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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04-06-22

저희가 별을 보고 1 (When They Saw the Star) 

: 베들레헴 별에 관한 과학적 추적

Dr. Henry M. Morris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태복음 2:10)
When they saw the star, they were overjoyed (Matthew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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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말없이 간증하면서,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했다는 그 유별난 별에 관한 '해설' 기사들이 세속적이건 종교적이건 구별 없이 출판되고 있다. 문필가들은 마태복음 2:1-12절에 기록된 이 놀라운 사건을 설명하려고 많은 논설을 내놓는다. 비록 이 책자와 같이 조그만 책으로서는 그 많은 연구들을 진정 옳게 평가하기는 역부족이겠지만, 그런대로 그 가정하는 '별'이 '별'임을 인정하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입장에 서 그들의 연구들을 요약하여 평가하는 일에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 별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기 전에, 이 놀라운 사건에 관해 제기되는 최소한 두 가지 흥미진진한 의문을 검토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것은 크리스마스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토론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지만, 실은 중요한 주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1. 우선 그 '박사들'은 누구였으며, 왜 그들만이 그 별이 중요한 별임을 인식했던 것일까? 그들이 먼 나라로부터 느닷없이 예루살렘에 나타날 때까지, 유대의 종교계, 정치계 지도자들은 그 별의 중요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2. 그 세 명의 나그네가 나타나 질문을 하고 다닌 일로 인해서, 헤롯왕의 조정과 유대의 지도자들이 동요할 만큼 자극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박사들이 베들레헴 상공에 떠있는 그 별을 보고 모두 기뻐했는데도, 왜 헤롯왕과 유대 지도자들은 그들과 기쁨을 함께 하지 않았을까?

3. 마지막으로, 그 별은 무엇이었기에 그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떠나게 했으며, 또 정확한 위치까지 올 수 있게 인도했을까? 특히 메시아가 오리라고 약속된 도시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그 별의 나타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지 않았는가!?

이 흥미진진한 질문들에 대한 가능한 대답들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1) 그 동방박사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었을까?

그 동방박사들에 대한 일반적인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세 사람으로서, 이름은 멜키올(Melchior), 발다살(Balthasar), 가스발(Gaspar)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각기 다른 나라(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에서 왔다. 초기의 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그들을 세 왕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전설에 불과하며, 결코 성경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2:1,7절에 기록된 '박사들(wise men)' 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Magi (또는 Magoi)'이다. 그리고 이 그리스어는 특별한 승려집단에 속하는 사람에 적용된다. Magi(오늘날의 'magic' 이라는 단어의 유래) 라고 불렸던 학자 신분은 원래 Medina에 살던 어떤 특정 부족에서 유래했을 것 같다. 나중에는 페르시아의 통치 집단의 일부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특별히 천부적으로 점성술과 예언의 '지혜'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결국 일종의 승려 신분이 되어,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는 물론 아라비아와 인도와 같은 먼 나라의 조정에까지 출사하여, 그 나라 귀족의 전속 고문과 자문직에 종사했다.

심지어 메소포타미아 출신으로 악명 높던 선지자 발람(Balaam)은 초기 Magi 집단의 일원이었음은 물론, 어쩌면 Magi의 창시자였는지 모른다는 전설이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그리스도의 탄생 당시의 Magi들은 하나님이 구세주의 탄생을 특별한 별을 통해서 이 세상에 알린다는 예언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에 기록된바와 같이 장차 나타날 별에 관한 예언도 발람의 예언이었음은 물론이다. 아래에 그의 예언을 인용해본다. 그 예언은 실질적으로는 예언자 자신의 의사에는 반(反)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강제에 못 이겨 진술한 것으로 되어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 원수 에돔은 그들의 산업이 되며 그 원수 세일도 그들의 산업이 되고 그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민수기 24:17-19).

이와 같이 해서 본의는 아니었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발람의 예언은 이스라엘과 연관된 특별한 별이 세계를 통치할 미래의 홀(笏)(즉, 왕)같이 나타날 것임을 계시하고 있었다.

후대의 Magi들, 특히 (다니엘은 물론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의 Magi들은 심오하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예언은 물론 다니엘의 다양한 예언들까지도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니엘이 누군가? 그는 느부갓네살 왕과 키루스 왕의 조정에서 '박사들' 중 가장 존경받던 예언자가 아니던가!) (참고: 다니엘서 2:45; 6:28).

