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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대홍수 이후 시대 1

미디어위원회
2005-08-01

대홍수 이후 시대 1

유종호 


1. 대홍수 이후의 지구

대홍수 기간과 그 직후에 지구 위에서 생겼던 모든 재난을 감안해 볼 때, 대홍수 이후의 지구는 과연 어떠했을까? 한 가지는 아주 분명하다. 대홍수 이후 물이 빠진 세계는 그 전에 존재했던 아름답고 쾌적하고 풍성한 옛 모습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3:6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 위에 있던 수증기 층으로부터 지구상에 엄청나게 퍼부은 많은 양의 비와, 거칠고 파괴력을 가진 바람과 토네이도, 사이클론, 허리케인, 북극지역에서의 거의 순식간에 -130℃로 기온의 급강하, 해저 샘(깊음의 샘)들의 터짐, 땅덩어리와 산들의 융기, 화산과 지진에 의한 전 지구가 흔들림, 빠른 속도로 밀려와서 육지를 덮친 엄청난 높이의 파괴적인 해일, 부서지고 깨진 바윗돌과 온갖 잡탕들과 뒤섞여 버린 비옥한 토양 등... 이 모든 것들이 1, 2마일 또는 그 이상의 깊이로 새로운 퇴적층을 이루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이 지구에 살아남은 거민들을 위해 전혀 새로운 지구 환경을 만들었다.

대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비옥한 원시 토양은 아마도 영원히 잃어버린 것 같다. 노아와 그의 세 아들 내외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미국의 새로운 땅으로 이민해서 유럽지방의 옛 지명들을 미국의 새 정착지에 붙인 것과 마찬가지로 노아와 그 후손들은 분명히 홍수 전부터 알고 있던 옛 지명들을 새로운 정착지에 부여했을 것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지상의 물을 분리하시고 마른 땅을 드러나게 하셨을 때, 즉 대홍수 이전의 육지는 지금보다는 훨씬 넓었을 것이다. 대홍수 이전에는 기복이 덜하고 평평했던 지구 표면은 홍수 이후에는 궁창의 물이 쏟아져 내려서 험준한 산맥과 깊은 해저를 이루며 변형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해저 특히 대륙 인근의 대륙붕들은 옛날에는 마른 육지였을 것이다.

풍성하게 자라던 수많은 맛있는 과일들, 견과류, 딸기류,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각종 채소류들은 모두가 사라졌다. 그 전에 있던 삼림과 인공적인 거대한 문명의 산물들은 없어져 버렸다. 울퉁불퉁한 산들과 급하게 흐르는 강들이 인간들이 다니려고 하는 모든 길을 막아버려서 넘고 건너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딴 행성에 온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달라진 것은 지구 표면만이 아니었다. 기후도 엄청나게 변했다. 그때까지는 궁창 위에서 보호막 역할을 하던 물 층이 그들을 보호하고 땅위에 알맞게 수분도 공급해 주었었는데, 이제는 온난하고 쾌적한 봄날 같은 기후는 더 이상 누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혹서와 혹한과 무시무시한 폭풍우의 날씨가 반복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후와 직면하게 되었다. 젯드 기류를 따라 이동되는 고·저 기압체계는 하루하루의 날씨가 예측할 수 없고 끊임없이 변화무쌍했다. 보호막 역할을 하던 물 층이 사라지자 당대 인간은 물론이요 자녀들과 후손들 그리고 동물들의 수명은 단축되었고, 마찬가지로 식물들의 수명도 현저히 단축되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뉘게 하시매(창1:7)” 이전에 궁창 위에 있던 물에 정영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일단 떨어진 이 물들은 지금은 없는 것으로 보아 다시 하늘로 되돌아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땅 덩이를 들어 올려(융기시켜) 산맥들을 형성하셨을 때, 동시에 모든 홍수 물들을 저장해 둘 처소를 만들기 위해 땅의 어떤 부분의 깊이는 낮추셨다. 

이것은 모두가 시편 104:5-8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데 즉,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8절을 좀 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산은 솟아오르고 골짜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마련해 놓으신 처소로 내려갔나이다.”이다. 진실로 노아와 그의 후손들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2.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

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틀림없이 그들은 고도의 지적 수준을 가졌으며, 기술적으로 발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르네 누어버겐은 <잃어버린 인종들에 대한 비밀, 1977>에서 노아와 그의 아들 가족 등 소수의 생존자들은 대홍수 이전에 있었던 기술지식을 거의 보유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같은 책 p.26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는 바뀐 환경에 낯선 생존자들인 이 8명의 적은 집단이 홍수 이전 문명으로 알려져 있는 모든 부문의 기술적 환경여건을 재생시키기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물론 기술 분야는 그것의 유지를 위해서 많은 인구가 꼭 필요하다. 따라서 생존한 인간 가족들이 대홍수 이후 시대에 재건할 수 있었던 문명의 수준은 심각하게 낮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대형 3층 선박을 건조하고 있던 전 기간 동안(약 120년)에 그들이 능히 그들의 자손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던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추가적인 기술과 기능을 틀림없이 습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도급자들을 고용했다면 틀림없이 그들로부터 많은 기능을 배웠을 것이다.

