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세계관의 걸림돌: 타협, 분리, 따로신앙 2. 성경적 세계관의 의미와 적용 - II. 주제연구 (3)

3) 성경적 세계관의 걸림돌: 타협, 분리, 따로신앙


마태복음 16:6에서 예수님께서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왜곡된 교리(바리새인은 계시된 진리를 율법주의로 둔갑시킨 자들이며,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는 극자유신학자들(extreme liberals)이었음) 외에도 형식(외식)주의에 젖어있는 바리새인의 누룩과 세속주의/타협주의에 안주하는 사두개인의 누룩과 같은 삶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한편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로마서 12장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2절) 너희 몸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1절)”고 명하셨습니다.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그들만의 경건사회를 이루려했던 ‘엣세네파’를 향해서도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과 똑같은 말씀으로 권고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 속에 속해있는 크리스천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스위스의 유명한 크리스천 의사였던 폴 투르니에는 삶의 세 가지 방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결국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물질주의자(materialist)의 삶이다. 그들은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현실에만 몰두한다. 그냥 현실에서만 보다 잘 살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가며,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도피다. 두 번째 삶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신비주의자의 방식이다. 이 사람은 크리스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현실이 없는 하나님추구의 길을 간다. 현실과 분리되어 하나님께만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이다. 이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다. 그렇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리얼리스트’다. 그것은 하나님과 현실을 똑같이 직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개의 눈을 주셨다.”


현대사회는 무신론(진화론)과 인본주의(사람들이 선과 악을 결정할 수 있음)와 진리의 상대주의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시대정신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안에서 신앙인들은 갈등하게 됩니다. 때로는 이러한 진화론적 세계관, 세속주의, 배금주의, 인본주의, 상대주의 및 타락된 윤리의식들이 신앙인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과학/기술주의, 황금만능주의가 다른 어떠한 가치보다도 중요시되어 우상화 되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인하여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예레미야 23:10)


배금주의(맘모니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우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의 위력 앞에서 다른 귀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돈이 생명보다도 귀중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한국이 IMF의 경영 하에 놓여졌을 때, 곧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분위기로 온 국민이 엄청난 정신적 압박가운데 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심각하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윤리적, 도덕적 타락 현상에는 아무도 경제위기 때와 같은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가난해서 망한 나라는 없지만, 엄청난 도덕적 타락과 윤리의식 부재로 망한 나라는 많습니다. 최근에 한국의 대학교에서는 돈버는 것과 관계없어 보이는 강의는 아무도 강의 신청을 하지 않아서 폐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가치체계가 어디를 중심으로 세워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한편, 과학주의 또한 광명의 천사로 가장된 우상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의 정복(환경파괴)과 그를 위한 기술 지배(또한 인간의 소외)를 필연적으로 잉태시켰고, 물질적 부요 라는 경제주의의 가속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과학주의란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삭감해 버리고, 인간 그 자신의 힘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만심의 표현입니다. 이와 같이 과학(자연)주의는 초월자의 창조 및 주권을 철저히 배제하는 인본주의와 항상 보조를 같이 해 왔습니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전 학문과 전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본주의 및 과학만능주의의 누룩에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부정하거나 과학기술이 우리의 문명에 미친 긍정적 영향들을 경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과학적 방법론과 그 한계를 이해하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과, 그것의 발전이 우리의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것보다도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영적인 문제들 및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 등을 바르게 인식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해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과학주의(자연주의)나 이와 유사한 반성경적 사조들을 올바르게 성경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과학이나 학문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케플러와 같이 '과학이란 창조주의 그 놀라운 창조의 비밀과 섭리들을 알아 가는 것”이라는 자세로 과학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과학의 부산물이 인간이나 환경의 파괴에 쓰이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질서 및 영광을 위하여 올바르게 사용되도록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로새서 3:10)


이러한 과학-물질 만능시대의 시대정신 속에서 신앙인들은 방황하게 되고, 그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행동 방식으로 타협(아예 세상방식으로 사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분리(현실도피), 이원론적 태도(이중적 가치관으로 사는, 세상 생활 따로 신앙 생활 따로의 따로 신앙) 등을 취하게 됩니다.


