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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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Bryant Wood
2007-04-20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The walls of Jericho)


      여리고(Jericho)’ 라는 지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 나팔소리, 무너지는 성벽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믿음과 승리의 놀라운 이야기이지만,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을까? 회의론자들은 아니라고 말하며, 단지 여리고의 유적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의 주된 이유는 1950년대에 영국의 고고학자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이 지휘하여 수행한 현장발굴의 결과 때문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 

”이스라엘 민족의 공격이 있었음에 틀림없는 후기 청동기 시대(Late Bronze Age)에 도시성벽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여리고의 발굴에서 여호수아서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기술되어있는 여리고 성벽의 파괴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1]

캐슬린 케년의 발굴 보고서를 편집하고 공동 저술했던 토마스 홀란드(Thomas A. Holland)는 나타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군사적 정복설과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성벽에 대한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캐슬린 케년이 내린 결론은, 청동기 말기(ca. 1400 BC)에 도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고고학적 자료도 없다는 것이다” [2]

그러나 금세기 동안 계속 수집되어온 고고학적 증거들을 주의 깊게 조사해보면, 이것과는 매우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요새였던 여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그들이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성벽이 하늘에 닿는 큰 성읍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명기 9:1). 케년의 세심한 조사는 여리고가 정말로 강력하게 요새화되었고 그것이 불탔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그 유적들의 연대를 잘못 추정한 결과, 고고학적 발견과 성경의 기록이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녀는 청동기 시대의 여리고성은 BC 1550년 경에 이집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증거물들을 더 심층 분석해 본 결과, 파괴는 BC 1400년 경에 (후기 청동기 1기 말에) 발생했고, 이것은 성경에서의 정복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3]


여리고 성이 있던 구릉(mound or tell)은 아래쪽에 돌로 된 옹벽(retaining wall, 기초성벽)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토벽(earthen rampart)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옹벽은 무려 4-5m (12-15 feet)의 높이에 달했다.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8m의 진흙벽돌로 된 성벽(mudbrick wall, 외벽)이 있었다.[4] 이 진흙벽돌의 제방(둑, embankment) 위로는 유사한 진흙벽돌로 된 성벽(내벽)이 있었는데, 그 내벽의 기저부위는 외벽의 바깥쪽 땅에 비해서 14m나 높았다 (그림 참조).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7일 동안 매일 성 주위를 돌면서 행진할 때 그들 위에 아스라이 보였던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의 이 굳건한 요새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벽 안쪽의 도시 면적은 약 6 에이커(환산하면 약 200m x 120m) 정도이지만, 안쪽 도시와 요새화 된 성벽들이 차지하는 면적들을 다 합하면, 전체 면적은 50%가 더 넓어져서 약 9 에이커 정도가 된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에이커 당 200명을 기준으로 하면, 상부 도시의 인구는 대략 1,200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금세기초 독일 팀의 발굴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이 외벽과 내벽 사이의 제방에서도 살았다. 또한, 성 주변의 마을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도 성 안으로 피난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공격했을 때 수천 명이 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캐슬린 케년의 서쪽 발굴지에 근거한 요새화 된 여리고 성벽의 단면 개념도.


무너진 성벽

여리고 성의 거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위에 대해 잘 대비하고 있었다. 고대는 물론이었고 현재에도 여리고 성내에는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샘이 성벽 안쪽에 있다. 공격 시점은 수확이 막 끝난 시기였으므로(여호수아 3:15), 그들은 충분한 식량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1930년대에 존 가스탕(John Garstang)의 발굴 자료와 또한 캐슬린 케년의 발굴에서, 가나안 인들의 집들에서 곡식이 가득 찬 항아리들이 발견된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 풍부한 식량 공급과 충분한 물이 있었으므로, 여리고 백성들은 아마 몇 년 동안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7일째에 성 주위를 일곱 번 돌고 난 후에,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fell down flat)”로 기록되어있다 (여호수아 6:20). 여기서 히브리어의 의미는 성벽이 ”성벽 아래로 무너졌다 (fell beneath itself)”는 뜻을 가지고 있다.[5] 여리고에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여리고 성이 종말을 맞았을 때, 진흙벽돌 성벽이 무너져 내려서 외벽의 아래 부분에 쌓여졌다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년의 조사는 가장 상세한 것이었다. 성이 있던 구릉의 서쪽 부분에서 그녀는, 외벽의 거의 꼭대기에 쌓여있었던 붉은 진흙벽돌들이 외벽의 기저부에 떨어져서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아마도 제방의 정상부 또는 외벽 위쪽의 진흙벽돌들이 무너져 내림으로서 쌓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6]


바꾸어 말하면, 케년은 성벽이 무너져 내려 쌓인 벽돌더미를 발견한 것이었다! 1997년에 성이 있던 구릉의 남쪽 끝에서 발굴 작업을 한 이탈리아 팀도 정확하게 같은 것을 발견했다.

성경에 따르면, 라합(Rahab)의 집은 요새화된 성벽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여호수아 2:15). 만일 성벽이 무너졌다면, 라합의 집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알다시피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그녀의 가족들을 그녀의 집안으로 대피시키면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구조되었다 (여호수아 2:12-21, 6:17,22-23). 여리고 성의 둔덕 북쪽 끝에서 고고학자들은 라합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1907-1909년의 독일팀의 발굴결과를 근거로 한 고대 여리고 북편 성벽의 추정도. 가옥들이 돌로 된 옹벽 위에 놓여져 있는 진흙벽돌 성벽을 의지하여 지어졌음에 유의하라. 성경은 라합의 집이 성벽을 대하고 지어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수아 2:15).


1907-1909 년 독일팀의 발굴에서, 북쪽 성벽의 짧은 구간은 다른 부분과는 달리 무너지지 않았음이 발견되었다. 그 진흙벽돌 성벽의 일부분은 아직도 2m 이상의 높이로 서 있었다.[4]  더구나 이 성벽에 잇대어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 라합의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7] 성벽이 집의 후면 벽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정탐꾼은 쉽게 도주할 수 있었다. 도시의 북쪽인 이 위치로부터 정탐꾼이 3일간 숨어있었던(여호수아 2:16,22) 유대 광야의 산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위쪽의 내벽과 아래쪽의 외벽 사이의 제방에 위치한 이곳은, 전쟁이 났을 때는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므로, 집값이 쌌을 것이다. 이 지역은 도시 내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지역으로, 아마도 빈민촌이었을 것이다.


성벽이 무너지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5m 높이의 하부 옹벽을 넘어갈 수 있었을까? 발굴결과에 의하면 무너져 내린 외벽의 진흙벽돌들이 옹벽 옆에 쌓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ramp)를 형성했던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도시에 들어갔던 방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즉, 똑바로 위로 넘어서, straight up and over)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여호수아 6:20). 이스라엘 백성은 올라가야만 했고(go up), 그것이 바로 고고학이 밝혀낸 것이다. 그들은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 구릉의 바닥 부분인 지상에서 방어벽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여호수아 6:5절)).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가 1997년에 여리고 성의 남쪽 끝에서 이탈리아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된 돌로 된 외벽의 기초부분(옹벽)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6장에 설명된 바와 같이 성을 공격했을 때 이 외벽 주위를 행진했다.


화재에 의한 파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여호수아 6:24). 다시 한번 고고학적 발견은 이 기록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파괴된 성의 동편 일부분이 발굴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어디에서든 발굴이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1m (3 feet) 정도 두께의 재와 불에 탄 잔해들이 발견되었다. 케년은 이 철처한 파괴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

”파괴는 철저했다. 벽과 바닥(floors)들은 화재로 인해 검거나 붉게 타 있었고, 방마다 쏟아진 벽돌, 목재들, 가재 집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의 방에 떨어져있는 파손된 잔해들은 심하게 불탔지만 동쪽 방들의 벽들은 화재의 영향을 받기 전에 붕괴되었던 것처럼 보인다.”[8]

가스탕과 케년은 둘 다 불에 의해서 파괴된 곡물로 가득한(full of grain) 많은 저장 항아리(storage jars)들을 발견했다. 이것은 고고학적 기록에서 매우 특별한 발견이다. 곡물은 단지 식품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도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곡물과 같은 귀중품은 정복자에 의해 약탈되는 법이다. 여리고에서는 왜 곡물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가? 그 해답은 성경에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여호와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여호수아 6:17)


여리고에 남아 있어서 현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곡물은 3500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아간(Achan)만이 순종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여호수아 7장에 기록된 대로 아이(Ai) 성에서의 참패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많은 곡물들을 손대지 않고 남겨둔 것은 성서기록의 또 다른 면의 진실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풍부한 식량과 물의 공급이 있고 강력하게 요새화된 성을 정복하는 데에는 통상 몇 달, 심지어는 몇 해가 걸릴 것이다. 성경은 여리고가 단지 7일 후에 함락되었다고 말한다. 여리고의 폐허에서 발견된 곡물 항아리들이 가득 차 있음은 성 안의 백성들이 곡물을 거의 소비하지 않았고, 포위기간이 짧았던 것을 나타낸다.


여리고의 교훈

고고학과 성경 사이의 외견상 불일치 때문에, 여리고는 한때 성경속의 이야기로만 여겨졌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정확한 해석을 했을 때에는 바로 정반대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든 세부사항에서 성경의 기록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고학적 발견은 여리고 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입증하였던 것이다.


여리고의 성벽이 어떻게 무너졌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다. 가스탕과 케년은 둘 다 도시가 종말을 맞았을 때에 지진(earthquake)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지진을 사용하셨더라도, 지진이 필요한 정확한 시점에 일어났고, 라합의 집을 보호했던 것은 여전히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든지,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리신 것이다. 백성들이 7일 동안 성벽 주위를 행진하고 난 후에, 여리고의 벽은 믿음으로 인해 무너졌던 것이다 (히브리서 11:30).


여리고는 세속적 학문의 결과가 성경과 일부 일치하지 않더라도 성경의 기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영적 교훈이 되고 있다. 우리도 때로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요새와 같은 성벽에 직면하곤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한 일(great and mighty things)을 행하셔서(예레미야 33:3)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Kathleen M. Kenyon, Digging Up Jericho, London, Ernest Benn, pp. 261–62, 1957.  
2. Thomas A. Holland, Jericho, The Oxford Encyclopedia of Archaeology in the Near East, Vol. 3, pp. 220–24, ed. Eric. M. Mye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 223, 1997.  
3. Bryant G. Wood, Did the Israelites Conquer Jericho?,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6(2):44–58, March–April 1990.  
4. Ernst Sellin and Carl Watzinger, Jericho die Ergebnisse der Ausgrabungen, Osnabrück, Otto Zeller Verlag, p. 58, 1973 (reprint of the 1913 edition).  
5. The root of the word tahteyha in Joshua 6:5, 20 is tahath, meaning ‘underneath,’ ‘below’ with a reflexive 3rd feminine singular pronominal suffix ha referring back to hômah, ‘wall.’  
6. Kathleen M. Kenyon, Excavations at Jericho, 3:110, London, British School of Archaeology in Jerusalem, 1981.  
7. The Hebrew phrase in Joshua 2:15 is beqîr hahômah. Usually qîr means a small wall, but can also indicate the vertical surface of a wall. Brown, Driver and Briggs’ lexicon suggests this for Joshua 2:15 (p. 885), and in this case the preposition be would mean ‘against’(p. 89). Thus, literally, ‘her house [was built] against [the] vertical surface of the [city] wall.’ Return to text.
8.  Kenyon, Excavations at Jericho, 3:370.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여리고 고고학의 권위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성경 연구회(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의 책임자이며, 키르벧 엘 마카티르 발굴(Kh. el-Maqatir Excavation) 단장이다. 고고학과 성경에 관하여 더 알고 싶거나 이스라엘에서 우드 박사와 함께 발굴에 참여하고 싶으면 다음 주소로 연락하기 바란다.
The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PO Box 356, Landisville, PA 17538, USA
(전화번호 800-430-0008)  


 

*참조 : The story of Jericho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402

Is the Bible accurate concerning the destruction of the walls of Jericho?

http://www.christiananswers.net/q-abr/abr-a011.html

고고학으로 증명된 여리고 성의 기적  (2017. 1. 24. 기독일보)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21n2_jericho.asp 

출처 - Creation 21(2):36–40, March 1999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72

참고 : 2362|3148|1412|1413|3233|1805|512|2545|2797|3249|2330|3974|3945|3898|3372|2525|2323|4148|4100|4071|4463|4237|4258|4329|4375|4376|4377|4380|4381|4382|4383|4385|4390|4391|4394|4395|4400|4402|4405|4409|4422|4458|4470|4742|4771|4804|4819|5985


Carl Wieland
2006-07-17

언어의 변화 

(Towering Change)


     오늘날의 수천 개 언어가 모두 따로따로 만들어졌는가? 그렇지 않으면 언어들이 진화되었는가?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그 답은 창세기에 있다.