Magi들 중 일부는 인종적으로는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종교적으로는 유대인이었다. 에스더 왕비의 집권기간 중에 하나님이 페르시아에서 유태인들을 구출할 때, 그 나라의 많은 백성들이 유대인이 되었다.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스더 8:17). 이 사건 그 자체로서도 페르시아의 Magi들을 수없이 자극하여, 당시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의 성전(聖典)들, 특히 다니엘의 메시아 예언들을 연구하도록 충동했을 것이다. 이 민담(民譚)은 Magi의 전통적인 학습의 주요 부분이 되어 세대를 이어 전수되어 오다가,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때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들 가운데에는 메대 사람 다리우스 왕(페르시아의 왕 550-486 BC)의 통치 기간에 했던 그의 '70 주간'에 관한 위대한 예언이 있는데, 이 예언은 페르시아의 황제가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을 재건토록 명령(다니엘서 9:24, 25) 한 지 483년 후에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을 계시하고 있었다. 약속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을 때, 페르시아의 Magi들이 발람의 예언들과 다니엘의 예언들을 겹쳐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그의 별'이 나타나기를 기대에 찬 눈으로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뭔가 이와 같은 상황이 페르시아 Magi들이━헤롯 왕당파들과 합리주의적인 사두개 교인들(당시 유대교의 지도급 인사들의 대부분 이에 속하고 있었다)이 아닌━그 별의 출현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는 이유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바빌론과 다른 나라(심지어 아라비아나 인도)의 조정에서 고문직을 감당하면서 이름을 높인 이 승려신분 계급에 속한 'Magi'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페르시아의 Magi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Magi들도 이 약속된 '유대의 왕'을 찾아 예루살렘까지 긴 여행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일행들 속에 합류했을 개연성도 있었던 것 같다.(사실상 전설은 그렇게 전한다). 찾아온 Magi들은 셋 뿐이었다는 것을 믿어야할 이유는 없다. 아기 예수 앞에 바쳐진 선물이 세 종류였다는 사실로, 선물을 증정한 사람이 셋 뿐이었다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성경에는 몇 사람이 거기에 왔었다는 내용은 없다. 그렇지만 세 사람보다 많았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2) 왜 헤롯왕과 유대인들은 박사들의 방문에 그토록 동요했을까?

세 사람의 순회 '점성가들'의 방문이 예루살렘을 그렇게도 심각한 동요를 야기시켰다는 이야기는 어찌 생각하면 괜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이 외국인들은 헤롯왕을 배알하기 위해서 어떻게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그들이 왕의 탄생을 물었다는 것이 왜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을 '소동시키는' 원인이 되었을까?(마태복음 2:3).

그러나 이 의문은 내방한 외국인 '점성가'는 셋이 아니라 더 많았다고 전제할 때에만 풀린다. (많은 현대의 성경번역가들이 그들을 '박사들'이라고 호칭한 것처럼). 그 Magi 집단은 세 사람 이상으로 구성되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아마도 12명이나, 아니면 그보다 많았던 것 같다. 그들은 '동방'에서 왔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한 나라는 하나뿐만 아니라고 말했다. 이로 미루어 그들은 경호병들과 상당한 수의 시종들을 대동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추측이 맞는다 해도, 그들의 방문 사실이 왜 강력한 왕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었을까? 헤롯왕은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던 위대한 로마제국의 비호 하에 있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이 아닌 로마 제국의 위대한 씨저 아우구스투스 황제 자신이 '유대의 왕'으로 임명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그가 왜 이 동방의 귀인들의 내방 때문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을까?

하지만 로마제국이 당시 실제로 알려진 것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유대의 '동쪽'에 있는 여러 나라들은 - 페르시아,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등 - 로마제국의 일부가 아니고, 오히려 강력한 거대 제국 파르티아의 일부였던 것이다.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와는 심각한 경쟁 대상에 있었으며, 정복 목적으로 침범한 로마 군단을 여러 번 물리쳤었다 (한 번은 왕위등극 전의 헤롯이 직접 로마군단을 인솔하고 침범한 적도 있었다). 이 당시에 파르티아(페르시아를 포함하여)는 로마제국에 근접한 경계선에서 로마제국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로마제국에서 하사된 헤롯의 공식 명칭은 '유대인의 왕'이었다. 그런데 지금 강력한 적성국에서 내방한 대표단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에 관한 정보를 묻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2). 헤롯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욱이 그 수행원들이(크리스마스 카드에 자주 묘사되는 것처럼) 낙타를 타고 온 것이 아니고, 건장한 말을 타고 왔던 것이다. (페르시아 귀족들이 다 그렇게들 하고 여행을 하질 않던가!).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나라의 미래의 왕이 이미 탄생되었음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새 왕의 오심을 하나님이 직접 하늘에 별을 띄워 알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헤롯왕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도 동요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적성국의 침입이 임박한 것으로 오해하고 크게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까닭이다. 종교지도자들은 걱정뿐만 아니라 당황하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들 자신이야말로 외국 내방객보다 먼저 메시아의 출현에 관한 정보를 들어 알고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실제로는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고대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면 그들의 수지맞는 직업이 흔들릴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최소한 메시아 출현에 관한 예언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에돔 사람의 후손이었던 헤롯왕은 그 예언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제사장과 사관(史官)들에게 그 예언에 관해서 물었을 때, 그들은 오시는 왕이 어디에 태어날 것인가를 알려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미가 5장2절의 말씀을 풀어 설명하면서 그들은,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태복음 2:5, 6) 라고 알렸다.

이 유대의 지도자들이 발람의 별에 관한 예언들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실질적으로 그 별이 출현했을 때 그들도 틀림없이 보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3) 그 특별한 별은 무엇이었을까?

