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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성경과 생물학

성경과 생물학 

(The Bible and/or Biology)


      생물학(biology)이라는 용어는 bios(생명)와 logos(말씀)의 두 그리이스 단어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명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키며, 성경(Bible)은 많은 증거와 그 자체의 주장에 의해 확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성경은 생물학을 비롯하여 사실에 근거한 과학(factual science)을 연구할 것을 격려-실제로는 명령-하고 있다. 사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신성한 명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땅을 정복하고 생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의 본성과 기능을 알아야만 했으므로, 소위 이 '지배명령(dominion mandate)'은 실제로는 '과학을 하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명백히 생물학의 확립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의 동물과 식물 자원을 보호하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과 생물학 사이에는 어떠한 충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 입장은 특별창조가 관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순전히 자연주의적인 입장으로 모든 형태의 생명의 기원과 발달 역사를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으로 본다면 성경은 진화론적 입장의 생물학에는 반대한다.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 10번씩이나 오직 '종류대로' 여러 형태의 생명이 생겨났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창세기 1:11,12,21,24,25). 물론 같은 종류일지라도 정확히 똑같은 두 개의 개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이 '변이(variation)'의 가능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창조된 종 내에서의 그러한 '수평적(horizontal)' 재조합은 과학연구의 적절한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성경과 충돌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많은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성경 말씀을 큰 어려움 없이 인정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창조과학연구소(ICR)에는 적어도 30명의 생명과학 전문가들이 있으며, 창조연구회(CRS)와 다른 창조론 모임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이나 다른 생명과학자들은 철저하게 진화론에 헌신되어 있다. 이것은 특히 생물학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실이다. 최근의 미국 학술원 회원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과학 전 분야에 걸쳐 많은 주도적인 과학자들이 무신론을 신봉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생물학자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은 하나님과 불멸을 믿는 비율이 각각 7.5%인데 반해 생물학자들은 그 비율이 가장 낮아 겨우 5.5%만이 하나님을, 7.1%만이 불멸을 믿고 있었다.1 

또한 사실상 하나님을 믿는 적은 수의 사람들 중 대부분도 유신론적 진화론자이지 창조론자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진화론에 헌신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과학적 증거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적 기독교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것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다윈조차 성경의 신적 형벌교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진화론자와 회의론자가 되었다.2 

실제적으로 볼 때에는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기껏해야 매우 빈약할 뿐이다. 역사상 진짜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간단한 생명체에서까지 발견되는 엄청난 복잡성은 진화론으로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모든 피조물의 생식과정을 관할하는 유전학적 코드도 너무나 복잡하여 지적인 설계가 있었음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그들은 이것을 자연선택으로 돌리고 있다. 다음의 진술에 주목해 보자. 

유전학적 코드는 단순히 무작위적인 결과가 아니라 초기의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영국의 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그 코드는 수 십억의 수 십억 배에 달하는 가능한 코드 중 최선의 것이라는 것이다. 대략 1020개의 코드가 가능한데 자연에서 실제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35억년 이전에 표준으로 채택된 것이다.3 

지적인 존재가 관여했다는 명백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일어났다고 가정한다. 

......그러한 효율적인 코드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은 극히 희박하다. 자연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이 틀림없다.4 

따라서 자연선택은 종의 기원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는 놀라운 코드의 기원에서조차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러한 놀라운 특질을 성취하는데 있어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두 명의 매우 뛰어난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동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주된 의문들은 신다윈주의를 통해서는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러한 질문들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어떻게 새로운 구조가 진화를 통해 일어나는가?' '수많은 환경의 변화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석기록으로 보건대 진화에 있어 왜 균형상태(stasis)가 그토록 우세한가?' '어떻게 한 그룹의 기관이나 한 분자세트가 서로로부터 진화되었는가?'5 

이러한 질문들은 창조론자들이 수년간 진화론자들에게 제기해 온 질문과 동일한 것인데, 명백하면서도 진실된 해답은 성경적 창조에 있다.

물론 이러한 해답을 진화론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그렇다라고만 설명하거나 또는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라는 불가사의한 시나리오를 고안해 낸다. 

이런 가상적인 개념은 신다윈주의자들에 의해 고안되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공학자나 물리학자, 수학자로 출발한 과학자들로서 생물학이 '쉽다'는 것을 알았다.6 

위에서 언급한 공저자들(coauthors)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라는 신다윈주의자들의 개념에 완강히 반대하며, 또한 굴드(Gould)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주장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해답이 가이아(Gaia)라는, 지구자체-소위 어머니로서의 지구(Mother Earth)-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고대 이교도들의 생각에 있다고 믿는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며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역시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신다윈주의자이다. 윌슨(사회생물학의 주요 주창자로 잘 알려져 있다)의 최근 책을 리뷰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했다. 

.....책의 몇 군데 구절에서, 복잡성의 문제가 모든 과학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임을 암시하고 있다.7 

그의 동료 다윈주의자인 도킨스는 그러한 문제는 모두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그의 '눈먼 시계공' 이론에 의해 여하튼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선택을 통해 인간의 두뇌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던 윌슨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른 것으로 보인다. 

