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커넥션 : 오랜 연대에 대한 서구의 믿음은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The French Connection. Western belief in ‘deep time’
first appeared in 17th and 18th century France)
Andrew Sibly
우리들 대부분은 진화론과 함께 동반되는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오랜 연대 개념에 익숙하다. 그 개념은 여러 세대 동안 서구 문화의 사고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오랜 연대(deep time)’에 대한 믿음은 실제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영국에 퍼지기 전에,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 저자가 다룬 더 많은 정보는 creation.com/french1 및 creation.com/french2를 보라.)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 1638~1686)와 같은 초기 유럽의 과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헌신을 유지했으며, 대홍수 기사와 지질학적 증거들을 조화시켰다.[1] 프랑스에서 오랜 연대라는 사고가 발전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들은 관련되어 있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방법론적 회의론과 의심의 방법(method of skepticism and doubt)에 따라, 창조와 대홍수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과학의 입장에서 부인되었으며, 타락한 인간의 이성은 과학 지식의 결정권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예수회 수사들이 남인도와 중국에서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을 프랑스로 가져왔을 때, 이것은 지구의 나이에 관한 논란을 조장하도록 허용했다.
예수회 수사의 역할
예수회 수사(Jesuits, 제수이트)는 1540년에 개신교의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에 반대하기 위해 설립된 로마 가톨릭 교회 내의 종교적 질서 유지를 위한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회원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권위를 위협하는 종교개혁 원칙인 성경의 충분성(sufficiency)과 명료성(clarity)을 반대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신조적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소수의 일부 회원들은 성경의 권위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크게 관여했던 것이다.
더욱이 인도와 중국의 동방 종교 철학의 다양한 측면을 그들의 생각에 기꺼이 수용하려는 의지는, 가톨릭 신앙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겼던 많은 동료 가톨릭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은 17세기와 18세기에 프랑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일어났던, 소위 중국 의례(Chinese Rites, 조상숭배 의식)과 말라바르 의례(Malabar Rite) 논쟁에 반영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과 남인도에서 가톨릭이 더 수용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많은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 전통 종교의 특별한 관습을 가톨릭 의식과 혼합했다.
이 적응주의(accommodationism)는 가톨릭의 다른 수도회에 의해서 비난을 받았고, 어느 순간에는 로마 수도회에 의해서도 비난을 받았다. 또한 ‘중국 의례’ 관행은 수학자이자 가톨릭 신학자였던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에 의해서도 강력하게 비난을 받았다.[2]
예수회는 곳곳에 명성 있는 학교들을 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일부 학생들은 나중에 프랑스에서 주요한 의견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돌아와서, 종종 그들의 학교에서 가르쳤다. 결과적으로 힌두교에서 나온 ‘오랜 연대’의 개념은 서구 과학, 특히 지질학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혁명에 대한 동요가 커지며,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것은 성경을 부정하기 위한과 시도와 술책의 일부 원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예수회 수사들과 그들의 추종자 일부의 행동은 사기와 선동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예수회는 1764년 프랑스왕 루이 15세(Louis XV)에 의해 프랑스에서 추방되었고, 1773년 교황 클레멘트 14세(Clement XIV)에 의해서 그 범위가 더 확대되었다가, 1814년에 복권되었다.
프랑스 사상의 제안자와 전파자들
18세기에 성경의 권위와 대홍수에 대한 믿음에 반대했던 가장 주목할 만한 프랑스 사람으로는, 베르나르 드 퐁트넬(Bernard de Fontenelle, 1657~1757), 브누아 드 마예(Benoît de Maillet, 1656~1738), 볼테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등이 있다.
베르나르 퐁트넬(Bernard de Fontenelle, 1657~1757)
퐁트넬은 부르봉 예수회 대학(Jesuit Collège de Bourbon)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40여년(1697~1740) 동안 파리 왕립 과학아카데미에서 명성 있는 간사(Secretary)의 지위를 역임했다. 이로 인해 그는 성경적 대홍수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프랑스 지질학의 발전과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1686년) ‘세상의 다원성에 관한 대화(Conversations on the Plurality of Worlds)’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3] 실제로 그것은 공상과학 대화인데, 거기서 우주여행 및 달과 다른 행성에서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퐁트넬은 수십만 년에 걸쳐 자연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상상했으며, 그의 책은 다음 세기에 걸쳐 프랑스 사람들의 상상 속에 다른 세계관을 준비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4] 그 대화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보다 10만 배나 더 오래 지속됐던 것이 틀림없다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삶의 나이로는 불멸의 징후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사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자연은 아무 것도 갑자기 하지 않으며, 자연의 방법은 우리가 거의 인식할 수 없는 매우 완만한 눈금으로, 모든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5]
왕립 아카데미에서 그는 아카데미의 공식 논문, 메모 및 서신에 대한 자체 요약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았다.[6] 그러나 그의 요약은 어떤 연구를 완전히 반영하는 것에서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대신에 종종 그는 화석기록과 지구 역사의 본질에 관련하여, 자기 자신의 관점을 반영했다.[7] 이것을 통하여 그는 프랑스 과학계로 하여금 세계의 역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는 더 오래되었다는 사상을 주입시켰다.
