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12-02-20

페루에서 발견된 거인 아기의 두개골 

: 외계인의 유골로 오해되고 있다.

(Is Peruvian Mummy a Giant Toddler?)

by Brian Thomas, Ph.D.


      거인(giant humans)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가 아닌 허구라고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거인에 관한 기록도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쉬 서사시(Epic of Gilgamesh), 에녹서(Book of Enoch), 거인서(Book of Giants), 마젤란과 같은 탐험가들의 보고 등과 같은 성경 외의 많은 문서들도 거인이 실제로 존재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페루에서 발견된 한 미라화 된 두개골은 거인 아이(giant toddler)의 두개골인 것처럼 보였다. (거인 아기에 관한 동영상은 여기를 클릭). 만약 그 두개골이 정말로 거인족 아기의 두개골이라면, 거인들이 실존했다는 기록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연구팀은 페루의 꾸스꼬(Cuzco) 인근에서 미라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현재 리마(Lima) 남동쪽 끝에 위치한 리토스 안디노스(Ritos Andinos)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미라의 두개골 꼭대기에는 하나의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은 천문(fontanel, 숫구멍)임이 분명했다. 천문은 신생아의 머리 꼭대기에 머리뼈 유합부가 골화되지 않고 결합조직이 남아있는 것으로, 후에 뼈들이 자라 폐쇄된다. 현대 아기처럼 그 두개골은 신체의 다른 부분들보다 컸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두개골의 길이가 무려 50cm(20인치)나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성인의 두개골보다도 큰 크기였다.

리마 대학의 인류학자인 파블로 바야바(Pablo Bayabar)는 그 미라 두개골을 검사한 후 중국의 신당인 텔레비전(New Tang Dynasty Television)에서 말했다 :

”아기의 머리는 비례적으로 그들의 몸보다 더 컸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점이 있었는데, 먼저 천문이 열려있었다는 것입니다. 천문은 대게 생후 31개월 정도에 닫혀집니다. 그리고 그 두개골에는 대략 13~19개월 사이에 나오는 어금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대한 머리를 가진 두 살 정도 된 아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1]

만약 이 유아가 완전히 성장했다면, 그는 거인으로써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 두개골은 커다란 눈구멍(eye sockets), 독특한 어금니 구조, 턱의 독특한 선반 모양 등을 포함한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리토스 안디노스 박물관의 책임자인 레나토 다빌라(Renato Davila)는 말했다. ”그 두개골은 50cm나 되는데, 이것은 현대 아기의 두개골과 일치하지 않습니다.”[1] 일부 인류학자들은 그것을 사람으로 부르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다.[2]

진화론에 의하면, 사람은 작고 원숭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인류는 아담의 후손이다. 또한 성경은 거인들이 존재했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인간 역사에 대한 표준 진화론 이야기와는 대조된다.

민수기에는 모세의 지시 하에 열두 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그들의 발견을 보고한 기록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great stature)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giants)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 13:32~33) 

성경은 거인들을 언급하고 있고, 다른 역사적 기록과 유물들도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2011년에 발견된 거인 아기의 두개골은 성경의 기록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유물인 것으로 보여진다. 



References

1. Giant Mummy Discovered in Peru. NTD Television. Posted on english.ntdtv.com November 19, 2011, accessed January 28, 2012.
2. Milligan, P. Is this an alien skull? Mystery of giant-headed mummy found in PeruDaily Mail Online. Posted on dailymail.co.uk November 24, 2011, accessed January 30, 2012.
3. Genesis 5:3.
4. Numbers 13:32-33.
5. For example, the 2006 discovery of a pottery shard in Gath (Goliath's home town) and dated from the tenth century B.C. has two inscriptions that use Hebrew-like letters to spell Philistine words. Both are phonetically close to the name 'Goliath.' See New Finds: Gath Inscription Evidences Philistine Assimilation. 2006.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2: 02.

 *Is giant-headed mummy found in Peru an alien skull? (2011. 11. 20. The Korea Times)


*참조 : Giants in the Old Testament (AiG, 2012. 2. 22.)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id/v7/n1/OT-giants

팔룩시 강의 거인 발자국들

https://creation.kr/Controversy/?idx=1294660&bmode=view

Giant megaliths in Russia built by giants? And more cool videos!

https://ancientpatriarchs.wordpress.com/2016/03/20/giant-megaliths-in-russia-built-by-giants-and-more-cool-video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624/ 

출처 - ICR News, 2012. 2. 12.