만약 성경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별은 진짜 별일 수밖에 없다. 그 박사들은 그 별을 무슨 천사라든가, 어떤 기적적인 대기권에 나타난 불빛 같은 현상이 아니고, 그냥 '별'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스어 단어 'aster' 는 신약성경 속에 통틀어 24번쯤 보인다. 이 단어와 유사한 단어 'astron' 은 4번 쓰였다. 이 두 단어는 문맥에서 별도로 언급이 없는 한, 단적으로 진짜 별을 뜻한다.

별이라는 단어는 천사(요한계시록 1:20; 12:4,7)나 사람(유다서 1:13)을 상징할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당시 점성가들뿐만 아니라, 주 예수님 자신도 행성이나 유성(流星), 그리고 혜성들을 분명히 '별'로 간주하고 있었음(마태복음 24:29)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뜻으로 쓰였을 때는 언제나 문맥 안에 뚜렷이 드러나 있다.

박사들의 설명은 단순한 역사적인 기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박사들은 동시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별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별' (실제로는 그의 별)이라고 불렀지, 천사라든가 길을 인도하는 그 어떤 불빛 같은 것으로는 호칭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세 휘하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광야에서 인도하던 그 영광의 구름기둥(the Shekinah; 神座에 나타난 하나님의 示現; 예: 민수기 14:14)의 기록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 구름기둥의 기록이 발람의 별의 기사가 담겨 있는 Torah 안에 함께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들은 그것을 별이라고만 불렀지, 영광의 구름기둥이라든가, 하늘 가운데를 움직이는 어떤 불빛이라고는 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천에 머문 별이(심지어 행성이나 혜성처럼 움직이는 별이) 어떻게 박사들을 아기 그리스도가 있는 베들레헴의 그 집까지 실질적으로 어떻게 인도할 수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성경 교사들이 많이 있다. 비록 자질이 훌륭한 교사들이지만, 그들은 그 별은 틀림없이 천사이던가, 아니면 여호와의 모습(Shekinah: 영광의 구름기둥)이었을 것이라고 믿든지, 이도 저도 아니면, 어떤 움직이는 기적적인 불빛으로서 오직 그 외국 박사들한테만 보였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일쑤다.

그런데 그 '별'이 진짜 별이 아니라는 생각은 순수한 '별' 이라는 솔직한 단어 때문에 생기는 해석상의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예를 들어보면, 하나님은 왜 그와 같은 특별한 천상의 메신저를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직접 보내지 않고 600마일이나 떨어진 페르시아에 보냈을까? 물론 유대인 지도자들이 메시아를 실제로 기다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메시아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나님은 베들레헴의 그 구유 근처에 있던 일단의 목동들에게 천군천사를 보내어 '주님의 영광'을 비춰주고, 그들로 하여금 나아가 구주 탄생을 고하도록 시켰던 것이다(누가복음 2:9-12). 그렇다면 예루살렘과 다른 지방에 살고 있던 다른 신실한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 이 이야기라면,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졌다”(누가복음 2:38)는 설명과, 특별히 시므온과 안나에 관한 이야기를 참고해 보는 것도 가치가 있겠다. 성령의 감화를 받은 이 두 사람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출산 40일 후 정결케 되어(레위기 12:2-6을 참조) 요셉과 함께 아기 예수를 주님에게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마리아와 요셉을 만났을 때, 아기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누가복음 2:22). 그들에 못지않게 메시아를 기다리던 신실한 유대인들은 왜 그가 베들레헴에 태어난 사실을 몰랐을까?  

더욱이 멀고 먼 땅 페르시아의 Magi들은 어떻게 그 움직인다고 생각되는 불빛이 유대인 왕의 표시임을 알아보고 그를 경배하기 위해 멀고도 험한 길을 떠나려는 충동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그 불빛은 왜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직접 인도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왕의 조정으로 인도했을까?

사실상 마태의 설명 중에는 그 별이 (어쩌면 정말로 움직이는 불빛이었다면, 그 불빛이) 그들을 '인도하였다'는 구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태의 설명에는 그냥 그들이 그 별을 두 번 보았다고만 되어있다━한번은 '동방에 있는' 그들의 고향의 밤하늘에 떠있는 별이었고, 그 다음은 나중에  ”아기 예수가 있는 집 바로 위에 머물러 선 별”이었다 (마태복음 2:2,9). 그러나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긴 여로 중에 그 별을 보았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길잡이 불빛 가설은 많은 복음주의자들한테 크게 호소력을 갖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성경 안에 있는 작은 기적들(그리스도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일, 또는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기꺼이 수용하려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심지어 많은 복음주의자들까지도, 노아의 시대에 있었던 전 지구적 규모의 대홍수나 여호수아의 긴 하루와 같은 전 세계 규모의 기적들은 그렇게 쉽게 믿으려하지 않고, 가능한 그런 기적에는 물질적인 설명을 가해보려고까지 한다.

