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종

인간과 인종


(1) 인종의 분화

  이 지구상에는 많은 인종(human races)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유래한 것이며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인종이 태어난 것일까? 한 동안, 독일의 인류학자인 블루멘바흐(J. F. Blumenbach 1820)가 백색인(Caucasian), 황색인(Mongolian), 갈색인(Malayan), 흑색인(Negro), 적색인(American)으로 구분한 인종론이 널리 수용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는 인종을 백인종(Caucasoid), 황인종(Mongoloid), 흑인종(Negroid) 및 호주인(Australoid)으로 구분한다(표 1). 인종의 분류기준은 피부색(skin color), 얼굴면적(head space), 코(nasal index) 및 머리카락의 형태(hair style) 등에 근거한다. 

 

흑인종

황인종

백인종

피부색
(SKIN COLOR)

NEGROID

MONGOLOID

CAUCASOID

얼굴면적
(HEAD SPACE)

CEPHALIC INDEX:

頭長幅 指數

넓다

CI>80

중간

CI=75-80

길다

CI<75

코의형태
(NASAL INDEX)

낮다

중간

높다

머리카락 형태

곱슬함

WOOLLY

직선적

STRAIGHT

굽이침

WAVY

대표적 인종

FOREST

중부阿

남부阿


NILOTIC

나일강변

오세아니아


PIGMIES

콩고

한국

중국

일본

몽고

티벹

말레이인

아메리카인디언

남미인디오

NORDIC

스칸드나비아

독일(북)

덴마크

영국

화란

MEDITERRANEAN

프랑스(남)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ALPINE

슬라브

독일(남)

프랑스(남)

혼혈 인종


BUSHIMAN-HOTTENTOT족

DRAVIDIAN(인도양)

POLYNESIAN

MICRONESIAN

AINUS등

 

백인종의 머리칼은 물결처럼 굽이치며(wavy), 황인종은 직선적(straight)이고 흑인종은 곱슬하다(woolly). 얼굴의 모습은 두장폭지수(頭長幅指數: cephalic index)로 따지는 데 이는 머리의 최대폭을 최대길이로 나눈 수치이다. 이 수치가 75이하이면 긴 얼굴(long-headedness, dolichocephaly)로 백인종을 나타내며, 75-80은 중간형(medium headedness, mesocephaly)으로 황인종을, 80이상은 넓은 얼굴(broad or short headedness, brachycephaly)로 흑인종을 나타낸다.

백인종의 코는 폭이 좁고(narrow-nosed), 황인종은 중간형이며(medium-nosed) 흑인종은 넓다(broad-nosed). 피부색은 각기 백색, 황색, 흑색으로 구별하며, 대체로 머리나 눈의 색갈과 일치한다. 이 밖에도, 최근에는 혈액형(blood type)이나 분자학적 상동성(molecular homology)에 의한 분류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각 인종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황인종은 넓적한 얼굴에 곧은 머릿결과 황색 내지 갈색의 피부를 지니며 한국, 일본, 북중국, 티벳 등의 전통적 몽골계(Mongoloid)와 말레이인(Malaysian) 및 아메리카 인디언 등이 이에 속한다. 백인종은 물결치는 머리결에 좁고 높은 코와 흰 피부색을 지니며, 노르딕(Nordic; 스칸디나비아, 북부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지중해인(Mediterranean; 남부 프랑스, 북부 아프리카, 이탈리아, 그리스, 이베리아반도) 및 알파인(Alpine; 슬라브, 중부 프랑스, 남부 독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인종은 곱슬머리에 넓은 코와 흑색 내지 흑갈색의 피부를 지니며, 삼림족(Forest; 중남부 아프리카), 나일족(Nilotic; 나일강변, 오세아니아), 피그미족(Pigmies; 콩고지역) 등으로 나눈다. 혼혈종으로 남아프리카의 부쉬멘-호텐토트족(Bushman-Hottentot), 인도양의 드라비다족(Dravidian) 및 일본북부에 사는 아이누족(Ainus)등이 있다. 호주인은 호주, 뉴질랜드의 원주민과 폴리네시안(Polynesian), 미크로네시안(Micronesian)등의 남태평양제도에 사는 원주민을 포함한다.