미디어위원회
2011-04-26

마태복음 족보의 선택적 기록 분석

김홍석 


      여러 사본들을 고려하여 프리셉트성경 편찬위원회는 ‘헤스론-람-아니-아미나답’으로 이어지는 족보를 그렸다. 기독교대백과사전 제13권에는 ‘헤스론-람-암미나답’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그렸다. 또한 여호사밧 이후의 계보 중에서 역대상에 비하여 마태복음 계보에는 빠진 곳이 많다. 이는 사본의 문제이다(프리셉트성경, 2000.5.1, 신약 85-2쪽 도표상 27아니, 41아하시야, 42요아스, 43아마샤, 51여호야김). 마태복음은 왜 이렇게 선택적으로 족보를 기록하면서 14대씩 3개 그룹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 마태복음 기록자가 창세기나 역대기의 족보기록을 몰랐거나 무관심했을 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여기에는 이 자리에서 족보를 거론하는 목적인 전략적 의도가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목적은 첫 구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오래도록 기다려온 왕이시며,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리라고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의 메시아족보 예언 성취의 중심에는  '다윗'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의 족보예언은 이미 지났고, 이제 남은 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였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7, 눅18:38),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마21:9),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1:3)라고 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족보는 '다윗'을 양쪽에 포함시켰다. 14는 7의 배수로서, 이는 창 10장의 족보기록에서 7의 배수로 선택적으로 기록된 점 창 46장에서 야곱의 자손들을 7의 배수인 70명으로 선택적으로 맞추어 기록한 것과 나아가 창 1:1-2:3의 수(number)신학에서 보여주는 7과 7의 배수들의 배치와 함께 모두 구약성경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된다.


수(number)신학적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윗(DAVID)의 이름의 알파벳 수 값은 D달렛(4) + V바브(6) + D달렛(4) = 14이며, 이는 7의 배수이다. 창 10:2-5의 야벳의 자손들의 목록은 14명(7명의 아들들과 7명의 손자들)으로 선택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창 10:1-11:9에서 노아, 셈, 함, 야벳을 제외하고 이들로부터 파생된 열방의 숫자는 70명이 소개되었다. 창세기 46장에서는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70인이라고 소개한다(창 46:27; 출 1:5). 이는 야곱의 딸들 가운데 단지 2명(디나와 세라)만을 포함하고 이미 애굽에 가 있던 아들 요셉과 요셉의 두 아들을 포함하여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와 자신을 포함하여 70명이 되도록 하고 부인들과 며느리들은 이 계수에 제외되었다(창 46:26). 이와 같이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자손들의 계보에 대한 족보기록에서도 7의 배수로 전하는 것은 전체와 완전을 의미하며 창세기 10장에서 노아와 셈, 함, 야벳을 제외한 그 후손들의 계보들 가운데 70명을 선택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서 구약성경의 족보기록 서술의 전통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창세기 1장으로 나아가보자. 태초의 맨 처음 7일간에 대한 서술인 창 1:1-2:3에는 7의 배수로 구성된 수신학이 존재한다. 창 1:1은 7개의 단어와 28개(7의 4배수)의 철자로 구성되어 있고, 28은 7번째 삼각수(7th Triangular number)이며, 완전수(perfect number, 자신을 나눌 수 있는 인수들을 모두 더한 값이 자신이 되는 수)이다. 창1:1의 히브리어 단어의 수가 7개, 창 1:2의 히브리어 단어의 수가 14개(7×2), 창 2:1-3은 히브리어 단어의 수가 35개(7×5)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태초 창조활동에 대한 서술인 창 1:1-31에는 '만들다(아싸)'라는 단어가 7회 사용되었고, ”하나님께서(엘로힘) 보시기에(라아) 좋았더라(토브)”는 문구가 7회 사용되었다. 창 1:1-2:3에는 하나님(엘로힘)이라는 단어는 35회(7×5), 땅(아레쯔)은 21회(7×3), 하늘(솨마임)/궁창(라키아)은 도합 21회(7×3), ”그대로 되니라”(바예히 켄, 바예히 오르)가 7회 사용되었다. 이렇듯 치밀함을 보여주는 성경의 기록에 대비하여 본다면, 마태복음의 족보서술이 창세기의 족보서술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으로 인한 엉성한 기록일 리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의 계보가 구약 메시야계보 예언의 성취임을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구약의 계보 서술 방식대로 7의 배수로 선택적으로 기록함으로써 구약과의 연결, 통일성을 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마태공동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미디어위원회
2011-04-04

