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제례 예식의 증거.
(Evidence of Cultic Activity in Judah Discovered at Khirbet Qeiyafa)
AiG News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굴된 인상적인 요새는 3,000년 전에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던 유대인들의 부강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Bible History Daily, 2012. 5. 8)
키르벳 퀘야파(Khirbet Qeiyafa)은 사울 왕 시기에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Goliath)을 물리쳤던 장소인 엘라 골짜기(the Valley of Elah)를 내려다 보고 있는 고고학적 발굴 장소이다. (키르벳 케야파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엘라 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가까운 곳에 블레셋의 중요한 도성인 가드가 있다). 2008년 그곳에서의 발견은 3000년 전 유대인들은 강력한 중앙집권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도전이 되고 있었다. 키르벳 퀘야파는 새로 확립된 (성경의 사울 왕이나 다윗 왕일 수 있는) 유대 왕권의 통제 하에 있었던 강력한 요새였음을 새로 발견된 증거들은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고고학자들이 유대의 다윗왕 시대에 요새화된 도시를 발굴해낸 최초의 사례이다” 히브리어 대학의 요세프 가핀켈(Yosef Garfinkel) 교수는 설명한다. ”예루살렘에서도 다윗의 기간 동안 명백하게 요새화된 도시를 발굴하지 못했다. 따라서 다윗 왕에 관한 성경적 기록을 거부하는 여러 제안들과 다윗 왕이 신화적 인물이라는, 또는 작은 부족의 지도자에 불과했다는 주장은 이제 잘못된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적인 엘라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삼상 17:19), 고대 블레셋 국경 지역인 키르벳 퀘야파(Khirbet Qeiyafa)의 요새화된 도시.[1]
다윗과 골리앗이 대적했던 시기에 블레셋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오고 있었다. BC 1020~980년 경으로 평가된 키르벳 퀘야파는 블레셋 국경 근처에 위치한 요새화된 도시였다. 아마도 블레셋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였다.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문서에 통치자의 이름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러나 그 문서들은 블레셋이나 가나안 문자들이 아닌, 고대 히브리 문자로 쓰여져 있었다. 가나안 지역에서 발견된 전형적인 유물과는 다르게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유대인 유물에서 뚜렷이 보여지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종교적 유물에 조각된 형상들이 현저하게 부족했으며, 쓰레기에서 돼지 뼈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5년에 걸쳐 수 천 개의 동물 뼈들이 발견되었는데, 염소, 양, 소의 뼈들이었고 돼지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문화재청의 가핀켈과 사아르 가노르(Saar Ganor)는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종교 유물들을 3000년 전의 건축 양식과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행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 장소가 솔로몬의 성전보다 앞선 연대이지만, 두 개의 작은 ‘휴대용 신당(portable shrines)’에는 사자와 새들이 새겨져있는 우아한 앞면과 정교한 외부 건축학적 세부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그 모형이 솔로몬 성전에 대한 성경적 세부 장식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바닥 왼쪽에 사자 머리와, 입구 위쪽에 세 마리의 새들, 아름다운 주름이 있는 휘장을 가진 정교한 앞면과 기둥을 가진 점토로 된 작은 휴대용 신당.[2]
그러한 휴대용 신당은 그 시대에 흔한 종교적 물건이었고, 대게 우상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어 있었다. 가핀켈은 말한다. ”수 년 동안(2008년 이후) 양, 염소, 소 등을 포함하여 수천의 동물 뼈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돼지 뼈는 없었다. 이제 우리는 여러 제사 기구들이 들어있던 3개의 제사를 드리던 방을 발굴하였다. 그러나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조각상(figurine)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키르벳 퀘야파의 사람들이 두 가지 성경적 금지사항, 즉 돼지고기와 새겨진 형상을 금지했던 것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이나 블레셋 사람과는 다른 신을 숭배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은 키르벳 퀘야파의 거주자들은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오스트라카(Ostraca)는 고대인들의 문자가 기록되어 있는 도자기 파편이다. 이들 문자를 해독한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의 에밀 퓌에시(Émile Puech)에 따르면, 키르벳 퀘야파의 오스트라카는 강력한 새로운 국가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문장은 더 높은 권위에 대한 인정의 필요성을 표현하고 있었고, 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3] 세금과 법적 사항들과 관련된 여러 오스트라카는 작은 족장의 권력을 넘어서는 중앙집권 권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퓌에시의 해석은 사울 왕 또는 다윗 왕의 통치와 적합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기록된 계시이기 때문에, 성경의 상세한 내용 모두가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지는 않을 것이며, 성경을 증명하기 위해서 고고학적 발굴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발견되고 있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적 역사의 사실성을 확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이러한 유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키르벳 퀘야파의 돌들은 고대 유대 사람들이 이웃 민족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며 살았었음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성경으로 보존하시기 위해 선택받았던 사람들로써, 하나님 계획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민족을 통하여 다윗 왕이 태어났고, 그의 후손으로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던 것이다.