위랜드(Wieland) 박사가 싱가포르에 있는 교회에서 창조과학세미나를 하는 도중 쉬는 시간에 세 명의 젊은 기독교인이 찾아와 물었다. '우리는 모두 훈련된 언어학자입니다. 우리는 미얀마(버마)에 선교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혹시 성경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당황함에서 회복된 후 대답했다.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에 걸친 격변적인 대홍수가 끝난 후 (모두가 노아 가족의 후손인) 살아남은 사람들은, 흩어져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했다. 그들은 시날(Shinar)(수메르어/바빌로니아) 평원에 바벨이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의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때는 대홍수 이후 약 100 여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모두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었으며,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반역에 대한 벌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켰으며, 따라서 그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으며, 지구의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다른 언어의 생성은 갑작스럽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당황하고도 곤혹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 그렇게 쓰여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창세기를 열어서 관련된 구절을 읽어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의 문화로 인한 타고난 정중함을 타나내기는 했지만, 오히려 의구심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이 성경적 역사에 대해 지식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 선교지로 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백한 의문은 제쳐두고라도, 그들이 선교지에서 헌신하기로 맹세한 대상인 바로 그 주님의 말씀이 어째서 그렇게 깜짝 놀라게 했단 말인가?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보통의 언어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언어가 항상 변화하고 있는 방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오늘날에는 서로 간에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언어들 사이의 역사적 연결고리에 관한 증거를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역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언어, 즉 그들 가족들이 사용하는 호키엔 중국어(Hokkien Chinese), 그들의 이웃인 인도인이 사용하는 타밀어(Tamil), 미얀마의 카렌(Karen) 부족이 사용하는 언어 등 모두가 동시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생겨났음을 외견상으로 의미하는 창세기의 구절이 있다.

그러나 물론 창세기에서는, 파푸아 뉴기니의 800개 이상의 언어(및 다른 많은 방언들)가 중동에서 순간적으로 생겨났다는 것 이상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선은, 언어와 그 변화라는 전체 주제를 주목하자.


언어의 변화

언어가 변화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를 600년 전의 영어로 읽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 the yonge sonne hath in the ram his half cours yronne, and small fowls maken melodye, that slepen all the night with open yë ….' 심지어 요즘의 킹제임스 성경(1769년 판)도 현대 영어가 아닌데도, 최초의 1611년판 하고는 상당히 달라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일반 대중이 이해하려면 수만 군데를 고칠 필요가 있다.

특히 활자의 인쇄와 같은 기록의 보급이 변화의 속도를 낮추었을 것이다. 이것은 글자를 갖지 못한 문화에서는 극적인 것이다. 이것은 특히 일부 무리가 다른 부류와 잠시 동안 접촉이 끊어졌을 때 더욱 그러하다. 만약 파푸아의 두 개의 마을이 황야의 산지 지형으로 서로 격리되어 있다면, 수세대 전에는 그 주민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했을지라도, 요즈음 그들을 같이 모아놓으면 서로 간에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쪽 ‘시간에 따른 언어의 변화’ 기사를 보라.)

그런데 언어가 갖는 연관성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증거가 있다. 나는 독일어와 영어를 읽을 수 있지만, 네덜란드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어떤 네덜란드어 문장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마치 네덜란드어가 다른 두 언어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English

Dutch

German

water

water

Wasser

dog(hound)

hond

Hund

clock

klok

Uhr

한편,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의 멜라카(Melaka [Malacca])에 있는, 500년 된 네덜란드 선원 묘지를 방문했을 때, 묘비에 있는 비문이 현대의 네덜란드어보다 더욱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이들 언어들이 과거에는 더 근접했을 것이다. 그것들은 서로로부터 ‘갈라졌으며’,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와 영어 사이에 연계성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즉, 소위 말하는 로망스어의 일부) 및 고대 라틴어 사이에도 연계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두 그룹 내부에서 뿐 아니라, 그룹들 사이에서의 연계성 또한 역력히 분명하다. 예를 들어, 앞서의 예에서, 시계에 대한 독일어 단어 ‘uhr’는 영어의 ‘hour’와 발음이 비슷하며, 또한 이것은 (시각에 대한) 라틴어 ‘hora’와 비슷하다.

사실상, 이들 언어뿐 아니라, 그리스어, 러시아어, 심지어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포함한 많은 수의 소위 말하는 ‘인도-유럽’ 언어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도-유럽 언어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음을 부인한다면, 앞장의 도표에 동일한 사물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발음되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것이 그저 환상적으로 일치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가장 오른쪽 줄에 있는) 헝가리어를 제외한 이들 모든 언어들이 동일한 ‘조상 언어’를 갖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그것을 ‘원(原) 인도-유럽(proto-Indo-European)’ 언어라고 하며, 심지어는 그들 몇몇 단어들이 원래는 어떠했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하기도 했다.

EnglishGermanDanishLatinSpanishItalianFrenchGreek(mod)RussianHungarian
OneEinsEnUnusUnoUnoUnEnaOdyinEggy
TwoZweiToDuoDosDueDeuxDhyoDvaKettő
ThreeDreiTreTresTresTreTroisTriaTriHárom
FourVierFireQuattuorCuatroQuattroQuatreTesseraChyetiryeNégy
FiveFünfFemQuinqueCincoCinqueCinqPentePyat'Öt
MotherMutterMorMaterMadreMadreMèreMeteraMat'Anya
FatherVaterFarPaterPadrePadrePèrePaterasOtyetzApa
IIchJegEgoYoIoJeEgoYaÉn
YouDuDuTuTuTuTuEsyTiÖn
HouseHausHusDomusCasaCasaMaisonSpitiDomHáz
DogHundHundCanisPerroCaneChienSkylosSobakaKutya
CatKatzeKatFelesCatoGattoChatGataKoshkaMacska
LionLöweLøveLeoLeónLeoneLionLeontariLyevOroszlán
MonkeyAffeAbeSimiusMonoScimmiaSingeMaimoudaObiez'yanaMajom
BearBärBjørnUrsusOsoOrsoOursArkoudhaMyedvyed'Medve
SnakeSchlangeSlangeSerpensSerpienteSerpenteSerpentFidhiZmyeyaKigyó
HorsePferdHestEquusCaballoCavalloChevalAlogoLoshad
CowKuhKoVaccaVacaVaccaVacheVodiKorovaTehén

여러 가지의 같은 사물에 대한 단어를 비교해 보면 다양한 언어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는 독일어와 영어와 덴마크어보다도 그들 서로 간에 (그리고 고대의 라틴어와) 확실히 근접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몇 가지 예만 보더라도 서로 다른 색깔군의 언어들끼리도 상호-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들 모두는 인도-유럽어족이다. (주: 그리스어와 러시아어는 다른 알파벳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그에 근사한 영어로 대치시켰다.) 흥미롭게도, 음영이 없는 칸에서 보듯이, 헝가리어는 유럽 대륙에 있는 나라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유럽 언어가 아니다. 오늘날 스페인에 사는 한 종족의 언어인 바스크어는 전혀 다른 어족으로부터 왔다. 각 언어는 자기 그룹 외의 언어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 이것은, 각 그룹의 모든 언어들은 바벨의 ‘줄기(stem)’ 언어 중의 하나로부터 나왔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본문을 보라).


그래서 언어는 진화했는가?

분명히 언어가 변화하기도 하고, 하나의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서 하나 이상의 언어가 생길 수도 있지만, 대규모의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개념은 거기서 끝난다.

사실상 나는 ‘언어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변화는 주로 인간성의 독창성과 타고난 창조성 및 융통성에서 오는 것이지, 선택에 의해 여과된 임의의 유전학적 돌연변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연구된 언어들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간단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원시적’이라는 일부 종족들이 문법은 상당히 복잡한 언어를 말하고 있다. 차라리 언어의 ‘퇴화’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바벨은 어떠한가?
 
창세기 10:32은 가계(家系)가 확장됨에 따라 지구의 여러 곳으로 사람들이 분산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11장에서는 그런 분산의 메커니즘에 의하여 새로운 언어들이 갑작스레 만들어졌으며,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극심한 ‘의사소통의 단절’로 사람들은 화가 나, 서로를 맹렬히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며, 적개심이 생겨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무리들을 급속히 배척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 절이 나타내듯이, 각각의 확장되는 가계 또는 ‘친족’이 서로 밀착되어 있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대홍수 이후 시간이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친족이 수백 개씩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 친족이 자기들만의 언어를 갖게 하고, 또 하나님의 목적을 신속히 이루기 위해서 언어가 몇 십 개로만 분리되어도 되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각 친족들은 더욱 더 멀리 이주했으므로, 어떤 그룹들은 친족이 서로 갈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래의 ‘바벨 언어’의 일부 혹은 모두가 변화했으며 여러 개의 새로운 언어로 갈라졌는데, 이들 모두는 연계된 징후가 보인다.
 
비교적 짧은 시간 간격에 걸쳐 변화가 누적되어 방언들이 생겨났다(예를 들면, 스코틀랜드 사투리, 리버풀, 오스트레일리아 영어; 미국에서는 북부와 남부).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매우 다르게 되어 한쪽 지방의 말을 다른 쪽 지방에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서, 결국에는 그들을 서로 다른 언어라고 분류하는 기준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인도-유럽 ‘어족’(語族)은 모두 바벨에서의 하나의 ‘줄기’ 언어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몇 개의 분리된 언어로부터 수백 개의 언어 그룹이 생겨난 것은 그 사건 이후 수천 년이 지난 후이다.
 
이러한 추론에 근거하여, 오늘날의 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수의 언어들을 인도-유럽 어족과 같이 몇 그룹의 ‘어족’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어족’과 다른 어족 사이에는 연계성이 없다. 이 해석 모델에 따르면, 그것은 각각의 어족이 그 앞의 조상 언어에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바벨의 ‘줄기 언어’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관찰한 것과 실제로 일치한다. 예를 들면, 중국어와 일본어와 한국어를 포함하는 중국-아시아 어족은 인도-유럽 어족이나 기타 다른 어족에 속하는 언어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언어들은 점차 사멸하는데, 언어학자들이 연구한 적이 없는 언어가 많다. 따라서, 서로 다른 ‘어족’의 수를 추산하기도 힘들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8에서 20까지이다(보통 12 또는 13). 그것은 창세기의 설명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진화론자들은 여러 어족을 겨우 겨우 ‘연결시켜’ 가며 그것들이 결국에는 공통의 조상에 이르도록 시도했다. 즉, 원래의 인도-유럽 어족과 중국-아시아 어족이 어떤 이전의 언어로부터 나온 것임을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드러난 증거를 보면, 바벨에서 분리된 몇 개의 언어들이 다양하게 변화되어 오늘날에는 많은 수의 언어가 생겨났다는 것과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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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른 언어의 변화 - 세 가지 개념

(A) 진화의 나무
언어에 관한 진화론적 신념 - 동물의 꿀꿀거리는 소리로부터 진화된 초기의 한 가지 원시언어로부터 모든 언어가 유래되었을 것이다.

(B) 언어의 잔디
창세기에 관한 공통적 개념(오해). 오늘날의 모든 언어는 바벨에서 각각 생겨났다.