성경에 나타난 지진의 역사

정수현 


   이 글은 Dr. Austin이 2010년 10월호 'Acts & Facts'에 기고한 'Greatest Earthquakes of the Bible'을 근거로 창조과학회 대전지부에서 발표한 내용을 요약하여 작성하였다. 발표 순서가 되었기에 무엇을 발표할까 고민하다가 이 주제를 선택하였다. 필자는 지진 전문가도 아니고 지질학을 전공하지도 않았지만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인 3월 12일에 발표하였으니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 실종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고통 중에 있는데 이번 기회에 성경에는 지진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성경에는 직접 지진을 언급한 부분도 있고 지진으로 추정되는 내용도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사해의 퇴적층에 나타난 지층구조를 통하여 성경에 나타난 지진 또는 지각변동이 있을 때마다 퇴적층의 깊이 순서 즉 연대순으로 일정한 두께의 교란층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림 1).


그림 1. 사해 퇴적층에 나타난 지진 기록

사해는 소돔 고모라의 멸망 시에 생긴 호수로서 요단강의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며 지표면보다 392m 낮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염도가 200 %o(퍼밀) 정도로 일반 해수보다 5배 이상 높아 미생물 조차도 살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지진 등 지각변동의 역사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최근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퇴적층의 깊이는 20피트 약 6m 정도 되는데, 여러 층의 교란층이 존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퇴적층 5.6m 깊이에 위치한 교란층은 BC 2050년의 소돔 고모라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일치한다. 또 BC 1400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여호수아 6장) 여리고성이 무너진 현상도 지진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4.7 m 깊이에 나타난 교란층이 그때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울왕 시대에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울 때 있었던 지진(사무엘상 14:15)도 사해 퇴적층 4.1 m 깊이에 그 증거가 나타나며, 그 시기가 BC 1010년과 일치한다. 또 아모스 선지자 시대에 있었던 B.C 750년의 지진은 리히터 지진계로 8.2의 강진으로 추정되는데,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최대 지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의 지진 흔적은 퇴적층 깊이 3.7 m 위치에 남아 있다. 아모스서 1장 1절은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시작이 되며, 아모스서의 여러 곳에서 지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아모스 3:14,15, 6:11, 8:8)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구약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쿰란 지진은 BC 31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며, 발굴현장에서 갈라진 제단 욕조가 발견되었고,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3만 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 교란층의 위치는 퇴적층 깊이 3.1 m 위치에 존재하며, 그 시기는 쿰란지진의 때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사해 퇴적층에 나타난 지진의 흔적 가운데 주목해야할 부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있었던 지진의 증거이다. 마태복음 27:51-54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고 큰 지진이 나며 바위가 깨어지고 무덤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의 증거는 쿰란지진의 교란층과 인접해 있으며, 예수님께서 죽으시던 AD 33년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며, 지진의 강도는 5.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성경에는 이 외에도 고라의 반역시에 땅이 갈라진 사건(민수기 16:31-33),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며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린 사건도(사도행전 16:25,26)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랐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때에도 지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성경에는 ”큰 진동이 일어났으며”(출애굽기 19:18) 이 사실에 대하여 히브리서 12:18-21에는 모세도 심히 두렵고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지진이 사해의 퇴적층에 지문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세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는데 전쟁, 기근, 전염병, 지진 등이 일어나면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4:4-14, 마가복음 13:5-13, 누가복음 21:8-19).  ”재난의 시작”을 영어성경에서는 ”the beginning of birth pains” 라고 기록하는데, 이 말은 ”산고의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남자들은 산통이 얼마나 큰지를 잘 모르지만 처음 시작할 때 아주 작은 통증이 비교적 긴 시간의 주기마다 다가오지만 출산이 가까워지면 통증은 심해지고 주기가 짧아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워지면 지진 등 재난이 잦아지고 강력해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최근 지질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20세기보다 21세기에 발생하는 지진의 빈도수가 더 많고 강력하다고 한다. 특히 이 지진발생 지역의 범위가 기존 지역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지진의 내용들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알 수 있으며 과거에 성경에 기록된 지진의 내용이 진실인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이전의 마지막 때에도 지진으로 인한 재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성경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진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하여 세 가지 다른 뜻을 나타내셨는데 1)소돔 및 고모라 사건, 고라 사건의 경우처럼 지진을 심판 또는 징계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2)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나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를 구하신 것처럼 구원의 역사로 사용하시기도 하고 3)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처럼 의사소통을 위하여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실 때 사용하시기도 하였다.