좋은 예가 있다. 그 별에 대한 설명에서 많은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는 설명은 이런 것이다. 즉, 그 '별'은 그리스도가 탄생할 때 있었을 둘 또는 세 개의 행성의 동시적 합(合; conjunction)으로 생긴 자연현상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천문학의 거두 요한 케플러(Johann Kepler)야말로 이런 형태의 이론을 제창한 최초의 학자인 것 같다. 1605년에 그는 B.C. 7세기에 세 행성들(토성, 목성, 그리고 화성)의 동시적 합(conjunction)이 있었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그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이 생각을 뒤좇아 이런 행성의 합이 크리스마스의 별이었다는 가정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 가설에 의하면, 당시 물고기(Pisces) 별자리에 그런 행성의 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성가들은 이 별자리야말로 황도대 위의 이스라엘과 관련된 궁(sign)이라고 믿었다.

다른 한편 B.C. 3세기에 있었던 목성과 금성, 그리고 사자별자리(Regulus)의 합이 크리스마스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행성의 합이 크리스마스 별이었다는 이론들은 예외 없이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실제로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을 Magi들이 그와 같은 별들의 집단(행성들의 합)을 '그의 별 (His Star)'! 이라고 불렀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 행성들 가운데 어떤 경우에도 두 행성이 마치 하나의 별로 보일 만큼 접근한 경우가 아직까지는 알려진바 없다 - 서로 아슬아슬하게 보일 만큼도 근접해 본적이 없었다. 더욱이 행성의 합이 되는 경우의 빈도가 어느 정도 주목을 끌만큼은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경험이 많은 천문학자들이라면 알려진 행성들의 궤도에서 쉽게 계산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왜 그런 행성들의 합의 어느 특정된 경우가 약속된 이스라엘의 왕과 연관이 있는 어떤 특별한 '표적'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는 것일까? 사실상 행성의 합의 경우에는 그 어떤 기적 따위로 해석될 이유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일(별이나 행성 또는 황도대의 위치를 지구상에 벌어지는 사건에 연관시키는 일)은 점성비술(秘術)에 있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데 성경은 점성술을 구제불능이라고 비난한다(이사야 47:13-15; 등등). 하나님께서 약속한 당신의 화신(化神)과 관련된 별에 점성술이라는 의사과학을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속들에게 점성술을 피하라고 극구 경고하지 않았던가!

옛날의 문필가들처럼 오늘날의 작가들 중에도 크리스마스의 별이 혜성이었다는 암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앞에서와 유사한 반박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혜성까지도 행성이나 행성들의 합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궤도를 따라 상당히 빈번하게 떠돌고 있어서 혜성의 출현은 예측이 가능하다. 혜성은 일종의 꼬리를 달고 있어서, 그 모습도 역시 보통 별이나 행성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런고로 Magi들이라면 틀림없이 혜성을 진짜 별과 구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혜성이 출현하면 그때마다 점성가들은 예언의 계기로 이용하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있는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별(His Star)을 보내는 목적으로 진정으로 혜성을 택하셨을 이유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거론된 현상들 중 어느 것에도 해당이 안 되는 특별한 형태의 별에 대한 검토가 아직 남아있다. 그것은 신성(nova, 'new stars' 라 불려지는)과 더욱 흥미진진하며 아주 희귀한 초신성(supernova, 변광성의 일종)이라는 별들이다. 이 별들은 진짜 별들로서 행성들의 합이라든가, 혜성이 아닐뿐더러, 하늘에 생긴 어떤 현상도 아니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2 (When They Saw the Star)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05&bmode=view


*참조 : What Was the Christmas Star?
https://answersingenesis.org/holidays/christmas/what-was-the-christmas-star/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home/resources/resources_tracts_whentheysawthestar/

출처 - ICR


미디어위원회
2004-06-22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

김희택 


     이 질문은 성경 비판학자들이 제기한 질문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가 확신하기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피상적인 모순을 성경의 원저자들이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점이다.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선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중요한 사실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①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창 2:7,18~19).

② 아담은 930년 동안 살았다 (창 5:5).

③ '이브' 라는 이름은 모든 산 자들의 어미이기 때문에 주어졌다 (창 3:20).

④ 아담과 이브는 많은 자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창 5:4).

⑤ 창조시에 모든 것들은 가장 좋은 상태이었다 (창 1:31).

⑥ 아담의 죄로 인하여 창조물들은 저주를 받게 되었다 (창 3:17, 롬 8:20~22).

⑦ 아브라함은 그의 이복누이와 결혼했다 (창 20:12).

⑧ 근친상간을 금하는 법은 모세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레 18~20). 


이상의 9 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이 가인이 그의 여동생 중의 하나와 결혼했음이 틀림없음을 제안하는데 실마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최초의 인류였다. 창세기의 그들 각자의 창조기원을 알려주고,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것을 지시 받게 된 것에 대하여 기록한다.