(C) 창세기 과수원

대홍수 직후에는(대홍수 전 언어의 변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노아의 가족이 사용하던 단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 바벨에서 갑자기 초자연적으로 가족단위로 언어가 나뉘어졌다. 이렇게 생긴 각 언어들이 또 각각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 각 그룹은 ‘공통의 조상’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들 세 가지 도표는 생명체의 변화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음을 주목하라. 진화론적 신념(A)은 모든 종(species)이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이다. 오해의 개념(B)은 세상의 모든 종(species)이 별개로 창조된 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적 실제(C)는 각각의 종류대로 창조되었고, 같은 종류 내에서 변화와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며(새로운 정보가 없으므로 진화도 없다) 대홍수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리와 들개와 코요테 등은 방주에 탔던 하나의 ‘개 종류’의 선조로부터 모두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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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The Hebrew here can be taken in several ways. It can mean that the tower was going to reach into the heavens, a figure of speech meaning it would be impressively high (like we talk of ‘sky-scrapers,’ or Wolkenkratzer ‘cloud-scrapers’ in German). It may also mean that its top would be, like some of the ziggurats in ancient Babylon (Babel), open to the heavens as a giant astrological observatory for the false worship of those times.
2. The original KJV published in 1611 used spellings like Iesus, Iehovah, vnto, euill and beleeueth. It also contained the Apocrypha, cross-referenced to it from the canonical books, and listed verses from the Apocrypha in its Scripture reading schedule. The 1611 original also had over 8,000 marginal notes suggesting alternative translations and uncertainty about some words in the original languages.
3. Television, with its ‘homogenizing’ influence on language, also slows divergence, and may even be responsible for some convergence, e.g. between Australian and U.S. English.
4. By analysing common features, linguists can determine that the Romance languages diverged from a common tongue later than that tongue diverged from the common ancestor of the Germanic languages (English, Dutch, German, etc).
5. Linton, R., The Tree of Culture, Alfred A. Knopf, New York, 1955, p. 9.
6. Sometimes the criterion of mutual unintelligibility to determine separate languages takes second place to political divisions—e.g. Norwegian, Danish and Swedish. Note also that each individual speaks a little differently from everyone else—these are called personal idiolects.

* NB: Not Felis, as commonly thought. Return to table.



번역 - 이종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2/i1/towering_change.asp ,

출처 - Creation 22(1):22–26, December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398

참고 : 2928|736|730|2545|2405|1536|2859|188|3261|498|1395|4281|4237|4228|4499|4119|3938|5153|4996|4557|4543

Peter Dennis
2006-05-12

창조주에 대한 마오리 족의 기억. 

: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Maori memories of the Creator)


      뉴질랜드의 마오리(Maori) 족은 풍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문화 안에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성서적 설명을 증거하는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마오리 족은 대략 1,000년 전에 폴리네시아(Polynesia)로부터 항해로 건너와 뉴질랜드(New Zealand)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마오리 족과 다른 폴리네시아인들은 원래 아시아에서 왔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언어가 매우 비슷하고(특히 말레이지아어, 인도네시아어와 유사함), 도자기, 도구, 음식, 신앙 등이 유사하다.


유럽인들이 아오테아로아(Aotearoa. 뉴질랜드에 대한 마오리족의 호칭. ‘긴 흰 구름의 땅(Land of the Long White Cloud)’을 의미)에 왔을 때, 그들은 생각지도 않게 질병들과 새로운 문화를 가지고 왔다. 이것은 마오리족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수십 년이 지나, 마오리 족의 인구는 급감하였고, 자긍심도 잃어버렸고, 그들의 많은 습관들과 전통들은 사라져갔다. 세기의 전환기에, 독학한 인류학자인 엘스돈 베스트(Elsdon Best)는 마오리 족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는 뉴질랜드 북섬(North Island)의 동해안 종족들 속에 들어가 살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 신앙, 관습들을 기록했다.


마오리 족들은 많은 아시아 종족들처럼 지식(knowledge)을 엄청나게 숭상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면 기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식을 너무도 신성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식은 극도로 타부(tapu, 대단히 신성하거나, 제한되는 것)시 되었다. 그것은 변경되지 않고 세대를 통하여 구두로(verbally) 전해져 내려왔다. 마오리 족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족의 추장이 땅의 위임(Land Commission)을 요구하였던 지난 세기에 입증되었다. 그는 그의 가계를 34 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조상들의 직업, 타종족과의 결혼 등을 포함한 상세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가계(genealogy)에는 1,400명 이상의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엘스돈 베스트는 종족의 사제(priests)들에 의해서 소중하게 전해져오고 있던 구두 전승(oral traditions)에 대해서 놀랐다. 그는 마오리 족이 하와(Eve)와 뱀(serpent), 그리고 최초의 사람은 흙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가장 놀랄만한 전통은 초월자(Supreme Being)의 지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지식은 너무도 타부(tapu)시 되어 가장 높은 등급의 사제와 종족의 추장 정도만 그것을 배우는 것이 허락될 정도였다.


이 지식은 유럽인들에게는 원래 숨겨졌다. 왜냐하면 신의 이름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저주의 말로 사용되어짐으로서 간혹 불경스럽게 말해질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마오리족의 사제들은 그들의 신이 선교사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초기 선교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제들은 ‘에오아(Io, Ee—or)’ 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초월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에오아는 각 속성을 나타내는 12 개 이상의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에오아 누이 (Io nui) - 지극히 높으신 에오아. 다른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다.
에오아 로아 (Io roa) - 영원하신 에오아. 그의 존재는 영원하시며, 결코 죽지 않으신다.
에오아 마투아 (Io matua) - 아버지이고 어머니이신 에오아. 그는 천국, 세계, 구름, 동물, 우주 등을 만들어내신 부모이시다. 그는 모든 것 너머에 계시고, 사람을 포함하여 만물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시다.
에오아 마투아 테 코레(Io matua te kore) - 처음부터 계시는 에오아. 그는 부모가 없으시며, 형제나 자매 등이 없으시다.
에오아 타케 타케 (Io take take) - 근본이신 에오아. 에오와는 영원하시며 영속하신다.
에오아 마탕가로(Io matangaro) - 보이지 않으시는 에오아. 그는 그의 창조물에 의해서 어디에서도 보여지지 않는다.
에오아 마타누이 (Io matanui) - 많은 눈으로 살피시는 에오아. 그는 모든 것을 보실 수 있고, 관찰하실 수 있다.
에오아 테 토이 옹가 랑기 (Io te toi o nga rangi) - 천국의 왕관이신 에오아. 그는 12 하늘 중에서 가장 높으시고, 그를 넘어서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에오아 테 와낭가 (Io te wananga) - 지식의 근원이신 에오아.
에오아 테 푸켕가 (Io te pukenga) - 모든 생각의 근원이신 에오아.
에오아 마타호 (Io mataaho) - 빛이신 에오아.
에오아 테 휘휘아 (Io te whiwhia) - 모든 것의 공급자이신 에오아.


비록 마오리족의 많은 사람들이 에오아가 성경의 하나님과 같다는 것을 아직까지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 마오리족 사이에 에오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일부 종족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의 전통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마오리족과 같은 종족들은 그들의 문화 안에 또는 어떤 다른 형태로 그들의 전통을 보존해오고 있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수백여 민족들의 기억과 전설들 속에는 창조, 대홍수, 언어의 분산을 가져온 바벨탑 사건 등과 같은 창세기와 관련된 사건들이 명백히 남아있다.[1]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Lystra)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행 14:16-17) 라고 했던 말은 그래서 적절했다.


* Peter Dennis is a secondary school teacher, specializing in Mathematics, Chemistry and Physics. Peter has given creation presentations in his church and on his local radio.


Note

1. This is exactly what one would expect, since all are descended from people who knew of these events. However, things which happened later in the Bible, like the story of Moses crossing the Red Sea, for example, would not be expected to feature among the stories of scattered peoples across the globe, since the common cultural link was no longer there after Babel. 


*참조 : Maori Creator Io
http://creation.com/maori-creator-io

How do creation and global flood legends from different cultures compare to the biblical account?
http://creation.com/noahs-flood-questions-and-answers#legend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8/i4/maori.asp

출처 - Creation 18(4):22–23, September 1996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89

참고 : 1799|299|2104|1795|1536|268|512

David Down
2006-04-13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적 사실성! 

: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계속 입증하고 있다.

(False History—'out with David and Solomon!')


세속적 고고학은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를 거부하려고 한다.

이것은 고고학계에서의 최근 추세이다. 그리고 세속적 세상은 이들 성경 속 인물들의 역사적 실제성을 거부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호주의 ‘화이낸셜 리뷰(The Financial Review)’ 지는[1] 강령과 다르게, ‘틀린 성경(False Testament)’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고고학이 어떻게 성경의 역사성을 해체시켰는지를 설명한 다니엘 라자르(Daniel Lazare)의 글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싣고 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통상적으로 확립된 고고학적 연대를 받아들인다면, 논쟁은 매우 강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비판은 두 개의 중요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다윗(David)과 솔로몬(Solomon)의 이야기를 지지할만한 고고학적 기록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 고고학적 지층들이 명백히 성서의 기록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주장이 비록 정당하다 하더라도, 이것은 단순히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고고학에서 자주 말하는 것처럼, ”증거의 결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성경적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꾸며낸 이야기로 폄하시켰는데, 증거들이 나중에 발견되고 나서 망신들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 왕의 실존을 지지하는 비문의 증거가 있다. (아래 박스글을 보라).


그러나 두 번째 주장은 더 설득력이 있다. 고고학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설명해 보자.

성서적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구릉지(hills)에서 살기를 선호했다. 예수님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14). 주거지의 잔해들이 쌓여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이 구릉지의 높이는 올라만 갔다. 폭풍, 지진, 침략 등은 이들 도시들을 파괴했고, 뒤이은 점유자들은 단순히 그 지역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건축물들을 쌓았다.


고고학자들은 이제 30 m 아래로 또는 구릉지(hill, 소위 ‘tel’이라고 불려지는)의 원래 높이 보다 약간 위까지 주거지 잔해(debris)들을 파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이 잔해들을 잘라 들어가면서, 연속적인 주거층들에 포함되어 있는 도기(pottery)들의 형태를 확인함으로서 지층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이들 층들은 초기 청동기(Early Bronze),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후기 청동기(Late Bronze), 철기 시대(Iron Age)라고 불려져 내려왔다. 비록 어느 누구도 이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이 연속된 지층들에 부여되어진 연대들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성서적 정보를 무시하면서, 이 유식한 고고학자들은 19페이지 표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대략적인 연대기를 결정해왔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은 제2기 철기시대(Iron Age II)의 초기에 생존했어야 한다. 그러나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문제가 있다.


성경에 반대되는 사실들?

솔로몬의 건축사역에 관해서 열왕기상 9:17-19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있다.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또한 성경은 솔로몬의 재력을 다음과 같이 부러울만한 것으로 묘사한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 (역대하 1:15). 그러나 제1기 철기시대와 제2기 철기시대 초기에서 발견되는 건축물 잔해를 살펴보면, 이 시기는 극도의 가난, 적은 인구, 빈약한 건축 활동으로 점철된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비평가 라자르(Lazare)가 ”그러한 왕국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가리키는 하나의 술잔(goblet), 하나의 벽돌(brick)도 남아있지 않다”라고 말하며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2].


그래서 만일 일반적인 고고학적 연대기가 정확하다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들에 대한 신뢰감을 버려야만 한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우연히도 이 모든 연대들은 대략 6천년 전의 이 세계의 창조와 노아 대홍수의 연대와 관련되어 있다 [3]. 대홍수의 성경적 연대는 BC 2300년 경이지만, 초기 청동기(Early Bronze Period)는 대게 BC 3100년 경에서 시작한다.


또 다른 면을 보라.

약간의 근본적인 사고가 요구되지만, 다행히도 이 어둠을 통과할 수 있는 빛이 있다. 실제로 고고학적 연대기가 옳게 맞추어질 때, 성경이 증거하는 역사는 깜짝 놀랄만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인 고고학적 연대기를 600년을 깎아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는 확고한 고고학적 증거가 제시되어야만 하는 4개의 뚜렷한 시대로 나눠진다.


첫번째로, 출애굽(Exodus)와 가나안(팔레스타인) 땅의 군사적 점령은 사사(Judges) 시대에 앞서서 일어났다. 따라서 반드시 (가나안 문명의) 파괴와 화재의 증거가 있어야만 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도기(pottery)형태, 상이한 장례의식과 제조기술을 가진 새로운 민족(이스라엘 사람들)의 등장이 있어야한다 (출애굽기 35:30-35).


이것은 바로 우리가 정확히 초기 청동기시대(Early Bronze Age) 말과 제1기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I Period) 시대 초기에서 발견한 것이다. 여리고를 발굴했던 캐서린 캐년(Kathleen Kenyon)은 그녀의 책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초기 청동기 문명의 마지막 끝은 완전한 격변적 사건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기 청동기시대 말에 건축된 여리고 성벽(walls of Jericho)의 마무리 공사는 낡고 부서진 벽돌로 서둘러서 급하게 진행되었으며, 화재로 파괴될 당시에도 아마도 완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 안쪽의 도시는 뒤이은 삭박(denudation)에 의해 거의 모두 사라졌는데, 이는 모든 출토물들이 연대기 상에서 완전히 소실되었고, 새로운 민족이 초기 거주민의 자리를 차지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팔레스타인의 도시들은 동일한 연대적 소실을 보여준다. 새로운 거주자들은 도시생활에 흥미가 없는 유목민들이었고, 이들은 이미 유약해지고 쇠퇴한 그전의 거주자들을 완전히 내쫓았거나 흡수해서, 초기 청동기 문명의 모든 흔적은 사라져 버렸다” [4].


