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농업은 진화론적 시간 틀로 너무 늦게 시작됐다.
인류는 13,000년 전에 이르러서야 농업을 시작했다?
(Farming Came Too Late in the Evolutionary Timetable)
David F. Coppedge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이 10,000년 전이라면, 현대 인류는 수만 년 이상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현대 인류가 유럽에 도착한 가장 최근의 연대는 43,000년 전이고, 그들은 크로마뇽인(Cro-Magnon Man)이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만약 농업이 (Science 지에 게재된 한 기사에서 언급된 가장 관대한 연대로) 13,000년 전에 시작되었다면, 현대 인류는 30,00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생각해 보라. 30,000년(=300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다 죽었을까? 이 긴 기간 동안 씨를 뿌리면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몰랐다는 것인가? 이 기간은 기록된 역사의 3배가 넘는 긴 기간이다. 그 기간의 1/3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동일한 몸과 두뇌를 가진 인류는 흙집에서 살다가 우주선을 만들어 달에 보내지 않았는가?
”농업은 멋진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두 번 발명되었다”라는 제목의 Science(2013. 7. 4) 지의 기사에서 마이클 발터(Michael Balter)는 그와 같은 경우에 생겨나는 문제점을 무시하고 있었다. 대신에 그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 이스라엘, 이라크, 이란 지역)의 고고학적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 장소들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10,000년 ± 수천 년으로 평가되고 있다.
1만년 전 농업의 발명은 근동 지역에 문명의 발생을 가져왔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농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지중해 근처의 한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곳에서 독립적으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신뢰를 얻고 있는 그러한 견해는 이란에서 초기 농업을 하던 장소가 발견됐다는 보고로 힘을 얻고 있다.
농업의 다중기원 이론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정착하여 살아가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농업은 이상적인 꿈과 같은 것이다. 좋아하는 식물을 심고 재배하는 것은 많은 노동을 감소시켜주는 것이다. 그것은 독립적으로 구별된 여러 지역에서 여러 마을들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완전히 현대적인 사람이 수만 년 더 일찍 농업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크로마뇽 이전의 호모 속(Homo genus) 인류를 포함할 때 문제는 더더욱 악화된다. 호모의 구성원(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등)들은 크로마뇽인이 도착하기 이전에, 불을 사용했고, 무기를 만들었고, 화장을 했고, 약용식물을 먹었으며, 배를 만들어 항해를 했으며, 예술 활동을 했고, 악기를 만들었으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서, 실제적으로 우리와 같았음을 대부분의 인류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다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다면, 190만 년 동안이나 식물을 재배하지 않았으며, 말을 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남아메리카의 일부 종족들은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기 전에 이미 마을들을 건설했고, 그들이 좋아하는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계획을 세우고, 자연의 힘을 조절하려고 하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터는 말한다. ”농업이 한 번 또는 백 번 일어났든지 간에, 그것은 지중해로부터 이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인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사냥꾼들이 농부로 전환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해서였는가?
창조론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Science Now 지의 기사는 진화론적 시간 틀에 심각한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 지를 살펴보라. 사람들은 퍼져나간 모든 곳에서 기념비를 세우고 도시를 건설했다. 마야, 이집트, 스톤헨지, 잉카의 유물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일부 기술은 오늘날의 사람들도 경이로움을 갖게 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들을 찾아냈을 것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비가 온다면 오두막을 지었을 것이고, 여행할 거리가 멀어 발이 아프다면 타고 갈 동물(말, 코끼리, 낙타 등)을 발견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식물이 맛있었다면, 그것을 심고 재배하여 수확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역사 이전에 살았다고 추정하는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선사 인류가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고 추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무기를 만들고, 화장품을 사용하고, 약용식물을 사용하고, 악기를 만들고, 의사소통을 하며, 항해를 하던 그들이 농업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분명 유리하다. 창세기에 의하면, 인간은 에덴 이후에 곧 바로 농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악기를 만들고, 금속을 제련하고, 목축을 했다. 그들은 저주받아 변화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적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거친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들을 찾아냈을 것이다. 아담이 살아있던 시기에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민족들의 표는 노아 홍수 이후 그리고 바벨에서 언어의 혼란이 일어난 이후에 인류가 분산되었다는 것이 신뢰할만한 역사임을 가리킨다. 놀랍도록 정확한 이름, 족보, 지명, 평가 연대(창조론자들은 홍수 이전 시기의 방사성탄소 연대는 의문을 제기한다)들은 고고학적 발견들과 일치한다. 초월적 지성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은 처음부터 지적으로 현명했다는 창조론적 설명은 실제 인류 역사와 일치한다. 그 분은 목격자셨다. 그 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목격자에 의한 기록은 아메바로부터 무작위적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이 출현했다고 상상하는 진화론자들의 공허한 추정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진화론적 연대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장구한 시간 틀에 관측된 데이터를 짜맞추기 위해서 부풀려진다. 합리적인 사고의 사람이라면, 조금만 생각해봐도 진화론의 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주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과학이 관측과 논리를 따라야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목격하셨던 분에 의해 지시된 기록을 따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판타지 랜드에서 이야기들을 지어내기 위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참조 : Archaeologists Find Farming’s Roots All Over the Fertile Crescent (2013. 7. 20. AiG New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13/07/20/farming-roots-fertile-crescent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e.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al about 12,000 years ago changed the way humans lived.
(2022. 7. 8. National Geographic)
https://education.nationalgeographic.org/resource/development-agricultur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3/07/farming-came-too-late-in-the-evolutionary-timetable/
출처 - CEH, 2013. 7. 6.