두뇌의 진화는 300만년 이상에 걸쳐 우리의 유인원 조상과 호모 사피엔스(약 100만년 전에 나타난)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이상한 특징은 인간의 두뇌의 용적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크기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더욱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은, 조금이라도 진화론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모든 문명의 최초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에 반해, 일단 두뇌가 형성되고 난 이후에는 단지 수천년 안에 엄청난 문화의 분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두뇌와 문명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위의 어떠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초기의 신적 창조라는 단순한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대신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을 설명하는데 있어 신다윈주의, 단속평형설, 가이아 이론의 상대적 우위성을 강조하느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바드 대학의 스티븐 제이 굴드(Steven Jay Gould, 단속평형설의 주창자)는 비록 듀안 기쉬(Duane Gish)와 같은 창조과학자와의 토론은 거절했지만 이러한 주제에 대해 도킨스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토론에는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인간심리학이 다윈적인 선택의 결과인지 아니면 단속평형의 결과인지에 대한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진화론적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와의 논쟁을 널리 공표하기도 했다. 과학 저술가인 브룩스의 다음 논평은 매혹적이며 적절하다. 

굴드는, 이제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단순하면서도 쓸모없는 오래된 논쟁의 필연적인 부산물과도 같다. 그것은 지적으로 우월해지려는 것 외에 어떠한 명백한 기능도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많은 상상과 논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양측 모두의 견해에 대한 증거가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9 

이 특별한 논쟁은 진화심리학에 관한 것이지만 동일한 비평이 진화생물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즉 어느 쪽도 관찰에 의한 증거를 댈 수 없다는 것이다. 신다윈주의에 대해 진화학자 도버(G. A. Dover)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화론 연구는 목적론적인 컴퓨터 시뮬레이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 그리고 잘못 기획된 확률놀음에서 제거되어 실험실과 현장으로 되돌려보내져야 한다...... 아직 배워야 할 여지가 많이 있으므로 신다윈주의자의 통합(neo-Darwinist synthesis)은 눈먼 시계공이론에 의해 끝까지 방어되어서는 안된다.10 

현장 연구를 통해 단속평형론자들은 화석기록에 보편적인 진화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간격에도 불구하고, 또 현재 현장이나 실험실에서 결코 목도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석의 기록은 진화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일반적인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화석은 점진주의(gradualism)나 단속주의(punctuationism) 모두에 대해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화석의 발견은 단순한 진화계통수를 만들려는 우리의 시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요 시대의 화석은 대개 중간화석이 아닌 많은 다른 그룹의 특징들로 뒤범벅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주 화석그룹은 단순히 선형적(linear)이거나 진행적(progressive)인 방식으로 조합되지 않는다. 새로운 특징들은 종종 다른 시대의 다른 그룹으로부터 '취해서 붙여 놓은(cut and paste)' 것에 지나지 않는다.11 

바위에 남겨진 수십억 개의 화석 중 전이 형태의 화석은 없을 뿐더러 명백한 진화론적인 순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고학에 '닭이냐 달걀이냐(chicken and egg)'라는 문제를 제 기한다. 만일 주요 특징들에 대한 독립적인 진화가 일반적이라면, 계 통발생학은 어떻게 인식될 것인가?12 

생물학적 기원의 모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출발선은 바로 성경의 기록이 모든 실제적인 과학적 현실과 일치하며 진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참고문헌

1. Edward J. Larson and Larry Witham, 'Leading Scientists Still Reject God,' Nature (vol. 394, July 23, 1998), p. 313.

2. Charles Darwin, Autobiography, reprinted in The Voyage of Charles Darwin, edited by Christopher Rawlings (BBS, 1978). See 'A Scientist's Thought on Religio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3. Jonathan Knight, 'Top Translator,'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8, 1998), p. 15.

4. Ibid.

5. Lynn Margulis and Dorion Sagan, Slanted Truths: Essays on Gaia, Symbiosis, and Evolution(New York: Springer-Verlag, 1997), p. 100.

6. Op. cit., p. 270.

7. Charles C. Gillispie, 'E. O. Wilson's Consilience: A Noble Unifying Vision, Grandly Expressed,' Review of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by Edward O. Wilson (New York: Alfred Knoph, 1998), 322pp. In American Scientist (vol. 86, May/June 1998), p. 282.

8. Op. cit., p. 281.

9. Martin Brookes, 'May the Best Man Win,' New Scientist (vol. 158, April 11, 1998), p. 51.

10. G. A. Dover (1998), cited in Margulis and Sagan, op. cit., p. 271.

11. Neil Shubin, 'Evolutionary Cut and Paste,' Nature (vol. 394, July 2, 1998), p. 12.

12. Op. cit., p. 1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pubs/imp/imp-312.htm

출처 - ICR, Impact No. 312, June 1999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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