예를 들어, 저명한 과학자 르네 레오뮈르(René Réaumur)는 아카데미의 ‘회고록(Mémoires, 1720)’에서 프랑스 뚜렌느(Touraine) 주의 팔룬(Falun) 층이 수많은 조개껍질과 껍질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퐁트넬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홍수의 증거를 부정하고, 그 대신 오랜 기간에 걸친 지질학적 변화를 주장했다. 그는 7m 두께의 조개껍질 층이 쌓이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바다가 점차적으로 물러가는 과정을 수반하는 연속적인 홍수가 필요하며, 지구의 생명체는 인류의 출현보다 훨씬 앞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홍수들 중 어느 것도 모세의 글(창세기)을 지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8]
브누아 드 마예(Benoît de Maillet, 1656~1738)
18세기 중반에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드 마예(Benoît de Maillet)가 편집한 책 ‘텔리아메드(Telliamed, 그의 이름 철자를 거꾸로 배열한 단어)였다.[9] 그것은 그의 사후에(1748년) 예수회 사제 마스크리에(Abbé Jean Baptiste le Mascrier)가 처음 출판했는데, 초고는 이미 파리에서 수십 년 동안 회자되고 있었다. 드 마예는 프랑스의 외교관이 되어 중동으로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와 신념을 접할 수 있었다.
텔리아메드는 프랑스 선교사의 관점과는 반대로, 힌두교 현자의 관점에서 수백만 년 동안의 변화를 주장했다. 초기의 은밀한 초안은 지구가 적어도 20억 년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힌두교 창조의 신 브라마(Brahma)의 대략 반나절과 연관지었다. 브라마의 낮 12시간은 43억2천만 년 동안 지속되었으며(이 기간 동안 브라마는 깨어있었다), 이와 비슷한 길이의 밤이 뒤이어 왔다고 말한다.
볼테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프랑수와 마리 아루에, 1694~1778)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역시 지질학적 변화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746년에 볼로냐 아카데미(Academy of Bologna)에 익명의 서한으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자연의 위대한 건축에 비추어 볼 때, 수십억 년의 순환은 우리에게 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바퀴 도는 것보다도 무한히 작은 것이다.[10]
볼테르는 또한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되는 화석 물고기들은 사실상 기독교 순례자들이 흘렸던 음식물이라고 주장했다! 볼테르는 그러한 화석 증거들은 성경적 대홍수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은 비록 그가 모세의 글에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이었지만, 볼테르가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이엘은 매우 덤덤하게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지질학과 관련된 주제에서 그(볼테르)가 쓴 수많은 에세이들은 자기의 편견을 강화하기 위해 계산된 것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과학의 실제 상황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의 나쁜 신념에서 온 것이다.[11]
심지어 볼테르는 힌두교의 경전들이 성경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믿을만 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시 그는 진리를 잘못 표현했다. 볼테르는 아주르 베다(Ezour Veda, or Ezourvedam, 브라만교 경전)가 서방 국가들에게 귀중한 선물이라고 칭찬하면서, 그들은 이 동양 종교에게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고대의 원전이 아니라, 훗날 예수회 수사들이 위조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베다의 현자로 짐작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한 사람은 유일신론자이고, 다른 사람은 힌두의 다신론(어느 정도 변장한 유일신론)을 믿는 다신론자이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디드로는 정치 및 종교 당국에 저항하던 선동자였으며, 한때 선동죄로 수감됐었다. 그의 책 ‘자연의 해석에 대한 생각(Thoughts 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1754)’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의 추측으로, 태고의 시간부터 동물들은 자신의 구성 요소들을 갖고 있고, 그것들은 분산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몸체를 이루며, 이러한 구성 요소들이 함께 우연히 모이게 되었다고 추론된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발전 사이에는 수백만 년이 지나갔다 ...?[12]
예수회 훈련을 받은 디드로는 볼테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점차로 자기 신념을 잃고, 이신론자(deist)가 되었다가, 다음에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 백과사전(Encyclopédie)의 편집을 맡았는데, 포괄적인 저작이 1751년에서 1772년까지 출판되었고, 그 작업은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프랑스 사회의 사고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했다.