 

(2) 인종분화에 대한 논쟁

그러면, 이처럼 다양한 인종은 어디서, 어떻게 유래한 것일까? 현재, 학계에서는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단세포로부터 포유류와 영장류를 거쳐 오늘의 현생인류로 진화하였다고 하는 진화론적 사고와 하나님이 처음부터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대로(Imago Dei)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했으며, 바벨탑사건으로 언어가 분화되면서 인종의 분화로 연결되었다고 하는 창조론적인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참조 : 어떻게 인종들이 달라지게 되었는가?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921¶m=category=B02). 이 밖에, 하나님이 진화론적으로, 즉 유인원에게 영혼을 불어 넣어서 현생인류인 아담을 창조하셨다는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ism)이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다.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원칙을 제외한다면 거의 진화론을 수용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1991년도에 미국 갤럽조사에서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응답자의 47%가 창조론을 지지한 반면 진화론은 겨우 9%에 불과했으나, 유신진화론은 놀랍게도 40%를 나타내었다. 따라서, 인류의 기원과 그후의 인종분화문제는 결국 영장류에서 진화했느냐, 아니면 처음부터 하나님이 창조하셨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함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린네는 <자연의 체계>(1735)에서 동식물과 광물질을 이명분류법(二命分類法)으로 분류하였다. 그러한 분류체계에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라는 종명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인간이 영장류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며, 종은 불변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즉, 모든 생물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되었기에 이러한 분류작업이 가능하였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植物)에서 인간에 이르는 그의 생물분류체계는 진화론자들에 의해 진화를 증거하는 자료로 역이용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서 독일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블루멘바하(1791)는 두 손을 사용하는 인간을 네 손발을 쓰는 동물과 구별하였으며, 이리겔은 인간의 특징은 직립보행을 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인간을 에렉타(Erecta 직립자세)라 명명하였다. 프랑스의 큐비에(1822)는 처음으로 영장류의 화석을 파리근교의 몽마르뜨에서 발굴하였다. 그는 린네처럼 종의 불변설을 강력히 지지하였다. 큐비에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가졌던 영국의 창조과학자인 오웬(Richard Owen 1804-1892)은 중생대의 파충류를 공룡(Tiranosauria)이라 명명했으며, 인간은 동물들과는 달리 ‘최고의 뇌를 가진 존재’라는 뜻으로 아켄세팔라(Archencephala)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다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본격화된 논란이 된 것은 19세기 초반부터였다. 1809년, 프랑스의 진화론자인라마르크는 <동물철학>(1809)에서 “만일, 인간이 기관의 특징만으로 구별되고, 다른 동물들과 같은 기원을 갖는다고 한다면...원숭이로부터 탄생했을지도 모른다”고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동물진화론에 불을 집히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큐비에의 종의 불변설에 눌리어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한편,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의 인류학교수였던 아르망 드 캬틀파지는 인간은 선악을 알고 내세를 믿는다는 점에서 동물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영국에서는 19세기말에 ‘다윈의 불독’로 불리우는 헉슬리와 옥스포드의 사제인 윌버포스주교 간에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쟁(1860)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헉슬리는 해박한 생물지식을 이용하여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하였다. 생물학에 대해 비전문가였던 윌버포스 주교는 오웬의 지원을 받았으나, 논쟁은 헉슬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의 유인원진화설이 더욱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논쟁의 대상은 독일의 라인강변에서 발굴한(1856.8) 네안델탈인으로 옮겨져 30여년간 진화론과 창조론이 격렬히 논쟁하였다. 