성경에는 아담과 이브의 자녀들 중에서 단지 '가인', '아벨', '셋'의 세 명의 이름만 거론한다.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우리가 꼭 알아야 될 중요한 사건들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된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5장 4절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는 많은 아들과 딸들을 거느리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담이 첫 번째 인간이었다는 사실과 아담은 930 년 동안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참고로 창세기 5 장 족보에 열거된 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평균수명은 912 년이다. 가족의 크기나 평균수명 등에 관한 보수적인 가설에 근거해서 가인의 죽음 이전에 이 땅에 이미 많은 인구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이 가인이 몇 세에 아우를 살해했는지, 또 몇 세에 아내를 취하고 성을 세웠는지 지적하지 않음으로 기록상 아무 모순이 없다.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최초의 인류인 두 사람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해 창조되었고, 아들들과 딸들의 많은 자녀들을 가졌으며, 확실하게 아들들은 자손들의 번성을 위해 딸들과 결혼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가인의 아내는 그와 아주 가까운 근친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상의 결론을 근친상간을 금하는 법을 들어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법은 모세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모세보다 약 400 년 전에 살았던 아브라함은 이복누이와 결혼했음을 성경은 말해준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금지법이 출현하게 되었는가? 이런 금지에 대한 과학적인 이유는 그런 결혼의 결과로 나타나는 자녀들이 일반적인 결혼보다 더 기형아이거나 저능아인 가능성이 많다는데 있다. 두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의 유전인자에 더욱 유사한 결함을 가지게 될 확률이 커지게 된다. 만약 이들이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게 될 경우, 자녀들중 어느 아이인가는 부모로부터 각각 결함을 갖는 유전인자를 상속받게 되고, 이것으로부터 형성된 유전자쌍이 기형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두 사람의 관계가 멀면 멀수록 그들의 유전인자는 서로 다른 결함을 갖게 될 확률이 크며, 이들로부터 유전인자를 전수 받은 아이들은 각 쌍에 서로 다른 하나의 결함인자만을 갖는 결과가 되어, 앞의 경우에서와 같은 완전한 기형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예로 완전히 기형인 귀를 갖는 대신 단지 꼬부라지기만 한 귀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완전했고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창 1:30). 이것은 그들의 유전인자가 완전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세상을 저주하셨고 완전했던 창조세계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즉 죽음과 타락으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 퇴보는 생명체의 유전인자 재료에 각종의 잘못을 발생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다. 더욱이 이러한 퇴보는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 크게 가속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홍수 이후의 기후 조건이 극도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홍수 이후에 돌연변이를 유발할 수 있는 해로운 우주복사선(cosmic radiation)의 양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 돌연변이는 발생한 이후에 다음 세대에 계속 전달되게 되며, 그래서 그것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것이다. 약 2,500 년이 지난 모세의 시대에 와서 비로소 형제자매간 근친상간에 대한 금지법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만큼 인간종족에 축적되었음을 성경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인은 태어난 첫 번째 아이였다. 그는 아마도 아담과 이브로부터 사실상 거의 손상 받지 않은 완벽한 유전인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형제와 자매는 어떤 기형의 자손을 낳을 가능성이 없이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항상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그 자체의 기록뿐 아니라, 잘 알려진 모든 과학적 사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출처 - 창조지, 제 79호 [1992. 9]

미디어위원회
2004-06-03

루터교도들은 코페르니쿠스를 도왔다.

 (Lutherans Helped Copernicus)

David F. Coppedge


      우리가 '알고(know)' 있는 것들이 진실(true)인지를 재검토해보게 될 때, 진실은 그 반대와 더 가깝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그는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둘레를 공전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서 교회를 위협했던 용감한 과학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도 두려워해서 죽을 때에도 그의 ‘이단적인(heretical)‘ 견해를 출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던 시리즈물 ‘우주(Cosmos)’ 에서 칼 세이건(Carl Sagan)은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는 루터교도들에 의해서 조롱당했다는 도시의 전설(urban legend)을 되풀이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하버드 대학의 천문학자이며, 역사가인 오웬 징거리치(Owen Gingerich)는 그의 생애의 많은 부분을 역사 기록을 바르게 정립하는데 바쳤다. 징거리치는 'An Annotated Census of Copernicus’ De Revolutionibus' 라는 제목의 이전 책에서 30년 동안의 프로젝트 결과를 출판하였다. 그 책은 알려진 원본들에 대한 각각의 복사본들을 게재하였고, 코페르니쿠스의 책(‘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이 전 유럽에 걸쳐 배포되었고 토론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꼼꼼하게 그 당시의 독자들에 의해서 기록된 수백의 주변 노트들을 분석하였다. 이제 징거리치는 그의 결과물들을 새로운 책, 'The Book Nobody Read : Chasing the Revolutions of Nicolaus Copernicus” (Walker, New York, 2004) 으로 출판함으로서 더 재미있고 접근 가능한 형태로 만들었다. 이 책은 2004. 4. 28일자 사이언스(Science)1 지에서 피터 바커(Peter Barker)에 의해 리뷰되었다. ('De Revolutionibus 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the book nobody read)' 이었다는 아더 코스틀러(Arthur Koestler)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징거리치는 책의 제목을 코스틀러의 주장으로부터 취했다). 여기에 바커의 리뷰에서 나타난 도시 전설의 몇 가지 수정사항들을 제시한다.


