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방주에 탄 정결한 짐승들의 수는 성경의 오류인가?
김홍석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 7:2-3)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창 7:8-9)
자주 성경의 오류로 주장되는 구절은 노아의 방주에 태워진 정결한 짐승들의 수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 성서 맛소라 텍스트는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보여준다. 창 7:2절에서 정결한 짐승은 “쉬브아 쉬브아 이쉬 이솨”(일곱 일곱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부정한 것은 “쉐나임 이쉬 이솨”(둘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수컷과 암컷(을 합하여) 두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한 쌍이다. 또한 창 7:3절에서 공중의 새도 “쉬브아 쉬브아 자카르 네케바”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그렇다면 창 7:8절에서 노아 방주로 들어갈 때 둘씩 들어갔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 7:8절에서 “암수 둘씩”이란 “쉐나임 쉐나임”(둘 둘) 나아와서 “자카르 네케바”(수 암)가 방주로 들어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암수 둘씩(two and two)이란 의미는 노아에게 나아오는 모습과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한 무신론자의 주장 <James Patrick Holding의 글>
한 무신론자는 노아 방주에 7쌍의 암수가 태워진 것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하고 있었다 :
“암수 7쌍을 취하는 이러한 생각은 여호와가 축산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농부나 목장주도 소, 양, 말 등의 동물을 키우는 사업을 할 때 암수의 숫자를 똑같이 구매하지 않는다. 1 마리의 숫소와 13 마리의 암소, 또는 1 마리의 숫양과 13 마리의 암양을 구매하는 것이, 암수 각각 7 마리씩 구매하는 것보다 초기 투자 시에 매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1 마리의 수컷이 13 마리의 암컷과 교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러한 이야기가 쓰여졌다는 것은 그 저자가 동물들의 번식에 대해 빈약한 지식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한 번에 많은 새끼들을 낳는다. 코끼리를 생각해 보자. 아프리카 코끼리는 14살 정도에 번식할 수 있는 연령이 된다.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평균 670일 이다. 반면에 인도코끼리들은 좀 더 일찍 성숙하고 좀 더 짧은 임신기간을 갖는다. 그래서 한 쌍의 코끼리가 25살의 나이에 4마리의 자손을 가졌을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코끼리의 개체 수는 100년 동안에 줄잡아 4번이나 2배가 될 수 있다(새끼들이 젖을 뗀 후, 부모 세대들이 곧 죽었다할지라도). 개체 수가 2배로 되는 것이 22번 일어나면 800만을 넘어선다. 이 숫자는 단지 550년(22×25)이면 도달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리고 방주에 수컷을 한 마리만 태우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
또 다른 성경비판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스라엘 자손들의 인구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바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에서, 바로는 모든 신민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남자 아기를 낳으면 죽이고, 여자여든 살려두라고 명령한다(출 1:22). 이것은 인구수를 줄일 수 없는 멍청한 계획이다. 왜냐하면 인구성장률은 임신이 불가능한 남자의 수가 아니라, (그 그룹에 임신을 시킬 수 있는 적어도 한 남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임신이 가능한 여자들의 수에 의존한다. 바로는 그 당시에 태어난 모든 남자 아기들을 죽이는데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남아 성숙해진 여자들은 이미 살아있었던 많은 나이든 남자들과 민족의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서 기꺼이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든 남성이 ”이 사랑스런 여인은 너무 젊어서 아내로 맞이하기에는 부끄럽소“ 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바로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다면, 또는 이 허풍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더라면, 그 이야기는 바로가 히브리 여인들에서 태어난 모든 여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었다고 썼을 것이다.”
의견을 구했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말이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바로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는가? 그리고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본 후에도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남자들은 무기를 잡고 전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노예로서 많은 일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이 우둔했다’ 라고 말하는 것 외에도 연대기적 속물근성이 비판론자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오! 바로는 여자들이 태어나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여자들이 인구성장률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인가?”
