 전 국민에게 전파되자 영국 국민들의 성품이 크게 바뀐 것이다. 인쇄술을 복음의 통로로 사용했을 때 영국민족이 받은 축복이었다.


교과서 인쇄

그러나 영국국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받은 축복은 성품의 변화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루터는 모든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의무교육을 시켜야한다고 주장하였다. 16세기에 복음이 들어가자 영국에서는 17세기부터 대대적인 교육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때까지는 특권층 자제만 받던 교육을 전 국민이 받도록 교육체제가 바뀌기 시작한다. 초등학교와 대학교가 이 시기부터 영국 전역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쇄술은 모든 국민들에게 교과서를 보급하는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도 금속활자는 있었지만 전 국민을 깨우치는 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개신교가 처음이었고, 또  개신교만이 이러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세계 역사상 다른 어느 종교도, 다른 어느 국가도 “모든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키자”는 비전을 제시한 적이 없다.

교육대상뿐만 아니라 교육내용에도 개혁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나라는 신학, 의학 등 아주 제한된 과목들만 교육했지만, 영국에서는 과학, 경제 등 모든 분야들이 골고루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것도 복음 때문이다. 루터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소명으로 주신 것이므로 모든 직업은 평등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적인 모든 민족에게서만 ‘직업(Beruf)'이라는 단어에 영어의 'calling' 에 해당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개신교의 이러한 새로운 직업관은 학교와 사회에서 모든 분야가 골고루 균형 있게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고, 애덤 스미스의 그 유명한 분업찬양 - 즉 직업의 전문화, 노동자의 숙련(skill)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동은 이슬람교가 퍼진지 1,000년이 지나도 문맹률이 아직 40%에 가깝고, 이슬람교 전파 이후 중동의 과학은 오히려 크게 후퇴하였으며, 그 이유는 이슬람 종교 때문이라고 하버드대학 Hurley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필자도 지난해 중동의 대표적인 U국에 갔을 때, 그 나라에 인쇄기나 출판사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무척 놀란바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복음이 들어가는 나라에서는 미션스쿨이 시작된다. 기독교 정신에 따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교육하고, 모든 분야를 평등하게 교육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국은 비록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고 대륙으로부터 문명이 가장 늦게 전달되는 - 복음이 전해지기 전, 16C 이전에는 역사책에 별로 기록될 것조차 없던 - 오지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지만, 17C 부터 영국에서는 People's power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륙의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에 아무리 인구가 많고, 아무리 역사와 전통이 화려한들,  (16C초 영국과 비교해볼 때) 국민의 절대다수가 문맹이요, 소수의 교육 수혜자마저도 모두 편식 교육을 받지 않았던가? 이에 비해 영국은 이 시기부터 전 국민이 글을 깨우치고, 전 분야가 존중 받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복음적 정신으로 인쇄술을 사용한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국민들이 교육받고 모든 전공에서 제 역할을  해나갈 때 영국은 People's power가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일은 한 두 명의 왕이나 귀족의 힘만으로 (그리고 나머지 모두가 문맹인 백성들에 의해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개신교도들은 요즈음도 세계 가는 곳마다 미션스쿨부터 세우고 모든 국민들을 교육시키는데 열심이다. 따라서 개신교가 들어간 나라들이 (또는 일본처럼 개신교 문화를 적극 도입한 나라들이) 잘사는 나라로 바뀌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오늘날 미국을 이끌어 가는 것도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과 같은 명문대학들인데, 이들은 모두 미션스쿨로 시작된 학교들이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잘사는 것은 모두 교육 덕택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유교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유교 밑에서 수백 년 교육해왔지만 그때는 특권층만 교육시켰고, 유교경전 등만 편식 교육시켰다. 그래서는 나라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웠다.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연세대, 숭실대, 배재학당, 이화여전 등 미션 스쿨이 도입되고, 모든 국민을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교육시키기 시작한 후의 일이다. 그래서 전기, 토목, 경제, 사회, 정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배출되고 난 후의 일이다. (물론 서울대, 경기고 등 공립학교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허지만 이들 역시 일본이 개신교 국가들로부터 벤치마킹해온 학교들임을 상기하면 우리나라의 발전은 결국은 개신교에서 비롯된 교육체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다른 어느 종교도, 다른 어느 이데올로기도 개신교처럼 전 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해 열심을 내지 않는다.


신문 인쇄

영국인들이 인쇄술을 사용한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은 언론이었다. ‘영국혁명의 꿈과 현실 - 역민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7세기 영국혁명 당시 여론을 주도했던 매체 중의 하나는 인쇄물이었다.... 뉴스를 인쇄하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할 정도로 뉴스 인쇄업은 성행하였다.... 인쇄물의 파급효과는 과거에 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음을 알 수 있다.... 종교개혁 이후 많은 대중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퓨리턴들은 이에 맞추어 정치적인 질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보급하기위해 인쇄술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도 오직 개신교 국가에서만 시작된 일이다. 신문뿐이 아니라 정기간행물도 17세기 영국에서는 이미 9,000부에 이르렀다. 물리학회지, 정치학회지, 토목학회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이 없이는 전문분야의 발달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에도 활자는 있었지만, 이와 같은 언론의 출현은 개신교가 (독립신문) 들어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영국국민들이 교육-복음-언론으로 깨어나자, 영국에서는 모든 분야가 합리적이고 선진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영국혁명의 꿈과 현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의회가 사회개혁을 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선거권을 가질 수 있는 재산규모의 기준은 낮아졌고 ... 이와 같은 개혁은 1832년 이전까지는 처음이었고, 또한 유일했던 조직적인 선거제도의 개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기원을 그리스/로마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스/로마에서 행해진 민주투표는 힘 있는 사람들만 투표권을 행사하는 변칙적 민주주의였다. 그러한 “민주주의”는 동물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민주주의이다. 참된 민주주의는 힘없는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제도인데, 그러한 민주주의는 이 시기 복음에 영향 받은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복음의 열매로 생긴 것이다.


복음의 능력

우리는 평소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자주 한다:

왜 오늘날 누구나 영어를 배워야만 하는가?
왜 영어 간판, 영어 상표들이 인기가 있는가?
왜 개신교 국가들이 선진국들이 되었는가?
왜 16세기 이후 서구국가들이 선진국이 되었는가?
왜 서구 국가들에서는 많은 분야가 합리적인가?
왜 영국만 산업혁명에서 승자가 되었는가?

확실히 인류 역사에 있어 16C-20C는 매우 특이한 시기였다. 16C 이전까지는 중국, 중동, 지중해 연안국들이 세계문명의 주역들이었다. 서부 유럽은, 더구나 영국은, 16세기 전에는 역사책에 별로 나타나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이었다. 그런데 17세기부터 서부유럽이 (특히 영국이) 전 세계를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복음이 인쇄술을 타고 영국에 상륙한지 100년도 안되면서부터 엄청난 변혁의 물결이 영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영국은 산업혁명, 과학기술,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근대국가의 모든 주요 특징들을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복음에 있다. 그 당시 인쇄술이나 산업혁명 기술은 오늘날같이 특허나 비밀에 부쳐지지 않았다. 어느 나라나 다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영국인들만이 복음에 기반을 두어 인쇄술을 사용하였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것이다.