”완전한 소실... 새로운 민족... 가나안의 모든 도시들... 새 사람들은 유목민이었다... 그 이전 사람들을 완전히 내쫓았거나 흡수했다...” [4]. 도시생활에 애당초 흥미가 없었던 사막의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침입을 보여주는 이러한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리고의 초기 청동기 시대(Early Bronze period) 말기 지층에서 나온 검은 재의 두꺼운 층.


텔 도단(Tel Dothan). 구약성경 도시들의 폐허들을 포함하고 있는 전형적인 구릉지.


아직도 더 많은 관련성

그 다음(두 번째)에는 이스라엘 왕들의 치하에 의한 풍요와 권력의 시대가 있었다. 제2-B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II B) 시기와 관련해서 저명한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인 마자르(Amihai Mazar)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중기 청동기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다. 이 시기의 대규모 요새화와 함께 이것은 바로 번영하는, 그리고 부유한 도시 문화를 입증하고 있다. 궁전과 사원의 규모는 이 시기의 전제정치(autocracy)와 신권정치(theocracy)에 의한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5]


뒤이어(세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앗시리아(Assyria)와 바벨론(Babylon)에 포로로 끌려갔던 국외추방이 있었다.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정복이 있은 직후,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이사야 1:7). 따라서 우리는 그 다음 지층인 후기 청동기(Late Bronze Age) 지층에서 인구감소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고, 결국 찾게 된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인 핑클스타인(Finklestein)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제 2-B 중기 청동기 시기에 전 국가는 번창하였고... 요새화된 도시들, 마을들, 개인 농가들이 전 지역에 건설되었다... 제2 중기 청동기의 엄청난 번영과는 대조적으로, 후기 청동기 시대는 정착하는데 심한 위기가 있었음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거주가 지속되었던 장소들의 크기가 자주 줄어들었다.” [6]


네번째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방지로부터 그들의 원 거주지로 이동하는 귀환의 시대가 있었다. ”온 회중(돌아온 자)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에스라 2:64). 핑클스타인은 ”제 1기 철기시대(Iron I period)는 다시 한번 구릉에 자리한 국가의 극적인 인구변화를 목격케 하는데, 이번에는 정반대 방향으로의 변화이다.” 라고 말한다 [7]. 그리고는 고고학자들의 틀린 연대기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를 강조하고 있다. ”... 제2기 중기 청동기, 후기 청동기, 제1기 철기시대... 에는 만족할만한 답변을 요구하는 두 개의 심각한 질문이 제기된다. 왜, 그리고 어느 곳으로 제2기 중기 청동기 시대의 인구들, 즉 사실상 구릉 지대의 모든 주민들이 ‘사라졌는가’? 제1기 철기시대에는 수백 개의 장소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나타나게’ 된 것인가?”[7] 만일 핑클스타인이 그의 연대기를 바꾸었다면, 곧 그 답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위험과 고난의 시기였다. 건축 활동은 느렸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느헤미아 4:17). 그런데 이 시기는 라자르가 가난의 시기라고 주장하던, 그래서 솔로몬의 왕국과는 적합하지 않다고 그토록 크게 나팔을 불어대던 초기 철기시대였다. 라자르씨, 어떤 면에서 당신의 말은 맞는다. 그것은 솔로몬의 통치 시기와 일치하지 않지만, 만약 당신의 연대기를 정확히 조정한다면,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한 시기와 정확히 맞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이해하기

물론 하나님의 절대 실수가 없으신 말씀에 맞추어 인간들의 부정확한 견해를 변경해야 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기의 개정(revision)은 이와는 독립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고, 어떤 임의적인 ‘속임수’ 같은 도전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다음의 세 가지 관점을 고려해 보라.
 
1. 개정된 연대기는 분산된 많은 지역들에서의 성경적 기록과 현저하게 일관성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개정의 타당성을 더 한층 확인해 준다. ‘해결하는 방법’이란 이름의 아래 박스 글을 보라.

2. 고고학적 지층들에 관한 ‘표준’ 연대기는 지층들 자체로부터의 정보가 아니라, 단순히 이집트 왕조(dynasties of Egypt)와의 대비를 통해 결정되었다.

3. 일부 학자들은 이제 이 연대기에 도전하고 있다.


피터 제임스(Peter James)가 쓴 책 ‘어둠의 세기(Centuries of Darkness)’라는 책의 서언에서, 저명한 케임브리지 교수인 콜린 렌푸르(Colin Renfrew)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인류 역사상 중요한 국면에 대한 기존의 연대기들은 수 세기동안 오류투성이 였다. 따라서 역사는 다시 재기술 되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혁명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에 대한 결정적인 분석이 옳으며, 현재 연대기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중임을 느끼고 있다.”[8]


그렇다면 고고학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기록을 지지하는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은 실제 존재하였고, 팔레스타인과 주변 지역을 지배했던 한 위대한 국가의 성공한 건축자들이었다.


*데이비드 다운(David Down)은 이스라엘 고대유물 당국과 함께 이스라엘에서 정기적으로 발굴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고고학자이다. 그는 9개의 다른 지역을 발굴했고, 현재 ‘발굴(Diggings)’이란 학술지와 ‘고고학적 발굴(Archaeological Diggings)’이란 잡지의 편집인이자 발행인이다.



References

1. Lazare, D., The Financial Review, 28 March–1 April 2002, pp. 1–2, 8.
2. Ref. 1, p. 8.
3. Pierce, L., The forgotten Archbishop, Creation 20(2):42–43, 1998; In the days of Peleg, Creation 22(1):46–49, 1999.
4. Kenyon, K., Archaeology in the Holy Land, Ernest Benn Limited, London, p. 134, 1965.
5.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 Day, New York, p. 213, 1990.
6. Finklestein, I., The Archaeology of the Israelite Settlement, Israel Exploration Society, Jerusalem, pp. 339–341, 1988.
7. Ref. 6, p. 341.
8. James, P., Centuries of Darkness, Pimlico, London, pp. XIV, XVI, 1992..


다윗왕에 대한 유물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은 27년 동안 북 이스라엘의 고대 댄(Dan) 지역에서 발굴을 했던, 경험이 풍부하고 인정된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이다. 그는 1994년에 쓴 그의 책 ‘성서의 댄(Biblical Dan)’에서, 아람어로 쓰여진 부서진 석비(stela, 비문 따위가 있는 돌기둥)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 석비의 연대는 BC 8세기의 3/4이 지난 시점으로 추정되며, 벽의 충전물로 단순히 사용되었는데, 필적 형태로 보아 원래 글씨는 BC 9세기에 새겨진 것으로 제안되었다.

이 비문에는 ‘다윗의 집(House of David)’으로 해석될 수 있는 ‘BTH DWD’ 란 표현이 있었다. [1] 이것은 다윗과 그의 집(가족)이 BC 9세기에 존재했다는 상세한 성서적 역사기록을 명백하게 확증하는 것이었다. 비평가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그것이 벧세메스(Bethshemesh, House of the Sun) 또는 베들레헴(Bethlehem, House of Bread)과 같은 단순히 장소의 명칭이라고 말했었다. 이 제안에서 유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벧세메스와 베들레헴은 알려진 장소이지만, 벧스데이비드(Bethdavid) 라고 불리는 도시는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사적으로 성경을 불신하기 위해서, 일부 비평가들은 비란이 석비를 위조했다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Reference

1. Biran, A., Biblical Dan, Israel Exploration Society, Jerusalem, pp. 275–278, 1994. 



해결하는 방법

성경은 상세한 연대기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문서(historical document)이다. 그러한 하나의 문서가 다른 출처의 (예를 들어 4개의 분리된 지역(사건)에서의) 연대기 정보와  ‘시기가 동일하지 않을(out of synch)’ 때, 한 부분(사건)의 연대를 다른 연대기에 맞추어 조정한다면 이들 네 부분이 모두 동시에 잘 조화되고 들어맞는다면, 이것은 조정의 타당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건 1(Event 1)을 상황 1(Circumstance 1)에 맞추기 위해서는, 연대기 2(Chronology 2)를 ‘x’ 년 만큼 앞당길 필요가 있다  (아래 그림 참조).

3개의 추가적인 사건들의 맞추기가 이루어지고 더 이상의 불일치가 없으므로, 이것은 개정의 필요성을 확증하는 강력한 독립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참조 :

Did I Find King David’s Palace? (Mazar, Eilat. Biblical Archaeology Review, Jan/Feb 2006)
http://www.bib-arch.org/bswb_BAR/print.asp?PubID=BSBA&Volume=32&Issue=1&ArticleID=4&UserID=0&

Egyptian history and the biblical record: a perfect mat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857

The problems of traditional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44-47.pdf

Evidentialism–the Bible and Assyrian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2

이스라엘 학자 '다윗왕 궁전터 발견”주장 (2013. 7. 22.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101m_View&corp=fnnews&arcid=13072202063787&cDateYear=2013&cDateMonth=07&cDateDay=2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4/i4/history.asp 

출처 - Creation 24(4):16–19, September 2002

구분 - 5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33

참고 : 3148|1412|1413|2323|2525|303|512|2740|2545|2362|1536|1805|3974|3945|3898|3872|3372|4329|4375|4376|4377|4380|4381|4382|4383|4385|4390|4391|4394|4395|4400|4402|4405|4409|4422|4458|4470|4742|4771|4804|4819|5116|5625

David Catchpoole
2005-12-31

잉카문명의 매듭 암호 키푸가 해독되다. 

(Unravelling the knotty khipu code)


      창조론의 선구자 아더 윌더스미스(Arthur Wilder-Smith, 1915–1995) 교수가 DNA에 저장되어있는 정보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암호(예를 들면 모르스 부호)에 따라 끈(rope)에 나있는 매듭(knots)의 예를 제시하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1], 나는 그것을 하나의 어색한 비유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누가 매듭지어져 있는 끈이 암호화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연히 한 백과사전[2]을 보게 되었고, 누군가가 이미 그것을 생각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였을까? 그들은 남아메리카의 잉카(Incas) 문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키푸(khipu) (또는 매듭(knot)을 의미하는 퀘추아(Quechua)족 단어인 ‘quipu’)로서 알려져 있는 정교한 매듭지어진 끈(knotted strings)의 형태로서 정보를 저장하고 있었다. 과학사가(science historian) 였던 르랜드 로크(Leland Locke)는 1920년대에 키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그것들이 일종의 직물 주판(textile abacus)으로서, 그 매듭들은 계산(calculations)을 저장하는 데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었다.[3, 4]

그러나 로크의 새로운 발견도 스페인의 정복으로부터 남게 되었던 600여 개의 키푸 모두를 해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몇 십년 동안 많은 키푸들이 ‘명백하게 비 숫자적(clearly nonnumerical)’이었다는 증거들이 꾸준히 증가하게 되었다. 몇몇 연구자들은 잉카의 매듭지어진 끈들은 하나의 기록된 언어(a written language, 결승문자)일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4,5]  


그리고 이제 하버드 대학의 게리 어톤(Gary Urton)은, 잉카 사람들은 현대 컴퓨터가 발견되기 500년 이상 전에 복잡한 2진 코드(binary code)를 사용하여 키푸에 정보를 저장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6개의 2진 코드를 선택하는 방법에는 매듭의 방향(앞쪽 또는 뒤쪽), 끈의 회전과 가닥, 끈의 종류(무명실 또는 양모) 등이다. 24개의 끈 색깔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각 매듭은  1,536개 (즉, 24 x 26)의 가능한 ‘정보 단위(information units)’ 중의 하나로 암호화 될 수 있었다. 이것은 평가되고 있는 1000-1500 개의 수메르인의 설형문자(Sumerian cuneiform symbols)들보다 더 많은 것이고, 이집트의 상형문자(Egyptian hieroglyphic signs)들의 수보다 두 배는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도 어톤은 아직도 키푸 암호를 완전히 해독하지는 못했다. 완전한 해독을 위해서는 키푸와 일치되는 알려진 언어로 된 문서의 발견을 필요로 한다. 즉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 가능하게 했던 ‘로제타 석(Rosetta stone)’과 유사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4, 6] 한편, 그는 키푸 암호 안에 저장되어있는 많은 정보들을 해독하기 위해서, 21세기 컴퓨터 기술을 사용해서 매듭지어진 끈에서의 공통적인 패턴(common patterns)들을 조사하였다. 어턴이 정보의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3개의 키푸를 발견했을 때, 그는 그것을 ”이것은 키푸가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꽤 강력한 증거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이와는 반대로, 거기에는 공유되는 코드(shared code)가 있었다. [5]