●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원고를 젊은 루터교인이며, 수학자인 레티쿠스(Georg Joachim Rheticus)에게 위탁했다.

● 책은 루터교인인 인쇄업자에 의해서 뉘른베르크(Nuremberg)에서 출판되었다.

● 한 루터교 성직자는 책에 사인 없이 서문을 추가했다.

● 프러시아의 군주는 루터교도였고, ‘De Revolutionibus’를 출판했던 사회에서 후원자였다.

● ”나이 많은 가톨릭교도가 교황에게 헌정된 그의 천문학 책을 일단의 개신교도들에게 위탁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커는 묻고 있다. ”뉘른베르크 인쇄업자들의 전문적 지식이 확실히 한 요인이었다. 아마도 코페르니쿠스는 지방의 주교(bishop)로부터 그가 보호되기 위해서 프러시아의 군주를 또한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가톨릭의 반대가 아마도 지역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루터교의 수학자들은 열망하여 그 책을 얻었고, 그것을 공부했고, 그것에 기록을 했고, 그들의 친구들에게 복사본들을 건네주었다. 많은 루터교도들은 아직도 고정된 지구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게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받아들였고, 감사해했다.

● 루터교도인 티코 브라헤(Tycho Brahe)는 그 책의 많은 복사본들을 소유했다. 바커는 말한다. 징거리치 연구에서 ‘매우 놀랄만한’ 점은, 브라헤는 그의 태양중심적인 대체 모델을 신사이며 여행가였던 폴 위치(Paul Wittich)로부터 얻었다는 것이다.

● ”프톨레미의 천문학은 그것이 주전원(epicycles)들에 과도한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다.” 바커는 말한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전 후의 천문학자들은 단순한 하나의 주전원 계를 사용했는데, 가끔 코페르니쿠스 자신에 의해서 사용된 하나의 작은 주전원에 의해 증대되곤 했다.”

●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은 엄밀하게 말하면 태양중심설이 아니다. ”사실, 그의 계의 중심으로서 어떤 지점을 간주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은 꽤 어렵다.” 그 모델은 관측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더 수학적인 것이었다.

● 바커는 놀라움을 표하며 언급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상외의 발견은, 갈릴레오 사건의 여파로서 (Galileo biography을 보라),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정정하려는 교회의 시도는 대부분 효과가 없었다.”

”징거리치의 평가에 의해서 재강조되는 점은, De Revolutionibus의 인쇄된 원본은 400에서 500권 사이였는데, 그의 조사(Census)에 의하면 이들 중 277권이 남아있는 것으로 살펴볼 때, 책이 실제로 파괴되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밖에서, 심지어 가톨릭의 국가에서도 교회의 명령으로 수정된 복사본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바커는 우주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던 획기적인 책에 관한 진실을 밝혀보기 위한 징거리치의 ”놀라운 추적”을 칭찬하고 있다. ”그의 서술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초기 현대 과학의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일으킬 것이다.” 


1Peter Barker, 'A History Recorded in the Margins,” Science Vol 304, Issue 5671, 686, 30 April 2004, [DOI: 10.1126/science.109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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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거리치 박사는 잘못 알려졌던 도시 전설에 대한 이러한 정정을 해줌으로서, 역사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위대한 공헌을 하였다. 16세기 과학적 전진의 적대세력은 루터교인도 아니고, 가톨릭교인도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말하자면, 루터(Luther)가 코페르니쿠스를 바보(fool)라고 불렀다는 도시의 전설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루터가 말했던 것들, 또는 의미했던 것들은 한참 후까지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의미의 전달이 잘못될 수도 있었다. 도날드 코브에 의한 Leadership U 분석을 보라.


De Revolutionibus이 현대의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이끌어 냈는지는 또 하나의 의문이다. 최근까지, 천문학자들은 지구는 우주의 물질 체계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궁극적으로 코페르니쿠스의 모델을 외삽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De Revolutionibus 만큼 혁명적일 수 있는 새로운 책에 의해서 도전받고 있다. 그 책은 곤잘레스(Gonzalez)와 리챠드(Richards)에 의해서 쓰여진 ‘특별한 행성(The Privileged Planet)‘ 이다. 우리는 이것이 웹 사이트의 대화방 등에서 어떠한 주변 노트를 얻게 될 지, 또는 다윈의 교회가 그 책을 무시하는데 성공할 것인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4/04/lutherans_helped_copernicus/

출처 - CEH, 2004. 4. 30.


미디어위원회
2004-04-27

예수님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발견된 적이 있는가?

(Has Archaeological Evidence for Jesus Been Discovered?) 