영국 국민들이 복음정신에 입각하여 인쇄술을 사용하자, 영국사회는 불과 백년도 안 되어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것은 영국 혁명보다 150년 후인 1790년의 일이다. ‘영국혁명의 꿈과 현실 - 역민사’는 “... 프랑스 혁명은 영국 혁명의 직접적 계승자이고, 그 다음 계승자는 미국이다”라고 적고 있다. 영국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복음에 입각하여 전 국민에게 (인쇄술을 사용하여) 교육을 시키고,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에게 뉴스를 공급하며,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평등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근대국가의 모델을 선도하는 나라로 발전한다.

우리나라는 유럽보다 근 100년이나 먼저 고려 금속활자를 발명하고도 그러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도 금속활자로 의무교육을 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도 금속활자로 뉴스를 제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금속활자를 이처럼 올바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했을까? 불경은 활자화 되고 수백 년이 지나도 국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에 비해 성경 말씀은 인쇄술을 통해 전파된 지 100년도 안 돼 즉각적이고 전국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애초 루터가 모든 국민에게 신분의 상하귀천(上下貴賤),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불문하고 교육시켜야한다고 주장했을 때는 성경을 위해서 그렇게 주장한 것이지, 그 밖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이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알지 못하던 크고 비밀한 축복”을 허락하신 것이다.

금속활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후 7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다시 IT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IT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 그 해답은 어디까지나 복음에 달려 있다. 우리는 신명기 28:1절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우리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적 현상에 대해 증인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1)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93

참고 :

임번삼
2017-05-30

기독교적 시각으로 본 학문의 역사 3


8. 유인원의 허구

진화론에서는 원숭이나 침팬지가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는 유인원의 유골들은 조립과 조작 및 사기극으로 점철되어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이러한 학문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연구비 확보와 학문적 명예심, 그리고 진화론적 선입관에 대한 잘못된 열심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합니다.

 

⑴ 라마피테쿠스(Lamapithecus 큰 원숭이)

예일대학의 루이스(1934)는 인도서북부 시왈릭언덕에서 이빨(40)과 턱뼈(15)를 발굴했는데, 앞니와 송곳니가 원숭이보다 작고 치열이 포물선을 이루며, 턱뼈의 경사각이 사람과 가깝다 하여 첫 인류의 것으로 추리했습니다. 1960년대에 하버드대학의 필빔과 예일대학의 시몬즈가 이 유골의 연대를 1,400만 년 전으로 측정하고, 라마피테쿠스라는 학명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후일 필빔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같은 지역에서 많은 유사 유골들을 발굴하여 비교ㆍ조사한 결과 라마피테쿠스는 오랑우탕의 뼈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수십 년간 인류의 조상으로 세계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교과서에서 가르쳐 왔던 라마피테쿠스가 인류조상의 자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⑵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lopithecus 남쪽 원숭이)

필트다운인 사건에 관여했던 G. 스미스에게 사사한 영국인 다아트(1924)는 유인원을 찾아 남아프리카로 가서, 타웅광산에서 발견한 어린 턱뼈가 140-400만 년 전 유인원의 것이라 판단하고, 네이쳐지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Taung's Child)라는 학명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는 중부 아프리카에서도 토비아스 등(1940‘)과 같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를 발굴했습니다.

한편, 에티오피아에서는 미국의 요한슨(1974)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아팔원인)를 발굴했는데, 유골의 연대는 310-530만년이었다고 합니다. 두개골이 없었으나 그들은 450cc로 추정했고, 발굴당시 트랜지스터에서 나오는 비틀즈의 노래에 따라 유골의 주인공을 “루시”(Lucy)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직립보행의 증거로 제시한 무릎 뼈는 유골로부터 70m의 지점에서 발굴한 것이며, 다른 뼈들도 3km떨어진 곳에서 발굴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발굴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지금도 인류의 첫 조상으로 세계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동물의 뼈라고 주장합니다. 저명한 진화인류학자인 몽타규(1957)를 비롯하여, 15년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연구한 영국의 쥬커만(1973), 쉬카고대학의 옥스나아드(1975), 미국 창조연구소(ICR)의 기쉬 등은 이 뼈들이 원숭이나 오랑우탕 또는 침팬지로 확신합니다. 타임지(1994.3.14)도 특집호에서 “현재로서는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자료에 입각한 과학적 주장이 아닌 상상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⑶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도구를 사용한 사람)

선교사의 아들인 루이스 리키는 중동부 아프리카에서 유인원을 발굴하는데 온 가족을 동원한 사람입니다. 그는 부인 메리(1961)와 같이, 최초로 도구를 사용했다는 호모 하빌리스를 발굴했고, 아들 리쳐드는 KNM-ER-1470(1972)라는 유골을 발굴했습니다.

그러나, 호모 하빌리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유사한 동물의 뼈로 알려졌습니다.   KNM-ER-1470(280만년전)은 후대에 나타난 북경인보다 더 진화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같은 지층에서 호모에렉투스, 더 오래된 하부 지층에서는 현대인의 석조물이 발굴되어 진화론적 연대 산출에 큰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유골의 연대는 연구소에 따라 29만년에서 2억2천만년의 편차를 나타냈으나, 그들은 여러 번 수정한 끝에 180만 년 전으로 확정했습니다. 실험이 아닌 협의로 연대를 책정한 것입니다.


⑷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보행하는 사람)

① 자바인(Pithecantropus erectus 직립보행하는 유인원)

화란의 내과의사인 듀보아(1858-1940)는 독일 예나대학의 헤켈에게 7년간 사사했습니다. 헤켈은 여러 동물과 사람의 배(embryo) 발생도가 유사한 것처럼 보이려고 사진을 정교하게 조작했던 사람입니다. 듀보아는 1889년부터 자바섬에서 100여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7년간 유골을 발굴했습니다. 3년간 파낸 1만여 톤의 흙 속에서 겨우 어금니(1)와 두개골 조각(1)을, 다음 해에는 15m 떨어진 곳에서 대퇴골(1)을 발굴한 후, 서둘러 50-100만년 전의 유인원의 것으로 추리하고, 피테칸투로푸스 에렉투스라 명명했습니다.1898년에는 다시 앞어금니(1)를 발견했습니다.

그 후, 독일의 진화인류학자 케닉스발트는 같은 지역에서 유사한 유골들을 발굴하여 비교․검토하고(1935-39), “듀보아의 두 어금니는 오랑우탕, 앞 어금니와 대퇴골은 사람, 치아는 원숭이의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듀보아는 와작지방의 같은 지층에서 발굴한 현대인 유골을 30년간이나 숨겨왔다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근 일본과 인도네시아 합동연구팀은 자바인이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거나 현대인의 한 종족으로 추측합니다. 자바인의 특징인 완만한 안면경사각과 두툼한 눈두덩은 지금도 수마트라에 사는 바탁족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② 북경인(Sinanthropus pekingsis 북경의 중국원숭이)

역시 G. 스미스에게 사사한 카나다의 내과의사 D. 블랙은 북경의 유니온 의대에 재직하면서, 1920년부터 쵸오우쿠티엔(周口店) 일대를 발굴했습니다. 이 작업에는 샤르댕 신부(1923-)와 중국학자들(1926-)이 합류하여, 7년 만에 발굴한 치아 한 개를 50-100만 년 전 유인원의 것으로 추정하고, 시난트로푸스라 명명했습니다(1927). 다음 해에는 두개골의 일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현대인을 포함한 많은 유골을 추가로 발굴했으나, 지금은 어디론가 모두 사라지고 의문의 어금니 두개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왜, 어디로 유골을 없앤 것일까요?