독일의 훌롯트, 오스트리아의 샤프하우젠은 그 유골의 주인공을 유인원으로 본 반면, 캇셀학술회의(1857)에서 프랑스의 프류넬니베는 켈트인으로, 부울은 동굴인(cave man)으로, 다른 학자들은 1814년에 그 곳에서 죽은 코쟈크병사로, 독일의 저명한 병리해부학자인 버효는 곱추병에 걸린 지체부자유인으로 판정하였다. 뒤이어, 이와 유사한 인골이 벨지움의 라노렛동굴(1865)과 스피지방(1886)에서 발굴되었으며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 프랑스남부의 크로마뇽암반에서는 철도부설공사를 하던 중 루이 라르테(1868)가 5인의 인골을 발굴하고 크로마뇽인이라 명명하였다(1874). 이에 대한 논쟁도 유인원과 현대인이라는 견해로 나뉘어 지금까지 논쟁중에 있다. 이들에 대한 내용은 앞으로 상세히 기술할 것이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진화론을 신봉하던 많은 학자들이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인 유인원(類人猿)을 찾아 나서는 붐을 이루었다. 독일의 대표적 진화학자인 헤켈(1867)은 인류진화의 초저층(超底層)에 파프아뉴기니아인을 배치하고 이들이 멜라네시아인과 더불어 현생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원숭이와 사람의 배발생이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동남아 부근의 인도양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적인 레무리아 대륙에 살았다는 원숭이로부터 현생인류의 첫 조상인 피테칸투로프스(Pithecanthropus alalus)가 발생했으리라고 추리하였다. 이에 반해, 다윈과 헉슬리는 각각 <자연에 있어서의 인간의 위치>와 <인간의 유래>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원숭이가 아닌 침팬지에서 유래했으며,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윈의 사촌동생인 갤튼(Galton)은 인종우생학(Eugenics 1884)을 만들고 백인위주로 인종을 개량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는 사람이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 순으로 우수하다고 하여 학문적으로 인종차별의 불씨를 남겼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후일 히틀러의 게르만족 우월주의를 비롯한 국수주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면서 다른 민족에 대한 대량학살로 이어지게 하였다. 예나 의과대학에서 7년간 헤켈에게서 배운 화란의 외과의사인 유진 듀보아도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찾아 나섰던 사람이다. 그는 해군 군의관 신분으로 당시 화란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섬으로 출항하였다(1887). 수마트라에서 쟈바섬으로 여행하는 동안 1만2천여점에 이르는 방대한 화석골을 수집하였다. 이러한 뼈들은 유럽으로 직송되어 분석되었으나 모두 동물의 뼈들로 확인되었다. 1891년, 쟈바섬의 솔로강변에서 그는 아래턱뼈와 치아를 각각 한 개씩, 그리고 인간의 두개골 한 개를 발견하고, 이 유골의 주인공을 직립원인이라는 의미로 피테칸트로프스 에렉투스(Pithecanthropus erectus)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그의 스승인 헤켈에게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라이덴에서 열린 학술회의(Lyden, Holland, 1895)에서는 학자들 사이에 그가 조립한 네 종류의 뼈들이 각기 다른 장소(두개골과 치아는 1m, 대퇴골은 15m 거리에서 발굴)에서 발굴한 것이었으므로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더구나, 그는 현대인의 인골을 같이 발굴한 사실을 숨겨 왔으나, 후일(1923) 케닉스발트 등이 같은 지역에서 동물뼈와 인골을 동시에 발굴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한편, 이즈음(1928) 중국의 북경근교인 주구점에서는 원인(原人)의 것으로 보이는 인골이 데이비드슨 블랙과 비중문 및 샤르뎅 등에 의해 발굴되었다고 보고하였다. 물론, 이 북경인도 후술하겠지만, 수많은 조작과 의혹을 가진 문제가 많은 발굴이었다. 진화론자들은 쟈바인과 북경인을 묶어서 호모에렉투스라 명명하고, 이 해를 인류고고학의 출발점으로 선언하였다. 학문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서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이론을 엉성한 상태로 봉합하여 인류고고학을 출범시킨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기원논쟁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 첨예하게 격돌하였다. 1924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진화론을 공립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면서 전국이 진화론 논쟁의 와중으로 빠져 들었다. 테네시주정부는 공립학교에서 창조론을 반대하는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1924. 3). 그러던 중, “인간은 동물의 자손”이라고 가르친 진화론 교사 스코프스(John  T. Scopes)를 한 학부형이 테네시주법정에 고소하여 소위 원숭이재판(Monkey Trial, Dayton, Tennessee, 1925)이 열리게 되었다(사진 1).