커넥션 만들기
그러니까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에서 오랜 연대와 점진적인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초기에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지질학에서 대홍수에 대한 성경적 서술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때때로 이것은 혐오스럽고 기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또한 힌두교에 대한 지식이 프랑스 사회의 사고 속에 들어오면서, 수백만 년에 걸친 변화가 일어났다는 신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과학(science)에 파고들었지만, 성경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더욱이 프랑스에서는 기존의 정치적, 종교적 질서에 반대하는, 혁명에 대한 갈망이 자라고 있었다.
수백 수천만 년의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믿음은 제임스 허튼(James Hutton),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퍼져나갔다.
많은 지구과학자들이 오랜 연대에 대한 믿음의 뿌리에 대해 거의 무지하며, 현대지질학에서 이 ‘프랜치 커넥션(French connection)’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확실히, 이러한 믿음은 순수하게 퇴적지층들의 연구로 인해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References and notes
1. Walker, T., Geological pioneer Nicolaus Steno was a biblical creationist, J. Creation 22(1):93–98, 2008; creation.com/steno.
2. Pascal, B., The Provincial Letters, Letter V, 20 Mar 1656, Trans T. M’Crie, University of Adelaide, Australia, 2005.
3. Fontenelle, Bernard Le Bovier de, Entretiens sur la Pluralite des Mondes; it went through many French editions.
4. Stott, R., Darwin’s Ghosts: In search of the first evolutionists, Bloomsbury Publ., London, p.117, 2012.
5. Fontenelle, B., The Plurality of other Worlds, Gunning, E. (trans.), Paternoster-Row, London, pp. 129–141, 1803.
6. Rappaport, R., Fontenelle interprets the earth’s history; in: Revue d’histoire des sciences, tome
44, no. 3–4, pp. 281–300, 1991. This discusses the Histoire et Memoires de l’Academie royale des sciences, Paris, annual volumes from 1699. Fontenelle wrote the Histoire.
7. Fontenelle, B., Histoire … , ref. 6, preface and p. 9, 1699 (Paris, 1702). Rappaport (ref. 6, pp. 282–283) writes: “He wrote in the Preface of the first publication, ‘we even took care on occasions of sowing our own clarifications to facilitate the reading of the Memoires’ ” (my translation).
8. Fontenelle, B., Histoire..., pp. 5–9, 1720 (1722); in Rappaport, ref. 6, p. 297.
9. It was fully entitled: Telliamed, or Conversations Between an Indian Philosopher and a French Missionary on the Diminution of the Sea, and the Origin of Men and Animals (English translation); Le M.ascrier, J.B & Antoine Guers, J. (Eds.), Amsterdam, 1748.
10. Voltaire (Arouet, F.-M.), Dissertation on the changes that have happened in our globe, and on the Petrifications which are alleged as Proofs thereof, Letter to Academy of Bologna; in Smollett, T. et al., (trans.), The Works of M. de. Voltaire, vol. 18, London, pp. 243–256, 1762.
11. Lyell, C., chapter 4 of Principles of Geology (9th Edn), book 1, University of Adelaide, Adelaide, Australia, pp. 54–55, 1854 (also in 1834 edition).
12. Diderot, D., Thoughts 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Other Philosophical Works, (Ed. Adams, D.) Clinamen Press Ltd, Manchester, p. 75, 2000.
