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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경계지대의 삶 : 예수님 시대와 유사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

미디어위원회
2023-03-03

경계지대의 삶

: 예수님 시대와 유사한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

 (Life in the Borderland)

Tim Chaffey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의 최신 전시물을 조사하는 동안, 콘텐츠 작가는 그리스도 시대의 삶과 오늘날의 문화 사이에 놀라운 유사점을 발견하였다.


    구약은 유대 민족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가,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면서 끝을 맺는다.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은 재건되었지만, 상황은 암울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당국 아래서 쇠약해지는 400년 동안 침묵을 지키시고 계셨다.

신약 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대 민족은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파벌로 나뉘어졌다. 그리스 언어와 사상은 사회에 스며들었고, 로마제국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 자란 이두매(Idumaean, 에돔) 사람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앉아 있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300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그리스에서부터 동쪽으로 인도까지 진군했다. 그의 정복은 새로운 형태의 정부, 교육 및 종교 관행을 가져왔다. 헬레니즘화(Hellenization)라고 불리는 그리스 문화의 확산은 유대인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도전했다.

일부 유대인은 기꺼이 헬레니즘을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유대인은 변화에 저항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침묵을 깨시고, 그분의 아들을 이 경계에 놓인 지대로 보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예전과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창조박물관의 한 새로운 전시물)


   이 잡지를 발행하는 Answers in Genesis의 또 다른 사역인 창조박물관에서, 2021년 7월 6일에 멋진 새 전시관을 공개했다. 35개 이상의 원본 예술작품, 갑옷과 의복의 정확한 재구성, 수십 개의 실제와 같은 미니어처 인물상 등으로 가득하다.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Borderland: Israel in the Time of Jesus)’은 관람객들에게 신약성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몰입감 있게 보여준다.


‘경계지대’ 전시관에는 창조박물관의 다른 전시물보다 더 많은 콘텐츠들이 포함되어 있다. 창조박물관의 콘텐츠 관리자로서, 나의 주요 역할은 노아방주 전시관(Ark Encounter) 및 창조박물관(Creation Museum)에서 전시할 콘텐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전시물은 일반적으로 내레이션이 뒤따라진다. 모든 설명글(표지판)은 한 요점을 강조하고, 논리적으로 다음 설명글로 연결된다. 그러나 ‘경계지대’는 신약성서의 배경 연구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다르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을 시작으로, 그리스도 탄생 이전의 격동의 4세기를 거쳐,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끝나는 주제는 전쟁과 무기에서부터 일상생활과 의복 스타일, 예수님이 다니셨던 그때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과 역사적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나의 특정 주제를 자세히 조사한 다음, 그것에 대해 길게 쓰는 대신, 이 전시물에서는 여러 주제들을 조사한 후에, 각 주제들을 짧은 한두 단락으로 요약하여 놓았다. 


나는 1세기 경의 이스라엘 문화에 몰두하면서, 그것이 어쩐지 꽤 친숙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작은 경계지대는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이 처해있는 풍경에 대해 많은 교훈을 준다. 나는 종종 시대나 문화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문화적 압력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오늘날 우리 세상의 소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동일하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림 1 .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Court of the Gentiles)을 넘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자주 성전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가르쳤다.

 

그리스 문화의 영향

다음의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생각해보자. 셀레우코스 제국(Seleucid Empire, 알렉산더 사후에 헬레니즘의 계승국 중 하나)이 이스라엘을 통치했을 때(BC 2세기), 유대 사회의 많은 부분에 그리스(Greek)의 종교적, 철학적 사상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많은 상류층 시민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대대로 전해져오던 조상들의 신앙을 타협하면서, 그리스 문화의 관습과 관행을 받아들였다. 일부는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 음모를 사용했다. 야손(Jason)이라는 사람은 돈으로 대제사장직을 사서, 예루살렘을 그리스의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그의 후계자 메넬라오스(Menelaus)는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에게 뇌물을 주고 관직을 사고, 성전에 급진적인 헬레니즘 관습을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예루살렘 밖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거부했고,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대로 믿음대로 살려고 노력했으며, 동족에게 박해를 받거나, 헬라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계점에 이르자, 일부 유대인들은 압제자들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마타티아스(Mattathias)라는 이름의 사제는 이방 신에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고, 자원하여 제물을 바쳤던 셀레우코스 관리와 타협적인 유대인을 죽였다. 이 사건은 결국 로마에 완전한 속국이 되기 전까지, 반독립(semi-independent) 국가로 이어졌던 마카비 혁명(Maccabean Revolt)을 촉발시켰다.


로마의 지배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에도 같은 유형의 행동들이 생겨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박해를 피하거나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서, 신앙을 타협했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사두개파(Sadducees)는 신학적 올바름보다, 정치적 권력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던 상류층의 종파였다.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헤로데 1세)과 같은 통치자들은 부패했고, 자신의 백성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으며, 카이사르와 로마의 신들에게 바쳐졌던 기념비적인 구조물들을 세워 로마의 환심을 샀다.

많은 유대인들, 특히 시골 지역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지만, 종종 그들의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 바리새파(Pharisees)는 토라와 그들이 발전시킨 전통에 대한 엄격한 고수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사고 방식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가져갔다. 쿰란 공동체(Qumran community, 에세네파) 사람들과 같은 일부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려 했다. 예수님이 오시고 수십 년 동안, 시카리(Sicarii, 열심당)로 알려진 소수의 이스라엘인들은 거리에서 테러 행위를 일삼고, 그들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면서, 무력으로 로마를 전복하고, 유대인 왕국을 설립하려고 했다. 

