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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할 메시지!

미디어위원회
2023-12-24

<리뷰> 크리스마스에 교회가 전해야 할 메시지! 

(Christmas Sermons—Are Churches Preaching an Irrelevant Message?)

Bodie Hodge 


     일상적인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불신자를 감동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목회자와 교회에 유익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절기에 나는 예수님의 출생에 관한 몇몇 크리스마스 설교들을 들어왔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관을 잃어버린 서구 문화에서, 크리스천들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의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크리스천 신앙에 갈등을 겪고 있는 한 친구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고, 함께 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격했었다.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나에게 본인이 생각해왔던 질문을 했다. 그는 내게 예수님, 말구유, 동방박사,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목동들, 천사들에 관해서 묻지 않았고, 대신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땅에 악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왜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잔인하게 잡아먹고 살아가도록 만드셨는가?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생물들을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창조하셨다가, 왜 멸종시키셨는가?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운명을 거슬러,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길게 연장하려고 노력하는가?” 그는 계속해서 ”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천국에 가면 되지 않겠는가? 왜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으려고 애쓰는가?” 였다.

그는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오늘날 공교육과 교육시스템, 그리고 언론 매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 진리로서 성경을 거부하도록 계속 유도하며, 세속적 문화로 인해 점점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과 성경을 믿는 믿음은 공격받고, 조롱당하며, 비난받고 있다. 왜냐하면, 소위 과학(진화론)이 그것이 사실일 수 없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성경 '창세기'는 실제 역사가 아닌, 신화들과 비유들을 모아 놓은 '이야기 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내 친구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러한 질문은 수년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슬프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죽음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창세기에 기록된 이 세계의 참된 역사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어야하는 크리스마스 설교는 성경의 창세기를 신화로 여기지 않는 목회자가 전하는 설교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한 목회자는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지를 상기시켜줄 수 있다. 내 친구는 대답이 필요했다. 나의 대답을 통해, 그는 설교를 듣기 전에 성경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을, 그의 기독교 신앙을 방해했던 것을 나에게 물어주어서 기뻤다.

내 친구는 죽음과 고통과 죽어감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죽음이 원수(enemy)이며, 죄로 인해 들어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린도전서 15:26). 하나님이 죽음을 만드시고 창세기 1:31절에서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었다. 죽음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들어온 죄의 결과였다.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고 설명했고, 아담이 처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죄에 대한 형벌로서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해주었다.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지구는 수십억 년이 되지 않았고, 사람 이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죽음, 질병, 고통, 육식 등이 있지 않았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계속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의롭고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죽음으로 죄를 심판하셔야만 했다. 또한 하나님 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사람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분의 권능을 일부 거두셨다. 따라서 하나님은 질병과 고통과 같은 일들을 허락하시지만, 이것에 대해 비난받아야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비난받아야할 대상은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내 친구의 머리에 전등이 켜지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자, 성경은 그에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슬프게도, 창세기에 기록된 진리 대신에, 수십억 년의 장구한 시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내 친구와 같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고, 대신 그들의 질문과 벗어난, 구유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관계없는 메시지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The 'god” of an Old Earth'을 참조하라)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친구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진정한 설명으로 성경을 거부하도록 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는 데에 주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비-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에 교회로 올 수 있다. 나는 목회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크리스마스 설교로 이 이슈를 들려줄 것을 기도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성경이 진리임을 그들에게 확신시켜줄 수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초

내가 전에 들었던 한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목사님은 ”크리스마스의 기초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하면서 누가복음 2장으로 갔다. 나는 즉시 ”거기는 크리스마스의 기초가 아닌데, 거기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일 뿐인데”라고 속삭였다.

크리스마스의 기초는 훨씬 더 후퇴한다. 그것은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초기 언급은 창세기 3:15절에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여자의 후손)의 예언이 있었다. 그들은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처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많은 언급은 예수님이 이삭의 후손이라는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창 28:13~14).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초는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설교가 시작되어야하는 곳이다. 특히 성경의 이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고 세뇌된 문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람들이 베들레헴, 목동들, 동방박사에 관한 설교를 들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성경은 신뢰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다.

