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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신앙

과학적 연구방법 이란? : 귀납법과 연역법, 그리고 진화론

과학적 연구방법 이란? 

: 귀납법과 연역법, 그리고 진화론


    캠브리지 대학의 근대사 교수인 버터필드(H. Butterfly)는 <근대과학의 탄생>(Origin of modern science 1946)에서 인류역사상의 3대 혁명이 있었다고 하였다. 도시혁명, 그리스혁명, 과학혁명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과학혁명을 가장 중요시하였는데, 그 이유는 과학혁명이 다음과 같은 사건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1) 아리스토텔레스적 자연관의 붕괴

(2) 과학적 방법의 확립

(3) 과학과 기술의 결합

(4) 기계론의 승리

(5) 제도로서의 과학의 성립

이 중에서 주목할 사항이 과학적 방법 (Scientific Research Method)의 확립이다. 그는 모든 이론이나 학설이 과학적 방법으로 전개될 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설로 수용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과학적 방법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자연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하면, 그 속에 숨어있는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대한 연구로 지식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실험과 검증을 통해 공인을 받아야 하며, 여러 번 반복해도 꼭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즉, 과학 이론은 인과율과 재현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말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나타난다는 인과율(因果律 law of cause and effect)이 철저히 적용되기 때문에, 어떤 사실을 관찰하면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이처럼, 과학이란 자연이나 사물의 원리를 과학적 방법으로 추구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세우는 작업이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론은 11세기의 이슬람의 실증적인 과학기술이 유럽으로 전달되면서 16-17 세기에 지금과 같은 이론으로 발전한 것이다. 베이컨, 로크, 데카르트, 갈릴레이 등이 그러한 방법론을 제시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적인 방법론을 거부하고 각기 다른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베이컨과 로크는 귀납법을 주장한 반면, 데카르트는 수학적 연역법을, 갈릴레이는 수학적 연역법에 실험을 가미한 실험적 연역법을 주장하였다. 베이컨의 귀납법(歸納法)과 데카르트의 수학적 연역법은 이태리의 파두아 대학에서 꽃을 피웠다. 현재, 자연과학에서는 귀납법이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다.

 

1. 귀납법

귀납법(歸納法 inductive method)은 어떤 가설을 설정해 놓고서, 개개의 존재나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유도해 내는 논법이다. 이 방법은 영국성공회의 임원이었으며 제임스Ⅰ세 때(1620)에는 수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자연과학의 방법론(Baconian principle of inductive reasoning)으로 제시한 것이다 (사진 1). 그는 <새 기관>(Novum Organum 1620)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불충분한 관찰로부터 일반원리를 무리하게 도출했다고 비판하면서, 과학적 방법으로서 경험론(Empiricism)에 기초한 귀납법을 주장하였다. 그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먼저 네 가지 우상을 제거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사물을 우리와 관련하여 보려는 종족우상, 성격과 교육에 따라 편향된 시각으로 보려는 동굴우상, 사물을 해석할 때 사용하는 언어를 잘못 선택할 수 있는 시장우상, 그리고 마음속의 철학체계의 영향을 받게 되는 극장우상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성과 관찰간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연에 대한 자료를 수집, 분류, 도표화하여 일반화된 결론을 도출해야 하며, “경험주의자들은 자료를 모으는 개미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만큼 과학적 방법은 충분한 자료에 근거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학문하는 방법으로는 관찰성 (관찰이 가능하고 수량화할 수 있을 것), 객관성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관찰할 수 있을 것), 재현성 (누가 어디서 실험하든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하여 얻은 결과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미래사실에 대해 예측이 가능해야 하며, 새로운 관측에 의해 수정이 가능하고, 잘못되었을 경우 그 잘못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귀납법의 추진과정은 다음 순서에 따른 실험을 요구한다 (그림 2).

  (1) 자연현상을 관찰한다 (observation).

  (2) 관측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한다 (questionning).

  (3)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가정을 설정한다 (assumption).   

  (4) 가정을 증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운다 (working hypothesis).

  (5) 실험을 통하여 가설을 증명한다 (experimental demonstration).

  (6) 다시 반복실험을 하여 재현성이 있으면(reproducible) 자연법칙(natural law or principle)으로 인정을 받는다. [Randy L. Wysong; Creation-Evolution: The Controversy, p 42, Inquiry Press, Midland, Michigan, 1978]


이러한 귀납법의 등장은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귀납법의 가장 성공적 사례가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그는 어느 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왜 아래로 떨어지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의 중심부에서 끌어 당기는 힘이 있으리라고 추리하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가벼운 물건과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통하여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인력(引力 gravitation)과 가속도(加速度 degree of acceleration)의 원리를 입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결과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재현성) 만유의 법칙(萬有法則 universal law)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소위 만유인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이다.