7월 중순부터 진화론측을 옹호한 대로우 변호사(Clerance Darrow)와 창조론을 옹호한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수일간 논쟁하였다. 브라이언은 민주당측의 대통령후보로 세 번이나 나섰던 사람이었고, 대로우는 당시에 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반진화론연맹의 활동(사진 2)에도 불구하고, 필트다운인(후일, 사기극으로 판명)과 네브라스카인(후일, 멧돼지어금니로 판명)의 자료에 힘입어 롤스톤판사는 스코프스에게 벌금 100달러의 가벼운 벌금을 부과하면서 반진화론법규들을 무효화시켰다. 여기에서도 진화론자들이 판정승을 한 셈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진화론이 미국의 교육계에 급속도로 확산되는 또 다른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원숭이재판의 영향으로 미국 대학의 신입생중 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설을 믿었던 숫치가 80%(1914)가 42%(1933)로 급강하하였다고 한다. [Richard Culp; Remember Thy Creator, p160, 1975] 

미국 대법원은 1963년부터 공립학교에서의 기도(祈禱)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공립학교의 1/4 이상이 뜨거운 기도모임을 가지고 있다고 타임지는 소개하고 있다. [Time, April 27, 1998]. 미국에서는 주 단위로 교육위원회가 구성되어 자기 주에서의 교육방침을 독자적으로 설정한다. 1981년에는 아칸사스주와 루이지에나주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가르치도록 하는 <수업시간 균등법>이 발효되었으나, 연방판사가 이 입법안이 종교교리를 내세우는 것이므로 비헌법적이라고 판단하여 시행되지 못하였다. 연방대법원도 이러한 견해를 7:2로 지지하였다(1987). 대법원판사인 포타스(Abe Fortas 1981)는 아칸사스주의 반진화법규에 대해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적 정부는...종교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다른 이론에 대항하는 한 종교적 이론을 돕거나 홍보 또는 격려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성경에 반하는 진화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미국의 헌법정신에 반하는 행위임을 지적하는 말이다. 어떻게 크리스챤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파괴하는 비크리스챤적인 진화론을 가르치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말인지 시펄트(1995)는 반문한다. [Albert Sippert; Evolution is not Scientific; 32 Reasons Why, p 354, N. Mankato, MN, 1995]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진화론은 과학의 한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창조론을 두둔하였다(1984), 그러나, 1987년에 연방법원은 이 법규를 위헌이라고 다시 판결하였다. 최근(2000. 8. 11)에는 캔사스주교육위원회(위원장; 린다 헐러웨이, 사진 3)가 “진화론은 확증이 없는 하나의 이론이므로 각종 학교교육의 교과내용과 모든 평가시험에서 진화론을 제외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진화론교육을 위헌으로 판정하고 학교에서는 과학적인 사실만을 가르치도록 결정하였다. [송만석; 린다 헐레웨이 전 캔사스주교육위원회위원장과의 인터뷰, 창조, No. 123, 2월호, pp 30-33, 한국창조과학회, 2001].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진화론자들의 거센 반발로 2001년 4월에 다시 진화론교육이 허용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알라바마주 교육위원회에서는 “(교과서에서) 진화론은 동물, 식물, 사람 등의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논쟁의 소지가 있으므로...생명의 기원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사실이 아닌 이론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아리조나, 켄터키, 루이지아나 등의 6개주에서도 진화론교육의 폐기여부로 논란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속에 미국에서 최근에 실시한 한 갤럽조사(1991)에 의하면, 인류의 기원에 관한 설문에서 매우 예상밖의 결과가 나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식자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창조론 47%, 진화론 9%, 유신진화론 40%로 나타난 것이다(그림1-상). 이러한 결과는 창조론이 아직도 미국사회에서 깊이 신뢰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南條郁子譯; 人類ノ 起源, pp2-3, (株)創元社, 大阪, 1995, 원저는 Thomas Herbert; L'Homme avant l'Homme].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현상은 진화론의 지지가 9%에 불과한 데 반하여 유신진화론이 40%로 높은 지지를 나타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많은 진화론자들이 유신진화론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또 다른 흥미있는 조사는 헐리(John Hulley; Comets, Jews & Christian)가 과거 90년간(1901-1990)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종교분포를 조사한 것이다(그림1-하). 그 결과에 의하면 전체 수상자의 64%가 개신교신자였고, 그 뒤를 유대교(22%), 가톨릭(11%), 정교회(1.6%), 불교(0.9%), 힌두교(0.8%), 이슬람교(0,1%) 등이 순서대로 뒤를 따랐다(그림 1). 기독교계를 모두 합치면 98.6%를 점하고 있어 유신론적인 학자들이 노벨상 수상을 대부분을 독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204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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