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시길 원하셨나?
김무현
성경을 비아냥거리며 비웃기를 좋아하는 불신자들 가운데에는 만일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왜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오늘날 보여주시지 않는가? 라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실제로 기적을 보느냐 안 보느냐가 믿음의 결정적인 동기가 됩니까? 출애굽기의 바로 및 애굽백성 그리고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민수기 14:22-23)은 어떠합니까? 여리고성의 백성들(여호수아 2:10-11)은 어떠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및 따르던 사람들은 어떠하였습니까?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신명기 29:3-4)
신명기 29:3-4에서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도 하나님을 깨닫는 마음과 영적인 눈과 그 음성을 듣는 귀를 갖고 있지 못함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영적인 눈을 허락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며, 동행하고 인도하여 주시는 그 은혜가, 그 많은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 때보다도 얼마나 더 풍성 한지요.
하나님께서 믿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심지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을 볼지라도 믿지 않게 됩니다. 누가복음 16:31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계십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믿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6:31)
요한복음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전후하여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무리들은 오병이어의 참으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사라지신 예수님을 열심히 찾으러 다녔습니다. 예수님을 찾아낸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한복음 6:28)”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전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성령의 자연스러운 역사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무리들은 그 교훈을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로 체험한 그 다음날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요한복음 6:30)” 즉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합니다.
기적 때문에 흥분하며 믿으려하는 사람들은 계속 기적을 요구하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의 기반이 기적이기 때문에 그 기억이 희미해지면 또 다른 기적을 찾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으로 오신 메시아의 참 의미며 그 안에 영생이 있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런 어려운 말씀은 잘 이해가 안가니 표적이나 보여달라고 수군대는 무리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복음의 메시지)이 영이요 생명이나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책망하십니다. 즉 표적을 봄으로써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그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에서는 그 기적을 체험한 무리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예수님)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러라(요한복음 6:66)”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무엇인가 얻어내기를 바라며 따라다니던 무리들은 진리의 말씀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마저도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 흩어지고 숨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나의 신앙에 혹시 이러한 모습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요?
최근 인간 유전자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통하여 지극히 미세한 유전자(gene) 속에 실로 엄청나게 복잡하고도 정교한 정보들이 신묘막측 하게 담겨져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DNA를 모두 연결하면 지구와 태양을 10번 이상 왕복할 수 있는 길이가 된다고 합니다. 그 안에 인체의 생명현상을 만들어가고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체의 구조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저 우리가 숨쉬고 사는 것이 기적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전능자의 지적 설계를 보면서 모든 진화론자들이 신앙을 가지게 됩니까?
로마서1:20에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창조주의 손길을 분명히 보되, 그를 인정치 않으려는 죄성이 그 믿음의 시야를 가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살고 싶은 그 뿌리깊은 죄성 말입니다.
이 세상신(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4)
로마서 1:21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로마서 1:21-25)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성경을 통하여 주어지기 전에는, 그러한 기적들이 하나님의 유일한 신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필요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완전한 계시(성경 66권)가 주어진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대에 기적의 역사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완전한 계시가 주어졌으므로 극히 제한적으로 (특히 자연계의 기적) 사용하실 뿐입니다. (완전한 계시가 미미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이 필요한 일선 선교지 등에서도 기적의 역사가 복음전파의 일익을 담당함을 볼 수 있음).
로마서 1:17을 묵상하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무엇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 이르게 합니까?
고린도전서 1:21-24를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1-24)
유대인과 헬라인은 각각 무엇을 구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까? 왜 좀 더 드라마틱한 방법대신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쓰실까요?
이 시대에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역사 하실 때 회심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through the living and enduring Word of God)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사실 성경을 통한 완전한 계시가 주어진 후에 가장 놀라운 기적중의 기적은 그 말씀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인격과 가치관이 완전히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격의 변화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냐 사단의 능력이냐를 분별하는 리트머스 테스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실재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새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과연 필요할까요?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17:31)
로마서 16:26에 의하면 우리의 신앙을 능히 견고케 하는 것은 계시된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로마서 16:26)
다음의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정리하는 기분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길 원하셨나?”에 대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7-29)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8)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하나님께서는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22:18~19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도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즉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복음의 내용이 요한계시록으로 마쳐졌다고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다른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에 부가되거나 비슷한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만약 카톨릭에서 교리문답서를 성경과 같은 위상에 둔다거나 교황청의 명령을 성경과 같은 권위에 둔다면 그것은 오류일 것입니다. 모슬렘들은 마호메트에게 알라신이 특별히 계시하셔서 성경 위에 코란을 주셨다고 합니다. 몰몬교도들은 조셉 스미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시하셔서 성경 위에 몰몬경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이 요한계시록 22:18에 비추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예레미야 23:30)? 성경의 전체적 내용을 확실히 알고 이단의 교리에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그리고 주위에 이단의 교리에 현혹된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에게 정확하고 바른 복음을 전할 지혜와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출처 - 도서 `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시길 원하셨나?