잉카 사람들이 이러한 정교하고 수학적인 복잡한 암호코드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초기의 인류가 원시적이고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신, 잉카 사람들은 고도로 통합적이고 기능적인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교한 키푸가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매우 지적이었고,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실과 같은 가닥에 어떠한 암호로서 복잡한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은 잉카 사람들이 키푸를 발명하기 오래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유전자 안에 들어있는 DNA 나선이다. 여기에는 사람 몸체 전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정보가 들어가 있고,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창조된 이후 수많은 세대와 세대를 지나도록 성공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7]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첫번째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만약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면, 이것을 생각해 보라. 암호 체계는 오직 지성(intelligence)으로부터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질들이 우연히 저절로 암호를 만드는 일은 결단코 결단코 일어날 수 없다!!! 키푸 암호가 그 발명자의 지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DNA 암호(키푸보다 극도로 복잡하고 풍부한 정보)도 그 발명자의 지성을 가리키고 있는 지표(indicator)인 것이다. DNA는 물질들로부터 결단코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DNA에 간직되어 있는 정보는 어떤 곳(somewhere)에서부터 와야만 했다.[8]


태초에, 정보(information)가 있어야만 했다. 태초에 지성(intelligence)이 있어야만 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References and notes

1. See also Wilder-Smith, A.E., The scientific alternative to neo-Darwinian evolutionary theory, TWFT Publishers, California, USA, pp. 74–75, 1987, which mentions the Inca code.
2. Funk & Wagnalls Standard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International Edition, Funk & Wagnalls, Vol. II, p. 1036, New York, USA, 1968.
3. What is a khipu? <www.anthropology.wisc.edu/chaysimire/titulo2/khipus/what.htm>, 28 August 2003.
4. Mann, C.C., Cracking the Khipu Code, Science 300(5626):1650–1651, 2003.
5. Lorenzi, R., Inca written language hidden in code? Discovery Channel, <http://dsc.discovery.com/news/briefs/20030630/inca_print.html>, 29 July 2003.
6. The Rosetta stone contained Greek (in demotic and ordinary scripts) as well as Egyptian hieroglyphics—this allowed J.F. Champollion to decipher the latter in 1822.
7. See Sarfati, J., DNA: marvellous message or mostly mess? Creation 25(2):26–31, 2003.
8. Gitt, W., In the Beginning was InformationCLV—Christliche Literatur-Verbreitung e.V., Bielefeld, Germany, 1997.


*참조 : 고대 잉카 매듭은 회계 보고서 : 하버드 연구진, 결승문자 세계최초 해독
http://www.busannews.com/news2000/asp/news.asp?gbn=v&code=0420&key=20050813.2201421513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7/i3/khipu.asp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37/

출처 - Creation 27(3):40–41, June 200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53

참고 : 8|9|591|2520|2533|601|732|1902|1903|164|2040|1424|2660|1612|328|1981|1905|1635|1926|354|585|589|3765

David Criswell
2005-07-14

고대문명들과 현대인 

: 고대인의 전지, 계산기, 점화전 

(Ancient civilizations and modern man)


     고대 문명들은 많은 진화론자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발달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Ancient Egypt)는 최초 문명들 중 하나로 여겨지나, 그 업적들의 정교함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을 혼란하게 해왔다. 피라미드의 건설에 나타난 그들의 수학적 정확함이 그러한 하나의 예이다. 이집트인들은 그러한 건축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발달된 수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었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도 다른 고고학적 발견들과 비교된다면 그 가치가 무색해진다. 

컬럼비아 대학 전기화학과의 콜린 핑크(Colin Fink) 박사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의 구리로 도금된(copper-coated) 많은 공예품(artefacts)들은 전기화학용품(electro-chemical exchange)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1] 이것은 화학 원소들의 혼합물을 포함하고 있는데, 한 물체가 여기에 담가지면 전기화학적 전하가 물체의 표면에 입혀진 구리를 통해 흐른다는 것이다.   


.2,000년 된 파르티아(Parthian) 시에서 발굴된 꽃병과 같은(vase-like) 공예품. 독일의 고고학자 빌헬름 쾨닉(Wilheilm Konig) 등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일종의 전지(battery)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카(Scientific American)’ 지의 한 기사는 이 기술에 관하여 ‘이후에 소실되어 지난 세기에 패러데이(Faraday)에 의해서 재발명 될 때까지 묻혀있던 비밀’ 이라고 언급하고 있다.[2] 클레오파트라 시대까지 페르시아인들도 이 원시 형태의 전지(electric battery)를 개발했었다.[3] 전지는 10cm (4 inch) 크기의 작은 원통형으로 얇은 구리를 이용하였고 금판(gold-plate) 세공을 하였다. 사이언스 다이제스트(Science Digest) 지는 이 전지를 ‘인류 최초의 전기의 산업적 이용’이라고 언급하였다.[4]

더욱 최근의 발견은 몇몇 사람들이 2000년 된 고대 이집트인의 무덤에서 모형 글라이더(model glider)를 발굴한 것이다.[5] 이전 NASA에서 일하던 윌리암 코리스(William Corliss)는 이것은 ‘매우 진보된 형태의 푸시형-글라이더(push-glider)’의 축소 모형이라고 하였다.[6] 코리스는 이 ‘비행기’가 지금의 글라이더처럼 공기 위에 미끄러져 다녔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델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그 균형 잡힌 설계비율이나 디자인이 정말로 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모형 글라이더인가? 일부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2000년 된 이집트인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다.

한편 인근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사람들이 심지어 행성 운동(planetary motions)들을 계산할 수 있었던 극도로 정교한 계산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일부 과학자는 그것을 초기 ‘컴퓨터’ 라고 불렀으나, 다른 이들은 그것을 시계(clock)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시대를 훨씬 앞선 공학적 기술을 나타내는 물건들이었다.[7]


.이것은 정교한 계산 장치(calulating device)의 복제품으로 예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침몰한 그리스 배에서 출토되었다.

성경은 이같은 발달된 고대문명들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회의론자와 많은 세속적인 과학자들은 성경의 역사적 확실성에 오랫동안 반대의견을 제시해왔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많은 기독교도인들은 바벨(Babel)이 문명의 시작이었고, 홍수 이전의 노아와 그 가족들은 단순히 원시적인 부족 사회에 의해서 지배되는 한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성경과 조화될 수 없다. 방주와 같은 거대한 배를 건조하는 데에 기술적 복잡성이 문제인 것 같으나, 더 큰 문제는 어떻게 노아가 당시 제한된 자원을 가진 사회에서 36개의 테니스 코트의 갑판크기를 갖는 거대한 방주를 제조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크고 발달된 문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문명 흐름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홍수가 전 세계를 뒤덮었음을 믿고 있었다 (베드로후서 3:5-7). 더욱이, 인구 성장률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지구는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대략 1,700년 동안에 적어도 10억 명의 인구가 있었을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8] 이것은 확실히 전 세계적으로 문명들이 분포했음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홍수 이전 시대의 문명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전체 고대 세계가 대홍수로 파괴되었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심지어 이 파괴를 지구가 불로 파괴될 때와 비교하기도 한다. (베드로후서 3:5-7). 대홍수는 사실상 고대 인류의 모든 흔적들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만약 있다면 아주 빈약한 흔적들만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도 중요하지 않은 이례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무시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들 이례적인 발견들은 고대 문명들이 몇몇 이후의 문명들보다 훨씬 더 발달되었을 수도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플로리다에서는, 근로자들이 도라호(Lake Dora)와 유스티스호(Lake Eustis) 사이에서 운하를 파는 동안에 고대 도시의 흔적들을 발굴하였다. 이 도시는 해수면보다 훨씬 아래의 낮은 곳에 존재했다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카(Scientific American) 지는 보고하였다.[9]

또 다른 예는 북극 해안(Arctic coast)에 묻혀있던 거대한 도시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10] 오늘날 이 지역은 추운 생활환경으로 인하여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에스키모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 도시의 인구가 최소 4,000명 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1] 이러한 도시의 크기는 현대의 조사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12]    

많은 다른 예들이 있다. 정말로, 많은 발굴들이 이들과 유사한 ‘비정상’ 적인 발견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는 그들의 진화론적 시간 척도를 위협하는 어떠한 것도 무시해왔으나, 증거를 무시하는 것은 단순히 진실을 무시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이러한 문명들은 정말로 존재했으며, 고고학자들은 고도의 과학적인 성과를 가리키는 많은 기묘한 인공유물(artefacts)들을 발견했다. 아마 이들 중 가장 독특한 것은 수 세기 전 발굴된 것으로 암석에 박혀있는 기묘한 실린더형의 물체일 것이다. 많은 연구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실린더는 코일이 감겨진 구리에 의해서 증거되는 것처럼, 전기를 일으키는 기계적 장치인 것으로 밝혀졌다. 몇몇 연구자들은 그것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오늘날의 점화전(spark plug)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13]


화석들이 엉겨붙어있는 암석 안에서 발견된 실린더(cylinder). 몇몇 연구자들은 그것은 현대의 점화전(spark plug)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증거들은 성경 비판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숨겨질 수가 없었다. 인류는 발달된 문명을 형성하기위해 그들의 지능이 진화하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발달되어 있었던 것이다.


축적될 수 없었던 기술

창세기 11:6-9에는 하나님이 바벨에서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면서,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사람들이 문명과 문화 사이의 교류가 마침내 정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노아의 세대는 꽤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다.

베드로 사도는 초대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5-­7). 

고대 인류(우리의 조상들)의 명예를 훼손하기보다는, 우리는 스스로를 겸손히 여기고, 땅 속에 희미한 유물들로 남아있는 문명 이전의 역사로부터 하나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들이 구축하는 것들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왕국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David Criswell, B.A., has written for Bible-Science Newsletter and other publications, and has been working as a professor's assistant at a college in Texas, USA. He is currently completing his Master of Divinity degree.


Web links
Q&A: History

 

REFERENCES AND FOOTNOTES

1. William Corliss, Ancient Man: A Handbook of Puzzling Artifacts, The Sourcebook Project, Glen Arm (Maryland), 1978, p. 443.
2. ibid.
3. Harry M. Schwalb, 'Electric Batteries of 2,000 Years Ago', Science Digest, Vol.41 No.4, April 1957, pp. 17­~19. See also Creation magazine, Vol.16 No.2, March­May 1994, pp. 10­~13.
4. Ibid, p. 18.
5. Ref. 1, pp. 454­~455.
6. Ibid.
7. Derek J. de Solla Price, 'Unworldly Mechanics', Natural History, Vol.71 No.3, March 1962, pp. 8­17.
8. John Whitcomb and Henry Morris, The Genesis Flood, Presbyterian and Reformed, Phillipsburg, New Jersey, 1961, pp. 25­~27. At the time of the Flood there could have been more than three billion people around the globe, assuming a population growth of only 1.3% per year. The current average is 1.8 per cent. Population studies are a big problem for old-Earth advocates. There are simply not enough catastrophes in history to keep man's population growth low enough to allow for 100,000 years or more.
9. Ref. 1, pp. 83­~84.
10. Froelich G. Rainey, 'Mystery People Of The Arctic', Natural History, Vol.47 No.3, March 1941, pp. 148­~155.
11. Ibid.
12. Ibid, p. 148.
13. A.L. Rawson, Transaction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 Vol.11, pp. 26~­29, as cited by J.R. Jochmans, Strange Relics From The Depths Of The Earth, Forgotten Ages Research Society.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the Bible-Science Association, Minneapolis, 1979, p. 17.

