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경 전체의 맥락을 고려하며 해석할 것! (Interpretation of a Particular Verse Should Be Consistent with the Whole Content!)
성경구절들의 해석은 성경전체의 흐름이나 맥을 보면서 이루어져야지 주관적 주장을 전개할 목적으로 비슷한 구절들을 여기저기 짜깁기해서 옳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특별히 이단들이 자주 쓰는 방법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고민하다가 성경을 닫은 후 아무 곳이나 펼쳐서 눈이 처음 가는 성경구절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눈이 간 구절은 마태복음 27:5, “유다가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라는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찜찜한 기분에 다시 한번 시도했더니 이번에는 누가복음 10:37,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라는 성경 구절이 나왔습니다. 공포에 질린 마음으로 삼세번이다 하며 시도했더니 이번에 눈이 간 곳은 요한복음 2:5,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이었답니다. 아전인수격으로 성경구절을 따다가 짜깁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이단들은 마치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다른 복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신앙촌의 이단집단으로 유명했던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가 로마서 11:17을 자주 인용하며 자기 자신이 참 감람나무요 이에 접붙인바 된 신도들만이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노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참 감람나무는 유대인을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괴변에 그렇게 쉽게 미혹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몇 구절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또 하나의 대표적 예가 자유신학적 해방신학입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던 자들과 상인들을 회초리로 쫓아내신 것(마태복음 21:12),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마태복음 5:3-4),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마태복음 19:23-24), 제자들 가운데 열심당원이 있다는 것(누가복음 6:15), 그리고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신다는 것(누가복음 22:29),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는 것(누가복음 22:36) 등의 성경구절 등을 오용하여 예수님을 계급투쟁에 목표를 둔 정치적 혁명가로서 조명하며 크리스천들이 주도가 된 혁명과 정치참여 등을 강조하는 것 등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신약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새로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레위기 11장에서는 육식을 할 경우 어떤 동물이 정한 동물이고 어떤 동물이 부정한 동물인지를 나열해 놓았습니다. 오늘까지 구약의 율법아래 매여있는 유대인들과 모슬렘들은 지금도 돼지고기를 부정한 음식으로 간주하여 먹지 않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0:9~16을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통하여 부정한 동물들을 먹으라 하시며, 그것을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물론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경시하는 이방인들도 하나님께서 다 택하셨으니 그들에게도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상징적 의미가 더 강하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음식에 대한 규례가 신약시대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7:19에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들이 신약 시대에는 모두 필요 없는 것일까요? 그 율법들을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것은 그 당시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 (theocracy)였던 이스라엘 사회에만 주어진 것으로서, 지금은 아무 의미도 없는 고대 율법으로만 취급하여야 할까요? 아니면 그 기본 정신과 영적 의미가 오늘날에도 적용되며, 현대 법률의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할까요?
분류:기독교-세계관
출처:`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中
2) 성경 전체의 맥락을 고려하며 해석할 것! (Interpretation of a Particular Verse Should Be Consistent with the Whole Content!)
성경구절들의 해석은 성경전체의 흐름이나 맥을 보면서 이루어져야지 주관적 주장을 전개할 목적으로 비슷한 구절들을 여기저기 짜깁기해서 옳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특별히 이단들이 자주 쓰는 방법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고민하다가 성경을 닫은 후 아무 곳이나 펼쳐서 눈이 처음 가는 성경구절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 눈이 간 구절은 마태복음 27:5, “유다가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라는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찜찜한 기분에 다시 한번 시도했더니 이번에는 누가복음 10:37,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라는 성경 구절이 나왔습니다. 공포에 질린 마음으로 삼세번이다 하며 시도했더니 이번에 눈이 간 곳은 요한복음 2:5,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이었답니다. 아전인수격으로 성경구절을 따다가 짜깁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이단들은 마치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다른 복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신앙촌의 이단집단으로 유명했던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가 로마서 11:17을 자주 인용하며 자기 자신이 참 감람나무요 이에 접붙인바 된 신도들만이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노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참 감람나무는 유대인을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괴변에 그렇게 쉽게 미혹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몇 구절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또 하나의 대표적 예가 자유신학적 해방신학입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던 자들과 상인들을 회초리로 쫓아내신 것(마태복음 21:12),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마태복음 5:3-4),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마태복음 19:23-24), 제자들 가운데 열심당원이 있다는 것(누가복음 6:15), 그리고 나라를 제자들에게 맡기신다는 것(누가복음 22:29),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사라는 것(누가복음 22:36) 등의 성경구절 등을 오용하여 예수님을 계급투쟁에 목표를 둔 정치적 혁명가로서 조명하며 크리스천들이 주도가 된 혁명과 정치참여 등을 강조하는 것 등입니다.
구약과 신약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신약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주신 새로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레위기 11장에서는 육식을 할 경우 어떤 동물이 정한 동물이고 어떤 동물이 부정한 동물인지를 나열해 놓았습니다. 오늘까지 구약의 율법아래 매여있는 유대인들과 모슬렘들은 지금도 돼지고기를 부정한 음식으로 간주하여 먹지 않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0:9~16을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통하여 부정한 동물들을 먹으라 하시며, 그것을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물론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경시하는 이방인들도 하나님께서 다 택하셨으니 그들에게도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상징적 의미가 더 강하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음식에 대한 규례가 신약시대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7:19에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들이 신약 시대에는 모두 필요 없는 것일까요? 그 율법들을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것은 그 당시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 (theocracy)였던 이스라엘 사회에만 주어진 것으로서, 지금은 아무 의미도 없는 고대 율법으로만 취급하여야 할까요? 아니면 그 기본 정신과 영적 의미가 오늘날에도 적용되며, 현대 법률의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할까요?
분류:기독교-세계관
출처:`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