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화석에 대한 편견 없던 태도
(Fossil Political Correctness in the Sixteenth Century)
William Hoesch
화석에 대한 사고(thinking)의 역사는 하나의 세계관(worldviews)에 관한 역사이다. 취리히의 게스너(Conrad Gesner, 1516-1565)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박물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의 책, '화석들에 대하여(On Fossil Objects)'는 여러 면에서 그의 개신교적 양육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1531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전투로 그의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이 사실은 그 당시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성장하면서 게스너의 친구는 16 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크리스천 중의 한 사람이었던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외에 없었다. 그 당시 르네상스식 인본주의가 지배적 세계관이던 시기에, 과학에 대한 게스너의 관심은 대학으로 그를 이끌었다. 화석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그의 개신교적 양육은 몇몇 흥미로운 방면으로 빛을 발하였다.
첫째로, 게스너는 직접적인 관측을 매우 강조하였고, 화석들의 상세한 목판화 실례들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으로 그는 당시 관측 위에 고대의 의견(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위치시켰던 과학의 르네상스식 전통을 끊어버렸다. 게스너는 이것을 뒤집었던 것이다. 그 당시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의 암석 속에서 발견된 바다생물처럼 보이는 화석들은 과거 한때 살았던 생물체들의 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에 의하면, 이들 재미있게 생긴 화석 형태들은 신비로운 별들의 영향에 의해서 조절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Aristotelianism)에 의하면, 바다생물처럼 보이는 화석들은 바다 생물체들의 '씨(seeds)”가 육지로 운반되어 와서 암석 균열들 사이에 자리잡게 된 후 그 위치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스너는 이러한 가르침들에 도전하는 노력은 하지 않는 대신, 바다생물처럼 보이는 화석과 살아있는 바다생물의 목판 그림들을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서, 화석에 대한 유기체적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사고를 바꾸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직접적인 관찰은 성경에서 위임한 '자연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 데에' 필수적인 단계였으며, 게스너는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로, 게스너는 자연에 관한 연구에서 특별한 기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당시 화석의 카테고리로 간주되던 광물들과 보석들을 찬란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지상에 남겨진 유물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뛰어난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스위스의 알프스를 걷는 것을 기뻐했다. 그곳에서 그는 의학적 처방에 사용될 수 있는 식물들을 조사했다. 그 당시에 자연을 즐기는 것은 이상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게스너는 오늘날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레저 하이킹(recreational hiking)의 아버지로서 추앙받고 있다! 타락된 자연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과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만드신 만물 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롬 1:20). 게스너가 자연에서 얻었던 기쁨의 수준은 그의 신플라톤주의적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교육과 훈련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자연 만물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석이 제 위치에서 성장했다는 고대인들의 지혜는 결국 이교도 철학의 논설에 불과했다. 게스너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사고하는 과정을 바꾸는 것을 도왔다. 터툴리안(Tertullian)과 같은 초기 교회의 아버지들은 실제로 올바른 사고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화석들에 대한 생물체 기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높은 산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체의 유물들은 이례적인 사건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전 지구적인 홍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비록 오랫동안 잊혀졌지만, 이것은 지구 역사에 관한 커다란 사건을 생각하도록 요구하였고,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가르침은 17세기에 되돌아오게 되었고, 과학을 단단한 기초 위에 올려놓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William A. Hoesch, M.S. geology, is Research Assistant in Geolog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138/
출처 - ICR BTG 217c, 2007. 1. 1.
16세기 화석에 대한 편견 없던 태도
(Fossil Political Correctness in the Sixteenth Century)
William Hoesch
화석에 대한 사고(thinking)의 역사는 하나의 세계관(worldviews)에 관한 역사이다. 취리히의 게스너(Conrad Gesner, 1516-1565)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박물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의 책, '화석들에 대하여(On Fossil Objects)'는 여러 면에서 그의 개신교적 양육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1531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전투로 그의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이 사실은 그 당시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성장하면서 게스너의 친구는 16 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크리스천 중의 한 사람이었던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외에 없었다. 그 당시 르네상스식 인본주의가 지배적 세계관이던 시기에, 과학에 대한 게스너의 관심은 대학으로 그를 이끌었다. 화석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그의 개신교적 양육은 몇몇 흥미로운 방면으로 빛을 발하였다.
첫째로, 게스너는 직접적인 관측을 매우 강조하였고, 화석들의 상세한 목판화 실례들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으로 그는 당시 관측 위에 고대의 의견(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위치시켰던 과학의 르네상스식 전통을 끊어버렸다. 게스너는 이것을 뒤집었던 것이다. 그 당시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의 암석 속에서 발견된 바다생물처럼 보이는 화석들은 과거 한때 살았던 생물체들의 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에 의하면, 이들 재미있게 생긴 화석 형태들은 신비로운 별들의 영향에 의해서 조절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Aristotelianism)에 의하면, 바다생물처럼 보이는 화석들은 바다 생물체들의 '씨(seeds)”가 육지로 운반되어 와서 암석 균열들 사이에 자리잡게 된 후 그 위치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스너는 이러한 가르침들에 도전하는 노력은 하지 않는 대신, 바다생물처럼 보이는 화석과 살아있는 바다생물의 목판 그림들을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서, 화석에 대한 유기체적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사고를 바꾸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직접적인 관찰은 성경에서 위임한 '자연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 데에' 필수적인 단계였으며, 게스너는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로, 게스너는 자연에 관한 연구에서 특별한 기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당시 화석의 카테고리로 간주되던 광물들과 보석들을 찬란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지상에 남겨진 유물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뛰어난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스위스의 알프스를 걷는 것을 기뻐했다. 그곳에서 그는 의학적 처방에 사용될 수 있는 식물들을 조사했다. 그 당시에 자연을 즐기는 것은 이상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게스너는 오늘날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레저 하이킹(recreational hiking)의 아버지로서 추앙받고 있다! 타락된 자연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과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만드신 만물 가운데서 볼 수 있었다 (롬 1:20). 게스너가 자연에서 얻었던 기쁨의 수준은 그의 신플라톤주의적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교육과 훈련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자연 만물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석이 제 위치에서 성장했다는 고대인들의 지혜는 결국 이교도 철학의 논설에 불과했다. 게스너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사고하는 과정을 바꾸는 것을 도왔다. 터툴리안(Tertullian)과 같은 초기 교회의 아버지들은 실제로 올바른 사고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화석들에 대한 생물체 기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높은 산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체의 유물들은 이례적인 사건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명백히 전 지구적인 홍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비록 오랫동안 잊혀졌지만, 이것은 지구 역사에 관한 커다란 사건을 생각하도록 요구하였고, 한 번의 전 지구적인 홍수에 대한 가르침은 17세기에 되돌아오게 되었고, 과학을 단단한 기초 위에 올려놓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William A. Hoesch, M.S. geology, is Research Assistant in Geology.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3138/
출처 - ICR BTG 217c, 2007.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