 

 

 *참조 : 고대 피라미드에도 전기 사용됐다?
http://www.hellodd.com/Kr/DD_News/Article_View.asp?Mark=14407

2천100년전 정교한 기계장치는 ‘천체 슈퍼 컴퓨터’ (2006. 11. 30. 동아일보)
http://www.donga.com/fbin/output?f=k__&n=200611300166

'고대 그리스인, 2100년 전 천체 계산용 컴퓨터 발명' 연구결과 발표(2016. 6. 10.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610_0014141856&cID=10101&pID=10100

2100년 전에 이런 기계를… (2006. 12. 1. 동아사이언스)
http://www.dongascience.com/News/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61201091445

'약 2300년전 고대 바빌론人 미적분 개념 알았다…목성 궤도 계산'(2016. 1. 29.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129_0013867248&cID=10101&pID=10100

'고대 바빌론로니아인, 기원전에 기하학 활용해 목성 궤도 계산'(2016. 1. 29. 데일리한국)
http://daily.hankooki.com/lpage/ittech/201601/dh20160129184905138290.htm

Japheth, remember to turn off the computer …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815/

Ancient mariners had current knowledg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6129/

Those Sophisticated Cave Men. (고대 인류는 매우 현명했다는 증거들)
http://s8int.com/sophis1.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7/i2/civilizations.asp

출처 - Creation 17(2):40~43, March 199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46

참고 : 343|528|612|4746|4733|4593|4833|4682|4709|4751|4820|4812|4842|4847

유종호
2005-07-14

진화론적 가설과 고고학적 사실의 비교


      지금까지 인간의 기원과 관련하여 진화론적 신념 또는 신조에 대한 가설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기록들과 역사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진 그들의 발달된 문명의 유적에 나타난 증거들과 사실들을 대조하여 제공하였다.


짐승인 원숭이 세계로부터의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이론과 전 세계적인 규모로 갑자기 나타나는 문명의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여 볼 때, 그리고 진화론적 신념에 입각한 인류학(인류의 기원 연구)을 전 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고도로 문명화된 인간들을 보여주는 고고학과 비교해 볼 때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고고학적 사실들은 진화론자들의 추정과 가정을 반박하고 있다.


만일 리키의 가족과 다른 진화론자들이 홍수 전에 아프리카 평원을 유랑했던 사람들의 화석을 찾아다니는 대신, 인간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연구(인류학)를 고고학 연구에 돌렸더라면 그들은 자기들이 찾고 있는 우리의 조상들을 찾아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집트, 수메르, 바벨론, 인더스계곡, 중앙아메리카와 페루 등지에서 초기 고대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해 보고 도시들과 각종 유물들과 가공품들을 발굴해 보았더라면, 그들은 우리의 조상들이 원숭이와 같은 동물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들도 경탄해 마지않는 피라미드와 하늘에 닿을 듯한 탑들과 기타 구조물과 건축물들을 건설했고, 고도로 지능적이고 발달했던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고고학은 창세기의 첫 열한 장이 진술한 것과 일치하고, 또 고고학이 말하는 인류의 기원은 성경에 기록된 초기 역사에서 다루어진 것과 일치하고 있다. 진화론이나 창조론은 둘 다 실제로 관찰하고 실사하고 증명된 실험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성경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고고학과 다른 역사적 기록으로 검증되고 있다. 성경이 제시하는 역사는 고고학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쓴 모든 것이 A. M. 레윙클 교수 저 (홍수)라는 책에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 내용을 인용해야겠다. 42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성경은 대부분의 고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신빙성이 있고 정확한 기록임을 자체가 증거하고 있다. 사실상 고대사의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고고학과 유물발굴과 정직한 역사 연구는 성경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근거의 책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역사가들이 교과서들을 집필할 때, 이런 근거자료들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비과학적이고, 비학자적이며, 지적인 부정직 그 자체이다. 여러 갈래의 인종들이 동굴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 종족의 큰 부분이 야만인 수준으로 퇴보했다는 사실도 물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사실로부터 전 인류가 동굴 인종에서 유래되었다거나, 미개인에게서 진화되었다거나, 미개인 이하의 존재에서 왔다고 결론짓는 것은 근거 없는 결론인 것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인가!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49

참고 : 3148|3233|1412|1413|2323|2525|512|1805|3974|3945|3872|3372|303|3249|4148|4071|4100

유종호
2005-07-13

인류 역사의 회고 3 

: 유럽, 영국, 아프리카, 아메리카, 미국, 멕시코, 페루, 남아메리카


유럽 대륙

유럽 본토에 있어 BC 3,000-1,000년 기간에는 발달된 문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러시아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정착민의 증거가 포착되기는 하지만, 북부 지역의 유목민들은 숲과 초원에서 좋은 사냥 여건과 식량 확보가 손쉬웠기 때문에 이 지역들은 조기에 발달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인디언들과 함께 북미주로 이동했다. 진화론자들은 수십만 년이나 수백만 년 동안 동굴과 엉성하게 지은 거처에서 살면서 진화해왔다고 가정되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들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유랑했던 관계로 소집단을 이루고 근친혼을 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퇴보하며 조상들의 많은 능력과 노하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남아메리카의 남단에 살던 원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찰스 다윈이 그들을 보았을 때 인간인지를 의심할 정도로 퇴보해 버렸다.

사실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들은 육체적으로 현대인들과 동일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찰스 버릿은 그의 저서 '잃어버린 세계로부터의 신비들' 이라는 책에서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원래의 크로마뇽인은, 뇌 용적이 현대인보다 크다.”고 했다. 이들은 유럽을 방황하던 바벨탑 후손임이 확실하다.

인류의 초기에 유럽의 대부분 특히 북부에는 거의 도시나 화폐나 정부나 문자가 없는 부족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생계는 사냥, 수렵, 채집 등에 의하거나 곡식, 채소, 목축 등의 간단한 농사를 지어서 꾸려갔다. 장인(匠人)들은 항아리를 굽고 청동 기물을 만들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직조(織造), 피혁 작업, 도자기, 자수(刺繡) 등의 작업이 행해졌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하는 과정에서 동굴에서 거주했다는 주장을 선호한다. 그러나 동굴과 바위 은신처는 매우 단기간 동안에 문명인들이 사용했다. 마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콜로라도의 남서부나 다른 남서부 주들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그들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개방된 곳이나 동굴 입구 인근에서 살았다. 그들은 유랑하는 동안 영국의 전설적인 로빈 후드나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천막 등과 같은 이동식 거처를 가지고 다녔다.

어떤 동굴에서는 들소, 순록, 말 등의 그림들이 발견된다. 프랑스의 루싹 근처의 동굴에는 모자를 쓰고 핸드백을 들고 현대식 옷을 입은 젊은 숙녀의 스케치가  있다. 원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발견된 모습이다. 선사 시대 역사 작가인 로버트 실버버그는 소위 석기시대 그림일 가능성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동굴 벽화들은, 원숭이보다 조금 작은 제4기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멋진 차림의 신사숙녀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즉 원시인은 연속성과 종교와 미술을 가진 조직된 사회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유럽의 최초 거민들이 기독교 시대까지는 다시는 이루지 못할 만큼 예술적 성취를 높였음을 우리가 알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 야만으로부터 발흥하여 꾸준하게 발전되어 왔다는 이론을 반박한다.”


영국

영국과 북프랑스에서 소위 원시인들이 이룩했다는 믿을 수 없는 많은 위업들을 발견한다. 그 위업들은 진화론자들을 심히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거석(巨石)들 또는 일반적인 영어로 영국과 프랑스의 거대한 바위들이 있다.

내셔날 지오그래픽이 펴낸 '고대 세계의 신비들' 이라는 책은 이 바위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BC 4,500년경의 것이고, 가장 최근의 것은 그로부터 약 3,000년 후의 것이라고 주장 한다. BC 4,500년경은 그 거석들이 대홍수 이전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고 노아홍수의 퇴적암이 그것들을 덮지 않았다고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바위들은 선돌이라 칭하는 낱개로부터 거석주군(巨石柱群)이라 부르는 거대한 돌무더기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 곳에 가장 많은 숫자의 선돌이 있는 곳은 프랑스의 브리타니에 있는 카르낙 근처에 있다. 3,000개 이상의 바위들이 2.5마일에 걸쳐 11-12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그랜드 멘허라고 하는 한 선돌은 무게가 380톤이고 벼락을 맞아서 다섯 조각으로 부서지기 전에는 그 높이가 약 69피트(21m)였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묻거니와 어떤 원시인이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이렇게 거대한 바위를 움직이고 세울 수가 있겠는가? 이것들이 우리들이 오늘날 의아하게 여기는 소위 원시적(?)인 조상들의 놀라운 위업들이다.


아프리카

아프리카에는 이집트 이외에는 홍수 후에 발달된 문명이 없지만 항상 지속적으로 수렵, 사냥, 과일과 다른 식량의 채집을 하기 위해 이동해 다녔던 아프리카 유랑 족들이 있었다. 거대한 사하라 사막 때문에 남쪽으로 이주해 와서 문명을 형성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리키와 다른 진화론적 인류학자들이 찾아내고 있는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과 인간들의 뼈들은 분명히 가공스럽고 어마어마하고 진흙투성이이고 거칠었던 노아 때의 홍수 속에 묻혔던 동물들과 인간의 화석들이다. 이런 화석들은 어떤 계기로 특히 동부 아프리카의 리프트 계곡에서 노출되었다. 그곳에서는 콜로라도 강 유역에서처럼 홍수 퇴적암의 양쪽 벽이 드러났다. 아프리카가 농업과 산업분야에서 발달된 것은 유럽인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겨우 최근의 1,000년 내외에 일어난 일이다.


아메리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바벨탑 사건 후의 어느 때에 인간들이 2개의 루트를 따라 유럽과 아시아로부터 아메리카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확실한 것은 베링해를 수 마일 가로지르는 루트였다. 그 길은 오늘날에도 에스키모들이 어렵지 않게 건너다닐 수 있다. 그곳으로부터 남녀의 사람들이 보다 따뜻한 미국과 중앙아메리카로 단기간 동안에 남진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남아메리카를 통과하여 계속 유랑하다가 길을 따라서 문화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10,000년 이상이나 묵은 야영지의 유적들이 남아메리카의 남쪽 끝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이 대륙에서 놀라운 속도로  번창할 수 있었다. 원숭이 화석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없다.

이집트나 수메르 기타 지역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홍수 이후 사람들이 고도로 발달한 후, 미노아나 페니키아인들과 같이 쉽게 보트를 만들어서 콜럼버스보다 수백 년 전에 태평양을 횡단했다. 배를 타지 않았을지라도 태평양의 조류를 타고라도 북대서양 해류를 따라서 유럽으로부터 상당히 쉽게 여행이 가능했을 것이고, 흔하게 불던 바람을 타고 남아메리카의 북동 해안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인도 제도를 지나서 칼리브해 지역에 도착했고, 도중에 걸프만 국가들, 중앙아메리카, 북부 남아메리카에 상륙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이 로마의 동전 저장굴이 어떻게 베네수엘라에서 발견되었고, 수백 건의 고대 페니키아 문헌들이 브라질에서 발견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1986년 10월 31일에 북 미네소타 주 소재 하부 레드호수 인근에서 자갈을 채취하던 노동자들은 인간의 뼈들을 발견했다. 주의 한 고고학자는 그 뼈들이 약 4,000년 전에 매장된 인디언의 것이라고 말했다. 대홍수 이전은 물론, 바벨탑사건 이후에 곧바로 사람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쉽게 살 수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

미국에 대해서 말하자면, 1492년에 콜럼버스가 최초로 미국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AD 1,000년경의 라이프 에릭슨이 발견했었다. 최초로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횡단해 와서 상륙한 자들은 프랑스와 영국과 기타 유럽대륙에서 그렇게도 큰 바위들을 세웠던 사람들의 일부였을 것이다. 뉴헴프셔주 북 살렘에 있는 신비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선사 유적지에는 200피트(60m) 높이의 언덕이 있고, 그 정상에 영국과 프랑스에 있는 것과 거의 같이 배열된 22개의 큰 바위들이 있다. 유사한 대형 바위들의 나열들이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다. 이 바위 중에 어떤 것들은 조각이 되어 있고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아스텍이나 마야나 톨텍의 문명보다도 더 오래 된 것 같다. 그와 같이 거대한 바위들은 페루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멕시코

멕시코의 테후아카 계곡에는 수천 개의 동물 뼈들, 인공적 가공물, 70구의 사람 뼈, 많은 식물들 특히 초기 옥수수의 잔해가 발견되고 있는데, 그 연대는 대략 BC 5,200-3,4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의 멕시코 사람들은 일종의 그림문자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책이나 문헌들 일부가 아직 남아 있으나 그들의 그림문자는 거의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의 다른 지역과 미국의 서남부, 중남미 등에서 발견되는 문명의 증거들은 멕시코의 아스텍,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의 정글에 있는 마야, 그리고 안데스 페루의 잉카 등 3곳이 아주 뛰어나다. 이들 지역의 문명의 성취도는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과 비견된다. 마야인들은 뉴욕에 최초의 마천루가 건설되기 이전까지는 미주에서 가장 고층 건물이었던 사원을 과테말라의 티칼에 세웠었다. 이 가파른 탑 구조의 사원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수백 년 동안 숲 속에 은폐된 채 숲으로 덮여 있었다. 그것은 200피트(60m) 이상이나 높이 솟아 있다. 이 사람들의 사원들은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로 표현되는 언어체계를 발전시켰으나, 아직껏 아무도 그것을 해독할 수가 없다. 그들의 수학 작품들은 해석이 되는데, 그들의 종합적인 필기체계는 그림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들의 책들은 나무껍질을 두들겨서 만든 종이에 씌어졌다. 1562년 스페인 사람들이 점령한 후 유카탄의 대주교는 그들의 책을 악마의 작품이라고 해서 파괴시켜 버렸다. 미국의 인디언들과 함께 이들 중에는 자기들의 조상들이 동쪽에서 바다로 '거대한 카누를 타고 수 주 동안 떠내려 왔다”는 확신과 전설이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은 유럽과 아조레스제도와 칼리브제도 사이에서 섬의 융기 현상이 일어났었다는 확신과 일치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이 모든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채소들을 재배했는데, 그들이 가장 꾸준하게 재배했던 곡식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생산성이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발전된 옥수수였다. 이들은 또한 당시 유럽에서 사용되던 것보다도 정교한 달력도 발명했다. 그리고 달과 행성들과 별들에 대한 지식에도 정통하였다.