Dr. John D. Morris 


     회의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점을 가끔 지적하곤 한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최근의 발견이 어쩌면 그들의 말을 잠재울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부차적인 문제가 있는데, 우선은 이 문제부터 먼저 고려하여야 할 것 같다. 그와 같은 유물이나 비명 따위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한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인간 예수는 어느 정부의 특출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거의 무일푼의 유랑 설교자로서, 결국에는 보통의 무법자의 죽음을 죽었던 것이다. 로마 사람들이 그의 비명이나 동상이라도 세워 기록할 이유가 있었을까? 확실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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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 시대 전반에 걸친 유대의 고고학적 유물들은 오히려 희박한 편이다. 로마 제국의 도시들과, 헤롯(Herod) 왕, 빌라도(Pilate) 총독, 그리고 베스도(Festus) 같은 지도자들에 관한 적절한 비명이 기록된 거대하고 광범한 유물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가야바(Caiaphas)와 같은 영향력이 있는 유대 인사들의 유물도 역시 남아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삶에 관한 기록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후 70년대에 예루살렘은 티투스 로마황제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대로 남아있던 유물들도 현대의 번창하는 도시건축으로 매몰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모든 조건들은 유물보전에 친화적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고고학적 유물이 거의 전무한 사실은 풍부한 그의 역사적 증거와는 대조적이다.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한지 얼마 후, 뒤이어진 바울의 편지들이 그 때에 살던 사람들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에 이미 복사되고 널리 전파되었던 것이다. 로마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리스도/메시아로 불려졌던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James)라는 사람의 사형집행 사건을 포함하여 중요한 민사사건들에 관해 언급했는데, 그의 언급에서 그는 틀림없이 예수의 아우인 야고보를 지칭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야고보는 초기교회의 지도자였으며,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는 야고보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새로 발견된 유물은 중간 크기의 상자로서, 죽은 자의 살이 완전히 삭은 후 인골만을 추려서 영구 매장하는 납골궤(ossuary, 뼈단지)였다. 이 매장제도는 BC 20년대에서부터 AD 70년대까지 짧은 기간에 시행되었다. 그 궤는 그 지방에 흔한 부드러운 백악질의 석회석으로 되어있었다. 그 내용물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궤의 한 쪽 측면에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그 글은 당시의 아람어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아우 (James, son of Joseph, brother of Jesus)' 라고 되어있었다. 전자현미경 스캐닝을 포함하여 세밀한 분석조사 결과 그 각명(刻銘)은 진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궤의 표면에 고루 녹슨 녹청은 각인된 글자들의 내면까지 덮고 있었다. 고고학적 유물평가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앙드레 러맬 박사 (Dr. Andre Lemaire)는, '이 고대유물이 가짜가 아닌 진품이라는 나의 판단을 보고하게 되어 나는 기쁘다' 라고 말했다.

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는 습관은 그 지역에서는 보통이었다. 그러나 형제가 유명인사가 아닌 이상, 죽은 자의 형제의 이름은 사용하는 예는 드물었다. 기록되어 있는 세 사람의 관계가 성경에 기록된 관계와 꼭 들어맞게 되어있는 것을 보면, 납골궤에 수장된 주인공은 성경의 야고보일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하겠다.

납골궤는 물론 다른 고고학적 유물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그 사건들이 참이라는 우리의 확신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크리스천의 믿음은 역사적 사실들 위에 근거한 합리적인 믿음이다. 그리고 성경은 온전히 정확한 기록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수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has-archaeological-evidence-for-jesus-been-discove

출처 - ICR, 2002. 12. 1.


미디어위원회
2003-10-08

베들레헴의 별은 무엇이었을까?

(What was the Star of Bethlehem?)

Don DeYoung 


     크리스마스 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세 가지가 언급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별은 왕들의 탄생과 같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일들이 발생할 때 전통적으로 생각하던 혜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혜성의 관측 기록은 주의 탄생과 합치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헬리 혜성은 기원 전 11년에 있었고, 첫 크리스마스는 BC 5~7년 사이에 일어났다.

다른 학자들은 베들레헴의 별은 밤 하늘에 일어났던 행성들의 근접 현상이었다고 믿고 있다. 행성들은 태양의 둘레를 각각의 거리에서 다른 속도로 공전하기 때문에 행성들은 때때로 서로 근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여러 행성들이 단일한 광원으로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행성 직렬은 다소 자주 있으며 그렇게 드문 편이 아니다. 기원전 6년에 목성과 토성의 근접이 있었지만, 훨씬 전인 기원전 66 년에 훨씬 더 가까운 근접현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별을 설명하기 위해 폭발하는 별, 또는 초신성(supernova)이 제안되었다. 어떤 별들은 불안정하여 밝은 빛을 내며 폭발한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기록에는 예수님이 탄생하던 시기에 초신성에 대한 기록이 없다.

베들레헴 별에 대한 위 세 가지 설명 모두 다 민수기 24장 17절에 예언되었고, 마태복음 2장 1절에서 12절까지 기록된 본래 이야기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두 사건은 특별히 흥미가 있다.