블랙이 죽은 후(1934), 바이덴라이히는 샤르댕과 더불어 북경인에 대한 엄청난 조작극을 연출한 사람입니다. 그들에 의해 북경원인의 두개골 용량이 1,000cc로 확정됐으며, 석회채굴업자들이 남긴 7m의 잿더미가 사라지고, 대신 불을 사용하는 북경원인의 걸개그림이 대영박물관 입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프랑스의 인류학자 부루일이 같은 지역에서 발굴․전시했던 현대인의 유골을 포함한 자료들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③ 필트다운인(Piltdown Man 첫 사람)

영국의 내과의사 도오손은 런던근교의 필트다운에서 인골과 유물을 발굴하고, 그의 친구인 영국자연사박물관 관장인 우드워드와 함께 이 유골의 주인공이 30만년 전의 인류조상이라고 발표했습니다(1908-1912). 이에 따라 <사이언스>와 <브리타니커> 및 각국 교과서에서 인류조상으로 기재했습니다. 많은 의문이 제기되어 제1차 진상조사위원회(1916)가 조사에 나섰으나, 이들은 유골․유품들을 모두 진품으로 판정했습니다.

그러나 1953년에 새로 개발된 연대측정법으로 이 유골이 조작된 사실이 제2차 진상조사위원회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두개골은 사람, 턱뼈는 오랑우탕, 송곳니는 샤르댕이 투입한 원숭이의 것으로, 유물은 코난 도일이 투입한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이들은 잇빨은 줄톱으로 갈았고, 두개골은 화학약품에 넣고 삶아 땅속에 묻은 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사기극을 연출했던 것입니다. 그중에는 제1차 진상조사위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영국의 과학수준을 향상시킨 공로로 이미 작위칭호를 받았던 자들로, 후일 유인원 발굴을 주도한 많은 진화론자들을 교육시킨 장본인들이기도 합니다.

[기도: 하나님,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여 허위와 허구로 만든 유인원의 실체를 학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참되고 홀로 하나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케 도와 주시옵소서. 기독 지식인들이 이 일에 더욱 분발하게 하옵소서. 아멘] 


9. 성경적 인류기원설

인간에 대한 학자들의 정의는 매우 다양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 동물로, 마르크스는 도구를 만드는 존재로, 진화론자들은 동물의 일종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칼빈은 “인간이란 한 때 하나님의 빛나는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그 후에 타락했으며, 지금은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자기 모양과 형상대로(Imago Dei)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1:27)고 말합니다. 창조하신 방법은 흙(adamah)으로 육체(adam)를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neshamah chay)를 불어넣어 생령(nepesh chay)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창2:7). 육체(soma)는 원소(物 erets)인 흙을 재료로 하여 만드신(asah) 것이며, 생기(pneuma)로 표현된 영혼은 '무에서 창조된'(creatio ex nihilo: bara)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생기에 근거하며, 생기 때문에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며(창1:26, 28, 2:15), 창조주를 찬양케 하려는데 있습니다(사43:21).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대화가 필요하며, 하나님과의 대화는 하나님께서 받은 생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는 영(사람)에게는 살리는 영(창조주)이 필요하므로, 사람은 일생을 통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합니다.

아담(Adam)은 사람(adam)에서, 사람은 흙(adamah)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흙 중에서도 가장 고운 진흙먼지(aphar)로 만드신 것입니다. 결국, 아담이라는 이름은 “진흙 사람”을 뜻합니다. 후일, 아담이 선악과사건으로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지요.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얻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 3:19).

창세기는 첫 사람 아담은 흙에서 만드셨으나, 첫 여성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다고 말합니다(창2:21-23). 피는 뼈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피를 비롯한 모든 장기로 분화하는 만능세포인 간세포(stem cell)는 뼈 속에 가장 많이 들어있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유래했다는 또 다른 증거는 염색체의 구성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람의 유전정보를 담은 염색체는 모두 23쌍인 데, 남녀간에는 성염색체 한 쌍만 다를 뿐입니다. 성염색체는 남자가 XY, 여성는 XX인데, XY에서는 XX와 XY가 모두 나올 수 있으나, XX에서는 오직 XX만 나오며 XY는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여성(XX)으로부터 남성(XY)을 만드셨다면, 여성에게 없는 Y염색체를 외부에서 공급했어야 하며, 이 경우 온 인류는 지금과 같은 하나의 혈통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행17:26).

첫 사람 아담의 탄생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였고(tob), 복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습니다. 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과 더불어, 땅을 정복하고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그가 사는 에덴은 여러 동식물들과 네 강이 흐르는 기쁨의 동산(eden)이었습니다. 그곳은 강 이름들이 말하듯,  풍부(비손)ㆍ은혜(기혼)ㆍ결실(힛데겔)ㆍ능력(유프라테)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건전한 인격은 이러한 세 요소가 균형발전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먼저 영성이 충만해야 하는데, 영성은 기도와 말씀 및 찬양으로 채워집니다. 충만한 영성은 육체를 바른 방향으로 살도록 인도합니다. 영의 인도를 받는 육체는 바른 길을 지향합니다. 땅에 살고 있으되 하늘에 소망을 두고 행동합니다.

육체는 우리가 사는 동안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므로 튼튼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며, 건강한 마음은 지․정․의를 골고루 함양할 때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마음과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지요. 지식이 많으면 정서가 부족하고, 정서가 풍부하면 의지력이 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강점은 더욱 발전시키고, 약한 부분은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으로 인도받는 건강한 신앙인격을 구축해야 합니다.

[기도: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 대신 세상만물을 다스리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며, 영원히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우리 삶이 되도록 인도하시고, 영혼과 육체가 강건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아멘] 


10. 바벨탑사건과 언어 및 인종의 분화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특히, 바른 역사의 복원이라는 차원에서 더욱 더 그러합니다. 이곳에는 언어와 인종의 분화과정이 요약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핵심내용은 인류의 집단적인 반역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시까지 하나였던 언어를 혼잡시키심으로써 바벨탑 공사를 중단시켜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흩어진 후에 경건계열의 후손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신앙의 “족보”를 기록하셨습니다.

바벨탑이 일어난 때는 그 무시무시했던 노아의 대홍수로부터 120여년(5세대)이 경과한 벨렉의 시대로 추정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200-4500여년 전의 일입니다. 그 이유는 벨렉이 살았던 시대에 사람들이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나뉨”의 의미는 5대양과 6대주로의 지리적인 분리, 또는 언어분화에 따른 인종의 분화를 의미합니다. 대홍수 후에 아라랏산에서 척박한 땅을 가꾸며 어렵게 살아왔을 노아의 후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산 아래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들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겠지만, 주력부대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비옥한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로 이동했습니다. 학자들은 당시 인구를 4만여 명으로 추정합니다. 진흙 뻘이 표토를 덮고, 갈대만 무성했던 이 지역은  농사뿐 아니라 강을 이용한 편리한 물자이동과 따뜻한 기후로 살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문제였습니다. 함족 출신의 니무롯은 세상의 처음 영걸로, 바벨 동편의 악카드를 비롯하여 북쪽의 앗수르와 라센 성을 쳐서 굴복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항하려는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자기 할아버지 함에 대한 증조부 노아의 저주에 반발했기 때문이었던 상 싶습니다.