페루의 잉카 문명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페루 안데스 산 지역의 잉카 문명이다. 이들은 대 도시들과 관개(灌漑) 시설과 고속도로와 놀라운 구조물과 모든 종류의 예술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잉카문명 이전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는 잉카시대 이전에 사원들과 요새들과 궁전들이 50-300톤짜리 바윗돌로 건축되었다. 이 바윗돌 중 어떤 것은 직사각형이고 어떤 것은 10-20각의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바윗돌과 바윗돌은 서로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기계 기술자의 가장 엷은 측정 게이지도 돌덩이들 틈에 끼워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돌덩이들은 치밀하게 조립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돌덩이들은 시멘트를 사용치 않고 쌓아졌다. 이런 돌덩이들이 어떻게 절단되고 산위로 운반되어 완벽하게 쌓아 맞춰졌을까 하는 것은 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바윗돌들을 정확하게 장착하기 위해서는 틀림없이 벽에다 몇 번이고 붙였다 떼었다 했을 것이다. 이 모든 바윗덩이들은 정밀하게 맞물려 있는데, 따라서 이 모든 체계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이다. 잉카문명 이전의 요새들 중의 하나가 페루의 오일란타이탐보(Oilantaitambo)에 있다. 150톤이 넘는 돌덩이들은 약 7마일 떨어진 산에서 켜가지고 운반해온 매우 단단한 안데사이트(安山巖)로 만들어졌다. 어떤 경우에는 1,000피트(300m)의 고도에서 이 돌덩이를 켜서 산 밑으로 내리고 1,000피트 높이의 절벽이 있는 캐년을 건너 운반되고 또다시 1,000피트의 산정으로 끌어 올려서 요새를 구축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 사람들은 현재의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기술과 작업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들에 대하여 나중에 계속 듣게 될 것이다.

안데스산맥 지대에는 오늘날 우리들을 당황케 할뿐인 그와 같은 요새들과 복합 구조물들이 더 있다. 포장도로와 산맥을 횡단하는 도로망,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들, 성채들(citadels), 지하 공간들, 대형 수조(水槽) 등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들은 운반에 필요한 모든 장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필수적인 것 한 가지 즉 손수레, 짐마차 또는 전차에 필요한 바퀴는 없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운반용 바퀴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바퀴가 있기는 했다. 왜냐하면 어린이용 멕시코 장난감에는 바퀴 달린 것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만일 이 사람들이 외견상으로는 불가능한 듯한 건축물들을 세우고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들에 바퀴를 달았다면, 그들은 발달된 수송 장치들에도 바퀴를 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학자들이 대홍수의 위력과 그 결과들을 더 깊이 연구해 보면, 바퀴들과 기술이 깃든 수많은 인공품들을 수천 피트 깊이의 석회암 지층 바닥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967년 4월 10일자 신문들은 콜로라도주 로키포인트 광산 지하 120m(400피트)에서 은 광맥에 끼어 있는 인간의 뼈와 구리로 만든 4인치짜리 화살촉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많은 것들과 화석들이 지표의 수백 수천 피트 아래에서 발견되어 오고 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발달되었고 지혜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페루의 잉카문명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물건들이 백금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기술의 발달된 단계를 보여 주는데, 그 이유는 백금을 녹이는 데에는 섭씨 1,750도의 고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나게 높은 온도를 요하는 고도의 제련 지식을 필요로 했다.

리마의 250마일 남쪽에는 페루의 나스카 계곡이 있다. 계곡 전체는 거대한 동물 형체들로 뒤덮여 있다. 즉 거미들, 새들, 원숭이들, 거북이들, 뱀들, 물고기들, 심지어는 고래와 인간의 거대한 형상들이 있다.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와 도로들을 닮은 짧은 선들도 있다. 비행장과 같이 보이는 띠들도 있다. 이런 선들과 형체들은 관찰자가 바로 그들과 일직선상에 서있지(standing directly in line with them) 않으면 지상에서는 거의 식별할 수 없다. 몇 피트만 옮겨가도 선들은 나머지 사막의 바닥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 선들은 지상에서는 쉽사리 보이지 않으나, 비행기에서는 분명히 보인다. 실제로 그들은 지상 270마일 궤도를 비행하는 스카이 렙 위성에서는 잘 보인다.

페루 파라카스 인근의 탑과 같은 절벽 위에 안데스산맥의 칸델라브라 라고 불리는 800피트(240m) 길이의 조각을 태평양 밖 멀리서 볼 수가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처음으로 그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것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온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그림은 나스카에 있는 항아리 조각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하나는 노랑으로, 하나는 하얗게, 하나는 검게, 하나는 갈색으로, 그리고 하나는 붉은 색으로 된 다섯 소녀들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이 고대 인류들이 이 지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페루에 있는 이 모든 고고학과 건축술은 진화의 이야기같이 들리지만 적어도 이것들은 과학적으로 참인 사실들이다.

페루의 잉카문명과 다른 아메리카의 문화들은 건축과 미술과 또한 농업기술의 분야에서 매우 발달되었지만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기하는 체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잉카문명이 그들의 생각들을 기록함에 있어 가장 근사했던 것은 결승문자의 사용이었는데, 결승문자는 길이와 색깔과 가늘기가 각각 다른 일연의 끈들로 매듭들이 맺어져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다양한 조합으로 된 끈들과 매듭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들을 통해서 구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 같다.


남아메리카의 최남단

남아메리카의 최남단으로 내려가서 수천 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 보면 찰스 다윈이 세계 일주 항해 중에 만났던 인간의 한 종족을 만나게 된다. 다윈이 원시인 바로 다음 단계라고 여겼던 이 사람들은 인간의 문화적 유산이 후대로 가면서 퇴보된다는 주장에 대한 좋은 사례이다. 그들의 퇴보는 그가 세계일주 항해를 한 후에 그의 마음속에서 발전되었던 진화 사상을 확실하게 논박하고 있다. 이 진화론은 나중에 진화론자들 중에서 소위 인간은 원숭이 같은 동물에서 발달된 것이라는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이 사람들과 다른 많은 원시적이고 미개한 사람들의 문화유산들이 진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진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퇴보는 최근 수십 년 사이 사물의 속도가 증가하는 가운데서 일어났다. 의료분야에서 행해진 진보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아직도 옛날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죽는다.

 

*참조 :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47

참고 :

유종호
2005-07-11

인류 역사의 회고 2 

: 요단강계곡, 인도, 중국, 소아시아, 크레데, 그리스


요단강계곡의 여리고

나는 세계 문명 발상지에 대해 나중 기회에 계속 언급하려고 한다. 그것은 세상의 기원 중의 하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북부 약 15마일 지점 요단강 근처를 중심으로 한 고대문명 지대이다. 이 사람들의 조상은 BC 6,800-5,800경(?)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루버겐(Rene Noorbergen)은 “잃어버린 종족의 비밀(1977)”이라는 저서에서 “[이 연대]는 과학적인 비평에 노출되면 약간 모호해진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명료한 연대측정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여리고의 초기 연대는 세계의 다른 주된 고대문명, 즉 수메르나 이집트 문명의 연대와 비교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수메르와 이집트인들이 큰 강 유역을 따라 번창 발전해 갔으나, 요단계곡 지역의 여리고는 1분간에 1천 갤런의 물을 품어내는 용출천(湧出泉)으로부터 풍부한 물을 공급받는 오아시스 인근에서 발전했다. 이 오아시스 주변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요단강 계곡에서 초기에 정착한 자들은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함과 함께 밀, 보리, 편두(扁豆), 무화과, 다른 식량 및 과일 등을 재배했다. 그들은 여기에서 약 2,500-3,000명의 인구를 가진 8에이커 넓이의 도시를 건설했다. 호전적 침입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일련의 대규모 석조 성벽과 최소한 1개소 이상의 대형 탑을 건설했다. 그 탑의 규모는 직경 30피트(9m), 높이 20피트(6m) 이상이었다. 이것들이 BC 1,250년 경 여호수아의 양각나팔로 허물어질 수 있었던 성들이다. 가옥들에는 여러 개의 문들이 달린 큰 방이 있었다. 담장들은 흙벽돌로 쌓았고 마루는 고도로 연마한 회반죽(plaster)의 고운 바닥이었다.


인도의 인더스 계곡의 사람들

BC 3,000경에 발흥했던 찬란한 고대문명 가운데 하나는 메소포타미아의 동쪽에 위치한 서북 인도의 인더스 계곡에 있었다. 이 문명을 드라비다 문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의 공용어를 사용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그들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언어는 분명코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케 된 후에 생긴 새로운 언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 문명은 1920년에야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때 여러 개의 길게 매몰된 도시 중에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라는 두개의 도시가 우연하게도 발굴되었던 것이다. 하라판이라고 부르는 이 문명의 문화는 아라비아 해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렀고, 동쪽 이란에서 갠지스 강 유역까지 미쳤다. 인더스 강 유역의 문명은 최대 규모의 초기 무명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최대의 도시는 모헨조다로였다. 그 도시에는 직사각형 도시구획을 가진 넓은 도로들이 있었다. 집들은 정원과 욕실이 있는 1층과 2층 구조였다. 그들은 많은 현대 도시와 유사한 잘 설계된 하수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위생설비들도 가지고 있었고, 하수도는 관리를 위한 출입구용 맨홀을 구비하였으며, 구운 벽돌을 일렬로 쌓았다. 그들은 구리, 청동, 금, 은 등을 사용했고, 자녀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인형도 만들었다. 그들의 예술 작품들은 어떤 문화권에서는 높이 평가받았다. 그들은 욕실, 청동과 구리로 만든 가정용품, 도자기 그리고 보석들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서쪽의 수메르인들과 무역거래를 했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지상에 출현하자마자 그들의 문화는 소멸해버린 것 같다. 서쪽과 서북쪽에서 온 아리아인들이 접수해버린 것 같다. 아리안 족은 오늘날 힌두의 조상이다. 드라비다족은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요즘도 인도에서 더러 볼 수 있다. 한편 아리안 족은 꽉 막힌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개방된 공간을 선호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문명이 진화하는 대신 파멸로 퇴화하고 멸실되는 예를 본다.


중국

동양에는 BC 4,000-3,000년경 초 자체 언어를 가지고, 사냥도 하며, 채집 생활하는 유랑 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동남아 쪽으로 올라와서 북향하다가 마침내 중국에 이르게 되었는데, 거기 양자강, 황하 및 다른 강들의 유역에서 그들은 자체 언어를 가지고 진보된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는 또 다른 민족을 만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BC 2,850-2,250년경 역사를 개시하면서 정착했다. 최초 3인의 통치를 삼 황제 시대라 하고, 다음 5인의 통치시대를 오 황제 시대라고 한다. 이 통치자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오랫동안 지배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이 나이들은 대홍수 전후의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의 나이에 비추어 보면 결코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계속 논의하겠다. 역사가들은 이들이 어디에서 왔을까하고 질문한다. 중국어는 그 역사가 겨우 1-2천년 정도로 짧아서 대부분 지금까지도 잔존하고 있지만, 초기의 이런 중국어는 매우 복합적인 표의문자 체계로 발전하였다. 한자는 수천 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그들은 유럽인들보다도 훨씬 앞서서 움직일 수 있는 활자와 화약을 발달시켰다.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그것들을 어디에서 취했을까 하고 질문한다. 그들은 청동의 기구와 항아리들을 주조하는 기술에 능숙해졌다. 그들은 누에를 쳐서 아름다운 비단을 짰고 도자기와 옥 세공품을 만들었고 건축물을 지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중국의 문물을 많이 배웠다.