이번 일본 지진을 통하여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관자가 되시며 모든 자연현상의 통치자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 지진은 21세기의 첨단과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우습게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으로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해의 퇴적층에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지진이나 지각변동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설명하면서 성경중심으로 해석하는 한국창조과학회에 큰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저자인 Dr. Austin이 ”Greatest Earthquakes of the Bible”이라고 제목을 붙이게 된 심정을 유추해 보았다. 성경에 나타난 지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해 퇴적층은 하나님이 하신 일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기를 부인하는 이 세상을 살면서 창조과학자로서 내가 가진 지식보다 이 지구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족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이 핑계하지 못하도록 드러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할렐루야!!!! 


*참조 : Greatest Earthquakes of the Bible. 

https://www.icr.org/article/greatest-earthquakes-bible/

Earthquakes in these Last Days

https://www.icr.org/article/324/

The Scientific and Scriptural Impact of Amos' Earthquake 

https://www.icr.org/article/scientific-scriptural-impact-amos-earthquake

Amos's earthquake: An extraordinary Middle East seismic event of 750 BC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98846141_Amos's_earthquake_An_extraordinary_Middle_East_seismic_event_of_750_BC

미디어위원회
2011-02-18

고대의 포도주 제조 설비가 아라랏산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Ancient Winery Found Near Mount Ararat)

by Brian Thomas, Ph.D.


     최근에 한 연구팀은 고대의 포도즙 짜던 기구(winepress)를 역사적으로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아라랏산 근처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장소는 창세기 9장에 기록되어있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던 노아와 관련 됐을 수도 있는가?


성경에 의하면, 노아가 홍수 후에 한 최초의 활동 중 하나는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었다. 포도나무를 심고, 경작하고, 추수하고, 포도를 가공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온 창세기 9장 18절과 21절의 사건 사이에는 적어도 몇 달의 기간이 흘렀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아라랏 산으로부터 아르메니아의 아레니 근처의 포도주 양조장(winery)까지 대략 80km를 여행하는 데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허락했을 수 있다.


그 포도주 양조장은 포도압착기, 발효통, 저장항아리, 포도주에 젖었던 도자기 조각, 심지어 컵과 마시는 그릇 등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비교적 최근인 19세기에 사용되던 포도주 짜던 방식과 유사한 것이었다.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자들은 시들은 포도줄기와 씨앗들, 그리고 레드 와인의 색깔을 띠게 하는 화학물질인 말비딘(malvidin)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들의 발견을 고고학 저널(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게재하였고, 포도주(wine)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이의 불명료한 전이 기간인 구리 시대(Copper Age) 동안에 근동(Near Eastern)의 고원지대에서 만들어졌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를 인용하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지는 ”고대 포도주 설비는 이전에 알려졌던 어떤 유사한 설비보다 적어도 천 년 이상 더 오래된 것이다”라고 보도하였다.[1]

노아가 이러한 특별한 포도주 제조 설비들과 친숙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성경과 고고학 모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포도즙 짜는 설비가 노아 방주가 도착했던 지역에 위치한다는 사실에는 일치한다. 



References

1. Maugh II, T. H. Ancient winery found in Armenia. Los Angeles Times. Posted on latimes.com January 11, 2011, accessed January 11, 2011.
2. Barnard, H. et al. Chemical evidence for wine production around 4000 BCE in the Late Chalcolithic Near Eastern highlands.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November 30, 2010.
3. The evolutionary date assignments given to Copper Age deposits are not reliable, but there are evidences of the common use of copper in times past. For more on interpreting past 'ages,' see Sherwin, F. and B. Thomas. 2009. Understanding Evidence for the Biblical Timescale. Acts & Facts. 39 (4): 16-1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5879/ 

출처 - ICR, 2011. 1. 20.

미디어위원회
2010-03-19

성경의 근친 간의 결혼 금지는 모순인가? 

(Contradictions : Too Close for Comfort)

Gary Vaterlaus 


하나님은 근친 간의 결혼을 허락하셨는가, 금지하셨는가?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창세기 20:11,1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신명기 27:22) (또한 레위기 18:6~9절을 보라)

이 두 구절은 일부 사람들에게 명백히 모순처럼 보인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 아브라함은 이복 누이와 결혼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누이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경의 모순인가? 전혀 아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태초의 아담과 하와에서 출발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담과 하와가 몇 명의 자녀들을 두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이 가인, 아벨, 셋 외에도 다른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창 5:4). 따라서 사람의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여동생들과 결혼을 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근친 간의 결혼을 금지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일일까? 확실히 아니다.