그는 시날평지(->수메르)에 이르자, 군중을 이끌고 대규모의 건축공사를 단행했습니다. 도시 주변에 성벽을, 도심 중앙에는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성벽은 적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탑은 하나님께 대항하면서 대홍수시 피난처로 삼으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막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조직적인 반신행위였습니다.

거대한 건축공사에는 벽돌을 만들고, 벽돌 사이를 이어주는 역청을 고아내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역청은 타아르(tar)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곳에 이미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공사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그 높이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매우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한 역사가는 201m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도시국가였던 이라크의 각 지방에서 출토되는 수많은 지구라트는 바벨탑을 원형으로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높은 것은 90m에 이르고 있어 바벨탑 원형의 위용을 가히 짐작케 합니다.

이처럼, 하늘을 향해 반역의 공사가 진척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공사현장은 언어의 분화로 큰 혼란(balal)에 빠져 공사는 중단되었고, 같은 말 하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헤쳐 모이게 되었습니다. 민족이 먼저 생긴 것이 아니라 언어가 먼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민족을 어족(語族)으로 구분하며, 우리 민족은 우랄ㆍ알타이어족에 속합니다.

바벨론 제국을 엄습한 “언어 혼잡”(balal)으로 “하늘 문”(babili)을 건설하려던 그들의 계획은 산산이 깨어졌으며,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인류 이동사(人類移動史)입니다. 이 과정은 수천 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족들 사이에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겠지요. 죄성을 가진 이기적 인간이기에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항상 피로 기록되어 왔습니다.

인류의 이동과정은 많은 시행착오와 충돌에도 불구하고, 인종마다 특징적인 이동방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부가 검은 사람은 햇볕을 찾아 남쪽으로, 하얀 사람들은 지중해를 따라 차가운 북쪽으로, 노란 사람들은 해뜨는 동쪽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숱한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지구의 여러 곳에 정착했는데, 이것이 소위 국가(國家)의 탄생입니다.

우리 민족은 일본인과 더불어 해 돋는 대륙의 변방까지 달려온 끈기 있는 민족입니다. 이렇게 모인 민족들은 한 국경 안에서 같은 종족끼리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결혼하고 자손을 낳게 됩니다. 이에 따라, 민족 고유의 우성 유전자(피부색, 골상,  체형)는 더욱 축적되고 열성 유전자는 잠복하여, 지금과 같은 각 민족 고유의 피부색과 체형이 갖추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인종이 분화한 이유입니다.

어떤 민족은 대이동 과정 중에 다른 족속에게 동화되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글안, 말갈, 숙신, 여진족이 그러한 예입니다. 우리나라는 700여 회의 전쟁을 치루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끈기 있는 민족입니다.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셈족, 힛타이트족, 악카드족 및 백인계의 야벳족에 이르기까지 주장은 다양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앞으로 더 규명해야 할 연구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참으로 할 일이 많은 시대인 것 같습니다.


[기도: 심판주이신 하나님, 오늘은 인간이 하나님께 집단반역을 꾀했던 바벨탑사건을 공부하면서, 언어와 인종이 왜 지금처럼 나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일생동안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09

참고 :

John D. Morris
2017-05-30

유기화합물은 생명체를 의미하는가? 

(Does Organic Mean Living?)


        오늘날 자주 운석, 또는 태양계의 황량한 위성들과 같은 생명체들이 살기 매우 부적합한 분명한 ‘무기적(inorganic)’ 장소에서 유기화합물(organic compounds)의 탐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기화합물이 생명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어딘가에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유기적(organic)’ 이란 말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모두는 고등학교에서 유기적이라는 단어가 살아있는 생물체에 적용된다는 것을 배웠었다. 주요한 사전적 의미로는 살아있는 생물체에서 발견되는 또는 유래한 물질이라는 것이다. 적절한 용례들 끝에 ‘탄소 화합물에 속하는 것들’이라는 말이 쓰여 있다.

역사적으로, 어떤 화학물질들은 생명체의 힘(life force)에 의해서 살아 있는 생물체들 안에서만 오직 합성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었었다. 그러나 후에 자연에서 살아있는 생물체와 관련된 일부 혼합물들이 단지 실험실에서 적절한 화학물질들을 결합시킴으로서 만들어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체들은 탄소와 수소로 만들어지는 혼합물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이것은 ‘유기화합물’이라는 단어의 기술적 정의가 탄소와 수소 분자들을 포함하는 더 큰 부류에 속하는 화합물들 중의 일원이 되도록 이끌었다. 이들 탄화수소(hydro-carbons)류는 극도로 복잡하고, 생명체와 관련되어서만 발견된다. 그러나 메탄(methane)처럼 이들 중 일부는 간단하고,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것으로부터도 만들어진다.

자주 그 용어의 사용은 사실에 대한 잘못된 전달을 일으킨다. 비전문가들에게 유기화합물이라는 단어는 생명체와 살아있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발견자들은 단지 탄소에 기초한 분자들을 의미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혼란은 진화론적 글들 속에서 가장 자주 발생한다. 거기서 진화 열광자들은 생명이 없는 유기 화학물질들이 모여서 우연히 생명체가 자연 발생했음에 대해 말한다. 좀처럼 진화 과학자들은 유기화합물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무생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 단어를 전문적인 용어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러한 훈련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독자들이 잘못 알아듣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잘못은 해가 없는 무해한 잘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거나 또는 한때 살아 있었던 생물체에 들어있는 화합물들이 무기물질들로부터 우연히 저절로 생겨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화론자들도 종종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무생물적인 무기물질들이 살아있는 생물체 안에 있는 유기물질들로의 최초의 변화는 진화론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정보의 조심성 없는 사용은 이러한 넘을 수 없는 문제가 극복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애매한 용어들의 사용이 때때로 고의적이 아닌지 궁금하다. 진화는 엄격한 시험에 견딜 수 없다. 진화의 문제점들은 너무도 크다. 그러나 만약 어떤 결정적인 정보를 감추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따라서 진화론의 거짓말은 계속 살아 있게 되는 것이다.

*Dr. John D. Morris is the President of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147/

출처 - ICR, BTG 218a, 2007. 2. 1.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15

참고 : 3800|1912|1914|3769|3605|3322|3075|3358|1424|3275|3281|1981|3675|3738|1926|3245|2660|3180|3067|2151|2698|2359|2309|2535|2531|2589|2346|548|540|2443|2520|2533|732|601|164|354|2040|1905|591|3053|3012|3626|3579|2741|2641|1426|3411|3296|386|2837

임번삼
2017-05-30

기독교적 시각으로 본 학문의 역사 2


5. 지질학 논쟁과 산업 및 화학혁명

18-19세기는 지질학 논쟁, 산업혁명, 화학혁명, 열역학법칙이 발견된 격동의 시기였다. 아일랜드의 제임스 허튼(1726-1797)은 현재 일어나는 지형의 형성과정을 보면 과거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한 옥스퍼드대학의 교목인 버클랜드는 창세기의 6일이 24시간의 하루가 아닌 지질학적 6기간을 의미한다는 날-연대설을 주장했다. 찰스 라이엘은 이러한 허튼의 동일과정설과 버클랜드의 날-연대설의 영향을 받아 점진적인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을 확립하게 된다.