그러나, 이러한 귀납법은 경험세계에서만 유효하며, 형이상학적 요소를 무시함으로써 실험과학의 독선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이 최근에 일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쿤(Thomas Kuhn)이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ce Revolution 1970)에서 귀납적인 점진적 발전론을 비판하고, 기존이론에 대한 혁명적 전환에 의해 과학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진다는 패러다임 쉬프트설(paradigm shift theory)를 주장하였다. 즉, 패러다임 혁명은 기존학문과는 전혀 다른 질문과 이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상반되는 패러다임 간에는 의사의 소통이 없이 서로 대립하게 되므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이론이 옛 이론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설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천동설에 대한 지동설, 뉴톤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이러한 귀납법에 대한 비판에는 포퍼(Karl Popper)도 가세하였다. 그는 귀납모델이 가르치듯이 과학자들이 실제적으로는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여 관찰하지 않는다고 자연과학자들의 성실성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드 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2. 연역법

연역법 (演繹法 deductive method)은 일반원리에서 논리적인 방법으로 필연적인 결론을 유도해 내는 방식이다. 예컨데, “홍길동은 죽는다” 라는 명제를 증명해 보기로 하자. 연역적으로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 라는 대원리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누가 보아도 자명한 원리이다. 다음 단계로 ”홍길동은 사람이다“ 라는 보편적 사실을 설명한다. 마지막 단계로 ”따라서, 홍길동은 죽는다“는 자명한 결론을 유도한다. 이러한 삼단논법(三段論法)은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정립한 것이지만, 그 뿌리는 일원론(monism)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원리로부터 세상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을 연역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삼단논법을 포함한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60)에 의해 수학적 연역법으로 체계화되었으며(사진 2), 지금은 철학의 원리나 종교의 교리로부터 일상적인 생활법칙을 유도해 내는 데 많이 활용되고 있다. 예컨데, 헤겔(Hegel)은 변증사관을 수립하여 역사의 인식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그의 변증사관은 다시 마르크스에 의해 유물사관의 수립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며 ‘근세철학의 아버지’로도 불리우는 데카르트는 예수회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은 유신론적 과학자였다. 그는 철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하였으며, 그의 학문은 의심에서 출발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말은 이러한 회의론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의 <방법적 회의>(la doute methodique)는 첫째는 사물인식에 대한 감각적 경험이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 둘째는 우리 마음이 감각적인 경험을 넘어 외부세계에 대한 바른 지식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회의이다. 그래서, 그는 감각을 부인하고 “이성(理性)은 신이 주신 자연의 빛(lumen naturale)이며, 이성에 의해 명석하고 확실하게(clair et distinct) 바른 것으로 인정된 것이 진리”라 하였다. 이처럼, 직관에 의해 자명하게 인정된 학문분야가 수학(數學)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방법론에 대한 강연>(Discourse on Method 1637)에서는 “우주는 수학적 법칙이 지배하는 기구”로 보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스콜라철학과는 다른 수학적 연역법을 도입하였으며, 가설과 수학적 추론으로 법칙을 유도하려 했으나, 경험(실험)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학문적 방법으로 다음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① 독단과 편견을 피하고,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 이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 자신이 의심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② 연구하려는 문제를 해결이 가능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라.

③ 사고순서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방향으로 하라.

④ 전체를 종합하여 다시 보라. 그 문제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어야 진리이다.

그는 인간이 주관적으로 지식과 진리를 결정하는 주체라고 하여, 후일 서양학문이 인본주의적이며 반신적(反神的)인 방향으로 흐르는 길을 터놓았다. 그리고 “동물은 신이 만든 단순한 기계” 라는 생체기계론(生體機械論)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자연스럽게 라메뜨리의 생명기계론으로 연결되어, 생명사상에 관한 새로운 학술논쟁을 예고하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므로, 육체와 영혼은 별개의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Traite e l'homme' 1630).