모세의 율법을 BC 1440년경 까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창조 이후로 2,500년 이상이 지난 시기이며, 아브라함의 시대로부터도 400년 이상이 지난 시기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근친 간의 결혼을 금지시키신 이유는 무엇일까? The New Answers Book 책의 Cain’s Wife—Who Was She? 장에는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다 : 

남녀 두 사람의 친족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의 부모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들에 유사한 오류들이 더 많아진다. 그러므로 근친 간에는 그들의 유전자에 유사한 오류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들 두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기는 그들 부모들로부터 각 한 세트의 유전자들을 물려받게 된다. 이 유전자들은 유사한 오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오류가 합쳐져서, 그 아이는 장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 그러나 오늘날의 이러한 일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처음 두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완벽했다. 하나님은 지으신 그 모든 것들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하여(창 3:6) 죄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저주하셨다. 그래서 완벽했던 창조 세계는 쇠퇴되기 시작하였고, 고통과 죽음과 붕괴가 시작되었다.(롬 8:22).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러한 쇠퇴는 살아있는 생물들의 유전자들에서 발생되는 모든 종류의 오류들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 모세의 시대에 이르러(2500여년이 지난 후), 쇠퇴된 유전적 오류들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양으로 축적되어졌고,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남매(그리고 근친) 간의 결혼을 금지시키실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레위기 18~20장)  

그래서 적절한 역사적, 신학적 문맥으로 성경을 연구해 볼 때, 성경에 어떠한 모순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9/05/04/contradictions-too-close-for-comfort 

출처 - AiG, May 4, 2009.

미디어위원회
2010-03-17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면, 

어떻게 창조주가 될 수 있는가?

(Contradictions : The Firstborn Creator?)

Bodie Hodge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면(골 1:15), 어떻게 창조주가 될 수 있는가?(요 1:1~3). 이 성경 구절들은 서로 모순인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 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로새서 1:15~1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6,7)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히브리서 1:5,6)

먼저 확립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구절들이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피조물이신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불합리하다.

주장되는 모순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장자, firstborn over all of creation)”라는 어구와 ”낳았다(begetting)”라는 단어의 의미와 시점에 대한 부적절한 해석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창조 시점에서 일어난 ”최초로 창조된 실체”를 의미하는가? 절대적으로 아니다. 한 기독교 변증가는 ”처음 창조된(first created)”이란 뜻의 헬라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이 경우에서 사용되지 않았다.[1] 

시편과 히브리서 구절의 문맥은 명백히 2000년 전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셔서 지상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이 시점은 태초가 아니며, 주장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실존하시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구절을 숙고해 보라 :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시편 89:20, 27)

다윗에게 장자(firstborn)의 위치가 부여되었음을 주목하라!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장자가 아니라 막내이다. 이새의 장자는 엘리압이다(삼상 17:13). 그리고 시편 89:27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장자(firstborn)라는 칭호를 부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예레미야 31:9절에서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비록 그가 차남이지만 말이다.(창 41:51-52).

다윗과 에브라임처럼 예수님 또한 이 칭호를 부여받으셨다. 다윗과 에브라임은 분명히 처음 태어난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칭호를 부여받았다고 해서 예수님이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어떠한 모순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먼저 나신 이(장자)라는 칭호를 부여받으신 분인 것이다.

 

Footnotes

1. Matthew Slick, Col. 1:15, ”firstborn of all creation,” Christian Apologetics & Research Ministry Websit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9/06/01/contradictions-the-firstborn-creator 

출처 - AiG, June 1, 2009.

미디어위원회
2010-03-15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을 것이라는 구절과 서로 모순되는가?