라이엘은 <지질학 원리>(1831-33)에서 지구는 12개 지층으로 구성됐으며, 각 지층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생물들이 화석화 되었다고 추리했다. 하부층의 원생대와 시생대의 생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한 결과, 마침내 상부층에 있는 제4기층에서 현대인류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론은 다윈의 진화론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지층의 역사를 연구하는 지사학은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지각변화의 속도는 오늘이나 옛날이나 같은 속도로 진행)을 기초로, 지층누중의 법칙(위로 갈수록 새 지층 누적), 부정합의 법칙(다른 두 지층의 부정합면을 경계로 지질시대 구분), 생물군 천이의 법칙(같은 생물이 나오면 같은 지층), 관입의 법칙(관입당한 지층이 관입된 지층보다 오래되었다는 주장) 등이 가미된 것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의 저명한 생물학자 큐비에(1769-1833)는 지구상의 대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지층과 화석이 형성되었다는 다중격변설(1812)을 주장했다.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홍수가 24회나 있었고, 전 지구적인 노아홍수 때 방주에 생존한 8명의 사람과 동물들로부터 오늘의 생물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파리근교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화석을 발굴하고, 고생물학의 개조가 되었다.

이후 지질학계는 두 학설의 논쟁이 계속되다가,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진화론적인 동일과정설이 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1980년, 미국 시애틀의 세인트 헬렌스 산이 폭발하면서 불과 며칠 새에 리틀 캐니언, 지층, 화석, 토탄 등이 형성되어 긴 지층형성 이론에 새로운 논쟁거리를 던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장기간이 아닌 며칠의 격변으로 형성된 것은 추리 아닌 실제상황으로, 미국의 지질학자 헨리 모리스는 앞으로 창조-진화논쟁은 지질연대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으로 예견한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산업혁명은 과학과 기술이 결합한 성과물로, 영국은 산업혁명에 적합한 여러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명예혁명으로 정치가 안정되었고, 자본주의 형성으로 금융제도가 발달했으며, 풍부한 석탄과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농경사회를 공업사회로 바꿨고, 대량생산에 따른 원가절감과 고용이 증대되었으나, 환경오염과 인간의 기계 부품화라는 역기능 현상을 나타내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외면적이라면, 화학혁명이나 열역학법칙의 발견은 내면적인 것이었다. 당시에 중동과 유럽에서는 4원소설에 기초한 연금술(alchemy)과 연소현상에 대한 프로지스톤설이 유행했다. 프로지스톤설은 독일의 베케(1669)의 주장을 슈탈이 체계화한 것으로, 슈탈은 물질의 연소는 물질 속에 있는 플로지스톤이 빠져 나가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러한 의사과학(pseudoscience)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 원자설과 신(新)연소설로 대표되는 화학혁명이다.

“화학의 아버지”라는 라부와지에(1743-1794)는 프리스틀리(1733-1804) 목사로부터 산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많은 연소실험(1772)을 한 결과, 연소란 산소에 의한 산화작용이라는 새로운 연소설을 주장한다. 연소나 산화가 모두 산소와의 결합반응임을 밝히고, 질량보존의 법칙(1783)을 수립하게 된다. <화학원론>에서는 23종의 원소를 분자량의 순서대로 배치하다가, 원소가 일정한 주기로 유사한 성질이 반복되는 주기율을 발견했다. 이와는 별도로 퀘이커 교도였던 달튼(1766-1844)도 배수비례의 법칙을 발견하고서 원자설(1803)을 주장했다. 이러한 발견은 마이어 및 멘델레예프(1834-1907) 등에 의해 마무리되었는데, 현재 90종의 천연원소를 포함하여 모두 105종의 원소가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프랑스의 프루스트(1799)가 일정성분비의 법칙을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보일과 샤를, 게이뤼삭, 아보가드로(1776-1856) 등이 연달아 기체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추리에 근거하던 학설들이 실험에 기초한 근대과학으로 변모하게 된다.

한편, 독일과 영국에서는 계몽주의에 반발하여 자연철학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자연계에 내재하는 통일된 힘을 에너지라 불렀다. 마이어, 헬름홀츠, 주울 등은 에너지와 물질이 서로 전환되지만, 우주 내 에너지 총량은 생성․소멸 없이 항상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을 발견했다. 이어서 모든 자연계의 반응은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도 발견했다. 이는 자연계가 장기간에 서서히, 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다는 진화론과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진화론자들에게는 답변하기 어려운 숙제를 안게 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화론이 추리이지만, 열역학법칙은 실험법칙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도: 하나님, 오늘은 잘못된 지질학이 목회자들에 의해 유도된 역사적 사실과 모든 물리․화학반응에 작용하는 자연법칙의 발견과정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한국교계가 이러한 역사적 과오를 거울삼아 근신하며 6기간설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과학자들은 자연계에 숨어있는 자연법칙을 겸허하게 찾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6. 생명은 저절로 탄생한 것인가?

19, 20세기는 생물학사상 최대의 논쟁기였다.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자연발생설(abiogenesis)과 속생설(biogenesis)이, 생물다양성(biodiversity)에 대해서는 진화론과 창조론이 날카롭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생명기원론에서는 창조론적 속생설이 논쟁에서 승리했으나, 실험적으로 입증된 멘델의 유전법칙은 추론적인 다윈의 진화론에 밀려 한동안 인정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면 생명의 기원논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생명이 무생물에서 저절로 발생한다는 물질=생명 사상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들은 네 원소가 이합집산하면서 생명이 자연발생한다고 했다. 그리스를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갯벌에서 장어, 오징어, 새우, 문어 등의 연체동물이 저절로 생긴다고 했다.

중세 말에 탄산가스를 발견한 헬몬트(1579-1644)는 고기를 한적한 곳의 가마니 밑에 놓아두면 그 속에서 쥐가 저절로 생긴다 했고, 다른 학자들은 이슬에서 반딧불이가, 호박꽃에서 양(羊)이, 쇠똥에서 딱정벌레가 생긴다고 했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라는 데카르트(1595-1650)마저도 축축한 진흙에 햇볕을 쪼이면 생명이 저절로 발생하며, 생물은 기관장치에 따라 움직이는 생명기계라 주창했다. 뷰퐁(1708-1788)은 종의 불변설을 주장한 린네(1708-1756)를 맹렬히 비난했으며, 그에게 영향을 받은 니이덤(1713-1781) 신부는 생명이 물과 흙에서 스스로 발생한다고 했고, 라마르크(1744-1829)는 “생명은 물질의 배치”라 하여 다윈의 유물론적 진화론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자연발생설은 20세기 초에 소련의 오파린(1894-1980)이 화학진화설(1936)을 주창함으로써 재등장했는데, 그는 원시 환원형 대기가 번개로 중합되어 원시바다로 흘러가 햇볕을 받아 코아세르베이트(coacerbate)라는 입자가 되었고, 이것이 원시세포로 진화했다고 했다. 이러한 화학진화설은 다윈의 생물진화설과 더불어 현대 진화론의 양축을 이루고 있다.

더 나아가, 시카고대학의 대학원생인 밀러(1930- )는 스승 유레이(1893- )와 더불어 환원형 가스를 전기 스파크로 중합시켜 생명의 구성물질인 아미노산, 핵산과 같은 단량체를 합성했으며, 폭스(1959)는 이러한 단량체를 중합하여 동그란 단백질입자(proteinoid)를 만들고 마이크로스피아(microsphere)라 명명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한 원시의 환원형 대기설은 스페인에서 열렸던 생명학술대회(1993)와 타임지의 최신 특집기사(’93-97)에서 강력히 부인되었다.