특히 이원론적인 태도는 우리나라의 신앙인들 사이에 가장 심각한 문제이며 '이건 구원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세상일이니 남들처럼 적당히 하자”는 식으로 스스로 정당화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열왕기상 18:21에 보면 하나님과 바알 사이를 자기의 편의대로 왔다갔다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 엘리야가 다음과 같이 꾸짖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사단이 권세를 쥐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관)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열왕기상 18:21)


당신의 신앙과 생활방식은 어떠합니까? 따로 신앙의 요소들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러한 요소들이 있다면 보다 철저한 성경적 세계관을 갖기 위하여 또한 그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어떤 것들을 어떻게 고쳐 나아가야 할까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그 동안 전통적 기독교는 현실문제와 사회문제, 그리고 학문과 문화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거나 방관하였기 때문에, 진화론과 인본주의 정신 및 학문에 이 영역의 많은 부분을 내어주어 왔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쟈크 엘룰은 『뒤틀려진 기독교』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합니다. '신도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만 보다 충성되고, 보다 진지한 기독교인이 되게 하려는 모든 노력은 헛수고이다. 영적 각성은 오직 세상과 관계되어 일어나는 운동이다.” 마찬가지로, 프랜시스 쉐퍼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저서에서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들이 반 성경적인 문화와 사회에 대하여 충분히 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사실을 비판받아야 한다. 교회가 분명하고 용기 있게 그러한 논제에 대하여 외쳐야 했던 핵심적인 이유는 성경이 그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하니 (고린도후서 10:5)


그(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3)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8)


크리스천이 된다는 말 (즉 주님을 내삶의 주인 (Lord)으로 영접한다는 신앙 고백)은 우리의 전인격과 전 생활의 영역이 예수님을 향하여 놓여진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마음(Christ-centered mind)을 갖고, 성경적으로 조망되는 삶(Bible-controlled life)을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지한 크리스천들은 과학, 문화,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전 생활과 사고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정체감(identity)과 성경적 가치관을 소유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또한 세상과 자신의 활동분야에 그 빛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고린도전서 2:12)


현대는 사르트르(Jean P. Sartre)가 말한 것처럼 '휴머니즘의 스트립쇼(strip show)”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어리석은 부자처럼 창고나 짓고 배나 두드리는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주님의 종으로서 이 땅에서 주님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일들을 성실히 감당하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마태복음 25:21,23). 카이퍼(Abraham Kuyper)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그것은 내게 속하지 않았다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영역이 없게” 하여야 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이사야 55:2)


 


Summary


성경적 세계관 모임의 핵심은 세계관/가치관이 성경적으로 바뀌어야 우리의 가치세계와 이 세상에서의 삶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세계관은 바뀌지 않은 채 삶의 방식만 바꾸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Legalism)요 인본주의(Humanism)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세상의 종교는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거나, 우리가 보는 세계 이상의 신비를 추구하며,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계시한 내용입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의 육신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 하고 싶은 대로 하기를 원하지 누군가로부터 간섭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이 왜 우상을 숭배합니까? 우상은 피조물이므로 삶을 간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멋대로 살다가 가끔 필요할 때 찾아가서 빌면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혹시 이런 사람들과 다름없는 ‘따로’ 신앙생활(신앙 따로 삶 따로)을 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우리는 세속적 가치관과 진화론적 인본주의 세계관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세뇌를 당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말씀 묵상과 삶에서의 영적 전투를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가치관과 삶이 예수님이 원하는 그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이 매일 매일의 영적 전투와 거룩에로의 나아감을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십시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짓(worthless things)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renew my life according to your Word) (시편 119:37)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분류:기독교-세계관
출처:`성경적 세계관 세우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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