노아는 홍수 이후에도 350년 동안을 생존했는데, 창세기 10:1-4절에 보면 노아의 손자들과 증손들의 명단이 나와 있다. 이들과 증손들의 또 다른 후손들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홍수 이전부터 전수해 온 많은 기술을 배웠을 것이다. 이런 기술로부터 고도의 기술과 발달된 애굽(이집트), 수메르,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문명들로 이어졌다. 우리는 애굽인들이 피라미드와 다른 많은 건축물들을 건설하기 위해서 얼마나 뛰어난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이미 살펴본바 있다. 사실 창세기 10:8-10절에는 함의 아들인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시작되었으며”라고 씌어 있다. 바벨과 시날과 니느웨는 수메르와 바벨론의 발달된 문명의 사람들에게로 우리를 인도해 준다.

어떤 세대는 구약의 족보에서 가끔 그랬던 것처럼 생략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지식은 그들의 후속 세대로 전수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홍수 이후 10대 손에 해당한다. 홍수 이후에도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노아 자신도 홍수 이후에 350년 동안이나 살았고, 각 세대간 수 백년 씩이나 서로 겹쳐서 살았음으로, 노아와 그의 아들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은 분명코 여러 세대에 걸쳐 후손들에게 전수되었을 것이다. 비록 바벨탑 이후의 민족과 부족들은 조상으로부터 후손들에게 잘못 와전된 내용을 전하였지만, 이 사람들은 대홍수 이야기를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였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홍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홍수 이전의 역사에 관한 지식도 전해 주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히브리 민족은 아담과 하와 때로부터의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지만, 수메르인들 조차도 대홍수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다소간 왜곡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벨론 우르의 아브라함 고향 마을로부터 1-2마일 북쪽에서 웰드-브룬더 탐험대는 BC 2100년 경 누르-닌수브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쓴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는 웰드 프리즘을 발굴했다. 이 프리즘에는 대홍수 이전에 살았던 10명의 왕(성경에 있는 홍수 전 10족장들을 언급한 것임)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 누르-닌수브르라는 사람에 관하여 르네 누어버겐은 그의 저서 <잃어버린 인종들의 비밀들> p.26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의 설명에서 그는 10명의 홍수 이전 왕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슬픈 말들로 끝맺고 있다. “그리고 대홍수가 온 땅을 뒤덮었다.” 수메르 인들과 후기 바벨론 인들 그리고 앗시리아 인들은 대홍수 이전 시대를 우수한 문학적 자원으로 더 깊이 인식하고 있다. 바벨론의 한 왕은 “그가 대홍수 이전 시대의 작품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기록했다. 니느웨에서 대형 도서관을 발견한 앗수르 바니팔은 “대홍수 이전 시대의 대형 비문”에 관해서 언급했다. 그것은 대홍수 전·후의 문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그것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발달된 이유는,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들 뇌의 전용량을 온전히 사용하였던 반면, 오늘날의 우리들은 우리 뇌의 용량의 1/6만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만일 노아와 어쩌면 도급자들과 함께 그의 세 아들들이 그렇게 큰 배를 지었다면, 그들과 후손들은 태평양 또는 최소한 아프리카와 남미를 횡단하는 배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테말라의 마야인들은 그곳에서 많은 지식을 소유했던 최초의 인류라고 말했다.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950년 이상을 살았고, 노아는 홍수 이후로 350년을 더 살기는 했지만, 대홍수 이후의 사람들은 훨씬 단명했다. 궁창 위의 물 층이 오늘날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유해파 일부를 차단시키는 것을 도와줌으로서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장수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가임(可妊) 연한에 관한 것이다. 그 때 여성들이 임신할 수 있는 기간은 오늘날의 약 50세까지보다 수년 또는 수십 년은 더 길었을 것이고, 대홍수 때까지 인구는 수십억 명에 달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홍수 이후 단 기간 내에 인구는 한 나라를 이룰 만큼 증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창10:32절에 이르기를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3. 바벨탑

위에 인용한 창10:32 직후, 창11:1,2절에는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시날 평지는 노아의 증손인 니므롯이 나라를 세웠던 땅이다 (창10:10). 역사적으로 시날은 바벨론과 관련을 맺고 있다.


4. 대홍수와 바벨탑 사이의 기간

노아 시대와 바벨탑 사건 사이의 몇몇 족장들의 이름들이 창세기 10과 11장에서 빠져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의 두 사건 사이의 기간은 불확실하다. 아마도 그 기간이 150년에서 350년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아브라함의 출생년도가 BC 2167년이라는 것을 기초로 할 때 대홍수는 BC 2460년에 발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바벨탑 사건은 대홍수 후 150년 내지 350년 기간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상의 다른 사건에서 미루어 대홍수와 바벨탑사건은 그보다도 수 세기 이르게 발생했을 수도 있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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