(Contradictions : Face to Face)

Bodie Hodge 


창세기 32:30절과 출애굽기 33:11절에 의하면, 야곱과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세기 32:30)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33:11)

그러나 출애굽기 33:20절, 요한복음 1:18, 요한복음 4:12절에는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구절들은 성경비판가들의 주장처럼 성경의 모순인가?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애굽기 33:20)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8)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한일서 4:12)

사람들은 이 구절들이 주장되는 성경의 모순들 중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모순은 없다. 한 성경 비판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A는 not-A와 동일할 수 없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면한 사람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성경의 오류가 분명하다” 그러나 자주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자세히 살피는데 실패하고 있다. ”A는 not-A와 동시에 그리고 똑같은 관계에서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장되는 두 구절, 즉 출애굽기 33:11절과 33:20절을 문맥들 속에서 함께 자세히 살펴보면, 그 구절들에는 서로 다른 시점(different time) 또는 다른 관계(different relationship) 속에서 쓰여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중요하다. 여기에 어떠한 모순도 없다. 출애굽기 33:11절과 33:20절 사이에, 모세와 하나님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관계의 변화가 33장 18절과 19절에서 일어나 있다.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이 시점에서, 모세는 주의 영광(영광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관계가 변화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모세에게 이미 나타내셨던 것처럼, 죄 많은 인간이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을 것이라고 모세에게 알려주셨다. (또한 고린도전서 1:29절을 보라).

요한복음 1장에도 영광중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유사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은 하나님의 충만(fullness, 따라서 그분의 영광)을 16절에서 언급했다. 그리고 아무도 (충만함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빌립보서 2:8절과 요한복음 1장의 말씀처럼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 분을 보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요한일서 4:12절은 요한의 이전 진술을 재언급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일관성이 있으며, 성경의 모순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어떠한 모순도 없다. 하나님이 사람과 대면하여 말할 수 있지만, 그 분의 영광 가운데서는(in his glory) 대면할 수 없다.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을 본다면, 죄 많은 사람은 죽을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9/07/13/contradictions-face-to-face 

출처 - AiG–U.S. July 13, 2009.

미디어위원회
2010-01-19

가장 오래된 히브리 문자가 해독됐다. 

: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 

(Oldest Hebrew Text Deciphered)

David F. Coppedge


      2010. 1. 7. - 마침내 2008년에 발견되었던(11/16/2008, bullet 1) 고대 히브리어 도자기에 새겨진 글씨(Hebrew pottery inscription)로부터 소식이 전해졌다. (이 도자기 조각은 예루살렘 교외의 엘라(Elah) 계곡의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에서 발굴되었는데, 고대 히브리인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용했던 원 가나안 문자가 기록된 5열의 문자열이 새겨져 있었다.) 대략 3000년 전인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것으로 평가된 키르벳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도자기 문자는 판독되었고,  PhysOrg(2010. 1. 7),  EurekAlert(2010. 1. 7)  등에서 문자 그림과 해석문과 같이 보도하고 있었다. Science Daily 지는 좀더 자세한 내용을 2010년 1월 8일 글에서 보도하고 있었다.

그 문자들을 해독한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University of Haifa)의 게르송(Gershon Galil) 교수는 그것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 ”그것은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10세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리고 적어도 성경 본문들의 일부는 오늘날의 연구들이 제시하고 있는 연대보다 수백년 이전에 쓰여졌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 증거는 다윗과 솔로몬 왕국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성경 역사에 대한 축소론자들의 해석을 완전히 기각시키고 있었다. EurekAlert 지는 말했다 : ”이것은 성경이나 그 부분들이 이러한 고대 시기 동안에는 쓰여졌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연구에 의한 성경의 작성 연대와 반대된다.” EurekAlert 기사에 의하면, 더 중요한 추론도 이끌어질 수 있다 : 

또한 게르송 교수는 그 새겨진 문자들이 유대(Judea)의 한 지방 마을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을 주목했다. 만약 그러한 지방 마을에서도 필경사(scribes)들이 있었다면, 중심지역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필경사들은 훨씬 더 능숙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제 다윗 왕이 통치하던 기간인, 기원전 10세기 경에 문학적 본문들과 사사기와 사무엘서와 같은 복잡한 역사기록들을 쓸 수 있는 필사가들이 이스라엘에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키르벳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문장의 복잡성은 그 장소에서 발견된 인상적인 요새와 함께, 그 시기에 이스라엘 왕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을 기각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자기에 새겨진 문자들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 문자들은 성경 구절들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과부, 고아, 가난한 자들에 관한 표현들은 성경의 구절들과 유사하였다. 영어로 번역한 것은 이렇다. ”you shall not do [it], but worship the [Lord].  Judge the sla[ve] and the wid[ow].  Judge the orph[an] [and] the stranger. [Pl]ead for the infant; plead for the po[or and] the widow.  Rehabilitate [the poor] at the hands of the king.  Protect the po[or and] the slave; [supp]ort the stranger.” 이것은 성경 밖에서의 도덕적 표현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왕이 다윗 왕일 수 있을까?