인류의 농업은 진화론적 시간 틀로 너무 늦게 시작됐다.
인류는 13,000년 전에 이르러서야 농업을 시작했다?
(Farming Came Too Late in the Evolutionary Timetable)
David F. Coppedge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이 10,000년 전이라면, 현대 인류는 수만 년 이상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현대 인류가 유럽에 도착한 가장 최근의 연대는 43,000년 전이고, 그들은 크로마뇽인(Cro-Magnon Man)이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만약 농업이 (Science 지에 게재된 한 기사에서 언급된 가장 관대한 연대로) 13,000년 전에 시작되었다면, 현대 인류는 30,00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생각해 보라. 30,000년(=300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다 죽었을까? 이 긴 기간 동안 씨를 뿌리면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몰랐다는 것인가? 이 기간은 기록된 역사의 3배가 넘는 긴 기간이다. 그 기간의 1/3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동일한 몸과 두뇌를 가진 인류는 흙집에서 살다가 우주선을 만들어 달에 보내지 않았는가?
”농업은 멋진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두 번 발명되었다”라는 제목의 Science(2013. 7. 4) 지의 기사에서 마이클 발터(Michael Balter)는 그와 같은 경우에 생겨나는 문제점을 무시하고 있었다. 대신에 그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Fertile Crescent, 이스라엘, 이라크, 이란 지역)의 고고학적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 장소들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10,000년 ± 수천 년으로 평가되고 있다.
농업의 다중기원 이론은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정착하여 살아가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농업은 이상적인 꿈과 같은 것이다. 좋아하는 식물을 심고 재배하는 것은 많은 노동을 감소시켜주는 것이다. 그것은 독립적으로 구별된 여러 지역에서 여러 마을들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완전히 현대적인 사람이 수만 년 더 일찍 농업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크로마뇽 이전의 호모 속(Homo genus) 인류를 포함할 때 문제는 더더욱 악화된다. 호모의 구성원(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등)들은 크로마뇽인이 도착하기 이전에, 불을 사용했고, 무기를 만들었고, 화장을 했고, 약용식물을 먹었으며, 배를 만들어 항해를 했으며, 예술 활동을 했고, 악기를 만들었으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서, 실제적으로 우리와 같았음을 대부분의 인류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다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다면, 190만 년 동안이나 식물을 재배하지 않았으며, 말을 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남아메리카의 일부 종족들은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기 전에 이미 마을들을 건설했고, 그들이 좋아하는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계획을 세우고, 자연의 힘을 조절하려고 하는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터는 말한다. ”농업이 한 번 또는 백 번 일어났든지 간에, 그것은 지중해로부터 이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인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최초로 발생했다.” 사냥꾼들이 농부로 전환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해서였는가?
창조론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Science Now 지의 기사는 진화론적 시간 틀에 심각한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 지를 살펴보라. 사람들은 퍼져나간 모든 곳에서 기념비를 세우고 도시를 건설했다. 마야, 이집트, 스톤헨지, 잉카의 유물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일부 기술은 오늘날의 사람들도 경이로움을 갖게 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들을 찾아냈을 것이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비가 온다면 오두막을 지었을 것이고, 여행할 거리가 멀어 발이 아프다면 타고 갈 동물(말, 코끼리, 낙타 등)을 발견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식물이 맛있었다면, 그것을 심고 재배하여 수확했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이 역사 이전에 살았다고 추정하는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선사 인류가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다고 추정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무기를 만들고, 화장품을 사용하고, 약용식물을 사용하고, 악기를 만들고, 의사소통을 하며, 항해를 하던 그들이 농업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분명 유리하다. 창세기에 의하면, 인간은 에덴 이후에 곧 바로 농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악기를 만들고, 금속을 제련하고, 목축을 했다. 그들은 저주받아 변화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적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거친 환경을 극복하는 방법들을 찾아냈을 것이다. 아담이 살아있던 시기에 사람들은 도시를 건설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민족들의 표는 노아 홍수 이후 그리고 바벨에서 언어의 혼란이 일어난 이후에 인류가 분산되었다는 것이 신뢰할만한 역사임을 가리킨다. 놀랍도록 정확한 이름, 족보, 지명, 평가 연대(창조론자들은 홍수 이전 시기의 방사성탄소 연대는 의문을 제기한다)들은 고고학적 발견들과 일치한다. 초월적 지성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은 처음부터 지적으로 현명했다는 창조론적 설명은 실제 인류 역사와 일치한다. 그 분은 목격자셨다. 그 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목격자에 의한 기록은 아메바로부터 무작위적인 과정을 통해서 사람이 출현했다고 상상하는 진화론자들의 공허한 추정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진화론적 연대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장구한 시간 틀에 관측된 데이터를 짜맞추기 위해서 부풀려진다. 합리적인 사고의 사람이라면, 조금만 생각해봐도 진화론의 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주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과학이 관측과 논리를 따라야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목격하셨던 분에 의해 지시된 기록을 따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판타지 랜드에서 이야기들을 지어내기 위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참조 : Archaeologists Find Farming’s Roots All Over the Fertile Crescent (2013. 7. 20. AiG New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13/07/20/farming-roots-fertile-crescent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e.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al about 12,000 years ago changed the way humans lived.
(2022. 7. 8. National Geographic)
https://education.nationalgeographic.org/resource/development-agricultur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3/07/farming-came-too-late-in-the-evolutionary-timetable/
출처 - CEH, 2013.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