창세기는 죽음이 창조된 세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한, 아담의 죄에 관한 나쁜 소식에 대해 우리가 먼저 배워야하는 곳이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지만, 창세기에 있는 나쁜 소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식(복음)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의 나쁜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받아들여야할 필요성을 이해시키기 전에, 그들이 왜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적절한 기초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현대 과학은 이 역사적인 문서를 반증하지 못했으며, 과학은 창세기의 기록이 실제로 사실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창세기의 기본 진리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동정녀의 몸에서 오셔야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크리스마스와 그 기초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크리스마스는 무엇인가?(What Is Christmas?)”을 읽어 보라.


왜 예수님이 오셔야만 했는가?

창세기로 돌아가서, 나쁜 소식은 아담의 죄로 인해 죽음이 이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창 2:17). 로마서 6:23절은 죄의 대가가 죽음임을 확인해주고 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다. 그래서 죄를 갚기 위해 무엇인가가 죽어야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을 죽이신 이유이다(창 3:21). 어떤 동물이 희생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어린 양으로 묘사되어, 복음을 예표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기 위한 마지막 희생 제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순종의 죄를 갚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이 패턴을 따랐다. 그러나 동물은 사람의 죄를 없앨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누군가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형벌을 받아야할 때, 그 형벌을 스스로 당신이 감당하시는 것은 은혜와 자비이다. 이것이 우리의 창조주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이다. 그는 인간으로 오셔서(그러나 신성을 가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사망을 선고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이 그 형벌을 대신 지심으로, 우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해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갖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갚기 위한 마지막 희생제물이 될 수 있도록 완전한 삶을 사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유이며,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고린도전서 15:45)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새 아담', '완벽한 아담'이 되셔서, 아담의 자손을 위해 죽으실 수 있었고,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성경은 사랑의 가장 위대한 행동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요 15:13). 성경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정말로 동정녀에서 태어나셨는가?

창세기 3:15절 외에 이사야서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것이 징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이 예언은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다. 그녀는 아기를 낳았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God with us)”이라는 의미였다. 동정녀 출생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Is the Perpetual Virginity of Mary a Biblical View?를 보라.

특히 요셉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마태복음 1:1~16절에 있는 요셉의 족보는 여호야긴(여고냐)이 요셉의 직계 조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예레미야서에서 여호야긴에게 주어진 저주를 읽어 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22:30)

다윗의 왕좌에 영원히 앉아계시는 예수님께서 여호야긴의 후손이 될 수는 없었다. 여호야긴의 후손은, 따라서 요셉의 후손은 다윗의 보좌를 상속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처녀가 되어야 했다.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리실 것임을 확인해준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7)


동방박사의 중요성

몇 명의 동방박사들이 왔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단지 두 명 이상이고, 그들이 세 가지 선물을 가져왔다는 것만 안다.(더 자세한 정보는 ”We Three Kings”을 참조하라.) 마태복음 2:1~11절은 이 동방박사가 이스라엘로 인도한 별을 따라 동방에서부터 여행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What Was the Christmas Star?” 참조)

이 박사들은 약속된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찾고 있었다. 박사들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동쪽에서 왔다. 아마도 페르시아일 가능성이 있지만, 동양일 가능성도 있다. 아기 예수님께 선물과 경배를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먼 거리를 왔다는 사실은, 이 사람들이 창세기 역사와 관련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먼 타국에서도 약속된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바벨탑에서 흩어지면서, 지구의 모든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6대륙에 흩어져 살 때까지 계속 이주해 나갔다 ('Flood Legends” 참조). 또한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세상의 많은 곳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동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은 창세기 기록과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들의 문자(한자) 속에 상징으로 들어있다. 심지어 그들은 거대한 홍수 동안 창조주이시며 사람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상제)께 희생제물을 드렸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The Original ‘Unknown’ God of China'을 참조. 아래 관련자료 링크 93번).