이러한 생명기원 논쟁에 반대하여 혜성처럼 나타났던 사람이 39세의 파스퇴르(1822-1895)이다. 그는 백조목 플라스크에 육즙을 넣고 끓이면 부패하지 않지만, 뚜껑을 제거하면 부패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부패한 육즙에 들어있는 미세한 생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미생물이라 불렀다. 그리고, 부패를 일으키는 미생물이 공기를 통해 유입된 것임을 확인하고, “모든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나온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역사적 발견으로 그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대상을 받았으며, 그후 계속된 자연발생론자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하여 수천년간 지속돼 오던 생명의 기원논쟁을 침묵시켰다. 이러한 생명속생설은 독일의 세포학자인 슈라이덴, 슈반, 버효 등의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온다”는 세포설에 의해서도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영국의 다윈은 약관 22세에 해안 측량선인 비글호를 타고서 대서양을 지나 갈라파고스섬까지 5년간(1831-36) 항해하면서 자연선택의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귀국 후 마침내 라마르크의 생물진화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 말서스의 인구론, 돌연변이 실험 및 과학적 기독사상인 유니테리언 등을 기초로 <종의 기원>(1859)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⑴ 모든 생물은 필요 이상의 자손을 낳는다. ⑵ 각 개체간에 변이가 일어난다. ⑶ 개체들은 서로 경쟁한다. ⑷ 환경에 가장 적응하는 개체만 생존한다. ⑸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은 강한 종자를 선택하여 생존시킨다.

다윈의 이론은 중세 가톨릭에 억압을 받아오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탈출구를 제공했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주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뉴턴의 절대적 자연관은 물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필적하는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 진화론은 기독교는 물론, 인간의 자유, 평등을 강조한 계몽주의와도 충돌했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지 6년 후, 오스트리아 부린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수도사인 멘델은 완두콩에 대한 6년간의 실험에 근거하여 역사적인 <유전법칙>을 발표했다. 그러나 어버이 형질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이 실험법칙은 어버이형질에 없는 새 형질이 탄생할 수 있다는 진화이론에 대치되어 묵살당하고 만다. 결국 멘델은 자기 학설을 인정받지 못한 채 “언젠가 내 시대가 올 것”이라는 비장한 유언을 남긴 채 영면하였다(1885). 그러나 1900년 드브리스, 코렌스, 챌마크에 의해 멘델법칙이 재발견되자 진화론은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러한 위기는 <유전자설>(1927)을 주장한 모건(1866-1945) 그룹에 의해 모면된다. 그는 9일간 생존하는 초파리에게 인공변이를 중첩시키면 신종이 탄생할 것으로 생각하고, 여러 대를 걸쳐 돌연변이를 유발시켜 얻은 유전적 자료를 진화론적으로 해석했다. 그의 제자 밀러는 이러한 해석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이들 모건그룹은 유전학을 발전시킨 공로로 노벨상(1933)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시도했던 초파리의 신종은 오늘까지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은 채, 퇴화된 돌연변이만 수십억 마리가 나타났을 뿐이다. 돌연변이는 진화 아닌 퇴화를 일으키며, 돌연변이의 처리로 대진화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기도: 하나님, 오늘은 우리 기독교의 최대 적인 진화론이 어떻게 형성되어,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공부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유물론적 진화론만 가르치는 학교교육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크리스천 지식인들이 진화론의 허구를 들어내고, 창조론을 체계화하는 일에 더욱 분발케 하옵소서. 아멘]


7.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인가?

사람은 어떻게 지구상에 태어난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학계에서는 진화론과 창조론이 대립해 왔다. 진화론자들은 450만년 전부터 침팬지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북경인, 자바인) 순으로 진화했고, 호모 에렉투스가 유럽으로 이동하여 28만년 전에 네안데르탈인으로, 4-5만년 전에는 크로마뇽인으로, 8천년 전에는 현대인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전통적인 다지역발생설이다.

영장류가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추리는 허리 경사각, 안면 경사각, 치아배열, 두뇌용적 등에 근거한다. 그들은 영장류가 사람으로 진화되었음을 입증하려고 유골을 발굴하여 자기 주장에 맞도록 해석하고 있지만, 해부학적ㆍ형태학적ㆍ분자생물학적 증거는 영장류나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전이형태도 없으며, 서로 완벽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중간형태가 없이 인류가 갑자기 출현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만든 이론이 최근의 단일지역발생설이다. 미국의 윌슨과 캔(1987)은 분자생물학 실험에 근거하여 현대인의 조상이 20만 년 전 중동부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여 중동을 거쳐 전 세계로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지역에서 첫 사람 아담이 해머(1995)는18만8천만 년 전에, 굿펠로우(1995)는 4만9천년 전에 살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여, 현대인의 출현 시기는 3만5천년까지 단축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7천년전 중동기원설에 접근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전 세계 호모 에렉투스들이 아프리카로 이동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현재,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이 단일지역발생설을 지지하지만, 다지역설의 주창자인 소온과 월포프(1992)는 단일지역설이 화석이나 문화유적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두 이론이 서로 상대방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공방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두 주장이 모두 허구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아프리카에서 소위 유인원의 유골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6백만 년 전의 유인원이라는 서부 아프리카(챠드)의 투마이원인(Homo sapiens tumai, 2002)을 비롯하여, 15만4천년 전의 현대인 유골이라는 이티오피아의 이다르투(Homo sapiens idaltu, 2003), 3만5천년 전까지 살았다는 이베리아반도의 네안데르탈인의 유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학계의 반론이 거세므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인원의 유골들은 대부분 조립과 조작, 심지어는 사기로 판명된 것이 많아 학계에 충격을 주곤 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진솔한 사과나 반성이 없었으며, 발표해 놓고 아니면 그만 이라는 식이다. 인류의 기원론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만일 영장류의 진화설을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한낱 동물의 일종이므로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 가치관을 갖게 할 것이다. 인류 역사도 수백만 년에 걸쳐 구석기ㆍ신석기ㆍ청동기ㆍ철기ㆍ현대의 순서로 발전해 왔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창조론을 받아들인다면, 인류 역사는 7천여 년의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며, 인간은 동물과 다른 존엄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계는 오로지 유인원의 진화만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들에게 당신들 조상은 몇 대째까지 원숭이였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 정색을 하고서 자기 조상을 모욕했다고 항의할 것이다. 원숭이나 침팬지가 사람으로 진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왜 오늘날 한 마리도 사람으로 바뀌는 원숭이나 침팬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인류가 문자를 가진 것이 5,000년이 넘었는데, 왜 원숭이의 진화에 관한 기록이 한 건도 없는 것일까?