Footnotes
[1] Image from Khirbet Qeiyafa Archaeological Project through
http://www.huffingtonpost.com/2012/05/10/khirbet-qeiyafa-archaeology_n_1504722.html.
[2] Image from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through
http://www.diggingsonline.com/pages/rese/arts/other/2012/qeiyafa01.htm.
[3] http://www.bib-arch.org/bar/article.asp?PubID=BSBA&Volume=38&Issue=3&ArticleID=4
*관련기사 : 다윗왕 시대의 고대 도시 발견 (2012. 6. 4. CGN 투데이)
http://news.cgntv.net/player/home.cgn;jsessionid=FA0568926D055CE6AD24C3AA046F741F?c=100&v=8858
이스라엘 학자 "다윗왕 궁전터 발견" 주장 (2013. 7. 22.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30722001500009
다윗 왕 관련 고고학적 발견 (2016. 9. 22. CTS TV)
https://www.cts.tv/news/view?ncate=CATTV&dpid=206812
성경의 ‘시글락’으로 추정되는 장소 발견 (2019. 7. 10. KRM)
https://krmnews.tv/2019/07/10/ziklag/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12/05/19/news-to-note-05192012
출처 - AiG News, 2012. 5. 19.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제례 예식의 증거.
(Evidence of Cultic Activity in Judah Discovered at Khirbet Qeiyafa)
AiG News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굴된 인상적인 요새는 3,000년 전에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던 유대인들의 부강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Bible History Daily, 2012. 5. 8)
키르벳 퀘야파(Khirbet Qeiyafa)은 사울 왕 시기에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Goliath)을 물리쳤던 장소인 엘라 골짜기(the Valley of Elah)를 내려다 보고 있는 고고학적 발굴 장소이다. (키르벳 케야파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엘라 골짜기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가까운 곳에 블레셋의 중요한 도성인 가드가 있다). 2008년 그곳에서의 발견은 3000년 전 유대인들은 강력한 중앙집권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도전이 되고 있었다. 키르벳 퀘야파는 새로 확립된 (성경의 사울 왕이나 다윗 왕일 수 있는) 유대 왕권의 통제 하에 있었던 강력한 요새였음을 새로 발견된 증거들은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고고학자들이 유대의 다윗왕 시대에 요새화된 도시를 발굴해낸 최초의 사례이다” 히브리어 대학의 요세프 가핀켈(Yosef Garfinkel) 교수는 설명한다. ”예루살렘에서도 다윗의 기간 동안 명백하게 요새화된 도시를 발굴하지 못했다. 따라서 다윗 왕에 관한 성경적 기록을 거부하는 여러 제안들과 다윗 왕이 신화적 인물이라는, 또는 작은 부족의 지도자에 불과했다는 주장은 이제 잘못된 것으로 보여진다.”