Live Science(다윈에 충성하는 사이트)도 이 뉴스를 보도하면서, 이 발견이 구약성경이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더 일찍 쓰여졌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은 히브리 성경은 BC 6세기 경에 기록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히브리 문자에 의한 기록들이 그 이전으로 확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라라(Clara Moskowitz)는 썼다. ”그러나 이번 달에 과학자들이 발표한 새롭게 해독된 히브리 문자들은 4세기나 더 오래된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하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증거이다. 이 발견에 관한 많은 링크들과 논평들이 있다. 더 많은 유익한 정보를 위해서는 Bible Places Blog를 클릭하여 살펴보라.

 


*관련기사 : 기원전 10세기, 다윗왕 때 작성된 성서발견…이전보다 4세기 앞서 (2010. 1. 18.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8/2010011801787.html

.성서 최초 작성시기는 B.C 10세기? (2010. 1. 16.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0/01/16/0903000000AKR20100116027900009.HTML

.성경 작성 BC 10세기부터? 最古 히브리어 글 발견 (2010. 1. 20. 크리스천투데이)
: 다윗왕 시대 것으로 확인… 구약 작성 연대 4세기 앞당겨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324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10/01/oldest_hebrew_text_deciphered/

출처 - CEH, 2010. 1. 7.

미디어위원회
2009-09-21

예수님의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서로 다른 이유는?

(Contradictions : What’s in a Father’s Name?)

Bodie Hodge 


      왜 요셉(Joseph,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예수님의 부친)은 마태복음 1:16절과 누가복음 3:23절에서 다른 이름의 두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태복음 1:16)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누가복음 3:23)

먼저 몇 가지 사전 설명이 덧붙여질 필요가 있다. 누가복음의 족보(genealogy)는 완전한 계보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족보는 단지 선택되어진 계보이다. 마태복음 1:17절에서 특별히 14대 씩으로 나뉘어져 있는 마태복음의 족보는 완전한 계보라고 볼 수 없다.

이 두 족보는 다윗의 두 아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둘 다 아브라함까지 이어진다. 마태는 다윗을 통해 내려온, 궁극적으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부터 내려온 왕의 계보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누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까지 계속 추적을 하였다. 누가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아담으로부터 창조세계 안으로 죄와 죽음이 들어왔고, 그래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 하나 주목해야할 점은 두 족보 모두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태는 ”..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좀 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as was supposed) 요셉의 아들이니...”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되는 요셉의 두 아버지에 관해서,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 사이의 차이는 꽤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마리아의 계보를 통해서 추적하였고, 반면에 마태는 요셉의 계보를 통해 추적하였던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

마태가 요셉의 혈통을 기록하고 있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여고냐(Jeconiah, 여고니야, 고니야, 여호야긴) 때문이다. 그는 마태복음 1:11절에 등장한다. 여고냐의 악한 행동 때문에, 그의 자손 중 다윗의 왕위에 앉을 사람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게 되었다.(렘 22:30) 동정녀 탄생은 명백히 이것을 방지하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의 족보가 요셉의 족보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의미심장한 여성형 용어(feminine verbiage)의 사용으로 확인되고 있다. 마태가 요셉의 아내인 마리아를 족보의 마지막에서 언급했을 때, 그는 예수님의 부모님에 대하여 여성형(feminine form)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정말로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의 족보.

누가복음 3장을 살펴보면, 족보의 목록은 마태복음의 족보(다말, 룻 등과 같은 몇몇 여인들을 포함)에서처럼 엄격하게 예수님으로부터 아담까지 남자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가 마리아의 족보라면, 그러면 그녀는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족보에서 헬리(Heli)는 요셉의 아버지로서 기재되어져 있다. 헬리는 2명의 딸을 두고 있었다. 한 딸은 마리아였고, 다른 딸은 세베대의 부인(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이었다.(마 27:56, 요 19:25). 모세의 법에서 기업을 물려 줄 아들이 없을 때(민 27:1–11, 36:1–12), 사위는 결혼 후에 가계의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마리아와 결혼하였을 때, 모세의 법에 따라 헬리의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족보에 합법적으로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그 형태는 마태복음의 족보 형태와 다르다. 마태복음의 목록은 누가 누구의 아버지가 되는지(begot, 그리스어로 gennao)로 표현되고 있다. (한글 성경은 ”낳고”로 번역됨).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그 형태는 다르다. 그곳에서 ”그 위는”(영어성경은 X is the son of Y)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son(아들)’ 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헬라어) 성경에는 없던 것이었다.(한글 성경에는 ”그 위는”으로 번역함). 단지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성경에서 삽입되어졌던 것이다. 그리스어 성경에서 ‘son’이 사용된 유일한 곳은 23절로서, 그곳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son)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라는 구절이다.