원숭이나 침팬지가 사람으로 바뀐 시점을 450여만 년 전으로 추리하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인류역사를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로 구분한다. 설사 그런 순서로 발전했다 할지라도, 각 단계는 짧거나 중첩되는 기간이 많았을 것으로 추리된다. 창조론적 인류역사는 7,00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질 뿐이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잘못된 역사를 바르게 복원할 책임이 있다. 바른 역사가 복원된다면, 4,300여년 전 하나님께 반역하던 바벨탑의 모습과 그 너머로 세상을 뒤덮었던 노아의 대홍수가 나타날 것이며, 대홍수의 파도 너머로는 아담ㆍ하와가 거닐던 에덴동산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너머로는 우주를 만드시고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던 만물의 제일생성원인(Prima Causa)이신 창조주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기도: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빛나는 형상으로 빚어진 인간을 동물이 진화한 것처럼 현혹하는 진화론이 사라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진화론에 기초한 잘못된 역사관을 정사로 복원하는 일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앞장설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아멘]


구분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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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3780|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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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0

괴상한 과학, 생명 기원에 관한 이론들 (Weird-Science Origin of Life Theories)


       생명의 기원(origin of life)에 관해 보도하고 있는 최근의 두 뉴스 기사는 괴상한 것처럼 보인다. 한 기사는 스스로의 평가에서도 '괴상하게(bizarrely)”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1. 살아있는 먼지 (living dust) : 당신의 거실에 있는 먼지를 제거하라. 그것이 살아날 수도 있다. 이것이 PhysOrg 지(August 09, 2007)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의 요점인가? 한 국제 연구팀은 우주진(cosmic dust)은 플라스마(plasma) 상태에서 DNA처럼 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생명체의 성질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그 괴상한 말이 있다 : 

(PhysOrg 기사 : 물리학자들은 생명체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무기 먼지를 발견했다. 그 발견은 지구 밖 생명체가 건축벽돌로서 탄소 주성분의 분자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국제 연구팀은 어떤 상황 하에서 무기 먼지 입자들이 나선 구조로 조직화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일반물리연구소의 티시토비치 등은 플라스마 상태에서 무기물질들의 복합적 혼합물의 행동을 연구했는데, 그 구조들은 생명체의 유기화합물들이 관련하는 방식으로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 플라스마는 고체, 액체, 기체 상태를 넘어선 물질의 네 번째 상태이다...)   

꽤 괴상하게도(quite bizarrely), 이들 나선형 가닥들은 반직관적인(counterintuitive) 방법으로 상호 작용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으로 DNA과 단백질과 같은 생물학적 분자들과 같은 변화들을 겪는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예를 들어 그것들은 원래 구조의 2개의 복사본을 형성하기 위해서 나뉘어지고 갈라질 수 있다. 이들 새로운 구조들은 또한 그들의 이웃들에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덜 안정한 것들을 깨뜨려버림으로서, 플라스마 상태에서 가장 적합한 구조를 남기면서, 더 안정한 구조로 진화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성간 먼지로부터 형성된 나선형 덩어리(helical clusters)들은 어느 정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 복잡하고, 스스로 조직되어지는 플라스마 구조들은 살아있는 무기물질(inorganic living matter) 후보로서 자격을 얻을 수 있는 필요한 모든 성질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티시토비치(V. N. Tsytovich)는 말한다. ”그들은 자율적이고 번식하고 진화한다."

그러나 이 행동들은 실제 플라스마 먼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컴퓨터 모델(computer models)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유념해야만 할 것이다.


2. 우리는 화성인(Martians)일 수 있다 : 8백만년 전으로 주장되는 얼음에서 박테리아를 부활시킨(아래 링크 자료 1번 참조) 과학자들과 같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가 외계생명체 유입설(panspermia)를 반박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생명체는 혜성(comets)들에 실려서 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NorthJersey.com에서 밥 그로브(Bob Groves)는 말한다. 왜냐하면 방사선(radiation)이 생명체를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운석(meteorites) 안쪽에서는 생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생명체를 운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들을 위한 또 하나의 괴상망측한 과학 이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생명체는 지구상에서 생겨나기 꽤 어렵다. 화성은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이것은 논리적이지 않은가?” 밥 그로브는 다음과 같은 글로 끝마치고 있었다 : "만약 미생물들이 운석 안에 싸여졌다면, 화성으로부터의 여행에서 생존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Rutgers 대학의 팔코우스키(Paul Falkowski)는 말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화성인일 수도 있다” 그가 말했다.
 

기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들 생각의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는 유전정보(genetic information)가 플라스마 먼지 안에 어떻게 저장될 수 있었는지, 또는 유용한 기능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또는 정확하게 번식될 수는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체가 탄소 주성분의 유기체가 되기 이전에, 플라스마 먼지로서 출발할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유전적 인계(genetic takeover)"가 어떻게 또는 왜 일어났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득력 있는 개념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죽음의 행성 표면에서 어떻게 리보오스(ribose)들과 L-형 아미노산들이 모여 있게 되었는지, 단백질들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유전정보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것이 어떻게 운석 안으로 포장되었는지, 지구까지 충분한 양으로 손상 받지 않고 어떻게 배달되었는지, 그리고 지표면에 충돌하는 순간 어떻게 파괴되지 않았는지...등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그 기사는 '생명체의 건축 벽돌”들이 혜성들에 의해서 운반되었다는 생각을 기각하고 있으면서, 그들 자신이 비슷한 생각(운석에 의해 화성으로부터 운반되었다는)을 그럴듯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 15회 생명 기원에 관한 국제회의(Intl. Conference on the Origin of Life)가 8월 24-29일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개최되었다. 



무기력한 과학 기자들은 합리성의 수호자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라면 무슨 이야기든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보도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보도되고 있는 과학 기사들에 대한 유감스러운 상태이다. 이러한 글을 쓰는 같은 기자들이 창조론자들에 대해서는 조롱과 독설을 퍼부으며, 과학을 암흑시대로 되돌리려고 하는 과학 분야에서의 적으로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기괴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이야기들은 그것이 진화를 가정하고 있는 한, 어떠한 반대도 없이 즉각적으로 게재되는 것이다. 그들이 간혹 보도하는 유일한 논쟁은 두 진화론자들이 등장하여 누구의 진화이야기가 더 나은 이야기인 지에 대해서 논쟁할 때이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08.htm#20070810a

출처 - CEH, 2007. 8. 10.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40

참고 : 3987|3815|4021|3411|3180|3012|2860|2741|2785|2694|2589|354|386|4026|309|3858|4032|3626|3664|3579|3985|3981|3605|3322|2698|2533|3907|3769|3675|3100

AiG News
2017-05-30

미국인들은 진화론을 악마의 존재보다도 더 믿고 있지 않았다. 

(Poll Finds More Americans Believe in Devil than Darwin)


       미국에서 새로 실시된 해리스 여론(Harris poll) 조사에 의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믿는 것보다 지옥과 악마의 존재를 더 많이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Reuters, 2007. 11. 29)

이 결과는 미국이 선진 개발국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하였다. 이 조사는 2007년 11월에 성인 2,455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 

82 %  :  하나님(God)의 존재를 믿음.
79 % : 기적(miracles)을 믿음.
75 % : 천국(heaven)을 믿음.
72 % : 예수님이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
62 % : 지옥(hell)과 악마(devil)의 존재를 믿음.
42 % : ‘다윈의 이론(Darwin’s theory)’을 믿음 (로이터는 진화론을 이렇게 표현했음).
(35 % UFO의 존재를 믿음, 31 % 마녀(witches)의 존재를 믿음).

다윈의 이론을 제외하고, 각 항목에 대한 믿음은 가톨릭교인(Catholics), 자칭 개신교인(self-described Protestants)으로 기술된 그룹과 비교하여 거듭난 크리스천(born-again Christians)으로 기술된 그룹에서 더 높았다.[1] 생물체의 다양성에 대한 설명으로서 다윈주의적 진화를 받아들이며 다윈의 이론을 사실로서 믿고 있는 사람은, 가톨릭교인 중에서 43%, 개신교인 중에서 30% 였고, 거듭난 크리스천에서는 단지 16% 였다.