 

3. 실험적 연역법

지동설로 유명한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방법론은 데카르트와 같은 연역법이지만, 수학적 추리에 실험적 검증을 가미한 것이다. 연역법에 실험이 가미됨으로써 데카르트의 미비점이 보완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현대과학의 방법론이 확립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후, 서양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은 귀납법과 실험적 연역법에 의해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귀납법은 자연과학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었으며, 지금은 페러다임 쉬프트이론과 더불어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4. 형이상학은 믿음의 문제

이 세상에는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학의 영원한 테마라 할 수 있는 생명의 기원과 생물의 다양성문제, 우주만물의 기원 및 인간, 내세, 영혼, 신, 진리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과제들은 실험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과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해석방법이 있다. 하나는 종교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의 틀을 미리 설정해 놓고서 제반 사상(事像)을 그 틀에 맞추어 해석하는 방식이다. 전자가 우리 주변에 있는 고등종교들이고, 후자는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종교적 해석의 특징은 직관적이며, 주관성이 강하고 선언적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는 세계관이며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으로 성립하기가 어렵다.

학문적 해석의 틀(interpretation paradigm)에는 역사적으로 두 이론이 대립하여 왔다. 우주만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해 왔다는 진화론이 그 하나요, 전능하신 창조주가 목적을 가지고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부터 우주만물을 종류대로 창조했다는 창조론이 다른 하나이다.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이론 외에는 다른 해석체계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보편적 견해이다. 창세기에 기초한 창조론은 학문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그 이유는, 학문의 역사상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창조론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어 왔을 뿐 아니라, 창세기의 기록이 우주의 기원과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은 기독교의 교리라고 비판을 받아 온 반면, 진화론은 철저히 절대성을 부인하고 상대주의를 고수한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origination)이나 생물다양성(biodiversity)과 같은 문제들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므로,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이론은 모두 과거에 대한 추리(assumption)이며,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믿는 신념(belief)이며 신앙(faith)이라 할 수 있다. 창조론이 유신론적 신앙이라면 진화론은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신앙이다. 진화론은 추리에서 출발하여 추리로 끝나지만, 창조론은 창조주가 우주만물을 만드셨다는 창세기(創世記 genesis)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창세기는 과거 3,500년간 원본대로 전해져 내려 온 인류 최고(最古)의 기록물이라는 사실은 그 동안 성경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수많은 무신론자들에 의해 역으로 증명되고 있다. 문제는 성경이 거기에 기록된 내용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은 학문적 선택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선택이며 개인적으로는 인생관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창세기의 내용은 매우 요약적이지만, 우주만물의 기원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들이 단순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창조주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점은 분명히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비과학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성경은 초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한 때는 성경의 일부 내용이 과학과 상충하는 듯이 보이더라도 과학이 발전하면서 성경의 기록이 옳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곤 하였던 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창조론이 창세기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학계에서 배척하려는 것은 학문적인 견지에서도 정당치 못하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불행스럽게도, 오늘의 자연과학계는 진화론 일변도로 물들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입만 열면 창세기를 특정종교의 교리라고 배척하면서 창조론자들을 편협한 근본주의자로 매도한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오늘처럼 세력을 얻은 것은 불과 100 여년에 불과하며, 창세기에 근거한 창조론은 1,500 여년의 긴 역사를 통하여 과학계에 널리 수용되어 왔던 이론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창조과학자들이 오늘의 자연과학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증명될 수도 없는 가설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 신념이요 신앙이라는 사실이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물질에서 출발한다는 유물론을 주장한다. 생명도 무기물에서 우연히 자연발생 하였고, 단세포에서 자연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동식물로 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일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초월적인 신의 개념이 개입할 여지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라 알 수도 증명할 수도 없건만, 그들은 스스로 만든 가설의 틀에 갇히어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 이론을 학술적으로 비판하는 창조론자들은 교조적이며 교리의 도그마에 붙잡힌 편협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한다. 진화론을 비판하지만 말고 대안을 제시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과연 누가 과연 편협하고 비과학적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그들은 오늘의 과학지식 대부분이 창조론적 과학자들에 의해 확립된 이론들임을 알고서 하는 말인지 의심스럽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곳에 있다.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야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잘못되고 위험스러운 이론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더구나, 그 대상이 우리 자녀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에서는 진화론만 가르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주장이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알게 된다. 두 이론을 굳이 조절해야 할 당위성도 없다. 두 주장이 극도로 상반된다는 것은 두 이론중 하나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분명히 거짓된 사설(邪說)임을 의미한다. 잘못된 이론에 일생을 맡긴다면, 그 사람의 일생은 물론이요 사회와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갈 뿐이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깊이 음미함으로써 교훈을 받아야 한다.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91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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