노아 방주에 탄 정결한 짐승들의 수는 성경의 오류인가?
김홍석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 7:2-3)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창 7:8-9)
자주 성경의 오류로 주장되는 구절은 노아의 방주에 태워진 정결한 짐승들의 수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 성서 맛소라 텍스트는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보여준다. 창 7:2절에서 정결한 짐승은 “쉬브아 쉬브아 이쉬 이솨”(일곱 일곱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부정한 것은 “쉐나임 이쉬 이솨”(둘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수컷과 암컷(을 합하여) 두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한 쌍이다. 또한 창 7:3절에서 공중의 새도 “쉬브아 쉬브아 자카르 네케바”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그렇다면 창 7:8절에서 노아 방주로 들어갈 때 둘씩 들어갔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 7:8절에서 “암수 둘씩”이란 “쉐나임 쉐나임”(둘 둘) 나아와서 “자카르 네케바”(수 암)가 방주로 들어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암수 둘씩(two and two)이란 의미는 노아에게 나아오는 모습과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한 무신론자의 주장 <James Patrick Holding의 글>
한 무신론자는 노아 방주에 7쌍의 암수가 태워진 것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하고 있었다 :
“암수 7쌍을 취하는 이러한 생각은 여호와가 축산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농부나 목장주도 소, 양, 말 등의 동물을 키우는 사업을 할 때 암수의 숫자를 똑같이 구매하지 않는다. 1 마리의 숫소와 13 마리의 암소, 또는 1 마리의 숫양과 13 마리의 암양을 구매하는 것이, 암수 각각 7 마리씩 구매하는 것보다 초기 투자 시에 매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1 마리의 수컷이 13 마리의 암컷과 교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러한 이야기가 쓰여졌다는 것은 그 저자가 동물들의 번식에 대해 빈약한 지식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한 번에 많은 새끼들을 낳는다. 코끼리를 생각해 보자. 아프리카 코끼리는 14살 정도에 번식할 수 있는 연령이 된다.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평균 670일 이다. 반면에 인도코끼리들은 좀 더 일찍 성숙하고 좀 더 짧은 임신기간을 갖는다. 그래서 한 쌍의 코끼리가 25살의 나이에 4마리의 자손을 가졌을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코끼리의 개체 수는 100년 동안에 줄잡아 4번이나 2배가 될 수 있다(새끼들이 젖을 뗀 후, 부모 세대들이 곧 죽었다할지라도). 개체 수가 2배로 되는 것이 22번 일어나면 800만을 넘어선다. 이 숫자는 단지 550년(22×25)이면 도달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리고 방주에 수컷을 한 마리만 태우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
또 다른 성경비판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스라엘 자손들의 인구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바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에서, 바로는 모든 신민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남자 아기를 낳으면 죽이고, 여자여든 살려두라고 명령한다(출 1:22). 이것은 인구수를 줄일 수 없는 멍청한 계획이다. 왜냐하면 인구성장률은 임신이 불가능한 남자의 수가 아니라, (그 그룹에 임신을 시킬 수 있는 적어도 한 남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임신이 가능한 여자들의 수에 의존한다. 바로는 그 당시에 태어난 모든 남자 아기들을 죽이는데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남아 성숙해진 여자들은 이미 살아있었던 많은 나이든 남자들과 민족의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서 기꺼이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든 남성이 ”이 사랑스런 여인은 너무 젊어서 아내로 맞이하기에는 부끄럽소“ 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바로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다면, 또는 이 허풍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더라면, 그 이야기는 바로가 히브리 여인들에서 태어난 모든 여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었다고 썼을 것이다.”
의견을 구했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말이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바로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는가? 그리고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본 후에도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남자들은 무기를 잡고 전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노예로서 많은 일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이 우둔했다’ 라고 말하는 것 외에도 연대기적 속물근성이 비판론자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오! 바로는 여자들이 태어나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여자들이 인구성장률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