이러한 항목들에 대한 여론 조사는 특별히 놀라운 것이 없다. 물론 미국은 기독교 국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천국, 기적, 하나님, 지옥과 악마의 존재에 관한 믿음은 크리스천들만 오로지 믿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질문은 같은 그룹들(가톨릭교인, 자칭 개신교인, 거듭난 크리스천)에 대한 전 세계적인 여론 조사를 실시해 보았을 때도, 성경이 기술하고 있는 내용들(하나님, 초자연적 창조, 기적 등)을 믿는 데에, 그리고 다윈의 이론을 거부하는 데에 있어서 비슷한 경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또는 적어도 어떤 그룹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국제적일지 하는 점이다. 우리의 추측은 종교심이 많은 것이 미국인들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말씀 그대로 믿는 믿음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거듭난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도 사실일 것이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 미국인 82%, 하느님 존재 믿어 (2007. 11. 30. 중앙일보)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965059&ctg=-1

미국인 82% '하나님 존재한다' (2007. 12. 4. 기독신문)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50810

미국인 91% '神은 존재” 대졸이상 학력 34% '창조론 믿는다”(2007. 4. 1. 국민일보)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920495405&code=11141400

캐나다인 60% 창조론 수용 (2007. 7. 5.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782622.html?ctg=-1

미국민 78%, 성서는 하느님 말씀이라 믿어 (2007. 5. 31.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744874.html?ctg=13

미국인 절반이 창조론 믿어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46% 창조론에 동의 (2006. 6. 7.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mw_175298.htm

진화론 믿는 영국인 절반도 안 돼 (2006. 1. 30. 조선일보)

http://www.chosun.com/economy/news/200601/200601300091.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7/12/08/news-to-note-12082007

출처 - AiG News, 2007. 12. 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15

참고 : 3949|3688|3391|3216|3107|2678|2535|2527|2443|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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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0

SETI 신호들은 정보를 적재할 수 있었다? 

(SETI Signals Could Be Loaded with Information)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s)의 유별난 특성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고도의  정보 운반능력을 가지도록 허락한다.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외계지적생명체 탐사계획) 연구원인 소스탁(Seth Shostak)은 Space.com (2008. 1. 31)에서, 스웨덴 연구원들은 협대역 라디오파(narrowband radio waves)의 궤도각운동량(orbital angular momentum)에서 정보의 암호화를 허용할 수 있는 ‘초공간 채널(subspace channel)’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 정보는 광대역 통신을 방해하는 공간을 가로질러 혼잡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협대역 파장은 매우 간단한 짧은 메시지 이상의 더 많은 것들을 암호화할 수 없을 것으로 SETI는 간주해 왔었다. '그런 단조로운 메시지들은 많은 정보가 없는 기초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추가적이고 숨겨진 복잡한 정보들을 적재할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 (예술계에서 숨겨진 신호에 대한 또 다른 예는 Science Daily (2008. 2. 5) 지에 실린 이 이야기를 보라). 만일 연구원들이 이런 종류의 암호메시지(steganography, 평범한 시각으로는 숨겨진 정보)를 해독할 수 있다면, SETI 신호들은 막대한 량의 정보들을 적재할 수 있는(무선 랜처럼) ‘거대 와이파이(a galactic wi-fi)’ (소스탁이 이렇게 부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861년에 맥스웰(James Clerk Maxwel)에 의해서 제안된 전자기파 이론을 언급하면서, 소스탁은 ”간단한 신호는 더 복잡한 메시지를 위한 하나의 암호(cipher)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맥스웰이 꿈꿨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하늘과 땅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말했다.


라디오파에 대해서 말하면, 비틀즈(Beatles) 팬들은 NASA의 기념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2008년 2월 4일 오후 4시(그리니치 표준시로 0시)에 NASA는 창립 50주년 기념일에 맞춰 존 레논(John Lennon)이 40년 전에 작곡한 ”우주를 가로질러(Across the Universe)”라는 노래를 심우주 통신망(Deep Space Network)을 통해 우주로 송출했다. JPL (Jet Propulsion Laboratory, NASA의 제트 추진 연구소)의 보도 자료(2008. 1. 31)는 그 행사를 보도하였는데, 한 팬은 그것을 위해 특별한 웹 사이트(website)를 만들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Wikipedia 마저도 재빨리 업데이트 되었다. 폴 맥카트니(Paul McCartney)는 ”내 사랑을 외계인들에게 보내주오”라고 말했고, 존 레논의 미망인인 오노 요코는 ”나는 이것이 우리가 우주를 가로질러 수십억의 행성들과 교신하게 될 새로운 시대(new age)의 시작임을 알고 있다” 라고 말했다.



좋다! 아무도 들어야 할 사람이 없는 우주 공간으로 그것을 송출하라. 존 레논의 두서없는 가사가 전하고 있는 잡동사니는 조리가 없고 반이성적이다. 그 노래는 천문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 노래는 ”아무 것도 나의 세계를 바꾸지 못하리(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라는 가사를 계속 반복하면서,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을 유도한다. 이것이 NASA가 정말로 전 우주에 퍼뜨리기를 원하는 그런 종류의 과학적 태도인가? 그 가사의 뜻은 무엇인가? 우리는 더 이상 전 지구적 온난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비틀즈는 열역학 제2법칙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어떤 내용을 12번이나 말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NASA는 ”라디오를 켜라, 주파수를 맞춰라, 벗어나라” 등과 같은 60대의 반문화적인 슬로건을 따르도록 아이들을 장려하지 말고, 그들에게 물리학과 공학을 가르쳐야만 한다. 장래의 우주 계획은 마하리쉬(Maharishi Mahesh Yogi, 초월명상가)같은 협잡꾼 도사가 제공하는 의미 없는 주문을 외우는 학생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 마약, 록큰롤 보다는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건전하고 밝은 마음을 가진 분별력 있고 영리한 학생들을 필요로 한다. (미안하다. 조금 전 마하리쉬가 죽었다는 소식(NYT, 2008. 2. 6)을 듣기 전에 이 글을 썼다.)


다른 각도에서 SETI를 살펴보면, 소스탁(열렬한 진화론자이며 지적설계의 비판가)이 알 수 없는 지성으로부터의 정보를 함유한 전자기적 신호를 인정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자연의 EM 파는 의도적인 의사소통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만약 운반 신호가 존재한다면, 정보는 진폭변조(AM), 또는 주파수 변조(FM), 또는 궤도 각운동량변조에 의해서 그것에 부여될 수 있다. 어느 경우에서나, 만일 사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정보는 탐지될 수 있다. 열쇠가 없다면, 그것은 횡설수설처럼 보일 것이다. 소스탁의 글은 그들이 찾고 있는 모든 것들이 지속적인 협대역의 미약한 소리(persistent narrowband whistle)라고 주장했던 2005년 12월 그의 기사(아래 관련자료 링크 2번 참조)가 거짓말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새 기사는 모든 것이 지적설계임을 가리키고 있다.

모든 과학자들 중에 우뚝 솟은 거인이요, 뜨거운 크리스천이었던 제임스 클락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의 전기를 자세히 읽어보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2.htm#20080204b

출처 - CEH, 2008. 2. 4.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210

참고 : 233|3012|2741|2641|1426|922|2860|386|3579|311|312|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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