소아시아

중동으로 되돌아가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북쪽에 발달된 또 다른 고대문명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카탈 휴옉(Catal Huyaek)과 엘바 등 두 지역이 어느 정도 발굴되었다. 카탈 휴옉은 팔레스타인의 여리고 이전에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믿어진다. 카탈 휴옉은 타우루스 산맥의 산록에 있는 동부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는데, 그들은 BC 6,200-5,400년 사이에 매우 번창했었다고 믿어진다. 그 인근에 있는 화산에서 진하고 단단하며 광택이 있는 암석인 흑요석(黑曜石)이 채취되었는데, 그 속에 여러 가지 인공적 가공품들, 도검류, 거울들, 창날들, 그리고 피혁과 뼈와 목재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벽 전체에다 야생 동물들과 야외 생활 모습을 그렸다. 화가들과 조각가들 이외에도 가정용 주방용품과 석 공예품을 만드는 도공(陶工)들도 있었다. 그들은 또한 정밀한 공구들과 도끼나 망치와 같은 가정용품, 단도나 창끝 등의 무기도 제조했다. 그들에게는 고운 천을 짜는 직공(織工), 양동이 제작자, 금속공(金屬工), 그리고 목공들도 있었다.

엘바 지역의 또 다른 문명은 시리아 북부에 있었다. 1964년에 로마대학교의 책임 하에 이 토루(土壘)의 발굴 작업이 개시되었다. 엘바는 BC 2,400년경 이집트와 동시에 융성했던 제국의 수장(首長)이었고, 수메르는 전성기에 있었다. 엘바는 상업과 미술과 선진 문명으로 인접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엘바는 이집트나 바벨론인들의 몇몇 문헌에도 언급되고 있다. 엘바에서 왕궁과 대형 사원이 발굴되었다. 수메르 문자와 유사한 상형문자(Cuneiform or wedge shaped writing)가 발견되었다. 발굴자들은 14,000개 이상의 음각 토판을 발견했으나, 상형문자로 된 문헌들은 수메르나 기타 어떤 유사한 언어도 아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다른 언어였는데, 바로 1, 2백 년 전에 발생했던 바벨탑 사건에 의한 언어의 혼잡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후 100개의 토판사전이 발견되었는데, 그 사전에 엘바어로 된 약 3,000 단어가 수메르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BC 3,000-2,000년 사이의 1, 2백 년 동안에는 엘바는 근동에서 가장 강국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금속 노동자, 직조 노동자들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들 중에 숙련공들은 금도금을 한 아름다운 목제 가구들을 수출하기도 했다. 그들의 몇몇 토판에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이 타 지역 사람들과 교류했음이 분명하다.


크레데 섬

소아시아 서쪽에 BC 3,000-2000년 동안에 고도로 발달된 초기 문명이 존재했던 크레데 섬과 그리스가 있다. BC 3,000년경에 고도한 문명이 크레데 섬에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의 위대한 왕 미노스(Minos)를 본따서 미노아 문화라고 부른다. 그들은 크노쏘스 등의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고, BC 2,200년경 여기에 세워진 한 궁전이 발굴되었는데, 그 면적이 5에이커에 달하고 5층 높이의 규모였다. 궁전은 아름다운 회랑들, 홀들, 어전회의실, 거실, 보물창고, 기타 많은 방들이 있었다. 가장 감탄할만한 것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어느 것보다도 우수한 물이 흐르는 욕실, 수세식 화장실, 배수시설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관을 통해 물이 흐르고 점검과 보수를 위한 멘 홀들도 있었다. 배수관은 아주 현대적이다.

궁전 벽들 위의 프레스코 화법의 그림들은 그 문화를 만끽하는 귀족들과 귀부인들의 현란한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그림들 속에는 춤추는 여인들, 뛰어오르는 돌고래, 그리고 아름다운 전원 풍경들이 그려져 있다. 미술가들과 숙련공들은 돌과 귀금속에 새긴 조각, 세련된 설계로 금과 도자기를 달걀껍질만큼 엷게 입혀 만든 보물 등 위대한 예술의 걸작품들을 만들었다. 긴 곱슬머리로 재미있게 장식을 한 남녀 귀족들이 생기발랄하게 몇몇씩 모여 서 있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그림이 있다. 또한 베일을 쓴 여인들, 곡식 단을 한 아름 안고 나르면서 즐거운 수확의 축제를 벌이는 농부들의 그림들이 있다. 글씨로 가득 찬 토판들이 발견되었다. 이 토판들은 크레데 인들이 작품 체계를 음절로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그들의 작품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직전에 한 로마 사가는 그 당시에 크레데인들은 자기네 선조들이 알파벳을 고안했고 페니키아인들만이 그 알파벳을 항해를 통해 더 잘 알려지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각 가정마다 각자의 직조기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분명히 옷감을 자급자족했음을 뜻한다. 여성들의 옷은 신중하게 몸매에 맞추고 꼼꼼하게 바느질하고 아름답게 자수를 달아서 정교했다.

그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모양새가 이상한, 구멍 뚫린 국자, 거르는 체, 그 외에 많은 장치들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주방기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훌륭한 항해사와 무역상들이었고 자기들의 상품과 미술품과 문명들을 지중해 동부의 전 지역에 전파했다. 여타의 많은 고대 문명과 마찬가지로 그 문명도 BC 1,500년경에 소멸되고 말았다. 혹자는 “그들의 기원은 불분명하고 그들의 언어는 알 수가 없고 그들의 운명은 모호하다.”라고 썼다. 그러나 성경을 알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단순하고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BC 3,000년경 미노아 문명이 그리스 쪽으로 북향했는데, 고린도 인근의 미케네에서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미케네 문명 또는 그리스 문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알파벳과 조어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오늘날 전문적인 영어에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헬라어를 모르면 일반 미국인들에게 많은 영어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가 될 수밖에 없다. 한 시사 해설자는 최근에 수세기 전까지만 해도 라틴어와 헬라어가 그랬던 것처럼 영어는 세계의 공용어가 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특히 전문 분야에서 많은 영어 단어들이 헬라어와 라틴어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학식이 있고 전문적이며 과학적인 배경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헬라어나 라틴어 어원들의 이런 단어들을 쓰기를 선호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42

참고 :

유종호
2005-07-09

만물의 기원에 관련하여 주고 받아 온 질문과 답변들


1. 제기되어온 질문들

인간은 어떻게 기원하게 되었는가? 왜 인간은 모든 다른 생물들보다 우월한가?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과 채소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태양과 기타 별들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가? 지구, 태양, 행성들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주와 모든 원소들과 물질들, 에너지 그리고 초대형 시계를 방불케 하는 정밀한 자연계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세상에서 죽음과 부패와 모든 퇴화(엔트로피)가 일어나고 있는가? 만물의 궁극적인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질문들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4,000에서 6,000년 동안의 인류의 기록된 역사상 가장 선각적 지성들은 이런 질문들의 해답을 찾으려고 부심해 왔다.


2. 교과서는 무어라고 가르치는가?

(나는 이 책 내내 진화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믿고 가르치는 것들과 관련하여 그들 스스로의 말을 존중하는 뜻에서 수많은 주장들을 인용하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과거로부터 학교에서 사용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고대사 책에 씌어 있는 인간의 기원이라는 주제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세계대백과사전(2권12쪽)은 지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구의 나이는 몇 살일까?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이른 기록이 겨우 5,000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 기록 중에서 처음 천년 동안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도 않다. 내가 인용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The Story of Man's Early Progress (1920, by W. West)'는 3쪽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들은 현대의 가장 미개인보다도 더 무력하고 야만스러웠다. 그들의 유일한 의복은 그들의 몸을 가려줬던 거친 털이 전부였다. 그들은 손 그리고 원숭이의 것과 같은 무서운 이빨과 손에 들린 몽둥이와 돌멩이 외에는 불이나 칼도 없었고 어떤 도구 또는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초의 주목할 만한 것들은 몇몇 미개인들에 의한 다음과 같은 발견이었다.

즉 그 미개인들이 평평한 돌을 다른 돌과 마주쳐 작은 조각들을 떨어내서 날카로운 날이나 뾰족한 끝 그리고 손으로 잡기에 편리한 모양이 되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이런 발명으로 인하여 인간들은 구석기 시대로 도약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석기시대가 적어도 십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몇 쪽 뒤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략 1만 년 전쯤에 어떤 창의적인 야만인(미개인)이 돌을 특수한 다른 돌로 갈아서 돌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돌끼리 서로 단순하게 마주 쳐서 만든 것보다 더 날카로운 날과 예리한 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발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다. 구석기 시대(타제석기 시대)가 신석기 시대(마제석기 시대)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어느 창의적인 원시인이 돌을 자르고 깎아서 마침내 더 좋은 돌연장을 만드는데 9만 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그 원시인은 정말로 그 정도로 지능박약아란 말인가? 게으름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발명의 어머니는 분명코 그들에게 그 보다는 훨씬 더 일찍이 다가왔을 것이다.


알렌 콘슬라와 테리 스마트가 공동으로 저술한 최근의 한 역사 책 'People and Our World-A Study of World History (1977-1984)'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있다.

“사람들은 지구 최초의 거주자들에 대해서 늘 궁금해 했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글을 쓸 줄 몰랐고 기록을 남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기는 어렵다. 이 시대를 선사시대 즉 기록된 역사 이전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등 3개 기간으로 구성된 석기시대에 관해서 기술한다. 저자들은 이런 시대의 사람들은 동물들을 사냥하고 야생의 식물이나 열매를 따먹고 살았던 유목민 또는 방랑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소위 아주 옛날의 인간화석이라고 불리는 고고학적 발굴물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이 화석들은 루이스와 메리 리키 부부, 그리고 그 아들 리처드가 아프리카에서 발견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아프리카나 지구의 여타 지역에서 발견했는데, 그 연대를 175만년에서 375만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나톨 마조와 존 피플(Anatole Mazour and John People)이 쓴 또 다른 역사책 'A World History (1975)' 5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최근에 발견된 뼈들은 인간으로 추정되는 생물체가 50만년 내지 17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 생존하였다는 사실을 과학자들로 하여금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생물체가 현대 인간들과 직접적인 유사점은 거의 없지만, 그들은 직립 보행하였고 인간들과 같은 신체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돌과 나무 조각들을 연장이나 무기로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수십만 년 동안에 인간들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동물들과 매우 흡사했을 것이다. 그들은 육식동물들처럼 사냥을 했을 것이고 여타의 많은 동물들처럼 식용의 열매나 뿌리들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특성들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고 발달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첫째, 직립 자세는 사냥을 하고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손으로 무기를 잡을 수 있게 했다. 둘째, 말을 할 수가 있어서 언어를 구사하여 정보를 교환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셋째, 큰 두뇌를 가지고 있어서 정보를 활용하고 더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진화론이 참되다고 해도 한 생물체가 현대 인간으로 발전하는데 수십만 년에서 100만 년 이상씩이나 걸렸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6,000년 전인가? 인간이 6,000년에서 8,000년 전에 돌연히 인류역사의 장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동물도 말을 못하는데 무엇이 유독 인간만이 말을 할 수 있게 했는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생물체보다 큰 두뇌와 분석력을 갖게 했는가?


1961년도에 발행된 라이프(Life)지 8쪽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인간의 진화 역사는.......1,500만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띄엄띄엄 씌어진 기록 중 5,000년의 역사가 인류의 알려진 역사이고, 나머지의 역사들은 석기시대의 사냥꾼 세계의 발자취들을 포함한 채 침묵하고 있다. 인간이 진화하는데 걸린 1,500만 년 중 우리의 육체와 두뇌가 엄청나게 변했다는 사실 이외의 것에 대하여는 우리는 오늘날 겨우 한두 움큼의 이빨 부스러기, 심하게 손상된 한두 조각의 두개골, 죽은 사냥꾼들의 마법의 조각품과 그림들, 우리가 캄캄한 정글에서 위로 기어오르던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여줄 소수의 조잡한 연장들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들이 불과 연장을 쓰는 법을 배우는데 수백만 년이 걸렸다는 말인가?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38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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