*ANDREW SIBLEY B.Sc. (Hons), M.Sc., M.Phil. Andrew is a UK meteorologist who is also qualified in environmental science and decision making. His master’s degree in philosophy examined the theology and science of Intelligent Design. He is a speaker and writer on creation and apologetics, and has authored two books on creation issues. For more: creation.com/andrew-sib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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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2(2):53–55, April 2020
주소 : https://creation.com/where-did-deep-time-belief-arise
번역 : 이종헌
프렌치 커넥션 : 오랜 연대에 대한 서구의 믿음은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The French Connection. Western belief in ‘deep time’
first appeared in 17th and 18th century France)
Andrew Sibly
우리들 대부분은 진화론과 함께 동반되는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오랜 연대 개념에 익숙하다. 그 개념은 여러 세대 동안 서구 문화의 사고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오랜 연대(deep time)’에 대한 믿음은 실제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영국에 퍼지기 전에,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 저자가 다룬 더 많은 정보는 creation.com/french1 및 creation.com/french2를 보라.)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 1638~1686)와 같은 초기 유럽의 과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헌신을 유지했으며, 대홍수 기사와 지질학적 증거들을 조화시켰다.[1] 프랑스에서 오랜 연대라는 사고가 발전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들은 관련되어 있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방법론적 회의론과 의심의 방법(method of skepticism and doubt)에 따라, 창조와 대홍수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과학의 입장에서 부인되었으며, 타락한 인간의 이성은 과학 지식의 결정권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예수회 수사들이 남인도와 중국에서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을 프랑스로 가져왔을 때, 이것은 지구의 나이에 관한 논란을 조장하도록 허용했다.
예수회 수사의 역할
예수회 수사(Jesuits, 제수이트)는 1540년에 개신교의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에 반대하기 위해 설립된 로마 가톨릭 교회 내의 종교적 질서 유지를 위한 예수회(Society of Jesus)의 회원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권위를 위협하는 종교개혁 원칙인 성경의 충분성(sufficiency)과 명료성(clarity)을 반대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에 대한 신조적 헌신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소수의 일부 회원들은 성경의 권위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크게 관여했던 것이다.
더욱이 인도와 중국의 동방 종교 철학의 다양한 측면을 그들의 생각에 기꺼이 수용하려는 의지는, 가톨릭 신앙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여겼던 많은 동료 가톨릭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것은 17세기와 18세기에 프랑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일어났던, 소위 중국 의례(Chinese Rites, 조상숭배 의식)과 말라바르 의례(Malabar Rite) 논쟁에 반영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과 남인도에서 가톨릭이 더 수용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많은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 전통 종교의 특별한 관습을 가톨릭 의식과 혼합했다.
이 적응주의(accommodationism)는 가톨릭의 다른 수도회에 의해서 비난을 받았고, 어느 순간에는 로마 수도회에 의해서도 비난을 받았다. 또한 ‘중국 의례’ 관행은 수학자이자 가톨릭 신학자였던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에 의해서도 강력하게 비난을 받았다.[2]
예수회는 곳곳에 명성 있는 학교들을 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일부 학생들은 나중에 프랑스에서 주요한 의견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힌두교와 불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돌아와서, 종종 그들의 학교에서 가르쳤다. 결과적으로 힌두교에서 나온 ‘오랜 연대’의 개념은 서구 과학, 특히 지질학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혁명에 대한 동요가 커지며,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훼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것은 성경을 부정하기 위한과 시도와 술책의 일부 원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예수회 수사들과 그들의 추종자 일부의 행동은 사기와 선동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예수회는 1764년 프랑스왕 루이 15세(Louis XV)에 의해 프랑스에서 추방되었고, 1773년 교황 클레멘트 14세(Clement XIV)에 의해서 그 범위가 더 확대되었다가, 1814년에 복권되었다.
프랑스 사상의 제안자와 전파자들
18세기에 성경의 권위와 대홍수에 대한 믿음에 반대했던 가장 주목할 만한 프랑스 사람으로는, 베르나르 드 퐁트넬(Bernard de Fontenelle, 1657~1757), 브누아 드 마예(Benoît de Maillet, 1656~1738), 볼테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등이 있다.
베르나르 퐁트넬(Bernard de Fontenelle, 1657~1757)
퐁트넬은 부르봉 예수회 대학(Jesuit Collège de Bourbon)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40여년(1697~1740) 동안 파리 왕립 과학아카데미에서 명성 있는 간사(Secretary)의 지위를 역임했다. 이로 인해 그는 성경적 대홍수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프랑스 지질학의 발전과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1686년) ‘세상의 다원성에 관한 대화(Conversations on the Plurality of Worlds)’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3] 실제로 그것은 공상과학 대화인데, 거기서 우주여행 및 달과 다른 행성에서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퐁트넬은 수십만 년에 걸쳐 자연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상상했으며, 그의 책은 다음 세기에 걸쳐 프랑스 사람들의 상상 속에 다른 세계관을 준비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4] 그 대화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보다 10만 배나 더 오래 지속됐던 것이 틀림없다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삶의 나이로는 불멸의 징후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사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자연은 아무 것도 갑자기 하지 않으며, 자연의 방법은 우리가 거의 인식할 수 없는 매우 완만한 눈금으로, 모든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5]
왕립 아카데미에서 그는 아카데미의 공식 논문, 메모 및 서신에 대한 자체 요약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았다.[6] 그러나 그의 요약은 어떤 연구를 완전히 반영하는 것에서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대신에 종종 그는 화석기록과 지구 역사의 본질에 관련하여, 자기 자신의 관점을 반영했다.[7] 이것을 통하여 그는 프랑스 과학계로 하여금 세계의 역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는 더 오래되었다는 사상을 주입시켰다.