그림 2. 수도인 예루살렘에는 국가의 정치 및 종교 당국이 있었다. 유대 성전(Jewish Temple)과 인접해있는 로마의 안토니아 요새(Roman Antonia Fortress)는 유대 민족과 점령 중인 로마 사이의 불편한 긴장 관계를 상징했다.


시대는 변했지만, 동일하다.

“변화가 거듭될수록, 본질은 더욱 한결같아진다”라는 오래된 속담이 맞는 것 같다. 오늘날 서구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최근의 세속적이고 이교도적인 문화적 압박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전의 사두개인들처럼,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성경적 교리를 버렸다. 잘 알려진 목회자, 작가, 예술가들이 우리 문화의 변화된 입장 때문에 창조, 영원한 형벌, 성, 젠더, 생명의 신성함, 또는 기타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 타협했다. 슬프게도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부정하고, 세속주의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살아가려는,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삶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박해하기까지 한다.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일부 사람들은 정치적 노력을 통해 문화를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정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처럼, 돈과 권력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부패와 타협으로 이어진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세속 문화에 굴복하기보다, 신앙에 대한 엄격한 고수를 강조하고, 바리새인들처럼 그들 자신의 전통 중 일부를 교리 수준으로 높였다. 그리고 그들의 접근 방식을 따르지 않는 동료 기독교인들을 자주 공격한다. 광야 근처에 살았던 쿰란 공동체처럼, 오늘날 일부 신자들은 세상 문화를 등지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불경건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를 통해 사회적 압박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교활한 정치인, 타협적 종교인, 위선적 율법주의자, 폭력적 혁명가, 신실한 하나님의 추종자 등 많은 범주의 사람들과 교류하셨다.

사두개인들이 미래에 있을 부활의 교리를 조롱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압박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예수님은 그들의 타협에 반대하여, 죽음 이후의 삶을 분명히 암시하는 구약 구절을 강조하셨다(마태복음 22:32).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식사 전에 손을 제대로 씻지 않는다고 비판했을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만든 율법주의적 전통을 정죄하셨다(마태복음 15:3~9). 군중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요한복음 6:15), 예수님은 때가 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즉 우리 죄의 형벌을 짊어지고 끔찍한 죽음을 당하시는 일을 위해(요한복음 3:16-17), 그곳을 떠나셨다.

그림 3.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려운 때가 왔을 때, 폭력을 행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사실, 군인들과 관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그분은 베드로에게 칼을 넣으라고 말씀하셨다(요 18:1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정치적 해결책만 찾거나, 사회를 완전히 등지거나, 문화적 압력에 직면했을 때 신앙을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방어하지 말라거나, 정당한 전쟁에 참여하지 말라거나, 정치에 뛰어들지 말라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들이 우리의 문화적 문제들에 대한 주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죄(sin)가 이들 문제의 핵심이고, 사람들이 창조주에 대해 계속적으로 반역하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님은 해결책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적인 죽음과, 그에 따른 부활은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계획을 신뢰하거나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대신에,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항상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격동적인 오늘날의 문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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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스펙트럼

1세기의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배경과, 광범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유대 민족은 일반적으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영원한 왕국을 약속받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 왕국이 언제 어떻게 세워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돌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무리들을 알아보자.


유대 기독교인

기독교로 개종한 최초의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가 참으로 그들의 메시아이자, 왕이라고 믿게 된 유대인들이었다. 초기에 이 새로운 신자들은 성전에서 만났지만,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들과의 긴장이 커지면서, 결국 그들은 성전과 회당에서 추방당했다.


바리새인

일반적으로 율법주의자로 간주되는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전통에 대한 전문지식과 엄격한 준수로 알려진 대규모의 유대 종파였다. 그들은 거룩함과 의식적 순결을 강조했고, 이것은 율법과 전통에 대한 순종을 통해 온다고 믿었다. 많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적 주장을 강하게 반대했다.


사두개인

신약성경에 14번 언급된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들은 영과 천사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미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거부했음을 보여준다(행 23:8). 이는 그들의 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과 불화가 있었던 출처로부터만 알려져 있다. 그들은 신학적 올바름보다 정치 권력을 지키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대제사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상류층 종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열심당/시카리

로마가 유대인 시민들을 학대하고 성전 금고를 약탈한 것에 좌절한 많은 하급 사제들은 AD 60년대에 성전을 되찾고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 맞서 싸웠다. 이 열심당원들은 타협했던 종교지도자들을 타도하고, 로마와의 전쟁을 추진했다. 한편, 시카리는 대규모 군중 속에서 개인을 암살한 후, 섞여들어 몰래 빠져나가는 은밀한 폭력에도 가담했다.


현재 북부 켄터키의 창조박물관에 새롭게 전시되어 있는, ‘경계지대: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Borderland: Israel in the Time of Jesus)’를 한번 방문해 보라. 이 멋진 전시관에서는 유물, 비디오, 디오라마, 실물 크기 모형, 표지판 등을 통해 1세기 이스라엘에 대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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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양승원, 송원준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history/life-borderland/

출처 : Answers magazine, October 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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