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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사랑의 하나님은 왜 여리고성 사람들의 진멸을 명하셨는가?

사랑의 하나님은 왜 여리고성 사람들의 진멸을 명하셨는가? 

(Contradictions : Slaughter at Jericho Could the loving God of the New Testament order 

the complete destruction of the inhabitants of Jericho found in the Old Testament?)


     여리고(Jericho) 성에 거주했던 사람들에 대한 대량학살(massacre)은 주의 깊은 독자들에게 여러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고등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성경과 고고학적 자료들 사이에 충돌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단지 과장되고 포장된 신화(myth)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신약성경의 신은 사랑, 관용, 인내의 신인 반면에, 구약성경의 여호와는 변덕스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회유와 피의 희생을 요구했던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전쟁광이고, 여성들과 천진난만한 아이들까지도 죽이는 잔인한 살인자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기독교인들에게 ‘입증’하기 위해서 성경의 이 부분을 사용한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은 자신의 커다란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예배와 존경을 강요하는 경배할만한 가치가 없는 신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많은 신실한 기독교인도 이 성경 구절의 부끄러움 없는 적나라한 기록에 대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 부분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과 이 세상의 존재하는 악 사이에 관계를 정립하는 데에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별히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진멸하라고 말씀 부분에서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에 전통적인 미국 복음성가를 노래하였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전투를 하였네, 여리고, 여리고,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전투를 하였네, 성벽이 무너져 내렸네”

물론 주일학교에서 양각 나팔을 부는 흉내를 내면서 의자들 주위를 행진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좋은 사람들 편에 있었다. 반면에 여리고성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비록 그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도시를 잃게 되는 악한 사람들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리는 그 죽음의 행진에는 냉정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 연극에 새롭고 깊은 의미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그 구절을 숙고해보자 :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수 6:21)

비록 우리가 여러 면으로 해석해 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약탈을 일삼는 유목민인 이스라엘 군대를 이끄는 여호수아의 발아래 짓밟히고 있는 여리고성 사람들이라는 딜레마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직접적인 범죄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해드리는 어떤 종류의 변형된 허락 또는 금지로 여길 수도 없어 보인다. 사실 그러한 행동은 특별한 목표를 가진 주의 깊게 계산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명령하셨고(신 7:2), 여호수아는 그것을 수행했다(수 6:21).

이 이야기의 배경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iniquity of the Ammorites)”으로 표현된 창세기 15:16절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나안 땅을 점령했던 민족들은 문화와 관습에 있어서 끔찍할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즉각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세의 기록으로부터 하나님이 오랜 인내를 끝내시고 이제 행동을 하시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는 중이셨음을 알 수 있다.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레 18:25)

모세의 글들 여러 곳에서 아모리 족속은 팔레스타인(블레셋) 전체를 대표하는 족속으로 여호와께서 여기고 계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군다나 그들은 너무도 타락하여 마치 땅도 스스로 토하여낼 정도로 부패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최근 우가릿(Ugarit)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그곳이 우상숭배, 남색, 수간, 마법, 아이 제물(child sacrifice) 등으로 가득했다는 것이 밝혀져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었다. 따라서 여리고의 각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우상숭배, 타락한 문화, 역병 등을 전해줄 수 있었다. 우리는 신명기 18:9–12절의 말씀을 어제 뉴스를 읽는 것처럼 무감동과 무관심 하에 읽어서는 안 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신 18:9–12)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를 몰록(Molech, 몰렉) 신에게 불로 태워 드렸다. 유아를 희생제물로 드리는 행위는 고대의 한 종족에 있었던 불행한 관습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 스스로를 짐승들로 여기며 타락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던 비틀린 의식이었다. 가나안의 문화는 오늘날 낙태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러한 수준의 종교적 행사가 아니었다.

여리고의 문제는 쉽게 풀려질 수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그 분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계셨다. 모세에게 스스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 분의 성품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7)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오래 참으심, 공평, 자비, 인내 등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반사적인, 그리고 변덕스러운 행동을 결코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그의 창조물에 대한 우주적 권위를 가지고서,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때에 그 분의 뜻을 행하시는 창조주로서의 권리를 남겨두고 계신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면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라고 주장했을 때 그랬다. 따라서 그 문제의 답은 성경에 나타나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특성에 달려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에 의한 대량학살이 정당성이 있었던 때가 일찌기 있었는가? 대답은 틀림없이 ‘예’이다. 왜냐하면 전 지구적인 홍수 심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고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오랜 참으심은 언젠가 심판하심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을 바로 알자(The Knowledge Of The Holy)’에서 토저(A. W. Tozer)는 말한다 :

”어느 곳에서든지 기독교 교회가 소멸되어가기 전에, 먼저 교회의 가장 근본적인 신학에 있어서 부패가 일어난다. 교회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록 교회가 건전한 명목상의 교리를 고수하고 있을지라도, 실제적인 행동 교리들은 잘못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 신도들이 실제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음흉하고 치명적인 종류의 이단이다.”     

여기 바울 사도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경적인 하나님의 특성과 성품을 생각해보도록 하는데에 도전이 되고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8/10/27/contradictions-slaughter-at-jericho

출처 - AiG–U.S. October 27, 2008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463

참고 : 4452|4451|4450|4043|3218|3166|3065|3022|2688|4380|4204|3020|3162|2530|2321|1756|4387|4413|4399|4414|3403|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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