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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경 역사를 확증해주고 있는 고대 앗수르 유물. 대영박물관에 있는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

성경 역사를 확증해주고 있는 고대 앗수르 유물. 

대영박물관에 있는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 

(Monuments from Ancient Assyria confirm biblical history. 

Archaeological evidence from the British Museum)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은 성경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직접적인 증거와 배경적 증거들을 제공하는 막대한 양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1]

성경과 관련이 있는 고고학적 발견의 전체 영역을 간결하게 요약하여 선택적으로 구성한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도 있다. 오늘날과 같은 세속적 분위기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 기록의 문자적 정확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지 못한다.

앗수르 왕궁의 발굴로 발견된 전시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기원전 880년 경에 앗수르 제국 (Assyrian empire)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거의 3세기 동안 공포와 전제정치가 횡행했으며, 여러 왕국들을 점령하여 복속시켰다. 몇몇 앗수르의 왕들은 성경의 이스라엘과 유다 땅을 침략하고 협박하여 항복과 조공을 받아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상호간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성경과 앗수르의 기념비와 연대기들 모두에서 다양한 이름과 전투들이 언급되어있는 것은 당연하다. 앗수르의 기록은 성경 기록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성경 외적인) 독립적인 증거가 된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의 석비 [ANE 118883] (대영박물관 6호실)

오늘날과 같은 세속적 분위기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 기록의 문자적 정확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지 못한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두 왕의 이름을 언급한 앗수르 기념비는 흥미롭고도 중요하다. 세 개의 유사한 기념비가 박물관에 같이 서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883~859 BC)를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제국의 확장과 건설 정책을 시작한 앗수르 왕이며, 앗수르의 무기체계에 새로운 공성(攻城) 기술, 특히 투석기와 궁수의 엄호를 받는 토성(土城)과 공성기(攻城機)를 도입했다.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III)의 석비 [ANE 118884] (대영박물관 6호실)
                             
성경 역사에 있어서 매우 큰 중요성을 갖는 옅은 갈색의 기념비도 볼 수 있다. 살만에셀 3세의 석비(Stela of Shalmaneser III)로 알려져 있으며, 쿠르크 석비(Kurkh Monolith)라 부르기도 한다. 살만에셀 3세는 앗수르를 기원전 859~824년에 통치했다. 석비를 보면 손 위에 위치한 작은 그림으로 상징되어있는 신들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석비에 글은 왕의 모습 위에도 쓰여있고, 뒷면에도 쓰여있는데,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Ahab)과 수리아(Syria = 아람 Aram)의 왕인 벤하닷 1세(Benhadad I)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포함하여, 살만에셀 3세의 여섯 번의 초기 전쟁을 기술하고 있다.

석비의 기록들은 <열왕기하>와 <역대하>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확인해줌으로써,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다.

살만에셀 3세는 (기원전 853년에) 서쪽으로 진격하여 여러 나라를 압박하였으나, 하마스(Hamath)의 왕 이루렐니(Iruleni)는 (아합과 벤하닷을 포함한) 12명의 왕들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연합 방어군을 조직했다. 아합과 벤하닷 두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전쟁을 벌였지만, 3년 평화기에는(왕상 22:1절에 언급됨) 살만에셀 3세를 격퇴하기 위해 하마스와 연합했다.(이 시기는 선지자 엘리사가 사역한 기간이다.) 전투는 하마스 근처 카르카르(Karkar, Qarqar라고도 씀)에서 벌어졌다. 살만에셀은 그의 석비에서 이 전투를 다음과 같이 기술해놓고 있었다 :

”나는 카르카르로 진격하여, 파괴하고, 정복하고, 왕족들을 사로잡았다. 다마스커스의 하닷에셀(Hadadezer, 벤하닷 1세)은 도우려 전차 1,200대, 기병 1,200명, 보병 20,000명… 이스라엘 왕 아합은 전차 2,000대, 보병 10,000명을…보냈다.”

동맹군의 전력은 보병 50,000명, 기병 14,000명, 전차 4,000여대로 기록되어 있다. 살만에셀 3세는 큰 승리를 거두었고, 시체로 강이 막히고, 계곡은 피로 물들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고대 근동의 왕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과장하고,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이 전투는 패배였는데, 살만에셀은 실질적으로 진격에 실패했으며, 적의 영토를 결코 점령한 적이 없다. 성경에는 아합이나 벤하닷이 그러한 규모의 후퇴를 했다는 언급이 없다. 이 일이 일어난 다음, 아합은 벤하닷을 공격하다가 전장에서 죽었다.(왕상 22:34~35)

카르카르 전투는 성경에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석비를 보면 <열왕기하>와 <역대하>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그들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념비는 발굴되어, 성경의 인물들이 성경에 기록된 장소와 연대에 실제로 살았었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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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See documentation in Masters, P., Heritage of Evidence in the British Museum, The Wakeman Trust, London, 2004.



번역 - 홍기범

링크 - http://creation.com/assyrian-monuments 

출처 - Creation 35(3):48–49, July 2013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17

참고 : 5985|5625|5463|5415|4804|4395|4394|4390|3872|4400|4391|1805|2545|4385|4329|4148|3974|3945|1536|5741|5402|4852|4405|4409|4422|4381|3148|2323|4237|4100|1413|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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