이것은 바벨탑 이후 어떤 시점까지 동쪽으로 이주해갔던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실제로 알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귀중한 정보들을 잃어버렸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방박사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현명한 사람들이었다.(아마도 페르시아에서는 다니엘이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 이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를 잃어버린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성경적 역사와 성경의 신뢰성과 대한 확증은 바벨탑에 대한 성경적 기록이 정확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진실한 역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수십억 년'의 역사를 받아들였고, 동방박사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중요성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와서 예물을 드리고(시편 72:10), 지역 목동들이 그 앞에 굽히고(시편 72:9)와 같은 성취된 예언, 헤롯 왕이 두 살 아래 아기들을 죽인 사건(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6~18), 한밤중에 애굽으로 피하라는 현몽(마태복음 2:13~15) 등은 이 아기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몇 가지 징조였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권좌에서 내려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 분은 우리 중 한 사람으로 사셨지만, 하늘의 완전함을 이 땅에 남겨놓으셨다. 이 아기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러 오셨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 2:11)

예수님께서는 지구 역사상 매우 중요한 시점에 이 땅에 오셨다. 과거를 숙고해보고, 이 중요성에 대한 큰 그림을 얻자. 아래 다이어그램을 참조하라.

아담과 하와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을 때, 100%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노아 시대에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유일한 지상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인구가 계속 증가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비율은 매우 낮아진다.

하나님이 홍수를 보내신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지상에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으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던 사람들은 다시 거의 100% 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셨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인구가 재번성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비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세계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위의 그림은 이러한 일반적인 원칙을 설명한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조차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따랐다. 그리고 성경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았다. 믿었다면 메시야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했던 동방박사들, 마리아, 요셉, 안나, 시므온, 세례 요한의 가족들과 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렸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매우 낮은 비율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오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것은 역사상 가장 낮은 비율의 시점이었기 때문에, 오신 시기는 매우 중요했다. 그 사명을 완벽하게 완수하셨으며,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값없는 구원의 선물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9)


크리스마스 날에 축하해야 하는가?

어셔 대주교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기원전 4년경에 태어났다. 예수님은 어느 날에 태어났을까? 우리는 알지 못하며, 성경은 그 날을 알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크리스마스(12월 25일 그레고리력)로 선택된 날짜는 예수님이 태어난 날짜가 아닐 것이다 ('The Origin of Christmas” 참조). 회의론자와 비판론자들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efense of Christmas’를 읽어 보기 바란다. 문제는 실제 날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악하고, 그것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말했다. 다음은 내 개인적 견해이며, AiG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편 24:1)

우리가 크리스마스 날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하면(롬 14:5-6), 그 날이 어떻게 악한 것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은 로마 이교도의 축일에서 왔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매일 날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드려야한다고 말했다.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 날에 하나님을 경축하는 것을 거절해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사실 성경은 이것을 장려한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시 86:12)

'영원토록'은 크리스마스로 축하하는 날도 포함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아 10:1~6절에서 장식된 나무를 내게 상기시켜주었다. 나는 죄가 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마음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장식된 나무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면(거짓 신과 반대로),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탄생일을 휴일로 기념하도록 사람들에게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이 그 반대도 금지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제 내가 틀렸다고 하지 말라. 나는 이 글에서 크리스마스 날을 축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금지시킬 이유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전할 메시지에 대한 결론

목사님들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이 특별한 연휴 기간 동안,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 :

▶ 크리스마스는 아담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태어나시고, 살다가, 고통당하시고, 죽으셨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 크리스마스는 우리 크리스천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상생활의 안락함을 떠나야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이번 휴가철에 교회에 올 때, 그들이 묻는 질문들에 우리가 답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Answers의 글들을 참조하라.

크리스마스 설교나 일상 대화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토론은, 복음서에 나오는 좋은 소식(복음)과 함께, 창세기의 나쁜 소식도 같이 설명해 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그 경우에 불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선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고,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불신자들에게 요청하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answersingenesis.org/holidays/christmas/making-the-christmas-sermon-relevant-for-todays-culture/ 

출처 - AiG, 2017.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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