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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연대문제

창세기 6일 창조에 대하여

한국창조과학회
2004-07-26

창세기 6일 창조에 대하여


      보통 우리들이 성경을 들고 창세기 제1장을 읽을 때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주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들을 6일 동안 (하루가 24시간)에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교회 내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날들(days)” 이라는 뜻이 수천년 혹은 수백만년 더 나아가서는 수십억년에 걸친 기간일 수도 있다는 견해들이 나돌고 있다. 이 날수들이 실제로 얼마만한 기간이었는가가 정말로 문제가 되는가? 이 날수들이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ordinary) 날들인지, 혹은 더 긴 기간이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날(day)’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날(day)’ 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yom' 이다. 그 의미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24시간인 하루, 혹은 24시간 중 낮부분(밤과 구별되는 낮), 혹은 정해지지 않은(indefinite) 어떤 기간의 의미로(예를 들면 사사시대, 혹은 주님의 날) 사용될 수 있다. 모든 히브리어 성경에서의 단어 ‘yom’은 ‘기간 (period)’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시작과 끝을 갖고 있는 확실한 오랜 기간을 지칭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주목해야할 것은 ‘yom’ 이라는 단어가 정해지지 않은 어떤 기간의 의미로 사용될 때 ‘day’ 라는 단어의 의미가 문자적 의미로 의도되지 않는다는 것을 문맥 내용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창세기에 나타난 'day’ 라는 단어가 상징적으로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중요한 점은 맨 처음 그 단어가 사용될 때는 상징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신약에서 우리들은 예수께서 '문(door)” 이라고 하신 말을 듣는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우선 단어 'door(문)'가 들어가는 입구(entrance)를 의미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즉 그 말의 문자적 의미를 우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상징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door)’ 이라는 단어는 우선 우리가 그것의 문자적 뜻을 이해한 후에 이런 식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즉 단어의 문자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러므로 'day”라는 말은 처음으로 창세기에서 사용되는데, 이것이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 참으로 이것이 바로 창세기 기자가 처음에 나오는 'day”를 자세하게 심사숙고하여 정의하려 노력하는 이유이다. 창세기 1장4절을 보면 하나님은 빛을 어두움으로부터 나누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l장 15절에서는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는 것을 읽게 된다. 바꿔말하면 이와 같은 용어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day”이란 용어가 어두움이 ‘밤’과 구분되어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빛”으로 정의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5절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것이 첫째 날이라”로 끝맺는다. 이것은 바로 나머지 5일들에 사용된 귀절들과 동일한 것으로 명확하게 확립될 낮과 밤의 주기 즉 빛과 어두움의 주기를 보여준다. 6일간의 각 날에서의 빛의 주기는 마침내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하셨을 때이고, 어두움의 주기는 창조사역을 하지 않으셨을 때를 의미한다. 

 

하루와 태양

그런데 만일 태양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낮과 밤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창세기 1장에 명백하게 나타나듯이 태양은 4일에 가서야 창조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는데, 이 문구 '저녁과 아침”을 보면 빛과 어두움의 주기가 교대로 나타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 빛은 존재하고 있었고, 자전하는 지구에 어떤 고정된 빛의 원천으로부터 직접 얻어져서 낮과 밤의 주기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히 이 빛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창세기 1장3절에서 ‘빛’이라는 단어는 빛이 창조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14절 19절에서 우리는 4일째에 태양이 창조되어서, 그 이후로 계속 빛의 원천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태양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낮’을 주관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낮은 전과 같이 유지되었으며, 단지 빛의 원천이 새로워졌을 뿐이다. 태양이 창조되기 전의 처음 3일간은 태양이 창조된 이후의 3일간과 같은 형태의 날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태양을 제 4일째 창조한 가능한 이유 중에 하나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인류가 태양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여 태양을 숭배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 하겠다. 진화론적인 우주기원에 대한 이론으로는 태양이 지구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태양보다도 지구와 빛을 먼저 창조했다고 하였다. 태양은 제 4일째에 창조되어 태양이 빛을 발하는 발광체가 되었다.


세기의 창조일을 보통의 24시간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지구가 수십억년 되었다는 연대를 과학자가 증명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절대적 연대측정 방법은 없다. (그 예로서 방사선동위원소 방법에서 초기 조건이 불명확하며, 붕괴속도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지만 변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엿새인가?

하나님은 무한하신 존재이다. 이것은 하나님은 무한한 힘과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지혜 등을 가지신 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하고자 원하시는 일은 시간을 끌지 않으시고 즉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순식간에 즉시 온 우주와 땅과 그 속의 모든 것을 창조해온 창조사역이 가능한 분이시다. 아마도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의문은 왜 하나님은 어떻든지 간에 엿새동안의 기간을 택하셨을까? 하는 점이다. 결국 엿새란 기간은 무한하신 존재인 하나님께는 어떤 것이든 창조하시는데 너무 긴 시간이란 점이다.


그 해답은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출애굽기 20장은 10계명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계명은,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읽는 바대로 바로 그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 표시된(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에 기록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애굽기 31:18).”

20장 9절에 기록된 네번째 계명은 우리에게 엿새동안은 힘써 일하고, 하루는 쉬도록 말씀하고 있다. 그 이유는 11절에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창세기 1장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된다.