첫째는 본문에 따르면 동방박사들만 그 별을 보았다는 것이다. 혜성의 출현이나, 행성 직렬, 혹은 초신성이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별이 동방박사들 앞서 갔으며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그들을 인도했다는 것이다. 이 거리는 약 10km (6마일)이며 북쪽에서 남쪽 방향이다. 그렇지만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는 지구의 자전으로 동에서 서로 움직이므로 별이 어떤 특별한 집으로 길을 인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결론은 베들레헴의 별은 과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시적인 초자연적인 빛이었다. 첫 크리스마스는 기적의 시간이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채웠던 영광 (출애굽기 40:34-38), 성전을 채웠던 영광(열왕기상 8:11)과 사도 바울을 비췄던 빛(사도행전 9:3)처럼 종종 초자연적인 빛으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하나님의 현전에 대한 그러한 가시적인 징조는 세키나 영광(Skekinah Glory), 혹은 하나님의 임재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별한 광채는 신성의 위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첫 크리스마스의 위대한 신비는 특별한 별의 기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세주께로 인도하는 별을 따라가도록 동방박사들이 선택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똑같은 초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참조 : The Star of Bethlehem : A Supernatural Sign in the Heaven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1/n2/star-of-bethlehem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2/1224star.asp 

출처 - AIG, 24 December 2002.

관리자
2002-06-14

노아 방주에 탄 정결한 짐승들의 수는 성경의 오류인가?

김홍석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 7:2-3)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창 7:8-9)


  자주 성경의 오류로 주장되는 구절은 노아의 방주에 태워진 정결한 짐승들의 수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 성서 맛소라 텍스트는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보여준다. 창 7:2절에서 정결한 짐승은 “쉬브아 쉬브아 이쉬 이솨”(일곱 일곱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부정한 것은 “쉐나임 이쉬 이솨”(둘 수 암)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수컷과 암컷(을 합하여) 두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한 쌍이다. 또한 창 7:3절에서 공중의 새도 “쉬브아 쉬브아 자카르 네케바”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수컷 일곱 마리 암컷 일곱 마리”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일곱 쌍이다.

그렇다면 창 7:8절에서 노아 방주로 들어갈 때 둘씩 들어갔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 7:8절에서 “암수 둘씩”이란 “쉐나임 쉐나임”(둘 둘) 나아와서 “자카르 네케바”(수 암)가 방주로 들어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암수 둘씩(two and two)이란 의미는 노아에게 나아오는 모습과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한 무신론자의 주장   <James Patrick Holding의 글>


한 무신론자는 노아 방주에 7쌍의 암수가 태워진 것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하고 있었다 : 

“암수 7쌍을 취하는 이러한 생각은 여호와가 축산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농부나 목장주도 소, 양, 말 등의 동물을 키우는 사업을 할 때 암수의 숫자를 똑같이 구매하지 않는다. 1 마리의 숫소와 13 마리의 암소, 또는 1 마리의 숫양과 13 마리의 암양을 구매하는 것이, 암수 각각 7 마리씩 구매하는 것보다 초기 투자 시에 매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1 마리의 수컷이 13 마리의 암컷과 교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이러한 이야기가 쓰여졌다는 것은 그 저자가 동물들의 번식에 대해 빈약한 지식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한 번에 많은 새끼들을 낳는다. 코끼리를 생각해 보자. 아프리카 코끼리는 14살 정도에 번식할 수 있는 연령이 된다.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평균 670일 이다. 반면에 인도코끼리들은 좀 더 일찍 성숙하고 좀 더 짧은 임신기간을 갖는다. 그래서 한 쌍의 코끼리가 25살의 나이에 4마리의 자손을 가졌을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코끼리의 개체 수는 100년 동안에 줄잡아 4번이나 2배가 될 수 있다(새끼들이 젖을 뗀 후, 부모 세대들이 곧 죽었다할지라도). 개체 수가 2배로 되는 것이 22번 일어나면 800만을 넘어선다. 이 숫자는 단지 550년(22×25)이면 도달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리고 방주에 수컷을 한 마리만 태우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서도 적절하지 않다.


또 다른 성경비판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

“이스라엘 자손들의 인구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바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에서, 바로는 모든 신민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남자 아기를 낳으면 죽이고, 여자여든 살려두라고 명령한다(출 1:22). 이것은 인구수를 줄일 수 없는 멍청한 계획이다. 왜냐하면 인구성장률은 임신이 불가능한 남자의 수가 아니라, (그 그룹에 임신을 시킬 수 있는 적어도 한 남자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임신이 가능한 여자들의 수에 의존한다. 바로는 그 당시에 태어난 모든 남자 아기들을 죽이는데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남아 성숙해진 여자들은 이미 살아있었던 많은 나이든 남자들과 민족의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서 기꺼이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든 남성이 ”이 사랑스런 여인은 너무 젊어서 아내로 맞이하기에는 부끄럽소“ 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바로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다면, 또는 이 허풍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작가가 약간의 상식을 가졌었더라면, 그 이야기는 바로가 히브리 여인들에서 태어난 모든 여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었다고 썼을 것이다.” 

의견을 구했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 바보스러운 말이다.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바로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는가? 그리고 바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본 후에도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남자들은 무기를 잡고 전쟁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노예로서 많은 일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이 우둔했다’ 라고 말하는 것 외에도 연대기적 속물근성이 비판론자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다. 오! 바로는 여자들이 태어나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여자들이 인구성장률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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