김무현
성경을 비아냥거리며 비웃기를 좋아하는 불신자들 가운데에는 만일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왜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오늘날 보여주시지 않는가? 라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은 이러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실제로 기적을 보느냐 안 보느냐가 믿음의 결정적인 동기가 됩니까? 출애굽기의 바로 및 애굽백성 그리고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민수기 14:22-23)은 어떠합니까? 여리고성의 백성들(여호수아 2:10-11)은 어떠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및 따르던 사람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신명기 29:3-4에서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매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도 하나님을 깨닫는 마음과 영적인 눈과 그 음성을 듣는 귀를 갖고 있지 못함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영적인 눈을 허락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시며, 동행하고 인도하여 주시는 그 은혜가, 그 많은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 때보다도 얼마나 더 풍성 한지요.
하나님께서 믿는 마음을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심지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을 볼지라도 믿지 않게 됩니다. 누가복음 16:31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전후하여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무리들은 오병이어의 참으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사라지신 예수님을 열심히 찾으러 다녔습니다. 예수님을 찾아낸 그들은 예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한복음 6:28)”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전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성령의 자연스러운 역사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무리들은 그 교훈을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로 체험한 그 다음날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요한복음 6:30)” 즉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합니다.
기적 때문에 흥분하며 믿으려하는 사람들은 계속 기적을 요구하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의 기반이 기적이기 때문에 그 기억이 희미해지면 또 다른 기적을 찾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으로 오신 메시아의 참 의미며 그 안에 영생이 있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런 어려운 말씀은 잘 이해가 안가니 표적이나 보여달라고 수군대는 무리들에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복음의 메시지)이 영이요 생명이나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책망하십니다. 즉 표적을 봄으로써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그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에서는 그 기적을 체험한 무리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예수님)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러라(요한복음 6:66)”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무엇인가 얻어내기를 바라며 따라다니던 무리들은 진리의 말씀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마저도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 흩어지고 숨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나의 신앙에 혹시 이러한 모습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요?
최근 인간 유전자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통하여 지극히 미세한 유전자(gene) 속에 실로 엄청나게 복잡하고도 정교한 정보들이 신묘막측 하게 담겨져 있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DNA를 모두 연결하면 지구와 태양을 10번 이상 왕복할 수 있는 길이가 된다고 합니다. 그 안에 인체의 생명현상을 만들어가고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체의 구조를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저 우리가 숨쉬고 사는 것이 기적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전능자의 지적 설계를 보면서 모든 진화론자들이 신앙을 가지게 됩니까?
로마서1:20에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창조주의 손길을 분명히 보되, 그를 인정치 않으려는 죄성이 그 믿음의 시야를 가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살고 싶은 그 뿌리깊은 죄성 말입니다.
로마서 1:21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완전히 성경을 통하여 주어지기 전에는, 그러한 기적들이 하나님의 유일한 신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필요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완전한 계시(성경 66권)가 주어진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대에 기적의 역사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완전한 계시가 주어졌으므로 극히 제한적으로 (특히 자연계의 기적) 사용하실 뿐입니다. (완전한 계시가 미미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이 필요한 일선 선교지 등에서도 기적의 역사가 복음전파의 일익을 담당함을 볼 수 있음).
로마서 1:17을 묵상하십시오.
무엇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 이르게 합니까?
고린도전서 1:21-24를 묵상하십시오.
유대인과 헬라인은 각각 무엇을 구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까? 왜 좀 더 드라마틱한 방법대신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쓰실까요?
이 시대에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께서 역사 하실 때 회심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실 성경을 통한 완전한 계시가 주어진 후에 가장 놀라운 기적중의 기적은 그 말씀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인격과 가치관이 완전히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격의 변화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냐 사단의 능력이냐를 분별하는 리트머스 테스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실재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새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과연 필요할까요?
로마서 16:26에 의하면 우리의 신앙을 능히 견고케 하는 것은 계시된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정리하는 기분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계시하길 원하셨나?”에 대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22:18~19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복음의 내용이 요한계시록으로 마쳐졌다고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다른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에 부가되거나 비슷한 권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만약 카톨릭에서 교리문답서를 성경과 같은 위상에 둔다거나 교황청의 명령을 성경과 같은 권위에 둔다면 그것은 오류일 것입니다. 모슬렘들은 마호메트에게 알라신이 특별히 계시하셔서 성경 위에 코란을 주셨다고 합니다. 몰몬교도들은 조셉 스미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시하셔서 성경 위에 몰몬경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이 요한계시록 22:18에 비추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예레미야 23:30)? 성경의 전체적 내용을 확실히 알고 이단의 교리에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그리고 주위에 이단의 교리에 현혹된 형제/자매가 있다면 그에게 정확하고 바른 복음을 전할 지혜와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출처 - 도서 `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