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4. 성경을 어떻게 읽고 적용할 것인가? - II. 주제연구 (3)-1

II-3.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1)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Literal vs. Symbolic Interpretation)


성경을 해석할 때 내용 그대로(literally) 해석하는 경우와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2가지 경우가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상징이나 시적·문학적 표현이 분명한 경우는 물론 제외) 계시된 내용 그대로 해석하려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당신은 어떠한 경향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합니까? 당신은 창세기 1~11장을 계시된 내용 그대로 믿습니까? (한국의 일부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문자적 해석이란 용어에 지나치게 부정적 시각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성경전체를 있는 내용 그대로 (상징이 분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받을 것을 권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창세기에 나오는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는 것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받을 수 있겠냐고 반문 하실 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의 과학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흙 속에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화학 원소가 들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 원소들을 사용해서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흙으로 빚어 어느 모양을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빚으셨다고 상징적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지만, 있는 내용 그대로 받아들여도 또한 무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을 명백하게 인용한 부분을 표본집단으로 해서 살펴보면 총 235회 중, 순수하게 역사적 의미만 갖는 문자적 해석이 약 77%이고, 이중적 의미를 갖는 예표적 해석은 약 22%이고, 순수하게 비유적 의미만을 갖는 풍유적 해석은 약 1%입니다. 예표적 해석은 반드시 문자적으로 그 의미를 갖음을 고려한다면 문자적으로 충실히 해석하여 무리가 없을 확률은 크게는 99%까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합당한 방법은 성경을 전혀 해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이시라면 그분은 자신이 뜻하는 바를 그대로 말씀하셨음에 틀림없으며, 사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늘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암호로 쓰여진 어떤 비밀 책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평범한 글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분은 성경의 각 권을 기록하기 위해 군인, 목자, 어부, 의사, 세리, 왕, 제사장 등 여러 배경의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배경의 사람들 곧 부자와 가난한 자, 교육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노인과 어린이, 모든 인종과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다른 어떤 책보다도 더 성경을 많이 읽고 사랑하며 믿으며 이해하고 있습니다.…


성경 해석시 최선의 법칙은 문맥이 명백히 상징적인 의미를 요구하지 않는 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의 저자가 비유적인 표현 또는 시적인 표현을 사용할 때는 언제든지 앞 뒤 문맥 안에서 이를 분명하게 해 놓았으며, 비유로 전달해야 할 진리도 문맥 안에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 Henry Morris (from www.inchristjesus.net)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말씀이 상징적으로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즉,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그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1:12~14,20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장하셨을 때,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은 사건이 나옵니다(only one destructive miracle by Jesus). 얼마전 모 대학 신문의 칼럼 난에 한 인본주의자가 “이와 같이 자신의 창조의 피조물인 무화과나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저주하고 말라죽게 하는지 이와 같이 생명을 경시하고 변덕스럽게 다루는 예수님이라면 나는 믿고 싶지 않다.”고 쓴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그 사람은 이 사건이 성경적으로 어떤 깊은 상징적 교훈과 의미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편견에 사로잡힌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많은 경우 무화과나무(fig tree)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예레미야 24:5, 호세아 9:10, 누가복음 13:6-9) 여기에서 특히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외식에만 열심이고 삶에 열매가 없는 율법주의적 바리새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는 복음서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그 저주는 또한, 바리새인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어떠한 고난의 운명에 놓일 것인가를 예언하기도 합니다. AD 70년 로마의 타이터스(Titus)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온 땅에 흩어지는(diaspora)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9:9) For I will give the command, and I will shake the house of Israel among all the nations, as grain is shaken in a sieve, and not a pebble will reach the ground. (Amos 9:9)


이리하여 완악했던 유대인은 그 저주 안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대신 은혜의 교회시대가 이방인(Gentiles)에게 도래합니다.



저희(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로마서 11:11)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유대인)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방인을 중심으로 한 교회시대의 성도들)이 받으리라. (마태복음 21:43)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로마서 11:25)


그러나,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께 돌아오고 구원에 동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로마서 11:26~28)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호세아 3:5)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에스겔 37:21,26)


이는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언약 때문입니다(창세기 12:2~3).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37-39에서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과거의 불순종과 그 후에 버려짐, 그리고 마지막에 회복될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A.D.7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결국은 회복될 것임으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마지막 때 이스라엘의 회심이 있을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한편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32~33에서 마지막 때에 관해서 이야기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우리가 무화과나무를 앞에서와 같이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본다면,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다시 생명력을 찾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온 땅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나라를 회복함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호세아 3:5). 즉, 이스라엘의 회복이 마지막 때 전에 일어나야 하고, 또 그것을 보며 마지막 때가 가까워 왔다는 경각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무화과나무를 영적인 이스라엘인 신약시대의 교회로(갈라디아서 6:16), 두려운 주의 날을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한정하여 보는 견해도 있음. 다음과의 예언의 이중적/삼중적 조명을 참고하기 바람.) 1900여 년 동안 온 세계에 흩어져 유리 방황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1948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Zionism) 순식간에 나라를 회복하는 경이로운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성경예언의 성취중 하나이며, 세계 역사상 그 유래가 없었던 사건입니다. (한편, 한국의 복음주의 진영 중 다수는 “실재적 이스라엘(physical Israel)은 초림으로 끝났고, 그 후에는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밖에 없다”라고 강조하는데 반하여,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진영은 마지막 때와 관련하여 실재적 이스라엘의 회복과 역할을 인정함. 1948년 이전에는 거의 2000년 동안 실재적 이스라엘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자의 견해가 우세했음.)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이사야 11:12)


프레드릭 대제(Frederick the Great)와 마르퀴 다르젠(Marquis D'Argens)과의 사이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프레드릭 대제가 어느 날 다르젠에게 “당신은 나에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박할 수 없는 하나의 증거를 댈 수 있겠나?”라고 묻자 “예, 물론이지요. 바로 유대인을 보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리아 산의 네 개의 성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미래에는 마지막 칠년대환란 때에 적그리스도의 가증한 것이 세워질 환란 중 성전(tribulation temple)이 있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돔 형식의 모슬렘 성전인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경대로라면 칠년대환란이 오기 전에 그곳이 유대성전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이스라엘 국민들의 성전회복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서,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전만은 꼭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80%이상이라 합니다. 이와 보조를 같이하여 이스라엘 정부도 예루살렘 성전 회복을 전제한다면 많은 영토일지라도 양보할 용의가 있다는 자세로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 임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과 같이 성전도 회복될 것입니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아모스 9:11) In that day, I will restore David's fallen tent. I will repair its broken places. (Amos 9:11)


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모스 9:15) I will plant Israel in their own land, never again to be uprooted from the land I have given them. (Amos 9:15)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예루살렘)에서 오사 야곱(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26-27)


이와 같이 상징적 해석이 더 깊은 의미를 더하여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상징적 해석은 궂이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류:기독교-세계관
출처:`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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