누가는 매우 정확했다. 예수님은 헬리의 아들이었던 요셉의 아들이라고 생각되어지고 있었다. 누가는 그리스어로 요셉이 헬리의 아들이었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라. 이것은 예수님의 족보 기록이 성경적 오류라는 주장을 무효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였으며(요셉의 이름은 물려받은 기업에 기인하여 기재됨),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Footnotes
[1] Evangelicals have pointed out other explanations for this alleged contradiction. But for the sake of brevity, we went with the most common satisfactory explanation.


*참조 : Who Was Joseph’s Father in Jesus’ Genealogy?

https://apologeticspress.org/who-was-josephs-father/

The Genealogies of Matthew and Luke

https://apologeticspress.org/the-genealogies-of-matthew-and-luke-932/

Jesus’ family tree

https://creation.com/family-tree-of-jesus

On the genealogies of Jesus
http://www.christian-thinktank.com/fabprof4.html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9/03/02/contradictions-whats-in-a-fathers-name 

출처 - AiG–U.S. 2009. 3. 2.

미디어위원회
2009-09-18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던 기간은 밤낮 사흘이 될 수 없는가?

(Contradictions : Three Days and Nights)

Paul F. Taylor 


      만약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밤낮 사흘(three days and nights)을 계셨다면,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성 금요일과 부활하신 일요일 사이에서 적합시킬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몇 가지 해결책들이 있다. 몇몇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안식일이 발생했었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목요일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해결책은 정말로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하루를 세는 방법이 우리의 방법과 같지 않았던 것이다.

에스더 4:16절에서,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자기를 위하여 유대인들이 금식하여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고 있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Neither eat nor drink for three days, night or day)”(에스더 4:16). 허락 없이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단지 두 절 뒤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제삼일(the third day)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에스더 5:1). 만일 밤낮 삼 일을 오늘날 우리가 계산하는 방법으로 계산한다면, 에스더는 4번째 날이 될 때까지 왕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던 상황과 완전히 유사하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0)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마 28:1)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눅 24:5-7)  

만약 밤낮 사흘을 우리가 계산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예수님은 4번째 날에 부활하셨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들을 비교하여 볼 때,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의 사람들은 ‘3번째 날(the third day)‘은 ’3일 후(after three days)’와 동일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들이 계산했던 방법은 이것이다. 즉 부분적인 하루도 1일(one day)로서 계산했던 것이다. Christian Apologetics and Research Ministry(CARM)의 웹사이트에 있는 아래의 표는 그 계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고 있다.[1]

1 일 (Day One)2 일 (Day Two)3 일 (Day Three)
목요일의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하여금요일의    해가 지면서  끝남금요일의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하여토요일의    해가 지면서  끝남토요일의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하여일요일의    해가 지면서  끝남
십자가에 달리심안식일부활


이 표는 예수님이 성 금요일에 돌아가셨음을 가리킨다. 그 날은 1 일(day one)이다. 예수님은 낮에 돌아가셨다할지라도, 1 일은 전날 밤과 낮을 포함한다. 그래서 금요일의 한 부분에서 시작하였지만, 그것은 첫 번째 밤과 낮으로 계산되어지는 것이다. 토요일은 2 일(day two)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일요일 아침에 부활하셨다. 그 날은  3 일(day three)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계산 방법에 의해서 사흘 밤낮이 되는 것이다.(장례 시의 3일장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예수님을 3번째 날에 부활하셨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계산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놀라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계산 방법을 적용한다면, 사흘 밤낮이라는 성경적 문제와 관련하여 추정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Footnotes
[1] Christian Apologetics and Research Ministry, 'How Long Was Jesus Dead in the Tomb?” http://www.carm.org/diff/Matt12_40.htm.


*참조 : The Interval Between Christ’s Death & Resurrection

https://apologeticspress.org/the-interval-between-christs-death-and-resurrection-5977/

Did Jesus Rise “On” or “After” the Third Day?

https://apologeticspress.org/did-jesus-rise-on-or-after-the-third-day-75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9/06/29/contradictions-three-days-and-nights

출처 - AiG, 2009.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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