이 점에 일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우리는 반드시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창세기 1장에서 ‘날(day)’ 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은 무엇이든지 여기서도 그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만약 ‘날’ 이란 말을 창세기의 긴 시간의 한 기간의 뜻으로 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가능한 유익한 방법은 ‘하루’란 정해지지 않는 시간, 또는 측정하기 힘든 기간 (정의되는 시간은 아니)이란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0장 9절-11절의 인식은, 일해야 하는 여섯 정해지지 않는 기간과 휴식하는 일곱번째의 정해지지 않는 것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넌센스이다. 하루(날)들을 통상의 날들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가 통상의 6일 동안 일하시고, 통상의 하루동안 쉬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 통상의 하루(24시간)는 우리가 지금도 살고 있는 7일 한 주일의 생활양식 그 양식을 인간에게 정해 주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여기 출애굽기 20장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에 엿새의 기간을 택하셨는지 ?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날-시대 이론의 모순 (문제점)

창세기의 '날”들을 하나의 긴 기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일관성이 없음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창세기 1:26-28절에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아담)을 제 6일에 만드셨다. 아담은 남은 부분과 제 7일을 살았는데, 창세기 5:5절에 보면 930세에 죽었다(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다고 한 창세기 2:2절을 '아직도 안식하고 계신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이 오늘 우리는 아직도 제 7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만약하루가 백만년 이었다고 하면 참으로 문제가 생긴다. 실인즉 하루가 천년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담이 죽었을 때 나이가 이치에 맞지 않게 된다. 

 

하루가 천 년같이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후서 3:8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라는 말씀을 인용한다. 이 귀절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루를 천년으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시편 90:4에서 이와 매우 유사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벧후 3장과 시편 90편의 전체 문맥은 하나님이 자연적인 현상이나 시간에 의해서도 전혀 제약받지 않는 분임을 의미한다. 이와 반면에 시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 시간에 매여 있지 않는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두 성경귀절 모두 창세기에 나오는 날들과 같은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을 지적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을 베드로후서 3장에서 설명하는 문맥 내용은 시간이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창세기의 창조의 날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베드로후서 3:8에서 하루라는 단어가 천년과 대조되고 있다. '하루” 가 '천년” 이라는 귀절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대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의 메시지 핵심은 사람이나 자연이 완성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라는 자연의 무작위 현상에 의해서 사람으로 진화하려면 수백 만년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을 주목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수백만년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성경 말씀을 덧붙여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데 수백만년이 걸렸다고 말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오랜 기간이 요구되지만, 하나님은 시간에 제약받지 않는다는 것이 벧후 3:8의 요점이다.


베드로후서의 '하루가 천년 같다' 라는 귀절 앞부분에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며 기롱하여 말하기를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3:3-4)' 라는 설명이 있음을 주목하는 것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마치 수백만년동안 만물이 계속되어왔다고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말세에는 사람들이 만물이 여전히 계속되어왔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간섭하심을 믿지 않는다.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라는 말은 바로 현대의 '동일과정설” 개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지질학에서 '현재는 과거에 대한 열쇠”라는 관점으로(즉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처럼 수백만년동안 이 세상이 계속 진행되어가고 있다) 현대 지질학에서 널리 받아 들여지고 있다. 참으로 이 개념이 현대 진화론적 지질학의 기초가 되었다. 대부분 현대 지질학자들은 하나님이 수천년 전에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믿지 않고,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6일동안 만물을 창조했고, 또한 출애굽기 20장에서 설명한 특정 목적 때문에 6일이라는 기간에 걸쳐 창조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일자와 연한

창세기 1장 14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만약 여기서 일자라는 말이 글자 그대로 하루가 아니고 긴 연한을 의미한다면 연한이란 말을 바로 다음에 또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일자와 언약

예레미야 33:25-26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 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진대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게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주님이 주야가 있도록 하신 그 언약은 깰 수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다윗과 그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실 것에 대한 언약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야가 있도록 하신 그 약정은 창세기 1장에서 하신 것인데, 만약 주야가 보통 우리가 말하는 24시간 하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이 언약도 헛것일 것이다. 

 

날짜가 문제가 되는가?

결론적으로 그러면 우리가 날들을 보통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날로 받아들이든지 또는 그렇지 않든지 정말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이것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참 원칙이 되기 때문이다. 예로써 우리가 이것을 하루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러면 그 날들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가서는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날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들도 창세기의 다른 기사들을 그대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분명해진다. 즉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예로써,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흙을 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창세기를 문자가 표현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문자적 해석은 용어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거나, 그것을 해석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 어떤 사건이 분명히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있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때에는 앞뒤 문맥으로 보아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들어갈 것이며, 또는 그 본문에서 우리에게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줄 것이다.


창세기에서 가르치는 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날들을 보통의 하루로 받아들일 때,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아무런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참조 : Did Jesus Say He Created in Six Literal Days?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nab/did-jesus-say-he-created-in-six-days

The meaning of yôm in Genesis 1:1–2: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52-55.pdf

Days 1–4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3/j21_3_69-76.pdf

 

*한국창조과학회 자료실/연대문제/연대문제와 성경에 있는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세요

http://www.kacr.or.kr/library/listview.asp?category=L05



제 74호 [1991. 4~6]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dating/d4/d4/d4c1.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42

참고 : 4375|4380|4440|2982|2797|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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