예를 들어, 저명한 과학자 르네 레오뮈르(René Réaumur)는 아카데미의 ‘회고록(Mémoires, 1720)’에서 프랑스 뚜렌느(Touraine) 주의 팔룬(Falun) 층이 수많은 조개껍질과 껍질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퐁트넬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홍수의 증거를 부정하고, 그 대신 오랜 기간에 걸친 지질학적 변화를 주장했다. 그는 7m 두께의 조개껍질 층이 쌓이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바다가 점차적으로 물러가는 과정을 수반하는 연속적인 홍수가 필요하며, 지구의 생명체는 인류의 출현보다 훨씬 앞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홍수들 중 어느 것도 모세의 글(창세기)을 지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8]
브누아 드 마예(Benoît de Maillet, 1656~1738)
18세기 중반에 또 다른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드 마예(Benoît de Maillet)가 편집한 책 ‘텔리아메드(Telliamed, 그의 이름 철자를 거꾸로 배열한 단어)였다.[9] 그것은 그의 사후에(1748년) 예수회 사제 마스크리에(Abbé Jean Baptiste le Mascrier)가 처음 출판했는데, 초고는 이미 파리에서 수십 년 동안 회자되고 있었다. 드 마예는 프랑스의 외교관이 되어 중동으로 여행하면서, 다른 문화와 신념을 접할 수 있었다.
텔리아메드는 프랑스 선교사의 관점과는 반대로, 힌두교 현자의 관점에서 수백만 년 동안의 변화를 주장했다. 초기의 은밀한 초안은 지구가 적어도 20억 년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힌두교 창조의 신 브라마(Brahma)의 대략 반나절과 연관지었다. 브라마의 낮 12시간은 43억2천만 년 동안 지속되었으며(이 기간 동안 브라마는 깨어있었다), 이와 비슷한 길이의 밤이 뒤이어 왔다고 말한다.
볼테르(Voltaire, François-Marie Arouet, 프랑수와 마리 아루에, 1694~1778)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역시 지질학적 변화에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746년에 볼로냐 아카데미(Academy of Bologna)에 익명의 서한으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자연의 위대한 건축에 비추어 볼 때, 수십억 년의 순환은 우리에게 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바퀴 도는 것보다도 무한히 작은 것이다.[10]
볼테르는 또한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되는 화석 물고기들은 사실상 기독교 순례자들이 흘렸던 음식물이라고 주장했다! 볼테르는 그러한 화석 증거들은 성경적 대홍수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은 비록 그가 모세의 글에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이었지만, 볼테르가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이엘은 매우 덤덤하게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지질학과 관련된 주제에서 그(볼테르)가 쓴 수많은 에세이들은 자기의 편견을 강화하기 위해 계산된 것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과학의 실제 상황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의 나쁜 신념에서 온 것이다.[11]
심지어 볼테르는 힌두교의 경전들이 성경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믿을만 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또 다시 그는 진리를 잘못 표현했다. 볼테르는 아주르 베다(Ezour Veda, or Ezourvedam, 브라만교 경전)가 서방 국가들에게 귀중한 선물이라고 칭찬하면서, 그들은 이 동양 종교에게 빚을 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은 고대의 원전이 아니라, 훗날 예수회 수사들이 위조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베다의 현자로 짐작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한 사람은 유일신론자이고, 다른 사람은 힌두의 다신론(어느 정도 변장한 유일신론)을 믿는 다신론자이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디드로는 정치 및 종교 당국에 저항하던 선동자였으며, 한때 선동죄로 수감됐었다. 그의 책 ‘자연의 해석에 대한 생각(Thoughts 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1754)’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 철학자는 아니지만, 나의 추측으로, 태고의 시간부터 동물들은 자신의 구성 요소들을 갖고 있고, 그것들은 분산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몸체를 이루며, 이러한 구성 요소들이 함께 우연히 모이게 되었다고 추론된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발전 사이에는 수백만 년이 지나갔다 ...?[12]
예수회 훈련을 받은 디드로는 볼테르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점차로 자기 신념을 잃고, 이신론자(deist)가 되었다가, 다음에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 백과사전(Encyclopédie)의 편집을 맡았는데, 포괄적인 저작이 1751년에서 1772년까지 출판되었고, 그 작업은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프랑스 사회의 사고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했다.