.역사적인 엘라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삼상 17:19), 고대 블레셋 국경 지역인 키르벳 퀘야파(Khirbet Qeiyafa)의 요새화된 도시.[1]
다윗과 골리앗이 대적했던 시기에 블레셋은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오고 있었다. BC 1020~980년 경으로 평가된 키르벳 퀘야파는 블레셋 국경 근처에 위치한 요새화된 도시였다. 아마도 블레셋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던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였다.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문서에 통치자의 이름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러나 그 문서들은 블레셋이나 가나안 문자들이 아닌, 고대 히브리 문자로 쓰여져 있었다. 가나안 지역에서 발견된 전형적인 유물과는 다르게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유대인 유물에서 뚜렷이 보여지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종교적 유물에 조각된 형상들이 현저하게 부족했으며, 쓰레기에서 돼지 뼈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5년에 걸쳐 수 천 개의 동물 뼈들이 발견되었는데, 염소, 양, 소의 뼈들이었고 돼지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문화재청의 가핀켈과 사아르 가노르(Saar Ganor)는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종교 유물들을 3000년 전의 건축 양식과 유대인들의 종교적 관행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 장소가 솔로몬의 성전보다 앞선 연대이지만, 두 개의 작은 ‘휴대용 신당(portable shrines)’에는 사자와 새들이 새겨져있는 우아한 앞면과 정교한 외부 건축학적 세부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그 모형이 솔로몬 성전에 대한 성경적 세부 장식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바닥 왼쪽에 사자 머리와, 입구 위쪽에 세 마리의 새들, 아름다운 주름이 있는 휘장을 가진 정교한 앞면과 기둥을 가진 점토로 된 작은 휴대용 신당.[2]
그러한 휴대용 신당은 그 시대에 흔한 종교적 물건이었고, 대게 우상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비어 있었다. 가핀켈은 말한다. ”수 년 동안(2008년 이후) 양, 염소, 소 등을 포함하여 수천의 동물 뼈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돼지 뼈는 없었다. 이제 우리는 여러 제사 기구들이 들어있던 3개의 제사를 드리던 방을 발굴하였다. 그러나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조각상(figurine)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키르벳 퀘야파의 사람들이 두 가지 성경적 금지사항, 즉 돼지고기와 새겨진 형상을 금지했던 것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이나 블레셋 사람과는 다른 신을 숭배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은 키르벳 퀘야파의 거주자들은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오스트라카(Ostraca)는 고대인들의 문자가 기록되어 있는 도자기 파편이다. 이들 문자를 해독한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의 에밀 퓌에시(Émile Puech)에 따르면, 키르벳 퀘야파의 오스트라카는 강력한 새로운 국가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문장은 더 높은 권위에 대한 인정의 필요성을 표현하고 있었고, 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3] 세금과 법적 사항들과 관련된 여러 오스트라카는 작은 족장의 권력을 넘어서는 중앙집권 권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퓌에시의 해석은 사울 왕 또는 다윗 왕의 통치와 적합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완전한 기록된 계시이기 때문에, 성경의 상세한 내용 모두가 고고학적으로 발견되지는 않을 것이며, 성경을 증명하기 위해서 고고학적 발굴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발견되고 있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적 역사의 사실성을 확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이러한 유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키르벳 퀘야파의 돌들은 고대 유대 사람들이 이웃 민족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며 살았었음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성경으로 보존하시기 위해 선택받았던 사람들로써, 하나님 계획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 민족을 통하여 다윗 왕이 태어났고, 그의 후손으로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던 것이다.
Footnotes
[1] Image from Khirbet Qeiyafa Archaeological Project through
http://www.huffingtonpost.com/2012/05/10/khirbet-qeiyafa-archaeology_n_1504722.html.
[2] Image from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through
http://www.diggingsonline.com/pages/rese/arts/other/2012/qeiyafa01.htm.
[3] http://www.bib-arch.org/bar/article.asp?PubID=BSBA&Volume=38&Issue=3&ArticleID=4
*관련기사 : 다윗왕 시대의 고대 도시 발견 (2012. 6. 4. CGN 투데이)
http://news.cgntv.net/player/home.cgn;jsessionid=FA0568926D055CE6AD24C3AA046F741F?c=100&v=8858
이스라엘 학자 "다윗왕 궁전터 발견" 주장 (2013. 7. 22.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30722001500009
다윗 왕 관련 고고학적 발견 (2016. 9. 22. CTS TV)
https://www.cts.tv/news/view?ncate=CATTV&dpid=206812
성경의 ‘시글락’으로 추정되는 장소 발견 (2019. 7. 10. KRM)
https://krmnews.tv/2019/07/10/ziklag/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12/05/19/news-to-note-05192012
출처 - AiG News, 2012.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