커넥션 만들기
그러니까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에서 오랜 연대와 점진적인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믿음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초기에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지질학에서 대홍수에 대한 성경적 서술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때때로 이것은 혐오스럽고 기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또한 힌두교에 대한 지식이 프랑스 사회의 사고 속에 들어오면서, 수백만 년에 걸친 변화가 일어났다는 신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과학(science)에 파고들었지만, 성경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더욱이 프랑스에서는 기존의 정치적, 종교적 질서에 반대하는, 혁명에 대한 갈망이 자라고 있었다.
수백 수천만 년의 지질학적 변화에 대한 믿음은 제임스 허튼(James Hutton),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같은 사람들을 통해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퍼져나갔다.
많은 지구과학자들이 오랜 연대에 대한 믿음의 뿌리에 대해 거의 무지하며, 현대지질학에서 이 ‘프랜치 커넥션(French connection)’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확실히, 이러한 믿음은 순수하게 퇴적지층들의 연구로 인해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References and notes
1. Walker, T., Geological pioneer Nicolaus Steno was a biblical creationist, J. Creation 22(1):93–98, 2008; creation.com/steno.
2. Pascal, B., The Provincial Letters, Letter V, 20 Mar 1656, Trans T. M’Crie, University of Adelaide, Australia, 2005.
3. Fontenelle, Bernard Le Bovier de, Entretiens sur la Pluralite des Mondes; it went through many French editions.
4. Stott, R., Darwin’s Ghosts: In search of the first evolutionists, Bloomsbury Publ., London, p.117, 2012.
5. Fontenelle, B., The Plurality of other Worlds, Gunning, E. (trans.), Paternoster-Row, London, pp. 129–141, 1803.
6. Rappaport, R., Fontenelle interprets the earth’s history; in: Revue d’histoire des sciences, tome
44, no. 3–4, pp. 281–300, 1991. This discusses the Histoire et Memoires de l’Academie royale des sciences, Paris, annual volumes from 1699. Fontenelle wrote the Histoire.
7. Fontenelle, B., Histoire … , ref. 6, preface and p. 9, 1699 (Paris, 1702). Rappaport (ref. 6, pp. 282–283) writes: “He wrote in the Preface of the first publication, ‘we even took care on occasions of sowing our own clarifications to facilitate the reading of the Memoires’ ” (my translation).
8. Fontenelle, B., Histoire..., pp. 5–9, 1720 (1722); in Rappaport, ref. 6, p. 297.
9. It was fully entitled: Telliamed, or Conversations Between an Indian Philosopher and a French Missionary on the Diminution of the Sea, and the Origin of Men and Animals (English translation); Le M.ascrier, J.B & Antoine Guers, J. (Eds.), Amsterdam, 1748.
10. Voltaire (Arouet, F.-M.), Dissertation on the changes that have happened in our globe, and on the Petrifications which are alleged as Proofs thereof, Letter to Academy of Bologna; in Smollett, T. et al., (trans.), The Works of M. de. Voltaire, vol. 18, London, pp. 243–256, 1762.
11. Lyell, C., chapter 4 of Principles of Geology (9th Edn), book 1, University of Adelaide, Adelaide, Australia, pp. 54–55, 1854 (also in 1834 edition).
12. Diderot, D., Thoughts 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Other Philosophical Works, (Ed. Adams, D.) Clinamen Press Ltd, Manchester, p. 75, 2000.
*ANDREW SIBLEY B.Sc. (Hons), M.Sc., M.Phil. Andrew is a UK meteorologist who is also qualified in environmental science and decision making. His master’s degree in philosophy examined the theology and science of Intelligent Design. He is a speaker and writer on creation and apologetics, and has authored two books on creation issues. For more: creation.com/andrew-sib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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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reation 42(2):53–55, April 2020
주소 : https://creation.com/where-did-deep-time-belief-arise
번역 : 이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